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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s

게임으로 배우는 자본주의

drake_kr 2016. 11. 30. 02:14

Source : http://blog.naver.com/alphacool/220454769816

한국 온라인게임에서 가장 엄격하게 다스려지는 죄목은 무엇일까. 살인, 약탈, 강도, 폭행? 아니다. 아이템을 현금으로 거래한 사람, 자동사냥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람, 버그를 악용해 게임머니를 복사한 사람 등 일종의 경제사범들이다.

이들에게는 최소 계정삭제 및 블록 조치가 내려진다. 현실로 따지면 사형이나 무기징역이다. 유독 경제사범들에게 가혹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가 게임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은 “게임 속 정치가 부패하면 사람들이 떠나지만, 경제가 무너지면 게임이 망한다.”고 말한다.

온라인게임이 롱런하려면 나름대로 튼튼한 경제구조가 필요하다. 돈을 잘 벌고 잘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온라인게임 속 경제는 20세기 자본주의를 닮았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기반으로 자유주의와 수정자본주의, 그리고 경제민주화가 얼개처럼 엮이며 게임속 '돈'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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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모든 시민들을 잘 살게 해줄 것이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중)-

채집경제와 자본주의의 시작
온라인게임에서 돈을 벌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몬스터를 잡아서 떨어지는 돈이나 아이템을 채집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경제활동이다. 쓸모없는 ‘잡템’은 상점에 팔고, 좋은 아이템은 자신이 사용하거나 다른 유저에게 판매해 수익을 챙긴다.

영국의 인류학자 'E. 타일러'는 이런 경제활동을 ‘채집경제’로 정의했다. ‘울티마 온라인’같은 초창기 MMORPG들이 채집경제의 전형이다. 이 게임은 캐릭터가 고유의 직업을 얻을 수 있다. 목수, 광부, 요리사, 대장장이 등 전문직 직업들이다. 목수는 나무를 베어 시장에 팔고, 요리사는 요리를 만들어 돈으로 바꾼다.

채집경제 단계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 간단하다. ‘얼마나 물약을 덜 소모하고, 많은 몬스터를 잡아서 돈을 버는가’이다. 대부분 캐릭터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살 수 있었다.광부는 평생 광물만 캐서 살 수 있고, 목수는 나무만 베고도 생활을 꾸릴 수 있다. 간혹 남의 것을 빼앗는 PK 캐릭터도 있었지만, 게임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울티마 온라인’의 채집경제는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이상적인 자본주의체제를 그대로 반영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면서 온라인게임 경제는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틀어졌다. 리니지로 대표되는 자유방임주의 경제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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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경제로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게임. 울티마 온라인은 애덤스미스가 주장한 이상적인 자본주체제에 가깝다>

자유주의경제, 새로운 갈등을 낳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경제를 ‘자연적 자유의 단순한 체계’라고 표현했다. 자본주의는 누가 손대지 않아도 저절로 조화를 이루며 잘 돌아갈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정리해 줄 것이라 믿었다. 초창기 한국 온라인게임 개발자들도 ‘애덤 스미스’를 신봉한 것 같다(특히 리니지를 만든 송재경 대표).

1990년대 중반 ‘바람의 나라’, ‘리니지’ 같은 한국형 온라인게임은 철저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체제를 따랐다. 운영자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유저들의 자발적 경제활동에 맡겼다. 보이지 않는 손이 게임 속 경제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여기에 개인의 이기심을 존중하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리니지에서 그대로 재연됐다.

‘울티마 온라인’은 본 따 만들어진 리니지는 외견상 채집경제 구조를 보였다. 순진한 유저들은 열심히 사냥해 아덴을 모으면 좋은 아이템을 사고, 남한테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문제는 ‘탐욕’이었다. 탐욕은 부의 불균형을 낳았다. 어느새 게임은 거대 자본가와 서민유저들로 계층이 나뉘었다. 시간이 갈수록 둘 사이의 간격은 멀어졌다. 채집경제로는 버틸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아무리 사냥터에 나가 몬스터를 잡아도 먹고 살기 힘들었다. 반대로 돈 많은 유저는 부를 축적하기 쉬운 세상이 됐다. 아이템 인첸트가 대표적이다.

아이템을 싸게 사들여 이를 강화해 비싼 가격에 팔아먹었다. 고가 아이템 강화에 성공하면 그야말로 ‘잭팟’이 떠진다. 얼마 전, 리니지 최초로 ‘진명황의 집행검’ +5 강화에 성공한 유저가 등장했다. 이 검은 현금으로 수억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서민유저들은 엄두도 못 낼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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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리니지 최초로 집행검 +5 강화에 성공한 유저가 등장했다. 이 검은 현금으로 수억원의 가치를 호가하는 명품아이템이다>

"어떤 유저가 회사에 찾아오더니 아이템을 구입하려다 사기를 당했다고 하소연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 그때 우리 게임의 아이템이 현금으로 거래 된다는 걸 처음 알고 놀랐습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서민 쥐어짜는 리니지 ‘정탄경제’
그러다보니 자본가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시장을 잠식했다. 정경유착의 고리는 리니지 정치사의 가장 흔한 모습이다. 이들은 목 좋은 사냥터를 막아놓고 그곳에서 나온 제화를 독식했다. 작업장과 자동사냥 문제도 여기서 시작됐다. 사냥터를 막아놓고 그 안에서 자동사냥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 만큼 쉽고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은 없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자동사냥은 전형적인 불노소득이다. 정상적인 이용자가 며칠을 사냥해 모은 돈을 자동사냥은 몇 시간 만에 벌어들인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벌어 게임 속 경제를 무너뜨렸다. 사냥터 통제와 자동사냥은 상대방의 플레이까지 방해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중시켰다. 권력자들은 세금을 올려 서민들의 고혈을 짰다.

그럴수록 서민경제는 점점 팍팍해 졌다. 이른바 ‘정탄경제’라고 하는 리니지 특유의 경제구조 때문이다. ‘정령탄’(정탄)은 무기에 바르면 무기의 공격력이 2~3배 이상 증가하므로 사냥에서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현실로 치면 쌀, 기름, 라면 같은 생활필수품이다. 그런데 정탄은 상점에서 팔지 않고, 제조 캐릭터에게 구입해야 한다. 가격은 만든사람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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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2 개인상점. 유저들은 시장에 좌판을 깔아놓고 물건을 사고 팔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자본가들이 정탄시세를 좌우하면서 차익을 남기기 시작했다. 재벌기업이 동네상권을 파고든 것과 같다. 전체적인 아이템 가격이 오르면서, 나중에는 초보 유저들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다. 인플레이션 현상이다.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 서민경제를 더 쥐어짰다.

정탄 가격은 축서버와 저주서버를 나누는 기준이 됐다. 정탄시세가 높을수록 살기 힘든 저주서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팍팍한 삶은 계속됐다. 그런데도 운영자들은 수수방관했다. 자유란 미명하에 수많은 유저들이 '부'의 불평등을 감수해야만 했다.

동맹 혈맹의 모든 구성원의 고레벨화와 풍요로운 자금을 확보한다는 원칙하에 적대세력의 도약을 저지하며...”

-DK혈맹이 반대파들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내놨던 '용던 수칙' 중-

바츠혁명’은 경제전쟁이다
앞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지만 ‘바츠 해방전쟁’의 실질적 원인도 경제 때문이다. 역사는 이 전쟁을 서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혁명전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먹고 살기 위한 싸움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바츠 서버는 경제는 파탄 일보직전이었다.

서민경제는 사냥터독점과 높은 세금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보통 60레벨대 캐릭터들의 필수 사냥터는 ‘용의 던전’이다. 권력자가 용던을 통제하면서 일반 유저들은 60레벨 대에서 더 이상 캐릭터를 키울 수 없게 됐다.

성마다 세금율도 20%가 넘었다. 정탄 값은 사상 최대치로 올랐다. 극심한 인플레이션 속에서 바츠 서버의 경제는 한계치에 도달했다. 먹을 빵이 없어 굶어죽는 '프랑스 대혁명' 직전과도 같다. 이런 상황에서 바스티유감옥 습격사건처럼, 바츠를 깨운 사건이 벌어졌다. 반왕 세력인 ‘붉은혁명’이 기란성을 습격해 점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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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유저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바츠해방전쟁도 따지고 보면 먹고 살기 위한 경제전쟁이다(사진은 바츠혁명전 작품전시회 포스터)>

이들이 성을 점령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세금을 0%로낮춘 것이다. 이 사건은 바츠의 모든 유저들을 열광시켰다. 그동안 참았던 서민 유저들이 하나둘 혁명군에 가담했다. 이후 혁명군은 성을 탈환할 때마다 세금을 0%로 낮추고, 사냥터 통제도 폐지했다. 서민의 지지를 얻은 혁명군은 권력자를 몰아냈지만, 그들 또한 스스로 부패했다. 자유주의 경제가 지속되는 한 이런 악순환은 되풀이 될 것이다. 

리니지 이후 한국형 온라인 게임은 한계에 부딪혔다. 자유방임주의의 결과는 탐욕과 갈등이었다. 부의 불균형을 낳았고, 서민경제 붕괴시켰다. 개발자들은 경제가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게임 속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경제의 한계, 변화의 바람

잠시 역사를 살펴보자. 20세기 초, 인류는 대공황이란 전대미문의 사건을 겪었다. 대공황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자본주의의 틀을 바꾸어 놓았다. 정부가 나라살림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수정자본주의가 도입됐다. 이때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케인스 경제학’이다. 기존의 자본주의에 정부의 개입을 늘리는 ‘혼합 자본주의’의 노선이다.

온라인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 내 경제규모는 실제 사회보다 작기 때문에 독점이나 과점의 횡포가 심하다. 아이템 현거래 금지, 오토 프로그램 금지 등 몇몇 규제가 있었으나, 그걸 로는 부족했다.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다.   

개발자들도 변화에 주목했다. ‘스타워즈 갤럭시즈’에서는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수시로 바꿔줌으로써 독과점의 폐해를 막았다. 다른 게임에서도 운영자가 개입해 물가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특정 아이템의 가격이 너무 비싸게 책정되면 그 아이템의 드롭율을 높여서 물가를 조정했다. 또, 너무 아이템이 많이 풀렸다고 판단되면 드롭율을 낮춰서 균형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경제 밸런싱을 맞추지 못해 실패하는 게임들도 많았다.

거상과 대항해시대, 경제 콘텐츠의 가능성

경제가 온라인게임의 핵심 콘텐츠로 떠오르면서, 아예 이 부분을 특화시킨 게임도 나왔다. ‘임진록 온라인 거상’은 경제활동에 초점을 둔 게임이다. 이 게임은 1509년 조선시대 동북아시아를 배경으로 상인들의 전략과 교역을 소재로 한 경제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의 목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얼마나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무역을 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캐릭터의 신용등급과, 경매 시스템이 도입되는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거상은 대학교의 경영수업 교제로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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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게임 거상을 만든 엔도어즈 김태곤 상무. 그는 경제와 역사를 반영한 온라인게임을 만들어 왔다> 

‘대항새시대 온라인’도 경제활동을 특화시킨 게임이다. 16세기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무역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유저는 상단을 꾸리고 지역의 특산물들을 팔아 차익을 남길 수 있다. 중간에 해적들과 전투를 벌이고, 반대로 해적이 되어 노략질도 할 수도 있다.

경제활동을 소재로 한 게임들은 유저들에게 독특한 재미를 주었다. 하지만 빈익빈부익부의 불평등은 이 게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거상의 경우 초보자가 돈 벌기 워낙 힘들어서 “어지간하면 현금거래로 자금을 마련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초기 자본주의가 자기 조절능력이 있다고 믿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3가지 경제혁신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온라인게임 경제에 획을 그은 게임이다. 이 게임을 시작으로 게임 속 경제는 또 한 번 혁신됐다. 와우는 아이템 분배방식부터 바꾸었다. 이른바 ‘퀘스트 경제’다. 게임이 제공하는 퀘스트만 완료하면, 필요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돈이 많건 적건 간에 누구든지 똑같은 퀘스트를 받고, 동일한 보상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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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게임 경제를 혁신한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퀘스트와 인던 중심의 경제체제는 게임역사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퀘스트 아이템만 장착해도 큰 불편 없이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독과점의 폐해도 막았다. 인스턴트 던전(인던)을 도입해 거대길드의 사냥터 독점을 원천봉쇄했다. 개인마다 던전이 따로 제공되기 때문에, 하나의 던전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옥신각신 할 필요가 없어졌다. 레이드에서 나오는 아이템도 주사위를 돌려 나눠먹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일반 유저들도 충분히 좋은 아이템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시장도 개혁했다. ‘아이템 경매장’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이전 게임들은 공터에 좌판을 깔아놓고 개인간에 물건을 거래하는 방식이었다. 같은 아이템도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시세 조작도 쉬웠다. 그러나 와우는 경매장을 운영해 모든 아이템을 한자리에서 사고팔도록 만들었다.

판매자가 자신의 아이템을 경매장에 등록하면 소비자는 가장 적절한 가격을 골라 살 수 있다. 아이템 거래가 투명해졌다. 와우의 개혁은 온라인게임 경제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켰다. 운영자가 적극적으로 게임 속 경제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아이템 현거래와 자동사냥도 철저히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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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아이템 경매장은 시장의 투명성을 가져왔다. 유저들은 더이상 개인거래를 통해 아이템을 사고팔 필요가 없어졌다.>

이른바 수정자본주의의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이후 와우 같은 퀘스트 방식의 게임이 온라인게임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한편, 리니지식의 무한경쟁을 원하던 유저들은 와우의 경제시스템을 지나친 간섭으로 여겼다.

이들은 개발자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획일적인 플레이에 거부감을 느꼈다. 현실의 일도 지치는데 게임까지 퀘스트의 연속이면, 너무 피곤하다. 초기 자본주의로 복귀하자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게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금을 더 내야하기 때문에 부동산이 많을수록 오히려 손해죠. 결국 (대규모 부동산 소유가)아무 이득은 없는데 세금이나 설치비 손해가 더 크지 않을까요?”
                                 -아키에이지 김경태 전 기획팀장-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시대를 열다
다시 역사를 살펴보자. 1979년 ‘마가렛 대처’ 영국수상이 등장하면서 세계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쳤다. 개인의 경쟁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와 맞물리면서 우리를 무한경쟁의 시대로 몰아넣었다. 게임시장도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었다.

와우 같은 퀘스트 기반의 게임에 답답함을 느낀 유저들은 좀 더 자유로운 플레이를 원했다.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세상, 모든 콘텐츠를 유저의 자유에 맡기는 이른바 ‘샌드박스 게임’이 주목받았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게임이 ‘아키에이지’다. ‘아키에이지’를 만든 송재경 대표는 이미 리니지 세계를 창조한 경험이 있다.

아키에이지의 경제 시스템은 상당히 견고하게 설계됐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자본가들을 견제하기 위해 캐릭터에 노동력을 추가했다. 전문직 노동조합 단체가 등장했고, 무역을 활성해시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주었다. 돈 외에 부동산이라는 또 다른 제화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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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하게 설계된 아키에이지의 경제시스템. 결국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실패했다> 

모든 유저가 자신의 땅을 소유하고, 그 결과 경제가 활성화되길 원했다. 그는 리니지와 와우를 결합한 새로운 유토피아를 구현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두 시스템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빨리 레벨을 올려야 하는 유저들에게 퀘스트는 귀찮은 존재였다. 반대로 느긋하게 퀘스트를 풀며 스토리를 즐기려는 유저들은 레벨업이 더뎠다.

결정적인 패착은 부동산에서 시작됐다. 리니지 같은 게임은 특정 권력층만 성이나 아지트를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아키에이지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땅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땅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심해졌다. 거대 토지를 소유한 부동산 재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몇몇 유저가 대부분의 토지를 독식했다. 새로운 서버가 열리면 부동산 투기부터 시작됐다.  주로 무역이 용이한 해변 주위의 토지를 집중적으로 사들여 차액을 남겼다. 일반 유저들은 텃밭도 가꾸기 힘든 지경이 됐다. 운영자도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유저에게 세금을 더 많이 물리는 게임판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어중간하게 토지를 소유한 중산층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이거 보면 게임과 현실은 너무나 똑같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려 하는 심리가 문제였다.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의 몫을 빼앗아 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게임은 유저들을 무한경쟁의 장으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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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에이지에서 가장 큰 고민은 내 집 마련이다. 부동산 재벌들이 좋은 땅을 소유하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땅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고, 집이 없는 사람은 게임에 흥미를 잃었다. 시작 할 때부터 내집 걱정부터 해야 하는 묘한 게임이 되었다. 주위의 모든 땅들이 남의 것이라 생각해보자. 게임할 맛 안 나는 게 당연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나친 경쟁구조다. 아키에이지 유저는 캐릭터를 만든 시점부터 치열한 경쟁의 한가운데로 내몰린다. 개인간의 경쟁, 원정대간의 경쟁, 진영간의 경쟁,땅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성을 얻기 위한 경쟁, 무역 루트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 등 유저들을 쉴세없이 무한경쟁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승자는 거대 원정대와 토지를 소유했고, 대부분의 유저가 집 한채 지을 텃밭하나 없다. 지친 유저들은 하나둘 게임을 떠났다.

최근 엑스엘게임즈는 아키에이지 중국 서비스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묻고 싶다. 중국 유저들에게 이런 각박한 세상을 선물할 텐가? 콘텐츠를 보강하기 전에 게임의 철학부터 다듬어야 한다.

모든 땅이 어느 한 명에게 독식 당하는 것은 메이플스토리2가 바라는 방향이 아니며, 누구나 하나씩 갖고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콘텐츠였으면 합니다.”
                                   -메이플스토리2 김진만 디렉터-

성장보다 분배, 경제민주화 도입

최근 온라인게임은 주로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자유주의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경쟁구조를 조금이나마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경제민주화’가 도입되고 있다. 경제 민주화는 균형 있는 발전을 핵심으로 한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평등한 분배정책을 내세운 게임들이 늘고 있다. 

게임 시간에 제한을 두어 격차를 줄이는 방안도 나왔다. 작년 오픈한 이카루스는 1주일에 35시간만 플레이할 수 있는 활력 포인트를 도입했다. 하루 평균 5시간 정도만 정상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 시간을 다 쓰면 캐릭터가 얻을 수 있는 경험치나 보상이 줄고, 아이템 수집이 불가능해진다. 당연히 반대도 많았다.

반대 하는 쪽은 개인의 게임 이용시간이 제각기 다른데 그것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게임할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발자들은 해킹, 오토프로그램 등 유저간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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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타임을 제한해 균형적인 성장을 실현하려 했던 이카루스>

검은사막은 1:1 개인거래를 막아 논란을 빚었다. 1:1 거래는 캐릭터간의 기본적인 거래수단이다. 잘 이용하면 상관없지만, 작업장이나 현금거래의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어서 막아놓은 것이다. 거래는 무조건 지정된 거래중계소를 이용하게 했다. 다소 불편이 있지만 거액의 돈이 암거래되어 경제가 파탄 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유저들은 개인의 자유를 해친다고 반대했지만, 개발자는 밀어붙였다. 결국 양측은 시각차를 좁히지 못했다. 밀어붙이기식 규제는 유저들의 반발만 샀다. 결국 대거 이탈로 이어지면서 게임은 시들해졌다. 

메이플스토리2도 개인거래를 막았다. 무조건 막는 게 아니라 희귀아이템만 거래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부동산 콘텐츠도 수정자본주의를 도입됐다. 정원이 갖춰진 대규모 저택부터, 값싼 임대 아파트까지 다양한 주거환경을 제공했다.

얼핏 아키에이지처럼 부동산 투기가 심할 것 같아 보이지만, 운영진은 게임의 부동산 정책을 1가구 1주택으로 제한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집을 한 채밖에 살 수 없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려면 자기가 살던 집을 내놓아야 한다. 때문에 더 많은 유저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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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스토리2의 부동산 정책. 일부세력의 독점을 막고 골고루 집을 나눠주기 위해 1가구 1주택으로 제한을 두었다>

더 파격적인 실험도 단행했다. 사냥터 분쟁을 막기 위해 평등분배를 도입했으나, 유저들의 반발로 포기했다. 개발자는 “메이플2는 단일서버로 운영되는데, 평등분배가 아닌 다른 방식을 택할 경우 사냥터 부족이나 자리싸움 등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평등분배는 한국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진보적인 정책이었다. 최근에 파이널 테스트를 진행한 ‘문명온라인’은 좀 더 파격적인 경제실험을 보여줬다. 이제는 국가의 승리를 위해 사유재산을 내놓아야 하는 단계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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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온라인. 기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뒤엎고 새로운 경제구조를 보여줄 예정이다. 송재경 대표의 세번째 실험은 성공할까?>  

경제체제는 종교가 아니고, 선악의 문제도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효용과 이익의 문제인 것이다. 어떤 경제체제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중 발췌-

이제 온라인게임의 경제체제는 게임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요즘 온라인게임의 경제 시스템은 사냥하고 아이템을 판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넘어, 현실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득이나 경제가 어려운 시기다. 현실의 경제는 피할 수 없지만, 게임 속 경제는 우리가 충분히 개선해 나갈 수 있다. 게임 속 경제가 안정되려면 개발진과 유저들의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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