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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콘 - 한중전쟁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 5. 05:21

  1999. 7. 16  15:00  대전, 정보사단

  1997년, 한반도에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자 한국군은 그동안의 대(對) 북한 정보업무 편중에 대한 반성에서 국제군사정보를 담당할 새로운 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연구단계에 불과한 정보군단을 모델로, 정보사령부와 기타 잡다한 정보업무 담당부서를 통합하여 정보사단을 창설하게 되었고,  이 사단은 국제정보와 한반도 주변의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대통령 직속 부대가 되었다.  이는 한국군이 그동안 동족상잔에 대비한 군대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  제대로된 국민의 군대로 재탄생되었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정보사단은 유성의 3군본부와 달리 교통이 편리한 대전에 본부를 두고 지방 각지에 파견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중국 내전이 끝나자 대전에 있는 정보사단에서는  통일참모본부와 각 군에 보고할 내용을 정리하는 회의가 있었다. 각 여단장급들과 고위 국실장,  그리고 주로 정치학자나 군사학자인 민간인 고문들이 참가했다. 정보사단장인 이 재영 중장의 사회로 열띤 회의가 벌써 두 시간째 지속되고 있었다.

  "중국 내전의 원인은 해안지역에 대한 부의 편재로 인한 내륙지방 인민의 불만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인 불평등 심화, 그리고 연속된 국영기업의 파산으로 인한 국영기업 노동자들의 반발, 게다가 등 소평 사후의 권력투쟁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등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이 중장이 단말기의 한쪽면에 부관이 정리해 준 내용을 읽어갔다. 이 회의는 화상으로 각 군 본부와 정보참모본부, 심지어 남북의 고위 정책 담당자들과 정보관련기구에도 연결되어 그로서는 자신을 내세울 절호의 기회였다.이 중장은 계속 회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의장의 권한을 남용하면서 회의에 직접 간여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왜 광동성과 복건성의  군산(軍産)연합이 북경과 상하이의 기존 권력집단에 대해 승리했는지에 대한 토의를 하겠습니다. 먼저, 중국전문가이신 신 은정 교수께서 말씀해 주십시요."

  이 중장이 신 교수를 힐끗 보았다. 중국내전의 발발을 예상하여 유명해진 신 교수는, 그러나 아무리 봐도 똑똑해 보이진 않았다. 얼굴에 가득한 주근깨, 여자답지 않게 큰 키, 두터운 안경의 그녀는 주근깨를 가리기 위한 수단인지 화장도 진하게 하고 있었다. 37세의 노처녀인 젊은 교수가 세미나에 참가한 학자처럼 정리된 원고를 읽어나갔다.

  "사단장께서 정리하신 대로 중국의 인민들은 화합이 깨지고 파편화되었습니다. 개방화 정책으로 인한 초기의 산업화는 중국인민들에게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마련해줘서 좋았지만,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나타나 국영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농민 폭동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인민해방군의 각급부대들은 군사훈련이 아닌 경제활동에 내몰렸으며 이에 대한 군부의 불만이 컸습니다. 95년도에 군의 기업활동이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군의 기업활동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군인들도 많았지만 어쨋든 각급 군부대에 대한 중앙정부의 확고한 지배력이 흔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각 성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은 경제개방을 전후하여 서서히 상실하기 시작하여 작년 겨울부터의 북경의 권력투쟁을 기화로 지방정부들이 독립 움직임까지 보였습니다. 티벳이나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먼저 독립 움직임을 보였다는게 이상하죠.

  이들 지방들을 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상당한 수준의 산업화가 진전되어 부의 축적이 있었다.  둘째, 이는 중국 개방화 정책의 혜택으로 인한 부의 불평등한 배분이었다.  세째, 군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신흥 중산층간의 강한 유착관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음, 신 교수.그건 내전의 원인아닙니까? 광동성과 복건성 연합이 이번 내전에서 승리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군사적 요인을 뺀다면..."

  이 중장이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젊은 여교수에게서 강의 듣는 듯해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력이 우월해서 그런거 아니냐는 듯한 표정을 담고 있었다. 신 교수는 안경 너머로 이 중장을 흘끗 본 다음에 말을 이었다.

  "첫 반란은 상하이와 인접한 저장(절강)성과  장쑤(강소)성에서 일어났습니다. 두 지방 역시 연안지역입니다. 상당한 수준의 경제개발이 되어 부의 축적이 있었다는거죠. 이는 동시에 부의 배분이 불평등해서 이지역 인민들의 불만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까지는 지방 군부의 가담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파산한 국영기업의 폐쇄를 막으려는 노동자들의 소요사태를 북경군구에서 온 진압군들이  과잉진압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분노한 노동자, 농민, 실업자들의 폭동이 이어지고 급기야 공장파괴 운동으로까지 확산되자 그 지방 군벌과 산업자본들의 우려를 자아내었습니다. 그리고 각지에서 민병들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신 교수의 강의는 길어질듯 싶었다. 그러나 누구도 신 교수의 발언을 막지 못했다. 1995년 등소평이 유언으로 남긴 것은 군부, 지방, 소수민족에 대한 중앙정부의 권위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군부나 지방세력, 또는 중국 내의 소수민족은 중앙정부의 권위에 도전하여 중국이 통일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될만한 세력이었다.중앙의 공산당 정부는 군부에 대한 통제권을 쥐는데 신경을 썼고,  미국정부의 중국정책은 중국내 소수민족의 인권, 특히 티베트민족의 독립에 관심이 있었다.그리고 다른 중국전문가들은 홍콩이나 대만과의 갈등을 예상했으나,  지방별 경제력의 차이에 따른 갈등의 심화는 신 교수가 처음으로 예리하게 지적했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자  자본과 인재의 유출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중국정부의 배려로 자유가 보장되자 떠났던 자본과 인재가 되돌아와 홍콩과, 인접한 광동성은 더욱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대만의 대자본이 투입된 복건성을 제치고  광동성은 중국 경제혁명의 견인차가 될 정도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홍콩은 1국 2체제 아래 정치체계가 다르면서도 홍콩과 광동성의 이익이 합치하자 두 지역은 급속도로 가까와졌다.  홍콩 이양전부터 긴밀하던 경제관계는 이제 뗄래야 뗄 수 없는 단계였는데 이양 후 홍콩의 자본가들과 광동의 당, 군 간부들과의 관계가 밀착되었다.짧은 시간에 많은 정략결혼이 이뤄졌고,이들은 자신의 이익이 커질수록 폐쇄적인 집단이 되어갔다.

  광동성과 복건성은 각자의 배후 자본인  홍콩과 대만의 분업체계처럼 분업화되면서 관계가 긴밀해져갔다.  복건성이 공업제품을 생산하면 광동성이 이를 국제시장에 판매하는 식의 분업체계였다.  두 지역 주민들은 경제적 분업체계의 형성과정부터  인구의 이동이 잦아지며 유대감이 강해져서 두 지역은 거의 한 지방처럼 되었다.

  광동성과 복건성은 군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성의 고위 당,군 간부들은 밀착되어갔다. 광동은 광주대군구, 복건은 남경대군구였으나 이 지역 고위 군관계자들은  뇌물이나 경제적 압력 등 갖은 방법으로 인사 이동에서도 특별대우를 받아 두 지역만 오갈 수 있었다.

  두 지역이 밀착하고 폐쇄성이 강해지자  중앙정부에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뒤늦게 압력을 가했으나 오히려 역효과만을 빚어냈다.  먼저 경제적 통제장치로 세금의 차등부과를 실시했으나 외국자본의 급속이탈과 경제침체로 중앙정부의 권위만 추락했으며 인민들로부터 중앙정부는 경제개혁의 걸림돌로 비난받기 시작했다. 고위 군관계자들을 대거 변방으로 인사이동 조치를 취했으나 광동성과 복건성의 군부가 운영하는 기업들이 부도사태가 속출하여 다시 군 장성들을 변방에서 불러와야했다.

광동과 복건의 군 장성들은 이미 이 지역 주요 경제인으로 깊숙히 뿌리내린 것이다.

  중앙정부가 이들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하자  이 지역의 당,군,경제인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결합하여 그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광동과 복건의 주변 지역인 강서, 호남, 호북, 안휘, 절강성, 귀주, 해남성 등으로부터 해마다 수 십 만명의 주민이 일자리와  자본주의적 기회를 찾아 두 지역으로 몰려갔으며 이 지역들은 상품시장과 원료공급지, 즉,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하여 산업이 재편되고, 두 지역으로부터  경제적 영향을 크게 받기 시작했다.

  자본주의화하면서 남부연안이 급격히 발전하자 이 지역에서는 화폐가치의 변동이 심한 인민폐보다는 미국 달러와 홍콩달러가 기준화폐로 부상하여 광범위하게 유통되었다.  80년대부터 광동성의 극히 일부지역에서만 유통되던 홍콩달러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광동-복건성의 경제적 역할이 커지자 남부중국의 기준화폐로서의 역할을 맡게된 것이다.전국적으로 통용되어야할 인민폐나 각 성의 화폐는 이들 지역에서는 유통력을 상실하였다.

  언어도 북경어가 점차 쇠하고 광동어가 세력을 뻗기 시작했다.  경제계에서는 이미 광동어가 표준어가 되었고 광동어를 모르면 아예 경제계에 발을 붙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남부중국의 학교에서는 이제 북경어를 따로 가르치지 않았으며,  반대로 북경과 상하이의 대학생들은 광동어 배우기에 혈안이 되었다. 광동어는 출세와 부의 상징이 된 것이다.

  남부중국의 지배권은 군사계에도 영역을 넓혀갔다. 그동안 중국의 제 1의 적은 구 소련이어서 대부분의 군사력이 러시아국경에 밀집해있었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도 차츰 약화되자  러시아국경의 지상군이 감축되고  상대적으로 중요해진 남부중국의 방어를 위해 이 지역 해군과 공군이 증강되었다.  또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부중국에 비해 장비와 인원에서 크게 뒤지던 남부중국의 지상병력은 경제인들과 군 영기업들의 협조로  각 집단군마다 하나씩의 기갑사단을 갖추게 되었고 그 질적 수준은 미국이나 러시아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화되었다.  그리고 중앙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병력의 증강이 이루어졌다.

  이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게되었다.  남부중국은 중앙정부 도움없이도 경제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과 사실 중앙정부가 남부중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중앙정부는 남부중국 각 성의 눈치를 보게되었다. 특히 광동성장과 복건성장의 정치적 영향력은 중앙에도 미치게 될 정도였으며 두 성장(省長)은 중국의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에서도 일곱자리밖에 없는 상무위원직에 오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또한 국회의장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상무위원장과 전인대의 주요 전문위원회의 위원장은 광동어에 능통한 남부중국인들이 차지하는 것으로 묵계가 이루어졌다.

  전통적으로 정계와 재계에서 우세한 지위를 점하던  북부중국인들 사이에 위기감이 번지기 시작했다.정치계에서까지 남부중국인들에게 밀리고 광동-복건성이 주도하는 지역별 분업화에 동참하지 못하거나 적응이 느린 북부중국의 국영기업들이 부도사태로 쓰러져갔다.  북경과 상하이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났으며, 모처럼 창업된 중소기업의 경영자들이 부도로 도피하거나 자살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남부중국이 경제성장의 단맛을 즐기는 사이에 북부중국은 도태의 쓰라림을 맛봐야했던 것이다.

  북부중국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격은 절강성 호주(湖州)에서 있었던 파산한 국영기업체 노동자들의  소요사태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이었다. 절강성은 대만과 접했다는 이점을 바탕으로 경제적 부흥을 이룬 복건성의 바로 북쪽에 위치하였으나  상하이와 인접하여 중앙정부의 간섭을 많이 받았다.그리하여 남부중국의 경제적 성공의 대열에서는 탈락하고 북부중국인들로부터는 질시를 받는, 묘한 완충적 지역이었다. 이 지역 인민들은 광동성과 복건성의 부에 대한 부러움과 중앙정부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하고  소요가 확산되어 국영공장과 외국인 합작공장을 파괴하자, 남경군구 소속의 지방 군사력인 인민무장경찰이 치안유지를 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북경군구의 예비대 성격인 제남군구의 병력을 파견하여  파업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중앙정부의 감정적인 대응과 남부중국에 대한 군사적인 시위의 성격을 띤 이 사태는 그러나 절강성과 안휘성 등 중립적인 지역들이 대거 남부중국에 가담케하는 결과를 나았고, 중국인들은 전체 중국의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의 새로운 주역으로 남부중국의 광동성과 복건성에 기대게 되었다.

  "중앙정부는, 아니, 북부중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민심을 얻는데까지 실패했습니다."

  신 교수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남부중국은,  아니, 모든 중국인들은 북경과 상하이 출신인 고위 당 관료들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개방화 초기에는 이들의 주도하에 성공적으로 경제개혁을 이루어냈지만 아직도 개방의 속도 문제로 다투고 있는 등 어느 정도 개방화가 이루어지고 나자 개방의 주역들이 오히려 개방의 장애물이 되어버릴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져버렸습니다."

  신 교수의 주도하에 토의가 계속 이루어졌지만 결국 결론은 경제력에서 훨씬 우월한 남부중국이 당시 중국정부를 탐탁치 않게 본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업고, 그리고 돈이 궁한 러시아로부터 최첨단 무기를 대량 구입하여 막강한 북경-상하이 연합에 대해 승리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내전 중의 핵전쟁 발발 가능성은 상호 파멸과 사용한 측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우려하여 핵폭탄의 사용이 자제되어 다행이라는 결론이었다.

  "다음 전쟁을 예상한다면, 아무래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것이 되겠죠. 아니, 그 전에 베트남과 필리핀이 될까요?"

  좌중에서 놀라움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1999년의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이나 베트남을 공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지금 중국과 대만은 밀월관계 아닙니까?  물론 남사군도 문제도 있고 자유왕래가 당분간 막히긴 했지만  내전이 끝났으니 곧 원상회복될 것이오. 그리고  중국의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대만의 자본과 마케팅으로 세계 경제계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어느 정도인데.. 설마 중국이 경제위기의 부담을 지고 대만을 공격하려 하겠소?"

  이 재영 중장이 놀라서 물어보았다. 신 교수의 주장은 정보사단의 최근 평가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대만과 중국은 최근 경제적으로 밀접히 결합하였고 긴장상태가 해소되어 구태여 침공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또한 경제를 중요시하는 광동-복건 연합이 정치적 주도권을 쥔 마당에 전후 복구에 힘써야할 중국이 대만에 눈돌릴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정보사단과 외무부 및 안전기획부 등 정보업무 담당부서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중국 공산당의 개혁주의자들이 어느 정도 경제발전 후에 보수주의자들로 몰린 것처럼 대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만의 보수적 정치체계가 보다 자유로운 복건과 대만간 인적, 물적 유통을 막고 있습니다. 대만이야 생존을 위해서 그랬다지만 내전 동안에 중앙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남부중국인들에 대한  자본동결과 출국통제는 광동-복건성 지도층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다시 교류가 재개되긴 했지만 경제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대만과는 아무래도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그리고 중화민족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아실겁니다. 한족(漢族)은 수없이 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고도 수천년간을 그들의 땅에 살아왔습니다. 그 거대한 땅덩이와 함께 말입니다."

  신 교수가 잠시 쉬고 유리잔의 물을 마셨다.  당연히  생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물을 더럽히고 그 대가로 비싼 물을 사서 마시니 얼마나 비경제적인 동물인가 생각했다.  오늘 아침엔 집에 생수가 배달되지 않았다. 지하수원이 오염되어 생수공장이 폐쇄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이젠 다른 생수를 주문해야겠다고 신 교수는 생각했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남사군도때문이가요?"

  나영찬 대령이 호기심에 가득차 물었다.신 교수가 소리가 난 쪽을 보니 중년의 군인들 사이로 신사같이 말쑥한 젊은 대령이 보였다.저 나이에 이 정도 계급이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일 것이라고 신 교수는 생각했다.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신 교수가 짧게 대답했다. 중국은 넓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영토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했다.  수천년간 농경민족이어서인지 땅에 대한 애착은 비정상적일 정도였는데, 산업화가 진행되어 바다의 중요성이 커지자 드넓은 남중국해(남지나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남사군도는 고대부터 중국의 어부들이 어로활동을 해왔다는 후한지(後漢誌)의 기록을 근거로 강력하게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필리핀과 베트남 등의 주변국들은 이에 반발하여 중국과 분쟁중이며, 해상교통로의 유사시 봉쇄를 우려한 자원수입국인 한국과 일본은 은근히 중국의 남사군도 영유에 제동을 걸고 있었다.  이 해로는 두 나라의 사활을 쥐고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주변의 중소국가끼리 분할하거나 공동영유하는 방안을 유엔에서 지지해왔다.  이들 두 나라는 중국의 독점적인 남사군도 영유를 방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무역량 등 당장의 이익을 본다면 당연히 중국을 지지해야하지만 중국이 더 강해졌을때 만약 중국과 분쟁이 생긴다면  남사군도는 한국과 일본의 목에 겨눈 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자원 말인가요?  막대한 석유매장량...  중국 경제에 엄청난 도움이 되겠죠."

  나 대령의 말에 신 교수가 빙긋이 웃었다.  한참 망설이다가 다시 신 교수가 자리를 같이한 고급장교들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중국과 일본, 또는 중국과 한국간에 분쟁이 발생한다면 남사군도의 전략적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아니, 한국과 일본간의 분쟁에서도요."

  젊은 정치학 교수의 단순한 가정이었지만 군인들 입장에서는 전혀 심상치 않은 이야기였다. 이웃나라란 항상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고 언제나 제 1의 가상적국이기 때문이었다. 우호적인 관계일 때도 이웃나라에 파견되는 대사는 정치적으로 장관급 이상이었으며 정보관계 종사자들의 숫자도 다른나라에 파견되는 주재원보다 훨씬 많은 것이 상례였다.옛부터 전쟁은 항상 이웃나라로부터의 침략으로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모든 사람에게 있었으며 실제로 그래왔다.

  "해군의 자료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해군출신인 표 인준 중령이 먼저 대답을 했다. 해군의 역할의 하나가 무역로와 해상수송로를 확보하는 것이므로 해군에서는 항상 해상수송로의 안전점검을 하고 있었다.

  "남사군도가 중국에 의해 봉쇄된다면 한국이나 일본은 호주를 우회하여 석유류를 수송해야합니다. 이 경우 운송기간은 호주 남부 해상의 복잡한 해로를 감안하면 1개월 이상 늦춰집니다. 전략비축분이 3개월치이므로 큰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전시에는 석유류의 소비가 급증하는 것이 상례이고, 에너지 저장시설에 대한 적의 공격까지 감안한다면,그리고 해상운송수단의 부족을 감안한다면 1개월 내에 비축분은 소모가 되어버립니다.  전략비축분이 3개월치라는 것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합니다."

  "현물시장에서의 구입이나 미국이나 멕시코같은 곳에서 수입한다면?"

  이 재영 중장이 입이 바싹 타서 물었다.  멀리 떨어진 남사군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 중장이나 다른 육군출신의 고위장교들은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싱가포르 석유 선물시장은  만약 중국이 남사군도 주변해상을 봉쇄한다면 시장 자체가 붕괴되어버립니다. 미국은 풍부한 부존자원에도 불구하고 유독 석유만은  전략적으로 수입해왔습니다. 알래스카의 풍부한 원유를  1995년에야 수출을 허가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원유를 거의 수출하지 않습니다.  멕시코는 정치적 불안정 때문에 안정적인 공급원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 두 나라는 너무 멀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브루나이나 인도네시아같은 산유국들로부터의 원유수입은 남지나해를 통과해야 합니다."

  표 중령의 설명에 이 중장이 허탈해지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호통을 쳤다.

  "그럼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우리나라는 무조건 중국의 요구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단 말이오?"

  "중국의 입장에서 미래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한국과 일본입니다. 지리적 위치와 산업구조, 또는 인구와 경제력 등 국력에 있어서 말입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도 크지만 중국에는 아직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 교수가 중간에 끼어들어 설명했다. 좌중은 신 교수가 또다른 예언을 하지 않나 걱정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다음 차례는 필리핀과 베트남인데 필리핀은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기 쉽죠. 아마 중국 입장에서 베트남과는 일전을 각오해야할 것입니다. 베트남을 먼저 치고 나중에 대만을 공격할 수도 있겠죠. 어쨋든 그 다음은 우리나라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언제일지 모르지만..."

  결국 신 교수가 예언을 하고 말았다. 전혀 가능성이 없어보이던 중국의 내전을 예상한 신 교수, 이번엔 더 가능성이 없는 중국의 한국 침공을 예언했다.이 재영 중장을 필두로 모든 군인과 정치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신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그들도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 교수가 중국의 내전을 예상했을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상가라고 비판을 받았으나 결국 그의 주장이 옳았던 것이다.이번 예언은 틀리길 바라는 것이 모두의 마음이었다. 이 중장이 갑자기 책상을 치며 물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럼 왜? 왜 중국이 우리나라를 공격한다는겁니까? 이유는 뭐죠? 내전 때의 우리나라의 중국에 대한 행동?  군사적 위협? 경제적 라이벌이라서? 도대체 뭡니까?"

  신 교수가 이 중장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세계 사회주의라는 중국의 50년간의 목표,  그리고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었기 때문이죠."

  한반도는 1997년 9월의 역사적인 통일협정을 시작으로 급속히 통일의 길로 접어들었다. 산업구조가 비슷한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독주제동에 실패한 남한과 경제재건에 실패한 북한은 파국을 막기 위하여 점진적인 통일을 지향하게 된다.

  당시의 남한 대통령은 1997년 초의 선거에서 의외의 당선을 한 홍 경식 대통령이었다. 전임 김 영삼 대통령이 잔여 임기를 남기고 퇴임하자 충남지사로 있던 그는  열렬한 시민들의 지지를 업고 일약 제 1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곧이어 실시된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40대 초반의 그는 90년대 초반까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95년에 실시한 최초의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간신히 도지사로 당선됐었다.  당선 이후 그는 청렴한 공직생활과 개혁정신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충청남도를 엄청나게 발전시키는 업적을 쌓았다.그는 당파를 초월해 시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언론의 초점이 되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영남의 비호남 정서와 호남의 비민자정서가 맞물려 중부 출신인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홍 대통령은 경제발전은 물론 통일노력에 힘을 쏟아부었다.북한에 대해 각종 무상지원과 대외차관을 쏟아붓고 인적교류를 활발히 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사람과 물자가 남북으로 왕래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으나 남과 북의 열린 마음과 현실적 필요가 이를 가능케했다. 남북은 급속도로 가까와져서 급기야 북한이 개방한지 1년도 안된 1997년 9월에 통일협정을 맺었다. 홍 대통령과 북한의 김 정일 비서는 서울과 평양을 수시로 왕래하며 신뢰를 쌓았다.

  물론 통일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남북 모두 군부의 강경파들이 평화통일을 용납하지 않았다.  통일이 되면 자신들의 기반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강경파들이 발호했지만 통일을 갈망하는 젊은 장교들이 이들의 야욕을 꺾었다. 남한에서는 국군 장성 몇 명이 수감되는 것으로 끝났지만 북한에서는 군부에 피의 숙청이 있었다.

  외국도 한국의 통일에 결코 우호적인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북한에 제시하며 통일을 방해했으나 북한의 지도층이 결단을 내려 동족을 믿기로 하였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해결된 핵문제를 또 트집잡아 동해에 항모기동부대를 파견했다.그러나 한국 해군이 인민군 해군을 지원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여, 위기시에 한국에 남아있는  주한미군의 안위를 걱정한 미 7함대는 일본 사세보항으로 귀항해야 했다. 곧이어 주한미군의 철수가 시작되었고 한국은 미국으로 부터 혹독한 무역보복을 당해야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중국은 1999년 7월 1일에 영국으로부터 이양받은 홍콩을 경영하기 위해  침략근성을 보이지 않아야 했으므로 군사적 충돌이나 긴장은 없었지만 은근히 무역에서 압력을 가했고, 러시아는 한국의 만주와 연해주 수복운동을 경계하여 경제교류의 폭을 제한했다.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만주와 연해주의 실지 회복 의사가 없음을 밝히는 치욕을 치름으로써 이 위기를 극복했다.

  남북 모두 통일과정 중에 발생한 사회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98년 한햇동안 수만쌍의 남북한 처녀, 총각들이 결합했는데 문화가 워낙 다른 두 지역 출신의 부부는  1년도 못가서 가정이 파탄나고, 이 문제는 크게 사회문제화되었다.이로 인해 남북간의 신뢰에 금이 가기도 했다. 6.25때 북한에 토지를 두고 월남한 실향민들이 땅을 찾기 위해 수백만건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문제는 특별법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 법이 일방적으로 실향민들에게 불리한 내용이라서 그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여러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서서히 융합되어갔다.

  1999. 9. 12  19:30  용암포

  '오랫만에 맛있는 공기를 마셔보는군.'

  신의주 개방구 서남쪽 용암포의 남쪽에 있는 신항만에서 저녁놀을 향해 릴을 던지며 국군 제 11 기갑사단의 차 영진 중령은 생각했다. 봄엔 편서풍에 실린 화북의 황사와  중국 동북공업지대의 중금속 먼지바람에 시달리고,  여름엔 후덥지근한 장마에 짜증났는데 초가을의 저녁공기는 참으로 시원했다.

  릴은, 정확히 말해 낚시바늘과 갯지렁이와 봉돌과 낚시줄은, 멀리 중국 다사도 석유화학단지의 굴뚝연기와  그 너머 동구경제특구의 시가지 네온과 서쪽 하늘의 저녁놀이 뒤범벅이 된 서해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시커먼 박쥐가 봉돌을 좇다가 반대방향으로 날아 올랐다.  릴은 촤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계속 풀리고 있었다.

  차 중령은 릴을 던지는 동안 지렁이 생각을 했다.

  '참 웃기는 경우는 지렁이를 비닐하우스에서 키운다는 것이다.서해는 이미 죽은 바다이고 갯벌은 썩어버렸다. 깨끗한 곳에서 키운 깨끗한 지렁이를,  더러운 바다에 살다 죽어가는 더러운 물고기에게 물리는 것은 얼마나 개같은 경우인가? 집사람은 내가 잡은 지렁이보다 더 더러운 물고기를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감성돔과 역돔도 구별 못하는 집사람, 가재미와 넙치는 어떻게 가릴까? 자연산인지 양식인지 어찌 알지?'

  물이 튀는 것이 보였다. 이제 3분의 1 초 뒤면 '퐁'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릴은 계속 풀려 나갔다. 차 중령은 초조했다. 겨울의 서해바다는 차갑다. 10월 이후 연평도 이북의 바다에는 물고기가 없다.  바다가 얕아 물이 너무 차기 때문이다.이제 앞으로 낚시할 수 있는 기간은 2주 남짓. 강과 바다가 만나는 용암포는 가을의 북한서해안지역중에서는 낚시하기에 꽤 좋은 조건이었다.

  '내고향 여수에서는 일년 내내 낚시할 수 있었는데...'

  차 중령은 압록강의 겨울낚시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북한의 강과 호수는 시커먼 공장폐수와 산성비에 절어버렸다. 아마 내년, 2000년 겨울부터는 강이 얼지 않을 지도 모른다.  중국 동북공업지역의 시커먼 폐수가 압록강을 흐르고, 중금속과 유황의 매연이 10년째 북한지방, 아니, 북조선에 비를 타고 내린 것이다.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우리나라'의 환경이 희생되어야 하다니,정말 개떡같은 경우다.그래도 우리정부, '우리나라'의 '통일정부'는 중국에 항의를 강하게 할 입장이 못된다.'남한정부'는 중국과의 경제교류에, '북조선정부'는 과거의 선린우호에 발목이 잡혀 있다.아직 정치적 통일이 완전히 이뤼지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과 미국 같은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특히 일본은 얼마나 집요하게 통일을 방해했던가.'

  '퐁' 하는 소리가 나고 물결이 여러 겹의 동심원이 되어 퍼져 나갔다. 파문에 기름띠가 넘실댔다.  차 중령은 릴을 천천히 감았다. 왼쪽 외항에는 커다란 컨테이너선이 정박 중이고 오른쪽으로는 멀리 압록강 제 2 철교가 보였다. 바다는 저녁놀에 물들었다. 하늘엔 중국 랴오닝성의 단둥(丹東)에서 다롄(大連)으로 가는 여객기가 붉은 비행등을 킨 채 서서히 선회하고 있었다. 공해문제만 빼면 모든 것이 평화롭게 느껴졌다.서서히 바다에 어둠이 깔리고 부두에는 전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화시대의 군대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 중령은 완전한 남북통일 후의 군대문제를 생각했다.

  '감군을 한다지만 적을 잃은 군대...  유사시에 대비한다지만 예비군에 불과하지 않나...'

  이때 차 중령의 이동전화가 진동을 했다. 밥해놨으니 빨리 오라는 아내의 전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의 휴일에 낚시 왔으니 아내의 투정이 대단할거야.'

  천천히 전화를 들고 통화단추를 눌르며 대답했다.

  "여보세요. 이 현웁니다."

  "제 3전차 대대장 차 영진 중령은 지금 즉시 사단 사령부로 출두하시오. 2000부로 전군에 진돗개 3 발동. 차 중령은 복창하시기 바랍니다."

  전화의 다급한 남자 목소리와 그 내용에 차 중령은 깜짝 놀라 명령을 반복했다.

  "2000부로 전군 진돗개 3 발동, 제 3 전차대대 차 영진 중령 즉시 사단 사령부로!"

  전화를 끊은 그는 즉시 원터치자동낚싯대를 접고는 자기 차로 뛰면서 생각했다. 진돗개 3은 1997년 남북한 군대의 교차 주둔 이후 한번도 없던 일이었다.

  '혹시 북한 군부의 강경파가 통일에 반대하여 쿠데타를? 아냐,그렇다면 나는 대대본부의 지휘위치에 가야하니 아니고...  그럼 독도 문제로 일본이?'

  차 중령은 시동을 킨 즉시 뉴스 전문라디오에 채널을 맞췄다. 통일국회에서의 북한지역 고용촉진법 통과소식에 이어, 남북 대학생들이 한글만 쓰기를 위한 모임을 가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당장의 급박한 위험은 없는 듯했다. 차로 부두를 빠져나가면서 차 중령은 전화로 대대 상황실을 불렀다.  오늘따라 상황실 직통전화가 통화중인 것을 보면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차 중령은 생각했다.

  차창 밖으로 전조등을 킨 인민군 군용트럭 세 대가 속도를 내며 지나갔다. 어둠속이었지만 트럭 뒷자리에 총을 든 인민군 전사들을 차 중령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이동전화의 통화중 연속발신기능 덕택에 곧 통화가 이뤄졌다. 대대 당직사관인 최 대위가 전화를 받았다.

  "최 대위? 나 대대장인데 무슨 일이요?"

  "대대장님.  2000부로 진돗개 3이 발동 중인데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단에서는 국내 문제는 아니라고 합니다. 반복합니다. 국내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작년의 남사군도(南沙群島) 분쟁이 크게 재발하거나 요즘 시끄러운 독도 문제로 일본의 도발 가능성이 있지 않나 보고 있습니다."

  국내문제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현재 북한에 주둔하는 국군부대 지휘관들의 대부분은 요즘도 북한 인민군의 기습 포위공격을 받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최 대위가 말한 두 가지 가능성은 항상 예기되어 왔지만 차 중령의 부대로서는 직접 연관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통일해군은 지금 상당히 바쁠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럼 시간은 아직 있다고 보고,일단 장교와 하사관들의 소재를 확인하시요. 나는 사단사령부로 가고 있으니 최 대위가 모든 절차를 지휘하시요."

  그는 항만을 빠져나가, 선천으로 가는 지방도로에서는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1993년형 프라이드DM 3 도어, 작고 단단하고 잔 고장이 없는 차였다. 지난해에 엔진을 교체하고 4륜구동으로 개조하면서 3방향 에어백과 광폭타이어, ABS, 12 CD changer 등을 장착하여 1,300cc 급으로는 호화롭지만, 겉보기에는 녹슨 긁힌 자국과 먼지 등으로 폐차 직전의 고물차로 보였다. 지난해 대전에서 근무할 때는 대전 지역 경주차 동아리인 Knight Riders의 준회원으로서 토요일밤마다 대전과 부산 사이의 고속도로를를 세 시간 반 만에 왕복하곤 했었다.

  1999. 9. 12  20:20  차련관

  날이 완전히 저물어 차련관 검문소에 닿았다.  차련관은 평안북도 철산군 북쪽지역의 역 부근이며 경의선 철도와 국도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한 교통의 요지다. 선천의 사단사령부까진 아직 절반 정도 남은 셈이었다.

  '검문소에 바리케이드! 자정 전에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차 중령은 불안해졌다. 전조등을 끄고 실내등을 켰다. 앞쪽의 양계장 트럭이 통과하자 검문소 뒤쪽 그늘에 인민군 장갑차가 보였다.

  'BTR-40 P!  대전차미사일 탑재형의 BRDM(구 소련에서 설계한 바퀴식 장갑정찰차)이다!'

  검문 차례를 기다리며 둘러보니 검문소 주위엔 무장병들이 꽤 있었고 모두 완전군장이었다. 인민군도 현 사태를 심각히 본 모양이었다. 통제소는 원형의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는데 옥상엔 대공화기가,아래 참호엔 중기관총이 설치되어 있었다.

  '모두 북서쪽을 향하고... 중국이다! 중국에 무슨 일이 있다!'

  바로 앞의 승용차가 지나가고 차 중령 차례가 되자 차 중령은 육군신분증을 위병에게 주었다.  위병은 젊은 인민군 하급전사인데 깜짝 놀라 차 중령을 보더니 통제소의 군관에게 뛰어갔다.  검문소의 불빛을 배경으로 인민군 군관이 바삐 걸어왔다. 그 인민군 상위는 거수경례를 하고는 고개를 숙여 말을 걸어 왔다.

  "중령 동지! 실례디만 어데로 가십네까?"

  절도있고 정중한 질문이었지만 북한에 온 지 1년도 안된 그로서는 아직도 평안도 사투리가 귀에 거슬렸다.

  "군에 비상이 걸려 사단사령부로 가는 길입니다."

  "알고 계시겠디만 중국이 대북을 곧 공격한다는 첩봅네다. 중국 접경전 지역과 해상교통이 통제 중입네다.  중령동지는 비상등을 키고 가시면 제가 다음 검문소에 연락하여 우선 통행하시도록 조치하갔습네다."

  "고맙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요."

  차 중령은 차의 속도를 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서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무장한 인민군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백미러에는 아까 자신을 검문했던 인민군 하급전사가 상위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 왔다. 남북군사협정에 규정된, 군적에 불문하고 상급자에 대한 경례를 그 하급전사가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차 중령은 생각하며 혀를 찼다.

  '어차피 피차 놀란 것은 마찬가진데, 그런데 중국이 대만을 침공? 이상하군. 중국의 핵항모 해신 1, 2호 모두 지금 남사군도에 있을텐데...'

  해신 1호는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중국 최초의 원자력수상함이기도 했다. 배수량 48,000t 급의 소형항모이며 단거리 / 수직 이착륙기와 헬리콥터를 싣고 있었다. 해신 2호는 6만톤급의 본격적인 항공모함으로서 항모탑재형 전투기와 대함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었다. 중국은 그 외에도 두 척의 핵항모를 시험운항, 또는 건조 중이며 2010년까지는 총 6 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1999. 9. 12  20:40  평북 선천, 국군 제 11기갑사단 사령부

  사령부에 도착한 차 중령은 곧장 회의실로 뛰어 올라갔다. 회의실 벽에 걸려있는 대형 액정비전의 큰 그림에는 대만과 그 대안인 중국 난징 군구(南京軍區 -- 福建,江西,浙江,安徽,江蘇省 관할)의 군사력배치상황이 있고, 아래 작은창에는 남사군도 근해에 배치된 각국 함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정보참모가 한창 브리핑중인 가운데 그는 빈 자리를 찾아 앉은 뒤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난징군구의 정확한 지상군 배치도와  1개월 전과의 위치변동을 확인하였다.컴퓨터들은 유성에 있는 정보사단의 대형컴퓨터에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망(B-ISDN)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 아시다시피 중국은 지난 1년 간에 걸친 내란을  거의 수습하고 요즘엔 홍콩경영에 열을 올려 왔습니다. 문제는 지난 내전 때 남사군도를 분할점령한 대만과 베트남이 이를 반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만으로서야 중국내전 중 베트남의 남사군도 점령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고 변명하고있지만 중국의 자존심이 상한 것은 사실이죠."

  정보참모가 조작하는 화면의 붉은화살표가 홍콩에서 대만쪽으로 잽싸게 움직였다.

  "중국은 남사군도 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대만 모두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정보사단의 평가입니다."

  남사군도의 무진장한 자원과 해상교통로로서의 중요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중국의 자존심이었다. 중국의 내란을 틈타 중국이 자국 영토로 선언한 남사군도를 이들이 점령한 것을 중국은 영토침범으로 보고 선전포고에 앞서 무력시위와 외교전이 한창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여기에 일본이 개입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해상 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구실로 이 지역에 88함대를 파견했습니다. 미국도 제 7함대를 이 지역에 파견할 것을 신중히 검토 중이며, 러시아는 이미 작년에 베트남과 상호방위조약을 강화한 바 있습니다. 또한 아세안(ASEAN)의 맹주를 자처하는 인도네시아는 대만과 베트남에 의한 남사군도 분할을 비난하며 주변국에 의한 공동관리 또는 재분배를 요구하고, 필리핀과 말레이지아가 이에 가담했습니다."

  화살표가 각국의 위치를 따라 정신없이 화면의 좌우를 오갔다.

  "또한 브루나이는 최근 프랑스에서 연대규모의 항공기를 수입함과 동시에 조종사와 정비사 등의 용병을 모집중이라는 미확인 정보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중화통일이라는 명분으로 마지막 남은 대만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대만해협 대안에 대한 병력배치를 완료했다는 중국정부의 공식선언이 조금전 있었습니다."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이라고 차 중령은 생각했다.지구상의 마지막 자원의 보고, 30여개의 작은 섬과 몇 개의 암초가 전부인 총면적 0.4평방km에 불과한 일명 스프래틀리 군도가 177 억톤 매장량의 석유라는 강력한 미끼로 고기떼를 끌어들인 것이다.

  "유엔도 상임이사국 7개국이 어떤 형태로든 이 분쟁에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외교적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중국의 대만공격 보다도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과 일본의 충돌입니다. 엔 경제권의 수호와 아시아의 평화유지라는 미명하에, 일본은 내전으로 허약해진 중국을 무력으로 굴복시킬 태세입니다."

  화면의 푸른 화살표가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중국을 오갔다.

  "이럴 경우 19세기의 경우를 보지 않더라도 한반도, 최소한 우리나라 남해안과 평안북도 일대가 이들의 전쟁에 의해 피해를 입게될 가능성이 큽니다.일본과 중국 어느쪽에도 한반도는 훌륭한 방패로서의 가치가 있으므로 최악의 경우에는, 중국과 일본이 교두보 선점을 위해 동시에 우리나라를 침공할 가능성도 있는겁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두 개의 강력한 적에게 포위공격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정보참모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의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지역 지도를 확대한 뒤, 최악의 시나리오인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동시 침공의 상황을 가정한 전략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화면에 갖가지 색깔과 숫자와 문자로 표시된 그림들이 움직이고 서로 부딪히며 명멸해갔다. 잠시 후 15일만에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에 의해 분할 점령되는 최악의 결과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우리 통일정부는 현재 최대한의 외교적 노력을 경주 중입니다만, 여러분들도 경계태세의 확립과 동시에 각 관측소에서는 중국측의 병력 이동에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요."

  '한반도표 새우등이로군,  2차 청일전쟁에 전장은 또 한반도인가? 어떤 나라든 자기 영토에서 전쟁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차 중령은 머리를 긁으며 생각했다.  두 개의 강력한 나라가 서로 싸우기 전에 유리한 교두보를 차지하기 위해 애매한 다른 나라를 치는 경우는 역사상 빈번하게 있었다.  차 중령은 2차대전 때의 폴란드를 생각했다.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이후 두 나라의 싸움. 완충지대가 한 나라의 공격을 받으면  다른 나라도 동시에 공격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두 나라가 합동작전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폴란드는 당시에 최선을 다했으나 나라를 잃었다.

  '잃을 수 밖에 없었다...'고 차 중령은 생각했다. 무기체계의 후진성이나 작전의 실패, 또는 국제정치의 냉엄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국력의 문제였다.  당시의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의 침공을 동시에 받았으나 한 나라의 공격도 막을 힘이 없었다. 현대전은 총력전이다.병력과 현대화된 무기 뿐만 아니라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경제력과 인구, 그리고  이들을 전쟁에 집중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그 공동체의 합의에 의한 전쟁수행 의지 등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떻한가,통일정부는 있으나 아직 완전한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한 지역 모두에 기존의 정부가 일반행정과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남쪽은 북쪽에 대한 막대한 경제 지원으로 통일비용이 과다함을 걱정하고 있고, 북쪽은 북쪽대로 경제적, 사회적 혼란과 흡수통일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다.남북한 통일정부에 의한 조정으로 간신히 북한이 지역적 식민지화되는 것을 막으며 사회적 통합을 수행 중이다.'

  차 중령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1997년 감격의 남북통일 시대를 맞았으나 통일의 과정은 지지부진했다. 먼저 상호방문과 경제교류를 시작했는데 사회적 경제적 혼란이 극심하였다. 서로에 대한 앎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만남은 오해와 갈등을 증폭시키는 법인데 50년간의 분단과 적대 관계의 남북은 서로를 너무나 몰랐었다. 이런 와중에 정치적 통일을 강행하기에는 위험이 커서 통일정부는 점진적인 통일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인적교류와 경제교류에서 시작하여 점차 사회통합의 길을 걸었다.

  지난해 부터의 군사적 통합과 군비감축은 예민한 문제이긴 했지만 잘 진행 중이었다. 먼저 해군과 공군의 통합이 시작되었고, 장비상의 문제와 최종적인 평화통일의 담보로서 지상군의 통합이 늦춰지는 대신 일부 지상군의 상호주둔이 실시되었다. 남북한군이 기존의 인원과 장비를 가지고 국군은 평안북도와 함경북도의 국경에, 인민군은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해안 지역에 주둔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각자의 수도인 서울과 평양은 기존의 남북한군이 수비하고, 기존의 비무장지대의 군사력은 휴전선에서 100km 이상 후퇴하여 배치되었고, 서로 감시단을 보내 서로의 병력이동을 감시하였다.그러나 역시 남북통일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한민족의 생존이었다.

  "중국은 내일 새벽에 남사군도를 공격할 것같다는 정보사단의 보고가 있습니다."

  정보참모의 브리핑이 계속 이어졌다.

  "대만 해협의 대안에는 인민해방군의 지상군과 공군,  그리고 해군이 증강 배치되어 있으나,  이는 대만의 남사군도 지원을 봉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합니다.  중국은 실추된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 남사군도를 먼저 점령한 뒤에 대만을 친다는 것입니다. 통일참모본부에서는 전군에 비상령을 내리긴 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없기 때문에 군병력의 이동 등 중국이나 일본을 자극하는 행동을 엄금한다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물론 예비군 동원령도 아직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정보수집은 최대한으로 하되 중국이나 일본을 자극케 할 어떠한 빌미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통참의 명령입니다."

  차 중령은 부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집에 전화를 했다.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이니 부대에 들르면 12시 전에 귀가하긴 이미 틀린 일이었다. 그의 아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더니 귀신같이 알아챘다.

  "오늘 늦게 들어오신다고요? 또 비상이어요?"  걱정하는듯한 말 속에서도 셈틀 글쇠 두들기는 소리가 작게라도 틀림없이 들려왔다.

  '요즘 아내가 하는 머드(MUD)게임은 또 어떤 것일까? 오즈의 마법사? 아니면 사우러스볼?'

  그는 다른 머드게임 사용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통화를 빨리 끝내야 했다.

  "예, 부대에 갔다가..."

  차 중령은 그냥 부대에서 잠을 잘까 생각했지만  아는 사람이라곤 별로 없는 북녘땅에서 외로워하는 집사람이 안스러워 마음을 고쳐 먹었다.

  "1시쯤 퇴근할테니 먼저 자요."

  물론 그의 아내는 자신이 올 때까지  잠을 자지는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게임이 조금 난폭해질 것이다. 차 중령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전화를 끊은 차 중령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자신의 대대를 생각했다.젊은 사병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남북의 군대가 통합되어 가면서 병력감축과 지원병제도가 자연스럽게 논의되자 병역기피풍조가 남북의 젊은이들에게 만연되었다. 마지막 징병제로 군에 가지 않기 위해 진학,유학, 질병 등 갖은 사유로 병역을 연기했다. 차 중령은 전차병교육을 마치고 대대에 갓 배치된 박 일병의 말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저는 사회에서 돈도, 빽도, 대학에 갈 머리도 없어 군대에 끌려왔습니다. 친구들은 지원제로 전환될 앞으로의 2년간을 버티기 위해 별짓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재주도 없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싶기 때문에 하사관으로 장기복무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군복무기간중 건강만 지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전입 신고식 때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 박 일병의 말에 배석한 장교들은 당황하고 대대의 주임상사는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흥분했지만,부동자세의 신병들은 모두 동감한다는 뜻인지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 중령은 그의 뻔뻔함에 처음엔 화가 났지만, 현재의 징병제에서 모병제로의 전환기에 있는 남북의 상황에 대한 생각과, 그의 처지에 연민을 느껴 도저히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복무기간 동안 제군들의 건강을 빈다는 짧은 훈시를 한 뒤 신병들을 보내고 나서 장교들과 주임상사에게 차분하게 명령을 했다.

  "그들의 정신상태가 썩었다는 등의 말은 하지 않길 바라오.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해 봐요.앞으로 2년간은 저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여러분들이 겪었던 그런 고분고분한 신병들은 이젠 없을 것이요.  그들에게 잘 해주시요."

  1999. 9. 12  24:00  국군 제 11 기갑사단 제 3 전차대대본부

  대대본부에 도착한 그는 장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장교와 하사관의 위치파악과 연락방법을 논의했다. 아직은 한반도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없으므로 휴가장병의 귀대나 전차의 방어지역 전진배치 등을 금하고 다만 장교들은 중국과 대만의 분쟁을 주시하라고 지시했다.만일에 대비하여 중국군의 무기 및 작전체계를 숙지해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젊은 장교들은 정보사단과 연결된 단말기를 두둘길 것이고 나이든 하사관들은 또 젊은 사병들을 못살게 굴 것이라고 차 중령은 생각했다.

  '저 고집스런 늙은이들, 빨리 단말기 사용법이나 익힐것이지..'

  그러나 늙은이의 머리와 용기는 한계가 있었다.  인원과 장비 점검을 마치고 탄약과 식량의 추가 보급을 상의한 뒤  상황실장인 최 대위에게 지휘권을 맡기고 자신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의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다.

  '저 달이 차면 ...'  그는 올해 추석에도 고향에 가긴 틀렸다고 생각했다. '올해도 부모님께는 ISDN으로 인사드릴 수밖에 없겠군. 부모님이 ISDN 사용법에 익숙해지셨으면 좋겠는데...'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의 도움 없이는 전화 한 통화도 못하시는  부모님의 시대에 뒤떨어짐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너무 빠른 사회 발전 속도에 자신도 낙오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타기가 무서워 아직도 아파트 6층을 걸어 다니시는 외할머니도 생각이 났다.

  '언젠가는 내 자신도 시대에 뒤떨어져 문명발전의 혜택을 포기하는 날이 오겠지...'

     난사군도(南沙群島)

  남사군도는 남지나해 남단의 한 군도로 30여개의 작은 섬과 40여개의 암초 및 산호초로 이루어진 총면적 0.4 평방 km의 작은 군도이다. 일명 스프래틀리 군도. 동쪽은 필리핀, 서쪽은 베트남, 남쪽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동으로는 필리핀,  그리고 북으로는 중국과 대만이 있으며 동아시아로 가는 해상로가 바로 옆에 있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천혜의 해상요충인 곳이다.

  그러나 그 지정학적 위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의 매장량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쿠웨이트 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르는, 추정 10억에서 177 억톤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1968년부터 주변 각국은 일방적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섬들을 점령한 후 자국 영토로 선언하였다.

  2차대전 후 일본군으로부터 장계석이 인계받아 남사군도 최대의 섬인 타이핑(일명,이투 아바)섬에 주둔 중인 대만을 비롯, 중국과 베트남,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등이 산호초섬이나 암초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싸워왔고, 항상 국지전의 위험이 있던 곳이다.

  베트남은 1985년부터 석유개발을 시작, 연간 540 만톤의 석유를 생산하여 일약 산유국 대열에 끼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석유 수출액이 쌀수 출액을 초과하여,이 돈으로 90년대 베트남 경제의 발전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사군도를 둘러싼 주변국간의 갈등이 커지고,동남아시아 주요국들간의 군비경쟁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중국은 광둥과 푸젠의 연안 지방정부들이 각 지방정부와 군부의 내란을 평정한 후, 다시 이 섬들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먼저 중국내란 중 대만과 베트남이 강제 점령한 섬들의 반환과 배상을 요구했으며,남사군도에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여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베트남은 남사군도가 자국 해안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자국 영토임을 선언했고, 대만은 45 년 일본군에게서 인수했다는 점을 내세워 기득권을 주장했다. 외교전과 함께 공중과 해상에서의 무력시위가 계속된 1999년 여름의 남사군도 근해는, 바다에 낚시대 하나 드리울 틈이 없을 정도로  각국 군함들로 초만원이 되어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1999. 9. 13  05:50  남사군도 타이핑섬

   남사군도 최대의 섬인 이곳 타이핑섬엔 1개 대대의 대만 해병대뿐만 아니라 해군 항공대와 대함미사일부대, 대공부대 등이 전투준비 등으로 분주했다. 겨우 0.4평방킬로미터도 안되는 좁은 이 섬은 너무 혼잡하여 오히려 전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어제는 이륙중이던 F-14 전투기와 대잠헬리콥터가 충돌하여 헬리콥터 조종사들이 사망하는 참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활주로 동쪽 끝의 지하 벙커에서는  중국해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레이더관제관과 통신장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갑자기 한쪽 구석에 있는 OTH 해상감시레이더 담당 하사관이 비명을 질렀다.

  "해신 2호 침로 변경, 현재 방위 0-1-2, 거리 20해리, 침로는 2-2-0! 속력 30노트! 기타 다수의 수상함정 남진중! 전투속도입니다!"

  "서사군도 상공에 다수의 항공기 출현, 숫자는 점점 늘어납니다. 현재 약 23기!"

  레이더 관제사관도 그 하사관에 지지 않을 큰 목소리로 보고했다.

   "26기로 증가!"

  '올것이 왔다...'

  타이핑섬 수비대 사령관인  리 회이 대령은 남사군도 분쟁에 대한 최신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서사군도에서 중국군 경폭격기들이 다수 이륙하여 대만 함대 공격,  타이핑섬을 구원하려는 동사군도의 대만 전투기 부대를 중국항모에서 출동한 전투기가 요격,중국 해병대의 타이핑섬 상륙, 해군과 공군의 지원을 받은 중국해병대에 의해 대만의 타이핑 수비대 전멸, 최악의 경우 중국에 의한 대만 침공...

  '그러나 이 섬은 우리 자유중국에 너무나 절실하다.'

  리 대령이 마이크를 잡았다.

  "전 수비대 대공전투위치로,항공관제관 전투기 발진! 통신병은 현 상황을 제 2함대와 동사군도 수비사령관에 보고하라.  조기경보기의 보고는 없나?"

  곧 모든 수비대원이 전투위치에 배치되었다.  보조연료탱크와 중거리 대공미사일을 가득 실은 전투기들이 차례로 이륙하고  지상의 대공미사일은 모두 북쪽을 향했다.  대만의 제 2함대는 기함인 이지스 순양함의 지휘하에 모두 북쪽으로 전속 항진하며 중국 경폭격기의 대함미사일 발사에 대비한 진형을 짜기 시작했다.

  남사군도의 대만 정예 요격기부대는  찬란한 아침햇살을 오른편 하늘로부터 받으며 서서히 편대를 짜며 남하해갔다. 대만 최초로 미국제 F-14전투기로 구성된 타이핑 주둔 제 12전투비행단의 제 1대대장인 창 중령은 아침에 화장실도 못간 채 긴급출동한 것에 대해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짜식들, 아침이나 먹거든 시작할 것이지...'

  이제 당분간 아침 단잠과 식사 후의 담배를 곁들인 여유있는 홍차 한 잔,그리고 비행대기시간의 동료들과의 돈내기 포커는 즐기기 어려울 것이다.

  '살아 남더라도 말야...'

  창 중령은 타이페이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생각해 냈다.  미인이며 중학교 수학선생인 부인, 소학교 2학년인데 벌써 웬만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10살배기 딸...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 비록 내란으로 피폐해지긴 했지만  중국의 막강한 군사력은 대만인들에게는 악몽 자체였다. 하방감시 레이다에 중국함대가 나타났다.

  '곧 전투기도 몰려 오겠지..'

  창 대령은 북쪽 하늘을 보았다.

  이제 전쟁을 믿지 않는 아시아인은 없게 되었다. 대만의 직선 총통에서부터 타이난 요트공장의 노동자들, 남사군도 근해에 배치된 일본해상 자위대 제 2호위함대 승무원들, 호지밍시 근교의 기지에서 긴급 발진한 베트남 전투기의 조종사들, 캄란만에서 출동하는 러시아 순양함 프룬제의 승무원들, 베트남에 현지공장을 둔 한국의 어느 종합상사 회장.  모두 중국과 대만의 전쟁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유럽과 미국의 일반시민들도 위성중계TV 앞에 모여들었다.

  전쟁을 막으려는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대만의 패배와 중국복속은 기정사실이었다.  이제는 대만 복속 후의 아시아 정세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가 관심일 뿐이었으며,이 지역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물론 이번 기회에 아시아에서의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틈을 노리는 부류도 있었다.  남사군도 해역에 해군을 파견한 일본과 미국이 그들이었다.

  1999. 9. 13  06:00  대만 후아리옌(花蓮) 지하공군기지

  대만 북동부의 후아리옌의 지하공군기지에서는 계속해서 미라쥬 전투기가 이륙했다. 태평양연안의 작은 항구도시인 후아리옌의 교외에 있는 이 기지는 극동 지역 최대의 지하공군 기지로,  대만정부가 7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으로 1993년 겨울에 완공한 대만 영공수호의 상징이었다.이곳에는 1993년 미국에서 수입한 F-16전투기와, 지난해인 1998년 중국의 내란을 기화로 대만에 대한 외국의 무기판매를 중국이 견제하지 못하자 미국에서 F/A-18 전투공격기를 대량수입하여 후아리옌 지하기지에 집중 배치하였다.  각 활주로별로 전투기들이 이륙준비에 바빴다.

  대만에서 자체개발한 슝펭3 대함미사일을 양날개에 실은 프랑스제 미라쥬 전투기는 1993년 수입한 것이었다.  미라쥬가 이륙하면 곧이어 미제 F-16 전투기와 F/A-18 전투공격기가 이륙할 차례였다.  물론 목표는 타이핑섬을 공격하는 중국함대와 경폭격기대였다.미라쥬와 F/A-18이 함대를 공격하고 F-16이 상공 엄호를 할 계획이었다. 물론 중국해군의 명백한 도발이 있기전의 선제공격은 억제된 상태였다.

  1999. 9. 13  06:30  대만 후아리옌 근해

  후아리옌의 동남방 20km 해상에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항해 중이었다. 5만톤의 원자력화물선인 이 배는 선체를 검게 칠하고 앞부분에 흰색 페인트로 흑환(黑丸)이라고 한자로 쓰여 있었다. 선미에는 일장기가 바람에 날리고 갑판에는 컨테이너가 만재되어 있었다. 원자력상선 구로마루는 일본이 상업적 목적의 핵 이용을 시작한 1996년에 건조되어, 이듬해부터는 자매선 20여척을 만들어 세계의 항로에 투입되어 있었다. 그 중의 두 척을 중국이 비밀리에 매입하여 개조한 후 일본에 잠시 기항, 구로마루와 목적지를 바꿔치기하여 이 배로 선체를 위장하여 후아리옌항을 향하고 있었다.

  선교에는 보통의 상선보다 많은 선원들이 있었다.한 모니터에 중국의 통신위성으로부터 받은 남사군도의 각 군별 항공기와 함대의 위치가 그려진 자료가 영상에 나타났다.  영상에는 후아리옌에서 이륙한 대만 전투기들이 거의 남사군도 해역 상공에 도착하고 있었다. 선장이 함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작전 2호 발령!"

  짧게 외친 그의 말은 분명 중국어였다.이 배의 선장은 중국해방군 해군 북해함대 사령관인 리 소장이었다.그리고 이 거대한 상선의 배 밑에는 로미오급(중국 해군의 제식명 033식) 재래식잠수함 40여척이 배터리를 이용한 무음항해를 하고있었다. 상선으로부터 전기와 산소를 공급받고, 통신선을 통해 사령관의 명령을 받으며, 또한 수상의 상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장시간의 무음장항이 가능했다.

  물론 많은 잠수함들이 좁은 수중공간에서 잠항하기때문에 잠항 중 잠수함끼리의 충돌을 막기 위해 상선에 있는 잠항통제사관이 땀을 흘리며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상선의 통제관과 잠수함들은 모의훈련과 실전 훈련을 거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같은 시간 대만 남부의 최대 항구인 까오슝의 앞바다에는 구로마루의 자매선인 원자력상선 호오류가 항구를 향하고 있었다. 자동차 운반선인 호오류는 명목상 2천대의 일본산 전기자동차를 까오슝항에 하역하기 위해 대만영해에 진입하였으나, 호오류도 역시 구로마루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 위해 중국해군에 의해 개조된 배였다.호오류는 입항 직전 이미 잠수함들을 떼어 놓았다.

  작전 2호는 공격 예정시간 전에 대만의 해안에 도달하여, 잠수함들이 각각의 임무에 맞춰 자신의 공격위치로 출발하는 것이다. 공격예정 1시간전이었다. 먼저 상륙부대를 태운 잠수함 10 여 척이 호위잠수함의 유도를 받으며 출발했다.  그리고 상선의 호위를 맡아 대함미사일을 탑재한 공격형 잠수함들은 각자가 맡은 책임해역으로 흩어졌다.

  대만정부로서는 전쟁 전에 최대한의 물자를 비축해야 하기 때문에 해상의 항로는 대만에 식량과 생필품, 또는 군수품을 실은 각국의 화물선으로 붐볐다. 화물선은 상당히 큰 소음을 내므로 대만의 구축함과 대잠 초계기는 이런 해역에서 무음잠항하는 중국해군의  잠수함을 포착할 수는 없었다.  더우기 대만해협과 남사군도가 더 중요한 해역이기 때문에 이런 통상항로에는 대잠초계를 강화할 수도 없었다.후아리옌 항구 앞의 푸른 바다 속은 중국 잠수함들로 붐볐다.

  같은 시간, 남사군도 70 km 북방, 피어리 크로스 암초지대 상공

  '이제, 조금만 더...'

  해상 30 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대만 공군의 F/A-18 대함공격대 30여기의 편대장인 왕 대령은 무척 초조했다.대함미사일 발사 전 저공비행 중에는 레이더 사용과 편대기 사이의 통신이 봉쇄된다.후방 100여km 상공에서 선회중인 레이더 조기경보기 덕분에 적함대의 위치는 잘 알 수 있었지만 미사일공격 전에는 적 요격기 편대의 위치와 왕 대령이 지휘하는 편대기의 위치는 알 수 없었다.간간이 고도 일만 미터에서 중국해군의 조기경보기가 발신하는 레이더파가 기체를 스쳐갔다.

  '이제 중국함대도 우리의 접근을 눈치챘을 것이다.'

  왕 대령의 기체 하부에는 중거리 공대함 미사일인 하픈(HARPOON) 2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공대함 하픈은 개발 초기에는 INS(관성유도장치)에 의한 중거리유도와 액티브레이더호밍에 의한 단거리유도의 2단계 유도를 거쳤으나 목표물의 전자방해전, 특히 soft kill(채프나 레이더 발신미끼에 의한 오인 유도)의 발달에 따라 단거리 유도방식에는 TV 유도방식 등의 광학적 유도와, 기존 액티브 레이더호밍을 강화한 주파수도 약 액티브 레이더 호밍의 복합적 유도방식이 많이 이용되었다.조기경보기로부터 목표의 위치에 대한 데이터가 계속 수신되고 있었다.

  '어차피 장거리 함대공미사일은 저공을 비행하는 기체에는 발사할 수 없다. 이제 목표까지 80 km! 사정거리가 되고도 남는데 왜 발사 명령을 내리지 않는거야?'

  왕 대령 뿐만 아니라 다른 조종사들도 초초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몇 분 후에는 중국전투기들의 요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적 수상함의 단거리 함대공미사일의 사정에 들어 올 것이다.F/A-18은 전투기로서도 훌륭하지만 무거운 하픈 공대함미사일을 2기나 장착한 상태에서는 30년전 개발된 미그 23의 상대도 안될 것이 뻔했다.더구나 상대는 러시아제 미그 29가 아닌가?  그렇다고 관제기의 명령없이 혼자만의 판단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없는 일,더 이상 참지 못한 왕 대령이 무선봉쇄를 해제하고 관제기 역할을 하고 있는 조기경보기를 불러냈다.

  "여기는 갈매기 6호! 도대체 왜 명령을 내리지 않는거야?"

  "갈매기 6호. 여기는 죠나단. 즉시 무선 봉쇄하시요.목표의 움직임이 있습니다.목표는 3-2-6으로 선회중! 이를 목표의 아군에 대한 적대행위 중지로 인정하고 남사군도 파견함대 사령관과 협의 중입니다. 반복합니다. 목표의 위치 변경 중. 항로를 유지하고 무선봉쇄를 지속하시요."

  왕 대령은 무선을 끊었다.2시 방향 상공에 중국해군의 함재기인 미그 29기 4대가 편대를 지어 서서히 나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군. 저놈들이 왜 우릴 공격하지 않지?'

  왕 대령의 F/A-18 편대 뒤를 따르던 미라쥬 전폭기 편대는 이미 동사 군도에의 착륙을 명령받고 귀환중이었다.

  1999. 9. 13  06:40  웨스트 리프 해역, 대만해군 프리깃함 쳉쿵

  대만 해군의 남사군도 파견함대 기함인 미사일 프리깃함 쳉쿵의 전투 함교에서는 중국해군 함대와 중국 전투기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느라 부산했다. 큰 전자전 콘솔에 앉은 전자전 사관이 모니터를 계속 주시하며 함대사령관에게 보고했다.

  "목표 1, 진로 3-2-6. 목표 2, 진로 3-8-0. 목표 3, 진로 0-9-0!  레이더와 전자전 자료 일치합니다."

  "죠나단의 평가와 물까마귀 1호의 육안관측 모두 일치합니다."

  연이어 통신사관이 보고했다.  죠나단은 공중조기경보기, 물까마귀는 함대 소속의 초계기의 암호명이었다.

  "죠나단에서는 갈매기들의 진로변경을 계속 건의하고 있습니다."

  사령관은 고민했다. 중국이 이대로 돌아가는가... 다행이지만 이상했다.

  "일단 갈매기들은 후아리옌기지로 돌려보내. 독응은 동사기지로 유도하라. 목표와의 접근을 최대한 회피하라. 계속 경계 유지!"

  명령을 마친 사령관은 대만 해군본부와의 직통 화상전화를 들었다.전화는 위성경유로 즉시 타이페이의 해군본부 지하벙커에 연결되었다.

  "제 2함대 사령관입니다. 총장님! 목표가 진로를 바꿨습니다.단순 시위로 보입니다."

  사령관이 자신없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늙은 해군총장은 잇따른 밤샘으로 더욱 초췌해 보였다. 대만해군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최후의 국부군 린 허우 제독이다.경험과 합리, 미래를 예측하는 혜안으로 오늘의 대만해군을 이끈 군인이었다.늙은 제독이 고뇌하듯 입술을 깨물더니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제독. 지금 적의 잠수함대가 보이질 않소. 해협에도, 남사군도 근해에도 없단 말이오.하이난(海南島) 해협 부근에서 간간이 부상하여 항해하는 잠수함이 보이지만 몇 척의 밍급 고물들 뿐이오. 4개 잠수함 전대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동시에 보이지 않소.특히 시아급과 한급 핵잠수함, 게다가 숫자가 가장 많은 로미오급 재래식 잠수함들의 소재가 불분명하단 말이오. 그리고 해협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니 제독은 2함대를 이끌고 돌아와 주시오."

  '그럼 남사군도는 포기하란 말입니까? 우리 대만의 보고(寶庫)를?'

  라는 말이 목젖에까지 올라왔지만, 석유보다는 국가의 존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2함대사령관은 해군총장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미라쥬는 동사에 배치해도 좋소."

  늙은 총장이 부하의 걱정을 읽은 듯 말을 이었다. 부족하긴 했지만 F-16과 미라쥬가 동사군도의 기지에 있으면  남사의 F-14와 함께 중국해군의 항공모함 2척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2함대사령관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짐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제독은 함대의 대공전투경계를 해제하고 서둘러 대만남안의 항구이며 제 2함대의 모항인 쪼잉(까오슝 북쪽 항구)을 향해 항진할 것을 명했다.

  1993. 9. 13  07:30  후아리옌 동쪽 해상, 원자력 컨테이너선 구로마루

  "선장님! 창고가 보입니다. 좌전방 9 km!"

  망원경으로 해상을 감시하던 사관이  전방에서 커다란 화물선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 함장에게 보고했다.통신사관이 통신전문을 들고 부리나케 뛰어왔다.

  중국해군 북해함대 사령관 리 소장은  베이징의 당 중앙군사위로부터 위성경유로 타전된 짤막한 명령서를 손에 쥐었다.  명령서의 전문은 단 두 자로 되어있었다.

  '공격'

  공격명령서를 받은 리 소장은 지체없이 작전 3호를 발령했다. 작전 3호는 후아리옌 공군기지에 대한 공격을 의미했다. 후아리옌에서 이륙했던 대만의 F-16 전투기편대와 미라쥬 전투기편대가 동사군도의 대만 기지에 착륙한 것을 알고 리 소장은 월척을 손에서 놓친 듯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리베리아 선적의 화물선 허미즈(Hermes)는 마주오는 항로에서 구로마루를 발견하고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이 배는 후아리옌항에 컨테이너를 하역하고 다음 항구인 싱가폴로 가는 예정항로상에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허미즈는 큰 원을 그리며 서서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구로마루의 갑판에 있던 수십개의 위장용 빈 컨테이너들이  기중기와 불도져에 의해 바다로 던져졌다.이들은 플라스틱으로 가볍게 만든 것들이었다.  몇 개의 컨테이너는 외각을 해체하자 속에 대함미사일과 대공 미사일 발사기가 나타났다.  선미(船尾)의 컨테이너를 해체하니 예인용 소나(SONAR)가 드러났고 승무원들이 기중기를 조작하여 이를 물속에 넣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갔다. 이 배의 승무원들은 이 한 순간을 위해 몇달씩 연습했던 것이다. 불과 10분 만에 모든 것이 다 정리되었다.

  갑판 중앙의 세 부분이 소리없이 내려앉았다.잠시 후 그 부분이 다시 올라올 때에는 러시아의 수호이-27K 를 본딴 중국해군의 함재전투기 섬(殲)-15형 3기가 공대지미사일과  공대공미사일로 무장한 채 나타났다. 구로마루는 중국해군의 위장항공모함이었던 것이다!

  구로마루는 올초에 칭다오(靑島) 조선소에서 비밀리에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받았다.선수에는 대지공격용 순항미사일과 대함미사일 수직발사기, 선미에는 대공미사일 수직발사기가 만들어졌다.배 중앙의 공간에는 함재기 격납고와 수리시설,보급창 등이 만들어졌고 배의 외측은 고강도 장갑판이 덧대어졌다. 선수의 활주로는 스키점프대로서 경사를 이뤄 단거리 이륙이 가능하도록 개조되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원자력 상선 구로마루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항공모함 해신 3호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렇나 위장을 위해 배의 전체적인 윤곽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첫번째 전투기가 증기사출기에 의해 시속 250km로 가속되어 이륙했다. 쌍발엔진인 이 섬-15형 함재기는 주익 앞의 대형 카나드를 약간 올린채 급 가속했다. 갑판작업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 전투기를 전송했다. 이어서 두번째, 세번째 전투기도 이륙하자, 다시 엘리베이터에 의해 올려진 다른 전투기들이 사출기로 옮겨졌다.  수호이 27-K의 특징인 주익과 연결된 두 개의 대형 수직미익이 남국의 햇살에 반짝였다.

  갑판작업원들의 함성을 들으며 리 소장은 젊었을 때 군사학원에서 본 미국영화가 생각났다. 진주만을 습격하기 위해 일본의 항모에서 이륙하는 뇌격기 조종사들에게도 갑판원들이 함성을 지르지 않던가?  리 소장은 다시 생각했다.

  '우린 이긴다. 대만은 다시 중국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아니잖는가?'

  그러나 어쨌든 동족을 공격한다는 것이 리 소장의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군인은 외적의 침략으로 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인데...'

  1999. 9. 13  07:40  까오슝(高雄)

  같은 시간, 구로마루와 같이 중국해군에 의해 개조된 원자력 상선 호오류는 작은 예인선들에 끌려 까오슝항에 들어왔다. 입출항 서류절차는 먼저 상륙한 일본인 항해장이 맡아서 끝냈고 밀수품을 검사하는 세관검사는 세관원을 매수하여 갑판 1층의 위장용 일제전기자동차 몇 대만 형식적으로 조사한 뒤 검사를 끝마쳤다.드디어 입항허가가 내려지고 자동차하역 전용항만에 배를 계류시켰다.본격적으로 하역준비가 시작되었다.

  까오슝은 대만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인구는 약 150만명인 타이완 제 2의 도시이다. 개발이 비교적 늦게 되어 중국이나 대만 특유의 고풍스런 유적은 없지만,  남국풍의 온화하고 깨끗한 도시이며 대만 최고의 공업도시이기도 하다.

  까오슝항은 10만톤급의 선박이 정박가능할 정도로 항구로서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으며 세계 10대항 중에 꼽힐 정도로 큰 항구이다. 까오슝항 바로 북쪽에는 대만 해군 함대의 모항인 쪼잉항이 있어서 까오슝항에도 대만해군 함정들의 출입이 잦았다.  전쟁위기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에 외국 선적의 화물선들은 약간 서두르는 기색이 보였다.

  드디어 하역시키기 위해 배 우현의 브리지 세 개가 동시에 내려왔다. 소형트럭 몇 대에 분승한 항구의 노무자들이 일본산 전기자동차를 하역시키기 위해 각 브리지에 도착하여 하차했다. 그들이 브리지로 걸어 올라가려고 할 때, 갑자기 컴컴한 배안에서 수많은 차량들의 엔진음이 들려왔다.

  "반장님, 일본놈들이 하역전문 운전사까지 데려온 모양인데요?"

  한 젊은 노무자가 기가 막힌 듯 자동차 전용 항만의 하역반장에게 물었다.

  "그럴리가? 서류에는..."

  반장이 잠시 서류를 펼쳐 보던 중 배안에서 나는 엔진음을 듣고는 경악했다.

  "잠깐, 저 소리는 전기자동차가 아냐.  디젤엔진, 그것도 군용장갑차 엔진음이다. 나온다! 모두 피해!"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 소련제 BMP-1 보병전투차의 중국 복제품인 WZ-501 보병전투차가 배와 부두를 연결한 브리지에 나타났다.보병 전투차 위에는 73밀리 포탑의 해치를 열고 올라와 대공기총을 잡고있는 인민해방군 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노무자들을 보더니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리며 총구를 그들에게 돌리고는 쏘는 시늉을 했다.장난스럽게도 입으로는 총소리를 냈다.

  "팡!  팡!"

  항만노무자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나고 세 개의 브리지에서는 수 십 대의 보병전투차와 이의 변형인 WZ-504 대전차 미사일 탑재차, 90식 APC, (APC : Armoured Personnel Carrier, 장갑병력수송차 또는 장갑차), 소

형인 62식 경전차, 그리고 기관총을 탑재한 사륜구동차들이 몰려나왔다. 그리고 어느새 배 위에는 지상공격용 헬기들이 떼지어 날아올랐고,갑판 위에는 위장막을 치우자 대공무기들이 나타났다. 이어 중국 해병대원들이 완전무장한 채 상륙하여 예정된 위치로 달려갔다.

  '쿠아앙! 콰광!'

  자동차 전용부두의 바깥쪽 외항에 정박하고 있던 대만 해군 함정들이 연이어 폭발했다.  호오류를 따라 까오슝항에 숨어들어온 중국 해군 잠수함들이 어뢰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먼저 고속미사일공격정 '룽 창'이 어뢰 한 발에 산산조각이 나고, MWV-50급 소해정 한 척이 침몰했다. 해양경찰대 소속의 경비정 PP-823과  세관 소속의 '호 싱'도 어뢰를 맞고 불에 타며 침몰 중이었다.

  하늘에는 항구 바깥에서 날아온 중국 해군의 잠수함 발사 미사일들이 소우산(壽山) 군사기지의 공격목표를 찾아날아다녔다.항구는 계속된 폭발 소리와 사이렌 소리,  헬기와 장갑차의 소음과 총소리들로 시끄러웠다.  먼저 항무국(港務局)을 점령한 중국 해병대는 일부는 도로를 따라 소우산 군사기지로 가고 일부는 中山三路를 통해 까오슝 남동쪽에 있는 까오슝 국제공항을 점령하기 위해 이동해갔다.  중국해병대는 항구시설을 모두 점령하자 시내 점령에 나섰다. 까오슝 북쪽의 쪼잉항도 하늘과 바다, 육지의 입체적인 공격에 의해 순식간에 점령되었다.

  안전한 항로를 찾아 미친 듯이 헤매는 어선들 사이에 숨어 대만 해양 경찰대 소속 PCL 경비정 한 척이 40 밀리 포를 연속 발사하며 호오류에 접근해 왔다. 호오류의 측면에 포탄이 관통하며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러나 호오류의 상공에 있던 호위용 헬기가 발사한 대함미사일 한방을 맞고 그 경비정은 순식간에 폭발하며 침몰하였다.

  폭발하는 경비정에서 튕겨져 나온 12.7밀리 기총사수 왕 하사는 중상을 입은채 물위에 떠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참 푸르다고 생각했다. 상처의 출혈이 심했으나 고통은 없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 보았으나 자신 외에는 생존자가 없었다. 위장상선에서 방금 막 발사된 미사일의 연기가 보였다. 문득 자신이 호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닷물이 출렁거렸다. 매우 졸렸다.꿈인지 몰라도 까오슝항의 해군 관사에 있는 어린 딸이 웃으며 자신에게 달려왔다.

  '아빠. 이번 일요일엔 꼭 놀이동산에 가는거지?'

  왕 하사는 미소를 지었다. 딸의 웃는 얼굴이 까오슝항의 하늘에 보였다.왕 하사는 이번 일요일엔 꼭 딸과 함께 놀이동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999. 9. 13  07:45  까오슝항 북서쪽 소우산(壽山) 365고지

  해상감시 레이더와 대공미사일 기지가 있는, 까오슝항을 내려다 보고있는 소우산의 정상 365고지에서는 잠수함에서 상륙한 중국 인민해방군의 특수부대인 권단(拳團)과 기지수비대간의 총격전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미리 준비하고 급습한 권단의 공격에 기지수비대는 항복하고 기지는 쉽게 권단이 장악했다. 공격지원을 하기로 한 중국 해병대는 권단이 점령한 후에야 소우산 기슭에 도착할 정도로  권단의 공격은 신속했다.

  기지 점령 즉시 권단과 동행한 인민해방군 공군의 전업기술군관과 사 병들이 대만이 자체개발한 텐궁(天弓) 3호 대공미사일을 점검하고 일부는 해상감시 레이더를 조작했다.  이 고지는 중국군의 까오슝항 점령과 이후의 방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기능회복에 박차를 가했다.

  소우산 기지가 점령됨으로써 대만 남단 근해의 모든 해상의 움직임들이 까오슝 서남방 150 km 해상의 중국해군 동해함대의 주력 수상부대에 전달되기 시작했다.

  1993. 9. 13  07:50  까오슝공항

  까오슝 항구 남동쪽에는 까오슝 국제공항이 있다. 방금 막 착륙한 타이쭝(臺中)발 여객기에서 내린 승객들은 까오슝항에서 들려오는 연이은 폭음을 듣고 놀랐다. 까오슝항이 있는 방향에 치솟는 검은 연기와 불꽃들, 기관총소리와 폭발하는 소리들... 사람들은 한순간 멍청히 서 있었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도 분명했다.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았고, 이를 신호로 까오슝 공항의 사람들은 모두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앞은 다투어 이륙 준비 중인 여객기로 몰려갔다.남사군도의 위기가 지나갔다는 뉴스를 듣고 안도하며 평상시의 생활로 돌아가려던 생각이 처참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공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까오슝은 전쟁터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헬리콥터 소리가 항구쪽 상공에서 들려왔다 항구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 사이로 수십대의 군용헬기들이 까오슝공항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를 본 사람들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가려 하자 대합실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헬기 몇 대가 공항관제탑과 청사 앞에 착륙하고 헬기에서 완전무장한 중국인민해방군 전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임무와 공항내부를 잘 알고있는 듯 곧바로 맡은 구역을 향해 뛰어갔다.

  공항 보안요원들과 경찰 몇 명이 저지하려 했으나 지난 1년간의 내전에서 실전경험을 쌓은 중국 정규군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갑작스런 습격에 당황한 그들은 빈약한 무기로나마 싸우려고 했으나 차례로 쓰러져갔다.공항청사를 아직도 빠져나가지 못한 민간인들이 총탄을 피해 바닥에 엎드리거나 구석에 웅크린채 계속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공항경비경찰인 우 경사는 청사의 기둥 뒤에 숨어 중국군 병사들에게 소총을 발사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째 맞히는 순간 중국군 병사의 자동화기가 자신을 향해 불을 뿜는 것을 보았다.  큰 충격에 뒤로 나가 떨어졌다. 목이 메이고 울컥하며 선혈이 솟구쳤다. 깨끗한 제복이 피로 더럽혀졌을거라고 생각하니 불쾌했다.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공항청사의 커다란 기둥이 점점 희미해져 보였다.어제 저녁 이 기둥 옆에 서 있던 싱가폴항공의 젊고 매력적인 스튜어디스가 생각났다. 동그란 눈으로 우 경사를 쳐다보던 그 스튜어디스... 참 귀엽다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귀여운 눈...

  5분도 채 되지 않아 공항청사에는 중국의 오성홍기가 올려졌다.

  1999. 9. 13  07:50  후아리옌 근해의 해신 3호

  전투기 50여대가 모두 이륙하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먼저 제공권을 장악할 전투기와  대만의 대공미사일 발사대와 레이더를 공격할 공격기가 이륙한 후에 지상공격용 전폭기들이 이륙했다. 이들은 러시아 전투기로서는 최초의 함재형전투기인 수호이-27K를 본뜬  섬(殲)-15 전투기였다. 각자 맡은 바 임무대로 장비를 싣고 이륙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으로 보였다. 후아리옌 근해의 하늘은 순식간에 중국전투기들로 메워졌다.

  중국함재기들이 편대를 형성하여 후아리옌 공군기지쪽으로 출발한 직후, 리 소장은 대지공격용 순항미사일의 연속발사를 명했다. 이미 좌표가 입력된 순항미사일들이 꼬리를 물며 발사되었다. 함수의 수직발사기에서 연속발사된 순항미사일은 상승 후 다시 고도를 내려 해상 10 미터의 아슬아슬한 고도와 마하 3의 빠른 속도로 후아리옌 공군기지로 날아갔다. 이런 기술은 1995년까지 상상도 못하는 기술이었다. 파도를 스치듯 낮게 날아가는 대함미사일은 이때까지 마하 이하의 속도였으나 획기적인 레이더기술의 발달로 이 미사일은 마하 3을 시현할 수 있었다. 이어 해군 특전대를 태운 헬기들이 날아올랐다.

  전투기들이 모두 이륙하자 구로마루는 속도를 줄이고 허미즈(Hermes)가 접근해오길 기다렸다.  화물선 허미즈와 15노트의 속도로 완전히 속도가 같아진 후 허미즈의 기중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중기의 철선끝에는 컨테이너가 있었고 이를 같은 속도로 항행하는 구로마루에게 넘겼다. 구로마루의 작은 기중기가 이를 다시 엘리베이터 위에 올렸고 그 엘리베이터는 즉시 아래로 내려갔다. 이 같은 작업이 몇 회나 계속되었다. 허미즈는 구로마루, 즉, 해신 3호의 위장보급선이었다. 큰바다에서는 파도가 높기 때문에 보급 중 파도의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하여 두 척의 배가 같은 속도로 항진하며 물자를 운반하는 것이었다.

  같은 시각 해신 3호의 밑에 있다가 후아리옌 근해로 숨어들어온 로미오급 잠수함 20여 척이 일제히 잠망경 심도까지 부상하여  후아리옌 공군기지와 주변의 대만 지상군 기지를 목표로 533 밀리 어뢰발사관을 통해 순항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바다위를 항해중인 배에서 보았다면 사방에서 흰 물기둥이 솟구쳐서 깜짝 놀랐을 것이다. 미사일 발사를 마친 중국의 재래식 잠수함들은 다시 잠수하여 전파수신기가 달린 슈노켈을 올린채 해신 3호와 허미즈가 있는 동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1999. 9. 13  08:00  후아리옌 공군기지

  새벽의 전 항공기 출격에 이은 F/A-18 편대의 착륙과 정비에 눈코 뜰 새 없던 후아리옌 지하공군기지에 다시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적 항공기에 의한 공습경보였다.후아리옌은 상대적으로 후방이기 때문에 적 항공기에 의한 기지 급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여 모두 당황했다.

  조종사들이 허겁지겁 이륙 대기 중인 전투기에 올라탔다. 남사군도로 출격할 때 탑재한 대함미사일은 이미 제거되어 있었기 때문에 F/A-18은 이제는 전투기가 되어 하늘을 날으려는 참이었다.조종사들이 헬맷을 쓰자 이어폰을 통해 놀라운 정보가 전해졌다.적 항공기는 대륙이 있는 서쪽이 아니라 바다가 있는 동쪽에서 몰려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적이 이미 기지에서 10 킬로미터까지 접근했다는 소식이었다.

  첫번째 비행기가 이륙도 하기 전에 순항미사일들이 몰려왔다.기지 자체 방어시설들인 대공 발칸포와 대공미사일들이 연속 발사되었다. 대공 방어망의 틈을 뚫고 들어온 미사일들이 입구 근처에 작열했다.  굉음과 진동이 기지를 휩쓸었다. 그러나 지하기지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는 거의 없었다. 준비된 전투기부터 서둘러 이륙했다.  지하기지는 전투기들의 굉음과 미사일 폭발음, 그리고 관제탑의 확성기 소리에 휩싸였다.

  같은 시간, 기지 옆 바위틈

  "자네 오리사냥 해본 적 있나?"

  중국 인민해방군의 해병대 제 11여단 방공대대 소속의 장바오 중위가 바위틈에 숨어 휴대형 대공미사일의 발사를  준비 중인 한 병사에게 물었다.  이들은 전날 밤에 야음을 틈타 잠수함으로부터 상륙한 선발대였다. 이들 말고도 세 곳의 후아리옌기지 활주로 입구 주변과 후아리옌기지로 통하는 고속도로 주변에 중국 해병대원들이 매복중이었다.

  "아니요..."

  젊은 병사는 중위를 힐끗 쳐다본 후 계속 사격자세를 유지했다. 병사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중위는 신나게 떠벌였다.

  "오리들이 모인 물가에 살금살금 다가가서, 먼저 물 위에 떠 있는 놈들에게 총을 쏘는거야.정말 맞히기 쉽겠지? 이런걸 미국놈들은 sitting duck이라 하여 아주 맞히기 쉬운 목표를 표현하지. 그러면 총소리에 놀란 다른 오리들이 날아가는데, 뚱뚱한 오리는 바로 물 위로 날 수 없어. 그놈들은 수면 위를 차고 날아야 하거든. 비행속도를 내기 위해서 일직선으로 말야. 이것도 정말 쉬운 표적이지... 대공화기를 피해 저공침투하는 적기를 요격하는 것 보다는 말야."

  주위에서 미사일 발사 준비 중인 병사들이 키들거렸다.

  '오리와 값비싼 전투기를 비교하다니...'

  "아무리 최신예 전투기라도 일단 순항 속도에 도달해야 제 값을 한단 말야! 이륙 중인 전투기는 오리와 다름없이 공격에 취약하다구. 너희들은 전투기를 격추시키는게 아니고 오리를 쏘는거야.  한 마리도 놓치지 마라. 알았나?"

  "예!"

  주변의 병사들이 낮지만 강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이들은 내전을 겪은 고참 병사들이었다. 중위만 해도 휴대형 미사일로 초음속기 3대와 헬기 7대를 격추시킨 베테랑이었다.

  이 때 기지의 미사일발사대에서는 대공미사일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제 2파인 중국제 순항미사일들이 지하 활주로 입구 근처에서 작열하기 시작했다.

  "나온다! 순서대로 사격!"

  이륙하는 전투기 1기에 2기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다른 활주로 주변에 잠복 중인 동료들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첫번째로 이륙한 전투기는 불시에 습격한 미사일에 동체를 맞고 공중폭발하였다.기지 관제탑에서 즉각 휴대형 미사일 공격의 경보를 울리고 후속기들은 대공미사일의 위협에 대비,이륙 후 즉시 회피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륙 후 속도가 아직 붙지 않은 전투기들은 절반이 넘게 안전 고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바다에 추락하였다.

  이를 본 기지 경비대는 대공화기의 절반을 미사일요격에서 지상의 위협 제거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30밀리 대공발칸포가 바위틈을 휩쓸었다. 파편이 사방에 튀고 중국 해병대원  몇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땅에 나뒹굴었다. 이를 본 장 중위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대공포와 미사일 공격조들은 도대체 뭐하는거야!"

  같은 시간,  후아리옌 기지 상공

  대공화기의 지원에 힘입어 딩 쯔린 대위의 전투기가 안전하게 기지를 이륙했다.이륙 후 일단 고도를 올리던 딩 대위는 주변의 광경에 자기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하늘이 온통 순항미사일로 뒤덮였다. 커다란 순항 미사일 사이사이에 작은 대레이더미사일이 끼어 있었고, 이것들이 레이더와 대공미사일 발사기들을 공격했다.바위산의 암벽을 뚫어 만든 활주로 세 개 중 하나가  순항미사일의 폭발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었다.마침 그곳에서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오던 전투기 한 대가 폭풍에 휩쓸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바다에 추락하여 폭발했다.

  그 광경을 보고 넋이 나간 딩 대위는 갑자기 울리는 레이더 유도미사일의 경계음에 놀라 정신을 차렸다.즉시 급상승 후 채프를 뿌리며 급강하를 했다. 미사일이 기체 우측을 지나며 폭발했다.폭발 전에 급선회를 한 덕택에 딩 대위의 기체는 큰 손상이 없었으나 놀라움과 흥분에 자기도 모르게 숨이 막히며 손이 떨렸다. 그로서는 최초의 실전이었다.

  딩 대위는 정신을 차리고 레이더를 봤다. 모니터에는  중국의 섬(殲) -15형 함재기 형태의 공격목표 50여기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순항미사일들이 표시되었다.가장 가까운 적은 벌써 5킬로미터 전방 상공에 있었다.뒤쪽에서는 아군 전투기들이 속속 이륙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활주로가 다시 붕괴되었다. 이제 활주로는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딩 대위는 가장 가까이 있는 적기 두대에 사이드와인더 L형 공대공미사일 한 발씩을 발사했다. 발사 직후 적의 적외선유도 미사일의 경보가 울렸다. 세 군데에서 발사된 모두 네 발의 열추적 미사일이  딩 대위의 기체를 노리고 쇄도해 왔다. 딩 대위는 즉시 급강하하며 플래어를 연속 발사했다. 우측으로 급선회한 후 다시 급상승하며 하늘에 큰 원을 그렸다. 그러자 그는 숨이 막힐 듯한 중력을 느끼며 갑자기 모든 것이 붉게 보였다.  딩 대위는 이 현상이 피가 머리로 몰려 일어나는 레드 아웃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이렇게 심하게 겪은 것은 처음이라 무척 놀라웠다. 다시 같은 방향을 돌며 급강하를 하는데도 아직 두 발의 미사일이 추적해왔다. 급강하하니 다시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갑자기 졸려왔다.

  딩 대위는 어둠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갔다.그의 비행기는 선회가 풀리고 수평비행이 되었다. 미사일이 계속 추적해왔다.

  그는 어둠 속에서 타이베이에 계신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1993년부터 대륙방문이 허용되자 그렇게 자주 들르시던 고향인 푸젠(福建)성을 대륙의 내전 이후 중국과 대만 사이의 갈등으로 못가시게 되자 매일 황혼 무렵 바닷가 서쪽하늘을 보시던 아버지...  아버지의 소원은 이제 풀릴거라 생각하며 딩 대위는 고통을 잊은채 미소지었다.

  공중분해되며 추락하는 딩 대위의 전투기를 보며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소속의 장 준센 소좌는 혀를 찼다.

  "바보같은 녀석, 미사일을 회피하기 위해 급선회할 때는 속도를 낮춰 선회반경을 줄여야지... 그리고 그 정도의 G에도 못견디다니 역시 실전 경험이 없어..."

  고도 8천 피트에 이른 왕 대령은 더 이상의 상승을 지속할 수 없었다. 마하 3.5인 반능동레이더유도방식의 PL-12 미사일이 날아왔다. 이 미사일은 꼬리에 연기를 끌지 않기때문에 육안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웠다.약 300미터의 거리에서 왕대령은 급선회를 하고 추격중인 3기의 적기를 향해 천검(Sky Sword)-III 능동레이더유도 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적기가 회피행동에 들어가자 레이더 유도가 없어진 반능동형유도형의 적 미사일은 목표를 잃고 멀어져갔다. 중국제 PL-12는 속도는 빨랐으나 목표에 명중되기까지 계속 전투기가 목표를 레이더로 비춰야하는 약점이 있었다.

  '이제 내 차례다!'

   이렇게 속으로 외친 왕 대령은 회피행동을 하느라 정신없는 적기들 사이로 전투기를 몰았다.  이미 적기 한 대는 미사일에 맞아 폭발했고, 한 대는 엔진 바로 뒤에서 미사일이 폭발하여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적 조종사가 탈출하는 모습이 보였다. 왕 대령은 겨우 미사일을 피한 다른 적기의 배후를 잡았다.

  "죽음의 6시 방향, 데드 식스다. 받아라!"

  왕 대령은 아군 편대원들과 불의의 기습을 받은 지상요원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큰소리로 외쳤다.  물론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이기도 했다.어쨋든 그는 적기가 회피행동을 취하기 직전에 M-61 A1 20밀리 기관포를 적기가 산산조각이 나도록 퍼부었다. 그러나 뒤에 또 다른 전투기가 따라오고 있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간신히 이륙한 10여대의 대만 전투기들은 중국 전투기의 숫적 우세에 밀려 하나씩 격추당하고 있었다.거리가 너무 가까와 미사일을 발사하지 못하자 접근전(dog fighting)이 되었는데 중국내란에서 목숨을 건 실전 경험이 있는 중국 전투기조종사들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기지의 지원과 아군기의 후속 발진이 없다는 것을 안  절망적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싸운 대만 조종사들은 모두 최후를 맞았다.

  공중전에서 세 대의 적기를 격추시키고 마지막으로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한 대만공군의 왕 대령은  기지 앞 바다쪽에 잠수함이 부상하여 상륙정을 발진시키는 것을 보았다. 세 척의 중국 재래식 잠수함에서 나온 WZ-551 수륙양용장갑차와 상륙주정들이 파도를 헤치며 해안으로 몰려들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후추안급(중국 제식명 025식) 구식 고속어뢰정 수 십 척이 나타나 이들의 상륙을 엄호했다.

  1999. 9. 13  08:20  후아리옌 기지

  후아리옌 공군기지는 이미 불바다가 되었다.적의 미사일 공격은 끝났지만, 조금 전에 중국 전투기가 발사하여 지하기지 안에서 폭발한 정밀 유도미사일이 이륙 대기 중인 전투기와 주변의 폭탄들을 연쇄 폭발시켰다. 이미 기지의 통신 지휘체계는 마비되었다. 기지사령관은 깨어진 관제탑의 창문 너머로 아비규환이 된 활주로를 보며 생각했다.

  '이미 패배한 전투다.  문제는 이 기지를 적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이다. 아군의 지원을 기다리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

  사령관은 자폭스위치를 보았다. 사령관의 눈치를 보던 주변의 관제원들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사령관의 눈길을 피했다. 극도의 패배감이 젊은 관제원 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전투의 승패를 떠나서 관제원들은 자신의 목숨을 생각해야 했다.과연 적의 총에 죽을 것인가, 아니면 자폭할 것인가가 그들이 선택할 전부였다.

  기지 수비대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무선통화를 하더니 기지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적의 지상부대가 기지내에 돌입할 기세입니다."

  기지 사령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수비대장을 보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그걸 막는 건 자네의 임무가 아닌가?' 라는 표정이었다.

  먼저 중국군의 헬기부대가 기지 앞에 도착했다. 전투기와 공격헬기의 공중엄호를 받으며 착륙한 수송헬기에서 중국군해병대가 잽싼 몸짓으로 내려 기지로 뛰어들어갔다.기지수비대는 이미 전멸하여 저항은 거의 없었다. 지휘관을 선두로 해병대원들이 관제실 쪽으로 뛰어올라갔다.기지 사령관이 중국해군 해병대의 난입을 보고 황급히 자폭 스위치를 눌렀으나 불발이었다. 기지에 침투한 적의 첩자에 의해 자폭장치는 이미 제거된 것이다.  기지사령관이 분노로 치를 떨며 권총집으로 손이 갔다. 손이 분노와 공포로 부들부들 떨렸다.관제실로 통하는 통로에서 자동화기의 연속 발사음과 비명이 들렸다.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냈을 때 중국 해병대들이 관제실로 뛰어 들어왔다. 수 십 개의 자동소총 총구가 관제원들의 손발을 얼어붙게 했다.

  기지사령관의 손에 권총이 들려진 것을 보고도 해병대 지휘관은 그에게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기지사령관이 권총을 손에 든 채로 얼떨결에 그에게 거수경례로 답했다.  경례를 마친 중국 해병대 지휘관이 기지사령관에게 짤막하게 선언했다.

  "인민해방군은 1999년 9월 13일 0830시부로 귀 성(省)의 후아리옌 공군기지를 접수합니다."

  1999. 9. 13  08:25  후아리옌 항구 컨테이너 야적장

  후아리옌은 타이완의 동쪽에 위치한 해안 관광도시이다. 옛 유적들과 멋진 풍광,  대만 고산족인 아미족의 춤 등으로 유명한 이 도시는 타이페이와 까오슝 모두에 항공로와 철로로 연결되어 있다.

  북쪽 공군기지쪽에서 폭발음이 연이어 났다. 노무자들은 모두 어쩔줄 몰라했으나 컨테이너들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후아리옌 항구는 약간 한적한 항구이기 때문에 컨테이너 야적장은 3층 높이로 낮게 배열되었는데, 맨 아래층 컨테이너들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모두 60 여개의 컨테이너 여기저기서 군용 사륜구동차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중국 해병대원들이었다.  대공화기와 대전차미사일, 무반동포등을 각기 장착한 사륜구동차들이 몰려나오고, 컨테이너 위층에서는 보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제부터 뜨거운 컨테이너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국군들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이들은 항구를 모두 접수하자 민간 공항과 시내의 관청가를 점령해 들어갔다.  일부는 해안로와 부전로(府前路)를 따라 후아리옌현경찰국(花蓮縣警察局)과 후아리옌현정부(花蓮縣政府)를 점령해 나가고,일부는 역과 교량, 그리고 도로교차점을 점령했다. 후아리옌 교외의 대만 군부대는 아직 진입해오지 않아서 점령은 수월한 편이었다.

  1999. 9. 13  08:40  타이페이, 합동참모본부

  "후아리옌 공군기지 연락 두절!"

  "까오슝 공항 실함! 쪼잉항 실함, 적 해병대와 아군 구원부대 조우!"

  "적 함대 까오슝항 서남방 100 km까지 접근! 제 1함대 전투 개시!"

  "적 대규모 편대 출격, 타이페이로 향함"

  "200여기의 미사일 적색선 접근, 추정침로 타이페이, 도착 10분전!"

  "1함대 구축함 난양, 잠수함 발사 미사일에 피침... 현재 1함대는 함대함, 공대함, 잠수함 발사 미사일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거의 동시에 들어오는 끔직한 정보의 양은 점점 늘고 있었다. 수많은 대형 모니터는 적과 아군의 위치와 이동상황을 표시했다.처리할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사령부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그러니까 공산군은..."   참모총감이 의자에 몸을 깊숙히 파묻힌 채 말했다.  "남쪽 끝과 동쪽 끝에 동시에 상륙한 것이군...  까오슝과 후아리옌이면 우리 군의 가장 중요한 해군과 공군기지 아닌가?"

  "하지만..." 옆의 젊은 참모부장이 말했다. "해군과 공군의 대부분의 전력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격할 수 있습니다."

  참모총감이 참모부장을 힐끗 보곤  화나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친구야! 타이페이와 타이쭝까지 공격받는 판국에  해군과 공군은 어디서 보급 받게 할텐가? 동사군도에서?"

  참모부장이 변명하듯 중국군의 전술을 비난했다. "민간상선을 개조한 항공모함과 상륙함을 쓰다니 적은 너무 비겁했습니다."

  "쯧쯧.." 참모총감이 위치가 시시각각 변화해 가는 대형 모니터의 적과 아군위치를 보며 젊은 부관을 나무랬다.

  "아냐, 훌륭한 전술이야. 우리가 그런 술책에 당하다니...  주의했으면 막을 수 있는건데... 근데 적의 주공은 어디를 목표로한 것일까? 수도인 타이페이를 우선적으로 공격하지 않는게 이상하군..."

  이 순간은 선택을 강요당하는 순간이었다. 방어의 우선순위에 따라서 병력을 이동해야하는 것,  잠시 후 결심한 듯한 참모총감이 연속적으로 명령을 발하기 시작했다.

  "2함대는 1함대를 지원하라!  동사의 항공기는 즉시 전원 출격, 타이페이 상공을 방어하라! 예비역 재소집 현황은?   후아리옌 구원군을 재파견하고 까오슝항과 공항은 제 24 사단의 지원하에 재탈환하도록 명한다!"

  통신사관들이 바빠졌다.  동사군도 주둔군 사령관의 항의가 거셌으나 본토가 침략받는 급박한 와중에 그의 주장이 먹혀들리도 만무했다.

  갑자기 지하벙커 안에 사이렌이 길게 울렸다.  적의 미사일이 적색선을 돌파하여 수도 타이페이와 참모부가  곧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모니터에는 대만의 미사일요격 미사일들이 중국의 지대지 미사일을 향해 날고 있었다.요격미사일이 놓친 지대지미사일은 대만 공군의 최신예 청풍전투기 부대가 요격하기 위해 위해 각 공군기지에서는 속속 전투기들이 이륙했다.청풍(淸風)은 개발당시에 IDF라고 불렸던, 대만이 자체개발한 세계최고로 비싼 전투기이다. F-5 전투기를 개량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대만의 전투기 제조기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그러나 이 전투기들이 모두 타이페이에 대한 미사일공격의 요격임무에 나섰기 때문에 후아리옌 구원군은 어떠한 공중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1999. 9. 13  11:00  후아리옌 북방 12km, 고속도로 주변

  "여기는 물고기 3호, M-48 H 전차 1개 여단 규모가 북진중!"

  고속도로 주변 야산 잡목림에 이틀째 매복중인 중국 해병대 수색대가 임시사령부가 있는 후아리옌 공군기지에 무선보고를 했다. M-48 H 전차는 미육군 전차 M-48 A5를 원형으로 했다고 대만군부가 주장하지만, 더 강력한 전차인 후속 M-60 A3의 차체에 화기관제장치(CFS)를 컴퓨터화하여 포탑만 M-48인, 구식 미육군 M-48전차의 전혀 새로운 파생형이었다.

  후아리옌기지와 후아리옌시에 상륙한 중국 해병대는 합쳐도 1개 연대병력이 채 못되었다. 잠수함과 항모로부터 상륙한 병력은 후아리옌기지의 수비에도 벅찼고,  후아리옌 시내를 점령한 병력은 간신히 대만군의 시내 진입을 저지하는 정도였는데, 후속병력이 도착할 때까지는 사수하라는 명령이었다. 멀리 대만의 동부 간선철도인 북회선(北廻線)을 달리는 열차 자강호(自强號)가 보였다. 급하게 후아리옌을 빠져나간듯 허둥대는 모습이었으나 민간인들이 워낙 많이 탄 듯  속도는 별로 높아보이지 않았다.

  일직선으로 급하게 이동중인 기갑부대는 중국 해병 포병대의 좋은 먹이감이 되었다. 203mm(8인치) 자주포에서 발사된 포탄은 잡목림에 숨은 수색대의 레이저 유도를 받아 하나씩 먹이를 차지했다. 더 이상의 전진을 멈추고 각 전차들은 엄폐물을 찾아 숨었지만  정밀하게 레이저로 유도되는 포탄을 피할 수는 없었다.

  포탄이 날아오는 반대쪽 언덕위에 구 소련산 카모프 공격헬기가 나타났다. 강력한 로켓포와 개틀링포로 미제 M-113 APC와 흡사한 외형의 대만제 보병전투차들을 쓸었다. 간간히 보병전투차에서 쿠엔 우 대전차유도미사일과 스팅어 대공미사일을 날렸지만 그 때마다 헬기들은 언덕 뒤로 숨어버렸다. 대공자주포는 이미 레이저 유도포탄에 맞아 찌그러진채 불타고 있었다.

  중국의 공격헬기들이 숨어서 미사일을 쏘는 언덕 뒤쪽으로 대만 공군의 공격헬기들이 나타났다. 갑자기 뒤에서 쏘아대는 대공미사일에 견딜 수 없어 중국 헬기들이 급상승하자 이번엔 전차여단에서 대공 미사일을 쏘아댔다. 카모프 헬기들은 적외선유도 미사일에 대응하여 배기구 냉각장치를 가동시켰으나 22.5mm 대공포까지 속이지는 못했다. 맷집좋은 공격헬기들이 하나씩 격추당할 때 이번엔 재급유를 마친 중국의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몇대는 도망가는 대만 헬기들을 좇고, 나머지는 전차여단에 돌입했다. 섬-15함재기의 공격기들은 이미 지상공격을 위한 장비를 무장하고 있었다.먼저 대공포와 대공미사일을 갖춘 보병전투차들을 20mm 기관포로 격파한 후 전차는 천천히 한대씩 로켓포로 파괴시켰다.후속하는 기계화보병과 포병중대, 보급부대 등은 집속폭탄을 투하하여 휩쓸었다.대만에서 개발한 XT-69형 155밀리 자주곡사포들이 12.7밀리 대공기총을 쏘아댔으나, 기총의 위치가 오른쪽 뒤라는 것을 아는 중국 파일럿들이 자주곡사포의 전방 좌측을 공격하자 대공기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휴대형대공미사일들이 하늘로 날고 살아남은 장갑차의 대공포가 불을 뿜었지만, 공중지원을 못받은 전차여단은  적 지상군의 얼굴도 못본 채 이동중에 전멸당했다.

  1999. 9. 13  15:30  까오슝 서남방 80 km 해상, 티엔 탄

  제 1함대의 기함인 신예 쾅후아급 프리깃함 티엔 탄의 함교에서는 함대의 전투지휘보다는 사방에서 쇄도해오는 대함 미사일의 회피에 더 바쁜 입장이었다.  1998년에 취역한 이 최신예 군함은 대만의 해군증강계획에 따라 동급 2척이 제작되었다.  함 중앙에 슝펭 2 대함미사일 발사기,  함수에 48기의 SM-2 대공미사일을 연속 발사할 수 있는 다연장 발사관이 갖춰져 있었다.  어찌보면 소형의 이지스(Aegis)함이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재의 상황은 대형 이지스 순양함인 타이컨디로거급의 방어력도 넘기는 대량공격이었다. 함대방위에 이 군함 1척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멀리 서쪽 수평선상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츙샨 피침! 함대함 미사일에 맞았습니다!"

  관측사관이 외쳤다. 츙샨은 프랑스의 라파예트급과 같은 함으로서 프랑스에서 제작하여 까오슝 조선소에서 무기가 탑재된 함이었다. 근거리 대공망을 책임진 3500톤급 프리깃함인데 자매함  6척 외에도 이와 비슷한 설계로 1500톤급의 코르벳함 10척이 만들어졌었다.  이제 어느 함의 차례인지 뻔했다. 적 함대의 주 공격목표는 제 1함대의 기함인 바로 이 배였다.

  "적 위치 판명되었나?"

  함장이 복수심에 일그러진 얼굴로 수상전투 담당사관에게 물었다.

  "아직입니다. 까오슝항쪽의 해상수색 레이더기지가 점령당해서... 아군 정찰기는 또 격추되었습니다.타이페이가 미사일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공중지원도 힘든 상태입니다. E-2C는 타이페이 상공과 동사군도에 있습니다.동사군도의 E-2C는 급거 북상중이지만, 도착하려면 아직 20분은 더 걸릴겁니다."

  '20분이면 우리 함대는 전멸이야.'

  함장이 고민에 쌓였다.갑자기 함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함수의 캐니스터에서 대공미사일 스탠더드 SM-2 미사일이 3연속 발사되었다. 적의 대함미사일 3발이 본함의 침로에 접근하여 요격하기 위한 것이다.

  "할 수 없다. 헬리콥터를 날려!  헬기의 유도에 따라 공격한다!"

  즉시 전자전 장비를 갖춘 시콜스키사의 S-70C 대잠헬리콥터가 상공을 날았다. 이미 초계기는 모두 격추된 상태였다.  대잠수함전에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프리깃함으로서는 위성의 데이터에 따라 수평선 뒤에 숨어서 공격하는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 더 급했다.  또한 적기의 스탠드오프공격은 무시하기로 했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적 미사일에서 대량으로 발사하는 함대함미사일이었다.

  같은 시각, 함재헬기

  티엔 탄의 탑재헬기가 급상승했다.적의 대함 미사일을 피해 선회하는 아군함대의 움직임이 보였다. 벌써 수는 많이 줄어있었다. 연기를 내뿜으며 침몰하는 배는  조금 전에 함대함 미사일에 명중한 대만 프리게이트함 츙샨이었다.

  계속 상승하자 멀리 적 함대의 대략적인 위치가 파악되었다. 기함과 연계된 APS-707 해상감시 레이더가 적 함대의 위치를 모니터에 표시했다. 일단 탑재하고 있던 하픈 2발을 적 함대에 날렸다. 레이더 경보장치가 울리더니 적 공격기의 2차 공격편대가 다가왔다.이들은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고는 다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미사일에 아군이 또 얼마나 희생될지...'

  기장이 생각했다.  기함에 자료를 전송하는 중에 멀리 적함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대공미사일입니다!"

  부기장이 공포에 질려 외쳤다.

  "계속 상승 해!"

  기장이 통신사를 겸한 부기장에게 외쳤다. 대잠공격을 주로하는 함재헬기로서는 대공 미사일에 대응할 어떤 무기도 없었다.  고공에서는 숨을 곳도, 헬기의 속도로서는 피할 수도 없었다.  미사일이 연기를 끌고 날아왔다. 헬기는 계속 상승하면서 적 함대에 대한 더 정확한 데이터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날아오는 미사일에 ECM을 걸었으나 미사일은 정확히 헬기를 향해 날아왔다.

  '초음속 전투기라면 저정도의 미사일은 피할텐데...'

  기장은 해군항공대에 입대하였으나  성적이 나빠 전투기 조종사가 되지 못한 것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었다. 이미 미사일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저 미사일... 전투기라면 피할 수 있는데...'

  같은 시각,  대만 1함대 기함 티엔 탄

  "자료가 입력되었습니다. 발사명령을 내려주십시요! 목표물 20개 포착!"

  그 때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이고 굉음이 울려왔다.  헬기가 산산조각이 난 채 해상으로 추락했다. 동시에 공대함미사일의 경보가 울렸다.함이 크게 기울어지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대공미사일과 대공포가 탄막을 형성하고 곧이어 채프가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발사!"

  프리깃함의 중앙에서 함대함미사일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발사기가 2연장 2개인 슝펭 2 대함미사일 발사기에서 도합 20기의 함대함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동시에 함수에서는 SM-2 대공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했다. Mk-41 VLS(다연장 미사일 발사기)가 쉴 새 없이 미사일을 뿜어냈다. 다른 함에서도 해상의 목표를 향해 대함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판 차오에서 보고입니다.  1-8-7, 심도 50, 거리 2,400에 적 잠수함 발견, 현재 탑재헬기와 함께 공격중이라고 합니다."

  통신사관이 함장에게 보고했다.  아니, 보고라기 보다는 외침에 가까왔다. 그 정도의 심도에서 접근하는 잠수함이라면 미사일탑재 잠수함이 틀림없고, 그 잠수함의 공격목표가 무엇인지는 뻔했기 때문이었다.

  "적 잠수함, 본함에서도 소나에 잡힙니다. 급속접근중!"

  "적 미사일 6기 접근! 대공미사일 발사!"

  대공전 담당사관이 적 잔여 미사일에 대한 요격명령을 내렸다.  함장은 대공전을 그에게 완전히 맡기고 대잠수함전에 신경써야 했다.

  "적 잠수함, 미사일 발사! 총 4기!"

  "판 차오에서 Mk-46 발사! 목표까지 32초!"

  "아, 적 잠수함 반전!  방위 1-8-5, 침로 1-8-0, 30노트! 급속잠항중입니다! 판 차오에서 발사한 어뢰는 목표를 잡을 수 없습니다."

  4100톤급 프리깃함 판 차오에서 발사한 Mk-46 어뢰가 40 노트의 속도로 목표 해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곳에 잠수함이 사라진 뒤였다.판차오에서 유선 유도로 어뢰의 방향을 수정했으나 잠수함에서 발사한 허수아비에 헛되이 충돌했다.

  "914 로양!  적 잠수함의 추정침로에 아스록 발사하라! 1차 수색심도 500! 그건 원자력함이야!"

  함장을 겸한 함대사령관이 주변의 구축함에게 명령했다. 1944년에 미해군으로 취역하여 함령이 다하자  대만에 팔려온 이 알렌 섬너급 구식 구축함이 대잠로켓 2기를 발사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수평선을 넘어 날아오는 대함미사일의 3기의 궤적을 발견했다. 티엔 탄은 단거리 대함 미사일을 발사하며 요격에 나섰지만  초음속의 대함미사일을 막지는 못했다. 미사일 3기가 함에 접근해왔다.

  1999. 9. 13  16:00  대만해군 제 2함대 기함 쳉쿵

  "대잠헬기에서 보고, 3-5-4에 잠수함! 거리 3,500 심도 50, 침로 0-9-2, 속도 29노트!"

  "병기사용 자유! 즉각 공격하라!"

  대잠수함전 담당사관은 피아구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헬기에 공격명령을 내렸다.  2함대는 1함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30노트 이상의 속도로 북진중이었다.수상함의 소나는 이미 기능이 떨어진 채 대잠헬기와 초계기만의 도움으로 중국군 잠수함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속도가 처지는 중국의 재래식 잠수함이라면  함대의 추적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함교에서는 함대사령관이 타이페이의 해군총감과 화상전화 중이었다. 오늘따라 더욱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해군본부의 화상전화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초췌해 보일거라고 생각했다.

  "까오슝과 후아리옌은 점령당했소. 쪼잉의 함대사령부도 점령당했소."

  순간 함교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중국군이 상륙했다는 것은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전쟁이 시작된 것 만으로도 이미 패배는 기정사실이었으나, 이렇게 패배의 순간이 빨리 올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해군으로서는 까오슝 바로 북쪽의 군항 쪼잉이 함락당한 것이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규모의 적이지만 수복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오. 귀 함대는 가능한 빨리 1함대와 합류하기 바라오.각개격파 당하지 않도록 1함대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소."

  "5분 후부터 함대함미사일의 사정거리입니다. 적 잠수함의 방해가 만만치 않습니다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함대 사령관은 전략에서는 졌지만 전술에서는 어느정도 자유중국 해군의 명예를 회복하리라 결심했다. 이제 멋지게 지는 일만 남은 것이다.

  "죠나단에서 보고! 방위 0-2-5,  15마일에서 잠수함 발사미사일 다수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고도 30, 속도 마하 2! 순항미사일입니다!"

  핵공격의 가능성이 있는 순항미사일의  경보를 받은 함대사령관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단 한 발의 핵공격으로 함대를 전멸시킬 수 있는데 다수의 미사일을 발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핵공격이라면 요격을 하더라도 폭풍에 휩쓸려 살아남지 못한다. 사령관은 위성수신 공격이 틀림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공 미사일로는 요격이 곤란한 고도였다.

  "대공화기 사용자유! 채프 발사! 전 함대에 연락하라!"

  채프가 발사되기도 전에 레이더 유도 대공발칸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북동쪽 하늘에 수 십 개의 까만 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들이 점점 커졌다. 고도가 워낙 낮아 대공포의 포탄은 헛되이 바다에 떨어지기 일쑤였고 그럴때마다 바다에 하얀 물보라가 튀었다.가장 북쪽에 위치한 라파예트급 프리깃함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초계기와 헬기가 미사일 발사 예상 해역으로 급파되었으나 이미 늦은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렇다고 계속 미사일공격을 하도록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함에서는 채프와 플레어, 그리고 레이더전파를 발사하는 복합 미끼로켓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각 함은 회피행동을 시작했으나 계속 북쪽으로 항진해야했기 때문에 회피행동에는 제약이 따랐다.  또 한 척의 구식 기어링급 구축함 라이양이 굉음을 울리고 침몰해갔다.

  검은 점이 하얀 점들이 되더니 다가왔다.  CIWS 대공발칸포가 두개를 잡고 하나는 미끼로켓을 좇아 함미를 스쳐갔다. 일단 적 잠수함대의 공격은 끝났다.  이제 반격할 순간이라고 함대사령관은 생각했으나 1함대의 구조가 우선이었다.

  "조나단에서 적 함대 포착, 자료 입력 완료!"

  수상전 사관의 사령관의 명령을 기다렸다.

  "적기 내습! 죠나단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발사!"

  일각의 여유도 없었다. 한 척의 함정이라도 구하는 것이 패배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길이었다.순식간에 함 중앙의 수직발사관에서 슝펭 2 대함미사일이 연속 발사되고,  남은 목표는 뒤따르고 있는 동급의 프리게이트함 유페이에서 발사를 했다.  함에서 발사된 미사일들은 일정 고도에 이르자 하강을 하고 마하 0.85의 속도로 적 함대를 향해 돌진했다.

  같은 시간,  조기경보기 죠나단

  "데이터링크 확인! 함대에서 대함미사일 발사!"

  "적기 10시방향에서 초음속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수호이 27형으로 확인! 30초후 적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갑니다."

  "피닉스 연속 발사!"

  관제관으로서의 임무를 저버린채 임 소령은 흥분해있었다. 세계 최초로 조기경보기가 초음속전투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전자기술의 발달로 조기경보기에 탑재한 각종 전자기기의 부피가 적어지자, 추가연료의 탑재외에도 대만해군은 조기경보기의 자위와 보조공격을 위해 대함대공무기를 탑재시켰다. 피닉스가 비록 구형이지만 사정거리가 길어 유리한 전투가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 비싼 미사일을 구입한 것이다.

  기체에서 모두 세발의 피닉스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적 전투기 1기당 1기씩 목표를 찾아 날아갔다. 죠나단은 크게 선회하여 반대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날았다. 조금이라도 적기로부터 벗어나려는 행동이었다.

  "목표 포착! ... 아! 한대는 회피했습니다."

  전자전사관이 거의 목이 쉰채로 외쳤다.  그 한대도 줄행랑을 놓을것이라고 임 소령은 생각했다.

  "적기 미사일 발사! 사정권이 아닌데..."

  전자전 사관이 의아해했다. 모두 마찬가지였다.  혹시 적기의 조종사가 화가 나서 사정거리 밖에서 미사일을 발사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더를 보는 하사관의 눈이 점점 커졌다.

  "미사일 접근! 거리 3500!!"

  전자전사관이 경악했고 기장은 서둘러 회피행동을 시작했다.  채프와 플레어를 연속발사하고 급강하를 시작했다. 그러나 적의 미사일은 의외로 빨랐다. 그리고 정확했다.

  임 소령은 동기들에 비하면 늦게 결혼했다. 대만의 엘리트 코스는 영어회화와 미국유학이 필수였다.그는 임관 후에 미국유학을 다녀오고 대만 상류층 처녀들과 다양하게 연애를 즐겼다. 그는 여자들의 가슴에 특히 탐닉했다. 털없는 원숭이라는 책의 저자가 여자의 가슴은 인간의 성행위 체위가 정상위로 바뀐 후,여성들이 성적 신호를 강화하기 위해 유방이 엉덩이를 자기모방해서 커졌다는 주장에 크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왜 인간 여자의 젖가슴은 다른 포유류와 달리 크고 엉덩이를 닮았을까, 아기에게 젖을 주기위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크다고 임 소령도 공감했다.

  연애생활이 끝날 무렵, 임 소령은 지성이 없는 섹시한 여자들에게 흥미를 잃고 과거는 있지만 머리가 있는 여성을 선택했다.그러나 그 여자는 너무 냉담했다. 결혼하지 말고 그냥 만나자는 그녀를 설득하는데 임소령은 여러가지 수단을 써야했다. 심지어 임지에 있을 때 바람 피워도 좋다,  내가 싫어지면 이혼에 동의하겠다는 등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결혼했다.  그녀는 성적 자제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성 그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았다.아니면 생활의 일부로서 중요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임 소령은 투덜거렸다.

  전쟁이 발발한 지금,  그녀는 이미 미국행 비행기를 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미국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그녀의 생활에 큰 타격이 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을 바라지 않겠다.'

  조기경보기 조나단은 공중폭발을 일으키고  잔해는 불에 타며 바다로 추락해갔다.

  같은 시간,  제 2함대 기함 쳉쿵

  "적함 5척 격침, 순양함 1척, 구축함 2척, 프리깃함 2척입니다."

  전투함교 여기저기에서 짧은 환호가 들려왔다.

  "대규모 적 편대 스탠드오프 공격진형입니다! 방위 3-2-4 거리 35000, 고도 200!"

  만족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1함대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사일 발사기에서는 대함미사일을 재장전하고 있었다.

  "대공미사일 연속 발사!"

  1함대와 2함대의 차이점은  2함대는 아직 적의 위치에 관한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초계기가 2기나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조기경보기인 조나단은 격추되었지만 적 전투기 2기를 격추시켜 적 전투기가 초계기를 쉽게 공격하지 못하게하는 효과를 낳았다.  지금까지의 손해를 어느 정도 회복하고 이제 공세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함수의 SM-3 대공미사일들이 연속 발사되었다. 다른 함정에서도 적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연기를 끌지않는 이 미사일을 적기들이 회피하지 못할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이제 적기가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격추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정거리에 있어서 전투기 발사 공대함 미사일보다 함에 탑재한 함대공미사일이 더 길다는 것이 전투에서 극명한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적기는 아군 함대에서 대공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모를 것이다!'

  2함대의 1함대 구원으로 전세는 호전되어 갔다.  잘하면 약간 유리한 조건의 휴전을 이끌어 낼 수 있지않나 하는,  일개 함대사령관으로서는 주제넘는 생각까지 했다.

  "우현 어뢰 3기 급속 접근! 거리 500!!! 명중합니다!"

  소나담당자인 젊은 준위가 경악성을 발했다.  중국의 잠수함 몇 척이 출력을 줄이고 이 해역에서 대기했던 것이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발사된 이 어뢰들은 피할 수 없었다.  함장이 급선회를 명하기도 전에 함체에 진동과 연속적인 폭발음이 울렸다.

  "기관실 파손, 침수! 4 곳에 화재 발생!"

  "침몰합니다!"

  '패했다. 육지와 바다, 하늘 모두에서 패했다. 이제 우리 자유중국은 어떻게 될것인가. 중국의 하나의 성(省)으로 전락하는가... '

  함장은 배가 침몰하는 위기에서도 기분이 차분해졌다.어느 정도의 희생이 있어도 통일이 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비록 자신이 통일의 주체측이 아닌 반대편에 섰지만,  주어진 여건하에서는 최선을 다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함대 지휘권은 유페이의 장 대령에게 맡긴다.기함은 퇴함하니 장 대령의 지휘와 판단을 존중하도록!"

  함장은 동급의 프리깃함인 유페이의 함장 장 대령에게  함대지휘권을 맡기고 서둘러 침몰하는 배에서  퇴함을 지휘했다.  부상자부터 퇴함을 하는데 함내에 폭발이 계속되었다. 2함대의 기함 쳉쿵은 함수부터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1999. 9. 13  16:30  타이페이 합동참모본부

  "이 정도면,"

  참모총감이 얼굴을 감싸쥐며 신음하듯 어렵게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참패다. 아마 적은 방어가 집중된 타이중과 타이페이를 피해 대만 곳곳에 상륙할 것이다.이미 해군과 공군은 거의 전멸해서 더 이상의 전투는 학살에 불과하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이제 패전 후의 뒷처리가 문제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개인적인 걱정들이 더 컸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 해협에 2개 함대가 있고 다수의 청풍 전투기가 있습니다.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아직 개전 하루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부관이 강력히 항의하자 총감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는 그들까지 죽일 셈인가?"

  총감이 부관을 노려보자 부관이 고개를 숙였다.총감이 피곤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총통께 화상전화를... 연결하도록... "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더 이상의 저항이 무의미하므로 총감은 총통께 항복을 진언할 것이리라.

  화면에 나온 총통도 이미 내용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총통과 총감은 말을 잊은채 한동안 묵묵히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미안해하는 총감의 얼굴을 보고 안스러운듯 총통이 먼저 말을 꺼냈다.

  "총감, 수고하셨소. 패전 뒷처리는 내가 책임지겠소. 총감도 계속 도와주시오."

  "각하!"

  "부하들의 안위는 총감이 책임을 지시길 바라오.  총감이 무책임하지 않다는건 잘 알고있소."

  총통은 늙은 참모총감이 혹시나 자살할까봐 그게 더 걱정이었다.이제 총통이나 총감이나 일급전범이 되어 수모를 당할 것이다.그렇다고 만약 자기들이 도망가거나 자살하는 경우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전범의 책임까지 떠넘기게 될까 두려웠다.

  "나는 북경과 연락해보겠소. 부디 건강한 얼굴로 다시 만납시다."

  "각하! 죄송합니다.!"

  기어코 늙은 군인은 눈물을 뿌렸다.

  1999. 9. 13  17:30  남사군도 타이핑 섬

  "긴급전문입니다!"

  통신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충격으로 얼굴이 심하게 경련하는 모습이 모두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다.

  "타이페이는 항복했습니다.  총통과 북경과의 화상회담이 진행중입니다. 참모총감의 명령입니다. 1800시를 기하여 무조건 항복...개인적 행동을 일체 삼가라는 명령입니다."

  리 회이 대령이 의자에 앉은채 고개를 숙이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20년간 군문에 종사해온 그로서는 이제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군들에게 총살이야 당하지 않겠지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까지는 포로수용소 생활과  중국군의 신문 등을 당해야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이제 자유로운 공기와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넓은 곳에서 숨을 크게 들이키고 싶어졌다. 왠지 슬프지는 않았다.  부하나 가족도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다만 자유를 잃는게 안타까왔다.

  리 대령은 천천히 지하벙커를 빠져나왔다. 경비병 두명이 수근거리다가 리 대령을 보고는 당황한듯 경례를 붙였다.이미 기지 내에 패전사실이 퍼져있었다. 해병대원,항공요원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 수근대고 있었다. 기지의 기능은 일거에 마비되었다. 핵폭탄이 터져도 이 정도의 피해는 받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패전은 기정사실이었지만 너무 허무하게 지는 게 안타까왔다. 30만의 육군, 각 10만의 해군과 공군은 무엇 때문에 있었는가 한탄스러웠고 50년간 분단되어 민족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게 안타까왔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해가 뉘엇뉘엇 서쪽 수평선으로 천천히 기울어갔다. 밖에 나오니 끈끈한 공기때문에 등에 땀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환한 햇살이 눈부셔 좋다는 생각이었다.

  벙커쪽에서 통신병이 달려왔다.동사군도에 중국해군이 상륙했다는 전언과 함께 전문을 읽는 리 대령이 당혹스러워졌다.이제 대만해군, 공식적으로 자유중국 해군은 없어진 것이었다.

  남사군도 타이핑섬에 주둔하는 모든 부대원은 중화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 해군 해병대로 전입한다. 대만성 해군 대령 리 회이는 인민해방군 해군 상교에 임명하며 기지 사령에 보한다. 현 위치에서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울것.  - 인민해방군 해군 총사령   해군상장  자오 윈

  리 회이 상교는 휘하 부대원의 동요를 막고 지휘권을 장악,계속 기지 및 영해 방어 임무에 임할 것. 모든 명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 남해함대사령부로부터 받는다. 보급은 예정대로 될것임. 금일 1900시에 남해함대 분함대의 타이핑섬 상륙이 있을 예정. 경거망동을 금한다. - 인민해방군 해군 남해함대 사령  해군소장  롱 이런

  해군상교라면 대만해군으로서는 해군대령에 해당하는 계급이었다. 그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해임 또는 강등이 되어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중국군이 상륙하기 전까지의 회유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어쨋든 리 대령, 아니 이제 인민해방군의 해군상교가 된 그는 패전처리에 부심했다. 부대의 병력과 장비, 보급품을 재확인하고 부대의 임무와 상황에 대해 설명할 차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할 일이 있으니 어쨋든 시간이 빨리가서 좋았다.

  어느새 1900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적도에 가까운 이곳은 아직 해가 지지 않고 있었다. 해를 등지고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남해함대의 제 2 분함대가 구축함 탑재 대잠헬기 2대를 선도로 하여 나타났다.이제 소속이 바뀐 구 대만 해군 해병대원들은 활주로에 정렬하여 이들을 맞고 있었다.거대한 러시아제 대잠헬기 카모프(Ka-27)가 활주로에 착륙하자 거기서 중국군 몇 명이 내렸다.  다행히 중국군들은 자동소총을 대만군에게 겨누지는 않았다. 리 상교가 헬기로 뛰어갔다.

  "타이핑 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리 상교가 중국군 군관을 보며 어색하게 경례를 했다.  그 군관의 복장을 보니 의외로 장성급 군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롱 소장님이십니까?"

  "그렇소, 리 상교."

  그 중국군 군관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남해함대 사령인 롱 이런 소장이었다. 롱 소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만나서 반갑소."

  롱 소장이 손을 내밀었다. 리 상교는 롱 소장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리 상교가 롱 소장 일행을 안내하여 구 대만 해병대원들이 도열한 연병장으로 갔다. 군악대가 환영식용 군가를 연주했다.

  롱 소장이 연병장 앞에 걸린 대만의 청천백일기를 보고는  수행한 부관에게 눈짓을 했다.  부관이 상자에서 붉은 깃발을 꺼내 이를 리 상교의 부관에게 건내주었다. 부관이 붉은 기를 보더니 이를 헌병에게 주자 헌병 두 명이 청천백일기를 하강하기 시작했다.  군악대가 마지막 대만 국가를 연주하자 대만 해병대원들이 경례를 하고, 중국 해군의 롱 소장도 경례를 했다. 리 상교로서는 착잡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이어서 대만 해병대원들에 의해 중국의 오성홍기가 게양되었다. 석양에 게양되는 붉은 오성홍기는 그동안 흘린 피보다 더 붉어보였다.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시아

  1995년에 시작된 메콩강 유역 종합개발을 시발로 메콩강이 지나는 중국의 윈난(雲南)성, 미얀마, 타이, 라오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경제개발이 본격화되었다.이 개발사업에는 일본, 미국, 프랑스와 함께 한국도 원조공여국으로 참가하였으며 도로, 교량 등 사회기반시설의 건설과 수자원과 농업개발, 역내 무역증진 등으로  이 지역 경제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중국은 인도양으로 진출할 목적으로 특히 미얀마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특히 윈난성의 쿤밍에서 미얀마의 라쇼를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도로의 건설을 중국이 적극 지원해주었다.  그리고 중국이 점차 경제적으로 부강해지고 미얀마의 정치 ,경제위기가 계속되자 중국의 미얀마에 대한 원조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같은 사회주의권인 두 나라의 관계가 긴밀해져서 미얀마의 정치는 북경의 입김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다.카렌족 등 소수민족의 지속적 항쟁과 민중의 봉기를 막지 못한 미얀마 정부는 결국 몇 차례의 군사정변을 거쳐  중국의 허수아비 정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도양에 접한 미얀마의 영토 각지에 중국군의 해군과 공국기지가 건설되었으나 모두 미얀마의 방위를 위한 것으로 설명되어졌다.그러나 누구의 눈으로 보더라도 이는 중국의 인도양진출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자국의 정치적 혼란과 정치격변, 베트남의 위협에 대응하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주변국중 최강자인 중국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더우기 중국의 경제원조가 잇따르자 두 나라의 국민들이 중국을 종주국으로 인정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이들 두 나라는 중국의 속국의 위치로 떨어졌다.

  제 3세계동맹이 깨진 마당에 인도는 더 이상 국제적 압력을 동원하여 중국에 대한 압력을 가할 수가 없었다. 인도양에 진출한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여 인도도 차츰 군사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으나 워낙 경제력 격차가 커서 중국의 압력에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파키스탄이나 네팔, 방글라데시 등 인도주변국들도 중국의 압력에 차츰 굴복해 들어갔다.이제 중국은 거대한 인도양을 껴안을 수 있었고,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도 커져서 드디어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어깨를 함께하는  초강대국의 하나로 부상했다.

  인도차이나 주변국들을 복속한  중국의 입장에서 눈에 거슬리는 유일한 적은 베트남이었다. 인도네시아는 경제개발에 여념이 없었고 필리핀은 미국의 지원이 끊긴 이후 연속된 경제불황으로  파국이 계속되어 밖으로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베트남과는 80년대 중반 남사군도를 사이에 두고 소규모 해전이 일어나긴 했지만 전력이라고 할 수 없는 베트남 해군은 일격에 전멸을 피하지 못했다.베트남 해군이 절치부심하여 해군을 키워왔으나 막강한 중국의 함대에는 비할 바가 못되었다.

  육군은 다양한 현대전의 실전경험, 그리고 베트남인의 자존심과 투쟁정신으로 중국 지상군보다 강하다고 평가되어왔지만 주변국인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중국에 복속되어 병력의 분산을 초래케되어 약체화되었다.

  베트남 주변국을 복속한 중국은 대만을 점령한 직후, 여세를 몰아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통해 베트남을 침공하고, 바다를 통한 세 곳의 상륙전의 성공으로 단숨에 베트남 전역을 휩쓸었다.  10여년간의 베트남 경제개혁 정책인 도이모이의 성과가 잿더미가 될 것을 우려한  베트남 정부는 중국군에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일부 민족주의자들이 미군에 대항했던 것처럼 베트콩을 조직하여 싸웠으나  민중들의 호응이 뒷받침되지 못한 전쟁은 길게 끌 수가 없었다.베트남의 독립과 베트콩들의 생명을 보장한다는 중국의 선전에 무장독립단체들이 하나씩 투항했다.

  베트남의 패망을 본 남사군도 주변국들은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었었다.한편으로는 중국과의 외교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싱가포르는 신속배치군을 2배로 늘리고 무기체계도 대폭 현대화시켰다. 말레이시아는 미국에 F-18 D 전투기 20 여기를 발주하였고 인도네시아는 영국에 소형 항공모함를 주문했다. 동남아 모든 국가들은 이제 중국의 위협에 밤잠을 못이루게 되었다.

  필리핀은 그간의 경제적 피폐로 말미암아  남사군도의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해군력이 없었다.  필리핀은 마지막까지 남사군도의 유전을 지키려 하였으나 결국 중국의 무력시위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남중국해는 드디어 완전히 중국의 호수가 되었다.

  중국은 내전수습과 경제발전, 그리고 대만 점령으로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음은 물론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시아를 제패하여 세계제국으로 나가는 길을 열었다. 중국의 침략주의를 경계하여 일본도 재무장의 길을 걷게되어 수많은 함정과 항공기를 제작하는 등,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1999. 11. 16  13:30  대전, 정보사단 종합상황실

  "현재 5개의 장갑사단이 안둥에 집결했습니다. 주력은 제 13합성집단군의 3개 장갑사단이지만, 심양군구 내 다른 집단군의 장갑사단과 오토바이사단, 포병사단, 2개 고사포여단 등이 집결했습니다.특기할만한 점은 심양군구, 즉 동북 3성의 나머지 병력이 모두 서진하고 있으며 북경 군구의 병력은 동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신이 전하는 바가 맞다면, 이는 전형적인 내전직전의 병력이동 양상입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침입 기도는 절대 아니며 중국에 새로운 내전이 일어났다고 보아야합니다.항공전력과 해상전력은 아직까지 별 이동이 없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공군과 해군의 관망 속에 각 군구간의 알력, 특히 심양군구의 반란으로 보여집니다."

  종합상황실의 정보분석 반장인 나 영찬 대령이 대형 스크린의 만주지역 지도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그러나 그도 약간의 의심을 한 상태,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국제정보를 담당하는 제 2 정보여단의 김 호근 준장이 반박했다.

  "하지만 나 대령, 중국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리고 선전포고도 없이 동남아 각국을 정복했소. 우리나라라고 그렇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소.나는 그들이 우리나라를 치기 위한 군사행동이라고 봐요. 도대체 왜 다른 곳도 아닌 신의주 바로 건너편의 안둥(安東)에 대규모 기갑부대가 집결했겠소? 그리고 이번 새로운 내전의 이유가 뭡니까? 군구간의 압력이란 늘 있어왔으나,  이것이 저번 내전에서도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잖소?"

  "심양군구의 고 휘 중장은 아시다시피 기동전의 대가입니다. 심양 서쪽에 3개 사단이 있지만 주력은 안둥의 5개 사단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와의 국경인 안둥에 주둔시키면 중앙군의 공습이 용이하지 않아 주력을 지킬 수 있다고 본 것이 아닐까요? 작년의 내전에서 고 중장은 적의 주력에게 소모전을 강요하다가,  마지막까지 아껴둔 기갑부대로 화려한 적진 중앙돌파를 성공시켰습니다.  내전의 이유는 고 중장과 일부 정치 국원과의 갈등,  또는 고 중장의 정치적 야심이라고 한 미국정보기관의 평가가 옳을 듯합니다.  지난 내전이 중국 각 지역의 부의 편재에 원인이 있었다면, 이번 내전은 권력의 재분배에 대한 일부의 불만이라고 봅니다."

  나 대령이 자신감 있게 발언했다. 나 대령 자신도 바로 전 보직이 전차연대 연대장 아닌가? 누구보다도 고 중장의 전략을 많이 안다고 자신하는 나 대령이었다.

  고 중장은 지난해의 중국내전에서 난징군구의 장갑집단군을 지휘하여 단 10일만에 베이징을 점령한, 중국 내전의 최고 영웅이었다. 신정부의 신임으로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심양군구의 사령이 된 것이 작년 말이었다.심양군구는 헤이룽장(黑龍江)성, 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의 만주지역 3개 성을 관할 하는 1급 군구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 중국이 우리를 침공한다면? 그리고 중국의 해군과 공군은 비상시에는 1급 군구 소속이란 말이오.해군과 공군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오. 정말로 내전이 일어났다면 이들이 관망만 할 이유가 없소."

  김 준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시선을 천천히 돌리며 말을 이었다. 누가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민족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문제일수도 있었다.

  "우리는 150 만의 대군과 현대적 무기가 있소. 중국은 대만과 동남아 몇 나라를 제압했지만 결코 우리를 넘보지는 못할거요."

  조용히 듣기만 하던 종합상황실장 최 용묵 소장이 나섰다. 최 소장은 병력 보다는 현대화된 장비와 새로운 전략이 전장을 주도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군은 병력이 700만이 넘습니다. 준군사력인 인민 무장경찰이나 각 지방의 민병대를 뺀 숫자입니다. 이들은 내전을 겪으며 실전을 쌓았고 동남아 각국과의 전쟁에서 확인된 바로도 무기체계의 비약적인 질적향상이 있었습니다."

  김 준장이 단말기를 조작하여 중국과 대만의 해상전에 관한 데이터를 스크린에 올렸다.

  "대만과의 전쟁을 보십시요! 중국해군의 무기체계는 완전히 현대화되었을뿐만 아니라 전략,전술체계도 다른 군사강국에 못지 않습니다."

  "중국은 내전을 겪었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곤 아직 재래식무기의 병력위주 편성이요. 게다가 중국의 경제력으로는 우리를 공격할 수 없어요. 물론 해,공군의 전력이 상당히 증강된 것은 사실이지만 육군의 경우 아직 장비가 낙후되었고..."

  육군대학 교수 경력이 있는 최 소장이 긴 강의를 시작하려는 무렵 조기경보연대에서 화상통신으로 연락이 왔다. 현재 북경에서 심양에 걸친 선의 상공에는 항공기들의 격렬한 움직임이 있으며, 아마도 두 군구 전투기들 사이에서 공중전이 발발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이었다. 곧이어 북경주재대사관 무관의 연락이 왔는데 북경 시내 요소요소에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백했다.중국에서 새로운 내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써 모든 것이 밝혀졌소. 중국은 당분간 우리나라를 침공할 수는 없게된 것이오. 비상경계 해제를 건의하겠소."

  이 재영 정보사단장이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개성의 통일참모본부에 보고하러 떠났다. 정보사단 참모회의는 싱겁게 막을 내리고 구성원들은 허탈하게 각 부서로 돌아갔다.

  '이로써 긴 대기는 끝났다. 이제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승용차의 푹신한 시트에 몸을 묻고는 이 중장의 마음은 벌써 집에 가 있었다.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있는 여군비서의 다리가 참 예뻐보였다. 여군이 이 중장을 돌아보더니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1999. 11. 16  19:00  평안북도 선천, 차 중령의 사택

  오랜만에 비상이 풀려 차 영진 중령은 집에 일찍 돌아와서 쉬고 있었다.집사람은 차 중령이 일찍 귀가한 것이 신기한 모양으로 이것저것 따져물었다.

  "중국에 내란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면서요?  심양군구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혹시 위장작전 아녀요? 우리나라의 경계를 누그러뜨리려는 중국의 작전일지도..."

  "지금 북경에선 공습경보가 내리고 시내 여기저기 스커드 E형 미사일이떨어지고 있대요. 실제상황이 틀림없을겁니다."

  차 중령도 약간 의심을 했지만 설마 수도에 미사일을 폭파시키면서까지 중국이 위장작전을 쓰지는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생각이 달랐다.

  "중국이 개발한 스커드 E형 미사일은 명중율이 굉장히 높아요. 한 지역의 특정 건물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다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북경 중심부의 중요건물이 피격되지는 않았어요. 물론 중남해의 공산당 건물에 명중은 했지만 주요인물들의 생사는 불확실해요. 미리 피할 수도 있고요."

  차 중령의 아내는 대학때부터 각종 시뮬레이션 게임과 머드게임을 많이 했기때문에 군사적 지식이 풍부했다.두 사람이 만난 것도 그래픽 온라인 게임인 '에어 워 2000'에서 였다.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하여 몇 사람씩 편을 짜서 공중전을 하는 게임이다. 차 중령이 조종술과 근접공중전의 대가라면,  그의 아내는 적의 무기체계를 파악하여 작전을 세우는 작전통이었다.  그들의 팀은 국내는 물론 통신게임 인구가 많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유명했다. 매일같이 그들의 인터넷 메일함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도전장이 쌓였다. 그 중에는 현직 공군 조종사들의 팀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팀 그린 윙스(GREEN WINGS)는 무적이었다.그들 부부는 2년 전에 팀원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나 차차 사랑이 익어갔다. 아니,  게임 중에서 벌써 사랑이 싹터 그들의 만남은 단지 사랑의 불을 댕겼을 뿐이었다.

  1년 전에 결혼하여 아직 아이는 없었고 그의 부인은 결혼후에도 컴퓨터 통신게임을 즐겼다. 대대장으로서 임지를 북한 지역으로 옮긴 차 중령은 바쁜 와중에도 자주 같이 게임을 하곤 했다.오늘같이 일찍 퇴근을 한 날은 당연히 부부가 같이 통신 게임을 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게임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녀의 남편은 군인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무기체계가 중국내전과 동남아 정복을 통하면서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오. 그들의 병력은 내전후에도 700만이 넘어요.그러나 우리나라는 동남아의 약소국들과 달라요.지난 몇 십 년간의 휴전을 통하여 강도 높은 훈련을 쌓은 강군이란 말이오. 게다가 요즘의 통일과정에서 군사력은 배증했으니 중국이라한들 쉽게 침공할 수는 없을 것이오."

  차 중령은 통일참모본부에서 시달된 정보분석집을 외우듯 말을 했다. 사실 그로서도 자신이 없었다. 그가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서 자주 만났던 심양의 조선족들과는 보름이 넘게 연락을 못하고 있었다.중국측에서 통신망이 차단된 것이다.기술적 요인이 아닌, 정치적 군사적 의도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이 중령도 의심하고 있었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 어떤 이익이 있죠?"

  그의 젊은 아내가 물었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 중령으로서도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영토적 야심, 한반도라는 땅의 넓이보다는 그동안 공유했던 서해를 독점하고 나아가서 러시아나 일본과의 대결에서 매우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어요. 최소한 일본은 중국의 눈치를 보게될 것이오. 일본이 중국에 우호적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으면, 세계 역학구도에서 미국의 입지가 많이 약화되고 러시아가 아직도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

  차 중령은 대답하면서 깜짝 놀라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되는 길은,그리고 세계 사회주의를 이루는 제 일보는 우리나라를 점령하는 거여요. 중국의 지방별 부의 편재로 인한 내전을 종식하고, 남사군도와 동남아를 점령하여 정치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다진 지금 더욱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이는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열강의 식민지 다툼이나,  2차대전의 원인으로 볼 수 있는 경제불황 타개책과 거의 같아요.  중국은 경제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 모두에서 우리나라를 필요로 해요.일본의 투자유치를 위해서도 말여요."

  차 중령의 아내는 역시 객관적이고 냉정했다.그린 윙스의 작전참모인 그녀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대학원까지 마쳤다.그녀의 주요관심사는 국제정치와 전쟁 분야였다.

  "그렇다고 해도 설마 우리나라를...유사이래 중국의 침략은 잦았으나 아직 한번도 우리나라를 점령한 적은 없어요. 우리는 싸웠고 또한 항상 이겼소."

  "그건 국력을 기울여 우리나라를 점령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금은 그 이유가 있어요.  19세기 까지는 조공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자본주의 경제를 위장한 중국으로서는 더욱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해요. 일본의 경제투자는 중국으로서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중국이 침공한 나라는 모두 일본의 자본투자가 많은 지역이었어요. 그러나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부강은 곧 동북아의 안정을 해친다는 입장에서 중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자제해왔어요.  지금 일본이 가지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종주권이 중국에 의해 위태해진다는 뜻이죠.  중국이 일본까지 침공하지는 않겠지만 일본에 대한 압력을 위해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생각할 수는 있지 않겠어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생각이었다. 차 중령으로서는 아내의 단순한 걱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국제정치에 대한 그의 아내의 생각을 존중해왔었다. 그러나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에 수긍을 하고는 있지만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공한다니...

  그의 아내가 저녁준비를 하는 동안 차 중령은 티비를 켜서 뉴스 전문 채널을 선택했다. 뉴스에서는 중국의 내전에 대한 보도 일색이었다. 전화를 들어 육군사관학교의 2기 후배인 이 현우 소령과 통화했다.

  11. 16  19:30  대전, 정보사단 통신정보대대

  "예, 선배님. 맞습니다...  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선배님."

  국내외 뉴스와 정보통신을 통해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통신정보대대의 야간당직인 이 현우 소령은 육사 선배인 차 중령과의 통화를 끊고 고민에 빠졌다. 차 선배는 정말 훌륭한 정보참모를 두었다는 부러움도 생겼다. 차 선배를 통해 형수님의 의견을 듣고보니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중국내전에 대한 국내외 TV 뉴스를 보면 미사일 공격을 당한 북경시내 뿐만 아니라 병력 이동상황과 중앙군의 전과까지도 자세히 보도되었다.중국의 지난번 내전과 동남아전쟁 때는 볼 수 었었던 생생한 전투장면들도 화면에 보였다.

  사무실에서는 세계 주요뉴스채널마다 담당자가 붙어서 녹화하며 중요 정보를 체크하고 있었다. 수 십 개의 영상 대부분이 중국의 내전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의 주요 뉴스채널을 담당한 TV뉴스소대 제 3반장인 김 선영 중위가 갑자기 긴장했다.  김 중위가 긴장했을 때의 버릇인 입술 깨물기가 시작되었다. 차 중령이 그녀의 섹시한 입술을 보며 침을 삼켰다.

  "저 화면은 가짜입니다."

  CNN 뉴스를 보던 김 중위가 단언했다.  이 소령도 중국측이 자기들의 내전에 대해 너무 많은 것들을 외국에 보여주는 것에 의심을 품고 있었던 차에 김 중위가 녹화한 테이프를 주자, 이 소령이 테이프를 다시 돌려보았다.  장면은 정부군과 심양군의 전투장면인데 화면설명에는 정부군의 종군기자가 찍어 CNN에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음... 좋소. 김 중위, 내가 먼저 지적해 보겠소."

  한번 본 다음 테이프를 다시 재생시키며 이 소령이 말했다.화면은 중앙군이 심양군구 관할의 한 소도시를 점령하는 과정이었다.  도로에 중앙군의 전차와 보병들이 산개하여 전진하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 불타는 전차와 보병장갑차, 시체들...  그 무엇을 보아도 이상할게 없는 화면이었다.

  "파편에 의해 죽거나 불에 탄 시체가 하나도 없소. 저 장갑차의 해치에 쓰러져 있는 시체도 총상이오.  파괴된 전차 옆에 쓰러져 있는 것도 폭발 파편이나 폭풍에 의해 죽은 시체가 아니오. 나는 법의학자는 아니지만 의심을 하며 보니 모든게 의심되는군요.  저기 건물에서 저격하고 있는 심양군의 얼굴이 너무 깨끗하군요.  시가전 상황에서는 저런 얼굴이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저 포로들의 얼굴에는 분노감이 나타나 있군요. 이번 내전의 이유는 잘 모르지만 중앙군과 심양군 사병들이 서로 적개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봐요.  전투중에 가혹행위가 있더라도 공포나 수치심은 나타날 망정 분노는 표출되지 않아요. 아마 분노하는 표정을 지으라고 교육을 받은 모양이오. 전쟁심리학을 전공한 내가 본 건 이 정도요. 김 중위는?"

  김 선영 중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소령님은 역시 군인이시군요."

  "네? 무슨 말이오?" 이 소령은 당황했다. 칭찬인지 비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저는 그렇게 자세히는 못봤어요. 소령님 말씀을 들으니 정말 그렇군요. 맞아요. 저 화면은 연출된거여요."

  "그런데 김 중위는 저 화면이 가짜인줄 어떻게 알았소?"

  "화면이 흔들리지 않았어요. 정지해 있는 중계차나 레일 위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며 찍은거죠. 전투 종료 후라면 이해가 가지만 아직 전투가 끝난건 아니잖아요."

  여군인 김 중위는 너무도 간단히 지적했다. 차 소령이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중요한 사실이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상황에서 아무리 용감한 종군기자라고 해도 자신을 은폐하지 않고 촬영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왜 중앙군이 저 화면을 외신에 제공했냐는 거죠."

  이 소령은 선채로 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출구로 뛰어나가면서 김 대위에게 외쳤다.

  "나는 상황실에 이 테이프를 보고하겠소. 김 중위는 무기 전문가들을 소집하여 무엇이 정말 잘못되었는지 상세히 분석하시오."

  1999. 11. 16  20:00  정보사단 종합상황실

  사단 상황실 정보분석반장인 나 영찬 대령은 고민했다.  내전이 진행되는 중국 만주지역의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사단의 각 부서에서 수집되는 정보들은 한결같이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더불어 중국측이 우리나라의 정보수집활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의심이 가는 내용들이었다. 야간 당직을 맡은 장교들이 고민에 쌓인 모습들이었다.

  먼저 만주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전파방해 문제였다. 전쟁지역에 대한 광대역 전파방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범위와 정도가 너무 심해 그 지역에 대한 전파정보는 거의 수집이 힘들었다.  또한 만주지역에 파견된 지사원(첩보활동 인원)들의 보고가 전무했다. 무선 보고가 끊겼을뿐 아니라 인적 왕래가 차단되어 도저히 정보수집이 안되었다.  정찰기에 의한 정보수집도 중국의 전파방해에 의해 차단되었고 심지어 한만 국경지역의 유선전화마저 불통이었다. 광대역 전파방해가 유선통신까지 방해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각 부서의 보고는  또한 중국 중앙군이 외신에 제공한 영상이 가짜라는 사실을 밝혔고,  중앙군과 심양군이 내전을 벌일만한 특단의 사유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해왔다.  심양군구 사령인 고 중장의 인물 분석을 담당한 심리과에서도 고 중장이 반란을 일으킨데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했다.

  미국의 정찰위성을 통해 받는 정보는 갑자기 미국측의 사정이라며 질과 양에서 대폭적인 감축이 있었다. 중국에 파견된 한국 종합상사 직원들의 안부를 알지 못해 소재확인을 요구하는 민원도 쇄도했다.

  갑자기 만주지역에 대한 정보는 블랙박스 안에 담겨버린 상황이었다. 보이는 것은 모두 의심이 갔다. 그것도 단지 중국이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그러나 비상을 해제한 몇 시간만에 다시 비상을 걸어 부산을 떨 필요는 없다고 나 대령은 생각했다.

  "아직 시간은 있다고 봅니다. 내일 아침에 각 단위부대장들이 출근한 후에 회의를 개최하겠습니다. 각 부서 당직께서는 재검토, 분석하여 일단 단위부대장들에게 보고해 주십시요."

  갑자기 이 소령이 책상을 치며 소리쳤다.

  "만약! 만약에 중국에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군사행동의 목표는 어딘지 자명하지 않습니까?"

  "이봐요,이 소령! 중국은 지난 내전중에도 내전 당사자 양쪽 모두 우리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했소.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공할 뚜렷한 이유가 없단 말이오."

  "중국의 모험적인 정권이 지금까지 몇 나라를 침공했습니까?  침공하기 전에 뚜렷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리고 동남아 어느 나라가 효율적으로 자기 나라를 방위했습니까? 중국은 군사적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10년 전의 재래식 군대가 아닌 현대적인 군대란 말입니다. 그럼 도대체 왜 만주지역에 수십개 사단이 이동하고 있는지 설명을 해 주십시요. 과연 내전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훈련일수도 있지 않소? 중국의 가장 큰 적은 아직까지 러시아입니다. 러시아가 바로 북쪽에 위협으로 남아있는데  어찌 우리나라를 칠 수 있단 말이오?"

  "러시아는 경제 실패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았지만 중국은 내전 상황에서도 오히려 경제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게다가 발전 과정에서의 여러 모순들을 점차적으로 개선했고,  지금은 더 많은 욕구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국제정치적 희생양으로서 더할 나위없는 좋은 상대란 말입니다."

  "좋소. 그것을 당신의 부대장에게 그렇게 보고하시요. 단, 내일 아침에 말이오."

  "중국이 당장 침공해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평안북도 지역만이라도 비상경계를 시작해야합니다. 전차 5개 사단이 압록강 바로 너머에 있는 상황입니다.만약 오늘 밤중으로 침공해 온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아까 저녁때만 해도 차 소령의 부대도 비상경계해제에 동의했소. 그런데 몇시간만에 번복하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이오? 더 이상 논란은 필요 없소.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내일 아침에 토의합시다. 이상으로 해산입니다."

  이 소령은 나 대령의 행동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소령으로서도 오늘밤에야 설마 하는 생각으로 다시 자기 부대로 복귀했다.

  1999. 11.16  23:00  신의주 서쪽 용암포, 압록강 하구 해양감시소

  압록강이 바다와 만나며 이룬 삼각주인  용암포 서쪽 신우평(信遇平) 너른 들의 북쪽에 거대한 대형 유조선 세 척이 해상감시 레이더에 잡혔다.  만조 때 대형 화물선이 입항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유조선이 이런 얕은 바다에 들어온 경우는 처음이라 해양감시소의 인민군들은 그 배들을 신기한듯 쳐다 보고 있었다.  북한의 신우평과 중국 단둥(丹東) 공업단지 사이의 밤바다 위에 떠있는 세 척의 유조선은 마치 커다란 괴물같았다.

  등대와 비슷한 모양을 한 해양감시소의 꼭대기 망루에 야간당직인 인민군의 이 태영 중위가 5km 서쪽의 유조선들을 망원경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이 해상은 수심이 낮아 아무리 만조라고 해도 유조선처럼 흘수가 깊은 배는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대형화물선의 입항도 압록강 하구의 준설작업이 이뤄진 1998년 이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만조 평균수심이 1 미터밖에 되지 않고 중국측에서 준설한 물길도 깊어 봐야 6미터 남짓한 이곳 갯벌에, 흘수가 10 미터가 넘는 유조선의 입항은 상상도 못했었다.

  준설작업은 중국의 자본으로 이뤄졌고  남북한은 전혀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는 단둥항의 이익만을 위한 준설이었기 때문이다.  신의주 북쪽의 압록강 너머 단둥시는 공업단지가 세워진 90년대 이래 10년간  급성장을 한 신흥공업도시이며 작년에 항구를 대대적으로 확장했었다. 북한이 영유권을 갖고 있는 삼각주인 황초평(黃草平)과 중국 사이의 국경으로 쓰는 압록강 지류의 물길이 좁아 화물선이 단둥시에 직접 하역을 못하자 단둥시에서는 황초평과 용암포 사이인 압록강 본류의 준설을 제안했으나 신의주시에서 이를 거부를 했었다. 쌍둥이 국경도시이긴 하지만 단둥시에서 나오는 공해물질이 너무 과다해 신의주시는 북한 최고의 공해도시라는 악명을 듣고있기 때문이었다.

  이 중위가 그 배들은 다시 보니 이상하게도 모두 항해등을 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상황을 상부에 보고할까 말까 망설이는 차에 유조선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한 척은 신우평에 남아있었으나 천천히 선회했고, 두 척이 용암포로 다가왔다. 유조선들이 움직이자 유조선들에 가려있던 대형화물선 여러 척이 보였다.화물선들도 역시 항해등을 켜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국제항해조례에 정면으로 위배된 행위였다.

  "유조선이 왜 이쪽으로 오는 기야? 길고 저 많은 배들이 항해등을 켜지 않다니... 이 낮은 곳에 유조선이 어케... 도대체...?  최 전사, 상부에 즉시 보고하라우야!"

  불안해진 이 중위가 명령을 내리고 최 전사가 복창하기도 전에  해양 감시소가 암흑 속에 빠졌다. 갑작스러운 정전이었다.  남북한의 전력체계가 통합된 이후 한번도 있지 않은 정전이 일어난 것이다.

  "유선도 불통입네다. 뭔가 이상..."

  최 전사가 어둠 속에서 말을 끝내기도 전에 비명이 울렸다. 직감적으로 적의 침입을 알아챈 이 중위가 권총을 빼들었으나 이미 늦었다.  그의 얼굴이 통증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인민군 전사답게 가슴의 고통보다는 의문과 상부에 보고하지 못한 자책감이 더 컸다.

  '도대체 왜... 누가? 설마 중국이?'

  11. 16  23:05  신의주, 압록강 철교 남단 검문소

  신의주 철교에 근무하는 허 전사는 밀려오는 졸음을 참을 수 없어 입이 찢어져라 크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이곳도 국경인지라 밤 9시 이후에는 통행이 통제되었다.가끔 단둥시로부터의 귀가가 늦은 북한 출신의 보따리 장수들이 밤 9시 약간 넘어 승용차로 도착해서는 통행세로 양주나 음식을 주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런 늦은 시간엔 그런 재미도 없었다.

  검문소 통제소 안에 있는 중사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안쪽 내무반에서는 소대장을 포함한 인민군들이 남조선 TV방송을 보고 있는 모양인지 시끌벅적했다. 같이 근무하는 하사는 차단기 뒤쪽에 앉아 달을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허 전사는 모든 것이 항상 같은 인민군 생활이 지겨워졌다.

  입대하지 않은 고향 친구들은 남조선의  서울에 가서 한몫 단단히 잡은 모양이었다. 중장비 기술자인 친구 조 남철은 서울에 작지만 아파트도 가지고 있었다. 지난 휴가 때 서울 구경도 할 겸 그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서울의 밤은 정말 놀랄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고층빌딩, 자동차, 인파... 그곳에 사는 친구가 정말 부러웠다.

  친구에게 듣기로는 남조선에서는 농부가 천대받는다고 했었다.  공화국에서도 말로는 농부가 우대받지만 사실 골시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친구의 말로는 시베리아나 만주에 있는 농장이나 건설현장의 인부로 가면 몫돈을 쥔다는데 거길 가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제대하려면 아직 2년이나 남았다. 통일이 되면서 군 병력을 감축한다는데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협동농장의 선희가 생각나 종종 같이 부르던 노래를 작은소리로 불렀다.

  뻐꾹새가 노래하는 곳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로동으로 행복을 열고

  로동으로 꽃이 피는 곳...

  철교 북쪽에서 헤드라이트를 킨 차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담배 피우고 있는 하사를 부른 다음 총을 어깨에 맨 채 그 트럭이 오길 기다렸다. 차단기 앞에 트럭이 서자 허 전사가 트럭 운전석 쪽으로 갔다.  운전사가 양주나 다른 물건을 주면 통과시킬 생각이었는데 운전사가 알겠다는 듯이 웃더니 조수석 밑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뭔가 잔뜩 기대하던 허 전사와 하사가 마지막으로 본것은 섬뜩한 섬광이었다.

  트럭 뒤쪽에서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하고 총을 든 괴한들이 뛰어내렸다.스털링 L34A1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그들이 통제소 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졸다가 반쯤 깬 중사가 개슴츠레한 눈으로 무슨 일인가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기관단총을 연사하여 중사가 계속 잠들도록 했다.안쪽에서 TV소리가 들렸다. 괴한들이 문을 서서히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인민군 몇 명은 자고 있고 나머지는 TV를 보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천천히 내무반으로 걸어들어가 한명씩 기관단총을 쏘았다. 소음기관단총의 총소리는 TV소리에 묻혀 밖에까지 들리지 않았다. TV에서는 쇼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세 명의 젊은 여자들이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정신없이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지휘관인듯한 남자가 화면을 흘끗 보더니 피식 웃었다. 전차의 우르렁거리는 소리가 내무반 안쪽까지 들려왔다.

  11. 16  23:10  용암포 앞바다

  감시자가 사라진 해상에 대형 유조선들과 화물선들이 해상 발레를 시작했다. 유조선 두 척이 일렬로 늘어서자 신우평과 용암포를 잇는 기다란 다리가 되었다.유조선들은 선수와 선미에 대형 다리를 내려 다른 배와 연결했다. 용암포의 항만경비대와 해관은 이미 중국의 해병수색대에 의해 제압된 상태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해상쇼를 이어나갔다. 일전에 중국측이 바다와 단둥을 연결하는 대규모 준설작업을 할 때  중국이 북한 몰래 용암포 앞 압록강 하구의 준설까지 했었다.  이 작업에는 수십척의 소형잠수함이 동원됐었다. 조그마한 포구인 용암포에 닿은 선두의 유조선에서 선수(船首)가 열렸다.

  대형유조선의 선수가 양쪽으로 갈라지자 전차와 APC들이 굉음을 울리며 내려왔고, 이들은 내리자마자 각자 맡은 위치로 달려나갔다. 보병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군은 대만상륙전에서 너무 소수가 상륙하여 작전에 어려움을 겪자 한반도 상륙전에서는 대규모 부대를 한번에 상륙시키고,또한 병력증강을 계속하기 위해 유조선과 화물선을 다리로 쓴 것이다.  충분한 병력이 항구와 그 주변에 배치된 것을 확인하자 중국측은 즉시 대기중이던 6척의 3천톤급 전차양륙함을 항구 주변의 갯벌에 접안시켰다.  각 전차양륙함으로부터 수십대의 전차들이 상륙하기 시작했다.

  중국군의 상륙과정을 숨어서 본 부두노동자 한 사람이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이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지 고민했다. 항만경비대는 이미 적에게 당했을거라고 생각했다.그렇지 않다면 중국군이 이렇듯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상륙하지는 못할것이리라.

  '최선의 방법은...'

  노무자는 호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그가 숨은 창고는 보세품이 가득 쌓인 창고라서 불이 잘 붙을 것이며, 시내에서도 이 불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될까? 불에 타 죽을까? 아니면 중국군에게 사살될까?'

  불을 내지만 않으면 자신은 민간인이므로 중국군에게 잡혀도 별 탈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떤 기관도 중국군의 신의주 상륙을 아직 알지 못할것이며 빨리 알릴수록 우리나라를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 불이 잘 붙을 만한 종이들을 모았다.

  "이런 젠장, 누가 불을? 그래서 샅샅이 수색하라고 명령했잖아!"

   리 중장이 용암포에 정박한 유조선의 선교에서  중국 해병대 사단장에게 무선으로 고래고래 소리쳤다.항만 보세창고의 불빛으로 불을 켜지 않은 선교 안까지 환했다.불길은 바닷바람을 타고 옆 창고까지 옮겨 붙었다.

  리 중장은  대만상륙전에서 위장 원자력 컨테이너선인 항모로 후아리옌을 점령한 중국해군 북해함대 사령관이었다.용암포 점령전 선봉을 맡은 해병대들의 실수에 위신이 깎인 듯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용암포 점령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해군의 제지가 없었으므로 육군도 아직은 모를 것이다. 신의주도 이미 우리 중국군의 손에 들어왔다. 한국군 부대가 우리를 막으려고 오는 길은 이미 우리의 수중에 있다. 나는 또하나의 상륙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군인으로서 침략군의 선봉이 된 것은 부끄럽지만 국가의 명령이다. 이제 주도권을 육군에 넘겨주면 된다.'

  1999. 11. 17  00:10  대전 정보사단 종합상황실

  "신의주시와 인근 일대에 현재 2 시간째 정전사태입니다. 유무선통신도 일체 불통입니다.  그 지역 군부대들과 용암포의 항구경비대도 연락이 두절된지 오래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당직사령 중의 한 명이 나 대령에게 보고했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나 대령이 그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무슨 일이야! 한전과 한국통신에 더 자세한 걸 문의하고, 연락이 되는 군부대에 연락해서 차량으로 확인하도록 해!  혹시 해군이나 공군에서 연락 온 것은 없나? 중국군의 병력이동 현황은?"

  "알겠습니다! 중국 해군과 공군의 이동은 없습니다. 다만 단둥지역에 있는 중국군의 이동상황은 현재 알려지고 있지 않습니다.아직도 전파방해가 심하고 통신 두절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알았다. 그리고, 음... 알겠네. 아까 내 명령 실행하도록! 참, 그리고 전파방해원의 위치를 확인해봐. 혹시 만주지역의 전파방해로 신의주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예! 단결!"

  젊은 중위가 돌아가자 나 대령은 고민에 빠졌다.  비상을 걸 것인가, 아니면 긴급부서장 회의만 열것인가.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중국의 침략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나 대령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도대체 최첨단 정보처리장치가 있으면 뭐하나,  정보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데...'

  "전파방해원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단둥 북방 50km, 다이렌 남동방 80km, 신의주 동북방 30km입니다.모두 항공기에 의한 광대역 전파방해입니다. 이전과는 다릅니다! 그 원의 중심에는..."

  보고를 하던 하사관이 멈칫하더니 자기 앞의 콘솔을 조작하여 상황실 중앙스크린에 한반도 북부지도와 전파 방해원의 위치를 나타낸  자료를 전시했다.

  "그 원의 중심은 신의주입니다!"

  하사관이 경악했다.  그는 이를 중국의 신의주 침공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 대령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단둥의 고 중장 휘하의 전차부대에 대한 중앙군의 공습일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단둥과 신의주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지 않은가? 고 중장의 작전을 잘아는 과거의 동료들이 고 중장 부대의 주력이 있는 단둥을 치려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동요하는 상황실 부원들을 진정시키고 나 대령은 각종 화상전화와 대형컴퓨터, 통신장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갑자기 자신의 콘솔에 붙은 화상전화가 켜졌다.  나타난 얼굴은 국제뉴스를 취급하는 부서의 이 소령이었다.  얼핏 보아도 상당히 당황스런 얼굴이었는데, 경례고 뭐고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시작했다.

  "방금 중국으로부터 뉴스가 들어왔습니다.  당 주석의 연설인데 정치 국원과 군사위원들의 서명이 된 것입니다.  내용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불만토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명한 군사위원 중에 심양군구의 고 중장,  아니 승진하여 고 상장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뭐요? 고 중장은 이번 군사반란의 주모자! 그럼 반란은 가짜란 말이오?"

  나 대령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아마 병력이동을 위장하기 위한 책동인듯..."

  이 소령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군사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확연하지 않은가. 나 대령은 갑자기 머리에 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비상! 각군 1급비상경계! 대 중국방어전 실전배치하라! 박 준위, 즉시 통일참모본부에 연락하여 이 사실을 알리고, 평안도 지역 각군 비상 출동대기! 신의주 부근에 어떤 부대인가?  즉각 신의주 진입을 명하라! 만약 신의주에 외국군이 진주하였다면 즉각 교전하여 섬멸하라. 반복한다. 교전 후 섬멸하라! 공군은 신의주 상공을 정찰하도록 연락하라!"

  종합상황실이 갑자기 바쁘게 돌아갔다. 5분 내에 비상령이 각 하급부대까지 전달되었고 신의주 남방의 인민군 제 9사단 병력이 출동을 시작했다.  공군에서는 정찰기를 띄웠으나 신의주 시가 전체가 암흑에 쌓여 정찰헬기를 더 띄우기로 하였다. 용암포쪽을 정찰한 정찰기조종사의 보고에 의하면 항구쪽에 커다란 화재가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항구 밖에 거대한 선박들이 있다는 것 뿐이었다.

  다시 이 소령이 보고를 했다. 군사전문가, 그리고 법의학자들로 이루어진 팀이 테이프를 분석한 결과,  시체로 보인 것은 사실 시체가 아니며, 화면 전체가 다 연출에 의한 것,  즉, 조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뉴스, 외신에 전달된 화상, 모두 중국의 거짓 선전이었습니다!"

  "아까 중국공산당 주석의 연설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없소?"

  "지난 중국 내전시 한국과 일본의 행태에 대한 비난만 있었습니다.중국의 내전을 부채질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일뿐 선전포고와 유사한 내용은 없습니다.  또한 한국내 민간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주 연변족들과의 민족통합운동,  또는 만주회복운동을 침략운동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만 전부터 그래왔던 것이고, 다만 중앙군사위원들까지 서명에 참가했다는 것이 이상할 뿐입니다."

  "알겠소. 모든 촉각을 중국으로 향하도록."

  "알겠습니다. 단결!"

  이 소령은 이제 자기 일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그렇게 경고를 했건만, 나 대령은 믿어주지를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더 강력하게 주장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만 했다.설마 하루 정도야 어떨까 했는데 바로 그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 소령은 난감해졌다.중국과 초유의 현대전이 벌어진 것이다.중국은 핵보유국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11. 17  00:30  신의주 동남방 9km, 와이동 4차선 국도

  "이기 아닌 밤중에 홍두깨디, 무신 중국군이 우릴 침략한다고, 부관! 내 전투복 달라우야. 정보사단 아새끼들 중국내전에 겁먹었구만!"

  인민군 제 9 사단 사단장인 노 영일 소장이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승용차로 쫓아와 이동중인 자기 부대의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첨병 부대는 배치했간?"

  경황중에도 노 소장은 부대이동의 원칙을 잊지 않았다.

  "설마 신의주에 무신 일이 있갔시요?"

  부사단장인 대좌가 얼버무렸다. 아무리 부대 이동이라고는 하나 평화시에 자기나라 안을 이동하는데 웬 첨병부대냐 싶었다.

  "기래도 배치하라우. 신의주와 위화도의 부대에서 연락이 없지 않아? 선두부대에서 차출해 신의주 정찰을 시키도록 하라우! 근데 와 이 시간에 지나가는 차량이 하나도 없디?"

  부대의 전진이 잠시 멈추고  보병전투차를 중심으로 첨병소대가 앞으로 나아갔다. 뒤를 이어 첨병중대, 이어서 제 33연대의 본대가 뒤를 따랐다.

  사단 주력이 신의주 시내 진입로인 연상동 고개  아래에 이르자 신의주 시가에 진입한 첨병소대로부터 연락병이 왔다. 신의주에 접근할수록 극심한 중국의 전파방해로 무선통신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앞으로는 왼쪽에 신의주비행장의 불빛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논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신의주 시내에는 움직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안보입네다.  단, 신의주 비행장쪽에 화재가 났다는데 거그에 차량과 사람들이 다수 목격되어 첨병소대가 그쪽으로 이동했습네다. 시내에는 인민도, 사회안전부 요원도, 움직이는 차량도 없습네다."

  "기래, 첨병중대는 시가에 진입했간?  좀 더 정밀정찰을 하도록!  전 부대 사주경계 철저토록! 이봐, 무전병! 상급부대와 연락 안돼?"

  "안됩니다! 모든 주파수대가 전파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무전병이 필사적으로 사용가능 영역대의 주파수를 찾고 있었다. 전파의 그늘 지역도 아닌데 이렇게 무선이 안되는 경우는 처음이라  북녘에는 이미 초겨울의 날씨인데도 땀을 뻘뻘흘리며 무전기를 조작했다.

  사단장은 조금 전과 다르게 긴장이 되어 있었다.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른쪽을 보니 작은 산그림자가 있었다. 인가 하나 없는 작은 야산이다. 그 밑으로는 경의선 철길이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만약 적이 매복하고 있다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는 생각이 사단장의 뇌리를 스쳤다.

  "부사단장, 중대 병력을 차출하여 저 산을 점령하도록 명령하라우."

  부사단장은 갑자기 이게 웬 전쟁놀음인가 싶었다.겁쟁이 사단장과 주로 남한 국군으로 이뤄진 정보사단의 명령에 인민군들만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 따를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통일이 되고 나서, 아니, 아직 통일과정 중에, 자랑스런 전통을 가진 인민군이 지휘계통이나 작전, 정보, 병참 모든 분야에서 남조선 국군들에게 밀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는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특히 통일참모본부와 정보사단이 맘에 들지 않았다. 국군이 거의 모든 실권을 쥐다시피한 정보사단은 걸핏하면 평안북도 지역에 비상경계령을 내려, 이제는 짜증내는 단계가 지나 인민군 하급전사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다.

  중국은 지난 1950 년의 통일전쟁후 몇 십 년간 인민공화국의 최고 우호국이었으며 작년 중국의 내전에서도 우호적으로 지내지 않았는가? 남한 정부 지도자나 군 지도자들은  아직도 중국을 적국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인민군 장교들은 불만이었다.

  부사단장이 보병 1개 중대를 차출하여 야산의 점령을 명하자 보병들이 투덜거리며 야산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신의주 상공을 정찰하던 통일공군의 정찰기 한대가 중국군의 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것이다. 야산 쪽에서도 커다란 불꽃이 여러개가 피어 올랐다. 동시에 여러개의 기관총이 이쪽을 향해 사격이 시작되었다.

  주로 보병전투차와 병력수송트럭들로 이루어진 대열의 곳곳에 포탄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캄캄하던 야산이 온갖 화기의 불꽃으로 번쩍거렸다. 전차들이 순식간에 파괴당하고  인민군 보병들이 정신없이 엄폐할 곳을 찾아 뛰는 동안 몇 대 남지도 않은 전차와 보병전투차에서 반격을 시작했다.

  "사격! 숨디만 말고 사격하라우!"

  사단장이 부하들을 닥달했으나 급작스런 적의 기습에 모두들 제 살길찾기에만 찾았다. 미리 기다려서 준비하고, 게다가 높은 위치에서 쏘아대는 적들앞에 막강한 인민군 제 9사단의 전사들이 힘없이 쓰러져갔다. 이름없는 적의 매복은 그 야산에만 있지 않았다.인민군 9사단의 기다란 행렬의 사방 곳곳에 대전차미사일과 각종 총탄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이미 포병대는 전멸당했고, 전차와 보병전투차는 몇 대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쪽 상공으로부터 헬리콥터들이 떼지어 날아왔다. 상공의 위험이 없음을 확인한 중국군 헬기사단의  공격헬기들이 인민군의 흐트러진 대열에 로켓탄 세례를 퍼부었다.

  "사단장님! 저건 중국의 프랑스제 가젤 헬리꼽땁니다! 중국군이 틀림없습니다!"

  부사단장의 외침을 듣고 공격헬기들을 확인한 노 소장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형제국이었던 중국이 정말로 침공한 것이다. 헬기에서 발사한 기관포가 주변을 쓸고 갔다. 한 병사가 러시아제 휴대형 SA-16 대공 미사일을 발사해서 중국 헬기 한대를 공중 폭파시켰다.여기저기 숨어있던 인민군들 사이에 환성이 터져나왔다.

  "사단장님! 왼쪽 논길에 전차부대가 나타났습니다!"

  헬기의 기총소사에도 불구하고 포탄구덩이에 숨어서 야시경으로 주변을 살피던 부관이 외쳤다.

  "쏘련 T-72 땅크, 아니! 저건 중국에서 개량한 해병대용  무적 5호전차입니다!"

  노 소장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전력이라고 할 수 없는 패잔병들이 군데군데 숨어서 소총사격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널부러진 인민군 전사들의 시체가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단병력이 전멸할 쯤에야 적이 중국 해병대라는 것을 안 자신의 능력이 저주스러웠다. 이제 자신은 중국군의 침공을 상부에 알리는데 주력할지,아니면 소탕전의 비극을 막아 부하들을 한명이라도 살릴지의 선택으로 고민했다. 중국제 전차들의 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1999. 11. 17  00:40  서울, 청와대

  정보사단의 비상령 발동은 평안북도 일대에만 국한되었다. 물론 서해 함대의 감시가 강화되고 공군 정찰기들이 출격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중(韓中)국경에 한해서였다.  몇 번 계속된 비상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듯 청와대를 지키는 93경비대대의 경비는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청와대 내부와 외부의 경비는 평소처럼 청와대 경호실과 일반 교통경찰에게 맡기고 경비대대의 88전차와 K-200 보병전투차들은 차고에서 잠자고 있었다.

  승용차가 라이트를 킨 채 천천히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 진입로로 들어섰다.  바리케이드 옆에 서있던 교통경찰이 차를 세우고 플레시로 차안을 비쳐보긴 했지만 판에 박은듯한 형식적인 관찰이었다. 뒷좌석에는 넥타이를 풀어헤친 두 명의 중년남자와 한 명의 젊은이가 몸을 시트 깊숙히 묻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차 안에는 술냄새가 진동했다. 코를 감싸쥔 교통경찰이 혹시 운전자도 술을 마시지 않았나 운전사를 보고는 그대로 통과시켰다.

  승용차가 청와대 앞길로 들어섰다. 반대쪽 차도에서는 편의점에 물건을 납품하는 트럭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들이 청와대 앞에 마주치자 갑자기 트럭이 서더니  뒷문이 열리고 검은복면을 한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사람들을 내린 차는 그대로 가던 방향으로 지나가고 승용차는 정문 경비실 앞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굳게 닫힌 청와대 정문 앞에는 의무경찰 두 명이 입초를 서고 있었다. 갑자기 차에서 수상한 사람들이 뛰어오자 그들에게 K-2소총을 겨눴으나 미리 준비한 검은옷들이 빨랐다. 의경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의 총구에서 뿜어진 화염 뿐이었다. 청와대 정문 경비실의 책임자인 종로경찰서 소속의 경위가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자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으며 비상벨을 누르려했으나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온 복면들에게 사살당했다. 이들은 소음기가 달린 기관단총을 쏘아서 총소리는 크게 울리지 않았다.

  복면들이 의자에 앉아 코를 골고 있는 다른 경찰을 보더니 칼을 꺼내 가슴을 쑤셨다. 잠자던 경찰은 잠시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옆으로 떨구었다. 칼을 뽑자 시체에서 뜨거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승용차에서 내린 중년의 사나이가 경비실 안으로 들어오자 복면 중의 한 사람이 경례를 했다. 검은색 가죽가방에서 경찰복을 꺼내 입으며 중년의 사나이가 경례를 한 검은 복면에게 눈짓을 하자 그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청와대 내부로 통하는 경비실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중년의 사나이가 밖을 보니 같이 승용차를 타고온 사람들중 운전사와 뒷좌석의 청년이 경찰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시체들을 화장실 안쪽으로 치우고 자신은 의자에 앉았다.밖에 트럭의 전조등이 보이고 또다시 여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나이들이 총을 쥔 채 경비실 쪽으로 뛰어들어왔다.  신문수송트럭은 사람들이 다 내린 후 다시 가던 방향으로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사륜구동차에서 중장비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내리자 이 행렬은 끝이 났다. 경비실과 그 앞쪽에 10여명의 사나이들이 총을 움켜쥔채 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11. 17  00:45  서울, 한남대교

  한남대교 중간부분의 교각 아래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 위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미미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림자 하나가 줄을 타고 교각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발이 물에 닿자 등에 줄에 몸을 의지한 채 거꾸로 섰다.  등에 진 가방을 벗어 이를 어제 미리 작업을 해둔 수면 아래 교각의 틈 사이에 넣었다. 차가운 강물이 느껴졌다.가방에서 가느다란 안테나를 뽑아 물 위까지 오게했다. 다시 바로 서서 익숙한 솜씨로 줄을 타고 올라갔다. 그림자들은 주변을 살피며 다리 위의 인도로 올라섰다. 승용차가 이들을 스쳐 지나갔다.

  이들이 대교중간에 고장 경광등을 밝힌 채 주차중이던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탔다. 미리 시동을 키고 있던 검은색 승용차가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 서있던 빨간색 스포츠카도 라이트를 켠 채 이 승용차를 뒤따랐고 잠시 후 또 한대의 사륜구동차가 이들을 따랐다.

  이들이 한남대교를 벗어난 10분 후에 거대한 폭발음이 울리며 한남대교와 옆의 동호대교 철교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폭음이 고요하던 서울 시내를 울리고 주변 아파트의 유리창들이 깨져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잠시후에 한강대교와 한강철교, 그리고 성산대교와 당산철교도 폭음과 함께 무너졌다. 1999년 11월 17일 새벽 1시였다.

  11. 17  01:00  부산, 부산항

  늦가을 밤의 차가운 바다 바람이 부는 부산항 제 3부두와 4부두에 정박 중인 수 십 척의 화물선들은 야간 하역작업을 하느라 불을 대낮같이 밝히고 있었다.중앙부두 바로 뒤의 부산역에는 새벽 0시 55분에 도착한 서울발 새마을 열차에서 인파가 쏟아지고 있었다. 2부두 쪽의 광복동에서는 아직도 유흥가가 영업을 하는지 불빛이 영롱하게 물 위에 비쳤다.

  갑자기 물 표면에 거품이 일더니 작은 막대기가 솔아 올랐다. 막대기가 잠시 회전을 하더니 한 곳에 멈췄다.물살이 일고 막대기가 진동하며 떨더니 수중에 무엇인가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그 물체들은 어뢰가 되어 제 7부두의 군함들에게 접근했다.  제 7부두는 미군이 전용항으로 쓰다가 한국 해군에게 넘긴 항만인데 한국 해군에서는 연안경비용 소형 함정들의 정박지로 쓰면서 화물선들에게도 정박을 허용하고 있었다.

  연이은 폭발음과 함께 초계함 두 척이 순식간에 침몰했다. 대형 상선 한 척은 화재에 쌓인 채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갑작스런 폭음에 놀란 부산 항만경비대에 비상이 걸렸다. 써치라이트가 하늘과 바다를 스치며 침입자를 찾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림자 없는 침입자의 자취를 찾을 수 는 없었다.

  또 다시 어뢰공격이 시작되어 제 3, 4, 5 부두의 상선들이 연이어 폭발하기 시작했다. 곡물하역작업 중인 벌크선과 커다란 컨테이너선이 당했다. 다시 옆에 정박중이던 대형선박이 침몰했다. 곧이어 제 3부두 반대쪽인 연합철강 앞에 있는 부두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고철을 가득 실은 2만톤급 대형화물선이 굉음을 울리며 침몰했다.

  제 5부두 안쪽에 정박중이던 항만소방서의 소방선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했다.초계정과 연안경비정들도 써치라이트를 미친 듯 물위에 좌우로 비치며 적을 찾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도 침입자들이 나타났다.

  바다 위를 스치듯 저공으로 날며 12대의 시 해리어가 연안여객선터미널 상공을 지나 부산시청과 남포동 중심가의 상가, 그리고  부산호텔과 타워호텔에 폭탄을 투하하더니 용두산공원 위를 지나 북동쪽 하늘로 날아갔다. 그 비행기들의 아래에는 충무공의 동상이 남해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전투기들이 음속에 가까운 속력을 내어 구덕산을 넘어 김해 국제공항 상공에 도착했다.이들은 부산항의 참상을 연락받고 막 대공경계를 시작한 공항경비대의 써치라이트를 무시하고  활주로를 따라 양옆으로 줄줄이 서있는 여객기들에게 30밀리 기관포를 쏘기 시작했다.  연료를 가득 채우고 새벽에 일본으로 출항할 예정이던 국제선 아시아나 항공기가 불길에 휩싸였다. 바로 옆의 일본항공 소속의 여객기도 당했다.

  당황한 공항경비대가 급히 나이키 지대공미사일을 쏘았으나 저공으로 공격중인 시 헤리어들은 이를 비웃듯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발칸 대공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으나 한 대를 노리고 공격하면 다른 전투기에 당하기 일쑤였다.마지막으로 공항 연료저장고에 시 헤리어가 발사한 매브릭 미사일이 명중하자 휘발성이 강한 항공유가 연속 폭발하기 시작하여 공항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화했다.

  부산시내와 김해공항을 습격한 시 해리어들은 폭탄과 포탄을 모두 사용하자 남동쪽 바다 방향으로 날아갔다. 오륙도에서 남동방향으로 계속 3분쯤 비행하자 바다 위에 등불 몇개가 깜박였다.해리어들이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등불 위로 내려앉았다.해리어들이 수직착륙을 마치고 날개를 접자 바닥이 꺼지며 비행기들이 잠수함 안으로 사라졌다.  잠수함들이 잠수하고나서야 울산방향에서 날아온 한국공군의 F-16들이 잠수함들이 사라진 바다의 상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11. 17  01:00  광주, 광산구

  광주 하남공업단지 일대가 일순간의 정전으로 암흑에 휩싸였다. 정전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업단지 일대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처음에는 작았던 불길이 점점 커졌다. 가스관이 폭발하여 강력한 불길을 밤하늘로 뿜어냈다.주변 공장과 건물에도 불길이 옮아붙었다.즉각 소방차들이 출동해서 진화에 나섰으나 강한 불길을 잡지는 못했다.

  11. 17  01:00  서울, 청와대

  고요하던 늦가을 밤, 청와대 뒷쪽 산에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청와대 뒷쪽 북악산을 경비하던 95경비대대 소속의 군인들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접근하는 그림자들을 발견하고 수하를 했으나 이들이 불응하자 바로 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참호에서 사격하던 군인 두 명은 뒤쪽으로 돌아온 다른 그림자들에게 즉각 사살당했다. 그림자들이 유령처럼 일어서더니 청와대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라 청와대 경호실에  비상이 걸리고 숙직중이던 경호원들이 벽장에서 K-1 기관단총을 꺼내 무장하고 복도로 나섰다. 그러나 이들은 복도로 나가자마자 2층까지 침입한 복면들에게 사살당했다. 비상벨 소리를 들은 복면들이 다급해졌다.  이들은 대통령 침실이 있는 봉황실까지 뛰기 시작했다.  청와대 본관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고 본관 밖에서도 총성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괴한들과 경호원들과의 총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경복궁의 93 경비대대가 즉각 출동하여 K-200 보병전투차를 앞세우고 대부분 트럭으로 청와대 정문을 향했다. 그러나 당연히 문을 열어줄 줄 알았던 경비실 경찰들이 사격을 해오자 당황했다. 이들은 기관총과 RPG 등의 중화기로 무장하고 경비대대를 공격한 것이다. 경비실까지 점거당한 줄을 깨달은 대대장이 하차하여 사격을 명령했다. 뒤늦게 따라온 전차 한 대가 경비실을 향해 주포 한 발을 발사하자  경비실의 저항은 잠잠해졌다.

  "대통령 시해음모다. 우리는 대통령을 보호한다. 앞으로!"

  대대장이 지프에 타며 공격을 명령했다.대대장 옆의 통신장교는 국방부와 육군본부 등에서 호출하는 무선에 대답하고 병력지원 요청하기 바빴다. 청와대 경호실은 유,무선이 모두 불통되어 연락이 되지 않았다.

  88전차를 선두로 정문을 열고 경비대대가 막 청와대에 진입한 순간에 청와대 앞 도로에 승용차들이 오더니 차안에서 로켓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대대장을 뒤따르던 트럭 두 대가 당했으나 보병전투차의 기관포가 이 승용차들을 걸레처럼 찢어발겼다. 대대장은 정문에 전차 두 대와 보병 1개 소대를 남겨놓고 청와대 안으로 들어갔다.

  청와대 대통령 침실 바로 앞 복도는 복면괴한들과 청와대 경호원들의 시체가 가득 쌓여있었다. 아직도 총성이 계속 울리고 수류탄과 RPG로켓탄의 폭발음이 가득했다. 대통령은 침실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권총 한자루를 쥐고 있었다. 영부인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고 대통령은 잔뜩 화가 난 모습이었다.

  "적은 도대체 누군가? 혹시...북한인가?"

  "아직 확인이 안되었습니다. 각하!"

  경호실 차장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만약에 북한이라면... 생각하고도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아니, 앞으로도 그 이상의 악몽이 연출될 것이 분명했다.

  실장은 괴한들과의 총격전에서 이미 사망했다는 보고가 왔었다. 경호원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감소했고, 이곳도 별로 못버틸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마지막 남은 경호원들은 10여명도 채 되지 않았다. 묵직한 자동소총의 연사음이 들리더니 침실 밖의 거실 문 뒤에 숨어서 사격을 하던 경호원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 권총은 어떻게 쏘는 것인가? 난 육군병장 출신이라..."

  대통령이 권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홍 대통령은 사병으로 제대하여 권총 사격연습을 받지 않았다. 대통령은 권총이 의외로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전장치는 해제했으니 방아쇠만 당기면 됩니다.  그러나 그 권총은 호신용이 아닙니다, 각하!"

  경호실 차장이 대통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통령이 이해가 간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기관단총의 연사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할것 같습니다. 각하..."

  차장이 슬픈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이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자신의 임기중에 통일을 완수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왔다.

  "몰려옵니다~~~~~~~ "

  경호실의 고참인 조 과장이 거실에서 침실쪽으로 외쳤다.  조 과장은 이미 3군데에 총탄을 맞았으나 악착같이 적을 막고 있었다. 차장이 침실을 나선 후에 총성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빨리! 대통령이 위험하다!"

  93 경비대대의 대대장이 위험을 무릅쓰고 선두에 서서 부하들을 지휘하여 본관 앞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두 곳으로부터 기관총 공격을 당했으나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그들을 잠재워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복면의 괴한들은 경비대대가 청와대 안까지 전차 등의 중화기를 들여올 줄은 계산 못한 모양이었다. 현관 안쪽에서 기관단총의 발사 섬광이 보였다.

  "전차, 현관에 집중사격! 모두 3층으로 뛰어간다. 돌격!"

  전차 3대가 주포를 발사하고 보병전투차들이 기관포를 연사한 직후에 대대장을 선두로 대대원들이 현관으로 뛰어들어갔다.  대대원들은 모두 본관의 지리를 숙지하고 있어서 어떻게 가야하는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수 십 번의 도상훈련과 실제연습을 거친 이들은  각 소단위 부대장들의 지휘를 받아 계단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각 층마다 복병들이 숨어서 이들을 저지했으나 수를 앞세운 그들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

  "우리의 적은 시간이다. 급하다, 돌격!"

  대대장의 독려는 필요도 없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목숨이 지금 이 시간까지 붙어 있는지도 확신이 없었지만 최단시간 내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다. 대대장이 복도를 돌다가 빗발치는 총탄을 피해 숨었다. 뒤따르던 부관이 수류탄을 던지고 폭발 후에 뛰쳐나가 자동소총을 연사했다.  모두들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군이 오고있다. 끝까지 버텨라. 각하를 보호하라!"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거실로 뛰어들어온 괴한 한 명을 사살하며 차장이 외쳤다. 경호실 차장의 왼쪽 팔은 아래로 축 쳐져 있었고 양복은 핏물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경호원은 자신을 포함해 3명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차장이 남은 실탄 수를 세어 보았다.

  대통령은 거실 안쪽에 있는 침실의 침대뒤에 숨어서 권총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있었다.  자신이 이 젊은 나이에 할일도 다 못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침실 밖의 거실에서는 총소리가 이어졌으나 화력에서 앞선 괴한들의 상대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RPG의 폭음이 울리고 거실쪽의 벽이 무너졌다. 출입문의 저항이 거세자 시한폭탄을 준비하지 못한 괴한들 중 한 명이 복도에서 벽을 향해 RPG를 쏜 것이다.  물론 RPG를 발사한 괴한도 몸이 산산히 찢어졌으나 거실 안쪽의 경호원들도 1명이 죽고 1명은 중상을 입었다. 뚫려진 구멍으로 괴한들이 자동소총을 난사하며 쏟아져 들어왔다.

  차장의 비명소리가 밀실까지 들려왔다. 차장은 대통령인 자기를 지키지 못해서 억울한지, 아니면 죽어서 억울한지 매우 한을 품은듯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고 생각되었다. 대통령이 서서히 권총을 머리에 댔다. 이 한발이 자신의 운명을 끝낸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영부인이 울며 말렸으나 대통령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적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잡혀 이용당하는 수치를 겪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자신이 할 일 이라는 생각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대통령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북한이라면 자신을 죽일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남북한의 수뇌는 통일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수시로 만났었다.북한의 군부강경파들도 자신이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갔어도 별 움직임이 없었다. 자신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의 군 장성들이나 극우파들도 통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암살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홍 대통령은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안전한 상황이었다.

  밖에서는 총성이 연이어 울리더니 일순간에 딱 멈췄다.드디어 완전히 끝난 모양이라고 대통령은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젊을 때부터 같이 고생하던 영부인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천천히 당겼다.

  "각하! 어디 계십니까? 저희가 왔습니다!"

  응접실에서는 더 이상 총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처음 듣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혹시 괴한들이 자신을 생포하기 위한 술책인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93 경비대대장입니다. 각하, 실례지만 들어가겠습니다."

  말소리와 동시에 군인 몇 명이 침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총을 이리저리 겨누다가 대통령을 보고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거수경례를 했다.

  "93 경비대대의 박 철민 중령입니다, 각하! 무고하셔서 다행입니다."

  대통령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머리를 겨눴던 권총을 내리자 영부인이 긴장이 풀려서인지 기절하고 말았다. 대통령이 쓰러진 부인을 물끄러미 보더니 박 중령에게 물었다.

  "고맙네, 박 중령. 근데 적은 누구였나?"

  대통령은 박 중령의 고뇌하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10여분간 전투를 치렀으면서도 적의 실체를 파악 못하고 있는 지휘관의 표정은 복잡했다.

  "각하! 적은 전원 사살되거나 자폭했습니다. 포로는 없습니다.하지만 그들은 우리 동포가 아니며, 공산권의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럼 중국인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각하!  유전자 검사를 하면 확실히 드러날 것입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들어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또다른 의문이 들었다. 대통령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혹시 북한의 주석과 통화를 할 수 있겠나? 이곳 전화는 다 두절됐다네."

  "조치하겠습니다, 각하!"

  대대장을 따라온 젊은 통신장교가 군기가 바짝 든 채 대답한 후 즉시 국방부를 호출했다. 국방부와 북한의 인민무력부간의 회선이 열리고 다시 평양의 주석궁에 연결됐다. 통신장교가 군용무전기의 커다란 송수화기를 대통령에게 주었다.

  "대통령이오. 주석님은 지금 주무십니까?"

  대통령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침통한 표정으로 잠시 듣더니 '알겠소' 라는 짧은 대답만 하고는 송수화기를 통신장교에게 다시 넘겼다.

  "북한의 주석은 조금 전에 암살당했다네.  중국군 특수부대의 소행이라고 하는군.지금 당장 계엄령을 발동하고 삼군총장을 소집하여 비상각의를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대통령의 말에 깜짝 놀란 대대장과 통신장교는  한 번도 못해본 경호실과 비서실의 업무를 수행하느라 바쁘게 되었다.

  1999. 11. 17  01:00  개성, 통일참모본부

  정보사단의 비상경계령이 내려진지 50분도 안되어 개성의 통일참모본부 작전상황실에 통일참모본부 참모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서울과 평양에서 승용차로 오는 도중에 부관들로부터 대충 상황을 브리핑 받았으나 정보들이 너무 모호해서 궁금한 점이 많아  작전상황실장인 구 국군 공군의 양 석민 중장에게 질문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요. 이제 이 종식 차수님만 오시면 브리핑과 작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중장이 부관의 보고를 받고 장중을 향해 외쳤다.

  "차수님이 입장하십니다. 전체 차렷!"

  통참참모 모두가 기립한 직후 통일참모본부 의장이며 통일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인 이 차수가 입장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정한 그는 명색뿐인 직함이 싫었다.  그는 지금도 자랑스런 조국해방 전쟁(한국동란)의 젊은 하급전사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평시에는 사무실에만 앉아 있어야하는 이 일이 싫어 퇴역할까  고민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다음 의장은 국군 출신의 장성이 임명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부하 인민군 장성들을 생각하여서라도 퇴역하지도 못하는 입장이었다.그리고 통일과정 중이라서 군복과 계급체계가 아직 그대로 인데 자신이 국군의 고참 육군대장 취급을 받는 것이 불만스럽기도 했다.

  "차수님께 대하여 경례!"

  "통-일!"

  주로 장성들로 이뤄진 통일참모본부 참모들이지만 아직  서로가 서먹서먹해서인지 군 장성들치곤 꽤 군기가 들어있었다. 이 차수가 짧게 답례하고 중앙의 자리에 앉자 기립했던 장성들이 기다란 탁자를 중심으로 모두 자리에 앉았다.  대형 스크린 앞에 양 중장이 서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화면에는 신의주 부근 지도가 나타났다.

  "정보사단은 신의주 지역의 이상 단전, 유무선 통신 불통, 그리고 중국공산당 주석의 선언문을 계기로 비상경계령을 발동하였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었던 심양군구 사령 고 중장이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서, 게다가 승진한 인민해방군 상장으로서 주석의 선언문에 서명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다른 이유도 많지만 일단 신의주의 상황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화면에는 전파방해원의 현재 위치와 평안북도의 통신불통지역이 표시되고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중국의 전파방해원의 변동이 있습니다. 어제만 해도 지상시설에 의한 광대역 전파방해였으나 지금은 다수의 항공기에 의한 전파방해입니다. 중심지역도 상당히 남하해서 평안북도 대부분이 전파방해의 영향을 받아 무선이 불통인 상황입니다.그리고 유선전화도 무슨 이유인지 평안북도 대부분이 불통입니다."

  화면에 인민군 9사단의 주둔지와 이동 경로가 나타났다. 화살표가 시간에 따라 주둔지로부터 신의주쪽으로 한방향으로 쭉 흐르다가 한 지점에서 멈췄다.

  "인민군 제 9사단이 신의주로 진주해 갔습니다만 0030 현재 무선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리고 10분 전부터는 주둔지의 사단상황실과도 연락이 안되는 상태입니다."

  장내에 잠시 술렁거림이 있었다. 양 중장이 잠시 쉬었다가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아군 정찰기 한대가 연락이 끊겼습니다. 정찰헬기 두 대도 소식이 없습니다.정찰기의 경우 소요 연료량을 계산해본 결과 이미 10분전에는 연료부족 상황이므로 추락,  또는 불시착했다고 봐

야합니다."

  "기럼 적은 중국이오?"

  구 인민군 해군 상장인 박 정석 상장이 뻔한 질문을 했다.  그로서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50 년간의 형제국이 일순간에 적국으로 돌변한 것이다.

  '비록 중국의 내전과 한반도 통일로 변화는 많았지만 사람은 같지 않은가? 북해함대 사령 리 소장,  아니, 대만 점령전에서 수훈을 세워 이제 중장이 된 그 사람도 나하고 오랜 친구사이인데...'

  중국과 북한의 오랜 군사교류를 통해 고급장교들끼리는  상당히 친숙해진 사이가 되었고 특히 리 소장은 서로 해군장비의 낙후성에 대해 울분을 토하다 같이 술잔을 기울인 적도 많아져 비슷한 연배인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되었다.박 상장이 보기에는 리 중장은 상당히 전략가다운 면모가 많아 보였다.  만약 본토에서 대만을 친다면, 자신의 계획대로 하면 일주일 내에 대만을 점령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해낸 것이다.

  "그렇습니다."

  양 중장의 짧은 대답은 인민군 장성들에게는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무거운 압력으로 다가왔다. 보다 큰 문제는 중국의 군사력이었다. 이렇게 큰 나라와 싸운다니 자신이 들지 않았다.

  "중국의 정규군 병력은 700만으로 추산됩니다. 육군 600만,전략 방공부대를 포함한 공군 60만, 해군 40만, 기타 준군사력인 인민무장경찰이 700만, 그리고 예비군으로 볼 수 있는 민병이 있습니다. 현재 가용병력 총 1천 9백만명입니다."

  말 안해도 잘 알지 않느냐는 투로 양 중장이 짧게 설명했다.

  "현재 평안북도  신천에 주둔중인 국군 제 11 기갑사단에 출동명령을 내렸습니다.  동시에, 인민군 제 15사단과 인민군 항공 3사단에서 비상 출동 대기 중입니다. 전시 교전권 부여에 대한 제청을 해주십시요."

  양 중장이 자위 이외의 공격권을 각 군이 가질 수 있도록 참모본부에 요청했다.  중국의 침공이 확실시 된다면 이제 국군과 인민군의 통일군대는 한반도 내에서의 침략군 격퇴임무 외에도 중국본토에 대한 공격권을 가지게 된다.

  이 즈음의 군에 대한 교전권의 부여체계는 통일참모본부가 남북의 수반이 공동 위원장인 통일군사위원회의에 제청하여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주석이 군 지휘권을 통일참모본부에 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남북총선거에 의해 구성된 통일의회는 있지만, 아직 통일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지 않아  이 경우에 최고사령관은 임시로 통일참모본부 의장이며 통일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즉 이 종식 차수가 된다. 평화시에는 명색뿐인 통일참모본부 의장에서 이 차수는 일약 통일한국군의  최고사령관이 되는 것이다.

  이 차수의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솟았다. 150여만의 대군을 지휘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전시에! 게다가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닌, 외국의 적의 침략에 대한 방어전쟁이 아닌가?  군인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잠깐 기다리시요!"

  위원중의 한명인 국군의 정 지수 육군대장이 제동을 걸었다.

  "교전권 부여는 군사위의 제청상황인데 아직 남북의 국방장관과 합참의장께서 참가를 안하셨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적의 확실한 정보도 모르지 않습니까? 만약 만주지역의 불안을 계기로 평안북도 주둔 일부 부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면?"

  통일군사위원회는 남북의 수반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남북 국방장관(북의경우는 국방부장)과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들,그리고 남북 군을 대표하는 통일참모본부의 고위직들이 참가하는 회의체였다.  정 대장의 내심은 사실 막중한 군지휘권을 인민군 출신의 이 차수가 맡는 것이 못내 미덥지 못한 것이었다.

  "좋소, 양 중장. 군사위원 모두에게 화상회의를 준비하도록!"

  이 차수도 이 미묘한 문제를 어떻게 풀지 난감했다.통일군사위원회와 통일참모본부,  게다가 통일 과정이라 남북의 합참본부와 각군 본부 등이 산재해있어 지휘권의 일원화를 기하기 어려웠다.  남북의 통일과정, 그 하부과정인 군사력 통일과정에 있어서  아직 통일참모본부는 명색뿐이며 합의체일 뿐, 실권이 없었다.  아직 실권은 남북의 각 군사기구에 있어서 당연히 반발이 예상되었다. 사실 이 차수의 경우 퇴역대상 군인을 위한 명예직으로  모두들 생각하고 있었는데  통일과정 중의 법률적 빈틈을 이용하여 그가 군 최고지휘관으로 임명되니 모두들 반발이 심할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통일참모본부에 소속된 각 군 장성들은 자신들의 임무는 서로에게 유리한 남북 군통합 형태를 유도해 내는 것으로 생각했지 실전에서의 참모 역할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양 중장의 부하들이 화상회의를 위해 준비하는 동안  통일참모본부의 군사위원들은 법률적 해석을 둘러싼 논란과  각 소속군 참모총장들과의 연락을 위해 소란스러웠다.

  "피양으로부터 급전입네다!"

  인민군 김 병수 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보는 사람들을 불안케 했다.

  "주석께서 서거하셨습네다. 주석궁이 중국군 권단의 습격을 받았습네다. 주석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총을 놓티 않았다 합네다!"

  "뭐요? 그게 사실이오?"

  남북을 가리지 않고 장성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곧이어 한국 육군의 정 지수 대장도 놀란 얼굴로 보고했다.

  "청와대도 중국 특수부대에 습격을 당해서 대통령 각하께서 암살직전에 구출됐다고 합니다."

  참모들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김 대장이 모니터를 보며 말을 이었다.

  "부산항과 인천항이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적으로부터 공격당했습니다. 그리고 김해공항이 적기의 공습을 받았고 서울의 한강 교각 5개가 무너졌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광주의 하남공단에 대화재가 발생했으며 고속도로와 철로 몇 군데가 폭발로 유실되었습니다.본격적인 침공 직전의 양상입니다!"

  "이북에서도 곳곳에서 공격을 받았습네다. 남포, 흥남, 김책(성진), 청진, 김형권(풍산)시 등에서 테러가 일어났습네다."

  김 대장이 아직도 주석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듯 말을 더듬거렸다. 인민군 장성들은 개전 초기부터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중국은 확실히 한반도를 점령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통일한국은 중국을 막을 힘이 없었다.

  11. 17  01:20  신의주, 연상동(신의주 시가 동남방 4 km)

  "전투가 끝났습니다. 전과확인 중이며 빠져나간 적들은 없습니다. 현재 소탕전이 진행중입니다. 아직까지 포로는 별로 없습니다."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제 2 해병사(사단) 사령 천 위안 대좌가 부관의 보고를 받고 미소지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인민군 9사단이 먼저 신의주쪽으로 올 것을 예상하고 도로 주변에 해병대 2개 사단이 잠복하여 인민군의 사단병력을 별 손해없이 섬멸한 것이다. 다만 헬기 사단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헬기사단은 필요도 없었는데...'

  중국군은 전통적으로 전술적 임무의 완수보다는  적 주력의 섬멸전을 선호했다.모택동의 말대로 적의 열손가락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손가락 하나를 절단하는 것이 낫다는 식이다. 국공내전의 홍군은 遼瀋,淮海,平津 등의 3대 작전에서 철저한 포위섬멸전을 감행함으로써 국부군과의 전력비를 역전시켜 내전을 승리로 이끈바 있었다.국공내전후 50년이 지났지만 이 전략은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어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베트남전, 기타의 전쟁에서도 자주 이용되었으며,  또한 아직도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작전이었다.전력이 약하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승리를 노리는 중국 군부는 계속 이 섬멸전을 선호하고 있었다.

  "주석으로부터 당과 인민의 이름으로 이번 승리를 축하한다는 전문이 왔습니다. 그리고 국군 제 11기갑사단이 북진중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우리 인민해방군의 3개 장갑사단이 도하를 마쳤다는 연락입니다."

  연락군관이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보고했다. 적의 1개 기갑사단쯤 아군의 3개 장갑사단과 헬기사단,그리고 막강한 공군의 힘으로 이번 인민군 9사단처럼 전멸시키면 될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는 연락군관 뿐만 아니라 모든 인민해방군 장졸들의 사기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천 대좌도 흐뭇했다. 서전을 멋진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이번 한반도 점령전은 매우 쉽게 풀릴 것이며, 또한 자신이 조금만 더 공을 세운다면 대망의 소장 진급도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후 집단군 사령과 군구사령, 나중에는 군사위 위원, 또한 시류만 잘 타면 정치국에도 진출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도로를 정리하고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다.  우리 장갑사단의 진로를 깨끗이 비워라. 물론 장갑사단들이 싸울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부하들이 호쾌하게 웃어댔다. 현대전으로 와서 주력 전차부대의 위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보병의 대전차미사일 뿐만 아니라 항공기들의 활약이 전차의 효용을 감소시킨 것이다.그러나 전차부대의 집중적 운용은 항상 전장에서의 승리를 보장했으며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다.중국군의 경기계화부대인 오토바이사단의 전차수와 장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 한국군의 기갑사단은 중국군의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1999. 11. 17  01:50  제주시 서남방 100km 해상

  별빛도 없는 검은 바다 위로  항해등을 켜지 않은 수십척의 대형선박들이 밀물처럼 서서히 제주도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의 항적을 따라 야광충들만이 파도 속에서 빛의 아우성을 질러댈 뿐, 선박들은 어떠한 소리나 빛을 내는 법이 없었다. 전파도 완벽하게 관제하여 항해는 단지 위성항법 시스팀에 의해 이뤄질 뿐이었다.

  갑자기 이 배들의 서쪽 하늘에서 대규모 비행물체들이 나타났다.이들은 배들을 본체만체  저공으로 스치고 그대로 지나쳐 제주도를 향해 날았다. 도합 100여기의 대규모 전폭기 집단인 이들은 이 배들을 단지 이정표나 체크 포인트로만 여겼는지도 몰랐다.

  잠시 후 제주도 한라산 정상 바로 서쪽 부근인 윗새오름(1714미터)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곳에는 군사용 뿐만 아니라 항해용 레이더 기지가 있었는데, 레이더가 이 전투기들을 발견하자마자 대(對)레이더 미사일인 미제 STANDARD ARM에 의해 상부에 보고도 못하고 일격에 파괴되어 버렸다.

  02:00  제주항

  제주시의 항구인 산지항에 정박중인 여러 척의 한국해군 군함들에 비상이 걸렸다.  갑자기 한라산 레이더기지가 섬광과 함께 사라지자 누군지는 모르지만 적이 나타난줄 직감한 제주 분함대 사령관 김 성우 준장이 비상출동 명령을 내린 것이다.  중국의 침공위협이 있다며 정보사단이 발령한 비상경계령과  대통령의 비상계엄 하에서도 함대를 전투배치하지 않고 경계만 강화시킨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지프로 자신의 지휘함인 한국형 구축함으로 가던 중 그 배가 폭발하는 것을 보았다.그는 차를 세운채 구축함이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한국 해군이 대양해군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첫번째 시도인 한국형 구축함 KDX-2000, 10척 중 3번째로 건조된 만재배수량 3900톤의 효종함이 중국 핵잠수함이 발사한 대함 미사일 한 발에 그대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마스트의 AWS-6A 돌핀 해상수색레이더만이 무참히 찌그러진채 물위에 남아있었다.효종함은 효종이 실패한 북벌을 아쉬워하여 붙인 이름이었는데 중국의 한급 핵잠수함의 공격에 반격도 못해본채 가라앉은 것이다. 김 준장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파괴된 것은 한국형 구축함 뿐만이 아니었다.  2300톤의 소형 울산급 프리깃함 FF 958 제주함(1990년 취역)과 포항급 코르벳함인 1200톤급의 781번함 남원함(1991 취역)까지 가라앉고 있었다. 3척의 비교적 신형함이 침몰하고 남아있는 것은 겨우 두 척의 백구급 쾌속미사일정 밖에 없었다.  제주도 서쪽해상에서 초계중인 청주함으로부터는 무선연락이 끊긴지 30분이 넘었다.생각해보니 초계기도 연락이 없었다. 비상경계령을 너무 무시했다는 후회가 일어났다.

  불바다가 된 제주항에 갑자기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써치라이트가 하늘을 갈랐다. 임박한 공습을 말해주는 것이었다.김 준장이 정신을 차리고 근처에 있는 출항직전의 백구 59호(PGM 589)에 승선했다.승무원들은 전쟁의 공포와 함께 분함대 사령관의 승선에 바짝 긴장해 있었지만  승무원들이 긴장할수록 김 준장의 자괴감이 깊어갔다.

  서쪽 하늘에서 수 십 대의 전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김 준장은 백구 59호의 정장에게 전투기들을 피해 즉시 항구 밖으로 나갈 것을 지시했다. 뒤로는 같은 급인 백구 61호(PGM 591)가 따랐다.선내 등화관제를 실시하며 나가는데도  폭발하는 항구시설과 함정들 때문에 사방이 환했다. 미그기 한 대가 막 항구를 빠져나온 백구 61호에 기관포 사격을 가했다.  바다에 물보라가 튀고 잠시 후 백구 61호는 불덩어리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항구 근처에 있는 몇 개의  오름(한라산 자락의 분화구 언덕)에 배치되어 있는 대공발칸포가 불을 뿜었다.공격을 마치고 막 상승하던 그 미그 23형 전투기는 발칸포의 십자포화에 맞아 미익 쪽에서 불을 뿜으며 바다로 추락했다.

  그러나 곧이어 호위 전투기들이 오름에 있는 발칸포 진지들을 공습하기 시작하여 5분도 안되어 항구 주변의 대공진지들은 침묵을 지켰다.대공포 덕택에 전투기의 공격을 받지않고  항구 밖으로 나간 백구 59호는 서쪽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어둠 속에서 보인 김 준장의 얼굴에는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간단히 남해함대 사령부에 적 내습 보고를 마친 김 준장은 복수에 불타는 눈빛으로 서쪽 바다를 응시했다.

  제주시 서쪽인 도두동의 제주공항에 커다란 불길이 치솟는 모습이 보였다. 새벽에 서울과 부산으로 비행할 여객기 몇 대와 공항 부대시설이 불에 타는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전투기 몇 대와 초계기도 있다는 생각이 김 준장의 뇌리를 스쳤다. 갑작스런 소리에 하늘을 보니 수 십 대의 대형 수송기들이 저공비행으로 제주시와 한라산을 향하고 있었다.

  02:25 제주항 기점 서쪽 20 킬로미터 해상

  먼저 SPS-58 대공수색 레이더에 적으로 추정되는 초계기들이 잡히고, 잠시 후 캐나다제 HC-75 해상수색 레이더에 대규모 함정군이 걸렸다.김 준장은 이를 즉시 진해의 해군사령부에 연락하고  전파관제를 실시하였다. 초계기들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30 노트의 속력으로 20분간 이동해서 다시 서진하였다.  과연 멀리 검은 바다 위로 거대한 함정들의 대군이 보였다.실루엣을 보니 중국해군의 루다급 구축함과 지앙후이급 프리깃함들이었다. 백구급 미사일정은 즉시 시동을 끄고 바다에 표류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어선들이 오징어 채낚기 작업을 하고 있어서 들킬 염려는 없어보였다. 집어등은 엄청난 촉광으로 고기떼를 끌어들이지만 주변을 밝히지는 않는다.

  "정장, 하픈은 4발 다 있겠지?"

  "그렇습니다. 육안수색결과를 미사일에 입력시키겠습니다."

  "아니야, 적은 상륙부대다. 조금 더 기다려.적은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김 준장은 복수심에 불타 이성을 잃고 무작정 공격하는 무분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적함대의 핵심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멀리 수평선상으로 구축함과 프리깃함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흘러갔다.  10분쯤 기다리자 훨씬 대형의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항모와 전차양륙함 및 수송함들입니다!"

  백구의 정장이 망원경으로 중국함대를 보다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거대한 함체는 바다를 압도하는 듯이 보였고, 주변의 프리깃함과 수송함들은 고목나무에 매미처럼 작아보였다.  어선들을 발견한 호위프리깃함에서 대잠헬기 한 대가 이륙하는 모습이 보였다. 김 준장은 자신이 적을 공격하면 저 어선들의 운명은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서는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표는 양륙함과 수송함이다. 항모는 아깝지만, 자체 대공화기가 있을 것이다. 목표입력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라.  포는 적 항모를 향해 발사준비! 대공전 준비!"

  발사진동이 선체를 울리고 선미의 네 발의 하픈이 연속발사되었다.발사 즉시 백구 59호는 16,800 마력의 TF-35 개스터빈을 발진시켜 방향을 동쪽으로 선회하며 이탈리아 오토 멜라라사의 76밀리 포를 쏘아댔다.포탄이 검은 하늘을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꿈결처럼 천천히 날아가 거대한 해신 1호의 흘수선 부근에 명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침수될 정도의 높이는 아니었고 항모 안에서 연속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픈은 계속 하늘 높이 상승하다가 급강하하여  수면 바로 위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항모 해신 1호와 수송함들의 레이더들이 일제히 켜지자 수 십개의 레이더에서 발사된 전파가 백구 59호를 스쳤다.

  "미사일 접근, 목표 1에 2,500 미터 남았습니다. 곧 명중합니다!"

  하픈을 처음 발사해 본 정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하픈 미사일이 마하 0.9의 속도로 천천히 목표에 접근하는 모습이 레이더 스크린에 보였다. 동시에 거대한 불빛과 보다 작은 불빛, 그리고 고속으로 움직이는 불빛으로부터 작지만 훨씬 더 환하게 빛나는 불빛이 떨어져나오는 모습이 보였다.바깥을 보니 중국 항모에서 대공포가 하늘을 향해 불을 뿜고 있었다.

  "그래, 적함대의 반응이 너무 늦었어. 수직발사기를 갖춘 대공미사일 시스팀이라도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면..."

  김 준장이 명중을 확신하자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하픈과 목표의 위치가 합해졌다.

  "목표 1명중! 적이 우리를 목표로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레이더를 맡은 수병이 김 준장과 정장을 동시에 바라보며 말하자 김 준장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

  "침로 2-0-0, 최대속도로! 디코이 발사!"

  전차양륙함 한 척이 불타오르는 모습이 어두운 수평선상에 보였다.양륙함은 탄두무게 227 킬로그램의 미사일에 맞자 크게 폭발하였으나, 즉시 침몰하지는 않고 불에 타고 있었다.그 불길을 배경으로 미사일이 날아왔다.  백구 59호가 Loral RBOC Mk-33 미끼로켓을 사출했다.  로켓은 불을 뿜으며 강력한 레이더 전파를 발사하여 대함미사일을 꼬였다.  두 발의 레이더 유도형 대함미사일이 미끼로켓을 스치고 멀어져 갔다.미사일정의 작은 선체도 적 미사일 회피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목표 2 명중, 목표 4 명중! 목표 3은 빗나갔습니다!"

  김 준장은 화가 났다. 한 발에 30억원이나 주고 산 비싼 미사일이 순발력도 별로 좋지 않은 수송함에 빗나가다니, 역시 대함 미사일은 탄두의 위력은 작지만  싸고도 명중율이 높은 엑조세가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선상에 두 개의 불빛이 추가된 모습이 김 준장의 망원경에 보였다. 불빛이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중국의 대함미사일이 또 날아왔다.

  "미사일! 레이더 호밍이 아닙니다. 하나는 텔레비전 유도방식입니다. 접근합니다."

  미사일정의 선미에 탑재된 30 밀리 포와 12.7밀리 대공기총이 접근하는 미사일을 향해 연속 발사했으나 이를 막지는 못했다. 어선들 사이로 도망하던 백구 59호에 미사일이 섬광과 연기를 뿜으며 접근했다.미사일이 명중하자 섬광이 번쩍이더니 300 톤도안되는 이 작은 미사일정은 단번에 두 조각이 나버렸다.  중국의 대잠헬기가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러 왔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어선들이 급작스런 전투에 놀라 그물을 끊고 뿔뿔히 흩어졌다.그러나 어선들의 속도는 미사일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지는 못했다.한 척씩 미사일 세례를 받아 침몰해갔다. 중국 함대 주변의 해상에는 어느새 한 척의 어선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백구 59호의 미사일공격을 받은 3100 톤급 유칸급 전차양륙함은 서서히 침몰하고 두 척의 샨급 수송함은 다른 함정들에 예인되어 제주항 쪽을 향했다. 그러나 그 중 한척이 연속 폭발하자 포기하고 한 척만 진화를 하여 계속 제주도 쪽으로 항진해 갔다. 중국함대가 떠나간 해상에는 수 백 구에 이르는 중국 상륙부대원들의 시체가 떠올랐다.

  02:40 제주항

  제주도를 지키는 육군 92연대 병력에 비상이 걸렸다. 전사한 제주 분함대 사령관 김 성우 준장이 해군사령부에 보고한 바로는  대규모의 함대와 상륙함들이 제주항을 향한다는 것이고,  바다와 하늘을 빼앗긴 상태에서 제주도를 지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제주도는 한국의 땅이었고, 군인은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긴급소집된 예비군까지 중요 거점의 방어에 나섰다. 그 때 하늘을 가득 메운 수송기들이 보였다.중국 공군기들의 1차 공습에서 살아남은 대공포들이 하늘을 향해 불을 뿜고 남제주군에 있는 대공기지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몇 대의 수송기가 한라산 자락으로 추락하였으나 대공기지는 즉시 중국전투기들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하늘이 갑자기 함박눈이 온듯 하얀 물체들로 채워졌다.  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했다.

  02:40 개성, 통일참모본부

  "진해에 있는 해군사령부의 보고입니다. 중국군이 제주도를 공격하고 있다는 내용이며 제주도에 파견된 분함대는 이미 전멸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남해함대인 제 3함대는 급거 출동하여 제주도로 항진하고 있습니다. 부산 근해에서 초계기가 적 잠수함 5척을 포착하여 지금까지 3척을 격침시켰습니다."

  한국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이 보고하자 참모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북한 공산당 주석의 암살과  인민군 9사단의 연락두절까지는 아직 긴가민가 했지만 제주도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에 이제 더 이상의 희망은 가질 수 없었다. 전쟁이었다!

  "중국이 확실하오? 우리측 피해는?"

  "제주항에 정박중인 남해함대 제주 분함대가 크게 당했습니다.중국전투기의 공격으로 제주공항의 기능이 마비되었으며,  레이더기지와 대공기지 몇 군데도 파괴되었습니다. 분함대 사령관인 김 성우 준장의 보고에 따르면, 제주항 서쪽 20킬로미터 지점에 대규모 적 함대가 제주도쪽으로 항진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심 중장이 다른 참모들의 질문에 답하다가  헛기침을 하더니 계속 보고했다.

  "김 준장이 몸소 백구급 미사일정을 이끌고 중국 함대를 공격해 양륙함과 수송함 세 척을 명중시켰다고 합니다. 현재는 소식이 끊긴 상태입니다."

  전투중 연락이 끊긴 상황이라면 전사가 거의 확실했다. 인민군 9사단장의 생사가 불명하므로, 김 준장은 확인된 최초의 장성급 전사자가 되는 셈이었다. 참모들이 신음성을 발했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비관이 퍼져나갔다.  한국 육군 정 지수 대장의 부관이 정 대장의 통신용 단말기를 급히 조작하고 손으로 짚었다.  정 대장이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급히 읽었나갔다.

  "제주도 상공에 대규모 수송기 편대가 나타나 공수부대를 낙하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점령전!"

  박 정석 상장이 비명을 질렀다. 중국의 목표가 한국 점령이라는 것이 확실해진 것이다.  중국은 한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뿐만 아니라 점령하려는 의도가 명확해졌다.

  "공군의 준비 태세는 어떻소?"

  이 차수가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참모들을 힐난하듯 한국 공군의 이 호석 중장에게 물었다.

  "불행하게도..."

  이 중장이 나쁜 짓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한국 공군에는 야간해상전을 수행할만한 전투비행단이 없습니다. 물론 공중전이야 수행할 수 있지만, 야간 저공침투를 할 수 있는  장비나 대함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일단 광주비행장에서 1개 대대의 전투기가 출격은 했지만 요격임무만을 위한 것입니다.  야간 대함 능력은 강릉의 비행단에만 있습니다만,  항속거리상 전투시간에 제약을 받게 됩니다."

  "그럼 적 상륙부대를 격퇴할 전력이 없다는 것이오?"

  이 차수가 놀라 되물었다.  현대전에서 전투기들은 전천후 능력이 요구되지 않는가? 이것은 전투기 성능과 댓수에서 빠졌지만 한국 공군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되었다.

  "제 3함대도 부산에서 출발했으나 아직... 새벽까지는 제주도에 주둔중인 제 92연대가 버텨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만약 중국군에 점령당했을 때 우리가 이를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 지수 대장이 비관론을 폈다. 한국군에도 해병대라는 상륙공격부대가 있지만 이때까지 수송수단을 미군에 의존해온 한국군은 독자적인 상륙작전 능력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리고 상륙작전은 완벽한 제해권과 제공권을 보유했을 때만 가능한 작전이 아닌가?

  02:45  추자도 상공

  광주에서 출격한 제 5 전투비행단 소속의  전투기들이 급거 제주시를 향하고 있었다. 대함무기가 없는 전투기들은 중국함대의 영해침범을 알고서도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공습중인 중국전투기에 대한 요격 임무를 맡고 출발했으나, 중간에 중국 수송기들이 공수병력을 투하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목표를 이 수송기로 정했다.

  24기의 F-16 전투기들이 편대진형을 갖추고 남쪽으로 향하던 중에 강력한 레이더의 전파를 탐지했다. 미사일 유도용의 주파수였다. 즉시 전투기 내부에 미사일 경보가 울리고 조종사는 발신지를 추적했다.

  "편대장님, 적 전투기는 보이지 않고 미사일만 날아오고 있습니다.전파원은 1시 방향 60 km, 제주도 서쪽 20 km 해상, 조기경보기입니다!"

  "이럴수가! 미사일은 미제 스패로우입니다. 40여기 접근 중!"

  아군기를 향해 오는 미사일이 반능동 레이더 유도방식(SAR)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미사일을 발사한 적기에서 유도하는 것이 아니고 훨씬 후방의 조기경보기에서 유도한다는 것을 깨달은 편대장은 당황이 되었다. 이 상태라면 아군기는 미사일의 목표가 될 뿐, 어떠한 공격도 할 수 없었다.

  "저공 비행으로 피하면서 적기를 찾아!"

  "옵니다!"

  편대장이 채프를 뿌리며 급강하를 시작하자  전투기들이 편대장을 따랐으나 뒤늦게 강하를 시작한 전투기 3기가 공중폭발했다.1기는 정통으로 명중하고 2기는 미익 바로 20미터 후방에서 폭발한 섬광에 빨려들어가 전투기가 산산히 부서졌다.

  "분산한다. 브라보대는 우측으로 선회하라!"

  한 무리의 전투기들이 갈라져 나와 서쪽으로 향했다.새로운 미사일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한국 전투기들은 조심성있게 남진했다.

  "0시 30분 방향 적 발견! 30 km 전방 저고도에 30여기입니다. 적은!"

  "적기 기종 확인했나? 뭔가?"

  편대장이 브라보대(隊) 박 소령에게 묻자 박 소령이 기가 막히다는듯 말을 이었다.

  "이럴수가... 미그-29입니다."

  최강의 방공요격기라는 미그-29!  F-16의 조종사들이 전율했다.

  "기수를 낮춰! 저고도로 접근한다."

  상대적으로 날렵한 F-16전투기로서는 근접전으로 가야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미그-29 전투기들도 폭격기의 요격전 뿐만 아니라 근접전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과시하는 최고급 전투기였다.

  "미사일 접근!"

  브라보대의 박 소령은 이 한마디만 마치고 연락이 끊겼다.편대장인 최 중령이 심각해졌다. 서쪽의 미그기를 상대해야될지, 아니면 명령대로 제주도를 지원해야될지 몰랐다. 최 중령은 명령도 중요했으나 아군의 위험을 못본 척 할 수는 없었다.

  "우측으로 선회. 공격한다. 목표 입력되는 대로 공격하라!"

  최 중령의 본대가 서쪽으로 선회하며 기수를 올리자 레이더 스코프에 적기와 아군기가 근접전에 들어간 것이 확인되었다.  아군기는 3기밖에 남지 않았다. F-16 전투기들은 스패로우 공대공 미사일 2기씩을 발사하고 접근한 후 다시 사이드와인더 2발씩을 발사하고 난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7기의 적기가 공중폭발하거나 추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그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최 중령은 막 아군기 공격을 마치고 기수를 올린 미그기를 포착해 사이드와인더를 날렸다.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바로 우측으로 선회하여 또다른 목표에 기관포를 퍼부었다.근접전을 감안하여 설계한 F-16은 미그-29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군기의 숫자를 세어보니 자신을 포함하여 5기밖에 남지 않았다. 적기는 아직 15기나 있었다. 후방감시 레이더의 요란한 경보가 울리고 바로 뒤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1999. 11. 17  02:10  평안북도 신의주 상공

  평양 북쪽 순안비행장에서 긴급발진한 통일공군소속의 MIG-29와 F-16의 혼성부대가 신의주 상공으로 급파되었다. 미그기들이 상공엄호를 맡고 F-16은 지상공격을 하는 식의 편성이었다. 남북 혼성부대 최초의 실전이라 서로에 대한 신뢰의 끈이 약해 편대장인 인민군 출신의 김 강환 상좌는 적에 대한 걱정보다는 아군에 대한 걱정이 더 많았다.

  신의주와 건너편 만주의 안둥 상공에는 전파방해가 심해 적기가 있는지조차 확인이 되지 않았다.  레이더의 유효범위가 극히 제한된 가운데 적 미사일의 경보가 울렸다.약 40km 전방에서 발견되어 아직 여유는 있었다.

  "지상공격대는 저공비행으로 신의주를 수색하라.  상공엄호조는 나를 따른다. 가자!"

  F-16 대대가 기수를 내려 저공비행을 시작하자, 이를 확인한 김 상좌의 전투기가 애프터 버너를 가동시키며 순식간에 최고속도에 도달했다. 공격하는 적기는 의외로 미제 F-14로 판명되었고, 그 후방에서 처음 보는 유형의 레이더 전파가 발사되고 있었다.  미사일은 톰캣이 자랑하는 AIM-54C 피닉스였다.

  마하 4의 미사일들이 접근해오자 미그기들이 즉시 미사일에 ECM을 걸고 방향을 바꾸었다.  미그의 전자전과 고기동에 의해 피닉스 미사일은 단 한발도 목표를 잡지 못하고  편대 사이사이를 지나 공중에서 헛되이 작렬했다. 미그기들이 급상승하여 적을 노리고 사정거리 30km의 R-40TD(나토 코드 AA-6 Acrid)를 발사한 후 즉시 급강하했다.  미사일들이 마하 4.5의 속도로 날아갔다.인민군의 미그기들은 어느새 국경을 넘고 있었다.

  미사일의 접근을 발견하지 못한 톰캣의 조종사들은  선두 전투기들이 공중폭발하고 나서야 놀라 급선회하며 하늘에 채프로 수를 놓았다.  톰캣의 미사일경보는 아직 울리지도 않았다. 미사일로부터 멀어지려 했으나 미사일이 너무 빨랐다. 하늘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R-40TD는 중거리미사일치고는 의외로 적외선 유도방식이었다.

  "매복입니다! 미사일 밭으로 들어왔습니다!"

  살아남은 톰캣에 접근하던 편대장의 헬멧 이어폰에 비명이 이어졌다. 그의 미그기에도 미사일경보가 울렸다.  김 상좌가 기수를 급히 올리며 아래를 내려다봤다.불붙은 젓가락 모양의 작은 미사일들이 지상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지옥의 겁화마냥 이들이 전투기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암람(AMRAAM :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입니다!  하지만 아래쪽엔 적기가 없는데요..."

  조종사 교환제에 의해 미그-29를 몰게된  한국공군의 이 승철 대위가 비명을 질렀다. 공대공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는데도 발사체인 적기는 보이지 않았다. 미사일에 ECM을 걸었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미그 몇대가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지상을 향해 날았다.

  "이기 AdSAM이야! 전파방해 중지, 지상에 접근하지 말라우!"

  김 상좌가 놀라 외쳤다.Ad-SAM은 원래는 공대공미사일인 AMRAAM을 지대공미사일로 쓰는 시스팀이다. 능동유도방식인 AMRAAM은 저공침투하는 적기에 효과적인 미사일이기도 하다. 적기가 전파교란을 실시할 때도 3개 포대의 레이더가 방해전파의 방향을 탐지하여 이를 컴퓨터가 자동으로 삼각측정하여 대처할수 있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 미사일에 대한 미그의 ECM은 오히려 미사일이 표적을 잡는데 도움을 주는 격이었다.  중국의 톰캣 편대가 미사일 회피에 정신없는 미그기에 접근해왔다.

  "살려야돼! 미그기를 살려야돼!"

  김 상좌는 이 비싼 전투기들이 속절없이 격추되는 것이 아까왔다. 지금 이 순간은 부하 조종사들보다는 전투기를 지켜야했다.  그의 바램은 절망이 되었다. 미익 바로 뒤에서 미사일이 폭발하고 김 상좌는 자동으로 사출되어 낙하산이 펼쳐졌다. 분한 마음을 주체 못하고 그는 가슴에 달린 주낙하산의 케이프웨이를 떼어버렸다. 원형 낙하산이 중심을 잃고 바다의 해파리처럼 하늘을 떠다녔다.검은 땅이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이 보였다.

  북한에 두 개 밖에 없는 미그-29 전투비행대대 중 하나인 이 미그 편대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F-16이 구원하러 왔다. 이 대위가 전송해준 자료를 토대로 F-16 전투기들이 야산을 넘자마자 미사일발사대가 있는 들판에 집속폭탄을 투하했다.  Ad-SAM 체계의 대응보다는 폭탄의 폭발이 빨랐다. F-16들이 톰캣편대를 향하여 자위용 사이드와인더를 날리고  즉시 남쪽 산을 넘어 예상되는 공격을 회피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미그기들이 팰콘의 뒤를 따랐다. 다시 그 뒤로 암람과 피닉스가 떼지어 날아왔다.

  1999. 11. 17  02:30  서울, 청와대

  대통령이 소집한 비상각료회의에 소집된 장관급과 군사령관들이 승용차를 타고 허겁지겁 청와대 정문을 통해 들어갔다. 상황은 대충 들어서 알았지만 청와대 정문에 서있는 전차들과 장관의 승용차에 총을 겨누는 험악한 표정의 군인들을 보고 다시 한번 몸이 얼어붙었다.

  승용차가 본관 앞까지 가는 동안 사방에 국군과 경호원, 또는 괴한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이 경숙 교육부장관은 본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전차포에 의해 처참하게 찢어진 괴한들의 시체를 보고 까무라쳐 경복궁 옆의 통합병원으로 후송되었고 몇몇 장관들은 계단을 오르는 길에 널려있는 팔다리와 내장을 보며 구토했다.

  대통령 침실이 있는 3층의 상황은 더 심했다.  일부 병력이 치우고는 있었지만 수십구의 시체와 핏자국에서 나오는 비린내가  진동하여 웬만한 비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통과하기도 힘들었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고 말하며 통산부장관이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부하들이 아직 산쪽으로 달아난 괴한들을 추적 중이라서 홍 대통령의 안위를 염려한 93경비대대장 박 중령은 대통령이 침실을 한발짝도 떠나지 못하게 제지하고 있었다. 또한 경호원과 비서실직원들도 신분파악이 끝날 때까지는 3층에 접근도 못했다.  모든 것이 아수라장이 된 마당에 믿을 것은 없었다. 삼청공원쪽에서는 가끔씩이지만 아직도 총성이 이어졌다.

  "전쟁이오. 중국의 침공이오."

  확대각료회의의 구성원들의 대부분이 대통령침실 밖의 거실에 모이자 대통령이 선언했다. 장관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승용차로 오면서 상황을 브리핑 받았지만 그때까지는 위기상황으로만 알고 있었다. 폭파된 한강다리에 막혀 돌고돌아 간신히 청와대에 도착하는 동안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보고를 듣고 장관들은 기가 막혔다.  전국이 중국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았고 특히 부산은 공습까지 당했다.이제 전쟁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같았다.

  "지금 평안북도의 통신이 마비된 상황이지만, 통일참모본부에 따르면 신의주로 출동했던  인민군 1개 사단이 전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오. 지금 한만(韓滿)국경에서는 공중전이 한창이요. 국경부근의 대공미사일 기지에서 중국기를 요격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 지역들은 다 점령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설명을 하자 장관들은 한숨만 쉬었다. 대통령이 긴급선포할 비상계엄령에 대해 장관들의 형식적인 심의가 끝나고, 계엄사령관을 정하는 문제에 들어가서는  국방부장관이 당연히 육군참모총장인 황보 영 육군대장을 천거했다. 뒷자리에 배석한 황보 대장이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며 전쟁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고 승인하려는 순간 93경비대대의 박 중령에게서 메모가 전달되었다.대통령이 모시라는 손짓을 하자 박 중령이 밖으로 나갔다.

  "북쪽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여러분."

  대통령의 말에 장관들이 일제히 출입문쪽을 보자 그쪽에는 커다란 모자를 쓴 인민군 장성이 어색한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이가 80대는 되어보였다.  북한에서도 중국처럼 나이 많은 노인들이 고위직을 점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일어서서 그를 맞았다.

  "안녕하십네까, 각하! 다행입네다."

  "주석의 서거에 애도를 표합니다. 얼마나 고초가 많으시오. 자, 자리에 앉으시오."

  홍 대통령이 대통령 바로 옆 자리에 그를 앉히고 격려하자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네다. 그래도 각하께서 무사하셔서 불행중 다행입네다."

  그는 인민군 총참모장 최 광 차수였다.최 광은 1963년 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승진했다가 반혁명음모를 묵인했다는 혐의로 1969년 탄광노동자로 숙청된 뒤에도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김일성을 감동시켜 1988년 총참모장 자리에 다시 오른 고지식한 인물이다.  최 광 차수가 북한 당주석의 죽음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주석은 중국의 동향에 대해 고위 군간부들과 함께 심야대책회의를 하던 중 중국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았는데 직접 총을 들고 끝까지 저항하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함께 있던 사회안전부장 백 계림,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 봉률, 호위총국장 이 을호, 평양지역사령관 주 도일 등 최고위 군간부들도 모두 군인다운 최후를 마쳤다고 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기가 막히다는듯 속으로 혀를 찼다.

  "각하께서 계엄령을 선포하신다는데 계엄사령관으로 뉘기를 지명하셨습네까?"

  홍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육군참모총장인 황보 대장으로 정했다고 하자 최 차수가 표정을 바꾸더니 대통령에게 간곡하게 진언했다.

  "이제 중국과의 한판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네다.  남북이 각각의 군령체계를 가질 경우 혼란은 필연적입네다. 차라리 군권을 통일참모본부에 몰아주시는 거이 어떻습네까?"

  "안됩니다!"

  국방부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장관은 긴장 때문인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왜 안된다는 것이오?"

  최 차수가 장관을 노려보자 장관이 말을 더듬으며 이유를 설명했다.

  "각하! 통일참모본부는 남북군대의 통합을 위한 임시적인 기구입니다. 전쟁을 지휘할만한 인원과 시설도 없고 그들은 그럴만한 지위에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통일수반이 나오기 전까지의 비상시에는 통참이 군령권을 가지기로 합의하지 않았소? 동지는 북남합의를 무시할 생각이오?  의장이 인민군이라고 그렇다면 당장 남쪽에서 의장을 차지하기요."

  최 차수가 소리를 지르자  국방장관이 땀을 흘리며 대통령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절대 안됩니다, 각하!"

  "음... 통일참모본부의 의장이 인민군의 그... 누구더라..."

  "이 종식 차수입니다, 각하!"

  황보 대장이 대통령의 질문에 답하며 설명을 했다.

  "진정한 군인이라고 할만한 분입니다. 수십년간 야전군 지휘관으로만 일생을 보낸 분입니다. 그리고... 통일참모본부는 합의체이므로 의장이 어디 출신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각하."

  황보 대장이 육사선배인 국방장관을 힐끗보며 그에게 기합 한번 받을 각오를 단단히 했다. 장관은 그 나이에도 육사 후배들에게 쪼인트를 까는 버릇이 있었다.며칠전 술자리에서 술버릇이 안좋다고 구둣발에 채인 정강이는 아직도 시퍼랬다.

  "그렇게 훌륭한 지휘관이라면 군지휘권을 믿고 맡기겠소. 북쪽에서도 물론 군지휘권을 수여하겠죠?"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 자칫하다간 국군 전체가 인민군에게 접수될 수도 있는 위험한 결단이었지만, 중국의 침공에 대처하는 데는 남북 모두의 결집된 힘이 필요했다. 대통령은 동족을 믿기로 했다. 국방장관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대통령을 보았다. 3년전만 해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만한 결정이었다.

  "물론입네다. 감사합네다, 각하."

  최 차수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대통령을 보았다.  젊은 대통령이 의외로 배포가 굉장히 컸다.이런 지도자가 있고 남북이 힘을 합치면 잘하면 중국을 막을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자, 이제 중국의 침략에 맞서  어떻게 우리가 대응해야할 지 토의해 봅시다. 아니, 최 차수도 같이 계세요."

  대통령이 물러나려는 최 차수를 붙들고 다시 비상각의가 진행되었다.

  1999. 11. 17  06:00  평안북도 선천 북방 10km 지점

  차 영진 중령은 불안해졌다. 적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고속으로 부대를 이동시켜도 될까 걱정되었다. 사단장은 통일참모본부의 성화에 이끌려 무작정 부대를 이끌고 신의주로 북진하고 있었다. 구 국군의 3개 밖에 안되는 기갑사단중의 하나인 제 11 기갑사단은 K-1 전차 150여대와 신형 KIFV(한국군 보병 전투차량) 및 그 파생형 장갑전투차량 200여대로 구성되어 화력과 기동력면에서 한국군 최고를 자랑하는 부대였다.  물론 미국이나 러시아, 바로 옆의 일본에 비하면 전차의 장비수는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한반도 내에서는 최고의 수준이었다. 한참 고속이동하던 부대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대대장님, 사단장님의 명령입니다. 인민군 제 9사단, 전멸 추정. 부대 현 위치에서 대기, 사주경계."

  포수 겸 통신병의 보고를 받은 차 중령은 K-1 전차의 해치를 열고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동녘엔 벌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서둘러 가더니 결국 전멸했군. 우리 사단도 마찬가지 아닐까...'

  차 중령은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자국 영토이지만 적이 어디까지 밀고들어왔는지는 전혀 정보가 없었다. 차 중령은 휘하 부대원들을 지휘,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주변 야산들은 장갑정찰차를 보내 모두 수색했다. 이 지역은 아직 적이 오지 않은 것으로 사단장에게 보고했다.차 중령이 지도를 보니 산 너머에 널따란 평원이 있었다. 기갑사단에게는 좁은 도로보다는 넓은 평원이 제격이었다.  선천(宣川)은 서해안 평야지대중에서도 비교적 산지가 많은 지역이었다. 원래 국군 제 11기갑사단은 선천 남방 5km의 150미터 고지인 독상산 아래 평야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북진을 하다보니  전차부대로서는 불리한 산지 지역으로 자꾸 들어가고 있었으나 선천 시가지를 지나 농건동에 이르자 넓은 평야지역이 나타났다. 사단장은 아마 그 벌판을 수색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설마 벌써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포수가 차 중령을 안심시키려 했으나  차 중령은 해치 아래의 포수를 보며 씩 웃었다.

  "신의주에서 여기까진 한 시간 거리라네.  인민군 9사단이 출동한 것은 벌써 6시간 전이야. 그리고 적의 특수부대가 있을지도 모르고..."

  차 중령의 말을 들은 포수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전투하면서 그렇게 빨리 전진해 올 수 있단 말인가?

  "명령입니다. 신속 전진하여 3 km 전방의 국도 우측 평원에 배치하라는 명령입니다."

  차 중령은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부대를 이동시켜 마을에 전차엄폐호를 만들어 전차를 엄폐시켰다. 차 중령의 3대대는 우익에 배치되어 부대 후퇴시 엄호를 담당하기로 했다.

  하늘엔 계속 사단 소속의 정찰헬기들이 날아다녔다. 이상하게 헬기들이 자꾸 땅에 착륙하는 모습이 보였다.  차 중령이 놀라 무전으로 사령부를 불렀으나 무선이 불통이었다.  차 중령은 급히 전령을 사단본부로 보내고 연락용 유선전화망을 깔기 시작했다.  대대 소속의 전차를 무선으로 불러보니 다행히 연락이 되었다.  각 전차중대장들에게 적의 전파방해에 대비한 지휘체계의 확립을 당부했다.

  대대전령이 돌아와서 보고하길, 현재 광대역전파방해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의 공습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차 중령은 급히 전차엄폐호를 더 깊이 파도록 하고 나무로 위장시켰다. 공중엔 한국공군의 전투기 1개 중대가 편대비행을 하며 기갑사단을 엄호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갑자기 하늘이 시끄러워졌다.전투기들이 회피기동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는데 차 중령의 눈에 아직 적의 미사일은 보이지 않았다. 전투기들이 모두 고도를 낮춰 비행하는 중에 상공에 적의 대편대가 나타났다.숫적으로 3배나 많은 중국전투기들이 보였다. 통일한국공군의 전투기대가 미사일을 발사하며 적 편대에 돌입했다.기갑사단의 대공부대는 서로 얽혀 싸우는 전투기들에게 미사일 한 발 쏘지 못하고  사태를 주시해야만 했다. 역시 숫적으로 밀리는 한국공군이 패퇴하기 시작했다.

  차 중령은 총격전의 수학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9명의 청색분대와 6명의 적색분대가 교전에 들어간다. 병력수는 50% 차이, 명중율 등이 1/3로 같은 조건이라고 보면 1회의 사격후에 청색분대는 7명, 적색분대는 3명이 남는다. 두번째 일제사격 후에는 6대 1. 병력수 50%의 차이는 수적 열세인 쪽에 파멸적인 결과를 낳는다. 9 대 6의 병력비율은 실제 전투에 있어서는 그의 제곱인 81 대 36의 전력비율이 되는 것이다.하늘은 중국의 것이 되었다.

  드디어 중국군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수십대의 수호이 24 전폭기들이 섬형 전투기들의 엄호를 받으며 나타났다. 공습은 치열했다.  기갑사단이 전 화력을 동원해 공중의 침략자와 싸웠으나  전투기와 전차의 싸움은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전투기들이 대공미사일 탑재차량들을 공격한 후 전폭기들이 전차에 대한 공격을 가해왔다.

  한국형 보병전투차(KIFV)의 차체에 대공미사일을 적재한 천마와,험비(HMMWV)의 스팅거 4발로 이뤄진 어벤저 대공사격망은 그 수가 부족하여 대규모의 공습에 버티지 못하고 파괴되어갔다. 대공망이 무너지자 속도가 느린 대형의 K-1전차들은 중국 전투기들에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파괴되었다.

  천지사방에 폭음이 메아리쳤다.  중국의 비행기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때 제 11 기갑사단에 남은 것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 전차와 수 백대의 고철 뿐이었다. 제 11기갑사단의 포병연대가 격추시킨 적기는 5대에 불과했다.

  중국 전투기들이 물러나자 평원 저편  세파발쪽에 중국군의 전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3개의 중국군 기갑사단이 밀어닥쳤다. 제 11 기갑사단장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참모들이 방어전을 고집했다.  공습을 받아 피해는 입었지만 미리 도착하여 준비한 한국군이 유리하다는 주장이었다.

  "게다가 적 전차는 구식 69형의 개량형일 뿐입니다. 이동사격이 안됩니다."

  작전참모인 대령이 주장하자 다른 참모들도 거들었다.

  "곧 물러난 우리 공군이 다시 올것입니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현재 적 선두전차 거리 2,200미터입니다."

  사단장은 위생병이 부상당한 머리를 붕대로 감싸는 중 생각에 잠겼다. 지금 물러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조금이라도 전과를 올리고 싶었다. 새까맣게 몰려오는 중국군 전차들을 보며 사단장이 말했다.

  "좋아. 공격한다. 그 전에 우리의 피해상황 파악은 끝났나?"

  "87기갑연대 중에서 전차 절반 파손, 103기계화연대 전투차량 2/3 대파, 105 기계화연대 전투차량 절반 파손, 포병 연대 전멸입니다.  포병 연대장 전사."

  부사단장이 비통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사단장이 기가 막혔으나 예상된 수치일 뿐이었다. 미국의 기갑사단 편제와 달리 한국군의 기갑사단은 3개의 전차대대와  2개의 기계화연대로 구성되었다. 전차의 수가 너무 적었다.

  "각 연대에 전달하라. 즉시 사격 개시!"

  차 중령의 제 3전차대대는 공습에 대비하여 엄폐와 은폐를 제대로 한 덕에 45대의 전차중 7대만 피해를 입었다. 5대 전파, 1대 포사격 불능, 1대는 운행불능이었다.  중국군의 전차가 다가오자 사격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사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차 중령이 바로 명령을 수행했다.

  "사격개시!"

  차 중령이 해치 위에서 마이크로폰으로 휘하의 전차들에 명령했다.기갑사단의 모든 전차가 포문을 열었고 대전차 KIFV에서 TOW-2 대전차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굉음이 울리고 불꽃이 중국군 전차들을 향해 날았다. 중국군 전차부대 곳곳에서 굉음과 함께 불꽃이 피어났다. 중국전차들이 연막탄을 쏘기 시작하자 들판이 온통 뿌옇게 변했다.중국전차들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10시 방향의 선두전차에 한방 먹여!"

  차 중령이 개별 전차의 전투에 직접 간여했다. 무기와 기술이 비슷한 경우 전술과 사기가 전투의 향방을 가름짓는다. 차 중령은 포탄과 미사일의 우박을 피하며 돌진해오는 그 전차가 신경쓰였다. 게다가 그 전차가 향하는 곳은 사단사령부가 있는 쪽이었다.

  거대한 포탑이 서서히 선회했다.  포수가 적 전차에 조준경의 중심을 맞추자 레이저가 발사되어 컴퓨터가 적 전차와의 거리와 속도를 계산하고 바람의 방향을 계산, 오차를 수정하여 자동적으로 사격을 가했다.

  "명중!"

  포수가 외쳤다. 차 중령이 망원경으로 그 위치를 보니 또다른 전차가 연기를 헤치고 드러났다.  아니, 한두대가 아니었다. 중국군은 숫적 우세를 십분 발휘하여 인해전술로 밀고 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인해전술은 아니고, 공습으로 약해진 한국군의 좌익을 집중공격하는 것이었다.

  "적은 사선진이다. 전 전차는 12시 좌측으로만 사격하라!"

  차 중령이 다급해졌다. 중국군이 집중공격하는 쪽엔 공습으로 전멸하다시피한 제 1 기갑대대와 103 기계화연대가 있었는데 사실상 전력이라고 할 수 없는 병력이 있을 뿐이었다.  방어진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차 중령이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단과의 무선통신은 또 전파방해로 불가능했고 유선은 적 포격으로 끊겼는지 먹통이었다.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중국 전차들이 좌익의 진지를 넘어가고 있었다.

  "전원 전진! 반시계방향으로 전진하여 적의 측면을 공격하라!"

  기갑사단 본부의 상황은 풍전등화였다. 애초에 구식 69형으로 알았던 중국군의 전차는 이동사격이 가능한 신형 85-II M형이었다.  이 전차의 포탑은 이 모델 전 중국전차들의 일반적 양식인  주조식이 아닌 용접식이고 복합장갑을 갖추고 있다.또한 이들은 대전차미사일에 대비하여 차체 전면에 능동반응장갑까지 갖추고 있었다.능동반응장갑은 전차의 HOT 탄이나 대전차미사일이 전차에 명중했을 때, 탄두가 장갑으로 파고들지 못하도록 폭발을 일으켜 탄두를 날려버리는 방어장치이다.

  전차포를 쏘아 명중시켜도 중국 전차가 파괴되지 않자 한국군 전차병들 사이에서 가벼운 전율이 일어났다.  말로만 듣던 반응장갑의 위력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전차원들이 공포에 휩싸여 조준이 흩트러지자 이틈을 노려 중국군의 전차들이 쇄도해왔다.

  공습으로 약해진 1 기갑대대와 103 기계화연대는 압도적인 수의 중국전차들이 몰려오자 망연자실해졌다. 이미 예비부대는 없었고 다른 부대도 자신의 앞에 있는 적과 싸우기에도 바빴다.남아있던 전차는 거의 파괴되고 보병전투차의 대전차미사일도 떨어져 본대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3대의 중국전차가 드디어 진지를 넘어 들어와 지원부대 뿐인 본대를 유린했다. 125 밀리 강선포의 위력은 전차포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강했다. 기갑보병들이 LAW로 전차의 측면과 후면을 공격했으나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중국전차에서 기관총 사격을 하여 많은 국군 병사들이 쓰러져갔다.

  차 중령 대대의 전차들이 일제히 전차 엄폐호를 뛰쳐나갔다.  좌측의 전차들은 천천히,우측의 전차들은 속도를 빨리하여 전진하며 전면의 양동부대를 격파하자 주공(主攻)의 측면이 대대의 정면에 보였다.

  "일제 사격!"

  휘하의 전차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같이 따라나선 105 기계화연대의 잔존 병력도 보병전투차에서 중국 전차군을 향해 미사일을 퍼부었다. 평지에 몸을 드러내는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모두들 좌익이 돌파당하고 후퇴도 못하는 위기에 빠지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전차들이 하나씩 불덩이가 되었다.  가끔 포탑을 선회하여 이 중령의 대대에 반격하는 중국 전차들도 있었지만, 포탑을 90도 회전 시키는 6초와 조준시간 5초, 합계 11초 사이에 제 3전차대대의 전투조준 사격으로 곧바로 침묵해갔다.

  중국의 전차부대와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차 중령이 대대 무전기를 통해 그동안의 표적중앙 조준에서 표적하단 조준을 명했다.  차 중령도 자신의 전차에서 발사한 포탄이  빗나가고 나서야  조준방식을 바꿀 것을 생각해낸 것이다. 표적 중앙을 조준했을 때 거리 400에서 800미터까지는 포탄이 표적의 상부를 최고 80 센티미터나 통과하여 불명중구간이 생긴다. 이 차이는 웃기게도 FCS(화기관제)컴퓨터에 입력되어있지 않았다.

  중국 전차들이 갑작스런 측면의 공격에 놀라서인지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물러나면서 제 3 전차대대에 집중사격을 가하자 평지에 노출된 차 중령 휘하 전차의 피해가 클 수 밖에 없었다.

  차 중령 바로 옆의 K-1 전차가 불덩이가 되어 폭발했다.차 중령의 전차에도 적의 주포가 명중되었으나 포탄은 포탑 상부에 맞고 튀어나갔다. 계속되는 전차의 피해보고가 이어졌다. 차 중령의 전차대를 따라온 105 기계화연대의 피해는 특히 컸다.애초에 전차와 보병전투차는 상대가 안되는 것이었지만 아군 전차대를 조금이라도 도와주려던 105 기계화연대장은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적이 물러나자 차 중령도 진형을 갖춰 서서히 진지로 후퇴했다.

  차 중령이 망원경으로 본진과 좌익을 살펴보았다. 남아있는 아군전차는 거의 없었고 많은 보병전투차들이 불에 타고 있었다. 전령을 사단본부에 보내 현황을 물었다.

  잠시 후 돌아온 전령은 사단장의 전사소식을 전해왔다.지휘체계가 전멸하고 남아있는 영관급 장교도 드문 편이라고 했다.  또한, 좌익과 본진은 사단 작전참모인 한 중령이 지휘를 맡고 있다고 전해왔다. 그리고 한 중령의 명령은 즉시 본부로 오라는 것이었다.지휘체계와 통신체계가 무너진 제 11기갑사단은 부대라고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차 중령의 뇌리를 스쳤다.

  차 중령은 보병전투차를 타고 사단본부가 있던 쪽으로 달렸다.  가는 길 곳곳에 불에 타고 있는 K-1 전차와 K-200보병전투차, 그리고 보병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팔다리가 날아가거나 눈을 잃은 젊은 병사들의 비명이 차 중령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몇 년씩 교육과 훈련을 받은 젊은 군인들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사한 것이다. 아니, 젊음을 만끽하지도 못하고 죽어간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다.

  사단본부에 도착하니 한 중령이 왼쪽팔을 붕대에 감고 지휘하고 있었다.  차 중령이 보니 그의 붕대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고 이상하게 팔이 짧아 보였다. 한 중령이 씩 웃었다.

  "아직 참을만 하다네."

  차 중령의 사관학교 1기 선배인 한 중령은 전차대원답지 않게 185 센티나 되는 큰 체구에 사람좋은 얼굴이었으나 지금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왼팔은 손목아래가 절단이 되었는데 지혈만 하고 진통제로 버텨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조금 전엔 고마왔네. 자네쪽 상황은 어때?"

  차 중령은 기가 막혔다. 지휘할 사람이 없어서 중상자가 지휘하다니. 한 중령은 사단내에 영관급이 별로 남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차 중령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임시로 사단을 지휘하기로 자청한 것이었다.  아직 전투력이 남아있는 차 중령이 전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패전수습에 불과한 사단장 역할을 맡은 것이다.

  "선배님..."

  차 중령은 목이 매어왔다. 그러나 적의 공격이 언제 있을지 모르므로 다시 사무적인 말투로 돌아갔다.

  "제 3 전차대대는 아직 전차 27대가 남아있습니다.  105기계화연대는 보병전투차 52대와 자주박격포 3문, APC 7대입니다."

  "음... 사단 전력의 대부분이군... 수고했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차 중령이 한 중령을 쳐다보았다.  그는 후퇴를 생각한 것이었다. 이 중령이 한숨을 쉬며 말을했다.

  "지금 아군의 증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절망적입니다. 적은 현재 우리보다 최소 10배나 많은 전차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후퇴하여 아군 증원 병력과 합류하시는게... 지금 적의 공격을 막을 병력이 없습니다."

  패배는 살아남은 자의 몫이었다. 한 중령이 차 중령을 패전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대신 짐을 진 상태였으나, 부상이 악화되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차 중령이 본부의 다른 인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젊은 중위, 대위들이 각기 연대와 대대를 맡는 상황이었다. 수십명이었던 사단의 영관급 장교들은  일부 군의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사하여 비슷한 숫자의 전쟁미망인들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모두 부대로 돌아가서 후퇴준비를 하도록, 차 중령이 후위를 맡아주겠나?"

  한 중령이 쑥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차 중령에게 부탁하듯 명령했다. 차 중령이 그러마고 거수경례를 붙이며 본부를 나서자  그의 등뒤로 한 중령이 덧붙였다.

  "우리 사단의 전력은 자네가 지휘하는 병력이 대부분이네. 나머진 부상자부대에 불과해. 사단이 해체되지 않도록 병력을 아껴주게."

  한 중령의 말뜻을 이해한 차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대의 후퇴를 위해 무리하게 방어전을 고수하지 말라는 것이 한 중령의 뜻이었다. 이 중령이 고개를 푹 숙인채 막사를 나와 보병전투차로 돌아갔다.

  차 중령은 돌아가는 길에 막강했던 때의 부대를 떠올렸다. 국군 중에서 최정예의 기갑부대로서 5개의 보병사단을 능가하는 화력을 가졌다고 자랑하던 때가 바로 어제같았다.  그러나 적의 공습과 전차부대와의 격돌 한번에 졸지에 부상자부대로 전락하여 한 중령이 사단해체를 걱정할 정도로 몰락해버린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전사자 수습과 후퇴준비에 바쁜 젊은 병사들의 어두운 얼굴들을 보아야했다.

  대대에 도착해 보니 부대 분위기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어쨋든 제 3전차대대는 적의 공격을 물리치지 않았는가? 차 중령이 지휘체계를 점검하고 후퇴준비를 명령했다. 준비작업 틈틈히 중국군의 동태를 살폈는데 중국군은 급작스런 패퇴에 놀랐는지 아니면 한국군의 후퇴를 기다리는지 공격해올 기미가 안보였다. 가끔 로켓탄이 수십발씩 날아왔으나 피해를 입을래야 입을만한 전력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 1전차대대가 선두를 서고 제 103기계화연대가 보병전투차 위에 시체를 가득 쌓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바로 뒤따르는 보급부대는 탄약 등 보급품을 모두 버리고 부상병들을 가득 싣고 있었다. 차 중령의 부하들이 다른 부대 보병전투차 위의 시체들을 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어 제 2전차대대와 포병연대의 잔존 병력들,그리고 제 105기계화연대가 후퇴를 시작했다. 이제 제 3전차대대의 차례였으나 갑자기 관측병이 적의 공격을 보고 해왔다.

  차 중령이 전차의 해치 위에서 보니 중국 전차들은 아까와는 달리 천천히 몰려오고 있었다. 포격도 없이 아군 진지를 점령하려고 오는 중국군들을 보니 울화통이 치밀었으나 패배한 부상병 부대를 가만 내버려두는게 이상했다.

  '중국군이 저렇게 신사적이었던가?'

  사관학교에서 각 군의 전략을 공부할 때, 중국군은 전술적 거점의 점령보다 중요시하는 것이 적 부대의 소멸이라고 배웠다.1개의 사단을 패퇴시키는 것보다 더 성공이라고 보는 것이 1개 연대의 섬멸, 또는 포로화였다. 중국군이 이렇게 신사적으로 패배한 부대가 후퇴하도록 내버려 둘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차 중령은 중국군의 헬기사단에 대한 생각이 얼핏 들었다. 미군이 헬기의 기동성과 화력을 이용한 공중보병 위주의 기병사단을 운영함에 비해 중국군은 서유럽 국가들처럼 대전차공격과 대지공격을 위주로 한 공격헬기사단을 운용하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중국군 장갑집단군의 휘하에는 공군으로부터 배속된 헬기사단이 편제되어 있었다.차 중령이 즉시 대공방어 태세를 명령하고 통신차를 불렀다.통신대대의 통신차 6대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통신차가 차 중령의 전차 옆에 서서 가능한 모든 주파수를 찾아 상급부대에 연락했다.

  통신차의 무전병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중국측의 전파방해를 뚫고 무궁화 6호 위성채널을 통해 통일참모본부와 연결했다.참모본부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하여 참모회의에 직접 연결했다.차 중령이 무전기를 받아 보고했다.

  "단결! 제 11 기갑사단 제 3 전차대대 차 영진 중령입니다. 중국군의 공습과 장갑군단의 공격으로 현재 거의 전멸, 후퇴중입니다. 적 헬기사단의 공습을 막아주십시요."

  "사단장은 어떻게 되었나?"

  무전기에서는 상당히 불쾌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사단장이나 연대장은 어떡하고 중령이 보고하느냐는 뜻이 담겨있었다.

  "사단 지휘부는 현재 전멸, 영관급은 저와 한 일석 중령,  그리고 군의관 2명 뿐입니다. 그리고 한 일석 중령은 현재 중상입니다."

  차 중령은 보고하면서도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우치지 못한 통일참모본부에 울화통이 터졌다.언제 중국군의 헬기사단이 공격을 가해 후퇴하는 사단의 머리위로 기관포와 로켓포를 쏘아댈지 모르는 판에 격에 맞는 직급을 찾는 군 장성들의 썩어빠진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우리 공군은 전 영공에 걸쳐 교전 중이라서 전투기를 빼내기가 어렵다. 현재 모든 국경에서 중국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쪽에는 음... 잠깐 기다려."

  무전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화난 외침도 들려왔다.잠시 후 화가 난 듯한 아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차 중령이 분노한 듯 무전기를 응시했다. 차 중령이 무전기를 땅에 내던질 것을 걱정한 무전병이 전전긍긍했다.

  "그쪽에는 전투기 1개 대대를 보내 후퇴를 엄호하겠다.  꼭 살아오도록. 참, 나는 육군의 정 지수 대장이다."

  "감사합니다. 단결!"

  의외로 호의적인 대답을 받고 차 중령은 잠시 멍해졌다. 무전기를 무전병에게 건내고 부대의 후퇴를 독려했다. 자꾸 뒷머리가 근질근질하여 북쪽 하늘을 힐끔거렸다.중국군의 헬기사단은 꼭 올것이며 후퇴하는 기갑사단을 내버려둘리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 북쪽 하늘에 굉음과 함께 수십대의 헬기들이 나타났다.  후퇴하던 대열이 뿔뿔이 흩어져 대공방어 태세에 들어갔으나 적기를 격추시킨다기 보다는 표적을 분산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대대의 모든 전차의 포탑에서 전차장들이 12.7 밀리 기총을 발사하여 탄막을 펼쳤으나 중국군의 무장공격헬기들은 기체의 장갑을 믿는지 전차대 상공에 돌입하여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전차와 공격헬기의 싸움은  20 대 1의 비율로 공격헬기가 유리하다는것이 각국 군사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고 또한 각종 시뮬레이션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격헬기의 가격이 전차에 비해 훨씬 비싸더라도 대전차전에서의 효용 때문에 각국의 군대에서는 공격헬기를 갖추길 원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군의 헬기는 수에 있어서도 제 3 전차대대의 전차의 수를 압도했다. 차 중령은 대대의 전멸을 예상했으나 앞서 출발한 기계화연대들의 안위를 위해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차 중령이 직접 기총을 잡아 쏘면서도 집에 있는 아내가 자꾸 떠올랐다. 젊은 전쟁미망인이 될 아내,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죽는 자신은 괜찮지만 아내가 고생할까 걱정되었다.  아내가 빨리 자신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피난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어 모습을 한 헬기들이 사방에서 공격해왔다.  멀리서 AT-6같은 대전차 유도미사일을 쏘아도 될텐데 중국군은 용맹성을 과시하려는 듯 접근해와서는 80밀리 로켓탄을 퍼부어대며 2A42 30밀리 기관포도 마구 쏘아댔다. 초구속도 초속 980미터의 막강한 위력을 가진 기관포가 비교적 얇은 K-1 전차의 상부장갑을 뚫었다.워낙 장갑이 튼튼한 러시아제 하복(Havoc) 공격헬기(Mi-28)들은 기총탄 몇 발 맞고는 꿈적도 안했는데 차 중령은 교묘히 헬기의 로터를 노려 3대를 격추시키고 있었다.그러나 주변을 보니 자신의 부하들은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  전차가 헬기에 대적하기에는 너무 무력했다.

  "각 중대는 인원점검하라! 몇대 남았나? 가능한 남쪽으로는 기동하지 말라. 맞아도 우리가 맞는거야!"

  차 중령이 사격 중에도  자신의 부대를 지휘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차 중령의 물음에 연이어 각 중대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중대장들은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고 소위가 보고하는 중대,심지어 중사가 보고하는 중대도 있었다. 아직은 12대의 전차가 남아있었다.

  '대규모 공격헬기부대의 공격을 받고도 아직도 12대나!'

  차 중령은 자신이 했던 시뮬레이션 게임을 생각했다.  게임에서 자신이 탄 전투기는 가상 적인 수십대의 헬기들을 파리 잡듯 하지 않았던가. 단 한대의 전투기가 아쉬워지는 판이었다. 정 대장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을 보니 또 한대의 K-1 전차가 화염에 휩싸이며 폭발하고 있었다.

  이제 제 3 전차대대는 거의 전멸하고 대부분의 중국군 헬기들은 기계화연대를 추격해갔다.  차 중령은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인지 아군을 추격해가는 헬기들의 뒤에 기총을 퍼부었다. 그러나 적 헬기들은 거의 전멸한 차 중령의 대대에는 관심이 없는 듯 무시하고 남쪽으로 날아가고 곧이어 남쪽 산 너머에서 연이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대대장님! 남쪽에는 부상자들을 가득 실은 105 기계화연대가..."

  포수인 박 중사의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헬멧의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차 중령도 경악했다.인원면에선 더 많으나 이미 전투력을 거의 상실한 부대가 압도적인 화력의 공격헬기사단의 공격을 받는 것이었다. 차 중령은 해치를 주먹으로 치며 신음성을 흘렸다. 아군이 살육 당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갑자기 남쪽에서 들리던 폭발음이 전투기의 폭음으로 바뀌었다. 아군 전투기가 도착한 것이다. 편대는 막강한 중국공군기들을 피해 저공비행을 하여 늦게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중국군 헬기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허둥지둥 북쪽으로 도망쳐오는 중국군 헬기들을 이 중령이 볼 수 있었는데  곧이어 나타난 F-16의 사이드와인더와 기관포 공격에 연달아 추락해갔다.

  차 중령이 남은 전차를 지휘하여 와우동 고개를 넘었다. 지리를 살펴 남은 전차를 적 기갑부대에  대비한 방어배치를 하고 나서 남쪽 산길을 살피니 사방에 파괴된 보병전투차와 한국군의 시체들, 그리고 추락하여 파괴당한 중국군 헬기들의 잔해가 널려있었다. 염려대로 역시 전투기들은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남쪽에 보이는 선천시가는 중국군의 포화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피난가는 민간인 행렬도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경의선 철길과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차 중령은 왜 그럴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F-16 전투기들은 헬기들을 전멸시키자  산을 넘어 중국군 기갑부대를 향했다.  그동안 승승장구하며 쳐내려오던 중국군 기갑부대는 하늘로부터의 불벼락을 맞아야했다.대지공격에 막강한 위력을 나타내는 F-16 전투기들이 대공무기가 별로 없는 중국군 전차들을 하나씩 파괴해갔다.이 중령이 산 위에서 보니 중국군의 전차들은 대공사격도 못한채 허둥지둥 흩어지고 있었다. 제 3 전차대대의 잔존 승무원들이 해치 위로 몸을 내밀어 구경하더니 함성을 질러댔다.

  러시아제 30 밀리 2연장 자주대공포인 ZSU-30-2가 움직이며 대공사격을 가했으나 저공침투한 F-16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자주대공포마저 파괴되자 중국 장갑집단군은 대책없이 파괴되어 갔다. 차 중령도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그의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전쟁은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어요.  승자든 패자든,  살아남은 자든 죽은 자든 모두 비참해지죠. 전쟁을 정치의 수단, 또는 적에 대한 이쪽 정치의 강요로 생각지 말아야 하고,  군대는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하는 것만이 이상적이죠. 전쟁은 게임이 아녀요.'

  1999. 11. 17  06:10  평안남도, 남포항

  통일해군 서해함대의 기항지인 남포항에 새벽부터 비상이 걸렸다. 통일참모본부의 훈령에 의하면, 신의주지역에 중국군이 월경 침공하여 아군과 교전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제주도가 공격을 받고 있으니, 압록강 부근 해역의 경계를 강화하라는 것이었다.

  "교전이면 교전이지 교전 추정은 또 뭔가!"

  서해함대 사령관인 김 종순 중장이 투덜거렸다.어차피 대부분의 함대 소속 군함들은 02시부터 전투초계중이었다.  이들을 집결시켜 압록강쪽으로 가느냐, 아니면 서해상의 초계를 강화하느냐를 판단해야하는데 초계기들로부터 들어온 정보로는 서해상에 중국해군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는 보고이고 보면, 압록강쪽으로 가서 함포사격으로 아군 지상군을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관이 대형스크린에 서해 북쪽의 해도를 확대한 영상을 비췄다.중국 다이렌에는 중국해군의 몇몇  구축함들이 기항하고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신의주해역에 나온 중국해군은 미사일구축함 2척 등 규모는 얼마되지 않았다. 물론 이 해역에는 가장 먼저 도착한 아군의 미사일구축함 대전함도 있었다.  단지 중국 해군의 잠수함들이 문제였는데 얕은 서해 바다에서는 잠수함의 발견이 쉬워 실제적인 위협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집결지는 북위 39도 32분 동경 124도 30분 정도가 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 중장이 살펴보니 그곳은 평안북도 철산군 남쪽에 몇 개의 섬이 있는 얕은 해역이었다. 신의주 서남방 40 km정도에 있는 그곳은 아군함대가 집결하기에도, 지상군을 지원하기에도 좋은 위치였다.

  "전 함대 집결토록 연락해.  참, 충북함은 계속 초계임무를 수행하도록 내버려 둬. 혹시 모르니깐.  그리고 대전함은 현 위치에 대기시키도록!"

  "옛! 연락하겠습니다."

  김 중장은 충북함에 대해 생각했다. 외국에선 프리깃함으로 분류되는 한국해군의 미사일구축함, 함령이 50년이 넘은 고물이었지만 그래도 인민군의 여느 함정보다도 배수량이 크고,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결과 전자전용 장비와 무기체계가 고도화되어 인민군이 작전 지휘권을 갖고 있는 서해함대의 기함이 될 수 있었다.그러나 대공, 대함, 대공전에서 통일 서해함대 최강의 함인 이 함정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중국해군의 도발에 대비하여 서해상을 계속 초계하도록 두기로 했다.

  자신은 동급의 전북함에 타기로 결정했다.충북함과 같은 미군이 1945년경에 취역한 낡아빠진 기어링급 구축함이었지만, 1998 년의 대대적인 개수를 거쳐 대공미사일도 탑재한 막강한 함이 되었다.  인민군 출신인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사령관은 통신체계가 잘된 함정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은 핑계에 불과했고 생존성이 높은 함정이기때문에 자신이 그 함정에 승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신의 비겁함을 부하들이 눈치챌까 두려웠다.

  창문을 열고 동트기 전의 항구를 살펴보았다. 벌써 초겨울의 북녘 하늘엔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각 함정들이 불을 밝히고 출동준비에 부산한 모습이 보였다. 이제 전쟁이라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11. 17  06:40  신의주 서남방 50km 해역

  한국군으로부터 배속받은 구식 초계기 P-3C 오라이언들이  함대 선두로 날았다. 바로 뒤에는 한국 구축함에서 발진한 대잠헬기 4 대가 따르며, 있을지도 모를 바다 속의 위협에 대비했다.  중국의 영해에 가까운 해역이라  중국 공격기들의 공습에 대비한 대공진형으로 함대를 편성해 전진했다. 동쪽 수평선 섬 사이로 뜨는 일출은 언제 봐도 장관이었다.

  전쟁통에도 불구하고 고깃배 세 척이 이른 아침부터 조업이 한참이었다.  아니, 밤새 어로작업을 하고 이제야 항구로 돌아가려고 그물을 걷는 모습이라고 김 중장은 생각했다. 어렸을 적 바닷가에서 동무들과 놀던 기억이 새로왔다. 바닷가에서 놀다가 지나가는 배를 보며 손을 흔들었지만 배는 아이들을 못본 척 지나갔었다. 그게 안타까와서 김 중장이 승선 중에는 꼭 망원경으로 해안에 아이들이 있나 살피고,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 기적을 크게 울려주곤 했었다.

  북진할수록 전파방해의 강도가 강해졌다. 아니, 강해진다고 초계기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대는 완벽한 전파관제를 하고 함정끼리의 연락은 점멸등으로만 하고 있었다. 목표해역까지 5마일, 20노트의 속도로는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가면서 소형 경비정들까지 함대에 합류해왔다.  2척의 울산급 프리게이트함, 3척의 포항급 코르벳함,기타 30여척의 초계정과 경비정들이 이번 작전에 참가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모이는 것은 근래에 없던 일이어서 함대운용에 애를 먹어야했다.

  김 중장으로서 속상한 것은 한국 해군의 신형구축함은 모두 남해함대와 동해함대로 빼돌려 자기 휘하엔 한 척도 없다는 것이었다.중국은 해군이 상대적으로 낙후했으므로  중국의 위협에 대비한 서해함대는 구식 미제 기어링급이나 알렌 섬너급의 구축함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으나, 이는 인민군 수중에 비싼 한국형 구축함을 맡기지 않으려는 한국군의 술책으로 보였다.

  김 중장은 중국의 해군전술을 생각했다.  연안해군에서 대양해군으로 발돋움한 중국해군은 내전과 대만 침공을 계기로 전술과 무기체계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고 생각했다. 미 지상군의 공륙전을 빼다박은 항공기 운용기술은 배울만했다.  그리고 중국의 잠수함들은 특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재래식 잠수함 100여척뿐만 아니라 핵잠수함도 10여척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김 중장은 불현듯 핵미사일이 생각나서 몸을 떨었다.

  '중국 잠수함에서 핵어뢰 한발만 발사하면 함대 전멸...'

  이런 생각이 들자 함대를 더 넓게 분산할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대잠초계망을 넓히다가는 적 잠수함이 함대 중간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날엔 함대에 치명상을 입게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단 핵에 대한 우려는 떨쳐버렸다.

  '중국은 핵을 사용하지 않으리라...'

  11. 17  07:00  개성, 통일참모본부

  "중국은 핵을 사용하지는 않을겁니다."

  "당연하죠. 통상전력만으로도 우리의 몇배인데..."

  인민군 장성의 말에 양 중장이 가볍게 응수했다. 참모본부 최고의 고민은 중국이 혹시나 핵을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였는데,  대부분의 참모들과 군사전문가, 또는 정치학자들의 견해는 부정적이었다. 중국이 먼저 침공한 경우, 또는 최소한 중국 국경의 일부가 침공당한 경우라도 중국은 핵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북경을 점령할 정도가 된다면,그래도 중국이 핵을 쓰지 않을까요?"

  토론을 지켜보던 이 차수가 미소를 지었다. 젊은 사람이라 패기가 있다고 양 중장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니, 남조선의 자유분방함이 저런 사나이의 기백을 키워준다고 생각했다. 공화국의 젊은이들은 너무 패기가 없어... 하고 이 종식 차수는 자신의 젊은 날들을 떠올렸다.

  조국해방전쟁 직전에 의용군으로 소집되어  군사훈련을 훈련받던 일, 치열했던 전쟁,미군 비행기들의 잔인한 폭격,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조국을 재건했던 일들... 그러나 요즘의 공화국 젊은이들은 사회주의에 안주하고, 최근의 통일과정에서는 남조선에 대한 패배감에 사로잡혀 기백을 잃었다고 안타까와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일단 적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난 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우선 적의 위치와 규모부터... 제주도는 어떻게 되었소?"

  이 종식 차수가 의장답게 급박한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 해병대가 북제주항에 상륙하여 현재 치열하게 교전중이라고 합니다. 제 2함대는 아직 제주해역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제주 상공에서는 현재 공중전이 치열하답니다. 적기 25기 격추에 아군기 피해 17기 입니다."

  양 중장이 종합하여 보고했다. 아직 지켜볼 일이었다.

  11. 17  07:10  신의주 서남방 40km 해상, 전북함

  "초계기로부터 보고, 추정 적 잠수함 발견!"

  대잠전 사관이 적 잠수함의 위치를 해도상에 표시하며 보고했다.전북함의 함장인 장 태석 중령이 해도를 보니 철산군 가도의 부속 섬이었는데 섬 뒤쪽의 수심은 50m에 불과했다.

  "아니, 이런 수심에 어떻게 잠수함이?"

  "초계기로부터의 육안발견 보고입니다.  오라이언이 대잠폭뢰를 투하할 수 있도록 교전명령을 내려 주십시요. 대잠경보 발령!"

  대잠사관이 냉철한 어조로 물은 다음 함대에 비상을 걸었다.  함장이 함대사령관의 눈치를 보았다. 김 중장도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당연히 공격해야합니다. 영해 안쪽입니다. 잠수함은 우리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 중령이 함대사령관의 명령을 기다렸다.  김 중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직도 전쟁이 일어난게 확인이 안되었는데 적 잠수함이라니, 자신은 공격명령을 내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초계기로부터 보고, 적 잠수함 이동중! 음파 탐지했습니다. 함종 파악! 밍급으로 분류됐습니다."

  무선병이 서둘러 보고했다. 밍급은 잠수배수량 2100톤급으로, 70년대에 취역한 구식의 소형 재래식 잠수함이지만,  현대화 프로그램에 따라 최신의 전자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의 공식 제식명은 035식 잠수함으로, 9척이 동해함대(한국에서 보면 서해)에 소속되어 있다.

  "아! 잠수함에서 전파 발사!"

  무선병에 이어 전자전 사관이 고개를 돌려 사령관을 채근했다.  적이 만약 함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면,  미사일 요격체계가 허술한 함대 입장에서는 큰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잠수함의 전파는 함대를 미사일로 공격하기 위한 레이더파일 수도 있고, 자기편에 함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연락용 주파수대일 수도 있었다. 양쪽 모두 함대에는 위험했다.  무선병은 잠수함이 발신한 전파가 연락용 주파수라는 것을 알았으나 일부러 보고하지 않았다.

  "공격을 허가한다."

  김 중장의 일성이 터져나왔다.

  "공격하라!"

  대잠사관이 함장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초계기에 연락했다.

  "초계기에서 어뢰발사, 현재 수중항주중! 잠수함은 3-2-5로 도주중... 어뢰와의 거리 600..., 명중합니다!"

  무선병이 야구중계하듯이 보고했다.  잠수함이 함대의 소너에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전북함의 대잠팀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다.

  "아, 명중!"

  이번에는 무선병의 보고보다 소나 담당 하사관의 보고가 빨랐다.

  "초계기에서 보고, 적 잠수함에 어뢰 명중, 해상에 부유물 다수,  기름띠 누출! 확실하게 명중한 것으로 확인!"

  무선병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추가 보고를 했다. 첫 전투에서의 승리는 뭔가 좋은 것을 예고하는듯 했다. 함교의 모든 승무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승무원들의 사기가 높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김 중장은 생각했다. 잘 모르는 상대와의 첫 전투, 특히 그것도 강한 것으로 생각되던 적이 별거 아니란 것을 부하들이 알게된 것은  다음 전투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잠초계를 강화하라. 무선병은 통일참모본부에 보고를!"

  김 중장은 내해 깊숙히까지 중국 해군의 잠수함이 왔다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어차피 현재 우리 해군의 능력으로는 중국 잠수함들의 영해 침범을 사전에 막을 능력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전략목표인 군항 등에 대한 방어와 함대 방어, 그리고 중요 물자수송에 투입되는 상선들을 보호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아까 잠수함에서 발사한 전파는 뭔가?"

  김 중장이 궁금해서 물었다. 워낙 경황중이어서 초계기에서도 보고를 못한 것이다.

  "해주 상공의 E-2C에서 연락입니다. 신의주 상공에 추정 적 항공기 1개 사단, 침로 2-3-0! 현재 아군 요격부대 출동, 접전 직전!"

  또다른 무선병의 보고에 모두들 놀랐다.  그 침로의 연장선에는 바로 자기들 함대가 놓여있었다. 40 km라면 초음속기의 속도로는 2분이면 닿을 거리였다. 아니,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충분한 거리이기도 했다.함대의 위치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만 있으면.

  "대공경계 발령! 모든 함대 반전, 분산, 대공 요격태세를 갖추라!"

  김 중장이 분노했다. 중국은 잠수함 전대를 서해 연안에 침투시켜 무음잠행케하여 아군 함대의 위치를 찾은 것이었다.잠수함의 보고와 전북함의 무선을 도청한 적은 쉽게 함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의주지역의 이상사태에 대해 아군 해군이 집결하여 접근할 것이라는 것도 사전에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공방어력이 취약한 함대 입장에서는 미리 준비된 함정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했다.  전북함이 급히 방향을 틀었다. 다른 함정들도 좌우로 돌려 오던 방향으로 침로를 바꿨다.

  "대전함에서의 보고입니다. 적 항공부대 접근,  적 미사일구축함 2척 접근중!"

  무선병들의 보고가 연이었다.

  "대전함은 선제 공격하라! 대전함이 위험해, 공격 후 그 해역을 탈출하도록!"

  김 중장이 급박하게 명령했다.함대의 모든 대공미사일 발사기와 대공포가 북동쪽을 향해 돌아갔다.

  11. 17  07:20  신의주 서남방 30km, 대전함

  대전함의 함장 이 완호 중령은 자신의 판단을 후회했다. 신의주에 대한 대규모의 상륙전이 예상되어  적 상륙부대를 습격하기 위한  위치를 잡기 위해 적의 공격권에 너무 많이 들어서 버린 것이었다.지금은 적의 공대함, 함대함, 지대함의 모든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직 발견 못한 적 잠수함이 자신의 배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난감해졌다.

  함대의 기함에서 급전이 날아왔다. 적에게 선제공격을 가하라는 명령이었다. 레이다에는 적기들이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이 중령은 잠시 생각했다.적은 자신의 함정보다는 함대를 노릴 것이므로 적기들이 조금 더 가까이 온 후에 대공미사일을 발사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현 180도. 전속반전!"

  함장의 명령에 따라 함이 급반전했다. 대전함은 점점 속도를 내어 중국 구축함이 있는 남서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거리 15km, 적 위치 변함 없습니다. 멈췄습니다!"

  해상레이더를 담담한 준위가 외쳤다. 여기서 적은 대함미사일을 발사할 것인가 이 중령이 자문했다.  적 구축함에 접근할수록 공대함미사일에 대한 위협을 줄이는 대신, 적함의 함대함 미사일에 공격당할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이 중령은 다시 한번 중국 구축함들의 무기체계를 검토했다.

  '루다급 구축함 지난, 만재배수량 3670톤,  HY-2 장거리 대함 미사일에 YJ-1 잉지(鷹擊) 중거리 대함 미사일, 어뢰, 대공방어는 2연장 25밀리 대공포 4문에 탑재 헬기는 하르빈 Z-9A...  같은 급 구축함 카이펭, 배수량 3300톤, 지난호와 대동소이...  탑재헬기 대신 크로타일 대공미사일... 지난은 대함, 카이펭은 대공이라... 서로 보완관계로군.'

  "대공미사일은 적함의 예상되는 대함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라. 적함과의 거리는?"

  "지난 12 km, 카이펭 14 km입니다. 아, 목표들 반대쪽으로 급속이동! 현재 20노트로 계속 가속중입니다. 도주 중입니다!"

  적은 아무래도 공대함미사일로 공격할 모양이라고  이 중령은 생각했다.해상전에서는 아무래도 대전함이 유리하다고 중국해군 지휘부에서도 판단했을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속 추격하라. 적기의 거리는?"

  "현재 북동쪽 25 km입니다. 고도 2천미터, 현재 음속돌파!"

  "하픈 4기 발사! 각 목표마다 2기씩 발사하라. 발사와 동시에 ECM 실시!"

  함장의 명령에 따라 함 중앙에 있는 8연장 미사일발사기에서 하픈 함대함 미사일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하얀 꼬리를 물고 날아올랐다가 방향을 틀어 적함을 향해 날아가는 하픈미사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적함은 이 미사일을 피하지 못할것이라고 이 중령은 단언했다.

  대전함(DD-918)은 충북함과 같이 기어링급 구축함으로서 1945년에 진수되어 함령이 50년을 훨씬 넘어가는 구식 함정이었다. 통일해군에서는 이런 대형함을 퇴역시키기 아까와서 엔진을 교체하고 탑재 병장을 대폭 교체하여 현대 해상전에 적합한 수준까지 개조했다.  그러나 함령이 지나치게 많아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완벽한 수준의 구축함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 많은 함이었다. 그러나 전년도의 개조로 인해 중국의 미사일 구축함보다는 해상전에서 유리한 입장이었다.

  "대공미사일 연속발사! 3기를 제외한 전 미사일을 발사하라."

  대함미사일의 발사를 확인한 함장이 명령했다. 적기들은 틀림없이 함대를 노릴 것이므로 적의 공격 전에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아군함대에 대한 피해를 줄이자는 생각이었다. 함수의 수직발사기에서 12기의 시스패로 대공미사일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다. 시 스패로 대공미사일은 16기가 1조로 되어있는 수직발사 미사일시스팀인데 발사기 하나는 미사일 재장전을 위한 기중기가 탑재되어 있어 실제로 대전함은 1회에 최대 15기의 함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

  "적기 미사일 발사, 현재 50기.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사일담당 하사관이 비명을 질렀다.  함장은 이 모든 미사일이 전부 대전함을 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러나 틀림없이 대전함을 노린 미사일도 있을 것이다!

  "하픈 목표 2 km 남았습니다. 아, 적함에서 채프발사. 적함의 위치가 레이더에서 흐려 지고 있습니다. 카이펭에서 미사일 발사! 하픈에 접근합니다."

  "좋았어, 이제 크로타일로는 하픈을 잡지 못해! 하픈 2기 추가발사하라."

  함장의 명령에 함이 진동하며 대함미사일이 추가로 발사되었다. 적함을 일단 따라 잡으면 항공기들이 발사한 공대함미사일의 방패막이 되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공대함미사일 접근, 0-5-5, 현재 200기, 그중 12기는 본함을 향하고 있습니다! 거리 12 km!"

  레이더 담담하사관이 울부짓듯 외쳤다. 함장은 만약 함이 살아돌아간다면 저 겁쟁이 대공레이더 담당하사관을 갈아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프 발사"

  "카이펭 명중! 2기 모두 맞았습니다. 지난 명중! 한 발은 빗나갔습니다. 적 미사일 1기 접근중. 6km!"

  해상레이더를 담당한 준위가 외쳤다. 이제 해상의 위협은 제거되었으니 상공의 위협에만 대비하면 된다고 함장은 생각했다.채프로켓이 발사되어 함 주위는 수많은 알미늄 박판으로 뒤덮였다.

  "우현 미사일 접근! 지대함미사일입니다! 거리 3km!"

  항해장교가 망원경을 들고 외쳤다.  함장이 급히 우현쪽을 보니 수평선 위에 까만 물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이 지대함미사일이었다.이것들은 저공으로 날아와서 보이기 직전까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틱스형 지대함미사일이었다.

  "대공방어! 우현으로 오는 놈들부터 요격하라!"

  함미에 있는 20 mm CIWS가 불을 뿜었다. 가장 최근에 장비한 이 레이더와 연계된 대공포가 제 위력을 내줄지가 함장으로선 불안했다.그리고 함에서 발사한 채프 때문에 레이더의 기능이 떨어져있는 상태여서 과연 R2D2로 불리는 이 짱구같이 머리가 큰 팔랑크스 벌컨 개틀링포가  기능을 제대로 다해줄지 의문이었다. 대공포와 함께 단장속사포도 미사일요격에 가세했다.  수 십 발의 포탄이 미사일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현재 공대함 미사일 11기 급속 접근, 거리 5 km!"

  "대공미사일 발사! 공대함 미사일만 요격하라.  채프 2기 추가 발사! 좌현 90도 급선회! 왼쪽에 보이는 섬 뒤로 숨어!"

  함장은 함에 배치된 모든 무기를 써버릴 생각이었다. 이 해역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곤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현재로서 대전함은 공대함, 지대함, 함대함 미사일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적 잠수함까지 가세한다면... 아니,  적 잠수함은 있다고 해도 본함을 공격할 필요도 없겠지...'

  "함대함미사일 2km까지 접근. 아!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빗나갑니다."

  레이더 담당 하사관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어차피 구형인 중국의 응격 함대함 미사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함장은 생각했다. 문제는 공대함미사일이었다.  비교적 명중율이 높은데다가 채프에 얼마나 속아줄지가 불투명했다. 게다가 커다란 함대공 미사일에는 잘 맞지 않을 것이분명했다.

  대전함에서 그 전에 발사한 대공미사일에 중국군의 항공기 7 대가 명중했다. 12기를 발사했으니 반타작은 한 셈이었다. 순발력이 별로 없는 함대공미사일로서는 괜찮은 전과였다. 하지만 적기는 구형 미그-19기의 개량형인 싸구려 J-5 공격기에 불과했다. 이들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소속인데 총 600기의 해군 전투기 중에서도 현대 공중전에 적응하기 어려워지자 주로 대함미사일 발사체로서만 활동했다.

  대전함이 좌로 급선회를 하며 연이어 채프로켓을 발사했다. 평소같으면 금방 도착할 듯하던 작은 섬이 너무나 멀어보였다. 대전함은 최고속도로 항진했다.

  "공대함 미사일 쇄도!! 10기 접근! 거리 1000!"

  대공레이더 하사관이 거의 비명을 질러댔다. 상황판단과 명령 내리기에 바쁜 함장이 더욱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느낌이었다.

  "디코이 사출!"

  함 전체를 진동시키며 레이더 전파와 다량의 적외선을 발산하는 미끼로켓이 발사되었다. 채프가 대량의 알미늄 박지나 유리섬유에 알미늄을 코팅하여 레이더파를 반사하는  수동적인 미사일 방어 도구라면 디코이 로켓은 레이더파와 적외선을 강하게 내는 적극적인 방어수단이다. 드디어 대전함이 섬 어귀에 도착했지만  중국군 미사일도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하였다. CIWS가 미친듯이 불을 뿜었다.  함장이 돌진해오는 미사일을 이를 악물고 노려보았다.

  "좌현 미사일 접근!"

  11. 17  07:40  전북함

  "대전함으로부터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통신사관이 보고하자 함대사령관이 물었다.

  "전파관제중이었나?"

  "아닙니다. 적 공대함미사일의 요격을 위해 레이더를 가동중이었습니다. 적 미사일 접근중, 거리 6700."

  함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함대사령관 김 중장이 잠시 창밖을 보더니 명령을 내렸다.

  "섬들 사이에 숨어. 적기들은 다 돌아갔나?"

  "미사일 발사 후 돌아갔다는 보고입니다. 아군 요격기들은 적기와 교전하지도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미사일은 엑조세의 중국형으로 추정됩니다만, 현재는 액티브 호밍을 하지 않고 관성유도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섬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습니다. 섬에 접근중입니다."

  통신사관에 이어 함장이 종합해서 보고했다. 함대사령관은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자꾸 서쪽 하늘을 쳐다 보곤 다시 섬들을 보았다. 먼저 선발대로 도착한 고속경비정과 포항급 코르벳함이  철산군 가도와 대화도 중간의 섬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두 척 모두 섬 사이의 해역에 들어가자 마자 섬광을 발하며 폭발해버렸다.

  "목표해역에 기뢰 다수! 앗! 부천함과 백구 53호 피침!"

  소나 담당 하사관이 뒤늦게 기뢰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비명을 질렀다. 부천함과 경비정은 앞서 갔음에도 소나의 성능이 떨어져 기뢰의 존재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격침되고 말았다.배수량 1,220톤의 부천함이 두 조각이 되어 바다 속으로 침몰해 들어갔다. 해군 현대화계획에 따라 1990년에 건조된 신형 코르벳함인 부천함을 잃자 함대사령관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미사일 접근! 거리 3200!"

  "초계기를 섬 사이로 보내 적 잠수함을 찾아! 소해정 선두,모두 일렬 종대로! 레이더 기구 발사!"

  김 중장은 미사일이 접근해오자 함대에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각오하고 연이어 명령을 발했다. 점멸등과 수기가 바삐 다른 함정들에 연락을 보내자 함대는 순식간에 일렬종대 대형을 이뤄 섬 사이로 들어갔다. 함대에 두척뿐인 소형 군산급 소해정(MSC-268/219)들이 선두에 나서서 기뢰가 없는쪽으로 함대를 유도했다.

  북쪽 하늘에서는 수많은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었다. 프랑스제 엑조세를 복사한 것과 같은 비어(飛魚) 미사일들이  수면을 헤치듯 낮게 떠서 섬쪽을 향했다. 그러나 이미 함대는 섬 사이로 숨어들어가서 목표를 찾지 못하자 레이더에 크게 비친 섬이나 채프의 구름, 또는 레이다발사체인 미끼로켓을 향해 날아가 헛되이 작렬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이 예상한 그대로이며 해전은 중국 잠수함들을 만나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잠수함 세 척을 발견했습니다. 본 함에서 3-2-0, 3-9-5, 0-5-7에 각 한 척, 각기 거리 1500에서 1700, 심도 20미터!"

  "현재 이 해역에 아군 잠수함의 활동 보고된 바 없음!"

  대함미사일을 피하고 기뢰를 피하며 함대가 섬 사이를 빠져나오기 직전에 초계기의 보고를 받은 대잠전사관에 이어 통신사관이 연이어 보고했다. 함대사령관은 먼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이 섬들 사이의 평균수심은 40미터가 채되지 않았다. 한강이나 대동강에 잠수함이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병기사용 허가, 각함 공격하라!"

  함대에서 아스록 대잠로켓과 어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전북함은 적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피하기 위해 최고 속도인 35노트까지 가속했다.이 속도면 함에 탑재한 소나가 기능을 상실할 정도였지만 적 잠수함의  위치파악은 초계기에 의존해도 충분했다. 당장은 어뢰로부터의 회피가 중요했다.  모든 함대가 예상되는 적의 어뢰공격에 대한 회피행동을 개시하며 중국 잠수함을 공격했다.

  "전방을 향해 포 사격 개시! 기뢰부설 잠수함들입니다. 제독님."

  갑자기 장 중령이 외쳤다. 잠수함의 심도가 워낙 낮아 함에 탑재한 2기의 127 밀리(54구경, 5인치) Mk-45 단장포가 위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격을 명령한 것이다.  Mk-45는 매분 20발의 발사속도를 갖는다. 함장의 명령에 따라 127밀리 단장포뿐 아니라 CIWS까지 사격에 가세했다.  전북함에서 발사한 포탄으로 바다 표면이 온통 하얗게 튀었다.

  미리 해역에 대기했던 중국 잠수함들이었지만  워낙 빠른 서해함대의 대응에 놀라 공격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침몰해갔다.  이 잠수함들은 대함 미사일을 갖추지 않고 어뢰공격과 기뢰부설을 전문으로 하는 통상형 잠수함이었는데 섬 사이의 기뢰부설을 마치고 섬들을 빠져나오는 입구에서 서해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수함이 공격하기 전에 미리 발견한 덕에 위기는 넘겼지만 그래도 중국 잠수함과의 접전은 함대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장 중령은 한국해군의 209급 잠수함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다.

  초계기와 탑재헬기들은 갑작스러운 아군 함대의 포 사격에 놀라 기수를 올렸다. 대잠전은 적 잠수함이 발산하는 음파를 파악하여 적의 위치를 잡아 공격해야 되는데 이처럼  해상에 포를 발사하여 잠수함을 공격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전북함의 탑재헬기인 영국제 알루트 III이 음파탐지를 포기하고 자기변화탐지기(MAD)로만 적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초계기 오라이언이 투하한 소너부이에 잠수함이 발견되자 어뢰를 발사했다.첫발은 빗나갔으나 두번째 발사한 어뢰가 잠수함에 명중하여 바다 표면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잠시 후 초계기의 어뢰공격에 1척, 전북함의 127밀리 단장속사포에 1척, 울산급 프리깃함인 서울함의 Mk-46 어뢰공격에 1척 등으로 해서 섬 주변 해역의 잠수함 3척은 모두 침몰시켰다. 김 중장은 국군 해군의 대잠능력에 놀랐다. 인민군 해군은 잠수함에 많이 의존하고, 대형함이 없이 어뢰정이나 미사일고속정 등만 유지했기 때문에 대잠능력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초계기로부터 보고,  0-1-0, 거리 5,000에서 7,000에 적 잠수함 5척 발견!"

  통신병이 외치자 함장인 장 중령이 적의 연속된  공격에 대응하여 즉각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방향으로 아스록 대잠미사일 발사! 감속 20노트로, 침로 0-1-0"

  김 중장이 미처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전황이 시급하여 장 중령이 함장의 권한으로써 공격명령을 내린 것이다.  김 중장은 비로서 함대사령관으로서의 역할을 생각해냈다.  함대 소속의 대잠 헬리콥터들이 목표해역으로 비행해갔다.

  "목표 1, 0-1-0, 거리 5500, 20노트의 속도로 2-2-5로 진행.  잠망경 심도, 발사! 목표 2, 0-1-5, 거리..."

  대잠전(ASW)사관이 각 공격목표에 대한 해석치를 내며 공격을 지휘했다. 함미의 8연장 아스록 대잠미사일발사기에서 로켓이 연속발사되었다. 기어링급 구축함들은 원래 Mk-46 대잠어뢰발사관을 갖추고 있었으나 해군 증강계획에 따라 차차 아스록 대잠로켓을 갖추게 되었다.

  해역의 심도가 낮아서인지,아니면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해서인지 어쨋든 중국의 잠수함들은 모두 잠망경 심도에 머물고 있었다.마지막 8번째 대잠 로켓을 막 발사한 순간 전북함의 함수가 섬광에 쌓이더니 충격파가 전해져왔다. 폭발음은 들리지도 않았다.  전북함의 감속이 너무 늦어져 아직까지 소나기능이 회복되지 못해 미처 기뢰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김 중장은 충격에 정신이 없었다. 겨우 일어나 상황을 보니 대부분의 함교 요원들은 벌써 자신의 전투위치에 있었다.

  "기뢰에 피함됐습니다. 함수가 침수 중! 화재발생!"

  "침몰한 적 잠수함 주변에도 기뢰가 있었습니다. 속았습니다!"

  대잠전사관이 분통을 터뜨렸다. 함대사령관 김 중장과 다른 사관들은 쓰러졌다가 바로 일어났지만 장 중령은 일어나지 못했다.충격파에 쓸려 5 미터를 날아갔는데 머리를 벽에 부딪혀 그만 뇌진탕으로 쓰러진 것이다.

  "함장님 전사! 의무병!"

  이제서야 함장의 이상을 깨달은 항해사관이 비명을 질렀다.그러나 의무병을 부르기에는 함이 너무 위태했다.  만재배수량 3,470톤의 전북함은 함수부터 침몰해가기 시작했다.

  아스록 대잠미사일은 전북함으로부터 발사되어 약 5km를 날자 추진을 멈추고 탄두부분에서 낙하산이 펼쳐져 바다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속도를 줄여 천천히 착수한 다음 어뢰가 되어 목표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중국잠수함은 너무 놀랐다. 설마 한국함대가 이렇게 빨리 대응해오리라고는 예상 못한 것이다. 중국잠수함들도 서둘러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진수한지 너무 오래되어 핵탑재 전략잠수함의 역할을 하기 부적합하다는 중국해군 지휘부의 판단에 따라 최근부터는 공격형잠수함으로 역할이 바뀐 한급 핵잠수함들이었다.

  중국 한급 잠수함 405함은 목표에 대한 데이터를 최종 입력하고 잉지(응격 : 鷹擊)레이더 호밍 미사일을 막 발사하려는 순간에 전북함이 발사한 어뢰가 돌진해왔다. 405함의 함장은 미사일 발사를 포기하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이 해역의 심도는 너무 낮았다. 어쨋든 최고속도를 명했지만  막 속도를 내기 시작한 잠수함은 어뢰의 속도보다는 훨씬 느려서 점점 거리가 좁혀져왔다. 함장은 최후의 수단을 강구했다.

  "부상! 허수아비 2기 발사!"

  즉시 부상을 시도하고  어뢰 회피용 소음발생장치를 발사했으나 이미 늦었다.  어뢰는 도망가는 잠수함의 스크루 부분에 명중해 함미가 산산조각이 났다. 불행한 중국의 5천톤급 핵잠수함은 공격도 못해보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잠겨들어갔다.  다른 네 척의 중국 잠수함도 운명은 마찬가지였다.  한 척은 간신히 전북함의 어뢰를 피했지만 해역 상공에서 선회중인 대잠헬기의 공격은 피하지 못했다.디핑소나를 바다 속에 넣고 정확한 잠수함의 위치를 찾고 있던 전혀 군용헬기 같지 않은 모습을 갖춘 MD-500D 헬기가 필사적으로 도주중인 잠수함에 앞부분이 납작한 Mk-46 어뢰를 발사하여 잠수함의 기능을 상실시켰다.옆구리에 어뢰를 맞고도 필사적으로 부상을 시도했으나 서울함의 76밀리 단장포가 불을 뿜었다.

  구명정 안에서 함대 사령관 김 중장은 침몰해가는 전북함을 바라보았다. 기습당한 함대치고는 잘 싸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함장인 장 중령의 시신을 수습치 못한 것이 너무 죄스러웠다. 천천히 일어서서 함미만 남은 전북함에 거수경례를 올렸다.  다른 사관들과 수병들도 같이 거수 경례를 했다.잘 싸워준 전북함과 함장 장 중령을 생각했으며 다가올 싸움은 더 치열할 것이란 걱정이 앞섰다.어쨋든 자신들은 승패를 떠나 살아 남은자들이었다. 산 자는 앞날을 걱정해야 한다. 서울함이 승무원들의 구조를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11. 17. 11:00  평안북도 선천, 와우동 고개

  전투기들이 한바탕 중국군 전차부대를 휩쓸고 돌아가자, 이번엔 한국군이 얻어맞을 차례였다. 다연장 로켓포의 포탄이 고개 근처 사방에 낙하하기 시작했다.  차 중령이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수많은 전차가 고개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저기 앞에 국도 위의 철교를 파괴시킬 수 있겠나?"

  차 중령이 포수인 박 중사에게 묻자 박 중사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이미 군대밥 10년에 그 정도의 생각은 있는 사람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거리는 2200미터, 이미 확인했습니다."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가는 철길과 국도가 와우동 고개 아래에서 서로 교차하고 있었는데 철교는 국도를 가로질러 위쪽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철교를 파괴하면 국도까지 막혀서 일시라도 전차부대의 전진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좋다. 전 전차, 철교에 대해 집중 사격!"

  차 중령이 명령을 내리자 제 11기갑사단의 마지막 남은 6대의 전차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철교 아래 국도를 통해 중국군 전차들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3발의 포탄이 철교에 명중하자 철교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중국군 전차들은 철교의 잔해를 넘어 계속 접근해 오고있었다.

  이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차 중령 휘하의 전차들은 아군과 민간인의 후퇴를 엄호하기 위해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최후의 결전에 대비해서 전차와 포탄수를 점검하고 있는 중 갑자기 기적이 일어났다. 선두의 중국전차 몇 대가 동시에 폭발한 것이다. 중국군 전차부대의 전진이 갑자기 멎었고 차 중령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전방 1500 미터 정도의 길가 숲속에 인민군 군복을 한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이 소형 대전차무기로 선두의 전차를 파괴한 것이다.뒤쪽의 전차에서 이들을 발견했는지 12.7 밀리 대공기총을 난사했다. 인민군들이 쓰러져갔다. 차 중령이 보기에 이들은 훈련이 덜된 부대같아 보였다.은폐가 부족하고 움직임이 활발치 못한 것으로 보아 신병들인지도 몰랐다. 갑자기 차 중령의 전차 뒤에 사륜구동차 한 대가 와서 정지했다.

  "동무는 뉘기요?"

차 중령이 놀라서 뒤돌아 보자 사륜구동차에는 중년의 군인이 타고 있었는데, 계급에 비해 어쩐지 나이가 너무 들어보였고 군인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혹시 인민군 부대가 근처에 있는지 기대에 부풀었다. 차 중령이 일단 경례를 하고 대답했다.

  "국군 제 11기갑사단 차 영진 중령입니다. 실례지만 대좌님의 소속은 어떻게 되십니까?"

  "기렇소? 내레 선천군 당위원장이며 노농적위대 선천지구 사령 홍 종규 대좌요. 수고가 많으시오."

  자신을 홍 대좌라고 밝힌 중년이 사륜구동차에서 내려 전차로 기어올라 왔다.  차 중령이 다시 망원경으로 보니 숲속의 인민군들은 거의 전멸하고 중국군 전차들이 주변을 경계하면서  이번에는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홍 대좌도 망원경으로 보더니 혀를 찼다.

  "쯧쯧, 단도저격조래 죄 전멸했구만."

  차 중령이 눈이 커지며 홍 대좌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대좌님 부하들의 작전이었습니까? 정규군이 아니었군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패해서 이렇게 군복을 입으시다니..."

  차 중령이 진심으로 사과하자 홍 대좌가 손을 저으며 만류했다.

  "아니디오. 전쟁이 터졌으니끼니 우리도 이젠 군인 아니갔시요?  참, 동지가 정규군 중령이니끼니 우리 부대의 지휘권을 인수받아 주시구래. 이건 규정이야오."

  "아닙니다.  저는 계급도 낮고 패해서 부하들을 다 잃었으니 홍 대좌께서 당연히 저희까지 지휘해 주셔야죠."

  차 중령이 당황해서 홍 대좌에게 지휘를 부탁했다. 그러나 홍 대좌는 규정을 들먹이며 막무가내였다.  만약 자신이 지휘권을 행사할 경우 군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는다며 한사코 지휘권을 강요했다.

  "그럼 혹시 병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대전차무기는 충분합니까?  일단 저들을 물리칠지 후퇴할지 부터 결정해야 합니다."

  홍 대좌가 차 중령을 혐오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차 중령이 당황하자 홍 대좌가 자신의 의무라는 듯 설명을 했다.

  "우리 35 예비연대는 병력은 3,500명이고 대전차무기는 분대마다 RPG-7이 두 개씩 있습네다. 길고 2개 대대의 교도대가 후퇴를 못해서 지금 저의 지휘를 받고 있습네다. 하지만 후퇴는 못합네다. 우리는 침략자로부터 고장을 지킬 뿐입네다."

  현역에 복무하지 않는 만 17~45세 까지의 남자(여자는 17~30세)는 동원예비군격인 교도대에 편성되고, 46~60세 까지는 노농적위대에 소속된다.  노농적위대의 지휘관은 소속 직장의 당책임비서가, 부지휘관과 참모장은 사회안전부과장과 당군사부장이 당연직으로 맡는다.교도대는 해당지역 위수담당 정규군 군단장의 관할하에 있으며 장비도 정규군 보병사단의 80% 수준이다.

  "그걸로는 저 막강한 중국군 장갑집단군을 막지 못합니다. 일단 저들을 통과시키고 후속 보병부대나 보급부대를 공격하는게 어떻습니까?"

  홍 대좌가 불만스럽지만 지휘권자의 명령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갔습네다.  사단장님은 목숨을 아까와 하는 분이 아니니끼니 작전상 놈들을 통과시키겠습니다. 통신병! 떼놈 땅크들을 통과시키라우!"

  차 중령은 상당히 당황했다.  어떻게 자신이 이들의 사단장이란 말인가? 홍 대좌의 말로 미뤄볼 때 그는 중국군과 11 기갑사단의 전투를 지켜본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서는 불만에 가득찬 홍 대좌를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왜 자신이 연대장도 아니고 사단장인지 궁금해졌다. 나머지 인민군의 예비군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했다.차 중령이 홍 대좌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홍 대좌가 깜박 잊었다는 듯 설명을 했다.

  "선천지구 노농적위대는 전쟁이 터지면 자동적으로 제 35 예비연대가 됩네다. 그리고 지휘관은 당연히 중좌 이상의 현역군인이 맡게 되어 있으며 저는 참모장으로서 차 중령 동지를 보필하게 됩네다. 다른 명령이 있으시면 받갔습네다."

  홍 대좌가 정식으로 차 중령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차 중령은 이들을 중국 장갑집단군의 무자비한 학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홍 대좌의 요청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차 중령도 정식으로 거수경례를 했다. 지휘권을 받아들인다는 표시였다.

  "일단 매복한 저격조를 후퇴시키시오.  그리고 우리 전차들이 숨을만한 곳은 있겠습니까?"

  아무리 현역장교가 지휘하게 되어 있다지만  아무래도 상관을 부하로 둔다는 것은 껄끄러웠다. 나이도 20년 정도나 차이나지 않는가?

  "알갔습네다. 통신병 연락하라우! 저를 따라 오시디오."

  홍 대좌의 사륜구동차를 선두로 전차 6대가 따라갔다. 중국군은 한국군 전차들이 고개에서 지키고, 보병들이 계속 숲속에 매복해 있는줄 알고 전진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신중한 정찰을 거쳐 중국군 전차들이  차 중령의 전차들이 있던 고개를 점령하고 나서야 국군들이 모두 후퇴해버린 것을 알고 땅을 쳤으나 이미 늦었다.차 중령의 전차들은 자국을 모두 지우면서 후퇴하여 결코 이들을 찾지 못했다.

  중국군 전차들이 선천 시가에 진입했다.  상당한 정도의 저항을 예상한 중국군 전차들은 장갑정찰대를 앞세워 신중히 접근했는데 의외로 시내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는 정찰대의 보고가 왔다. 선천 점령 보다는 통과가 우선인 장갑집단군은 소수의 병력만 주둔시키고 즉시 남하를 재개했다. 장갑집단군 외에도 2개의 집단군 병력이 따랐다. 긴 차량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11. 17  11:35  선천 남서쪽 3 km, 대목산

  홍 대좌의 사륜구동차는 중국 전차들의 관측을 피하며 쾌속 전진해갔다. 속도가 느린 국군 전차들로서는 그의 차량을 따라가기도 바빴다.몇 개의 간선도로를 가로지르고 산길을 오르자 커다란 공터가 나타났다.평안북도를 가로지르는 적유령산맥이 서해바다를 만나 끝나는 곳이  바로 대목산이다.  해발 349 미터로서 해안의 산 치고는 상당히 높은 편이며 산세가 매우 가파르다. 사륜구동차가 서자 홍 대좌가 내렸다.

  "다 왔습네다. 이곳이 지휘본붑네다. 지금 지휘관들이 대기하고 있으니끼니 신고를 받으시라우요."

  차 중령이 전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곳에 뭐가 있나 궁금해 하는데 홍 대좌가 덤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 중령이 부하들을 사주경계 시키고 따라 들어갔다.

  덤불 속은 의외로 컴컴했고 조금 걸어들어가자 방공호처럼 생긴 문이 있었는데 문 옆에 앳된 소년처럼 생긴 인민군 병사 두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문을 들어서자 의외로 전기불이 있었고 속은 상당히 깊었다.홍 대좌가 차 중령을 흘끗 보더니 설명을 해주었다. "이 대목산이래 미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선천을 방위하기 위해 요새로 만들어졌습네다. 처음 보시갔디만 이 요새는 1개 사단이 1년 동안 독자적으로 전투할 수 있는 무기와 식량이 있습네다.  자, 여기가 지휘본붑네다."

  차 중령이 들어서자 기다리던 지휘관들이 일어서서 거수경례를 했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나이들이 다양한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여군 장교도 몇 명 보였다.  차 중령이 경례를 하고 모두 홍 대좌의 구령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차 중령 동지는 중국 인민해방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선천을 끝까지 방위하는 도중 우리 35 예비연대의 연대장이 되셨습네다. 현재 중앙과 연락이 되지 않으므로 전시법에 따라 현역군관 중 최고 계급의 차 중령님이 제 35 예비연대장 겸 철산군, 선천군, 귀성군 등 3개군을 합한 사단의 사령이 되셨습네다."

  차 중령은 또 한번 놀랐다.전쟁이 발발한지 하루도 안되어 이렇게 자발적으로 예비군을 조직하고,  사전에 이 정도까지 준비하는 북한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어떻게 된겁니까? 저는 남쪽 출신이라 잘 모르는데요."

  "1997년, 당의 지도로 중국의 침략에 대비해서 의용군 조직의 개편이 있었습네다. 가까운 신의주시, 의주군, 용천군이 합해서 1개 사단이 되어 국경을 수호하고,  우리는 3개군이 합해 이들을 지원하게 되어 있습네다.신의주시와 그 부근은 아마도 떼놈들에게 점령이 되었을테니 이제 우리 3개군이 중국을 막는 최전선이 됩네다.아마 다른 군이나 시에서도 우리와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입네다.  먼저 사단장 동지께 이 대목산 요새를 소개하갔습네다."

  스스로를 참모장으로 낮춘 늙은 대좌가 환등기를 켜더니 설명을 했다. 요새는 거미줄같은 동굴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고 곳곳에 포좌와 대공미사일 발사기가 있었다.차 중령은 이를 보면서 이 요새가 해군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북한이 미국과 한국의 상륙전에 대비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했다. 의외로 단단히 만들어져 있었고,  장기 고립상태에서도 독자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연대 작전참모라며 자신을 소개한 젊은 소좌가 나서더니 대목산 주변의 현재 중국군 이동현황, 그리고 임시로 배속된 교도대들의 위치를 보여주었다.  모두 유격전에 입각하여 편성된 조직들로 이 지역 민간인들이 수행할 수 있는 작전과 병기 보유현황을 설명했다.  현재 휘하 부대들은 도로 주변에 포진하고 있었다.

  차 중령은 고민했다.훈련과 장비가 빈약한 민간인들을 현대전에 동원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생길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그러나 정규군에게만 이 전쟁을 맡길 경우 오래지않아 이 전쟁은 통일한국의 패배로 끝날 것은 당연하며, 동시에 독립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참모들과 지휘관들을 둘러보니 갑작스런 전쟁에 당황한 기색은 감추지 못했지만 조국을 지킨다는 확고한 결의가 보였다.

  "좋습니다. 적에게 잡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후손들이 중국어를 강제로 배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전쟁을 꼭 이길 수 있도록 싸워 나갑시다. 이만 회의는 마치고 저를 관측소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적의 침공을 조금이라도 늦춰야죠. 전투를 시작합시다."

  장교들이 서둘러 자신의 전투위치를 향해 달려갔다.

  11. 17  11:55  선천, 대목산 요새 관측소

  차 중령이 홍 대좌의 안내를 받아 승강기를 통해 산 꼭대기의 관측소에 도착했다.관측소에는 포병 관측장교와 대공지휘관이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민간인 부대치고는 훈련상태나 기강은 좋아보였다.

  망원경을 통해 동쪽을 보니 경의선과 함께 고속도로가 남동쪽을 달리고 있었다. 고속도로엔 무수한 숫자의 중국제 전차와 보병전투차, 그리고 수많은 트럭 행렬이 보였다. 홍 대좌가 거들었다.

  "요새포는 막강합네다.  도로의 위치에 대한 자료는 이미 입력되었습네다.그리고 도로 주변에는 이미 2개 대대의 유격부대가 진지에 은폐해 있습네다. 기저 명령만 내려 주시라우요."

  차 중령이 망원경으로 둘러보았으나 어디에도 인민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전투전까지는 철저히 위장하는 것은 인민군의 전투교범의 제 1항이었고,  이는 예비군격인 노농적위대에도 적용되어 있었다. 위장은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소, 공격하시오."

  차 중령은 인민군 민간인부대의 작전과 훈련상태를 보고 싶었다.과연 이들이 한국의 일반예비군처럼 형식적인 훈련만 했는지, 아니면 실전에서도 훌륭히 전투를 수행할지 궁금했다.

  155밀리 대구경의 요새포가 작렬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도로 주변에서 불꽃이 튀었다.홍 대좌의 부대배치는 완벽해서 나무랄데가 없었다. 이 요새와 민간인부대들이 중국군 장갑집단군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동을 지연시킬 정도는 되어보였다.

  대목산 산그늘에 숨어있던 구 소련제 122밀리 다연장로켓포의 변형인 BM-11 다연장로켓포대가 불을 뿜었다.  15발씩 두 번에 나눠 사격할 수 있는 이 다연장포는 보다 대구경의 다연장포가 북한에서 생산되자 일선 부대에서 물러나 이런 후방지역의 예비군부대에까지 운용되었다.  구식 4톤짜리 트럭에 탑재되어 있는 다연장포가 30발씩을 쏘고 나서 즉각 재장전에 들어갔다.다연장포의 단점이라면 재장전에 몇 분 씩이나 소요된다는 것이다.

  요새포와 다연장로켓포,  그리고 도로 주변 야산에 잠복하고 있던 적 위대의 일제사격 한번에  도로상에 움직이는 것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차 중령이 망원경으로 살펴보다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로에는 수많은 중국제 69형 전차들과 90형 병력수송차,구 소련제 BMP-1형의 복사품인 WZ-500 계열의 각종 보병전투차들, 그리고 병력수송용 트럭들이 불에 타고 있었다.  중국군 보병들은 하차할 시간 여유도 없이 당했다. 와우동에서 선천 남쪽 삼소리까지의 약 3 km 구간의 중국군이 전멸당했다. 약 1개 연대의 병력이었다.

  선천 시가에서는 중국 점령군과 적위대간의 시가전이 한창이었다. 교도대의 일부 병력은 선천에 남아 점령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가  도로에서 포성이 울리자 순식간에 이들을 기습하여 기선을 제압했다.1개 중대의 중국군을 사살하거나 포획했다. 교도대원들이 포로들을 대목산 요새로 호송했다.

  이동 중인 중국군을 섬멸한  노농적위대와 교도대는 전시규정에 따라 도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경의선 철도뿐만 아니라 고속도로까지 파괴했다. 특히 교량과 터널은 제 1의 목표가 되어 철저히 부서졌다.이들은 작전을 마치자 마치 유령처럼 산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야 중국 헬기들이 도착하여 도로주변을 비행했으나 이미 살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후속하는 중국군 집단군에서 선천시에 신경질적으로 포격을 가했다. 그러나 선천시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천의 북쪽에서 내려오던 중국군들은 대목산요새에서 포격을 하는 것을 산그늘에 가려서 보지 못한채 당했다.

  "훌륭합니다. 대단해요."

  "선두에 중국군 전차를 까부시지 못한거래 분통할 뿐입네다."

  차 중령의 칭찬에 홍 대좌가 부끄러워 했다.

  "아닙니다. 전차만으로 전쟁을 할 수는 없죠. 중국 침략군은 이제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빠질 것입니다."

  "제 36, 37 예비연대 연대장들께서 도착했습네다."

  차 중령과 홍 대좌가 전투를 마치고 평가를 하고 있을 때  손님이 도착했다. 이들은 인근 철산군과 귀성군의 당 서기 겸 노농적위대 사령들로서 예비역 상좌들이었다. 제 11 기갑사단의 패전 소식을 듣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요새로 오던 중에 35예비연대의 승리를 지켜봐서 이들은 꽤나 들떠 있었다.

  "우리도 이번 전쟁에서 큰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꼭 침략군을 몰아 내야합니다."

  36 예비연대장이 군당 서기답게 열변을 토했다. 차 중령이 이들과 함께 길고 긴 회의를 시작했다. 중국군의 남진을 막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차 중령을 따라온 제 11 기갑사단 최후의 전차병들은 전차를 땅속 엄폐호에 감추고 18 시간만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후에 인민군들이 담배를 주었으나 맛이 이상해 전차병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피웠다.

  1999. 11. 17  11:30  개성, 통일참모본부

  "제 11기갑사단까지 당했습니다.  적은 이미 선천까지 침입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일단 11 기갑사단의 잔존 병력은 모두 후퇴했지만 제 3 전차대대 병력은 적 기갑부대를 막다가 점령지에 남은 것같습니다.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참모본부 상황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갑사단의 참패에 이어 사단의 안전한 후퇴를 위해 자신을 던진 제 3전차대대 대원들의 최후를 생각했다. 살아서 봐야한다고 명령했지만 차 중령은 명령불복종죄를 지었다고 정 대장이 화난 표정을 지었다.

  "제 6 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들은 중국 공격헬기들을 처치하고 중국군 장갑군단에 폭격을 가해 제 11기갑사단이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나타난 중국군 전투기들에 의해 모두 격추됐습니다."

  참모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군대가 패배하여 사기가 저하된 지휘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모두 침통해 하고 있었다.

  "현재 적 지상군의 주 침공로는 지도를 보시다시피..."

  양 석민 중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단말기를 조작하여 대형 스크린에 북한지역을 비췄다. 세 개의 커다란 붉은 색 화살표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고 피아 구분이 된 부대의 위치와 규모가 비쳐졌다.

  "이렇고, 역시 적의 주공(主攻)은  신의주에서 평양을 따라가는 길에 있는 부대들입니다. 혜산과 회령쪽으로 오는 적들은 조공에 불과합니다. 혜산과 회령쪽 아군이 후퇴는 하고 있지만 이는 전선의 균형을 위한 것이며 그쪽은 아직 큰 피해를 입은바 없습니다. 적의 공중공격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입니다."

  양 중장이 잠시 자료를 살핀 후에 보고를 이어갔다.

  "현재는 중국측의 광대역 전파방해가 걷혔다는 보고입니다. 중국측도 부대간 연락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전파방해가 불가능하겠죠.  단발적이나마 만주지역과 북경 부근의 우리측 정보원들로부터 무선 보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보사단의 보고에 의하면 침공한 적 주력은 제 16병단 예하의 장갑집단군과 몇개 혼성집단군이라고 합니다. 2개의 헬기사단과 3개 전투비행사단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후속부대로는 심양과 단둥에 2개 병단의 병력이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일부는 국경을 넘었을지도 모릅니다."

  "1개 병단의 병력 수는 얼마나 됩니까?"

  중국군의 체계를 잘 모르는  구 국군의 이 호석 공군중장이 묻자, 양 중장이 잠시 자료를 검색하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시의 중국군 집단군은 3개 보병사단과 각 1개씩의 기갑여단, 포병여단, 그리고 고사포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만, 내전중에 기갑부대를 강화하여 기갑여단이 기갑사단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물론 지역에 따른 편제도 각기 달라 수비사단이 몇개 포함되는가 하면 기계화부대인 오토바이 사단이 편제에 들어있기도 합니다. 1개 병단은 몇개의 집단군을 합한 것으로, 또한, 병단이 몇개 모여 야전군이 됩니다."

  "총 병력은 얼마나 되오?"

  이 종식 차수가 오랫만에 끼어들었다. 이 차수가 보기에 적의 편제도 모르는 장군을 교육하는데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 신의주에서 월경한 16병단과 만포쪽의 3병단, 혜산쪽의 제 5병단이 주력이며 선공부대인데, 단둥과 심양에서 월경 준비중인 2개 병단을 합쳐 중국측은 제 5야전군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간단히 5野라고 합니다만, 지상군 총병력 60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양 중장이 답변하자 모두들 갸우뚱했다. 이 차수가 거듭 물었다.

  "설마 그 정도 병력으로 우리나라를 공격하지는 않갔디. 후속 병력이 또 있다는 말인데..."

  "예. 이들은 모두 중앙정부의 친위군격인 베이징군구와 지난(제남)군 구 소속의 부대입니다. 심양군구의 집단군들과 남부지방에서 올라와 심양군구에 배속된 부대들이 후위 지원부대라할 수 있습니다.  현재 만주지역에만 중국군 150만 정도가 있습니다. 이미 월경하여 전투에 돌입한 부대를 합하면 약 200만명이 됩니다. 물론 병참 등 지원부대는 빼고 말씀입니다."

  모두들 기가 막혔다. 중국은 한국을 점령하기로 이미 마음 먹은것 같았고 이를 막기란 사실상 어려울 것이란 생각들이 들었다.이 차수가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농을 건넸다.

  "이 정도 병력이면 중국이 핵을 쓰지는 않갔구만."

  모두들 웃었으나 쓴웃음일 뿐이었다.  그 정도 병력이라면 중국이 핵을 사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 즐겨 자랑하는 인구 핵폭탄, 또는 이번 상황에서는 인해전술같은 병력의 핵폭탄이었다.

  "전시비상동원체제는 잘되고 있소?"

  이 차수의 질문에 양 중장이 신속히 답변했다.

  "예! 예비군동원령이 내려 남북 모두 40개 예비사단이 편성중입니다. 그리고 향토예비군과 민방위 소집도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만 경제계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단 중화학공업 기업들의 비상전시체계에 따른 개편은 잘 이뤄지고 있으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사재기를 막기 위해서는 배급제를 실시해야되는데, 정부는 시장경제의 붕괴를 우려하여 일반 소비재의 배급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전쟁발표가 나가자마자 암시장이 형성되었답니다.  또한 이중국적자들이 서둘러 출국하고 있어서 상당수의 기술인력이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음, 어느 나라나 있는 문제고... 우리측 대응태세는 어드렇소? 아무래도 저 장갑집단군이 문젠데..."

  "영변에 본부를 둔 인민군 425 기계화군단이 적의 장갑집단군에 맞서 북진 중입니다. 해주의 815 기계화군단도 도로를 따라 북진 중입니다."

  "해군은 어드렇소? 제주도 상황은?"

  이 차수의 물음에 인민군 박 상장이 보고했다.

  "중국은 현재 아군 서해함대에 대한 공격을 진행중입니다. 주로 공대함공격을 가하고 있는데 우리측 피해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작전해역에 대한 서로간의 전자전이 극심합니다. 우리 함대는 현재 전파관제 상황입니다."

  자신의 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부의 명령이나 보고도 당분간이나마 묵살할 수 있는 것이 함장, 또는 함대사령관의 권한이었다. 통일참모본부는 해군에 대해서는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간간히 해주상공의 조기경보기가 정보를 주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명령을 할 수도 없었다.

  "제주도는 현재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점령당했고 한라산 산정 일대도 대부분 중국군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공중지원부대가 출동했지만 적의 항공기들에 의해 제지당해 제주도에는 접근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군의 정 대장이 분통을 터뜨리며 보고했다.  참모들 사이에 어두운 그림자가 퍼져나갔다. 개전 후 최초로 도 하나가 점령당한 것이다.이제 남부지방까지 중국 공군기들의 공습권에 들게 되었다는 걱정이 들었다. 제주도가 함락되면 한반도는 남, 서, 북의 세 방향에서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참모들이 눈길을 이 호석 국군 공군중장에게 돌렸다. 이 중장이 질문을 받지는 않았어도 뭔가 말을 해야되는 상황에 처했다.

  "현재 서로 제공권을 장악하기에 혈안이 되어있습니다만,솔직히 아군이 불리한게 사실입니다. 항공기나 조종사의 질적수준을 떠나 숫적으로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적기의 요격에도 급급하여 지상지원공격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비역조종사들을 소집하긴 했지만 항공기 수는 절대부족한 상황입니다. 전투기의 긴급수입을 제안합니다."

  "해군함정, 특히 대잠수함전을 수행할 프리깃함들도 긴급수입할 것을 요청합니다."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거들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군수물자 수입요청이 빗발쳤다.  게다가 남북간의 기종이나 함종이 서로 달라 서로 자신들에게 익숙한 종류의 군용물자 수입을 위해 남북간의 참모들이 서로 말다툼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우리 해군은 공군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대함 미사일의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대공미사일을 탑재한 다수의 대잠 프리깃함을 수입해야합니다. 아니면 이지스함을..."

  "이 기회에 차라리 소형항모를 수입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전투기래 공중전에 유리한  러시아제 수호이-27이나 미그-29를 수입하는거래 낫갔디 않갔습네까?"

  "아닙니다. 러시아제는 레이더가 약해 지나치게 지상관제에 의존해야 하므로, 레이더가 우수하고 기동성이 좋으며 대지공격능력도 있는 F-18이 더 좋습니다."

  "그만 하라우요!"

  이 차수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참모들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벌써 신무기 도입의 환상에 빠져있었다.

  "무기 도입은 나중에 토의를 거친 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적을 막을 방안을 연구합세다."

  좌중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압도적인 중국의 공세를 꺾을 뾰족한 방안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공군이 중국 장갑집단군에 대한 폭격을 하자니 압도적인 수의 중국 전투기때문에 불가능하고,해군도 밀리는 상황이고, 지상군도 숫적인 면에서 불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낙후한 무기를 무시하던 참모들도 중국측과의 전투 이후에는, 그들의 무기체계와 높은 운용기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은 내전 과정을 통해 무기체계가 비약적으로 현대화되었고 군인들도 정예화되었던 것이다.

  "오늘 오전동안의 양측 공군기들의 피해입니다."

  침묵을 깨고 공군의 이 호석 중장이 입을 열었다.

  "현재까지 적기 격추 65기, 아군기 피격 49기입니다."

  "음... 공군조종사들의 기량이 뛰어났군요."

  제 11기갑사단의 패배로 풀이 죽은 육군의 정 지수 대장이 비꼬자 이 중장이 책상을 치며 외쳤다.

  "하지만 전투기끼리의 공중전에선 24 대 43입니다. 나머지 중국 전투기들은 대공미사일이나 대공포에 의해 격추시켰다는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조만간 우리나라 공군은 전멸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 차수가 가만 있다가 참지 못하여 질문을 했다.

  "왜 기렇게 차이가 나오? 무기면에서는 별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보는데..."

  "조종사의 기량도 크게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상관제입니다. 중국이 전자전기와 관제기를 동원해 전투기를 지휘함에 반해 우리는 주로 지상관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아군기의 레이더 성능이 우수하고, 조종사의 재량에 맡기는 경우 유리한 점도 있지만 관제기의 도움을 받는 것이 공중전에서는 훨씬 유리합니다.그리고 저공침투해 오는 중국전투기들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입니다.평양이나 서울이 지금도 공습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해결책은?"

  이 차수가 강한 평안도 억양으로 냉엄하게 물었다.

  "조기경보관제기를 더 띄워야합니다.  최소한 4대는 더 수입해야합니다. 그리고 각 군에 분산되어 있는 레이더 기지를 통합 운용해야합니다. 현재로서는 적기 동향에 대한 실시간 정보처리가 불가능합니다.이는 현실에서 전투기의 격추비율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좋소."

  이 차수가 대안을 내놓았다.

  "남쪽은 조기경보기를 몇 대 더 구입하기오. 북측의 레이다기지 관할권은 모두 남쪽에 주갔소."

  참모들이 깜짝 놀라 이 차수를 쳐다보았다.  북한지역 레이더 기지의 관할권을 넘긴다는 말은, 북한이 대량보유한 미그기가 특성상 지상관제에 크게 의존하므로 인민군 공군기의 지휘권을 국군에게 주겠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인민군 장성들이 얼굴에까지 불만을 드러냈지만 늙은 병사 이 차수 앞에서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호석 중장이 이 차수의 뜻밖의 결정에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대지공격기 A-10이 30대쯤 됩니다만..."

  그는 인민군 장성들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중국 장갑집단군 공격에 이들 공격기들을 425 기계화군단에 배속시키면 어떨까요? 단,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면 안되니 전투기들의 엄중한 호위하에 말입니다."

  이 중장이 제안하자 모두들 받아들였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이런 식으로 빨리 남북 군체계를 상호 통합해야 중국이라는 강적을 상대할 수 있을겝니다."

  조금전 이 중장의 반박에 기분이 나빠졌던 정 대장도 역시 나라를 생각하는 군인이라 이 중장의 의견에 적극 찬성하며 북한지역에 주둔중인 국군 5개 사단의 지휘권을 모두 북측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남북 군 통합에 이런 저런 이유로 반대해오던  정 대장이 통합에 적극 동참하자 인민군 장성들도 이제야 국군 장성들을 신뢰하기 시작하여 남북의 참모들이 서로의 권할권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남북 군대의 실질적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서해함대에서 보고입니다."

  참모들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전멸하지나 않았을까 걱정한 함대가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 어떻게 되었소? 우리측 피해는?"

  인민군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묻자 통신장교는 이것이 승리인지 패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전문을 읽어나갔다.

  "서해함대 대전함 대파, 대전함은 중국 미사일구축함 2척을 침몰시켰고, 적 공격기 7기를 격추시켰습니다.0750에 전북함 피침, 전북함과 함대는 적 잠수함 6척을 침몰시켰습니다. 그 중 3척은 한급 핵잠수함이라고 합니다.  기타 피해는 초계정과 미사일 고속정 한척 침몰입니다. 전 북함의 함장 장 중령은 전사했습니다. 함대사령관 김 중장은 장 중령의 추서와 아울러 한국형구축함들의 서해함대 편입을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0930에 적 재래식 잠수함 추정 격침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적 잠수함들 때문에 보고가 늦어졌다고 합니다. 이상입니다."

  참모들이 실의에 빠졌다. 중국 잠수함 7척과 구축함 2척의 격침은 큰 전과였으나 서해함대의 기함인 전북함이 침몰했고 대전함도 대파되었다. 중국과의 전쟁에서 대등하거나 약간 우세한 전과는 패배나 다름없었다. 중국 잠수함은 100여척이 넘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로 간다면 한국해군은 중국이라는 대해에 빠진 잉크 한방울에 불과했다. 중국과 전쟁을 치뤘던 역사상의 다른 이민족들처럼...

  "이거 안되겠군요."

  한국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이 말을 꺼냈다. 한국해군의 입장에서 지금까지는 인민군 해군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서해함대에 귀중한 한국형 구축함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발등의 불을 먼저 꺼야할 입장이었다.

  "현재 동해함대에 배속중인 한국형구축함 3척 모두와 시험항해중인 2척, 그리고 건조가 거의 끝난 1척 모두를 서해함대에 배속시키겠습니다. 물론 국군 해군본부의 심의를 거쳐야 되지만. 그리고 초계기 다수와 함께 209급 잠수함 4척을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제주도 방어전이 끝난 후라는 조건이 붙겠지만 말입니다.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최초의 중형 항공모함 이순신함이 현재 무기장착중입니다.앞으로 한달 이내에는 옥포 조선소에서 진수될 예정입니다.  물론 작업진척을 더 빨리 해야겠죠."

  심 중장은 이순신함을 쓸 기회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부정적이었다.결국 한국형구축함들로 88함대를 구성하여 항모를 호위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웠다. 이제 상당 기간 동안 한국은 원양해군으로 진출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의 침공을 막아내더라도...

  "고맙소. 심 동지!"

  박 정석 상장이 그동안 꺼려왔던  한국군 장성들에 대한 동지라는 호칭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이제 합심해서 적을 몰아내고 나면 통일의 길은 더 빨라질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 침공을 막아내고 나서의 일이었다. 참모들 누구나 중국을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으나 이때만은 자신감이 넘쳐났다.

  1999. 11. 17  11:30  제주도 남제주군, 92연대 본부

  "백록담이 떨어졌습니다!  현재 1대대 3중대가 적 공정부대와 치열한 전투중이라는 보곱니다."

  "2대대가 제주항에서 후퇴했습니다.  제주시내에서 치열한 시가전 중이라는 보고입니다."

  92연대의 연대장인 노 영기 대령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전황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제주항의 중국 해병대 상륙과 한라산정의 공수부대의 강하로 전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백록담의 레이더 기지는 이미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서귀포시의 원래 기지에서 한라산 국립공원 내의 흙붉은오름(1391미터)으로 이동 중이던 대공미사일 포대와 지대함 미사일 발사기들마저 중국 공수부대에게 파괴당했다.  이제 적의 후속 공습과 상륙에 대한 방비책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급히 예비군을 소집하여 방어에 나섰으나 수적 열세보다는 장비와 훈련의 열세가 더 컸다.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상 예비군들은 주로 방위출신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중화기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어 작전에 더욱 애를 먹어야했다. 92연대에는 단 한 대의 전차도 없었고, 대전차병기는 더더욱 없었다. 6.25때 북한의 전차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국군처럼 105밀리 곡사포로 중국의 경전차와 맞서야 했다.

  11. 17  11:35  제주, 민오름

  제주시를 내려보는 민오름(251 미터)에 포대를 긴급배치한 92연대 소속 포병중대의 포대장 박 일우 대위는 망원경으로 북제주항을 둘러보았다. 제주시가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고 제주항의 전투가 사그러들자 중국군들은 경계하는 기색도 없이 상륙작업을 하고 있었다.  2 척의 유칸급 전차양륙함에서 62식과 63식 경전차들이 쏟아지고 있었다.포병학교에서 교육받을 때  중국에는 63식 수륙양용 경전차가 1200대, 62식 경전차가 800대나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었다.  대만 상륙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대만과 비슷한 섬인 제주도 공격에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박 대위는 적 상륙함대보다는 상륙부대를 쳐야겠다고 결심했다.

  상륙한 중국 전차들이 제주시를 평정한 후 사방으로 갈라져 진격하였다. 박 대위가 망원경으로 보니 50여대의 전차가 제주 종합경기장 앞을 지나 연동의 신시가지쪽으로 가고 있었다.  전차의 기다란 행렬 뒤로는 73밀리 활강포를 갖춘 WZ-501 보병전투차와  YW-534 APC 수십대가 따랐다. 포대가 있는 민오름에서 사격하기 좋게 옆으로 길게 늘어선 모습이었다. 거리는 약 700 미터.

  포대장 박 대위의 지휘하에 4문의 105 밀리 곡사포가 일제 사격을 했다.  그러나 동부전선의 포병들과는 달리 이들은 곡사포에 의한 대전차 직사사격 훈련이 부족하여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중국제 경전차들 사이의 맨땅에만 죽어라고 쏘아대고 있었다.  자기들을 공격하는 포병의 위치를 파악하자 중국군 전차들이 횡대로 넓게 산개하여 민오름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실전 경험이 없는 포병대원들이 당황했다.1950년대에 개발된 63식 경전차와 T-59전차의 축소판 같은 모습을 한 62식 경전차들이 전차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제주도 병사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리드를 정하고 쏴라. 전차나 군함이나 원리는 같아!"

  박 대위가 부하들을 다그쳤으나 좌표를 입력받아 사격하는 곡사와 조준기를 보며 사격하는 직사는 질적으로 달랐다. 박 대위가 직접 사격을 했다.  첫 탄은 중국 전차 위로 빗나갔으나  두번째 사격에서 신중하게 중국 전차를 조준기의 하단 위로 맞춰 쏘았다.차체 앞부분이 납작한 63식 경전차의 포탑에 포탄이 명중하자  이 작은 전차는 화염을 뿜어대며 폭발했다. 병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하지만 수십대의 전차와 보병전투차 및 APC들이 방어진지가 있는 민오름으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포병대와 함께 이동해온 현역 1개 소대와 예비군 1개 중대,그리고 제 주시에서 도망쳐온 소수의 패잔병들로 구성된 한국군은  중국군 전차들의 치열한 포격을 몸으로만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전차 무기가 없는 것이다. 한국군에 대전차무기가 빈약한 것을 확인한 중국군 보병전투차와 APC의 보병들은 하차도 하지 않은 채 몰려왔다.

  105 밀리 곡사포의 직사에 익숙해진  포병들이 전차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경장갑의 소형전차들은 포탄에 맞았다하면 파괴되었다.  중국 전차들이 반격을 시작하여  일제사격하자 1 문의 곡사포가 파괴되고 다른 곡사포 진지가 붕괴되었다. 포병들이 돌무더기 위에 쓰러졌다.  거리는 점점 좁혀들어 서로간의 거리가 약 200미터가 되었다.

  한국군 병사 중의 한명이 M-203 유탄발사기를 갖춘 K-2 자동소총으로 중국전차를 조준했다.  설마 장갑차가 아닌 전차에 효과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냥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심정에서  HEDP탄을 장전하고 쏘았는데, 전차에 명중하더니 의외로 전차가 섬광을 일으키며 폭발해 버렸다. 다른 병사들도 따라서 유탄을 쏘기 시작했다.  중국군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잇달아 파괴되었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중국군 보병들이 보병전투차와 APC에서 하차하여  한국군 진지에 사격을 가했다. 피아간의 거리는 100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사격 개시!"

  현역 소대장이 명령하자  한국군과 예비군들이 정신을 차리고 중국군 해병대를 향해 사격하기 시작했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를 향해, 그것도 엄폐물이 없는 개활지의 보병은 좋은 표적이 되었다. 견디다 못한 중국 전차들이 연막탄을 쏘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해병대원들도 따라서 후퇴했다. 들판엔 17대의 전차와 APC가 불타고 있었다.

  "휴, 겨우 물리쳤군... 각 포대 보고하라!"

  포대장인 박 대위가 외치며 포가 있던 자리들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한 포대가 있던 자리는 포신만 덩그라니 놓여있었고,  다른 곳을 보니 포는 온전한데 포병들이 여기저기 쓰러져있었다. 예비군들이 부상당한 부하들을 민오름 뒤쪽 계곡으로 운반하고 있었다. 박 대위가 치를 떨고 있는데 소대장과 예비군 중대장이 왔다.

  "보병은 절반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예비군들의 피해가 큽니다."

  소대장이 박 대위에게 보고하자 나이든 예비군 중대장이 어두운 얼굴을 했다. 현역과는 달리 예비군의 경우, 전사자만큼 전쟁미망인이 발생하는 것이다. 훈련과 장비가 부족한 예비군을 동원하는 경우 피해가 막대한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병력이 부족한 판에 예비군을 전투에 투입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오라동(吾羅洞)에 병원이 있습니다. 부상병들을 옮기지요."

  "견인트럭으로 옮기시오. 이제 포도 하나밖에 안남았으니 트럭 세 대를 다 써도 좋습니다."

  예비군 중대장의 건의에 박 대위가 트럭의 사용을 허가했다.  한번의 전투에서 전사 107명, 중상 54명의 피해를 입었다. 남아있는 병력은 약 100명 남짓했다. 박 대위가 16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는 3대의 트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앞을 보니 중국 전차들이 다시 공격할 기세로 전진해왔다. 예비군들을 포대에 충원하여 포 2문을 준비시키며 박 대위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멀어져가는 트럭 행렬을 보았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그 트럭을 탔으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리라는 생각을 한 순간 트럭들이 갑자기 폭발했다.

  "뭐야! 중상자들이 탄 트럭이!"

  국군과 예비군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중국군 전차들이 포격을 시작해서 사방에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일어선 그들은 몸을 숨기지도 않았다. 박 대위는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저들은 부상병들이 아닌가. 도대체 왜, 누가!"

  박 대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살인마들을 발견한 것이다.그들은 중국 공수부대원들로서 대공 미사일 기지가 있던 어승생 고지(1169 미터)와 노루생이(611 미터) 및 거문오름(438 미터)을 점령하고 제주시 외곽도로인 16번 도로와 한라산 국립공원 아래 아라동(我羅洞)에서  제주시로 통하는 11번 도로의 교차점을 점령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한국군 트럭을 발견하고 공격한 것이다. 이들은 트럭에 탄 병력이 원래 중상자라는 것을 몰랐으나 트럭이 파괴된 후 확인사살을 위해 도로로 나온 것이다.

  "포 돌려! 저것들을 쏴라!"

  박 대위가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소대장과 예비군 중대장이 말렸으나 그가 권총을 허공에 쏘아대며 부하들이 포구를 돌리게 했다. 공수부대원들은 도로에 널부러져 있는 한국군과 예비군 중상자들을 하나씩 쏘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시체가 된 그들을 쏘고 있는 것이었다.이들은 민오름에 국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거리가 멀고, 중국군 전차들이 이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설마 민오름의 국군이 자기들을 공격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사격!"

  105 밀리 포 2문이 동시에 불을 뿜고 이에 M-60 기관총 두 정이 가세했다.  약 900 미터의 거리에서 국군들을 깔보듯 시체들에 총질을 하던 중국군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중국군들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몇 발을 더 쏘게한 박 대위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듯 씩씩거렸다.

  "거리 500까지 접근했습니다."

  소대장이 포대장의 각성을 촉구했다.  박 대위가 포를 원위치에 배치하도록 부하들에게 명령하고 서둘러 임시 참호로 뛰어가 전방을 살폈다. 소 방목장이었던 벌판이 연막탄으로 뿌옇게 되어 보이지 않았다.  기관총을 비롯한 중화기들이 사격을 시작하고 소총은 사정거리 때문에 아직 대기중이었다.

  전차의 굉음 사이로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박 대위가 연막탄의 연기사이로 하늘을 보자 앞부분이 강아지의 코처럼 새까맣고 뾰족한 헬기들이 보였다.

  "헬기다! 중국 공격헬기야!"

  "우린 대공무기가 없습니다!"

  "유탄발사기로라도 쏴! 접근을 막아!"

  포대장이 외치는 소리는 폭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돌담 위로 헬기에서 발사한 2A42 30밀리 기관포의 파편이 튀었다. 현역들이 머리 위의 헬기에 소총을 연사했으나 중무장한 러시아제 Mi-28 하보크헬기에는 소용이 없었다. 수많은 국군과 예비군들이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두 대밖에 남지않은 포는 헬기에서 발사한 9M-114 대전차미사일(나토명 AT-6스파이럴)에 부서졌다.

  "기관총은 뭐해?"

  박 대위가 기관총 진지로 뛰어가서 보니 병사들은 머리가 으깨어진채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총열이 땅바닥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두 병사는 총열교환 중에 공격당한 것같았다.  기존의 캘리버 50 중기관총이 총열 교환하는데 드는 시간이 47초임에 반해 한국산인 K-6는 신속총열교환식이어서 소요시간은 5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병사들은 그 5초 사이에 당한 것이다.박 대위가 새로운 총열을 부착하고 K-6 중기관총을 헬기를 향해 돌렸다. 바로 옆의 10미터 상공에 있는 헬기에 죽어라고 쏘아댔다. 대부분의 탄알은 막강한 헬기의 장갑에 튕겨져 나갔지만  몇 발이 테일 로터에 박혔다. 7톤짜리 대형헬기가 빙빙 돌며 땅 위에 주저앉았다.

  박 대위가 총구를 다른 헬기로 돌리려는 순간 바로 옆에서 굉음이 울려왔다. 전차였다! 중국의 소형 62식 경전차가 돌담을 무너뜨리고 넘어왔다. 박 대위는 즉시 기관포를 전차를 향해 쏘았다. 총알이 장갑에 맞고 사방으로 튀었다. 갑자기 전차가 폭발했다. 전차의 5미터 앞에서 쏴대던 박 대위가 멍하니 서있는데 누군가 그를 끌고 참호로 뛰었다.  박 대위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예비군 중대장이었다. 아마 고씨나 부씨, 아니면 양씨가 틀림없는 이 제주도 출신 예비군중대장은 온몸에 치열한 전투를 치른 자국이 역력했다. 옷은 찢겨지고 피로 얼룩졌다.

  "방금 그것이 마지막 LAW입니다. 우린 패했습니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 한라산으로 들어갑시다."

  박 대위가 끄덕거렸다. 전시교범대로 유격전을 수행해야할 의무가 있었다.전차에 대고 중기관총을 쏘아댄 자신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명이나 남았습니까?"

  "이동할 수 있는 병력은 현역 14명과 예비군 20명 정도입니다.소대장도 전사했습니다. 지금은 좀 더 줄었겠죠."

  박 대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고 있지만 아까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 박 대위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갑시다. 중대장님."

  "예. 가죠. 박 대위님!"

  예비군중대장이 참호에서 일어나다 말고 주저앉았다. 박 대위의 상체가 보이지 않았다. 돌담을 넘어온 중국전차가 포를 쏘았는데 때마침 일어선 박 대위를 관통하고 지나간 것이다.  예비군중대장이 토하기 시작했다.

  1999. 11. 17  13:30  서울, 서초동

  "이거 살벌하군요. 전쟁이라..."

  서초동 법원청사 앞에 위치한 종합광고대행사 아름기획의 AE인 변 승찬 대리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시작된 광고제작회의에서 일손을 놓고 있는 제작팀들과 한중간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들의 귀에 광고의 임팩트(impact)니 타깃 오디언스(target audience)니 하는 말은 들리지도 않을 것이 뻔해서, 변 대리는 일단 제작팀은 모았지만 제작회의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팀원들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몰라 모두들 망연자실해 있었다.

  변 대리는 출근 전에 TV뉴스를 보고 전쟁이 일어난 줄 알았다.  밤에 폭음이 울리고 총성 비슷한 것이 울려 잠을 깼지만 어디서 가스가 폭발하거나 교통사고가 난 줄 알고 다시 잤다.  출근하기 위해 승용차를 몰고 오는데 한남대교가 날아가고, 다른 한강다리 몇 개도 무너져 나머지 다리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게다가 중무장한 계엄군에 의한 검문검색도 심해서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야 출근할 수 있었다.

  "변 대리는 일반예비군이지?"

  친하게 지내는 그래픽 디자이너 황 부장이 묻자 변 대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는 아직 동원예비군이었다.  평상시에는 예비군 훈련가서 바쁜 회사업무를 잊고 며칠 푹 쉬는 것은 좋았지만, 이제 그는 언제 소집되어 전선으로 달려가야할 지 모르는 신세였다.

  "동원이야? 이 카피 큰일났네."

  PD인 강 차장이 카피라이터 이 진을 보고 웃었다. 이 진의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숙였다.

  "강 차장님, 그러지 마요. 장난이 아니라구요.다른 나라도 아니고 중국이면...쩝."

  변 대리가 심각하게 이야기하자 다른 사람들도 한숨을 쉬었다.도대체 중국이라는 큰 나라와 전쟁을 해서 이길 것 같지가 않았다.  물론 한반도 주변 강국 어느 나라와 싸워서 유리한 나라가 있을까만...  그가 이 진을 보니 그녀는 걱정이 태산같은 얼굴이었다.언제 전선으로 갈 지 모를 자신보다 더 걱정하는 것같았다.그녀가 고개를 들고 변 대리를 보자 그가 외면했다.

  "회의 시작하시죠. 쇼는 계속되야 한다는데... "

  'The show must go on.'을 외치는 변 대리의 주재로 제작회의가 시작되었다. 직급은 낮더라도 그의 직무는 AE(광고기획)였다.광고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며 광고의 제작과 매체집행은 그의 책임하에 이루어진다. 오늘 제작회의건은 하늘식품의 식빵 신제품의 TV-CF와 Radio-CM,신문과 잡지 등 4대매체 동시 런칭광고(신제품 출시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집중광고)였다.마케터(MKTer)인 선우 차장이 소비자조사를 바탕으로 마케팅계획을 설명하고 있을 때, 변 대리가 맡은 또다른 광고주인 예삐화 장품의 박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즉시 TV광고를 전면중지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변 대리가 회의실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휴대용전화기에 소리쳤다. 팀원들이 말도 못하고 변대리의 얼굴만 쳐다봤다.

  "아니, 기껏 정규물과 임시물 SA급 시간대(시청율 높은 시간대)를 잡아줬는데 두 달도 안하고 중지를 해요? 안됩니다. 광고공사에서 안받아 준다고요."

  변 대리의 말에도 박 과장은 막무가내였다.회장이 해외로 도피했는데 누가 광고료를 결제해주냐는 소리였다. 변 대리가 심각해졌다.  판매를 광고에 주로 의존하는 화장품회사가 광고를 중지한다면  다른 광고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대행사의 종말입니다..."

  변 대리가 휴대용전화기를 끄며 팀원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여차하면 회사 때려치우고 사무실 차릴 궁리만 하는 아줌마인 CD(Creative Director) 황 부장, 회사 최고의 노총각인 PD 강 차장, 멋쟁이 마케터(Marketing Planner) 선우 차장, 본업보다는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하는 GD(Graphic Designer) 최 대리, CW(Copywriter) 이 진,  Audio PD 박 승렬 등 9명의 회의 참가자들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산업은 국가위기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전쟁이 길어진다면 광고대행사는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제작팀원들 사이에 퍼졌다.더우기 전쟁에 패해 중국에 점령당한다면... 변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AE(광고기획)는 회사에서 할 일이 많은 편이다.

  "잠시만요... 보고 좀 하고 오죠."

  평시에는 애국자연 하며 설치던 사람들이  변란시에는 꼬리를 감추는 일은 흔하다. 6.25직전에 북침통일을 외치던 자들이나 조선시대의 대부분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1999년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도망가기 바빴다.정오 뉴스시간에 김포공항의 상황을 방영했는데 아비규환 바로 그것이었다. 나라가 어찌되든 자신들과는 상관도 없다는 모습들이었다.결국 잃을 것도 별로 없는 민초들만 전쟁터에 끌려갈 것이다.

  국장에게 보고한 변 대리는 전무실에 가보았으나 전무는 안보이고 국장, 본부장급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본부장 중의 한 사람은 엉뚱하게도 전무의 회전의자에 눕다시피 하고 앉아있었다. 아무리 전무 본인이 없다지만 너무한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변 대리 왔나? 자네 광고주도 광고 내려달라는 소리지?"

  매체국장의 한마디에 변 대리가 맥이 풀렸다.  광고중지 요청은 그의 광고주인 예삐화장품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광고주들도 기존에 집행되는 광고를 중지시키기 바빴다.

  "전무님은 안계십니까?"

  "전무님은 일본으로 튀고 사장님은 미국으로 튀었지. 우린 어디로 튈까? 제주도가 점령됐다는데 거기로 도망갈 수도 없고... 하하"

  전무실을 나서는 변 대리에게 집에서 전화가 왔다.어머니가 걱정스런 말투로 소집영장이 왔다고 전했다. 소집일은 오늘 오후였다. 바로 집으로 가겠다며 전화를 끊고 상관인 기획부장에게 업무인계를 한 다음, 그와 함께 회의실로 돌아왔다.

  "저는 당분간 출근을 못합니다. 집에 소집영장이 와서...  팩스로 휴직계를 제출하겠습니다. 제 업무는 부장님이 인수하셨습니다.일도 없겠지만... 제가 없는 동안 건강히 잘 계시기 바랍니다."

  놀란 팀원들이 몸조심하라며 변 대리와 악수를 했다.  그가 사무실을 나설 때 이 진이 배웅해주었다.그녀가 울락말락 하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 말고... 서울이 폭격당할지도 모르니 조심해요."

  자신을 먼저 걱정해주는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진은 그 자리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는 그녀를 달래고 차에 올라탔다.그로서는 마지막으로 운전하게 될지도 모를 빨간색 지프(Jeep) 랭글리의 시동을 켰다.

  갑자기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변 대리가 즉시 라디오를 키니 민방위본부에서 알리는 소리가 났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였다.

  "국민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14시 15분 현재 공습경보! 이 상황은 훈련이 아닙니다. 국민여러분께서는 지금 즉시 가까운 방공호나 대피소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제상황입니다. 현재 서해 상공에 중국 전투기로 보이는 다수의 항공기가 접근 중입니다..."

  1999. 11. 17  14:20  인천 서쪽, 서해 상공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수원의 전투비행단에서 즉각 F-16전투기 1개 대대와 F-5 1개 대대가 서해 상공으로 출격했다. 저공으로 목표상공에 도달하자 적은 1개 연대의 F/A-18 전폭기라고 조기경보기가 알려왔다. 적편대와의 거리는 아직 100km 정도 남았다.

  "F/A-18... 적은 전투기인지 폭격기인지 지금 상태에서는 모른다. 아마 절반은 호위, 절반은 폭격 임무를 맡았을 것이다. 아직은 접근한다. 전파관제를 지속하라."

  편대장의 명령이 김 종구 중위의 헬멧을 통해 전해졌다.그는 생전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그는 파일럿이 멋있게 보여서 공군조종사가 되었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강남의 집에서 가까운 수원비행장에 배치되자 그의 천성인 끼를 발휘하여 오렌지족이 되었다.  토요일에 외박을 나오면 스포츠카인 페라리를 몰고 강남의 넓은 도로를 질주했다. 그를 따르는 여자도 많았다. 상대에 따라 돈 많은 대학원생이나 공군조종사로 신분을 바꿔가며 도시의 사냥을 했다.

  사관학교 시절 시작한 컴퓨터 통신의 볼링 동호회에서는 시삽을 맡고 있었다. 음흉한 그는 여자가 가장 많은 볼링동호회에서 잘난 용모와 세련된 매너로 여자회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시삽이 되었다.  동호회에서도 그의 끼가 발휘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원래 그의 아이디는 환경을 뜻하는 envir였다.

  조기경보기로부터 목표에 대한 데이터가 입력되며 스패로우가 발사대 기상태가 되었다. 김 중위는 적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F/A-18의 최대행 동반경은 740km에 불과하다. 이런 항공기로 서울을 폭격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규모 적의 지대지미사일 발견! 목표 수정, 미사일을 요격하라!"

  조기경보기에서 관제관이 소리쳤다.  수정된 데이터가 입력되자 관제관의 명령에 따라 전투기들이 일제히 미사일을 발사했다.  서울 상공의 수호를 책임진 관제관으로서는  당연히 지대지미사일의 공격을 무시 못하겠지만 한국공군의 F-16 편대는 상대적으로 고속인 F/A-18을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F/A-18이 중거리 대공무기가 없어진 F-16 편대에 스패로우를 날렸다. 1기당 2기의 미사일이 발사되자 한국 공군기들이 일제히 레이더를 키고 채프를 뿌리며 급기동으로 미사일을 회피했다. 그러나 미사일은 F-16기들을 무시하고 후속하는 F-5 편대를 향해 날고 있었다.  F-5 편대는 아직 스패로우가 남아있었으나 F-16이 목표를 가려 미사일을 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미사일의 접근을 모르고 있다가 F-16이 회피하여 빈 하늘에서 미사일이 날아오자 F-5 편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 번의 공격에 11기의 F-5가 추락했다.

  F/A-18 전투기들이 편대가 흩어진 F-16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F/A-18은 2기 1조가 되어 F-16 전투기 한 대에 미사일 4발씩을 발사하여 이들이 피할 공간을 주지 않았다. 곧이어 긴급연락을 받고 온 F-5 전투기들이 F-16을 위기에서 구해주었다.F-5들은 성능에 비해 최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F-16들이 위기를 넘기자 정신을 차려 F/A-18들에 역습을 가했다.

  김 종구 중위는 사이드와인더로 한 대,기관포로 한 대를 격추하고 좌측으로 급선회하며 추격하는 적기의 공격을 피했다. 급강하하여 적기를 따돌리고 오히려 다른 적기의 꼬리를 잡았다. 김 중위가 기관포를 쏘았다. 적개심보다는 공포 때문에 적기가 산산조각이 되도록  계속 발사했다.

  성능 뿐만 아니라 숫적으로도 우위에 서있는 중국 전투기들이 의외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한국공군은 애프터 버너까지 가동하며 급속히 전장을 이탈하여 서쪽으로 날아가는 적기들을 쫓지도 못했다.  기지로 돌아가는 중에 그들은 호된 질책을 들어야 했다.중국의 미사일 공격에 서울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F/A-18의 서해상공 출현은 지대지미사일 공격을 돕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이었다.

  김 중위는 당분간 외박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강남의 오피스텔 주차장에 세워둔 페라리가 썩고 있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그의 침대도...

  1999. 11. 17  18:00  평안북도 정주

  중국군 전차부대의 선발대는 어느덧 정주까지 밀고 내려오고 있었다. 이들이 지나가자 구성시 인근에 주둔하던 인민군 제 16사단이 통일참모본부의 명령을 받들어 황급히 후퇴하고 있었는데, 묘하게도 사단병력은 중국군 전차들을 뒤따르는 형국이 되었다. 멀리 보이는 중국제 T-85 II형 전차는 인민군 전차들과 구별되지 않아서 인민군들은 이들을 후퇴하는 인민군 전차대로 착각했다.

  인민군 16사단의 상공을 지나던 중국군 정찰기는 이 부대가 중국군인 줄 알고 병단사령부에 보고하지 않았으며, 인민군도 이 미그-23 유형의 전투기를 후퇴를 엄호하는 인민군 전투기로 잘못 알았다.  어쨋든 인민군 16사단은 적의 공격을 받지않고 정주 남쪽의 운전(평북 남단의 서해안 지역)까지 올 수 있었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교도대와 노농적위대는 안주지역으로 먼저 후퇴했으나, 피난민들을 먼저 보내느라 길이 막히고 장비가 많은 이들의 후퇴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앞서 진행하는 전차부대가 청천강의 지류중 하나인  대령강의 교각을 지날 무렵  멋도 모르고 뒤따르던  사단사령부는 갑작스런 폭음과 함께 선두에서 진행하던 연대의 전령으로부터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무시기? 남반부 아새끼래 전차대를 공격해?"

  "예, 대전차무기 종류가 남반부 거이 틀림없습네다."

  "이~~것들이, 포병은 즉시 전개하라~이..."

  인민군 16사단의 사단장인 백 계림 소장은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했다는 사실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인 그는 아버지를 한국전쟁에서 잃은 전쟁 2세대로서, 한국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전쟁이 북한을 침공하기 위한 한국군의 조작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던 차에 한국군이 전차대를 공격한다는 소식에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했다.

  인민군 16사단의 포병대가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포격을 위해 횡으로 전개하고 사격준비를 하는 동안, 선두의 연대병력은 전차부대를 엄호하기 위해 차량에서 하차하여 전차대가 엄폐하고 있는 강둑으로 뛰어갔다. 사방에 포탄이 떨어져 파편이 튀었다.  강둑에 도착한 인민군 연대장은 망원경을 꺼내 강 건너를 보았다. 벌써 날은 어두워졌고 연막탄에 가려 시계는 흐렸으나  틀림없이 한국군들이 이쪽으로 포와 미사일을 발사하고있었다.

  "국방군 12사단이다!"

  연대장은 국군 제12사단이 영변 북쪽인 평북 운산에 주둔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역시 북한지역에 주둔한 국군이 뭔가 일을 벌인 것이 틀림없다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전차부대와의 합동작전을 위해 옆에서 포를 쏘고 있는 전차의 조종석쪽 해치를 권총으로 두둘겼다.  연대장도 못본 신형전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해치가 열리고  전차원용 헬멧을 쓴 운전병이 고개를 내밀었다.

  "동무는 오데 소속..."

  말을 하던 연대장이 깜짝 놀랐다. 섬광에 비친 그 운전병의 계급장에 붙은 것은 틀림없는 중국군의 휘장이었다. 전차병도 깜짝 놀라 해치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연대장의 권총이 빨랐다.

  "수류탄 까 집어 넣라우! 중국군이야!"

  연대장이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명령하자 하급전사 한명이 방망이 수류탄을 전차 해치 안으로 밀어넣고 몸을 숙였다.잠시 후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나며 전차가 화기에 휩싸였다. 연대장을 따라온 통신병이 이 사실을 즉시 사단장과 연대소속의 대대에 알렸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사단장은 통일참모본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대령강의 다리를 지키는 12사단으로 부터의 보고로는 전방에 중국 전차들이 나타나서 전투중이라는 내용이고, 16사단은 남방에 아군전차대를 국군이 공격하고 있다고 하니 둘중에 하나는 잘못된 정보라는 뜻이었다.  선두의 연대장으로부터 급전이 들어왔다. 중국전차들과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통일참모본부는 즉시 12사단을 불러 중국전차대와 같이 있는 보병들은 인민군이니 보병에 대한 사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인민군 16사단장이 놀라서 지휘차를 타고 강둑쪽으로 내달렸다.

  사단장이 본 것은 혼란의 극치였으며,  결과는 오해로 비롯된 파멸로 나타났다. 전차대 사이사이에서 남쪽을 향해 사격중이던 인민군 보병들이 우군으로 알았던 전차대와 전투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대전차무기가 빈약한 인민군들은 일방적으로 살육당했다.중국전차들이 인민군들을 깔아뭉갰다. 사격할 필요도 없었다. RPG로 몇 대의 중국 전차를 파괴하며 간신히 버티던 인민군들이 결국 강둑을 넘어 강으로 뛰어들었다.

  16사단에 소속된 대전차병기들이 모조리 전투지역으로 출동했다. 1개 전차대대와 대전차무기를 탑재한 장갑차,그리고 사단소속 공격헬기들이 투입되었다.  중국군 전차들은 1개 연대로 파악되었으나 병력의 우열을 따질 시간이 없었다. 사단의 전 화력을 투입하여 중국 전차부대를 대령강 상류쪽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중국 전차들이 인민군 선두의 연대병력과 분리되자 인민군과 국군의 포병이 사격을 개시했다.

  중국의 전폭기편대와 인민군의 공격기편대가  동시에 전장 상공에 도달했다. 양쪽 모두 지상목표보다 공중의 위협에 대처해야 했다. 호위기들끼리 싸우고 공격기들도 공중전에 가세했다. 국군의 지대공미사일 지원을 받은 인민군 항공기들이 중국군 비행기들을 몰아내고 나서 중국전차들을 공격했다.여기에 국군과 인민군의 포격, 그리고 대전차미사일이 가세해서 중국 전차연대를 괴멸시켰다.

  국군과 인민군이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순간 선발대의 전멸을 확인한 중국 장갑집단군의 포병들이 사격을 개시했다. 대령강 양안의 모래밭에 포연이 자욱했다.  인민군 16사단은 서둘러 강을 건너 국군의 방어진에 다달았다.

  1999. 11. 17  19:00  평안남도 신안주, 청천강 다리

  통일참모본부는 국군과 인민군들에게 청천강 이남지역으로  후퇴하도록 명령했다. 박천까지 중국군에게 점령당해서 기동력과 화력이 우세한 중국 전차부대에 대한 방어선을 청천강으로 정하고 모든 병력을 후퇴시키고 민간인도 소개했다.

  도로를 따라 피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이 있는 부녀자들이 중심이 된 피난민들이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동원예비군격인 교도대나 민방위와 흡사하나 이보다 전투력이 있는 조직인 노농적위대에 입대하여 인민군 현역들과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포격과 중국군 전투기들에 의한 폭격이 계속되었다.도로 위에서 서둘러 남으로 향하던 민간인 차량들이 대량으로 파괴되었다.  사방에 비명이 난무하고 사람들이 도로 밖으로 뛰었다.도로는 붉은 피로 포장이 되었고 순식간에 불타는 승용차와 시체로 통행불능이 되었다.

  인민군 16사단의 사단장인 백 소장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중국군의 포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후퇴가 만만치 않았다.  국군 12사단이 먼저 후퇴를 하고 인민군 16사단이 뒤를 따르는데  국군은 피난민의 안전을 고려하여 너무 천천히 후퇴했다. 백 소장이 지휘차로 먼저 달려가 도로관제원들을 닥달했다. 트럭으로 후퇴하던 국군들이 구경난 듯 보고 있었다. 백 소장이 화가 나서 권총을 빼들고 도로관제를 맡은 정치보위부 소속의 하급군관 한명을 즉결처분했다.  놀란 도로관제 담당 군관이 민간인들을 도로에서 벗어나게 했다.민간인들이 총을 들이댄 이들의 서슬에 놀라 길 옆에 차량을 버리고 걸어갔다. 남쪽에 신안주시의 불빛이 보였다.

  박천을 뺏긴 통일한국군은 청천강을 건너 안주로 넘어갔다.  이미 도착하여 방어진을 구축중인 후방부대와  정주 등에서 후퇴한 부대, 그리고 민간인 피난민들로 안주는 혼잡했다.중국은 공격전에 사전 정지라도 하려는 듯 전 포병을 동원하여 안주와 신안주일대에 포탄을 퍼부어댔는데 피난이 늦은 민간인들의  머리 위에 무차별로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제 저녁에야 도착한 서부전선 사령관격인 전 상현 상장은 부대배치를 마치고 참모들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웠다. 동쪽은 묘향산맥, 서쪽은 청천강으로 삼은 방어선은 자신이 보기에도 믿음직해 보였다.

  1999. 11. 18  17:00  평안남도 안주 용연리, 안주지구 방어사령부

  "엄청나군요. 포탄이 비오듯 쏟아진다는게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쨋든 잘들 오셨소."

  안주지구 방위 사령관으로는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인민군의 유명한 전 상현 서부전선 사령관이 겸임하고 그 휘하에는 인민군 820 기계화군단과 제 4군단, 제 2군단, 제 7군단, 그리고 북한지역에 배치되었던 국군 제 12사단이 배속되었다. 지금은 각 부대의 배치상황 보고와 방어작전 계획 전달을 위해 각 예하부대의 지휘관들이 사령부가 있는 안주 시가 뒤의 용연리(龍淵里)에 모인 것이다.

  용연리는 안주의 남동쪽 산인 167고지 대조봉을 북쪽에 두고 있는 자그마한 부락이다.  중국측의 포격이 워낙 치열해 교통이 발달한 안주나 신안주에 사령부를 설치할 수 없어 이 곳에 설치했는데, 인근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대조봉에 레이더기지와 송신기지를 설치할 수 있어서 유리하기도 했다.

  "동지들도 잘 알다시피 이곳이 뚫리면 막강한 중국군 장갑군단들때문에 평양까지 바로 밀리게 되오.  안주 뒤에는 방어에 유리한 자연적 지형이 전혀 없는 평야로 이뤄져 적 기갑부대와의 싸움은 우리가 상당히 불리하게 된단 말이오.  우리 합심하여 안주를 지켜내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을 중국군을 상대로 오늘날 다시 한번 재현해봅세다."

  수나라 백만대군을 상대로 대승한 살수대첩, 그러나 현 상황은 적 보급선의 확장을 노려 적을 유인한 것이 아니라, 국군과 인민군 연합군이 일방적으로 패해 밀려온 상황이었다. 그러니 을지문덕 장군같은 사전준비나 작전은 일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통일참모본부는 인민군 9사단과 국군 제 11기갑사단이 각개격파 당하고 후방부대의 병력 이동이 느려지자 사실상 평안북도를 포기하고 청천강과 묘향산을 이은 선을 방어선으로 삼은 것이다.  정주(定州)와 박천(博川)에서 일부 있었던 저항은 사실은 청천강 방어선의 확고한 진지구축을 위한 시간벌기에 불과했다.

  "적 주공은 정보보고에 의하면 아무래도..."

  전 상장이 벽에 걸려진 대형지도를 지휘봉으로 지적하며 직접 설명했다. 북위 39도 40분에 걸쳐있는 청천강 주변지역의 2만 5천분의 1 지도였는데 현재 중국군의 병력과 위치가 상세히 기입되어 있었다.

  "신안주 바로 앞에 있는 원일리(元一里)가 될듯하오.  동쪽 백돌고개쪽과 서쪽 북일리(北一里) 앞에는 섬들이 있는데 사구와 개활지라 적이 엄청난 피해를 각오하지 않는 한 엄두를 못낼 것이오. 그리고 안주보다는 도로망이 발달해있는 신안주(新安州)를 점령하는 거이 적의 일차 목표인듯 싶소. 그리고, 원일리 앞 청천강의 다리 세 개는 이미 파괴되었소. 중국측이 우리군의 후퇴를 방해하기 위해 먼저 파괴한 것으로 보아 적은 충분한 가교부대가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오."

  그가 잠시 국군 12사단의 공병장교에게 눈을 돌려 질문을 던졌다. 중국군의 도하예상지점이 원일리라는 것은 모두가 수긍하여  반대가 없었다. 그 공병장교가 대답할 때까지는.

  "동무가 청천강 도하전을 감행한다면 전투중 가교를 설치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소?"

  그 공병장교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설명을 했다.

  "강폭은 원일리 앞이 77 미터이니 이 곳에 리본부교를 설치한다면 약 40분이 소요됩니다.아군의 화력과 공중지원을 충분히 받는다고 해도 가교 하나 건설하는데 숙련된 공병 1개 대대는 희생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중국의 공병책임자나 작전책임자라면 원일리를 도하지점으로 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 상장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젊은 국군 공병장교를 쳐다보았다. 인민군 작전참모들도 마찬가지로 건방지기까지한 국군의 장교를 응시하였다. 전 상장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젊은 공병장교에게 물었다.

  "만약 동무에게 중국군의 작전지휘권이 있다면 어딜 선택하갔소?"

  공병장교가 즉시 대답을 했다.

  "여기 동쪽 용전(龍田)과 도회(都會) 사이의 강입니다.  가장 강폭이 좁고 남쪽이 산지라 수비측 입장에서는 방어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곳은 기갑부대가 운신하기 어려운 곳이 아니오? 적은 중국 장갑집단군인데 어찌 그런 곳을 선택하겠소?  스스로의 기동성을 제한하고 싶은 기갑부대장이 어디 있단 말이오?"

  인민군 820기계화군단의 군단장인 인민군 중장이 힐난했다.그러나 국군의 공병장교인 김 대식 중령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보시다시피 이 지역을 도하하려면 공격측이나 방어측, 양자 모두 기동의 제한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강폭이 워낙 좁아서 중(重) 강습교량(Heavy Assault Bridge)차량 하나면 충분합니다. 최근에 제작된 강습교량은 예전의 전차탑재교량(AVLB)과  달리 성능이 대폭 향상되어 길이가 30미터가 넘어, 강폭이 25 미터인 이 지역에선 충분합니다. 설치시간도 5분이면 되니 간단합니다. 중강습교량은 70톤의 하중을 버틸 수 있으므로 적 전차들은 충분히 사격을 하며 도강할 수 있습니다."

  김 중령은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곰곰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숫자를 외우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역인 모양이다.

  "그리고 북쪽의 사구로된 개활지로는 적 기갑부대가 산개하여 공격해올 수 있으며, 공격 전에는 이 언덕 뒤에 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어는 어떻습니까?  남쪽 지역은 산지라서 전차 부대나 포병을 배치하기 힘든 곳입니다. 배치할 수 있는 병력 수에도 제한이 있게 되죠. 그리고, 일단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된다면 여기 이 도로를 따라 진격, 안주를 배후에서 공격할 수 있게 되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중국군 장갑집단군에 중국 해병사단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 주목해 주십시요.  이들의 전차는 수륙양용입니다."

  김 중령은 자신의 전공을 넘는 문제에 너무 아는 척 하는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말, 다 해버리자는 식의 표정이 역력했다.

  "물론 중국제 전차는 러시아제와 마찬가지로 슈노켈을 장비하고 있어서 수심 5미터 정도는 충분히 도하할 수 있습니다만,슈노켈 제거 후 정상 운행까지는 2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러나 수륙양용은 다릅니다. 수중 도하가 아닌 수상 도하이며 도하중 전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적의 규모로 보아 장갑집단군을 필두로한 작전기동군입니다.  종심방어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예비부대의 확보가 필요합니다.  예비부대는 특히 전차부대로 이뤄져야합니다."

  김 중령의 설명에 모두가 수긍하는 눈치였으나  예비병력으로 돌릴만한 기갑병력이 부족했다. 작전기동군은 적의 종심방어선을 돌파하여 전략목표를 탈취하기 위해 신속한 기동력을 가진 기갑부대를 위주로 편성된 부대를 말한다.  이는 구 소련이 서유럽과 전쟁을 벌였을 때 전략의 기본개념인데 중국에서 이를 빌어와서 한반도에서 써보려는 것이다. 반박했던 중장이 재차 질문했다.

  "방위사령관이신 전 상장님이나 기갑부대의 장군인 본관이 다 원일리를 도하지점으로 예측했소. 그리고 중국군 장갑집단군의 지휘부도 기갑부대출신일 것이오. 공격전에 상당수가 포에 격파될 이런 개활지보다는 강둑이 있는 원일리 앞쪽이 낫다고 봅니다만,전차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하기위해서 그들도 원일리를 택하지 않겠소?"

  "원일리의 북쪽 대안은 여북리(余北里)군요. 논으로 이뤄진 개활지입니다. 강둑이 있다고는 하지만, 포격관측은 높은 고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직접 사격에 대한 방어 외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즉,적 기갑부대는 도하 전에 2 km나 포격에 노출이 됩니다. 이런 포격에 남아날 기갑부대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방어측도 적의 포격에 상당한 피해를 보게되겠지만, 그래도 방어는 상대적으로 수월해 보입니다.

  제가 중국 기갑부대의 지휘관은 아니지만 저라면 절대 원일리를 도하지점으로 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공병대대장이 아닌 공격측의 기갑부대장이라면 말씀입니다."

  "음...  그렇다면 적이 안주를 공격하려면 상당히 우회를 해야하는데 과연 기갑부대인 적이 산지쪽으로 우회를 할까?"

  전 상장이 젊은 김 중령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도 이젠 폐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회의 바로 남쪽은 산이지만 도회에서 안주로 가는 길 옆의 산으로 표시된 등고선은 산이 아닙니다.  제가 올 때 보니 밭으로 개간이 됐더군요. 그리고 가장 높은 지역이어야 겨우 해발 87미터 고지일 뿐입니다. 그것도 완만한 능선으로 되어 있어서 전차대로서는 평지나 다름없는 지역입니다."

  "적에게 해병기갑사단이 있다면..."

  조용히 있던 12 사단장인 최 소장이 김 중령의 말을 이었다.

  "백돌고개쪽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는 최대 수심이 4 미터라고 되어있지만 지금이 갈수기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중국의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가교 등의 인공물 없이도  충분히 도하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현재 포병과 백돌고개쪽의 위치를 보면 포병의 포 사격 지원이 상당히 어렵겠습니다. 사령부가 있는 대조봉은 겨우 167고지밖에 안되지만, 우리 포병이 너무 가까이 배치되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상당한 고각사격이 되겠군요."

  최 소장이 포병여단장을 보자 포병여단장이 끄덕거렸다.

  "다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의 사각(死角)이 생기게 됩니다. 분산 배치를 했기 때문에 사각은 상당히 줄였습니다만 집중포화는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물론 급속사격도 힘들어집니다. 잘못하면 사령부에 오발할 수도 있습니다."

  기타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고 방어작전은 대폭 수정되었다.포병의 배치를 분산시켜서 백돌고개 앞쪽의 사각을 대폭 줄이고, 다른 부대의 대전차병기들을 상당수 12사단쪽으로 양도했다. 후방에서는 속속 대형 치누크 헬기를 통한 대전차무기의 보급이 이뤄지고 있으므로  대전차병기의 부족은 없었다.  드디어 결정은 내려지게 되었다. 박 상장이 명령을 내렸다.

  "좋소. 주 방어진지는 도회로 하겠소. 전 포병대가 국군 12사단을 지원할 것이오. 포병여단장은 당장 관측장교를 도회에 파견하시오.  하지만 적의 주 공격목표는 결국 신안주이기 때문에 820 기계화는 원일리에 배치하겠소. 12사단에서 필요한 것은?"

  국국 제 12사단장인 최 선일 소장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자신으로서는 치욕이라고 느꼈다. 거의 산악부대였던 자신의 사단을 평지에 몰아넣은 육군본부가 저주스러웠다. 처음 자신의 부대가 북한으로 이동배치받을 때도 북한과의 상황이 안좋을 경우  쉽게 포기하기 위해 자신의 부대를 북한에 배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었다.

  "저희 사단은 통일 전의 원래 주둔지가 강원도 산골이라 전차와 대전차병기가 부족합니다. 적의 주공이 기갑부대라면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부대로 방비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알겠소. 전차 1개 여단을 12사단에 배속하겠소."

  전 상장으로서도 국군 12사단의 장비와 규모를 익히 아는지라 호쾌히 부대를 떼어주었다.  남북이 서로의 지역에 자신의 군대를 교차 주둔시켰으나 유사시에 대비하여 그 주둔부대의 병력과 장비를 파악하는 정보업무가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 적이 있었으며 전 상장도 북한 지역에 주둔하는 모든 국군부대의 화력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 소장도 걱정이 되었다.  인민군과의 최초의 합동작전인 것도 문제였으나 인민군의 구식 T-62 전차가 최신식 중국전차들과의 전투에서 제대로 전과를 올려줄지가 걱정이었다. 전차 1개 여단을 지원받았음에도 자신의 부대가 적의 주 공격목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걱정되었다. 최 소장과 국군 참모들의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11. 18 19:50, 신안주시 북쪽 2 km 원일리 방어진

  "옵니다. 수 백 대의 땅크입니다."

  "기래? 어디 보자우."

  하급전사를 제치고 초소장이 열영상장치를 통해 전방을 보니 과연 어둠을 헤치고 수 백 대의 중국제 전차들이 몰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군의 포격 때문에 우렁찬 전차 엔진음은 들리지 않았지만 틀림없는 중국제 전차였다.

  "본부 나오라우. 여기는 올빼미 여덟. 중국 전차부대 발견. 위치는..... 223887, 수백대의 중국제 땅크! 포 사격 바란다."

  초소장인 인민군하사가 적의 무차별 포격에 머리를 숙이고 5만분의 1 지도의 좌표를 찾아 무선으로 본부에 보고했다.그러나 즉시 포격지원을 해줄 줄 알았던 본부에서는 엉뚱한 질문을 퍼부었다.

  "다시 한번 확인하라. 적 전차부대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

  하사는 화가 났다. 도대체 본부는 뭘 묻는 것인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란 말인가?

  "땅크가 수 백 대다. 강 건너편 논에 깔린 거이 다 땅크다.정 의심스러우면 직접 와서 보라우!"

  "알았다. 즉시 포격지원을 하겠다."

  같은 시각, 용연리 사령부

  "대규모의 적 전차부대가 원일리 건너 여북리에 나타나서 진군해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포격을 허가해 주십시요."

  참모의 보고에 전 상장은  딜레마에 빠졌다.  적의 주공이 과연 어느 쪽인가.낮의 회의에서는 국군의 젊은 공병대 장교의 말을 믿고 적의 주공이 도회가 될 것으로 예상하여 작전계획을 수정하고 부대를 재배치했었다. 그러나 적은 역시 자신의 애초 예상대로 여북리에 나타난 것이다. 그 수백대의 적 전차가 과연 적의 주력인가,  적의 주공이라면 즉시 포격 등의 모든 수단방법으로 방어해야 하는데 만약 적의 조공일뿐이라면 포병대의 위치만 가르쳐주고 적의 주공에는 지원을 못하게되는 꼴이 되고말 것이다.

  "적의 주공인가?"

  "예, 원일리쪽의 모든 청음, 관측초소로부터의 보고입니다. 수백대의 전차라고 합니다. 적의 전차가 전원 투입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적 포병대의 사격이 시작되었습니다.원일리 일대의 방어진지는 적의 포격으로 엉망이 되고 있습니다."

  전 상장은 중국군의 지휘관이 성격이 급하고 인민군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이렇다면 자신의 처음 주장대로 원일리쪽의 방비를 중시해야 했다.너무 머리를 쓰다보니 자신의 꾀에 자신이 넘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포격을 개시하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도회의 전차여단은 어떻게 할까요?"

  전 상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결단을 내렸다.

  "현 위치에서 즉시 이동 가능하게 대기하도록 명령을 내려."

  "예!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그 참모가 명령전달을 위해 돌아가자 국군 항공관제장교가 보고를 했다.

  "현재 상공에는 대규모 공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적은 일반적인 중국제 섬형 전투기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수입한 미그-29가 주력입니다. 아군이 상당히 밀리고 있지만  적 항공기의 지상공격은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기래야지. 잘 하고 있구만."

  항공관제 장교는 전 상장의 말에 상당히 섭섭했지만, 그래도 아군 전투기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싸워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지상군은 직접 적의 폭격을 받기 전까지는  공군의 고마움은 모르는 법이었다.  관제장교가 레이더를 보니 아군 전투기들의 수가 많이 줄어있었다.

  레이더에서 또 한대의 F-5 전투기가 사라졌다. 비교적 대형의 러시아제 공대공미사일은 전투기를 철저히 파괴시켜 조종사가 탈출할 틈이 없을 것으로 그는 생각했다.미사일의 명중율이 높아진 현대에도 러시아는 적 전투기의 철저파괴를 신념으로 삼아 대형이며 소수의 미사일을 장착하는 것이 전통이었고 중국도 미사일에 있어서는 러시아의 전술을 많이 베꼈다. 항공관제 장교가 보니 또 한 대의 미그-23 전투기가 없어졌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아군 항공대가 전멸할 것같아 걱정되었다.

  1999. 11. 18  20:00  원일리

  "대대장 동지, 아군의 포격이 시작됐습니다."

  "기럼 고개 팍 숙이고 있으라우."

  예광탄과 함께 인민군의 중포와 전차포들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곧이어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강 건너 여북리의 논에  화염이 솔구쳐 올랐다.  여기저기에 파괴된 전차가 나뒹굴었으나 중국 전차들은 무슨 일인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계속 몰려왔다.  대대장은 잠망경식 야시경으로 계속 접근해 오는 중국군들을 관찰하며 상급 부대에 무전기로 보고를 했다.

  일정 거리에 이르자 원일리 방어진의 대전차화기들도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중국의 포와 전차포, 인민군의 포와 대전차병기들의 포탄 세례의 교환은 하늘을 붉게 수놓았다. 중국군은 필사적으로 리본부교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인민군의 기관총 사격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인민군 820 기계화군단의 방어진인 원일리에서는 도망치는 적을 향해 사격이 계속되었는데 한 군관이 전과를 확인하기 위해 적진을 망원경으로 살펴보더니 경악을 했다. 위험한 상황이 물러가고, 후퇴하는 중국군 진열에 조명탄이 연이어 발사되자 이제야 적군을 제대로 본 것이다.

  "대대장 동지! 적 전차는 몇대 안됩니다. 대부분 장갑차입니다. 전차도 구식 T-72..."

  "메이 어드레? 기럼 적 땅크들은 다 어데로 갔나? 본부 부르라우!"

  같은 시각,  용연리 사령부

  "뭐야? 장갑차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해 봐!  아까는 전차 수백대라고 하지 않았나?"

  작전참모 한 사람이 수화기를 대고 호통을 쳤다. 참모의 통화 모습을 본 전 상장이 얼어붙었다. 아군 포병대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나자 원일리로 오던 중국군 부대가 주공이 아니란 것이 밝혀졌으니  앞으로의 전투는 힘들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

  갑자기 사령부 상공에 전폭기의 폭음이 들려왔다.  수많은 중국 공군 소속 비행기들이 인민군의 대공 감시망을 피해 저공으로 침투해 들어온 것이다.

  "항공! 항공!"

  사령부 건물 밖에선 이제야 공습을 알리는 경보가 울려퍼졌다.지상의 각종 대공화기가 불을 뿜었으나 이미 늦었다. 사령부가 있는 대조봉 일대와 포병여단이 있는 남쪽의 장상리 일대가 불바다가 되었다. 계속 안주상공 남쪽에서 선회하던 국군과 인민군 전투기들이 맞서 싸웠으나 전투기 수에 있어서도 압도당해 이미 제공권은 상실했고,  중국 지상군의 대공미사일이 무서워 직접 아군상공에 도달하여 중국폭격기를 요격하지 못하자 인민군의 피해는 커져만 갔다.

  그러나 인민군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해가 지자마자 주둔지 전역에 기름통을 놓고 불을 질러 놓았다. 야간공습을 한 중국기들은 조종사들이 야간감시고글(NVG)을 착용해서 목표물을 탐지하고 있었는데, 이 기름통의 불들이 야간감시고글의 기능을 마비시켜버린 것이다.  중국기들은 할 수 없이 관성유도장치에 의한 폭격만을 감행하고 정밀유도 폭격은 포기했다. 게다가 인민군의 주둔지와 송신기의 위치가 달랐으므로, 사전에 선정된 제한된 목표만을 공격할 수 밖에 없었다. 인민군의 포병만이 포 사격으로 인하여 어쩔수 없이 위치가 노출되어 중국 공격기들의 집중적인 공습을 받아 분산배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막심했다.

  "대규모 적 전차부대 발견! 위치는 도회리 전방입니다."

  통신병이 경악성을 토했다. 역시 적의 주력은 강폭이 짧은 도회리 쪽으로 공격해왔다. 전 상장은 당황했다. 지원할 병력도, 포병도 없는 것이었다.  모든 전선에서 적의 포화가 빗발치고 보병과 기갑부대에 의한 단속적인 공격이 있는 판에 얼마 안되는 예비병력을 도회리쪽으로만 투입할 수도 없었다.

  "포병대에 연락해봐! 피해상황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누가 뛰어갔다와서 보고해!  그리고 남은 포가 있으면 당장 12 사단을 지원하라고 전해!"

  이미 인민군과 국군의 구별은 없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인민군과 국군을 명확히 나눠서 부르지 않았던가.

  "사령관 동지. 12사단장의 무선보고입니다."

  박 상장이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통신기를 들었다. 국군 제 12사단장인 최 선일 소장의 침울한 목소리가 폭발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내용은 뻔하지 않은가.

  "사단장, 사수하시오."

  전 상장은 이 한마디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다. 그로서는 너무 무기력하게 패배를 자인하기는 싫었다.  자신의 무력함에 참을 수 없게 된 전 상장이 덧붙였다.

  "내레 바로 가갔소."

  전 상장은 아직도 중국의  폭격과 포격이 계속되는 와중에 자신의 장갑지휘차에 올라탔다. 운전병에게는 최고속도로 12사단 사령부로 갈 것을 명했다. 운전병이 야간고글을 쓴 채 달렸으나 곳곳에 섬광과 불길이 치솟자 야간고글을 벗은채 질주했다. 사방에 인민군들의 파괴된 전차와 불타는 장갑차들이 보였다.

   저 안에는 우리 젊은 인민군들의 시체가 있을 것이다!

  전 상장이 중국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 올랐다.수없이 많은 자신의 부하들이, 전우들이, 젊은이들이 죽고 있는 것이다. 미그-29 전투기가 차량 행렬을 향해 다가왔으나, 호위 BMP에서 휴대형 대공미사일을 발사하자 전투기는 즉시 도망가 버렸다.  도회리에 다가갈수록 포성과 총성이 요란했다.

  1999. 11. 18  20:25  안주시 동쪽 도회리, 12사단 전방지휘소

  "단결!"

  경비병이 전 상장 일행을 보더니 받들어총 자세를 취했다.  인민군의 복장은 중국군과 비슷해 오인사격이 많아 초소 경비병들은 항상 주의를 다해야했다. 경비병이 지하벙커로 전 상장 일행을 안내했다.

  "상황은 어떻소?"

  최 선일 소장은 경례를 하는둥마는둥 하더니 계속 모니터들을 주시하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일제 사격!"

  사방에서 포성이 울려퍼졌다.  전 상장은 이 소리가 반지하벙커인 사단 전방지휘소에 적의 포탄이 맞은것이 아닌가 움찔했다. 전 상장이 궁금해서 모니터를 보니 파괴된 수십대의 전차가 화면 가득히 보였다. 도회리의 강 건너 용전리 서쪽의 논과 밭엔 수많은 중국제 전차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공중에선 인민군 전투기들이 공중전을 하느라 지상지원공격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전투기들의 공기를 찢는듯한 소리와 기관포 발사음이 지하 지휘호에까지 들려왔다. 전 상장의 호통을 들은 공군 관제관이 인민군과 한국군 전투기들을 접적 상공까지 유도해서  중국의 지대공미사일에 의한 피해가 늘어났다.  중국의 구식 J계열의 공격기들은 끝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적 전차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한고비를 넘겼는지 최 소장이 전 상장 일행을 전자상황판으로 안내했다.10여명의 소위와 중위들이 정찰대와 하급부대의 보고를 받아 적정을 표시하기 바빴다.

  "현재 적의 3차에 달한 공격을 분쇄했습니다.  특히 이 앞의 강에 가교를 건설하려는 기도가 2차에 걸쳐 있었습니다. 중국군은 아군에 대한 포격을 가하며 수륙양용전차로 먼저 밀고 왔습니다만 격퇴했습니다. 문제는 가교인데  중국군은 한번에 6개가 넘는 AVLB(미 육군의 가위식 중강습교량)를 설치하곤 합니다.계속 파괴해도 끝이 없습니다. 강폭이 짧고 수심이 깊은 곳은 폭이 20미터밖에 안되어  가교전차 하나만으로 다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김 중령의 지적이 옳았습니다.  아까는 1개 대대의 적 전차가 도하해서 몰아내는데 꽤 애를 먹었습니다."

  과연 중국군은 바보가 아니었다.  중국은 한국을 침공하기 전에 한국의 지리에 대한 소상한 사전조사가 있었다.  위성사진을 통한 분석이나 한국 국립지리원에 대한 첩보행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의 왜국첩자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공작원들을 한국에 파견하여 지형지물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전략적으로 중요한 청천강과 대동강, 한강 등은 아주 상세한 지리조사가 있었다.

  12사단의 공병감인 김 중령은 상황판을 보며 시무룩해져 있었다.그의 얼굴은 이미 전세는 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진작 그의 말을 믿고 이 지역에 더 많은 증원을 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판단이었다.

  "아군의 피해는 어떻소?"

  김 중령을 흘끗 보고나서 전 상장이 묻자 최 소장이 즉답했다.

  "적의 규모가 너무 큽니다.  우리 사단 앞에만 적 2개 집단군이 있지 않나 추산될 정도입니다.현재 파괴한 적 전차만 100대가 넘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전차가 공격때마다 몰려오곤 합니다. 아군은 현재 병력 30%와 장비 50%의 손실을 보고있습니다.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병력 30%의 피해라면 1~2차 대전 유럽전선이라면 벌써 적에게 항복하거나 후퇴해야할 정도의 피해상황이었다.후퇴할 기회가 있을 때 후퇴한다고 해도 이는 지휘관의 무능을 탓할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전투의 중심지였다. 전멸을 하더라도 후퇴는 할 수 없었다.

  "지원을 하겠소.  하지만 전 지역에 걸쳐 적이 파상공격을 해오기 때문에 전차부대의 지원은 어렵고 보병 1개 사단을 지원해 주겠소."

  "적 전차의 수는 엄청납니다. 전차부대가 아니면 어렵습니다. 게다가 적 전차 주력의 차종이 뭔지 아십니까?  러시아제 T-90입니다."

  전 상장이 깜짝 놀랐다. T-90은 러시아가 1993년에 실전 배치한 최신형 전차였다.  레이저 경보장치와 적외선 재머가 장착되어 있어 대전차 미사일에 대한 방어가 강화되었고, 능동반응장갑은 APFSDS(철갑탄의 일종)나 HEAT탄(성형작약탄)의 피탄에도 끄떡없었다. 기타 많은 러시아의 과학기술이 집약된 최신형의 전차였고 이를 방어할 무기나 전술은 서방 여러나라에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이런 상황에 중국이 집단군 규모의 T-90을 보유했다는 것은 통일한국의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중국군에 T-90이... 그리고 어떻게..."

  전 상장이 깜짝 놀라 묻자  최 소장이 계속 명령을 내리는 중간에 두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다.

  "먼저 기총으로 예광탄을 쏴서 능동반응장갑을 파괴하고, 저격병들이 적외선 재머를 쏘아 부숩니다.  그 후에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적 전차 하나 파괴하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병간의 협동이 있어야 됩니다. 자, 또 온다. 준비..."

  중국군 전차들이 몰려온다는 부관의 경고에 최 소장이 상황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 소장은 중앙의 대형스크린보다는 좌측의 지상레이더를 신뢰하는 눈치였다.  전자전에 익숙치 못한 전 상장이 보기에도 수백대의 움직이는 차량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사령관 동지, 백돌고개가 뚫렸습니다!"

  지휘부를 따라온 통신병이 외쳤다. 백돌고개는 안주 시가와 도회리의 중간에 위치한 지점으로 청천강이 갑자기 넓어져 폭 2 km, 길이 6 km의 사구와 삼각주가 있는 지역의 남쪽 중심지이기도 하다.  백돌고개가 적에게 점령된다면, 중국은 도회리와 안주시의 연락로를 차단하고 인민군 사령부까지 넘볼 수 있는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쪽 적 병력은?"

  "아군 4군단이 맞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합니다. 지금 예비병력까지 모조리 투입했는데도 막지 못했습니다.  약 1개군단의 기갑부대와 2개군단의 기계화혼성부대로 추정된답니다."

  인민군은 중국군의 주공으로 예상되는 원일리 일대에 820 기계화군단을 배치하고 좌측 낙만리(樂萬里) 지역에 2군단, 우측 안주시가와 백돌고개쪽에 4군단을 배치하고 가장 우측 도회에는 국군 제 12사단을 배치했었다. 그러나 중국군 기계화 부대는 도회리와 백돌고개쪽을 주공으로 잡은 것이고, 폭이 짧은 안주전선에 방어군의 몇배나 되는 병력을 배치한 것이다.

  "820기계화에서 1개 사단을 빼내 백돌고개로 돌려! 그리고 7군단에서 2개 사단은 즉시 이쪽으로 이동시키도록! 아니, 이동 대기!"

  전 상장은 당황했다. 패배는 이제 기정사실이었다. 다만 얼마나 아군의 피해를 적게하느냐가  작전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전 상장은 이왕 이렇게 된바에 원일리의 820 기계화군단을 도하시켜 백돌고개로 공격해오는 중국군의 배후를 쳐버릴까 하다가 기계화군단의 큰 피해를 우려하여 후퇴하기로 작심했다.

  1999. 11. 18  20:35  백돌고개, 인민군 전초기지

  "전부 뚫렸습니다. 적 전차들은 우리가 있는 곳을 다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이젠 장갑차와 보병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셀 수가 없이 많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만 대충 쏴도 다 맞겠습니다.근데 포격은 왜 안해주는겁니까?"

  인민군의 한 문철 중위가 무전기에 대고 속삭였다. 이 전초기지는 인민군 4군단의 최일선에 있는 관측기지인데  중국군의 전진이 워낙 빨라 미처 후퇴하지도 못하고 아직까지 관측보고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중사가 소대장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없이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한 중위는 전방을 잠시 주시하더니 무전기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포격지원이 늦은데 대해 불만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적 보병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담에 봅시다, 사단장 동지!"

  한 중위와 그의 소대원들은 이제 결전을 위한 준비를 했다. 몰려오는 중국군을 향해 기관총과 드래곤 2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적외선 유선유도방식의 드래곤이 날 때마다 장갑이 얇은 보병전투차 한대씩을 날려버렸다. 보병전투차에서 보병들이 급히 하차했다.이제 보병들은 인민군이 숨어있는 언덕까지 엄폐물도 없이 뛰어와야만 했다.

  한 중위는 미제인 드래곤 미사일이 역시 미제인 브래들리 보병전투차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인민군과 중국군이 서로 미제의 무기로 싸우다니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만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미제(米帝)는 조중(朝中) 공동의 적이 아니었던가?

  한 중위의 신호에 따라 매설된 지뢰를 연속적으로 폭파시키자 하늘까지 붉게 물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웬만한 총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중국군들이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더니  인민군들이 소수인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있게 몰려왔다.

  수십대의 미제 M2A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가 25 밀리 기관포를 난사하며 인민군들이 있는 언덕으로 몰려왔다. 소대에 할당된 8개의 대전차미사일은 이미 다 소비했다. 이제 남아있는 대전차무기라고는 몇 개의 RPG-7밖에 없었다. 이제는 후퇴할 수도 없는 한 중위의 소대는 결전을 각오했다.

  중국군의 보병전투차가 접근하면서 기관포를 쏘아댔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옆에서 기관총을 쏘던 전사가 쓰러졌다. RPG를 들고 있던 중사가 참호 위로 스치는 기관포탄의 각도를 보고 있다가 한순간 벌떡 일어났다. 거리는 60미터도 안되었다. 야광물질을 칠한 조준기 안에 보병전투차의 기관포 섬광이 잡혔다. 한 중위가 방아쇠를 당기자 강한 힘으로 포탄이 날았다.  포탄은 정확히 보병전투차의 포탑에 명중해 포탑을 종이 찢듯이 날려버렸다.

  옆에 있던 한 중위가 환성을 지르자 중사가 씩 웃었다.  웃으면서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그의 가슴에서는 피가 분수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 중위가 중사를 멍하니 보다가 기관총을 잡고 쏘기 시작했다. 쏘면서 곁눈질로 소대의 상황을 보니 인원이 절반도 남지 않았다. 적은 셀 수도 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중위가 신호탄을 쏘고 머리를 숨기자  각 분대의 크레모어를 맡은 하급전사들이 일제히 격발기를 눌렀다.참호 위로 크레모어의 후폭풍이 지나갔다. 그의 철모와 군복에 먼지가 쌓였다.  중위가 다시 머리를 내밀고 보니 중국군 보병들은 보이지 않고 보병전투차들이 겁먹은듯 정지해 있었다. 어떤 전사가 RPG를 발사해서 보병전투차 한대를 파괴하자 보병 전투차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살아서 돌아가는 중국군 보병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

  "후퇴~ 남쪽으로 움직이라~~~우!"

  만신창이가 된 인민군들이 슬금슬금 참호에서 기어나왔다. 이들은 부상당한 동료들에게 수류탄 하나씩을 안겨주고 2차 공격을 피해 언덕 반대쪽으로 내려갔다. 부상자들이 씩 웃었다. 조금 이따가 보자는 뜻이었다.

  100미터쯤 걸어 내려가다가 굉음에 놀라 소대가 있던 언덕을 보니 언덕은 이미 불바다가 되고 있었고 하늘에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전투기 2대가 선회하고 있었다.저공으로 소대 위를 지나쳤으나 소대원들은 중국군인척 하고 태연히 남쪽으로 걸어갔다. 전투기들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뚝을 넘어 갈대밭에 엎드린 채 길을 보니 수많은 중국군 장갑차와 보병들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 중위가 소대를 도로를 따라 횡으로 산개시키고 분대장들을 불렀다.

  "공격하갔소. 준비들 하기요."

  분대장들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었다. 분대장들이 돌아가자 한 중위가 발사신호를 했다. 소대원들이 일제히 수류탄을 던지며 RPG와 소총을 발사했다. 불시에 기습당한 중국군들이 뿔뿔히 흩어져 달아났다. 근거리에서 발사하기 때문에 RPG의 명중율이 높아 여기저기 장갑차들이 파괴되고 보병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야간이라 중국군은  인민군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대규모부대가 공격하는 줄 지레 겁먹고 도망가기 바빴다.

  한 중위의 신호로 소대원들이 길로 내려와 중국군의 시체들로부터 탄창과 RPG를 챙겼다. 인민군과 중국군의 무기체계가 비슷해서 편리했다. 길을 남쪽으로 가로질러 어느 야산으로 숨어들어갔다.  산에 오르자 멀리 포성이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산길의 경사가 심해 숨이 가빴으나 한 중위는 시원한 밤공기에 기분이 좋았다. 땀이 식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11. 18. 20:50  안주시 서쪽 2km 용흥리(龍興里)

  청천강 남쪽 지역은 치열한 전투와 부대의 이동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밤인데다가 서로의 무기체계가 비슷한 것이 많아 각종 오발 사고가 잦았는데 인민군 통신망의 붕괴는 안주전역 최악의 오인전투를 빚었다.

  인민군 820 기계화군단의 주 진지인 원일리에서 제 4군단의 방어진으로 이동하던 제 3기계화사단은 예비로 돌려진 제 7군단의 주방어진지인 문봉리 앞 용흥리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7군단 수뇌부는 제 4군단의 방어선이 돌파되었다는 보고는 받았으나 820 기계화군단에서 제 4군단쪽으로 1개 사단을 이동시킨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다. 중국군 장갑집단군의 공격을 예상하여 바짝 긴장한 인민군 제 7군단 15사단은 도로를 따라 남동쪽으로 빠르게 이동중인 제 3 기계화 사단의 전차대열을 발견하자 중국군으로 오인하여 일제 사격을 가했고, 기계화사단도 7군단 병력을 전선을 뚫고 전진해온 중국군으로 오인하여 즉각 반격을 실시하였다.

  이는 더 큰 결과를 빚었는데, 비록 방어선은 뚫렸으나 820기계화군단의 지원을 기다리며 절망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던 4 군단의 사기를 크게 꺾어버렸다. 후방에서 전투가 벌어진 상황에서 방어란 더더욱 어려웠다. 그것이 우군끼리의 오인전투라는 사실을 생각못한 4군단 지휘부는 즉각 후퇴를 결심하였다.

  11. 18. 21:00 도회리, 12사단 지휘벙커

  "뭐야? 7군단 북방에 적 전차가 있고 3기계화 남쪽에 적 부대가 있다니? 오인이야! 즉각 전투중지시켜! 통제소는 도대체 뭐했어?"

  전 상장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상대적으로 적의 공세가 덜한 군단에서 병력을 빼내 뚫린 곳을 막으려하던 차에, 오인전투라는 최악의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그것도 단 한대의 전차가 아쉬운 판에...

  "4군단은 후퇴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4군단 후퇴병력과 중국군 전차들이 뒤섞인 상황입니다."

  전 상장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창피해서 12사단 지휘부를 흘끗 보니 그들은 자신들의 전투지휘에만 여념이 없었다.  비슷한 숫자의 적을 소수인 이들은 막고 있고 인민군들은 더 많은 숫자로도 막지 못한 사실이 부끄러웠다.

  "오인전투를 중지시키고 이들을 같이 배치해. 후퇴하는 4군단은 안주시에서 시가전을 실시하라고 전하라. 물론 지휘체계는 붕괴되었겠지만."

  전 상장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 명령했다. 무전병이 각 군단으로 연락했다. 참모장이 4군단의 패배하여 후퇴하고 있다는 내용도 전하라고 거들었다.

  "동지의 생각은 어떻소?"

  전 상장이 김 중령에게 자문을 구했다. 공병감에 불과했지만 현 상황에서는 가장 믿음직한 인물로 보였다. 김 중령의 눈이 강하게 빛나더니 전 상장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820 기계화군단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후퇴도 어렵습니다. 방법은 알고 계시겠지만..."

  김 중령도 전 상장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전 상장은 앞으로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가 없었다.

  "중국은 거의 무한할 정도의 자원을 투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중국의 헬기사단은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대공방어망이 극도로 취약해진 상태입니다.부대가 후퇴하더라도 막대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상장이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김 중령은 기계화군단 하나를 희생시켜 전 부대의 후퇴를 종용하는데 자신의 입장에서는 병력보다는 전차를 아껴야할 상황이었다.

  "4군단과 12사단이 지연방어를 하고 나머지는 후퇴명령을 내리겠소."

  전 상장이 결정을 하고 부관에게 예하부대에의 전달을 지시했다.  무전병이 열심히 명령을 전달하는 동안  두 사람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김 중령이 놀란 눈을 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최 소장은 두 사람을 흘끗 보더니 계속 전투지휘를 했다. 최 소장이 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차 한 대라도 구하려면 우측의 12사단이 적 장갑집단군을 막고, 후퇴한 4군단이 안주에서 시가전을 펼치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것 같았다. 김 중령도 이해는 못할 바가 아니었으나, 820 기계화군단을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중국에는 무한정할 정도의 자원이 있지만 우린 없소. 아직 남아있는 전차를 후속부대에 무사히 전달해 주는 것을 나의 임무로 알겠소. 불만은 있겠지만 이해해주기 바라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저희 사단에 배속된 전차 중 2개 대대는 빼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이 지역이 너무 붐벼서 전투에 지장이 있단 말씀입니다. 하하!"

  전 상장의 부탁에 최 소장은 나머지 전차도 빼내가길 원했다. 그리고 조금 더 있겠다는 전 상장을 상황이 급박하다며 억지로 문 밖까지 배웅했다.

  "저희도 막다가 안되면 후퇴하겠습니다.빨리 제 2방어선을 구축해 주시죠.  저희 사단은 일단 예비로 돌려주셔야 됩니다. 좀 쉬어야 될테니까요."

  최 소장이 억지로 웃음을 띄었다.늙은 전 상장의 주름진 얼굴도 억지로 미소를 짓느라 일그러졌다.지휘벙커 밖에서 전 상장이 김 중령의 손을 잡고 얼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연료 저장소가 중국군의 포격에 명중해 폭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건승을 빕니다. 사령관 동지!"

  김 중령이 멋지게 거수경례를 붙였다.전 상장이 김 중령의 왼손을 잡고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부탁하네. 자네와 최 소장 둘 다 꼭 필요해.자네들 부대는 잃더라도 자네들을 내 참모로 두겠네. 자네들 말을 안들어서 미안하네.  꼭 살아 돌아와주게. 명령일세."

  최 소장과 김 중령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거수경례를 했다.  꼭 돌아가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다시금 중국군 전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11. 18. 21:30 안주시 남동쪽 8km, 매암산 아래 비포장도로

  완벽한 등화관제를 하고, 적외선 서치라이트를 켠 보병전투차를 선두로 전 상장의 전선 사령부와 전차 2개 대대가  안주에서 평양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통하는 산길을 달렸다.도회리의 서쪽인 백돌고개는 이미 중국군에게 점령당했으므로 예비도로인 이곳으로 우회한 것이나, 전 상장은 이미 패배를 예견하여 후퇴에 중점을 둔 부대이동을 시켰다. 야시경으로 고속도로를 살펴보니 이미 도로는 후퇴하는 인민군전차와 각종 차량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뒤에서 섬광이 비쳐서 보니 북쪽과 북동쪽에 커다란 불길이 솟아나고 있었다. 북쪽은 4군단이 패한 백돌고개이고 북동쪽은 12사단이 있는 도회리이다. 백돌고개의 불길은 잦아들고 있는 반면에 도회리쪽의 불길은 더욱 세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12 사단의 병사들이 목숨을 바치며 침략군을 저지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북서쪽 안주시에서는 인민군 4군단의 병력들이 절망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지  시가가 불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계속되던 총성이 잦아들어갔다. 전 상장이 후퇴를 종용했다.

  11. 18. 21:40  도회리, 12사단 지휘부

  "김 중령! 늦기 전에 쓰는게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만, 어떻소?"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사단장님!"

  최 소장의 질문에 김 중령이 묘한 미소를 흘리며 대답했다.그동안 상황만 지켜보고 있던 김 중령이 부하 공병장교에게 명령을 내렸다.

  "발사! 아니아니.... 이럴 땐 투하라고 하던가? 어쨋든 그거... 알잖아. 풀어!"

  김 중령이 말을 더듬자 급박한 상황에서도 부하인 공병장교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하긴 자신도 적당한 말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김 중령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너무도 분명했다. 24시간 동안 작업한 것의 성과를 이제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김 중령이 작전을 실시하자 사단장이 투덜거렸다.

  "이제 우린 후퇴준비나 해야겠어. 사령부나 다른 부대도 다 후퇴했겠지. 천 대령, 후퇴지휘를 하시오. 나는 마지막까지 상황을 보고 떠나겠소. 참, 고속도로나 국도는 피하고 산길로 이동해야겠소."

  11. 18. 21:42 도회리 앞 청천강

  아직 불타고 있는 수륙양용전차들 사이로 물위에 검은 물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들은 한국 해군에게서 긴급 공수받은 소형 기뢰였다. 근접신관이 제거된 이 기뢰들은  천천히 강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약 3개 대대의 중국제 63식 수륙양용 경전차들이 도강을 하자 가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뜸해진 틈을 타서  육중한 T-90 전차들이 가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한 대씩 밖에 못지나는 중강습교량보다는 다수의 전차와 보병들이 함께 건널 수 있는 리본형 부교를 선호하는 중국군이 이제 막 3 개의 부교를 건설하여 수많은 전차와 보병전투차를 도강시키고 있을 때 가장 상류의 부교가 섬광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파편보다는 수압에 의한 파괴원리를 가진 기뢰는 기뢰가 직접 닿은 부분 뿐만 아니라 물에 떠있는 부교 전체를 파괴시켰다.  도강 중이던 전차 4대와 수많은 보병들이 물에 빠졌다. 부상당한 보병들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강물이 흘러 부교의 잔해들이 중간 지점의 부교로 흘러갔다.  가교전차의 가교는 직접 물위에 떠있지 않고 공중에 걸쳐있기 때문에 기뢰 공격을 받지 않았지만, 부교의 경우는 물위에 떠있기 때문에 기뢰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두번째 부교가 날아가고 또 수많은 차량들이 물에 쓸려갔다.

  11. 18. 21:43  도회리, 12사단 지휘부

  "현재 두 개 성공입니다. 어떻습니까?  살수대첩하고 비슷합니까?"

  "예끼 이 사람아. 을지문덕 장군은 이겼지만 우리는 아니잖은가?"

  김 중령이 장난스럽게 보고하자 최 소장이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 지역이 지역인만큼  김 중령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착상해 이를 실현한 것이다.

  "어쨋든 중국군은 지금 당황하겠죠. 보십시요. 세번째 부교에서는 후속차량들이 가교에 진입을 못하고 있습니다. 제 계산으로는 5초 후, 자 보십시요."

  최 소장이 중앙스크린을 보니  역시 정확한 시간에 세번째 부교도 날아가버렸다. 최 소장이 탄식을 했다.

  "강 폭이 좀 더 넓거나, 중국군이 가교가 아니라 주로 부교로 도강을 시도했으면 자넨 제 2의 을지문덕 장군이 될뻔했네. 중국군에게 가교전차의 수가 저렇게 많다니... 아깝군. 어쨋든 시간은 좀 더 벌었다고 볼 수 있지. 참, 나머지 기뢰는 어떻게 된건가?"

  "아마 중국군의 수륙양용전차를 파괴하든지 바다로 흘러 중국까지 건너가서 중국 군함을 파괴할 것입니다. 하하!"

  최 소장과 김 중령 뿐만 아니라 지휘부내의  모든 장병들이 오랜만에 파안대소를 했다.

  "자, 챙길건 다 챙겼겠지? 가자고."

  사단 사령부가 후퇴를 시작하자 마지막까지 중국군 전차들을 막던 제 2연대도 천천히 후퇴를 시작했다. 호되게 당한 중국군 전차들은 매복이 있을까 무서워 함부로 추적을 하지 못했다.  12사단은 제 2 방어진지로 천천히 후퇴했다.

  도회리 남쪽 매암산의 세 봉우리는 안주시에서 후퇴하는 인민군을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고지였고, 그 외에도 중요한 고지마다 1개 중대씩 배치했다. 12사단 병사들은 전투에 지쳤지만, 적의 도하작전 방어보다는 고지 방어작전에 자신이 있었다. 익숙한 강원도 보다는 산이 낮았지만 그래도 12사단으로서는 유리했다.  그러나 중국군은 믿는게 더 있었다.

  11. 18. 22:30  매암산 서산봉(451 미터) 12사단 지휘부

  "대규모 헬기부대입니다. 안주시로 진입중!"

  정상에 있는 대공진지에서 촬영한 화상이 유선을 통해 지휘부 스크린에 중계되었다.수 십 대의 공격헬기가 안주시 곳곳의 건물에 로켓포 공격을 가했고,  더 많은 수의 병력수송헬기들이 안주시 남쪽에 착륙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4군단은 후퇴할 기회도 없군요."

  "후퇴할 생각이 아예 없었지."

  김 중령의 평가에 사단장 최 소장이 토를 달았다. 인민군 4군단이 방어를 담당한 백돌고개가 뚫리자 일부는 바로 남쪽인 원풍리로 후퇴했지만, 대부분의 병력은 사령관인 전 상장의 명령에 따라 안주시에서 시가전을 전개하고 있었다.그러나 대규모 전차부대와 헬기부대의 협공을 받은 인민군 4군단은 서서히 붕괴되었다.

  "항복할 생각도 없군."

  최 소장이 속으로 인민군 4군단 병사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 때 통신병이 바짝 긴장하더니 사단장인 최 소장에게 보고했다.

  "적 기갑부대 서상리 진입, 331고지와 262고지에서 공격중입니다. 병력은 1개 전차연대와 2개 기계화연대... 포병은 없지만 사단편성입니다."

  도회리 남쪽 매암산 주봉은 12사단 지휘부가 있는 서산봉이고, 그 북쪽에 331고지, 북서쪽에 262고지가 있는데, 각 1개 대대씩이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그러나 대대병력이라도 병력 수에서는 2개 중대 밖에 되지 않은 부상자와 지친 병사들 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전차무기는 거의 떨어진 상황이었다.

  국군 12사단 병력은 고지마다 넓게 분산해 있었다.4개 군단이 방어를 하던 곳을  피해를 입은 1개 사단이 방어를 하자니 병력은 몹시 부족했지만,  방어가 목적이 아니고 후퇴하는 본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만큼 병력은 문제가 아니었다.

  "안주쪽이 아니라 백돌고개를 뚫은 놈들입니다."

  작전참모 천 대령이 지적을 했다.  중국군은 아직 전선을 재정비하지 못한 채 각개약진하고 있었던 것이다.러시아의 작전기동군 개념은 적의 종심방어선을 돌파한 후, 전차를 위주로한 기갑부대가 깊숙히 침입하여 전략적 목표를 탈취하는 것이므로 이들의 이동은 신속했다.

  "안주를 뚫은 적 기갑부대는  각 부대간 연계 없이 평양까지 밀고 갈것입니다. 각개격파에는 좋은 상황입니다.  대전차무기가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천 대령이 큰 고기를 놓친 듯 아쉬워했다.

  "우린 그냥 시간만 끌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겠지.  작전기동군이라는 거 참 이상해. 왜 보전합동의 원칙까지 깨가며.. 무전병! 적 전차부대는 적당히 보내도록 연락해. 고지 점령전을 하지는 않을거야. 우리는 뒤에 따라오는 보병을 친다. 탄약을 아끼도록!"

  사단장이 무전병에게 명령했다.후퇴는 하지 않되 적극적인 전투는 피하라는 명령이었다.  어차피 전차부대로는 이런 산악지대를 점령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 전차들은 단지 안주-평양간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위해 이 길로 온 것 뿐이었다.

  "우린 후퇴 안합니까?"

  김 중령이 의아한 듯 사단장에게 물었다. 사단장이 실실 웃었다.

  "우린 어차피 수송수단이 없잖은가?  적은 기동력이 우수한 전차부대인데. 우리가 후퇴한들 바로 따라 잡히겠지."

  사단장의 대답에 김 중령은 그럼 어떡할거냐고 묻는 눈을 했다. 사단장이 낄낄댔다.

  "그냥 버텨 보는거지 뭐. 전차도 없고 포병도 별로 없으니 이동은 쉽겠군. 참, 김 중령!"

  "예! 사단장님."

  "자넨 부상자 병력을 이끌고 후퇴해주게. 산길로 가야할거야. 사단이 보유한 트럭을 다 주겠네."

  김 중령은 사단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혹시 유격전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정규군으로서  후퇴할 수 있는데도 유격전을 펼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공병대는 필요없으니 공병대도 같이 후퇴하게.  중장비도 다 가지고 가면 되겠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공병대는 전투 공병입니다. 일반 보병전투에도 충분히 투입할 수 있습니다."

  "명령일세. 적 전차가 오기 전에 떠나게."

  사단장 최 소장의 명령은 단호했다.

  김 중령은 공병대대와 부상자 부대의 후퇴를 준비했다.  선두에 대전차미사일을 탑재한 보병전투차를 세우고 중간에 앰뷸런스와 부상병들을 가득 실은 트럭, 뒤에 공병대대의 중장비가 따르게 했다.산길로 후퇴를 하면서도 김 중령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매암산의 봉우리들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헬기부대입니다!"

  천마계획에 따라 한국형 보병전투차에 대공미사일을 탑재한 차량에서 무선 보고가 왔다.김 중령이 북서쪽 하늘을 보니 수 십 대의 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사격명령을 재촉하는 대공포 소대장에게 김 중령은 짤막하게 응답했다.

  "자네 같으면 우릴 공격하겠나? 고속도로를 보게."

  11.18  23:00  신의주-평양 고속도로상

  신안주 남쪽을 달리는 신의주--평양간 고속도로에는 후퇴하는 인민군 차량들로 만원이었다. 전차와 자주포,수송트럭과 보급부대의 차량이 뒤섞여있는 판에 중국군의 포격이 더해져 아비규환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갑자기 포격이 멈추더니 중국의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A-5C 대지공격기와 이를 호위하는 MIG-23과 비슷한 F-9 전투기였다.  도로 주변에 후퇴 엄호를 위해 배치된 대공 미사일차들이 수 십 발의 미사일을 쏘아댔지만 중국 전투기들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공으로 날아와서 집속폭탄을 투하하고 부리나케 남쪽 산을 넘어 도망가고, 이를 다른 전투기들이 뒤이었다.

  인민군은 후퇴하면서도 공중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었는데,  이는 지상전과는 달리 현재 공중전의 최전선은 평양상공이기 때문이었다. 인민군과 국군의 전투기들은 만주와 산둥반도에서 날아오는  전투기들을 요격하기에도 바빴다.

  전투기들이 돌아가자 헬기들이 나타났다. 공격헬기들이 대공미사일차량들을 먼저 공격하고, 대공미사일의 사격이 멈추자 차량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었다.인민군들이 차량을 버리고 산속으로 뿔뿔히 도망쳤다.

  헬리콥터들이 공격을 마치고 북쪽 하늘로 날아가자 이번엔 중국군 전차부대가 후퇴하는 인민군 후미 부대를 덮쳤다.  인민군들은 파괴된 차량들을 헤집고 후퇴를 해야했는데,  도로상에 파괴된 차량이 너무 많아 추격하는 중국군들의 추격까지 방해했다.

  11. 18. 23:10  매암산 서산봉(451 미터) 12사단 지휘부

  "사단장님! 중국군 보병들이 고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단장이 조용히 앉아 모니터에 나온 상황을 살펴보았다.중국군 전차들은 이미 남쪽으로 이동했으나  중국군의 2개 기계화연대는 후환을 남기지 않기위해서인지, 아니면 공격당한데 대한 보복인지 국군들이 있는 331고지와 262고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영국과 합작하여 개발한 NVH-1 보병전투차와 대형 바퀴 6개가 달린 WZ-551 APC에서 기관포사격을 하는 동안, 이들 차량에서 하차한 보병들이 떼지어 고지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 두 고지는  경사가 급하여 공격측에 절대로 유리하지 않은 지형이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병력차를 믿은 중국군 사단장은 밀어붙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후퇴하는 인민군을 추격하기에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고지 정상 부근에서 국군 12사단의 중기관총이 불을 뿜어대자 헉헉대며 고지를 오르던 중국군 보병들이 낙엽처럼 쓰러져갔다.양쪽에서 공격을 받기 때문에 위치로 보면 중국군이 훨씬 불리했으나 병력이 워낙 많았다. 보병전투차와 APC의 화력지원을 받아 보병들이 정상 부근까지 진출하는 모습을 본 국군 12사단장이 명령을 내렸다.

  "좀 도와줘."

  사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서산봉에 있는 국군 포병대가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보병중대가 보유한 박격포까지 가세하자 서상리 분지 일대는 거대한 불꽃놀이판이 되었다. 조명탄은 필요도 없었다.  갑작스런 포격에 놀란 중국군은 북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보병뿐인줄 알고 공격했다가 포병을 갖춘 대규모부대라는 사실을 알자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됐어. 우리도 후퇴한다. 제 3진지로!"

  사령부가 이삿짐을 꾸리느라 바빠졌다.  도회리와  서상리에 이어 더 남쪽의 용봉산(363 미터) 고지로 후퇴하는 것이다. 국군 12사단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뒤늦게 날아온 중국군 헬기들은 아무도 없는 서상봉과 그 북쪽의 2개의 고지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국군 병사들은 빚 때문에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처럼 무기와 탄약을 이고지고 산길을 걸어 후퇴했다.  산악용 대공 미사일차 험비 몇 대가 적외선 서치라이트를 킨 채 대열을 인도했다.

  12사단장 최 소장이 부하들과 함께 산길을 걷고 있는데  중국군의 정찰헬기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헬기는 개미떼처럼 일렬로 이동하는 국군의 긴 행렬을 숲에 가려 보지 못했다.  그러나  헬기의 저공비행을 공습으로 착각하여 당황한 험비의 대공발칸포가 불을 뿜었다.헬기는 수십 발의 포탄을 맞고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난 채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저런, 빨리 이동해! 구보로 3진지까지 뛴다. 실시!"

  사단장이 부하들을 독촉했다. 아마도 중국군은 틀림없이 추락하는 헬기의 섬광과 하늘을 가르는 대공포탄의 궤적을 보았을 것일라고 생각했다.  사단장이 소대장 시절 이후 실로 오랜만에 구보로 산길을 뛰었다. 얼마 뛰지도 못하고 기진맥진했지만 흐르는 땀을 늦가을의 바람이 씻어주어 상쾌했다.

  사단장이 지친 몸을 이끌고 제 3진지의 지휘소에 도착했을 때 중국군의 대규모 헬기부대가 용봉산 상공을 가득 메웠다.  몇 대 남지도 않은 대공발칸포가 밤하늘을 향해 불을 뿜었다. 남아있던 마지막 대공미사일들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몇 대의 헬기가 추락하자 중국 헬기들이 로켓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산 정상을 불바다로 만들려는듯 이들의 로켓탄 사격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1999. 11. 18  09:30(뉴욕 시간)  뉴욕

  중국이 한국 국경을 넘어 침공해오자 뉴욕시간으로 다음날 오전 한국측의 요청에 의해 긴급유엔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동 제안으로 열린 유엔총회는,  그러나 한국인들이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껴야하는 장소로 바뀌고 말았다.

  "한국은,  특히 남조선은 우리 중국의 만주지역을 침공해야된다는 주장을 하는 호전적인 제국주의적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그들 주장대로 조선족이 많이살고 있다는 만주는 수천년간 중국의 땅이며 조선족은 아직도 소수에 불과합니다.그럼에도 그들은 민족통합운동 또는 고구려 고토회복이니 만주수복운동이니 하는 거창한 이름을 들먹거리며 호시탐탐 만주지역을 노려왔습니다. 자, 이것이 증거입니다."

  중국대표가 발언권을 얻어 열변을 토하다가 잠시 비디오를 틀었다.그것에는 중국 내란 중 서울에서 우익단체들이 만주수복을 결의하며 궐기대회를 하는 광경이 담겨 있었다. 또한 민족선각자인척 하는 자들이 쓴 책들의 문제되는 내용들,  그리고 심지어는 중국 내란 중 국가안전기획부가 작성한 '중국 내전 중 한국이 만주지역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비밀문건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북조선의 혜산이라는 지역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는데 그 희생자는 대부분이 우리 중국동포였습니다.그리고 중국 단둥에서 일어난 조선인들의 폭동도 우리 중국의 체제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조선인들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남조선은 우리 중국의 불행했던 내전시기를 이용하여 양측에 무기와 군수품을 팔며  내전기간의 연장을 획책하였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국인들의 피를 요구했습니다."

  유엔주재 중국대사의 연설은 반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지만, 큰나라 중국답게 다른 수많은 작은 나라들을 설득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최근에 중국과 적대시한 동남아국가들은 중국의 눈치를 봐야했으므로 침묵을 지켰고,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중국을 지지했고 다른 수많은 아시아,아프리카의 후진국들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보다는 아직은 낙후한 중국에 심정적 공감을 표시했다.

  "그말이 사실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일으킬만한 원인은 안되지 않소? 왜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았는데 침략한 것이오?"

  한국대사가 반박을 하자 중국대사가 바로 맞받아쳤다.

  "역시 그럴줄 알았소. 여러분! 이 화면을 보십시요. 한국의 침략행위를 보여줄 결정적 증거입니다. 11월 12일자로 되어 있습니다."

  화면이 움직이자 어느 시가지가 나왔고, 곳곳에 건물이 불에 타고 있었다. 장면이 바뀌어 사방에 널려진 참혹한 시체들,그리고 총검으로 그 시체들을 찌르며 웃는 모습의 군인들이 보였다.  각국 대사들이 화면을 보고 신음성을 흘렸다.

  "우리 기자가 목숨을 걸고 촬영한 것이오. 저 군인들을 보시오. 틀림없는 한국군이오.단둥의 조선인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우리 국경을 넘은 한국군들이 단둥 시내에 들어와 중국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했소. 이것을 보고도 거짓말하겠소?"

  "이건 명백한 조작이오! 한국군은 월경한 적이 없소!"

  한국대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으나  중국대사는 콧방귀를 뀌였다.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보고도 조작이라니, 한국대사는 한국군이 국경을 침범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댈 수 있소?"

  한국 대사는 말문이 막혔다.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어찌 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조금 전에 무관이 브리핑한 내용이 퍼뜩 생각났다.

  "아시아 각국이, 물론 주일 미군도 포함되지만,  중국측의 최근 며칠간에 걸친 지독한 전파방해를 감지했소.이는 각국의 위성통신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주었소. 이는 중국이 한국을 침공하기 위한 사전준비가 아니란 말이오?"

  "그것은 한국군의 공습을 막기 위한 조처였소. 우리는 전쟁준비가 되지 않아서 미제 전투기로 무장한 한국군의 공습을 막기 어려웠기때문이오. 자, 아까 그 화면의 날짜를 보시오. 비서관!"

  중국 대사가 변명을 하며 비서를 불렀다. 대사의 비서가 비디오를 조작하자 다시 같은 화면이 흘렀다. 화면 아래에 날짜가 표시되었는데 틀림없이 중국이 전파방해를 시작한 날이었다.

  "저 화면은 조작이오. 전쟁 5일 전에 그 화면을 찍었다면 왜 그리 오랫동안 저 화면을 공개하지 않았소?"

  한국대사가 묻자 중국대사가 대답했다.

  "전쟁은 이미 그 때 시작되었소. 우리는 5일에 걸쳐 월경한 침략군을 몰아내고 부대를 이동배치해 이제야 한국국경에 다다른 것이오. 우리는 확실하게 승리를 담보할 때까지는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까봐 저 화면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이제야 침략군을 몰아내어 공개하는 것이오."

  중국이 체면을 중시한다는 것은 단지 유엔대사들 뿐만 아니라 외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중국 대사의 대답에 각국 대사들이 수긍하는 눈치였다.  중국대사가 각국 대사들의 눈치를 보더니 드디어 선언을 했다.

  "침략국은 자국이 공격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오. 이는 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경우요.  한국은 침략국이므로 우리 중국은 한국을 공격할 국제법적 권리가 있으며, 이는 침략이 아닌 자위권에 불과하오. 또한, 한국을 돕는 국가는 중국의 적으로 간주하겠소."

  각국 대사들이 웅성거렸다. 일본과 독일대사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아직까지  유엔헌장에 적국조항이 삭제되지 않아 잠자코 듣고 있기만 했다.  영국과 프랑스 대사는 이미 한국과 무기 수출 계약을 한 상태라 상당히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중국 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도 무시하지 못할 규모였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동 제안한 중국의 한반도 내외국군대 철수에 대한 유엔결의안은 결국 부결되었고, 오히려 중화인민공화국이 제출한 한국규탄결의안이 통과되었다.한중간의 전쟁문제는 안보리 상임이사회에 넘겨졌으나, 중국이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인 한 한국과 북한이 호소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11. 18. 11:00  워싱턴, 중국대사관

  "고맙습니다, 대사. 각하께서도 귀국 정부에 심심한 감사를 표했습니다. 최근 미국 시민들도 중국에 매우 호의적입니다."

  미 국방부의 군수담당 차관보인 윌리엄 제프리가 고개 숙여 중국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틀전,즉, 한중간의 전쟁이 나기 하루 전에 중국은 미국의 군사비 감축정책으로 인해 중단될 위기에 처했던 항공모함 2척과 순양함 3척의 건조가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이들 수상함들의 구매계약을 미국과 맺은 것이다. 또한 감산과 함께 대량으로 노동자를 해고해야 할 위기에 처한 항공 방위산업체들의 경영에도 숨통이 트였다. 중국이 각종 항공기들을 미국에 대량 주문한 것이다.

  2000년에 있을 예정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내 불경기로 인기하락중인 현직 대통령 제임스의 재선을 위한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중국대사는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지난 9월에도 상당수의 전투기와 수상함정을 미국에서 수입했다.미국은 군사교관단과 함께 훈련용 시설까지 중국에 공수해와서 열심히 중국군을 가르쳐주었다.  미국은 이제 가만히 앉아서 팔기만 하던 때는 지난 것이다.

  "아니죠. 귀국의 훌륭한 무기들을 계속 수입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중국은 자주국방을 위해 더 많은 미국제 무기를 수입할 예정입니다만..."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대사! 각하께도 이 기쁜 소식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상품을 원하신지 여쭤도 실례가 안되겠습니까?"

  제프리 차관보는 신이 났다. 처음에 제프리 차관보는 중국과 한국 양쪽에 무기를 판매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중국의 구매량이 엄청난 규모로 밝혀졌다. 97년 한반도 위기 때 판매한 무기량과 98년에 시작된 중국내전에서 중국에 판매한 무기수출량보다 훨씬 많은 주문을 했다.그 전에도 중국은 항모 2척과 신형전투기 등 대량의 무기를 구입했다.

  국방성은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중국에만 무기를 판매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는 대통령과 의회의 양해를 미리 받았기 때문이어서 문제는 전혀 없었다. 무기 판매보다는 생산이 더 급할 정도로 중국으로부터 주문받은 무기구매의 규모는 컸다.

  11. 18  10:10  미국 LA, 반전 전사 집단, PEACE

  "중국이 또 미국에서 항공모함과 미사일순양함 및 신예전투기의 구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거의 결정이 되었습니다.  의회에서도 반대는 없을거라고 합니다. 또한 더 많은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미국이 노력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중국은 아마도 계속 영토 확장정책을 추진할 것입니다."

  로스엔젤리스의 남부 교외 휴양지 별장에서 각색의 인종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캄캄한 실내에서는 한반도 지도가 영상기로 벽에 비쳐지고 있었는데 중국군과 한국군의 현재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정보위원이며 암호명을 짜르라고 밝힌 중년 남자가 설명을 하고 있었다. 실내가 어두워서 잘 안보였지만  모두들 각양각색의 외양을 하고, 다양한 의복을 입고 있었다.

  "중국은 한국에게 너무 강한 상대입니다.  우리가 개입하더라도 어쩔 수 없을거란 생각이 듭니다만... 사태의 확산만 막기로 합시다."

  아랍계 복장을 한 사나이가 말하자  팔짱을 끼고 있던 말레이계의 여인이 책상위에 얹었던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런 식이면 우리 모임의 의미가 없죠.  우린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우리는 중국이 동남아 각국을 침공하고 있을 때 국제여론만 동원하는 등 거의 방관만 하고 있었어요. 결과는 어땠나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킨다는 우리 모임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그린피스에서도 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10여척의 핵잠수함이 있으며 또한 핵미사일도 많습니다. 핵전쟁 가능성이 아직은 적지만 중국이 불리해졌을 경우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한반도 해상 봉쇄시에 연이어 발생할  유조선 침몰과 원유 유출 사태를 생각하면..., 휴... 끔찍하군요.  물론 한반도 산림과 환경의 피폐화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가의 존망을 건 전면전에서 누가 환경 파괴를 염두에 두고 전쟁을 하겠습니까?"

  그린피스에 소속을 둔 스웨덴의 쏘르가 말하자 위원들 모두가 심각해졌다.

  "그렇소. 우리 모임은 비밀결사기구이긴 하지만 더 이상 우리의 안위만을 위해 침묵할  수는 없소.  이제 우리가 나설 때 입니다. 싱께서는 준비가 되셨습니까?"

  의장인 카를이 싱을 지목하자 모두가 싱이라고 불린 인도인을 주목했다. 터번을 쓰고 수염을 잔뜩 기른 전형적인 시크교도인 그는 반전전사 집단인 PEACE의 무력부문을 담당하고 있었다. 칼등이 휘어진 회교도 칼을 하나 쥐어 주면 더더욱 시크교 전사같아 보일 사람이었다.

  "안됩니다! 무력을 쓰다뇨.  우리는 비폭력주의를 일차적인 분쟁해결 원칙으로 신봉해오지 않았습니까? 96년의 보스니아 내전 개입이나 훨씬 이전의 미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고 가장 최근의 부룬디 개입도 그렇습니다. 최악의 경우라도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하면 아무리 목적이 숭고하더라도 아픔만을 안겨줄 뿐입니다."

  갑자기 모잠비크 출신인 젊은 학자풍의 흑인이 일어나 반대의사를 명확히 하자 위원들이 놀라며 동요를 일으켰다.  싱이 위원들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운 매의 그것 자체였다.

  "그래도 우리는 수많은 생명을 구해왔습니다.  가장 최소한의 희생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구했으며 그들의 배고픔을 덜어줬습니다. 유엔이나 다른 국제기구들이 머뭇거릴 때 우린 항상 정의를 추구했습니다. 우리가 왜 반전전사입니까?   평화적인 수단을 동원할 때도 있지만 그 수단이 실패하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사용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말입니다."

  싱이 중국의 침략행위를 평화적인 수단으로 막지 못한 위원들을 질타하듯 위원들을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쟁 전에는  비폭력적인 방법만 동원하고,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무력수단을 동원해왔습니다. 이는 전에 케네디를 암살함으로써 우리의 입지를 극도로 약화시킨 정책적 오류를 비판하면서 정착된 우리 모임의 일관된  정책결정이었는데  저는 이에 반대를 표하고자 합니다."

  모든 위원들이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PEACE로서는 가장 큰 실책이라고 평가된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당시로서는 미국과 소련간의 전쟁을 막고 미국의 팽창주의를 견제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미국 군산복합체의 힘을 강화해주어 냉전을 격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 조직에서는 케네디 암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는데, 모잠비크의 흑인이 이 금기를 깨뜨리고 싱이 이 금기에 정면으로 반대를 한 것이다.

  "전쟁 징후가 보이면 정치,경제적 수단뿐만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막아야합니다. 전쟁이 일단 발발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인명과 환경 피해가 오고 맙니다.  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은 전쟁 발발 이후에는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사전에 막아야 합니다."

  "좋소."

  카를이 다른 위원들의 반박을 사전에 제지하면서 싱에게 물었다.

  "그럼 싱의 생각은 어떻소?  우리의 정책은 추후에 검토하기로 하고, 일단 한반도 사태에 대한 싱의 준비를 설명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카를."

  싱은 의장인 카를을 무한한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스페인 출신의 의사인 그는 촉망받는 젊은 외과의사였으나 남미 멕시코 원주민을 위한 의료 구호활동을 하다가 반정부 게릴라 지도자가 되었다.여러가지 이름을 쓰면서 치열하게 원주민과 농민의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활동이 힘들고, 원주민들과 농민들의 의식이 깨이자 현지인들에게 지도권을 넘기고 자신은 고국에 돌아와  산 호세 대학 의학부에서 교수를 하고 있었다. 그는 10여년 전에 PEACE 위원들의 추천으로 이 조직의 무력부문 위원을 맡다가 최근에 의장이 되었다.  싱은 카를이 무력부문 위원일 때 그의 무장조직의 하나에서 대장을 하고 있었으니,  실제로는 싱은 카를의 부하였던 셈이다.  그러나 상하관계 때문에 카를을 존경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종을 떠난 인류애 때문이었다.

  "한반도 지역 주변을 살펴보겠습니다.다들 아시겠지만 지정학적 요건을 먼저 검토하겠습니다."

  싱이 화면을 확대하여 한반도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까지 넓은 지역을 보이게 하였다.

  "저는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한 목적은 다른데 있다고 봅니다. 중국과 한국과의 전쟁 뿐이라면 의외로 쉬운 결과를 낼 수 있지만 중국이 한반도를 차지한 후의 상황을 보면..."

  싱이 단말기를 눌러서 중국과 한국을 같은 색깔로 표시했다.  중국이 한국을 점령했을 경우의 동아시아 지도가 되는 셈이다. 이미 점령한 대만과 베트남,그리고 베트남 점령 이후 중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동남아 여러 나라를 계속 같은 색깔로 표시해가자, 중국은 아시아 대부분을 장악한 대제국이 되어있었다.

  "한반도는 작지만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한국이 중국에게 점령되면 일본은 버틸 수 없게 됩니다.일본이 중국의 세력권에 들어가면 중국은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태평양에서도 대제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베리아 지역은 중국이 꾸준히 관심을 둔 지역입니다. 원래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이죠. 한국을 점령하면 시베리아 지역은 중국이 쉽게 공략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약체화도 염두에 두시죠. 이를 보면 중국은 짧게는 일본, 길게는 러시아나 미국과의 한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세계대전입니다."

  위원들이 놀라서 웅성거렸다. 이는 정보위원인 짜르의 정보를 넘어서는 판단이었다.

  "핵전력에서 중국은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짜르가 단언하자 싱이 고개를 흔들었다.

  "중국인의 인내심과 장기적인 안목을 몰라서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 위원 중에도 중국인이 계신데..."

  위원들이 재정부문을 맡고 있는 창 위원에게 눈길을 돌렸다. 창이 약간 당황하며 용무늬가 새겨진 비단옷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1949년 중국혁명이후 중국은 왜 티베트를 침공했습니까?"

  싱의 질문에 창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티베트는 원래 중국의 영토였소."

  창이 한마디로 싱의 질문을 일축하자 싱이 껄껄거리며 웃고나서 반문했다.

  "티베트의 수천년 역사 중에서 도대체 몇 년 간이나 중국의 영토인적이 있나요? 처음으로 점령한 13 세기는 중국의 한족이 아니라 몽고족인 원나라가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문화적으로 중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죠?"

  창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중국은 티베트인들을 자신들의 땅에서  몰아내지 않았소.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자치권도 주고 소득수준도 중국 내에서는 상당한 수준이오.  티베트는 승려가 지배하는 봉건 국가였소. 조상의 해골을 불경스럽게도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하는 열등하고 비위생적인 민족이란 말이오.  어쨋든 저도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들의 문화를 개혁할 필요가..."

  "현실을 직시하시오. 남의 나라의 문화를 개혁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경우가 어디 있소? 영토적 야심 아닌가요?"

  미국인인 맥스는 팔짱을 낀 채  싱과 창의 말다툼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무리 해도 아메리카 인디언이 독립을 쟁취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인구에 있어서도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제 미국은 백인들의 땅이었다. 그리고 맥스는 그들의 조상들의 잘못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면 국가방위에 유리하기 때문이오."

  창이 실토하자 싱이 더욱 몰아붙였다.

  "국가 방위라뇨? 어느 나라의 침공에 대비한 것입니까?  주변에 있는 네팔인가요? 아니면 부탄? 이 나라들이 중국을 침략할 정도가 됩니까?"

  창이 묵묵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 나라 인도요.물론 아직까지는 인도의 국력이 약해 위험은 없지만, 인도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요.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면  히말라야 산맥을 배경으로 중국을 인도의 침략으로 부터 지켜 내기가 쉽죠. 그리고 티베트는 인도와 비슷한 문화권이니 두 나라의 관계를 단절시킬 필요가 있었소."

  싱이 이제야 화난 얼굴을 풀고 미소를 띄우며 위원들에게 말했다.

  "중국은 100년 후에 인도가 국력이 강해져 중국에 침략해올까 두려워 그 100년 전에 티베트를 미리 점령할 정도로  미래를 보는 안목이 넓습니다. 1997년의 홍콩 반환만 해도 그렇습니다. 19세기나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어느 누가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게 반환하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이번 한국 침공도 그렇습니다.  물론 중국은 아직 시베리아에 대한 영토반환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만,수 십 년 이내에 반드시 시베리아를 수중에 넣을 것입니다. 최근의 중국의 확장정책을 본다면 그 시기는 더 빨라 질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홍콩반환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이 아니고 반드시 무력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핵전쟁입니다. 자존심 강한 러시아가 중국에게 영토를 할양하거나 알래스카처럼 돈에 팔지는 않을 것입니다."

  짜르가 잠시 창과 싱을 보고 말을 꺼냈다.

  "그렇소. 아직도 러,중 국경에선 조그만 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소. 러시아 군사력의 반 이상이 이 국경에 배치되어 있소.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이오만... 하긴 요즘은 그리 위험한 상황은 아니지만...  어쨋든 싱의 의견에 이어 제가 한마디 더 덧붙이죠. 한국의 지정학적인 중요성인데..."

  짜르가 일어나 싱을 대신해 지도를 보면서 설명했다.  전직 소련 KGB 제 1총국의 군사정보 담당자였던 그는 군사적 식견이 뛰어나 조직의 정보위원이 되었다.

  "한국을 중국이 점령한다면,아니, 최소한 세력권 안에 두기라도 한다면 일본은 쉽게 중국에 굴복하게 됩니다. 게다가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연해주 지역의  블라디보스톡은 이 지역 유일의 부동항입니다.  한국이 중국에게 점령되면 중국은 직접 블라디보스톡을 삼면에서 포위공격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되며, 이는 러시아에 치명적입니다. 러시아가 왜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 십 년간 고심했는지의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중국은 넓은 러, 중 국경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바다로부터 공격을 해올 수 있습니다.이렇게 되면 러시아로서는 러시아의 영토인 시베리아를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위험한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위원들이 러시아의 위험한 결단이라는 말에 부르르 떨었다.이는 핵전쟁을 의미함이 분명했기 때문이다.한반도는 주변 모든 나라의 완충지대라는 사실을 위원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한국을 점령하면 일본과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도 위험했다. 미국이 태평양을 잃으면 한낱 지역국가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짜르가 지도의 일본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최근 일본의 동향이 수상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중국입장에서는 일본이 한반도를 침공할 줄 알고 선수를 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한국 정도는 점령할 정도의 군사적 역량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지도가 바뀝니다."

  짜르가 일본과 한반도의 지도를 같은 색으로 바꾸자 이번에는 일본이 태평양의 대제국이 되었다.  한반도와 제주도, 일본 남부 가고시마에서 오끼나와를 포함한 난세이 제도가 대만까지 뻗어 중국을 완벽하게 해상으로부터 봉쇄해 버리는 것이었다.  만약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면 필리핀군도와 더불어  중국이 태평양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막히게 된다. 대만해협 남쪽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이곳은 물길이 사납기로 유명하다.  중국은 대만 남쪽의 좁은 바시해협을 통해서만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데, 이 해협은 유사시에 1개 함대, 또는 잠수함 몇척만으로 봉쇄될 수 있는 극히 취약한 곳이다.

  "그럼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중국의 한반도 점령을 저지해야겠습니다. 군사부문 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의 최고 역량을 동원해서 점령을 막읍시다. 한반도 점령은 중국의 세계 정복의 전초전이라 생각하고 우리 조직의 사활을 걸고 막아야합니다."

  카를 의장이 말하면서 싱을 눈짓으로 불렀다. 싱이 준비한 자료를 화면에 띄우면서 작전계획을 설명했다.

  "전투는 세 국면에서 진행됩니다.  물론 각 부문의 위원께서도 잘 해 주시리라 믿으며 우리는 목숨을 걸고 중국과 싸울 것입니다. 첫째는 암살부대의 투입입니다. 중국의 한반도 점령지대 주요 군 인사 뿐만 아니라 북경의 정치인들도 대상입니다. 그 암살 대상은 짜르께서 넘겨 주셨습니다. 두번째는 용병부대의 한반도 투입입니다.  유엔군의 파병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용병부대의 투입은 주의를 요합니다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번째는 중국 해안의 해상봉쇄입니다.  소속 잠수함과 비행기들을 동원해 중국의 해상로를 철저히 봉쇄하겠습니다. 원유의 유입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해상교통과 외국선의 통과,  미국의 무기 인도까지 봉쇄할 계획입니다."

  위원들 사이에서 잠시 침묵과 한숨이 흘렀다. 싱은 중국에 대해 전면전을 작정한 것이며 위원들은 이를 말릴 이유가 없었다. 세계정복을 꾀하는 나라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미리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미국을 건드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들었다.

  "그렇다면 전면전인데... 우리 조직의 전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그리고 중국의 군사력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일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쏘르가 묻자 싱이 답변을 해야했다.위원들 간에는 비밀이 있을 수 없으며 만장일치로 결정을 하는 것이 이 조직의 규약이었다.

  "1997년 재정난에 빠진 러시아로부터 신형 전투항모 1척과 퇴역한 미국의 강습상륙함 1척을 우리 조직에서 빼냈습니다.물론 짜르 위원과 창 위원께서 상당한 노력을 하셔서 공작이 성공했습니다. 전투함은 미사일 순양함 2척과 구축함 및 프리깃함 6척, 기타 상륙함과 수송함이 있으며 잠수함은 12척입니다. 전투기와 초계기, 정찰기 및 탑재헬기 등을 합하면 항공기는 95기가 있습니다.

  지상전력은 현재 지원병들이 1개 여단이 있고 구르카 여단과 다른 용병 부대를 동원하면 2개 사단 병력을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함대와 지상전부대는 대만 북동쪽의 센카쿠제도 부근의 해상에서 훈련중입니다만 이들의 군사적 능력은 충분하기 때문에 중국의 전술과 무 기체계, 그리고 언어에 대한 교육만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투입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한국군과의 지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이오? 짜르."

  카를이 묻자 짜르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한국의 통일참모본부와 협의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데 저희 요구를 안들을리 있겠습니까? 우리 부대의 지휘권은 우리가 계속 가지기로 하고 정보와 작전면에서 서로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함대와 지상부대는 한국군에 소속됩니다. 참모본부에서 연락관 파견을 요청하더군요."

  "위원회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그런 결정을 했단 말이오?  너무 독단적이지 않소?"

  창 위원이 투덜대며 항의했다.  아무리 평화를 위한다고 해도 자신의 조국에 칼을 들이대는 것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은 자본과 여론을 동원하여 중국의 타국 침략을 막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의 조국은 세계평화를 자꾸 위협하는 행위를 지속했다. 이제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국에 어느 정도 해를 끼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중국은 결국 한국을 점령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도 떨치지 못했다.

  "이 전쟁은 우리 조직 50여년 역사상 처음으로 대외에 우리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전쟁이 될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우리 조직의 와해를 위한 공작을 할 지 모르니, 이에 대비하여 보안을 철저히 하여 주십시요. 나머지 세부사항은 무력위원과 정보위원,  그리고 자금담당위원이 저와 함께 세부 계획을 작성해주시고, 이만 회의를 마칩시다. 준비가 끝나면 바로 선전포고를 하겠습니다."

  카를이 폐회를 선언하자 모두들 하나 둘씩 회의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전쟁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얼마나 모순된 행동인가를 곰곰히 씹으며 각자의 차로 걸어갔다.

  11. 18. 11:10   워싱턴, 중국 대사관

  "올해 안에 필요한 무기 목록은 이것입니다. 인도 기일까지 적혀있으니 꼭 지켜주시고..."

  중국대사가 제프리 차관보에게 서류를 건네자  차관보가 잽싸게 받아 읽더니만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판매규모 300억 달러, 전년도 미국 무기 총수출액의 두배가 넘는 규모였다. 그것도 부가가치가 높은 신형 전투기와 이지스 순양함 위주의 구매의향서였는데 중국은 50% 선불, 인도와 동시에 잔금 지불의 좋은  구매조건을 제시하여 차관보의 환심을 샀다.

  "대사, 인도기일은 어떻한 일이 있더라도 꼭 지키겠습니다.  물론 최고의 품질도 보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재 진수를 마치고 무기장착이 끝난 함정들을 우선 인도하겠습니다. 전투기는 현역에 배치되어있는 것들을 우선 인도하고 신형기가 제작되는 대로 바로 교체해드리겠습니다."

  제프리 차관보는 목이 멜듯한 목소리로 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무릎꿇고 절까지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문제는... 우리 조종사와 해군이 이런 좋은 무기들을 다루려면 훈련을 충분히 받아야 할텐데 말이오."

  대사가 차관보를 힐끗 보면서 말을 꺼냈다. 중국 대사의 요구가 명확히 뭘 뜻하는건지  차관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즉시 이 엄청난 구매자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했다.

  "당연히 저희쪽에서 교관단을 보내 드려야죠. 무기 인도 전에 귀국의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이 충분히 무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저번의 경우처럼 저희가 교육을 맡겠습니다.  교육과 훈련에 필요한 시뮬레이션 기자재 등은 저희가 직접 수송해서 가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요."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미국의 생산자는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가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며 거래인 간의 의리도 지키는 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도 상거래이긴 하지만... 어떻소? 차관보.  설마 우리의 경쟁자에게 같은 상품을 팔지는 않겠죠? 그쪽은 얼마나 구매를 요청했나요?"

  제프리 차관보의 등줄기에 갑자기 땀이 흘렀지만 이는 미리 예상되었던 질문이어서 긴장이 오래 가진 않았다.  그로서는 어떻게든 이 큰 손님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물론 한국에서 조기경보기와 전투기, 그리고 해군함정 몇 척을 주문했습니다만 아마 인도까진 상당 기간이 걸리지 않나 싶군요.  설계부터 차근차근 해야하니까요."

  중국 대사가 호쾌하게 웃어댔다.

  "그렇죠. 미국 무기의 품질이 우수한만큼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껄껄"

  11. 18. 11:30   워싱턴, 한국대사관

  "미국은 우리의 중고 무기 수입계약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새걸로 사가라는 것인데 이는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현재 해군 제 5함대가 해체되어 항공모함 2척과 미사일 순양함 4척, 기타  수상함 몇 척이 예비역으로 돌려졌습니다. 그리고 3개 항공단도 최근에 예비로 돌려졌는데 잉여무기가 없다는 것은... 신품을 구입하려면 몇 개월, 아니 몇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여기에는 분명히 중국의 농간이 숨어 있습니다."

  대사관실에서 1등 참사관인  이 현종이 흥분을 하며 대사에게 말하자 대사는 눈을 감은채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창밖으론 거리에 단풍이 지고 있었다.  무관인 한 영순 대령도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며 약한 나라에서 태어난 설움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 말고도 영국과 프랑스에 무기 구입을 의뢰했지만, 이 무기들이 한국에 오기는 힘들 것입니다.  중국이 해상봉쇄를 하면 남지나해를 어떻게 통과하겠습니까?   호주와 일본쪽으로 돌아서 오면 된다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고...  미국에서 구매해야만 태평양을 통해 안전하게 한국으로 수송할 수 있습니다."

  이 현종 참사관이 미국으로부터의 무기도입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며 대사의 분발을 촉구했다. 김 동현 주미대사가 서류 보따리를 챙겨서 방을 나갔다. 참사관이 따라 나섰다. 외교관들은 전투는 하지 않았지만 이 참사관은 차라리 목숨 걸고 전투를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기를 빨리 보내달라는 본국의 훈령이  매 시간마다 비명이 되어 대사관으로 날아들고 중국이 한국의 땅을 점령하는 평수만큼 자신들은 피가 마르는 것이다.

  11. 18  10:00  인도 북부,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정부의 총리인 텐진 테트론은  다람살라의 초라한 임시정부 집무실에서 고민에 빠졌다.모든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절대 비폭력을 외쳤지만, 중국이 다른 나라를 점령할수록 티베트의 독립은 멀어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텐진 테트론은 어린 시절에 본 장대한 티베트 고원을 회상했다. 챵탕(羌塘:북쪽이라는 뜻의 티베트말, 중국이름으로 짱베이:藏北)고원의 광활한 초원에서 방목되는 야크의 무리,  멀리 보이는 눈덮힌 흰산, 일년 내내 불어오는 차가운 서풍.

  그는 어릴 적에 부친의 장례식을 보았다. 승려들이 북을 울리며 부친의 시체를 메고 언덕위로 올라갔다.  도중에 친척들은 모두 돌아갔지만 그는 몰래 다른 길로 따라갔다. 언덕 위에서는 승려들이 날이선 돌칼로 새들이 먹기 좋게 부친의 시체를 해부하고 있었다.한 젊은 승려가 커다란 돌을 내려쳐 두개골을 부수자 안구와 뇌수가 튀었다.  어린 그는 이 끔직한 광경을 보고 눈을 감았지만, 부친의 시체가 우주의 원소가 되어 되돌아 가고 혼은 하늘높이 날아가 또다른 윤회를 시작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15세에 그는 승려가 되기 위해 라사(拉薩)의 부다라궁(布達拉宮)으로 들어갔다. 아미타불의 화신인 판첸 라마와 함께 1,300년간 티베트 민중의 정신적 지도자인 관음보살의 화신  달라이 라마의 거처이기도 한 부다라궁에서 불교를 연구했다. 1959년, 중국의 세번째 침공으로 14대 달라이 라마는 추종자들과 함께 걸어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그리고 티베트 내에서 일어난 몇 번의 민중봉기, 특히 89년의 봉기에서는 8천명의 티베트인들이 중국군에게 학살당했었다.  달라이 라마는 아직도 비폭력을 외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텐진 총리는 티베트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세력과 은근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총리는 이제 일어설 때라는 확신이 생겼다. 티베트 독립은 달라이 라마의 노벨상 수상보다는 총에 의해 쟁취해야 한다는 확고한 결심이었다. 더 늦출 수는 없었다.  텐진 테트론은 티베트 독립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악마가 영혼을 팔라고 해도 팔 수 있었다. 총리는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인도 다람살라에는 실제로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고, 95년 현재 총리직은 텐진 테트론이 수행하고 있다. 89년의 티베트 민중봉기 때 8천명의 티베트인들이 사망했으며,그래도 달라이 라마는 인도의 간디와 같은 비폭력 노선을 고집하며 무장독립운동을 반대해 왔다.  달라이 라마는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99. 11. 18. 22:00  전라남도 여천군 안도, 남고지

  "아따, 행임도 참. 전쟁이 나서 난린디 낚시대를 다 갖고 오요?"

  "아 이놈아, 묵어야 살 거 아니냐?  자꾸 그러믄 감생이(감성돔의 전라도 사투리) 낚아도 니는 안줘뿐다 이."

  "아고야~ 시방 감생이 낚을라고요? 저 건너 연도에 총소리 나는거 안들리요? 지끔 낚시할 때요? 때가..."

  "선배님들 제발 조용해 주십시요."

  여수 남쪽의 큰 섬인 돌산도 남단에서 30분쯤 배를 타고 남쪽으로 가면 다도해의 끝 부분에 안도라는 섬이 있다.지금 이곳에는 95연대 해안 1대대 3중대 병력이 여수시에서 소집된 예비군과 함께 안도를 방어하기 위해 긴급투입되었다.

  현역병 1명에 예비군 2명씩 안도를 빙 둘러싼 해안초소별로 배치되었는데 예비군들의 군기는 말이 아니었다.  전쟁이 터져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예비군들은 현역병들의 통제에 따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현역병이 제지할라치면 당장에 싸가지 어쩌고 하면서 웃통벗고 달라드는 예비군들 때문에 중대장은  적 공격에 대한 방어에 신경쓰기보다는 예비군에 의해 사고가 터질까봐서 안절부절했다.

  저 멀리 연도(鳶島)에서는 아직도 한국군 1개 소대 및 예비군들과 중국 해병대간의 전투가 치열했다.이미 18:00시에 섬의 북단인 역포와 서쪽의 토명포에 상륙한 중국 해병대는, 비록 장비면에서는 뒤지나 섬 구석구석을 알고있는 예비군들의 저항이 의외로 완강하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도의 훈련을 받고 숫적으로도 우세한 중국 해병대들이 섬의 대부분을 장악해갔다.

  "선배님, 낚시는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적이 바로 앞에 있지 않습니까?"

  현역병인 강 의섭 일병이 단호하게 제지했으나  예비군 병장인 김 의화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낚시바늘에 크릴 새우 몇 마리를 꿰었다. 턱수염이 제멋대로 자란 모습이라 40대 초반으로 보였지만  아직 20대 후반의 총각이었다.

  "니가 국민핵교 다닐 때 나는 전방에서 뺑이쳤다이~. 니보다 나가 더 잘 안다. 가만 앉어서 떼놈들이 오는지 망이나 잘 보랑께.이 새비가 왜 이리 안끼진대?"

  김씨는 절벽 위의 참호에서 나가지도 않은채 낚시대의 탄성을 이용해 줄을 던졌다. 크릴새우가 바늘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케미 라이트(화학 약품을 배합한 형광물질)가 허공을 가르며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연도에서 총소리만 들리지 않는다면 이들은 늦가을의 내림 감성돔 낚시꾼들로 보일 것이다.

  김씨는 찌없는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이 소용돌이치는 곳을 찾아 찌와 봉돌이 없이 미끼만 던져서 미끼가 파도에 쓸려다니면 의심 많은 감성돔도 별로 의심하지 않고 미끼를 문다는 가정하에  여수 지역의 낚시꾼들이 자주 써먹는 낚시법이었다.

  "행임은 연도 사람들이 걱정도 안되요?"

  같은 동네 동생인 방 영훈이 핀잔을 주었다.연도가 중국군에 완전 점령되면 안도 차례라는 것은 너무도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낚시를 하는 김씨가 부럽기도 하고 너무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다.

  "연도는 벌써 끝장나뿌렀다. 여그도 얼마 못버티꺼여.어차피 우린 소모품 아니겄냐. 시간만 끌믄 되겄지.근디 오운이 니 헤엄칠 줄 알겄지, 이~?"

  김씨는 방씨에게 눈도 돌리지 않고 낚시대 끝만 주시하며 물었다. 낚시대 끝의 작은 케미 라이트가 스타라이트라는 상표명에 걸맞게 밤하늘의 작은 별처럼 어둡게 빛났다. 그것은 파도에 따라 천천히 오르내리며 깜박였다.

  "아따, 나가 뱃놈 아니요. 헤엄은 칠 줄 아요만, 머달라고요?"

  상대적으로 젊은 방씨가 김씨에게 물었다.  강 일병도 궁금하다는 듯 김씨를 쳐다보았다.  김씨는 돌아보지도 않고 낚시대 끝만 노려보고 있었다.

  "안도는 째끄낭께 도망갈 데도 없을 것이다. 싸우다 안대믄 금오도로 튀야지 어쩌겄냐. 강 일병도 헤엄칠 줄 안당가?"

  강 일병이 머뭇거리다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강 일병은 서울 출신이라 수영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에 살면 다들 수영을 잘 한다더니 정말 그런가 싶었다.

  김씨가 갑자기 긴장을 했다.일정한 간격으로 오르내리던 초리끝이 한 템포 빨리, 작게 움직였던 것이다. 강 일병과 방씨도 초리끝을 보았다. 밤에 다섯 칸(약 9미터)짜리 낚시대의 끝을 본다는 것은 낚시 문외한들은 힘들어서 두 사람은 자꾸 눈을 깜박였다.

  갑자기 낚시대 전체가 휘었다.  감성돔이 미끼를 물고 바다쪽으로 도망가자 김씨가 낚시대를 챈 것이다. 김씨가 낚시대를 바로 세우자 낚시대 초리끝이 김씨 바로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김씨와 고기간의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아갸~ 총소리가 멈처뿌렀다! 인자 우리 차례구만 이~ "

  김씨는 고기와 실랑이 하면서도 연도쪽에도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이다. 강 일병이 서둘러 크레모어를 다시 점검했다.

  "삐까리(감성돔 새끼의 전라도 사투리)여~ 30 쎈치도 안되겄는디."

  김씨가 조심조심 낚시대를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줄을 잡고 끌어올리자 하얀 비늘의 감성돔이 펄떡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감성돔은 성체로 성장한 후에도 성전환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동물이며, 맛이 좋고 낚시할 때 손맛이 좋아 낚시꾼들이 즐겨 잡는 어종이다.11월에는 월동을 위해 감성돔들이 피둥피둥 살이 찐 상태로  남해 먼바다로 나가는데, 낚시꾼들은 이 시기를 노려 감성돔 낚시를 많이 한다.

  "아따, 고놈 참 먹음직스럽구마 이~  쐬주하고 초장에 그냥, 카~~ "

  방씨가 고기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전쟁만 아니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갑자기 밤하늘의 유성처럼 수 십 개의 노란 불빛이 남쪽 바다에서 날아왔다.

  "숙여! 포탄이다."

  김씨가 낚시대를 세워 쥔 채 몸을 참호 속으로 숨겼다. 방씨와 강 일병도 멋도 모르고 따라 숨었다.  잠시 후 밤하늘을 찢는듯한 폭음이 섬 전체에 연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절벽 사이에 돌로 만든 이 참호의 30미터쯤 위쪽에도 포탄이 작렬했다. 돌이 굴러 내려왔다.

  "아까 본께 10분 동안 함포사격하든디 이번엔 어쩔랑가 모르겄네 이~ 오운아, 한번 내다 바라. 갠찮다."

  김씨가  낚시대를 접으며 방씨에게 말했으나  방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참호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포격이 잠잠해지자 김씨가 고개를 내밀고 바다 위를 살폈다. 어두운 밤바다 위에는 수 십 척의 상륙정들이 악몽속의 유령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85톤의 유친급 상륙정과 128톤의 유난급 상륙정들이었다.

  "온다!"

  중국 해병대는 안도의 남쪽 포구인 이야만으로 돌진해오고 있었다.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연도 9 km 동쪽에 있는 작은 섬인 작도(鵲島) 근처에 중국군 남해함대의 대부분이 몰려 있었다.  중국 항공모함 해신 2호에서 출격한 전투기와 헬기가 안도를 무차별 폭격했으며,  함대의 함포도 가만있지 않았다.특히 이야만의 방파제는 중국군 전투기들이 철저히 공격했다. 그들은 폭탄을 투하하지는 않고 주로 기관포로 공격을 했다. 방파제에 불꽃이 튀자 장비가 변변찮은 예비군들이 무수히 쓰러졌다.

  안도 이야만의 동쪽 남고지에 있는 참호에 세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꼼짝 않고 있었다. 중국의 대군 앞에 자신들만 홀로 서있는 기분이었다. 참호 안에 던져진 감성돔이 펄떡였다.

  "우리 해군하고 공군은 머하는 거시여? 짱께가 이로코롬 들어와 뿌러도 되는것이랑가?"

  김씨가 투덜거렸다.  그로서는 아직 한국의 공군기 한 대, 경비정 한 척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따~ 서구지에 있는 것들 큰일나뿌렀네요.  중국놈들, 정말 징하게 싸 제끼요 이~."

  방씨가 함포의 집중 공격을 받는  이야만 서쪽의 서구지를 보고 한탄했다.  강 일병은 처음엔 웬 달구지 이름을 동네에 붙이나 하고 웃었으나, 서구지나 남고지의 고지, 또는 구지는  곶(串)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라도 사투리는 희안해서 명사의 모음까지 바꿔버린다. 강 일병이 3개월 전까지 근무했던 여천군의 한구미라는 작은 포구는 그 동네 사람들은 행귀미라고 불렀다. 모음조화에 역행동화가 너무 강하게 언어에 작용하는 것 같았다.

  안도의 한국군이 반격을 시작했다. 섬에 접근해오는 상륙주정과 수륙양용차에 박격포를 쏘아댔다.  몇 안되는 해안의 M-60 기관총들도 불을 뿜었다. 바다에 하얀 물보라가 튀었으나 중국군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는 모습이었다. 박격포로 움직이는 상륙주정을 명중시키는 것은 황소가 뒷걸음질에 쥐를 잡는 확률과 비슷했다. 박격포를 쏘는 한국군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어차피 지금 밖에 포를 쏠 기회가 없어서 아낌없이 쏘고 있었다.

  뜻밖에도 쥐가 잡혔다.수 십 발을 발사하다 보니 어쩌다가 운없는 상륙주정 한 척에 명중한 것이다. 섬쪽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그 상륙주정은 같은 자리에서 몇 바퀴 빙빙 돌더니 침몰해버렸다. 그러나 중국군 상륙주정의 수는 너무 많았다.  대부분이 이야만의 방파제에 도착했다. 호위하던 몇 척의 고속어뢰정은 섬 주위를 돌면서  섬에 사격을 가했다.

  이야만의 방파제에서는 중국 전투기들에 의해 공격당했던  예비군 소대가 방어를 하고 있었다. 방파제보다 더 높은 유난급 상륙주정에서 발사하는 기관포에 예비군들은 방파제 뒤에 숨어 꼼짝을 못했다. 몇 명의 예비군이 겁에 질려 방파제 안쪽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중국군 해병대원들이  상륙하자 예비군들이 사격을 개시했다. 서구지와 동고지의 높은 지대에서  쏘는 기관총들이 합세해 해병대원들을 쓰러뜨렸다. 예비군들이 수류탄을 굴렸다. 수류탄은 폭 7 미터의 방파제를 굴러 반대쪽으로 떨어지며 폭발했다. 중국군들도 수류탄을 반대쪽으로 굴리기 시작했다.숫적으로 우세한 중국군들이 방파제를 차츰 점령해가며 방파제 안쪽의 항구마을로 접근했다. 일부는 동쪽의 남고지쪽으로 전진했다.

  "이거 안대겄당께. 어차피 이쪽으론 상륙 안학겅께 우리도 고지로 올라가서 싸우더라고."

  김씨가 제안하자 현역병인 강 일병이 고개를 저었다.  명령이 없이는 죽어도 참호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김씨는 총소리가 가까와지는 것으로 봐서 아군이 밀리니 증원을 가야한다는 주장이었는데 둘은 서로의 주장을 굽힐 수가 없었다.

  "그러믄 한 명만 올라가서 망보는 것이 어떠까요? 질 밑에 있응께 좀 불안하당께요."

  방씨가 절충안을 내놓았다. 강 일병도 동의를 해서 방씨가 참호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방위 출신의 방씨가 투덜거리며 바위절벽을 타고 올라갔다.남고지 꼭대기에서 연이어 들리던 기관총 사격음이 그곳에서 난 폭음과 함께 멈추더니  근처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서구지 쪽에서만 총성이 울렸다.

  갑자기 방씨가 올라간 절벽에서 M-16의 연속 사격음이 들려왔다.아카보 소총의 연사음도 들렸다.수류탄의 폭음이 이어졌다. 김씨와 강 일병이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행임~ 빨랑 오랑께요. 중국군이요. 나 좀 살리주씨요!"

  방씨의 비명이 들리자 두 사람은 허겁지겁 바위절벽을 탔다.올라가보니 작은 해송 밑에 방씨가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강 일병이 서쪽을 향해 총을 쏘는 동안 김씨가 방씨를 끌어 안았다.

  "히히~ 시방 두 놈 잡았당께로. 헉~ 컥!"

  달빛 아래에서 방씨를 보니 온몸이 피투성이었다.배에서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김씨가 보기에 방씨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방씨는 목에서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 감생이... 동네 점빵에서 쐬주에다가... 히히... 흐억!"

  방씨가 선혈을 왈칵 쏟았다. 김씨도 참호 안에 버리고온 감성돔 생각이 났다. 아직 살아서 퍼득대고 있을 감성돔을 생각하니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초장이 있어야지, 임마. 날로 묵냐?"

  방씨가 미소를 지었다. 눈이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행임은... 낚시꾼이... 초장도 준비.... 안해오요?"

  방씨가 김씨를 비웃으며 김씨의 팔을 잡은 손을 서서히 내렸다. 손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김씨는 방씨의 죽음보다도 전쟁통에 예비군으로 소집되면서도 낚시대는 가져왔는데  초장을 준비해오지 않은 자신이 스스로도 이상해 보였다.그러나 방씨가 아직 듣고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낚시꾼은 묵을라고 괴기를 잡는 거이 아니지 이~. 니는 돈벌라고 배 타냐?'

  수풀 사이에 숨어있던 강 일병이 소총을 연사했다. 김씨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가오는 적을 향해 소총을 쏘았다. 오솔길을 따라 소리없이 접근해오던 중국군 몇 명이 쓰러졌다.  중국군이 응사를 했으나 김씨와 강 일병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난 후였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듯 일제사격을 한번 하고는 꼭 자리를 이동했다. 달빛에 보이는 중국군의 숫자가 점점 불어났다.

  강 일병이 뛰어가다가 중국군이 발사한 총에 맞고 쓰러졌다.  김씨가 수류탄을 던져 중국군의 추격을 견제하며 쓰러진 강 일병을 보았다. 강 일병은 총탄을 가슴에 맞고 즉사했다. 김씨는 강 일병이 고통을 당하지 않고 죽은 것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강 일병의 몸에서 탄창을 집었다.중국 해병대원들이 일제 사격을 하며 뛰어왔다. 갑자기 이들이 비명을 지르더니 땅바닥에 넘어졌다.김씨가 후퇴중에도 나무 사이에 낚시줄을 연결한 것이다. 김씨는 코가 깨져 정신이 없는 해병대원들이 일어서고 있을 때 다시 수류탄 한 발을 더 던지고 북쪽으로 내달렸다. 잠시후 폭음이 일어나고 곧이어 중국군들의 욕지기가 들려왔다.

  11. 18  23:30  개성, 통일참모본부

  "안주에서 보고입니다. 중국군 3개 이상의 장갑집단군이 방어선을 뚫고 남진 중이라고 합니다.인민군과 국군의 연합부대는 안주전선에서 후퇴중입니다.  인민군 4군단은 고립되어 있고,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통신실과 연결된 단말기로  급전을 읽은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했다.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회의실 바로 옆의 통신실에서 통신장교가 뛰어왔다.양 중장이 통신지를 나꿔채듯 뺏아 읽었다.

  "제 7군단과 820 기계화군단이 후퇴 중  대규모 공습을 당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입니다.  공중지원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전상현 상장은 공습으로 전사했습니다."

  참모들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아직 중국 전투기들에 의한 평양 공습은 끝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전선에 돌릴 전투기의 여유가 없었다. 여수를 지원해야 할 울산의 전투기까지 평양방어에 임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여수를 포기하죠."

  "안됩니다. 적에게 제 2전선을 허용하면 끝장입니다."

  "그래도 후퇴하는 우리 군을 엄호해야 되지 않소? 몇 개 안되는 기계화군단이 당하고 있어요. 전차가 없으면 전쟁을 수행할 수가 없단 말이오."

  후퇴하는 인민군들의 공중엄호 문제로 참모들이 다투고 있을 때 한국 육군 정 지수 대장의 통신용 단말기가 울렸다.또다른 급전이 들어온 것이다. 정 대장은 예상한 일이라는 듯 놀라지도 않으며 보고했다.

  "현재 돌산도 바로 앞의 금오도까지 점령당했습니다.중국 전투기들이 여수시를 폭격하여 한국화약 공장이 완전 파괴되었습니다."

  정 대장이 상황보고를 하자 몹시 피곤한 모습을 한 이 차수가 물었다.

   왜 하필 여수디요?

  인민군 해군 박 정석 상장이 그깟 소도시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듯 물었다. 국군 장성들이 공화국 수도인 평양보다 남반부 소도시를 더 중요시하는 것같아 불쾌했다.

  "여수시 북쪽 여천공단엔 커다란 화학공장과 비료공장이 있다네."

  이 차수가 부하 장성의 불만을 눈치채고 설명해주었다. 양 중장이 부연설명을 했다.

  "거기엔 자동차 공장도 있고 바로 그 위 광양에는 포항제철도 있습니다. 포항제철의 광양제철소지요.  게다가 서울까지 가는 송유관도 있습니다. 평양이 심리적으로 중요하다면 여수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입니다. 우린 둘 다 잃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2전선이라면... 우린 또다른 전선을 유지할 병력과 장비가 없습니다."

  박 상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 차수가 물었다.

  "남해함대의 위치는 어디오?"

  "지금 경남 통영 욕지도 남쪽 5 km 해상입니다.  적의 함재기에 의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심 현식 중장이 보고하자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되뇌었다.

  "만약 여수와 순천이 점령당하면... 어려운 싸움이 되겠습니다."

  양 중장이 회의실 앞쪽 중앙의 대형 모니터에 비친 상황판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힘없는 손짓으로 상황판을 짚어나갔다.

  "31사단 2개 연대 병력이 순천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경남의 53 사단 병력도 속속 이동중입니다. 01:00시에 김해와 광주비행장에서 항공기들이 여수 상공으로 출동할 예정입니다."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마나 전과를 올려주느냐가 문제였다.  중국 해군의 대공 방어력은 너무 강했던 것이다.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은 궁금한 점도 풀리고  서해에 중국해군의 위협도 없는지라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며칠밤 잠을 못잔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김 대장."

  "예, 차수님!"

  이 종식 차수가 깊이 한숨을 쉬더니 인민군 육군의 김 대장을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김 대장이 눈치를 채고 깊이 고뇌하는 듯 했다. 잠시 후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격여단과 정찰연대를 투입하겠습니다. 후퇴전에 이들 부대를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는 반격전에 쓸 생각이었습니다만, 평양이 위험하니 할 수 없죠. 하지만 우리가 반격을 할 때는 어려운 전쟁이 될 것입니다."

  한국군 출신의 참모들이 의아해했다.  북한의 특수전 부대를 잘 알고 있는 정 지수 대장 마저 그깟 소규모 부대가지고 되게 생색낸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 차수 등의 인민군 참모들에게는 패를 다 보여주고 도박하는 기분이었다.

  1999. 11. 19. 00:15  전라남도 여천군 안도, 동고지

  김씨가 헐떡거리며 동고지의 중대본부가 있던 곳을 보았다. 전기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백금만의 모래사장을 헉헉대며 걸어 동고지로 가던 김씨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모래사장의 북쪽 방파제 겸 선착장에 대형 배들이 많이 보였다.  배 안에서는 불이 켜진채로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대형의 중장비를 하역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중국군이다!'

  놀란 김씨의 발이 얼어 붙었다. 뒤쪽 산에서는 아직도 자기를 쫓아오는 중국군들의 총성이 들리고 있었다. 앞쪽 넓은 모래사장에는 네 명의 군인들이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도저히 국군이나 예비군 같지는 않았다. 그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 김씨는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 무거웠고 다리와 심장은 떨렸다.달이 구름에 가려 윤곽만 보이고 있었다.

  중국군들은 기관총을 바다쪽으로 거치한 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전투는 거의 끝났으므로 긴장도 풀린 상태였다.  숲속에서 나는 총소리도 조만간 끝나서 다음 상륙을 위해 전 부대가 이곳에 모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모래사장을 걸어오는 사람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까 숲속으로 대변을 보러간 중사가 틀림없었다. 중사가 이상하게 총구를 들이댄 채로 걸어왔다.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 것을 보았다.

  중국군이 기다리던 중사는 총소리가 나고 사람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놀라서 뒤를 보던 자세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는데, 불행한 분대원들 있는 곳에서 총소리가 나자 무서워서 숲을 나가지 못했다.  땅에 앉은 자세 그대로 설사가 나오자 그 소리에 중사가 깜짝 놀라 엎드렸다.

  '니기미, 니기미!'

  김씨는 총을 쏜 후 서쪽 숲으로 뛰었다.방파제의 배들에서 김씨를 향해 기관총을 쏘았다. 기관총의 탄알이 사방에 튀었다. 숲으로 뛰어들고 나서는 박박 기었다. 어디에도 아군은 없고 중국군 투성이었다. 기어가는데 앞에 뭔가 비린내를 짙게 풍기는 물체가 닿았다.어둠 속에서 보니 어느 예비군의 시체였다. 누군지 몰라도 평소에 사람도 별로 살지 않는 이 섬까지 와서 외롭게 죽은 것이다.

  김씨가 시체를 타고 넘어갔다.이제 배에서 기관총을 쏘는 중국군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이라 일단 안심했으나  총격이 이어지자 무릎이 까지도록 계속 기어갔다. 모래밭쪽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갑작스런 총격에 놀란 중국해군이 숲에서 나온 중국군을 한국군으로 오인하고 사격을 한 것이다.

  '여기는 당산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무당을 뜻하는 당골래, 또는 당골네는 대학 다니던 친구가 단군이 변한 말이라고 가르쳐주었다.당산은 무당이 굿을 하던데서 비롯된 이름이었다.아마도 어부들은 바다가 무서워서 여기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한 모양이다.  작년 여름에 이곳에 낚시하러 왔을 때 무당이 굿을 하는 것도 보았다. 그 더운 날에 땀도 흘리지 않으며 펄쩍펄쩍 뛰며 굿거리를 하는 중년의 무당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굿을 한 당골네는 중국군이 침공해올줄 알았으까?'

  김씨가 허튼 생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당장에 자기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북서쪽에 있는 금오도는 무슨 일인지 조용했다. 지원사격도 안해주어 섭섭했다.

  '금오도에 있는 것들은 중국군이 상륙해 올 줄도 모른당가? 즈그들도 금시 당하껀디...'

  바위를 타고 내려가 해변에 도착했다. 파도가 밀려올 뿐 이곳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김씨가 한숨을 내리쉬며 총을 바위 위에 내려놓고 군화를 벗었다. 발을 바닷물에 넣어보니 의외로 따뜻했다. 파도가 맨발을 간지럽혔다. 금오도의 남동쪽 우실포까지는 1 킬로미터는 족히 되어보였다. 김씨가 바위를 내려가 가슴까지 물에 들어갔다.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는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11. 19  00:30  전남 여수시 국동, 바다아파트 15동 207호

  "어무니, 긍께 빨랑 피난 가야된당께요."

  "안대! 우리 새끼 아직 안들어왔는디 머덜라고 나가 피난가긋냐? 나는 안간당께. 느그들이나 얼릉 가 바라."

  "아따, 어무이도. 으하는 예비군이니께 군인들하고 같이 싸우고 있당께요. 전쟁이 다 끝나야 돌아오죠 이~. 인자 가장께요."

  노파는 막내 아들이 빨리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여수에만 살았기 때문에 6.25의 참화를 겪진 않았지만 여순반란사건을 겪어서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당시 여수에서 빨갱이로 몰린 젊은이들은 모두 국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래서 지금도 여수에는 67세에서 70대 초반의 남자는 외지인으로 보면 맞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에 여수시민이 입은 피해는 심각했다.골목마다 넘쳐나는 수많은 처참한 시체들을  본 기억이 아직도 꿈에 악몽으로 나타나는 노파였다. 그 악몽의 시체들 사이에 늦게 본 작은 아들이 끼어있게 할 수는 없었다.

  "아이고~~~ 전쟁 나가믄 죽는거여. 애고 내 새끼 으하야~~~ "

  노파가 통곡을 해댔다.  노파의 곡소리는 집 바깥에서 들려오는 비행기와 대공포 소리보다 컸다.

  "어매~ 어무이, 재수없게. 으하가 왜 죽는다 그르요? 걱정 마씨요.으하는 살아 오껑께."

  중년의 큰아들이 노파를 억지로 집밖으로 끌어냈다. 노파는 대성통곡을 하면서도 순순히 큰아들과 같이 계단을 내려갔다.  노파가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무서워서 타지 못하고 꼭대기층이라도 걸어서 다니자, 큰 아들은 노모를 위해 2층으로 이사했다.노파의 큰아들은 동생이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에게서 온 전화로 듣기로는 동생이 있던 안도는 이미 점령당했다고 했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자 아내가 자동차에 시동을 킨 채 기다리고 있었다.  뒷자리에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고교생 딸이 창밖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오매~~~~~ 나 팔자야. 으하는 어직 장개도 못갔는디, 아이고~ "

  큰아들이 노모를 억지로 차에 태웠다.운전석에 앉은 큰아들은 백미러로 모친의 상태를 살피며 차를 시내쪽으로 몰았다.온 시가지가 불에 타고 있었다. 도로에 돌들이 굴러 떨어져 있었으나 점점 속도를 냈다.

  11. 19. 00:50  경상남도 통영군 욕지도 남쪽 해상

  3척의 군함이 밤바다 위에서 불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군함들은 엔진을 정지한 채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두 척은 이미 침몰했습니다. 2척 대파, 1척 반파입니다."

  한국 해군 남해함대의 기함인 율곡함의 함교에서 대공전 사관이 고개를 푹 숙이고 함대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중국의 대함미사일의 사정거리 아슬아슬한 곳에서 섬 사이에 숨어 대함미사일을 발사한다는 작전은 크게 빗나갔다. 중국 함대의 항공모함 뿐만 아니라 제주도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남해함대를 반신불수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구식 기어링급 구축함 경기함(DD-923)과 역시 구식인 한국 해군의 유일한 알렌 섬너급 구축함인 대구함(DD-917), 울산급 프리깃함인 마산함(FF-955)과 경북함(FF-956),  그리고 분통 터지게도 최신예 한국형구축함인 퇴계함이 침몰 당하거나 운행불능이 되었다.

  특히 퇴계함의 대파는 충격이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대공방어망을 갖춘  퇴계함이 초전에 대파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퇴계함이 쇄도하는 중국의 대함미사일에  시 스패로(Sea Sparrow) 대공미사일 16발을 모두 발사한 다음에, 채프의 구름이 적 미사일의 레이더에 대한 방벽을 두르고 2기의 30 밀리 골키퍼(Goalkeeper) 대공포가 요격에 나섰지만, 몰려오는 대함미사일의 숫자는 함대의 대공방어망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기함인 율곡함은 반응이 신속한 수직발사기 체계를 갖춘 대공미사일 SM-2의 덕을 톡톡히 입었다.방어망을 뚫고 온 미사일도 300미터 전방에서 20 밀리 개틀링건이 간신히 명중시켜, 미사일 파편에 의한 약간의 손해만 입은 상태였다.

  퇴계함이 명중한 다음에야 중국 대함 미사일의 최종유도가 적외선 유도방식인 잉지(鷹擊)-2 대함미사일이라는 것을 간파한 대공사관이 플래어를 대량으로 발사하고 함대를 정지시켰으나, 이미 늦어 5척의 대형함이 중국 함대를 공격도 못해보고 파괴당한 것이다. 모함을 잃은 퇴계함의 슈퍼 링크스(Super Lynx) 헬리콥터가  기함인 동급의 율곡함에 착륙하여 급유를 받고 있었다.  멀리 수평선 위에서는 소방선들이 퇴계함의 불길을 잡고 있었다.

  "적 함대의 위치는 아직 파악 못했나? 01시부로 예정된 아군기들과의 공조체제 유지는?"

  함대사령관은 냉정하다기 보다는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는 듯 보였다. 율곡함의 함장이 보고했다.

  "적 함대 위치 완전 파악됐습니다.하픈을 갖춘 모든 함정에서 데이터 입력을 완료했다는 보고가 왔습니다.  거리는 40km, 항모 1척과 구축함 7척, 프리깃함 9척, 기타 대형양륙함 등 20척입니다."

  함장의 보고를 들은 함대사령관 윤 도선 소장은 분통이 터졌다. 한국 해군의 대함미사일인 하픈의 사정거리는 130km, 중국함대의 수상타격력의 핵인 레이더 유도 대함미사일 잉지(鷹擊)-1의 사정거리는 겨우 40km이다. 그러나 중국함대는 함재기와 제주도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을 이용해 공대함미사일로 한국 해군의 남해함대를 공격한 것이다.

  함장이 자신을 놀리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 윤 소장은 불쾌했다. 함장은 중국 함재기들의 공격권에 접근하지 말고, 명중율은 떨어지더라도 원거리에서 공격하길 권고했었다.  함대사령관은 자신의 고집대로 접근하다가 당했다고 생각하니 더 부끄러웠다. 그러나 자신이 함대사령관인 것이다.

  "아군 공격기 편대로부터의 연락입니다. 순천 상공에 도달,발사 직전입니다."

  통신병이 보고하자 함대사령관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이미 함대의 위치는 서로 노출되었으니 이제 공격만이 남은 것이다. 아군 공격기 편대보다 함대의 미사일이 더 많은 전과를 올려주기를  바라면서 함대용 통신기의 마이크를 잡았다.

  "전 함대 대함미사일 발사!"

  율곡함에서 하픈 함대함 미사일이 8발 연속 발사되었다.  탑재헬기인 웨스트랜드社의 슈퍼 링크스에서도 밤하늘에 2기의 하픈을 발사했다.평상시의 탑재무기인 4발의 시 스쿠아(Sea Skua) 대함미사일 대신 오늘은 보다 대형인 하픈을 발사했는데,발사순간 앞부분이 뾰죽한 링크스 헬기가 화염에 휩싸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함정에서도 동시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함대에 소속된 2척의 포항급 코르벳함에서는 보다 소형의 엑조세를 발사했다. 엑조세는 사정거리가 42 k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직선코스를 취했다.욕지도의 상공에 불꽃놀이가 벌어진듯 바다 위 하늘이 찬란했다.

  11. 19  01:00  전남 여천군 연도 동쪽 바다

  상륙전 지원에 바쁜 중국 함대에 먼저 대공 경보가 울렸다. 여수시에서 40km 북쪽인 순천의 바닷가(광양만) 상공에서 발사된 48기의 하픈이 발사순간  제주도 상공에서 비행중인 중국 조기경보기의 레이더에 잡혔다. 즉시 미사일 요격 체제에 들어간 중국 함대는 함재기들을 출격시켰다. 요격지점인 여수 남쪽 해상에 도달하자 한국 공군의 F-16기들이 발사한 공대함미사일이 오기도 전에 중국 전투기들을 노리고 돌산도의 최고봉인 천왕산(385 미터)에서 대공미사일이 날아왔다. 여수시가 폭격을 당하는 동안에도 숨죽이고 있던 대공미사일 기지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선 것이다.

  중국 전투기들이 갑자기 날아온 대공미사일을 피해 뿔뿔히 흩어지고, 미사일 요격편대의 호위를 맡은 전투기들이 미사일 기지를 향해 날았다. 상공에서 3개의 불꽃이 피어날 때 천왕산 정상 부근에서도 불꽃이 일어났다.  이때 공대함 미사일들이 중국군의 대규모 편대 아래를 통과하여 남쪽을 향해 날아갔다. 중국 전투기들은 공대함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남쪽으로 비행하면 함대로부터 오인사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함대에 미사일 공격을 보고하고  한국 공군기들을 노려 북진했다. 갑작스런 지대공미사일의 출현으로 중국 전투기들은 임무인 대함미사일 격추를 하나도 못해낸 것이다.

  중국 함대 북쪽에서 하픈이 날아왔다. 함대에 경보가 다시 울리고 구축함들이 대공방어에 임했다. 루다급 구축함 카이펭의 후미에 있는 8연장 대공미사일 발사기에서  크로타일 단거리 대공미사일이 연속 발사되었다. 지앙웨이급 프리깃함 화이난과 통링에서는 PL-9 단거리 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한국 해군이 능력을 넘는 공대함 공격을 받았듯이 이들도 역시 대공방어력을 넘는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되었다.

  공대함 미사일의 접근과 동시에 함대함 미사일의 경보가 울린 것이다. 파도 위를 스치듯 날아오는 하픈과 엑조세의 대군을  제주도 상공의 조기경보기나 함대의 초계기 모두가 발견을 하지 못했다. 중국 함대는 북쪽과 동쪽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의 십자포화에 걸려들었다. 함대가 최종방어에 돌입하여 채프로켓을 마구 쏘아올리고 20밀리 대공포가 불을 뿜었으나 미사일을 막지는 못했다.

  가장 먼저 북쪽 해상에서 대공방어에 임하던 카이펭이 하픈에 명중했다. 227 kg의 탄두가 이 불행한 3700톤급 구축함의 흘수선을 뚫고 들어가 폭발했다. 함수부분이 두쪽이 나고 폭발이 이어졌다. 화이난과 통링의 두 프리깃함은 공대함 하픈에 명중한 후  함대함 하픈까지 명중하자 곧바로 침몰했다.다른 루다급 구축함 주하이와 지앙후이급 프리깃함 마오밍도 각각 2발의 하픈을 맞고 침몰중이었다.

  해신 2호는 악착같이 버텼다. 4기의 20밀리 개틀링건이 3기의 하픈을 요격했으나 최종 돌입코스가 복잡한 엑조세는 막지 못했다.함수 부분에 명중해 순간적으로 개틀링건의 사격관제장치가  작동을 멈춘 순간 다른 3기의 하픈이 쇄도해 왔다.  해신 2호가 연속 불길을 뿜으며 폭발했다. 그러나 해신 2호는 덩지에 걸맞게 이 정도의 타격에 침몰하지는 않았다. 함체의 7군데로부터 침수가 되며 항행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늦가을의 밤바다 위에 화재가 발생한 5척의 중국군함이 표류하고 있었고 바다 밑에는 모두 7척의 중국군함이 진흙바닥 위에 가라 앉아 있었다.

  11. 19. 01:10  전라남도 구례군 상공

  항모의 대파 소식을 들듣 화가 난 중국 전투기들은  한국 전투기들을 좇아 순천을 지나 지리산 상공에 다달았다. 오는 도중 경상남도의 남해군과 전라남도의 승주군에서 날아온 구식 나이키(Nike) 지대공미사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러시아제 수호이-27을 함재용으로 개발한 수호이-27K는 애프터 버너를 가동하여 순식간에 F-16을 따라잡았다.

  공대공미사일의 사정거리에 F-16이 들어오자 막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순간 수호이 편대의 뒤쪽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편대의 후미에서 따라오던 3대의 수호이가 화염에 휩싸여 추락하고 있었다.  불길 사이로 수십 개의 작은 불빛이 날아오는 것이  수호이 전투기의 조종사들에게 보였다. 신형 중거리 대공미사일인 암람(AMRAAM)이었다. 이제서야 후방감시레이더가 미사일 경보를 발했다.  그리고 20여기의 F-16 전투기가 레이더에 나타났다.  이들은 광주비행장에서 출격하여 수호이 전투기들이 올 때까지 지리산 뒤쪽에 숨어있던 매복부대였다.

  도망가던 F-16들도 선회하여 단거리 사이드와인더를 발사하고는 다시 동쪽으로 비행했다. 수호이 전투기들은 도망가는 F-16들을 포기하고 미사일을 피하기 바빴다. 그 사이에 5기의 수호이가 격추되었다.미사일을 피하느라 신경을 못쓴 사이에 광주에서 출격한  이 F-16 전투기들이 수호이 편대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지리산 상공에 공중전이 벌어졌다. 대형의 수호이들은 근접전에서는 별로 잇점을 발휘하지 못했다. 예산이 부족해 미사일 사격훈련보다는 근접전훈련을  더 많이한 한국공군 조종사들의 날렵한 F-16 전투기들이 계속 킬 마크(kill mark)를 올렸다. 연료가 떨어진 수호이 전투기들은 눈물을 뿌리며 제주도 상공으로 후퇴했다.

  후퇴할 때 F-16이 날린 미사일에 2대가 추락하긴 했지만 속도가 빠른 수호이 전투기들은 F-16을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해신 2호가 표류중인 여수 근해를 피해 수호이 편대는 보성군 상공을 지나 제주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연료는 약간의 여유가 남아있었으나 또다른 공중전을 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때 정면에서 F-5의 편대가 나타났다.

  목포비행장은 전쟁이 나고 제주도가 중국에 점령당하자  한반도를 방어하기 위한 공군의 전진기지로  사용되었다.  목포에서 출격한 12기의 F-5는 각각 2발의 스패로우를 발사하며 계속 날아왔다.중국 전투기들의 편대장은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하지 말고 회피하라! 연료가 없어!"

  편대장은 최강의 전투기인 수호이-27K가  소형의 저성능인 F-5전투기에 쫓긴다는 것에 자존심 상했으나, 한 대의 전투기라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처음 항모인 해신 2호에서 출격할 때는 50기였으나 지금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  제주도까지 날아가야 하는데 연료가 아슬아슬한 지금 싸구려인 F-5를 상대할 여유는 없었다. 수호이 전투기들이 편대장의 명령에 따라 저공비행에 들어갔다.  F-5 전투기들이 악랄하게 뒤쫓았다. 또다시 7기의 수호이가 화염에 휩싸여 보성군의 너른 차밭에 추락했다.

  11. 19. 01:15  경상남도 통영군 욕지도 남쪽 해상

  남해 함대 사령관 윤 도선 소장은 함교 밖에서 예인선에 끌려가는 퇴계함을 보고 있었다. 퇴계함의 함장은 전사하고 그 외에도 37명이 전사, 53명이 행방불명되었다.

  '내가 저 함에 탑승했엇다면...'

  퇴계함은 97년에 취역한 한국형구축함의 2번함이었으며 6개월 전까지 남해함대의 기함이었다. 3번함인 율곡함부터는 대공미사일을 SM-2로 바꿨지만, 먼저 건조된 퇴계함은 그대로 골키퍼 30밀리 대공포와 시 스패로 대공미사일을 쓰고 있었다.

  '결정적인 차이야...'

  윤 소장은 작년에 퇴계함을 수리할 때 대공미사일 체계도 바꾸기를 건의했었다. 그러나 예산상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것은 이러한 결과로 나타났다. 발사한 미사일의 전과가 궁금하여 함교 안으로 들어왔다.

  "12척 격침 및 대파입니다. 해신 2호는 항행불능입니다."

  함대의 통신장교가 보고했다. 공군과의 합동작전 치고는 시원치 않은 결과였다.

  "적의 대공방어망은?"

  재공격을 결심한 사령관이 통신장교에게 물었다.  통신장교가 작전장교와 상의하여 보고했다.

  "단거리 대공미사일을 갖춘 구축함과 프리깃함은 모두 격침되거나 대파되었습니다.  대파된 적함에 다시 명중할 우려도 있지만 함재기가 없어진 지금 적 함대의 대공방어망은 사실상 분쇄되었습니다. 현재 적 잔여함대의 위치가 파악되었습니다.조기경보기에 따르면 아직 제주도에서 중국전투기가 출격하지 않고 있답니다."

  통신장교의 보고를 들은 함대사령관은 연도 동쪽의 작도에 파견된 해군 UDT 부대원들이 추위에 떨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방수처리된 통신기를 보유한 UDT 대원들은 무인도인 작도의 해변에 숨어 중국함대의 위치를 보고하고 있었다.  중국의 헬기들이 작도를 수색했지만 그들은 당연히 발견되지 않았다. 섬이 아닌, 섬에 부속된 바닷속 바위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공격하라."

  남해함대에서 또다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첫번째 공격을 교훈삼아 먼저 포항급 코르벳함들의 엑조세가 먼저 발사되고,  그 이후에 하픈이 발사되었다.엑조세는 파괴력에 있어서 하픈에 못미치지만 뛰어난 시 스키밍(sea skimming) 능력은 공격받는 함대의 대공망을 휘젓기에 충분했다. 100 여발에 가까운 엑조세와 하픈이 벌거벗은 중국 함대를 향해 날아갔다.

  11. 19  01:30  개성, 통일참모본부

  "제 15 전투비행단의 보고입니다. 3파에 걸친 공격으로 적기 50대 중 42대를 격추했습니다. 아군 피해는 F-16이 5기, F-5가 3기입니다."

  "남해함대의 보고입니다. 적 함대를 전멸시켰습니다.  침투조에 의하면 중국함대가 있던 해상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탑재헬기들이 소형 대함미사일을 싣고 적 소형함정들에 대한 소탕전에 들어갔습니다."

  이 호석 공군 중장과  심 현식 해군 중장의 보고에  참모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실로 오랜만의 승리였다.

  "제주도를 탈환해야 되는데...  우리는 수송능력이 없어서 힘듭니다. 제주도로부터의 공습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는 피스쪽에서 맡기로 했습니다."

  양 중장이 한숨을 쉬었다. 외국군에게 영토를 잃고 이를 다른 외국군에게 수복시켜 달라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피스의 연락관 짜르가 한국인들을 안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참모들은 제주도로부터의 공습은 계속 문제되겠지만 이제는 한반도에 대한 직접적인 상륙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그래도 이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스의 전력은 잘 모르지만 짜르가 설명한 장비와 인원이라면 제주도 수복은 걱정없어 보였다. 중국본토에서 지원하러 오는 적기는 한국군이 맡기로 합의했다. 심 중장이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된 작전을 설명했다.

  "안주쪽이 더 걱정이군요."

  이 차수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진 것을 본 정 지수 대장이 큰일이라는 듯 참모들을 보며 말했다.

  11. 19  01:35  전남 여천군 금오도

  수영으로 바다를 건너 금오도에 도착한  김 의화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오랜만에 헤엄을 치니 몹시 힘들었다. 바위틈에서 보니 해상에는 불타는 중국 함선들이 있었고 섬의 해변에서는 어뢰정과 상륙주정들이 중국 해병대원들을 탑승시키키 바빴다. 중국군이 도망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김씨는 기껏 도망친 금오도도 중국군에 점령당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중국군이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오도의 남쪽 포구인 십장을 피해 직포쪽으로 걸었다.

  중국군의 총에 맞고 죽어간 방씨가 생각났다. 강 일병도 용감한 군인이었다. 어떡할까 생각하다가 일단 민가를 찾아 옷을 구해입기로 했다. 남해바다라고는 하나 밤바다는 너무 추웠다.  게다가 자신은 수영을 하여 물에 젖지 않았는가?  상체를 숙이고 조심조심 직포의 마을 있는 곳으로 향하던 중 어두운 길가에 국군의 시체  2구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포로가 된 후 사살당했는지 양손이 뒤로 묶여있었다.김씨가 주변을 살피다가 K-2소총과 탄창을 주워 탄띠에 가득 채웠다.  팬티 차림에 탄띠를 매고 총을 든 자신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문득 시체를 돌아보고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니기미, 나가 왜 미안하다냐? 살아서? 나도 싸울만큼 싸왔다고...'

  길 저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잽싸게 수풀 속으로 숨었다.잠시 후 어둠 속에서 중국 해병대원들의 후퇴하는 행렬이 보였다.  가시가 맨살을 찔렀다.

  '나가 느그들을 기냥 보내믄 사람이 아니지 이~~ '

  중국군 1개 분대가 김씨가 숨어있는 숲을 지나갔다.김씨가 살짝 길로 내려와서 수류탄 2개의 안전핀을 벗기고 하나씩 중국군을 향해 높이 던졌다.하나는 땅에서, 하나는 공중에서 폭발했다. 발포를 하려고 했으나 이미 저항하는 중국군은 없었다.  길 한쪽에서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김씨가 부상당한 중국군을 발견하고 쏠까 말까 망서렸다.  마음 속에서 방씨와 강 일병이 쏘라고 채근했다.김씨는 차마 쏘지 못하고 숲으로 다시 들어갔다. 바닥의 돌이 발을 찔렀다.

  이젠 어떡할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총소리가 멈춘 이 섬은 전쟁터 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달이 중천에 떠올라 있었다.  풀을 뜯어 자리를 만들고 차분히 앉아서 생각했다. 이 섬엔 국군도 없고 돌산도까지 헤엄쳐 가기는 너무 멀었다.  할 수 없이 그냥 잠이나 자기로 했다. 으실으실 몸이 떨렸는데 섬 모기들이 살냄새를 맡고 몰려들었다.  남해안 섬모기는 12월까지 활동하는 놈들이다.  두 개의 섬에서 싸웠으면서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는 자면서 모기에게 피를 빨리고 있었다. 그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1999. 11. 19  07:00  동지나해, 제주도 남방 80 km

  짙푸른 동지나해를 헤치며 함대가 조용히 북상하고 있었다. 러시아식의 대형 전투항모 1척과, 보다 소형이지만 항모라고 부를 수 있는 미국식 강습상륙함 1척, 그리고 최신형 순양함과 프리깃함들, 양륙함, 기타 지원함으로 구성된 이 군함들의 마스트에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푸른색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국기가 아닌 반전전사 그룹 피스의 깃발이었다. 평화를 사랑하며 2차대전 때문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일단의 지식인 그룹에서 출발한 반전그룹 피스는,  어느덧 군대를 보유할 정도로 세력을 신장하여 국가들간의 전쟁에 간섭하려는 것이다.

  상륙함 갑판에 나온 병사들은 가지각색의 인종으로 구성되었다. 인종전시장을 방불케하는 이들의 구성은 과연 언어소통이 될까 걱정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들은 피스 소속의 국제지원병과 용병들이었다. 국제지원병들은  세계평화에 대한 관심이 있을 정도의 지성인들이라 외국어에 능숙했으며, 용병들은 어떠한 언어에도 잘 적응했다. 네팔 출신의 구르카용병들도 그들의 직업상 당연히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모국에서의 엘리트일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도 프로였다.

  네팔 국민은 네와르족, 구릉족, 마가르족과 히말라야 등반에서 뺄 수 없는 존재인 셰르파족으로 구성되어있다. 현재의 샤하왕조는 인도의 크샤트리아(무사계급) 출신이며 구릉족이다. 유명한 구르카용병은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협력했던 구릉족이 주축이 된 용감한 전사들이다. 네팔에 구르카족이라는 부족은 없으며, 단지 구릉족의 전사들이 중심이된 용병이 바로 구르카용병이다.

  2차 대전 중 이태리 전선에서의 구르카 용병들은 정말 용감하게 싸웠다.  총알이 떨어지자 공격해오는 독일군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끝까지 싸웠다. 이들에게 전장은 신이 부여해주신 직장이었으며 나중에 용병이 될 후세들의 보다 나은 작업환경을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인도의 시크교도들이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것으로 유명하다면 구르카 용병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군인들로 이름이 났다. 구르카용병들은 산업이 낙후한 네팔에서는 농업과 관광산업에 이어서 제 3의 외화 수입원이 되고 있다. 홍콩정청의 주요 시설 경비에는 이들 구르카 용병을 썼다.

  함대는 빠른 속도로 북진하고 있었다. 이들의 유도는 2기의 조기경계 경보기가 맡았고, 초계기와 대잠헬기들이 바다속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여 저공비행하고 있었다.

  1999. 11. 18  16:05 (워싱턴 시각)  미국 워싱턴, 호텔 플라자

  오후가 되자 호텔 플라자 1층에 있는 컨셉션룸은  각국의 보도진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결코 과장하는 법이 없던 그린피스가 웬일로 중대선언을 한다고 통보해서 각국 특파원들은 그린피스가 이번 한중전쟁에 관련하여 어떤 깜짝 놀랄만한 시위를 하지 않을까 예측되었다.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한중전쟁은 하나의 재미있는 게임에 불과했고 여기에 환경단체의 시위까지 가세한다면 아주 훌륭한 볼거리를 시청자들에게 줄 것 같아서 이번 기자회견에 대한 관심이 컸다.

  시간이 되자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나타났다. 그린피스 의장인 프라타 야콥손이 먼저 간단히 인사를 했는데 그는 바로 반전전사 그룹 PEACE의 로스엔젤리스 회의 때 모습을 보인 쏘르였다.  쏘르는 한중전쟁이 불러올 환경재앙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며  중국이 한국에 대한 침략을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연설을 마치자 그는 의자에 앉아있던 단단한 체구의 중년 신사를 소개했다.

  "이 분은 저희 그린피스의 상급단체인 PEACE의 의장이신 미스터 카를 입니다. 이번 한중전쟁에 연합군으로 참전하고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여러분을 모신 것입니다. 미스터 카를!"

  기자들이 웅성거렸다.국제민간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다른 단체의 하부조직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고 PEACE라는 조직은 들어 보지도 못한 단체였다.  또한, 이들이 중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다는 것도 전혀 예상 밖이었다.

  "여러분..."

  카를이 보도진들의 흥분을 가라않히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고 보도진들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ENG의 조명이 비치고, 이미 어떤 기자는 휴대전화로 본사에 특종을 송고하고 있었다. 유선방송인 CNN은 즉시 생방송을 개시했다. 카를이 묵묵히 준비된 원고를 읽어나갔다.

  "우리 반전전사 그룹 PEACE는 오늘부터 침략군 중국에 대항해 한국과 연합하여 전쟁을 수행키로 하였습니다.이를 위해 한국에 전투병력을 급파하였고, 해군과 공군도 한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카메라의 불빛이 연이어 터지자 잠시 말을 멈췄다가 안경을 고쳐쓰고 계속 읽어나갔다.

  "이들은 의용병과 일부 용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세계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앞으로의 계속된 중국의 침략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참전이 이루어진 것을  무척 슬프게 생각합니다. 이만 발표를 마칩니다."

  카를이 발표를 마치자 기자들이 질문공세를 퍼부어대기 시작했고, 일부는 특별방송이나 호외를 준비하기 위해 본사에 연락하여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카를께 질문입니다. 이 조직은 언제 생겼죠? 인적 구성은?"

  "병력수는? 무장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한국군에 배속되어 작전할 계획인가요?"

  "NGO(Non-Government Organization : 비정부기구)가 국가간의 전쟁에 개입해도 됩니까?"

  "혹시 동지나해에 있는 소속 미확인 함대가 피스의 함대입니까?"

  "미국은 중국에 대규모로 무기를 판매하고 있는데, 혹시 미국과 충돌하지 않을까요?"

  기자들이 카를에게 몰려와 질문공세를 퍼붓자 카를이 딱 한 마디만으로 답변을 대신하고 회견장을 떠났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여러분의 직업이고,이 비밀을 지키는 것이 저의 책임입니다. 이만, 안녕히!"

  "잠깐만요.  피스에서 돕더라도 한국은 결국 중국에게 점령되지 않을까요?"

  당돌한 여기자의 질문에 카를이 멈춰서서 그 여기자를 보았다. CNN의 유명한 흑인 민완기자 캐럴 골드버그였다.금발의 흑진주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름다운 금발과 멋진 흑갈색의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다.  그녀는 미모보다는 능력으로 방송계에서 살아남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아가씨는 어쩔 수 없이 강간당할 위기에서는 저항을 포기하오? 끝까지 항거해야 하지 않겠소? 내가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봤다 칩시다. 그럼 나는 강간범이 무서워 아가씨를 버리고 도망가야 옳겠소? "

  여기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카를이 다른 기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사무실로 돌아가 세계전도를 펴서 중국이 한국을 점령할 경우 세계지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해 보시오.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오."

  1999. 11. 19  07:20  남지나해, 남사군도 근해

  북반구는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적도 부근인 이곳은 아직도 여름이었다. 아니, 남지나해는 상하(常夏)의 바다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순항하는 중국해군의 지앙후이급 프리깃함 안슐함은 남지나해를 통해 북진하는 상선과 유조선들을 임검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어제 밤에는 정선명령을 무시하고 도주하던 한국상선 한척에 미사일을 발사하여 격침시켰다.한국으로 향하는 상선이나 유조선은 모두 나포와 격침의 대상이 되었다.  이 해역을 지나 한국방향으로 항해하던 선박들은 중국의 위협과 20배로 뛴 전쟁지역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호주 남쪽으로 우회하든지 한국행을 포기해야 했다.

  안슐함의 승무원들은 따분하기는 하지만 위험이 별로 없는 이 임무를 좋아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조선 남부에 상륙작전 중이던 남해함대가 크게 당했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전해들은 승무원들은,  조선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들은 조선의 전황이 더 나빠져 자신들의 함정도 조선전쟁에 투입되지 않기를 바랐다.

  멀리 미국 텍사코사의 거대한 석유시추선이 보였다. 필리핀과 계약했던 석유회사들은 모두 철수하거나 중국과 재계약을 해야했다.중국은 이제 원유수출국 중의 하나가 되었다. 최근 남사군도 곳곳에서 유징이 발견되어 다국적 삭유회사들의 중국방문이 잦아지고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었다.

  안슐함에서 갑자기 비상사이렌이 울렸다. 함이 속력을 내고 우측으로 급선회하면서 6기의 중국제 2연장 37밀리 대공포가 허공으로 불을 뿜었다.  수심이 얕은 이 해역에서 좌초될 걱정은 접어둔 채 전투속도로 내달렸다. 함이 순식간에 섬광에 쌓인 채 폭발했다.함교부분이 완전히 날아간 이 1700톤급 프리깃함은 불에 타며 서서히 함수부터 침몰했다. 주변 해상에는 어떠한 배도 보이지 않았는데 안슐함이 갑작스런 미사일공격을 받고 침몰한 것이다.

  침몰하는 프리깃함의 북쪽 35km 바다 속에  한 척의 잠수함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중국의 한국 해상 봉쇄에 맞서 반전전사 그룹 '피스' 가 역으로 중국 해상 봉쇄에 나선 것이다.

  1999. 11. 19  07:40  제주시, 중국 인민해방군 제 5해병사 사령부

  "레이더 기지에서 보고입니다. 제주도 남방 53 km 지점에 정체불명의 선단 계속 북상 중! 침로는 서귀포이며 함대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통신원이 보고하자 사단장인 톈 대좌가 의아해 했다.

  "어느 나라 함대야? 규모는?"

  "모르겠습니다.  한라산의 레이더로는 파악이 힘들다고 합니다. 모두 15척의 대형 선박이 나타났습니다. 초계기를 날려 보시는 것이..."

  사단장이 툴툴거렸다. 조선반도 남쪽에서 상륙작전을 하던 함대가 전멸당해 제주도를 지켜줄 해군함정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해군 전투기들은 제주도와 조선반도 남쪽 사이의 바다  상공에서 치열한 공중전 중이었다.

  '남중국해의 일부라고 하지...'

  사단장이 한반도 남해의 국제적 명칭에 대해 생각했다.  조금 전에는 F-16 전투기 한 대가 중국의 대공망을 뚫고 날아와  중국전투기들이 출격 채비 중인 제주공항의 활주로에 마인릿(ISCB-1 MINELET)폭탄을 투하하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뒤늦게 공항 수비대의 대공미사일이 발사되어 F-16은 바다로 추락했지만,  활주로 두 개가 못쓰게 되고 전투기 3기가 파괴되었다. 지금도 활주로에는 1분에 하나의 비율로 소형 자폭탄이 폭발하고 있어서 복구에 나선 공병대는 활주로에 접근도 못했다.

  "조선에는 예비함대가 없으니 미국이나 일본함대겠지. 아마 돌아갈거야. 그리고 초계기는 지금 바빠!"

  사단장이 미국은 이 전쟁에서 우호적인 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일본은 이 상황에서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상부에서는 일본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으나 전세가 상당한 정도까지 기울지 않으면 일본이 절대 개입하지 않으리라고 정보분석을 했고 사단장도 이를 믿고 있었다.

  사단장은 초계기가 보내온 한국 남해함대의 위치를  상황판과 대조하며, 한중간의 공중전 상황도 관심있게 보고 있었다. 조선의 남해함대는 중국의 공군이 무서워 제주도에 접근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투기는 문제였다. 방금 또 한 대의 수호이가 조기경보기의 지원을 받는 한국공군의 AMRAAM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이 상황에서 초계기를 남쪽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조기경보기가 없는 지금 초계기는 제주도를 지키고 있는 제 5해병사에 있어서 목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1999. 11. 19  07:45  남지나해, 제주도 남방 50 km

  "출격!"

  피스함대 항모의 함교에서  아침해를 바라보며 거친 구렛나루에 터번을 두른 시크교의 전사 싱이 외쳤다. 중국의 한국침공을 미리 예상하여 남지나 해상의 무인도 사이에 숨어 있던  반전전사 그룹 피스의 함대는 급거 수송기편으로 날아온 싱을 사령관으로 맞아 한반도를 향해 북진중이었다.

  한국의 통일참모본부에 연락관으로 가있던 짜르로부터 한국군이 제주도 수복을 요청해왔다는 사실을 새벽에 알려왔다.중국에 대한 해상봉쇄에 나서기 전에 지상병력의 한반도 상륙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피스함대는 함대와 지상병력이 분리되지 않고 작전을 할 수 있어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제주도 점령전에서의 작전지휘권이 일원화되었고 함대가 보유중인 화력과 병력으로는 제주도를 쉽게 점령할 것으로 보였다.

  싱이 통일참모본부에서 보내온  제주도의 세밀한 지도와 중국군 현황을 다시 검토했다. 제주도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해병대 1개 사단병력이 주둔중이었으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전투기들이었다.제주공항에 있는 1개 연대의 전투기뿐 아니라 상하이에 기지를 둔 해군항공대의 전투기들이 날마다 한반도 남쪽 지방을 폭격하고 있었다.

  여천의 한국비료 공장뿐 아니라 옥포의 대우조선소도 당했다. 보병전투차와 대공포차를 생산하는 광주의 아시아자동차 공장과 K-1전차를 생산하는 창원의 현대중공업 공장이 중국 전투기들의 폭격에 호되게 당해서 전차와 보병전투차를  빨리 보내달라는 전선으로부터의 빗발치는 수요를 이제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싱이 보기에 장기전으로 가다가는 한국에는 승산이 없어 보였다. 중국에는 아직 무한정의 병력과 장비가 있는 반면 한국군의 전력은 사흘만에 거의 바닥이 난 것이다.특히 해군과 공군의 소모가 심했다. 이들은 장기간의 교육기간이 필요하다는 참모의 설명이 없더라도 한국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문제는 제주도였다. 중국 산둥반도로부터 출격하는 전투기들은  항속거리의 제한 때문에 한반도에 사실상의 위협이 되지 못했으나 제주도에서 출격하는 전투기들은 달랐다.그리고 상하이쪽에서 출격한 중국 해군소속의 공격기들은 제주도를 중간 기착지로 삼아 재급유한후 한반도 남부를 폭격했다.  그러나 한국군은 97년의 미군철수 후 해병대의 수송수단이 부족해 제주도 상륙작전은 엄두도 못냈다.  민간인 배들을 징발할 수 있었으나 속도가 느린 배들로 상륙작전을 펼치다가는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어 통일참모본부에서도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이 때 피스가 나선 것이다.

  항모의 스키점프대를 박차고 첫번째 전투기가 이륙했다.  7만톤급 러시아제 항모에서 미그-29를 함재형으로 개량한 러시아제 전투기가 이륙한 것이다. 좌측의 경사갑판에서도 두번째 전투기가 잇달아 날았다. 두개의 비행갑판에서 모두 24기의 미그전투기가 이륙한 후 미국제 F/A-18 편대가 이륙하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토네이도 전폭기 편대가 이륙했다.

  러시아에서 본격항모 제 3호로서 제작되었으나  경제사정상 취역하지 못했던 이 불운한 항공모함은 다국적인들의 손에 넘어가 다국적의 전투기를 이륙시키고 있었다.통상동력의 쿠즈네초프급과 달리 이 항모는 러시아 최초의 본격적인 원자력항모였으며, 기존의 4만 5천톤급이 아니라 진짜 '본격 항모'라고 부를만한 7만톤급의 대형함이었다.러시아의 항모 건조 사상에 맞게 이 항모도 자체무장은 대단했다. 함대함, 함대공, 대잠로켓 등, 현대 해상전에서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무기가 탑재되어 있었다.

  뒤따르던 강습양륙함에서 20여기의 시 헤리어 전투기를 날렸다. 선두의 미그기가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발사되는 레이더 전파를 잡아 대(對) 레이더미사일(ARM)을 날렸다.

  11. 19  07:50  제주시, 중국 제 5해병사 사령부

  "남쪽에서 미사일이 날아옵니다! 레이더 파괴용 미사일입니다.레이더는 즉시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제주도 40 km 남쪽에 전투기 70여기입니다!"

  통신병이 백록담 정상의 레이더기지로부터의 급전을 받아 사단장에게 보고했다. 사단장의 얼굴이 노래졌다.

  "그럴리가... 조선에 또다른 함대가? 그리고 항모가? 설마, 그럴리가 없어!"

  "레이더 기지가 파괴됐습니다."

  통신병이 급박하게 보고했다.  사단장은 한국공군과 공중전을 벌이고 있는 전투기 편대를 남쪽으로 돌릴까 고민했다. 즉시 상하이에 있는 해군 항공대에 지원해달라는 급전을 띄운 다음,  공항에 남아있는 전투기들을 모두 출격시켰다. 하나 밖에 없는 활주로에서 전투기를 모두 발진시키는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광주와 여수비행장에서 출격한 한국 공군과 대치 중인 1개 대대를 뺀 나머지 제주공항의 중국전투기들이 백록담을 넘어 남쪽을 향했다. 이들은 7시간 전에 여수쪽을 치던 중국함대와 함재기들이  전멸당하자 제주도를 방어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급파된 해군항공대였다.모두 24기의 최신예 수호이-27 전투기들이 남쪽 상공에서 다양한 유형의 전투기편대를 레이더로 포착하고 공격준비를 했다.

  그러나 불행한 중국 전투기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미사일을 먼저 막아야 했다. 서방의 분류번호 AA-12인 러시아제 RVV-AYe 중거리 미사일이 중국전투기들을 향해 날아왔다.사정거리 90km인 이 미사일은 적외선 유도방식의 대공미사일만 탑재하고 있던  중국 전투기들의 사정거리 훨씬 밖에서 날아왔다.  능동형 미사일이 아닌 것을 확인한 중국 조종사들은 일단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하기에 바빴는데 격자형 핀이 달려있고 12.5 G의 고기동까지 가능한  이 미사일을 전투기의 순발력만으로 피할 수 있다는 오해는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것이 가능한 전투기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이 미사일은 능동형 공대공미사일이었다. 관성유도로 적기가 피할 수 없는 거리까지 접근하여  액티브 레이더가 최종 작동하는 AA-12는 같은 러시아에서 만든 수호이-27 전투기들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수호이 전투기들이 채프를 뿌리며 최고속도로 제주도쪽으로 도망갔으나, AA-12미사일은 채프의 효과 한계 주파수인 20기가 헤르츠를 넘는 30기가 헤르츠의 주파수를 발산하며 채프의 구름을 뚫고 전투기를 포착하여 마하 3의 속도로 수호이 전투기들에 명중했다.

  어떤 전투기는 뒤에서 접근하는 미사일을 간신히 피했으나 미익의 20미터 오른쪽에서 18 kg의 탄두가 작렬하여 그 전투기를 찢어발겼다. 마지막 남은 수호이의 조종사는 겁에 질려 미사일에 명중도 하기 전에 스스로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그의 판단은 옳아서 조종석에서 사출한 직후 그의 전투기는 미사일에 명중되어 공중에서 산산조각났다.

  미그-29 전투기들은 수호이 전투기들이 모두 격추되자 북쪽으로 계속 날았다. 백록담을 넘자마자 제주공항이 보였다.  활주로에 전투기는 없고 몇 대의 수송기만 조그맣게 보였다.편대비행에서 벗어난 미그-29 전투기 한 대가 30밀리 기관포를 쏘자 수송기들이 연이어 불길에 쌓여 폭발했다.  이제서야 공습을 알아차린 MT-LB 대공미사일차가 내습하는 전투기를 노렸으나 이 대공차량이 SA-13 Gopher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기도 전에 뒤따라온 F/A-18 전폭기가 클러스터 폭탄을 관제탑 주위에 투하했다. 수 백 개의 자폭탄이 관제탑 주위에 흩어지며 관제탑과 대공차량을 불태웠다. 활주로 주변의 대공포들이 사격을 시작했으나 초저공으로 습격하는 다수의 전투기들은 막지 못했다.

  제주도 북쪽 해상에서 한국 공군기들과 일진일퇴를 하던 중국 전투기들이 초계기로부터 비상연락을 받고 급거 제주공항을 향했다. 후퇴하는 편대를 향해 한국 전투기들이 발사한 여러 발의 AMRAAM (신형 중거리공대공미사일)이 날아왔으나  수호이들이 동시에 급선회하여  전파방해를 실시했다.  마하 4의 AMRAAM은 ECM(전자전) 장비가 월등한 수호이 전투기들을 격추시키지 못하고 공중에서 폭발했다. 이상하게 한국공군의 F-16들이 북쪽으로 돌아갔다.  수호이들이 다시 제주도를 향해 날았다.

  중국 전투기들이 제주공항 상공에 도착했으나 적기는 보이지 않았다. 비행장을 보니 활주로는 멀쩡했지만 관제탑이 날아가 버렸다.수송기 몇 대가 아직도 불에 타고 있었고, 대공미사일 발사기는 하나도 남지 않고 당했다.  초계기에 연락해보니 관제탑과 연락이 안된다는 말 뿐이었다. 편대장이 적기를 수색하기 위해 고도를 높였다.

  갑자기 수호이 편대의 바로 아래 한라산 남쪽으로부터 미그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나타나자마자 적외선으로 유도되는 AA-6 Acrid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이 미사일들은 마하 4.5의 속도로 날아와 수호이 전투기들이 피할 틈도 주지 않았다.어떤 수호이 조종사가 겨우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탄두중량 38kg의 거대한 탄두가 전투기 바로 뒤에서 폭발해 주익이 부러져 추락했다.  이 조종사가 사출기어를 당겼으나 캐노피가 열리지 않았다. 날개를 잃은 전투기는 빙빙 돌며 바다로 추락하고 있었다. 남해의 짙푸른 바다가 조종사의 동공에 점점 확대되었다.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한 미그기들이 몇 대 남지 않은 수호이를 향해 쇄도했다. 임무중량 18톤에 불과한 미그-29 전투기들은 25톤의 수호이보다 근접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게다가 미그기의 조종사들은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용병 조종사들이었다. 중국내전과 동남아침공에서 전투경험을 쌓은 중국의 수호이 조종사들도 그들의 다년간 실전 경험에 바탕을 둔 잔재주에는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폭탄을 투하하고나서 전투기로 변신한 F/A-18 호넷편대까지 근접공중전에 가세했다. 격추 댓수에 따라 보너스를 받는 용병들의 공격은 악랄했다. 먹이를 두고 싸우는 악어처럼 한 대의 중국전투기를 향해 3대의 피스 소속 전투기들이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그렇지 않아도 밀리고 있던 수호이편대는 숫적으로도 압도되어 괴멸되어 갔다.  이제 제주도 상공은 국제용병들의 하늘이 되었다.

  서쪽으로 도망가던 초계기는 한국공군의 F-5 전투기에 나포당해 강제로 목포공항에 유도되었다.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나온 중국 조종사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선의 또다른 함대와 항모의 존재에 대해 2함대 사령부에 보고는 했지만 사령이 믿지주지 않았다. 조선이 의외로 강해 어쩌면 이 전쟁은 오래 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얼마 않있어 중국군은 조선반도를 점령할 것이며 아군이 자신을 석방시켜 주길 기대하며 포로로서는 비교적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1999. 11. 19  08:30  제주도 남제주군

  지상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호넷 편대가 한라산정에 배치된 대공포와 대공미사일 발사기들을 남김없이 쓸어버린 다음, 토네이도가 지상시 설물에 대한 폭격을 시작했다.수직이착륙기인 시 헤리어 전투기들이 30밀리 아덴포로  장갑이 얇은 중국의 T-62 경전차와 T-63 수륙양용 경전차들을 대량으로 살육하기 시작했다.  전차부대 엄호를 위해 날아온 카모프 헬기는 도저히 시 헤리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중국 제 5 해병사는 이제 보병만 남게 되었다.이들을 향해 한국군 패잔병과 예비군들이 달려들었다. 예상 상륙지점인 서귀포로 향하던 중국 군 구원부대는 아귀처럼 악착같이 공격해오는 이들을 맞아 싸우느라 도로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제주도민은 빛나는 투쟁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중국군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서귀포에서는 헬기들의 엄호를 받는 용병들이 상륙전을 개시했다. 헬기강습병들이 서귀항에 교두보를 마련하자 새섬을 지나 카페리터미널에 접안한 양륙함들이 60톤급의 육중한 이스라엘제 메르카바 전차들과, 역시 대형인 이탈리아제 신형 아리아떼 전차들을 하역했다.  전차들은 상륙한 즉시 부두로를 따라 진군해갔다.  이미 중국군이 발사하는 포성은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남국호텔이 있는 중정로에서 총성이 울렸으나 산발적인 전투는 곧 끝나고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은 순식간에 용병들의 손에 떨어졌다.

  서귀포에서 후퇴하는 중국 해병대를  그동안 산속에 숨어있던 제주도 92연대소속의 한국군과 예비군들이 포위했다. 아무리 패전을 경험한 군대라지만 이들의 행위는 너무 잔인했다.포로가 된 중국군을 산 채로 포를 떴다. 전신주에 묶인 채 대검으로 난자당하는 중국군들의 비명과 신음이 제주도의 아침을 가득 메웠다.

  11. 19  08:35  제주도 120 km 남서해상

  아침 햇살이 파도에 눈부시게 반사되기 시작한 아침의 서해바다 위에 작은 유람선이 유유히 잔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한중전쟁의 한복판인 서해상에 이 유람선은 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이 배는 한국 해군에 징발되어 작전 중이었다. 선수의 갑판에는 대형 프리게이트함에서나 볼 수 있는 Mk-48 다연장 시 스패로우 대공미사일 발사기가 있었고,  선교에서는 한국 해군복장을 한 군인들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어젯밤 졸지에 징발당한 이 배의 선주 겸 선장만이 졸린 눈을 꿈뻑였다.

  "왔습니다. 조기경보기로부터 데이터가 옵니다."

  통신병이 대공사관에게 보고했다. 목포 상공에는 한국 공군의 F-5 전투기들에 의해 엄중 호위되고 있는 E-2C 조기경보기가 상하이에서 제주도로 향하는 중국의 전투기들을 레이더로 추적하고 있었다.한국 해군함정들의 대공미사일 시스템의 지위를  신형인 스탠더드 미사일 시스템에 물려준 이 구식 미사일을 유람선에서 발사하면, 조기경보기가 무선지령으로 중국 전투기에 이 미사일들을 유도하는 작전이었다.3번에 걸친 시뮬레이션에서는 성공했으나 실전에서 어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4발의 미사일이 연속 발사되었다. 수평선 멀리 다른 유람선에서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 스패로우 대공미사일은 대공미사일 치고는 아주 낮은 고도로 서쪽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11. 19  08:40  제주도 155 km 남서해상

  상하이에서 출격한 90여기의  F/A-18 전폭기들이 동쪽을 향해 고속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중국 조종사들은 제주도의 해병사단으로부터 긴급 구조요청을 받고 출격하기는 했으나 아직 제주도가 적에 의해 점령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완전한 저공침투비행은 하지 않고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900피트의 고도를 잡아 비행하고 있었다. 상하이 동쪽 상공의 조기경보기는 편대의 진로에 아무 위험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한반도 남서쪽인 목포 상공에 한국군의 조기경보기가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 그러나 진로 중에 한국군 전투기나 전투함의 활동은 없다는 것이 확인되어 전투기들은 전혀 경계를 하지 않고 비행했다.

  선두의 조종사가 해면 위에 이상한 물체들이 고속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저고도로 비행하는 이 물체들을 보자 이것들이 혹시 대함미사일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대공미사일은 당연히 미사일 자체나 발사체인 군함과 전투기에서 레이더파를 발산할 것이고 이 레이더파가 전투기의 미사일 경보체계를 시끄럽게 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대공미사일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육안으로 확인하자는 생각에서 뒤따르는 편대에 무선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 물체 중 하나가 급상승 하더니 자신의 전투기로 다가왔다.  조종사가 급히 선회를 시도했으나 마하 3.5의 시 스패로를 피하기는 너무 가까왔다.

  선도기인 F/A-18이 추락하는 하늘 아래로 시 스패로 미사일들이 서쪽을 향해 날았다. 편대장이 미사일을 본 것은 3 km 전방이었다.

  "대공미사일 경보!"

  편대장이 얼떨결에 편대용 주파수로 경보를 발했다. 미사일의 유형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플레어를 연속 발사하고 기수를 남쪽으로 꺾었다. 그러나 미사일은 사방에서 날아왔다.시 스패로는 AR(active RADAR homing : 능동 레이더 유도)이나 IR(적외선 유도) 방식이 아닌 SAR(반능동 레이더 유도)방식이기 때문에 미사일을 향한 잼(jam-전파방해)이나 플레어는 소용이 없었다.  시 스패로 미사일들이 급상승하며 편대로 파고 들어 폭발했다.  조종사들이 미사일의 유형을 확인하고는 조기경보기를 향해 ECM을 걸었으나 0.1초 단위로 주파수도약을 하며 추격해오는 미사일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편대장은 얼떨떨해졌다. 갑자기 날아온 미사일에 의해 편대의 절반을 잃은 것이다. 틀림없이 해상에는 적함이 없다고 조기경보기가 확인하여 주었다. 그렇다면 미사일은 어디서 날아온 것인가? 바로 앞에서 전투기 한 대가 공중폭발했다.화염에 휩싸인 전투기가 오른쪽으로 추락하는 모습도 보였다. '설마 한국에 잠수함 발사 대공미사일 시스템이 있는 것일까?'

  편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대공미사일을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나라는 러시아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손실기의 숫자를 조기경보기에 보고 한 편대장은 계속 동쪽을 향해 날았다. 갑자기 날아드는 미사일이 무서워 편대를 2만 피트의 고공으로 비행하도록 명령했다. 편대장은 조기경보기를 믿지 않게된 것이다.직접 레이더를 가동시키고 미사일이나 적기를 경계했다.

  편대가 상승하는 중에 또다시 미사일의 대군이 날아왔다. 저공으로부터 솟구치는 미사일들은 위에서 보니 전봇대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는 것처럼 보였다.전투기들이 채프를 하늘 가득 뿌렸으나 미사일은 채프의 구름을 뚫고 올라왔다. 편대장은 평생 처음 겪는 공포를 맛보았다.

  1999. 11. 19  08:50  서울, 신촌

  "야~ 이거 된다."

  "진짜! 근데 머해? 빨리 카피하지."

  "응. 그래그래. 잠깐... "

  "더 좋은거 없을까?"

  신촌의 하숙촌에서 대학생 두 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런 전쟁통에 지방 출신 학생들이 고향에 돌아가거나 군에 입대하지 않고  하숙방에 쳐박혀 있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머드 좀비(통신게임 사용 중독자)들도 이때만은 정신을 차리고 자기 살 길 찾느라 바쁜 판이었는데 이들은 이틀 밤을 새가며 컴퓨터로 찾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결실을 본 것이다.

  "음... 접속만 어렵지 중국군 중앙 컴도 별거 아니네?"

  "일단 카피나 빨리 해. 아직도 보안시스템 작동 안하지?  에구... 넘 꼬졌당~ 추적도 안하네?  잼없게."

  한 학생이 마우스를 누르자 파일이 계속 복사됐다.  화면에는 중국식 약자가 가득했다. 막강한 64비트 운영체제인 윈도우즈99인 이들의 컴퓨터는 화면에 뜬 파일들을 압축하여 순식간에 복사했다.

  "히히~  우린 지금 중국 공산당 주석 아이디로 들어간거니까 누가 의심하겠어? 의심한 놈이 더 의심받겠다. 글고 유니콘은 접속중에는 추적을 안받자나. 나중에 추적받는 경우도 드물고..."

  "히~ 글치... 추적당하는 재미로 딴 소프트만 쓰다 보니까... 잉? 근데 이건 또 머야? 또 다른 패스워드가 필요한데? 한자로 1급기밀사항이 라고 되어있군."

  "음냐... 그래봐야 이 유니콘2를 한번 더 가동시키면.. 이번엔 몇 분이나 걸릴까?  자, 그동안 라면이나 하나씩 뽀개지 모~ "

  "잉? 먹을 새가 어딨어? 벌써 나왔는데..."

  "에구... 정말 잼없다. 너무 쉽네."

  "어? 저건 뭐야. 에구...  중국식 한자 약자는 넘 어려버. 북조선... 안주.. 점령... 뭐.. 보고."

  "뭐? 안주가 점령됐어? 테레비에서 보니까 국군과 인민군이 연합해서 안주에서 철통같이 중국군을 막고 있다던데?  설마 점령됐나?"

  "안주가 어디야?"

  "어휴~ 뉴스 좀 봐라. 청천강 바로 남쪽에 있는 북한 도시야.이게 무너지면 평양까지 바로라든데... 쩝. 졌나부다~ 잉~ 우리도 군대 끌려가게 생겼다~~ "

  "에구... 어쨋든 이 놈도 카피하고...  저기, 편제라고 되어 있는 것도..."

  "그래 머... 우리 컴 용량은 크니까.  음... 카피해도 기록은 안되는군. 걱정없어. 나중에도 얼마든지 이 아이디로 접속된다구."

  "됐다. 그럼 이걸 한 번 개성으로 날려보자구.  통일참모본부가 거기 있지?"

  "그려... 일단 몇 개 더 카피하고... 근데 전화번호를 어서 찾아?"

  "전화번호부에 있겠지.  일단 인터넷 나와서 ISDN으로 찾아봐.그러구나서 접속하지 머....."

  이들은 국민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다뤄서 이제 웬만한 프로그램은 꿰차고 있었고 가끔 재미로 해킹을 하는 정도의 수준에 올랐다.이들은 컴퓨터 해킹의 천재들은 아니지만 웬만한 네트웍에서는 충분히 기량을 발휘하는 중급 해커들이었는데 남의 자료를 삭제한다든지 하는 피해를 주는 크래킹은 절대 삼가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하자  이들은 어떻게든 중국의 전산망에 침입하여 나라지키기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구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른 수많은 기라성같은 해커들도  중국군의 전산망에 침입하려 했으나 중국군이 외국에 대해 전산망을 폐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각 통신망에서는 중국 컴퓨터 해킹을 목표로 정보교환이 활발했으나 누구도 열쇠를 찾지 못했는데, 이들 두 대학생들이 최초로 중국군 전산망을 해킹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이들이 해킹을 한 툴은 유니콘 2라는 일종의 바이러스 컴퓨터였다.접속한 통신망의 호스트에 가상의 미니어처 컴퓨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다시 인터넷의 서비스인  월드와이드 웹과 다른 몇 개의 통신망을 통해 해킹 대상이 되는 컴퓨터에 침입하는 장치였다.  통신망 중간중간의 또 다른 슈퍼컴퓨터에 가상 컴퓨터를 만들어가며 해킹 대상 컴퓨터에 접근하면, 역추적해도 중간의 슈퍼컴퓨터만 알 수 있고 처음 접속한 컴퓨터를 찾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추적당할 염려는 없었다. 그리고 전의 유니콘 1과는 달리 호스트 컴퓨터의 바이러스 백신을 파괴하지도 않기 때문에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폐쇄됐는데?"

  "전화번호는 맞는데...쩝... 전시라서 그러나부다.  그럼 이 자료 어떡하지?"

  그동안 공개되었던 통일참모본부와 국방부, 정보사단 등 국방관계 기관들이 전쟁이 나면서 기밀자료유출을 우려하여 국내외 통신망으로부터의 접속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 기관들은 중국 해커들의 침입을 막느라 바빴다.

  "그럼 이걸 들고가야 되겠네...쩝"

  "으으으.... 종이값만 해도 엄청 나겠다."

  "타이틀로 들고 가면 되지 머... 근데 거기에 컴이 있을까? 있더라도 시디롬은 없을텐데..."

  "크... 그럼 근처에서 디스켓으로 카피해야지 머...  문방구라도..."

  "으... 설마 아무리 군대가 후졌다고 해도 문방구 컴보다 후지랴?"

  "냠...  군바리들이 워낙 무식해서 재작년에 386을 대량 구입한거 몰라? 그 꼬진걸 칼라라고 바가지 쓰고...쩝"

  "잉? 이건 386에선 안돌아가는데..."

  "할 수 없지 머... 통일참모본부까지 해킹할 수는 없고... 근데 이런 판국에 개성 가는 차가 있으려나..."

  "으윽! 통일참모본부까지 가게? 그냥 국방부나 육군본부에 가면 되잖아?"

  "아니...작전권은 다 통일참모본부에 있대, 임시지만... 그리구 지금 북한지역에서 전투중이니 인민군 출신 군인들이 더 급하잖아?  직접 들고 가자고."

  "할 수 없지. 그럼 광모형 차 빌려서 가지 머..."

  "빌려 줄려나? 사정 이야기 해 보고..."

  11. 19  11:10  개성

  중국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통일로 이곳저곳에 새로운 군 검문소가 새로 많이 생겼다.개전 첫날의 테러를 막지 못한데 대한 반성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중국군 특수부대의 이렇다할만한 활동은 없었다. 한국군과 경찰, 안기부에서 이들을 철저히 추적하여 체포했기 때문이다. 중국 특수부대는 완전 소멸한 것으로 보였다.

  군인이나 민간인 모두들 잔뜩 긴장한 모습들이었는데 완전 군장을 한 수많은 군인들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수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학생들이 걱정했다. 그러나 곧 자신들의 차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문산시부터는 북쪽으로 이동하는  군 차량들 때문에 한참 기다렸다가 갈 수 있었다.이들이 개성에 도착한 것은 서울에서 출발한지 두 시간만이었다.

  통일참모본부는 개성 북쪽 외곽의 산 아래에 있었다.  남쪽으로는 송악산이 보였다. 임시 기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재의 역할에 비해 규모가 너무 작아보였다. 입구쪽에 전차 몇대가 있었고 총을 든 군인들이 바리케이드 뒤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국군과 인민군들이 함께 있었는데 대학생들이 차를 길 옆에 세우고, 국군 중에서도 대학교를 다니다 온 듯한 군인을 찾아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들은 서울에서 왔는데요."

  "무슨 일입니까? 여긴 민간인출입 통제지역입니다."

  김 준태가 그 안경쓴 군인을 보니 인텔리같아 보였다.과연 말투도 진짜 군인같지는 않았으나 완전무장한 전투복에,어깨에는 육군 상병 계급장이 붙어서인지 의젓해 보였다.

  "저희가 중국군 컴퓨터에 침입했는데... 혹시 최 상병님 해킹이 뭔지 아세요?"

  김 준태가 그 군인의 명찰을 보며 물어보니  최 상병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중국군 컴퓨터를 해킹했다고요? 전시라 국제통신을 외국에 대해 폐쇄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했어요?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의 유명한 해커들이 시도했지만 안된다고 들었는데..."

  김 준태와 구 성회는 서로 얼굴을 보더니 미소 지었다. 이 군인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눴는데 최 상병은 울산공대 화공과 3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고 했다.

  "형, 그럼 우리를 높은 사람에게 소개시켜 줘요. 컴퓨터를 아는 사람이면 더 좋고요."

  서로 인사를 하고 나서 구 성회가 부탁하자 최 상병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군대도 전산화가 많이 됐지만 높은 사람들은 워낙 꼴통이거든. 도대체 무슨 말이 통해야지... 참모본부에 내가 아는 사람도 없고..., 참! 우리 소대장님이 컴퓨터를 좀 하고 참모들이 누군지는 아니까 잠깐 기다려 봐요."

  최 상병이 통제소 문 밖에서 안쪽에 앉아 있는 장교와 한참 이야기하더니 두 대학생을 손짓으로 불렀다. 대학생들이 뛰어가 통제소 안을 들여다 보며 얘기를 시작했다.

  "정말입니까? 중국군 컴퓨터를 해킹하다니... 접속은 어떻게 했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자료를 뽑을 수 있습니까?"

  대학생들이 그 말을 듣고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의외로 군인들도 컴퓨터 문맹은 아니었다. 하지만 옆에 앉은 나이든 인민군 하사관은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의 아이디와 비번을 압니다. 모든 자료를 뽑을 수 있어요.  저희들을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데려가 주시면 바로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소대장이 그들의 진심을 믿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기다려 보십시요. 제가 양 중장님께 전화해보죠."

  "예. 빨리요. 중국군이 청천강 방어선을 뚫었다죠?  안주에서 우리군에 큰 피해가 났더군요."

  구 성회의 말을 듣더니 소대장이 깜짝 놀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통일참모본부의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로 미루어 그런 낌새를 받았을 뿐인 군사기밀이었다. 소대장이 참모본부 회의실로 사용중인 상황실로 전화를 하여 양 중장을 찾았다.

  "통일! 정문 통제소의 박 중윕니다."

  소대장이 바짝 긴장하며 통화를 했다. 중위와 중장은 하늘과 땅 차이였던 것이다. 방위 정도 되면 중장에게 경례도 안하지만.. 잠시 통화가 되더니 소대장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양 중장님이 두 분을 모셔 오랍니다. 설명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11. 19  11:20  개성, 통일참모본부 상황실

  "뭔가?"

  양 석민 중장이 짜증나듯 전화기에 대고 외쳤다.  청천강에서의 패배로 전군이 후퇴 위기에 몰리고 중국군 장갑집단군들이 전선을 돌파하여 남진하고 있는 판에 정문 경비실에서의 전화는 짜증나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말이 이어지고는 양 중장이 묘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그의 얼굴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래? 그럼 신원조회 한 다음 바로 들여보내."

  주변의 참모들이 궁금해서 물으니 양 중장이 미소를 지었다.

  "직접 한 번 들어보시지요. 서울에서 대학생 두 명이 왔는데 중국 인민해방군의 주 컴퓨터에 침입했다는군요."

  인민군 출신 참모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의아해했고 국군출신 참모들은 호기심에 가득차 있었다. 이윽고 젊은 학생 두 명이 경비실  박 중위의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왔는데 뭇 장성들을 보곤 무척 위축된 듯한 표정이었다.

  "자네들은 누군가?"

  양 중장이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로 물었지만  학생들은 주눅이 들어 얼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저희들은 연세대학교 학생들입니다만... 저는 신문방송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구 성회이고 이 친구는 금속공학과 4학년 김 준태입니다."

  재수생은 아무래도 티를 낸다는 생각이 들어  구 성회가 약간 쑥스러워졌다.

  "그래, 자네들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주 컴퓨터에 침입했다고? 그러면 거기 컴퓨터는 어떻던가? 자료를 빼낼 수 있나? 어떤게 있던가? 그리고 컴퓨터 전문가들도 침입 못했다는데 어떻게 들어갔지?"

  양 중장이 속사포처럼 질문을 퍼부었다. 정보사단의 내노라는 컴퓨터 전문가들도 침입 못한 중국군 전산망이었다.  전시가 되자 중국의 모든 컴퓨터들이 국제통신망과의 연락을 끊어서 침투해 볼 기회도 없다는 것이 정보사단의 보고였는데 어떻게 침입했는지 궁금했다. 한국과의 전쟁을 시작하자마자 중국은 중국본토 뿐만 아니라 홍콩과 대만까지 국제통신망을 폐쇄하여 세계 경제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각지에 금융공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그리고 각국 주재 대사관과 국제기구와의 통신망도 끊었다.  중국은 이런 손해를 감수하고도 통신망을 차단할 정도로 컴퓨터 보안에 철저했다.

  "저희들은 최근에 중국에 항복한 베트남의 행정컴퓨터망을 통해 침입했습니다. 중국은 기밀유출을 우려해 국제전산망과 연결되는 모든 컴퓨터망을 차단했습니다만, 베트남 주둔군을 빼먹었더군요."

  이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국내 컴퓨터통신망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미국과 일본을 거쳐  베트남에 주재하는 일본 상사의 한 현지공장에 침입한 후 베트남 행정전산망에 들어가고, 다시 중국군 점령부대의 한 군부대 컴퓨터를 통해 중국군 컴퓨터망에 침입했다고 알려주었다.그러나 어려운 이야기는 대충 빼고 넘어갔다.

  "베트남의 그 중국군 부대 컴퓨터를 관리하는 자는 사실 컴퓨터 해킹에 대해 거의 초심자입니다. 물론 프로그래머, 또는 전산망 관리자로서는 훌륭하지만 보안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인민군 참모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패배 후 전선유지에 골몰하던 정말 중차대한 회의를 미루고 진지하게 듣고 있는 양 중장의 표정을 살피며 궁금해했다.

  "어쨋든 저희들은 중국군의 전산망에 침입했고  정보를 빼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청천강 전역에서의  아군 피해까지 기록되었더군요."

  참모들이 깜짝 놀랐다. 아군의 가장 큰 패배로서 국내 및 외국언론에는 한마디도 노출이 안된 것인데 어떻게  이 대학생들이 안단 말인가? 해외언론도 중국군 커뮤니케의 불확실한 기사를 받아 단지 한국군이 패해서 후퇴했을거라는 추측기사 밖에 쓴 것이 없었다. 미국 언론의 경우 비교적 자신있게 한국군의 패배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물론 이는 CIA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한 보도였다.  그리고 CIA도 위성 정보를 분석하여 몇 시간 전에야 알아낸 극비정보였다. 다른 대학생이 탁자 중앙의 컴퓨터를 살피더니 시디 롬을 넣고 자료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인민군 제 4군단 섬멸, 인민군 제 2군단 및 820 기계화군단 대파 및 후퇴, 국군 제 12사단 패주.. 사살 3만 2천 7백 5십 6명, 포로 1만 3천 8백 12명. 전차 247대 및 장갑차 453대 파괴 또는 노획.전투기 27대 격추, 맞습니까? "

  참모들이 벌떡 일어났다.전사자와 행방불명자의 수가 약간 틀릴뿐 거의 정확했다. 그렇다면 행방불명자의 일부는 적의 포로가 되거나 산 속으로 도망쳐 아직 살아있는 셈이다. 그런데 전사 3만 2천이라면 6.25때 55일간의 치열한 낙동강 전투에서 희생된 국군 전사자 3만 4천 명과 비슷한 숫자였으며, 그 정도로 인민군의 피해는 컸다. 김 준태가 계속 읽어 내려갔다.

  "중국군 전사 1만 8천 287명, 부상 3만 천 67명, 전차 171대 파괴,장갑차량 216대 파괴 및 피해. 전투기 21대와 헬기 54대 손실."

  "어떻게 그걸... 그렇다면 틀림없군. 그럼 혹시 중국군의 작전계획도 있나?"

  이 종식 차수가 구경만 하다가 놀라 물었다. 사령관의 입장에서는 적의 전략이 가장 궁금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구 성회가 자료를 검색하더니 읽기 시작했다.

  "인민해방군 제 16병단에 대한 중앙군사위의 명령.16병단 소속 제 13 장갑집단군은 경의선을 따라  파괴된 철로를 복구하며 평양으로 직진하고 제 15장갑집단군은 조선반도 서해안을 따라 강서군과 용강군을 점령하라. 제 16장갑집단군은 순천으로 우회하여 적의 배후를 물리친 후 평양을 공격한다. 각 장갑집단군은 2개의 일반 집단군과 동행한다. 귀 부대의 뒤에서는  막강한 인민해방군과 10억 인민이 귀 부대를 지원할 것이다. 이상,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이... 누구인데 못읽겠습니다."

  인민군 해군상장이 자신의 단말기에 나온 중국식 약자를 보더니 리루이환이라고 말해주었다. 컴퓨터와 연결된 각자의 단말기의 내용을 읽은 참모들이 기가 막혀서 입을 열지 못했다.  중국군 부대들의 이동방향과 공격 예상 방향에 대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CD-ROM 타이틀 한 장이 현재의 상황을 모두 이야기하고 있었다.

  "양 중장, 적 부대의 상황을 다시 설명하시오."

  "화면 준비"

  이 차수의 명령에  양 중장이 배석한 참모부 소속 초급장교들에게 명령했다.  화면이 평안남도 일대의 지도를 비추고 그곳에는 붉은 화살표가 남진하고 있었다.

  "우측에 순천을 향하는 화살표의 규모가 잘못되었습니다. 1개 여단이 아니고 집단군입니다.즉시 현지 사령관을 호출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순천의 우리 병력으로는 막지 못합니다. 공중지원이나 병력지원을..."

  참모들이 바삐 현지 사령관들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평양뿐만 아니라 순천까지 위험하고, 이렇게 되면 함경남북도에서 싸우고 있는 남북한의 연합군이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적의 병력 상황은 저희가..."

  잠시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서먹서먹하게 서 있던 대학생들이 말하자 이들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잠시 전화선 좀 빌릴까요?"

  이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어준 참모들이 고마와서인지 자신을 내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주기로 마음 먹었다.  하사관으로부터 전화선을 받아들고는 자신들의 랩탑 컴퓨터에 연결하고 이를 다시 회의실의 대형 모니터와 연결했다. 참모들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 쳐다 보았다.

  "중국군 컴퓨터에 있는 내용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혹시 중국어 전문가가 계시면 더 좋은데요. 중국식 약자가 많아서..."

  구 성회가 랩탑컴퓨터를 키자 대형화면이 컴퓨터 화상의 내용과 같은 내용을 보여주었다. 참모들이 서로 얼굴을 보더니 이야기했다.

  "우리 인민군들은 다들 중국어를 아니 걱정말게. 혹시 자네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우리 부하들이  점검해봐도 되겠나?  물론 원본은 돌려 주겠네."

  참모들이 이들에게 굉장한 호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이들 정도면 유성의 정보사단보다 훨씬 정확하고 방대한 정보를  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구 성회가 타이틀을 정보 담당 장교에게 주었다.  김 준태는 몇 개의 통신망을 통해 천천히 중국군 중앙컴퓨터망에 접근하고 있었다.

  "자네들 현지 입대하지 않겠나? 우리 참모본부로 말이야."

  양 중장이 제의하자 다른 인민군 장군도 대학생들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인민군에 입대하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이 차수가 그 말을 듣더니 화를 벌컥 내었다.

  "이 마당에 국군이면 어떻고 인민군이면 어떤가? 그리고 구분할 필요가 어디 있나?"

  이 차수가 장군들을 나무란 후 대학생들에게 조용히 물었다.

  "어차피 대학생들에게도 곧 전시 동원령이 내려질텐데...  지금 바로 입대해 주게. 계급은.. 양 중장, 어느 정도 계급까지 줄 수 있소? 소좌, 아니, 소령 정도 줄 수 있겠소?"

  "자네들 컴퓨터 기사 자격증 있나?"

  양중장이 대학생들에게 묻자 대학생들은 없다고 답했다. 해킹 실력과 자격증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는게  이들 대학생들의 평소 생각이었다.

  "차수님, 이들은 자격이 없는 기술전문가이지만 기술하사관으로 특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좀..."

  "무슨 소린가? 소령은 되어야지. 아니면 인민군에서 데려가겠네."

  "하지만 이들은 남한 대학생들이고 우리 군 규정상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장군들이 입대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동안 계급에는 관심이 없는 이 대학생들은 어느새 북경의 중국 인민해방군 중앙컴퓨터 안에 침입하고 있었다.

  "자, 지금 들어왔습니다. 알고 싶은 내용을 말씀해 주십시요. 시간여유는 많으니 하나씩요."

  "그럼 중국군 공군의 이동 배치 상황과 규모를 먼저..."

  "아니, 현재 중국 해군의 작전 계획을.."

  "먼저 지상군 집단군별 위치를 더 자세히..."

  남북의 각군 참모들이 저마다 관심있는 내용을 요구하여 실내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구 성회가 화면을 검색하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을 출발할 때 없었던 화일이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이 강한 구 성회가 화일을 열람했다.

  "제주도가? 제주도를 수복하고 있군요?"

  김 준태가 깜짝 놀라 물었다. 화면에 중국군의 피해가 표시되었다.자그마치 100대가 넘는 중국 전투기들의 피해상황이 표시되어 있었다. 현재 소속을 알 수 없는 항모부대에서  제주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실시하고 있다는 급보도 나왔다.

  "우리나라에 항모가 있었습니까? 메르카바는 이스라엘제 아닙니까?"

  구 성회가 신기한듯 묻자 참모들이 씩 웃었다.

  "아니라네. '피스'라는 반전 전사집단 소속이지.  우리와 연합하기로 했네. 그리고 제주도는 이미 수복했고..."

  이 차수가 나서서 직접 설명했다. 피스에서 파견된 짜르가 씨익 웃었다. 참모들로서는 이제 제주도는 일단 한숨 돌린 눈치였다.이제 북쪽의 위협에만 전념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급박했다.

  "아...  엘빈 토플러의 전쟁과 반전쟁이라는 책에 나온 그 반전 전사요?"

  김 준태가 한국인 장성들 사이에 앉아있는  푸른 눈의 사나이를 보고 한국어로 묻자  짜르가 엘빈 토플러라는  말만 듣고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통역관인 인 한수 중위가 정확한 의미가 아니라며 피스에 대해 대충 설명해 주었다. 양 중장이 서둘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바로 볼 수 있는가? 아니라면 자네들이 찾기 쉬운 정보부터 찾아주게. 참, 이걸 바로 정보사단에 연결해 정보사단에서 분석할 수 있도록 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군님."

  두 대학생이 중국군의 정보를 대량으로 빼내기 시작했다.육해공군 병력배치 현황과 작전계획, 중국이 가지고 있는 아군에 대한 정보,  첩보부대의 비밀사항들, 보급계획 및 일정, 심지어는 참전하고 있는 중국군 사병들의 신상정보까지 빼내었다.

  "중국군 제 16병단 소속 제 13장갑집단군의 현재 위치와 진로는 이렇습니다."

  양 중장이 대학생 해커들이 중국군 컴퓨터에서 빼낸 정보와 항공정보, 그리고 전자전 정찰기가 중국군의 통신을 도청하여 분석한 내용을 종합하여 화면에 표시했다. 제 13장갑집단군은 안주 회전에서도 예비부대로 빼돌린 만큼 아직 대부분의 전력이 남아있었다.

  "이들은 적의 주공입니다. 우리측 정찰기와 전자전기들이 수십차례나 출격했지만 적의 대공미사일과 전투기들의 요격 때문에 접근도 못할 정도로 이들에 대한 공중 보호막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들을 막을 방안을 연구해야됩니다."

  "역시 전차의 최고의 적은 항공기입니다. 우리 공군의 전폭기와 공격 헬기, 그리고 A-10 공격기들을 동원하면 쉽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의 항공우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이건 어렵지요."

  "평야이니까 대규모의 포격이 괜찮을겁니다."

  "땅크에는 땅크가 최고디오."

  이 차수가 묵묵히 듣고 있더니만 엉뚱한 제안을 했다.

  "아까 새벽에 동원하기로 한 저격여단의 대전차대대로 막아보는게 어떻소? "

  이 차수의 말에 인민군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국군참모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아니, 겨우 1개 대대로 어떻게 적을 막습니까? 아무리 대전차대대가 전문 전투집단이지만 적의 규모는 1개 집단군,  즉 우리측 군단 규모를 훨씬 넘습니다. 너무 무리하는거 아닐까요.  괜히 시간낭비할까 두렵습니다."

  국군의 정 지수 대장이 반발하고 나서자, 다른 국군 참모들도 끼어들어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이들의 주장은 아무리 대전차대대가 효율적인 대전차 방어부대라도 적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이들을 영국 기갑사단의 대전차연대처럼 사단규모의 전투에서 전술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어도 집단군을 상대로하는 전략적인 임무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듣고 있던 이 차수가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에게 대전차대대에 대한 브리핑을 시켰다.

  "우리 인민군의 정규전 특수부대인 저격여단에는 몇가지 특수전 대대들이 있습니다. 전투 목적에 따른 병과별로 대대가 구성되어 있는데 부대구성은 시가전 대대, 야간전 대대, 대전차 대대, 산악전 대대 등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들 중 대전차 대대는 대전차 방어가 주목적인 대대로 전차중대,  장갑차 중대, 포병중대, 공병중대, 대전차포중대 및 대공포소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들 모두 대 전차전의 최고 전문가들입니다. 물론 적이 집단군이라는 대규모이긴 하지만 실제로 중국 장갑집단군과 맞부딪힐 경우는 승패를 장담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이들의 능력을 낮춰 잡아도 최소한 3일 정도는 적을 막아낼 수 있을것입니다. 몇 년전만 해도 이들 대전차대대는 개성 전면의  국군 기갑사단에 맞서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는데에 주목해 주십시요."

  "아니, 그러면 인민군은 유사시에 우리 국군 제 1 기갑사단을 대전차 대대에 맡길 생각이었소?"

  정 대장이 비꼬듯 말하자 김 대장도 맞받았다.

  "국군이 북침할 경우 우리 인민군은 대전차대대로 국군 제 1기갑사단을 섬멸시키고 815 기계화군단과 820 기계화군단으로 서울을 점령할 계획이었소. 내 말은, 우리 인민군 부대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이오."

  "그러나 적은 집단군이오.  1개 대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소? 후퇴하는 아군을 엄호할 정도의 시간만 벌어주면 되겠죠.  저는 대전차대대의 투입을 찬성합니다.  전선을 유지할 시간만 좀 더 벌면 좋겠습니다. 후방의 부대가 배치될때까지 아직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국군의 정 대장도 화를 내며 찬성했으나 그는 극히 냉소적이었다.

  1999. 11. 19  11:30  평안북도 선천, 대목산 요새

  "철산시 북방 차련관 일대에서 적 집단군 병력 남하중!"

  "적 집단군 병력 구성시 통과중입니다."

  요새 사령부와 같은 굴을 쓰는 통신실에서 연속 보고했다.  상황판을 담당한 여군들이 무표정하게 적 병력의 규모와 위치를 나타내는 표지를 상황판에 붙이고 있었다. 차 영진 중령은 중앙 모니터에 비친 평안북도 지도만 유심히 보고 있었다.

  "홍 대좌님, 혹시 정주군에도 연대가 있습니까? 박천군은요?"

  차 중령이 조용히 묻자 홍 종규 대좌가 부동자세를 취한 채 대답했다. 홍 대좌에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말렸으나  그로서는 상급자에 대한 당연한 의무였다. 차 중령으로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각 군별로 최소 1개 연대씩 당연히 조직됩네다. 길티만 그쪽 예비연대와는 개전 첫날 이래 무선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네다."

  차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만 중국군의 병력이 계속 한반도에 투입되는 지금,  각 군과의 연계가 없으면 효율적으로 전투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중령은 정주군 및 박천군과의 무선연락망을 구축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들의 전투력으로 보아서 병력의 결집이 이뤄진다면 큰 전력이 될 것같았고 잘하면 전선의 상급부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11. 19  11:40  평안북도 만포진

  중국과 국경을 접한 압록강의 만포를 점령한 중국인민해방군 제 11병단은 자강도 (평안북도의 북동쪽 지역) 강계와 전천을 파죽지세로 점령하고 인민군이 방어하던 희천을 하루 밤낮의 공방전 끝에 점령했다. 희천은 묘향산맥 바로 북쪽에 위치하여 묘향산맥을 넘어 평안남도를 넘보고, 함경남북도와 양강도의  통일한국군을 배면에서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인민군의 저항이 거셌으나, 제공권을 가진 중국 공군의 강력한 지원으로 인민군은 어제 묘향산 방어선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18일부터 방어선을 지키던 인민군의 진지를 넘어 이들은 안주방어선이 뚫려 위기에 몰린 덕천 방면의 방위를 위해 이동했다.

  만포 남쪽의 국도를 따라 중국군 보급부대의 차량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철로는 후퇴하던 인민군들이 파괴하고 떠났지만 국도를 따라 이어진 철로에서는 중국군 공병대가 보수작업을 하기 바빴다.  탄약과 식량, 연료 등의 보급품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남으로 이동해갔다.

  이런 모습을 영어로 bumper to bumper라고 인민군 저격여단 산악전 2대대 3중대의 조 부현 중사가 씨익 웃었다.  조 중사는 해발 637미터의 후고산봉 기슭에서 부하들과 함께  중국군 수송부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 중사는 작년에 졸업한 하사관학교 고등과정에서 전에 배웠던 러시아어 대신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  러시아어나 중국어는 말할 수 있는 군인이나 인민들이 워낙 많았고,  영어가 제대 후에도 도움이 될것같아 자신은 영어를 선택한 것이다. 2년 후엔 제대하여 나진, 선봉 지구에서 외화벌이 일꾼으로 일하고 싶었는데 이번 전쟁으로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대부분의 외국계 자본이 중국의 침공을 보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조 중사는 국도를 내려보는 산 위에 서서 망원경으로  중국군 보급부대의 규모를 살폈으나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규모를 모르는 적을 치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대규모의 보급부대라면 선두쪽을 치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찬찬히 부하들을 살펴보았다.

  산의 가장 높은 곳에서 트럭들을 노리고 있는 고속 유탄포의 사수 김 하사, 북쪽을 맡은 기관총 사수 리 전사, 드라구노프 저격총을 바위 위에 거치하고 적의 지휘관급을 노리는 민 하사 등,  모두들 표정은 평온해보였다.  입대한지 1년이 안된 박 전사만이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인민군이면서도 특이하게 검은 헬멧을 쓰고 검은 가죽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이 인민군에서 제일 멋진 군복을 입은 대원들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직은 늦가을이라 낮에는 통풍이 안되는 이 군복을 입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러나 이 군복은 방풍을 위해 입는 특이한 경우였다. 산악전 2대대 3중대의 경우에 한해서이다.

  단도저격조라면 공격해오는 적의 주력을 기습하고 도주하여  적의 공격의 맥을 끊는 역할을 해야했다. 그러나 그들이 여단장에게 받은 임무는 적의 공격부대는 관찰만 하고 적의 보급부대만 치라는 것이었다. 전파방해나 전파추적의 위험때문에 연락은 비둘기를 이용했는데 지금까지 적 공격부대를 정찰하고 날려보낸 비둘기가 열 마리가 넘었다.비둘기가 남으면 구워먹겠는데,  적의 대규모 병력이동이 너무 많아 결국 비둘기 맛을 보지 못해서 아까왔다. 헬멧을 장시간 쓰고 있어서인지 그의 이마엔 땀이 흘러 내렸다.

  "준비!"

  도로 반대편에 매설한 크레모어의 격발장치를 맡은 표 전사의 손가락이 움찔하는게 보였다. 적이 양면 포위공격으로 오인하도록 크레모어는 아군이 매복한 반대쪽에 매설한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신의 한마디면 이 계곡이 총성과 폭파음에 뒤흔들릴 것이다.

  "공격!"

  조 중사가 헬멧의 무전기를 통해 분대원들에게 명령을 발했다.  먼저 김 하사의 40mm K-4B 고속유탄포가 불을 뿜었고, 이어서 다른 분대원들의 무기로부터도 적에게  총탄이 퍼부어졌다.  대부분이 보급품을 실은 트럭과 병력수송 장갑차인 중국군 수송대는 고속 유탄포의 제물이 되었다. 차량대열 곳곳에 화염이 솟구쳤다. 과연 계곡에서 울리는 반향음은 컸다.

  보병과 차량 운전병들이 차에서 빠져 나오자 이번엔 더 큰 재앙이 그들을 기다렸다. 30미터마다 설치된 크레모어가 2km에 거쳐 연속 폭발한 것이다.수송대와 호위대의 장교급들은 여지없이 민 하사의 저격총에 쓰러졌다.리 전사의 K-3 분대지원 기관총도 끊임없이 탄피를 쏟아내며 불을 뿜었다.

  '어차피 일부분이다. 적이 너무 많아. 그리고 길게 늘어서 있어서 사정거리가... 그래도 일단은 성공이다.'

  조 중사가 적의 피해상황을 살펴보았다. 고속유탄포의 사정거리 내에 있는 중국군의 트럭과, 트럭들의 사이사이에 낀 장갑차들은  파멸을 면치 못했다. 탄약을 가득 실은 트럭이 폭발하자 주변의 트럭들도 연쇄폭발하고, 연료를 실은 트럭은 폭발하며 주변 도로 위를 불타는 연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공격권 내에서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선두의 2 km에 걸친 적의 보급부대는 전멸시켰지만 뒤에 있는 보급부대가 마음에 걸렸다.  그냥 후퇴할까 생각했지만 그들이 전선에 도착하면 아군과 인민들의 피해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정 중사가 결심을 했다.

  "전원 탑승, 뒤쪽 놈들도 친다!"

  헬멧에 딸린 헤드폰을 통해 명령을 내리자 주변에 흩어져있던 부하들이 산 뒤쪽으로 내달렸다. 조 중사도 뛰어갔다. 바로 산 뒤쪽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탔다.  김 하사가 30 킬로그램이나 되는 고속유탄포를 들고 헐떡이면서 가장 나중에 탑승했다.

  "북쪽으로! 가자!"

  모두 시동을 키고 작은 산길을 달려갔다.  이들 분대원들은 산악전 2대대 제 3중대인 오토바이 중대의 일부였다.  중대원 전원이 산악용 모터사이클을 타고 어떤 산이든지 오를 수 있었다. 지난 여름에는 중대훈련 코스로 백두산을 등정했는데,비가 온 후 땅이 질퍽거리고 길이 없는 코스를 택해 낙오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성공적으로 등정했다.

  이런 야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조 중사는 생각했다. 물이 마른 개울을 건널 때는 분대원들이 기분이 좋았는지 공연히 점프를 했다. 약 3킬로미터의 산길을 북쪽으로 달려 어제 보아둔 장소에 도착했다. 조 중사는 땅바닥에 오토바이를 눕혀둔 채 총과 탄띠를 매고 뛰어갔다.다른 분대원들도 어제 답사때 지정된 자신의 위치로 뛰어갔다.

  조 중사가 M-16과 같은 규격의 K-3 분대지원기관총용 탄띠를 리 전사에게 건네주고 망원경으로 적의 동태을 살폈다.  갑작스런 기습에 적은 아직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몇 대의 호위용 경전차가 길에서 내려와 감자밭을 달리고 있었다. 보병전투차 10여 대가 그 뒤를 따랐다.  보급부대의 트럭 운전병들은 소총을 들고 차에서 내린 채 삼삼오오 모여 불에 타고 있는 트럭대열을 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아직 그곳에 있는줄 아는 모양이군.'

  절호의 기회라고 조 중사는 생각했다. 이제 또 치고, 북으로 가서 한 번 더 칠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됐나?"

  조 중사가 김 하사와 리 전사를 쳐다보았다. 고속유탄포의 유효 사정거리는 1500 미터, 분대지원 기관총은 800 미터라고 조 중사는 배웠다. 그러나 우수한 사수라면 사정거리를 약간 더 길게 하는 법이다. 그렇게 보면 김 하사와 리 전사는 유능한 사수였다.그러나 저격여단의 모든 전사는 다 유능한 사수라고 그는 생각했다. 모두가 몇가기 무기에 숙달되

었고, 특히 자신의 무기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지난 가을에 있었던 통일사격대회에서는 모든 총기분야에서 저격여단의 사수들이 상위권을 휩쓸었었다. 특히 인민군에게 인도된지 얼마 안된 고속유탄포나 분대지원 기관총, 스팅거 대공미사일 등의 사격부문에서도 저격여단의 진가를 유감없이 드러내어 국군 장성들이 혀를 내둘렀다.

  헤드폰을 통해 분대원들의 복창이 이어졌다.첫 공격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두번째도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공격!"

  명령을 내리자 동시에 사격을 시작했다.  중국군 보급부대의 대열 곳곳에 폭발 섬광이 튀었다. 전멸한 선두 대열만 쳐다보던 후속 보급부대들은 급작스런 공격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 도망갔다.  사륜구동차 뒤에 숨은 중국군 군관이  무전기를 들고 뭐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였으나 그 장교는 곧 민 하사의 저격에 쓰러졌다. 조 중사도 저격총으로 보급부대를 쏘다가 총구를 경전차와 장갑차가 갔던 쪽으로 돌려보았다.

  SVD 드라구노프 저격총에 장착된 PSO-1 망원조준경 안에 T-62 경전차 해치 위로 상체를 내민 중국군 군관의 모습이 보였다. 무척 화가 난 모습으로 이쪽을 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인민군의 위치를 이제야 파악한 모양이었다.  조 중사가 거리를 재어 조준한 후 방아쇠를 당기자 그 군관은 머리에서 피가 튀며 뒤로 쓰러졌다.  다른 경전차의 운전수에게도 한방, 또다른 보병전투차로 옮겨 기관포 사수들에게 한 방씩 쏘았다.그러자 경전차와 보병전투차 해치 위에 있던  기관포 사수들이 해치를 닫고 숨어버렸다. 경전차의 85밀리 포가 불을 뿜었다. 그러나 당황했는지 실력이 없었는지 포탄은 형편없이 빗나갔다.  조 중사가 느긋하게 7.62밀리 10발들이 탄창을 갈아끼웠다.

  조 중사가 다시 보급부대 쪽을 보니 대충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또 북쪽으로 가서 한 번 더 칠까 하다가 지나친 욕심은 내지 않기로 했다. 더 북쪽의 보급부대들을 망원경으로 살피니 호송대의 일부가 차에서 내려 산 위쪽으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진작 그랬어야지. 꼭 당하고 나서 후회한다니까...'

  조 중사가 천천히 일어섰다. 부하들은 목표를 찾지 못해 총구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가자우."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퇴근하는 노동자들처럼 천천히 장비를 챙겨 모터 사이클에 탑승했다. 분대원들이 자신의 장비를 들고 올 때, 표 전사는 그들이 있던 곳 주변에 크레모어를 설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누군가 가느다란 이 철사줄을 건드리면  주변을 800개의 쇠구슬이 초토화시킬 것이다. 분대원들의 표정은 시원하면서도 뭔가 아쉬운 듯했다.

  "탄약 아끼라우. 전쟁은 계속되니끼."

  산악용 모터사이클의 시동을 걸며 조 중사가 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집이 아니고 임시 아지트이지만...

  이 같은 일을 다른 소대의 다른 분대들도 할 것이다. 아니, 산악전 2대대의 모든 대원들이 이 임무를 받았다.산악전 1대대는 중대단위로 요지를 방어하고,  2대대는 분대단위로 흩어져 적의 보급부대를 격멸하는 임무를 맡았다. 정 하사는 다른 대대원들도,  아니 모든 인민군과 국군들이 자기 분대원들처럼 잘 싸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길을 이리저리 돌면서, 가끔가다 부비트랩을 설치하여 추적대의 추격을 따돌리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아지트 부근에는 부비트랩을 설치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의 비트(비밀 아지트)는 서쪽으로 5 km나 떨어져 있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생각해 보았다.  통일이 된 후로 군대 급식은 아주 좋아졌다.  주,부식을 모두 한국군이 책임을 졌기 때문이다.  원래 엘리트 부대인 저격여단 병사들이 보기에도 급식이 월등히 향상되어 좋았다. 하지만 전투급식인 레이션은 금방 질려버린다.

  11. 19  12:00  평안북도 삭주군(朔州郡) 대안

  산악전 2대대 1중대의 한 분대인 김 동현 중사와 부하들은 이틀째 산 위에서 평북선 철로(수풍에서 정주까지의 철도)를  살피고 있었다.  그 철도에는 어제 폭발물을 은밀히 매설하여 공격기회만 노리고 있었다.위치는 내리막 급경사가 한번 꺾이는 곳,일단 폭발물이 터지면 기차가 급정거를 해도 소용없이 열차 모두가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위치였다.철길 아래를 파고 폭발물을 매설하였기 때문에 몇 번 왔던 중국군 철도 경비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가끔 중국군의 공격헬기가 철도 주변의 산들을 훑어보았으나 워낙 위장이 철저해 그들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했다.

  X세대라고 까부는 최 전사는 바위에 등을 기댄채 CD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마 Ce Soir Je Dors Pas라는 제목의 발음도 하기 힘든 음악일 것이다.저 놈은 그 곡만 하루종일 반복해서 듣는다, 라고 김 중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흰눈이 쌓이면 그의 음악은 The Famous Blue Raincoat로 바뀌는 것도 알고 있었다.

  김 중사는 원래 정찰연대의 폭발물 전문가로서 작년에 저격여단에 배속되어 분대장 임무를 수행해왔다. 폭파 대상에 따라 화약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의 부하들은 그의 가르침을 잘 따라주어 이제 분대원 모두가 폭발물 전문가가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함흥에 살고 있는 가족이 걱정되었으나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  이제 적지에 몇 명씩 흩어진 저격여단의 산악전 대대원들도 모두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후퇴하는 급한 상황에서 도마뱀 꼬리 떼듯 산악전 2대대를 적지에 남겨두었으나  본대의 후퇴를 위한 희생이 아닌,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이틀간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을 보면 여단장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방어전을 맡은 산악전 1대대는 이미 상당한 피해를 봤을거라는 생각도 했다.

  '아니, 이미 전멸했을지도...'

  식량은 15일치가 임시 아지트에 있었다.  이를 다 먹고 굶주릴지, 아니면 그 전에 분대 전원이 전멸하거나 중국군의 포로가 될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 사이에 전쟁이 끝날지도...'

  앞날 뿐만 아니라 생존이 불투명했으나 이것은 군인의 일이었다.  전쟁에 대비하여 키워지는 군인은 적의 침략을 막기위해 싸워야 했다. 게다가 저격여단은 정찰연대와 함께 인민군 엘리트 중의 엘리트,  그동안의 밥값을 충분히 하리라 마음먹었다.그리고 지금 그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3 km 북방 산위에 있는 전초기지에서 빛이 반짝였다.  모르스 부호로 된 그 거울 반사빛은 50량을 단 열차가 오고있다는 내용이었다. 화물은 주로 전차와 자주포이며 유개차엔 탄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있었다. 가만히 들으니 기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 십 대의 기차를 그냥 보냈다.  이 기차들은 구성시를 통해 평안남도의 안주까지 가서 전선 부대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했다. 그러나 이제 여단장의 공격명령이 떨어졌고, 게다가 전차부대의 호송열차라면 공격의 우선순위는 상당히 높았다. 김 중사는 이들을 치기로 결심했다.

  "준비."

  김 중사가 짤막하게 명령하자 기폭장치를 맡고 있는 전사가 안전장치를 제거했다. 여러 상황이 예상되었으나 폭발물이 매설된 이 구간은 경사가 심하므로 기차들이 시속 30 km로 감속을 한다는 것을 관찰로써 확인했었다. 그렇다면 열차가 폭발구간의 50 미터 전방에 왔을 때 폭파시키기로 결정을 했다. 열차가 북쪽 산굽이를 돌아 나오는 것이 망원경에 잡혔다. 과연 전차와 자주포였다.각 유개차에는 전차 2대와 자주포 1대가탑재되어 있고 무개차가 40량이니 모두 80대의 전차와 40대의 자주포가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거의 1개 기계화연대분에 해당하는 장비들이었다.

  전차와 자주포에는 승무원이 그대로 탑승하고 있었고,대공포 몇 문과 경비병도 몇 명 보였다.  뒤에 딸린 10량의 화물칸은 창문이 없고 문이 밖에서 채워진 것으로 보아 모두 탄약을 실은 것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객차도 세 대나 있었는데 모두 중국군으로 가득찼다. 그들은 연이은 승전에 고무된 듯 웃고 떠드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폭약이 매설된 곳 50미터 전방에 이르자 김 중사의 별다른 명령없이도 하급전사가 기폭장치를 작동시켰다. 섬광과 함께 철도의 일부분이 날아가고 나서야 폭음이 들려왔다.  철도는 받침목뿐만 아니라 자갈로 쌓은 기반도 같이 절벽쪽으로 무너져서 기관사가 급제동을 했으나 열차가 하나씩 절벽으로 떨어져갔다. 차례차례, 모두 55량의 열차가 곤두박질했다. 절벽 아래에 두대의 기관차가 떨어지고 그 위에 연이어 다른 차량들이 떨어져 부서져갔다. 뒷부분의 탄약열차가 떨어지자 충격에 탄약이 연쇄폭발하기 시작했다.객차에서 튕겨나온 극소수의 중국군들도 폭발에 휘말려 모두 죽었다.

  엎드린 채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살피던 김 중사가 옷에 묻은 흙먼지를 떨며 일어났다. 중국군의 화물열차에 타고 있던 중국군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물론 전차와 자주포, 그리고 탄약이 못쓰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이 이 광경을 본 전사 한 명이 자신의 소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총을 쏠 기회는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 한 방 쏴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분대는 총을 쏠 기회가 있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과묵한 이들은 김 중사를 선두로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이제 제 2의 목표로 이동할 때였다. 산길을 따라 송평이 있는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제 3의 목표인 수풍발전소 폭파는 분대의 전멸을 각오해야할 지도 모를 어려운 임무라고 생각했다.  단풍이 거의 진 늦가을 정오, 햇빛이 따사롭게 내려쬐고 있었다.

  11. 19  15:30  경기도 동두천

  아름기획의 변 승찬 대리는 즉시 전방에 투입되지 않고  동두천의 육군기갑학교에 배속되었다. 군복무 중 K-1 전차 포수였던 그는 당연히 K-1 전차에 타게될 줄 알았으나, 의외로 러시아제 T-80 전차교육을 받게 되었다. 1995년 하반기에 러시아에서 돌려받을 차관 대신에 들여왔다가 원래의 목적인 대전차교육에 투입되지도 않고 창고에 처박혀있던 230대의 T-80을 주축으로,  미군이 철수한 이후 한국군에게 인도된 동두천기지에서 새로운 기갑사단이 창설되었다. 교관단 중에는 인민군 군관들이 꽤 있었다. 변 대리가 복무 중에는 적으로 대했던 그들에게서 전차교육을 받게되어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도 오전의 학과수업에 이어 실습이 이어졌다.  변 승찬은 러시아제 전차의 일반적인 달걀형 포탑과 포탑 뒤에 달고 다니는 연료 드럼통을 보고 혹시나 한국공군에게 오인 폭격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리고 125밀리 2A46 활강포는 처음 쏘게 되었는데 K-1전차와는 화기관제장치가 너무 달라 적응하는데도 상당히 애를 먹어야 했다.

  통일참모본부는 중국과의 전쟁에서 어쩔 수 없이 이 전차들을 전선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전차의 질이나 보급체계의 통일성 같은 것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한국군에 바가지를 씌운, 부산항 창고에 쳐박혀 있던 M-1 에이브람스 전차들로도  새로운 전차사단을 창설하고 있었다. 물론 약간의 구식 M-48도 가세하였다. 이들 기갑사단들은 현역과 예비군이 섞여있었다.

  11. 19  16:30  개성, 통일참모본부

  "의외로 적의 남진 속도가 느립니다."

  개전 후 이틀간 뜬 눈으로 노심초사하다가 처음으로 4시간 동안 눈을 붙인 참모들이 부시시한 몰골로 양 석민 중장의 브리핑을 들었다.양 중장은 아직 잠을 못잔 듯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중국군의 3개 병단은 안주 이남으로 계속 내려오고는 있지만 속도가 많이 느려졌습니다.후속 부대들의 위치도 불분명합니다. 중국군에 뭔가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기건 인민들의 노농적위대와 저격여단이 막고 있어서 기래요."

  양 중장의 의문을 이해하겠다는 투로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말했다.  그는 정규군으로써 적을 막지 못하고 예비군과 특수부대의 도움을 받은 것이 자존심을 강하게 건드려서인지 자괴감에 쌓인 채 설명했다.

  "삼팔 이북서껀 신의주까라 죄 노농적위대가 조직되,인민군 예비부대래 되는 거디요. 후퇴하지 못하고 적 점령지역에 남은 예비부대들의 활약이 대단할 깁니다.길고 저격여단은 개전 첫날 북쪽으로 향했디요. 이들의 위치는 아무도 모릅네다."

  "저런... 그러면 그들의 피해가 엄청 클텐데요."

  국군의 정 지수 대장이 걱정하는 투로 말하자 김 대장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남반부 향토예비군보담 훨 낫디요."

  한국 예비군들의 훈련상태를 잘 아는 인민군 장성들이 웃었다.  국군장성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나왔다.아직은 패전을 하고 있었지만 제주도 수복이 이들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제주도와 여천군 예비군들은 잘 싸웠지요.  그건 그렇고, 우리는 이제 적 장갑군단의 공격을 막아야... 묘향산 쪽이 버텨줘야 우리 군이 함경도에서 후퇴할 수 있는데요..."

  정 대장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김 대장을 쳐다보았다. 김 대장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1999. 11. 19  14:00  함경남도 동백산(2096m) 기슭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계곡을 덮은 초겨울의 낭림산맥에 요란한 진동음이 들려왔다.비포장길의 자갈을 부수며 거대한 중국제 T-72 전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드디어 오고 있습니다."

  "규모는?"

  "드래곤 플라이의 정찰에 의하면 전차연대를 선두로한 보병 3개 사단이라고 합니다."

  작전참모가 보고하자 인민군 제 2사단의 사단장인 강 일섭 소장이 망원경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산지라서 전차의 기동이 좋지 못하니, 아마 전차연대는 자주포 이상의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되었다.

  A-37B 드래곤 플라이(Dragon Fly)는  전방 항공통제 및 대지공격기로 쓰이는 경항공기인데, 한국군에서는 지상전 지원을 위한 정찰기로도 쓰고 있었다.  전후 복좌식에 짧은 동체와 긴 날개의 이 우스꽝스럽게 생긴 비행기를 한국군은 장난스럽게도 용팔이로 부르고 있었다.

  사단장은 미국에서 수입한  JSTARS(지상목표탐지 공격용 레이더 시스팀)를 갖춘 E-8C 조인트 스타즈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한국에 두 대밖에 없는 그 비행기는 안주 남쪽의 대규모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이쪽은 신경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모든게 엉망이었다. 전쟁 전에 세웠던 계획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항공지원은 없네?"

  "예. 안주가 뚫린 후로 엉망입니다. 평양이 위험하다고 합니다."

  안주가 점령된 마당에 사실 이곳을 방어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동쪽 함경도에 있는 인민군부대들이 후퇴할 때까지 시간만 벌어주면 되는 작전이었다. 강 소장은 부대가 얼마나 버텨줄지 의문이었다. 하루...? 강 소장이 빙긋 웃었다. 자신은 하루살이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항공지원이나 병력지원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대공무기와 대전차무기 체계가 너무 빈약하다고 느꼈다.동백산 정상 부근의 전방지휘소에서 사단장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적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기 바빴다.  포격을 시작할까 하다가 아직 기다리기로 했다.  괜히 적에게 포병의 위치만 알려줬다가 안주회전의 재판이 될까 두려워서였다. 중국군에게 어떤 신병기가 있는지 몰라도 적은 아군 포병대를 초반에 섬멸한다는 정보도 있고 해서 사단장은 아직 포병대를 아끼기로 했다. 전쟁은 길어질지도 몰랐다.

  계곡에 정찰헬기 두대가 나타나서 남쪽으로 접근해왔다. 보병들이 헬기를 발견하고 즉각 적외선 유도식의 휴대형 대공미사일을 날렸으나 배기상향편향장치(엔진배기구가 위를 향해 배기열이  로터의 바람에 의해 분산되는 구조)때문인지, 아니면 상부에 장착된 적외선 대항 비콘 때문인지, 어쨋든 미사일은 명중하지 않았다. 이 프랑스제 SA 342M 가젤 헬기들은 대공포를 피해 능선 뒤에서 마스트장착 조준장치만 내놓고 방어선 곳곳을 정찰한 후 돌아갔다.

  사단장이 허탈하게 헬기가 사라진 북쪽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측 대남리의 1539 고지를 맡은 3연대에서 급전이 왔다.

  "200여 대의 헤리콥타가 남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쪽 방어선은 그들의 공습에 초토화되었습니다. 메뚜기떼처럼 시커멓게 몰려 다닙니다."

  "뭐야? 혹시 강습헬기는 봤나? 모조리 공격헬기는 아니디?"

  "잘... 경황이 없어서... 확인은 못했습니다."

  사단장 강 소장이 혀를 찼다. 아마 그 연대장은 겁에 질려 지휘소 안에 쳐박혀 있었으리라.사단장이 사주 대공경계를 명령하려고 부관을 부르는 순간 공습경보가 발령되었다.

  "항공! 남쪽에서 헤리콥타가 시커멓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항공관측병의 외침을 듣지 않아도 지휘소 안이 대규모의 헬기 소리에 진동했다.  사단장이 밖으로 나가서 남쪽을 보니 멀리 해발 1720미터의 마대령을 넘어 수많은 헬기가 이곳 동백산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봐도 기종이 확인이 안되는 먼 거리였으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온 산이 헬기 소리에 진동했다.  갑자기 또다른 대공경보가 울렸다. 고사포대대장이 지휘소 밖으로 뛰쳐나와 사단장에게 보고했다.

  "흥남 상공의 조기경보기로부터 연락입니다! F-5 유형의 대규모 전투기 편대가 저공침투로 접근중이랍니다."

  "대공배치 변경, 미사일은 북쪽, 대공포는 남쪽으로!"

  "알겠습니다."

  대대장이 연락을 위해 지휘소로 뛰어들어간 순간  방어선 상공에 F-5기들이 떼지어 날아올랐다.이미 정찰헬기로부터 연락받았는지 대공포좌와 대공미사일 진지를 정확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경량 소형의 전투기라지만 그래도 폭격이었다. 능선이 화염에 휩싸였고,  동시에 지상에서 미사일이 꼬리를 물고 발사되었다.

  이들은 중국이 대만을 점령한 후 노획한 전투기 중 일부였다. 대만공군,이제는 없어진 중화민국의 조종사들은 한달간의 사상교육을 받고 중국 인민해방군에 편입되었다. 조종사들은 어떻게든 전과를 올리기 위해 발악했다. 이것이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대공미사일과 대공포의 빗발치는 포화를 뚫고 전투기들이 방어선을 유린했다.

  동쪽 하늘에서 또다른 F-5 전투기 편대가 나타났다. 사단장이 레이더병의 보고를 받고 새파랗게 질렸지만 이들은 동백산을 지키는 인민군을 돕기 위해 강릉비행장으로부터 출격한 한국공군이었다.같은 기종인 F-5이기 때문인지 한국공군은 근접전을 회피했다. 거리 20km에서 한국군의 F-5에서 미사일이 계속 발사되었다.

  F-5기 성능개량사업에 의해 항법장비와 레이더장비가 대폭 개량된 한국공군의  F-5E는 동체 하부의 파일런에서 스패로우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지상공격을 위한 출격을 하느라 자위용 사이드와인더밖에 없는 중국의 F-5는 2만피트의 고공에서 공격해오는 한국공군에 당할 수 밖에 없었다.강력한 APQ-159 레이더가 F-5에게 그동안 없었던 룩다운 능력을 주었고 M/L-STD-1553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통합된 사격조준장치가 미사일의 명중율을 높였다.  게다가 이들은 조기경보기의 유도까지 받을 수 있어 유리했다. 또 한 대의 F-5가 지상으로 추락하여 폭발했다.

  지상지원 공격기들의 상공을 엄호하던 중국군의 또다른 F-5기 편대가 한국공군을 노리고 날아왔으나, 미사일을 모두 발사한 한국공군은 미련없이 남쪽으로 도망갔다. 공군본부에서는 전투기의 손실이 점점 커지자 꼭 필요한 상황 외에는 근접전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통일 한국 전투기의 숫자는 점점 줄고 있었다.공중전이 꼭 필요한 상황이 너무 잦은 것이다. 한국 공군기들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중국군의 헬기들이 공중폭격으로 엉망이 된 방어선 상공에 도달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개발한 유로콥터 타이거의  호위 및 화력지원용 기종인 HAP 헬기들이 먼저 기수에 장착된 Giat 30mm 기관포로 참호선을 쓸었다.  곧이어 나타난 대전차형인 독일제 PAH-2들이 HOT 미사일로 방어선 곳곳에 배치된 전차와 중화기진지를 공격했다. 60여기의 공격헬기는 소리만으로도 위력적이어서 인민군들은 감히 참호 밖으로 고개를 내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인민군들은 조만간 헬기들이 공격을 마치고 돌아가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뒤이어 따라온, 60년대에 중국에서 생산된 구식 선풍 25호와 Mi-4 헬기들이 방어선 곳곳에 착륙하더니 헬기에서 중국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참호에서 떨고있는 인민군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손을 들고 나오는 인민군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사단장인 강 소장도 중국군 헬기강습병에 의해  지휘소 밖으로 끌려나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중국 헬기에서 중국군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능선 남쪽으로 도망간 인민군들은 더 운이 없는 편이었다.타이거 공격헬기들은 도망자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단풍이 지고 난 동백산 남쪽의 급경사 계곡은 다시 한번 화염과 인민군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낙엽이 져도 숲이 비교적 울창해서 하늘의 사냥꾼을 피할 수 있었던 동백산 동쪽, 북골령으로 도주한 소수의 인민군들만이 함흥쪽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후퇴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전투도 하지 않고 도로를 따라 남진해 온 중국군 제 39집단군은 전차부대를 선두로 동백산을 넘어 함흥쪽으로 진출했다.  이들의 머리 위에는 급유와 무기장착을 마친 공격헬기들이 상공을 엄호했다.이들의 앞길에는 어떠한 방해물도 없었다. 전차와 헬기, 그리고 자동차화 보병으로 구성된 기동력있는 이 부대는 저녁무렵 함흥평야의 젖줄인 성천강을 볼 수 있었다.

  한중 양국이 안주 남쪽에 전투기와 전력을 집중배치하는 동안 동해안쪽은 상대적으로 이렇다할 큰 전투가 없었다.  그러나 인민군의 후퇴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중국군은 상대적으로 수월해 보이는 함경도쪽을 공격했다. 이제 함흥이 중국군에게 점령될 경우, 함경남도에 대부분 몰려있는 인민군 2개 군단은 포위될 수밖에 없었다.

  1999. 11. 19  16:45 평안남도 순천

  "패들락! 패들락!"

  김 종구 중위는 계속 패들락을 외치고 있었다. 그의 애기(愛機) 선영이는 지금 중국 공군 J-5 공격기의 꼬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이 낙후한 공격기는 의외로 끈질기게 김 중위의 기관포 사격을 잘 피했다. 암람과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은 모두 써버린지 오래고, 지금은 기관포밖에 없었다. 그것도 1초분만이 남아있었다.

  "상태 양호. 걱정 말고 빨리 해치우기나 하라고."

  윙맨을 맡아 김 중위의 전투기를 뒤에서 엄호하고 있는 곽 대위가 재촉했다.  그러나 김 중위로서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이 5분간의 짧은 공중전에서 지금까지 모두 6기의 전투기를 잃어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적은 미그-21의 중국산인 섬(殲)-7 전투기 50여기와, 미그-19의 중국산 파생형인 J-5 공격기 30여기였다. 저공비행으로 전장에 도착한 F-16 편대가 순천의 인민군을 공습중이던 J-5를 노리자, 상공에서 이들을 엄호하던 섬-7 전투기들이 덮쳐서 지금은 근접전 양상이 되었다.  성능은 F-16이 훨씬 앞섰지만 숫자에서 압도하는 중국의 고물 전투기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방금 격추된 이 소령만 해도 전년도의 최우수 전투기 조종사인 탑건이었다. 중국군 조종사들의 실전감각이 성능의 차이를 좁혔다.

  마침내 김 중위의 기관포가 J-5를 잡고 우측으로 급선회했다.  J-5가 공중에서 멋지게 폭발했다.  김 중위가 한숨을 쉬려는데 갑자기 눈앞에 섬-7 전투기가 기관포를 쏘며 뒤로 스쳐갔다. 김 중위가 급히 공중제비를 하여 그 전투기의 꼬리를 잡았다. 즉시 200미터 바로 뒤에서 기관포를 퍼부었다. 미그는 엔진에 몇 발을 맞고 불을 뿜었다. 조종사가 탈출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서야 윙맨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자신도 목표를 공격할 때 패들락을 외치지 못했다. 패들락은 "I'm Padlocked", 즉, 선도기에 의한 목표발견의 신호였고, 동시에 선도기가 적기를 공격하는 동안 자신의 엄호를 부탁한다는 뜻이었다.

  김 중위가 뒤를 돌아봤다.  곽 대위의 전투기가 보이지 않았다. 무선으로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김 중위는 즉시 전장 상공을 이탈해 남쪽으로 비행했다. 곽 대위는 김 중위의 후미를 엄호하다가 중국군 전투기가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한 PL-9 적외선 미사일에 당한 것이다.남은 아군 전투기는 얼마 없었다.

  고도를 올리자 F-5 편대가 북쪽으로 급히 비행하는 모습이 보였다.한국공군의 지휘부는 너무 적은 수의 F-16을 보낸 것을 후회하여 급히 30여대의 F-5를 증파했는데, 그 사이에 아까운 F-16만 당한 것이다. 연료계를 보니 이미 빙고상태가 지나 수원비행장으로 귀환할 수 없었다. 가까운 평양 북쪽 순안비행장을 무선으로 불러 그곳으로 향했다. 그 비행장은 순항미사일의 공격을 받았는지 사방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연기 사이로 미그-23 전투기들이 이륙했다. 하나 남은 활주로에서 미그기들이 출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김 중위는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그는 전투기인 선영이의 콘솔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어쨋든 오늘도 그는 살아남은 것이다!

  급유를 마치고 수원비행장으로 돌아오자 자신이  한국공군 통틀어 세 번째의 에이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의 편대기 12대 중에서 살아남은 조종사는 김 중위를 빼고 4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2명은 격추되어 낙하산으로 비상탈출했는데,  전장 한복판에 떨어져 아직 구조를 못하고 있었다. 수원에 돌아온 F-16은 떠날 때의 16대에서 2대로 줄어있었다. 인민군에게 구조된 편대장 최 소령은 헬기로 귀환중이었다.

  조종사 휴게실에 들어와 푹신한 의자에 앉은 그는  오늘도 잠을 못이룰 것같았다.  전쟁 개시 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동료들이 죽어갔다.  자신의 차례는 언제 올까 두려웠다. 머리를 젖히고 눈을 감으니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빨간색 페라리가 생각났다. 여자친구들도...

  1999. 11. 19  21:00  필리핀 상공

  대한항공 소속의 여객기 KAL 638기가 필리핀 루손섬의 동쪽 200km 해상의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이 여객기는 호주 시드니에서 이륙했는데 기내에는 승객이 한명도 없었다.  승객 의자가 모두 치워진 이 여객기는 대만과 남사군도가 중국에 점령된 후 붕괴된 싱가포르 무기시장을 대신해 시드니에서 열린 무기시장에서, 각종 미사일을 구입하여 한국을 향하고 있었다.

  기존의 호주-한국 노선은 크게 동쪽으로 옮겨졌다.  어제는 한국에서 호주로 향하던 여객기가  중국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어 승객 전원이 몰살당했다. 국제항공기구(ICAO)가 중국의 범죄행위를 규탄했지만 중국정부는 이 행위는 국가안보를 위한 정당한 활동이라고 반박했다.

  KAL 638은 항공등도 키지 않은 채  여객기로서는 엄청나게 낮은 고도인 고도 1000피트로 북쪽을 향해 비행했다. 비행기 아래쪽 해상에는 흰 항적을 끌고 있는 선단이 보였는데 그 선단도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 참치냉동선 동원 139호

  장 봉수 선장의 동원 139호는 최고 속도로 북쪽을 향했다.  서사모아에 기항중이던 그의 배는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즉시 냉동창고를 모두 비우고 필리핀 루손섬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공산반군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소총과 수류탄 등 소화기를  가내생산하고 있는 집들을 돌며 이들 무기를 값을 가리지 않고 매입했다. 그의 사정을 들은 무기중개인이 국제무기상인 호세를 소개해주어 그로부터 대량의 지대공 및 함대함 미사일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 선장은 돈이 부족했다. 선단의 비상시를 대비해 회사에서 입금해준 그의 아메리카 뱅크 계좌의 예금잔액을 훨씬 넘는 금액이었다.

  본사의 회장을 설득하여 대금을 송금시키고 이를 호세에게 주었다.그가 루손섬을 떠날 때 호세는 신의의 상징으로 자기가 소지하고 있던 콜트 38구경 권총을 장 선장에게 주었다.  무기에 이상이 있으면 다시 돌아와 그 권총으로 자신을 쏘라는 의미였다.

  장 선장이 한국으로 향하는 중에 중국 잠수함에 의해 두 척의 어선을 잃었다.  중국 잠수함들은 한국 상선들이 기존 항로를 크게 우회한다는 사실을 알고 필리핀 근해까지 침범하여  한국 국적의 배를 공격하는 것이다. 장 선장은 배를 잃고 나서야 선미에 일본의 국기를 게양했다.

  1999. 11. 19

  일본 정부는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하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가장 먼저 내각이 한 일은 일반산업의 방위산업체로의 전환이었다. 자동차를 만들던 공장라인은 장갑차 등의 군용차를 생산했고 조선소의 도크는 모두 함정 건조에 사용되었다.  미쯔비시 중공업 공장에 있는 전투기 생산라인의 수가 매일 두배씩 늘어났다. 군사전문가들도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로 일본은 전시체제로 들어갔다.

  예비역 자위관들이 소집되었으나 아직 징병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만간 징병제가 실시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일본 수상의 제의를 한국의 홍 대통령이 거절했다.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는 한국민의 감정상 너무 꺼림칙했던 것이다.그리고 일본의 야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일본의 88함대는 대마도 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해군의 남해함대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1개의 구축함대를 부산쪽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한국정부가 일본에 한국으로의 무기 수출을 요구하자 일본은 이를 거부했다.  다만, 계속해서 일본 자위대의 파견을 수락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작전권은 일본이 가지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한국과 일본의 협상은 계속되었으나 지지부진했다.

  1999. 11. 19  23:30  평안남도 안주 동남방 8km, 매암산 기슭

  중국군은 안주를 점령하자 계속 남하해갔다. 안주에는 포병대와 수송부대 등의 지원부대와 2개 사단의 예비병력만 남게 되었다.제공권을 가진 중국군은 여유가 있었다.  한국군의 야간공습을 우려하여 이동은 주간으로 한정하고 밤에는 쉬었다. 1951년과는 반대의 양상이었다.

  매암산 아래의 분지에는 중국군 제 212사단이  밤을 대낮같이 밝히고 주둔중이었다. 중국군은 사기가 충천했다. 아직까지는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어서 예비병력은 넘쳐나고 있었다. 병력보다는 물자의 소모가 예상외로 심했는데 이는 병력소모가 당초의 예상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었다.숙영지 주변에 철조망이나 지뢰 등의 매설도 없이 주둔하는 212사단은 지나친 자신감에서였는지 경계도 허술했지만  전시 야외주둔의 원칙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달이 기울자 숲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오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 든 중국군 초병이 적외선 야시장치로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숲과 참호 앞의 개활지 모두 온도차가 거의 나지 않았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초병은 다시 총을 내리고 고개를 숙여 담배를 피워 물었다.한달째 계속된 야외훈련과 잦은 부대이동,  가족에의 편지 금지 등 모든 것이 이상했는데, 그 후에 부대가 압록강철교를 건너서야  중국이 한국을 침공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예비부대라 아직까지 전투가 없었지만 적지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에 들어와서 만나본 적이라고는 얼이 빠져있는 피난민들과  초췌한 몰골의 부상당한 인민군 포로밖에 없었다.

  전쟁은 의외로 쉽게 끝나  한 달 안으로는 집에 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역시 전쟁이 터지니 군인들에게 배급되는 식량이 많아져서 좋았다. 한달 전에 받은, 화남 지방의 농촌에 사는 가족의 편지에는 홍수로 먹을게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몇 년 간 계속 홍수 아니면 가뭄이라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기근이 심했으며 굶주린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참호 안에서 담배를 깊이 빨고 얼굴을 참호 밖으로 냈다.적은 없겠지만 혹시나 야간당직군관에게 담배 피우는 것을 들키면 큰일이라 주위를 둘러 보았다.역시 아무도 없었다. 같은 근무조인 중사는 계속 곯아떨어져 있었다. 하품이 절로 나왔다. 이제 교대 시간이 30분 남았으니 아직 자려면 멀었다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숨이 멈춰질 때 쾌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숨을 들이쉴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목이 뜨뜻한 것으로 메워졌다. 감각이 없다. 캄캄한 밤이 더욱 까매져서 아무것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어지러워서 그런가 생각했다. 무척 졸렸다.

  중국군 초병 두명을 해치운 검은 그림자들이 참호의 기관총을 반대쪽으로 설치했다. 50 미터 간격으로 하나씩 있는 참호마다 검은 그림자들이 기어들어갔다. 이들은 적외선 반사 흡수율이 수풀과 거의 같은 DBDU 위장복을 입어서 적외선 감시장치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다른 그림자들은 이미 중국군의 야전막사로 기어들기 시작했다. 초병들을 해치우고 불 켜진 막사를 먼저 공격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이 켜진 막사의 수가 점점 줄었들었다.  마침내 부대 전체가 암흑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가장 먼저 212 사단의 이상을 발견한 것은 집단군 사령부의 통신병이었다. 정기적으로 통신을 유지해야 되는데 212사단 통신병의 보고가 끊어진 것이다. 이런 이상은 가끔 있기 때문에 넘어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전시상황이라 당직사령에게 보고를 했다.

  신안주시 남쪽의 추수가 끝난 논바닥에 주둔 중인 214 사단의 전령이 투덜거리며 트럭을 타고 212사단의 주둔지로 가 보았다. 지도에 주둔지로 표시된 곳은 이상하게 캄캄했다.사단병력이 주둔하는 곳이라면 야간 등화관제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도시처럼 환해야되는데 불빛이 전혀 없었고 적막만이 감싸고 있었다.

  전령이 사단 주둔지가 바뀌었나  생각하여 무선으로 집단군 사령부에 보고했지만 당직사령의 호통만 들어야했다. 운전병이 막사가 있다고 알려와서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이상하게 막사는 많은데 불빛이나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둔지 입구의 바리케이드 근처에도 중국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이상한 낌새가 들어 무선으로 집단군 당직사령에게 계속 보고했다. 이 시간에도 일부 전선에서는 산발적인 전투가 있었고 점령지역에서도 패잔병 및  게릴라 소탕작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당직사령은 신경이 날카로와져 계속 호통을 쳤다. 왜 아무도 없냐고 질책했는데 전령 입장에서는 난감했다.

  "젠장, 아무도 없는데 날더러 어쩌란 말이야."

  전령이 무전기를 손으로 막고  투덜거렸다.  운전병은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군기빠진 당나라 군대라 하더라도  전시에 이런 경우는 생각할 수 없었다. 수많은 막사에 초병 하나 나와 있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집단군 당직사령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보라고 채근했다. 전령도 이상한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으나 명령이 명령인지라 무전기를 둘러매고  손전등을 소총에 맨 채 차에서 내렸다.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추고 있는 막사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무전병이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무전기에서는 어떻게 된거냐고 당직사령인 군관이 계속 호통을 쳤다.

  "막사... 안입니다. 이상하게... 병사들이... 자고 있습니다. 모두.. 흔들어 깨워보겠습니다. 이봐! 일어나!"

  1999. 11. 20  00:15  평남 개천, 중국군 16병단 25집단군 사령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군관이 참다 못해 소리질렀다.

  "도대체 어찌 된거야? 212 사단 전체가 나자빠져 자고 있단 말야? 초병도 안세우고?"

  "으..."

  군관은 잠시 침묵 후에 무전기에서 전령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들어야했다.

  "다, 다 죽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병사들도, 총을 들고 문에 기대고 있는 병사도 다... 옆 막사에 가보겠습니다."

  집단군의 군수참모이며 오늘밤 야간사령인 추 대좌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 사단 전체가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다 죽었단 말인가?  옆 막사에도 시체만 있다는 전령의 비명에 가까운 보고를 받고 참을 수가 없었다. 즉시 214 사단에 비상을 걸어 212 사단 주둔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적의 매복이 예상되니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곤히 자고 있던 집단군 사령도 깨워 보고했다. 212 사단 전체가 야습을 당해 전멸했으니 적 1개 사단 병력 정도가 후방에 남아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214 사단에 이어 집단군 사령(正職--사령관)이 집단군 직속부대를 이끌고 서둘러 212사단의 주둔지인 매암산 아래쪽으로 출발했다. 먼저 도착한 214 사단장의 무선보고가 왔다.

  "212 사단은 없어졌습니다. 남은 건 1만여구의 시체와 철저히 부서져서 사용불가능한 장비 뿐입니다. 곳곳에 휴발유가 뿌려져있습니다.아마 불을 지르려다 황급히 도망친것같습니다."

  집단군 사령은 숨이 멈출 지경이었다.  한반도 침공작전 이래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건 처음이었다. 아니, 아시아 각국 침공작전을 펼친 이래 처음이었으며 더우기 한명 남기지 않고 몰살당한 것 또한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도대체 적은 어떻게 그 많은 병사들을 죽였나?  총소리는 없었지 않은가."

  "예. 저도 방금 도착해서 몇 십 구 안봤지만  대부분 칼이나 송곳 종류, 또는 신경가스에 당했습니다. 일부 소음총에 의한 사망도 있지만.."

  갑자기 무선에서 폭음이 연속적으로 들리며 사단장의 말이 끊겼다.정직은 분노에 부르르 떨었다.  212 사단에 이어 214 사단까지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이런 지경에 다음날로 예정된 집단군 전체의 이동은 의미가 없었다.  집단군 휘하 5개의 사단 중에서 벌써 2개를 잃었다. 그리고 이런 상태라면 적지의 점령도 의미가 없었다.공격하고 점령해봐야 이렇게 적이 자기 세상인듯 활개 치지 않는가. 사령이 멍청하게 무전기를 보고 있는데  무전기에서 다시 사단장의 무선 보고가 흘러나왔다.

  "당했습니다.  적은 단발적인 부비트랩을 쓰지 않고 212 사단 숙영지 전체에 대규모 지뢰원을 조성했습니다.지금 피해상황을 조사중입니다만 크게 당한 것같습니다. 한 방에 날아갔습니다.  남은 인원이 얼마 없습니다!"

  정직은 분노와 공포에 몸을 떨었다.적은 아군이 전멸한 212사단의 주둔지에 대규모 부대가 정찰하러 올 것을  미리 알고 지뢰밭을 만들어서 214 사단까지 날려버린 것이다. 서둘러 도착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자신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같이 몰려왔다.그러나 자신의 직분을 잊지는 않았다. 즉시 집단군 통신실을 무선으로 호출했다. 통신차에 있는 3개의 강력한 무선 안테나가 산지에서도 신안주시의 집단군 사령부에 무선 신호를 보냈다.

  "전 집단군에 비상을 걸어! 적은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하나 남김없이 사살하도록 전하라. 빨리 가!"

  집단군 사령은 직속 연대의 길을 재촉했다.저 멀리 212사단의 주둔지였던 곳이 불길에 쌓여있었다.저곳에는 자신의 또다른 부대인 214 사단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이다.  무한궤도를 갖춘 YW-531 H APC의 파생형인 85식 장갑 지휘차에서 머리를 내밀고 망원경으로 상황을 살피던 사령은 북쪽 262고지 쪽에서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얼핏 느꼈다.순간적으로 위함을 느껴 지휘차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갑자기 목에 큰 충격이 와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해치에 몸을 걸친 채 부대행렬 곳곳에 섬광과 함께 불길이 치솟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했다. 목에서 계속 뭔가가 흘러 나오는 느낌이 이어졌다.

  새벽에 심양에 본부를 둔 조선공격군 예하 16병단 사령부에 당중앙군 사위로부터 기다란 제목의 전문이 도착했다.

  < 금번 16병단 25집단군 예하 212 사단과 214 사단, 집단군 사령부 직속 자동차화연대의 참상에 관한 군사위 정보분석소위의 보고사항과 조선공격군에 대한 군사위의 명령 >

      이번 참상은 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소속의 특수부대인 저격여단 야간전대대의 소행으로 추정됨.절대 인민군이나 남조선군의 패잔병집단이 아님.야간전대대는 야간전 전문 전투부대로서의 특수훈련을 이수, 무기도 무음무기를 주로 사용하며 백병전에 능함.달빛이 전혀 없는 암흑상태의 야간에도 10미터 이상 떨어진 상대방의 명찰을 인식할 정도임. 참고로 저격여단은 전원이 각종 무기와 폭발물의 전문가들임. 적이 소수라고 무시하는 행동을 절대 하지 말것.  주간에 적 발견지 반경 40km 이내를 포위, 추적하여 섬멸할 것이며 이들과의 야간전은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회피할 것. 이상. 중화인민공화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리루이환

  1999. 11. 20  05:00  평안남도 개천군

  비상이 걸린 중국군 제 16병단 사령부가  북경으로부터 온 전문을 받은 바로 그 시간에 인민군 야간전 대대의 병사들은 산길을 타고 동쪽으로 40여 킬로미터를 행군하여 안주로 향하는 25집단군과 엇갈려 개천군에 있는 용린사(龍麟寺) 남쪽 숲속에 도착, 나무 밑둥을 파고 들어가서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자고 있었다.  새벽이란 이들에게는 암흑의 시작을 뜻했다. 너무 밝아 활동을 못하는 것이다.

  밤에만 활동하므로 자신들을 드랴큘라라고 자조하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모두들 밤이 좋았다. 부득이한 이유로 낮에 전투를 수행해야할 경우에는 야간전투시 일반보병이 착용하는 야시경처럼 자신들은 광량조절필터가 달린 안경을 착용해 햇빛으로부터 자신들의 눈을 보호해야만 했다. 무덤 뒤쪽에서는 대대장이 중대장들을 모아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기러니끼, 우린 여기 집단군 사령부를 공격하는기야. 집단군 사령이 아까 우리에게 뒈졌다는구만. 동무들 어제 뎡말 수고 많았어.여단장 동지와 통일참모본부에서 칭찬이 대단해."

  나이든 대대장이 억센 함경도 사투리로 부하 군관들을 격려했다.군관이라면 당연히 평양말인 문화어를 써야함에도 대대장은 말 배우는 것과 동시에 진급도 포기해 버렸다. 대대장이 부하 통솔 잘하고 전투지휘 잘하면 되지 꼭 애써가며 평양말을 배워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그는 자신의 사투리를 고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 대대장이 통일참모본부로부터 전송된 자료를 지도와 대조했다.

  "이 지점이구만. 보급상태는 어때?"

  적진 한복판에서의 보급문제는 심각했다. 어제밤 큰 전투를 치르면서 자체보유한 탄약과 폭발물을 다 써버렸는데 다행히 전투보급 체계가 같은 중국군으로부터 많은 무기를 노획할 수 있었다. 212사단의 주둔지에 매설한 지뢰도 212사단의 무기고에서 노획한 것이었다.  그러나 야간전대대 고유의 보급품은 조달할 수 없었다.

  1999. 11. 20  05:00  서해상, 북위 37도, 동경 125도

  서해의 짙은 새벽 안개를 해치며  대규모의 선단이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회색으로 선체를 칠한 배들은 꿈결처럼 파도를 헤치며 항진하고 있었는데 선두의 배 마스트에는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오성홍기!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함대가 서해 바다를 새까맣게 메우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항공모함 2척, 미사일 순양함 5척, 미사일 구축함 8척, 프리깃함 12척 등 배수량이 큰 대형함만 27척에 각종 미사일고속정과 어뢰정, 소해정 등 중국 해군의  최신예함들로 함대를 구성하여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수많은 수송함과 전차양륙함이 따랐다. 또한 바다 속에는 중국 해군의 수 십 척의 잠수함들이 우글대고 있었다.

  11. 20  05:30  개성, 통일참모본부

  "대규모 함대입니다.  서해상에 수십척의 중국 함선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상륙전이 아닌가합니다."

  고단한 새벽잠을 깬 참모들이 투덜대며 자리에 대충 앉자, 양 중장이 청천벽력 같은 말로 서두를 꺼냈다. 그의 다소 당황한듯한 설명을 듣고 모두들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겨우 병력을 동원하여 막강한 중국 지상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판에,  또다른 상륙전이라면 가용자원이 딸리는 통일 한국군으로서는 막을 도리가 없을것같았다.

  "적 함대는 어떻소?  규모는?"

  이 차수가 묻자 양 중장이 이제야 생각난듯 화면을 켰다.

  "적 함대의 현재 위치는 덕적군도 남서방 100 km 정도입니다. 해주만 상공에 떠 있는 조기경보기의 보고로는 대형함이 30여척이라고 보고 하고 있습니다.  함종은 아직 안밝혀졌지만 아군 정찰기가 다수 떴으므로 곧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위치로 보나 규모로 보나 상륙부대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덕적군도라면 인천 서쪽 아니오? 그럼 혹시 인천쪽으로 상륙하는 걸까?"

  이 차수가 매우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이들의 접근을 제지한다는 것은 현재 거의 파산상태에 있는 서해함대나 남북한 공군의 능력으로서는 무리였다.  상륙을 허용하고 지상에서 싸우는 것밖에 도리가 없어 보였다.

  "적 함대의 위치로 봐서는 인천은 아닐 것으로 봅니다.  현재 아군은 서울에서 평양 사이의 지대에 대부분이 몰려있으므로 아마도 적은 상대적으로 방어가 취약한 태안반도나 아산만 쪽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음... 평양보다는 서울이 더 위험하게 됐구만... 이거 원..."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혀를 찼다. 전에 묘향산과 청천강 방어선이 안주전투의 대참패로 뚫리고 평양이 위험해졌을 때 국군 참모들은 평양을 포기하고 멸악산맥을 방어선으로 삼자고 주장했었다. 중국 장갑집단군의 위력이 워낙 막강해서  평야지대에서는 방어하기 곤란하다는 것이 국군 참모들의 주장이었지만, 인민군 입장에서 수도인 평양을 내준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이야기였다.  대전차 대대와 남쪽 대학생들의 컴퓨터 실력 덕분에 평양 실함의 위기를 넘기자마자  이젠 서울이 위험해진 것이다.  인민군 장성 입장으로서는 남쪽이 북쪽을 도운 것처럼 이번엔 북쪽이 남쪽을 도울 수도 없었다. 어쨋든 아직 북쪽에선 중국군들과 전투중이며 회복하지 못한 지역이 더 많았기때문이다.

  "현재 충청남도의 병력은 어떻소?"

  한국 공군의 이 호석 중장이 물었다.  양 중장이 자료를 찾아 화면에 덧붙였다.

  "향토사단이 하나 있습니다.  주로 해안방어 임무라서 기갑이나 항공 전력은 없습니다. 예비사단 2개는 지금 편성이 끝났고... 이건 원래 동부전선에 투입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취소해야 되겠죠. 그리고 현재 지원가능한 공군 비행장은 대전밖에 없습니다.  다른 비행장의 전투비행단은 현재 정수 미달입니다. 현재 제 8전투비행단이 주로 평양상공의 요격임무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서부전선의 항공지원이 취약해지겠군요."

  "아무래도 중국군은 우리측 전선의 강화를 방지하기 위해 제 2전선을 구축하려는 것 같습니다.  여수에 상륙하려던 것처럼 우리측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반도의 협소한 지형상 중국군의 대규모 병력이 운신할 폭이 좁아  중국측으로서는 전선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병력의 우위를 십분 발휘하지 못하자 통일한국군의 전선강화를 막을 목적으로 서해안에 상륙전을 시도하여 북쪽 전선을 상대적으로 취약하게 하려는 것이 중국의 목적이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자 참모부 소속 중위가 받아  전화를 양 중장에게 넘겼다.  양 중장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더니 화를 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루만 빨리 알았으면 이런 위기가 오지 않았지. 왜 이제야 말하나? 지금 서해안으로 새까맣게 몰려들고 있단 말일세. 그래.. 응... 자네들도 빨리 와주게."

  참모들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 양 중장의 얼굴을 살폈다.

  "그 대학생들, 아니,  컴퓨터 전문가 소령들이 이제야 중국군의 상륙 계획을 알아냈다는군요. 하루만 빨리 알았어도 어떻게 막아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 됐습니다."

  "미리 알았다고 해도 방법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병력이 없잖소? 해군도 동원하기 힘들고..."

  "우리 서해함대는 다들 평안남도 서쪽 바다에 몰려 있습니다. 남해함대는 제주도에 대한 중국의 재공격을 막기 위해  제주도 서해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동해함대는 함경도쪽의 후퇴작전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충청도 서해안은 상대적으로 방비가 너무 허술했습니다."

  국군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이 탄식하듯 말했다. 중국의 군사력은 거의 무진장할 정도라며 모두들 걱정했다.

  "그러면 제주근해에 배치된 남해함대의 일부를 태안반도 근해로 이동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요?"

  양 중장이 걱정스러운 듯 묻자 심 중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최고 순항속도로 이동한다고 해도 최소한 16 시간은 걸립니다. 남서해안의 항로가 원래...  그리고 남해함대에서 군함을 빼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 중국의 다른 함대와 대치중이라는 보고입니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함대로 적의 상륙을 저지하기는 무리입니다.  다른 방법을 연구해야합니다. 물론 단 하나의 희망이 있긴하지만..."

  "단 하나의 희망이라뇨? 그게 뭡니까?"

  박 정석 상장이 묻자 심 중장이 대답했다.

  "그 해역에는 우리 209급 잠수함 2척이 있습니다.  이들의 활약을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군은 대함전 능력이 어느 정도 될까요?"

  심 중장이 겨우 2척의 잠수함으로 어찌 해보겠다는 자신의 의견이 쑥스러운듯 말미를 돌렸다. 이 호석 중장이 공군을 대표해서 대답했다.

  "현재 남북의 공군력은 전쟁 전의 절반 수준입니다. 격추 및 파손,또는 정비 중이라서 실제 가용 전력은 전쟁 전의 전투기와 공격기 합계 1천 5백대에서 현재 800대 정도입니다. 특히 F-16의 손실이 큽니다.  그렇다고 중국의 신예전투기들을 상대로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성능이 떨어지는 F-4나  F-5를 투입하기도 무리입니다. 미그-23은 더욱 힘들고요."

  "음......"

  참모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일단 전북의 32사단을 충청도 해안으로 돌리고,  북쪽으로 이동중인 전남의 예비 61사단을 긴급배치하면 어떨까요? 어차피 해군이나 공군의 지원은 힘들것으로 보이는데..."

  양 중장이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는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육군의 막대한 피해를 각오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을 참모들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역상륙은 어떨까요?  일단 상륙을 허용하고 적의 상륙지점에 우리가 역상륙하면..."

  심 중장이 안을 내놓았으나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일단 해군력이 강하지 못한 통일한국군으로서는 역상륙할 자원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역상륙은 상륙병력 전원의 전멸을 각오해야할 정도로 위험한 작전이다. 세계전사상 역상륙이 시도된 적은 많았지만 성공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물론 적의 군수물자에 대한 타격을 목적으로 한다면 별개의 문제였지만, 상륙하는 측에서도 항상 역상륙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상륙전의 일반교리였다.

  "일단 소규모 부대로 역상륙은 시도합시다.그래야 상당수 상륙병력을 해안에 묶어둘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죠."

  참모들이 한국해군 UDT의 역상륙에 대한 안을 통과시킬 때 대학생 해커들, 이제 육군 소령이 된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며칠 밤을 꼬박 새워서인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일단 컴퓨터와 회의실 중앙의 대형 모니터를 연결시킨 후, 구 성회 소령이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인민해방군 해군의 경우 디렉토리가 달라서 찾는데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현재 상륙부대의 위치와 규모입니다. 보시죠."

  구 소령이 화면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장치를 가동시키자 화면에 중국군 상륙부대의 위치가 나타났다.  곧이어 다시 상륙부대의 규모와 소속 함정들의 제원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해신 시리즈 전투항모 한 척과 미국의 니미츠급 대형항모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수상전투함들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동해함대의 전력 거의 전부입니다."

  심 중장이 놀라 외쳤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중국 해군에 수입되어 시험 운항을 마치고 처음으로 작전에 참가했는데,  놀랍게도 수심이 낮은 서해로 온 것이다.

  "중국의 공격형 잠수함이 모두 동원된 듯합니다. 원잠인 한급 외에도 킬로급과 로미오급 등의 재래식이 60척이나 되는군요."

  박 상장도 놀라며 말했다.  참모들의 벌린 입들이 다물어지지 못하고 있을 때 심 중장이 조용히 말했다.

  "흘수가 깊은 항모들은 해안 30km까지 밖에 접근을 못합니다. 상륙부대의 약점을 찾을 수도 있겠는데요.  항모부대와 상륙부대는 분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해역에 섬들이 많으니 공군기를 적절히 이용하여 상륙부대에 공대함 미사일을 날리면..."

  "그럽시다.  일단 지상군이 해안에 배치될 때까지 공군이 막는데까지는 막아봐야죠."

  이 호석 중장이 동의를 표하자 참모들이 모두 찬성하고  곧 통일참모본부의 명의로 공군에 명령을 내렸다.

  "당 군사위의 명령서에 따르면 상륙지점은 아산만입니다만,주요 공격 목표는 서울로 되어있습니다.상륙병력은 1차로 6개 사단이며 추가로 12개 사단이 지원될 예정이랍니다. 선발 6개 사단 중 1개 사단은 해병 기갑사단입니다."

  구 소령이 말하자 참모들이 시름에 잠겼다. 중국군은 제 2 전선의 구축을 염두에 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라는 위기감이 참모들 사이에 번졌다.

  "차라리 남포쪽으로 올 것이지..."

  박 상장이 한탄하자 국군 장성들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는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다음에 말씀 드리리다. 우리 인민군은 해군이 약해보였으나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모를 것이오. 다음에 말씀 드리리다."

  국군 장성들은 박 상장이 무슨 큰소리를 치나 했지만 이 차수는 빙긋 웃었다.

  "일단 1차 상륙병력을 철저히 때려부셔야 적의 2차 상륙 기도가 좌절될 것이오. 이 6개 사단을 막을 방도를 세웁시다. 가용병력은 어떻소?"

  이 차수가 얼른 말을 돌려 묻자 양 중장이 다시 설명했다.

  "충남 33사단, 충북 35사단, 전북 32사단,전남 31사단 등 향토사단이 있고, 편성과 이동중인 전남의 61,62 예비사단, 전북 63,64 예비사단과 충남북의 65,66,67 예비사단 까지 동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비사단이라 장비가 형편없습니다. 잘못하면 대량살육 당하고 적의 서울 진입을 허용할 수도... 국군 수방사 예하 기갑사단 하나를 동원해야 합니다."

  "안되오.수방사 예하 병력은 지금 대부분 최전선에 있고 수도 인근에 배치된 부대는 제 1기갑사단 하나밖에 없소. 창설과 교육중인 기갑사단 2개를 빼면 최후의 예비부대란 말이오.  이 부대까지 소모해 버리면 앞으로 전쟁을 어떻게 해나가라는 말이오?"

  정 지수 대장이 계속 듣고만 있다가  마지막 보루인 제 1 기갑사단의 출동에는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이 시간에도 중국 해군의 상륙부대는 점점 아산만에 접근하고 있었다.

  11. 20  06:10  백아도 남서쪽 10km 해역, 한국해군 잠수함 장보고함

  "소나에서 발령소로! 몰려옵니다. 2-5-5, 거리 30에서 45km, 대형 수상함 다수!"

  일반적으로 수심이 얕은 해역에서는 패시브 소나의 유효거리가 길다. 그러나 긴만큼 정확한 거리의 측정이 어려워진다. 대양상에서의 패시브 소나의 최대 유효탐지 거리는 약 80해리이며, 구형 하푼(HARPOON)의 사정거리도 이와 동일하다. 지금 장보고함에서는 소나 유효탐지 거리보다 훨씬 짧은 거리에서 측정하고 있지만, 수심이 얕은 해역에서는 거리 측정의 부정확성 때문에 함장이 발사를 망설이고 있었다.

  "미속 전진, 3-0-0, 삼각측정을 한다. 적 잠수함의 활동도 잡히나?"

  함장 서 승원 소령이 잠망경을 보면서 명령을 내렸다. 해군 사령부를 경유한 통일참모본부의 명령으로는 적 상륙부대 중에서도 항공모함이나 미사일 순양함 등의 대형 함정보다는 상륙부대를 실은 수송함을 노리라는 명령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차양륙함이라면 최고의 목표라는 설명도 있었다. 그러나 함장으로서는 적 잠수함의 숫자가 너무 많은 것이 걱정되었다.

  "인근 해역에 잠수함의 활동은 없습니다."

  소나실로부터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전진 미속, 3-0-0"

  부함장인 김 철진 대위가 복창하자 잠수함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 해군 잠수함부대로는 최초의 전투작전 투입이었고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승무원들이 모두 바짝 긴장을 하고 각종 계기를 주시했다.

  "항공기의 레이더 전파를 잡았습니다. 초계기의 해상수색 레이더입니다. 3-1-4에 거리 12km, 아! 또 있습니다.  2-0-9, 거리 15km! IL-28의 대잠공격형입니다."

  전파분석반에서 초계기의 존재를 알려왔다.중국의 해상초계기가 이렇듯 한반도에 접근한 것은 전쟁 발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국은 IL-28 경폭격기를 대잠용으로 개발한 바 있다.그 정도의 거리라면 초계기의 레이더에 잠수함의 잠망경이 잡히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하던 함장이 잠망경을 보더니 새로운 사실을 알렸다.

  "2-3-5에 적 항공기 다수! 잠수한다. 다운트림 최대!"

  함장이 잠망경을 내리고 뛰어내려왔다.  함내에 비상이 걸리고 적 비행기의 육안수색으로부터 피하고자 최고의 속도로 잠수를 시작했다.

  "적 항공기를 식별해 봐. 기종은?"

  "섬-15형 함재전투기입니다. 총 4기. 거리가 멀어 탑재무기의 실루엣이 불명확하지만 해상초계라기보다는 백아도 폭격이 목적이 아닐까요?"

  전자전 사관이 비디오를 되돌리며 함장에게 보고했다. 덕적군도의 한 섬인 백아도에는 해군 레이다 기지가 있으니 중국군의 목표가 될만했다.

  "좋아, 적 함대의 해석치는 나왔나?"

  아군이 공격받건말건 일단 잠수함이 공격목표가 아닌 것이 서 소령으로서는 다행스러웠다. 어쨋든 임무는 하고 볼 일이었다.

  "선두의 미사일 구축함과 소해정들의 데이터는 나왔습니다만, 항모와 수송함들은 뒤쪽에 있어서 신호들이 뒤섞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좀 더 전진을 해서 알아보는게 낫겠습니다."

  발사관제관이 보고하자 함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전진을 명했다. 잠수함이 수중 15노트의 속도로 천천히 적 함대를 향해 나아갔다.

  11. 20  06:20  대전 제 8 전투비행단

  브리핑실에 가득 모인 전투기 조종사들이 한국 공군 최초의 대함공격을 준비하면서 바짝 긴장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전투기와 공격기의 구분이 거의 없는 한국공군으로서는 특히 대함 공격의 실적이 전무했다. 그래도 하픈이라도 있으니 기관포로 간첩선을 막던  옛날보다는 상황이 좋아진 편이었다. 모두가 최초의 대함미사일 공격을 앞두고 들뜬 채 단장의 설명을 들었다.

  "가장 위험한 것이 이 섬형 함재기들이다."

  단장이 화면에 러시아 수호이 27의 함재형 개량형인 수호이 27K의 중국형인 섬(殲)-15호 전투기를 비쳤다.

  "산뚱 반도로부터 출격하는 해군 공격기와 전투기들도 있지만 거리상 체공시간이 짧아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들은 항모에서 바로 출격하고, 최근의 정보에 의하면 이들의 추력대 중량비가 기존 수호이-27K와는 상대가 안되게 향상되었다고 한다.미국에서 엔진을 개량했다는 보고도 있다.  이것은 직접 이들과 교전한 조종사들로부터 얻은 정보이다."

  브리핑실에 신음 소리가 퍼져나갔다.  소문대로 과연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중국을 편든다는 말이 맞았다. 거대한 적인 중국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절대 밝지 못했다.

  "우리는 이 함재전투기를 상대하는게 아니라 적함을 공격하는 것이다. 모두 착각 말도록!"

  비행단장인 진 권휘 준장이 비행복을 입은 채 적 함대의 진형을 설명하며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적 함대 진형은 포클랜드 전쟁 당시, 산 카를로스 상륙작전 때의 영국함대의 방공진형과 같다. 제 1진은 전투기의 CAP(전투공중초계), 2진은 미사일구축함의 광역대공미사일망, 3진은 프리깃함들에 의한 단거리 SAM과 근접화기이다. 가장 후미에 적 항모와 양륙함 등의 대형함정들이 있다. 물론 우리의 목표는 양륙함과 수송함이 된다.제군들이 적 항모를 공격하고 싶어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적 상륙 저지이다. 이번 우리의 작전은..."

  진 준장의 작전 브리핑에 조종사들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더니 금방 정색을 하고 주목했다. 어쨋든 목숨을 건 작전이었다.

  "1대대는 적기의 유인과 요격을 맡는다. 2대대는 역시 대함공격이다. 2대대는 내가 직접 지휘한다. 자, 가자!"

  전투조종사들이 브리핑실을 뛰쳐나가 각자의 전투기에 올랐다. 몇 번의 공중전투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미 며칠전의 자신들이 아니었다.가끔 조종사들이 전투중 손을 보기도 하는데 인간을 죽인 것은 자신의 손이 아니었으며, 역시 그들의 손은 피묻은 더러운 손도 아니었다.

  이미 무장을 끝낸 F-16 전투기들이 한대씩 날아오르기 시작했다.아침 햇살이 눈부신 하늘을 천천히 날아오르는 전투기들은  이동하는 철새처럼 평화로와 보였다.

  11. 20  06:30  백아도 남서쪽 20km 해역, 한국해군 잠수함 장보고함

  "소나에서 발령소로! 2-0-9, 거리 15마일에 대형함정군.  1-8-5의 선두 집단과는 배수량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  잠수함들은 전방에 배치. 대형함정 음문해독 중... 2-0-2에 루다급 구축함 키닝, 2-0-8... 이건!"

  "무슨 일이야?"

  소나원이 비명을 지르자 함장이 소나실로 뛰어갔다. 소나원이 가리키고 있는 음문 그래프는 함장은 본 적도 없는 초대형 수상함이었다.  서 소령이 마른 침을 삼켰다.

  "혹시 이건 9만톤급 원자력항모?"

  함장이 소나원의 표정을 살폈다.  제발 자신의 판단이 틀리길 바라면서 그를 봤지만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중국에 없는 줄로 알았던 9만톤급 항모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곧 출동할 한국 공군기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상부에 보고할 것도 없이 이 핵항모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했다.

  "퇴역했던 니미츠입니다. 96년 림팩(RIMPAC) 훈련 때 봤습니다. 아니, 모의전투를 치뤘습니다."

  서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자신은 구축함의 대잠사관으로서 바로 이 장보고함을 쫓고 있었다. 결국 장보고함이 승리했고, 잠수함의 가상 미사일공격 결과 니미츠는 침몰로 판정되어  미국 해군을 깜짝 놀라게 했었다. 속도가 느린 통상형 잠수함에 의한 핵항모의 침몰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RIMPAC은 사실상 구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한 환태평양 군사훈련이었는데, 적 잠수함과 장거리 폭격기, 각종 수상함의 대함 미사일에 대한 방어를 하며 상륙부대를 목표해역까지 도달시키는 훈련이었다.  격년제로 실시되며 한국도 빠짐없이 참가했지만,통일이 되면서 북한의 주장에 따라 한국은 불참하게 되었다.

  "그 때 이 중령님은 3개의 허수아비를 발사했었지. 모두가 깜짝 놀랐어. 진짜를 다시 찾는데 5분이 걸렸고, 그 때는 이미 4기의 미사일공격을 받은 후였거든.  그리고 최종평가 때 이 방법에는 대책이 없다고 했지. 좋아, 우리도 이 방법을 쓰지."

  서 소령이 씩 웃으며 유선유도어뢰에 장보고함의 음문을 입력할 것을 지시했다. 발사관제관인 고 중위가 신중하게 음문 데이터를 입력시키는 사이 서 소령이 한마디 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량의 무기를 팔았다는데 설마 핵항모까지 팔아치울 줄을 몰랐어.아마 미국은 선전 때문에라도 통상형 잠수함에 가상격침된 기록이 있다고는 말하지는 않았을거야. 우린 똑같은 방법을 쓴다. 물론 이 수심에 온도층은 존재하지 않지만 방법이 있지. 1,2,3,4번관 어뢰장전! 5,6,7,8번관 하픈 장전!"

  고 중위가 데이터 입력을 보고하자 서 소령이 함내가 떠나갈 듯 외쳤다.

  "자, 돌격! 우리의 존재를 알린다. 수중항주 25 노트."

  서 소령은 부함장의 복창이나 어뢰와 미사일의 장전확인도 없이 바로 최고속도를 명했다. 갑자기 선체가 골재채취장의 덤프트럭 소리를 내더니 속도가 가해졌다. 209급 재래식 잠수함이 낼 수 있는 최고속도인 25노트로 5킬로미터쯤 항주하자 서 소령이 명령을 내렸다.

  "1번 어뢰, 목표 1번함, 어뢰의 초속(初速)은 25노트, 발사와 동시에 10도 좌현으로, 함을 20노트로 감속!"

  잠수함 승무원들이 갑작스런 명령의 홍수에 휩쓸렸다. 함장을 통하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명령을 주고받기 바빴다.

  "1번 어뢰 발사 완료!"

  "감속 20노트, 심도 80!"

  "1번 발사관 어뢰 장전."

  명령과 복창이 혼선을 이룬 가운데 부함장이 확인에 바빴다. 한국 잠수함 승무원들에게 있어서 96년 림팩에서의 니미츠 격침은 당시 함장인 이 중령과 함께 신화로 남아 누구나 이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함장이 시계를 보더니 손을 천천히 치켜 올렸고, 이를 본 승무원들이 다음 행동을 준비했다.

  "3번 어뢰, 목표 2번함, 어뢰의 초속은 여전히 25노트,  발사와 동시에 10도 좌현, 함은 15노트로 감속!"

  다시 한번 함내에 일단의 혼란이 오고,  이내 다시 잠잠해 지더니 모두들 함장의 치켜든 손을 보았다.

  "4번 어뢰, 목표 3번함, 초속 25노트, 발사와 동시에 10노트로 감속, 우현 전타!"

  장보고함이 4번 어뢰를 발사하고 무음잠항에 들어가며 천천히 부상했다. 항해사관은 이해역을 손바닥 들여보듯 잘 알고 있었다. 좌전방 1km에 암초가 있고, 이것이 장보고함을 지켜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3발의 어뢰는 긴 와이어를 끌고 장보고함의 음향을 발하며 수중을 항주했다. 중국해군은 다가오는 잠수함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즉각 프리게이트함과 대잠헬기들을 어뢰쪽으로 보냈다.

  "어뢰 수중항주중, 1번함까지 2300, 2번함 3100,3번함 2700! 적함 접근 중, 회피행동은 없습니다!"

  중국 프리깃함들은 발사된 어뢰들과  3개의 어뢰가 발사된 지점을 연결한 장보고함의 추정위치를 쫓고 있었으나, 장보고함은 이미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다.

  "아직 속고 있군. 좋다. 잠망경 올려, 발사준비."

  함장이 명령하자 전기적 작동에 의해 잠망경과 함께 전파수신 안테나가 물 위로 올라갔다. 전자전 하사관이 주변해역의 레이더파를 잡은 후 소나와 레이더의 자료를 대조하여 적함과 항공기들의 위치를 수정 보고 했다. 함장이 잠망경으로 주변 항공기들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동안 발사관제관이 목표 데이터를 최종 입력하고 발사준비를 마쳤다.  중국 함정들이 추적하던 물체가 잠수함이 아니라 어뢰라는 것을 확인하고 급히 회피행동에 들어가서 소나의 데이터는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대신에 무선데이터를 참고로 데이터를 입력하여 목표에 대한  데이터는 더 정확해졌다. 발사절차에 따라 복창이 이어졌다.

  "5,6,7,8번관 연속 발사! 발사 즉시 재장전하여 동일 목표에 대해 발사! 어뢰는 최종속도로!"

  11. 20  06:35  같은 수역, 한국해군 이천함

  "소나에서 발령소로. 잠수함 접근 중! 방위 3-1-4, 거리 3800."

  소나원은 잠수함의 심도를 빼고 보고했다. 최고 수심이 1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이 해역에서 심도는 의미없는 숫자였다.

  "음... 대기."

  이천함은 해저에 함을 눕히고 한 시간째 꼼짝 않고 있었다.패시브 소나로 수면 위의 상황을 계속 살피고 있었는데, 중국 수상함정들의 수가 워낙 많아 공격을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프리깃함이 연속적으로 탐신음을 발사하고 초계기들이 청음소나를 투하했다. 움직이면 바로 들켜서 공격도 못하고 당할 상황이라  이천함은 중국의 대규모 함대를 바로 머리 위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중국함대가 다 지나가자 속도가 느린 잠수함이 온 것이다. 함장은 잠수함을 공격할까, 아니면 기다렸다가 수상함정들을 공격할 기회를 노릴까 고민했다.

  "함형을 확인해봐."

  함장이 소나원에게 명령하자 소나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잠수함의 소리와 중국 잠수함의 특징이 기록된 화일을 비교했다. 계속 소리와 음문 그래프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로미오급입니다. 현재 거리 3200. 속도는 10노트입니다."

  함장은 중국의 로미오급 잠수함에 대해 생각했다.해군에서 발간한 대잠수함전용 기밀문서에는  중국의 로미오급(중국 해군의 제식명 033급) 잠수함은 대잠전 능력이 없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탑재병장은 단지 14기의 SEAT-60 패시브 호밍 어뢰 뿐이었는데 이 어뢰로는 잠수함을 공격할 수 없었다.  최고 속도는 수중 13노트, 장보고함과 같은 209급 잠수함인 이천함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속도였다.

  함장은 고민했다. 대형전투함정이 당연히 공격 우선순위가 높지만,적 잠수함을 내버려두기도 아쉬웠다. 게다가 이 잠수함은 이천함의 존재도 모르지 않는가.그리고 어차피 중국 함대는 이천함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더더욱 공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조금 전 중국함대가 머리 위로 지나갈 때 함장이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아 승무원들의 불만이 커졌다는 것이다.함장으로서는 승무원들에게 겁장이로 비쳐지기도 싫었다. 움직이기로 했다!

  "거리 1500이 되면 어뢰 2기 발사. 발사 후 즉시 3-0-2로 항진한다."

  좁은 잠수함이 갑자기 바빠졌다. 승무원들이 어뢰발사 준비와 이어서 있을 잠수함의 이동 준비에 바빴다.

  "발사!"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어뢰가 발사되었다.  좌우현에서 각각 한 발씩 발사된 어뢰는 35노트의 속도로 중국 잠수함을 향해 직진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되어 중국 잠수함은 피할 사이도 없었다.

  "가자, 항속 15노트."

  "명중!"

  함장의 항진 명령과 소나원의 보고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곧이어 어뢰에 명중된 중국 잠수함에서 나는 폭음이 이천함을 때렸다.이천함은 서서히 속도를 내어  침몰한 중국 잠수함 옆을 지나쳐 서쪽으로 항주했다. 커다란 폭발음이 얕은 서해바다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수심이 워낙 얕아 해저로부터의 반향이 심했다. 이천함은 이 소음의 그늘에 숨어 중국 프리깃함과 초계기를 피했다.

  11. 19  06:35  서해상

  늦가을 서해의 차가운 바다 위로 물보라가 뿜어져 올라왔다.4발의 하푼미사일이 부스터에 의한 추진력을 받으며 상승하다가 곧 날개가 펴지며 수면비행에 돌입했다.  잠시 후 다시 4발의 미사일이 수면으로 나오고 더 이상 이어지지는 않았다. 장보고함은 목표포착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바다 속으로 숨었다.

  수면 위 3 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하픈 미사일들은 같은 목표를 향하여 날아갔다.  중국 함대는 잠수함으로부터 미사일이 발사된 것을 확인하고 초계기와 대잠헬기들을 처음 미사일이 발사된 해역으로 급파하는 동시에 회피행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미사일들은 저고도로 날기 때문에 발사된 순간만 잡히고 지금은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다.

  11. 20  06:37  장보고함

  "2-3-5에 수중폭발음! 잠수함이 파괴된 것으로 보입니다."

  소나원이 보고하자 서 소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위치에는 장보고함의 자매함인 이천함이 숨어있는 것을 함장은 알고 있었다. 아마도 중국 구축함이나 초계기의 공격을 이천함이 피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서 소령의 해군 사관학교 동기인 이천함의 함장은 국산함의 성능이 더 좋다며 서 소령을 놀리곤  했었다.장보고함이 독일의 키일 조선소에서 건조됨에 반해 이천함은 옥포의 대우조선소에서 건조된 것이다.성능의 차이가 조선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천함의 함장은 항상 자신의 함이 더 좋다고 우기곤 했었다. 취역 연도가 1년의 차이가 나므로 그 사이에 건조기술이 더 발달했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후에 건조된 함들과는 성능 차이가 많이 나서  자매함으로 부르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제는 이천함의 함장을 못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서 소령의 가슴이 아팠다.

  "어뢰는 어떻게 됐나?"

  함장 서 소령이 묻자 어뢰와 적함을 추적하던 소나병이 보고했다.

  "1번 목표 거리 400, 급속 접근 중! 목표1 디코이(decoy : 회피용 미끼) 발사. 어뢰 최종속도 진입! 시간상으로는 벌써 명중했을겁니다. 아! 명중!"

  수중에서의 음파의 속도는 공중에서보다 훨씬 빠르지만,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소나에 잡히는 거리와 실제의 거리는 차이가 있게 된다.이번에도 같은 경우이다. 장보고함의 소나에 목표접근으로 표시된 어뢰는 이미 최종속도인 35노트의 빠른 속도로 목표와 충돌했다.

  장보고함의 승무원들이 무음잠항중이라 소리는 못내지만 주먹을 쥐고 흔드는 등 몸짓으로 환호를 질렀다.  어뢰는 쟝후이급 프리깃함 깡딩에 명중했다. 260 kg의 탄두가 함의 강판을 뚫고 작렬했다.

  "2번함은 어뢰 회피, 어뢰가 다시 돌아서 접근합니다. 아! 명중!"

  다시 승무원들 사이에 무언의 환호가 오가는 사이, 서 소령은 미사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한국해군 잠수함 최초의 적함 공격과 성공,이것은 자신의 잠수함으로 이뤄졌지만, 하픈의 명중 여부가 더 궁금했다.하픈 미사일이 워낙 비싸 자신은 실제로 발사한 경험도 없었던 것이다.

  11. 20  06:40  서해상

  장보고함에서 발사한 하픈 미사일 8기는  마하 0.85의 아음속의 속도로 수면 위를 스치듯 날아갔다. 하픈 대함미사일은 비록 실전배치는 오래되었지만 아직 더 이상의 좋은 무기가 나오지 않아 당당히 현역을 지키고 있었다.

  하픈과 비교되는 엑조세 미사일은 명중율에서는 신뢰할만 했지만, 지연신관 조작법이 워낙 까다로와 포클랜드해전에서의 영국함 셰필드호의 경우처럼 탄두가 폭발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셰필드호는 미사일의 연료가 폭발하여 화재로 침몰하긴 했지만,동시에 이 미사일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도 했다.그리고 엑조세와 달리 하픈만이 한국 잠수함에서 발사할 수 있었다.

  관성유도로 20여 킬로미터를 날아간 하픈 미사일들이 급상승했다. 목표를 찾기 위해 레이더를 발진시키며 돌입을 하는데, 이는 동시에 미사일 요격을 막기 위한 회피 기동이기도 해서 이를 격추시키기는  상당히 어렵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소속의 항공모함 해신 6호, 즉, 미국 해군 니미츠의 다른 이름인 이 대형 함정은 한국 공군기의 내습에 대비해 함재기들을 이륙시키고 있었다. 속도는 30노트 정도로 빨랐지만, 함재기 출격을 위해 직선 코스를 취하고 있어서 하픈 미사일의 컴퓨터에 입력된 데이터와 오차가 거의 없었다.근접방어화기인 CIWS가 이제야 미사일의 돌입을 발견하고 자동으로 사격을 개시했지만 급강하하는 미사일을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미사일은 바로 돌진하여 거대한 항공모함의 흘수선을 뚫고 들어가 폭발했다. 그 바람에 이륙중이던 F/A-18 전폭기가 중심을 잃고 바다에 추락했고, 항공모함은 큰 화재에 휩싸이게 되었다. 연이어 다른 3발의 하픈이 날아왔는데 CIWS는 이미 기능이 마비되어 미사일을 막지 못했다.

  하픈이 계속 명중하며 폭발이 이어졌다.  거대한 항모가 왼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9만톤급의 거대한 항공모함이라도 탄두중량 500 파운드의 연속된 폭발력은 견디지 못한 것이다.

  다른 해역에 있던 프리깃함이 항모를 구하려고 달려왔지만 계속 날아온 4발의 다른 하픈이 해신 6호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거대한 이 항모는 함수로부터 바다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수백명의 승무원들이 바다로 뛰어들고,  그들의 머리 위로 함재기와 탑재 헬기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11. 20  06:45  서해 상공

  "통참으로부터 연락이다. 적 항모중 1척은 니미츠급 핵항모다!  적의 함재기는 약 90대로 봐야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수호이-27K와 F/A-18로 밝혀졌다."

  진 준장이 무선으로 상황을 설명하자 무선을 통해 여기저기서 무거운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적의 덩지가 너무 크고,예상한 적기의 수가 많아질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적기와 교전하지 않는다.  우리의 목표는 대형 수상함정들이다. 작전은 속행한다."

  진 준장이 부하 파일럿들을 격려했지만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어쩌면 계획 자체를 다시 수립해야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공격하기로 작정했다.

  "풍속 20, 풍향 3-2-5, 좋다. 1번 작전 개시!"

  전투기들이 일제히 공대함 하픈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발사를 마친 전투기들은 반전하여 대전 비행장쪽으로 돌아가면서  공중에 수많은 물체를 뿌렸다. 이 물체들이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거대한 알루미늄 풍선이 되어 서풍을 타고 육지쪽으로 이동했다.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나머지 반의 전투기들은 다시 저공비행을 하여 서해상으로 돌아갔다.

  11. 20  06:47  장보고함

  "4번 어뢰는 빗나갔습니다.  아, 연속폭발음! 하픈 명중! 또 명중! 4번의 폭발음이 있었습니다. 다 맞았습니다!"

  소나병의 외침을 필두로 승무원들이 잠수함이 떠나갈듯  환성을 질렀다. 여기에는 과묵한 서 소령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는 의자 위로 뛰어 올라가 만세까지 불렀다. 스스로 무음잠항의 원칙을 깬 것이다.

  "목표, 침수음이 들립니다. 속도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미사일 발사 해역에 수중항주 중인 어뢰 다수!"

  소나병이 보고하자 서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국 항모는 최소한 항행불능이 되었을 것으고 보았다. 그리고 하픈을 발사한 후 즉시 잠수함의 위치를 옮긴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대잠헬기에서 발사한 어뢰는 5노트로 수중항주 중인 음파어뢰를 쫓고 있었다.서 소령으로서는 중국의 대잠헬기는 걱정할 것이 못되었다. 다만 MAD(자기 탐지장치)를 갖춘 초계기가 걱정이었지만, MAD의 탐지거리는 너무 짧았다.

  "샴페인이 없어서 아깝군.  이봐, 함내에 종이컵 커피라도 한잔씩 돌려, 그걸로라도 건배를 해야지."

  함장이 주방에 연락하자 주방장이  커피와 생수를 승무원들에게 따라 주었다. 모두들 진짜 술을 받듯이 좋아했다.

  "자, 우리의 승리를 기념하여 건배! 원샷!"

  서 소령이 종이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를 단 숨에 마셨다.  술잔을 마신 것처럼 종이컵을 거꾸로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털었다. 승무원들이 배를 잡으며 웃고 자신들도 따라했다. 모두들 술이 아니라 승리에 취한 것이다.

  "자, 우리 몫은 넘게 했다.  하지만 아직 사냥감이 듬뿍 있으니 그냥 가기도 아깝다.  하픈은 없지만 어뢰가 많이 남았으니 다 쓰기로 한다. 적 함대 뒤로 돌아 돌아간다. 침로 2-5-1, 심도 200, 미속 전진."

  승무원들이 이성을 찾아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잠수함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이 속도로는 적 함대를 따라가기도 힘들지만 저들도 무작정 한반도에 접근하지는 못할거야. 또 다른 기회가 있겠지."

  "소나에서 발령소로, 적 잠수함 발견, 2-1-4에 1척, 2-0-9에 한 척입니다. 거리 7000~9000 사이. 모두 원자력잠수함입니다."

  소나원의 말에 모두들 바짝 긴장했다. 원자력잠수함의 속력과 무장은 통상형잠수함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원자력잠수함은 핵무장 잠수함일 가능성도 있었다. 함대가 위험할 경우 중국군이 핵을 쓰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처리했으니 중국군이 핵을 쓸 리가 없어.  핵을 쓰려면 벌써 썼을테고... 상관없다. 미속전진!"

  서해의 특징은 리아스식 해안답게 해안의 굴곡이 심하고 해역에 섬과 암초가 많다는 것이다.바다가 얕기 때문에 잠수함의 패시브소나의 성능은 향상되지만 섬과 암초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이럴 경우 이 해역을 잘 알고 있는 쪽이 승리하기 마련이었다.

  11. 20  06:48  서해 상공

  제 8 전투비행단의  전투기들이 저공비행을 하며 중국 상륙함대에 접근했다. 고공에는 수많은 알루미늄 풍선들이 적의 레이다를 속여주기를 바라면서 바람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해주상공의 조기경보기 E-2C에서의 지령이 수신되었다. 파일럿들이 자신의 미사일의 목표를 신중히 수정하여 입력했다. 갑자기 조기경보기로부터 다른 연락이 왔다. 중국의 거대한 항공모함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야? 어쨌거나 잘됐군. 어차피 항모는 목표도 아닌데...'

  김 준장이 갑자기 사라진 중국 항모는 신경쓰지도 않았다. 단지 목표 상공에 적의 함재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반가울 뿐이었다.

  "지금이다. 발사!"

  진 준장의 한마디에 F-16전투기들이 일제히 오토맷(Otomat)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오토맷은 엑조세와 거의 같은 크기의 미사일인데 발달형인 Mk-2의 경우 data-link  장치를 미사일에 탑재하여 중간 유도가 가능하게 된다. 모두 48기의 오토맷 Mk-2, 개발국인 이태리에서 테세오라고 부르는 이 대함 미사일들이  터보팬을 가동하여 중국함대에 접근하고 있었다.

  먼저 발사한 24기의 하픈은  중국군 상륙함대의 대공미사일망을 구성하는 구축함대를 피해 크게 남쪽으로 돌아 다시 북쪽으로 선회, 수송함과 양륙함들을 노리고 쇄도해 들어갔다.

  대형 핵항모 해신 6호가 격침되어 승무원 구조와 한국군 잠수함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 중국함대 남쪽 해상에 미사일들이 나타났다.  하픈은 수면 위를 스치듯 나는 sea-skimming 방식으로 목표에 접근하기 때문에 목표 3킬로미터 이상에서는 발견되기 어려웠다. 게다가 공중전투초계에 임했던 전투기들은 알루미늄 풍선을 추격하고 있었고, 나머지 전투기들은 이미 해신 6호와 함께 가라앉았다.초계기들은 모두 미사일을 발사한 잠수함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한 상태여서,  남쪽에서 몰려 오는 하픈을 발견하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이 날은 중국함대 최악의 날이었다. 먼저, 호주에서 구입한 퇴역항모 멜버른을 개조한 소형 재래식 추진 항공모함 해신 4호가 하픈의 세례를 받았다. 3천톤급의 전차양륙함과 수송부대를 실은 류칸급 및 샨급 대형 수송함들도 하픈의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24발의 하픈 중 21발이 목표에 명중해 폭발했다. 해신 4호는 바로 침몰하지 않았으나 전차양륙함과 수송함들에게는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6척의 전차양륙함과 11척의 수송함이 침몰하거나 대파됐다.

  대형항모인 해신 6호가 침몰하자 함대지휘권은  해신 4호로 옮겼으나 해신 4호마저 피습된 지금 지휘부는 완전 붕괴되었다.개별 함정들이 후퇴를 결심할 즈음에 오토맷 대함미사일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먼저 구축함을 향하는 듯했으나 미사일구축함들이 대공미사일을 발사하자 크게 남쪽으로 선회하여 요격미사일을 피하고,  앞서의 하픈과 같은 코스를 취하여 남아있는 양륙함과 수송함들을 향해 돌진했다.

  오토맷 미사일들이 해신 4호의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나머지 양륙함과 수송함도 남김없이 서해바다에 수장시켰다. 항모들을 호위하던 프리깃함들만이 덩그러니 이 해역에 떠있었다.  이제는 보호할 것도 없었지만 자신의 안위를 더 걱정해야했다.  전투기의 호위가 없는 프리깃함이 적의 영해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했다.갑자기 썰렁함을 느낀 구축함과 프리깃함들이 전속력을 내어 서쪽으로 항진했다.

  11. 20  06:55  장보고함

  "수상에 폭발음 다수! 아마도 공군의 공격이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침몰중인 함정 다수, 엔진 정지 중인 함정도 많습니다."

  소나원이 신중한 목소리로 함장에게 보고했다.  서 소령은 이 기회에 적 함대를 공격하고 싶었지만 당장 인근 해역에 있는 중국 잠수함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장보고함은 5노트의 속도로 서서히 서쪽으로 나아갔다. 원자력잠수함들은 장보고함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수상함정들의 재난을 구경하는지, 신경질적으로 부상과 잠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소나에서 발령소로! 해상에서는 지금 카레이스 중입니다. 목표 잠수함들도 급속히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서 소령이 무슨 일인가 소나원에게 다가와서 수상항주를 지켜보았다. 수 십 개의 밝은 점들이 대잠경계 속도까지 무시한 채 서쪽으로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전투기가 없는 항모부대의 운명이란 뻔했다. 도망가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서 소령이 이들을 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다시 목표들을 살펴보았다.

  "잠깐, 핵잠수함 한 척이 급속 접근중입니다.  1-7-5, 속력 30 노트, 거리 2700. 2-5-0 방향으로 이동중입니다.  이 속도라면 소나의 기능은 상실할텐데요."

  소나원이 설명하자 서 소령이 시큰둥해지며 말을 했다.

  "좋아, 통과시켜. 대신에 도망가는 엉덩이를 걷어 차주지. 어뢰는 준비됐지?"

  서 소령은 맹수와 사냥꾼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사냥꾼이 도망가는 맷돼지를 향해 총을 쏘았으나, 맷돼지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 도망갔다. 맷돼지가 총에 맞은 장소에 갔으나 핏자국이 없어서 동료 사냥꾼은 맷돼지가 총에 맞지 않았다며 포기했다.그러나 주인공 사냥꾼은 명중됐다고 생각하여 계속 추적해보니 맷돼지가 쓰러져있었다. 맷돼지는 항문에 총알을 맞아서 즉시 피를 흘리지 않고 도망갔으나, 총알이 관통하여 내장을 휘저은 것이다.

  그러나 맷돼지와 달리 잠수함에 있어서 추진부가 밀집한 뒤쪽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곳이다.  잠수함의 선체는 일반 수상함정보다 두껍고 이중선체가 최근 잠수함 건조의 일반적인 사상이다.  옆구리에 533밀리 어뢰를 맞고도 침몰하지 않는 경우는 충분히 예상되어 왔다. 그러나 뒷부분에 한 방 맞으면  아무리 강한 러시아제 타이푼급 잠수함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물론입니다. 발사관 모두에 어뢰가 장전되어 있습니다. 발사관 주수 완료. 하픈은 이제 없잖습니까?"

  어뢰반에서 퉁명스럽게 보고하자 서 소령이 투덜거렸다. 깜박한 것이 아니라 확인해 본 것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부함장인 김 철진 대위가 조언을 했다.

  "저 잠수함을 공격한 후 수상함정들을 공격하시죠. 이번 기회에 최대한 적 함대에 피해를 주어야합니다."

  부함장은 이 기회에 적 함대를 괴멸시켜 구축함의 숫자를 줄여놓아야 다음 작전에서도 유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러 척의 구축함에 쫓기는 것은 잠수함 승무원들로서는 악몽이었다.

  "거리 1500, 이 코스라면 우현 500미터를 통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소나원이 보고하자 잠수함의 정지를 명한  서 소령이 잠수함 공격 후 급속 부상할 것을 명령했다.  관제반원들은 중국 수상함대에 대한 공격에 대비해 각 목표함정들의 해석치를 내고 있었다.

  "거리 500! 계속 같은 코스입니다."

  "전방에 그대로 발사하면 됩니다. 확실합니다."

  소나원과 발사관제관의 보고에 따라 서 소령이 발사와 동시에 급속부상을 명했다.  잠수함이 어뢰 두 발을 발사한 후 급속히 물을 배출시키며 잠망경 심도로 부상했다.

  "잠수함 명중! 침몰중!"

  "목표 데이터 입력 중!"

  "E-2C에서 초장파 무선명령입니다. 적 함대의 데이타를 주겠답니다."

  소나원이 적 잠수함에의 명중을 보고하고  발사관제관이 데이타를 입력 중에 통신사관이 급전을 전했다.전자전기에서 목표 데이터를 제공해 준다면 잠수함으로서는 소나에 의한 부정확한 목표입력을 피할 수도 있고,  또한 레이더를 가동시킴으로써 적 초계기와 대잠헬기에 의한 발견을 방지할 수도 있었다.

  "좋아, 다운트림 최대, 통신 케이블 방출하라!  근데 하픈은 이제 없잖아?"

  깊은 수중에 있는 잠수함에는 원칙적으로 전파가 도달하지 않는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결과,  파장이 긴 전파(장파)는 얕은 해역에 있는 잠수함과의 연락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장파는 대량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없기 때문에 급한 경우에 잠수함을 해상으로 불러내는 역할만 했다.  잠수함에 전파를 발사하는 시설은 작년 전라남도 해남의 평야에 만들어졌다.  장보고함에서 수신용 케이블이 나와 수면 위로 올라갔다.

  "목표 데이터 받았습니다. 자동입력 완료!"

  "좋아, 발사!"

  함이 울리고 8개의 발사관 중  7개로부터 SUT Mod 2, 533밀리 유선유도 어뢰가 발사되었다.

  11. 20  07:00  한국 해군 잠수함 이천함

  "소나에서 발령소로! 현재 12척의 구축함과 프리깃함이 급속 서진 중입니다. 우리쪽으로 다가옵니다."

  소나원이 이제 제법 긴장이 풀린 듯 천천히 보고했다.이제 자신은 전투를 겪은 고참인 것이다. 로미오급 재래식 잠수함 2척을 격침시키는데 자신의 귀가 큰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좋아, 근처에 적 잠수함이 없으니 이제 함대를 공격한다. 잠망경 심도로!"

  이천함이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해상에 적 초계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파수신기가 달린 통신케이블을 방출했는데  의외로 한국군이 쓰는 주파수대의 전파가 잡혔다.

  "조기경보기로부터 적 군함들의 위치에 관한 데이터입니다!"

  통신원이 보고하자 함장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위험하게 해면으로 부상하여 레이더 전파를 발신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좋아, 전 발사관 하픈 장전! 아니, 7,8번관은 남겨둬. 아직 중국 잠수함은 많을테니까."

  함장이 명령하자 어뢰원들이 하픈을 발사관에 장전하고 발사관제관은 목표 데이터를 입력했다. 발사 준비완료의 신호가 두 곳으로부터 왔다.

  "하픈 전기 발사!"

  약 1200톤의 이천함이 연속 진동했다.  잠수한 상태로 하픈 미사일을 연속 발사했다. 하픈들이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다가 수면비행에 들어갔다. 함장은 적함의 전파방해를 우려하여 조기경보기에 의한 중간 유도를 하지 않고 하픈 자체의 관성유도와 최종유도인 레이더유도를 믿기로 했다. 이천함이 나머지 2발의 하픈을 더 발사하고 깊이 잠항을 시작했다.

  "명중! 명중! 또 명중!"

  소나원이 신이나서 떠들었다. 장보고함에 의한 해신 6호의 침몰과 한국공군기의 공습으로 나머지 항모인  해신 4호 및 수송함과 양륙함들이 모조리 침몰하자 중국 구축함들은 도망가기 바빴는데, 전혀 엉뚱하게도 전진하던 방향에서 하픈 미사일이 날아오자 중국의 수상함들은 피할 틈도 없이 당했다. 소나원이 계속된 승전보를 전했다.

  그러나 이천함은 바다를 낮게 가로지르며  중국의 초계기가 날아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구식 IL-28 경폭격기를 중국이 대잠수함용으로 개발한 하얼빈 H-5  대잠전기가 이천함을 발견하고 어뢰를 투하했다.  어뢰 두 발이 승리에 들떠있는 이천함의 함미쪽으로 고속 접근했다.

  1999. 11. 20  06:30  평안북도 평원군 영유(永柔) 북동쪽 10km, 어파

  어파는 안주군에서 평원군으로 넘어오는 곳에 위치해 있다. 안주평야의 너른 들이 묘향산맥의 자락에 의해 끝나고 다시 평원군의 드넓은 평야가 시작되는 곳이다. 경의선이 남쪽으로 평양을 향해 뻗어 있고 평양과 남포로 가는 도로가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새벽녘에 정찰 나갔던 대대 수색대로부터 적의 대규모 전차부대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왔다.  부대 진지로부터 북동쪽 9km, 전차부대의 통상 진격속도로 15분이면 닿을 거리였다.  대대 지휘부가 정확한 위치를 지도에서 찾고 있을 때, 수색대는 적 헬기정찰부대와 교전 중이라는 짤막한 교신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영유로 가는 도로 주변의 구릉 지역에 위치한 대전차진지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대대장 배 윤성 중좌는 천천히 부근 지역을 망원경으로 둘러보았다. 새벽안개가 온 들녘에 자욱했을 뿐, 적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적은 전자전부대가 있습니다. 전자전 부대가 우리측 전파를 잡아 수색대와 위장진지의 위치를 파악한 모양입니다.본 진지에서 직접 교신을 하지 않은게 다행입니다. 그러나 위장진지는 곧 불바다가 되겠죠."

  옆에 있던 작전참모가  곧 닥쳐올 전투가 두려운지 대대장도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 대대장이 불만스러운지 툴툴거렸다.

  배 중좌는 산악지형에서 전차부대를 공격할까 했지만, 적에게 강력한 헬기부대의 지원이 있다는 정보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전차부대가 너른 들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전을 세웠다. 어제 후퇴해온 국군 12사단의 공병대와 함께 두 개의 진지와 수많은 대전차호를 건설했다. 그리고 완벽한 승리를 위한 몇 개의 함정도...  모자라는 자재는 국군 수송부대가 헬기와 트럭으로 긴급지원을 해주어 어젯밤에야 겨우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안주전투에 참가했던 국군 12사단 소속의 공병감인  김 대식 중령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그의 말을 들으면 왜 안주전투에서 패배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방어전에서의 전차부대 제 일의 임무는 적 전차부대와의 교전 아닌가?  그러나 안주의 인민군 전차부대는 적 전차부대와 교전할 기회도 없었다. 김 중령과 그의 공병대대는 부상자 부대를 계속 남하시킨후 대전차대대와 함께 대전차호를 건설하고  중국의 러시아제 T-90전차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전수해 주었다.

  전방 우측 3 km에 위치한 위장진지의 중대장에게서 유선연락이 왔다. 적의 규모는 1개 전차사단과 2개 기계화사단이라는 보고였다.  지금 공격준비를 위해 전개 중이라는데, 중대장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위장진지 앞의 논에 전개한 적은 4km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일참모본부에서 내려온 명령서에는 중국 장갑집단군에 러시아제 신형 T-90 전차가 300대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집단군 소속의 공격헬기부대도 무시 못할 정도의 숫자가 있었다. 어쩌면 적을 격퇴시키기 전에 자신들이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준비했다.  적보다 준비보다 많았으니 우리가 유리하다. 일단은...'

  갑자기 상공에 초음속 전투기의 굉음이 들렸으나, 즉시 남쪽으로부터 대공 미사일이 날아와 그 비행기를 격추시켰다.  미그-23 유형인 그 전투기 조종석 바로 위에서 미사일이 폭발하여 기체가 중심을 잃고 산 위로 추락했다.폭발에 당했는지 조종사가 탈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만 벌써 세 대째군.'

  다시 아무 것도 없게된 텅빈 하늘을 보며 배 중좌가 중얼거렸다.  새벽부터 상공엔 어떠한 항공기도 볼 수 없었다. 서로가 정찰기를 발진시키기도 했지만 대공망이 워낙 치밀해  이 지역 상공에 비행기가 떴다하면 즉시 격추되었다.  가끔 저렇게 저공침투 해오는 비행기도 있었지만 목적을 당설하지는 못했다.

  배 중좌는 감청컴퓨터(여러곳에 감청기를 설치하여 들리는 소리와 진동을 종합하여 적의 규모와 위치를 판단하는 장치)가 적 전차부대의 규모와 배치를 추정한 지도를 보았다. 선두에 전차사단, 좌우 후방에 2개의 기계화사단을 배치한 것이 중대장의 보고와 일치했다.  그러나 아직 적 포병대의 위치는 알 수 없었다.

  "가속하여 시속 55 km의 속도로 전진해 오고 있습니다."

  기술 하사관이 헤드폰을 쓰고 중국군 전차부대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였다.그가 다른 감청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지우고 논길 옆의 감청기 하나를 골라 집중적으로 음을 증폭했다. 기기를 조심스레 조작해 가며 듣더니 갑자기 대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보고했다.

  "틀림없는 T-90 전차의 엔진음입니다. 840마력짜리 V-84 디젤 엔진입니다. 그러나 무게는 좀 덜 나가는 것같습니다.원래 T-90의 전투중량은 약 46.5톤입니다만,  포탄 적재량을 줄였든지 능동반응장갑을 줄였든지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차의 기동성을 향상시키고자 할 때는 이런 방법을 종종 쓰는 것으로 압니다."

  기술하사관이 잠시 헤드폰의 소리와 감청컴퓨터의 음문그래프에 신경을 집중하더니 말을 이었다. "감소된 중량이 약 2톤정도,이동시 소리의 차이를 들어보면 아마도 전장부의 반응장갑을 일부 제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두 기갑정찰대대의 전차들은 마인롤러 미부착 상태입니다!"

  마인롤러(mineclearing roller)는 전차 앞부분에  매다는 지뢰제거기이다.  러시아 전차들에 처음 장착됐는데 이의 효용이 입증되어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의 주력전차들에 많이 채용되었다. 그런데 중국전차들은 무슨 이유인지 마인롤러를 부착하지 않았다.  기갑정찰대까지 마인롤러가 없다는 것은 중국군이 기동전을 중시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통일한국군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기도 했다.

  배 중좌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원래는 잠수함의 소나병인 기술하사관의 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소리만 듣고도 전차의 무게를 추정하는 그 하사관의 귀는 남들과 다르게 생겼나 해서였는데, 아무리 봐도 별 차이는 없어보였다.

  "전진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것일까요?  T-90은 그 전의 모델과 비교해 추력 대 중량비에 있어서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어쨋든 잘 됐군요. 마인롤러 미부착에 전면 반응장갑 일부 제거라..."

  작전참모가 씨익 웃었다. 배 중좌도 참모를 보고 아주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젠장맞을 공중지원은 없답니다. 요격에도 바쁘다는 설명입니다. 하긴, 이 지역 빼고는 전 전선에 걸쳐 제공권을 상실했습니다만...  잘하면 A-10 몇대를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중국 전투기들의 교대시간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아군의 포병대와 항공병력은 이 전투를 지원할 능력이 없었다.  단지 적 공격기들만 요격해주겠다는 답신이었다. 통일참모본부는 아군병력의 배치를 위해  적 장갑집단군의 공격을 단 하루라도,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대전차대대가 지연시켜주길 바랄 뿐이었다. 단지 일말의 양심인지 A-10 공격기 몇대를 전투 시작 후에 보내준다는 지원약속만이 있을뿐이었다. 물론 이는 약속에 불과하다고 배 중좌는 생각했다.  현재 통일참모본부의 실권을 쥔 국군 장성들은 대전차대대의 능력을 몰랐다.  저격여단을 러시아의 저격사단처럼 일반 보병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저격이라는 말을 북한에서는 적 공격의 예봉을 꺾어 방어한다는 뜻으로 쓴다.

  포병과 미사일, 공격헬기의 지원은 막강한 중국군 장갑집단군의 능력을 배가시켜주어 통일참모본부는 이들의 막강한 공격력을 여러차례  맛보아야만했다. 순천은 아직 점령당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강력한 공격을 막고 있는 인민군들의 피해가 너무 커서,  통일참모본부는 순천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영유 서쪽으로 진출한 장갑집단군은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 통일한국군이  서해안까지 방어선을 형성하기도 전에 빠져나가 남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민군 지상군이 포위해서 이들의 진격이 멈춘 순간 통일한국군의 공군기들이 쉴새없이 공격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졸지에 포위당한 이 중국군 부대는 이미 어젯밤부터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어선이 뚫린 인민군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뤄야했다. 이들을 막느라 벌써 2개의 사단을 소모했다.  하늘에서는 치열한 공중전이 계속되었다.

  통참으로서도 중국군의 주력인  제 13 합성장갑집단군만은 꼭 막아야 한다는 의견의 합치를 본 바 있다. 그러나 통참이 대전차대대를 지원하고 싶어도 가용 자원이 빈약하여 할 수가 없었다.아직도 순천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며,  강서군을 향해 돌진중인 중국 장갑집단군을 막는데 지상군 3개 군단과 해군 서해함대,  그리고 공군이 총동원되어 막고 있었다.  중국군의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 앞에서 통일한국군은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남쪽 영유에서는 인민군과 국군이 급히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다.유명한 인민군의 815기계화군단과 2개 군단, 그리고 국군의 제 9기갑사단과 제 2군단이 긴급배치되었다. 그러나 방어선을 견고히 하는데에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815기계화군단의 2개 전차여단은 서쪽의 중국군을 막는데 차출되어 실제 군단병력이 되지 않았다. 이곳 영유가 떨어지면 평양 북쪽의 순안비행장이 중국군의 포격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게 되므로 평양까지 위험했다.

  위장진지와 적의 거리는 약 2 km, 적은 이미 위장진지의 위치를 눈치챘을 것이 당연하고, 적의 선공으로 아침의 전투는 시작될 것이라고 배 중좌는 생각했다.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러시아제 T-90 전차에서 발사되는 125 밀리포의 소리였다. 곧이어 위장진지에 있는 이 소좌의 보고가 무선으로 흘러나왔다.  적은 3개부대 전체가 사격을 시작했으며, 적의 전차들은 이동하면서 사격하는데도 명중율이 놀랍도록 높다는 보고였다. 또한 지대지미사일이 낙하하고 있다는 보고가 왔다.  위장진지의 중대장인 이 한욱 소좌가 명령을 발하는 소리와  포탄과 미사일이 작렬하는 소리가 대대무전기에까지 들려왔다. 이제 그의 역량에 따라 이 전투의 성공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11. 20  07:00  위장진지

  이 한욱 소좌는 적의 포탄세례에 귀가 멍해졌다. 야산의 능선 3 km에 걸친 위장진지 곳곳에 적의 파멸적인 포격이 가해진 것이다. 특히 전선 후방 멀리로부터 날아오는 중국 정밀기계수출입공사의  305밀리 M-1B와 WS-1 다연장로켓탄의 위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어서, 긴 방어선에 분산배치되어 있는 인민군들이 저항한번 제대로 못한 채 쓰러져갔다.배치받은 구형 T-62 전차 9대 중에서 겨우 4대만 남았다.나머지 장갑차들은 엄폐호에 숨어 있었다.장갑집단군 소속 중국군 포병연대의 83형 152밀리 자주곡사포도 이 파티에 참가했다.

  이 소좌가 대대용 무전기를 쳐다 보았다. 적의 포격이 시작되자 마자 전화선이 끊겼기때문에 무전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본 진지의 위치가 탄로날까봐 대대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자신의 중대를 위장진지에 미끼로 배치하고 수신만 하는 대대장이 혐오스러져서 무전기에 대고 감자 바위를 먹였다.거짓 후퇴를 하여 적의 본대를 유인, 포위섬멸한다는 고전적인 작전은 일견 화려해 보이지만, 미끼가 되는 부대장의 심정은 죽을 맛이었다. 그리고 적이 유인된다는 보장도 없으며, 포위해도 섬멸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 소좌가 보기에도 적은 너무 많았다.

  중국군이 전방 2 km까지 접근해오자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인민군이 발사한 대전차 HEAT탄(성형작약탄)은 전차 포탑의 반응장갑에 명중하자마자 반응장갑이 터지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인민군의 구식 T-62전차가 발사한 철갑(APFSDS)탄도 중국 전차의 장갑을 뚫지 못하고 튕겨져나갔다. 피탄경시를 중요시한 달걀 형태의 러시아제 전차가 그렇듯이 전차포와 대전차포는 정면에 정확히 명중하지 않으면 중국 장갑집단군이 자랑하는 T-90전차의 장갑을 뚫기 어려웠다. 게다가 아직은 거리가 너무 멀었다.

  반응장갑 때문에 대전차미사일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 소좌가 소이탄 발사를 명령했다.각 장갑차의 12.7밀리 기총과 구경이 더 작은 기관총에서 발사되는 소이탄이 대낮의 하늘을 더욱 밝게 밝혔다. 중국 전차에 소이탄이 맞자 전차 앞부분의 반응장갑이 터져나갔다.소이탄은 8000도의 고열로 전차의 장갑을 뚫는 성형작약탄에는 훨씬 못미치만 상당한 정도의 고열을 내어 능동반응장갑의 폭발을 유도해냈다. T-90의 적외선 재머도 이들의 뺄 수 없는 공격목표였다. 각 전차의 레이저경보장치도 철저히 부쉈다. 저격여단답게 보병들의 사격은 정확했다.

  어느 정도 사격한 후 전차와 장갑차를 서서히 후퇴 시켰다. 후퇴하는 인민군을 본 중국군의 전진속도가 빨라졌다. 이를 본 이 소좌가 보병들 전원을 장갑차와 보병전투차에 탑승시키고 재빨리 후퇴해갔다.

  중국군의 전차부대는 단숨에 인민군 위장진지를 짓밟고 넘어 넓은 들로 나왔다.  그동안 산간지역의 좁은 도로만 달려서 스트레스가 쌓인듯 중국군 전차들은 최고속도로 벌판을 질주해갔다. 후퇴하는 인민군 보병 전투차들에 포화를 퍼부으면서, 이제 중국 장갑집단군은 전차부대의 최대 강점인 기동전을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전차사단 뒤로는 기계화사단들이 따르고 있었다. 인민군은 후퇴하면서도 중국 전차들의 능동반응장갑과 조준기 등을 악착같이 파괴하고 있었다.

  1999. 11. 20  07:15  대전차대대 주진지

  드넓은 평야에 수백대의 전차와 그보다 많은 수의 장갑차들이 질주하는 모습은 대전차진지의 인민군들 눈에도 장관이었다. 대전차 진지에서는 이들의 술래잡기가 옆쪽으로 보였다.중국군의 전차들은 전차포로 인민군을 쏘기보다는 위협해서 세우려는 기세였다.아니면 인민군의 주 진지까지 인민군을 총발받이로 몰아 공격하려는 의도인지도 몰랐다. 진지에서 망원경으로  이들의 경주를 지켜보던  배 중좌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국군 12사단의 김 중령에게 눈짓을 보내자 김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몇 대 남지도 않은 인민군의 T-62전차들이 제 2진지에 도착하여 엄폐호에 숨고 115밀리 활강포로 사격을 시작하자 미리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또다른 중대가 사격을 시작했다. 배 중좌가 치켜들었던 손을 아래로 힘껏 내렸다.

   "1번 눌러!"

  배 중좌의 일성이 터져나왔다.  대대장 옆에 대기한 폭파조가 1번 스위치를 누르자 벌판을 달리던 중국군 전차 수 십 대가 갑자기 땅속으로 꺼져들어갔다.

  1번 스위치는 어제 들판 수 십 군데에 중장비를 동원하여  넓고 깊게 땅을 파고 위장해서 만든, 대전차호의 위를 덮은 강철판의 지지대를 붕괴시키는 기폭장치였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래가 텅빈 강철판을 통과할 때 적 전차에서 느끼는 소리와 진동을 같게 하는 것이었는데 공병대는 1미터 두께의 흙을 철판 위에 쌓아 부족하나마 이 문제를 해결했다. 작업을 마치자 배 중좌는 12사단 공병대와 교도대원들에게 후퇴를 종용해서 지금은 김 중령과 폭파조만 남아 있었다.

  수십대의 전차가 땅속으로 사라지자 뒤따르던 전차들과 보병전투차들이 놀라 급정거를 했다.  급정거를 했으나 미쳐 서지 못한 전차와 보병전투차 몇 대도 관성의 힘에 의해 빨려들어가듯 대전차호에 빠져들어갔다. 땅속으로 꺼져들어간 전차들은 5미터나 되는 깊은 함정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2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생존하는 전차는 20세기 말이 되도록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전차 승무원들이 파괴된 전차의 유독성 가스를 피해 기어나왔으나 함정을 기어나오자마자 후퇴한 인민군들이 발사한 기관총 세례에 몰살당했다.

  "포격 개시!  발사!  2번 눌러!"

  중국군 전차부대가 정지한 것을 확인한  배 중좌의 명령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먼저 한국군으로부터 인도받은 K-200 보병전투차의 파생형인 박격포차에서 원격레이더로 자동조준되는 107밀리 중박격포를 수 십 발 연속 발사했다. 전차들은 박격포 포탄을 무시했지만, 이 포탄은 의외로 대전차용 성형작약탄이었다. 중국 전차의 포탑이나 차체 위에 명중하자 고온의 액체화한 금속이 전차 윗부분의  얇은 장갑을 뚫고 들어가 순식간에 전차 내부를 불태웠다.  레이더로 조준되는 박격포탄은 이것이 과연 미사일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정확하게 중국 전차들을 노렸다.

  후방에서는 포병중대가 MLRS와 한국군 155밀리 M109A2 자주포를 통해 SADARM(Sense and Destroy Armor)을 발사했다.발사 후 이중모드로 밀리미터파나 적외선 탐지기로 표적을 탐지하고 표적 상부에 명중하는 무게 11.7kg의 SADRAM은 155밀리 포탄에 2발,  MLRS로켓탄에 6발씩 운반되어 중국군 전차 상공에서 분리되어 전차를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대전차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임시로 배속된  다른 포병중대는 북한 고유의 자주포인 170밀리 곡산형 자주포로 중국 기계화사단의 보병전투차들을 노렸다.

  K-200의 또다른 파생형인 20 밀리 대공 발칸포차가 전차들을 향해 불을 뿜었고, 구식 러시아제 BRDM에서는 새거(Sagger) 대전차 미사일이나 신형인 AT-7 SAXHORN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능동장갑이 없고 장갑이 얇은 전차의 옆 부분이나,  있더라도 이미 후퇴하던 이 소좌 중대의 소이기관총탄 사격에  능동장갑이 파괴된 전차들은 미사일의 관통을 막지 못했다.

  3대의 독일제 전차파괴차 판저예거(Panzer jager, KW)는 깊숙한 참호속에 숨어 20미터 길이의 미사일플랫폼만 내놓고 연속사격을 하는 모습이 공사장의 굴삭기를 연상케했다.  또한 21세기형 전차라고 불리는 미국 TCM사의 무포탑전차는 포신만 위로 내밀고 피탄면적을 최소로 한 채 105밀리 자동장전 속사포로 중국군 전차를 연속 파괴했다.이 전차는 연전에 한국지형 테스트용으로 미국에서 왔다가 사격통제장치의 불량문제로 개발 자체가 연기되었는데 이를 한국정부가 싸게 사 들인 것이었다. 개발당시에 이 전차는 대용연구차량(SRV)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각종 장갑차량과 사륜구동차에서는 밀란과 드래곤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보병들도 대전차무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보병들은 휴대형인 90밀리 무반동총과 3.5인치 대전차 로켓포, LAW, 심지어 유효 사거리가 115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M-31 대전차 고폭총류탄까지 총동원하여 전차와 장갑차량들을 공격했다.

  특히 대공발칸포의 위력은 대단했다. 대공포는 특성상 초구속도가 높아 전차 파괴에도 큰 효과를 발휘하는데, 이는 2차대전 당시 독일 전선과 아프리카 전선에서 대공포들이  대전차포로 자주 활용된 사실로써도 그 효용을 알 수 있다.  발칸포의 대전차공격은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즐겨 썼던 수법이다.

  보병과 동시에 주진지 뒤쪽에서  무장헬기 4대가 떠올라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MD500D의 대전차 개량형인 이 헬기들은 미사일 발사 즉시 언덕 뒤에 숨어,  로터 아래 마스트에 장착한 조준장치로 미사일을 유도했다. 80년대 말에 북한이 밀수입한 이 미국제 헬기는 절반이 대전차용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 미사일 4발을 쏜 후에는 즉시 진지 뒤에 착륙해서 미사일을 재보급받고 다시 이륙했다.

  중국군 전차부대의 전진을 막는 강력한 저항에 놀란 중국군 전차들이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포탄이 날아오는 방향의 언덕 위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판저예거의 미사일플랫폼과 무포탑전차에 탑재된 작은 면적의 전차포뿐이었다. 보병들은 모두 잠망경을 통해 미사일을 유도하거나 사격 즉시 몸을 숨겼고, 대공발칸포는 3중의 견고한 콘크리트 토치카에서 사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이 토치카는 지연신관을 가진 미사일만이 파괴할 수 있었다.

  중국 전차들이 일제히 언덕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으나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포화를 뚫고 전진하자니 또 어떠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라 선뜻 인민군들이 숨어 있는 언덕으로 전진하지도 못했다. 계속 숨어서 쏘는 인민군들의 미사일에  못견디게 된 중국군이 후퇴를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야 중국군 포병들의 포격이 시작되었으나  횡으로 전개한 포병의 위치에서 볼 때는 종적으로 길게 연결된 인민군 진지에 대한 포격은 별 의미가 없었다.  단지 본대의 후퇴를 위한 엄호사격에 불과했다.  후퇴하는 전차들이 속도를 높였고 이들을 각종 포화와 미사일이 따랐다.또 다시 땅이 무너지고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빠졌으나 이들은 미사일이 더 무서웠다.

  그러나 후퇴하는 전차들을 기다리는 것은 대전차 지뢰였다. 전진해올 때는 작동하지 않게  인민군들이 기폭장치를 해제했다가 스위치를 누르자 기폭장치가 작동하여 대전차지뢰의 효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또 다시 많은 수의 중국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파괴되었다.

  후퇴하면 지뢰탐지기에 드러나지 않는 플라스틱 대전차지뢰,  가만히 정지해있자니 각종 포화의 제물이 되기 십상이었고 전진하다가는 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꼼짝 못하게 된 중국군 지휘부는 헬기부대에 긴급지원을 요청했다.중국 장갑집단군 사령은 헬기가 올 때까지의 짧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전차가 SADARM의 우박을 맞고 폭발했다. 레이저경보장치는 사령의 전차가 미사일에 포착되었다는 경고를 발했다. 집단군 사령은 급해졌다.자존심까지 내팽개친 구원요청 독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령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비명을 질렀다.

  "소수이지만 강력한 적의 저항이다. 제발 빨리 와!"

  제 13 장갑집단군의 사령인 창 밍윈 소장은 중국내전때 남경군 고 중장의 휘하에서 장갑사단장을 했던 인물이었다.북경을 공략할 때는 좌익을 맡아 북경군구의 방어진을 돌파하여  가장 먼저 북경 외곽에 도착하는 명예를 안았는데, 이로 인해 그는 대망의 별을 달게 되었다. 조선정벌은 그에게 있어서 또다른 기회였다.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차에 충격이 가해졌다.  포탑 오른쪽에 동전만한 작은 구멍이 생기더니 그곳에서 열파가 쏟아져 들어와 포탑 안을 휘감았다.창 소장의 뇌리에 가족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막내딸이 떠올랐다.  사기꾼같은 미국놈 마이클. 백인과 결혼한 유색인종 신부의 비참함을 자주 들어서 말렸으나 막내는 막무가내였다. 딸과의 전화연락이 끊긴지 1년이 넘었다. 제발 행복하기를...

  3분이 안되어 약 30대의 러시아제 Mi-24 하인드 공격헬기가 대기하고 있던 산 뒤로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대전차 대대에 배속된 인민군 고사포 소대에서  SA-16 GIMLET 휴대형 대공미사일을 발사하여 10여대를 격추시키자  중국군 헬기들은 겁을 먹고 즉시 왔던 길로 되돌아 가버렸다.공격헬기들을 뒤따라온 중국군 공중기동여단은 강력한 대공부대의 존재를 연락받고 공격헬기들을 뒤따라 도망갔다.  공격헬기가 당하는 판에  자체 장갑이 빈약한 수송헬기들의 공격은 의미가 없었다. 공격헬기들의 활약을 잔뜩 기대하던 중국 전차탑승원들이 망연자실했다.

  전진할 수도, 후퇴하기도 어려워 망설이던 장갑사단장은 가만히 있자니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하여 지뢰에 의한 피해를 감수하고 후퇴를 명령했다. 짧은 시간에 150여 대의 전차와 더 많은 수의 보병전투차를 잃은 중국 장갑집단군은  조금 전에 점령했던 인민군의 위장진지 뒤로 후퇴했다. 후퇴하면서도 인민군의 미사일공격과 지뢰에 의한 피해는 늘어갔다. 지뢰에 의해 전차궤도가 절단되어 꼼짝할 수 없게된 전차의 승무원들이 전차를 뛰쳐 나왔지만, 이들이 다른 전차에 올라타기도 전에 인민군의 기관포가 작렬하여 이들을 휩쓸었다.

  제 2진지에서는 이 한욱 소좌가 중국군의 포화에 의해 잃은 왼쪽팔을 오른손으로 들고 계속 사격하라고 외쳤다.피투성이가 된 중대장은 방어진 위에 우뚝 서서 그 팔을 지휘봉처럼 흔들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의무병이 그를 참호로 끌어들이는 순간 근처에서 20여발의 로켓탄이 작렬했다. 잠시후 먼지와 연기가 걷혔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1999. 11. 20  07:25  위장진지

  직격포화를 피해 숨어들어간 인민군의 위장진지, 그곳에는 계속 전진해온 보급부대와 기계화부대의 후속부대, 그리고 후퇴해온 전차와 보병전투차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이 언덕 그늘을 벗어나는 즉시 인민군의 미사일이 날아오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가장 바깥쪽의 전차 또 한 대가 인민군의 헬기에서 발사된 대전차미사일에 파괴되었다.  이 모습을 본 바깥쪽 전차들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사단장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설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장진지는 또다른 재앙의 서곡이었다. 능선의 뒤쪽, 위장 진지에서 보면 전면, 2미터 깊이의 땅 속에 대형 유조탱크 3개와 LPG가스 탱크 2개가 숨겨져 있었다. 지상에 위장되어 있는 수십개의 가스 노즐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공기보다 1.5배 무거운 액화 프로판가스를 공기중에 스프링쿨러처럼 빙빙 돌며 뿜어냈다. 다른 수 십 개의 파이프에서 배관이 터지자 휘발유가 사방에 분수처럼 쏟아졌다.

  이것을 본 중국군 전차 부대원들은 공포에 질려버렸다.사방 수백미터에 걸친 휘발유와 가스의 벌판, 이곳이 자기들의 무덤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전차도 장갑차도 휘발유에 흥건히 젖었고 프로판가스 냄새가 천지에 진동했다.전차병들이 즉시 시동을 끄고 전차에서 내려 북쪽으로 줄달음질 쳤다.이들의 뒤를 보병전투차를 버린 기계화보병들이 따라 뛰었다.

  "발사!"

  배 중좌의 짤막한 명령에 자주 박격포차에서 단 한발의 중박격포탄을 발사했다. 국군 12사단의 공병감 김 중령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어제 하루종일 중장비를 동원하여 유조탱크와 LPG탱크를 매설하고 대전차 참호를 파느라고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쓸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죽어간 전우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러나 오늘 죽을 중국군들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다.

  중국 전투기 편대의 짧은 교대시간을  이용해 대전차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공군의 부 영철 소령은 자신의 애기인  A-10 썬더볼트II 공격기를 몰아 급히 전장 상공에 도착했다. 부 소령은 지상을 보곤 깜짝 놀랐다.  컴퓨터에 입력된 지도상에 있는 벌판에는 수백대의 중국군 전차와 장갑차들이 파괴된채 불타고 있었고, 그너머 능선 북쪽에는 지금 아수라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벌판에서 파괴된 숫자보다 더 많은 중국군 전차와 장갑차들이 뒤집힌 채 화염에 휩싸여 차례로 폭발하고 있었다.  불타는 보병전투차와 사륜구동차에서 뛰쳐나온 중국군들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땅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불길이 한순간에 사람을 재로 바꾸어 놓았다. 부 소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렇게 처참한 전장은 그로서도 처음 보았다.  수많은 전사를 읽고 전쟁영화를 보았으나 이런 장면은 상상도 못했었다.

  "3시방향에 적 차량부대!"

  부기장의 외침에 문득 정신을 차려 기수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뒤따라 오던 2대의 공격기와, 호위 겸 지원공격을 위해 동행한 F-4E 팬텀 4기도 같은 방향으로 선회했다.  눈앞에서 부대가 전멸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대기하고 있던  중국군 포병연대와 후속 보급부대는 하늘로부터 또다른 공포를 맛보아야 했다.

  공격기들이 30밀리 어벤저를 쏘며 집속폭탄을 투하했다. 다양한 구경의 장갑자주포와 단거리용인 83형 122밀리 40연장로켓포를 탑재한 트럭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갔다.  대공자주포가 이제야 하늘을 향해 불을 뿜어댔으나 1초도 쏘기 전에 팬텀기에 당했다. 자주포가 필사적으로 언덕 너머로 도망가려했으나  A-10의 어벤저포에 10여 발을 관통당하자 불을 뿜으며 폭발했다.팬텀의 집속폭탄은 수많은 자폭탄으로 나뉘어 수송트럭 대열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연속 폭발했다. 공격기들이 서너 차례 공격과 선회를 반복하자  지상에는 더 이상 움직이는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로써 중국군의 제 13 합성장갑집단군은 궤멸당했다.

  11. 20  07:50  개성, 통일참모본부

  "급전입니다. 대전차대대가 적의 장갑집단군을 전멸시켰습니다!"

  젊은 통신장교가 통일참모본부 종합상황실로 급히 뛰어들어와 보고하자 상황판을 보며 분주하게 토의하고 하급부대에 명령을 내리던 참모들의 입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어렵게 유지하던 방어선이 장갑집단군에 뚫려 전군 후퇴라는 뼈아픈 작업을 수행 중이었는데, 이제 상황이 바뀐 것이다. 한 시간 전 서해에서 중국 상륙함대를 전멸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들떠있던 참모들에게는 경사가 겹친 듯한 기쁜 표정들이었다.  이제 반격하여 적을 몰아내고 잃었던 땅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이들의 눈빛에 나타났다.

  "좀 더 자세히, 어떻게 겨우 1개대대가 집단군을 섬멸했나?"

  오랜만의 쾌거에 국군의 양 석민 중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통신장교를 채근했다.이 종식 차수는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니, 그로서도 기대 이상의 전과였다. 대규모 적 기갑부대에 대한 방어전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저격여단 대전차대대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긴 했지만 믿기지 않았다.

  국군 출신 참모들은 기쁘지만 믿기 어렵다는 표정들을,  인민군 장성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랑스럽게 그동안 축 쳐졌던 어깨를 활짝 폈다.모두들 통신장교가 전통문을 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전차호, 각종 대전차미사일, 대전차 지뢰, 그리고 특이하게도..., 초대형 지하유류탱크와 LPG 가스탱크를 이용했습니다. 아군 지상공격기에서 촬영한 화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대전차대대의 보고는 암호문으로 적 격퇴, 부대 위치를 전진시킨다, 보급요망,이라는 짤막한 것뿐이었습니다. 전과보고는 공격기들의 촬영에 의한 것입니다."

  통신장교는 국군과 인민군의 묘한 경쟁관계를 의식하여  인민군 대전차대대의 보고가 국군의 확인에 의한 객관적인 전과라는 것을 확인시키며 영상장치를 작동시켰다.

  화면에는 벌판에서 파괴된 수많은 전차와 장갑차들, 대전차호에 빠져 연기가 새나오는 전차들,그리고 인민군 위장진지의 북쪽에서 불타고 있는 아비규환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잠시 후 화면이 급히 오른쪽으로 돌아가더니 중국군의 포병연대를 비추고, 공격기들이 무차별 공격하는 장면이 보였다. 잠시 후에는 중국군 포병대가 있던 곳이 파괴된 차량들의 잔해로 바뀌었다. 다시 장면이 바뀌어 위장진지 전면에 아직도 불에 타고 있는 전차와 장갑차들,  그리고 그 너머 벌판에 파괴된 전차들을 비추었다. 그리고 북쪽의 산에는 추락하여 불에 타고 있는 중국군의 공격 헬기 잔해들이 보였다.

  "공격기의 부 영철 소령이 촬영한 자료를 컴퓨터로 검색해보니, 이번 전투의 전과는 적 전차 파괴 273대, 장갑차와 보병전투차 526대,그리고 자주포와 트럭 등이 310대입니다만, 촬영되지 않은 전과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그들의 전과는 중국군 최정예 장갑집단군인 신예 T-90 전차부대를 상대로 올렸다는 것입니다."

  통신장교가 해설까지 해가며 컴퓨터용지에 쓰인 내용을 읽었다.

  "엄청나군요. 전쟁 시작 이래 지상전에서의 최대의 전과입니다. 저격 여단 대전차대대라... 우리쪽도 그런 부대를 만들고 싶군요. 물론 야간 전대대와 같은 저격여단의 다른 부대도 말입니다."

  양 중장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인민군 장성들의 어깨가 한껏 치켜 올려졌다.  숫적으로 우세한 중국군 장갑집단군에 공격기와 기갑사단으로 맞서기를 주장하던 국군 참모들은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진작에 인민군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미리 대전차대대를  투입했더라면 전황이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투기들을 빼내 상공을 엄호해준  공군의 이 호석 중장께 감사하오.그리고 포병사령관 김 은수 소장은 정말 노고가 많았소.  그리고 안주방어선에서 패배한 부대의 명예는 이번 12사단 공병대의 활약으로 회복되었다고 봅니다."

  이 차수는 국군의 지원부대들을 차례로 격려하였다.  이들의 지원 없이는 대전차대대의 전과는 불가능했다는 평가를 이 차수가 함으로써 국군 장성들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종식 차수가 근엄한 목소리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반격을 할 때요. 모든 작전은 반격을 염두에 두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하시오. 특히 강서군으로 향한 놈들은 전열이 정비되는 대로 곧 공격하시오. 그리고 함경도쪽의 후퇴는 보류하시오. 반격이요!"

  "예! 차수님."

  국군이건 인민군이건 가리지 않고 이 차수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중국군의 최강 합성장갑집단군에 대해 단 1개 대대의 소규모이지만 전문화된 부대를 배치하고,  특히 후방에 대공 미사일부대와 공군 요격기 부대를 집중배치해  압도적인 중국군의 항공우세에 대항해 일부지역이지만 제한적인 항공우세를 달성하여  대전차 대대에 대한 공중엄호를 철저히하여 대부대가 밀집한 것으로 중국군 지휘부가 오판하게끔 한 이 차수의 전술에 무궁한 찬사를 마음속으로 보냈다. 이제 전술이 아닌 전략차원에서도 이 차수의 능력이 발휘되길 바랐다.

  1999. 11. 20  10:50  함경남도 흥남

  "우린 앉아서 죽으란 말이야?"

  함경남도에 고립된 제 3군단의 군단장인 진 진형 중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백산을 점령한 중국군 39집단군이 강력한 헬기사단과 공중기동여단을 앞세운 기동전으로 순식간에 흥남 서쪽인 정평까지 점령하자, 중국군을 상대하며 천천히 후퇴하던 인민군 3군단과 5군단은 퇴로가 차단되어 함흥 남쪽의 흥남 해안가에 대부분 몰려있었다. 급히 달려온 동해함대에 의해 일부 철수가 시작되었는데 이제 와서 반격이라니 장난같지도 않았다.  부두에는 철수준비를 마친 1개 사단 병력의 보병들이 초조하게 배에 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북쪽의 중국군은 거리가 멀었고 남쪽의 중국군에게는 포병이 없어 주변에 포탄이 낙하하는 불상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그러나 후퇴하지 못하면 중국군에게 죽거나 포로가 될 운명이어서 이들은 초조했다.

  "서부전선은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군단장 동지!"

  "기래도 여기는 사정이 다르잖아. 완전 포위된 상태야~ "

  참모장이 반격을 종용하는데 상공에 한국군의 F-5 전투기들이 북쪽을 향해 날았다. 군단장이 비행기들을 보는 동안 참모장이 설명했다.

  "남쪽 정평에는 이미 폭격을 시작했고  구원군이 신속히 북진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적은 겨우 어제 방어선을 뚫었기 때문에 아직 견고한 포위망이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쪽에서 공격하면 포위 공격이 된다는 지적은 맞습니다. 물론 항공우세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합니다만..."

  군단장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남쪽 바다 상공에서 미그기 4대의 호위를 받으며 헬기 한 대가 날아왔다. 대공부대가 일순 긴장하다가 긴급연락을 받고 경계를 해제했다. 그러나 대공포는 헬기의 움직임을 계속 따라갔다. 대공포의 조준기 안에 흥남부두에 착륙하는 헬기가 잡혔다.

  "뉘기야?"

  군단장은 이렇게 불리한 전황에서  미그전투기 4대의 호위를 받고 오는 사람이 누군가 궁금했다.  진작 공중지원을 해줬으면 피해가 적었을 것이라는 불만이 쌓인 판에, 이 헬기의 출현은 별로 기분 좋은 것이 못 되었다.

  군단장이 있는 곳의 50미터 북쪽에 착륙한 Mi-8 수송헬기에서 일단의 장교들이 내렸다. 부두경비를 맡은 병력이 누군지 확인하러 달려갔다가 얼어붙으며 경례를 했다. 장교들이 군단장쪽으로 걸어왔다.군단장의 눈이 점점 크게 떠졌다.

  "차수 동지!"

  "진 중장, 수고 많으시구레."

  "어드렇게 이곳까지 오셨습네까? 포위당한 위험한 곳에 말입네다."

  이 종식 차수가 빙긋이 웃었다.

  "진 중장의 군단이 포위한 거이 아이었소?"

  "차수 동지..."

  "서부전선은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되었소. 이제 동부전선만 잘되면 우리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오."

  "알갔습네다. 기래도 무전으로 하시지 일케 직접..."

  "나도 인민군의 사기를 한 번 보고 싶기도 해서 이렇게 왔소."

  이 차수가 후퇴를 위해 동해함대를 기다리며 힘없이 앉아있던 인민군 들을 둘러 보았다. 갑작스런 이 차수의 등장을 보고 모두들 웅성거렸다. 패배한 전쟁터를 방문한 군 최고지휘부의 존재는 이들의 사기를 급격히 올렸다.이제 이들은 그동안의 잊혀진 부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차수는 다른 정치지도자도 아닌,  인민군들의 존경받는 어른이며 현역 군인이었다.

  "동무들!"

  이 차수가 나이답지 않게 쩌렁거리는 목소리로 인민군 장병들에게 외쳤다.

  "남반부 해군은 남해와 서해 해전에서 중국군을 크게 무찔렀고, 평양 북쪽 서부전선에서는 우리 인민군들이  적 장갑집단군들을 섬멸하고 있소. 이제 이곳에서만 승리하면 우리 땅을 다 찾을 수 있소. 동무들의 2세와, 동무들의 가족과, 동무들의 미래를 위해 침략자들을 몰아냅시다!"

  인민군들이 벌떡 일어나 몰아내자를 연호했다.

  "싸우자!"

  함성이 해일이 되어 산을 넘었다. 이들은 어제의 후퇴만 하던 부대가 아니었다. 모두가 전의에 불타올랐다. 국군이나 서부전선의 인민군에게 더 이상 뒤지고 싶지 않았다. 함대에의 승함에 대비해 포장했던 무장을 다시 풀었다.

  군단장이 임시 지휘소로 쓰는 막사로 이 차수 일행을 안내했다. 이들은 정평을 점령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함경남도 신포와 북청에 남아있는 인민군 5사단은 김책(성진)시 쪽으로 북진시키고, 함흥 북쪽 신흥의 인민군 8사단은 개마고원쪽으로 이동시켰다. 후퇴하던 인민군 3사단의 갑작스런 역습에 혜산에서부터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없이 천천히 남진해오던 중국군 제 5병단은 당황하여 황급히 전선을 축소시켰다.

  함흥 비행장에 속속 착륙하는 허큘리스 수송기로부터  한국군의 제 3 공수여단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부대를 정비한 후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함흥 서쪽의 성천강쪽으로 향했다.정평 남쪽의 영흥으로부터 인민군 제 9 기계화군단과 보병 2개 사단이 투입되어 전투에 임하고 있었고,  낭림산맥의 백산으로부터 후퇴중이던 1개 사단도 동쪽으로 이동하여 정평에 대한 포위망을 형성했다. 정평을 점령한 중국군은 3배 나 많은 병력에 역으로 포위되었다.이날은 지금까지의 한중전쟁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기록된, 하루 3만발의 포탄이 동해안의 조그만 읍인 정평에 집중되었다.

  1999. 11. 20  14:20  함경남도 정평

  중국 공중기동여단의 헬기들은 한국 전투기들의 계속되는 전투초계에 의해 이륙도 못하고 있었다.  기동성이 제한된 이들은 일반보병보다 무력한 존재였다.  이 집단군에 하나밖에 없는 중국 전차연대는, 비록 구식이지만 공격기와 포격의 지원을 받는  제 9기계화군단의 T-64에 의해 격파되고 있었다. 정평을 구원하러온 중국군 전투기들은 갑자기 육,해,공에 형성된 엄중한 대공방어망을 뚫기에 벅찼다.  대부분이 정평 북쪽 상공에서 미사일과 남북 전투기들에 의해 요격되어 압록강을 넘어 도망갔다.

  최초로 정평 북쪽에서 인민군 제 9기계화군단과 3군단 병력이 만나서 서로 부둥켜 안고 만세를 불렀다.국군 제 3공수여단이 북쪽으로부터 정평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해 시가전이 전개되었다.하늘로부터 인민군 제 11공정경보병여단이 낙하산으로 투입되어 시내 곳곳에서 전투를 시작했다. 바다쪽에서는 동해함대의 엄호를 받으며 인민군 제 27상륙경보병여단이 통일한국군 최초의 상륙전을 시작했다. 정평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제 27상륙경보병여단 소속의 박 철용 소위는 소대원들을 이끌고 정평 동쪽 언덕에 도달했다. 상륙전 때 적의 상륙저지 움직임은 전혀 없어서 피해를 입지 않고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망원경으로 정평을 살펴보니 이미 시내 곳곳에 불이 나고 있었고  사방에서 총격전이 한창이었다. 과연 저곳에 소대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기동전 위주의 편제인 중국 집단군은  대부분이 보병전투차나 장갑차에 탑승한 기계화보병들이고, 인민군 2개 군단을 포위하기 위해 이곳을 점령했기 때문에 상륙전에 대한 대비는 전혀 없었다.중국군은 갑작스런 대규모 포위공격에 놀라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돌아온 정찰병들이 정평 동쪽의 인민학교 운동장에  중국군 지휘부로 보이는 부대가 있다고 했다. 즉시 중대장에게 보고한 박 소위는 소대원들을 이끌고 그 인민학교 뒤쪽 주택가에 도착했다. 큰길쪽에는 급히 동쪽 해안으로 향하는 1개 대대의 중국군 기계화부대가 보였다.이들이 통과하기까지 숨어서 기다렸다가 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3층건물로 박 소위와 몇 명이 올라갔다.

  학교 뒤의 3층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니 2층짜리 학교건물 옥상에는 파괴된 대공포좌가 보였고 운동장에도 파괴된 전차 2대가 불타고 있었다. 복도에는 중국군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구식 장갑차가 두 대... 지휘차 한 대와 무선차, 파괴된 전력차... 경비병력은 강화된 1개 소대 정도...'

  박 소위는 건물 안에 있는 확실한 병력은 모르나 중국 지휘부는 전투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가정하고 일단 이곳을 공격하기로 정했다.  중대본부는 수색대인지 패잔병인지 모르나 일단의 적 보병부대와 조우하여 교전중이라고 전해했다. 중대장을 기다리지 않고 공격준비를 했다.

  선발대인 독고 중사의 분대가 학교 뒷담을 넘었다. 초병은 보이지 않았으나 조심하며 뒷문쪽으로 접근했다.  독고 중사가 안을 보니 앞문쪽에만 경비병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독고 중사가 신호를 하자 다음 분대가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박 소위가 안을 살핀 후에 분대의 공격진행 방향을 지정했다.  1개 분대는 건물 우측의 창문 아래쪽으로 보냈다.

  박 소위가 손을 폈다가 주먹을 쥐었다. 다시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폈다.  마지막으로 엄지손가락을 펴자 소대원 전원이 건물로 돌입했다. 1분대는 정문쪽의 경비병 두 명을 사살하고 운동장의 중국군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3분대가 2층으로 뛰어올라간 것을 확인한 1분대원들이 장갑차들을 향해 중국제인 69-1식 RPG를 발사했다. 후폭풍이 건물 현관에 불어닥치고 장갑차는 화염에 휩싸였다.

  3분대원들이 2층에 도착한 순간,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란 중국군 세명이 총을 들고 교실을 뛰쳐나왔으나 그들은 즉각 사살당했다.  유리창과 출입문을 통해 방망이수류탄을 던지고, 이 초 후에 수류탄이 연속폭발하자 인민군들이 일제히 교실로 뛰어들었다. 상당히 고위장교들로 보이는 중국군들이 머리를 바닥에 박고 엎드려 있었고 두 명은 배에서 내장과 피가 쏟어져 나오며 죽어가고 있었다.  분대장이 중앙탁자에 있는 지도를 보고는 즉시 무전기로 소대장을 불렀다. 그가 유리창을 통해 창문 밖을 보니 중국군 지원부대가 교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박 전사! 기관총!"

  분대장이 외치자 뒤따라온 기관총 사수가 즉시 운동장쪽 교실 창문에 PK경기관총을 거치하고 중국군들을 향해 기관총을 연사했다. 교문에 10여구의 시체가 쌓이자  물러난 중국군이 학교의 담을 대신한 화단 뒤에서 사격을 시작했다.

  창문 아래쪽으로 갔던 2분대는 창문을 넘어 복도를 통해  교실쪽으로 들어가 움직이는 모든 물체에 대해 자동사격을 가했다. 통신장교인듯한 권총을 쥔 중국군이 쓰러지자 뒤쪽 벽면에 핏자국이 튀었다. 중국군 한 명이 분대장인 독고 중사를 향해 자동소총을 쏘려했으나, 같이 온 하급전사의 사격이 빨랐다.  그 중국군은 머리와 가슴에 한 발씩을 맞고 뒤로 꺼꾸러졌다.  통신용 헤드기어를 쓰고 있는 나머지 중국군들이 손을 높이 쳐들었다. 하급전사들이 포로들의 몸수색을 하고 있을 때 독고 중사가 소대장에게 상황이 끝났음을 알리는 무전신호로 무전기를 두번 툭툭 쳤다.

  1999. 11. 20  15:30  인천광역시, 영종도 국제공항

  여객기들이 눈코 뜰 새 없이 이착륙을 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하느라 아우성이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중국적자들이었고 얼굴이 알려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많이 포함되었다. 97년의 위기때 북진통일을 부르짖던 여당지도자와 99년 만주수복운동위원회의 위원장의 얼굴도 보였다. 이들은 어줍잖은 영어를 쓰며 항공사에 좌석을 강요했으며, 외국항공사에는 특별기의 증편을 요구했다. 하지만 외국항공사들은 전쟁이 벌어진 한국상공에 진입하는 자체를 꺼렸다.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과 일본은 아직까지 한국에 남아있는 자국민을 철수시키기 위해 계속 특별기를 파견했다.  한 대학교의 총장은 비행기트랩에서 미국군인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미군에 의해 떠밀려졌다.  특별수송을 담당한 미군들은 본국에서 미국인 백인과, 이들과 동행하는 동양계 미국인들만 탑승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돈 들여서 어렵게 구한 미국 영주권도 소용이 없었다. 다시 트랩으로 오르려는 총장의 눈앞에 그 미군이 권총을 들이밀었다.

  의외로 외국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많았다.대부분이 젊은 학생들이었다. 유럽에서 온 여객기에서는 단체 배낭여행을 다녀온 학생들인지 색색의 배낭을 매고있는 학생들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 젊은이들의 깔깔거리는 모습은 사라진 채 어두운 얼굴로 대합실을 빠져나왔다.  여객기는 평소의 러시아와 중국을 통과하는 항로가 막히자 알래스카를 통해 왔는데,  일본이 한국으로 향하는 여객기들의 이륙을 지연시켜서 도착이 하루 더 늦어졌다. 학생들은 즉시 공항버스를 타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서울로 향하는 공항버스 위로 초음속 전투기들이 지나갔다.

  쟈카르타에서 출발한 보잉 767 여객기가 활주로에 내렸다.  새털라이트(원형)식 탑승장에 내린 코오롱 엔지니어링의 백 창흠은 서둘러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인도네시아에 석유화학공장 플랜트를 건설하다 전쟁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한 그는 택시를 잡아 타고 분당으로 향했다.

  1999. 11. 20  16:30  북위 31도, 동경 126도 해상 (동지나해)

  이 지역은 제주도와 중국 상하이, 그리고 일본 가고시마와 정확히 같은 거리에 있는 해상이다. 중국에 4,000대나 있는 구식 미그-19형 전투기의 항속거리 아슬아슬한 이곳 해상에 반전전사그룹 피스의 함대가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중국 공격기들이 내습했으나 미리 탐지한 함대는 조기경보기와 막강한 러시아제 대공시스팀의 합동작전으로  이들의 공격을 피해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항모에서 발사된 사정거리 450km의 SS-N-19 함대함 및 함대지 겸용 미사일과, 러시아로부터 항모와 같이 구입한 슬라바급 순양함에서 발사된 사정거리 550km의 SS-N-12함대지미사일이 상하이와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그리고 난징(南京)의 공항과 시내 중심부를 향해 발사되었다.한국군으로서는 중국 본토에 대한 최초의 공격이었고, 중국도 전쟁의 피해지역이 될 수 있음을 세계에 알리는 전략적 공격이었다.

  목표해상에 도착한 함대가  보급선에서 미사일을 전달받아 다시 재장전을 하는 중에 공격준비를 마친 항모탑재 전투기와 공격기들이 이륙을 시작했다. 공격기로 쓰이는 수호이-25UT 프록풋이 먼저 날았고, 이어서 전투기 겸 공격기인 F/A-18, 마지막으로 MiG-29K 편대가 날아올랐다.

  거대한 러시아제 항공모함의 동쪽 15km 해상에 커다란 물기둥이 솟아 올랐다. 물기둥 상공을 P-3C 오라이언이 스치듯 날았다. 또 한 척의 중국 잠수함이 초계기에 잡혀 침몰한 것이다.  함장인 루시쵸프가 함교를 통해 이 광경을 망원경으로 살펴보았다.

  2개 함대가 거의 전멸한 중국 해군은 의외로 힘이 없어보였다.  아직 막강한 북해함대가 남아있었지만 함장으로서는 그들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난 적이라고는 몇 대의 수호이-27K에 의한 호위를 받는 16기의 구형 J-6 공격기와  두 척의 한급 원자력잠수함 밖에 없었다.  공격기들은 구식 잉지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곤 부리나케 도망쳐 버렸다. 발사된 32발의 미사일 중 함재전투기가 절반을, 슬라바급 순양함의 SA-N-6 장거리 대공미사일이 나머지 절반을 잡았다. 최종방어는 필요도 없었다. 도망가던 중국 전투기들도 10여기가 함재전투기들에 의해 격추되었다.  중국군은 당분간 같은 작전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함장이 생각했다.

  잠수함은 함대에 접근하던 중에 초계기와  탑재헬기에 의해 어이없이 당했다.  수중속도가 25노트 밖에 되지 않는 개조되기 전의 이 한급 원자력 잠수함들은 함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너무 서두른 것이 실수였다. 잠수함의 존재를 확인한 초계기가 전파관제하에 접근하는 중에, 바보같은 잠수함 함장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해 부상했는데  그 순간 초계기의 하픈에 당했다. 어뢰도 아닌 대함미사일에 당한 어처구니 없는 경우였는데 이것은 부상해야만 대함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한급 잠수함의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다른 한 척은 초계기와 헬기들에 의해 포위된 채  필사적으로 도망다니다가 결국 방금 침몰했다. 초계기는 잠수함 바로 위에서 폭뢰를 투하하여 두번째 탄이 잠수함 바로 옆에서 폭발했다. 잠수함의 함체에 균열이 생기고 누수가 시작되는 소리가 초계기에 잡혔다. 점점 심해에 가라앉다가 결국 함체가 찌그러들며 폭발했다.  항모의 함장 루시쵸프는 이 해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한편으로는 최근의 발전된 기술에 의해 침몰한 잠수함 원자로의 용융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루시쵸프는 원래 러시아 해군 소속의 중형 항공모함인  쿠츠네쵸프의 함장이었다.  나이가 들어 퇴역하자마자 정보업무상 몇 번 마주쳤던 짜르로부터 용병 제의를 받았다. 그는 이 제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바다가 그를 불렀기 때문이다.

  '뱃놈은 어쩔 수 없어.'

  초계기인 오라이언이 항모에 착륙했다. 함장은 러시아제인 매이나 베어 F에 더 믿음이 갔지만, 오라이언의 승무원들은 의외로 잘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육상기지 발진형인 다른 것보다는 함재형인 오라이언이 훨씬 낫긴 했다.  피스의 함대는 한국 해군의 도움도 없이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륙함과 함께 사령관인 싱은 서해상에 남았다. 지상군 병력은 이미 한국의 목포에 상륙하여 북으로 이동중이었다. 이들은 조만간 평양 북쪽의 전투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피스 함대에 맡겨진 임무는 중국  해상봉쇄와 함께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이었다.

  '방어전을 위한 공격이라...'

  함장은 약간 걱정이 되었다.한국군 입장에서야 한반도 전선에서의 제공권을 잡기 위해서도 당연히 중국 본토를 공격하고 싶겠지만, 만약 중국이 핵을 사용한다면...  핵을 보유한 국가가 외국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자국영토 안을 침공한 적에게 핵공격을 하는 경우 핵의 선제 사용에 대한 부담은 훨씬 작아진다. 함장은 절대 함대를 중국연해에 접근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공해상에 함대를 전개한 채 공격기로만 중국을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다.  어차피 해상에는 목표로 삼을만한 중국함대가 보이지 않았다.

  1999. 11. 20  16:50  중국 상하이 상공

  "2시 방향에 중국 전투기 편대 출현, 접근 중."

  호주 출신의 용병 조종사 맥스가 함대 상공의 조기경보기로부터 받은 자료를 검토하며 동료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신은 미그-29를 몰고 공격기 편대를 엄호하는 것이 임무였다.고도 3만 피트의 미그기에서 멀리 보이는 상하이는 불에 타고 있는지 검은 연기가 시내 곳곳에서 치솟고 있었다. 조기경보기에서는 함대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공항과 전투기 기지, 산꼭대기의 레이더 기지,  그리고 항만과 시내 곳곳의 목표에 명중되었다고 전해왔다.  그리고 상하이 상공의 미그기는 미그-23의 중국제인 J-8 Finback이라고 알려왔다.

  중국의 미그들과 40km까지 접근했다.  레이더의 성능이 떨어지는 J-8 이라면 지상레이더기지의 관제에 따라야하므로 지상레이더 기지가 파괴되어 관제를 상실한 지금  중국의 미그기들은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미그-29 편대 아래에서 선회하고 있던 F/A-18 전투기들이 AMRAAM공대공미사일 8발씩을 발사했다.  조기경보기로부터 수신되는 맥스의 레이더 정보에는 암람과 미그-23이 점점 접근하고 있었다. 맥스는 중국인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멋있는 디자인의 미그-23이 파괴될 생각을 하니 정말 아까왔다.

  중국 요격기 편대는 미사일과의 거리 약 9km에서 그 존재를 알아차리고 회피하기 시작했으나 총 192기의 미사일이 90기의 미그를 노리고 쇄도했다. 미사일을 모두 발사하여 벌거벗은 F/A-18은 미사일배달부의 역할을 마치자 전과확인도 하지 않고 항모로 돌아갔다. 피스의 미그-29와 중국 전투기들의 거리가 15km로 접근했을 때에야 상공에 미사일이 모두 사라졌다.  동시에 60여기의 J-8 전투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화재에 휩싸인 넓은 상하이 시내 곳곳에  추락하는 중국 전투기들로 인해 새로운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차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녔으나 30여곳 이상에서 발생한 화재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중국 전투기의 조종사들이 겨우 미사일을 피했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편대를 재정비하고 있을 때 미그-29 전투기들이 공격해왔다.처음 중국 전투기들이 감지한 것은 전투기의 대공 레이더였고 다음은 공대공미사일의 레이더였다.중국 전투기들의 오른쪽에서 하늘을 가득 채우며 미사일이 날아오고 그 뒤로 미그-29 전투기들이 보였다.  놀란 중국 조종사들이 급히 선회하며 본능적으로 채프를 뿌렸으나 미그-29에서 발사된 AA-10 알라모 대공미사일의 절반은 적외선 추적방식이었다.

  상하이 상공에 불꽃놀이가 이어지고, 지상의 중국인들은 도대체 누가 이겼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궁금증보다 중요한 것이 그들의 목숨이었다. 시민들이 짐을 꾸리고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향하는 상하이의 모든 도로가 피난민들로 메워졌다. 도시는 순식간에 그 기능을 마비했다.

  중국 전투기들의 편대장은 자기 편이 7기로 줄었을 때에야 도망칠 것을 생각했지만 이미 자신의 전투기 뒤에는  미그-29 전투기가 따라붙고 있었다. 전투기 어디에 맞았는지 조종이 제대로 안되었다. 또다시 미그-29에서 발사된 기관포탄이 번쩍이며 편대장기의 진로 앞으로 스쳐갔다.

  수호이-25UT 프록풋(Forgfoot) 편대가 저공비행으로 상하이에 도달했다.  공격기 편대의 북쪽에는 거대한 양쯔(揚子)강이 바다와 만나는 만 입구가 보였다. 장강(長江)으로 불리는 이 강은 칭하이성(靑海省)의 탕굴라산맥 북쪽에서 발원하여  티베트, 윈난(雲南), 쓰촨(四川),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장시(江西), 안후이(安徽), 장쑤(江蘇)를  거치고 상하이에 이르러 동지나해로 흐르는 길이 6,300km의 대하(大河)이다.이 강의 광대한 유역에는 중국 총인구의 4분의 1인 약 2억 2천만명이 살고 있다.

  바다 위를 스치듯 저공비행으로 날아온 수호이들이  항구와 조선소를 맹폭격하기 시작했다.  상선과 유조선이 가장 먼저 당하고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이 무너졌다.  침몰하는 유조선이 흘린 중유가 항만 해상을 가득 메웠다. 상하이의 바다가 불타고 있었다.항만 폭격을 마친 공격기들은 시내쪽으로 향해 날아가 나머지 폭탄을 투하하고 지대공 미사일을 피하며 동쪽으로 달아났다. 공격기들의 작전시간은 단 5분에 불과했다.

  수호이-25UT의 폭격이 끝나자 상공에서 엄호하며 가끔 지상의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던 미그-29들도 동쪽으로 돌아갔다.  난징 방향에서 급히 출격한 200여기의 미그-19기들은 이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1999. 11. 20  17:20  동지나해, 피스함대의 항공모함 함교

  "미국 함대입니다!  1-5-4에 항모를 포함한 기동부대입니다."

  함교 밖으로 전투기들의 착함을 지켜보던 함장이 급히 자신의 지휘콘솔에 앉아 중앙레이더 화상을 보니 십 여 척의 대형함들이 급속 서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상수색레이더와 대공레이더, 그리고 조기경보기의 레이더영상이 컴퓨터에 의해 조합된 이 레이더 화상에는 뜻밖에도 항공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들의 200km 동쪽 해상에 E-3C 센트리 조기경보기 한 대만이 보였다.

  "기동부대가 아냐. 상공에 전투기가 없고 함의 숫자도 부족하다.함종을 확인할 수 있나?"

  통신장교가 조기경보기와 한참 통신을 하더니 항모 1척과 타이컨디로 거급 미사일순양함 2척, 알레이 버크급 미사일구축함 4척, 그리고 기타 수송선과 보급선이 몇 척 있다고 알려왔다.

  "침로 2-5-0, 30노트. 짜르를 부탁하네."

  함장 루시쵸프가 함대를 급히 남서쪽으로 돌리고  개성 통일참모본부에 파견되어 있는 짜르를 불렀다.  짜르와 통일참모본부의 참모들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9. 11. 20  17:25  개성, 통일참모본부

  "공격하면 안됩니다! 미국이 참전할 수도..."

  육군의 김 병수 대장이 호전적이고 막강한 미국과의 전쟁을 상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국과의 전쟁은 상상만 해도 공포 그 자체였다. 미국과의 전쟁은 최악의 경우 민족의 말살까지 고려해야 했다.

  "공격해야 됩니다.그 무기가 중국의 손에 들어가면 겨우 반전에 성공한 우리 군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집니다."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주장했다.그는 최근 미국이 해외에 파병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며 수송함대에의 공격을 강력하게 주장했다.중앙화면에 나온 루시쵸프도 고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수송중인 무기는 어떤 종류입니까?"

  양 석민 중장이 더듬거리는 영어로 루시쵸프에게 물었다.영어라면 양 중장보다 훨씬 더 더듬거리는 루시쵸프를 대신해 짜르가 설명했다.

  "초대형급 항모 1척과 여기에 탑재된 신형 항공기 90대,  타이컨디로거급 이지스순양함 2척과 그보다 소형의 이지스구축함인 알레이 버크급 4척입니다.  3척의 수송선에는 신형인 F/A-18E 및 F-15 전투기 200여기가 탑재되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의외로 빨리 왔군요, 계획은 알았지만... 아마 미국 7함대에서 빼돌린 물량 같습니다. 중국이 상당히 급해졌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참모들이 질려버렸다. 중국은 초반에 신형전투기와 2개 함대가 거의 소모되자, 구형의 전투기와 군함을 투입하기 보다는 신형이며 전투력이 막강한 무기체계를 급히 미국에서 도입한 것이다.  미국은 고객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본 사세보항에 기항 중인 항모와 일본 각지에 배치된 주일미군의 전투기들을 급히 빼돌렸다.  태평양 해상에는 지금도 다른 수송함대가 신형 전투기를 가득 싣고 빠른 속도로 중국을 향하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를..."

  동부전선에서 정평 점령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온 이 종식 차수가 부관에게 지시했다. 북한 인민군의 군 지휘권을 최 광 차수에게서 완전히 이양받은 이 차수는  국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한국 대통령의 결재만 받으면 되었다. 부관이 화상통신을 준비하는 동안 이 차수가 참모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정도의 무기라면... 우린 파멸이오."

  참모들이 고개를 숙였다. 평양을 아슬아슬하게 방어하고 이제야 반전을 시작한 통일한국군에게 제공권은 중요했다. 수많은 전투기 파일럿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제공권을 장악한 지금도  압도적인 수의 구형 중국 전투기들에 의해 제공권이 위태로왔다. 소형의 한국형 구축함으로 간신히 버티고 약간의 기략으로 중국의 2개 주력함대를 격파한  통일해군도 이지스순양함 2척과 이지스구축함 4척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화면에 홍 대통령이 나오자 참모들이 기립했다. 이 차수가 단도직입적으로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각하, 미국의 초대형 원자력항모와 이지스순양함 6척이 제주도 남해상에서 중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피스의 짜르 참모는 이를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로 보고 있습니다.  또다른 수송대가 태평양에서 중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무기들이 중국에 넘어가면 우리는 전쟁에 지게 됩니다. 이들을 공격할 기회는 지금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격할 경우 각하는 미국인들의 분노를 사게 될 것입니다. 결단을 내려 주십시요."

  비상각의를 진행중이던 대통령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주변에서는 아마 국방장관이나 한국군의 육해공 참모총장들이  대통령에게 공격을 반대하는 주장을 하는지 시끄러웠다.  이 차수가 대통령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대통령이 한숨을 길게 쉬는 모습이 보였다.

  "이 차수의 생각대로 하시오. 뒷감당은 우리 정치인들이 해야지 어떻겠소. 질 수는 없고... 걱정마시오..."

  대통령이 이 차수에게는 걱정말라고 했지만, 자신은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각하, 안됩니다!"

  비상각의에 참가한 국무위원들과 참모총장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 차수는 그들의 눈이 아마도 살기를 띄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빙긋 웃었다. 대통령이 화상전화를 급히 끊었다.이 차수는 부관에게 대통령 이외에 국군 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 또는 국방장관의 통화를 거부하라고 부관에게 지시했다.아직 화상통신을 끊지 않은 루시쵸프는 고뇌하는 표정을 계속 짓고 있었다.

  "그들을 공격하시오. 혹시 전투기의 지원이 필요하오?"

  통역인 인 한수 중위를 통해 이 차수의 뜻을 전달하자 짜르와 루시쵸프의 표정이 환해졌다.  짜르와 루시쵸프는 피스 함대로만 미국 수송함대를 공격하는 경우, 한국과 미국과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피스함대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한국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었는데 이 차수의 한마디가 그들을 안심시킨 것이다.

  "아닙니다. 다른 방법으로 공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루시쵸프가 연신 고개를 숙이자 이 차수가 고개를 저어 만류했다.

  "아니오, 어려운 임무를 맡아주어 고맙소.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1999. 11. 20  18:30  동지나해 해상

  미 항모 죠지 워싱턴은 중국영해를 향해 급속히 서진하고 있었다. 이 초대형 항모를 호위하며 2척의 타이컨디로거급과 4척의 알레이 버크급, 그리고 6척의 수송선과 2척의 보급선은  북쪽 해상에 피스 소속의 함대가 있다는 사실을 위성정보를 통해 알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위협을 피해 중국해군 지상발진 전투기들의 호위가 가능한 해역으로 급히 함대를 몰고 있었다.

  죠지 워싱턴은 1990년에 건조된 미국의 원자력 항공모함이다. 만재배수량 10만 2천톤, 전장 332미터의 이 거대한 항공모함은 평소에 탑재하던 전자전기와 초계기를 육상기지로 돌리고 대신 F-14와 F/A-18 전투기로 갑판과 격납고를 가득 채우고, 이들을 중국에 인도하기 위해 항해중이었다. 상공의 호위는 다만 함재전투기와 일본의 육상기지에서 발진한 E-3C AWACS만이 담당하고 있었다.

  "피스 함대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레이더 담당장교가 함장에게 보고했다. 함장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대 수상전 경보를 해제했다.이륙 직전의 함재전투기들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애당초 피스 함대가 우리를 상대하려는 것은 무리였죠."

  함대의 대잠전을 지휘하는 맥과이어 준장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피스함대를 비웃었다.  해상수색레이더를 담당하는 하사관은 아까부터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 함장이 그의 등을 툭 치며 물었다.

  "자네 왜 그래? 아까부터."

  하사관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한참 고민하더니 하사관이 레이더 화상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접근하고 있는 두 척의 참치잡이 어선 말씀인데요..."

  "그게 뭐 어때서? 아까 우리 전투기가 비무장인 것을 확인했잖은가? 중국 선적이고..."

  "예... 하지만 이들의 진로가 수상쩍습니다. 우리 함대 양 옆으로 통과할 예정입니다."

  "우하하!  어선들이 갑자기 하픈으로 공격할까봐 겁나나? 이봐, 이들과의 거리는 5km 이상씩 떨어져 있다구.  그리고 하픈이란게 아무 배에나 다 장착되는 것도 아니고... 혹시나 발사한다고 해도 우리의 대공방어망을 뚫을 수는 없지. 걱정 말게나."

  함장이 걱정 말라고 했지만  하사관은 계속 이 어선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아무래도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두 척의 어선이 미국 함대의 남쪽과 북쪽 해상을 완전히 지나쳤습니다."

  하사관이 보고하자 함장이 그것 보라는 듯 하사관을 나무랐다.

  "어선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북쪽의 피스 함대나 감시하라고.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왜 한국은 우리를 그냥 통과시키지? 지금밖에 공격할 기회도 없고 이 무기가 중국에게 넘어가면..."

  함장이 극비로된 수송선의 화물에 대해 생각했다.  수송선 세척에 나뉘어 실린 각 96기의 F-14와 F/A-18 전투기, 그리고 다른 수송선 3척에 있는 A-10 공격기와 아파치 헬기들... 이 화물은 중국의 육해공 전력을 한단계 상승시킬만한 양의 엄청난 무기였다.  한국이 지금 저지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전선은 붕괴될 것이 확실했다.

  "한국이야 당연히 중국보다 우리 미국이 무섭겠죠. 설마 우릴 공격하겠습니까?"

  맥과이어 준장이 말하는 순간 함교 밖쪽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함장이 함교 밖 해상을 보는 순간에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고 충격파가 이어졌다.

  "안지오가 당했습니다! 무엇에 당했는지 모릅니다. 퇴함하겠답니다!"

  통신사관이 타이컨디로거급 순양함  안지오의 함장 말을 그대로 전했다.안지오는 1993년에 건조된 최신형 이지스함인데 중국에 인도되는 함대의 전면 북쪽 해상 경계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함장의 얼굴이 쟈빛으로 변했다. 해가 진 해상에 또다른 섬광이 빛났다.  항해사관이 남서쪽 해상을 보며 외쳤다.

  "러셀도 당했습니다."

  러셀은 1995년에 건조된 최신형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함이다. 타이컨 디로거급보다 약간 소형이지만 그 공격능력은 거의 같다. 다만, 타이컨 디로거의 탑재헬기가 2대임에 반해  알레이 버크급은 헬기가 없다는 차이가 있다.

  "도대체 적은 어떤 방법으로 공격하는거야?"

  함장이 물었으나 이는 함교에 있는 모든 이들의 의문점이었다.갑자기 항공모함이 진동하며 크게 흔들렸다. 충격에 함장과 함교요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함장이 먼저 일어나 함의 상태를 살폈다. 함의 곳곳에서 피해를 보고해왔다. 다시 한번의 충격파가 함을 뒤흔들었다. 다시 쓰러졌다가 일어난 함장이 마이크에 대고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전투기 발진!"

  그러나 그는 이착함 관제사관으로부터 절망적인 보고를 받았다.

  "발진할 수 없습니다. 기관실과 원자로 측벽이 당했습니다!"

  "수송선 두척이 침몰중입니다!"

  "DDG-55 스타웃, 공격을 받고 침몰중!"

  "CG-60 노르망디 대파, 운행불능!"

  계속하여 참담한 보고가 이어졌다.  남아있는 것은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함 두 척밖에 없었으나 언제 당할지 알 수 없었다.수송선은 동쪽으로 도망가고 있었으나 속도가 너무 느렸다. 피스의 헬기 두 대가 이 수송선을 추격했다. 함장이 중얼거렸다.

  "기뢰야... 참치 어선 두척과 연결된 낚시줄에 기뢰를 달았어..."

  함장은 한국이 과연 미국과 대적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통신병이 함장에게 피스의 함장이 통신에 나왔다고 보고했다.  피스 항모의 함장은 함대를 당장 제주도쪽으로 돌리라고 협박했다.  함대 상공에는 언제 왔는지 미그-29 전투기들이 저공비행으로 날아 남쪽으로 지나갔다.함장이 본국에 보고하는 순간 헬기 한 대가 접근해왔다.

  1999. 11. 20  19:10  서울, 논현동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온 신 승주씨는 입대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소집영장에 적힌 소집날짜는 11월 19일로 되어있으니 하루가 늦은 셈이었다.  아내는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흐느끼고 있는지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서둘러 속옷과 세면도구를 챙기고 집을 나서려다 TV뉴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잠시 TV를 보니 위험한 전선에는 빠짐없이 등장하여 전선 상황을 시청자에게 알려 이번 전쟁통에 가장 용감한 종군기자로  이름을 날린다는 박 영범 기자가 화면에 나와있었다. 화면에는 위성중계 생방송이라는 자막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기자는 지금 평안남도 순천지구 전선에 나와있습니다. 해가 진 지금도 전투가 한창입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자랑스런 국군과 인민군은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카메라가 잠시 포격이 빗발치고 있는 앞쪽 산을 비쳤다. 조명탄과 포탄의 폭발 섬광 사이로 인민군의 전차와 보병들이 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네 대의 F-4 팬텀기들이 고지 정상 부근에 집속폭탄을 투하하고 남쪽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고지 여러 곳에서 하늘로 치솟아 오른 불빛이 전투기를 따라갔다.

  갑자기 화면이 흔들리며 굉음이 들렸다.화면에는 카메라가 있는 참호 이쪽 저쪽이 흔들리며 보였다. 한국군 소속의 군인들이 치열한 포격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진정이 되더니 다시 기자가 나타났다. 기자 주위에는 흰눈이 나부끼고 있었다.

  [중국군은 서부전선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동부전선에서도 우리 군의 반격작전이 훌륭하게 수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시청자들께 이미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만, 서부전선은 더 치열한 전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기자가 있는 이곳 서부전선 모 기지는 지금도 중국군 포격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용감한 우리 국군과 인민군의 전진을 끝까지,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보도할 것을...]

  다시 섬광이 비치며 카메라가 흔들렸다.  신 승주는 대단한 기자들이라며 감탄했다. 군인들도 포격이 무서워 참호 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데 기자들은 너무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다. 다시 화면이 안정이 되고 화면 중심에 박 기자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나타났다. 이마가 약간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박 기자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가리고 말을 이었다.

  [저희 KBS는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싸우는 국군과 인민군의 자랑스런 모습을 시청자 여러분께 신속하게 전달해 드리고 있습니다. 아! 지금 흰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반격하는 우리 통일한국군의 승리를 축하하듯 첫눈이...]

  화면이 갑자기 밝아지고 잠시 후에는 화면이 까맣게 되면서 칙칙거렸다.  화면에 앵커인 중년의 남자 아나운서를 중심으로 보도본부가 비쳐졌다. 남자 아나운서는 당황하는 표정이었고, 옆의 여자 아나운서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다가 자리를 박차고 오른쪽으로 뛰어나갔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란 PD가 급히 남자 아나운서의 상체를 잡고 있던 2번 카메라로 바꾸었다.

  "박 기자! 박 기자! 박 영범 기자 나와주세요."

  앵커가 애타게 박 기자를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다. 앵커가 침통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며 말했다.

  "전선의 박 영범 기자가 연결이 안되고 있습니다.그가 안전하기를 빕니다. 지금까지 본 방송국의 기자 세 명을 포함해 모두 24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이번 전쟁중에 사망, 또는 실종됐습니다. 잠시 카메라를 미국 대사관으로 돌려 주한 미국대사의 기자회견을 듣겠습니다.현장에 이 승 기자 나와주세요. 이 승 기자?"

  [예, 여기는 미국 대사관 기자회견장입니다...]

  화면에는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북적거리는 회견장을 배경으로 젊은 기자가 나타나 방금 전에 끝난 미국대사의 기자회견 소식을 전했다.

  "미국이 한국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데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해군이 미국의 해군함대를 공격하여 2척을 침몰시키고 5척을 대파했으며,  이들을 모처로 납치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 승주는 다시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까지 따라나선 아내는 그 때까지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신 승주도 말을 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두 사람이 섰다.

  "걱정말아요. 우리가 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들어가요."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그만 고개를 푹 숙였다.

  1999. 11. 20  19:30  개성, 통일참모본부

  "눈이 오고 있습니다!  첫눈입니다."

  이 호석 중장이 창가로 뛰어가  창밖의 함박눈을 보며 어린애처럼 외쳤다.  참모들이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들 첫눈을 보고 싶었지만 체면때문에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이 차수가 창가로 가서 눈내리는 연병장을 보자 참모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갔다.  전쟁 와중에도 모두 환하게 웃었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눈 내리기 시작한지 꽤 시간이 된 모양으로 가로등에 비치는 참모본부의 연병장에 눈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참모들은 마음같아서는 연병장으로 뛰어가  눈을 마음껏 맞으며 눈싸움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조금 전에 피스함대가 중국으로 향하던 미국함대를 나포해 제주도에서 화물을 내리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와서 모두들 들떠있어서 이 차수가 한마디 할 때까지는 눈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모두들 잘해주었소.  이제 눈이 내렸으니 적의 공격은 눈에 띄게 약해질 것이오. 우리 군의 보급부대는 월동장비가 되어있겠죠?"

  참모들이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지금 내리고 있는 폭설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보았다. 회의가 시작되고 정 지수 대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중국군의 현재 주력은 제남(濟南)군구와 남경(南京)군구의 병력입니다. 이들은 당연히 겨울에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선천의 차 중령이 보낸 보고에도 월동장비 노획에 대한 보고는 없었습니다."

  차 영진 중령이 지휘하는 노농적위대와 교도대는 간신히 북한 전파망과 연결되어 간간히 무선교신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동하면서 무선 교신을 하기 때문에 아직 중국군에게 추적당하지 않고 있었다.  통일참모본부는 피점령지역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장투쟁을 하는 민간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들은 단순한 유격대가 아니라 중국의 병참선을 차단하고 있는 대단한 부대였다.  중국은 도로사정이 열악한 개마고원쪽으로 병참선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정 대장은 제 11기갑사단의 후퇴전에서 세운 공과 현재의 감투정신을 육군본부에 보고해서 차 중령의 대령 승진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적은 월동장비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단기전으로 끝낼 생각이었겠지만, 11월에 눈이 온다는 생각을 미처 못한 모양 입니다."

  박 정석 상장도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으나 김 병수 대장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인민군도... 겨울에는 기동이 극도로 제한됩니다. 도로 사정도 길티만 전차래 다들 낡아서..."

  "그건 걱정마시오.  우리가 전차구난차와 민간에서 징발한 불도져 등을 보내 드리겠소. 현재 전선으로 이동중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건 차수님이 어제 아침에 제게 말씀하셔서 준비한 것입니다만...  차수님의 신경통은 정확한 모양입니다. 하하.  일기예보에는 일주일간 눈이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정 지수 대장의 말에 참모들이 호쾌하게 웃었다. 20세기가 거의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도 과학적인 일기예보보다 노인의 신경통이 더 정확하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차수도 싫지는 않은 듯 투덜거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양 중장이 뭔가 꾸미는 것같은데, 혹시 무슨 일인지 알아도 되겠소?"

  정 대장이 참모들의 웃음이 잦아들 무렵에  양 중장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양 중장이 최근 참모본부를 비우는 시간이 많아서 정 대장이 한번 찔러본 것인데 의외로 양 중장이 웃으며 순순히 털어놨다.

  "첫째는... 하하하. 이 눈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차수님의 신경통이 도진 것이 아니죠."

  양 중장이 참다못해 배를 잡고 웃었다.이 차수도 결국 껄껄거리며 웃었다. 사정을 몰랐던 참모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요? 그럼 인공강우? 아니, 눈이니 강설이군. 이게 우리 기술로 된단 말이오?"

  김 병수 대장이 깜짝 놀라 물었다.  피스의 짜르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러시아에서도 인공강우는 계속 시험해왔지만 정확한 지점에 정확한 강수량을 보장하지 못해 기상이변이 속출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 바로 인공강수였다.잘못하면 한 곳에 집중호우, 다른 곳에는 가뭄을 유발시킬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웬만한 상황에서는 실시하지 않는 시험이었다. 양 중장이 참모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예, 평안북도 선천과 구성쪽은 차 중령과 저격여단이 훌륭하게 보급선을 차단하고 있지만, 중국은 만포-강계-희천을 연결하는 선에 보급선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고지대들인만큼 폭설의 영향은 더 커질 것입니다. 아마 산발적인 보급부대 폭격보다는 훨씬 효과가 크겠죠. 그렇게 되길 기대합니다만,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중앙기상대는 이 지역에서 30cm 이상의 적설량을 예보하고 있습니다.아까 낮에 서해상으로 출격한 수송기 편대가 그들입니다. 고공에서 넓은 구름대에 요오드화은과 드라이아이스로 만든 눈의 씨앗을 살포한 것이죠."

  "음... 훌륭하오. 그럼 두번째는 무엇이오? 양 중장..."

  기상상황을 중요시하는 공군 출신인 양 중장이 낼만한 아이디어였고, 이를 중앙기상대와 과학기술원의 전산팀,그리고 공군 CN-235M 수송기들이 합작하여 훌륭하게 수행한 것이다. 양 중장이 두번째 질문에 대답하려다가  참모들의 부관들과 통신팀원들을 상황실 밖으로 나가도록 명령했다.양 중장이 짜르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를 믿기로 했는지 대답을 시작했다.

  "두번째는 중국군의 중앙컴퓨터에 관한 것입니다. 구 소령과 김 소령 들어오게!"

  양 중장이 인터폰을 눌러 두 대학생 해커들을 불렀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나타나 브리핑석에 서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참모들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소령들이 설명을 마치자 양 중장이 요약을 했다.

  "그렇니까 우리는 중국의 중앙전산망을 통해 핵미사일의 발사 암호를 알 수 있으며, 미사일기지에 우리측 요원들을 침투시킬 수 있습니다.그리고 중요한 전황에서  중국군의 전산망을 두번에 걸쳐 마비시킬 수 있고, 이 사이에 우리가 전략적인  공격목표에 대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우리 민족은 절멸이오, 절멸!  이,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오. 실패했을 경우의 위험은..."

  정 지수 대장이 그 위험을 생각하며 몸서리쳤다.양 중장이 무거운 어조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중국의 선제 핵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한반도에 침입한 중국군들은 지금 위기에 봉착했으며,  그들의 위기감은 전쟁이 진행될수록 계속 상승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이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더라도, 우리가 실지를 모두 회복하게 되면 그들로서도 어쩔 수가... 그전에 미리 막아야 합니다."

  정 대장이 고통스런 표정을 짓더니  왼쪽 벽면에 걸려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상통신을 위한 화면인데 지금은 꺼져있었다. 정 대장이 조용히 참모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대통령이 결정해야할 상황이오. 어쩌면 이것은 중국군 400만 대군의 침공보다 더 위험한 일일 수 있소.그리고 우리 군 요원 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기관도 관여되어 있는 일이니,  우리의 권한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참모본부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것을 제안합니다. 적 지대지 미사일의 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화상통신은 안되오. 일단..."

  이 차수가 나섰다.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을 벗어던지고 차라리 전선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본관의 상관이신 최 광 차수가  대통령 각하를 면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인민군에는 차수 위에 원수, 그 위에 대원수가 있었다.  1994년에 김일성이 죽고나서 대원수 자리는 지금까지 공석이 되어 있었고,  원수인 김 정일은 대원수에 취임하지 않았는데,  3명의 원수가 모두 죽은 지금 인민군 총참모장인 최 광 차수가 군 지휘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 광 차수는 사실상의 군 지휘권을 이 차수에게 모두 위임한 상태였고, 전쟁 수행 중의 정치적인 문제는 홍 대통령에게 거의 일임했다. 자신은 전쟁을 계속 수행하기 위한 북한쪽의 동원문제만 관할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실권을 거의 상실했지만, 그의 양보 덕택에 군 지휘권과 전쟁수행을 위한 행정이 비교적 무리없이 일원화될 수 있었다.

  참모들이 침묵했다. 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이 호석 공군중장이 나섰다.

  "독립된 방공부대가 없는 우리 군의 실정으로 볼 때, 이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일단의 미사일 요격 능력이 있는 전투기로 편성된 요격기부대와 지대공미사일부대를 통합시켜 참모본부 직할로 배치해야 합니다."

  참모들이 끄덕거리고 이 문제들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1999. 11. 20  21:20  평안남도, 안주 남쪽 15km

  중국의 전투기들은 미그-29와 수호이-27 등의 극소수 신예 전천후 전투기들을 제외하고는 폭설 때문에 출격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한국 공군의 전투기들이 전선을 넘어 중국군의 보급로 곳곳을 공습하고 있었다. 통일한국군의 지상군 병력은 폭설과 저격여단의 보급로 차단작전에 의해 갑자기 급속도로 약화된  중국군 방어선 곳곳을 뚫고 천천히 북진하고 있었다.

  국군 제 61 동원사단은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중국군 장갑집단군을 전멸시킨 인민군 815 기계화군단을 따라 북으로 전진하고 있었다.개전 첫날인 11월 17일에 긴급소집된 예비군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진 61사단은 이틀 동안의 교육과 훈련을 마친 다음, 아침에 기차로 광주를 출발해서 평양에서 트럭으로 갈아타고 오늘 오후에야 전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양 북쪽인 영유를 통과할 때는 불에 타고 파괴된 수많은 중국군 전차의 잔해들을 보고 이곳이 전쟁터라는 것을 실감했다. 아침에 끝난 전투여서인지 아직도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전차도 보였다.  언덕 너머에는 처참하게 일그러진 전차와 각종 차량,  그리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불에 탄 시체들이 온 들녘을 메웠다.  대부분이 동원예비군들인 61사단 병사들은 중국군 대신에 자신들이 저 모양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들판을 내리는 눈이 덮고 있었다.  상공에는 전투기들이 저공비행으로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또 안주다! 우린 안주로 간다."

  어느 병사가 외치자 트럭에 탄 다른 병사들 사이에 잠시 술렁임이 일어났다. 개전 이틀째에 안주와 신안주 지역에서 큰 전투가 일어나 그곳 전선을 지키던  인민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이제 한국군과 인민군이 힘을 합해 안주 지역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18일과 다른 점이라면 통일한국군이 공세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며,중국군은 순천쪽에서 후퇴한 인민해방군이 다리를 건널 때까지 배수진을 치며 맞서려 한다는 점 뿐이었다.  이곳에서 다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들이 신안주가 보이는 안주평야의 부서진 한다리(大橋)역 부근에 도착하여 포격이 쏟아지는 이곳에 전개를 시작한 것은 자정이 넘어설 무렵이었다. 이제 1999년 11월 21일이 시작되었다.

  1999. 11. 21  00:30  평안남도 안주 상공

  한국 공군 소속 F-16 전투기의 파일럿인 김 종구 중위는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다.전쟁이 시작된 11월 17일 새벽에 비상이 떨어진 이후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된 출격 때문에 전투기조종사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적 지대공미사일도 아니고, 적 전투기도 아닌, 쏟아지는 졸음과 피곤이었다.조종사들은 전투기가 점검을 받는 중인 두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잠깐씩 눈을 붙일 수 있었으나, 나머지 시간은 계속되는 요격과 공중지원, 또는 상공엄호임무 등으로 출격하느라 지상에 발을 디디고 있는 시간이 훨씬 더 적었다.

  수원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F-16 전투기 12대는 지상지원을 하는 F-4E 팬텀기와 A-10공격기들의 상공엄호임무를 맡아 고공에서 적 전투기들을 요격하고 있었다. 뜻밖에 중국의 미그-29 전투기들은 한국 공군의 F-16 전투기들이 두려웠는지,아니면 이 비싼 전투기들의 급속한 소모에 놀라 몸을 사리는지 지상전투가 계속되는 안주 상공에는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안주전선에서는 팬텀기와 A-10공격기들이 신나게 중국군 진지를 두둘기고 있었다.  김 중위는 공격기 편대의 조종사들이 부러웠다.

  중국군의 지대공미사일은 이미 소모되었는지 지상의 포화는 대공자주포의 사격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도 곧 팬텀기들에 의해 박살이 나서 지상으로부터의 위협은 사라지게 되었다. 폭격을 마친 공격기들이 남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상공에서 보였다.

  편대장의 지시에 따라 중국 전투기들을 향해 각각 4발씩의 암람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전투기 레이더의 조준에 따라 한 발씩 북쪽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레이더를 보니 중국 전투기들이 미사일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회피운동을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미사일에 전투기 하나가 잡혔다. 그러나 그 뿐, 중국 전투기들은 저공으로 피하며 북쪽으로 도망갔다.편대장기의 선도로 편대는 수원기지를 향해 비행했다. F-16이 빠진 상공을 인민군의 MiG-23이 대신했다.

  1999. 11. 21  07:30  동해, 독도

  "소속미상의 대규모 함대 접근! 남동쪽 35 km 해상입니다."

  레이더를 맡은 곽 상경이 외쳤다.  독도 경비대장인  안 국선 경위가 레이더를 보니 오른쪽 아래 구석에 수많은 휘점이 보였다. 미국이나 러시아의 대규모 함대가 독도 해역을 통과할 때도 이 정도로 대규모는 아니었다. 아직 영해침범까지는 아니었지만 경제수역을 침범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사전통고 없는 함대의 침범이라니...

  안 경위가 긴장을 하며 곽 수경이 앉은 옆의  통신장비에서 마이크를 들고 통신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여기는 물개, 호박엿 나와라, 오버."

  안 경위가 몇 번 부르자 울릉도의 해군파견반이 무선에 나왔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울릉도 호바~악엿. 무슨 일인가? 오~바."

  울릉도의 무선병이 뱀장수 흉내내듯 목소리를 낮게 깔고 발음을 길게 내었다. 안 경위는 이게 무슨 장난인가 화가 났지만 상황이 급했다. 속으로는 콜사인을 이따위로 정한 해군들에게 욕을 하고 있었다.

  "동남방 35 km 해상에 대규모 함대 급속 접근중! 우리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항공정찰을 요청한다, 오버."

  "알았다. 오버!"

  무선병도 긴장해서 즉각 응답을 하고는 울릉도 해군 파견대장에게 보고했다.  파견대장은 북평의 제 1함대 사령부에 보고하고 함대사령관은 즉시 울릉도 서쪽에서 초계중인 제 12구축함대를 불렀다.구축함대의 함재헬기 2대가 동쪽을 향해 날았다.

  "헬기가 보입니다, 대장님!"

  관측을 맡은 김 수경이 무전기로 수비대장에게 보고했다.  안 경위가 막사 밖으로 나와서 서쪽하늘을 보니 슈퍼 링스 헬기 두 대가 급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헬기들이 독도 상공에서 안심하라는듯 한바퀴 선회를 한 다음에 고도를 높이고 남동쪽으로 날았다.

  1999. 11. 21  08:10  슈퍼 링스

  "수색 시작."

  기장이 적당한 고도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부기장에게 레이더 해상수색을 명했다. 부기장이 기기를 조작하는 중에도 기장은 계속 고도를 높였다. 레이더경보기의 수신음이 삑삑거리기 시작한 거리는 목표에서 약 60 km였다.

  "1만톤급 순양함이 세 척입니다.  기타 다양한 배수량의 함정이 12척에 달하고 있습니다.목표에서 발하는 레이더 전파는 콩고(金鋼)급의 공중수색레이더에서 나온 것입니다.  F밴드인데요?  목표상공에는 헬기가 10여대 떠 있습니다."

  "그럼 또 일본인가?"

  부기장이 보고하자 기장이 기도 안찬다는 듯 말했다.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독도 해상에 함대를 연례행사처럼 파견하고 있었다. 올해는 그 빈도수가 많다는 것을 기장도 알고 있었으나 설마 무슨 일이 날까 걱정하지는 않았다.  국제통신주파수를 이용하여 영해침입의 경고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부기장이 레이더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미사일입니다! SM-2MR형 미사일 2기가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부기장이 경악을 했다. 부기장의 외침에 기장은 바로 헬기를 급강하시켰다. 따라오던 다른 헬기도 즉시 강하했다.

  "미친 놈들이... 즉시 함대에 보고하라."

  통신사를 겸한 옆자리의 부기장이 제 12구축함대를 불러서 상황을 보고했다.함대에서는 돌발적 상황에 놀란듯 헬기들에게 지시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미사일이 마하 2의 속도로 접근했다.  헬기는 레이더를 끄고 저공비행으로, 가능한 서쪽으로 급속히 비행했다. 잠시 후 미사일이 날아왔지만, 중간유도인 관성유도 후에는 발사체의 전파에 의한 최종유도를 받아야하는 이 미사일들은  본함의 레이더에서 헬기들이 사라지자 목표를 잃고 서쪽으로 얼마쯤 날아가다가 공중에서 자폭했다.

  "우리도 한방 쏠까요?"

  부기장이 하픈에 일본함대의 위치를 입력시켰다. 물론 구축함 탑재헬기 기장의 권한을 넘는 문제이니  기장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공격받기만 하고 반격을 못하는 것이 분했다.  사정거리만으로 보면 하픈을 장비한 헬기쪽이 훨씬 유리했다.  대공미사일의 사정거리 밖에서 사정거리가 더 긴 하픈을 날리고 헬기는 도망칠 수 있기때문이다.

  기장이 기다리던 함대로부터의 명령이 내려졌다. 계통을 통해 보고중이니 위협적인 행동을 자제하라는 것이 명령이었다.  이럴 경우 어디까지 보고하는지는 뻔했다. 진해의 해군사령부에서는 합참과 국방부에 보고하고, 국방부는 청와대에 보고할 것이다.  합참은 또 이 문제를 개성의 통일참모본부에 보고하게 되는 것이 현재의 명령 및 보고계통이었다.

  기장은 일본 이지스함의 대공미사일 사정거리 아슬아슬한 곳인 약 75km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일본함대를 레이더로 수색했다.  여차하면 대함미사일을 날리겠다는 위협이었다. 함대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명령을 들은 부기장이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영해를 침범하기 전에는 절대 공격을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또 다시 대공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말입니다.지금 제 12구축함대가 급거 동진 중입니다."

  부기장이 기가 막힌듯 힘없이 말했다.부기장이 레이더로 보니 일본의 함대는 한국 영해 아슬아슬한 곳까지 접근했다가 급선회했다. 부기장은 일본함대가 영해로 들어오길 내심 기대했지만  기대가 무너지자 짜증이 났다. 거리는 약 50km가 되었으나 기장은 더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영해를 침범할 경우 응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기장은 고도를 약간 올려 하픈의 발사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미사일! 총 4기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기장이 부기장의 외침을 듣자마자 고도를 내리고 잽싸게 서쪽으로 도망갔다.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러나 명령이 명령인지라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헬기는 이미 최고속도에 도달해 있었다. 기수가 뾰족하게 생긴 슈퍼 링스 헬기가 수면을 스치듯 날고 있었다.

  "시 킹(Sea King)의 레이더입니다! 데이터링크가 되었을지도...!"

  부기장의 비명이 들려왔다. 기장이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급히 급상승하며 채프를 뿌리고는 급강하했다.이지스함의 대공미사일은 기본적으로 반능동 레이더 유도(Semi Active Homing)를 한다. 대공미사일이나 적기 등, 함대에 접근하는 복수의 위협에 대비하여 우수한 레이더로 복수추적을 하여 격파하는 능력이 있는 이지스함은  대공미사일을 능동유도에 맡길 수가 없다. 같은 목표를 다수의 미사일이 공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더 전파가 미치지 못하는 수평선 아래로 목표가 숨어버릴 경우 반능동유도를 할 수 없는데, 이럴 경우 탑재헬기에서 레이더를 발사하여 데이터 링크로 자료를 이지스함에 송신을 하면 이지스함이 대공미사일을 유도하게 된다. 한국 헬기들은 일본함대의 탑재헬기인 시 킹 때문에 이제 수평선 아래로 숨을 수가 없게 되었다.

  "1기 회피, 또 접근합니다!"

  부기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기장은 미사일을 피하면 꼭 하픈을 발사하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이 군법회의에 불려가더라도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다.만약 자신이 일본의 미사일에 맞아 전사하면 일본은 자신이 일본함대를 먼저 공격했다고 생떼를 부리거나  국제사회에서의 힘을 이용하여 얼버무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분했다. 그리고 그는 미사일의 영공침해도 틀림없는  영토침범의 하나로 간주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오른쪽 상공에 섬광이 번쩍였다.편대기인 헬기가 미사일에 맞아 공중 폭발한 것이다. 기장이 급선회 및 급상승을 하여 간신히 미사일을 따돌렸다.그는 헬기를 급하게 조정하여 고도를 올렸다. 이미 기장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발사!"

  기장이 명령하자 부기장이 얼떨결에 2발의 하픈을 발사했다.  영국의 웨스트랜드사에서 제작한 슈퍼 링스의 한국해군 인도분중  초기형은 시 스쿠아(Sea Scua) 대함미사일 4기를 장착했다.  그러나 이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짧고 탄두의 위력도 약해서, 대양해군으로 발돋움하던 한국해군은 다른 나라들처럼 1997 년부터는 하픈을 탑재할 수 있도록  헬기를 개조했다. 하픈이 목표를 향해 날았다.

  "함대사령관이 나왔습니다. 하픈을 발사했다고 난리인데요?"

  부기장이 보고하자 기장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니기미, 지랄하지 말라 그래. 우린 죽기만 하란 말야? 내 말 그대로 전해."

  황당해진 부기장이 기장의 말을 동해함대인 제 1함대사령관에게 그대로 전하는중 부기장이 경악을 했다.

  "적 전투기가 나타났습니다! 미사일 경보!"

  저공으로 한국 영공을 침입한 일본의 F-15J 전투기 두대가 남쪽 상공에서 나타나 가시거리 훨씬 밖에서 한국해군의 헬기에 스패로우 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4발의 스패로우는 채프를 이미 다 써버린 슈퍼 링스 헬기로 쇄도해왔다. 마지막 수단으로 ECM(전자전)을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헬기로서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저공비행중이던 헬기가 그대로 물속에 기체를 쳐박았다. 기장은 일본의 미사일에 죽기는 싫었던 것이다. 미사일들이 목표를 잃고 침몰하는 헬기 위를 스쳐 지나갔다.

  수면에 부딪힌 충격으로 부기장은 실신해 있었다.  기장이 문을 열고 헤엄쳐서 자동으로 펼쳐진 구명보트를 끌고서 다시 헬기로 돌아가 부기장을 옮기는 중에 일본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F-15J 전투기가 물 위에 아직 떠있는 헬기에 기관포를 마구 쏘아댔다.  해면에 하얗게 물보라가 튀었다. 수 십 발의 포화를 뒤집어 쓴 슈퍼 링스 헬기는 순식간에 폭발했다. 폭발 순간의 강력한 폭풍이 구명보트를 뒤집었다. 전투기들이 상공을 몇 번 선회하더니 동쪽으로 날아갔다.  빈 구명보트 근처에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슈퍼 링스에서 발사된 2기의 하픈은 목표점을 향해 저공으로 날고 있었다.  목표가 입력된 하픈은 관성유도에 의해 마하 0.9의 속도로 순항했다. 목표 전방 5km에서 급상승하여 레이더를 키고 가장 큰 목표를 향해 자동적으로 돌입했다.

  미쯔비시 조선소에서 건조된 콩고급 2번함인 기리시마가 하픈의 요격에 나섰다. 기리시마 함미의 수직발사기에서 스탠더드 SM 2기가 치솟았다. 그러나 하픈의 궤도가 급강하하자 스탠더드는 모두 빗나갔다. 일본의 함대에서 마지막 방어수단인 채프로켓을 발사하며  팰렁크스 대공포를 연사했다. 그러나 레이더로 자동유도되는 대공포도 고도를 급격하게 바꾸며 날아오는 10평방센티미터의 작은 표적을 맞추지는 못했다. 하픈은 탄막을 뚫고 기리시마의 함교에 명중했다. 폭발의 충격이 함을 휩쓸고 대화재가 발생했으나 침몰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함은 순식간에 전투불능이 되었다.  각종 관제장치를 통제하는 컴퓨터가 있는 함교와 3차원레이더를 잃은 이지스함은 물위에 떠있는 고철과 다름없었다. 온몸에 불이 붙은 수병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북쪽에서 항주중이던 시라네급 구축함 구라마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함미의 헬기 플랫폼을 위로부터 뚫고  들어간 하픈은 함의 가장 밑바닥에서 폭발했다. 선체의 상부는 화재, 하부는 침수되는 이율배반적 상황에서 구라마는 함미부터 침몰하기 시작했다.  붉은 원을 그린 헬기들이 함대 위로 날았다.

  1999. 11. 21  08:25  제 12구축함대 기함 강원함

  헬기로부터의 보고가 끊기자  동해함대의 분함대인 제 12구축함대 사령관 이 승호 해군준장이 당황했다. 중국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마당에 일본과 이런 사태가 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일본이 이 사태를 이용해 무슨 짓을 할지 두려웠으며, 일본의 의도대로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슈퍼 링스로부터 받은 자료를 검토해 보니, 독도 부근의 일본함대는 한국동해함대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도 막을 수 없는 막강한 전력이었다.

  "통일참모본부에서 호출입니다."

  통신사관이 회선을 넘겼다.이 준장이 상황을 보고하자 잠시 회의하는 듯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더니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차수요.지금 우리는 일본과 일전을 겨룰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소. 참으시오. 귀항하시오.]

  "차수님...그들은 영공과 영해를 침범했습니다... 그리고 독도가 위험합니다. 일본 함대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 준장은 설마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의 전쟁이 또 터지면,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에 찢기고 마오. 분쟁 방지에 모든 력량을 동원하시오. 독도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상황에서 우리는 참을 수 밖에 없소.]

  "... 알겠습니다. 차수님. 하지만 저들은 그냥 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준장이 통신기를 놓고 함대에 귀항을 명령하자마자 바로 독도에서 연락이 왔다. 이 준장이 받았으나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냥 돌아가면 어떡합니까? 저들은 계속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방금 전투기들이 기총소사를 했고 헬기와 일본함대가 접근중입니다. 전사 한 명에 부상자가 두 명입니다! 그 중에 한 명은 중상입니다!]

  "안 경위. 상부에서는 현재 일본과의 일전을 회피하기로 결정했소.귀관이 나라와 겨레를 생각한다면... 응사하지 않기를 바라오."

  [우린 죽어도 좋소! 하지만 독도를 포기할 생각이란 말이오? 설마!]

  안 국선 경위의 말에는 분노가 가득 실려있었다. 갑자기 회선 연결상태가 악화되더니 무선이 중간에 자꾸 끊겼다.

  [일본 헬... 치직~ 미사.. 칙!]

  이 준장이 통신기 옆의 기둥을 주먹으로 쳤다.주먹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통신기에는 잡음이 잔뜩 실린 채로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통신실의 수병들이 따라부르기 시작하더니 함내에 퍼져 울렸다. 원래는 코믹한 리듬의 노래였지만 지금은 장엄하게 들렸다.

  1999. 11. 21  08:30  독도, 서도(西島)

  "함대에서는 우리더러 응사하지 말고 그냥 죽으라고 명령했다."

  안 경위가 침통한 목소리로 상부의 명령을 부하들에게 전했다.  바깥에서는 일본 전투기에서 투하한 폭탄과 일본함대의 함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연이어 작렬하고 있었다. 관측소에 있다가 중상을 입고 독도 서도의 남쪽 동굴로 후송된 김 수경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독도의 다른 섬인 동도에 나가있는 대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여기있는 전투경찰들은 아무도 몰랐다.통신실과 식량창고를 겸한 레이더실이 폭격에 파괴되고 내무반으로 쓰는 막사도 불에 타고 있었다. 한국 해군이 구원을 오지 않는다면 이들은 죽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포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냥 죽기는 억울합니다. 싸워야합니다, 대장님!"

  곽 상경이 주장하자 다른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했다. 안 경위도 끄덕였다.

  "그럼 우린 싸우다 죽기로 하지, 헬기 소리가 들린다. 나갈 준비!"

  전투경찰대원들이 자신의 화기를 점검했다. K-2 자동소총과 탄알 108발이 전부였지만 최소한 두 명의 일본군을 죽이겠다고 결심했다.헬기가 섬 이곳저곳에 내리고 일본어로 외치는 소리와 군화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군화소리가 점점 동굴로 접근했다.

  "나가자!"

  안 경위가 선두에 나서서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향해 자동소총을 발사했다. 바로 뒤따라 나선 곽 상경도 자동으로 긁었다.해변 자갈밭에서 수색중이던 일본 육상자위대의 공정단 소속의 자위대원들이 갑작스런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총소리에 놀란 절벽 위의 일본군들이 아래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저격수 출신의 피 수경이 무릎쏴 자세로 한 발에 한명씩 쓰러뜨렸다. 총에 맞은 일본군들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자위대의 응사가 시작되자 엄폐물이 없는 자갈밭에 있던 대원들이 하나씩 쓰러졌다. 일본 해군의 무장헬기가 동굴 앞쪽에 나타나 포위된 한국 전투경찰을 향해 기관포를 쏘아댔다.

  1999. 11. 21  08:40  평안남도, 안주

  한국 61사단병력은 인민군 815 기계화군단의 엄호를 받으며 신안주를 차츰차츰 조금씩 점령하고 있었다. 중국의 대부분 기갑전력은 한국공군의 공격기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청천강 북쪽의 포병대도 거의 전멸했다. 단지 일단의 패잔병들이 후퇴시기를 놓치고 신안주 시내에 숨어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새벽의 치열했던 전투에 비하면 지금은 무척 평화롭다고 할 수 있었다.

  새벽에 중국군 1개 집단군의 5개 사단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1개 장갑사단을 선두로 한꺼번에 밀고 내려온 그들에게  하마터면 방어선이 무너질뻔 했으나,815 기계화군단이 중국 장갑사단을 포위하여 궤멸시켰다. 여기에는 저격여단의 대전차대대가 합세하고 한국군의 야간전 장비를 갖춘 A-10 공격기도 가세했다.  중국 보병사단들은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왔으나 개활지에서의 인해전술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무수한 인민 해방군이 통일한국군의 기관총에 쓰러졌다. 중국군 공격의 중심이 되었던 국군 61동원사단의 중앙병력이 천천히 후퇴하며 중국군을 유인했다. 대부분이 보병뿐인 중국군은 자루에 담긴 쥐처럼 몰살당했다. 중국군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계속 전진해왔다.

  투입된 병력수의 차이가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전략의 기본이었으나, 이는 같은 조건에서의 병력 수 차이가 중요한 것이지 은폐,엄폐물이 전혀 없는 개활지에서의 인해전술을 중국군에게 막대한 손실만 강요했다. 중국군은 한국전쟁 때의 인해전술은  모두 산악지형에서 상대를 포위한 상황에서만 이루어졌다는 전사의 교훈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작전을 강행하다가 크게 패배한 것이다. 1개 보병분대의 화력이 2차대전 때 소대 병력의 화력보다 강한 지금,  인해전술은 견고한 평야의 방어선 돌파작전에는 적합치 않았다.

  안주의 너른 들녘에는 3백여대의 중국제 전차가 아직도 불에 타고 있었고, 중국군의 시체가 발디딜 틈도 없이 가득 쌓였다.  부상자 후송과 진지 정비를 끝내고 61동원사단 병력이 늦은 아침식사를 시작했다.들녘에 가득한 피비린내와  아직도 파괴된 전차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 때문에 비위가 약한 군인들이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는데, 어떤 예비군이 '비료 안줘도 내년 농사 잘되겠다'고 농담을 하자 모두들 그 자리에서 토하고 말았다. 쌍방의 포격전이 어찌나 치열했던지, 안주 주변에는 쌓여있는 눈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포탄에 눈이 녹아 다시 얼음이 되었다.

  안주를 점령하고나서 간밤의 전투에서 피해를 입은 815 기계화군단과 국군 61사단, 인민군 보병 3개 사단이 보급과 정비를 위해 후방으로 빠지고, 대신  국군 제 9기갑사단, 보병 3사단, 63동원사단, 해병 1사단, 그리고 평양지역 방위군의 일부인 인민군의 제 2사단과 5사단이 투입되었다.  통일한국군으로서는 최초로 이루어진 전선에서의 병력교대였다. 이는 한국군이 드디어 병력에서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뜻했으며,  중국군의 이동과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청천강 유역으로 전진하는 제 9기갑사단의 전차 안에서 전차대원들이 페리스코프를 통해 청천강을 보았다. 청천강에는 부서진 리본형 부교의 잔해만이 강물을 따라 떠내려 가고 있었다. 백돌고개 앞의 습지 곳곳에는 후퇴하다가 죽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시체들이 노총각 재떨이의 담배 꽁초처럼 구겨진채 버려져 있었다. 9기갑사단의 전차들이 보병과 포병, 그리고 전투기들의 지원을 받으며 서서히 바닥이 마른 백돌고개 앞쪽의 청천강을 건너고 있었다.

  1999. 11. 21  09:30  일본 통막회의

  "저는 조선이 막강한 중국의 침공을 막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조선은 분명히 전력 외의 다른 뭔가가 있습니다. 이런 조선을 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군을 반도에서 몰아내면 조선군은 틀림없이 열도를 공격할 것입니다. 우리는 병력이 훨씬 열세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자위대 통합막료회의(統合幕僚會議) 회의실에서 항공막료장(航空幕僚長)인 야마다 마사오(山田正雄) 공장(空將)이 해상자위대의 독도점령에 우려를 표했다. 독도의 점령은 자위대로서 보면 실지회복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일본의 영토인 독도를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식민지에 불과했던 한국이 강점했다는 인식을 가진 일본인들은 이번 자위대의 독도 점령을 환영하고 있었다. 어차피 한국은 중국과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으므로,  결국 한국은 독도를 일본에 양보하게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방위청의 방위국에서 파견된 사토 가쓰미(佐藤勝巳) 조사 제 2과장이 씩 웃으며 한국이 이번 전쟁에서 우세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사 2과는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부서이며, 각국에 파견되어 있는 방위주재관(대사관의 무관)들이 외무성을 경유하여 보내오는 정보와 문서를 분석, 번역하는 임무를 맡는다.

  "조선이 중국에게 이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선은 중국의 군사정보를 빠짐없이 수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력편성이나 이동상황, 작전계획까지 조선군이 손바닥 들여보듯 훤히 아는데  이기지 못하면 더 이상하겠죠."

  "아니, 그게 무슨 뜻이오?  중국 군사위원회에 첩자라도 있다는 것이오?"

  육막장(陸幕長) 출신인 오부치 게이조(小淵蕙三) 의장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사토 과장에게 물었다.  다른 막장들도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사토 과장이 의기양양하게 한국이 유리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선의 해커들이 11월 19일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중앙컴퓨터에 침입했습니다.중앙컴퓨터에는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회의록이나 작전명령, 이동계획 등이 모두 입력되어 있으니, 조선군은 가만히 앉아서도 중국군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쉬운 전쟁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위대 장성들이 이제야 이해하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한국인들이 애국심이 투철하고 전략에 뛰어나더라도, 압도적인 중국군 병력과 신무기 앞에서는 일주일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군사전문가들의 의견이었는데, 상황은 반대로 되어 한국군이 중국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있었으니 이들이 의문을 품는 것이 당연했다.  거의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평가한 군사전문가도 있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것이다.

  "자, 화면을 보십시요."

  사토 과장이 자신의 콘솔을 조작하여 중앙화면을 켰다.  현재 중국군의 병력과 무기체계가 화면에 떴다.  그가 키를 몇번 치니 한중전쟁 직전과 현재의 상황이 비교되었다. 해군의 경우는 심각해서 현재 절반 정도의 전력 밖에 남지 않았으며,  함대로서의 전력을 갖춘 것은 북경 근처의 해역을 책임지는 북해함대 밖에 없었다.

  "중국군은 조선에 패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 일본은 조선에 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군사자료까지 모두 입수했으니까요."

  사토 과장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막료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토 과장은 대학생 해커들이 중국군 중앙컴퓨터에 침범할 때 일본 통신망의 슈퍼컴퓨터에 미니어쳐를 설치했는데, 정보 2과의 컴퓨터전문가들이 이를 파악해 한국군이 알고 있는 중국군의 자료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한국의 자료까지 입수할 수 있었다.그러나 육해공의 막료장들은 정규군이 아닌 자가 정보만을 믿고 설치는 것이 보기 싫은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에게 전쟁은 저런 민간인이 아닌, 충성심이 강한 군인에 의해 승리가 쟁취되어야 한다는 신앙같은 믿음이 있었다.

  "정보가 아니더라도... 우리 대일본군은 그깟 중국보다 훨씬 강하오. 그리고 지금 조선은 중국과 전쟁을 치르느라 전력이 바닥이 난 상태요. 지금이 조선을 정벌하기 쉬운 가장 절호의 타이밍이란 말이오.  육상자위대의 예비자위관들은 이미 소집된 상태고, 중공업은 이미 군수체제로 전환했소.  이제 징병제만 실시하면 되는데 왜 내각은 징병제를 실시하지 않소?  중국이 아직 반도에 남아있을 때 실시해야 중국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분이 설텐데 말입니다."

  최근에 육막장(陸上自衛隊 幕僚長)이 된 고마쓰 미도리(小松綠) 육장(陸將)이 투덜거렸다.

  "중국과 충돌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됩니다. 이런 경우는 삼국이 서로 싸우는 상황이므로 두 나라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중국이 완전 패배한 다음이 낫지 않겠습니까?  중국과의 전쟁으로 허약해진 한국군은  우리 육상자위대의 전시동원체제가 완전히 갖춰진 다음에 쳐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야마다 공장(空將)이 특유의 신중론을 폈으나, 가만 앉아있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해장(海將)이 책상을 탕탕 두들기며 소리쳤다.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조선을 정벌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중국도 우리의 공격을 반길 것입니다.  최소한 반도의 남쪽 절반이라도 우리가 차지해야 합니다."

  "어허~~~ "

  오부치 통막의장이 하토야마 해장을 만류했다. 하토야마 해장은 독도의 한국군과 헬기들이 먼저 공격해서 반격에 나섰다고 주장 했으나, 이를 곧이 들을 의장은 아니었다. 전쟁을 수행하기 전에는 수많은 정보분석과 사전준비가 필요한 법인데 소장파 장성들이 일을 그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수상과 내각은 일단 한국에 일본함대가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일본이 영해를 침범했다며 그 요구를 완강히 거절하고 있었다.  어쨋든 독도는 지금도 일본 해상자위대가 점유하고 있었고, 내각은 계속 시간을 끌고 있었다. 죽도(竹島)에 영원히 히노마루(일장기)가 휘날리게 하고 싶은 것이 모든 일본인의 바램이었다.

  "선전(宣戰)의 권한은 중의원에 있으니 기다리시오.  그리고 더 이상의 도발은 자제하기 바라오. 겨우 헬기 두 대 격추하고 우리 함대는 두 척이나 당하지 않았소?  그것도 2천억엔 짜리 이지스함이라니... 도대체 손익계산이 어떻게 된 것이오?  엄청난 손해가 아니냔 말이오."

  의장이 날카롭게 하토야마 해장을 질타했다. 해장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의장은 소장파 자위관들 때문에 군에 대한 문민우위의 원칙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역사에서는 중요한 전환점마다 쿠데타가 발생했으며, 결과적으로 일본국민을 불행에 빠뜨렸었다. 의장은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도 독도를 회복하길 바랐다. 패전 이후 지금까지 지켜온 전수방위(專守防衛)의 원칙을,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꼭 지키고 싶었다.

  의장이 갑자기 생각난듯 인민군이 보유한 중거리 유도탄의 현황을 물었다. 핵탑재가 가능한 스커드형 미사일의 파생형인 노동 1,2호나 대포동 미사일 등은 이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야마다 공장은 일본열도의 전역방위체계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지금 이 미사일을 완벽하게 요격할 수는 없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해장은 북한에 핵이 없으니 그 정도의 피해는 감수하자고 주장했다. 오부치 의장은 도쿄에 미사일이 낙하하는 광경을 상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린 시절 도쿄 상공을 비행하는 미군 B-29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1999. 11. 21  10:30  황해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통일참모본부는 일본의 독도 무력점령을 국민들에게 감추려고 했으나 이미 통신이 국제화한 이때,  이런 문제는 절대로 비밀로 지킬 수 없었다. 독도가 일본에 강점되었다는 소식이 국제전화와 컴퓨터통신망을 통해 순식간에 국민들 사이에 퍼졌고, 독도수비대원들이 한국군의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홀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는 사실이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일본과 중국을 싸잡아 비난했으며,  저항 한번 없이 독도를 순순히 내준 군 지휘부를 격렬히 비판했다. 컴퓨터 통신망에는 나라를 지키자는 내용의 갖가지 격문이 뜨고,  언론사에도 국민의 의견이 빗발쳤다.  일본의 독도 점령은 의외로 국민의 의분을 자아내어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일단 중국군을 몰아내고 보자는 여론이 급속도로 형성되어 예비군 소집 대상도 아닌 나이든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의 군입대가 급속히 늘어났다. 각지의 임시모병소와 군부대 앞에는 입영지원자들이 쇄도했다.국방부는 일단 전선에 여유가 생긴 상황이므로, 이들이 가진 기술과 건강 상태 등을 따져 선택적으로 입영을 허가했다.  이들을 철저히 교육시킨 다음 전황을 보아가며 전선에 배치할 계획이었다.  한국전쟁 때처럼 총 한방 쏘아보지 않고 전선에 배치되는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각 지방의 공업단지들은  급속히 군수산업으로 전환되어 속속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의류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즉시 군복 생산에 들어갔다.  피스의 함대가 중국에 대한 역해상봉쇄를 실시한 다음부터 말레이시아 등의 항구에서 대기하던 화물선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원료나 원자재난은 해결되었다.

  참모본부 상황실의 좌측 통신용 화면에 대통령이 나타났다.그동안 묵묵히 통일참모본부를 옹호해왔으며 신중하기로 유명한 홍 대통령도  그런 결정을 한 참모본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통일참모본부에 독도의 무력회복을 명령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 이 차수가 허허 웃으며 대통령의 불평을 들어주고 있었다. 이 차수는 대통령을 보며 육군병장 출신의 젊은 사람치고는  상황판단이 냉철하다며 감탄했다.  이 차수는 대통령에게 전혀 설명할 필요도 없었으며, 대통령은 미리 보고하지 않은 것만 이 차수를 탓할 뿐이었다.

  "씁쓸한 비난의 화살이로군요."

  홍 대통령과의 화상통신이 끊기자마자 양 중장이 투덜거렸다.

  "내래... 약소국에서 태어난 사실에 비애를 느낍네다."

  김 병수 대장도 한숨을 쉬며 한마디 했다.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은 일본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다.

  "일본은 너무 비겁하군요. 언젠가 꼭 죄과를 치룰겁니다."

  "그건 그렇고... 준비는 잘되어 가오?"

  이 차수는 이미 예상했다는듯,  홍 대통령의 불만같은 것은 신경쓰지도 않고 양 중장을 보며 준비상황을 체크하길 바랬다.치밀한 양 중장이 훈련상황과 침입예정루트를 참모들에게 보고했다.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거려 동의를 표했다. 정 지수 대장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이었다.도대체 이 작전 자체가 두려웠다. 대통령의 결정은 삼군총장과 합참의장,국방부 등의 라인은 비밀유지를 위해 소외시킨 채,  통일참모본부의 건의 형식을 빌어 홍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결정했다.  망설이는 대통령을 인민군의 최고실력자이며 참모장인 최 광 차수, 아니,  오늘 아침에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공산당 중앙상무위원회에 의해 원수로 추대된, 최광 원수가 설득하여 겨우 재가를 받을 수 있었다.

  암호명 [장마]라고 명명된 이 작전에는  한국의 국가안전기획부와 인민군의 정찰연대가 동원되었고, 이들의 호송은 한국해군의 잠수함대가, 그리고 루트 개척은 해군 UDT가 맡았다.  그들은 정규군은 아니지만 이번 한중전쟁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중요한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모든 한국인의 미래를 건 건곤일척의 승부수였다.

  1999. 11. 21  11:10  경기도, 동두천기지

   선천에서 패배한 국군 제 11 기갑사단의 잔여병력과, 안주에서 크게 당한 인민군 820 기계화군단의 일부 병력을 기간병력으로 하고, 남북의 전차대원출신 예비군들을 소집하여 긴급편성된 통일한국군 지상군의 첫 번째 부대인 제 1기갑사단이 러시아제 T-80 전차를 선두로 기지 정문을 지나 도로에 나섰다.  제 1 기갑사단은 각각 전차 51대로 이뤄진 4개의 전차대대, 155밀리 자주곡사포와 MLRS로 이루어진 포병연대, K-200보병 전투차가 중심이된 2개의 기계화보병연대, MD-500의 정찰형과 전차공격형 헬기로 이뤄진 항공대대,  그리고 기타 공병단과 기갑정찰대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사흘간의 교육과 훈련으로  예비군이며 광고회사의 대리였던 변 승재는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 러시아제 화기관제장치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변 승재는 전차 안에서 바깥을 보며, 혹시나 한국군이 오인해서 전차를 공격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부산에서 편성된 제 2기갑사단은 미국산 M-1A1 에이브럼스 전차로 편성이 되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깐깐한 인민군 군관을 전차장으로 모시지 않아도 될테니...'

  이제 다시 군으로 돌아가 변 하사가 된 변 승재는  포탑 위에 상체를 내밀고 있는 전차장을 힐끗 돌아보았다. 전차중대장인 그는 현역이라는데도 나이가 40은 되어보였다. 자기 말로는 전사출신 군관이라고 했다. 한국군으로 치면  이등병이 계속 군문에 종사하여 대위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변 하사가 끔찍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제 1 기갑사단은 북으로 전진해 임진강을 건너 전곡에 도착, 다시 서쪽으로 계속 달려서 개성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사리원과 평양을 거쳐 안주로 향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안주는 이미 통일한국군이 수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30대의 전차와 450대의 보병전투차, 그리고 기타 자주포와 보급트럭 등의 긴 행렬로 이뤄진 제 1기갑사단은  한 지점을 지나가는 데에 30분이 넘게 소요되었다.

  1999. 11. 21  13:50  평안북도, 박천 남방 10km

  폭설은 중국군 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전진하는 통일한국군에게도 방해물이 되었다.선두에 선 해병 1사단의 전투공병단이 불도져로 눈을 밀어내며 전진했다.  전쟁이후 첫 전투참가인 이들은 웬 노가다냐며 투덜거리며 도로의 눈을 밀어냈다.  공병단 앞에는 수색중대가 정찰을 하고 있었으나 적의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많던 중국군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공에 F-16의 호위를 받는 팬텀기들이 굉음을 울리며 북쪽 상공으로 날아갔다.  곧이어 대공포화 소리와 함께 폭탄이 작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병 1사단은 이제 곧 전선에 도착하는 것이다.

  "적은 평안북도의 운전, 박천, 영변, 희천을 방어선으로 고착시킬 태세입니다. 그 이남의 적은 모두 후퇴했습니다.  우리 사단의 목표인 박천에서 선두 부대가 강력한 적의 반격에 직면했습니다."

  이동지휘차 안에서 작전참모가 사단장에게 통일참모본부로부터 온 작전계획서를 설명했다. 사단장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통참은 우리 사단이 너무 돌출해 있으니  잠시 대기하라는 명령입니다.평남의 개천을 점령한 아군 2군단은 아직 청천강을 도하하지 못했습니다. 군단사령부에서는 박천의 반포위를 명했으나 공격은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반포위하면 당연히 전투가 개시되는 법...  어떻게 기다리기만 하라는건가?  음... 선두 부대를 철수시키게. 기다리기로 하지."

  사단장의 명령에 박천 남쪽을 공격중이던  해병 1사단의 선두 대대가 투덜거리며 철수했다.  해병 1사단의 병사들은 언덕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면서 연신 북쪽을 쳐다봤다.  저곳에 자신의 뼈를 묻을지도 몰랐으나 승리하고 있는 지금, 그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전선에 긴장감이 쌓인 적막이 찾아왔다.눈은 산과 들을 덮으며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1999. 11. 21  22:40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

  밤이 되자 다시 저격여단 야간전대대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 특수부대는 정찰병들이 곽산 인근에 대규모 중국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알려오자 이 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야음을 틈타 이동중이었다.  본대가 정찰대와 만나기로한 야산에 도착하자 대기하던 정찰병들이 왔다. 어둠 속에 보이는 그들은 눈밭 위에서 하얀 위장복을 입고 꿈결 속의 유령처럼 조용히 다가왔다. 대원들이 그들의 접근을 막고 수하를 했다.

  "암호!"

  "내가 잠들면 누가 밤을 노래하리."

  구 소련 페레스트로이카의 대중문화적 선구자인 락 스타 빅토르 최의 노랫가사는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암호였다. 암호치고는 엄청나게 길었지만, 대신에 상대방의 억양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이용되었다. 정찰병들이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적 부대는 보병 1개 여단입니다. 전차 등의 중화기는 없지만 경계는 비교적 엄중합니다."

  대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간전대대가 위명을 떨침에 따라 중국군 부대는 대낮보다는 밤에 경계를 더 철저히 해서  야간전대대가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었다. 한 시간 후에 달이 완전히 지므로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둠은 이들의 신앙이었다.  아직도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초겨울의 눈 치고는 상당히 오래 내렸다.  대대장이 내뿜는 입김이 하얗게 서려올랐다.

  대대장이 정찰병을 따라 야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망원경으로 중국군 주둔지를 보니 부대 주변이 대낮같이 환했다.

  "야, 이기 눈부셔 못보갔구만."

  "감도를 줄이십시요. 대대장 동지."

  대대장이 망원경의 광량조정장치를 조절하여 어둡게 했다. 이들은 어둠에 더 익숙하므로 밤에도 일반 망원경으로 본다. 인공적인 조명이 있는 곳을 볼 때는 망원경으로 들어가는 빛의 양을 줄여 볼 수 밖에 없었다.

  "저것들, 잘 때도 불을 안끄고 잡니다. 막사 주변을 철조망으로 치고 30미터마다 전등이 달린 전봇대가 하나씩 있습니다."

  정찰병이 말하자 대대장이 끄덕거렸다.

  "20메다마다 참호에 두 명씩 있구만. 이 간나이...  쓰..."

  "꼭 우릴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 1개 대대는 순찰활동하고 있습니다."

  "길타고 안티기도... 어제 그놈들보단 낫디만... 가자우."

  대대장이 중대장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 전멸은 못시키더라도 타격을 주자는 의견이 다수였다.대대장도 전선에서 피흘리고 있을 동지들을 생각하니 초조했다. 결국 공격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이윽고 달이 기울자 야간전대대 대원들이 움직였다.달없는 밤의 움직임이었지만 이들은 신중했다. 어제의 실패가 모두를 신중하게 했다.

  어제는 적 부대에 접근중 청음초소의 중국군 초병들에게 발각되어 공격도 못해보고 후퇴했었다.  선발대가 중국군 초소에 접근하던 중에 한 대원이 살얼음을 잘못 밟아 뽀드득 거리는 소리가 난 것이다. 중국군의 주둔지에 비상이 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그러나 미처 공격진형을 갖추지 못한 야간전대대는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적의 추격을 피해 약 30km를 북쪽으로 후퇴한 후에, 대대장이 처음 소리를 낸 대원을 즉결심판했다. 소음권총에 의한 총살이었다. 그 대원은 자결을 간청했지만 대대장이 들어주지 않았다.대대장이 권총을 뽑아 그의 머리에 대고 한 발을 쏘았다. 다른 부하들이 즉시 땅을 파고 시체를 묻었다.그리고 그 위에 눈과 썩어가는 낙엽을 덮어 위장했다.

  이 부대가 정주에 나타난 것은,  중국군의 추격도 피하고 상대적으로 경계가 덜한 청천강 북쪽의 적을 치기 위한 것이었다. 여단본부와의 무선은 끊어진지 이틀이 지났고, 임시 비트가 적에게 탄로나서 휴대한 비상식량도 바닥을 드러냈다. 어제의 야습이 성공했더라면 대원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만 오늘은 하루종일, 아니,  그들의 식으로는 밤새도록 굶고 있었다.

  대원들이 중국군 주둔지로 1분에 1미터씩 조심조심 접근했다.적의 야시경이나 적외선 스코프에는 걸리지 않는다. 소리만 안내면 되었다. 선발대가 전등이 약 100미터 가량 설치되어있지 않은 캄캄한 참호 앞쪽으로 갔다.  참호 밖에는 워낙 추워서 그런지 중국군 경비병이 총을 메고 나와 발운동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의 전사가 뛰어가 경비병들을 덮쳤다. 참호 밖의 경비병은 목이 부러지고, 참호 안의 경비병은 도끼에 머리를 맞고 죽었다. 참호를 점령한 전사들이 신호를 했다.

  선발대인 소대가 천천히 참호로 가고, 이를 확인한 본대도 서서히 움직였다. 대대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중국군 주둔지로 접근해 가는데 갑자기 조명탄이 올랐다. 조명탄은 선발대가 접근 중인 참호 앞이 아니라 본대 위로 떨어졌다.

  "함정이야!"

  사방에서 기관총 소리가 콩볶듯 들려왔다. 전차가 우르릉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조명탄을 정면으로 본 대대원 몇명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전차포가 이들을 향해 사격을 시작하여 대대는 섬광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야간전대대는 창설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중국군 특수부대인 권단 제 3려(여단급)는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명령을 받고 이들을 청천강 이남에서 부터 추격해와서, 이 곳에 위장 주둔지를 만들어 놓고 매복한 것이다.  이들은 최첨단 대인레이더를 탑재한 보병전투차 3대와 헬기, 전차 등 완벽한 준비를 하고 이들을 맞았다.대인레이더는 기존의 대인레이더와 달리 적외선레이더 중에서도 고감도의 도플러식 레이더였다.  대용량의 컴퓨터가 있어야 이동하는 데이터에 대한 발견과 처리가 가능한 이 레이더는 미국이 최근 개발한 신무기여서 야간전대대의 적외선 흡수 전투복은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권단은 무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부대였다. 부대 이름부터가 권단(拳團)인 특수부대였다.

  야간전대대원들은 일단 야간고글의 광량조절장치를 조작해 최대한 어둡게했다.  다시 수 십 발의 조명탄이 이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써치라이트를 킨 헬기들까지 가세해 공중에서 기관포를 쏘아댔다. 대원들은 눈을 다칠까봐 헬기를 향해 응사하지도 못했다.  아까운 대원들이 낙엽처럼 쓰러져가는 모습이 대대장의 핏대선 눈에 보였다. 이들이 이 정도로 어둠에 적응하기까지는 5년 이상의 훈련기간이 필요했다. 이들이 모두 쓰러지면 인민군은 최소한 5년 동안은 제대로 된 야간전대대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대장 동지,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승에서 뵙자고요."

  부관이 대대장을 측은한 눈으로 보았다.대대장도 이제 끝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싸우고 싶었다.  대원들이 대대장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응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이제 당분간 밤에 나다닐 수 없게 되었다. 암적응을 하려면 최소한 사흘의 야간훈련이 필요했다. 물론 살아남더라도...

  대대장이 주위를 살펴 적의 가장 약한 부분이  어디인가 확인하고 돌격을 외치려는 순간 다른 폭음이 들려왔다. 갑자기 상공의 헬기들이 공중폭발하며 추락했다.  헬기들이 갑작스런 적의 공격에 혼란에 빠져 사격을 멈추고 급상승해서 적을 찾으려 했으나  사격하기 더 좋은 위치만 내준 꼴이었다.다시 5대의 헬기가 추락하고 칠흑같은 하늘에는 더 이상 비행하는 물체는 없었다. 이제 공격은 전차에 행해졌다. 중국제 T-82들이 허망하게 폭발했다. 권단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우군입니다. 대대장 동지!"

  "기다리라우. 이런 곳에 아군이 있을리가..."

  대대장이 주변을 둘러보자  소총의 사정거리 넘어 멀리 전차 몇 대와 구형의 장갑차들이 보였다. 전차는 국군의 K-1인 88전차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장갑차는 인민군의 BRDM이었다. 하지만 병력은 별로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대대장이 안팎으로 포위된 중국군에 응사하며 상황을 살펴 보았다.

  "이 지역에 남반부 땅크라니,  길고 겨우 저 인원으로 역포위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중국군 권단은 사방에서 빗발치듯 날아오는 총탄에 공포를 느낀 모양이었다.대대장은 자신이 중국군 지휘관이라면 이 상황에서 결코 후퇴하지 않겠지만 중국군들은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중국군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중국군은 막사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그들이 떠난 곳에는 수 십 대의 전차와 보병전투차가 불타고 있었다. 중국군이 후퇴한 반대방향에서 불빛이 깜빡였다.  무슨 뜻인지는 몰랐으나 꼭 자신들을 부르는 불빛같아서 그 쪽 언덕으로 움직였다. 중국군을 공격했던 부대는 계속 전투중이었다.

  "귀관은 누구십니까?"

  비교적 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한국어라서 대대장이 기뻐 어쩔줄 몰랐다.  주변에는 참모로 보이는 몇몇이 전투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저격여단 야간전대대장 황보 일 중좝네다!"

  대대장이 부동자세로 경례하며  어둠 속의 사나이를 보았으나 어두워서보이지 않았다. 야간전대대원이 어둠 속에서 상대방을 못알아 본다는 것은 치욕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자신이 야간고글의 광량조절장치를 아주 감도가 낮게 조정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조절하여 보니 엉뚱하게도 자신 앞에 국군 중령이 있었다.

  "저는 제 11기갑사단 제 3전차대대장 차 영진 중령이며 현재는... 홍 대좌, 우리 사단 이름이 뭡니까?"

  차 영진 중령이 홍 대좌를 불렀다.홍 대좌가 씩 웃더니 아직 사단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차 영진 부대가 어떻갔시요? 이미 사단병력을 훨씬 넘어버렸으니 사단이라는 명칭도 못쓰갔습네다."

  차 중령이 아연실색했다. 북한은 항일빨치산 시절부터 유명한 지휘관의 이름을 부대에 붙이는 전통이 있었다.  우수한 부대일수록 지휘관의 이름을 따서 부대이름으로 삼았으며, 부대원들은 이를 명예로 받아들였다.  북한의 인민공화국 정부수립 이후부터는 부대 이름에 부대장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당 주석만이 할 수 있었고,  이럴 경우 그 부대는 집단 영웅칭호를 받은 것으로 되었다. 주석은 11월 17일 새벽에 중국군 특수부대에 의해 죽어서 현재 북한에는 당 주석이 공석이므로, 부대장 이름을 부대 이름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차 중령은 자신의 이름을 부대 이름으로 삼기는 싫었다.

  "그건 안되고... 우리 부대 이름은 북부군으로 하죠."

  그가 사관학교 생도시절에 재미깊게 읽은 소설인 남부군을 따서 북부군이 어떻냐는 의견을 내자 참모들이 좋다고 맞장구쳤다.  중국군 점령 지역인 북부지방에서 활동하는 유격부대이니 그들에게 북부군이라는 이름이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그리고 부대 규모를 상당히 과장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지금도 이들의 부대는 보병 1개 사단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의주와 안주 사이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중국군은 병참선을 멀리 만포, 강계, 희천으로 우회시켰으나 지금은 폭설로 인해 보급부대가 산간지방 곳곳에 고립되었다.  고립된 중국군 보급부대는 인민군 저격여단과 피점령지역 각지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패잔병들과 민간인 유격부대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긴데... 저 종간나이들을 어드레케 할겁네까?"

  야간전대대장인 황보 중좌가 중국군 주둔지를 가리켰다. 주둔지에 맹렬한 박격포 공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차 중령이 물끄러미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만 했다.

  "전멸시켜야죠. 저들은 특수부대입니다."

  "어드러케요?"

  황보 중좌가 놀라서 물었다.  아무리 봐도 병력은 얼마 없어보이는데 어떻게 적을 친단 말인가? 중국군 주둔지의 전등은 이미 꺼져서 캄캄한 가운데 예광탄과 포탄만이 꼬리에 불을 끌며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지금 공격은 단지 양동작전일 뿐입니다.  한곳에 몰아넣었으니 이제 전멸시키면 됩니다. 참, 황보 중좌님의 혁혁한 전과는 익히 들어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차 중령이 잠시 중국군 주둔지 주변을 망원경으로 살피더니  황보 중좌를 지휘차량 쪽으로 안내했다. 차 중령이 황보 중좌의 부하들을 이쪽으로 이동시키라고 하자 인민군들이 야간전대대원들을 중국군 주둔지가 안보이는 쪽으로 이동시켰다.

  "야간전대대의 위명은 이번 전쟁 중에 익히 들어왔습니다. 섬광에 귀중한 눈을 노출시켜서는 안되겠죠."

  황보 중좌가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차 중령을 보니  그는 씩 웃고 있었다.  그 직후에 섬광이 번쩍이더니 엄청난 폭음이 계속 울려왔다. 땅이 큰 지진이 난 것처럼 울렸다.  황보 중좌가 놀라 언덕위로 올라가서 주둔지쪽을 보니 그곳엔 아무 것도 없었고  황량한 벌판만이 불에 타고 있었다.

  "이기... 어드레케 된깁네까? 내레 꼭 무시기 마술을 본... 혹시... 전술핵입네까?"

  "아닙니다. 밤에만 가능한 트릭... 아니, 속임수죠."

  차 중령이 정정했다. 인민군들은 한국군이 영어를 자주 쓰는 데에 불만이 많다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차 중령도 교육 당시에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자신도 실수를 한 것이다.

  "헬리콥터에서 MK82-0 SLICK이라는 대형폭탄을 투하했습니다. 폭발력이 굉장하죠? 원래는 활주로를 건설하려고 준비해둔 폭탄이랍니다.이걸 중국군들 머리에 몇 발 떨어뜨린거죠."

  황보 중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헬기에 대한 대공사격을 막고 중국군을 한곳에 몰아넣기위해 지금까지 박격포와 기관총 공격을 한 것이다.  대대장은 한 수 앞을 보며 전술을 짜고 아군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적을 순식간에 일망타진하는 차 중령이  보통 군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황보 중좌는 자신의 처지를 불현듯 깨달았다.  야간전대대는 중국 특수부대의 주요 표적이 되어 계속 쫓기고  보급품도 바닥이 난 상태였다.오늘 일을 보니 자신의 대대는 거의 한계상황에 다달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을 따라가면 일단 부대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을듯 했다.

  "저... 저를 휘하에 두실 수는 없겠습네까?"

  "아이고, 휘하라뇨. 같이 협력합시다."

  "감사합네다. 대장 동지!"

  저격여단은 그동안 외로웠다. 여단과의 연락이 끊겨 전황을 알 수 없는데다가 추격까지 받고 식량도 떨어져 비참한 상황에서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차 중령의 부대와 황보 중좌의 대대가 차량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차 중령의 부하들은 의외로 많았다. 구석구석에서 계속 꾸물거리며 기어나왔다. 자신의 부대원보다 10배는 더 많아 보였다.황보 중좌는 이 많은 병력이  자신의 눈을 속이고 매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차량은 꼬리를 물고 계속 북으로 달렸다. 황보 중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쪽에 중국군은 없습네까?  이렇게 차도로 다녀도 되는겁네까?"

  황보 중좌와 같은 지휘차에 탄 차 중령이 설명했다.  차 중령의 부대는 예비군이지만  효과적인 유격전을 수행하여 정주 북쪽의 몇 개 군이 해방구가 되었다는 것과,아까 전멸시킨 중국 권단은 이 지역을 잘 모르기 때문에 겁도 없이 들어왔다는 설명이었다.  야간전대대가 먼저 공격하여 자신도 당황했다는 말도 해주었다.

  "물론 밤에만 해방구이지 낮에는 중국전투기들 때문에 차도로 이동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대공무기가 빈약하니까요..."

  황보 중좌가 그래도 이게 어디냐는듯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그리고 한가지 의문을 풀고 싶어 차 중령에게 물었다.

  "지휘관 동지의 부대는 중국군이 공격을 안합네까? 저흰 계속 추적을 당해왔습네다만..."

  "아...  평안북도 동쪽 지역의 중국군 병참선에 2개 집단군이 경비중이라고 합니다.중국군은 아마도 전선보다는 후방이 더 껄끄러웠던 모양이죠. 하지만 이쪽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신의주 남쪽까지는 경계하지 않고 차량으로 움직입니다.  청천강을 돌파해서 남쪽의 전선과 연결 해볼까 했는데 아직은 힘들겠습니다. 위성수신 텔리비전을 보면 전황이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아직..."

  선천이 가까와질수록 차 중령은 아내가 생각났다.  아내는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제대로 피난을 갔을까, 혹시 무슨 안좋은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고민되었다.  선천 북쪽의 민간인은 중국군의 신속한 점령에 모두 점령지에 남았으나, 선천 남쪽의 민간인들은 제 11 기갑사단이 중국군을 막는 동안 피난을 갈 수 있었다.

   아마 서울의 친정에 가 있겠지... 전쟁이 빨리 끝나야...

  선두의 차량행렬이 선천 남쪽에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인민군 초소에서 불빛으로  요새에 신호를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언덕에서 보이는 선천 시가에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차 중령이 한숨을 쉬자 황보 중좌가 그의 눈치를 보았다.

  1999. 11. 22  01:30  평안북도, 선천

  이윽고 선천의 부대가 선천의 대목산에 도착하여  부대전체가 차량째 지하 차고로 들어갔다. 황보 중좌가 이 요새의 시설을 보고 감탄했다.

  "하하! 인민군이 만든 요새입니다. 모르셨군요?"

  차 중령이 유쾌하게 웃자 황보 중좌가 쑥스러워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예비역 군관들이 황보 중좌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차 중령도 좋아했는데, 나이든 노농적위대나 훈련이 부족한 교도대원들 보다는 이들 특수부대원들이 들어와 부대의 전력에 크게 보탬이 될 것 같아서였다.

  "이기 누기야?  황보 일 동무!"

  회의실 문이 열리고 반백의 군관이 들어왔다.  황보 중좌와 야간전대대의 중대장들이 즉시 부동자세를 취하고 거수경례를 했다.

  "여단장 동지!"

  그는 저격여단장 최 대좌였다. 황보 중좌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기래, 고생했구만. 동무."

  최 대좌가 황보 중좌의 어깨를 치고 자리에 앉았다.  계속 자신을 보고있는 황보 중좌에게 설명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최 대좌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내레 묘향산에서 산악전 1대대와 함께 죽도록 싸우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지비.우리 사단장 동지께서 워낙 영명하셔서 이번 전쟁은 아마 우리가 이길거야~. 동무들도 걱정말라우."

  최 대좌가 호쾌하게 웃었다. 최 대좌는 인민군이고 차 중령보다 계급도 높았지만 이미 차 중령이 사단장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급자가 있더라도 규정상 차 중령이 계속 사단장을 하게 되었다.  최 대좌는 처음엔 하급자인 국군 장교의 명령을 받는 것이 싫었지만  계속 전투를 치뤄본 결과, 차 중령은 대단히 훌륭한 전술가라는 판단이 서서 충심으로 그를 받들고 있었다.

  야간전대대의 사병들은 실로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숙소를 배정받은 그들은 아직 잘 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요새를 구경하고 보초들에게 최근 전황을 물으며 신나게 떠들었다.초병들은 광도가 낮은 전등불빛에도 눈부셔서 색안경을 쓰고 있는 그들이 신기하게 보였지만, 초병근무중에도 웃고 떠들 수 있어서 좋았다. 북부군이나 새로 배속된 야간전대대나 실로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긴장이 풀리는 밤이었다.

  1999. 11. 22  13:50  평안북도 만포 9km 남방 독로강변

  "분대장 동지, 완전 포위당했습니다."

  무수한 전투를 치렀으나 아직은 신병 티를 벗지 못한 박 전사가 급하게 외쳤다. 크레모어 등 폭발물을 맡은 표 전사는 이미 전사했고, 고속 유탄포의 김 하사는 가슴에 총상을 입어 중상이었다.산악용 오토바이가 세 대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인민군 저격여단 산악전대대 3중대 중에서 조 부현 하사가 지휘하는 분대는 종말을 맞고 있었다. 만포 남쪽,이들에게는 북쪽인 성동의 분지에서 중국군이 총격을 가했고,  강건너 양가동에서는 전차가 이쪽을 향해 포를 쏘고 있었다.  상공에서는 공격헬기 3대가 비행하며 이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독로강은 평안북도에 있는 적유령산맥에서 발원하여  강계를 지나 만포남쪽에서 급선회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압록강에 이르는 강이다. 높은 산 사이의 계곡을 흐르기 때문에 평소에는 물살이 빨랐으나  지금은 얼음이 꽁꽁 얼어있었다. 그 강 건너편에도 중국군이 우글대고 있었다.

  이들은 19일에 전투를 시작한 이후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나 20일부터 중국군의 집중적인 추적을 받고 있었다.  도살자라고 불리우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특수조직인 2027부대의 1개 대대가  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전문 트랙커훈련을 이수한 이들은 산악용 오토바이의 궤적을 좇아 첫날에 바로 오토바이 분대의 아지트를 찾아냈고, 이후 이틀간의 치열한 추격 끝에 결국 이들을 포위망에 몰아넣었다.  2077부대는 산악용 오토바이에 탑승한 대원들뿐만 아니라 10마리의 군견과 전문 트래커등이 추적을 하고, 상공에서는 헬기가 엄호하며 철저히 추적해서 이들을 잡을 수 있었다.

  리 전사는 계속 기관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민 하사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스팅거를 발사해 하인드 헬기 한 대를 격추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들이 있는 곳 남쪽의 녹번동에서 인민해방군 중대병력이 천천히 독로강의 얼음을 건너왔다. 중국전차의 주포에 리 전사가 날아가고 헬기의 로켓포에 민 하사가 갈갈이 찢겼다.이제 분대장인 조 중사와 신병인 박 전사, 그리고 중상을 입은 김 하사만이 남았다. 탄알도 점점 떨어졌다.

  부하들을 보며 조 중사가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어차피 항복해도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많은 피해를 중국군에게 입혔다.전선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제발 통일한국군이 중국군을 몰아내길 바랬다.

  "착검하고 탑승! 남쪽으로 간다. 돌격~~~ "

  박 전사가 김 하사를 부축하여 오토바이에 태우고 자신도 탔다.세 명의 전사가 오토바이의 굉음을 울리며 중국군을 향해 돌진했다.  인민해방군의 총격이 시작되었다.  세 명의 인민군은 오토바이의 앞바퀴를 든채 속도를 올렸다. 중국군들에게 접근하며 괴성을 질렀다.  중국군들이 움찔하며 물러섰다.

  1999. 11. 22  15:00  개성, 통일참모본부

  "이번엔 평양쪽입니다. 중국... 대단한 나라입니다."

  양 석민 중장이 한탄을 했다.  참모들이 무슨 소린가 바라보았다. 양 중장이 중앙의 화면을 켰다. 서해안과 평안북도의 지도가 나타났다. 유능한 컴퓨터 해커인 구 성회와 김 준태가 미리 북해함대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양 중장에게 보고하고,양 중장은 조기경보기를 동원하여 이들의 움직임을 세밀히 포착할 수 있었다.  산동반도에 있는 중국 북해함대의 기항지인 웨이하이 웨이 앞바다에 모인 중국해군의 연합함대는 당의 명령대로 평양 서쪽인 남포를 향해 직진했다. 전황을 다시 중국의 의도대로 이끌겠다는 당 지도부의 강력한 의사표현인 동시에 중국해군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작전이었다.  동해함대와 남해함대에서 남아있는 구축함등의 대형함정들을 모두 긁어모아 이 작전에 모두 투입했다.

  "중국의 북해함대입니다. 남포 서쪽 150 km 해상입니다. 역시 상륙부대로 보여집니다."

  양 중장이 화면에 중국 북해함대의 편성표를 올렸다.  항모 2척과 구축함 등 각종 전투함 20 여척, 잠수함과 상륙함, 수송함 등이었다.

  "대만 상륙전에서 유명해진 린 훼이 중장이 지휘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어떤 기책을 쓸지 주의해야 합니다."

  참모들이 술렁거렸다. 중국은 2개 함대로 각각 남해안의 여수와 서해안의 태안반도를 노렸으나 한국군은 방어전의 유리함을 업고 이들을 격퇴시켰다. 그러나 한국군의 남해함대와 서해함대도 이미 전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숫자는 어느 정도 갖춰져있지만 신형인 대형함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동해함대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던 한국형구축함들은 독도 문제가 발생하자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동해바다를 떠날 수가 없었다. 공군은 더 처참한 지경이었다.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F-4 팬텀까지 요격임무에 동원되었다. 피스 함대가 동지나해로 떠나간 지금,  참모들은 그들을 붙잡아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중국함대를 막을 전력이 별로 없었다.

  "걱정 마시라우요. 남포는 까딱 업시요.  남포 인근해에 적 잠수함들의 정찰활동이 많다는 걸 알고도 냅뒀시요."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큰소리 쳤다.  이 종식 차수도 느긋한 표정이었다.  국군 참모들은 영문을 몰라 인민군 참모들의 눈치를 보았다.

  "중국은 상륙지점을 잘못선택한 것이오.  물론 남포는 평양을 공략하기 위한 가장 좋은 위치이긴 하지만 우리 공화국을 잘못봤소. 아, 미안 하외다. 우리나라 말이오."

  이 차수가 즉각 정정하며 말을 이었다.

  "이틀 전에 적이 태안반도쪽으로 상륙하려 할 때  박 상장의 말을 기억하시오?  차라리 남포로 오라는 말을...  이제 인민군 해군의 력량을 보게될 것이오."

  박 상장이 자세한 설명을 하자 국군 참모들도 한시름 놓았다. 그렇지만 인민군의 준비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작전이 제대로 먹힐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통일참모본부는 적의 상륙부대에 대한 합동공격작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11. 22  18:00  평안남도 남포 서쪽 60km 해상

  서해안의 낙조를 배경으로 수많은 중국 함정들이 동진하고 있었다.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북해함대의 사령인 린 훼이 중장은 항모 해신 3호의 함교에서 한국군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막강한 인민해방군의 동해함대와 남해함대가 어이없이 당했다. 자신도 당할지 모르지만 한국에 항공기와 대형 함정들의 숫자가 상당수 감소했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남포 서쪽 해상은 중국에서 발진한 지상기지 출격 항공기들의 충분한 항속거리 내에 있지 않은가? 게다가 통일한국의 서해함대는 지상군을 지원하는지 몇 시간째 평안남도 안주 서쪽 해상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군인은 마땅히 적국의 침공에 대해  국가를 방위하는 데에 최고의 존재가치를 가진다. 린 중장은 한국군, 특히 오랜 친구인 박 정석 상장이 부러웠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방위하기 위해 싸우기 때문에 당당하고, 자신은 침략을 위해 싸우므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쟁이니 일단 이기고 볼 일이라며 마음을 다졌다.

  5만톤급의 중형항모 해신 3호는 대만 상륙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군함이다. 호위함 없이 항모 단독으로 출전하여 수 십 척의 잠수함들을 대만의 해안선까지 도달케 하였고 후아리옌 공군기지를 점령했다. 대만군은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엉뚱한 방법으로 공격해온 해신 3호에 의해 사기가 땅에 떨어져 이후의 전투에서도 일패도지했다. 이번엔 상선으로 위장하지 않고 당당히  호위함들을 거느리고 상륙작전을 지휘하며 한반도 서해안으로 항진했다.

  해상에는 다수의 프리깃함과 구축함들이  예상되는 한국 잠수함의 공격을 막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초계중이었고 상공에도 여러대의 헬기와 초계기들이 잠수함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 태안반도에 해병대를 상륙시키려던 중국 동해함대가 한국군의 잠수함들에 의해  허망하게 전멸한 사실은 들어서 잘 알고 있었고, 린 중장은 이들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했다.  그는 함대를 한국군의 잠수함공격에 취약했던 동해함대의 대공진형이 아닌, 러시아식 대잠진형을 택했다.

  초계기와 헬기,또는 잠수함과 구축함들이 함대가 진행하는 해역을 격자식으로 세밀하게 나누어 방어를 전담하고 있었다.이 해역에 은밀하게 숨어있을 한국해군의 209급 잠수함이라도 단 한번의 공격 밖에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함대의 가장 선두에는 기뢰전용 수색헬기와  소해정들이 항로를 열었다.  그러나 아직 해안선에서 멀어서인지 인민군이 설치한 기뢰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번도 적과 접촉해보지 못하고 해안에 접근하는 것이 오히려 함대 승무원들의 긴장을 가중시켰다.

  "아직 적의 움직임은 없습니다. 적함도, 적기도 안보입니다. 해주 상공에 조기경보기만 떠 있습니다."

  함장의 말에 린 중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한의 수도가 위협받고 있으므로 최소한 인민군은 함대와 공격기편대를 보낼 줄 알았으나 하늘과 해상엔 아무런 위협이 없었다.함대를 호위하는 잠수함들로부터도 위협에 대한 보고가 없었다.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몰라도 차라리 잘됐군. 함대는 해안 30km까지만 접근시키고 상륙준비를 하도록 하시오.  석도(席島)와 초도(椒島)의 상황은?"

  린 중장이 남포항으로 가는 길의 섬들에 대한 상륙전 상황을 묻자 작전참모가 상황판을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섬을 수비하는 인민군들의 저항은 의외로 약하며, 조만간 점령할 수 있다는 보고였다. 린 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남해함대와 동해함대의 패배를 교훈삼아 린 중장은 극히 신중하게 한국해안에 접근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상륙지점 근처의 섬은 무조건 점령했고, 적 잠수함이 없다고 확인된 후에야 함대를 전진시켰다. 함대가 해안에 점점 가까와졌다.

  상공에는 미그기의 중국식개량형인 각종 섬형(殲型) 전투기와 공격기들이 이미 어두워진 동쪽하늘을 향해 날았다.  상륙부대의 작전을 돕기 위해 해안폭격을 목적으로 요동반도에서 발진한 대규모 편대였다. 함대는 어느새 해안에서 30km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직 인민군의 대응은 없었다. 지대함 미사일의 공격도 없었다. 함대를 호위하며 상공을 선회중인 전투기나 조기경보기에서는 아직 어떤 공격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해왔다.

  린 중장이 점점 불안해졌다.준비성이 대단한 박 정석 상장이 있는 통일한국군이 이렇게 무력하게 중국의 상륙을 방치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가 알고 있는 박 상장은 전투의 승패는 이미 전투 전에 결판난다는 전쟁관을 갖고 있는 전략우위의 전략가였다. 린 중장이 함대의 해상 초계를 강화시켰다. 마지막까지 항모 갑판에 남아있던  초계기 두 대도 긴급 전투발진 시켰다.  산둥반도의 칭다오와 웨이하이 웨이, 랴오둥반도의 다이렌에서 출격한 초계기들이 함대 상공에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해안상공에서는 중국 공격기들과 인민군 전투기들간의 격렬한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지대공 미사일의 도움을 받은 인민군이 약간 우세한 전과를 나타냈지만 상륙목표 해안에 대한 폭격은 성공리에 수행했다는 보고가 왔다.드디어 LCAC(공기부양식의 고속상륙주정)와 LCU(다용도 상륙 주정)들이 함대를 떠나 해안으로 향했다.  상공에는 미국식 강습양륙함인 해신 6호에서 이륙한 헤리어-2와 공격헬기들이 이들을 엄호했다.

  잠시 후 해안을 공습한 편대가 함대 상공을 지나 서쪽으로 날아갔다. 공격 전보다 눈에 띄게 숫자가 많이 줄어있었다.  린 중장은 개전 초부터 지금까지 출격한 통일한국 전투기들의 숫자를 컴퓨터로 조회해 보았다. 전투기들은 하루에 최소한 7회의 출격을 했다는 계산이 나왔다. 격추된 전투기들을 감안하면  통일한국군의 조종사들이 거의 살인적인 중노동을 한 결과였다. 이륙 전에 전투기의 정비도 완벽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친 짓이다. 조선은 여기까지가 한계다.'

  린 중장은 역시 전쟁의 대원칙이  이번 전쟁에도 들어맞고 있다고 생각했다.이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전쟁에서는 결국 병력이 적은 쪽이 지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신무기나 절세의 전략가가 나오더라도 병력의 압도적인 열세는 극복하지 못하는 법이다.

  목표해안에는 아직 인민군들의 항공기들이 떠있었다.  그러나 공중전에 대비한 요격기들이기 때문에 함대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되지 않는다고 린 중장은 생각했다.  작전참모가 적기 편대에 대한 함대공미사일 공격을 건의했으나 린 중장은 공대함미사일을 갖춘 공격기들의 위협에 대처하거나, LCAC들이 상공으로부터 위협받을 때에 대비해 대공미사일을 아끼자며 그 건의를 묵살했다.  상륙부대는 해안까지 10km가 남았다. 드디어 해안 방어부대의 미사일공격과 포격이 시작되었다. 중국 함대도 지원포격을 시작했다.

  "수중에 어뢰 다수! 접근중입니다, 1-8-5, 거리 1200...1000! 초고속입니다! 어뢰의 수는 35기로 증가!"

  소나담당 전업군사(專業軍士)가 외치자 대잠지휘관이 깜짝 놀랐다.함장이 즉시 항해군관에게 회피운동을 지시하고 전업군사에게 물었다.

  "적 잠수함은 없었잖아. 어떻게 된거야?  발사점은?"

  "어뢰 3기 300미터까지 접근중, 탐신음파 발신 중! 본함을 향합니다! 발사점은 암초쪽입니다만 잠수함은 없었습니다.수중항주중인 어뢰의 총 수 42기로 증가! 선두 어뢰, 본함에서 100미터! 충돌합니다!"

  함대사령관 린 중장도 깜짝 놀랐다. 어뢰의 속도가 너무 빨라 대응시간이 절대부족했다.

  "막아라! 허수아비 발사! "

  함장이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소나병이 끝까지 헤드폰을 끼고 어뢰와의 거리를 불렀다.

  "쿠앙!! 쾅! 쾅!"

  어뢰 세 발이 연이어 폭발하자 충격이 항공모함을 뒤흔들었다.물기둥이 200미터나 솟구치고 항모는 금방 화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함내의 방화시스팀이 자동적으로 작동해서 격납고와 원자로실에 있는 수병들은 불벼락 다음에 물벼락을 맞아야했다. 아슬아슬하게 갑판 끝에 걸려있던 탑재기인 수호이-27K 한 대가 결국 바다로 떨어졌다. 린 중장이 쓰러졌다가 통신담당 군사장(軍士長)의 도움을 받으며 일어났다.

  "적 어뢰의 최종속도는 300노트로 추산됩니다. 스퀄입니다!"

  폭발의 와중에 고막이 터진 소나담당 전업군사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보고했다. 함대사령관이 일어나 상황을 파악하려했으나  함내상황을 보여주는 시스팀은 다운되었다. 린 중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각 부서는 피해상황을 보고하라! 남아있는 프리깃함을 발사지점으로 보내! 헬기와 초계기도..."

  함대사령관이 함교의 깨어진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보니 이미 함대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고있었다. 보이는 군함마다 모두 화염에 휩싸여있었다.  숫자가 많이 모자랐다. 남아있는 함정이 별로 없었다. 대잠헬기들이 항공등을 깜빡이며 급하게 남쪽을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잠전지휘관이 침통하게 보고했다.

  "스퀄은 러시아가 1995년에 개발한 로켓추진식 어뢰입니다.너무 빨라서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게다가 일반적인 533밀리가 아니라 650밀리나 되는 대형어뢰입니다. 함대는 거의..."

  스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세르고 오르조니키제 항공연구소에서 1995년에 개발한 초고속 어뢰이다.개발 당시에는 속도가 약 200노트(시속 360 km)에 유도장치가 없었으나, 나중에 유도장치를 부착하고 속력도 300노트(시속 540 km)까지 올렸다. 서방세계의 어뢰가 보통 35~60노트인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속도의 어뢰이다.  300노트라면 초속 150미터로서, 음속의 반이 약간 안되는 정도의 빠르기이다.

  제인연감의 군사정보 관계자는 이 미사일이  물과의 접촉을 제거함으로써 속력향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는데, 개발자인 러시아의 항공 연구소에서는 물속에 진공의 관을 형성해 그 안을 이 미사일 어뢰가 날게된다고 밝혀 제인측의 추정을 확인했다. 이 어뢰는 러시아의 신형 아쿨라(Acula)급이나 시에라급,  빅터-3형 공격잠수함의 탑재용으로 개발되어 구경이 650밀리나 되는 대형어뢰이다.  아쿨라(Acula)급이나 시에라급, 타이픈급, 델타-IV형, 빅터-3형 및 오스카-2형 잠수함들은 530밀리 외에도 650밀리 발사관을 갖추고 있으며, 여기에 웨이크(wake:항적) 추적방식의 80형 어뢰를 장착한다. 이것도 탄두가 450kg이나 되며 속도는 50노트인 막강한 어뢰인데, 스퀄은 아예 어뢰의 상식을 뒤집은 어마어마한 어뢰이다. 이 스퀄이 남포 앞바다를 휘젓고 있었다.

  "수송함 및 보급함 12척 침몰, 3척이 화재, 구축함 6척 침몰에 4척이 대파되고 프리깃함 9척 침몰에 2척이 대파입니다. 예비항모 해신 6호도 어뢰 3발을 맞고 침몰했습니다.  피해를 입지 않은 함은 마오밍과 후앙시 등 프리깃함 두 척과 구축함 한 척 뿐입니다. 잠수함들은 아직 공격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본함은 5곳이 침수되어 운항불능입니다."

  대잠지휘관이 보고하자 린 중장의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빨리 끝내려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결정으로 북해함대뿐만 아니라  한중전쟁에서 크게 피해를 입은 동해함대와 남해함대의 잔여 함정까지 총동원했는데 통일한국군의 단 한번의 공격에 함대가 거의 전멸한 것이다.미국에서 수입하려던 초대형 항모와 이지스함들이 피스의 함대에 나포된 지금 인민해방군의 해상전력은 이제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게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방금 침몰한 해신 6호는 미국에서 비싸게 구입한 3만 9천톤급 강습상륙함 벨로우드(Belleau Wood)였으며,약 1,900명의 해병이 타고 있었다. 다른 침몰한 수송함에 승선한 해병대원들과 함께 이들을 잃은 중국함대는  추가 상륙병력이 단숨에 바닥이 나버린 상태가 되었다.

  아직도 함내에서는 진화작업이 한참이었다.  원자력 항공모함이 아닌 재래형 항모였다면 벌써 연료에 인화되어 폭발했을 것이다.  함장이 해군사령관인 창 리엔츙 상장(上長)에게 급보를 전하고 있는 중에 함대에 대공경보가 울렸다. 함대 상공에 있던 조기경보기가 대공경보를 함대에 전했는데, 적은 요격기들 뿐이니 헬기와 상륙주정들을 공격할 것같다는 보고였다. 그래도 전투기들이 20 km까지 접근하여 함대사령관은 신경이 쓰였다.  즉시 대공미사일 지원을 해주기로 하고 상륙부대는 계속 전진시켰다.  자체 무장이 약한 상륙부대는 바다를 통해 후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상륙하는 쪽이 안전해보였다. 항모와 남아있는 프리깃함에서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이었다.

  "함재기를 발진 시킬 수 없나?"

  연료가 떨어져가는 함재기들을 회수하고 교대할 항공기들을 출격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린 중장은 답답한 대답을 들어야했다.

  "동력실 외벽을 관통당해서 원자로를 정지시켰습니다.  증기사출기를 쓸 수도 없고 본함이 운행불능이기 때문에 이륙하는 전투기에 추진력을 줄 수도 없습니다. 함재기의 이륙은 불가합니다."

  함대사령관의 질문에 함장이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곧이어 통신담당 군사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보고했다.

  "어뢰발사 해역에 적 잠수함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 뭔가? 혹시..."

  린 중장은 갑자기 수중에 장치된 어뢰 플랫폼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모르는 북한의 무기체계는 없으니 그럴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러시아제인 아쿨라급이나 시에라급 공격잠수함의 가능성도 생각했으나 북한의 재정상태로 봐서 이런 신형함의 구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미사일 다수! 적기들이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현재 45기, 숫자 증가 중! 52, 55... 목표는 본 함대입니다!"

  레이더병의 보고에 함대사령관 리 중장이 경악했다. 중국군 항공대와 공중전을 벌인 인민군 전투기들이 공대함 미사일을 장착했단 말인가?

  "요격하라. 근데 어떻게 된거야? 적은 요격기들이었잖아?"

  함대사령관의 호통에 통신담당 군사장이 조기경보기를 불렀다.  조기경보기의 책임자가 당황한듯 더듬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공에서는 수호이-27K 전투기들이 대함미사일을 향해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었다.

  [그게... 몇 대씩 구월산 뒤로 들어갔다 나오길래 별 상관없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마 산 뒤에서 요격기를 공격기로 교체한 모양입니다. 같은 미그-21과 23이고 숫자도 같아서 바뀐줄 몰랐습니다.]

  해안에 있던 통일한국군 전투기들은 조기경보기의 지시에 따라 1개중대씩 차례로 남쪽으로 선회하며, 해주에서 출격하여 저공으로 비행해온 공격기들과 구월산 뒤에서 바꿔치기 한 것이다.  공중전을 벌였던 전투기들은 이미 해주비행장에 착륙하여 2차 출격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미사일 발사!"

  린 중장의 명령에 따라 함미의 수직발사기에서 대공 미사일들이 공대함 미사일을 노리고 연속 발사되었다. 약 30여기를 발사한 순간 또다시 어뢰 경보가 울렸다.

  "어뢰! 아까와 같은 형입니다. 2기 접근 중! 거리 900, 700, 400..."

  고막이 터진 소나 담당 하사관 대신 그 자리에 앉은 군관이 보고하자 함대사령관을 포함한 함교요원 모두가 얼굴이 파랗게 질린채 벽에 붙어있는 물체를 잡았다. 이미 어뢰의 회피는 포기하고 폭발 충격에 대비한 것이다.

  다시 한번 굉음이 울리고 함내에 정전이 되어 캄캄해졌다.  컴퓨터와 레이더가 모두 작동이 중지되자 항공모함의 전파 유도를 받아 날아가던 미사일들의 레이더 시커가 자동으로 켜지고, 미사일은 진행방향 상공에 있던 상륙주정 위의 중국군 헬기들을 향했다.  반능동 유도방식인 미국의 SM-2대공미사일을 중국군이 유사시에 대비해 능동-반능동 방식의 혼합방식으로 개조한 것이 잘못이었다.  20여기의 헬기와 헤리어, 나중에 출발한 상륙거점 확보용 수직이착륙 항공기 MV-22A Osprey 10여기가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자기편 미사일에 당했다.

  인민군의 전투기들은 미사일발사를 마치자 상륙주정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모두 돌아가버렸다. 항모가 오른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어졌다. 항모는 점점 침몰하고 있었다.린 중장이 기울어진 함교 유리창을 통해 동쪽 하늘을 보니 그곳에선 수 십 개의 불빛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함재기들이 발사한 미사일에 요격되었는지  섬광이 일어났다.

  "전원 퇴함하라! 본국에 구원을 요청하라. 연락이 되는 함을 찾아 상륙주정들도 후퇴하라고 일러. 철저한 함정이다!"

  린 중장이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몇 명의 군관이 함대사령관의 명령을 전하러 아래쪽으로 뛰어갔다.비상전원이 있는 캣워크(cat walk:비행갑판 바로 옆의 작은 공간)의 점멸등이 급하게 깜빡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까지 침몰하지 않고 바다 위에 떠있는 항공모함과 몇 척의 프리깃함에 미사일이 쇄도했다.  이 모습을 본 린 중장이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래, 이렇게 침략자는 응징을 당해야지.  하지만 만약 조선이 중국을 역으로 침략한다면 마찬가지로 응징을 받을 것이다. 박 상장도 알고 있겠지만...'

  거대한 항모에 섬광이 번쩍였다.

  1999. 11. 22  19:50  개성, 통일참모본부

  "중국의 북해함대는 완전히 소멸됐습니다. 수중의 어뢰플랫폼과 공군의 2차에 걸친 공습으로 함대와 상륙부대,그리고 전투기들을 모조리 수장시켰습니다. 이제 해군력에서는 우리가 앞설 수도 있습니다. 적은 항모가 하나도 없으며, 구축함과 프리깃함의 수에서는 차이가 역전되었습니다."

  양 석민 중장이 화면의 내용을 바꿔가며 자신있게 보고하자 참모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모든 참모들이 평양 근해의 상륙전에 대비하여 무인 어뢰 시스템을 장비한 인민군해군의 박 정석 상장의 주도면밀함에 대해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피스에서 파견된 짜르도 박 상장의 기가 막힌 무기운용과 공격 타이밍 선정에 혀를 내둘렀다.그러나 북해함대의 사령인 린 제독과 개인적으로 친했던 박 상장은  오랜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친구를 이긴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박 상장은 자신이 서해함대 사령관일 때 상부에 건의하여,  비싸지만 확실한 무기인 스퀄어뢰를 러시아에서 대량으로 수입했다. 서해 각지의 수중에 이들을 배치하고, 남포 북쪽인 용강군에 있는 산의 동굴에서 이들을 무인조종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7년의 통일원년에 남북은 통일이냐 전쟁이냐의 갈림길에서 협상과 동시에 군비증강에 열을 올려 각자 세계 여러나라에서 각종 무기를 수입했었다. 이 시스템도 97년에 개발된 것이었다.

  "이 기회에 우리가 중국의 해안을 완전히 봉쇄해야 합니다."

  피스의 짜르가 강력히 주장하며  중앙화면을 자신의 모니터와 연계시킨 후 보고를 했다. 반전전사 집단인 피스의 연락관으로 파견된 짜르는 통일한국군 해군 중장의 계급과 동시에 통일참모본부 국제연락 담당 참모의 직함을 받았다. 평양 방어선에 투입된 피스의 지상군은 대장인 싱이 통일한국군 육군 중장의 계급을 수여받았고 남지나해에 파견된 피스의 의용군과 용병들도 계급과 군번을 받았다.  이들이 교전당사국의 군인이 되어야 국제관계에서 하자가 없고, 포로가 되었을 경우 정당한 포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의 젊은 인 한수 예비역 중위가 짜르의 통역을 하고 있었다. 인 대위는 대학생 때부터 그린 피스와 국제사면위원회의 회원이었는데, 전쟁이 나자 피스의 요청으로 통일참모본부에 배속이 되었다.  젊은 사람 치고는 뚱뚱하고 배가 많이 나와 풍채가 있어보였으나, 군복이 너무 꽉끼어 허릿살이 삐져나와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면 웃기부터 했다.

  "현재 남지나해의 상황입니다.  우리 함대는 중국의 2개 분함대와 전투를 수행중입니다.  화력은 우리가 앞서지만 하이난섬(해남도)에서 출격하는 전투기들 때문에 완전한 해상봉쇄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피스함대의 놀라운 화력과 기동력에 한편으로 놀라며  참모들이 아쉬워하자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나섰다.

  "중국은 800대의 해군항공대 소속 항공기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항속 거리가 짧고 구형이지만 해상봉쇄 함대에게는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함대가  직접 중국 산둥반도나 북경의 입구인 천진을 공격하고 싶어도 이들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대공미사일을 갖춘 몇 척의 구축함을 피스 함대에 배속시켜서 남지나해의 해상 봉쇄를 강화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참모들이 찬성하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국해군의 심 현식 중장을 보았다. 심 중장이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일본 때문에...  함경도쪽 인민군, 아니, 병력은 철수가 취소되어서 이제 그쪽으로 함대를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만,  러시아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항로를 지켜야 하고, 더 큰 문제는... 최근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아니, 일본 아새끼들이 또 어드레케 하디요?"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흥분해서 평안도 사투리가 마구 튀어나왔다.

  "독도는 일단 한일간의 정치문제화하고 있습니다만, 독도를 점령하고 나서도 일본함대에 의한 영공과 영해침범의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오늘만 해도 동해함대와 일본 자위대함대가 조우전을 벌일 뻔 했습니다. 걱정하실까봐 말씀은 안드렸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동해함대의 구축함을 뺄 수도 없기에 말씀드립니다."

  참모들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전쟁 전 정보사단의 보고에서 중국이 한반도를 침공할 경우,  일본도 같이 한반도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했었다. 그리고 일본에 관한 각종 정보보고에 따르면 일본의 자위대가 한중전쟁 발발 이후, 일부의 호전적 여론을 입고 정치권의 명령을 공공연히 무시한다고 했다.일본 정가에서는 쿠데타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다.

  "만약 일본이 우리를 친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가장 좋겠소?"

  이 차수가 참모들을 진정시키고 간단한 질문을 했다. 양 중장이 즉답을 했다. 너무나 많이 토의한 문제였다.

  "중국의 한반도 침략 초기나, 한중 양국의 전력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소모된 때 입니다."

  "그렇소. 지금은 아직 아니오. 독도는 일단 내버려 두시오.하지만 독도를 잊지는 맙시다."

  이 차수가 분노하는 참모들을 진정시켰다.

  1999. 11. 22  19:40  평안북도 영변

  영변은 인민군 2군단이 공격을 맡고 있었다. 평안남도 개천에서 청천강을 건너다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치열한 저항에 부딪혔다.  이들은 하루 밤낮을 싸워 겨우 도강에 성공하고 영변을 향해 신속 전진중이었다. 인민군 7사단은 영변과 희천 사이의 방어선을 뚫어  영변을 고립시키기 위해 영변 동쪽에 집중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영변 남쪽을 방어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제 231사단의 연락군관인 쿠젠모우 중위가 사륜구동차를 타고 급히  전선의 연대로 가는 도중에 길 뒤쪽에서 들리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놀라 차를 세우게 했다. 여자의 비명은 계속 들려왔다. 쿠 중위는 차에서 내려 소리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쿠 중위와 동년배인 운전병이  뛰어가는 쿠 중위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는 차안에서 담배를 피워물며 쿠 중위의 결벽성을 걱정했다.

  길 뒤의 작은 계곡에서는  5명의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젊은 여인 한 명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다리 하나씩을 잡고,  그 중 한명이 막 못된 짓을 시작하고 있었다. 쿠 중위가 권총을 빼들고 서서히 이들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옆에 누가 오는지 신경도 안쓰고 킬킬대며 하던 일에 몰두했다.

  "너희들 뭐하는거야?"

  병사들이 깜짝 놀라 돌아봤으나 아군인 것을 확인하자 킬킬대며 웃었다. 허리 운동을 하던 상사는 젊은 중위를 힐끗 보고 그 자세로 거수경례를 하고는 하던 짓을 계속했다.  여인은 이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는지 얼굴 곳곳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수치와 고통으로 눈을 감은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보면 모르십니까? 히히~ 군관동지, 잠깐만 기다리십시요. 두번째 순서를 드리겠습니다."

  오른쪽 다리를 잡고 있던 중사가 말하자 병사들이 쿠 중위를 보고 킬킬댔다. 분노로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쿠 중위가 허리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이를 본 병사들의 얼굴이 갑자기 노래졌다.  그가 여인의 몸위에 있던 상사를 쏘았다.계곡에 총성이 울리고 상사의 머리에서 피와 뇌수가 튀었다. 상사는 여인의 몸위에 힘없이 쓰러지고 병사들이 놀라 튀듯이 일어났다. 열병이 중위에게 총을 쏠까 말까 망설였으나 그는 지금 어깨에 총을 메고 있는 상태여서 망설였다. 고참인 상등병이 그 열병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그러나 중위가 다시 총을 쏜다면 이들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을 기색이었다. 쿠 중위가 이들에게 권총을 들이댔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인민해방군 전사로서 부끄럽지도 않나?"

  한 명의 군관과 네 명의 병(兵)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하지만 총을 겨누고 있는 쪽은 군관이었다.

  "모두들 구덩이를 파서 상사를 묻어!"

  병사들이 살게됐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서둘러 야전삽으로 땅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쿠 중위가 여인을 보았다.찢어진 인민복으로 몸을 가리고 삽질을 하는 병사들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쿠 중위는 그녀가 인민복을 입었다는 것은 게릴라전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여자들까지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서는 이 나라가 무서워졌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쿠 중위가 얼른 외면했다. 쿠 중위가 어떡할까 고민했다.  이 여인을 놓아줄 경우 인민해방군의 치부가 알려질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이 여인을 살려줄 경우 지금 땅을 파고 있는 병사들이 자신의 등뒤로 총을 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권총을 그 여인에게 겨눴다.  여인이 쿠 중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계곡에 다시 총성이 울려 퍼졌다.

  1999. 11. 22  20:30  평안북도, 박천

  한국군 제 9 기갑사단이 팬텀의 공중지원을 받으며 박천에 형성된 인민해방군의 남쪽 방어선 일부를 돌파하자 해병 1사단이 이 뚫린 구멍으로 쇄도해 들어갔다.대공미사일의 보급을 받지 못한 중국군은 공중지원도 받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쓰러져갔다.  박천은 한밤중인데도 각종 포화와 조명탄, 그리고 곳곳에 일어난 화재 때문에 대낮처럼 환했다.

  "1시 방향에 저격병!"

  차장이 외치자 포수가 주포를 2층건물의 창문을 향해 조준했다. 조준기로 보니 창문 안에서 중국군 저격병이 단발 사격을 하고 있었다.  레이저가 발사되어 그 저격병의 이마가 조준기 중심선에 들어왔다.  거리는 340미터라고 계기판에 디지틀로 표시되어 나왔다.  포수가 방아쇠를 당기자 K-1 전차의 육중한 120밀리 포가 발사되고 차체가 울렁거렸다.

  "명중! 대구리에 정학~히 맞았습니다, 마."

  포탄은 창문에 서있던 저격병의 두개골을 관통하여 이층의 벽을 뚫고 건물 바깥에서 폭발했다. 섬광이 번쩍이고 충격에 건물이 무너졌다. 차장용 조준기로 보고있던 전차장이  잘했다며 포수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해병 1사단의 전차대대는  다른 해병대원들과 함께 건물을 하나씩 점령해 나갔다. 제 9기갑사단의 전차들은 박천 남쪽에서 대기하며 해병대의 연락을 받아 포격지원만 하고 있었다. 9기갑사단의 전차들은 아직도 1200 마력 엔진에 105밀리 포를 갖춘 개조되기 전의 K-1 전차들과 방호력이 떨어지는 구식 M-48 전차로 구성되어, 통일참모본부로서는 전선에의 투입을 꺼려왔다. 그러나 이 부대는 K-1 전차들의 잦은 고장에도 불구하고 중국군 보병부대를 상대로 그런대로 잘싸워왔다. 대신에 정비병들은 죽을 맛이었다.  구난차들이 고장난 K-1 전차를 끌고 후방의 정비소를 바삐 오갔다.

  1999. 11. 22  20:45  평안북도 박천 상공

  F-16 조종사 김 종구 중위는 연일 계속되는 출격으로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한국 공군은, 특히 F-16 전투기들은 개전 초부터 너무 혹사 당해왔다.  공군에 있다가 예편한 민간 여객기 조종사들이 급히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이들은 대부분이 팬텀이나  F-5를 몰던 조종사들이었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같은 전투기를  조종사들이 교대로 탑승하여 효율적인 전투기 운용을 할 수 있었지만,  한국 공군에게 F-16은 비교적 신예기라 숙달된 조종사들이 너무 부족했다. 일부 F-5 전투기 조종사들을 F-16의 교대병력으로 하려는 안(案)은  F-5도 바쁘기 때문에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사고도 잦았다.길고 긴 초계비행과 공중전 후에 강릉 기지로 귀환하던 F-16 한 대가  기지 근처 논에 그대로 쳐박히고 말았다. 편대장이 무선으로 조종사를 계속 호출했으나  대답이 없었다는 보고가 있어, 그 조종사는 졸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것과 같은 기록으로 2건이 더 있었다.

  성남에서 이륙한 F-16 한 대는 이륙 후 얼마 가지도 못하고 성남시내로 추락해 큰 인명피해가 났다.  조종사는 탈출했지만 전투기가 주택가로 떨어져 20여명의 민간인들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이 사고는 잦은 출격으로 인해 기체의 피로도가  한계에 달해 발생한 것으로 조사결과 밝혀졌다. 사람보다 기계가 이 극한상황을 못버틴 것이다.

  그리고 부품의 조달이 원활치 못해  완벽한 정비를 바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공군본부에서는 조종사의 안전을 위해 전투기에 이상이 있을 때는 기체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가능한한 빨리 탈출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전쟁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지침이었다.

  박천 2만 피트 상공에서의 공중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공격기를 엄호하던 전투기들끼리 맞붙었다.  처음에는 전투기들끼리 서로 공중전을 피하며 아군 공격기의 엄호에만 치중했다.  그래서 박천전선에서는 양측 전투기들은 공중에서 구경만 하고 지상은 서로의 공격기가 폭격을 하는 묘한 상황이었다.  간간히 한국군측 진지로부터 스타 버스트 지대공미사일이 하늘을 향해 발사되었고, 그럴 때마다 하늘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그러다가 중국 전투기들이 싸움을 걸어왔는데, 이는 중국 지상군의 종용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공군이 폭격을 함에도 상공의 중국 전투기들이 움직이지 않자 화가난 중국군 사단장이 병단 지휘부에 연락을 하고, 상공의 우군기를 향해 얼마 남지 않은 용감 812형 지대공미사일 하나를 날렸다. 중국 전투기 편대의 지휘관은 한국공군의 F-16 전투기들과 공중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지만, 중국군의 편제상 공군과 해군은 전시에는 각 1급군구에 소속되어 있어 지상군의 명령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전에서는 중립을 지킬 수 있었어도 전시인 지금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 공군은 가능한한 공중전을 피하라는 명령이 있기 때문에 지상의 아군이 폭격을 당하고 있어도 중국 공격기들을 요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양측의 공격기 편대는 적 지상진지와 엄호 전투기 편대 사이의 낮은 상공에서 불안하게 폭격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신사 협정은 무너졌다.

  서로 20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긴장 속에 대치하고 있던 한국군의 F-16과 중국군의 미그-23들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먼저 레이더 유도형의 공대공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미사일 사격 후에 계속 미사일의 유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파이어 앤 포겟(fire and forget)능력이 있는 AMRAAM과 그 능력이 없는 PL-10의 효과는 극명한 차이를 가져왔다.

  계속 목표에 레이더를 비춰줘야 하는 PL-10은 이 미사일을 발사한 중국 전투기가 AMRAAM미사일의 목표가 되자 유도를 중지하고 긴급히 선회하는 바람에 유도를 잃고 제멋대로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사정거리에서의 차이가 너무 컸다.  SAR(반능동 레이더 유도)방식의 PL-10은 사정거리가 15km 밖에 되지 않았다. PL-10은 중국 영토 내에서 자체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단순한 숫적 우위로써 성능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고공에서 숨을 곳을 찾지 못한 미그-23 전투기들은  마하 4의 AMRAAM을 피하기 위해 채프를 뿌리며 급선회를 반복했다. 하지만 피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 한 기체를 노리는 6기의 암람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상공에서 피어나는 불꽃이 늘어났다.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워진 중국 엄호기들의 편대장은 후퇴를 명령했다. 살아남은 중국 전투기들이 도망가자 중국 공격기들도 연락을 받고 북쪽으로 날아갔다.

  F-16 전투기들은 팬텀과 F-5로 이루어진 아군 공격기들의  폭격이 끝나자 기지를 향해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근접전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한국공군의 최근 공중전은 계속 이런 양상이 지속되었다.

  김 중위는 전투가 너무 싱겁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적기 1대를 격추시켜서 이제 그의 전투기에 그려질 킬마크는 8대가 되었다.그리고 자신보다 많은 격추수를 기록했던 다른 두 명의 조종사는 이미 전투기를 몰 수 없었다.  한 사람은 지대공미사일에, 한 사람은 6기의 미그기에 포위되어 격추되었다.  미사일을 맞은 전투기는 공중폭발했고, 추락하는 기체에서 탈출한 조종사는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김 중위는 올봄의 멋있었던 드라이브를 생각했다.

  단 한 대의 피해도 입지 않고 상공 엄호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낸 편대장은 기지에 남은 AMRAAM과 스패로 미사일의 수를 계산해 보았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조종사들은 무선을 개방한채 다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졸음을 쫑기 위한 필사적인 노래였다.  몇 곡을 부른 후 점호가 시작되었으나 김 중위가 응답하지 않았다. 편대장이 즉시 김 종구 중위를 호출했다.

  "강남제비! 강남제비, 들리나?"

  중국과의 전쟁이후 한국과 북한 공군의 콜사인은 모두 한국어로 바뀌었다. 영어와 러시아어로 되어있던 남북의 콜사인을 중국군이 도청할까봐 아예 한국어로 바꾼 것인데, 한국 공군은 출격임무 때마다 콜사인을 바꾸던 방식에서 이제는 아예 개인이 정하도록 바꾸었다. 김 중위는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는 제비를 택했다.

  "강남제비!!"

  편대장이 김 중위를 계속 부르다가 그의 전투기 바로 위를 비행했다. 야간에 전투기끼리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지만 그의 기체에 충격을 주어 깨우려는 노력이었다.

  김 중위는 자신의 차를 몰고 경춘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청평을 지나 가평군에 접어들었다. 주로 강을 따라서 난 낭만적인 46번 국도 양옆에는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있었다.  시속 170 km로 달리는데도 스치는 바람은 너무 부드러웠다. 옆에 앉은 여자가 너무 좋다고 비명을 질렀다. 김 종구는 괜히 여자를 데려왔다 싶어서 짜증이 났다.  지난 주에 같이 왔던 경희는 한시간여의 드라이브에도 경치에 정신이 팔려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었다.  경희와 같이 올 것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혜영이와 노는 이유는 계속 이 정도의 관계는 유지해야 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혜영이는 아직 건드려보지 못한 여자애였다. 미개척지에 대한 탐험은 모험가로서의 당연한 본능이다.

  김 종구는 계속 재잘대는 혜영이의 짧은 치마 사이로 손을 넣었다.혜영이는 잠시 움찔했으나 가만히 있었다.  손이 허벅지를 더듬다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스타킹을 하지 않은 허벅지는 부드러웠다.  김 종구는 왼손으로 운전하면서 혜영이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12톤짜리 덤프트럭이 엇갈려 지나가느라 바람이 세차게 그녀의 머리를 날렸다.

  "강남제비!! 제발... 김 중위!"

  편대장이 계속 그를 호출했으나 응답은 들리지 않았다. 김 중위의 기체는 수평비행을 계속했지만,  1분 후면 서울 상공의 전시대공방어망에 들어갈 거리에 있었다. 체크포인트인 북한산이 바로 아래에 있었다. 서울 상공을 우회하여 수원비행장에 착륙해야 하는데 여기서 선회하지 못하면 아군의 지대공미사일에 김 중위의 기체는 추락하게 되어 있었다.

  편대장은 이미 지상의 미사일기지에 연락을 했지만, 서울상공의 엄호가 제 1의 임무인  수도방위사령부의 대공지휘관은 예외를 용납하지 않았다. 서울상공에 침입하는 비행기는 아군기든 적기든 가리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아군으로 위장하고 서울을 폭격할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대공지휘관으로서는 당연한 의무였다. 멀리 야간등화관제를 실시하지 않고있는 서울의 불빛이 보였다.

  편대장이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편대기 전원의 선회를 명한 다음에 편대장이 애프터 버너를 키고 속도를 내어 편대 앞쪽으로 나갔다.짧게 선회를 한 다음에 김 중위의 기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이것이 마지막 시도였다.

  김 종구는 혜영이의 치마 속에 넣은 손을 더 위쪽으로 옮겼다.  매끈한 피부가 느껴졌다. 팬티의 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 위치에는 맨살이 느껴졌다. 가운데쪽으로 더듬어갔다.

  "노...? "

  김 종구가 웃으며 치마를 들어 속을 보았다.  혜영은 못본체 하며 아래를 가리지도 않았다.  김 종구는 근처에 러브호텔이 있나 둘러보다가 다시 치마 속을 자세히 보았다. 혜영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어느새 바로 앞에 커다란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피하기는 이미 늦었다. 혜영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연신 비명을 질렀고 김 종구는 핸들을 우측으로 잽싸게 꺾었지만 이미 늦었다.강한 충격이 전신을 때렸다.

  "김 종구 중위!"

  편대장이 콜사인을 생략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후 편대장이 들은 것은 잔뜩 졸린듯한 목소리의 비명이었다.

  [으으....... 혜영이 괜찮아? ]

  편대장이 한심하다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장난끼가 발동했다.

  "자기, 난 괜찮아. 자기는?"

  잠시의 침묵이 지나고 김 중위의 당황한 듯한 응답이 들려왔다. 편대원들이 계속 개방하고 있는 편대무선망  여기저기에서는 억지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편대장님... 아니, 푸른 산, 여기는 강남제비! 죄송합니다.]

  "즉시 3시 방향으로 선회해! 위험지역이야!"

  1999. 11. 22  20:55  평안북도, 영변 동쪽 15km 지점

  인민군 제 7사단의 최 정수 소장이 중국군의 122 밀리 곡사포탄이 작렬하는 능선에서 망원경으로 앞을 살폈다. 영변에서 희천까지 펼쳐져있는 중국군의 방어선은 약 1.5km 앞에 있었다. 조금 전에 도착한 인민군 전투기들은 중국 전투기들과 공중전을 벌이느라 지상전은 신경쓸 수 없었다. 최 소장은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 진지에 대한 공중지원보다는 차라리 적의 공습을 안받는 것이 나았다.

  중국군 방어선 상공에 중국에서는 대황봉(大黃鋒)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제 슈페르훼르롱 헬기가 떴으나 인민군측 참호에서 포탑만 내밀고 있던 50년대식의 BTR-152A 대공포차가 즉시 14.5 밀리 중기총을 발사해서 단번에 이 헬기를 떨어뜨렸다. 헬기가 격추되자 위치가 드러난 이 대공포차는 즉시 후퇴해서 중국군의 포화를 피했다.

  공격개시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후방에 전개한 7 사단의 포병연대에 소속된 36대의 곡산형자주포로부터 170밀리 포탄이 연속 발사되어 중국군 방어선 곳곳을 때렸다. 각종 구경의 방사포(다연장로켓)탄이 연달아 방어선 앞의 눈밭에 작렬하자 최 소장은 축제 때의  불꽃놀이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니, 중국 명절의 폭죽놀이다.'

  그는 중국군들도 로켓탄의 연속폭발을 폭죽놀이같다는 생각을 하든말든 그가 할 일로 돌아갔다.  부대투입의 타이밍을 잡는 일이었다. 준비는 참모들이 진행하고 있었고 작전은 이미 정해졌다.

  "전차대대 투입 준비."

  사단장의 명령을 받아 작전참모가 통신군관에게 명령했다.

  "로켓 발사!"

  통신군관이 즉시 후방에 연락하자 곧 20여기의 로켓이 날아왔다.로켓은 중국군의 방어선 바로 앞 상공에서 힘없이 폭발하여  조각이 되더니 수많은 자폭탄이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로켓이 폭발한 아래에 길이 130미터, 넓이 12미터에서 22미터 정도 간격으로 연속 폭발이 일어나며 뿌옇게 먼지가 치솟았다. 이 중국제 762식 425밀리 지뢰제거용 로켓은 북한이 1997년에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것이었다.  중국제 무기에 의해 중국방어선 앞의 지뢰밭은 완전 소멸되었다.

  "투입!"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작전참모의 연호가 이어지며 엄폐호 뒤에 숨어있던 인민군의 T-72M1 전차들이 한꺼번에 엄폐호를 넘어 평야를 달렸다. T-72M1은, T-72의 여러 변종 중 하나인 T-72A의 수출형인 T-72M을 현대화하고, 경사장갑판에 16밀리의 부가장갑층을 덧댔으며, 포탑에 충전물을 채운 복합장갑을 채용한 개량형이다. 이 전차들은 원래 구 소련제인데 북한에서 200대를 수입했고, 나중에는 라이센스 생산하기도 했다.

  각 전차의 포탑 뒤에는 두 명의 보병이 기관총과 저격총을 들고 사격 준비를 했다. 사단장은 전차의 대미사일 능력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보병보다는 전차병을 중요시한다는 뜻이었다.물론 이 덕택에 전차장은 전투지휘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중국군 방어선에서 대전차미사일이 날아오기 시작했다.역시 예상했던 대로 미국에서 개발하여 80년대에 도입한 TOW의 중국제였다. 목표가 된 전차에 탄 저격병이 날아오는 불빛을 조준하여 사격을 시작하고 기관총 사수는 TOW가 발사된 지점에 대해 소사를 가했다. 대부분의 TOW가 중간에 파괴되거나 유선유도를 상실하여 땅에 쳐박혔다.  몇 발은 인민군의 전차에 명중했으나 두터운 T-72의 전면장갑을 뚫기는 어려웠다. 중국군 사단 방어선 전면에 발사된 총 27발의 TOW 중에서 겨우 2발만이 목표를 파괴시켰다. 인민군 전차는 아직도 56대나 남았다. 겁에 질린 중국사단장이 토우를 철수시키고 속도가 빠른 76밀리 대전차포로 상대했으나 대전차포의 성능은 토우보다 더 떨어졌다.  명중된 인민군 전차는 충격을 받지도 않고 계속 전진했다.

  "2시방향에 급조된 토치카! 성형작약탄 한방 먹여!"

  T-72의 포탑 안에서 전차장인 황 중위가  포탑을 돌리며 왼쪽에 앉아 있는 포수에게 명령했다.  주포 오른쪽에 있는 적외선 서치라이트는 중국군의 토우 미사일에 부서졌지만 포수의 야간스코프는 남아있었다. 포수가 조준경의 중심에 목표를 놓자, 레이저거리측정기가 자동으로 거리를 산출하고 컴퓨터가 풍향, 풍속, 기온 등을  감안하여 각도를 조정했다. 자동장전장치는 포탄을 자동으로 장전했다.

  전차가 전진을 계속하는 중에 포수가 발사했다. 포구를 떠난 HEAT-FS 포탄은 발사 직후 날개가 펴져서(FS:Fin-Stabilized) 목표를 향해 비행했다. 포탄에 명중한 대전차참호는 안쪽으로부터 섬광이 번쩍이더니 와르르 무너졌다.

  전차의 뒤를 따라 보병전투차가 나서고,  이들 뒤로는 보병들이 헉헉대며 뛰어갔다.  이들의 머리 위로는 273밀리 다연장로켓탄이 쏟아지고 있었다.  보병이 중국군 방어선에 접근하면서 로켓탄의 위협은 점점 줄었으나 방어선에서 발사된 각종 화기에 의한 피해는 커졌다.보병 대 보병의 사격전이 시작되었다.

  첫번째로 방어선을 넘은 황 중위의 T-72가 진지를 유린했다.  인민해방군 보병들은 전차를 피해 제 2진지로 후퇴했으나 결코 전차의 속도보다 빠르지 못했다. 황 중위가 동축의 7.62밀리 기관총을 쏘아댔다.  원래 후속부대로서 대전차 방어수단을 별로 갖추지 못한 인민해방군은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했다.  전차와 중국군 보병이 섞여 600미터 후방에 있는 제 2진지의 중국군은 사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민군 전차들이 한편으로는 기관총으로 중국군을 사살하며  단숨에 제 2진지를 점령하려고 계속 전진하는데, 갑자기 오른쪽에서 1개 대대의 중국 전차들이 나타났다.

  중국제 80식 전차들은 포격을 하면서 급속도로 인민군 전차대에 접근하여 이들을 공격했다. 80식 전차의 105밀리 강선포에서 발사된 APFSDS(철갑탄의 일종)가 초속 1,455미터의 속도로  인민군 T-72의 얇은 측면장갑을 꿰뚫었다. 인민군 전차들이 하나씩 파괴되었다.  뒤따라온 인민군들도 중국전차들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이미 예상된 상황이었다.

  인민군 보병들이 전차보다 먼저 사격위치를 잡고 반격을 시작했다.보병들이 한국군에게서 인도받은 판저파우스트를 중국전차에 날렸다.장갑 관통력 700밀리의 이 대전차로켓은 T-80의 전면장갑을 파괴하기에 충분한 무기였다.  중국전차들이 인민군 보병의 공격에 당황하는 순간 인민군 전차들의 반격이 시작되고 치열한 전차전이 시작되었다.

  "계속 이동하면서 쏴라! 1시방향에 돌출된 땅크!"

  황 중위는 운전병과 포수에게 명령하며 자신은 포구를 왼쪽으로 돌렸다. 포수가 장전을 하며 목표를 조준간에 잡았다. 황 중위의 전차가 신나게 좌우로 달렸다.  전차 바로 앞의 땅에 섬광이 번쩍이는 순간 주포가 발사되었고 바로 그 결과를 볼 수 있었다. 가장 선두의 중국제 전차가 포탑이 공중으로 치솟으며 폭발했다. 장관이었다.또 다른 목표를 찾아 황 중위가 전방을 살피는 중에 전차에 극심한 충격이 가해졌다.  포탑 오른쪽이 뚫리더니 뭔가가 튀어들어왔다.  황 중위가 아차하는 순간 그와 부하들의 몸은 갈갈이 찢어졌다.

  그는 신혼이었다.  황해도 사리원에 있는 관사에서 그의 아내가 불러오는 배를 만지며 웃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은 그의 아내 곁에 앉아서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남북통일이 되어서 이제 동족상잔의 비극은 없어질테니 군인의 아내로서는 한시름 놓았다는 그의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3년 전만 해도 반동으로서 자아비판을 받을만한 언사였으나 지금은 그녀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다른 적과 맞설 줄을 상상을 하지 못했고, 그녀는 앞으로는 최소한 같은 근심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한대가 당했습니다만... 곧 적 전차대를 제압할 것 같습니다."

  참모가 망원경으로 전차전을 유심히 살폈다. 전차전이 벌어진 벌판에 조명탄이 연이어 낙하하고 있었다.  이제 움직이는 전차보다 서있는 전차가 더 많게 되었다.  최 소장은 예비대의 투입을 지휘하다가 잠시 잠망경으로 밖을 살펴보았다. 인민군과 인민해방군의 전차들은 급기야 서로 얽혀서 근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 서로의 주포를 맞고도 파괴되지 않는 전차는 없었다.  그러나 보병의 측면지원을 받은 인민군 전차들이 점점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잘 하고 있구만, 기래야지."

  1999. 11. 23  10:30  평안북도 운산

  개전 첫날 새벽에 점령된 운산 읍내 군당위원회 회당 앞 광장에 생기를 잃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이들 200 여명의 민간인 주위에는 총을 겨누며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는  인민해방군들이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억류되어 있는 민간인이나 이들을 감시하는 인민해방군이나 모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전선의 인민해방군은 어제 저녁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후퇴중이었다. 박천과 영변 두 곳의 전선이 뚫리고 그 사이로 통일한국군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영변에서 패배한 인민해방군 231사단은 뚫린 방어선을 같은 집단군의 제 232사단에 인계하고 물러났지만,  232사단도 오래 버틸 것같지 않았다.

  231사단 정치부 소속 군관인 지앙 소좌는 보병전투차 옆에서 자꾸 시계를 들여다 보며 초조하게 상부의 명령을 기다렸다. 옆에 있는 무전병은 무선을 개방한 채 연신 포성이 들려오는 남쪽 하늘을 쳐다보았다.언제 국군이나 인민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판에 명령은 아직도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상부의 명령 한마디에 이들의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지앙 소좌가 민간인들을 살펴보았다. 모두들 겁먹은 표정이었다.지앙 소좌는 알고 있었다. 대부분 중년 이상의 남자와 여자들로 구성된 이들 민간인들은 언제라도 정규군에 편입될 수 있을 정도의 군사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몇몇 고등중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도 웬만한 나라의 예비군보다 훨씬 많은 군사교육과 훈련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북한의 모든 인민들이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중국군의 예비대인 민병보다 더 강한 군사조직인 교도대나 노농적위대에  소속되어 있어서, 유사시에는 언제든지 제복을 입고 총을 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었다. 중국군은 이들을 그냥 놔두고 후퇴했다가는 언제 이들에 의해 뒤통수를 얻어맞을지 모르는 위험분자들로 간주했다.

  민간인들 가운데서 작은 술렁거림이 일었다.  한 청년이 조선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른 민간인들에게 노래가 퍼져갔다. 무슨 노래인지 몰라도 행진곡풍의 리듬에 점점 음정이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군가나 조선에 대한 충성심이 담긴 노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앙 소좌가 부하들에게 명령해서 주동자를 끌어냈다.  경비병들에게 끌려나오는 동안 민간인과의 사이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결국 그 청년은 총검을 휘두르는 경비병들에게 끌려나왔다.

  지앙 소좌가 천천히 권총을 그에게 들이댔다.  청년의 표정에서 순간적으로 두려운 빛이 나타났다가 즉시 사라졌다.  청년이 눈을 부릅뜨며 소좌를 노려보더니 다시 같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땅!"

  총소리와 함께 청년의 이마에 붉은 구멍이 생기고 머리 뒤로 피가 터져 나왔다. 지앙 소좌가 총을 권총집에 넣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그의 몸이 서서히 뒤로 무너졌다.  민간인들 사이에서 경악과 흐느낌이 흘러 나왔다. 지앙 소좌가 적은 이렇게 다뤄야한다는 듯 빙긋 웃었다.  자신은 민간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점령군인 것이다.  부하들이 즉시 시체를 끌고 광장 구석에 파둔 구덩이에 쳐 넣었다.

  "반항하는 놈들은 사살해버려!"

  부하들 사이에 당혹감이 번졌으나 금방 원상태로 돌아갔다. 부하들이 살기등등한 눈으로 민간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뒤쪽에 있던 노인이 천천히 아까의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민간인들이 또 따라불렀다. 부하들이 그 노인을 끌어냈다. 지앙 소좌가 권총을 꺼내 겨눴다.

  "땅!"

  다시 총소리가 울리고 지앙 소좌는 권총을 민간인들에게 휘둘러 보였다. 언제든지 반항하면 이렇게 된다는 뜻이었다. 부하들이 노인의 시체를 발을 잡아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민간인들의 눈에는 분노와 함께 공포가 서렸다. 아직도 상부의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지앙 소좌는 조선인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천여년간 중국의 피보호국, 19세기말부터의 일본의 침입과 식민지배, 동족상잔의 전쟁, 동족끼리의 학살 등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특히 미 제국주의의 노예이며 노동자, 농민의 적인 남조선 정부와 개인우상화로 점철된 북조선정부를 남북 조선의 인민들이 내버려둔 것은 모두 인민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조선의 인민들은 외세와 불의에 저항할줄 아는 중국인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지금도 이 민간인들은 총이 무서워 벌벌 떨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앙 소좌는 왜 아직도 당 지도부는 핵 사용을 결정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핵미사일 몇발이면 조선은 금새 항복할텐데, 외국의 눈치를 보는지 지도부의 대응은 미적미적했다.  당 지도부의 우유부단함이 이렇게 전쟁을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하지만 핵전쟁에서 보병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핵전쟁에서 자신들은 필요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당연했다.

  조선옷을 입은 중년 여성이 아까와 같은 노래를 불렀다. 소좌가 명령하지 않아도 병사들이 그를 끌어냈다.  소좌가 고개짓을 하자 부하들이 그녀를 구덩이로 끌고 가서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그들은 조선인들에게 잘 보라는듯 수십번을 찌르고 또 찔렀다.시체에서 피가 터져나와 눈밭 위를 붉게 물들였다. 지앙 소좌가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표정이 밝아진 무전병이 그에게 무전기를 건냈다.

  "231사의 정치부 지앙 소좌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역시 병단사령부는 옳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지앙 소좌는 생각했다.그는 부하들에게 명령해서 북조선인들을 회당으로 몰아넣었다.  반항하는 자들은 즉각 사살되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문을 잠그고 창문도 못질을 해서 봉했다. 부하들이 회당건물 밖의 곳곳에 휘발유를 끼얹었다.  회당을 중심으로 총을 겨눈 부하들이 반원형으로 둘러섰다. 기관총 2정의 사격준비가 끝나자 소좌가 다시 권총을 꺼내들어 하늘을 향했다.

  "사격!"

  장 소좌의 총소리를 신호로  정치부 소속 병사들이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기관총이 불을 뿜고 수류탄이 계속해서 투척되었다. 회당 안쪽에서 비명이 이어졌다. 회당은 점점 불이 번지고 있었다. 2층 목조건물인 이 회당은 계속된 폭발과 화염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잠시 귀를 찢는듯한 비명의 합창이 들려오더니 잠시 후에는 잠잠해졌다. 257명의 주민들은 이제 중국군에게 저항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이런 일이 후퇴하는 중국군 부대의 점령지마다 벌어지고 있었다.  무너진 회당은 아직도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1999. 11. 23  10:50  평안북도, 선천

  차 영진 중령은 북한제 소형 사륜구동차를 몰고  대목산 요새를 내려왔다.  선천 시가지 곳곳에는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가 쌓여 있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제 11기갑사단이 중국군을 막는 동안  모두 피난을 했기 때문에 사람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눈이 쌓인 숲과 도로 곳곳에는 인민군 초소들이 설치되어 그를 보고 있겠지만, 그들은 명령 없이는 몸을 드러낼 수 없기때문에 차 중령은 쓸쓸한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차 중령이 집으로 향하는 작은 도로에 들어섰다. 멀리 자신의 관사가 보였다.  북한에 주둔하는 제 11기갑사단의 기혼자를 위해 지은 소규모 3층짜리 연립주택이었다. 차 중령은 관사 정문 앞에 차를 세웠다. 정문의 경비실은 유리창이 모두 깨어져 있었다.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하다가 아무도 없을 이곳에 혼자 들어가기는 싫었다. 그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내는 자신이 죽은 줄 알 것이다. 그는 개전 첫날 저녁에 대목산 요새에서 위성수신되는 텔리비전으로 뉴스를 보았는데, 자신의 부대가 거의 전멸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본대의 후퇴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한 차 중령과 그의 제 3 전차대대라는 말을 아나운서를 통해 들었을 때 그는 씁쓸하게 웃어야 했다. 자신은 죽은 것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어제밤에 본 뉴스는 선천과 그 주변의 평안북도 지역에서 제 2전선을 형성해서 용감하게 싸우는 부대에 대한 뉴스를 보았다.  뉴스에서는 그 부대의 지휘관을 60대의 예비역 인민군 대장이라고 했고,  그의 부하들은 20만에 육박한다고 했다. 차 중령은 웬 언론의 과장보도인가 했지만 이것을 군 지휘부의 선전으로 이해했다.  같이 뉴스를 본 홍 대좌는 그를 자꾸 장군님이라고 불렀다.  차 중령이 놀리지 말라고 하니까 홍 대좌는 차 중령이 곧 장군이 될 것이라면서 미리 장군으로 부르는게 어떻냐며 웃었다.

  차 중령이 2층의 자기집을 보았으나 두꺼운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그는 군용 스키점퍼의 지퍼를 내리고 군복 상의 왼쪽 주머니에 있는 집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차를 몰고 다시 간선도로에 들어섰다. 하늘에 전투기들이 고공을 지나며 비행운 네 개가 그려졌다.  차 중령이 실눈을 뜨고 비행기를 보더니 F-16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천천히 차를 몰아 대목산을 향했다.

  1999. 11. 23  11:00  경기도, 강화

  신 승주는 강화도에 있는 국가안전기획부  교육원에서 여러가지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해군 UDT출신도 있었지만 안기부 요원들과 북한의 특수부대인 정찰연대 소속의 군인들도 많았다.  훈련은 해상침투가 주였고 교육 내용은 중국어와 컴퓨터가 전부였다.  중국어는 정찰연대원들이 잘했고 컴퓨터는 안기부원들이 발군의 실력을 발했다. 자신처럼 UDT 대원들은 수업진도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그런데 신 승주, 예비역 해군 중위인  그는 도대체 무슨 임무를 맡기려고 이런 교육을 시킬까 궁금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들의 목적지는 일단 중국이 확실했다. 그러나 전시에 컴퓨터는 왜 배운단 말인가?  어제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봐서 이들이 맡을 임무는 극히 위험하고도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다.그러나 교관이나 교수들도 이들의 임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내일 저녁에 작전에 투입된다고만 말해줄 뿐이었다.

  1999. 11. 23  11:20  동경 124도, 북위 39도 3분, 서해함대 충북함

  서해함대 사령관인 김 종순 중장은 자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오는 통일참모본부의 명령과 각군의 요구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중국인민 해방군 해군의 3개 함대가 모조리 도륙된 지금,  서해함대의 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이 기회에 중국에 대한 서해의 봉쇄를 강력히 주장했으나, 의외로 통일참모본부는 서해 봉쇄를 허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 중장이 차선책으로 제안한 요동반도 다이렌항의 공격도 중국해군 소속의 지상발진 공격기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개전 첫날에 침몰된 인천함이 보내온 전투보고에 따르면 적 공격기에 대한 시 스패로의 명중율은 상당히 높았다.공중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중국해안에 대한 봉쇄는 상당한 수준까지 수행할 수 있는데, 통일참모본부는 해군을 너무 아낀다는 불만이 들었다. 현재 육해공군중에서 유일하게 중국에 대해 확실하게 우세한 전력은 해군밖에 없는데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참모본부가 원망스러웠다.

  지상군에 대한 포격지원과 가끔씩 영해를 넘어오는 중국 잠수함과 미사일정의 격퇴가 서해함대가 수행하는 중요한 임무의 거의 전부였으나, 의외로 통합참모본부는 함대를 혹사시켰다. 쓸데없이 통참이 지정한 해역을 함대가 초계만 하다가 돌아오는 일이 잦았는데, 이 초계해역의 결정은 외부적으로는 김 중장이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김 중장은 당연히 불만이 많았으나, 통일참모본부가 무슨 비밀스런 일을 벌이려나 보다 하고 묵묵히 명령에 따랐다.

  중국 북해함대의 전멸은 중국에게 치명적이었다. 상륙전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놓고 여객선의 연안항해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어부들은 서해, 중국인들에게는 황해로 불리는 이 바다로 조업에 나서는 것을 거부했다. 중국 북해함대는 남해함대에게서 잠수함 전대 하나를 빌려 한반도 근해로 내보냈으나, 재래식잠수함으로는 접근하는 도중에  한국해군의 초계기와 구축함으로 이뤄진 방어선을 뚫기가 힘들었다.  겨우 방어선을 뚫고 들어간 잠수함들은 반격이 무서워 섣불리 공격에 나서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서해함대에 떨어진 오늘의 임무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중국영해 아슬아슬한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전북함을 잃고 다시 원래의 기함인 충북함에 승함한 김 중장은 한국해군의 장교들이 얼마나 우수한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대규모의 대형함정들을 지휘하기 벅차서 충북함의 함장인 고 재일 대령에게 임시로 함대지휘를 맡겼는데,고 대령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천방지축 엉망으로 움직이던 연안경비정과 소형 어뢰정, 그리고 미사일정들이  고 대령이 지휘를 시작하자 어느새 일사분란하게 함대 후미를 따라오게 되었다.

  "오늘은 마중나온 분들이 계십니다."

  60km 전방에 나가있는 초계기로부터  받은 대잠정보를 하사관이 함교의 중앙 스크린에 표시하는 것을 보며  함장이 함대사령관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최소한 두 척의 잠수함입니다. 대함미사일 탑재잠수함이라면 차라리 쉬울텐데 아닐겁니다.  그리고 서해의 경우, 원잠보다는 재래식 잠수함을 잡기가 더 힘듭니다."

  대잠수함전에 대한 경력이라면 첫날의 전투 밖에 없는 인민군 출신의 김 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통일 전에는 한국에 비해 압도적인 숫자의 잠수함을 보유했던 북한 해군은 대잠수함전 훈련은 거의 실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북한해군이 보유한 대잠무기라고는 나진급 등의 비교적 대형함에 장비된 대잠로켓인 RBU-1200 밖에 없었고  대잠전을 중요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중국해군과의 해전에서 항공전뿐 아니라 잠수함전이 중요한 전투방식으로 떠오르자,  대잠전을 잘 모르는 김 중장은 고민에 쌓였다.

  김 중장은 개전 첫날 전사한 전북함의 함장 장 태석 중령이 생각났다. 그는 미사일전 뿐만 아니라  대잠수함전에서도 기량을 발휘했으나 죽었다. 김 중장은 자신이 무능한 탓이라며 아직도 그의 죽음을 원통해했다. 김 중장은 잠수부들을 동원하여  전북함이 침몰한 지점 부근에서 장 중령의 시신을 인양했다.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장 중령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의 시신을 차디찬 바다에서 찾고,  대령으로 추서하는 것 밖에 없었다. 김 중장이 묵묵히 고 대령을 쳐다 보았다. 한국해군답게 대잠수함전의 경력은 많아 보였다. 신중한 그의 용기를 북돋우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중국의 재래식 잠수함은 잡기가 쉬운 편이지."

  미국이나 러시아의 경우,  원자력이든 통상형이든 간에 공격잠수함은 잠수한 상태에서 대함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함 중앙의 수직발사관 뿐만 아니라  어뢰발사관을 통해서도 하픈이나 SS-N-16 따위를 날릴 수 있기 때문에 공격 직전에 징후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특히 러시아 잠수함의 경우 사정거리 500km가 넘는 잠수함 발사 대함미사일이 여러 종이 있기 때문에, 인공위성이나 조기경보기에 의한 목표의 확실한 데이터만 있으면 동해에서 서해의 목표를 공격할 수도 있는 장점이 있다.이 특성은 잠수함의 은밀성과 합해져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중국해군의 경우 대함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은 원자력인 한급 잠수함 5척과 재래식인 로미오급의 개량형인 우한급 1척에만 해당된다. 이들의 가장 큰 약점은 사정거리 40km의 잉지-1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해 수면 위로 부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목표로 하는 함대의 상공에 초계기가 떠있으면 이들은 공격기회를 갖기 힘들다.

  "초계기로부터 적 잠수함 탐지보고와 함께 공격권한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잠전지휘관이 함대사령관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겪은 함대사령관들은 상황과 능률을 떠나서 대체로 함과 초계기의 합동작전을 원했었다. 그가 아는 한 수상함에 탄 진짜 해군이 해군 소속의 비행기 조종사들에게 공을 독점시키는 법은 없었다.  설사 그 잠수함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배를 탄 함장들은 그 문제에 있어서는 집요했다.

  "즉시 공격하라."

  함대의 대잠지휘관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초계기에 공격명령을 내렸다.  지상발진형 초계기인 P-3C 오라이언 4기가 함대탑재 헬기들인 슈퍼 링스와, 역시 지상발진형인 UH-60 시 호크의 지원을 받으며 적 잠수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999. 11. 23  11:35  서해함대 서쪽 20km, 초계기 오라이언

  "DIFAR(수동형 소노부이), 1,000 미터 간격. 준비... 투하!  준비... 투하! "

  P-3C 오라이언의 지휘관이며 전술통제사인 단 종상 소령은 자신이 지금 중형승용차의 투하를 명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회용의 조그마한 소노부이(음파탐지 부표) 값이 왜 그리 비싼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개의 프로펠러를 단 이 초계기는  해상 50미터 상공을 낮게 날면서 소노부이의 세번째 선을 만들고 있었다. 단 소령은 중국의 잠수함이 틀림없이 소노부이를 투하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능동형 소노부이와 섞어서 투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이놈... 꽤 질긴데요?  밍급으로 이정도의 조함능력이라..."

  각종 전자기기로 꽉찬 기체 중앙에서 여러 소노부이에서 전해오는 시그널을 분석하며 이 영승 중위가 투덜거렸다.  전쟁이 터지자 군용비행장으로 변해버린 영종도 국제공항에서 아침 9시에 출격하여 벌써 2시간 반이 되가고 있었다. 이 해역에서 잠수함의 활동을 발견하고 추적한 지도 벌써 30분이 넘었다.잠수함이 내는 소리를 분석하여 이 잠수함을 밍급, 중국해군의 제식명으로는 035급으로 분류했으나  공격기회를 줄 정도로 확실한 신호음을 내지 않았다.  대충 위치를 감잡을 정도 되면 어느새 소리가 사라지곤 해서 아직도 짜증나는 술래잡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단 소령은 대잠초계기 승무원들은 어떤 전쟁에서든 가장 안전한 군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잠초계기의 적인 잠수함에서 대공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러시아의 타이푼이 대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미사일 발사를 위해 비싼 원자력 잠수함을 해표면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함장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대함공격을 할 때도 전투기의 엄호가 있거나  사정거리가 긴 미사일을 발사하기 때문에 직접 공격을 받을 위험은 없었다.  그리고 어떤 해군지휘관이라도 대공무장이 빈약한 초계기를 적 전투기들이 활동하는 상공에 파견할 리도 없었다.  개전이래 통일한국군은 아직 단 한 대의 초계기도 잃지 않았다. 그는 중국의 초계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륙붕의 경사면이라서 힘들군..."

  이 해역은 완만한 경사로 이뤄진 서해안의 대륙붕이 갑자기 급경사로 바뀌면서 심도가 깊어지는 곳이다. 잠수함이 이 경사면에 숨어있으면, 발견도 어렵지만 공격할 때 어뢰의 심도조정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목표인 중국잠수함은 계속 심도를 낮춰가며 서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하지만 시속 760km의 초계기를 속도만으로 따돌리려는 멍청한 잠수함장은 있을 수 없었다.

  "12번 소노부이에 미약한 신호음 감지!"

  이 중위가 눈을 계속 껌뻑거리며 손으로 콘솔을 조작하고 있었다. 단 소령이 즉시 조종사에게 연락하자 초계기가 선회를 하여 방금 소노부이를 떨어뜨린 곳으로 갔다. 초계기에서 머린 마커를 투하하자 해면에 노란색의 연기가 피어 올랐다.  자기탐지기에는 목표가 탐지되지 않았다. 지구 자기장의 변화를 탐지하는 자기탐지기(MAD)는 확실한 탐지를 보장하기는 하지만 유효거리가 500미터 이하로 짧기 때문에 잠수함 바로 위의 상공을 날아야 한다. 초계기가 다시 한번 선회했다.

  전방감시 적외선장치(FLIR)에 아무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잠수함은 슈노켈을 함내에 수납한 상태로, 축전지에 의한 무음잠항을 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경우 통상형잠수함이 원자력함에 비해 훨씬 소음이 적다.  소노부이에 잡히던 저주파 신호음이 점점 줄어들더니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초계기의 보고를 받은 충북함의 대잠지휘관이 근처의 시 호크에 연락하여 12번 소노부이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헬기가 하버링하며 디핑소나(양강식 음파탐지기)를 내리고 청음을 시작했다. 헬기의 강한 바람에 의해 수면에 동심원이 퍼지며 물안개가 피어올랐다.노란색의 연막이 흩날렸다.

  [심도 150까지 계속 내려. 좋아.... 정지! ]

  초계기의 승무원들은  충북함과 연결된 무선망을 통해 대잠헬기의 기장이 내는 소리를 초조하게 듣고 있었다. 초계기는 적 잠수함이 도망갈 것에 대비해 남쪽에 또다른 소노부이의 선을 만들었다. 단 소령은 이번에도 고집스럽게 수동형 소노부이만을 투하했다. 수동형이 싸기도 하지만,  탐지거리가 크기 때문에 잠수함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수동형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탐신모드 전환! 탐신! ]

  초계기의 승무원들은  헬기의 디핑소나가 내는 고주파 탐신음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즉시 화면에 잠수함의 밝은 빛이 표시되었다가 점점 희미해졌다. 이 중위가 목표의 위치를 파악하며 외쳤다.

  "심도 250! 아, 움직입니다. 침로 3-5-3, 5노트, 증속중!"

  단 소령 콘솔의 중앙화면에  밝은 점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헬기가 즉시 수중에 어뢰를 발사하여 그 점을 좇았다. 두개의 점이 점점 접근하고 있었다. 초계기에서 투하한 20개의 소노부이에서는 헬기가 투하한 어뢰가 발신하는 탐신음이 계속 수신되었다.

  "17, 18번... 4번 라인의 17번과 18번 사이에 소리가 들리니다! 침로를 계속 바꾸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다른 목표이거나..."

  이 중위가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단 소령을 쳐다 보았다.  단 소령이 시그널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시 호크는 유선유도어뢰를 공격하고 있어.  음문을 녹음시켜 발사한 거야. 이것이 진짜다. 목표는 새로운 소노부이 라인을 모르고 있군. 어뢰 투하 준비!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매드(MAD:자기감지장치)로 최종 확인한다."

  이 중위의 화면에는 아까의 두 점이 계속 교차하고 있었다. 10노트도 안되는 잠수함을 어뢰가 계속 스치며 명중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초계기가 좌측으로 선회하여 다시 북동쪽으로 날았다.

  "목표의 추정침로는 2-5-0이다.  최 하사는 탐지되는 대로 마커를 투하하도록!"

  "투하! 투하했습니다. 확실합니다! "

  단 소령이 명령을 하자마자  MAD를 맡은 최 하사가 머린 마커를 투하했다. 단 소령이 즉시 초계기를 선회하도록 했다.  초계기가 바다 위의 붉은색 연막을 향해 선회했다.

  "좋아, 어뢰, 패시브. 초기수색심도 300. 준비... 투하! "

  단 소령의 명령에 따라 어뢰가 투하되었다. 낙하산을 달고 수면에 내려앉은 Mk-46 어뢰는 점점 깊이 내려가 잠수함의 스크루를 탐지하고 조용히 추적하기 시작했다.  네 개의 꼬리날개를 가지며 앞부분이 납작한 이 어뢰는 45노트의 속도로 가속했다.

  "목표, 침로 유지. 어뢰가 추적하는 것을 아직 모릅니다.  거리 200! 계속 접근 중입니다."

  이 중위가 흥분되는 목소리로 떠들었다. 이 밍급 잠수함 소나의 사각지대로부터 추적하고 있는 어뢰를 잠수함은 감지할 수 없었다.

  "목표, 급격히 증속하고 있습니다. 침로 변경, 어뢰와의 거리는 100! 곧 명중합니다!"

  단 소령은 두 개의 밝은 점이 합해져서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이 중위가 환성을 질렀다. 스크린에는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격침 확인하라."

  단 소령의 명령에 초계기가  격침이 예상되는 곳의 상공을 선회했다. 잠시 후 기름띠와 잡다한 물건들이 떠올랐다.  기장이 육안으로 확인하고 보고했다.

  "좋아, 격침 확인!"

  기내에 환성이 터졌다.  통신사가 남포에 있는 지상 대잠지휘소와 충북함에 연락했다.초계기의 모든 정보는 대잠지휘소와 데이터 링크가 되어있기 때문에 부유물 확인만을 보고해도 되었다. 충북함의 대잠지휘관이 또다른 두척의 잠수함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기수를 북쪽으로, 대륙붕 경사면을 따라 디카스의 선을 깐다."

  초계기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비행하며  DICASS(방향지시 능동형 소노부이)를 투하하기 시작했다. 이 소노부이는 수동과 능동의 겸용이며 음파의 발신간격을 초계기에서 조정할 수 있다.  단 소령이 앉은 콘솔 좌측의 레이더에는 동료 초계기와 헬기들이 열심히 잠수함을 사냥하고 있는 모습이 표시되고 있었다.

  "간격 2km, 준비... 투하 시작!"

  또다른 대잠요원인 박 소위가 소노부이를 투하할 때, 이 중위는 소노부이들이 청음한 시그널을 살피고 있었다. 일단 청음모드부터 시작했는데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남포항의 대잠지휘소에서는 잠수함 한 척이 그 라인으로 갔다고 전해왔다. 아직 잠수함이 소노부이의 선에 접근하려면 더 기다려야 했다.  초계기는 소노부이의 초단파를 보다 잘 수신하기 위해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디카스 1, 3, 5, 탐신모드로 전환준비."

  단 소령이 결심했다.이 중위가 소노부이들의 발신간격을 조정하고 단 소령에게 준비완료의 신호를 보냈다.

  "탐신!"

  이 중위가 각 소노부이들이 보낸 시그널을 계속 살폈지만  의심이 가는 물체를 잡을 수 없었다.

  "기다려. 특히 2, 4번을 주시하도록."

  1999. 11. 23  11:50  초계기 S-2A/F

  대잠초계기의 임무를 비교적 신형인 P-3C에게 물려주고 해상수색만을 전문으로 하는 S-2A/F 트래커(Tracker)  한 대가 연료보급을 마치고 다시 이 해상에 도착했다. 3,000 미터의 상공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상에는 지금 한창 잠수함 사냥이 진행되고 있었다. 기장은 이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P-3C가 두 척, 슈퍼 링스가 한 척의 잠수함을 잡았고 함대는 위협이 사라진 해상을 천천히 서진하고 있었다. 기장이 조종간을 잡고 기수를 내리려는데 부기장이 갑자기 긴장했다.

  "레이더에 뭐가 잡히는데요? 수상함 같은데... 좀 작습니다."

  기장이 레이더를 보니  서쪽 해상에 뭔가 자꾸 레이더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 60km 정도... 중국의 잉지나 스틱스라면 아직 사정거리는 아닌데... 미사일정일지도... 그런데 함대에서는 모르고 있나보군."

  근처에 중국군의 항공기가 없는 것을 확인한 초계기가 서쪽을 향했다. 아마도 작은 선박이 파도에 휩쓸리며 가만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만약 이것이 매복하고 있는 중국의 미사일정이라면 서해함대에 큰 피해를 줄지도 모르는 상황이므로 기장은 목표의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동합니다. 이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20노트..... 30노트! "

  "함대에 연락해!"

  기장이 속도를 내어 서쪽으로 급히 향했다.  부기장이 충북함과 무선 교신을 시작했는데, 충북함에서는 아직 적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기장이 직접 충북함과 교신을 했다.

  "고속미사일정으로 보인다. 속도 40노트, 아니, 50노트."

  [지금 장난하나? 무슨 속도가 50노트야?]

  기장이 충북함 함장의 지적에 놀라 디지틀 속도표시기를 다시 확인했다. 기장의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금 70노트로 가속! 속도 증가중, 비행정인지도 모른다."

  [비행정? 중국 해군에서 Be-6 매지(Madge)는 퇴역했을텐데... 4대 밖에 없고... 속도와 고도는? ]

  "100노트, 고도는 아직도 낮다. 1미터. 매지보다 훨씬 크다! "

  [알겠다. 전투기를 보내겠다. 계속 대기하라.]

  기장은 저 비행정이 혹시 러시아제의 지표효과익(WIG:Wing-In-Ground effect) 항공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 위에 떠있기도 하고 1에서 4미터의 고도로 해면을 스치며 낮게 날기도 하지만, 고공을 비행하는 능력도 있었다.  만약 이 항공기가 함대에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고 수면 위로 내려가는 경우, 함대의 중거리 대공미사일에 의한 요격은 불가능해진다.

  "고도는 1미터, 속도 300노트!  매지보다 훨씬 빠르다. 위험하다! 공격하겠다!"

  기장이 결단을 내렸다.  함대 상공을 방어할 요격기가 없는 지금, 그 항공기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F-16은 서해 상공에 중국 전투기들의 움직임이 없자 이륙하지 않고 영종도 공군기지에 출격대기만 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륙하여 그 항공기를 공격하려면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하픈, 목표입력. 발사!"

  부기장의 기장의 명령을 듣고 잠시 황당해졌으나 그대로 명령을 따랐다. 한국해군은 오라이언을 배치한 다음 트랙커를 퇴역시키려 하였으나 오라이언의 숫자가 너무 적어  수명연장을 위한 개조 후에 계속 현역에서 활동하게 했다. 주로 해안선 감시임무 위주였으나 대함공격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기장이 하픈을 발사했다.기체에서 분리된 하픈의 꼬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며 이 미사일은 점점 고도를 내리고 속도를 높였다. 초계기와 그 항공기의 거리는 어느새 30km로 접근하고,  미사일과의 거리는 10km로 좁혀졌다. 그 항공기는 일체의 전파를 발하지 않고 있었다.

  "적 항공기 미사일 발사! 총 6기가 함대를 향합니다!"

  부기장이 비명을 질렀다.  기장은 즉시 충북함을 호출하여 상황을 전했다.

  "지표효과익기 룬이다! 지금 룬에서 미사일 6기를 발사했다.  속도는 마하 0.9. 시 스키밍 방식이다."

  룬(Lun)은 러시아가 해군용, 또는 민간수송용으로 개발한 지면효과익 항공기이다. 중량이 무거운 화물을 수송할 수 있으며, 유도탄발사 튜브가 있어서 대함공격도 가능하다. 민간용일 경우 최대 400명의 인원수송이 가능하다.

  기장이 레이더를 보니 6기의 미사일이 함대쪽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초계기에서 발사한 하픈도 거의 비슷한 속도로 이 항공기를 향했다. 속도가 느린 대함미사일,  특히 순항고도가 낮은 하픈으로 항공기를 공격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했지만,  룬이 저공을 비행하는 한 이 항공기는 단지 속도가 빠른 배에 불과했다. 룬에서 또다른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맞아라."

  부기장이 레이더를 뚫어져라고 보며 외쳤다.  그는 주먹을 쥐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룬과 하픈이 거의 한 점이 되었다.

  중국이 러시아에서 1999년에 수입한 룬은 300노트의 최고속도로 동쪽을 향하며 계속 미사일을 발사했다.  통일한국군의 서해함대에 대한 위치자료는 위성을 통해 받고 있었고 , 목표상공에는 초계기와 헬기만 있었기 때문에 중국제 잉지 미사일은 중간에 요격을 받지 않고 함대를 공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웅장한 터보팬 8기를 단 이 항공기는 수면과의 반발력을 이용해 수면 바로 위를 날 수 있다.  이 항공기는 주로 수면 위를 비행하지만, 초계 임무에 동원될 때는 최대 3,000 미터의 고도를 나는 진짜 항공기이기도 하다.

  꼬리날개 중간 앞쪽에 있는 관측실에서 시스템 조작사들이 계속 미사일을 발사했다.  수면 위 16미터에 위치한 이곳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푸른 바다와 짙푸른 하늘 밖에 없었다.  또 한 발의 미사일이 발사되고 연기가 걷히는 순간, 바다 위 멀리 하얀 점이 수면 위를 스치며 날아왔다.

  "명중!"

  "명중했다. 방금 룬에서 미사일 3기가 추가로 발사되었다. 먼저 발사한 6기와 그쪽의 거리는 10마일."

  기장은 대함미사일로 격추한 이 항공기를 함정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그는 미사일들의 목표가 되고 있는 서해함대가 걱정되었다.

  1999. 11. 23  11:55  충북함

  "잉지(鷹擊)입니다. 잉지는 레이더 추적방식입니다."

  함장인 고 재일 대령이 보고하자  함대사령관인 김 중장이 모든 함대를 북쪽으로 돌리며 한 줄로 서라고 명령했다.함대가 넓게 퍼지며 직선대형이 되었다.  함 간의 거리는 점점 벌리고 있었다. 미사일의 진행방향 정면에 충북함이 있다는 사실을 안  고 대령이 김 중장의 결연한 표정을 보며 놀랐다.근처 상공에 있던 초계기와 헬기들은 고도를 높여 미사일을 피했다.

  "함대 기관 정지, 스패로 준비. 채프 발사! 대전자전 실시! "

  김 중장의 명령에 함장은 서둘러 작전을 실시했다.  잉지 대함미사일에서 나오는 레이더 전파가 잡히자 즉시 ULQ-6 전자전용 재머가 방해전파를 발사하고 2기의 Mel사(社)제 채프로켓이 발사되었다. 1997년의 개조공사 때 새로 장비된 시 스패로가 미사일을 향해 날았다. 함대의 다른 대형함들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3기 명중, 3기 접근중. 2km 입니다."

  함장이 초조한지 망원경을 들어 서쪽 하늘을 보며 명령했다.

  "다시 채프 2기 발사! 최종 요격하라!"

  함이 울리며 채프 로켓 2기가 다시 발사되어 흩날리는 작은 알루미늄 조각이 충북함을 덮었다.  함에 있는 2기의 20밀리 벌컨 개틀링포가 연사되었다. 함대의 모든 소구경포가 미사일 요격에 나섰다. 포화를 뚫고 들어온 잉지 미사일 중 2기는 충북함을, 1기는 나진함을 노렸다.

  잉지 1기는 1km 전방에서 폭발하고 다른 1기가 접근해왔다.이 미사일은 충북함 바로 위에서 폭발했다. 섬광이 번쩍이며 함교에 파편이 쏟아져 들어왔다.

  "제독님!"

  고 대령이 쓰러진 김 중장을 부축했다. 김 중장이 눈을 떠서 보니 고 대령도 머리에 큰 상처가 나있고 상처 사이로 피가 흘러 나왔다.  또다른 폭음이 들려왔다.  고 대령이 함교 밖을 보더니 침통한 표정을 짓고 다시 김 중장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의외로 부상이 적은 김 중장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깨어진 유리창을 통해 겨울 서해바다의 찬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방금 나진함이 당했습니다, 사령관님. 어이~ 위생병! "

  함장이 위생병을 찾는 사이에 김 중장이 침몰하는 나진함을 바라보았다. 만재배수량 1,500톤에 북한해군에서 가장 큰 함정인 나진함은 미사일 한 방을 막지 못하고 침몰하고 있었다.  그 배는 미사일에 대항하는 수단이 기총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진함은 함수부터 침몰해서 지금은 함미의 100밀리 포좌만 보였다. 자존심이 상한 김 중장이 이를 갈았다.

  상공에 소음이 들리고 김 중장이 함교 밖을 보니 F-16 전투기들이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 중장은 또다른 미사일이 오지 않나 걱정했지만 이 미사일들은 F-16 전투기들이 요격했다.

  1999. 11. 23  11:58  초계기 오라이언

  서해함대의 불행을 전해들은 단 종상 소령은 혀를 찼다. 중국이 지면 효과익 항공기를 동원했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서해함대에 한국형 구축함이 한 척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왔다. 구식 기어링급의 충북함에 있는 2연장 발사기가 아닌 수직발사기였다면  중국제 미사일을 모두 요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형구축함 중에서도 신형함에 탑재된 SM-2라면 속도가 느린 잉지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디카스 4번에 기계음이 들립니다. 접근 중... 거리 200미터."

  이 영승 중위가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단 소령의 예상대로였다.그는 2km 간격으로 능동/수동 겸용 소노부이를 투하하고, 1, 3, 5번만 능동 탐신상태로 두었다. 그 사실을 모른 중국 잠수함은 탐신음파를 발하는 3번과 5번의 디카스 사이인 5번 디카스 바로 아래를 지나갔다.

  "4번으로! 어뢰 투하 준비, 패시브."

  중국 잠수함은 초계기와 헬기의 추적을 모두 피하고, 이제 마지막 소노부이라고 생각하여 속도를 약간 높인 것이 문제였다. 4번의 소노부이는 계속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단 소령이 보기에도 잠수함의 침로와 속도는 너무나 분명했다. 초계기가 동쪽으로 날았다가 서쪽으로 선회해서 잠수함의 침로와 일치시켰다.  초계기는 4번 소노부이가 신호를 보내는 곳으로 저공비행했다.

  "투하!"

  또다시 어뢰가 수면 위로 떨어지고 추적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수면위로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초계기가 그 지점 상공을 계속 선회했다.

  "확실하게 격침!"

  기장이 육안보고를 하자 단 소령이 빙긋 웃었다.  이 중위와 다른 승무원들이 모두 미소를 지었다. 아까처럼 환성을 지르지는 않았다. 이들은 이제 베테랑이기 때문이다.

  서해함대는 나진함의 생존한 승무원들을 모두 구조하고 나서  남포항을 향해 동쪽으로 침로를 잡았다. 기함인 충북함의 피해는 레이더와 통신장치 등이 소실됐을뿐,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충북함은 당분간 전투불능에 빠지게 되었다.  레이더와 통신기가 없는 함정은 현대 해전에서 거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초계기와 헬기들이 함대의 뒤를 따랐다.

  1999. 11. 23  11:20  중국 북경, 北京飯店

  중국의 국가주석 리루이환은 천안문광장 동쪽에 있는, 성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베이징판띠엔(北京飯店)에서  주중 미국 대사와 만나 기나긴 오찬을 시작하고 있었다.이 호텔은 내전 이후 계속 중국공산당의 전용 고급 접견실로 사용되어 일반인과 외국인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었다. 계속해서 나오는 음식들을 조금씩 맛보며 주석은 미국 대사에게 무기의 빠른 인도를 독촉했지만 대사는 일단 해상수송로의 안전이 보장되어 있지 못하다며 중국에 의한 동지나해의 완전장악을 먼저 요구했다.

  "그 빌어먹을 피스라는 불법단체 때문에... 그럼 미 7함대를 보내 수송함대를 보호하면 될 것 아니오? "

  주석이 베이징카오야(북경식 구운 오리 요리)의  껍질만 뜯어 먹으며 대사에게 은근히 중국의 불쾌한 감정을 전달했다.대사는 상해요리인 티에빤위(鐵板魚--생선철판구이)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임무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무기판매를 위해 한국과 전쟁을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의 의중이십니다."

  대사의 대답을 들은 주석은 미국이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지금도 미국은 중국과 한국 양쪽에 무기를 팔고 있었다. 만약 전선의 균형이 무너진다면 19세기 말의 경우처럼,  세계의 열강들이 중국을 나눠먹기 위해 떼지어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했다.

  '그렇다면 핵이 용서치 않을거야.'

  주석은 중국 각지에 배치된 핵미사일을 믿고 있었다.  공격에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영토가 침입당하는 경우 세계 어느나라든 공격할 수 있는 장사정의 대륙간탄도탄의 위력을 그는 굳게 믿었다.

  "피스함대는 강력합니다. 최신 무기로 무장했을 뿐만 아니라 핵을 탑재했을지도 모릅니다.  러시아에서는 핵무기를 해제하고 항모와 순양함을 판매했지만, 소형 전술 핵탄두의 경우 국제 무기거래 암시장에서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전에 수십개의 핵무기를 만들만한 양의 플루토늄이 러시아에서 분실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주석은 대사의 말을 듣고 무척 당혹스러워 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보통의 작은 나라들은 보유할 꿈도 못꾸는  핵까지 가지고 있다면 조선 점령을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처음에 조선 점령은 단지 시간문제일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벌집을 건드린 꼴이었다. 본토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지도 모르는 원정일 뿐이라고 인민들을 안심시켰으나, 상하이와 항조우가 20일밤에 폭격을 당하자 중국대륙 전체가 뒤흔들렸다. 해안의 여러 도시에 살고있는 주민들이 일제히 내륙쪽으로 피난가서, 대부분의 공업지대가 몰려있는 해안공단은 심각한 일손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군수산업은 내륙에 있고 노동자들은 공무원 신분이기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지만,생산되는 무기의 질이 너무 낙후되어 전선에서는 최신무기의 보급을 독촉하고 있었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3개 함대 전멸은  조선반도 점령작전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었다. 남아도는 해병대와 지상군 병력을 좁은 전선에 투입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병참선은 점령지 각지에서 출몰하는 빨치산과 갑작스런 폭설로 인해 끊긴지 오래였다.  주석은 차라리 조선반도에서 부대를 후퇴시킬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일 자신이 후퇴명령을 내리면 그의 정치적 입장은 약화되고, 언제 주석자리를 내놓아야 할 지도 몰랐다. 전시 군부 쿠데타의 가능성도 걱정스러웠다.

  미국 대사는 중국 국가주석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중국은 핵을 사용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대사는 대통령에게 보낼 암호전문의 내용을 머리속에 담아두었다.

  1999. 11. 23  11:30 (북경 시간)  베이징(北京), 중남해(中南海)

  초겨울의 베이징 거리는 매우 한적했다. 가끔 군인들을 가득 태운 군용트럭 몇 대가 거리를 오가는 것을 뺀다면 북경의 중남해는 유령의 거리처럼 보였다.평소에도 정부고관 외에는 행인들이 없었지만 전쟁이 터지고 나서 군인들에 의한 통행인의 검문검색이 강화된 지금,이 넓은 거리에서 민간인은 전혀 볼 수없었다. 이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호화주택의 2층 창문이 약간 열려 있었다.

  3년전까지 유고 내전에서 활약하던  베트남 출신의 용병인 암호명 구스타프가 자신의 총을 점검했다.  구스타프는 저격수로서는 특이하게도 미니미 경기관총을 쓰고 있었다.이 총은 미국 육군과 해병대가 M-60 분대지원 기관총의 후속 병기로 제식화한 벨기에 FN사의 제품이다.  총이 가볍고 M-16과 같은 5.56 밀리 탄약을 사용하며, 또한 발사속도가 M-60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 때문에  미군은 이 총을 M-249 SAW(분대기관총)라는 제식명으로 채용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저격수들은 M-24나  M-40 계열의 스나이퍼 라이플을 선호한다. 가볍고 명중율이 높기 때문인데 거의 대부분의 이들 저격총은 파괴력이 높은 7.62밀리 탄을 사용한다. 미국의 해병대가 제식 채용한 맥 밀런 M-87ELR같은 경우는 사정거리가 2,000미터나 되며 구경은 12.7 밀리나 되는 원거리 저격총이다.

  구스타프가 리어사이트(가늠자)에  스코프를 장착하고 200발 들이 탄약상자를 장전했다. 방에 쓰러져있는 정치경위국원의 시체에서 꺼내 창문틀에 놓은 무전기에서 작은 전자음이 흘렀다.구스타프가 무전기에 달린 응답신호용 단추를 누르고 창밖을 보았다. 예상대로 앞쪽 멀리 보이는 건물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요인이 나오니 경계를 강화하라는 경호대의 무전신호가 그에게는 암살준비의 신호가 된 것이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직속의 정치경위국에 소속된 경호원들이  중국 공산당의 최고권력기관인 정치국의 구성원들을 호위하며 이들을 승용차로 안내하는 모습이 보였다. 구스타프가 조준경 안에 포착된 정치국원들의 얼굴을 보더니 실망을 하며 총구를 내렸다. 그들은 일반 정치국원 12명 중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구스타프의 목표는 최소한 정치국 상무위원이었으며, 그는 7명의 상무위원들 용모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그 정치국원들은 먼저 승용차를 타고 현관을 빠져나갔다. 경호원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그의 망원렌즈에 잡혔다.

  정치경위국은 기존의 경위국이 요인경호업무에서 한계를 드러내자 새로이 설치한 경호부서이다. 지금 현관에는 요인들을 기다리며 9명의 경호원이 대기 중이다. 구스타프가 있는 방향을 감시하는 경호원은 2명이었으나 원거리 감시는 한명 뿐이었다. 그는 구스타프가 있는 창문이 열려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곳은 정치경위국에서 미리 예상 저격포인트로 설정하여 2명의 경위국원들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구스타프의 손에 죽었지만 경호원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잠시 후, 경호원들에 에워 쌓인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건물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구스타프가 조금 열린 창문 안쪽의 그림자 속에서 스코프로 보니 상무위원 세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함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기관총을 창문틀에 거치하고 다시 스코프로 조준을 했다.

  당 주석은 없었지만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회의장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상무위원회  위원장의 얼굴이 나타났다.옆에는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무원 총리의 얼굴과, 옆모습으로만 보이는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얼굴도 있었다.  군사위 부주석은 군사위 위원과 정치국원을 겸임하지 못하는 지금까지의 관례와는 달리 실세답게 정치국 상무위원을 겸한 거물이었다.  주름살이 가득한 그의 얼굴은 무슨 근심을 하는지 사진보다 훨씬 늙어보였다. 어쨋든 그들은 당 권력서열 5위 안에 드는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이 세 명은 중국의 당, 정, 군의 핵심인 것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국회의장, 국무총리, 그리고 군부의 실력자이지만,권력을 분점하는 중국 공산당의 특성상 이들의 권력은 다른 나라의 그것보다 강했다.

  구스타프는 공산당 총서기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겸, 국가주석인 리 루이환이 없는 것이 안타까왔다.  20분 전에 협력자로 부터 받은 정보에 따르면, 주석은 황급히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는 것이다.그는 일단 이 세 사람을 제거하고 당 주석 등은 다음에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거리는 600미터, 웬만한 저격수라면 충분히 맞힐 수 있는 거리였지만, 목표는 세 개였다. 세 개의 목표를 한 번에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구스타프가 총구 아래의 발사속도 조절레버를 고속으로 조정했다. 이제 이 기관총은 분당 1,100발의 속도로 발사될 것이다.구스타프가 왼쪽의 목표부터 연사를 했다.  6조 우선의 총구에서 나온 강력한 탄알들이 공중을 날았다.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실로 쓰는  고풍의 전통 중국식 기와집 현관 앞에서 세 사람의 노인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정치경위국 소속의 호위병들이 총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상무위원들의 몸을 가렸으나, 이미 늦어 상무위원들은 머리에 총탄을 맞고 땅에 쓰러져 있었다. 군사위 부주석은 머리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고, 국무원 총리는 머리의 반 정도가 보이지 않았다.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머리에서 피와 뇌수를 흘리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정치국 상무위원들 뒤에 있던 한 경호원은 배에서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경호원들 중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구스타프가 있는 건물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무전기에 대고 뭐라고 외쳐댔다.  구스타프는 그 자를 향해 단 한 발을 발사했다.  지휘관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는 모습이 조준경 안에 잡혔다. 즉시 다른 호위병들의 자세가 낮아졌다.

  구스타프가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는 순간, 1층 계단쪽에서 폭발음이 울려왔다. 구스타프가 장치해 둔 부비트랩이 폭발한 것이다. 경호원들의 움직임이 의외로 빠르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과 반대쪽으로 서둘러 걸었다.총신과 45도 방향으로 기울어진 미니미 기관총의 운반손잡이 때문에 기관총의 무게중심이 이상했으나 발에 걸리지 않아 좋았다. 맨 구석 방의 문을 열고 미리 열려진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밖은 옆집의 지붕 위였다. 그는 지붕 몇 개를 타고 넘었다.  이 지붕을 감시하던 자들은 그가 저격을 시작하는 순간에 파트너에게 제거되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마 6구의 시체가 부근 건물 옥상 위에 뒹굴고 있을 것이다. 지붕을 기어가면서 코트 주머니에 있는 원격조종장치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가 숨어서 저격하던 건물이 굉음과 함께 무너졌다.

  담을 넘어 흰색 건물 뒤로 숨어들어갔다. 이 건물의 2층 창문들이 열리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매캐하게 타는 냄새가 가시지 않은 쓰레기장에서 총을 분해했다.  운반손잡이를 잡고 레버를 누르며 앞으로 당기자 간단히 총열이 분리되었다.  양각대를 분리한 뒤, 코트를 벗어 기관총을 덮고 둘둘 말았다.  그리고 쓰레기장에 미리 준비된 검은색 비닐봉지에 넣었다. 이 비닐봉지는 병원청소부로 변장한 다른 협력자가 처리해 줄 것이다.

  코트를 벗은 그는 안에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유유히 병원 뒷문을 통해 2층 자신의 병실로 향했다.  환자와 간호사들은 창밖의 상황을 보느라 정신없어서 그가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병원 밖의 대로에서 앰뷸런스와 군부대 차량들의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침대에 누운 그는 잠시 잡지를 펼쳐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는 70년대에 베트남이 패망하자 미국으로 불법이민한 아버지와, 역시 불법 이민인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스 앤젤레스의 뒷골목 부랑자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화려한 미국땅의 어디든 자신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는 유창한 중국어를 바탕으로 15세 때부터 차이나 마피아의 행동대원으로 활약했다.

  17세에 저격수 훈련을 받은 그는 차차 경력을 쌓아 잠입과 저격에 있어서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했다.  1994년 여름에 차이나 마피아와 야쿠자USA와의 한판이 벌어지자 그는 단독으로 야쿠자들의 지부 세 개를 박살내 버렸다. 둘은 순수 저격총만으로 천천히 해치웠으나, 마지막 하나의 지부는 미니미 경기관총을 들고 혼자서 쳐들어갔다.  시카고의 야쿠자 지부장은 부하들을 모두 잃고 혼자가 되자 그를 향해 일본도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는 그 일본인에게 남은 탄알 80발 모두를 쏟아 부었다.

  차이나 마피아의 영웅이 된 그는 중간간부로 선발되는 기회를 맞았으나, 그의 가계를 조사한 차이나 마피아의 두목급들은 그가 순수 중국인이 아닌 것을 발견하고 그를 처단하려고 했다. 또 한 번의 전쟁이 시작되고,  그는 자신의 가족이었던 차이나 마피아 30여명을 사살한 후에야 미국을 탈출할 수 있었다. 멕시코 국경을 돌파할 때에는 텍사스 레인저 2명을 살해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을 추적하는 미국 수사요원과  차이나 마피아의 암살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멕시코 농민반란군에 가담했다.  그곳에서 농민들의 운동을 지도하던 카를을 만난 그는  카를의 추천을 받아 피스의 대원이 되었다.  그는 성형수술을 받고  피스가 관여하는 국제분쟁지역 곳곳에서 활동했으나 단 한 번의 실패도 하지 않았다.  23세인 그는 두 달 전에 중국에 입국해서 카를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전날 실행을 명령받았다.  히트 대상은 역시 그가 미리 얼굴을 익혀둔 당 중앙 상무위원들이었고,  그는 오늘 일곱 명 중에서 세 명을 해치운 것이다. 나머지 네 명은 자신이 하든지, 아니면 다른 팀이 하게될 것이다. 어쨋든 이제 중국 공산당의 고위간부들은  대낮에도 몸을 노출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이 병실에는 결핵환자가 있습니다. 그래도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 신원은 확실하오?"

  "예, 물론입니다. 10년간 저희 병원에 오셨죠. 시내에 있는 지엔꾸어 판띠엔(建國飯店-호텔)의 지배인입니다.  말기라서 열흘 전에 입원하셨고, 지금은 움직이기도 힘든 위험한 상태입니다."

  구스타프는 병실밖에서 들려오는, 병원장과 처음 듣는 목소리의 젊은 남자가 대화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잠시 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더니 몇 개의 군화발자국 소리가 구두발자국 소리와  함께 멀어져갔다. 구스타프는 한번 킥킥대며 웃고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이마에는 나이답지 않게 깊은 주름살이 패여있었다.

  1999. 11. 23  01:00(워싱턴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전혀 뜻밖이군요. 한국이 이렇게 오랫동안 버티다니. 지금은 오히려 중국군을 몰아내고 있지 않소?"

  NSA(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미국 대통령이 장관들을 힐난했다.  대통령인 제임스는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의외로 한국전선에서 중국이 고전하자 내심 고소하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황예측을 잘못한 장관들과 군 장성들을 질책할 필요는 있었다. 특히 정보부서의 군인과 관리들이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국의 전력이라면 일주일 안으로 한반도 남단인 부산까지 점령할 수 있다고 큰소리 쳤었다.

  "한국이 이렇게 계속 버틴다면 중국이 핵을 쓸지도 모릅니다."

  국무부의 제프리 차관보가 두려운 듯이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핵이라... 2차대전 후 최초로 실전사용될 수 있는 기회로군. 파머슨 국장,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중국이 과연 한국에 핵을 쓸거라고 보는거요? "

  대통령이 CIA 국장을 지명하자 국장이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이미 정보부의 결론은 나 있을 것이므로 그는 결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떻게 첫마디를 멋있게 꺼낼까 하는 것으로 대통령에게 비쳐졌다.

  '저 빌어먹을 놈부터 잘라야 되겠군.'

  대통령은 국장을 정치적 야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해 중책에 앉혔는데 멍청한 사람이 욕심이 많다고, 파머슨은 본업인 정보분야보다는 의회관계자들과의 친선유지에  시간과 공을 더 많이 들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물론 이 보고는 CIA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정보기관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아직은 중국이 핵을 쓸 단계는 아닙니다.  동양의 작은 나라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러시아나 인도와의 분쟁을 생각한다면,  중국은 다음 전쟁을 생각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제 핵공격은 어느 나라에게나 악몽이니까요."

  뜸을 들이던 국장이 계속 보고했다.  대통령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의 목을 자를 커다란 망나니칼을 갈고 있었다.그것도 모르고 있는 국장이 계속 떠들었다.

  "중국이 계속 지하핵실험을 해와서 그들의 핵제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 운반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국은 공격전에 핵무기를 쓰려면 아직 10년은 더 있어야 할 것입니다."

  "좋소,"

  미 대통령은 비서실로부터 받은 보고와 별다를게 없는  회의참석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늦은 밤까지 이따위 회의를 계속 진행해야 되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 단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오?"

  "당연히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나 주변에서 위협을 느끼는 국가들에게 최대한 미제 무기를 팔아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의 무기수입이 급증하고 있습니다.무기수출액은 미 합중국 역사상 올해가 최고를 기록할 것입니다."

  국무장관의 보고를 들으며 대통령은 분을 삭이고 있었다.자신은 아마도 무기를 가장 많이 팔아먹은 죽음의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에 남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래도 무기판매를 중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의 의회는 대통령이 하는 일을 사사건건 트집잡고 있었다.  하원의원들은 자기네 주에서 생산되는 무기의 판매를 위해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했으며, 일부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날아가 열심히 세일즈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주로 러시아제 군함으로 구성된 피스함대에 의해 중국의 근해에서 제주도로 나포된 미국의 수송함대 중에서  2척의 신형 이지스함이 침몰하고 다른 배들이 대파되는 수모를 당했다. 미국의 조야는 잠시 한국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지만,  한국정부가 충분한 피해보상을 하면서 수송선의 무기는 중국에서 제시한 금액의 두배로 사들였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미국에 추가적인 무기판매를 애원했다.

  미국은 중국의 해상이 거의 봉쇄되자 미얀마와 파키스탄을 통해 항공기와 지상전용 무기를 중국에 판매하고 있었다.  중국은 신형 수상함의 판매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피스의 함대가 버티고 있는 지금, 이 해상에 파견된 미 제 7함대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중국에 함정을 판매하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되자 무기판매량이 줄어들고, 이는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압력으로 결과가 나타났다.

  결국 미국은 한국과 중국 양쪽에 모두 무기를 판매하기로 하고 양 교전국 모두로부터 중립을 보장받았다. 미국 정부는 두 나라의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무기판매를 통하여 분쟁을 부추긴다며 미국과 세계의 양심적 지식인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미국의 유권자 대부분은 중산층과 노동자인 것이다.  중국의 확실한 한국 점령이 보장되지 않는 지금, 미 정부는 실리를 추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미국이 보는 일본의 행동은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산업을 완전히 군수산업체제로 전환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무기를 주문했다.일본에 파견된 스파이들에 의하면 완전한 전시체제에 접어들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미국으로서는 신경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의 해외진출 욕구는 항상 미국의 걱정거리가 되어 왔지만,  어쨋든 지금은 무기판매량이 많아져서 좋았다.

  "한때 유일한 초강국이었던 미합중국이 양쪽에 무기나 팔아먹고 있다니, 이게 무슨 창피한 일이오?"

  대통령의 한마디에  참석자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으나 무기수출로 인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은, 차기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대통령 자신이라는 생각이 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1999. 11. 23  19:30  중국 홍콩, 홍콩섬 서쪽 해저

  한국 해군 209급 잠수함의 7번함인 성진함이 홍콩섬을 오른쪽에 두고 선회하고 있었다. 성진함은 고전소설 구운몽의 주인공인 성진을 이름으로 딴 잠수함이었다.  이 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이지만 폐쇄싸이클 디젤 방식의 엔진을 장비하여  슈노켈 없이 2주 정도 계속 수중항주할 수 있는 최신식의 함이었다. 액화산소를 적재할 공간때문에 다른 209급 잠수함들보다 배수량이 약간 컸다.

  이 잠수함은 개전 나흘째부터  일본 선적의 상선 아래에 숨어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중국 해군의 해안경비정과 초계기들은 일본과의 갈등을 우려해서인지 이 상선에 접근하지 않아  성진함이 들킬 염려는 없었다. 함장인 이 승렬 소령은 상선을 따라가면서도, 중국과의 전쟁수역으로 선포한 이 해역을 거리낌없이 드나드는 일본인들이 얄미워서 속으로 몇번이나 어뢰발사를 외쳤는지 모른다.

  이 소령이 수면 위로 전파수신기를 올릴 것을 지시했다. 세 방향으로부터 가지가지의 수많은 전파가 잡혔으나, 지상기지의 해상수색 레이더와 항공기에서 발하는 해상수색레이더의 주파수는 없었다.다만 신제(新界)에 있는 홍콩의 최고봉 다모산(957m)에서 선박 운항지시용 전파만이 잠수함의 신경을 건드렸다.  잠수함을 위협할 어떤 전자적 징후는 없어 보였다.그러나 경비정이나 초계기가 전파관제를 한 상태로 해상에서 잠수함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소령이 신중하게 잠망경을 올리며 주변 해역을 살폈다. 어느새 수면 위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상공의 위험이 없는지 확인한 이 소령이 홍콩섬의 중심부인 빅토리아항을 자세히 살펴봤다. 홍콩의 야경은 정말 멋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전쟁중인데도 센트럴(中環) 지구의 밤은 화려했다. 홍콩사람들은 홍콩을 중립지대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망경을 왼쪽으로 돌리니 주룽(九龍)반도 의 밤이 잠망경 가득 비쳐졌다.

  함장이 잠망경을 계속 반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북쪽에 칭이 섬이 보이고, 서쪽에는 홍콩에서 가장 큰 섬인 란타우 섬이 보였다. 남쪽에 수평선이 이어지더니 남마섬에 의해 수평선이 끝났다.  계속 잠망경을 돌려 남동쪽을 보니  애버딘만에 떠있는 수상(水上) 레스토랑들의 화려한 불빛이 보였다.  레스토랑 사이사이에는 수생생활자들의 생활공간인 수 많은 삼판(거룻배)과 정크들이 물 위에 떠 있었다.

  1997년의 홍콩반환 이전부터  홍콩의 공업생산은 주로 홍콩섬 건너편 지역인 주룽반도와 광둥성에 접한 신제(新界)에서 이뤄졌으며 홍콩섬은 국제금융의 중심지가 되어있었다. 산업이 노동력을 지배하고 자본은 산업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이 조그마한 홍콩섬은 홍콩 전체 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제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의 순진한 정치가들은 홍콩이  중국 전체를 자본주의화하기 바랬으나,  돈에 관한한 유태인이 무색할 정도로 집요한 중국인들을 그들은 너무 몰랐었다. 중국은 홍콩 이양 전부터 1국 2체제를 주장해왔으나 정치와 경제는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어서 서로가 깊은 영향을 미친다.  1997년 이양 후의 홍콩의 자본은 급속히 사회주의화하면서도 중국인의 돈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합해져 활발한 활동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홍콩을 떠받치는 3종류의 자본인 영국과 유태인의 자본도 고스란히 홍콩에 남아 홍콩경제의 활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한국과의 전쟁 첫날, 중국 군부에 의해 모든 국제통신이 차단되었다. 정보와 통신이 중요한 신경망이 되는 금융가에서 국제통신의 마비는 최악의 결과를 예상되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정보수집력이 대단한 금융가에서는 이미 위성 전파송수신기를  준비했기 때문에 완전마비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홍콩의 금융가는 신속한 국제통화를 할 수 없어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

  "3번부터 8번까지 지상공격용 하픈 장전."

  "3번부터 8번 어뢰발사관, 지상공격용 하픈 장전."

  함장의 명령을 부함장이 복창하자 어뢰실에서 준비를 했다. 어뢰실에서는 바닥에 일렬로 있는 네 개의 발사관과 천장을 따라 반원형으로 배치되어있는 네 개의 발사관 중에서 6개의 어뢰를 빼고 하픈을 장착했다. 어뢰실의 수병이 마지막 발사관의 하얀 뚜껑을 닫았다.

  하픈은 기본적으로 대함미사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목표와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인천에서 출항하기 전에 이미 하픈에 약간의 조작을 해서 문제는 없었다.  토마호크같은 잠수함용 지상공격미사일을 보유한 나라들은 이 무기를 다른 나라에 절대 팔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경제파탄의 상황에 이른 러시아도 비슷한 무기를 한국군에게 인도하기를 거부했다.  덕택에 국립과학연구소만 죽어났다. 연구원들이 사흘 밤낮을 고생하여 하픈의 시커를 고쳤다.  근거리의 지상목표를 향해 최초로 하픈이 발사되는 순간이었다.

  "발사."

  함장의 한마디에 하픈 미사일이 533밀리 발사관을 통해 수중발사되었다.  미사일은 흰 연기를 뿜으며 급상승하다가 제트기관이 작동하여 수면비행을 시작했다. 제 2, 제 3의 하픈이 계속 수면을 뚫고 나왔다. 미사일은 센트럴 지구의 거대한 빌딩들을 노리고 날아갔다.

  그곳에는 아직 퇴근하지 않은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야근을 하고 있었다.  최초의 하픈이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입주해 있는 33층 건물을 뚫고 들어갔다. 15층의 창문을 뚫고 들어간 미사일은 지연신관에 의해 안쪽 벽 하나를 더 관통하여 건물 중심에서 폭발했다. 불과 10 km를 비행한 하픈은 아직 제트연료가 많이 남아 있어서  폭발의 중심으로부터 건물 사방에 불길을 뿜어냈다. 빌딩은 3개층에 걸쳐 화재에 휩싸였다. 16층의 빌딩관리실 컴퓨터가 자동으로 소화작업을 지시했으나  이미 배선이 폭발에 의해 두절되었다.  잠시 후 이 관리실에도 불길이 치솟았다. 이 건물 외에도 5개의 대형건물에 화재가 시작되었다.시내 중심가를 소방차들이 내달았다.

  "홍콩의 야경은 역시 멋있군."

  함장이 잠망경으로 보며 감탄했다. 전투지휘소에 있는 사관들도 비디오로 그 광경을 보며 얼이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어느 젊은 하사는 '뿅간다, 홍콩간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목표 0-8-5, 어뢰발사 준비."

  부함장이 함장의 명령을 어뢰발사실에 명하고, 잠망경과 연결되어 있는 비디오를 통해 목표물을 확인하고 놀란 얼굴을 했다. 잠망경에 비친 바다 위에는 성진함이 홍콩으로 숨어들어올 때 이용했던 상선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함장님... 이건 민간선입니다... 일본의 참전을 부를지도... "

  이 소령이 힐끗 부함장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어려 있었다. 함장이 부함장을 한심하다는듯 쳐다보았다.

  "저 빌딩에 있는 사람들도 민간인이야. 이곳은 한국정부에 의해 교전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저 배는 교전당사국 중 일방을 지원했다. 이미 그들은 중립이 아냐.일본이 쳐들어오든 말든, 우리는 일단 홍콩을 봉쇄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임무를 수행하면 되는거야."

  "1번 어뢰 발사!"

  수중을 어뢰가 달렸다.  어뢰는 홍콩섬과 주룽반도 사이의 해협을 순항하는 상선을 노리고 일직선으로 접근해갔다. 어뢰는 빅토리아항에 접안하기 위해 방향을 틀던 상선의 중앙에 명중했다.  밤바다에 물기둥이 솟구치고 상선이 천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선원들이 밤바다로 뛰어들었다.

  "됐어, 당분간 홍콩은 완전 봉쇄다. 잠수! 좌현 180도."

  함장이 잠망경을 내리고 서둘렀다. 승무원들이 깜짝 놀랐다.  성진함의 임무는  아직도 홍콩에 있는 외국자본들을 중국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 홍콩을 공격하는 것이었다.그러나 함장은 홍콩뿐만 아니라 마카오나 광저우도 노리는 것같았다.그러면 이들이 생존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승무원들의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대량으로 분비되기 시작했다.  이제 제한적인 홍콩폭격이 아니라 본격적인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상선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습니다."

  소나 담당 하사가 보고했다. 그를 향해 함장의 눈이 반짝였다.

  "침몰한 해역의 수심은?"

  "35미터, 흘수에 닿지는 않겠지만  대형선박들은 충분히 위협을 느낄 것입니다."

  함장인 이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통행을 방해할 정도가 아니라면 가급적 홍콩 사람들이 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상선이 천천히 침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9. 11. 24  20:55  평안북도 선천, 대목산 요새

  "남시쪽에서 2개 집단군 병력이 남진중입니다. 철산의 연대가 막고는 있지만 오래 못버틸 것같다고 합니다. 정주에서는 3개 사단이 북진중입니다. 구성에서는 산악부대 2개 여단병력이 산을 넘어 이쪽으로 향했다는 보고입니다. 후속부대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홍 종규 대좌가 설명하자 차 영진 중령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남시가 어디인지 지도를 통해 확인해보니 이곳은 신의주와 선천의 딱 중간부분이었다. 그는 중국이 너무 늦게 선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참모들의 얼굴을 보니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들로서는 최초의 대규모 전투이니 그럴만 했다. 유격부대를 정규전에 쓰는 것은 비경제적이긴 하지만,  선천을 중국군에게 내줄경우 평안북도 대부분이 중국군 차지가 되어 앞으로의 전쟁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부군이래 20만이라 뻥을 깠더니 뎡말 믿나 보구만."

  저격여단의 최 대좌가 농을 꺼냈으나 아무도 웃어주지 않았다.

  "적 부대의 위치를 표시해 보시오.  아무래도 남쪽의 적은 포위된 것 같습니다."

  차 중령이 참모부 소속의 여군들을 독촉하자  소좌의 계급을 단 중년의 여성장교가 젊은 소위들을 다구쳤다. 12,500분의 1로 축소되어 펼쳐진 지도에 중국군의 부대위치와 방향이 표시되었다.통신실의 연락을 받은 소위 한명이 기갑부대의 위치를 새로 북쪽에 기입했다.

  "전차여단? 심각하군요..."

  차 중령이 기억하는 중국군의 보병사단 편제에서 전차연대는 겨우 32대의 전차와 몇 대의 장갑차로 이뤄진 지원부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독립 장갑여단이라면 전차의 수가 100여대에 이른다. 보병전투차는 몇 대나 있을지 몰랐다.

  "요새에 전차는 몇 대가 있습네까?"

  황보 일 야간전대대장이 그에게 물어보았다.  야간전대대로서는 전차가 가장 무서운 상대였다.

  "K-1 전차 4대와 T-62가 15대 있습니다. 그보다는 적에게 헬기부대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 여러분들 오셔서 보십시요."

  차 중령이 전쟁 첫날 겪은  중국 헬기부대의 공포를 떨쳐버리며 지도 남쪽 부분을 지휘봉으로 짚어나갔다.

  "오늘 낮의 텔리비젼 뉴스에서는 아군이 정주를 공격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태천과 운산, 희천까지 이미 점령했으니 구성의 적은 동쪽과 남쪽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텔리비젼 뉴스가 정확하다면 말입니다."

  차 중령은 전쟁기간 중 언론이 얼마나 정확할까 걱정되었다. 그는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군사비밀 보호조항이 위력을 떨치는 전쟁상황에서,  언론은 국민에게 사실을 전하기 보다는 거짓을 전하거나 단순한 정부의 선전기관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남쪽의 정주에 있는 인민해방군이오. 우리는 그들의 실제 병력을 모르고 있소. 최악의 경우에는 우린 포위당한 채로..."

  "정주를 중심으로 피해를 입은 11개 사단이 몰려 있습네다."

  참모들이 갑작스런 여자의 목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통신부의 한쪽 구석에서 TV를 모니터링하고 있던 김 수경 소위가 참모들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차분히 말을 이었다.  김 소위는 TV뉴스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장갑사단은 없고, 모두 보병사단 뿐이라고 합네다. 물론 갑종(甲種) 사단입네다. 보도를 보시디요."

  차 중령이 통신중대의 텔리비젼 수상기 앞으로 뛰어가자 참모들이 그를 따라 우르르 몰려갔다. 전시법에 의해 방송을 통한 국민동원을 책임지고 있는 KBS의 9시 뉴스였다.

  북한의 TV전파 송출 방식은 러시아나 서유럽과 같은 PAL방식이다. 미국이나 일본, 기타 대다수 국가들의 NTSC 방식과는 호환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1998년 초부터 남북합의에 의해 남북한의 모든 방송국이 두가지 방식 모두에 의한 동시 전파송출을 하고 있어서, 북한의 수상기를 통해서도 KBS를 볼 수 있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보병사단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갑종사단은 현 대화된 중장비로 편성되어 화력과 기동력이 우수하며, 분쟁위협이 있는 일선에 배치된 1급부대이다. 을종(乙種)사단은 경장비로 편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예비병력이 여기에 포함된다. 병종(丙種)사단은 소형경장비로 편성되어 있으며,  주로 유격전이나 산악전을 수행하는 부대이다. 물론 세 종류의 사단 모두 현역부대이다.

  화면에는 중국의 전파방해 때문에 약간 흐릿했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평안남북도의 지도가 표시되었고,  놀랍게도 중국군의 부대배치 현황이 나와 있었다.  차 중령이 경악했다. 아군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적에 대한 정보도 당연히 군사기밀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평시에는 가상적국과의 관계악화를 막기 위해서이며,  전시에는 아군의 정보수집능력을 은폐하여 작전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함이다.차 중령은 이런 상황은 교육받지 못했다. 이 뉴스를 믿어야 할지, 아니면 작전지휘부의 역선전으이나 국민의 사기부양 정도로 치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 통일한국군은 안주를 점령하고 청천강을 건너 22일 밤 박천과 영변을 수복했습니다. 계속 북진중이나 평안북도 산간지역에 며칠째 내린 폭설로 진격이 늦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통일참모본부에서 제공한 자료에는 평안북도 정주지방에 있는 중국군은 약 10만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남쪽에서는 아군의 15개 사단이 북진 중이고 선천에는 호국의 영웅인 이 종식 차수의 20만 대군이 남진 중입니다...]

  화면에는 선천에서 출발한 푸른색 화살표가 국도를 따라 남쪽 정주를 향해 꾸불꾸불 움직이고 있었다.  참모들 사이에 잠시 술렁거림이 있었다.

  "무시기 소리야? 이곳 평북해방구 대장님이래 영명하신 차 영진 장군님이신데... 길고 우린 방어전 수행에만 전념하는데 무신 기따위... "

  홍 대좌가 흥분하며 화를 냈다.  차 중령이 그를 제지하며 계속 화면을 주시했다.  화면에는 리번형 부교를 이용하여 청천강을 도강하는 각종 군용차량의 행렬이 비쳐졌다. 더 이상 자료는 이어지지 않았다.  TV에서는 행진곡풍의 군가가 흘러나왔다. 차 중령이 신음성을 울렸다.

  "녹화는 하셨소?"

  "물론이디요."

  앳띤 얼굴의 김 소위가 녹화테입을 TV 옆의 비디오 겸용 수상기에 넣고 돌렸다. 시간을 21:05에 맞추니 그 뉴스부분이 재생되었다.

  "저 화살표가 왜 직선이 아닌지 모르겠군요. 저 화면을 5만분의 1 지도와 합성할 수 있습니까?"

  "기다리시라우요, 대장님."

  김 소위가 어떤 참모로부터 지도를 받아들고  이를 스캐너에 넣었다. 그녀가 잠시 자판을 두들기더니 화면에 평안북도의 지도가 뜨고,  뉴스에 나왔던 화면과 지도의 비율을 조절하여 두 가지를 일치시켰다.

  "도로와 정확히 일치하는군요. 통일참모본부가 우리의 진격방향을 지시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차 중령이 지적하며 참모들을 돌아보니 그들은 감격하고 있는지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대장 동지! 상부에서는 우리에게 진격명령을 하고 있습네다. 우리는 고립되지 않았습네다."

  홍 대좌는 무척 흥분하고 있었으나, 차 중령은 이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지휘관이었다.  통일참모본부가 TV 뉴스를 통한 우회적인 공격 명령을 내릴지라도 중국의 정보기관도 당연히 한국의 모든 뉴스를 모니터하고 있을 것이므로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희생양으로 하고 공격하려는 것입니다."

  저격여단의 최 대좌는 홍 대좌와 반대로 자신들을 희생시키고 승리를 얻으려는 지휘부에 적개심을 나타냈다.  다른 참모들이 그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는지 묵묵부답이었다.

  "무시기 소리오? 최 대좌. 조선의 모든 인민은 새로운 전황에 들어선 조국수호전쟁의 요구에 맞게 그 전투적 기능과 역할을 벌임으로써,  온 조선을 해방하는 역사적 위업에 이바지 해야하오. 동무는 현역군관이면서 자신의 투쟁임무를 잊었단 말이오?"

  "길타고 해도 병력이 얼마 안되는  우리를 총알받이로 만들려는 것이 앙이갔소?"

  홍 대좌의 원칙론에 최 대좌는 인간적인 항변을 하고 있었다. 인민군의 최고 엘리트를 자부하는 저격여단을 지휘하는 그는,  소모전에 자기 병력을 투입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홍 대좌가 다시 그 말을 반박했다.

  "인민이 조국의 위기에서 자신의 임무를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당에 대한 충성심,철저한 주체성, 높은 공산주의의 당성과 인민성, 심오한 과학이론적으로 무장하여 원쑤들을.."

  "김 소위는 언론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언론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차 중령은 인민군 군관들의 공산주의 이론 설명처럼  따분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홍 대좌의 말을 잘랐다.

  "방송과 신문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하고 혁명적 민주주의를 창설하는데 공헌하며, 전쟁기간 중에는 전당(全黨)과 전체 인민과 인민군들을 사상의지로 무장시키고, 영웅적 투쟁에로 다그쳐 승리에 적극 기여하는 것입네다."

  차 중령은 역시 공산주의 언론이란 평시에나 전시에나 마찬가지로 철저한 선전선동물이며,  정치적이고도 이념적인 무기이며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얼굴의 김 소위에게서 나온 말이 너무 섬득하게 들렸다.

  "좋소. 그럼... 상부에서는 이 뉴스에... 아니, 이 보도에 나온 지도 그대로 공격하길 명한 것으로 보이오? 혹시 어떤 복선이 깔려있지 않을까요?"

  김 소위는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잠시 화면을 보더니 뭔가 찾는듯 열심히 자판을 두둘겼다.  화면을 빨리 돌리다가 한 부분에서는 1 프레임 씩 천천히 돌렸다.김 소위가 갑자기 화면을 정지시키고 다시 앞으로 돌리더니 화면의 화살표를 최대한 확대했다. 김 소위가 다시 색상을 여러가지로 바꾸었다. 흐릿한 농도 차이가 나는 화살표 안쪽의 색깔이 여러 다른 색으로 확실히 세분되자,  화살표에 일련의 숫자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차 중령은 이 숫자들이 가리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김 소위가 소리치는 것을 보고 뭔가 의미있는 숫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749112813244...  7491-1281-3244!  7491은 우리 연대의 호출번호입네다!  길고 1281은 전시 지정 주파수의 하나로써 128.1 메가헬씁네다, 동지! 그리고 옆에 있는 것은 암호책 번호가 틀림없습네다."

  "천 소좌! "

  홍 대좌가 황급히 통신군관을 불렀다. 통신을 담당하는 이 군관은 즉시 암호책을 준비하며 그 주파수에 통신기의 다이얼을 맞췄다.  그러나 아무 것도 수신할 수 없고 지독한 잠음만 흘러나왔다. 참모들이 긴장하며 통신군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심있게 지켜보다가 그만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송신을 명령한 것이 아닐까요? 요즘도 텔리비전 전파는 계속 수신되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 주파수로 송신을 하면..."

  차 중령이 불안한 감정을 감추며 통신군관에게 물어보았다. 통신군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시지정 주파수는 적에게 고립된 부대의 명령수신을 위한 것입네다. 길고 광대역전파방해로 인해 상부와의 통신이 불가능하디요.  텔레비죤 전파래 첨부터 막디 않은 건 아냐요. 하디만 이 전파래 위성서 오고 있습네다. 같은 텔레비죤이라도 공화국의 조선중앙방송이나  만수대 방송이 수신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네다. 이 주파수대는 계속 전파 방해레 받고 있다는 말씀입네다. 안타깝게도 요새엔 위성송신장비가 없습네다."

  차 중령은 중국의 침략 첫날 전투에서 위성통신 장비를 갖춘 대대 통신차가 중국헬기의 공습에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통신차는 외형이 대공미사일 지휘차와 유사하기 때문에 제 1의 공격목표가 되어 부서졌다.  차 중령은 통참과 통화할 때 그가 화가 나서 송신기를 부술까봐 안절부절하던 젊은 통신병이 생각났다. 다시 한번 통신의 벽에 부딪힌 차 중령은 대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통신병은 엄청난 전파방해 속에서도 훌륭히 통일참모본부와 연락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전파방해 환경이 바뀌어서  다시 그 주파수로 아군과 교신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고 혹시 통신이 적에게 누설될 가능성은?  그리고 혹시 전파를 발신하면 우리의 위치가 노출되지 않겠소? "

  참모들은 아직도 아군과의 교신 가능성에 들떴으나,  지휘관으로서의 차 중령은 이 문제를 통신군관에게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들어 방해전파래 많이 약해졌디요. 전선이 우리 남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네다. 길티요, 적은 지상방해전파만 수행하고 있디요.기 차이래 결정적입네다. 다시 해보갔습네다. 김 전사 동무!"

  전파수신기로 남진하는 중국군의 위치를 탐색중이던  통신병 김 전사가 뛰어왔다.

  "네, 중대장 동지!"

  "검산의 중계탑이래 가동 대기상태디?"

  검산은 요새가 있는 대목산에서 서쪽 6km에 위치해 있으며 서해 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이다.인민군은 대목산보다 해안방어에 훨씬 유리한 검산에 해안방어진지를 두었으나, 집중적인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주진지는 대목산에 두었다. 검산의 주봉인 산성봉은 441고지이며 북쪽에 치우쳐 있고, 남서쪽에 검산의 최고봉인 459고지 정상에 송신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송신탑은 대목산까지 지하매설관을 통해 원격조정할 수 있었다.

  "물론입네다, 동지."

  "현재의 전파방해상황에서 주파수 128.1 메가헤르츠의 교신가능 거리는?"

  "잡음이 많갔디만 70 키로메타는 충분합네다!"

  "음....."

  통신군관이 신음성을 흘렸다.  그가 알고 있는 선천과 박천의 거리는 딱 75 킬로미터였던 것이다.

  "가능은 하겠디만... 잡음이래 섞여 정확한 전달은 되디 못합네다.시도 해 보갔습네다만..."

  차 중령이 고민했다.  이동송신기를 쓰면 전력이 약해 전파의 도달거리는 훨씬 짧아지므로 검산의 송신기를 쓸 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상급부대와의 통신도 못하고 중국 전자부대의 감시망에 걸리면 검산의 송신기는 헛되이 날려버리는 수가 있었다.  그리고 대목산까지 중국군의 의심을 받아 대규모 공격의 목표가 될 수 있었다. 차 중령은 대목산 요새는 꼭 지키고 싶었고, 동시에 상부와 교신을 하고 싶었다. 그는 요새의 안전을 희생하는 대신, 급박한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상부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송신하시오."

  "알갔습네다, 동지!"

  통신반은 상급부대와의 교신을 위해 급박하게 움직였다. 검산의 통신병이 수신기를 지상에 올리고 통신용 고무풍선을 하늘로 띄웠다.  케이블에 연결된 풍선은 북서풍을 타고  흔들리면서도 계속 하늘 높이 올라갔다. 통신군관이 시계를 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준비를 시켰다.차 중령은 천 소좌에게 대전차무기와 대공미사일의 부족을 통신에 꼭 넣어달라고 했다. 한국군이 이를 요새에 공수해주지 않더라도 이를 알리는 것이 작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통신중대장인 천 소좌가 지도를 보며 쪽지에 글을 쓰더니, 이를 다시 김 소위에게 넘겼다. 시간이 되자 그는 오른손을 들었다. 김 소위가 책상 위의 마이크 앞에 앉았다.  차 중령은 이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시작하기요."

  김 소위가 천 소좌의 명령에 따라 준비된 원고를 읽어나갔다.  128.1 메가헤르츠의 FM방송전파가 선천에서 사방으로 퍼졌다.  박천을 점령하고 제 9기갑사단과 교대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해병 1사단의 통신대대가 이 전파를 잡았다.선천 남쪽의 서해 탄도(炭島) 인근 해상에는 중국공격기를 피해 야음을 틈타 잠입해 있는 전파정찰선 월출호가 전파를 수신했고,동시에 신의주에 있는 인민해방군 제 19병단의 통신부대도 이 주파수를 수신하여 발신위치 추적을 실시했다.

  "안녕하십니까? 평양방송의 [구시반 예술시간]을 시작하겠습니다."

  김 소위가 북한방송 특유의 간드러지는 전달식 입말투로 방송을 시작했다. 입말투란 북한에서의 구어체이며 전달투는 입말투 중에서도 새로운 사건과 사실을 전달하거나 알려 줄 때에 쓰는 말투이다.이야기의 내용을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인만큼 뜻을 똑바로 전달해 주게 된다.

  "처음 보내드릴 노래는 조선예술영화 <목란꽃은 다시 피였다> 가운데서 주인공 분옥이가 역경에 처했을 때 자기를 한품에 안아 키워준 당의 품을 그리워하면서 충성을 노래한 것입니다."

  김 소위가  비교적 속도가 느리고 어조가 부드러운  설명투로 노래를 소개하며 CD를 작동시켰다.  차 중령은 그녀의 말투가 너무 간사스럽게 들려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김 소위는 북한의 표준말인 문화어를 잘 구사했지만, 평양 출신의 최 대좌에게 그녀의 말투는 약간 어색하게 들렸다.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파수신기에는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애처러우면서도 바탕에 힘이 깔린 노래가 이어졌다.  차 중령이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통신군관에게 물으려 했으나, 통신군관은 그가 말을 하지 못하게 제지했다.차 중령이 말을 하려다 김 소위의 눈과 마주치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은하수 비껴간 저기 저 멀리 정다운 별들이 반짝이는 곳 그리운 북녘하늘 우러러보면 충성의 한마음 불타옵니다."

  김 소위가 간들어지는 느낌투로  시인지 뭔지 모를 내용을 낭송하자, 차 중령은 끔찍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대중을 감동시키는 말투인 느낌투는 속도가 느리고 휴식이 많으며 음의 고저가 큰 곡선을 그리며 오르내리기도 한다. 천 소좌가 저 시의 뜻은 선천 북쪽에 대규모 적 부대가 남진 중이라는 뜻이라고 차 중령에게 알려주었다.

  "이번에는 7491 노동자 여러분들이 즐겨 부르시는 노래 한 곡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 곡은 평양의 홍 종규씨가 원산의 차 영진 동지께 띄워달라는 신청곡입니다. 곡명은 <하늘 아래 천리마처럼 달린다>입니다."

  차 중령은 천리마가 전차이며 하늘은 대공미사일이라는 것을  눈치챘으나 왜 자신의 이름이 이 여자 아나운서의 입에서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암호문인가 생각되었다.

  노래가 시작되자  통신군관이 검산에 파견된 통신반에게 송신기로 쓰이는 풍선의 절단을 명했다. 검산의 검은 하늘 위로 대형고무풍선이 라디오 전파를 발하며 남동쪽으로 흘러갔다. 이 풍선의 전파는 검산과 케이블로 연결되었을 때의 출력에는 미치지 못했으나,전선에 퍼져있는 수십 곳의 한국군과 중국군 통신부대들이 계속 수신하고 있었다.

  신의주의 중국군은 이 전파의 발신원이  항공기라고 추정하여 내용과 함께 상부에 보고했다. 내용분석은 인민해방군에 입대한 조선족 청년이 한 것이었다.

  송신이 끝나자 통신군관이 천 소좌가 차 중령과 지휘관들에게 암호문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선천 연대와 주변지역 부대의 지휘관은 대장님이라는 뜻입네다.길고 피양서껀 원산까지는 거리가 230키로메타인데 아군의 병력이 2만 3천이라는 뜻입네다.  즐겨 부른다는 것은 명령을 내리면 충실히 수행하갔단 뜻이디요."

  설명을 듣고서야 차 중령과 지휘관들이 이해가 간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김 전사가 긴장을 하더니 천 소좌에게 손짓을 했다.김 전사는 녹음을 하며 계속 필기하고 있었다.천 소좌가 통신용 헤드폰을 쓰고 내용을 듣다가 김 전사가 전해준 쪽지를 읽었다.

  "난수표(亂數表)에 의한 암호명령이 전달되었습네다!  암호책의 3244 난수표로 풀어보면,새날이 밝았으니끼니 당과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내용입네다. 즉, 자정에 정주를 공격하라는 뜻입네다! "

  차 중령은 상부의 명령을 알겠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홍 대좌에게 물었다.

  "북쪽에서 남진하는 적은 무시하고 전군을 동원해  정주를 치라는 뜻일까요? "

  "아이디요. 노농적위대는 절대로 기반을 적에게 내주지 않습네다. 선천을 방위하면서 정주를 공격하라는 뜻입네다."

  "음... 어려운 주문이군요. 알겠소. 근데 천 소좌."

  "예, 대장 동지!"

  "거리가 너무 멀다고 하지 않았소? 어떻게 이리 정확하게..."

  "전파는 서쪽 바다 상에서 왔습네다."

  차 중령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TV뉴스에서 통일한국 해군의 연승보도를 보기는 했지만, 중국 해군의 물량작전을 극복하지는 못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래도 그는 제발 제해권을 한국해군이 가지길 희망했다.

  "자,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과 작전의 실행입니다.  우리는 삼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으나 상부에서는 남진을 명령했고,  또한 선천을 내줄수도 없는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소수의 병력을 쪼개 써야할 입장입니다. 전술의 기본원칙인 집중의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이지요.  하지만 내선의 유리함으로 이 난제를 극복해야합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상당히 바빠질 것입니다. 이제 유격전은 종말이 왔군요."

  차 중령은 중국군에 의한 포위상황을 염두에 두고 지휘관들과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대목산 요새 수비와 전선에의 병참지원은 홍 대좌가 맡고, 북쪽의 중국군 대군 방어는 최 대좌가 지휘하기로 했다. 동쪽은 산악전대대를 투입시켜 최대한 지연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병력차이가 10대 1이 넘는 불리한 상황에서, 이들은 통일참모본부의 공격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어려움에 빠졌다.

  1999. 11. 24  21:40  경기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허허... 개전 첫날에 실종되었던 제 11기갑사단의 3대대장이란 말이오?  공중지원을 요청하던 그..."

  정 지수 대장이 믿기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양 석민 중장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길티요. 11기갑이래 선천에서 전투를 수행했으니끼, 서쪽 대목산 요새로 간 모양이디요. 어쩐지 노농적위대치곤 잘 싸운다 했디요."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은 인민군 군관이 그 요새의 지휘권을 잡지 못한 것이 안타까왔으나,  그래도 차 영진 중령이 그동안 잘 싸워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2만 3천... 그것도 예비역인 노농적위대입니다. 결코 막강한 전력이 되지 못하는 그들이 이번 전쟁의 수훈갑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들을 활용하는 것인데... 그들이 행여나 욕심 부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양공이 아니라 조공만 해주면 되는데...  잘못하면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양 중장이 노농적위대의 전력을 제대로 몰라서 길티요. 훈련의 양과 질에서...  그보다 대공무기와 대전차무기를 지원해 주는 것이 좋디 않겠습네까? 실탄이나 식량은 아직 비축분이 많을 것입네다."

  김 대장은 양 중장이 노농적위대를 과소평가하자  불쾌해져서 한국의 향토예비군과 비교하려다가 그만 두고, 차 중령의 부대에 무기지원하는 것을 제안했다. 제안은 즉시 가결되고 그 방법은 서해상으로 우회한 항공기에 의한 공수로 낙착을 보았다.

  1999. 11. 24  22:30  평안북도 선천, 대목산

  "보도가 또 나옵네다."

  공격준비에 바쁜 차 중령이 김 소위의 외침에 TV화면을 보니 김해공항에서 출격준비를 하는 수송기 대열이 비쳐졌다. 아나운서의 설명으로는 그 무기들은 중국으로 가던 미국 수송함에서 노획한 것이며, 선천의 북부군에게 간다고 했으나,차 중령은 군사비밀을 이렇게 공개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잠시 후 화면을 정밀조사한 김 소위는 저 비행기들의 도착시간은 22시 40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제주에서 선천까지 수송기로 10분? 설마... 홍 대좌!"

  "네! 대장동지."

  "지금 당장 낙하산으로 공수되는 보급품을 받을 준비를 하시오. 지금 당장이오.  그리고 아군 공수부대가 올지도 모르니 오인사격은 하지 말도록 주의시키시오."

  "알갔습네다."

  홍 대좌는 요새 근처에 배치된 하급부대를  동원하여 넓은 지역에 투하될 보급품을 챙길 준비를 했다.차 중령은 즉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요새 꼭대기의 관측소로 향했다.  관측소에서는 인민군 장교와 하사관 두 명이 망원경을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밤에 일반 망원경으로 하늘을...'

  차 중령이 장교에게서 망원경을 건네받고 하늘을 보았다.  온통 하얀 물체가 검은 하늘을 덮었다.  착지한 보급품은 주변 초소에 잠복중이던 대원들이 차량을 동원하여 요새로 이송했다. 차 중령은 이 보급품을 요새와 하급부대에 적절히 분배했다.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될 참이었다.자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1999. 11. 24  11:30  평안북도 선천, 대목산

  차 중령과 지휘관들은 부대의 재배치에 매달렸다. 철산의 노농적위대 연대와 미처 피난하지 못한 민간인들로 증강된 독립부대들은, 저격여단장인 최 대좌의 지휘를 받으며 방어선 강화에 나섰다. 그동안 소규모의 유격작전에만 익숙했던 노농적위대는 한곳에 집중하여 모처럼의 대규모 부대가 되었다. 요새에 있던 T-62와 차 중령이 후퇴할 때 같이 왔던 제 11기갑사단 최후의 전차 4대는 모두 북쪽에 투입되었다.  최 대좌와 대원들은 급하게 대전차 참호를 파고 위장하느라 바빴다. 정찰대가 중국군의 접근상황을 바쁘게 전해왔다.

  황보 중좌는 야간전대대원 및 약간의 지원부대를 지휘하여 도로를 따라 차량을 타고 구성으로 향했다.  대신 구성쪽에 있던 부대는 모두 선천으로 향했다.  지휘관들이 통신기로 외치는 '날래 날래'는 거의 노래가 되다시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황보 중좌는 구성시의 인민해방군이 남쪽의 정주군과 연결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임무를 띠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중국군과 교전하게 된다.

  차 중령은 나머지 병력을 긁어모아 지금도 산발적인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남쪽 전선으로 향했다. 전선으로 이동하는 중에 근처 고지에 있던 하급부대들이 그의 행렬을 뒤따랐다. 전 부대가 급속이동하기에 차량이 너무 모자랐다. 차 중령의 본대가 먼저 전선에 도착한 후 하차하고, 차량부대는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 구보로 헉헉대며 눈길을 이동중이던 후속부대를 실어 날랐다.

  1999. 11. 24  11:45  평안북도 차련관

  차련관은 평안북도의 서쪽 해안지방인 철산군 철산읍의 북쪽 20 km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이다. 북서쪽에는 압록강과 용암포가 있는 용천군과 맞닿고, 동쪽에는 선천군이 있다. 경의선과 평양-신의주 고속도로가 만나서 함께 남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최 대좌는 주방어진지의 구축과 함께 전방에 전초선을 형성하여 중국군의 기습공격에 대비했다. 또한 그는 주 진지가 돌파될 것에 대비하여 충분한 예비대를 준비하고 후방 깊숙히 포병을 배치했다. 지뢰지대나 대전차호를 건설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왔으나 이곳은 높은 산으로 둘러쌓인 고개라서 전차의 기동은 불편하리라 예상했다.

  전초선에서 적 대규모부대의 이동이 관측되어 최 대좌에게 보고했다. 그는 시계를 보다가 차 중령의 공격예정시간이 아직 안되었음을 깨닫고 차 중령의 부대가 공격하기 전에 먼저 공격당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1999. 11. 24  23:50  평안북도 선천군, 노하

  선천군 선천읍에서 남동쪽으로 15km에 노하역이 있다. 이곳은 정주군과의 경계지대이며 정주읍 서쪽의 곽산과는 가까운 거리이다. 현재 곽산은 중국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차 중령의 부대는 야간에 계속적인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이들을 남쪽으로 몰아내려 했으나, 정주에 몰려있는 11개 사단의 인민해방군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 3개 사단이 천천히 북진 중입네다. 방어선을 펼치겠습네까?"

  "아니오."

  차 중령은 교도대의 예비역 소좌라는  이 인민군 군관의 복장을 살펴보았다. 군복 위에 두툼한 털옷을 입고, 그 위에 다시 흰색의 스키복을 입고 있는 그는 옷을 너무 많이 껴입어서인지 펭귄처럼 보였다. 자신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소좌의 모양새를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소좌... 적은 전차가 없다는 정보가 확실하오?"

  "기렇습네다. 전차뿐 아니라 차량도 거의 파괴되었습네다. 항공대 동지들이 고생 많이 했디요."

  그동안 선천 남쪽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김 소좌는 한국군과 인민군 전투기들에 의한 공습을 자주 보았다.  전투기들은 중국군 보병은 완전히 무시하고 전차와 포만 철저히 파괴하였다. 보급이 떨어져 제대로 저항도 못하는 중국군은 어차피 예비부대라서 전차가 별로 많지 않았지만 보유했던 전차와 보병전투차를 모두 잃고 거의 보병만으로 방어선을 수비하고 있었는데,  이제 한계에 도달하자 병참선 회복을 위해 선천으로 진공하고 있는 것이다.

  차 중령이 김 소좌가 준비한 지도에서  중국군의 행군대열을 살펴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종대로 전진하고 있었다. 며칠간의 폭설은 그쳤지만 산과 들은 모두 눈에 덮여 있었고,  일부의 도로만 개통되어 중국군의 진공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각 중대마다 통신기는 있지요?"

  "물론입네다. 대장 동지!"

  "스키 보유량은?"

  "3개 중대가 준비되어 있습네다."

  차 중령은 확인을 거듭했다.

  "좋소. 1개 연대는 북으로, 1개 연대는 남쪽에 배치시키시오. 스키부대는  1개 중대씩 분산시켜 적 부대 행렬에 대한 이동간 사격을 실시케 하시오. 자, 이동시키시오."

  차 중령이 지도 위의 세 점을 가리켰다.  차 중령의 예하부대 중 1개 연대는 산으로, 1개 연대는 평야로 눈길을 헤치며 달렸다. 캄캄한 밤에 하얀 눈밭을 뛰어가는  이들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숫자는 별로 많아보이지 않았다.

  "2차대전 때 핀란드전역을 아시오?"

  "물론입네다. 쏘련이 초기에 핀란드군에게 패배했디요."

  독일의 폴란드 침공양상을 본 스탈린은 독일군의 막강한 전력에 겁을 먹고 독,소 불가침 조약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스탈린은 폴란드가 독일에 점령되기 직전 소련군을 폴란드에 투입하여 분할점령하고, 보다 더 완벽한 완충지대를 원하게 되어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을 합병했으며 핀란드에게 핀란드만에 있는 4개의 섬을 할양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핀란드가 이를 거부하자 소련은 선전포고도 없이 핀란드를 공격했다.  소련은 100만의 대군과 막대한 수의 전차와 항공기를 투입했으나 악천후와 핀란드 국민의 저항으로 초기에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그후 소련은 사령관을 해임하고 카렐리아 지협에 병력을 집중 투입하여 겨우 핀란드의 항복을 받아냈다.

  "모티 전술도 아시겠군요."

  "모티전술을 쓰시갔습네까?"

  김 소좌가 빙긋이 웃었다. 모티(motti)란 장작용 나무토막을 패기 위해 쌓아둔 것을 의미하는데,  핀란드군이 천연의 삼림지대에서 주로 임업에 종사하는 그들 특유의 환경에 부합되게 발전시킨 전술이었다.  핀란드군은 소련군 1개 사단을 약 10개의 토막으로 조각낸 뒤 각개격파하였다. 이 전투에서 1개 사단이 안되는 핀란드군은 병력수 3배의 소련군 2개 사단을 전멸시켰다.

  "바빠지갔구만요."

  "물론이오. 날도 추운데 운동 좀 하죠."

  김 소좌는 이동중인 각 부대에 전술개요를 설명했고, 이 전술을 이해하고 있는 예비역 군관들은  부하들을 잘 통솔하여 적당한 위치에 매복시켰다.

  1999. 11. 25  00:10  평안북도 철산군, 차련관 일대

  거리 2,000미터까지 중국군이 접근하자 네 대의 K-1 전차들이 엄폐호에 차체를 숨긴 채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잠시 후 선두의 중국제 90-2형 전차들이 노란 불꽃에 쌓여 폭발했다.  그동안 잦은 고장으로 말도 많았던 K-1 전차는, 그러나 명중율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 4백미터 거리에서 동전만한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전차는 한국군 전차병이 탑승한 K-1 전차밖에 없었다.

  인민군의 T-62 전차들은 차량부대에 대한 포격을 했다.  여기에 후방에 있던 포병과 보병의 박격포도 가세해서 중국군의 차량대열은 지리멸렬했고,  이들은 파괴된 차량과 부상병들을 버리고 황급히 북쪽으로 퇴각했다.

  이들을 선도했던 중국군의 기갑정찰대는  깜짝 놀라 고개의 인민군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으나, 근처에 미리 매복해 있던 보병들의 공격에 놀라 본대를 따라 후퇴했다.  중국군 본대의 후퇴를 확인한 K-1 전차들이 기갑정찰대의 경전차와 보병전투차를 하나씩 명중시켰다.  정찰대는 한국군 전차의 주포 사정거리에 자신들이 있음을 확인하고 차량을 버리고 서둘러 눈 속에 몸을 숨겼다.  원래 차 중령의 전차였던 K-1 전차의 포수 겸 전차장을 겸하고 있는 박 중사는 남아있는 포탄의 수를 세어보았다. 이제 철갑탄과 성형작약탄 합해 겨우 12발의 포탄만 남게 되었다.

  "최소한 한 시간은 벌겠군."

  최 대좌가 자신의 희망을 중얼거렸으나 중국군 헬기의 출현으로 그의 희망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고개에 있던 대공포 부대들이 스타버스트 지대공미사일을 날렸다. 레이저 유도방식의 이 미사일은 황급히 채프와 플레어를 뿌리며 급선회하는 러시아제 해벅 공격헬기들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헬기들이 놀라 북쪽으로 달아났다.  미사일 케이스에 있는 한글로 된 작동설명서를 보고 처음으로 스타버스트를 발사해 본 인민군은 이 미사일이 중국헬기를 여지없이 명중시키자 좋아서 환성을 질렀다.  그동안 적기가 무서워 낮에는 꼭꼭 숨어있었는데 이제 하늘의 걱정은 사라지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중국 집단군 지휘관은 남쪽의 고개에 도대체 얼마만한 병력이 있는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당 군사위에서 내려보낸 정보가 맞다면 적 병력 20만이 이 지역에 퍼져 있으며,  자신의 부대는 포위 섬멸될지도 모른다며 우려했다. 그는 신중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차련관 고개를 마주보는 산의 능선에 부대를 전개하고 적병력 규모를 살폈으나,  인민군의 은폐가 완벽했는지 잘 파악되지 않았다. 그는 병단 사령부에 차련관 일대에는 인민군 1개 군단이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공중지원을 요청했다.

  1999. 11. 25  00:20  평안북도 선천군, 노하 일대

  인민해방군 제 135 사단의 사령인 가오 대좌는 전방에 있는 연대로부터 강력한 적의 저항선을 만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병력을 계속 증강시켜 이 저항선을 돌파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그는 부대의 신속전진을 명령했다. 트럭과 보병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갑자기 북쪽 숲에서 사격이 시작되었다.  진격하던 중국군 부대가 산개하여 응사를 시작했다.눈밭에 엎드린 인민해방군은 그동안 기아와 추위에 떨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기습을 받자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왔다. 총이 발사되는 화염은 숲 곳곳에 많이 보였으나  적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고, 추위는 총을 쏘는 손가락을 얼어붙게 했다.  정차해 있는 트럭들이 숲에서 날아오는 RPG에 의해 하나씩 파괴되었는데, 이미 중국군은 차량에서 하차한 후였으므로 인명피해는 적었다. 다시 남쪽의 들에서도 기관총이 발사되었고 본격적인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인민해방군은 포위되었다는 두려움에 빠졌으나,  구원군이 올 때까지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최대한의 저항을 계속했다. 가오 대좌가 무선으로 하급 부대를 불렀으나 무전기에서는 총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와 통신이 연결된 단(團:연대)의 지휘관은 오히려 사단장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지금은 전 사(師:사단)가 병력미상의 적에게 공격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함성소리에 놀란 가오 대좌가 동쪽을 보니 인민해방군이 전진 중이던 도로 위로 인민군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하얀 스키복을 입은 인민군은 아직도 동복을 입지 못한 푸른색 군복의 인민해방군을 학살하기 시작했다.약 1개 대대병력의 인민군이 인민해방군 1개 연(連:중대) 병력을 전멸시키고, 동서로 이어지는 도로를 차단했다.

  가오 대좌는 도로 곳곳에 인민군의 차단작전이 시작된 것을 알았으나 이에 대처할 경황이 없었다.  남쪽 들에서는 인민군의 장갑차들이 기관포를 연사하며 돌진해 오고 있었다. 장갑차 뒤로 수많은 인민군들이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어디선가 대전차미사일이 날아와 가오 대좌가 조금 전까지 탑승했던 장갑지휘차를 날려버렸다.

  "대열에 뛰어들어온 적을 먼저 포위공격하라! 우리 부대는 서로 연결되어야 해!"

  가오 대좌는 빗발치는 총탄을 피해  도로 옆의 배수구에 몸을 숨기고 하급부대에 연락하기 바빴다. 야간에, 그것도 폭설로 인해 기동이 어려운 곳에서 자신의 명령이 하급부대에 의해 쉽사리 수행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이 방법만이 부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기관총사수들이 어디선가 모를 곳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연이어 쓰러졌다. 부사수들이 기관총을 잡으면 그들도 쓰러졌다.  인민해방군 병사들은 저격이 무서워 땅에 납작 엎드린 채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남쪽의 인민군이 점점 접근해오고 있었다.이곳에 포위된 자신의 부하들은 채 1개 대대가 되지 못했는데,적은 어림잡아도 5배의 병력이나 되었다. 포위망이 좁혀지자 대량학살이 시작되었다.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에 내전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렀던 고참병들이 쓰러져갔다. 가오 대좌는 통신으로 하급부대에 후퇴를 명하고 자신은 백기를 준비했다. 인민군의 사격이 잠시 멈추자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서둘러 총을 버리고 양손을 높이 들었다.

  "다음 장작으로 이동하시오."

  선천의 37연대가 주력인 이 연대병력은 포로 노획부대 약간을 남겨놓고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논길을 달렸다.  차 중령은 포로들의 숫자를 대충 파악하고 본대를 따라 다음 공격지점으로 향했다.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이런 전투를 아홉번은 더 치러야했다.  차 중령과 함께 장갑지휘차에 탑승한 김 소좌가 바깥 상황을 살피며 하품을 했다.

  "이겨서 좋티만 앞으로는 지겹겠다는 생각이 듭네다."

  "나도 마찬가지요. 근데... 동쪽에 1개 사단이 더 있다면서요?"

  김 소좌는 차 중령의 말에 질려버렸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라 따분한 사격훈련에 불과했다. 지금은 중국군 2개 사단을 20여개의 조각으로 분리시켜 산발적인 총격전을 하고 있으며, 토벌대격인 1개 연대를 통해서 아직까지 겨우 한 개의 조각만을 전멸시켰다. 적 부대간의 연동이 어려운 도로사정을 이용해서 실시하는 이 모티작전은 당하는 적에게는 지옥이지만, 공격하는 측에서도 별로 재미가 있을 수 없었다.  이번의 중국군에게서도 쉽게 항복을 받아냈다.

  "자, 다음으로 이동하시오."

  승리의 환성을 지를새도 없이 37연대는 다시 동쪽으로 향했다.  소수의 병력으로 도로의 인민해방군을 포위하고 있던 인민군들은 이곳을 제 37연대에게 물려주고 자신들은 먼저 동쪽으로 향했다.잠시 총격전이 이어지고, 또다시 200여명의 포로를 잡은 37연대는 다시 동쪽으로 향했다.

  눈밭에서 기동력이 발휘되는 인민군 스키부대에게  세번에 이은 공격을 받고, 다시 압도적인 병력에 포위된 이들은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인민군들이 이들을 무장해제하고 한쪽 구석으로 몰았다. 이들은 트럭에 태워져 즉시 선천의 대목산 요새로 향했다.

  다음 차례가 된 것을 알아차린 동쪽의 인민해방군은 서둘러 동쪽으로 도망가려 했으나 인민군의 포위망은 완강했다.이들은 37연대가 오기 직전에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1개 대대 병력이 넘었으나 겨우 1개 중대의 포위한 적에게 항복한 것이다.이 소식을 들은 37연대의 차량화부대는 즉각 동쪽으로 더 이동하여 다음 장작을 팰 준비를 했다.

  인민해방군은 도저히 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소단위로 나눠진 중국군 대열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바빠 협동작전이 이루어질 수 없었고, 계속해서 각개격파의 제물이 되었다.세계 어느나라의 군대라도 장교 정도면 누구나 이런 작전과 그 대응방법을 알고 있었으나,  자신이 그 희생물이 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중국군 부대는 모티 전술의 희생양이 될만한 모든 악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지금이 몇번째 장작이죠?"

  "글씨요... 네. 일곱번째입네다."

  김 소좌는 연신 하품을 하며 상황판을 보고 차 중령에게 보고했다.장갑지휘차에 같이 탑승한 여군인  김 소위가 무전기를 차 중령에게 넘겼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차 중령은 무슨 좋은 소식인가 하고 무전기를 받고 통화를 했으나,  그로서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는 안좋은 소식이었다.

  "뭐요? 1개 자동차화사단? 그게 정말이오?"

  [기렇습네다. 급거 서쪽을 향하고 있습네다. 지연작전을 펼칠까요?]

  차 중령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무장이 빈약한 정찰대를 소모하기는 부담이 갔다. 그렇다고 아직 모티전술이 끝나지 않은 마당에 중국군 기계화사단이 구원하는 것을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공격하시오.  RPG와 기관총으로만 공격하고, 적이 역공하는 경우 즉시 후퇴하시오. 알겠소?  절대 무리하지는 마시오."

  차 중령이 무전기를 김 소위에게 넘기는데, 그녀는 계속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마 차 중령에 대한 신뢰의 표시이겠지만,  부대원 전체가 지휘관에게만 너무 의존하면 그 부대의 전력은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나폴레옹이기 보다는  차라리 무능력해 보이는 힌덴부르크이길 바랐다. 지휘관은 참모와 전선의 하급지휘관의 창의력을 보장해주는 역할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너무 대대장적의 지휘습관에 물든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자신도 이 정도의 대규모 부대를 지휘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하급부대에 자질구레한 것까지  지시하는 것이 아닌가 반성했다.이런 지휘방법은 지휘관의 능력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위기상황에서는 최악의 지휘방법이 될 수 있었다.

  "도로 근처에 있는 정찰대들에게 즉시 연락하시오.그리고 37연대에서 1개 대대를 차출하여 도로를 차단하도록!"

  김 소위가 차 중령의 명령을 받아 도로 근처에 매복해 있는 정찰대를 하나씩 호출하여 그의 명령을 전했다. 25km에 이르는 도로 곳곳에서 정찰부대들이 공격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이 공격하기까지는 의외로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김 소좌는 지도에서 적당한 교량이 없는지 찾아보았다.갈수기인 겨울에 교량을 파괴하더라도 적 전차들이 작은 개울 정도는 쉽게 건널 것이 틀림없으나 그래도 약간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김 소좌는 차 중령에게 묻지도 않고 정찰대로 하여금 3개의 다리를 폭파하도록 김 소위에게 명령했다. 김 소위가 차 중령의 눈치를 살폈으나, 차 중령은 김 소위를 모른체하며 전투상황만 살펴보았다.  김 소위가 정찰대를 호출하여 김 소좌의 명령을 전했다.

  1999. 11. 25  00:30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

  "옵네다. 자동차화보병사단입네다."

  눈 덮인 언덕에 숨어있던 정찰대의 강 중사가  망원경으로 도로를 살폈다. 밤이었지만 하얀 눈에 반사된 달빛이 도로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선두 전차래 통과시키고 중간을 티디. 준비하라우!"

  중국군의 제 29 오토바이사단은 전차대대를 앞세우고 급거 서쪽을 향해 달렸다. 약 30여대의 전차들이 통과하고 장갑차와 보병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기관총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사격!"

  기관총이 불을 뿜고 RPG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연기를 뿜고 날았다. 중국군 차량대열 곳곳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분대에 있는 2명의 RPG 사수가 5발씩의 RPG를 모두 소모하자  강 중사는 미련없이 후퇴를 명령했다.도로에는 부서진 트럭과 장갑차 4대가 불에 타고 있었고, 트럭의 보병들은 모두 하차하여 언덕을 향해 사격하고 있었다.

  강 중사는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후퇴하면서도 자꾸 도로를 살펴보았다. 보병은 다시 트럭에 탑승하고 차량대열이 서쪽으로 향했다. 그는 아예 도망가려던 생각을 바꾸어 100미터쯤 이동한 후에 다시 기관총 사격을 명했다. 차량대열이 또다시 멈추고 응사를 했다. 정찰대원들은 모두 킥킥대며 웃었다.급기야 화가 난 중국군 지휘관이 언덕의 점령을 명하자 인민군들은 적당히 위협사격을 가한 후에 본격적으로 후퇴했다.

  중국군 제 29 오토바이사단의 지휘관은 똑같은 상황을 열 번 넘게 겪어야만 했다.겨우 이들을 물리치고 나서 개울에 도달했지만, 다리는 이미 폭파된 뒤였다. 사단장은 또다른 함정이 있을까 두려워 도강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는 2개 사단의 구원 포기를 의미했으며 정주의 병단사령부로 하여금 이 지역에의 병력증강을 강요했다.  병단 사령은 3개 사단을 남쪽의 한국군 방어에 전념시키고, 나머지 병력을 모두 이끌고 서쪽을 향하기로 결정했다.

  1999. 11. 25  01:30  경기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선천의 부대가 조공을 성공시켰습니다. 2개 사단을 섬멸하고 6개 사단을 정주 북쪽에 붙들어 맸습니다."

  김 병수 대장이 정주에 있는 중국군 부대의 이동을 확인하며 이 종식 차수에게 보고했다.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던 이 차수의 눈이 부릅떠졌다. 정 지수 대장은 즉시 전선의 부대화 연결된 통신기를 잡고 이 차수의 명령을 기다렸다.

  "공격하시오."

  1999. 11. 25  01:30  평안북도 운전읍

  통일한국군 제 1기갑사단의 전차들이 일제히 엔진을 가동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95년과 96년에 러시아에서 차관 대신에 수입한 T-80 전차들이 주축이 된 이 기갑사단은 미국이 한국정부에 떠넘긴 M-1A1 전차 1개여단이 주축이 된 제 2기갑사단과 함께 11월 19일에 창설된 부대였다.

  혹한지인 시베리아에서도 운행할 수 있도록 제작된 이 전차는 한국의 폭설은 기동에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선두에 기갑정찰부대가 서고 나머지 전차들이 일제히 서쪽으로 전진했다.  이들을 따라 보병 2개 사단이 진군했다. 포격이 시작되자 밤하늘에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각종 구경의 곡사포탄과 로켓탄이 날았다.

  북쪽인 구성쪽으로는 보병 3개 사단이 진격을 시작하고, 예비 4개 사단이 투입 대기 중이었다. 눈이 멈춘 평안북도 일대의 평야와 야산에는 달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1999. 11. 25  01:45  경기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조인트 스타즈(J-STARS)기에서 보고입니다.  적의 배치는 동쪽에 일렬로 5개 사단, 서쪽에 2개, 북쪽에 2개 사단입니다.  선천쪽의 아군은 아직 소탕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거의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정 지수 대장이 이 차수에게 보고하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 종식 차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이제 일선 지휘관의 력량이 전황을 좌우하갔디요.  제 1기갑은 전선을 돌파한 후 그대로 선천쪽으로 밀고 가시오. 그들에게 우리의 전진을 알려 주시구레... 남시쪽 인민해방군의 움직임에 유의하시오. 아무래도 걱정이 되오. 요격기는 준비됐소?"

  "물론입니다. 3개 비행단이 언제든 출격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 호석 중장이 대답하자 이 차수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노구를 이끌고 서서히 일어났다. 그는 휴식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정 대장이 중앙화면의 병력배치도를 보았다. 중국군 5개 사단 정면에 통일 한국군 2개 사단이 산발적인 진지전을 수행중이었고, 중국군의 전선 중앙부를 제 1기갑사단과 보병 2개 사단이 집중공격하고 있었다.  서부전선의 승패는 이 작은 지점에서 결판날 순간이었다.

  북쪽 구성방향으로는 또다른 보병 3개 사단이 급속히 진격 중이었다. 2개 방향으로 2개 사단이 진격하고, 그 뒤를 1개 사단이 후방을 엄호하는 방식이었다. 선천의 유격부대로부터 그쪽에 중국군 2개 여단 병력이 서진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는데, 그는 선천의 부대가 빠진 그곳을 한국군이 얼마나 빨리 접수하느냐에 따라  이번 포위작전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았다.

  정 대장은 북부군이라는 명칭을 쓰는 선천의 유격부대가 중국군을 제대로 묶어주기만을 바랬다.  북부군이 2개 사단과 교전중이라는 보고를 받았을 때는 그들의 무모함에 깜짝 놀랐지만 의외로 중국군을 섬멸하고 또다른 사단과 대치 중이라는 보고를 다시 받고 안심이 되었다. 그들이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길 바라면서 비상유선통신망을 이용해 전선의 사령관을 호출했다. 2군 사령관인 이 도형 대장이 통신에 나왔다.잠시 서로 상대방이 경례하기를 기다리는 어색한 순간이 흐르고, 이 대장이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으나 이는 상대방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내용일 뿐이었다.

  [통신보안!]

  ROTC출신인 정 지수 대장은 육사출신 장성들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소위 임관일은 정 대장이 몇 달 빨랐으나 장성진급은 이 대장이 1년 빨랐다. 그는 ROTC 중에서는 진급 선두그룹이었으나 보직에 있어서는 항상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에 비해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장진급 후에 통일참모본부에 배속된 그는 이것이 군문의 마지막 보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임지에 임했었다.2년 전만해도 적지인 이곳 개성에 부임을 희망하는 장군은 한국군에 몇 없었던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육군 대장으로서가 아닌 통일참모본부의 수석 참모로서, 그리고 남북 통일한국군 전체의 군령권을 가진 의장 이 종식 차수의 대리인 자격으로 다른 육군 대장에게 명령했다.

  "통신보안. 통참의 정 대장이오. 현재시각 0150, 작전을 실시하시오."

  1999. 11. 25  01:50  평안북도 정주 남동쪽 15km

  굉음을 울리며 러시아제 T-80 전차들이 떼지어 중국군 방어선으로 돌진했다.  집중포화를 받고 불바다가 된 야산 바로 남쪽에 있는, 중국군 1개 중대가 방어하는 약 500 미터의 짧은 전선에 전차 1개 대대가 몰아닥친 것이다. 제 1기갑사단 제 2 전차대대 뒤로 2개 대대의 K-200 보병전투차들이 기관총을 쏘아대며 따라오고 있었다.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은 연막탄도 발사하지 않은 채  대전차방어 수단이 빈약한 중국군 방어선으로 돌입했다.

  "1시 방향, 기관총좌!"

  전차장의 명령에 따라  변 승재 하사가 포탑을 돌려 중국군의 기관총좌를 찾았다. 약간 앞으로 튀어 나온 기관총 참호에 사격통제장치의 조준간을 맞추니 레이저 거리측정기에 거리가 150미터라고 표시되고 탄도 컴퓨터가 자동으로 포의 각도를 수정했다.  전차가 전진함에 따라 포는 서서히 목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수평장탄기가 포탄을 자동장전하자 변 하사가 방아쇠를 당겼다. 125 밀리의 2A46M-1 주포가 발사되고 진동이 차체를 흔들었다. 곧이어 목표에 섬광이 번쩍였다.

  "명중!"

  전차장 겸 중대장인  한 보겸 대위는 주포 오른쪽의 7.62밀리 기축기관총을 발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차 주포의 목표가 별로 없는 중국군 보병의 방어선에는 오히려 기관총이 더 효과적인 공격무기였다.  전차가 철조망을 찢고 급기야 참호선을 넘었다. 중국 보병들이 놀라 참호에서 뛰쳐나와 서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대위가 후퇴하는 중국군 등뒤로 기관총을 발사했다.  하얀 눈밭 위로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변 하사는 후퇴하는 적에게 총질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전쟁상황이었다.

  전차에 이어 방어선에 도착한  보병전투차에서 보병들이 하차하기 시작했다.이들은 아직도 남아서 저항하는 중국군을 사살하며 돌파구를 점차 확대했다. 짧은 시간에 중국군 방어선에 약 2km의 구멍이 생겼다.

  한 대위는 돌파구의 점령은 후속하는 기계화부대에게 맡기고  자신의 전차는 계속 전진을 명령했다.중대 소속의 전차들은 별 피해를 입지 않고 중대장의 전차를 따랐다. 이들이 뚫어놓은 작은 틈새로 보병 2개 사단이 물밀듯이 쇄도했다.

  전진하는 T-80 전차들, 50cm나 쌓인 눈도 이들의 무한궤도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이어먼드 진형을 갖추고 진격하는 선두의 전차 중대는 후방진지를 부수고  다시 전진하여 인민해방군 제 105사의 마지막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이들이 다시 고개 하나를 넘자 평원에 대규모의 포병부대가 보였다.  일렬횡대로 전개한 전차들이 포를 쏘기 시작했다. 중국 105사의 포병연대는 통일한국군 전차들의 직사 사격에 순식간에 궤멸당했다. 50여대의 전차들은 견인식야포와 자주포들의 잔해를 뒤로 하며 계속 서쪽으로 전진했다.

  1999. 11. 25  02:10  경기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중앙돌파 성공! 3개 사단이 돌파했습니다. 포위망 형성 중! 계속 예비대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정 지수 대장은 전선의 사령관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준비했던 공격이 성공하자 다른 참모들과 함께 뛸듯이 기뻐했다. 중앙의 화면에는 각 부개가 전개하여 시시각각 중국군을 포위하는 진형을 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먼저 남쪽의 인민해방군은 완전히 포위되어 점점 서해바다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적 105사단은 궤멸됐습니다.  2개 사단은 해안쪽으로 밀리고 있는데 현재 7개 사단이 포위망을 완성하여 공격 중입니다.  적은 얼마 못버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박 상장님."

  정 지수 대장이 인민군인 박 정석 해군 상장을 쳐다 보며 물었다. 박 상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효과적인 공격을 위해선 더 몰아 붙여야지요."

  이번 작전의 하일라이트를 장식할 박 상장은 아직도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 상장은 지상전 지휘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났다. 그는 지금 너무 피곤해서 딱딱한 야전침대라도 마다 않을 지경이었다. 아니, 상황실 바닥에서라도 누워서 잤으면 싶었다.

  1999. 11. 25  02:30  평안북도 선천군, 노하

  "드디어 장작을 다 팼습네다."

  김 소좌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 중령도 하품이 절로 나왔다. 휘하부대의 인원점검을 실시하고 모든 부대를 동진시켰다.  잠시 후 각 부대별로 피해상황 및 전과보고가 들어왔다. 선천 연대인 35연대가 전사 856명, 부상 1240명인 반면에, 구성의 예비연대인 37연대가 전사 571명, 부상 970명이었다. 차단전에 참가하지 않고 견제공격만 했던 스키대대는 큰 피해가 없었다. 적 사살은 8,500명 정도에 포로가 1만 2천명이나 되었다. 빠져나간 적은 별로 되지 않았다.  겨우 도망친 중국 패잔병들은 눈밭을 헤매게 될 운명이었다.

  "전사 1,427명에 부상 2,500명 정도입네다. 의외로 피해가 큽네다."

  작전참모인 김 소좌가 투덜거리며  핀란드 전역에서 모티전술이 사용된 대표적인 전투인 수오무살미 전투의 결과를 기억했다. 핀란드의 9사단은 소련의 163사단과 44사단을 상대로 사살 27,500명, 포로 1,500명, 전차파괴 50대의 전과를 올린 반면에,  피해는 전사 900명, 부상 1,770명의 경미한 손실만 입었다. 거의 3배의 적을 상대로 싸워 이긴 핀란드군에게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이동이 신속치 못했다는 뜻입니다. 안타깝군요."

  차 중령은 북부군 최초의 정규전도 유격전식으로 수행했다.  이는 민간인이 대부분인 북부군 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역시 훈련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닙네다. 대장님."

  김 소좌가 도끼눈을 하며 자신을 째려보는 김 소위의 눈치를 보며 차 중령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핀란드의 쏘련군은 얼어죽은 놈들이래 많았지요."

  김 소위가 방긋 웃으며 차 중령을 보았다.  차 중령은 뜨거운 눈길을 느끼며 계속 지도를 검토했다.  정찰대의 보고에 의하면 적의 오토바이 사단은 또다른 장작패기의 희생물로 적한한 배치상태였다. 그러나 훈련과 장비가 부족한 북부군으로 화력이 강한 중국군 자동차화사단을 공격하려면 막대한 희생을 감수해야할 상황이었다.

  "대장동지는 존경스럽습네다. 소수병력으로 적의 대규모 부대를 전멸시켰잖습네까."

  김 소위의 칭찬에 차 중령은 약간 당황하며 설명했다. 그는 남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다.

  "아니오. 우리는 전투마다 항상 다수로 소수를 친 것 뿐이오. 용감한 소수가 다수에게 이기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하죠."

  차 중령이 장갑지휘차의 해치를 열고  전투가 끝난 도로 위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뺨을 때리며 스쳤다. 도로 위에서는 불타고 있는 중국군 트럭들 사이로  대원들이 동료의 시체를 수습하고 있었다. 포로는 한쪽으로 몰아 무장해제한 다음에 줄을 지어 서쪽의 선천의 대목산요새로 향하게 했다. 병력을 가득 태운 트럭들은 꼬리를 물고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곽산쪽에 자동차화 보병사단이 있다면서요?"

  차 중령이 몸을 떨며 해치를 닫고 지휘차 안으로 들어왔다. 작전참모답게 김 소좌는 이미 지도를 확인하고 있었다.

  "전차 1개 대대가 선두에 있습네다.길고 적의 전진은 이 다리에서 멈춰 있습네다. 정찰대레 계속 파상공격을 가하고 있습네다."

  차 중령은 중국군이 아마 상당히 피곤해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야산을 타며 계속 공격을 가하는 정찰대들은 화력은 약하지만, 주로 트럭과 장갑차로 구성된 중국군 오토바이사단은  그들의 공격을 결코 무시하지 못했다. 선두와 각 연대 사이사이에 배치된 전차들은 파괴된 다리와 자동차들 때문에 다들 꼼짝 못하고 있었다.

  차 중령은 곽산의 중국군을 공격할까 말까 망서리고 있었다.  경장비만으로 구성된 예비군인 북부군으로서는  비교적 중무장인 그들을 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의 부대가 활약할수록 남쪽의 전선은 약해져 통일한국군이 더 빨리 진격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다는 조바심에 그는 더욱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여군 통신군관인 김 소위가 무선연락을 받더니 갑자기 흐느끼며 울었다. 김 소좌가 물으니 그의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주물직장 고문이며 인민참심원(형사 및 민사재판에서 제 1심 배심원 역할을 하는 인민대표)이기도 한 그녀의 아버지는 나이 50줄에 하급 전사로서 이번 전쟁에 출전했는데, 그만 몇 안되는 북부군의 전사자 명단에 낀 것이다.이 소식은 김 소위의 아빠트 이웃에 사는 [구역 식료독채 지배인]인 예비역 상위가 전해준 것이다.

  "침략자를 몰아내야 한다며  이악쟁이(끝장을 볼 때까지 달라붙는 끈덕진 사람)처럼 달려드시다가 그만..."

  차 중령은 침묵했고 김 소좌가 그녀를 달랬다.

  "동무... 안됐수다만... "

  김 소좌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소위가 통신기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였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그녀 딴에는 무척 노력하고 있었다. 차 중령은 운전병에게 곽산쪽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  결국 그는 곽산의 적에 대한 공격은 하지 않고 견제만 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민간인에 불과한 노농적위대원들의 희생을 보고 싶지 않았다.현대전이 총력전, 모든 국민의 전쟁이라고 해도 전쟁은 결국 군인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희생도 군인이 먼저다.'

  1999. 11. 25  02:50  평안북도 정주

  제 1 기갑사단 제 2 전차대대는 중국군의 방어선을 뚫고 계속 서진했다. 제 2 전차대대를 따라오던 병력은 중간에 모두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이들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무찌르며 끝없이 전진했다. 시속 48km의 속도로 쾌속 진군하는 도중에 저항하는 적은 없었다. 정주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정주에서는 중국군들이  서쪽의 위협에 맞서서 병력을 급히 출동시키고 있었는데 뜻밖에 동쪽에서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제 1전차중대장인 한 대위의 전차가 선두를 서고 나머지 50여대의 전차가 역V자로 전개해 정주읍에 포격을 실시했다. 얼마 안되는 숫자의 큰 건물들은 모조리 포격을 받고 무너졌다.  중국군들이 쏟아지는 포화와 무너지는 건물 사이에서 도망다니기 바빴다.

  한 대위가 대대장의 명령을 받고 다시 선두에 서서 정주 시내로 돌입했다.  50여 대의 전차가 일렬로 돌진하는 모습은 중국군들에게 공포를 안겨 주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방어벽으로 삼아 반격을 준비하던 중 국군은 들소떼처럼 공격해오는 전차들에 놀라 어둠 속으로 숨어버렸다. 전차 윗부분의 차장 큐폴라가 일제히 열리며 차장들이 12.7밀리 기총을 잡고 사방에 난사했다.

  길 옆에 서쪽으로 이동준비 중이던 트럭대열이 세워져 있었는데 전차들이 지나가면서 기총탄을 퍼부었다.  보병은 이미 하차하여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으나 트럭은 모두 고철이 되었다.엔진과 차체가 철저히 파괴된 이 트럭들은 다시는 사용되지 못할 지경이었다.이런식으로 제 2전차대대는 정주읍을 관통하여 계속 서쪽으로 갈 수 있었다.

  "화끈하군요."

  "길티... 이맛에 전차 타는거이 아니겠슴메?"

  변 승재 하사가 한 대위와 함께 웃고 있는데, 운전병인 강 병장이 전방에 적 차량부대가 있다고 알려왔다. 한 대위가 대대장 전차에 보고하고 전차들은 다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변 하사의 포수용 페리스코프로 보이는 중국군들은 정주읍쪽의 갑작스런 총성과 연이은 전차의 등장에 놀라 동쪽을 보고 있었는데 T-80 전차들이 나타나자 내심 안심이 되는 모양으로 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떤 중국군은 길옆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오른쪽은 산, 왼쪽은 개울입니다. 차들로 꽉 막혔습니다."

  "들판으로 내려가라우."

  운전병인 강 병장이 전차를 좌회전시켜 길 아래로 내려갔다.  차체가 덜컹거렸으나 토션바식의 서스펜션이 충격을 흡수했다. 아직까지 단 한 대의 피해도 입지 않은 2대대의 전차들이 평야로 내려서서 눈으로 쌓인 들판을 질주했다.중국군들은 이들이 지원하러 온 중국전차인줄 믿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50여대의 전차가 일렬로 계속 달리며 중국군과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정지. 사격준비!"

  한 대위가 대대장의 명령을 수신하고 승무원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전차들이 서고 포탑이 오른쪽으로 서서히 돌아갔다. 도로에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 중국전차 30여대가 보이고,  트럭행렬에는 곳곳에 인민 해방군들이 기습에 대비해 산쪽으로 기관총좌를 설치하고 있었다. 거리는 약 1,200미터였는데  날이 어두워서 중국군들은 전차의 주포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차장인 한 대위가 기관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대장의 명령이 50여대의 전차에 동시에 수신되었다.

  "발사!"

  한 대위가 명령과 동시에 기관총을 발사하자  변 하사도 주포를 중국전차를 향해 발사했다. 거의 동시에 발사된 50여발의 철갑탄이 측면 방호력이 약한 80식 전차의 포탑부분을 관통했다. 기관총탄이 길 위의 모든 물체를 날려버릴 듯이 사방에 작렬했다. 변 하사는 발사 후 즉시 자동장전장치를 통해 제 2탄을 날릴 준비를 했으나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중국 전차에 명중되고 2발 이상의 포탄에 맞은 전차들도 많았다.  전차대는 다시 서쪽을 향해 전진하며 계속 길 위로 기관총 사격을 했다.  한 대위는 39발의 포탄보다 1250발인 기관총탄이 먼저 떨어질까봐 걱정이 되었다.

  1999. 11. 25  03:00  평안북도 정주 상공

  수원비행장에서 이륙한 4대의 F-16은 첫번째 웨이포인트를 향해 북서쪽으로 450노트의 속도로 날았다. 이들은 CAP(전투초계)임무를 맡은 F-16편대로 제 12 전투비행단에 배속된 기체들이었다.  선천 북쪽에 중국군의 공수부대가 투입될까 우려한  통일참모본부는 계속 전투기들로 전투초계를 하도록 명령했고,  12전투비행단에서 이 임무를 맡아 벌써 다섯번이나 출격했다. 평양 북쪽의 순안비행장에서는 새벽에 있을 대대적인 지상공격을 위해 전투기 정비에 한참이어서 12전투비행단이 이 임무를 대신 떠맡았다.

  편대장인 조 장호 소령은 편대기 전원에 전파관제를 명하고 서해안을 따라 저공으로 천천히 북상하다가 해주 상공의 E-2C로 부터 보기(bogye :피아식별 미확인 기체) 발견의 경보를 받았다.조기경보기와 데이터 링크된 그의 레이더에 적기 4대가 확인되었다.

  "적 편대 발견, 고도 12,000피트."

  조 소령은 곧장 직진했다. 적기도 조 소령의 편대를 눈치챘는지 남쪽을 향하여 날아왔다. 적기가 조 소령의 편대를 확인했는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에 조 소령은 계속 저공비행을 했다.갑자기 레이더 수신 경보가 울리고 조 소령의 윙맨인 김 종구 중위가 소리쳤다.

  "적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MUSIC ON!"

  적기에서 2발씩의 R-27R(나토명 AA-10 Alamo-A)이 날아들었다.  반능동 레이더유도미사일(SAR)인 R-27R은 그러나 저공비행하는 물체에는 소용이 없었다. 미사일의 유형을 파악한 조 소령은 계속 저공비행을 명하며 북쪽으로 비행했다.  유도를 잃은 중국의 미사일은 산꼭대기에서 제멋대로 폭발했다. 이제 적기와의 거리는 20마일.  해주의 조기경보기는 적기의 유형이 MiG-29라고 알려주었다. 나쁜 소식이었다.

  "괭이갈매기가 편대원들에게. 전원 교전준비하라!  고도를 올려 사정거리안에 들어오는대로 공격하라."

  조 소령은 KBS-TV에 몇 십년째 방영중인 프로그램 '동물의왕국'의 팬이었다. 콜사인을 조종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되자 그는 해변의 난폭자인 괭이갈매기를 자신의 콜사인으로 정했다. 괭이갈매기는 모든 종류의 물새들에게는 악마와 같은 포식자이다. 알과 새끼 뿐만 아니라 기회가 닿으면 어미새까지 공격하는 포악함이 전투기 조종사인 그의 마음에 들었다. 물수리의 다 큰 새끼를 공격하는 괭이갈매기의 모습은 결코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편대기들이 애프터 버너를 가동하여 속도와 고도를 높였다. 8000피트 상공에 이르자 조 소령은 김 중위에게 AMRAAM의 발사를 명했다. 적과의 거리는 어느새 15마일까지 접근되었다.

  "FOX ONE!"

  윙맨인 김 중위가 AIM-120 AMRAAM 2발을 발사했다. 편대의 또다른 윙맨인 최 대위도 2발을 발사했다. 4기의 미사일이 마하 4의 속력으로 밤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북쪽 상공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최 대위가 편대간 무선기를 통해 환성을 질렀다.

  "하나 잡았다!"

  조 소령이 레이더를 키고 적기가 3기 남았다는것을 확인했다. 적기는 두려움 없이 접근해 왔다.  신형 공대공미사일의 공급이 어렵게된 중국 공군 입장에서는 미사일전 보다는 근접전을 택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조 소령이 적기로 부터 이탈할까 망설일 때는  이미 근접공중전을 피할 수 없는 거리였다.  그렇다고 도주하자니 속도에서 밀렸다.  거리 10km 정도에서 편대기 전원이 적외선 추적방식의 공대공미사일인 사이드와인더 AIM-9L을 발사했다.  8발의 미사일이 음속 2.5배의 속도로 미그기를 향했다.

  "기똥차구만. 저걸 다 피해!"

  200미터 전방에서 급기동으로 미사일을 회피하는 미그 조종사들의 기량에 반해 편대원들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순간의 빈틈이 한국 공군의 F-16에게는 기회를 주었다.

  조 소령은 앞의 미그-29 하나가 선회하는 것을 보고  그 미그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중국 조종사들의 기량은 최고수준이었다. 어느새 미그는 조 소령의 4시 방향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두 기체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와 조 소령의 윙맨인 김 중위는 비명만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서 김 중위는 그를 엄호하지 못한 것이다.

  선회율에서라면 결코 미그-29에 뒤지지 않는 F-16이라고 믿었기에 자신했지만 10.5 G로 급기동하는 미그 조종사에게 조 소령은 질리고 말았다. 조 소령은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과대광고를 저주했다. 데모 테입에서는 선회율에서 F-16이 약간 앞선 것으로 나왔으나, 광고를 믿은 자신이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별수없다."

  조 소령은 기체를 상승시키며 조종간을 옆으로 틀었다.하이 요요. 기동성이 좋은 적을 상대로 벌이는 전법. 기동성이 좋은 기체는 선회전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나쁜 기체는 속도를 줄여서 기동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 공중전에서는 속도는 곧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속도를 줄이지 않고도  기동성을 높일수 있는 전법이 강구되었고 그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하이 요요였다.

  조 소령의 F-16이 속도가 350노트까지  줄어들며 미그의 뒤쪽으로 선회하여 들어갔다. 수호이의 배기노즐이 보였다. 거리는 약 300미터정도.

  '됐다...'

  "Guns! Guns!"

  M61A1  20밀리 기관포에서 총탄이 물줄기처럼  휘어져 날아가 미그기의 엔진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미그의 동체가 엔진을 중심으로 반으로 쪼개지며 폭발했다. 그러나 환호할 겨를이 없었다.

  "May day! May day! 조종불능! 젠장, Ejecting! "

  최 대위가 비명을 질렀고, 잠시 후 조 소령 기체의 10시 방향에서 추락하는 기체로부터 비상탈출하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 전투기로부터 발사된 미사일은 최 대위의 기체를 관통했다.  불발탄이라 폭발하지는 않고 완전히 관통하여 나갔지만, 그의 기체는 순식간에 운행불능이 된 것이다.

  눈에 하얗게 덮인 산맥을 배경으로 노란색 낙하산이 펼쳐졌다. 조 소령은 최 대위가 아군지역으로 낙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전 이래 한국공군은 극심한 조종사난에 시달려야 했다. 김 중위만 해도 귀환 도중 졸다가 사고를 일으킬뻔 하지 않았는가.

  "내 꼬리 좀 치워줘!"

  조 소령이 3시방향을 봤다. 김 중위의 F-16이 쫓기고 있었고 그 뒤를 미그기가 집요하게 뒤쫓고 있었다. 그는 김 중위가 결코 양반이 못된다는 생각을 하며 소리쳤다.

  "김 중위! 잠깐만 참아!"

  조 소령의 F-16이 급선회하여 미그의 뒤쪽으로 달라 붙었지만 미그기 조종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는 약 1.2마일정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미그는 김 중위의 기체를 향해 기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인터폰을 통해 김 중위의 비명이 들려왔다.  조 소령은 무기셋팅을 AIM-9R 사이드 와인더로 바꾸었다. 광학추적방식의 AIM-9R이 적기를 포착했다. 소리가 커졌다.

  "FOX TWO!"

  두 발의 사이드 와인더가 조 소령의 F-16에서 점화되어  약간의 충격을 남기고 미그기로 돌진했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미그기는 이제야 알아 차렸는지 회피기동으로 들어갔다. 플레어와 채프를 마구 투하했으나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AIM-9R은 그런 방식에는 교란되지 않는 광학추적식 시커를 가진 미사일이다.  한 발이 엔진노즐에 빨려 들어가고 한 발은 미그기의 꼬리날개 바로 밑에서 폭발했다. 미그의 동체 후부가 완전히 날아갔다.

  캐노피가 날아가고 조종사를 태운 시트가 차가운 한국의 겨울 하늘로 침몰하듯 가라 앉았다. 낙하산이 활짝 펴지고 주변에 적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조 소령은 탈출한 조종사에게 날개를 흔들어 주었다. 탈출한 중국 조종사가 주먹쥔 손을 치켜들었다.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 소령은 헤드기어 안으로 미소를 지었다.

  편대를 모아 상황보고를 들어 보니 적기 3대를 격추시키고 아군은 최 대위의 한 대만 격추되었다.  3대 남은 F-16이 편대를 짜서 수원비행장을 향했다. 연료는 어느새 빙고상태가 되었다. 조 소령이 서둘러 최 대위의 낙하지점을 E-2C에 보고하고 남쪽으로 기수를 잡았다.  남쪽 하늘에서 또다른 편대가 북쪽을 향했다.

  1999. 11. 25  03:15  경기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이중포위망 완성! 섬멸작전 진행 중입니다."

  정 지수 대장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김 병수 대장도 중앙의 화면을 보며 들떠 있었으나 다른 참모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서서히 한 명씩 상황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1개 사단의 증원보다는 한 시간의 수면이었다.

  "제 1기갑의 전차대대와 북부군이 드디어 연결됐습네다.  전차대대는 즉시 선천쪽으로 향해했다는 보곱네다...... 동지들이 다 어데로? "

  정 대장과 김 대장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상황실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박 정석 상장만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소파에 몸을 묻고 졸고 있었다.

  1999. 11. 25  03:20  평안북도 정주 남쪽 9 km 해안

  서해안을 따라 중국군 2개 사단이 몰려있었다. 압도적인 숫자의 통일한국군은 후퇴할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이들을 몰아붙였다. 이들이 공격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구축하려는 순간 서해바다 쪽에서 불기둥이 몰려왔다.외장도 인근 해상에 포진한 서해함대에서 함포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인민해방군은 해안에 집중되는 포화를 피해 내륙쪽으로 이동했다. 이들에게는 차라리 한국군의 전차가 대적하기 쉬운 상대였다.

  어두운 밤바다 위에 작은 물체들이 새까맣게 해안을 향해 몰려들었다. 100여척의 남포급 LCP들이 해안으로 쇄도했다.  이 상륙정들은 80톤 밖에 되지 않는 소형함이지만, 속도는 40노트나 되며 30명의 보병이 탑승할 수 있다. 각 2기의 2연장 14.5밀리 기관포가 해안 일대를 휩쓸었다.

  이들 뒤로 100여척의 또다른 상륙정들인 소종급 하버크래프트(hover-craft)가 몰려왔다. 영국의 기술을 도입하여 1987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이 상륙정들은 다행히 동족상잔이 아닌, 외국의 침입에 대해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 하버크래프트에는 각 60명씩의 상륙경보병여단 대원들이 탑승하고 해안선을 노려 보았다.

  통일한국군 서해함대의 사령관인 인민군 출신의 김 종순 중장은 동해 함대로부터 긴급 지원받은 한국형 구축함, 남이함의 함교에서 상륙전을 지휘하고 있었다.  김 중장은 오랜만에 자신있는 임무인 상륙전 지휘를 맡아 신명이 났다.  정주쪽 해안선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그의 함포사격 지휘는 정확했고, 상륙지점 선정 역시 나무랄데가 없었다.  그의 지휘로 중국군으로부터 별 저항을 받지 않고 2개 여단의 상륙경보병 부대를 해안에 상륙시켰다.

  함수의 127밀리 단장포는 해안을 향해 계속 포탄을 발사하고 있었다. 분당 20 발씩 발사하는  이 오토 멜라라사의 자동포는 흡사 기관총처럼 화염을 연속 뿜어냈다. 구식 기어링급 구축함인 경기함은 같은 127밀리 구경인 Mk-38 함포가 2연장 2기가 있는데, 분당 15발의 속도로 25 kg의 포탄을 퍼부었다. 구식함이 오랜만에 대활약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상륙전 지휘 도중에도 북쪽 하늘을 감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이제 다시는 기함을 잃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의 기함이었던 전북함은 침몰하고 충북함은 조선소에서 수리중이었다.  한국형 구축함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이제 자신감이 생겨서 자꾸 통일참모본부에 서해 함대에 의한 중국 해안선 공격을 건의했다.

  1999. 11. 25  04:00  동지나해 (동경 122도 10분,북위 26도 23분)

  대만 북단 펭치아(彭佳嶼)에서 동북 20 km인 이곳 동지나해상에 반전 전사 집단인 피스의 함대가 서쪽으로 항진 중이었다.  상공에는 20여기의 미그-29 전투기들이 전투초계 중이었고, F/A-18 전폭기들은 착함 중이었다. 상공의 위협이 사라진 지금, 대잠초계기와 헬기들은 바삐 해상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간단했다. 동지나해 해상의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중국의 해상수송로를 차단하고 중국의 해안방어부대들과 계속 교전하여,  이 전력을 중국군 지도부가 한반도쪽으로 빼돌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함장 겸 함대사령관이며 러시아 해군 출신의 퇴역 제독인 루시쵸프는 전황판을 보며 두 시간 동안 격추시킨 중국 항공기의 숫자를 확인했다. 피스 함대의 함재기인 MiG-29 편대는 미그-21 Fishbed와 같은 스타일인 시안 J-7(섬-7) 함대방공전투기 34기를 격추시켰고,  함대 소속의 대공 미사일 순양함과 F/A-18 편대는 합작으로 미그-19 Farmer 유형인  센양 J-6 해상공격기를 73기나 격추시켰다.

  처음 이 중국 전투기들이  레이더를 온통 덮으며 떼지어 공격해올 때 루시쵸프는 함대의 최후를 생각했으나, 이들의 공격력은 의외로 약했다. 대신에 피스의 함재기용 미사일이 거의 바닥나서 한번 더 공격받았다면 진짜로 최후를 맞을뻔했다며 그는 놀란 가슴을 쓸었다.

  J-7 전투기들은 미그-21이 항공역학적으로 우수한 설계의 명작전투기임에도 불구하고, 지상레이더 기지의 관제를 받지 못한데다 공대공미사일은 사정거리가 짧은 적외선 유도방식이며 구식인 AA-2 Atol 뿐이라서 피스의 함재기들에게 처절할 정도로 당했다. 격추된 J-7 중에서 25기는 미그-29 편대로부터 레이더에도  안잡히는 장거리에서 미사일공격을 받고 추락했고, 나머지는 중국 해안쪽으로 도주하는 중에 격추되었다. 34기라는 이 숫자는 중국 해군에 소속된  시안 J-7 전투기의 거의 절반에 해당되었다.

  삼각익인 미그-21은 다양한 종류의 파생형이 있으며,  원래는 요격기로 개발되었으나 MiG-21 PFMA 같은 경우는 전투폭격기로 개량된 경우이다. 구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때 바스람 기지에 주둔했던 소련공군의 MiG-21 MF(피시벳 J)는  Gsh-23L  기관포를 동체 아래 기축선에 장착한 유형이다.

  J-6의 대규모 편대는 엄호기인 J-7이 피스의 미그-29 편대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항공모함으로 돌진했다.함대 상공에 대기하고 있던 24기의 F/A-18 편대는 이들을 향해 모두 144발의 AMRAAM을 날렸다. 밀집대형으로 몰려오는 이 전투기들은 추풍낙엽처럼 바다로 떨어졌다.  F/A-18 편대는 미사일을 모두 발사한 후 이들과의 접근전을 피하며 거리를 두고 함대 상공을 선회했다. 중국 공격기들이 함대에 접근했다.

  러시아제 슬라바급(제식명 1164급) 유도구축함  빌나 우크라이나에서 SA-N-6 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저공으로 접근하는 적기는 SS-N-4 단거리 대공미사일로 요격했다. 막대한 피해를 보며 함대에서 3km까지 접근한 중국 공격기들은 겨우 대공미사일인 PL-2  2기씩을 발사하고 도망갔다. 중국제 적외선 유도방식의 공대공미사일인 PL-2는 아직까지도 제한적인 대함공격에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사정거리 3 km의 이 미사일은 항모에 탑재된 30밀리 AK-630에 의해 대부분 격추되었다. AK-630은 레이더로 자동 유도되는 6총신의 근접방어화기이다. 러시아 해군은 이 병기를 미사일 요격시에 상호보완하도록 쿠츠네초프급 항모의 네 곳 같은 위치에 2기씩 배치했다.

  피스함대 승무원들은 중국 해군기들의  집단자살과도 같은 이 공격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루시쵸프는 항공기에 의한 제 2파의 공격이나 이들이 양동부대인 경우 다른 유형의 공격을 예상했으나, 아직 함대는 이렇다할 어떠한 유형의 공격도 받지 않고 있었다.

  "이제 좀 조용해졌군."

  루시쵸프가 함대 주위에 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전투함교의 의자에 앉아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함장인 루시쵸프는 타이완쪽에서 치열한 공격이 있을 줄 예상했으나 의외로 그쪽에서는 전투기들이 날아오지 않았다.  중국에 의해 점령된 타이완의 조종사들이 피스에 투항할까 두려운 중국군 지도부가 이들의 출격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타이완 조종사들은 망명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타이완이 패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조국은 중국인 것이다.

  루시쵸프는 함대가 이 해역에 진입한 이유는 타이완을 공격하기 위한 작전이 아니라 본토의 푸젠성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도 타이완에서 출격하는 전투기는 달갑지 않았는데 다행이었다.  그는 중국의 신형 전투기들이 거의 소모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존심 강한 중국군의 지도부가 중국해상을 봉쇄한 피스함대가 이렇듯 날뛰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갑판에는 공격을 마친 전투기들의 착함이 계속되었다. F/A-18 전투기들의 착륙은 매우 우아해 보였다.  레이더를 사용한 완전자동 착함유도장치에 의한 이들의 착륙은  광학식 착륙유도등에 의한 백업을 받아 모두 안전하게 착륙했다. 이들은 착함 즉시 승강기에 의해 아래쪽 격납고에 수용되어 연료와 무기 보급을 마쳤다.이들에 이어서 미그-29들의 착함이 시작되었다.

  함교 맨 꼭대기층인 주항공관제소 아래층의 항해 및 전투함교에서 루시쵸프는 오늘 새벽의 공격목표인 저장(浙江)성의 항저우(杭州)와 푸젠(福建)성의 푸저우(福州) 및 시아먼(厦門)에  대해 다시 검토했다.

  시아먼은 루시쵸프가 현역 시절에  러시아 극동함대를 이끌고 친선방문했던 곳이었다.  廈門은 타이완하이시아(臺灣海峽)을 사이에 두고 타이완과 마주 보고 있는 항구도시로 중국이 1979년에 경제특구로 지정한 이후 크게 경제발전이 된 도시이다. 해상으로 동쪽 7km지점에 티이완령인 진먼따오(금문도)가 있어서  예전에 타이완과 긴장관계일 때는 군사도시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륙쪽의 지메이(集美)와 시아먼따오(廈門島), 그리고 꾸랑위따오(鼓浪嶼島)의 3개 지역으로 이뤄졌다.

  루시쵸프의 기억에 푸저우와 시아먼에는 대공미사일 발사기지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나 커다란 몸체에 사정거리 40km에 불과한 중 국제 지대공미사일은 최신의 초음속전투기에는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시아먼에는 MRBM이!! "

  루시쵸프는 콘솔을 조작하여 중국군의 핵전력에 관한 정보를 찾았다. 중국의 전략군인 제 2포병(전략로켓부대)은 중앙군사위원회의 직접통제를 받으며 모든 전략미사일을 관장하고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원자력잠수함도 지휘한다.  제 2포병은 군구별로 배속되어 있긴 하지만 중앙군사위원회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자료에 나와 있었다.

  루시쵸프는 시아먼에 있는 미사일의 유형을 확인했다. 탄두위력 20KT 에 사정거리 1,200km의 MRBM(중거리 탄도탄)이었다. 중국에서는 DF-2로 분류하고 서방세계에서는 CSS-1로 부르는 구식 미사일이었다.이러한 유형의 미사일은 중국에 50기가 있으며, 최근 ICBM(대륙간탄도탄)의 사거리 연장에 중국이 온 힘을 기울였고  중거리탄도탄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므로 지금도 미사일 수의 차이는 없었다.  중국에는 7곳의 MRBM 기지가 있으므로 이곳 기지에는 약 7기의 중거리탄도탄이 배치된 셈이다.

  루시쵸프는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핵미사일은 중앙군사위원회의 강력한 통제에 놓여있지만,  일선부대에서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핵미사일 발사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는 통신체계가 비교적 확실한 미국이나 러시아와도 다른 점이었다.  중국은 통신위성에 의한 전시 전략핵방어명령체계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지만, 적국에 의한 통신위성의 요격을 염려하여 중앙에 의한 미사일 발사권한의 완전한 독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루시쵸프가 공포를 느꼈다. 그는 피스의 함대가 상하이나 하이난따오(海南島)를 공격할 때는 중국해군이 그래도 최선을 다해 방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해군함정이 전멸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소형의 미사일고속정과 어뢰정까지 동원하여 피스의 공격을 저지하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이 해역에서는 아직 중국의 어떠한 해군함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잠수함의 흔적도 없었고, 다만 구식 공격기들의 단말마적인 저항만 있을 뿐이었다. 루시쵸프는 중국이 뭔가 다른 생각을 가졌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군인으로서의 그의 육감은 중국이 자국 영해로 발표한 이 해역에서 그와 부하들을 탈출시키도록 했다.

  "침로 0-9-5!  이 해역을 긴급 이탈하라. 함대, 최대한 분산하라! "

  함장의 갑작스런 명령변경에 함교의 모두가 놀랐으나 일단 그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함교요원들이 다시 바빠졌다. 항모에 착륙중이던 전투기 중에서 장거리요격 능력이 있는 개조된 미그-29전투기 4대가 즉각 연료 보급과 무기 탑재를 마치고 이륙하기 시작했다.E-2C 조기경보기뿐만 아니라  함대의 모든 함정들이 레이더를 키고 하늘의 위협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의 오랜 동료인 순양함의 함장이 루시쵸프의 걱정을 눈치채고 걱정말라고 전문을 보냈지만 그의 걱정은 사그러들지 않고 조급해지기만 했다.  일본의 88함대가 함대의 동쪽인 센카쿠열도에서 접근해 온다는 경보가 울렸으나 지금은 잡다한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피스의 함대는 최대한의 속력을 내어 동쪽으로 항진했다. 거의 도주한다고 할 정도로 이들의 속도가 빨랐다.  잠수함으로부터의 위협을 막는 역할을 하는 대잠초계기들은 너무 빠른 함대의 이동속도에 놀라 황급히 함대의 진행방향에 소노부이를 투하했다.

  1999. 11. 25  04:35  중국 베이징, 베이징판띠엔

  겨울로 접어든 북경의 밤은 어두웠으나 천안문광장 동쪽에 있는 베이징판띠엔(北京飯店--일급호텔)은  정치국 상무위원들에 대한 저격 이후 밤을 낮처럼 밝히며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바짝 긴장한 채 경비를 하고 있었다.  이 호텔은 내전 당시 중국의 구 지도부가 사용해왔는데, 내전에서 승리한 남부중국의 실력자들이 중앙을 접수한 후에도 이곳은 비공식적인 정치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왔다.

  내란 이후 중국 중앙정치의 최고 권력가이며, 광둥-푸젠 지역의 실질적인 총수인 중국 공산당 총서기 리루이환은  이 호텔의 신축건물인 꾸이삔러우(貴賓樓) 3층의 집무실에서 군 장성들에 의해 둘러 쌓인 채 심리적 압력을 계속 받고 있었다. 이들은 당 중앙군사위 위원들뿐만 아니라, 3대총부(3大總部 -- 총참모부,총정치부,총후근부)의 장들과 해, 공군 및 전략미사일군의 사령관, 그리고 7대군구중 조선침공에 나서지 않은 군구사령 등, 모두 20명에 가까운 고위장성들이 총서기의 결단을 강요했다.

  "국제적인 압력이 두려워서 조선반도에 대한 핵 사용이 안된다면, 차라리 중국의 영토나 영해에 핵을 써서라도 적의 기세를 꺾고, 우리에게 유리한 휴전협정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인민해방군 해군 사령인 창 리엔충 상장(上將)이 총서기의 책상에 두 팔을 짚고 총서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창 해군상장은 일반적으로 중장이 맡던 해군사령에 다시 임명된 퇴역 장군이었다. 그는 내전 당시 군부에서의 그의 영향력을 높이산 총서기의 요청으로 현역에 다시 복귀하여, 해군과 공군,그리고 일부 중립을 선언한 대군구를 남부중국의 편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 공로로 정치국 후보위원에까지 오를 수 있었고, 군사위원이 되지 않고 현역에 남음으로써 총서기의 후견인을 자임했다. 70대 초반의 창 상장이 손자를 달래듯 50대 후반의 젊은 총서기를 설득했다.

  "조금 전에 피스 함대를 치던 우리 해군 항공대가 거의 전멸했습니다. 신형함과 신형 전투기가 거의 없는 지금, 적들은 우리의 영해에서 마음껏 학살을 즐기고 있단 말입니다.  곧 시아먼(廈門)과  푸저우(福州)가 이들의 폭격을 받아 잿더미로 변할 것입니다. 이곳은 총서기 동지와 정치국 주요 상무위원들의 정치적 기반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홍콩과 상하이, 난징(南京)의 예에서 보듯이 이들은 군사목표와 민간 목표를 구분하지 않는 잔인한 용병들입니다. 인민해방군 해군이 안타깝게도 전멸한 이상, 이들을 막을 전력은 이제 전혀 없습니다."

  창 상장은 의도적으로 해군 소속의 1개 항공사단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감추고 싶었다. 제한된 해역에 몰려있는 함대를 향해 사방에서 대함미사일을 발사했으면 항공기의 피해도 줄이고 피스 함대를 격퇴시킬 수도 있었지만,  창 상장은 잔인하게도 해군 항공대를 자살공격으로 내몰았다.  그는 항공기들의 무모한 돌격으로 인한 피해가 클수록 총서기의 결단이 빠를 것으로 믿은 것이다.

  그와 다른 장성들의 요구는 핵 위협을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군사위 소속 위원들과 각군의 최고지도부인  이들은 한국과의 전쟁에서 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치욕을 맛보았다.  보름 안에 한반도를 완전 점령한다는 그들의 계획은 처참하게 깨어지고,  이제 그들은 한국의 역공에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조금 전에는 한반도 북서쪽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던 인민해방군 제 17병단 전병력이 통일한국군에게 삼면에서 포위당하여 항복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가 비암호 무선통신을 통해 들어왔다.  내전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쓰취앤(十全)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은 17병단 사령, 위앤팡 중장은 휘하의 서부전선 3개 집단군이 완전 포위당하여 전멸당할 위기에 처하자, 부하들에게 항복을 명령하고 자신은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비보도 들어왔다.

  17병단은 16병단의 후속부대였다.  개전초기에 평양까지 밀고 내려갈 기세였던 제 16병단은, 이미 예하의 3개 장갑집단군이 전멸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보병사단만으로 만주에서 재편성을 하고 있었다. 17병단은 이들이 빠진 전선을 간신히 방어했는데,  안주에서 크게 패배하고 이후의 전투에서도 계속 한국군에게 밀렸다. 정주에서 포위될 때는 처음 편성되었을 때의 겨우 절반의 병력만이 남아있었다.  결국 인민해방군 제 17병단의 20여개 사단 중에서, 마지막 11개 사단이 정주에서 최후를 맞은 것이다.

  동부전선인 함경북도의 인민해방군 제 5병단도 패배를 맛보고 있었다. 흥남에서 중국군에게 포위되었던  인민군 3군단과 5군단은 이제 입장이 바뀌어 공격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이들은 진격속도가 하도 빨라서 어느 부대가 먼저 두만강에 도달하는가 내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제 9 기계화군단과 3개 상륙경보병여단이 가세했고, 한국군의 2개 공수여단도 내기에서 빠지지 않을 작정인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통일한국군은 청진까지 수복했으며, 이같은 진격속도로는 이틀이면 두만강에 닿을 수 있었다.  지금도 이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 한나절에 1개 사단의 인민해방군이 전멸, 또는 포로로 잡히고 있었다.

  반면에 침공군의 입장인 중국 인민해방군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때 이른 폭설로 전선으로의 보급활동이 완전 마비되었다.  현재는 일부 도로가 개통되어 급한 군수품과 병력을 이동시킬 정도는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게다가 이들의 이동도 각처에서 활약하는 유격대 때문에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중국의 중앙군사위원회는 점령지대의 유격부대를 폭설 전에 미리 제거하지 못한 과오를 반성하고 있었다.  어쨋든, 중국군은 오늘 새벽 평안북도 서부의 포위섬멸전과 함께 전 전선붕괴와 후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 주시오, 총서기 동지!  전쟁에서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일단 이기고 보는 법이오.  패전의 모든 책임을 총서기가 지기 싫으면 핵을 사용하란 말이오."

  창 리엔충 해군상장에 이어 첸 쯔밍 총후근부장이 총서기를 윽박질렀다. 여기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출세한 난징군구 사령 리양시(梁溪) 중장이 가세했다.

  "총서기 동지, 당과 인민, 그리고 인민의 군대를 생각하시오. 동지께서 우리 인민과 군을 무시하신다면..."

  리양 중장의 말은 총서기에게 협박으로 들렸다.  군부가 합심하여 총서기를 몰아내거나,  최악의 경우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화가 난 총서기는 앞장서서 핵 사용을 주장하는 자들의 면면을 살펴 보았다. 뭔가 공통점을 발견하자 그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모두 이번 전쟁에서 가장 졸전을 보여준 인물들이었다.

  해군은 참패가 아니라 아예 전멸했으며, 총후근부는 날씨예측을 잘못해 인민해방군에게 가을옷을 입힌 채 이들을 전선에 내보냈다.  그리고 현재의 전황이 이렇게 된 것은 기상악화 탓도 있지만, 후방의 게릴라를 소탕하지 못한 그의 잘못이 컸다. 마지막으로 난징 군구 사령은 작전실패로 인해 중앙으로 소환된 인물이었다. 한반도 동부전선에서 인민군의 전선을 돌파한 제 39 집단군과 제 5 병단 주력을 제대로 연결시키지 못해 동부전선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고, 이 여파가 서부전선까지 이어진 것이다.

  '자기들이 패전 책임을 지기 싫으니까  핵을 사용하자고 꼬드기는 모양이지...'

  총서기는 핵을 사용했을 때의 파급효과를 생각했다. 겁먹은 한국군은 아마도 더 이상 공세를 강화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전선이 고착되고 잘하면 정전협상 테이블에서 의외의 양보를 얻어낼 지도 몰랐다.  중국이 바라는 가장 큰 욕심은 두만강 유역 일부의 조차였다.  북한과 러시아에 의해 동해로 빠져나가는 길이 막힌 중국은 두만강에서의 자유항해권은 계속 유지했으나,  유사시에 통행이 막혀버리기 때문에 이 수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 그는 한반도를 장악하지 못하더라도 동해--아니, 일본해라고 그는 정정했다--에 진출할 수 있다면  한반도쯤이야 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승전하더라도 막강한 중국의 위협에 놀라 계속 방위비 증강에 쪼들리게 되고, 일본은 중국과 접하게 되어 크게 놀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전쟁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한국을 점령할 줄 알고 남동임해공업단지를 초토화시키지 않은 것은 실책이었다. 이제 이곳은 공습을 하고 싶어도 장거리 폭격 능력이 떨어져 못하게 되었다. 그는 이번 전쟁의 세부계획을 세우고 시나리오를 작성한 총참모부에 대해 분노가 일었다.  총참모부장은 살기등등한 장군들 뒤의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국제관계였다.일단 미국과 러시아가 핵의 사용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아직까지 한번도 전쟁에서 핵이 사용되지 않았다. 핵이 사용될 경우의 상호 보복이 두려워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나라와 분쟁이 생길 경우, 핵 사용 경험국은 핵의 선제공격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것이 더 큰 문제였다.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가 가장 큰 가상적이므로, 이들 핵강대국을 상대로 선제 핵공격을 받았을 경우 과연 중국이 남아날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자국 영해 내에까지 침공한 적에 대한 핵 사용이라면...'

  총서기인 리루이환은 이들의 유혹에 넘어갈까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그 해역은 타이완 점령 뒤부터는 국제해양법의 기선주의에 따라 자국영해로 인정받을 수도 있는 해역이었다.  그는 핵을 쓰기 전에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들에게 핫라인(비상전화)으로 통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광쟈우가, 광쟈우가!"

  통신군관의 얼굴이 하얗게 되어 총서기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이 장교가 발음한 광주(廣州)는 분명 광둥어(廣東語)식 발음이었다.  아무리 남부중국이 천하통일을 했고, 정치와 경제지도자의 대부분이 남중국 계통이라지만 군대에서의 표준어는 역시 아직도 북경어였다.  통신군관은 고향에 뭔가 안좋은 일이 생겨서 무척 당황한 것이다. 중국인에게 고향은 조국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야? 광저우가 어떻게 됐어? "

  총서기가 베이징(北京)어식으로 물었다. 약간의 경음화가 된 꽝저우, 또는 쾅초우가 베이징어 발음에 가깝다.  광둥어와 베이징어의 발음 차이는 불어와 독일어의 차이보다도 심해서, 상대의 말을 모르면 아예 통역을 대동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군사위원 등 군 고위장성들도 광둥의 성도인 광저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걱정되었다.  해군 초계기의 보고로는 피스 함대는 아직 공격하지 않고 있다고 했었다.  시아먼(廈門)이나 푸젠성의 푸저우(福州)가 먼저 당하지 않고 광저우가 당했다는 것은 의외였다.

  "광저우가 불타고 있습니다. 시내가 온통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거대한 미사일이 아직도 하늘을 날고 있답니다."

  통신군관의 말에 장성들이 놀랐다.  이 정도 거리까지 도달하는 미사일이라면 해상발사 토마호크나 인민군의 대포동 2호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피스 함대는 인공위성과 초계기들의 주요 감시 대상이므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낱낱이 이곳에 보고되고 있었다. 결국, 피스 함대의 토마호크식 함대지 미사일은 아니고, 한반도에서 발사된 사정 3,500 km의 대포동 2호라는 뜻이었다.

  리루이환 총서기가 놀라 입이 쩍 벌어졌다.  통신군관이 총서기 집무실에 있는 대형 TV를 켜니, 그곳에 불타는 새벽의 광저우가 군사위원회 직속 통신부대의 폐쇄회로를 통해 생방송되고 있었다.  광저우후어처잔(廣州火車站--기차 역)의 호텔 겸용인 거대한 역사(驛舍)와, 바로 맞은편의 리우화삔꽉(流花賓館)이 통째로 무너졌고, 남쪽의 런민루(人民路)에 있는 큰 건물인 전보전화국이 반쯤 무너진 채 불에 타고 있었다.

  촬영을 하는 헬기가 좀 더 상승하며 남쪽으로 선회했다. 홍콩으로 흐르는 주지앙(珠江)에 놓인 다리 두 개가 반토막이 나 있었다. 남서쪽에 불타고 있는 곳은, 이곳이 고향인 총서기의 눈에 보기에 홍콩과 마카오로 가는 페리의 선착장이 틀림없었다.

  스짜이광저우(食在廣州), 먹을 것은 광저우에 있으며 하늘을 나는 것은 비행기 빼고 다 먹으며 네발 달린 것은 책상 빼고 다 먹는다는 식도락의 도시, 한나라 이후 번성한 해상무역 도시, 아편전쟁과 신해혁명의 도시,  그리고 수백만 중국 화교들의 고향인  이곳 광저우의 밤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불타는 거리를 누비며 소방차들이 달렸다. 성질 급한 인민들이 짐을 지고 도시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새벽의 광저우 거리는 때아닌 인파로 가득 찼다.

  피난행렬을 본 총서기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상하이가 공격받자 연안도시의 인민들은 도시를 버리고 내륙 깊숙히 도망가 버렸다.  홍콩이 공격을 받은 이틀 전에는 외국인과 이중국적의 홍콩인들이 모두 해외로 빠져 나갔다.  이제 남부의 내륙도시인 광저우가 당한 지금, 도시의 노동력이 남아나지 않을 것임에 뻔했다.  이는 군수품생산에 차질을 빚어 가뜩이나 불리한 전황을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 되었다.

  "뭐하는 거요? 빨리 발사하지 않고!"

  총서기가 전략미사일군 사령에게 역정을 내었다. 공포와 분노가 범벅이 된 표정의 장성들이 갑자기 표정이 환해졌다.  전략미사일군 사령인 쏭윈펑 중장이 직통전화를 잡고 난징군구의 제 2포병 사령을 호출했다. 쏭 중장이 핵공격의 암호를 대자  제 2포병 사령은 당장 시아먼의 전략 미사일대대를 불렀고, 그는 즉시 피스함대에 대한 핵공격을 지시했다.

  1999. 11. 25  04:50  중국 광저우, 주지앙(珠江) 하저

  한국해군의 209급 잠수함 7번함인 성진함의 발령실에서 함장인 이 승렬 소령이 잠망경으로 바깥을 살피고 있었다.그의 표정은 중국 본토 깊숙한 이곳 내륙의 광저우를 공격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민간인들을 공격했다는 자책감이 뒤섞인 묘한 표정이었다.  성진함은 23일 밤에 홍콩에 미사일공격을 가한 잠수함이다.  홍콩 공격 후 하루 약간 더 걸려서 이곳 광저우에 도착하여, 수중에서 레이더로 포착된 시내의 대형건물에 지상공격용 하픈을 날린 것이다.  강에 걸린 두 개의 다리는 어뢰로 공격했음은 당연했다.

  함장이 잠망경을 올리고 잠망경대에서 내려왔다. 온통 황금빛으로 환한 함내는 침묵으로 무거웠다.  수병들은 TV화면에 비친 불타는 광저우는 보지도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신경썼다.수병들은 잠수함에 의한 광저우공격은 함장의 무리한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돌아갈 길은 거의 막힐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살아돌아갈 희망을 갖지 않았다. 홍콩으로 가는 강 하구 곳곳에 중국해군의 전력을 동원한 잠수함 찾기가 시작될 것이며, 운이 좋아 포로가 되더라도 비무장의 중국인을 학살한 자신들이 살아남게 되리라는 헛된 상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에이, 쓰펄! 기분 풀어. 살아 돌아가면 되잖아? "

  이 소령이 부하들의 감정을 눈치채고 이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려 했으나 침묵은 계속되었다.  그는 광저우 공격의 당위성을 설명할까 하다가 부하들의 표정을 보고는 단념하고 말았다. 폐쇄사이클 엔진의 신형 209급 잠수함은 수병들의 침묵처럼 조용히 주지앙의 강바닥을 기듯이 낮은 심도로 계속 동쪽으로 향했다.  저심도 항해용의 저주파 소나만이 가끔 웅웅거리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1999. 11. 25  06:00  평안북도 선천군, 노하

  동녘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밤새 기나긴 전투를 치르느라 녹초가 된 병사들이 동쪽을 마주보고 길게 파인 참호선 안에서  평야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원래 민간인인 이들 인민군들은 며칠간의 야간전투에 익숙해졌는지 아직 잠이 필요할 것같은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간 밤낮으로 한시도 편히 수면을 취하지 못한 차 영진 중령은 머리가 빠개지진 기분이었다.

  그의 이상증상은 말에서 나타났다. 한번 지시한 명령을 자꾸 다시 내리는 것이다. 그도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통신군관인 김 소위가 불안한듯 자꾸 차 중령을 쳐다 보았다.

  차 중령은 피곤한지 자꾸 인상을 쓰며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장갑지휘차의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겨울 새벽의 찬바람이 뺨을 스쳤다.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었다.갑자기 요의를 느낀 그는 장갑차에서 내려 참호 뒤쪽 구석으로 갔다.

  멜빵이 달린 흰색 스키바지 지퍼를 내리고 그 속에 입은 인민군식 누비바지를 벗었다. 다시 속의 군복바지 단추를 풀고 간신히 팬티에서 물건을 꺼내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오줌이 떨어지는 자리에는 눈이 녹아 흙이 보였고, 주변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고 아래쪽을 보았다.

  귀두 뒷쪽에 때가 잔뜩 끼어있었다. 사타구니도 끈적끈적하여 기분이 나빴다. 그는 전쟁 시작일부터 목욕은 커녕 머리도 감지 못했다.대목산 요새에 세면장이 갖춰져 있었지만, 지휘에 바쁜 그는 차라리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아까와 반대순서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녹았다가 다시 언 참호 위의 눈을 한줌 쥐어 얼굴에 대었다. 별로 차갑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약간 정신이 들었다.  그는 문득 평야 건너 동쪽 산 아래에 시커먼 물체들이 줄지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망원경을 들고 보니 그것이 전차대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잽싸게 장갑지휘차로 내달렸다. 장갑차 안에 있던 김 소좌가 정찰대의 보고를 받았는지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왔고, 참호선에 있던 병력은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비상신호가 오갔다.

  김 소좌가 하얀 김을 뿜으며 망원경으로 동쪽을 살폈다. 대규모 전차부대의 출현에 김 소좌는 아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차 중령은 장갑지 휘차의 뒷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위쪽으로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전차대열을 살폈다.

  "차종은 모르겠답네다만... 려단규모로 추정된답네다."

  "그렇다면 정찰대는 공격하지 말라고 하시오.  혹시 우리편일지도 모르오."

  김 소좌의 보고에 차 중령이 명령했으나,김 소좌는 이미 정찰대와 전체부대에 그런 명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과연 전차대열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전차들이 접근해 올수록 차 중령의 긴장이 더해졌다.  그가 평소에 보던 전차는 결코 아니었다.  K-1이나 T-62 등의 남북한이 보유한 전차는 결코 아니었고, 미국제나 중국제 등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육중한 무게의 전차들은 멀리 실루엣만으로 보면 포탑이 사마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탑은 납작하고 앞부분으로 갈수록 날카로왔다. 그리고 포탑은 차체와의 비율이 안맞을 정도로 작아 보였다.  아니, 포탑에 차체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차 중령은 예외없이 달걀형 포탑인 러시아 및 중국제 전차, 그리고 네모나게 각이 진 독일제 레오파르트나 차체에 비해 포탑이 큰 편인 M-1 에이브럼즈 전차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종류는 절대 아니었다.  전체 포탑이 경사면으로 이뤄진 챌린저도 결코 아니었다. 전차들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도대체 저놈의 땅크는 어느쪽 겁니까?"

  "글쎄요... 120밀리 포에 방열피복이 있군요. 포신의 뿌리가 포탑 위까지 올라온 걸 보면 아무래도 메르카바가 아닐까 하는데요..."

  전차부대 지휘관이었던 차 중령도 이들 전차의 차종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차종을 알아야 피아를 구분할텐데 도대체 처음 보는 차종이라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새벽 내내 동쪽 산등성이 마다 포화가 피어났었다.  이제 해가 뜰 무렵이 되어서야 포성이 그치고 새벽의 정적이 찾아왔는데, 다시 너른 들이 전차의 굉음에 묻힌 것이다.

  "이스라엘제 멜카바요? 에이, 설마요."

  "기축기관총과 좌우 양쪽 큐폴라의 기관총,  포탑의 생김새로 봐서는 아무래도... 전투준비 시키시오. 그리고 차련관쪽 상황도 체크... 아니 점검하시오."

  "알갔습네다!"

  김 소좌가 해치를 닫고 아래로 내려갔다. 차 중령이 망원경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부대원들은 벌써 전투위치에 배치되었다. 분대마다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인 밀란의 발사준비로 바빴다. 전차들이 참호선 2km 전방까지 진출했다.  이들은 다리 건너에 있는 참호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전진해왔다. 전차의 수는 점점 불어나고 전선에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었다.

  "최 대좌 동지는 부상중이랍네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답니다."

  차 중령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딱 일주일을 버티고 이젠 한계에 달했다는 생각이었다.  최 대좌에게는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할 것이다.  그는 차 중령 자신보다 군대경력이 훨씬 많으니 스스로 판단하길 바랐다. 그는 앞에 있는 전차를 막기도 벅찬 것이다.

  "그리고..."

  김 소좌가 차 중령의 눈치를 보며 계속 보고했다.

  "산악전 1대대와 야간전대대는 큰 피해를 입고 후퇴중입니다. 후퇴하면서도 지연공작을 펼치고 있습네다만, 날이 밝아질수록 불리해지고 있답네다."

  차 중령이 신음성을 냈다.  그는 김 소위가 쭈뼜거리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물었다.

  "한시간 넘게 이곳에서 통신을 했는데도 아직 적의 포격을 받지 않았습네다. 적의 통신추적부대는 없다고 보시는 것이...  지금 공용주파수로 통신을 해보는 것이 어떻갔습네까?"

  "하시오."

  차 중령은 약간 화가 난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진작 알고 있었다면 스스로 해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모든 결정을 지휘관에게만 미룬다면 참모들이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답답했다.

  풀이 죽은 김 소위가 통일한국군 공용주파수로 비암호 음성통신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곳의 위치를 말하며  전방의 전차부대가 어떤 것인지 물었다. 김 소위는 당당하게 북부군 지휘부라고 밝혔다.의외로 바로 응답이 왔다. 감도는 바로 앞에서 말하는듯 분명했다.

  [통일한국군 소속의 피스부대 통역관 채 세찬 중위입니다. 현재 선천으로 진입중! 전방의 소속미상의 부대가 북부군인지 확인바란다. 오버~ ]

  차 중령뿐만 아니라 김 소좌와 김 소위 모두 의아해했다.  처음 듣는 부대명이었으며, 자신들이 알기로는 남북 연합의 독립부대는 아직 없었다. 게다가 외국어 이름의 부대라니. 갑자기 통신망은 여기저기서 오는

통신으로 혼잡스러웠다.

  [여기는 국군 해병 1사단이다. 피스 부대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그동안 고생했다. 오버~]

  [통일한국군 제 1 기갑사단이다. TV 뉴스에서 귀가 따갑게 귀 부대의 무훈을 들었다. 귀 부대의 전승을 축하드린다. 오버~ ]

  [인민군 93상륙경보병여단입네다! 동지들, 욕 봤슴메~ 날래 가갔시요.]

  김 소좌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김 소위로부터 통신기를 넘겨받았다.

  "동지들~  날래 오시구레. 고맙수다. 선천을 지나 철산군 차련관으로 바로 가시오! 동지들, 정말 고맙소! "

  김 소위가 예하부대와의 통신을 열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차 중령이 장갑차의 해치를 열고 나와보니 참호 위에는 인민군들이 올라와 인공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참호 바로 앞에까지 온 선두의 전차 안테나에는  녹색으로 그린 한반도 지도 모양의 깃발이 게양되어 있었다. 2번 전차는 태극기, 3번 전차는 인공기였다. 전차 승무원들이 큐폴라를 열고 나와 환영하는 인민군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1999. 11. 25  05:10(북경 표준시)  동지나해의 피스함대

  "빨리, 더 빨리... "

  피스함대의 임시 함대사령관 겸 항모 함장인 루시쵸프는 거의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전황이 중국에 극히 불리하게 돌아가는데 왜 진작 그들이 핵을 쓸 가능성을 생각지 않았을까, 중국 해군기들의 자살공격을 보고서야 눈치를 챈 자신의 정세판단력 부족을 한탄했다.

  거대한 몸체의 항모는 이미 35노트를 넘어서고 있었다. 대공순양함과 다른 대형 함선들도 최고 속력을 냈으나 항모를 따라잡기는 벅찼다. 항모는 이들과의 격차를 계속 벌리며 동진했다.

  "함대, 핵공격에 대비하라. 레드 원 실시!"

  루시쵸프는 함대에 핵폭발의 영향에 대비하여  비사용 전자장비에 대한 방호막 등을 준비시켰다. 레드 원(red 1)은 핵공격에 대비하여 함의 전자장비를 보호하기 위한 예비단계였다. 만약 부근에서 핵폭발이 일어난다면 인근 해역에 있는 모든 전자장비는 기능을 상실한다. 전파를 쓰는 레이더나 통신장비 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전기장치 등이 모두 고장이 나므로,  레드원은 이에 대비하여 함대의 전자장비를 보호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함대의 IFF(피아식별장치)의 전원이 꺼지자  갑자기 비상이 울렸으나 아군함대를 인식하지 못한 자동경보장치의 비명일 뿐이었다.  항법레이더와 해상수색 레이더도 전원이 끊기고 두툼한 플라스틱제 방사능 방호망이 쳐졌다. 항공모함의 경우는 항공기 통제용인 Fly Trap B 레이더까지 꺼버렸다. 당분간 전투기의 항모 이착함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항모와 순양함 우크라이나는 레이더를 풀가동하며 하늘로부터의 위험을 찾고 있었다. 아직은 이렇다할 하늘로부터의 위협은 없었다. 그러나 핵미사일이 올지 핵폭탄을 탑재한 전략포격기가 올지 아무도 몰랐다.

  "조금만 더...  곧 센카쿠열도다.  이제 중국은 핵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일본 영해로 바로 들어가 버려."

  루시쵸프가 계속 속도를 높일 것을 함대에 종용했다.  센카쿠 열도는 타이완과 일본열도 사이의 군도(群島)이다. 타이완과 일본 사이에는 류구제도(諸島)가 있는데, 가운데에는 오끼나와 군도가 있고 가장 서쪽의 것이 센카쿠열도이다.

  "초계기로부터 보고,  본함으로부터 1-2-0, 거리 20마일에 잠수함 급부상 중!"

  "함대의 침로 남쪽에... 즉시 공격하라!"

  함장은 피아구분도 하지 않은 채 초계기에 공격을 명령했다. 그 잠수함이 중국 것이든 일본 것이든 상관 않기로 했다. 이들이 살기 바쁜 판에 한가하게 피아구분할 여유가 없었다. 모든 가능한 위협에 대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초계기가 바로 그 해역으로 날아갔다. 그 해역은 센카쿠열도 바로 서쪽의 공해상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중국의 핵공격을 우려해 도주중인 피스함대의 목적지와 같았다.

  "잠수함, 미사일 발사! 단 한 발입니다!"

  함대 전체에 미사일 경보가 울렸다.  함대는 더욱 분산하며 대공요격체제로 들어갔다.  피스 함대의 기함인 항모 [피스]의 비행갑판 앞부분의 좌우에 각각 6기씩 배치되어 있는 8연장 수직발사기인  SA-N-9가 요격을 위해 발사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이 미사일발사기는 후부 비행갑판의 좌우에도 설치되어 있으므로 재장전 없이 사정거리 45km의 대공미사일을 합계 192발이나 발사할 수 있다. 이 미사일은 9.1미터의 저고도를 마하 2로 비행하므로, 대함미사일이나 저고도로 침입하는 적기에 충분한 요격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미사일이다.

  슬라바급 순양함 우크라이나의 중거리 대공미사일인 SA-N-6도 발사준비를 완료했다. 이 미사일은 사정거리 100km, 상승한계가 27,432미터인 고고도용 장거리 대공미사일이며, 슬라바급 함정의 함미에 8기의 8연장 수직발사기가 갖춰져 있다. 무선지령에 반능동레이더 유도방식의 이 미사일은 탄두중량이 90kg이나 되며,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미사일의 궤도가 안정되기만 하면 항모보다 먼저 발사될 예정이었다.

  함대를 향하는 모든 미사일은 핵미사일로 간주되었다. 상대적으로 서쪽에 있던 함재기들은 갑작스런 동쪽으로부터의 공격에 놀랐으나, 루시쵸프는 함재기들을  그 공역에 그대로 대기시키고 대공미사일로만 승부하려고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장이 겁장이라고 놀리던 승무원들이 경악했지만, 아직까지는 설마 하고 있었다.

  "미사일, 계속 상승중! 반복합니다. 미사일 상승 지속!!"

  잠수함으로부터 발사된 미사일이 계속 고고도로 상승한다면, 이는 최소한 순항미사일이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즉. 확실히 핵미사일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함장 루시쵸프가  3차원 레이더에 표시된 목표의 고도를 보았다. 미사일의 고도는 이미 10만 피트를 넘고 있었다.

  "설마, SLBM(잠수함 발사 탄도탄)? 이런 가까운 거리에서 말인가? "

  함장이 서둘러 방사능 방호복을 입으며 레이더 관제사관에게 물었다. 관제사관은 파랗게 질리며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함대 전체에 핵미사일의 경보를 발했다.  함장은 콘솔을 조작하여 중국제 핵미사일 발사 가능 잠수함의 현황을 찾았다.

  '골프급 1척. 디젤-일렉트릭. 사정거리 2,700km의 2메가톤급 CSS-N-3 핵미사일 2기 탑재. 그리고 092(시아)급 1척. 원자력잠수함. 동급 12기의 CSS-N-3이나 사거리가 약간 연장된 CSS-NX-4 탑재.  NX-4는 MIRV(다탄두탄)이며 2메가톤. 잠항한계는 약 300미터. 094(大慶油)급 4척은 건조완료 및 취역 중... 자료 불상, 총 12척 건조계획.  음... 겨우 여섯척 뿐이지만... 그래도 SSB이나 SSBN이로군. 보유척수가 적어 상징적인 함일 것으로 판단했었는데...'

  핵 발사 잠수함 한 척이 계속해서  작전에 투입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동급 3척이 필요하다.그러나 중국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의 발사체를 연구하기 위한 것인지 구식은 각 1척씩만 운용중이었다. 시아급은 1982년까지 두 척이 건조되었으나 한 척은 1985년에 사고로 침몰했다. 그러므로 본격적으로 전략에 활용할 수 있는 함종은 094(대경유급) 밖에 없었다.

  잠수함이 발사한 이 미사일은 계속 상승하다가  약 12만 피트 상공에서 로켓과 탄두가 분리되었다. 2단계 고체연료 추진방식인 이 미사일은 상승을 멈추고 관성유도로 목표를 향해 서쪽을 향해 날았다.  부분궤도를 이용한 이 구식의 SS-N-3 미사일을 레이더 위성을 갖춘 모든 국가에서 추적을 시작했다.

  1999. 11. 24  15:20 (워싱턴시간)  미국 워싱턴

  미국 콜로라도주 사이언 마운틴의 지하에 있는 북미방공사령부(NORAD)의 미사일 경보팀은 탄도미사일의 발사를 감지하고 즉시 대통령을 호출했다.  미국 대통령 제임스는 황급히 워싱턴 공군기지로 달려가 공군 1호기에 탑승했다. 그는 공군기지로 가는 차 안에서도 제발 그 미사일이 핵미사일이 아니길 빌었다.

  2차 대전 종전 후, 도시에 투하된 핵폭탄의 파멸적 위력에 놀란 세계 열강은 핵폭탄의 제조에 열을 올렸지만,  동시에 이의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도 성공을 거두어 아직까지 한번도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전술적인 목적으로 핵미사일이 발사되었으니,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임스가 미국이 핵공격을 받았을 경우 핵보복을 할 수 있는 암호통신기가 있는 검은 색 수트케이스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핵전쟁에서 누가 과연 승자일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이 같은 차에 탄 인물들의 면면을 훑어 보았다. 베이커 비서실장은 남의 나라 일이라고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제이슨 합참의장은 심각했다. 중국과의 무기판매 협상을 담당한 제프리 국무차관보는 얼굴이 거의 흑색이 되었다.  합참의장이 전화를 받더니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핵미사일이 확실하답니다.  중국제 CSS-N-3 유형이며 목표는 피스의 함대입니다."

  "중국이 미쳤군..."

  대통령이 얼굴을 감싸쥐었다. 중국과 한국의 전쟁을 부추기며 양쪽에 무기를 팔아먹은 자신을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제 핵전쟁이 발발했으므로 자신의 재선은 물건너 간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어 재임중 사퇴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는 당장 대통령을 때려 치워도 좋으니 핵미사일은 아니길 바랐다. 그는 중국 주석과의 핫라인이 아직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핫라인을 응시했다.

  1999. 11. 25  06:15  경기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피스함대로부터의 급전입니다! 중국군으로부터 핵미사일이 발사되었습니다. 함대는 요격에 나섰지만 자신없다는 투의 보고입니다. 곧 모든 통신이 단절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살았든 죽었든 간에..."

  양 중장의 보고에 참모 모두가 얼이 빠진 모습이 되었다. 정 지수 대장은 회의탁자 위로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고,  인민군의 박 정석 상장은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그가 인민군의  최고 어른인이 종식 차수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으나 참모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압박한 것이오? 몰아붙이기가 약간 심했다는 생각이 드오."

  이 차수가 침묵을 깨고 양 중장에게 물었다.  양 중장이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방어측으로서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하지만 더이상의 교전은 무리입니다. 휴전을 제의하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하지만..."

  반전전사 그룹 피스의 파견관인 짜르가  한국인들이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참모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 한수 중위가 통역을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의 정치적인 휴전협상이라면 거의 항복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중국의 요구는 한국이 받아 들이기에 무리할 정도일 지도 모릅니다."

  이 대목에서 인 중위는 코리어를 한국이라고 통역했으나,  인민군 장성들의 표정을 보고 즉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수정했다. 그는 다음부터 코리아라고 부르기로 마음 먹었다.

  "아직 한반도를 완전 수복하지 못했습니다. 현 상태에서 전선이 교착된다면, 휴전협상 과정에서 한국은 평안북도의 일부와 함경북도의 상당부분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박 정석 상장은 그럼 어떡하란 말이냐며  짜르를 멍청한 눈으로 쳐다봤다.한반도가 핵공격을 받아도 중국에 저항해야 할 것이냐며 짜르에게 무언의 항변을 한 것이다.

  "기래서... 우리 공화국에서 핵을 개발하려 했디요."

  김 병수 대장이 한탄을 했다.  핵이 있었다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했다.

  1999. 11. 25  05:16  항모 피스

  "미사일 접근 중!  강하 시작, 고도 3만 5천 미터."

  레이더 관제사관이 목숨을 포기한 듯 힘겹게 보고했다.  함장인 루시쵸프는 끝까지 버텨보기로 마음먹었다.

  "전원 대피! 순양함에는 대공미사일 발사를 지시하라."

  "벌써 발사했습니다."

  루시쵸프가 함교 창을 통해 바깥을 보았다. 서쪽 수평선에서 붉은 빛줄기들이 천천히 하늘로 향하는 것처럼 보였고, 한참을 올라갔다. 그는 삼차원 레이더에 표시된 몇 개의 점들을 보았다.선두의 빛이 목표에 천천히 접근했다.

  함대에서는 승무원들이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핵폭발의 여파에 대비하느라 바빴다. 항모의 삼차원레이더와 순양함의 목표추적레이더를 제외하고 모든 통신, 전자장비가 멈췄다.

  "고도 2만에서 명중 직전!"

  레이더사관의 보고와 동시에 상공이 태양빛의 몇 배의 밝기로 빛났다. 섬광이 함대를 휩쓸었다.  레이더는 즉시 하얀 빛으로 뒤덮여 작동불능 상태가 되고 함대간의 통신은 마비되었다.  폭발이 일어난 상공 아래에 있던 초계기 한 대와 대잠헬기 한 대가 폭풍에 휘말려 들었다.  서쪽에 멀리 떨어져 있던 전투기들 상당수는 기체의 조종이 상실되어 제멋대로 비행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공중폭발하도록 신관을 조작했습니다. 미사일에 명중되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이라 말인가? 어쨋든 함대의 피해상황을 보고하라! 위력이 예상 외로 크다!"

  핵미사일은 웬만한 충격에는 핵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특히 메가톤급의 수폭은 세밀한 안전장치가 달려있어서 공중에서 요격받은 경우 미사일은 부서진 채로 추락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군은 요격받기 전에 폭발하도록 특정 고도에 이르면 신관이 작동하도록 했거나,  무선 지령을 내렸음에 틀림없다고 루시쵸프는 생각했다. 미사일을 발사한 중국 잠수함은 초계기에 의해 침몰됐으니, 그 잠수함에서 무선 지령을 내릴 수는 없었고,  대신에 중국 본토에서 위성을 통해 전파를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핵폭발의 충격은 세계 곳곳에 전해졌다.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는 위성을 통해 즉각 핵폭발을 감지했다. 폭발의 섬광은 타이완 뿐만 아니라 오끼나와 군도에까지 비쳤다. 류큐(硫毬)열도의 모든 주민들은 해가 서쪽에서 뜬 것이 아닌가 착각했다. 고공에서의 핵폭발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모든 위성통신과 공중파 통신이 강력한 전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불통이 되었다.

  중국의 수폭은 1초 정도 빛을 계속 내더니 주변에 원자구름이 형성되었다.  버섯모양의 이 구름은 머리 부분은 정지한 채 뿌리 부분이 계속 바다 표면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피스 함대의 승무원들은 실명하게 될까 두려워 어느 누구도 이 광경을 보지 않았다.

  "전 함대는 해일에 대비하라!"

  함장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승무원들은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그 전에 이미 준비를 마쳤다.폭발한 곳 바로 아래의 해역에서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높이 60미터의 거대한 해일은 마침 해일의 진행방향과 직각으로 위치해 있던  피스 소속의 보급선 한 척을 삼켰다.  프리깃함 한 척은 최고 속도로 해일을 향하여 돌진했으나, 해일을 넘지 못하고 뒤집혀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아직까지 통신 불가! 피해상황 보고입니다. 육안확인과 점멸등 신호통신 결과 보급선 1척과 프리깃함 2척,  전투기와 초계기 등 항공기 20여대를 상실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무사합니다."

  통신사관이 아닌 항해사관이 함장에게 피해상황을 보고했다.  핵폭발시에 발생한 강력한 전자기파는 전자장비의 대부분을 고철로 만들고 전자장치가 핵심인 기계를 멈추게 했다. 함대 서쪽 상공에 있던 전투기의 조종사들은 필사적으로 조종을 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결국 대부분이 낙하산으로 탈출하고 말았다.  그나마 탈출할 수 있는 조종사는 다행이었고 상당수는 탈출장치마저 고장이 나서 비행기째 바다로 추락했다.피스 함대 최악의 날이었다.

  "이런 젠장..."

  오스트렐리아 공군 출신의 맥스는 간신히 고도를 유지했다.  그는 동쪽 상공에서 몰아쳐 오는 강력한 전자장의 폭풍을 피해  서쪽으로 계속 비행했다.  동료들이 비상탈출하는 모습이 보였으나 동쪽에서 다가오는 해일 때문에 그들이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레이더가 고장이 나서 육안수색을 했으나, 근처 상공에 중국군 항공기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미친 놈이 이런 지옥에 접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신기도 고장이 나서 동료 전투기나 항모에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핵폭발의 여파가 자신과 기체에 미칠까  두려워 정신없이 서쪽으로 향한 것 뿐이었다.

  그의 전투기인 F/A-18 전폭기는 보조 연료탱크도 없이 암람 공대공미사일 8기를 장착하고 있었다.기체를 점검해 보니 항공기 운항장치와 미사일 가운데 5기만이 간신히 살아 남았다.  폭발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탓이기도 했지만, 폭발 순간에 전자장비가 몰려있는 기수를 폭발과 반대방향으로 돌린 순발력 덕택이기도 했다.

  그가 고개를 들고 서쪽 하늘을 응시했다.  뭔가가 고속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거대한 몸체와 마하 1.6 정도의 속력.  그의 뇌리에 얼핏 스친 느낌은 그것이 핵미사일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제기랄!"

  Whiz를 몇 번 외친 그는 다가오는 미사일을 향해 암람을 날렸다.  거리는 약 15km.  만약 미사일이 그의 전투기와 지금의 미사일 중간 위치에서 폭발한다면 그의 비행기는 폭발의 중심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8발 중 발사 가능한 5기의 미사일을 모두 발사했다. 그러나 그 중 2기는 또다른 고장이 발생해 발사가 되지 않았다.  3기의 미사일이 핵미사일에 접근하고 그는 선회를 하여 8시방향으로 날았다.

  잠시 후 대폭발이 일어났다. 빛과 열의 덩어리가 주변의 하늘을 잡아먹으며 급속히 팽창했다.맥스의 기체는 섬광의 중심에서 벗어났으나 운행불능이 되었다. 전투기는 제멋대로 추락하고 있었다.  맥스는 비상탈출 레버를 당겼으나 사출이 되지 않았다.  어지러웠다. 그는 헬멧을 벗고 권총을 꺼내 들었다. 조금이라도 공포를 덜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머리에 대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맥스는 호주 공군의 전투비행단 소속 조종사였다.  호주 공군은 90년 이래 몇년째 예산이 계속 삭감되는 바람에  제대로 된 부품보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비와 보급이 불량한 최첨단 항공기의 운명은 뻔했다. 전투기들 대부분은 단지 활주로 옆에 세워진 장식품에 불과했고 운항이 가능한 항공기는 극소수였다. 조금이라도 고장이 있는 항공기는 비교적 멀쩡한 항공기의 정비를 위해 부품이 떼어졌다.  전투비행단의 4분의 3이 이런식으로 완전한 폐물이 되었다.

  그는 비행대에서 몇대 안되는 F/A-18을 끌고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고장이 생겨 비상탈출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도 결국 부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한 탓이었다.  그러나 그의 전투기는 하필이면 민간인 거주지역에 떨어져 1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민간인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그는, 결국 불명예 퇴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비행은 그의 운명이었다.  공군에 있을 때도 하루라도 비행하지 못하면 좀이 쑤셔서 못견뎠는데,  비행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제대 후에 그가 처음 얻은 직업은 농장에 농약을 뿌리는 경비행기 조종사였으나 프로펠러기는 속도가 너무 느려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다음에 얻은 직장은 어느 부호의 자가용 제트기 조종사였으나 VIP를 안전하게 모셔야 하는 이 직업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심해진 그는 그 부호의 젊은 부인이 유혹하자 장난삼아 불장난을 즐겼다. 그러나 꼬리가 밟힐 것을 두려워한  그 부인은 매몰차게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아서, 그는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하늘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느낀 그는 처음에 아프리카 분쟁국의 용병 전투기 조종사로 전전하다가 브루나이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피스라는 조직의 목적을 알게 되어 가담했고, 피스가 한중간의 전쟁에 개입하자  피스와의 계약에 의해 그는 만사를 제끼고 이 전쟁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맥스의 F/A-18 전투기는 종이비행기 떨어지듯 빙빙 돌며 바다로 추락했다.

  "핵이 또..."

  서쪽 하늘에서 번쩍이는 섬광을 보며 함장인 루시쵸프가 중얼거렸다. 중국이 왜 또 하늘에서 핵을 폭발시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핵미사일 한 발로 전자기장애를 일으켜서 대공방어망을 붕괴시키고 다음 미사일로 목표에 명중시키면 되는데 왜 아까운 핵을 낭비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 두번째로 발사한 미사일의 유형은 잘 모르지만, 구식 핵미사일이라면 틀림없이 진공관을 쓰고, 이것은 명중율은 낮지만 전파방해나 핵폭발 후에 생기는 전자기장애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이 루시쵸프의 생각이었다.

  루시쵸프는 중국이 또다시 핵미사일을 발사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아무래도 이 해역에서 탈출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센카쿠 열도는 아직 40km나 남았다. 개전 첫날에 중국이 선포한 전쟁수역을 벗어나려면 아직 15km가 남은 셈이다.  중국은 자신들을 소멸시키기로 작정한 것같다고 항해사관이 투덜거렸다.

  함대에 작동하고 있는 통신기는 이미 하나도 남지 않았다. 피스와 우크라이나는 점멸등 신호를 주고 받으며  그래도 계속 동쪽으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구축함 한 척이 항모를 따랐다. 승무원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계속된 핵폭발과 거대한 해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승무원들은 스스로 바다로 뛰어들기도 했다.

  1999. 11. 25  05:25  중국 베이징, 베이징판띠엔

  "타이페이의 관측소에 따르면, 목표 상공에서 두 번의 섬광이 목격되었으며, 위성에서도 이를 포착했다고 합니다."

  전략미사일군의 사령인 쏭윈펑 중장이 보고했다.당 총서기와 다른 고위 장성들은 이것이 확실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적이 전멸했다는거요?"

  창 리엔츙 해군상장이 묻자 쏭 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까지 그 해역에는 모든 통신이 불통되고 레이더는 기능이 저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적은 소멸한 것으로 보셔도..."

  "무슨 소리야? 그놈들은 우리에게 미사일을 날린 놈들이오.당연히 확인해야 되지 않겠소?"

  총후근부장인 첸쯔밍 상장이 호통을 쳤다. 그러나 전략미사일 사령으로서도 어찌 할 수는 없었다.

  "그 공역(空域)에는 정찰기를 띄울 수가 없습니다.  전자기파에 의한 전자장애가 극심해 추락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믿어 주십시요.첫번째 핵은 전자기장애를 유도한 것이었고 두번째는 목표를 노렸으나 적은 어떠한 방어수단도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목표는 소멸한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놈들이 살아서 핵을 날린다면? 미사일을 감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오?"

  총서기가 그동안 묻어온 공포의 일단을 밝혔다.그에게는 러시아 해군의 항공모함이었다는 피스의 항모가  혹시 핵미사일을 탑재하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걱정 마십시요. 제가 러시아에 이미 조회를 했습니다.  공작비가 조금 많이 들긴 했지만 확실한 정보입니다. 피스에는 핵이 없습니다!"

  쏭 중장은 군사위원들과 고위 장성들을 안심시키며  오랜만에 자신의 역할을 과시했다며 기뻐했다.

  1999. 11. 25  06:30  경기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피스함대와 연락두절! 제주 상공에 급파됐던 E-2C의 레이더는 그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이제 그쪽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짜르의 외침이 있고나서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러시아제인 핵항모와 순양함, 기타 수상함정들로 구성된 막강한 피스 함대가 전멸한 것이 틀림없었다. 중국이 결국 핵을 사용했다는데 대해 모두들 경악했다. 중국이 핵을 사용한 지점은 중국이  영해로 발표한 곳이었지만 한반도에 대한 핵공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이들의 고민은 중국이 피스의 희생으로 핵탄 사용을 끝낼 것인가, 과연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핵위협은 없을까, 이런 핵강대국과 전쟁을 해서 조국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었다.특히 몇년전에 핵개발을 추진했던 인민군의 장성들은 불만이 가득 쌓인 표정들이었다.

  "기저 우리한테도 핵이 있었어야... 내레 좀 물어봅세. 남반부에서는 왜 그리 핵무장을 반대했디요?"

  인민군 김 병수 대장이 국군 참모들에게 물었다. 핵주권을 갖지 못했을뿐 아니라 동족의 반쪽이 핵을 가지지 못하게 방해한 남쪽에 대한 통렬한 질책이었다.

  "그때는 남북이 대치상황이어서 우린 불안할 수 밖에 없었소. 군사적으로 긴장상황이 계속되는 판에 상대편이 핵무기를 쥐고 있다면 없는쪽 마음은 어떻겠소? "

  한국군의 정 지수 대장이 반박했으나  김 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재반박했다.

  "기럼 우리가 동족한티 핵을 쓰리라 생각했단 말이디오?  앙이, 기게될 법이나 한 소리야요? 우린 기저 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침략은 누가 한다고... 왜 북에서는 병력을 전진배치 시키고 걸핏하면 비상령을 발동했소? 그동안 한반도에 위기조성한 쪽이 누구인데..."

  "무신 소리오? 팀 스피리트 훈련은 상륙작전이 포함된 공격훈련 아이오?  핵전쟁을 전제로한 공격훈련... "

  "어차피 전쟁이 나면 당신네들이 한반도에 핵을 쓸게 아니었소? 그리고,  미국의 적성국이 핵무장하도록 미국이 가만 있으리라 생각했단 말이오? 우리가 막지 않았으면 미국이 영변을 폭격할 수도 있었단 말이오. 그럼 당연히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 것 아니오?  죽어나는 것은 결국 우리 민족 뿐이란 말이오."

  "기럼 와 러시아서껀 중국서껀 다 핵이 있는기요? 길고 파키스탄이나 인도는? 다들 미국에 대해 잠재적 적국 아이갔소?"

  "동지들, 그만들 하기요!"

  듣고만 있던 이 종식 차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대책을 세워야 할 시간에 이런 소모적인 논쟁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참모들이 대책을 논의했으나  농축우라늄 보유량이 별로 없는 한국에서는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었다.

  1999년의 한국에 핵미사일 개발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망을 피해 핵물질을 비축할만한  제 3세계 국가는 없었다.  한국은 핵융합로에 대한 기술개발을 계속 추진했지만 아직 변변찮은 실험용 고속증식로도 없는 상황이었다.  가동중인 원자력발전소, 엄밀한 의미의 핵발전소에서 연료를 전용할 수는 있지만, 이럴 경우 발전소에 장치되어 있는 폐쇄회로 TV를 통해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망이 이를 즉각 포착하고,  이 정보가 중국에 흘러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럴 경우 국제적인 압력은 둘째 문제고, 당장에 중국의 핵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었다.

  사실 핵보유국과 분쟁이 있는 나라는 상대방이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군사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적이 핵을 사용할 줄 뻔히 알면서 싸우는 나라는 있을 수 없었다.이 경우는 적국의 아량에 의존하는 희안한 전쟁인 것이다.  물론 선제 핵공격이 국제적으로 금지되어 있기도 했지만, 이를 어긴다고 꼭 다른 나라들로부터 보복 핵공격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는 나라는 없었다.

  '미국!'

  양 석민 중장은 참모들의 언쟁을 보며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6.25 때 미국이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가 두조각난 것이 미국의 책임이든 아니든, 미국이 남침을 유도했는 말든 어쨋든 남침을 막은 것은 미국의 힘이 컸었다.이후 계속된 냉전시대에 한국에 대한 경제 및 군사적 원조, 군사정권에 대한 지지, 미군의 범죄와 기지촌, 불평등했던 한미행정협정 문제...

  1998년, 한반도에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어가자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인 한국정부의 요청에 의해 미군은 철수하게 되었다. 미국과 러시아,일본과 중국 등의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저지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이간질을 시키려 했으나, 남북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이런 것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의 정보기관에서는 서울과 평양에 몇 건의 테러와 함께 대사관을 통해 계속 역정보를 흘렸으나 통일은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한 나라이며 실전에 사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핵기술이 다른나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으려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5대 강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 핵을 개발하려고 하면 총력을 기울여 이를 방해했다. 이라크나 북한과는 일전을 각오하여 막으려 했으며, 실제로 이라크의 경우는 2번이나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만이 핵을 가지겠다는 것은  국가이기주의에 불과하다고 양중장은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핵확산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자신들은 실제로 비밀리에 계속 핵실험을 해왔고, 심지어 인체실험까지 강행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처럼 핵보유국의 도덕성도 지탄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각하이십니다."

  양 중장이 통신장교의 비상연락을 받고 이를 참모들에게 전했다.  이 차수 이하 참모들이 기립하자  회의실 왼쪽의 멀티비전식 화상통신장치에 대통령의 얼굴이 나타났다. 노인은 청년의 흉내를 내고 청년은 노인의 흉내를 낸다던가. 홍 대통령은 전혀 염색하지 않은 반백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며 당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통령의 뒤로 국무위원들과 합참의장, 그리고 삼군 참모총장들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 회의는 개전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은  일일 확대 비상국무회의였다. 대통령이 통일참모본부로부터 간밤의 전황을 보고받고, 후방에서의 예비부대 편성과 보급문제 등 군정에 관한 제반사항을 토의하는 자리였다. 대통령이 고뇌에 찬 표정으로 말문을 꺼냈다.

  [방금 중국으로부터의 통첩을 받았소. 현전선 교착상태에서의 휴전이오. 그리고 안기부와 다른 정보부서로부터 남지나해에서 중국이 핵미사일 2기를 발사했다는 보고를 받았소.  폭발은 중국 현지 시각으로 각각 05시 20분과 23분이오.  피스함대가 그쪽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이 차수!  그리고 참모 여러분들,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대통령은 국무위원과 안기부장 등  정부위원들의 보고를 이미 받았으나 실제로 전쟁을 이끌고 있는 이들의 의견을 묻고 싶었다. 이들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이번 한중전쟁의 지도부였다. 북한 주석의 피살 이후 북한 권력의 새로운 실세로 부상한 인민군 총참모장 최 광 차수의 양보가 먼저 있기는 했지만,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방부장관도 통일참모본부에 대해서는 지휘권을 장악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편, 한국과 중국의 시차는 한 시간이다. 물론 북경표준시와 비교했을 때이다.

  "중국이 통첩을... 휴전?"

  참모들이 웅성거렸다. 국군 출신 참모들은 전쟁이 끝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으나, 인민군 출신 참모들은 아직 실지를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휴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차수는 노여움에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인민군 참모들이 들고 일어나 대통령에게 항변하려는 순간 국군 출신인 양 중장이 먼저 나섰다.

  "피스함대로부터의 연락은 없습니다. 각하! 그러나 이 상태에서 휴전을 실시하면 실지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평안북도와 함경북도의 일부가 아직 수복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땅입니다. 우리나라, 통일조국의 신성한 영토입니다. 재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양 중장은 아직 조국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편의상 [우리나라]라고만 부르고 있었는데,  99년 이후에는 거의 이 이름으로 굳어진 느낌이었다. 영문표기인 KOREA는 남북이 그전부터 쓰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 [대한]을, 북한은 [조선]이나 [고려]를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견 합치를 보기 힘들었다. 서로의 감정이 다른 이름을 용납할 수 없었다.

  화면의 대통령이 고개를 돌려  국무회의에 배석한 고위장성들을 힐끗 보고 말을 이었다. 합참의장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육군참모총장과 해군참모총장은 동의한다는 표정을,  그리고 공군참모총장은 당황하고 있었다. 민간인 출신인 일반 국무위원들은 통일참모본부의 휴전반대 입장에 놀라, 다시 핵 공포에 사로잡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솔직히 중국의 핵이 두렵소. 우리는 그들의 핵을 막을 방도가 없소. 그리고 중국은 현재 자기네들이 점령하고 있는 조그만 땅덩어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오.  북경에 있는 중국대사가 총서기로부터 언질을 받았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따로 있는 모양인데, 휴전협상에서 밝히겠다고 하오. 그게 뭔지 대충은 알겠는데...]

  "중국은 선봉과 웅기만(雄基灣)을 요구할 것입네다. 절대로 안됩네다, 각하!"

  인민군 해군의  박 정석 상장이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차수와 김 대장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통령이나 국군장성들이 의외로 강한 그들의 거부감이 이해되지 않았다.  중국의 핵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웅기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양 중장이 조용히 일어나 회의실 뒤쪽의  대한민국전도 맨 위쪽에 있는 웅기만을 보았다.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 일제강점기에 한반도 최초로 구석기유물이 발견된 곳이다.  90년대 이후 북한이 나진선봉지구라고 하여 나진과 함께 무역항으로 개발한 선봉이 바로 웅기였다.  선봉의 바로 앞바다는 아직도 웅기만이라고 불린다.중국군은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다.  중국이 왜 한만국경쪽인 혜산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웅기쪽을 집중방어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잠시 숨을 돌리며 진정을 한 박 상장이 말을 이었다.

  "중국에게 선봉을 주는 것은 동해를 송두리째 주는 것이며,  또한 태평양을 주는 것입네다. 러시아와의 연결이 끊어지면 조선반도는 완전히 중국에 둘러쌓인 섬으로 전락하고 맙네다.  양강도와 자강도를 다 주는 한이 있더래도 선봉은 절대 안됩네다. 조국에 미래를 생각하십시요, 각하!"

  양강도와 자강도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신설된 도이다.  한국정부가 충청도와 전라도, 그리고 경상도를 남북으로 구분하자,  북한도 따라서 황해도를 남북으로 나누고, 평안북도와 함경남북도의 일부를 분리시켜 자강도와 양강도를 신설했다.  이렇게 해서 북한의 도는 경기를 포함하여 10개가 될 수 있었다. 행정구역 신설에도 남북간의 자존심이 묘하게 작용한 것이다.

  중국이 이번 전쟁을 통해 웅기,  즉 선봉을 얻는다면 동해로 직접 진출할 수 있는 출구를 얻게되는 셈이다. 남쪽으로 우회해야 하는 지금의 중-미 항로는 선봉을 얻음으로써 엄청나게 짧아지게 된다. 그리고 선봉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일본과도 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선봉이 중국에 넘어가면 국가경쟁력에서 중국은 획기적인 변신을 할 수 있었다. 중국이 경제면에서도 한국을 제친다면 한국은 이제 중국 변방의 조그마한 나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박 상장은 진심으로 통일한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다시 지도를 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이들은 웅기, 즉 선봉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으나  중국의 핵위협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게다가 민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 아닌가. 미래냐, 생존이냐를 결정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핵공격을 막을 수만 있다면...  나도 그 지역을 내주는데 반대하겠소만...]

  대통령의 고뇌하는 표정을 읽은  이 차수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각하, 인민군 총참모장인 최 광 차수로부터 장마작전에 대한 말씀을 들으셨을겝니다."

  대통령이 놀라서 눈이 둥그렇게 커졌고 다른 국무위원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했다.  이 차수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그리고 삼군 참모총장들의 표정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들이 그 작전에 대해 모른다는 표정이기 때문에 이 차수는 그 작전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설마... 그 작전을...]

  대통령이 아연 긴장했다. 개전 초부터 그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았지만, 잘못되면 한민족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작전이라 최대한 작전시기를 늦추려고 했었다.  가능하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실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는 것이 이 작전이었다.  그는 설령 한국이 중국에 패배하더라도 실시하지 않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씀을 안하셨군요. 잘 하셨습네다. 감사합네다."

  이 종식 차수가 어린애 달래듯 말하자 약간 불쾌했으나, 대통령은 그에게 이 작전의 당위성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물어봅시다. 과연 민족의 생존을 걸고 도박할 정도로 선봉의 가치가 크단 말이오?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을 것 아니오?]

  이 차수는 대통령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답을 잔잔한 미소로 대신했다. 대통령은 이 차수를 보다가 옆의 양 중장과 정 대장을 보았다.  양 중장은 이 작전의 입안자이며 책임자이고,  정 대장은 국제정치학 박사라고 알고 있었다. 계속 지켜보기만 하던 정 대장이 말문을 열었다.

  "그들이 전쟁을 일으킨 이상,  어차피 중국은 뭔가를 손에 넣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다른 지역은 그정도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웅기를 내줄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휴전협상이 시작되어도 서로간의 이해가 상충되어 조만간 결렬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중국에게 시간만 벌어준 꼴이 되고 맙니다. 주도권을 중국에게 넘겨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자국 영토 밖에서 결코 핵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핵 선제공격은 다른 가상적국으로부터의 핵공격을 유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핵미사일에 대한 방위체계가 빈약한 중국은 선택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 때문에라도 그들은 한반도에 핵을 쓰지 못합니다.  일본의 원자력기술은 세계 최고수준이며, 플루토늄 비축량도 많습니다.일본은 6개월 이내에 핵무기와 그 운반체를 제조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중국은 결코 스스로 악마의 봉인을 풀 수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본은 아직도 독도를 무력점령하고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들 덕택에 한반도가 핵공격의 위협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

  [작전 장마, 발동하시오.]

  1999. 11. 25  06:50  평안북도 철산군, 차련관 방어선

  인민군 저격여단장인 최 대좌와 그의 지휘하에 있는 노농적위대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막강한 중국의 대규모 전차부대가 결국 방어선을 돌파하여 물밀듯이 남쪽으로 쳐내려갔다.  최 대좌는 부상당한 몸을 이끌며 후속하는 중국군 보병에 대해  눈물겨운 항전을 계속했으나, 중국군의 병력은 무한대로 보였다. 그들은 보병전투차와 장갑차로 끊임없이 공격해왔고, 동쪽의 방어진지에서는 지금도 육박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중국군의 전차에 의해 방어선이 뚫린 이후로는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도 없었다. 전차부대에 의해 유린된 중앙의 방어선이 너무 아쉬웠다.

  "이거, 안되갔구만... 온다는 놈들은 왜 오디 않고..."

  최 대좌는 붕대를 맨 머리를 만지며 무전기에 대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의 옆에는 무전기를 등에 맨 통신병이 가슴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최 대좌는 무전기가 고장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오라우! 다 듀갔구만... 이기."

  이 급박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전에서는 계속 가고 있다는 연락만 이어졌다.  최 대좌가 흐려오는 정신을 추스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병력은 처음의 3분의 1도 남지 않았다. 전차라고는 차 중령이 탔던 대대장차인 박 중사의 전차밖에 없었다.그나마도 캐터필러는 끊기고 여러발의 포탄을 맞았는지 포탑이 처참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포탄도 바닥났는지  박 중사가 큐폴라를 열고 나와 중국군을 향해 대공기총을 연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폭음과 함께 최 대좌가 있는 참호의 바로 옆에 수류탄이 폭발했다.최 대좌가 고개를 숙이려다 말고 권총을 빼들었다. 시커먼 그림자 두 개가 참호로 뛰어들며 최 대좌를 향해 총을 쏘았다.  최 대좌가 조준도 하지 않고 권총을 연사했다. 그림자들이 쓰러졌으나 그는 한발씩 더 쏘았다.

중국군 보병이었다. 어느새 그들이 이곳까지 진출한 것이다. 최 대좌는 왼쪽 다리가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고통이 없어서 몰랐는데 왼쪽 허벅지에서 피가 철철 흘러 나왔다.

  이곳은 산등성이기는 하지만 갑자기 투입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참호선을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언 땅을 판다는 것도 애초에 무리였다. 최 대좌는 과다한 출혈 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졌다.주변에 부하들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방어선 앞에는 중국군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오고 있었고,  이미 최 대좌가 있는 서쪽 방어선의 일부도 뚫렸는지 참호 안에서 총격전이 한창이었다.

  "으아아~~~ "

  왼쪽에서 함성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한 예비역 하급전사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참호선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반대쪽에는 중국군 10여명이 참호선을 따라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군들이 사격을 하는 순간 그 전사의 머리 위에 있던 물체가 폭발했다.  후폭풍이 참호를 쓸고 나서 최 대좌가 고개를 다시 들어 그쪽을 보았으나 그곳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전사는 크레모어를 들고 자살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총알이 떨어졌나..."

  최 대좌는 졸음이 쏟아져 버틸 수가 없었다. 중국군 전차대들이 향한 남쪽에서 포성이 계속 이어졌다.  이제 일주일간 버틴 북부군은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자신은 봉급값 만큼은 충분히 싸웠다고 자부했다. 참호벽에 등을 기댄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1999. 11. 25  07:00  일본 도쿄, 통막회의

  "드디어 핵을 썼군요.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었나 봅니다."

  야마다 공장(空將)이  통합막료회의 지하 5층, 전투지휘실의 전면 멀티비전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화면에는 핵폭발이 일어난 지점이 표시되어 있었고,  일본 해상자위대의 88함대인 제 5함대는 센카쿠열도쪽으로 신속히 이탈하고 있었다.

  88함대는 지상발진 항공기의 지원없이 독자적인 작전을 펼칠 수 있는 함대를 말한다.  이 88함대는 3척의 미사일구축함과 5척의 대잠 프리깃함, 그리고 탑재헬기 8기로 구성된 막강한 전력의 함대이다. 선단호위, 적의 상륙전에 대한 방어전 수행능력 및  일정 수준의 지상타격력을 갖춘 이 함대는 첨단의 이지스함이 대공방어를 전담하고 프리깃함은 대잠작전을 수행하며, 탑재헬기는 대잠,대함 공격을 병행할 수 있으므로 이들이 합해져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이른바 진정한 의미의 대양해군이다.

  "우리 일본으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즉각 징병제를 실시하고 우리도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야 합니다."

  하토야마 해장(海將)이  득의만면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통막 구성원들을 보았다. 육막장(陸幕長)인 고마쓰 육장이 쌍수를 들고 찬성했으나 통막의장인 오부치 육장은 막장들을 만류했다. 그러나 통막은 합의체이고 그 장(長)인 의장은 단순한 중재자에 불과했다. 실권은 각 자위대의 막장에게 있는 것이다.  신중하지만 기회주의자인 야마다 공장이 세 불리를 느껴 기권하자,  통막의 건의사항은 이제 내각의 심의로 넘어가게 되었다.

  오부치 육장은 내각에 제출할 보고서를 들고  통합막료회의 회의실을 빠져 나왔다. 이제 일본이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막을 사람들은 정치인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중전쟁 이후 긴급 구성된 비상 연립내각은 극우로 기울어져 있었다.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로 이뤄진 일본의 온건한 리버럴당은 이미 정권을 잃고 야당으로 전락했는데,  이 당에서 연립내각에 입각한 각료들마저 극우파 일색이 되었다.  일본의 정치권은 한중전쟁을 재무장 및 핵무장의 좋은 기회로 삼아,  군사와 정치분야에서도 세계를 이끌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오부치 의장은 승용차 뒷좌석에 몸을 기대며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1999. 11. 25  07:10  평안북도 철산군, 차련관 남쪽 3km

  "이거 너무 단순작업이군요."

  변 승재 하사는 연신 목표물을 잡아 포를 쏘며 중얼거렸다. 차장이며 중대장인 대위가 자신의 스코프로 목표를 지정하면, 변 하사는 그 목표에 조준을 하고 나머지는 컴퓨터가 포탄을 수평으로 자동장전하고 발사까지 하는 쉬운 일이었다. 변 하사가 페리스코프로 밖을 살펴보니 지상 공격기 A-10과 F-4E 팬텀이 하늘에서 공격하고,  멀리 동쪽에서는 피스부대의 전차대와 보병들이 중국 전차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중국 전차들이 달려들면 한국군은 접근전을 회피하는 식으로  계속 약 2km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변 하사가 소속된 통일한국군  제 1전차사단은 서쪽에서 중국군 전차부대를 포위공격하고 있었다. 약 1개 사단의 중국 전차부대는 보병부대의 지원없이 싸우느라 거의 전멸한 상태였다.  중국제 80식 주전투전차들은 사격통제장치가 개선되고 이전의 전차와 비교해 여러 면에서 개량이 되었으나 방호력에 있어서는 신통치 않았다. 이들은 변 하사가 발사한 T-80 전차의 125밀리 활강포에 맞았다 하면 파괴되었다.  반면에 변 하사의 전차는 벌써 3발의 포탄을 맞았으나  그정도 거리에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80식 전차의 더 큰 문제는  90년대 말의 현용전차이면서도 아직도 주포가 105밀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겉모양이 서방의 L7/M68 105밀리 포와 흡사한 이 주포는  중국제 및 서방세계의 다양한 전차포탄을 사용할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구경에 의한 한계가 있었다. 2,000미터라는 비교적 장거리에서 이 105밀리 강선포는  피스의 아리아떼나 메르카바는 물론 통일한국군 제 1 기갑사단의 주력전차인 러시아제 T-80의 장갑도 뚫지 못했다.

  결국 차련관 방어선을 뚫고 남하하던 중국군의 전차 1개 사단 약 270대의 전차는 통일한국군의 입체적인 공격을 받고 30분만에 전멸하고 말았다. 통일한국군은 중국 전차부대의 마무리를 지은 다음, 서둘러 차련관 방어선으로 향했다.  피스의 통신장교인 한국인 장교는 차련관 방어선이 아무래도 전멸한 것같다는 우울한 소식을 전해왔다.

  1999. 11. 25  06:20(현지시각) 동지나해, 센카쿠제도 15km 남쪽 해상

  루시쵸프는 참담한 심경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최강의 함대라고 자처했던 함대가 구식 핵미사일 단 두 발에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직격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2메가톤급 핵미사일의 위력은 정말 엄청났다. 전자기폭풍과 해일만으로도  피스의 함대와 항공기에 파멸적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구축함과 프리깃함들은 모두 침몰하고 함재기는 절반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이제 두번 다시 이따위 전쟁에 끼어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살아서 돌아가면...

  "침로를 1-2-0 으로...,  오끼나와제도에 바짝 붙어서 일본쪽으로 항진한다."

  루시쵸프는 중국이 추가적인 핵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일본 영해에 거의 붙어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만약 그래도 중국이 또다시 핵공격을 한다면, 일본도 큰 피해를 입게되어 전쟁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전투함교 겸 항해함교인 이곳에 퍼져 있었다. 항해장교는 함장이 명령한 침로대로 남동쪽의 다라마섬을 향했다. 비상 가동한 예비레이더는 예상대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함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비행갑판에서는 방사능 세척작업이 한창이었다. 방사능복을 입고 작업하는 갑판원들은 흡사 우주인같아 보였다.

  계기가 작동하지 않아 육안에 의지해서 간신히 비상착륙한 함재기 조종사들은 조종사 휴게실에 널부러진채 악몽의 순간을 되새기고 있었다. 허공에서 태양빛의 몇 배나 더 밝은 섬광과 함께 기체를 덮쳐오는 열폭풍, 곧이어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자기폭풍에 의해 고장난 계기판과 조종불능 상태에 빠진 기체, 추락하는 동료기들, 본능적으로 기수를 내리자마자 동쪽 해상에 보이는 산만한 너울... 2만톤급의 보급선이 한낱 종이배처럼 해일에 침몰하는 모습.

  이 조종사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들은 간신히 기체의 조종을 회복하여 항공모함에 착함할 수 있었지만 착함하는 중에 또다른 4기의 전투기는 바다에 쳐박히고 말았다.  물에 빠진 조종사들이 구조를 요청했지만 항모의 구조헬기도 고장이 나서 이들을 구출할 수 없었다. 40노트의 고속으로 항진하는 항공모함에서  승무원들은 물에 빠진 조종사들을 안타깝게 지켜볼 뿐이었다.  한 조종사는 필사적으로 수영을 해서 항모쪽으로 다가왔지만, 또다른 핵공격을 우려한 항공모함은 도망치듯이 동쪽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갑판원들이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조종사가 물에 빠지면서도 계속 흔드는 손이었다.

  멀리 남동쪽으로 민나섬이 시야에 들어왔다.  민나섬은 미야코열도의 서쪽에 치우친 다라마섬의 북쪽 10km에 있는 섬이다.일본 큐슈 남단 가고시마에서 타이완까지, 북동에서 남서로 이어지는 난세이(南西)제도는 큐슈쪽의 사쓰난(薩南)제도와 그 남서쪽의 류큐(琉球)제도로 나눠져 있으며, 류큐제도는 다시 일본과 타이완의 중간부분인 오끼나와제도와 남서쪽의 사키시마제도로 나뉜다. 타이완의 바로 동쪽에 있는 사키시마제도는 또다시 미야코(宮古)열도와  아에야마(八重山)열도로 이루어져 있다.

  미야코열도에 포함되는 민나섬은 따뜻한 구로시오(黑潮) 해류가 흐르는 오끼나와제도의 섬답게 거초(치맛자락처럼 섬을 둘러싸고 있는 산호초. 산호초와 섬 사이의 바다인 초호<礁湖 : lagoon>가 있으면 보초<堡礁>,중간에 섬이 없고 도넛 모양의 산호초만 있으면 환초<環礁>라고 함)에 둘러싸인 평탄한 섬이다. 바로 직전의 핵폭발과는 무관하게 이 해역의 바다는 눈부시는 쪽빛이었다.

  [섬 뒤쪽에 일본의 함대입니다!  경고신호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함교 마스트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수평선을 살피던 승무원이 함장에게 인터컴으로 보고했다.  20세기가 며칠 남지 않은 시대에 100년 전의 구식 범선과 같은 방법을 쓰는 함대의 상황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루시쵸프는 어쨋든 서둘러 망원경을 들고 밖으로 나가 남동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점점 밝아오는 남동쪽 수평선상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군함의 점멸등 신호였으나 그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뜻이야?"

  루시쵸프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함장을 따라나선 항해사관에게 물었다. 캐나다 출신인 항해사관은 점점 어두워지는 표정을 지었다.

  "일본 영해에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더 이상 접근할 경우 공격하겠답니다."

  "...미친놈들!"

  루시쵸프는 짜르로부터 일본이 한국을 공격할 우려가 있다는 정보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럴 경우 지상군이 취약한 일본으로서는 한국군의 공군과 해군을 먼저 공격하고, 이것이 성공할 경우 해상봉쇄를 실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었다. 만약 러시아나 중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한국은 한 달 이내에 일본에게 항복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으나, 피스의 함대가 있다면 전개과정은 전혀 달라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중국처럼 거꾸로 일본이 해상봉쇄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피스의 함대는 한중전쟁 개전 이래 계속 일본함대의 추적을 받고 있었다.

  "저놈들 설마 우리를 공격..."

  "저들이 먼저 공격해 올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함대는 한국군에 있어서 거의 유일한 대양함대이니까요."

  연안해군과 대양함대는 단독작전 수행능력이 있는가의 여부로 구분된다.  피스함대의 존재는 중국이나 일본 모두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중국은 통일한국과의 전투에서 항모를 모두 잃었으며, 일본은 주변국, 특히 미국의 견제로 아직까지 항모가 없었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미국이 세계경찰로서의 임무를 포기한 1998년 말부터 항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일본의 야당은 항공모함같은 공격무기를 가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섬으로 이뤄진 일본열도와 해상수송로의 방어에는 항모가 필요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일본 방위청은 반공개리에 이미 항모의 기본설계와 탑재기의 선정을 마친 상태였다. 핵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요즘, 항모의 추진기관은 당연히 원자력으로 결정되었다.

  사실 일본으로서는 피스함대가 거의 전투력을 상실한  지금이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피스의 함대에서는 지금도 대공, 대함미사일에 대한 점검을 실시중이었다. 미사일 중 상당수가 당장 발사해도 이상없을 정도였지만, 이를 유도하는 레이더시스템이 완전 파괴되어 발사할 수가 없었다.  대공방어망의 중핵인 단거리대공미사일과 미사일 요격용 대공포도 관제레이더의 상실로 아직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사실상 함대는 위협으로부터 벌거벗은 상태였다.

  "알겠어. 북쪽으로 돌리라구.  오끼나와제도의 구메섬 서쪽으로 항진한다."

  루시쵸프는 사냥개에게 쫓기는 맹수의 심정이 되어 함교로 돌아갔다.

  1999. 11. 25  06:30  일본 제 5함대 기함, 토라

  "피스함대를 전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안타깝습니다."

  "시끄러!  아직 저 항모에는 전투기 수십대가 있을거야.  그리고 우리는 아직 교전권을 부여받은 것이 아냐. 게다가 우리도 전자장비에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니까.  서서히 저들 함대를 따라가다가 오끼나와 본도로 기항하도록."

  "알겠습니다. 제독!"

  제독이 함대사령실로 돌아가자 미야기 일등해좌는 콩고급 이지스함의 7번함인 토라의 함교에서 일본이 한국을 공격했을 때, 피스의 항공모함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항모를 필두로 항공모함전투단이 다시 형성된다면, 강력한 전투함들로 구성된 일본의 자위함대로서도 이들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어제 위성으로부터 수신된 해상자위대 정보보고에는  한국해군 최초의 항공모함이 조만간 진수될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아직 진수도 하지 않았지만  이순신함, 또는 충무함으로 명명될 예정인 이 항공모함은 배수량 4만 5천톤급의 중소형 항공모함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일본의 영웅 중의 하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패하게 한 조선의 장수 이름을 항모로 삼은 것 자체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4만톤급의 소형항모는 2만톤급의 최소형 항모에 비해 비용 대 효과면에서 우수한 면이 있다.공간의 제약으로 F-14나 F-18 같은 전투기는 운용할 수 없으나, S-3같은 대잠기와 필요한 만큼의 대잠헬기, 그리고 F-4 팬텀이나 수직이착륙기를 운용할 수 있는 크기이다.  또한 현측에 장갑을 붙임으로써 생존성이 높기도 하다.

  미야기 일등해좌는 한국형 항모의 제원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추진은 원자력이지만 소형항모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탑재기는 이미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F-4 팬텀으로 결정이 났고, 위성정보에 의하면 함수부분에 고유무장이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제 중무장 항모의 건조사상에 따른 것이겠지만, 공간이 적은 소형항모에 무장이 필요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일본에서 건조준비중인 항모는 정말 멋지다는 느낌이었다.

  일본의 해상자위대 전력증강 사업계획에 포함된 이 신형 항모는 배수량이 약 7만 5천톤.  대형항모로 분류할 수 있으나 일본의 발전된 전자 및 조선기술에 의해 미국의 9만톤급 최대항모인  니미츠급 항모 이상의 능력을 발휘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다.  미야기 해좌는 이로써 대일본국 해군이 드디어 세계를 웅비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작은 나라에 두 척의 항모라...  피스함대는 중조(中朝)전쟁이 끝나면 돌아가지 않을까... '

  속도가 느린 통상형 잠수함으로  구축함과 프리깃함에 둘러싸인 항모를 공격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재래식 잠수함들이 상륙작전을 위해 접근하는 중국함대를 공격해 잠수함 발사 하픈으로 항공모함 한 척을 격침시키기는 했지만, 이는 미리 기다렸다가 공격한 것이라 다르다는 평가였다.  한국의 항모가 진수되고 일본과의 한판이 벌어진다면, 그는 일단 항모의 함재기를 모두 없앤 다음 항모전투단을 공격해야 된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한국항모를 격침할 수 있는 작전구상에 들어갔다.  아직 취역하지도 않은 한국의 항모는 이미 일본 해상자위대 토라의 함장, 미야기 일등해좌의 머리 속에서는 이미 침몰하고 있었다.

  1999. 11. 25  07:40  평안북도 철산군, 차련관

  "최 대좌 동무! 정신 차리기오."

  저격여단의 여단장인 최 대좌는  정신이 혼미한 중에 몸이 계속 흔들리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격전 중에 총에 맞은 것 같았으나 고통은 없었다. 단지 구름 위에 둥둥 뜬 기분이었다. 그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미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났다. 모든 동물은 회복 불가능한 중상을 입는 경우, 뇌분비 물질의 하나가 작용하여 고통을 차단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즉사하고 있는 사람이나 동물이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은  고통에 못이겨서가 아니라 쾌감에 관계되는 행동이라고 들었다.  자신이 그런 상태가 아닌가 걱정되었다.

  그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간신히 눈을 뜨자, 바로 위에 36연대장의 얼굴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36연대장의 주름진 얼굴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꿈결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흑과 백에 약간의 회색이 가미된 세상은  천천히 돌아가는 활동사진 마냥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앞에 보이는 인민군 하급전사의 넓은 등판과, 머리 위의 젊은 전사의 상체도 보였다. 또한 오른쪽에는 중년부인인 간호장교가 수혈병을 들고 그가 누운 들것을 따라오고 있었다.최 대좌는 부대 전체가 방어선을 버리고 후퇴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36연대장에게 화를 벌컥 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나 그를 질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무... 전선이래... 사수해야디... 어드렇게... 후퇴하는기요."

  최 대좌가 말이 잘 안되어 답답한듯  한숨을 토해내자 36연대장이 환하게 웃었다.

  "걱정 말기요. 우리 군이 구원을 와서 중국놈들 다 몰아냈으니끼니."

  최 대좌가 간신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 보았다.  처음 보는 종류의 전차들이 굉음을 울리며 줄지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보병전투차와 각종 장갑차들도 도로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또한 하늘에는 공격헬기들이 떼지어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최 대좌는 착륙한 헬기가 내는 굉음과 프로펠러의 강한 바람을 느끼며 다시 잠이 들었다.

  1999. 11. 25  07:55  경기도 개성, 통일참모본부

  "이것이 통참이 이사가기 전의 마지막 작전입니다. 목표까지 1분입니다."

  중국이 제안한 휴전협상에는 일단 응하되  큰 기대를 갖지 않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따라, 통일참모본부는 그동안 아껴왔던 북한의 지대지미사일로 만주를 공격하고 있었다.  목표는 만주지방의 각 비행장이었다. 이들은 모두 한반도로 침입하는 중국의 전투기들이 발진기지로 삼는 비행장들이었다. 그중에는 군용 비행장도 있었지만, 다리엔(大連)과 선양(瀋陽), 그리고 창춘(長春)은 국내선용 공항이기도 하다.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는 7개의 목표가 표시되어 있고 7개의 미사일의 현재 위치와 진로가 표시되었다. 스커드 지대지미사일의 개량형인 로동 3호는 군용과 민간용을 구분하지 않고 비행장으로 점점 접근했다.

  스커드형 미사일의 가장 큰 단점은 명중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유도장치가 정밀하지 못한 까닭인데, 이러한 결점때문에 스커드미사일은 군사목표보다는 대도시공격에 자주 이용되었다.  그러나 GPS(위성 수신 지구위치파악 시스팀)항법수신장치가 선박과 자동차에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시대에,  미사일이라고 이를 이용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었다. 약 5천달러에 불과한 지구위치파악 시스팀 덕택에 북한의 로동 3호 미사일은 졸지에 최고의 정밀도를 획득하게 되었다.

  "명중했습니다. 자, 로동 3호의 탄두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이제 저 비행장들은 당분간 사용하지 못합니다. 휴~~ 그동안 저 혼자만 알고 있느라 힘들었는데 오늘에야 말하게 되는군요."

  한국 공군의 심 현식 중장이 유쾌하게 웃으며  참모들의 표정을 살폈다. 참모들은 다소 당황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로동미사일이 만주의 각 비행장에 접근하는 것을 보고 참모들은 일반적인 폭격인줄 알았으나 단 한 발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는데,  심 중장은 비행장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함으로써 뭔가 있는듯이 보였다.

  "설마... 화학무기 공격이오?"

  "땡!  틀렸습니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그리고 독가스공격은 국제협약에 의해 금지되었습니다."

  정 지수 대장의 틀린 대답에  심 중장은 더욱 신이 난듯 참모들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화학무기,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면 독가스는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라는 별명답게 대량살상무기의 하나이다. 제조와 보관이 비교적 간단하며 비용도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사용한 측은 동일한 독가스의 보복공격을 각오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박 정석 상장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혹시... 핵 아입네까?"

  박 상장의 대답에 참모들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피스함대가 중국의 핵공격을 받아 충격을 받고 있었는데, 박 상장의 말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되어 있었다. 놀란 참모들이 박 상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는 쑥스러운지 농담이라고 말했다.정답이 나오지 않자 결국 심 중장이 해답을 말했다.

  "반(反)마찰 폭탄입니다. 윤활제인 테플론(Teflon)의 일종이죠. 하지만 테플론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이제 저 비행장들에서는 비행기의 이착륙이 불가능함은 물론 자동차의 주행도 불가능합니다. 모조리 미끄러져 버리니까요."

  테플론 계열의 윤활제는 표면을 미끄럽게 만듦으로써 철도나 활주로, 경사로, 계단 또는 중장비까지 상당 기간동안  사용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작용을 할 수 있다.  바퀴가 달린 모든 탈것은 이 윤활제 성분이 없어질 때까지 그자리에 고정시키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퀴가 헛도는데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도 없고, 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도 못한다. 윤활성분을 희석시키든지, 아니면 강력한 캐터필러를 가진 차량이 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테플론은 환경에 무해한 성분이라서 사용자측이 망설일 까닭도 없는 것이다.

  다만, 기존의 테플론이 비싸고 효과도 적었으나,  과기연(국립과학기술연구원의 약칭)이 개발한 이 윤활제는  낮은 농도에서도 활주로에 흡착되어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과기연은 항공기와 각종 무기류를 시험, 개발하는 정부기관이다. 전부터 연구해 오던 무기들이었으나, 전쟁이 시작되자 개발에 가속이 붙어 이틀전에 완성이 되었다.

  "아마 지금쯤 목표가 된 비행장에서는 난리가 났을겁니다. 만약 전투기가 착륙중이었다면 틀림없이 활주로 끝에 쳐박혀 있을겁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착륙하는 여객기가 없으니  민간인 피해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참모들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심 중장을 보고 있는데, 그는 신이 나서 다른 개발중인 무기까지 설명했다. 그렇다. 이것들은 사용하기 따라서는 당당히 무기의 반열에 드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접착제도 있습니다.  폴리머(polymer) 접착제를 공중에서 살포하면 장비를 그 자리에 접착시켜 꼼짝달싹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위력이 낮아서 개발중이지요.  사륜구동차까지는 됩니다만, 아직 무한궤도차는 안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액화금속연화제, liquid metal embrittlement라는 것도 있죠. 아, 작은 사전에는 안나옵니다. 어쨋든, 이것은 다리나 공항시설, 엘리베이터나 각종 무기등의 금속제 구조물에 스프레이로 뿌리기만 하면 부스러지고 깨져버립니다. 다만, 폭탄을 사용하는거나 마찬가지이니 사용이 제한되겠지만요. 그리고 다른 것도 있는데 아직은 비밀입니다.

  이런 것들을 [시설사용배제]라고 합니다. 비살상이론의 핵심개념에서 나온 무기류이죠. 그리고...  만약 특정 도로나 일정 지역의 눈을 녹여서 진창으로 만들고 싶으시면 그 지역을 제게 말씀 하십시요. 과기연이 개발한 해빙세균을 이용하여 눈을 녹여 드리겠습니다."

  해빙세균은 빙핵(氷核)세균과 정반대의 관계에 있는 세균이다.  빙핵세균은 구조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단백질을 생성함으로써  수분의 입자가 이 단백질과 접촉할 경우,  얼음의 결정구조처럼 곧바로 정렬되는 특성을 갖게 되기 때문에 물이 높은 온도에서도 빨리 얼게 하는 특성을 지닌다. 물의 어는 점을 높이는 이 빙핵세균은 스키장이나 스케이트장, 또는 아이스크림이나 제빙공장에서 사용되어 왔는데, 과기연은 이와 반대되는 개념의 해빙세균,  즉, 물의 어는 점을 낮추는 세균을 유전자공학을 이용해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연구에는 남극의 바위 박편 사이라는 극한공간에서 생존하고 있는 규조류가 이용되었다.

  참모들은 심 중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상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혹시 심 중장이 핵의 공포로 인해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진지했고, 미사일 폭발 얼마 후에 전선의 항공관제관으로부터  관심을 끌만한 내용의 보고가 접수되었다. 만주상공에 중국전투기가 전혀 이륙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999. 11. 25.  08:15  경기도 강화도, 안전기획부 교육원

  "제군들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작은 강당에 모인 300여명의 요원들이 웅성거렸다.  고된 아침훈련이 시작되려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이들을 강당에 소집한 이 사람은 첫마디를 내뱉고 잠시 조용히 요원들을 살펴 보고 있었다. 안기부 해외담당 조직원, 해군 UDT, 그리고 인민군의 정찰연대 소속으로 구성된 이들 특수요원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연단의 장군을 바라 보았다.  위험한 작전에 병사들을 투입하는 지휘관은  항상 저런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는 표정이었다.

  통일참모본부의 상황실장인 양 석민 중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장성은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였다.  실제 나이도 별로 되어 보이지는 않았으나, 장군은 장군이었다.

  "제군들이 갈 곳은 출발 전에 조별로 알려주겠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받은 교육과 훈련 내용은 일체 비밀이다. 어떠한 비밀도 외부에 발설치 말것이며,여기에서 알게된 모든 것, 그리고 임무수행 중에 알게된 모든 것도 비밀이다."

  그의 엄포에 요원들이 비웃음을 흘렸다.  약간 교육내용이 다른 것만 뺀다면 그들이 갈 곳은 뻔했다. 중국에 침투해서 요인 암살이나 폭파공작을 하면 되는 뻔한 임무에 갑자기 웬 엄살인가 싶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는 모두 유서를 제출하도록. 유품도 남겨 놓길 바란다. 여러분들을 사지에 몰아넣어서 작전책임자인 본관은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작전이 모두 끝나면 나는 여러분을 희생시킨 책임을 지고 자진하겠다."

  양 중장의 말을 들은 요원들이 이제서야 긴장하기 시작했다.  유서야 위험한 적진 침투작전 전에 항상 써왔지만  최근들어 유품 이야기는 처음이었다.그리고 아무리 생환가능성이 낮은 작전이라도 작전책임자, 그것도 고위 장성이  자결하겠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태평양전쟁때의 구 일본군 장교도 아닌 20세기 말에  통일한국군 장군의 자결이라니...

  그리고 군인과 정보요원은  항상 국가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아무리 소모품이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 그들의 당연한 임무였다.양 중장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한 요원들은 자신들이 맡을 임무가 보통의 침투임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작전내용을 들으면 이해하겠지만, 그만큼 위험하고 중요한 임무이다. 작전이 성공해도 여러분의 생환가능성은 없다. 제군의 가족들은 국가에서 책임지기로 했다.  이 작전명은 장마라고 붙여졌다. 이미 개전 첫날에 정해진 것이다. 건투를 빈다."

  양 석민 중장은 말을 마치자 특수요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침울한 표정이 되어 임시 교육원장을 맡고 있는 육군소장과 함께 강당 밖으로 나갔다. 그는 비상국무회의와 통일참모본부간의 아침 정례 화상회의 직후 청와대를 방문하고, 바로 강화도로 날아온 것이다.

  요원들이 웅성거렸다.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생환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핵기지 침투야... 폭파가 아닌 사용가능한 점령이군.'

  ROTC출신 예비역 해군 중위인 신 승주는 지금까지 한중전쟁의 전황과 그동안 받았던 교육내용을 종합하여 자신들의 임무를 유추해 냈다.만약에 자신들이 일반적인 침투를 목적으로 교육을 받는다면 컴퓨터나 중국어 등의 교육은 필요없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아침에 본 TV 뉴스에는  분명히 동지나해 상공에 핵폭발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자신의 임무가 이것과 관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과연 양 중장의 말대로 생환가능성은 전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약 요원들이 중국의 핵기지를 점령해도,  그 핵으로 중국을 과연 위협할 수 있을까 하는데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너무 넓고 인구도 엄청나게 많았다. 일반적으로 핵보복은 공멸이라는 개념에 기초하지만,  중국은 핵공격에 공멸(共滅)하지 않을만한 유일한 나라였다.

  1999. 11. 25  07:20 (북경 표준시)  광저우 동쪽 15km 주지앙(珠江)

  "일출이다!  다운트림, 심도 15. 반속전진!"

  함장인 이 승렬 소령이 잠망경의 손잡이를 접어 내리며 명령했다. 밸러스트 탱크에 물이 들어오자  한국해군의 209급 잠수함 성진함은 약간 심도가 더 내려갔다. 이 소령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디지털 심도계의 숫자를 확인했다. 잠수함의 기축을 중심으로 표시되는 심도계인만큼 함교는 이보다 훨씬 높게 된다.  지금도 마스트가 물에 잠길락 말락하는 정도의 심도밖에 되지 않았다.

  강의 하류로 내려올수록 수심이 낮아지긴 했지만 아직 잠수함에게 충분한 정도의 수심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 잠수함은 세 번에 걸쳐 강바닥의 암초에 충돌했었다. 초고장력강으로 제작된 복각식 내압선각(耐壓船殼)이 아니었으면 함체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잠수함의 잠항은  혹시나 상공에 있을지도 모를 비행기의 육안수색으로부터 잠수함을 감추기 위한 것이지만 이것이 효과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광저우 공격 전이었다면 낮에는 당연히 엔진을 멈추고 강바닥에 올라탄채 밤이 오도록 기다리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본거지를 공격당해 화가 난 중국 지도부의 명령을 받은 대잠수상함과 초계기로부터의 추적을 최대한 피해야 되는 것이다. 물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모르는 성진함의 승무원들은  이런 식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잠수함은 주지앙을 거슬러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심해항주용 저주파를 불규칙적으로 발산하며 강바닥을 포복하듯이 기며 서서히 강을 따라 내려갔다. 광저우로 올라갈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밤이 아니고 낮이라는 점, 그리고 중국의 추적을 받고 있으리라는 점이다.

  "중국은 우리가 공격한 줄 알고 있겠지?"

  함장이 불안한듯 한마디 내뱉고는 아차 하고 말았다.  역시 사려깊지 못한 부함장이 예상되는 대꾸를 했다.

  "당연하죠. 한국에 탄도탄이나 토마호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벌써 잠수함은 공격받아야 했으나 아직 잠수함에 대한 중국의 공격은 없었다. 이 점 승무원 모두들 궁금해했으나 아마도 해안에서 초계기를 빼지 못하는 사정이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아니면 수심이 충분히 깊은 주지앙의 강 어귀에 대잠함정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소나를 담당한 하사관인 최 중사가 외쳤다.

  "소나에서 지휘소로!  우현 전방 1500에 수상함정입니다. 접근중!"

  "미속전진, 잠망경 올려!"

  이 소령이 역시나 하면서 서둘러 잠망경을 잡고 우측으로 회전시켰다. 멀리 일출을 배경으로 소형 경비정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 배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이 소령은 모르는 쪽에 걸었다. 그와 그의 잠수함, 그의 부하들, 이 모든 것들이 그의 결정에 달린 것이다.

  "조금 더 잠수할 수 있나?"

  이 소령이 잠망경을 내리며 불안한듯 항해장에게 묻자 항해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저(河抵)에 좌초되는 수가 있습니다. 너무 낮아서..."

  "좋아, 이대로 정지한다. 조금만 더 가면 하구가 넓어지는데..."

  스노클이 사령탑 안으로 수납이 되면서 성진함의 4,600마력짜리 디젤 일렉트릭 순항엔진이 멈췄다. 성진함은 공기가 필요없는 추진방식인 아르고(Cosworth Argo) 디젤엔진을 갖췄으므로  이 엔진을 쓰면 스노클을 쓸 필요가 없었으나, 함장은 액체산소가 부족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이 엔진의 가동에는 항상 신중을 기했다.  그리고 어차피 디젤엔진의 소음은 마찬가지라서 전투상황에서는 축전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 신형엔진의 가동은 심해에서 장기간 기동할 때 사용하는 극히 제한적인 효용밖에 없었다. 그래도 소음이 적고 2개월간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서 이 엔진의 개발은 재래식잠수함이 원자력잠수함에 뒤지지 않을만한 성능을 제공해 주었다. 물론 속도와 탑재량을 뺀다면...

  주지앙(珠江)은 윈난(雲南)성의 동쪽 끝에서 발원하여  광시주앙쭈쯔즈취(廣西壯族 自治區)를 거치기까지 계속 서에서 동으로 흐르다가, 광저우 남동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급선회하여 홍콩과 마카오 사이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하류의 이름은 주지앙, 본류는 시지앙(西江)으로 이름이 다른데, 양자강이 중국인들에게는 하류에서만 불리는 이름이고 상류와 중류는 장강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이 강도 위치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이 승렬 소령의 잠수함은 23일 밤에 홍콩 공격을 마치고 야음을 틈타 주지앙의 하구를 거슬러 올라갔다. 마카오보다는 광저우공격을 택한 그의 결정은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공격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으나, 귀항까지는 어떠한 위험이 있을지 아무도 몰랐다. 얕은 강바닥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에게는 조그만 경비정도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커다란 잠수함으로서는 숨을 데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주지앙의 붉은 흙탕물이 그의 잠수함을 지켜주는 유일한 자연조건이었다.

  "접근! 목표 가속 중, 현재 20노트!"

  한국해군의 209급 잠수함 성진함이 정지한 위로  중국 경비정의 엔진음이 들려왔다. 모든 승무원이 소리가 들려오는 천장을 바라 보았다.어차피 경비정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해서 어쩔 수 없었다. 소나병인 최 중사가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그 배의 엔진음을 분석한 결과, 그 배는 상하이급 고속공격정으로 분류되었다. 함장의 기억으로 그 배는 연안초계정으로 알고 있었다.  발사관제관이 어뢰에 경비정의 음문을 기록하도록 지시하는 모습을 보며, 함장이 서둘러 중국 해군 함정의 제원을 기록한 책을 펴고 상하이급에 대한 기록을 살폈다.

  '만재배수량 134톤, 최고속도 30노트, 승무원 38.  무장은 중국제 37밀리 2연장 2기와 구 소련제 25밀리 2연장 대공기총 2기... 몇몇은 2연장 57밀리나 2연장 75밀리로 무장.  대잠무기는 없으나 일부는 함체 내에 소나를 수납하거나 가변심도 소나(VDS)가 있음... 최근 극소수의 동급 경비정은 대잠함정으로 개조되었을 가능성... 젠장, 짜증나는군. 도대체 이 배는 어떻게 분류되는거야?'

  "일단 적함에 소나가 있다는 가정을 해야되겠죠. 광저우 공격은 우리 짓인줄 알테니까요."

  적의 정체를 알 수 없어 함장이 일그러진 표정을 짓자, 이를 본 부함장이 함장에게 조언했다. 함장인 이 소령은 나도 안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TV를 보십시요. 핵공격입니다! 그리고 적은 우리가 공격한줄 모르는데요?"

  통신장교의 말에 깜짝 놀란  함장과 부함장 등의 지휘소 요원들이 서둘러 통신실로 뛰어갔다. '핵이라니...'  우려하던 일이 결국 발생하고 만 것이다. 놀란 눈으로 함장이 본 것은 통신실에 있는 몇 개의 TV화면이였는데 통신장교가 손으로 가리킨 화면에서  미국의 ABC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잠수함에서는 지금도 통신용케이블을 방출하여 이를 통해 잠수함 안에서도 세계각국의 주요 TV뉴스를 위성수신을 통해 시청할 수 있었다. 적도상공의 정지궤도에 있는 무궁화 3호의 전파는 이곳까지 도달하지 않았지만,  전쟁당사국이 아닌 비교전국의 뉴스가 항상 더 정확한 법이었다. 통신이 발달한 시대에 군의 정보망을 통하지 않고 민간상업방송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은 최근에 당연시 되고 있었다.

  TV뉴스에서는 타이완 북쪽해상에 핵폭발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었다. 핵폭발이 있던 해역을 표시한 지도가 사라지고 잠시 후 양복을 입은 중국인이 화면에 나와 뭐라고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화면 아래에 영어자막이 처리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통신장교인 최 중위가 이를 더듬거리며 해설까지 붙여 번역했다.

  "한국이 통상형 탄도미사일로 광저우를 공격해서 그 보복으로 동지나해에서 중국해안을 봉쇄중이던 피스함대에 핵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멍청한 놈들이 잠수함 발사 하픈과 탄도미사일도 구분을 못합니다.  게다가 탄도미사일은 지들이 먼저 사용하고선... 혹시 중국은 탄도미사일에 대한 경보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것일까요?

  추가적인 탄도미사일의 공격이 있을 경우 중국은 한반도에도 핵을 쓰겠다는 위협도 하고 있습니다... 얼라리오?  휴전도 제안하는데요?"

  핵과 휴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었다.  일단 한반도에 대한 핵공격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성진함의 광저우 공격으로 인해 위기의식을 느낀 중국군 지도부가  그동안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피스함대에 핵공격을 한 것이라면, 그리고 한국군 지도부도 성진함이 광저우를 공격한 것을 모르고 있다면, 성진함 승무원들만이 이 사태의 전말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된다. 성진함의 함장 이 소령은 자신의 함은 꼭 살아 돌아가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속 접근중! 거리 200!"

  소나병인 최 중사의 외침에 정신이 퍼뜩 든 함장이 다시 소나실로 뛰어갔다. 한국에 돌아가 진상을 밝히는 것은 둘째 문제고, 먼저 이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100!"

  최 중사가 신경질적으로  잠수함과 경비정까지의 거리를 계속 보고했다. 항해장이 작도판에서 경비정의 진로를 추정했다.이 작은 배는 거의 정확히 성진함 바로 위를 통과하는 코스를 잡고 있었다.

  [빙~]

  "고주파 발신음입니다! "

  중국 경비정의 탐신음 발신과 승무원들의 머리칼이 쭈뼛 선 것, 그리고 최 중사의 외침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이 경비정은 하필이면 가변심도 소나를 갖춘 함이었다.  310여척의 상하이급 고속공격정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갖췄다는  가변심도 소나를 이 경비정이 갖추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발신음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최 중사는 고주파 탐신음의 반향음을 잡으며 하저의 상황을 파악하기 바빴고, 나머지 승무원들이 일제히 함장을 주목했다. 그의 공격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기! 아직 기다려!"

  이 소령은 적 경비정이 아직 잠수함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경비정과 교전한다면 중국의 대잠기와 대잠함정들이 주지앙의 하구를 봉쇄할 것은 너무나 분명했다. 경비정이 잠수함의 존재를 모른다는 자그마한 가능성에 잠수함의 운명을 걸었다.

  "제길, 왜 탐신음을 쏜거야?"

  함장이 의자에 앉은채 손으로 볼펜을 돌렸다. 그가 초조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지만, 승무원들은 그의 행동에서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중국의 경비정이 탐신음을 발한 것은 몇가지 가정이 가능했다.

  첫째는 최악의 경우이지만  경비정이 잠수함의 존재를 파악한 경우이다.잠수함의 마스트를 육안수색에 의해 발견했거나 엔진음을 파악한 경우인데, 성진함이 정지한 지금 현재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만약에 이 경우라면 이는 공격직전의 상황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는 강의 흐름에 이상을 느낀 경비정이 물속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탐신을 한 경우이다.  이 경우 해도에 표시되지 않은 암초가 물속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인데, 잘못하면 잠수함이 발견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세번째는 광저우를 공격한 잠수함을 발견하기 위해 막연히 하저에 탐신음을 발한 경우였으나, 방금 방영된 TV뉴스는 이 경우를 배제하고 있었다. 중국은 성진함의 광저우 공격을 모르는 것이다.  이 세가지 모두 성진함에는 위험했으나 함장은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경비정이 우측으로 급선회했습니다! 우리를 암초로 생각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강은 깊은바다와 달리 다양한 소음을 내며 흐른다.  유속이 빠를수록 소음도 심해지며, 물속을 떠내려가는 돌멩이와 잡동사니들이 다양한 소리를 내기때문에 의외로 잠수함이 숨어 있기는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편이다. 경비정은 아마도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예비역에서 현역으로 돌려져, 승무원들이 이 수역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고주파 소나를 발신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빙~... 빙~]

  경비정에서 3초 간격으로 탐신음을 2회 연속 발신했다. 최 중사가 깜짝 놀라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함장에게 보고했다.

  "아닌데요... 적은 이미 우리의 존재를 파악..."

  "어뢰 발사 준비!  안전거리 100미터, 1번관 발사! 잠망경 심도로!"

  참을 수 없어진 이 소령이 연이어 명령했다. 209급 잠수함 앞면의 어뢰실에서 이층 맨왼쪽의 발사관이 열리고, STN(System Technik Nord)사제의 533밀리 SUT Mod 2 어뢰가 장전되었다. 초기에 한국해군에 인도된 209급, 즉, 장보고급 잠수함들은 모두 14기의 어뢰만을 탑재할 수 있었으나,  후기형은 어뢰발사관실이 확장되어 총 24기의 어뢰나 하픈을 탑재할 수 있었다. 성진함의 하픈은 지상공격용으로 개조되었는데,  이미 이를 두번의 공격에 모두 사용했으므로 이제 어뢰 9발만이 남아 있었다. 다시 남은 어뢰 수는 8발로 줄어들게 되었다.

  잠수함은 급속히 엔진을 가동하고 전동펌프가 가동하여 밸러스트탱크 안의 물을 함체 밖으로 밀어냈다. 성진함은 서서히 부상했다.  이미 서로의 위치는 완벽히 파악했으니 먼저 공격한 쪽이 이길 것으로 이 소령은 생각했다. 이 소령이 이를 악물었다.

  어뢰가 발사관을 떠나 흙탕물 속을 질주했다. 앞쪽으로 발사된 이 어뢰는 잠수함에서 지령하는 유선유도에 따라 급속히 가속하며 방향을 왼쪽으로 틀었다.  경비정은 어뢰의 추적을 확인하며 황급히 속력을 올렸으나 이미 최종유도 속도인 35노트에 도달한 어뢰를 따돌릴 수 었었다. 잠수함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으로부터 커다란 폭발음이 수중으로 퍼져 나갔다.

  홍콩과 광저우간 민간선의 항로안전유지를 담당했다가 암초를 확인하기 위해 탐신음을 발사한 이 불행한 고속공격정은 260kg이나 되는 어뢰의 탄두가 폭발하자 당장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성진함은 잠망경 심도로 부상해서 이 소령이 잠망경을 통해 밖의 상황을 살폈다.목표가 있던 하상(河上)에 경비정은 형체도 보이지 않았고 생존자도 없었다.  찢겨진 종이조각과 기름덩어리 등의  부유물만 강물 위에 둥둥 떠서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명중!"

  어뢰가 고속정에 충돌하기 직전에 헤드폰을 벗은 최 중사가 함장에게 뒤늦게 보고했다.

  "급가속, 최대한 속도를 내어 이 강을 빠져나간다. 자, 가자!"

  성진함은 수중 최고속도인 25노트의 속력으로 가속하여  하구쪽을 향했다. 이미 성진함의 존재는 중국군에 알려졌을 터이니 중국 해군이 강 하구를 봉쇄하기 전에 최대한 바다에 접근할 속셈이었다.

  1999. 11. 25  08:30  중국 선양(瀋陽), 선양비행장

  며칠째 계속된 폭설이 멈추자 인민해방군 공군의 제 24 전투사에서는 출격준비에 바빴다. 북한 정주와 철산군 지방에서 인민해방군이 대패했다는 소식은 오히려 인민해방군 조종사들의 투쟁의식을 고취시켰다. 미그-21 전투기의 중국제인  제 24 전투사(戰鬪師--사단급의 전투비행단) 소속의 섬(殲)-7(J-7) 전투기 100여기는  인근 푸순(撫順) 비행장의 강격(强擊)-5 공격기들과 함께 북한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에 나설 예정이었다. 강격-5 공격기는 미그-19의 중국식 개량형인 지상공격기이며, 일반적으로 J-5라고 불리운다.

  조금 전에는 북한지방에서 지대지미사일이 날아왔으나 활주로 상공에서 공중폭발하여 비행장에는 외관상 전혀 피해가 없었다.  북한제인 스커드형 지대지미사일의 신관이 불량한 것으로 판단한 제 24전투사의 사령은 이를 상부에 보고했는데, 다른 비행장도 같은 공격을 받았다는 회답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별 피해가 파악된 것도 아니고, 게다가 공격받은 것은 단 한발씩의 미사일 뿐이라서 아무 생각없이 지나갔다. 사령은 이것이 혹시 핵공격 위협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다.

  첫번째 전투기가 서서히 활주로에 진입했다.  공대공미사일과 폭탄을 잔뜩 탑재한 이 전투기는 관제탑의 지령에 따라  속도를 내기 시작했으나, 활주 도중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활주로 밖으로 벗어나고 말았다. 1번기부터 사고가 생긴 것이다.

  [으악! 조종이...]

  관제탑의 스피커에서 사고기 조종사의 비명이 들려왔다.  관제원들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성에가 잔뜩 낀 관제탑의 유리창 밖으로 사고기를 보았다. 그 전투기는 계속 미끄러지다가 대공참호에 처박혀 있었다. 대공포 요원들이 놀라 참호를 뛰쳐 나왔다. 큰 사고는 아니었으나 기체의 화재를 염려하여  항공대 소속의 앰뷸런스와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사고기를 향해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활주로면의 상태는 이미 확인했으므로 노면이 얼어서 이런 사고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를 조종사의 실수로 판단한 관제탑에서는 후속기의 이륙을 종용했다.

  그러나  2번기도 마찬가지로  얼마 속도도 내지 못하고 음주운전자가 운전하는 승용차처럼 활주로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 전투기는 결국 1번기처럼 활주등을 부수며 활주로에서 벗어나 주기장에 세워져있는 Il-14 수송기에 부딪히고 말았다.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전투기와 수송기 모두 크게 파손되었다. 이를 보고 이륙 대기중인 조종사뿐만 아니라 관제탑에서도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갑자기 들려오는 큰 소리에 관제원들이 아까 이륙하다 사고를 낸 1번기 쪽을 바라 보았다.  앰뷸런스는 사고기와 마찬가지로 주기장에서 비틀거리고 있었고 소방차가 사고를 낸 전투기에 정면충돌했다.그렇지 않아도 충돌한 전투기는 주변에 항공유를 잔뜩 흘리고 있었는데 소방차가 충돌하자 스파크가 일어 전투기와 수송기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 폭발하고 말았다. 연속된 사고로 이 군용비행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였다.

  1번기의 폭발을 보고  인민해방군 공군 제 24전투사의 사령이 비행장 내 스피커와 모든 무선회선을 연결한 비상방송망의 전원을 넣었다.

  "전원 대기하라! 전투사 소속 전원 제자리에 대기하라!  차량도 움직이지 마! 노면 상태를 다시 점검한다. 시설단 출동하라. 단, 차량은 사용하지 말것."

  비행장 시설단장인 중좌를 포함한  일단의 조사원들이 활주로로 뛰어갔다. 달리던 이들이 넘어지고 미끄러졌다.망원경으로 이 모습을 본 사령은 확실히 활주로에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것을 깨달았다.  잠시 후 이들이 가져온 것은 진득한 하얀 물체였다.

  사령은 긴급지령을 내린 즉시 이 사태를 상부에 보고했다. 이 비행단의 전시 작전지휘권을 가진 상급부대이며,  동북 3성의 관할 군구인 선양(瀋陽) 대군구의 전시조직인  제 11병단의 항공사령부가 보낸 회답은 다소 의외였다.  비암호 무선으로 온 11병단 항공사령부의 명령은 다음과 같았다.

  [아침에 동북 3성 각 비행장 상공에서  폭발한 조선제 미사일에서 특별한 종류의 윤활유가 살포되었다. 활주로 뿐만 아니라 주기장(駐機場)과 주변 도로 일대의 지표면이 마찰계수 0에 가깝게 되어, 항공기의 이착륙과 일반 차량의 운행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쇄도하고 있다. 귀 비행장에서는 즉각 윤활유 제거작업에 착수하라. 당분간 출격은 금지하며 귀 전투사의 관할 공역(空域)은 북경군구 공군이 대신 담당한다.]

  제 24 전투사의 사령은 기가 막혔다.  동북 3성의 모든 군용비행장이 마비되었다면, 이 전쟁은 극히 불리해지게 된 것이다. 현재 조선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상전의 공중지원은 멀리 북경군구에 있는 비행장에서 이륙해야 하므로 항속거리면에서 너무 불리하고,  만약 조선이 만주를 폭격한다면 중국군은 폭격에 대항할 요격수단이 거의 없었다.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커다란  저속의 지대공미사일에 맞아줄 전투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령은 조선반도에 대한 핵위협이 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적 영토에 대한 핵공격은 누구나 꺼리는 선택이었다. 그는 조선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 무기시장에서 이미 핵을 구입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게다가 북조선은 계속하여 비밀리에 핵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20세기 말이 다되어 핵을 보유하려는 국가에서는 어느 나라든지 보유할 수 있을 정도로 핵에 대한 정보는 일반화되었다. 핵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기구라는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의외로 국제핵정보시스팀(International Nuclear Information System)이라는 공개정보를 운영 중이며, 전문도서관에서도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또한 Basement Nukes(지하실핵무기)라는 핵무기 만드는 방법이 적힌 책자는 공공연히 판매되고 있어서, 일부 테러집단 마저도 핵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비밀로 유지되고 있는 정보는, 어떻게 핵폭탄을 제조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고급스러운 핵을 만드는가 였다.

  그리고 핵물질에 대한 국제적인 통제도 허술해서 전세계에서 유통 중인 고농축우라늄(HEU) 3,000톤 중에서 실제 IAEA 등 국제기구의 사찰대상이 되는 것은 겨우 1%에 불과한 실정이다. 플루토늄도 마찬가지로 현재 존재하는 1,000여톤의 이 핵물질 중에서 국제 감시하에 놓인 것은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신고된 핵에너지 시설에 있는 양만 따진 숫자라는 것이다.  핵폭탄의 재료가 되는 이 위험한 물질들이 조선에 얼마만큼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도대체 조선에 핵폭탄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사단 사령의 두려움이었다. 어차피 핵전쟁이 일어나면 공멸(共滅)하는 것이 아닌가?

  동북 3성(東北三省)은 만주일대에 있는  중국의 3개 지방인 헤이롱지앙(黑龍江)성, 지린(吉林)성과 리아오닝(遼寧)성을 지칭한다. 산하이꽉(山海關)의 동쪽이라는 의미에서 이들 지방은  關外, 또는 關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지역은 석유, 석탄 등 지하자원의 보고이며 쌀의 산지이기도 하다.  또한 러시아와 접경을 이루기 때문에 이 지역은 북경 주변과 함께 핵미사일 기지와 군사력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이 넓은 지역은 하늘로부터의 공격에 벌거벗은 셈이었다. 제 24전 투사의 사령은 서둘러 지대공미사일기지를 점검하고 헬기에 공대공미사일을 무장시켰다. 그로서는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었다.

  1999. 11. 25  08:50  경상남도 진해, 잠수함대사령부

  "성진함에서는 아직 연락 없지?"

  "예. 계속 호출했지만 23일 밤 이후 계속해서 응답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한국해군의 잠수함대 사령관인 윤 재완 소장은 성진함에 너무 무리한 임무를 맡기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홍콩 공격만 해도 재래식 잠수함으로서는 어려운 임무였다.  만약 작전이 성공할 경우 추가 공격은 함장이 재량껏 해도 좋다고 말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 말 때문에 부담을 느낀 함장은 안전귀항을 도외시한채 최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었다.

  그래도 홍콩 작전은 대성공이어서 한중전쟁 시작 후에도 홍콩에 남아있던 영국과 미국계 자본, 그리고 꾸준히 영향력을 키워온 일본계 자금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24일 단 하룻동안 홍콩을 빠져나간 자본은 미화로 환산해서 500억 달러가 넘었다.  자본 뿐만 아니라 외국인 고급기술자들도 홍콩을 탈출하기 바빴다. 중국경제의 기초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본과 기술자가 빠져나가고 원자재의 공급이 원활치 못한 합작공장은 가동율이 급속히 떨어졌다.

  한국 잠수함이 민간 상선을 공격한 것으로 확인되자 외국선적의 화물선들이 일제히 홍콩에의 기항을 거부했다.  해상보험료는 다시 세 배나 더 뛰었고, 외국인과 이중국적자들은 치떠(啓德)국제공항으로 몰려들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중국 각지를 연결하던 해상교통은 완전 마비되었고, 해안도시에 살던 노동자들은 내륙으로 피난가기 바빴다.  남부의 연안공업지대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형식만 의무병역제이지 실상은 모병제인 중국에서 인민해방군에 입대하는 것은 공산당원이 되기보다 어려웠다. 평시의 중국군이 230만 병력을 유지하여 외견상 엄청난 숫자같지만,  이는 전 인구의 0.25%에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비율이다. 자위대만 있고 군대는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국민대 자위대원 숫자의 비율보다 더 낮은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민들은 전쟁이 있을 경우  자신은 전쟁과 전혀 무관하다는 생각을 하기 쉬웠다. 전쟁은 군인의 일이었고, 만약 징병제가 실시되어 자신이 군에 징집된다면 이는 신분상승의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 인민은 군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피난을 가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한번 더 호출해봐. 홍콩 공격 전에도 성진함은 무선봉쇄 상황이었으니까 혹시 모르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겠습니다."

  통신병이 저궤도위성(LEO)통신망인 이리듐의 채널을 개방했다.  이리듐은 미국 모토롤라사를 중심으로한 국제 통신서비스 컨소시엄인데, 고도 800km에 떠있는 66개의 위성을 이용한 이동통신망이며,  한국에서는 한국이동통신이 참가했다. 비슷한 서비스로는 고도 1천 400km에 떠있는 48개의 위성을 이용한 글로벌스타와, 1만km의 위성 12개를 보유한 프로젝트21 등이 있었다.  이들 서비스는 모두 한국기업이 참가하고 있었지만,  한국해군은 공영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이동통신과 잠수함 통신망 개설을 계약하여 1998년부터 작전에 사용하고 있었다.

  "홍길동이 구운몽에게, 홍길동이 구운몽에게.  율도국으로 돌아오라. 아니면 현재 위치와 현황을 보고하라. 이상!"

  윤 소장과 통신병은 통신망을 개방한채 몇초동안 멀거니 스피커만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성진함은 중국군에게 침몰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번졌다.

  1999. 11. 25  07:51  중국 주지앙, 한국해군 성진함

  "또 시에미가 찾는데요?"

  통신장교가 함장인 이 소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현재 적지에서 작전중인 상황에서  상부에 무선으로 보고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잠수함이 전파를 발신하면  당연히 상대방이 이를 역추적하여 잠수함의 위치는 순식간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당연히 상부의 위치보고 요구를 묵살할 것으로 생각한  통신장교가 별 생각없이 하던 일을 계속 하려는데 갑자기 함장이 그에게 물었다.

  "지금의 상황을 압축해서 전송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통신장교가 함장을 보며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지금은 귀항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말인가? 그가 잠시 예상되는 글자 수를 세어보더니 함장에게 0.3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중국의 눈과 귀인 통신위성들도 이리듐 위성들과 동시에 성진함의 짧은 전파를 잡아서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할 것이므로 적지에서의 전파통신은 위험했다. 다만 함장은 중국에도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이용하는 이동전화 가입자가 충분히 많기 때문에 이에 한가닥 희망을 걸기로 했다.

  "자네가 전통문을 작성해서 전송 전에 내게 보여주게. 알아서 상황설명을 충분히 해서 말야. 유서를 작성하는 기분이겠지만..."

  잠시 후 통신장교가 써서 함장에게 보고한  위성 통신문은 다음과 같았다.

  [성진이가 시에미에게. 본함은 홍콩 공격 후 광저우를 공격했음.  23일 밤 홍콩에 5기의 하픈 발사, 모두 명중.일본국적의 민간수송선에 어뢰 발사하여 침몰시킴. 항로를 봉쇄하기 위한 부득이한 작전이었임. 25일 새벽 광저우 시내 주요 건물에 하픈 발사, 광저우의 교량에 어뢰 발사하여 붕괴시킴. 현재 위치는 주강(珠江) 하류. 상하이 II급 고속공격정 한척 격침, 현재 예상되는 적의 추격을 피해 급속 남진 중.  명복을 빌어주기 바람.]

  이 소령이 통지문을 읽더니 피식 웃었다.  통신장교는 상부의 지원을 바랄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 정도의 개그는 용납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따라 웃었다.

  "전송하도록! 곧 하구에 도달한다. 적함이 몰려오기 전에..."

  "알겠습니다."

  함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통신장교가 통신용부표의 사출버튼을 눌렀다.  미리 작성되어 부표에 저장된 데이터는 잠수함에서 떨어져 나온 후 물밖으로 올라갔다. 안테나가 세워진 이 부표는 정확히 5분 뒤에 전파를 발신하고 침수하기 시작해 바로 물속으로 잠겼다.

  이 전파는 하늘높이 퍼져 나갔다.  중국 남부의 800km 상공에 위치해 있던 이리듐통신망 소속의 위성 3개가 전파를 잡아 즉시 이를 증폭하여 60도 각도로 지구를 향해 되쏘았다.그러자 한반도 상공을 날고 있던 이리듐 소속의 위성이 이 전파를 잡아 다시 이를 한반도에 중계했다.  진해에 있는 잠수함대 사령부의 통신기에는 화일 형태의 메시지가 왔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힉! 초계기의 해상수색 레이더 전파입니다. APSO-504(V)3형 레이더 전파! Y-8MPA 초계기입니다."

  전파관제관이 잠수함에 위협이 될만한 전파를 분석하다가 전파분석기의 경보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1-5-4, 거리 9,000에 고도 6,000입니다. 대잠초계기가 이 고도에 있다는 것은..."

  "그래, 이미 하구에 소노부이를 뿌렸단 거지. 의외로 빠르군."

  함장이 전파관제관에게 매우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 초계기는 다수의 소노부이가 발산하는 초단파를 수신하기 위해 최대한 고도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전파관제관이 모니터를 보고 새로운 전파의 특성을 분리해 냈다. 처음과는 달리 그는 안정되어 있었다.다른 초계기의 출현은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못했다. 이왕 버린 몸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또 있습니다. 이번엔 3기의 하얼빈 H-5 초계기입니다. 위치는 1-3-0에서 2-1-5 사이, 거리 12,000에 고도 4,000 정도입니다."

  함장이 항해지도가 있는 곳으로 가서  주지앙 하구의 해도를 살폈다. 수심은 35미터로 이곳과 차이가 별로 없었다.  다만, 훨씬 넓다는 것이 유리한 조건이었다. 주강 하구의 넓이는 바다처럼 넓었다. 하구 왼쪽에 홍콩이, 오른쪽에는 마카오가 있다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두 도시 사이의 거리는 약 64km나 된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중국의 대잠함정들이 포진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뚫고 나가야지. 저곳만 뚫으면 되잖아?"

  부함장의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 함장은 항해장교와 함께 예상되는 중국의 소노부이선을 해도에 표시했다.초계기의 위치와 이곳 지리를 보면 아무래도 홍콩 서쪽의 후하이 반도와 주강 하구에 있는 두개의 섬 사이에 소노부이선이 설치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대잠 수상 함정들의 위치는 홍콩 서쪽의 란타우섬과 마카오 사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섬들에 의해 소나의 탐지범위가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란타우섬 왼쪽으로 해서 홍콩으로 들어간다. 짜식들은 설마 하겠지. 그리고 중국의 대잠초계기는 별거 아냐. 하얼빈 H-5 대잠초계기나 하얼빈 Z-5 대잠헬기는 이미 구식이고 센서도 별로..."

  함장이 승무원들 들으라는듯 자신만만하게 떠벌이며 탈출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눈치없는 부함장이 또 끼어들었다.

  "그래도 디카스(DICASS:방향지시 액티브 소노부이), 매드(MAD:자기탐지장치), FLIR(전방감시 적외선장치) 등 갖출건 모두 갖췄는데요?"

  함장이 물끄러미 부함장을 쳐다 보았다.  조만간 잠수함의 함장이 될 20대 후반의 이 젊은 대위는 항상 별명처럼 썰렁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9. 11. 25  07:58  중국 주지앙 상공, 우주

  중국 상공을 지나던 저궤도 과학위성인  우리별 3호가 주지앙을 중심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강의 하구에서 잠수함을 찾고 있는 녹스급 대잠 프리깃함 세 척과 지앙후이급 프리깃함 두 척,그리고 잡다한 종류의 초계정들의 화상이 위성촬영 즉시 데이터 링크를 통해 용인관제소에 전해졌다. 물론 상공에 있던 초계기도 인공위성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그리고 위성은 초계기들이 강 하구에 투하한 소노부이들이 내는 초단파를 잡아 이를 분석하여 같이 보냈다.

  이 정보는 즉시 유성의 정보사단과  진해의 해군사령부에 전달되었는데, 이는 잠수함대 사령부가 긴급요청한 정보이기도 했다.  우리별 3호는 갑작스런 궤도변경으로 인해 수명이 절반으로 단축될 운명이었으나, 해군은 핵폭발의 원인을 제공한 된 성진함의 상황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지위성인 무궁화 계열의 통신용위성과 달리 저궤도 과학실험위성인 우리별 3호는 위성체를 한국에서 자체 제작하여 1998년 초에 중국제 위성발사체인 장정(長征)-5호 추진 로켓에 의해 발사되었다. 영국의 서리대학에서 제작한 우리별 1호와,  이를 모방한 국산위성인 2호의 해상도(解像渡)가 200미터에 불과한 반면에, 우리별 3호의 해상도는 15미터나 되어 홍콩 주변 해상의 움직임은 낱낱이 한국군에 전해졌다.  관측위성으로 개발된 우리별 3호는 전시인 지금 아주 유용한 정찰위성으로 전용된 것이다.

  이 위성은 다시 타이완 북쪽 상공을 지나며  핵공격을 받은 피스함대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수색에 들어갔다. 잠수함대 사령관인 윤 재완 소장은 중국 해군함정들의 제원과 위치를 파악해 이를 즉시 위성통신을 통해 성진함에 통보했다.

  1999. 11. 25  08:10  중국, 주지앙 하구

  "함대사령부로부터의 입전입니다! 인공위성을 통해 중국 함정들의 위치가 나왔습니다!"

  함장과 항해장은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모니터를 통해 통신장교의 콘솔로부터 전송된 정보를 받았다.  한국이 언제부터 우주전을 수행할 능력이 생겼나 신기해 했다.

  먼저 대기권 밖 1,400km의 우주에서  광각카메라로 촬영된 강 하구의 상황이 나왔다. 3초간 찍은 화상으로 현재 중국 함정들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속도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감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중국 해군에서 어떤 종류의 함정들을 동원했나 알려주었고, 전파수신기를 통해 입수한 정보로 소노부이의 선이 표시되었다. 소노부이는 예상대로 섬들 사이를 연결한 선에 깔려 있었다.

  "정확한 위치로군요. 지금 바로 하픈을 발사해도 되겠는데요?"

  잠수함대 사령부가 성진함을 버리지 않았다며 부함장이 신이 나서 떠들자 함장이 한마디로 일축했다.

  "자네같으면 지금 발사하겠나?"

  "...아뇨..."

  함장은 어떻게 대만해군에 있던 미국제 녹스(Nox)급 프리깃함이 이곳에 있나 궁금했다. 이 프리깃함은 대만의 해군증강계획에 따라 미국 해군으로부터 임대한 함정들이었다.  물론 미 해군으로부터의 임대기간이 끝나자 대만해군에 판매된 것은 당연했다.  함장은 중국에 항복한 대만 해군 함정들을 중국군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분산시킨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무래도 중국 지도부는 전직 대만해군의 반란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녹스급은 대잠미사일이 있습니다.  대잠병기라고는 RBU-1200만 탑재한 지앙후이급과는 차원이 다르죠."

  항해장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대잠로켓인 RBU-1200은 사정거리가 1,800미터에 불과하고 잠수함 추적 등의 유도능력이 없다.  2차대전 때의 대잠폭뢰와 비슷한 무기인 것이다.  그러나 녹스급은 구식함정이라고는 하지만  당당히 ASROC(대잠로켓)을 갖추고 있었다.  함장이 가지고 있는 자료에는 사정거리 1.6km에서 10km에 탄두는 Mk 46 어뢰라고 나와 있었다.

  1999. 11. 25  09:25  평안북도 선천, 대목산 요새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평안북도 수복의 영웅들인 북부군의 본부, 대목산 요새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북부군을 이끈 군 지휘관들이 승전을 발표하기 위해 나와 있습니다.  곧 기자회견이 시작되겠습니다."

  KBS의 아나운서가 카메라 앞에 서서  다소 흥분된 어조로 중계방송을 시작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 조명 때문에 지하인 이곳 실내는 대낮같이 밝았고 겨울인데도 땀이 흘러 나왔다.

  차 영진 중령은 7개 방송사와 16개의 국내 신문사, 그리고 각국의 외신기자들이 북적대는 사령실 앞쪽에 도열한 인민군 예비역 장성들의 틈바구니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앞줄은 이 종식 차수와 노령의 인민군 예비역 장성들,  뒷줄은 차 중령과 이번 전투에 참전한 주변 지역 노농적위대 연대장들이 앉아 있었다. 한국군은 북부군의 군세를 과장하기 위해 현역 인민군 차수인 이 차수가 20만 대군을 지휘하고 있다고 선전했기 때문에 이 차수와 다른 고위 인민군 장성들이 이 기자회견에 나온 것이다.

  차 중령의 정모와 어깨 견장에는  대한민국 육군 준장의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고급장교의 2계급 특진이란 5.16이나 5.17같은 군부쿠데타의 주역인 장성들이 정치에 나서기 위해 예편할 때  소장에서 대장으로 승진한 예 외에는 없었지만 차 중령의 경우에는 이미 전사한 것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이미 11월 17일에 대령으로 추서되어서 그는 일계급승진한 것에 불과했다.

  추서 사유는 제 11기갑사단의 패전시 그의 대대가 보여준 분전과, 후퇴하는 본대를 위해 과감히 희생정신을 발한 것이었다. 그의 생존이 확인된 이후에는 그동안 북부군을 이끈 공과  이번 전투에서 올린 전과를 감안하여 차 중령은 졸지에 장군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원래의 소속인 제 11기갑사단이 패배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선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통일참모본부가 설득해도 승진을 거부했으나,  육군사관학교 1기 선배인 한 중령,  지금은 부상때문에 예편하여 예비역 대령이 된 한 대령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한마디에  결국 승진을 수락하고 말았다.

  '우리나라가 중국에게 깨지면 전범이 될까 무서운거야?  그래서 장군이 되기 싫은거지?'

  그의 소속인 제 11기갑사단은 패배 후에 후방에서 재편성 중이었으므로, 일단 그의 보직은 대부분이 허상인 북부군 작전참모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자칭 북부군의 최고 지휘관 자격을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차 영진 준장은 1개 사단이 넘는 병력을 통솔해야 된다는 부담감은 싫었지만, 전쟁기간 내내 같이 싸워온 북부군 장병들과 같이 있게 되어서 좋기도 했다.

  "이 차수님, 연설 준비는 되셨습니까?"

  기자회견을 취재하기 위해 온 합동 방송기자단 중에서 연출을 담당한 PD가 이 차수에게 묻자 그는 약간 쑥쓰러워하며 대답했다.

  "물론이디요."

  방송 코디네이터인 젊은 여성이 이 차수의 넥타이를 다시 고쳐 맸다. PD가 스탠바이를 외치자  이 차수가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연단으로 올라간 이 차수는 통일참모본부 의장이 아닌 북부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연설을 하게 되었다.

  "저희 북부군 소속 장병과 이 지역 인민들은 조국이 중국군의 침략을 받아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하자,  부대가 포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9일동안의 처절한 전투 끝에 결국 침략군을 몰아 내는데 일조를 했음에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 차수는 평안도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고 평양식 문화어로, 준비된 원고를 또박또박 읽어 나갔다. 그는 북부군의 과장된 편제와 전과를 자랑하고, 내일 중으로 신의주를 수복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동안 선천 인근의 해방구 방어와 남쪽에서 포위하고 있던 중국군을 공격하느라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 북부군 단독으로 신의주를 공격하겠다는 엄포를 하는 것이다.

  이어서 기자들의 질문과 이 차수의 답변이 이어졌다. 미리 질문 내용에 대한 검열을 받은 국내 기자들과는 달리, 외신 종군기자들의 질문은 의표를 찌르는 내용이 많았지만 이 차수가 훌륭히 받아 넘겼다.

  그가 박수를 받으며 연단을 내려오자, 미리 연출된 각본대로 홍 대통령을 대신하여 등장한 국방장관이 이 차수와 악수를 한 후 그에게 훈장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나서 국방장관은 연단의 마이크를 잡고 북부군의 그동안 공적을 치하하고 이번 신의주 수복작전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견은 전파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반도 침공작전이 인민해방군 해군의 조기 참패와 평안북도의 북부군 때문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중국 공산당의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도 이 회견을 TV로 시청하고 있었다.회견을 지켜본 차 준장은 아무래도 주공은 다른 곳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젠장, 나는 미끼가 되는거로군.'

  1999. 11. 25  08:40  중국 주지앙 하구, 한국해군 성진함

  "소노부이의 선까지 앞으로 2,000미터입니다."

  "아직 괜찮아. 일단 1,200미터까지 접근한다."

  항해장이 해도를 보며 걱정했으나 함장은 계속 접근을 명령했다.  주지앙 하구의 물살이 의외로 세서  바다의 파도보다 훨씬 소음이 심했기 때문에 그는 통과를 자신했다. 일반적인 수동형 소노부이의 탐지거리는 약 30마일이나 되지만, 이 부이는 10헤르츠 이하의 저주파만 포착한다. 수중에서 주파수가 높은 음은 감퇴하기 때문에  소리를 듣기만 하는 수동형 소노부이의 하이드로폰(음파 탐지기)은 낮은 주파수대만 탐지하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거대한 주지앙의 물살이 강 바닥을 긁고있기 때문에 아직 걱정은 없다는 것이 함장의 생각이었다.

  성진함은 초계기로부터의 레이더와 육안수색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스노클을 함교에 수납했으므로,  외부공기가 필요없는 디젤엔진인 아르고 엔진을 가동하여 저속항주 중이었다. 재래식 잠수함이 원자력 잠수함에 비해 소음이 적다지만, 그래도 동력전달장치인 샤프트나 스크루 등에서 상당한 소음을 발하고 있었다.

  "음문 입력 다 되었나?"

  "예! 2기가 완료 됐습니다. 속도에 따라 세 가지 음을 발합니다."

  발사관제관이 함장의 물음에 답했다. 성진함이 돌파할 곳의 반대쪽으로 이 잠수함의 소리를 녹음한 어뢰를 발사하여  중국 함정과 초계기를 속일 계획이었다. 이 작전이 성공할지의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중국 초계기들이 투하한 소노부이의 성능과 강 하구의 물살에 달린 것이겠지만, 승무원들은 운이 따라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함장이 해도를 확인했다. 위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나온 소노부이의 선에서 약 1,500미터 거리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중국 프리깃함들의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음문어뢰 발사 준비! 초속(初速)은 5노트, 침로 1-0-5로 설정."

  발사관제관이 인터폰으로 어뢰실과 통화하며  함장의 명령을 전했다. 잠수함 내에 긴장이 가득 찼다. 음향어뢰에 초속과 방향에 대한 입력이 끝나자 발사관제관이 함장에게 보고했다.

  "2기 연속 발사! 좌현 90도, 디젤 정지, 전동모터 가동, 20 노트로!"

  성진함이 1,800톤의 함체를 움직이며 어뢰를 발사했다.  초기형 장보고(209)급의 만재배수량이 1,300톤이 안되는데 비하면 비교적 거구였으나 다른 나라 잠수함에 비하면 극히 소형의 잠수함이다.  어뢰 2기는 2분 간격으로 차례로 발사되어 일단 서쪽으로 궤적을 그려나갔다.

  "15노트, 계속 가속중! 소노부이선까지 1,300미터!"

  항해장이 속도계를 보며 함장에게 보고했다. 아무리 축전지로 무음잠항 중이라지만 이 정도의 속도에서는  아무래도 소리가 많이 발생한다. 함장이 초조한듯 속도계와 해도를 번갈아 보았다.

  "20노트, 거리 1,200!"

  "좋아, 우현 90도! 모터 정지, 어뢰는?"

  항해장의 보고에 이어 즉시 함장이 명령을 내렸다. 함체가 서서히 남쪽을 향하며 관성과 강의 물살에 의해 계속 남쪽으로 흘러갔다. 어뢰는 아직도 서쪽으로 계속 항주중이었다. 속도는 7노트.

  "1번 어뢰, 음문 발신! 침로는 2-5-0으로. 속도 15 노트로 가속! 2번 어뢰는 현 상태 유지."

  잠수함으로부터의 유선지령에 의해 어뢰가 성진함의 소리를 내며 남쪽으로 향했다. 1번 어뢰와 소노부이 선의 거리는 900미터로 접근했다. 반면에 2번 어뢰는 계속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본함의 속도 16노트로 감속, 계속 속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항해장이 다소 겁먹은듯 보고했다.  소노부이의 선 바로 아래를 지나는 잠수함의 승무원들이 용감하길 바란다는 것은 무리였다.

  "어차피 물살의 속도와 같아지겠지."

  함장은 남의 말하듯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어뢰의 궤적을 계속 살폈다. CSU-83 소나가 계속 2기의 어뢰를 추적하고 있었으나  거리가 멀어서인지 자주 놓치고 있었다. 함장은 이것이 바람직한 상황이라며 좋아했다.

  "1번 어뢰쪽에 일제히 탐신음! 청음소너 말고도 능동형이 있습니다! 어뢰는 탐지되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최 중사가 함장에게 보고하자 함장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그는 이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2번 어뢰 급가속! 음문 발신! 어뢰의 침로 2-1-0으로.1번 어뢰 와이어 절단, 액티브! 최종속도로!"

  함장이 명령을 연이어 발하자 발사관제관이 바빠졌다.이미 위치와 정체가 노출된 어뢰는 계속 남진시켜 탐신음을 발하며 중국의 프리깃함을 향하게 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어뢰는 잠수함인척 가장하는 것이었다.

  "적 목표에 대한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확인작업 중. 2-4-5는 녹스급, 1번 목표로 설정합니다.  2-4-9는 지앙후이급, 목표 2로 설정. 2-5-3은 녹스급, 목표 3으로 설정. 다른 두 함정은 속도가 낮아서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각기 목표 4와 5로 설정함."

  소나 담당자인 최 중사에 이어 항해장이 보고했다.

  "본함... 소노부이선 통과중입니다... 본함의 속도 유속과 같은 12노트입니다."

  승무원들이 힐끗 잠수함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지만 이것은 본능적인 버릇이라 어쩔 수 없었다.함장은 물살의 속도가 뜻밖에 빠르다고 생각했다. 최 중사로부터 어뢰가 있는 쪽에서는 중국 프리깃함들이 접근 중이라는 보고가 왔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성진함은 소노부이의 선을 통과하므로 다소 긴장이 풀렸다.

  "1번 어뢰와 3번 목표의 거리 1,400.  3번 목표 400미터 후방에 발신음, 미끼어뢰로 추정됩니다. 1번 어뢰는 35노트로 접근중..."

  미끼 어뢰는 수상함정이 어뢰를 피하기 위해 함미에서 예인하는 소리 발생장치이다.  어뢰의 목표가 되는 함정의 스크루음과 같은 소리를 내어 어뢰를 유인한다.

  "초계기들 레이더 전파를 발하며 모두 서쪽으로 이동중입니다."

  "2번 목표에서 로켓발사음, RBU-1200으로 추정됩니다."

  발사관제관과 전파관제관, 그리고 소나담당인 최 중사가 거의 동시에 보고했다.함장은 3개의 라디오로 스포츠 중계를 동시에 듣는 기분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전장에서 4명의 참모로부터 동시에 보고를 받으며 명령을 내렸다던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전방에 적함이 있나?"

  함장이 최 중사에게 묻자 최 중사는 고개를 저었다.  강의 유속이 12노트라면 강물 위에 떠있는 배가 현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같은 속도로 상류방향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닻을 내리고 있어야 하는데 전투상황에서 이런 짓을 할 멍청한 해군은 없었다.

  "2번 어뢰 해상에 연속된 돌발음! 대잠로켓인 RBU-1200의 폭발음입니다!"

  "수상함정들이 모두 어뢰를 좇는단 말이지? 기가 막히군."

  폭발음의 반향이 함체를 때리자 이 소령이 중국해군을 비웃듯 중얼거렸다.

  "2번 어뢰 와이어 절단! 유도를 상실했습니다. 1번 어뢰, 미끼어뢰와 충돌 직전!"

  최 중사가 보고하자 이 소령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2번 어뢰를 와이어가 끊기기 전에 패시브(음파 수동형 탐지) 상태로 전환해야 된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발사관제관은 아직 200미터의 여유가 있었다고 변명했지만, 전투시에는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대처해야 하는 법이었다. 아마도 대잠로켓의 폭발에 와이어가 끊겼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어쨋든 중국의 수상함정들은 어뢰와 놀고 있었다. 1번 어뢰는 미끼어뢰를 지나쳐 3번 목표인 녹스급 대잠프리깃함에 접근했다. 목표는 어뢰를 피하기 위해 전속항주중이었으나 어뢰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최 중사의 소나 모니터에 환한 빛이 피어났다.  최 중사가 명중을 외치자 함내에 작은 환성이 일었다.

  함장이 이젠 비교적 여유를 가지며 승무원들을 돌아보았다.수신용 케이블까지 수납되어 할일이 없게된 통신장교는 비디오를 보고 있었고 항해장은 계속 해도를 살피고 있었다.  부함장은 항해일지에 녹스급 프리깃함을 격침시켰다고 기록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승무원들도 한결 여유를 가지며 업무에 임했다. 전투상황이지만 긴장이 풀린 상태였다. 소나를 담당한 최 중사만이  계속 잠수함의 침로상에 방해물이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한국해군 장보고급 잠수함의 후기형인 성진함은 소노부이의 선과  대잠초계기, 잠수함전용 수상함정 등의 위협을 뿌리치고 후하이만을 지나 다시 아르고 엔진을 가동시키며 홍콩의 신제에 접근했다.  함장은 란타우섬을 왼쪽으로 돌아 홍콩섬으로 방향을 잡을지,  아니면 서쪽으로 돌아 바로 동지나해로 빠질지 고민하고 있었다.

  홍콩섬쪽은 해역이 너무 좁아 회피운동이 필요할 때는 곤란했고 해상을 항해하는 선박이 전혀 보이지 않아 뭔가 불안했다. 동지나해쪽은 당연히 중국의 초계활동이 활발할 것으로 보았다. 부함장 및 항해장과 협의하여 동지나해쪽으로 가려고 결정한 순간에, 운명의 순간이 잠수함을 덮쳤다.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함의 내압선각(耐壓船殼)이  깨지는 소리가 나며 전등이 한꺼번에 꺼졌다.  어둠 속에서 쓰러졌다가 다시 비상용 전원이 들어오자 함내 상황을 살피며 바닥에서 일어난 함장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금이간 배관을 통해 사령실로 바닷물이 뿜어지고 있었다. 최 중사는 귀를 감싸쥐며 바닥을 뒹굴었고,  승무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이 쏟아지는 곳을 막으려 했다. 비상용 알루미늄 반창고로 물이 새는 곳을 막고 있는 승무원들을 보며 이들이 함장인 자신보다 위기상황에 대처를 훨씬 더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장은 자신의 할일을 깨달았다.

  "젠장, 기뢰야! 피해상황은?"

  "기관실이 당했습니다. 좌현 밸러스트탱크 파손, 스크루 작동정지!"

  부함장은 의외로 꼿꼿한 자세로 각 부서의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부함장이 기관실의 구역폐쇄를 건의했다.그러나 구역폐쇄는 잠수함의 끝장을 의미한다. 함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동모터 가동, 배수하라! 업트림 최대."

  "기관실의 침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철수명령을 내리고 부상하시는게..."

  함장은 이제서야 이 해역에 민간선박이 전혀 없다는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옴을 깨달았다.  그가 홍콩을 공격하고 광저우로 올라갈 때와 다른 코스를 취한 것이 잘못이었다. 광저우로 올라갈 때처럼 여객선 뒤를 졸졸 따라갔으면 이런 상황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올라갈 때와 같은 코스를 취해야 했다. 그는 패배를 시인했다.

  "기관실 인원 철수하라. 부상한다!"

  성진함은 엔진을 정지시키고 함의 모든 힘을 부상하는데 쏟았다.  마침 잠수함의 심도가 별로 깊지 않았기 때문에  5분만에 심도 60에서 해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함교 위로 올라온 함장이 눈부신 아침 햇살 아래에서 처음 본 것은 잠수함 바로 위를 날고 있는 하얼빈 H-5 대잠초계기와 Z-5 대잠헬기의 무리였다.  멀리 서쪽 해상에서 초계정 세 척과 프리깃함 한 척이 헐떡거리며 몰려오고 있었다.

  승무원들이 꾸역꾸역 함교 밖으로 나갔다. 몇 명은 헬기를 향해 저항하지 않겠다는듯 손을 흔들어 대고 있었고, 일부는 구명보트를 물 위에 띄우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이 소령은 함과 운명을 함께 할까 생각했으나, 대규모 물량전인 현대전에서는 인명이 훨씬 중요했으므로 한국 해군은 이런 생각을 일축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포로가 되더라도 함을 이탈하도록 교육받았다.  최 중사가 다른 승무원의 부축을 받으며 함교를 올라오고 있었다. 그의 귀에서는 아직도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최 중사, 수고했어. 미안하군."

  "함장님, 뭐라고요?"

  "수고했다고."

  "죄송하지만 다시 말씀해 주십시요."

  함장이 고막이 터진 최 중사를 물끄러미 보다가  상의 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어 뭔가 적었다. 최 중사가 이를 읽으며 화를 냈다.

  "그냥 입만 벙긋거렸다고요? 에이~ "

  스피커를 통해 큰 소리로 중국어가 들려왔다.  함장이 고개를 돌려보니 녹스급 프리깃함에서 잠수함을 향해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자, 전원 퇴함하라!"

  인원점검을 마친 함장도  서둘러 함교를 내려와 구명정에 옮겨 탔다. 중상자만 6명이었지만 한명의 전사자도 없어 불행중 다행이었다. 6명의 장교와 27명의 수병은 4척의 구명정으로 중국군 프리깃함을 향했다. 녹스급의 이 구식 프리깃함에서 브리지가 내려왔다.  이들을 향해 기관단총을 들이민 중국 해군들이 묵묵히 서서 이들을 맞았다.  선두에 선 함장이 이 프리깃함에 올라와보니 나이가 많아보이는 중국군 군관이 갑판위에 버티고 서 있었다. 중좌 계급장을 단 이 군관의 표정은 어딘가 착잡해 보였다. 그는 이 군관이 대만해군 출신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 소령이 거수경례를 했다.

  "단결! 대한민국 해군 소령 이 승렬 외 32명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에 항복합니다.  전시 포로에 관한 협정에 따라 대우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1999. 11. 25  09:30  중국 베이징, 베이징판띠엔(北京飯店)

  "어서 오시오, 허 동지! 하하하~ "

  "여전히 건강하시니 보기가 좋습니다, 주석님."

  총서기 겸 국가주석인 리 루이환이 현재 교전당사국인 대한민국 대사 자신을 이렇게 호텔 로비에서부터 맞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주석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대사를 안내했다. 그러나 주석 뒤에 도열해있는 수행원들은 은연중에 무거운 분위기로 대사일행을 압도하고 있었다.

  대사는 외무부 본청에 근무할 때 서울 성북동자택에서 승용차로 출퇴근했는데,출근길에 혜화동 로터리를 지날 때마다 우측에 보이던 허름한 중국집인 북경반점과  이 호텔의 이름이 같은 것을 생각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 호텔은 홀리데이인이나 호텔 샹그릴라 등, 외국계 자본에 의한 호텔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북경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호텔이었다. 신축건물인 꾸이삔러우(貴賓樓)에서는 자금성(紫禁城) 내부가 잘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는, 오늘은 꼭 이 멋진 성을 살펴봐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대사는 주석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여  주석의 집무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허 대사는 수행원으로 대사관에서 문관과 무관 각 한명씩만 데려왔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 무관과 주석 경호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을 기싸움이라고 한다던가, 허 대사는 뒷머리가 근질거려 자꾸 이들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내 소개하지요. 이분은 해군 사령 창 리엔츙 상장이시고, 이 사람은 제 2포병 사령 쏭 윈펑 중장이오."

  리 주석이 수행원 중에서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장성 두 사람을 대사에게 소개했다.  대사는 두 사람과 인사하며 하필이면 핵미사일을 관장하는 전략미사일군 사령관 격인 제 2포병 사령을 데리고 나왔을까 하며 기가 죽었다.

  "자, 앉으시오. 대사."

  "감사합니다, 주석님."

  주석집무실 옆에 있는 접견실의 의자에 주석을 마주보고 단정하게 앉은 그는 중국의 최고실력자인 이 사람을 세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원래는 광동, 광서, 호남, 호북 4개성을 관할하는 광저우 대군구(大軍區)의 사령이었다가 개방과 함께 자본가로 변신한 그는, 내전 이후에 다시 정치가로 변신해 있었다. 격동기의 중국에서 살아남은 대단한 수완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초강대국의 하나가 되었지만 제 3세계의 관료적 권위주의체제를 답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체제의 정치적 특성은 민중부문이 탈정치화되고  사회갈등 그 자체를 국가발전의 적으로 간주하는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하며,  관료 위주의 권위주의적 문제해결 방식이 크게 강화된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자본축적 위주의 발전전략이 강화되어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이 실시된다.  내수시장보다 국제경쟁력이 우선시되어 국민경제의 해외의존도가 심화되며,산업은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대중소비재산업을 중심으로 균형있게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와 전자제품 같은 특수내구재소비재산업과 건설부문을 중심으로 하여 특수계층과 관련되어 부분적으로 확대된다, 라는 것이 관료적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한상진 교수의 논문내용이었다.

  "잠깐만... 주석님, 죄송하지만 커튼을 열어도 되겠습니까?  고궁(故宮)을 내려다 보고 싶은데요..."

  주석의 수행원들이 움찔했다. 이틀전, 정치국원 3명이 대낮에 암살된 상황에서 최고실력자인 주석이 암살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철통같은 경비를 믿은 주석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커튼을 열라고 명령했다. 수행원들이 서쪽 창문의 커튼을 열자, 대학원에서 중국문화를 전공했던 허 대사는 뛸듯이 창가로 가서 티엔안먼(天安門)과 그 뒤의 고궁박물관으로 쓰이는 쯔진청(紫禁城)의 전경을 보았다.

  초겨울의 흐린 하늘 아래 勞動人民文化宮과 中山公園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황제가 집무를 보던 곳인 外朝의 태화전, 중화전과 보화전, 그리고 황제가 일상생활을 하던 內廷의 전각들이 늘어서 있었다. 허 대사가 감탄사를 연발하자 리 주석이 씨익 웃었다.

  '이것이 문화의 차이이고 국력의 차이다.'

  같은 시간, 티엔안먼(천안문), 2층 전각 동쪽

  중국 현대사의 상징물인 천안문 광장을  내려다 보고 있는 천안문의 2층, 전각의 처마에 의해 그늘이 진 창문에서 남방계 중국인이 서서히 총을 들어 올렸다.  총은 일반적인 저격용 소총보다 훨씬 컸으나 외관은 조잡해 보였다.  아프가니스탄의 회교전사들이 대공포로 쓰이는 20밀리 벌컨 개틀링건을 분해하여 만든 수제총(手制銃)이었다.

  제작자의 이름을 딴 이 총의 이름은 아브 알 하산,  유효 사정거리가 3,500미나 되며,  장갑 관통능력이 150밀리라고 알려져 있는 엄청난 놈이었다.  아프간의 회교전사들은 이 총으로 높은 산위에서 아래의 러시아 전차를 향해 쏘아 상부장갑을 뚫고  전차를 파괴시켰다고 전해졌다. 볼트액션식의 단발이지만 냉각장치에 문제가 있어서 연속사용이 곤란하다고 알려져 있기도 했다.

  23일 낮에 3명의 정치국원들을 참혹하게 살해한 킬러, 암호명 구스타프는 천천히 스코프를 통해  중국 국가주석의 집무실 바로 옆방인 접견실을 훔쳐보았다.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 허 대사가 창가에 서 있었고 주석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유리창까지의 거리는 레이저측정기를 통해 652미터로 파악했으나 그는 여기에 7미터를 가산했다.그는 창유리의 재질을 이미 알고 있었다. 40밀리 강화방탄유리, 어지간한 기관총에도 뚫리지 않는 놈이었다.

  이 유리의 특징은, 빛이 똑바로 통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입사각에 대해 약 5도 정도 우측으로 기울어지는 성질이 있으며, 동시에 아래로 3도 정도 기울어져 보인다.  창 밖으로부터의 원거리 저격에서 요인을 보호하기 위한 특수유리였다. 구스타프는 이미 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탄도수정을 했으므로 이제 쏘기만 하면 잡을 수는 있었다. 다만, 그의 퇴로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결점과 함께,  스스로 사격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불안했다. 이것은 스나이퍼에게는 둘 다 치명적인 약점이다... 라고 구스타프는 생각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 베이징판띠엔

  "이번 전쟁은 중조(中朝) 간의 수천년 역사상 매우 불행했던 일이 틀림없소."

  "그렇습니다, 주석님."

  하지만 이 불행을 누가 먼저 자초했느냐가 중요했다. 허 대사는 주석의 다음 말을 예상했다. 입을 연 주석의 말은 대사가 예상한 대로였다.

  "이번에 조선이 먼저 침공하지 않았다면 계속 우호증진을 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오."

  "....."

  침략국이 구사하는 상투적인 잡아떼기였지만 반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대사는 생각했다. 그는 주석에게 괜히 꼬투리를 잡혀 회담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주석은 대사의 강한 반발을 우려해 더 이상 이 문제는 캐묻지 않았다.  대사의 등 뒤에 배석한 무관이 순간 움찔했으나,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대사가 이곳에 오기 전에 무관에게 몇번이나 다짐을 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제안한 휴전협상에 대해 귀국(貴國)의 총통 각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중국계 국가에서는 대통령제하의 국가원수를 총통이라고 부른다.  물론 히틀러같은 체제는 아니고, 미국식이나 제 3세계 국가의 권위주의적 대통령을 모두 총통이라고 불렀다. 한자로 대통령이라고 써줘도 소용이 없었는데 이는 중국인의 자존심 때문일까? 어쨋든 허 대사는 한국 국가 원수에 대한 호칭을 정정해 주어야만 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휴전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국경선의 원상회복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나머지 중국의 요구는 적극 검토하겠지만, 영토할양같은 무리한 요구조건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음... 그럼 배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오?"

  "저희가 먼저 공격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배상문제는 결국 누가 먼저 공격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문제는 결국 피할 수가 없었다. 대사는 회담의 결렬을 각오했다.

  "허허... 견해차가 너무 크군요."

  "네... 안타깝습니다. 주석님."

  허 대사는 이 만남이 끝나고 가질 기자회견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의미있는 대화가 진행] 되었다는 외교적 수사를 쓰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는 외교협상이 어떤 진전도 없이 결렬되었음을 뜻한다.  대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이런 결과밖에 나올 수 없었다.

  "나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소. 우리 중화인민공화국 인민들의 복리를 위해 그동안 사문화되었던 두만강 항행권을 보장받고자 하오.영토적 야심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오."

  "인민공화국의 두만강 자유항행권은 이미 보장이 되고 있는줄 압니다만..."

  "두만강은 수심이 너무 낮아요.  대형화물선이 중국영토에 들어올 수 없단 말이오. 조선이 약간만 양보해 준다면 양국의 이익증진에 크게 도움이 될텐데 말이오."

  "중국의 수출입에 선봉지구를 이용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허 대사가 이중의 암호문을 통해 본국으로부터 받은 전문에는 선봉에 대한 양보는 절대 할 수 없다고 되어있었다.그러나 주석은 지금 집요하게 선봉을 요구하지 않는가? 협상은 이렇게 평행선만 긋고 있었다.

  "귀국의 잠수함 한 척이 오늘 새벽에 광저우를 공격했더군요.  난 북조선의 탄도미사일에 의한 공격인줄 알았소. 그 잠수함은 인민해방군의 해군에게 결국 격침되었지요. 피스라는 용병들만 핵을 맞은 셈이오."

  "....."

  주석은 말을 돌려 은근히 대사를 협박하고 있었다. 잘못 알기는 했지만, 중국이 핵을 사용함으로써 한국의 선택권을 극히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또한, 만약 한국이 중국 영토를 공격하면 언제든지 핵을 쓸 수 있다는 엄포이기도 했다.

  주석의 비서가 다가와서 주석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전했다.  주석이 작은 목소리로 명령하자 비서는 리모콘으로 벽면의 대형 TV화면을 켰다. 화면을 본 대사가 의아한 눈으로 화면 속의 인물들을 응시했다.

  '이 시간에 유엔총회라니... 저 사람은 중국의 주(駐) 유엔대사!'

  뉴욕은 북경보다 14시간이 늦다.  이곳이 아직 아침 10시가 안되었으니 뉴욕은 밤 8시 정도였다. 원래 뉴욕시간으로 내일 아침에 열릴 예정인 총회는 중국의 핵사용에 대한 우려와, 한중전쟁이 3차대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조정하려는 의도로 개회가 추진되었는데  중국의 주장으로 더 일찍 열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중국의 선전전이 한창이었다.  화면 속의 연단에서는 중국의 주 유엔대사인 첸 밍산 대사가 한창 연설 중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적대행위의 중지를 조선에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아직 이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본국에서는 이를 침략행위의 지속 의사로 받아 들이며, 전선에 병력을 대폭 증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요구조건은 간단합니다. 중국 영토에 대한 침략적 적대행위의 중지와 두만강 자유항행권의 실질적 보장입니다.]

  '중국영토에 대한 침략행위 중지라고?  겨우 1개 함대도 방어하지 못하여 핵을 쓴 주제에 어찌 대국이랄수가...  자유항행권의 실질적 보장이라. 결국 선봉항을 조차(粗借)해주든지 할양(割讓)하라는 얘긴데, 이건 한반도의 홍콩인가?'

  중국이 태평양으로 바로 나오는 것은 중국을 경계하는 나라들이 우려하고 있는 문제였다.특히 미국이나 일본은 이를 극력 저지하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점령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한반도를 아예 포기하고 중국의 세력신장을 수용하겠지만, 이미 중국의 패전이 기정사실화된 지금 선봉항 조차나 할양은 중국에게 실질적인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므로 이들 나라들이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고 대사는 생각했다. 아직은 수세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에 국제역학관계가 유리하게 돌아갈 것으로 본 대사는 자신감을 얻었다.

  중국의 위세에 숨죽이며 지내온 동남아시아 각국은 한국이 중국을 막아내자 자신감을 얻어 자국의 군비증강에 한창이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중국의 남사군도 점령 이후 해체되었던  긴급대응군을 재편성하며 해군과 공군 증강에도 열을 올렸다. 남사군도에 대한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의 해상초계가 공공연히 강화되기도 했으나, 중국은 아직 이에 대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1999. 11. 25  10:55  평안북도 선천군 대목산요새

  "기래, 동무들 뎡말 수고들 많아서."

  기자회견이 끝난 요새의 지하 지휘소에는 한국의 국방장관과 북한 인민무력부장 서리 겸 총참모장 최 광 차수,그리고 통일참모본부의 이 종식 차수가 북부군의 주요 지휘관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선천군과 철산군, 그리고 구성군의 노농적위대 연대장들은 조국해방전쟁의 전설적 영웅인 이들 앞에서 꼼짝않고 부동자세를 취했다.나이로 봐도 한 세대 앞의 사람들이었고 계급은 까마득하게 높았으니,예비역 중좌와 대좌에 불과한 자신들이 이렇게 마주 앉는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게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은 승진과 함께 노농적위대원 모두 현역으로 복귀했다.  중국에게 이들이 훈련이 부족한 예비역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부상당한 저격여단장 최 소장 대신 야간전대대장인 선우 대좌가 저격여단의 지휘권을 인수받았다.  그는 살아남은 야간전대대와 산악전대대원들 외에, 추가로 시가전대대와 다른 부대 소속이었던 몇 개의 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배 윤성 대좌가 지휘하는 대전차대대는 중국 장갑집단군에 대한 효용을 인정받아 부대를 확대개편하여 독자적인 여단이 되었다.

  "동무들을 이렇게 부른 것이래... 부탁을 하기 위함이야."

  "어떤 명령이든 당과 조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 바쳐 수행하갔습네다!"

  최 광 차수의 말에 철산군의 연대장으로서 이번에 차 준장과 함께 승진한 대좌가 절도있게 대답했다.  이들과 함께 있는 차 영진 준장은 심히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불안함을 느껴 졸음이 확 깨는 기분이었는데, 역시 분위기는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군인이래 당엔히 조국수호를 위해 몸바텨야 합네다! 당과 조국이 부르신다면 저희는 언제라도  원쑤를 향해 비수를 꽂을 각오가 되어 있습네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요!"

  차 준장이 믿고 있던 홍 대좌, 아니, 이번에 소장으로서 인민군 장성의 반열에 오른 홍 종규소장이 나이답지 않게 씩씩하게 대답했다.차 준장은 왜 북한사람들은  항상 조국보다 당을 우선하나 하는 것이 한가지 의문이었다. 사회주의자라서 당을 국가보다 중요시하는 것인가? 조국과 당, 또는 인민, 조국, 당의 순서로 말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했다. 아니, 인류와 세계평화를 위해...  또는 지구환경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위해라고 한다면? 그는 군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도 했다.

  "젊은 사람들이라 역시 믿음직 하구만. 기래, 이번 북부군에 최고 영웅 차 동지는 어드렇게 생각하디?"

  차 준장은 최 차수같은 70대 노인의 눈에는  50대 중년도 어린아이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겨우 30대 초반인  자신은 어떻게 보일까?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차 준장은 깜짝 놀라며 대답을 했다.

  "국가 위급시에 전투를 수행함은 군인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요. ..., 설마 신의주를 북부군 단독으로 점령하라는...?"

  "기래, 역시 이번 조국수호전쟁의 영웅이구만! 동무래 전략가적 소질도 다분히 있구만 기래."

  역시 북부군은 훈련과 장비가 부족한 노농적위대로만 전과를 쌓지 않았다. 차 준장 같은 현역 영관급이 지휘를 한 것은 북부군이나, 통일한국 전체로 봐서도 행운이었다.  최 차수는 깜짝 놀라고 있는 차 준장을 응시하며, 이런 훌륭한 인재가 인민군이 아닌 국군에 있는 것이 아깝다며 한탄했다.

  차 준장은 속으로 맙소사를 연발했다. 채 2개 사단이 되지 못하는 얼빠진 예비역들로 어떻게 3개 집단군 병력이 몰려있는 신의주를 친단 말인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집단군은 한국군의 군단에 해당되는 단위이지만 병력구성의 차원이 달랐다. 리아오닝(遼寧)성의 제 39 합성집단군은 평시에도 2개 기계화사단과 1개 오토바이사단, 1개 기갑사단, 각 1개씩의 고사포여단과 포병여단이 있었고, 중국내전 중에는 이것이 거의 2배로 확대개편되었다.  90년대 중반까지 집단군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가 2개 기계화사단과  각 1개씩의 포병, 고사포, 기갑 여단으로 구성된 허뻬이(河北)성의 38집단군이었고,  가장 큰 규모는 각 3개씩의 보병사단과 수비사단, 그리고 각 1개씩의 보병, 고사포 및 기갑여단으로 구성된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에 본부를 둔  선양군구 소속의 제 23집단군이었다.

  1개 집단군의 총병력은  한국군 군단병력의 두배 정도라고 보면 적당했다.미국의 보병사단처럼 전차 200여대로 구성된 전차여단과 헬기 150대로 구성된 항공대대를 예하에 두는 엄청난 부대는 아닐지라도 인민해방군의 현대화계획에 따라 발전된 중국군 보병의 전력은 급속히 신장되어 있었다.

  "1급 군사비밀이디만, 동무들을 믿고 갈차 주갔서.  이 차수, 설명해 주라우!"

  최 차수가 한국 국방장관의 눈치를 보더니  이 차수에게 설명을 미뤘다. 군 지휘권을 모두 통일참모본부에 넘겨준 상황에서 최 차수가 표면에 지나치게 나서는 것은 한국정부 입장에서 보면 우려스러운 일이었으므로 최 차수는 한국정부의 눈길을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종식 차수는 자신보다 한참 선배이며 권력서열도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 최 차수의 명령을 받들어 설명을 시작했다.

  중국은 한반도 점령에 실패하자 선봉지역의 방어에 역점을 두고 이를 핵위협과 협상을 통해 영구점령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  선봉이 중국에 넘어가면 결국 중국의 의도가 성공되고, 앞으로 한국이 중국과의 경제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통일한국군이 선봉지역을 수복하려 했으나 병력의 집중이 안되어 불가하다는 배경설명을 했다.

  "기래서...  어렵겠디만 동무들만으로 신의주를 공격해 줘야 되가서. 우리가 테레비죤 방송을 통해서 북부군의 위용을 과장한거래이 잘 알고 있디? 길고 아까 기자회견도 말야. 선봉에 추가적인 병력증원이 있으면 우린 못이겨. 지금 만주에 있는 중국군 병력의 관심을 이쪽으로 돌려야 해. 여기 있는 군은 강계쪽으로 빼돌리고 말야. 무슨 뜻인지 알간?"

  "네! 알갔습네다!"

  밀어내기 방식으로 서부전선의 병력을 동부쪽으로 이동시킨다는 전략이었다. 연대장들이 일제히 복명했지만 차 준장은 기가 막혔다.

  "의장님, 만약에 우리가 패해서..."

  차 준장은 당연히 패할 것으로 생각되었지만,군대문화에서 당연한 패전이란 용납되지 않는 용어였다. 뻔히 질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야만 했다.

  "신의주에 있는 중국군이 밀고 내려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비부대도 없는 상황이라면 평양까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기건... 그니까 동무들 부대는 양동작전만 수행하라우. 동무들의 임무는 신의주 수복도 아니고 의도적인 패배도 아냐. 기저 공격하는 척만 하라우. 알가서? 길고 급하면 개마고원쪽 병력을 빼내 줄테니끼 최악의 경우에는 방어만 하라우. 불패의 신화를 지닌 상승(常勝) 북부군이니끼 잘 하리라 믿가서."

  최 차수가 끼어들어 이 차수를 도왔다. 결국 이렇게 해서 북부군이라는 허울만 좋은 차 영진 준장의 부대는  대규모 적을 향해 공격해야 되는 어려운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1999. 11. 25  10:15  중국 북경, 베이징판띠엔

  "전쟁에 관련된 거라면 아무래도 총회보다는 안보리가... 허허... 미안하오."

  각국 유엔대사가 한중간의 전쟁에서 중국이 핵을 사용한데 대한 비난 여론이 흐르고 있었으나, 총회의 비난은 아무것도 아니며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들이 총회의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흐지부지되고 만다. 국가주석이며 총서기인 리 루이환의 속셈은 그것이었다. 한국이 아무리 방어전을 성공리에 수행해 내더라도 이것은 제한전일 경우이다. 핵이 전면에 등장하고 나면 재래식 전쟁은 의미가 없었다. 허 대사가 손목시계를 보더니 수행원을 보며 말했다.

  "그 리모컨 잠깐 주시겠소?"

  주석의 수행원이 주석의 눈치를 보자 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대사가 리모컨을 받아 벽면 대형TV의 채널을 영국의 BBC방송으로 돌렸다. 한중전쟁에 대한 보도가 한참 이어지고 있었다. 화면에 핵이 폭발한 동지나해 지역의 지도가 나오자 주석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다음에는 한반도 지도가 표시되며 이 위로 붉은 화살표와 푸른 화살표가 난무했다. 전투장면이 이어지고 다음에는 대목산요새의 기자회견이 잠깐 나왔다.

  이 보도가 끝나자 앵커가 서울에 있는 특파원을 호출했다. 바바리 코트를 입은 중년백인인 BBC의 서울 특파원은 고상한 발음의 영국식 영어로 자신은 서울의 국방부 공보실에 있으며,  놀랄만한 일이 발생했다며 흥분하고 있었다.카메라가 기자회견실 중앙 벽면의 멀티비전 화상을 비쳤다. 몇 개의 스틸 사진이 계속 흘렀다.

  장보고급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209급 잠수함이 어느 섬의 선착장에서 부상한 채로 병참보급선인 천지함으로부터 보급을 받고 있는 모습이 먼저 나왔다.  중국해군 동해함대를 박살내고 홍콩과 광저우를 공격한 놈들이라며 분노한 주석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조그마한 재래식잠수함들이 이렇듯 활약할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다음 사진은 한글이 새겨져 있는 크레인으로 어뢰를 잠수함에 수납하는 것이었다.  흰색인 이 길쭉한 어뢰의 탄두부분에 태극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인민해방군 중장 출신인 주석은 해군이 아니었지만  어뢰가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대사와의 회견에 배석한 창 리옌충 상장이 비명을 질렀다.

  "왜 그러시오? 상장."

  "주석님, 저건 SLCM... 혹시 핵일지도..."

  창 상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주석이 확인을 위해 제 2포병 사령인 쏭 윈펑 중장을 보니 그는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주석에게 보고했다.

  "러시아제 신형 아쿨라급 잠수함에 탑재하는  SS-N-21, 나토 코드 샘슨(Sampson)이 틀림없습니다. 533밀리 어뢰발사관에서 발사하는 중거리 순항 핵미사일입니다."

  SS-N-21은 잠수함 발사 순항미사일인 SLCM이며 항속거리는 3,000km이고 탄두는 300kt(킬로톤)급이다. 마하 0.7의 속도로 고도 200미터를 관성유도, 또는 terrain following방식(사전에 미사일의 컴퓨터에 목표까지의 지형을 입력하고 이를 비교하며 비행하는 방식)으로 날아간다.CEP(발사된 숫자의 평균 절반이 형성하는 탄착점)는 150미터로서 정확도가 비교적 높은 미사일이다.

  허 대사는 다소 의외였다.  본국으로부터 이 시간에 영국의 BBC나 미국의 ABC, NBC 등을 키라는 명령을 받긴 했지만, 한국에 핵미사일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게다가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중거리 순항핵 미사일이라니...

  TV화면 안에서도 각국의 외신기자들이 술렁거렸다. 다음 사진은 더욱 경악할만 했다. 어느 지하기지 사일로에 있는 거대한 SS-18 SATAN의 모습이었다. 역시 태극마크와 한국인 기술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주석과 고위장성 두 사람의 입이 쩍 벌어졌다.  SS-18은 전략 탄도미사일로 탄두가 10개나 되는 MIRV(다탄두미사일)이다.

  "빌어먹을 러시아!"

  창 상장이 욕을 퍼부었다. 틀림없이 중국의 한국 점령을 방해하기 위해 러시아가 한국에 핵미사일을 팔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닙니다.  구 소비에트 연방의 다른 공화국에서 나온 것일 겁니다. SS-18은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카자흐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게..."

  쏭 중장이 러시아의 핵미사일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연방의 붕괴 이후 러시아와 각 공화국 사이에서는  핵미사일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일어났다.  대부분이 러시아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상당수는 관리미숙으로 이전 대상에서 빠지거나 은닉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핵미사일이 철저한 계수에서 어떻게 빠지수가 있느냐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미국의 예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유럽주둔 미군은 중거리핵 전력조약에 따라 유럽 내에 있던 퍼싱미사일의 발사장치를 모두 파괴했다, 라고 국방성에 보고한 후에 또하나의 발사장치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이란의 반정부세력인 인민전사기구에서는 이란이 카자흐스탄으로부터 4개의 핵탄두를 입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992년 12월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은 이를 단순한 루머일 뿐이라고 부인했다. 진상은 아무도 모른다. 카자흐의 대통령도 모를 수가 있었다.

  "155밀리 곡사포와 저 유형의 포탄, 저건 전술핵입니다, 주석님.  저것도 러시아제이군요. 저런 종류는 국제 암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쏭 중장이 화면을 보며 설명했다. 주석이 기가 팍 꺾인 모습으로 얼이 빠져 TV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단순히 어느나라가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핵의 운송수단, 즉, 핵미사일같은 발사체나 폭격기 등의 운송수단을 가질 때 진정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대사, 당신네 나라는 스스로의 약속을 어겼소. 조선반도 비핵화선언 말이오."

  주석이 분노에 찬 신음성을 발하며 대사를 노려 보았다. 대사는 담담했다. 허 대사는 어깨가 쑤신듯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천천히 두드렸다.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실은 밖의 저격자에 대한 신호였다. 대사는 주석을 살려 둬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실력자가 등장하여 그가 권력을 확립하기 전에 생길 수 있는 권력공백기에 집단지도체제가 강경화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했다.

  "한국정부로서는 참기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약속보다는 아무래도 생존이 우선..."

  "집어 치우시오!  조선이 핵으로 위협을 하고 있는데, 핵탄두의 보유 숫자로는 중국과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오.  대사는 이 점을 귀국 정부에 분명히 밝히시오. 중국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리 루이환은 벌떡 일어나 허 대사에게 쏘아붙이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대사가 허탈하게 웃고는 천천히 일어나 수행원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같은 시간,  천안문루에서 이 방을 노려보고 있던 암살자 구스타프는 총을 분해하여 가방에 담고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거의 눈이 오지 않는 북경의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1999. 11. 25  11:20  일본 도쿄, 비상연립내각 주회의실

  "오부치 의장의 의견이 그렇더라도, 통막은 합의체가 아니겠소? 막장들의 의견이 우선이지요."

  방위청장인 요시다 겐스케가 오부치 통막의장을 공박했다. 어차피 반전론자로 낙인찍힌 늙은 육막장은 필요가 없어서  통막의장으로 승진시킨 사람이 요시다 방위청장이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우리가 핵무장을 하고 군비도 증강한다면 중국과 한국이 우리를 적대시할 것이 분명합니다.  미국과 러시아도 경계를 할 것이며 당연히 유럽도 경계를 하게 됩니다. 이 경우, 가장 크게 타격을 입는 것은 경제분야입니다.무역량이 감소하고 원자재 수입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의장은 통막의장이지 통산상이 아니잖소?"

  "그렇더라도 핵만은 안됩니다. 국민 여론도 아직은 그렇지만 선제 핵공격을 받는 날에는..."

  "조선을 보시오.  한참 이기고 있다가 핵 한 발에 벌벌 떨고 있지 않소? 만약 조선에 핵이 있었다면 이런 낭패를 겪지는 않을 것이오. 조선은 결국 중국의 핵압력에 굴복하고 말것이란 말이오. 우리도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핵을 보유해야 합니다.  일개 테러단체도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데 강대국인 우리 대일본이 핵이 없다면 말이 되지 않아요."

  "핵이 있으면 선제 핵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내 의견이오.  어느 나라든 보복이 두려울테니까. "

  관방장관은  한중간의 전쟁에서 신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중국이 핵을 사용한 지금 일본도 핵을 보유해야 하는 당위론을 펴고 있었다.

  어느나라에 핵이 있다면 적국은 핵보복이 두려워 핵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핵이 두려워 선제핵공격에 주력할 수도 있다고 오부치 의장은 생각했다. 이것은 협상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단추전쟁이 끝났을 때는 이미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방위청장이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허둥대며 TV를 켰다.  급히 자신의 책상에 있는 단말기를 조작하여 채널을 바꿔가며 뭔가를 찾았다.  총리와 대신들이 방위청장을 지켜보자  급하게 한마디 던지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조선에 핵이 있습니다. 그것도 여러가지로.. 녹화한 테입을 보여 드리죠."

  "뭐요?"

  총리와 대신들의 얼굴이 노래졌다.

  "자, 이제 나왔습니다. 보시죠."

  화면에는 중국 총서기가 본 것과 같은 SLCM, SS-18, 곡사포 전술핵탄두 등이 차례로 나왔다. 모든 각료들이 이 화면을 보며 경악했다.

  "이제 물건너 갔습니다. 대륙간탄도탄인 SS-18이 있다면 미국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조선은 중국보다 핵우위에 섰습니다.  저 화면이 진짜인지는 검토해 봐야겠습니다만..."

  문부상에 이어 대장상이 한탄했다.

  "중조(中朝) 전쟁이 끝나기 전에 다케시마(竹島)는 반환해 줘야 되겠습니다.한국은 핵물질에 대한 IAEA의 감시가 심하자 자체개발보다는 해외수입을 감행한 모양입니다. 틀림없이 러시아의 도움이 있었을겁니다."

  미국이 일본의 도움을 받아 한반도 지형을 관측하여 세부지도를 만든 것이 1948년에서 1953년 까지이다. 이 지도에 보면 울릉도 도동항의 북동쪽에 있는 납작한 섬인 죽도가 독도로, 독도는 죽도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과 청나라가 맺은 백두산의 국경조약에서 쏭화지앙(송화강)을 염두에 두고 동쪽경계로 삼은 토문강(土門江)을  중국이 두만강으로 자의적 해석을 함으로써 조선이 만주 동부인 간도를 잃었듯이,국제관계에서 지역 명칭의 확립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본이 독도를 죽도라고 하는 한은 언제든지  독도문제는 한일 양국간에 불거질 수 있는 문제였다.

  "안됩니다. 기껏 얻은 다케시마를...  우리도 빨리 핵을 개발해야 합니다. 6개월이면 핵뿐 아니라 실전발사체까지 배치할 수 있다고 했죠?"

  "그렇긴 합니다만 실기(失機)한 것이 아닐지...  미국의 견제도 받을테고요."

  관방장관의 질문에 방위청장이 신중해 졌다.일본의 미래를 가늠할 이 순간에 신중해지지 않을 각료는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조선처럼 핵을 수입한다면?

  관방장관이 의견을 제시하자 놀란 각료들이 침묵했다. 일본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핵을 개발할 수도, 수입할 수도 있었다. 핵을 보유한다는 결과는 마찬가지다.조용한 침묵이 흐르더니 그동안 말없이 각료들의 말을 듣기만 하던 총리가 미소를 지으며 운을 떼었다.

  "비상각료회의에 제안된 안건은 국민총동원령과 징병제입니다.  물론 핵개발 문제와 맞물려 있기는 하지만 이것들부터 결정합시다.  어떻소, 열도에 대한 대륙의 위협을 이유로 반도에 자위대를 진군시켜도 되겠소? 조선에서 반대가 심하더라도 말이오."

  "약간 늦긴 했습니다만, 중국군이 완전히 패퇴하기 전에 반도에 진주시켜야죠. 이 경우 조선군과의 전쟁은 불가피합니다. 진짜로 조선에 핵이 있다면 조선은 핵을 사용할지도 모릅니다."

  방위청장의 대답에 수상과 각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단 조선반도 진주는 연기되고 자위대 확대개편과 징병제 실시, 핵개발 등의 안건들이 일사천리로 통과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한반도 침공을 전제로 한 작전이었지만 외부에는 중국의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일본의 움직임이 있자 일본내 미국과 러시아의 정보기관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시체제로 돌입한 자위대의 총지휘는 중앙지휘소로 인계되었다.  도쿄도 미나도쿠 롯폰기에 있는 이 자위대의 작전중추는 최고지휘관이 방위청 장관, 관리책임자는 통합막료감부 사무국장이다. 지하 2층의 종합정보실에는 대형 데이터화면이 있는데, 이것은 육상자위대의 야외통신시스팀, 항공자위대의 뱃지시스팀(Base Air Defence Ground Environment : 자동경계관제 시스팀), 그리고 해상자위대의 자위함대 지휘 지원(SF) 시스팀까지 연결되어 유사시에는 이곳이 일본의 최고급 전쟁 지휘소로서 기능하게 되어 있었다.

  1999. 11. 25  10:20  중국 베이징, 베이징판띠엔 로비

  한국과 중국의 휴전협상결과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어 이 호텔의 라운지에는 각국의 외신기자들로 만원이 되었다.  원래 대사의 주석 접견은 비밀리에 이루어졌지만,  핵위협을 한 뒤라 협상의 결과를 자신한 중국은 이 정보를 특파원들에게 흘려 협상이 끝날 때는 이미 중국의 모든 외신기자들이 이 정보를 본국에 타전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되었지만  기자를 부른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허 대사가 앞으로의 전쟁을 우려하며  잔뜩 풀이 죽어 나오다가 운집한 기자들을 보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통일한국은 중국과 맞먹는 핵강국이었으므로 자신감을 표현해야 했다.  기자들이 주석과 수행원들을 에워싸며 질문공세를 벌였다.

  "협상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휴전은 성립되었습니까? 중국의 요구사항은 무엇이죠?"

  "지금 유엔총회에서는  중국의 핵사용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한 말씀..."

  "한국이 핵을 어떻게 구했습니까?  서울에서는 구입경로에 대한 설명이 없던데요. 핵확산금지조약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 아닙니까?"

  대사는 과연 이들이 자신에게서 나올만한 정보를 묻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냥 한번 넘겨짚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대사는 영어와 중국어로 질문을 퍼붓는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숨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는 없겠죠. 다음 협상이 약속된 것은 아니지만 다시 만나야 할 것입니다. 최대한 평화적으로 이번 사태가 수습되길 바라는 것이 한국민 전체의 소망입니다."

  영어 질문에 대해 영어로 대답한 대사는 다음 질문에 대해 중국어로 대답했다.

  "중국측이 요구한 것은 총서기나 다른 분들께 여쭤보십시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핵은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세계평화를 사랑하는 인류의 마음일 것입니다.  한국이 핵을 어떻게 구입했는지는 저로서도 알지 못합니다.  핵확산금지조약이라도 국가의 중대위기시에는 보유가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핵 보유에 대한 평등권의 문제도 있고... 상임이사국 5개국만 핵을 보유하란 법은 없잖습니까? 그리고 어차피 핵확산금지조약이 실효상태인 지금..."

  "전문가의 견해로는 한국정부가 발표한 사진이 조작됐다고 하는데 대사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대사는 그 질문을 한 미국계 기자를 쳐다보며 다시 영어로 대답했다. 자신도 방금 알게된 것에 대해 무슨 말을 하란 말인가?

  "글쎄요.  저도 실물을 본 것은 아니라서 확실한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만,  아직 한국정부는 이번 전쟁에 관해서 특별히 과장을 하거나 거짓말을 발표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말입니다."

  대사관에서부터 안내를 맡았던 인민무장경찰의 책임자가 대사에게 신호를 하자 허 대사는 수행원들과 함께  승용차가 준비되어 있는 정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따라붙으며 집요하게 질문했다.

  "대사는 대사관에 연금된 것으로 아는데 적국에서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가족들과 함께 기거한다면서요? 구금상태나 다름없잖습니까?"

  "한국대사관은 건물 임대계약기간동안 한국의 영토입니다. 아직은 중국당국으로부터 어떠한 위협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식료품 구입에 애로를 겪는 점이 불편하지만 중국에 거주하던 일반 한국인들보다는 생명의 위협을 훨씬 덜 받고 있습니다. 다만 본국과 통화할 때 잡음이 심한 것이 문제입니다."

  대사는 중국당국의 감시에 대해 노골적인 반응을 드러냈지만, 그보다는 중국에 있던 한국인 기업가들과 근로자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이들이 백주에 중국인들로부터 테러를 당했다는 보고는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었다. 간첩혐의로 체포된 한국인이 17명, 집단구타나 폭행에 의해 죽거나 다친 사람이 55명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전황이 한국에 유리하다는 사실이 일반중국인들에게 알려질수록 그 숫자는 늘어나게 될 전망이었다.

  대사는 중국 인민무장경찰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대사관으로 돌아가는 차 속에서 한국에 과연 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문관과 무관은 도청을 염려하여 대사관에 돌아갈 때까지 한마디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1999. 11. 25  11:40  남양주군 금남리 통일참모본부

  [주중대사로부터 보고를 받았소. 휴전협상은 고사하고 예비협상도 포기해야 할 판이오. 중국의 요구가 집요하단 말이오. 선봉... 그곳을 절대로 주지 않기로 했소.]

  선천에서 지금 막 돌아온 이 차수는  뜻밖에 음울한 얼굴의 대통령을 보아야 했다.  헬기로 오는 길에 참모본부로부터 한국의 핵보유 보도에 대한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으나  지금은 대통령에게 직접 묻기가 곤란했다.

  [빠른 시일 내에 실지를 모두 회복하고 만주지역에 압박을 가하시오. 확실한 승리 외에 우리가 살 길은 없소.]

  "알갔습네다. 각하!  오늘 중에 신의주와 선봉지역에 대한 공격이 있고 만주에 대한 공격도 몇가지 준비되어 있습네다. 길티만 한가디 확실히 해주셔야 되갔습니다. 핵은 어케된 일입네까?  진짜로 있습네까?"

  대통령이 대형 멀티비전 안에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멤버들인 국방장관, 안기부장, 3군 참모총장 등은 화면 이쪽보다는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었다.

  國家安全保障會議는 헌번 제 91조에 의해 설치되는  필수적인 대통령 자문기구이다.한국헌법상의 통치구조에서 대통령자문기구는 별로 그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하나의 장식적인 기구에 불과하나, 이 기구는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 대비한 전문적인 자문기구이므로 이번 전쟁을 계기로 위상이 급속히 올라갔다.  이 기구의 구성원은 대통령, 국무총리, 통일원장관, 재경원장관, 외무, 내무, 국방장관과 국가안전기획부장 및  대통령이 위촉하는 약간의 위원으로 이뤄진다.(국가안전보장회의법 2조 1항) 국가 비상시에 위촉되는 정부위원은 3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아니오. 아니, 최소한 기자들에게 보여준 것은 우리나라에 없소.]

  "SS-18, SLCM, 길고 곡사포용 핵탄두래 있다고 들었습네다. 이것들은 아이고 다른 거이 있단 말씀입네까?"

  [지금은 말할 수 없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단 말이오.]

  대통령이 당황했는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우리나라에 핵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작전을 짜도 좋소. 아니, 그래야만 하오.]

  이게 무슨 귀신 놀음이란 말인가? 하는 것이 참모본부 요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대통령은 아직도 통일참모본부에 감추는 것이 있다는 말인가? 양 석민 중장은 섭섭치 않을 수 없었다.양 중장이 안기부장과 국방부 장관의 표정을 살폈다.

  '안기부장! 도대체 무슨 짓을...'

  [그렇게 아시고... 더 이상 말해줄 것이 없소.]

  "....."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군 통수권자인 한국 대통령과 군령권을 쥔 통일참모본부간의 신의가 깨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황급히 통신용 폐쇄회로 멀티비전을 끄자 참모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이기 안되갔구만, 이거 믿을 수 있가서?"

  인민군 김 병수 대장이 투덜거리며 창문으로 다가 갔다. 북한강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고 강 위로 아침안개가 자욱히 퍼졌다.

  '남쪽이 역시 따뜻하구만.'

  앞에 보이는 새터 유원지에서는 고교생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였다. 해맑게 웃고있는 청소년들을 보며, 그는 지금 한국이 전쟁 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청소년들의 웃는 모습과 웃음소리가 너무 좋았다. 김 대장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1999. 11. 25  10:50  중국 톈진신깡(天津新港) 해수면 아래

  "전진미속, 우현 90도."

  "전진미속, 우현 90도!"

  함장의 명령을 부함장이 복창했다. 한국해군 209급 잠수함의 1번함인 장보고함은 이틀간에 걸쳐 중국측의 SOSUS라인을 뚫고 베이징의 관문인 이곳 톈진항에 도착한 것이다.

  톈진은 명나라 이후에 강남의 곡물을 베이징으로 수송하는 기지로 번창했다.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의해 대외무역항으로서 개항되고, 의화단의 난 이후 체결된 1901년의  베이징의정서에 의해 8개국 조계(租界)가 설치되었다.  이후, 이 도시는 베이징과 상하이에 이어 중국 제 3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신깡(新港)은 10만톤급 화물선 4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거대한 부두로 이뤄져 있었다.  다른 중소형 화물선도 다수 접안할 수 있는데, 지금은 대형화물선들의 하역작업이 한참이었다.

  장보고함이 톈진까지 오기까지 수많은 대잠함정들과 초계기들의 대잠수색망을 뚫었으나 청음소노부이들로 이루어진 소서스라인 돌파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잠수함으로서는 당연히 낮에 공격하는 것을 피해야 하지만 재래식 디젤-일렉트릭 동력장치를 가진 장보고로서는 시간을 아껴야 했다. 이미 항구와 항구에 정박한 화물선들의 위치는 파악되었다.공격의 결단만이 남은 것이다.

  함장인 서 승원 소령이 잠망경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아직 전투대기는 시키지 않고 반수의 부하들은 침실에서 쉬고 있었다. 소리만 내지 않는다면 어떤 일도 용납되었다.그러나 말이 쉬는 것이지 적지에 들어온 병사로서 누구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상벨이 짧게 두 번 울리자 승무원들이 즉각 선실을 나서며 좁은 통로를 뛰어 전투배치에 임했다.전투배치가 완료되기까지 시계를 보고 있던 함장은 부하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채 20초가 걸리지 않은 것이다.

  부함장인 김 철진 대위는 항해장교와 함께 해도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이 해도는 안타깝게도 20년이나 지난 것이었다. 항해장교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데 함장은 웃으며 명령을 내렸다.

  "괜찮아, 20년 사이에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으니까. 기뢰 방출 준비."

  "기뢰 방출 준비!"

  부함장이 복창했다.  김 대위는 눈이 없는 기뢰가 여객선을 침몰시킬지, 원래의 목표인 화물선을 침몰시킬지 알 수 없었다.  서해에서 중국의 상륙부대를 공격한 것과 이번 임무는 달랐다. 그들은 비무장의 여객선을 침몰시켜 대형참사를 유발할지도 모를 기뢰를 항구에 부설하는 데에 약간 양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으나 상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기뢰 1번 부터 12번까지, 300미터 간격, 방출 시작!"

  함장의 명령에 따라 잠수함의 위쪽이 열리고 부력을 얻은 기뢰가 수중에 떠다니기 시작했다. 물살을 따라 움직이던 기뢰들 아래쪽에 와이어가 나와 물속 바닥에 부착되었다. 이제 이곳을 지나는 어떠한 종류의 선박도 단박에 부서지게 되었다. 잠수함은 천천히 항구 밖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12번까지 방출 완료!"

  "잠망경 올려!"

  발사관제관의 보고에 따라 함장이 명령을 다시 내리고 잠망경으로 수면 위의 상황을 살폈다. 대낮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잠수함으로서는 금물이었지만 이곳의 바다는 충분히 탁했다. 상공에 초계기가 지나가더라도 육안으로는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소나에서 보고된 대로 부두에는 거대한 화물선이 세 척, 부두와 약간 떨어진 곳에 다른 두척이 하역 대기중이었다.

  "1, 2, 3번 목표에 어뢰 한 발씩 발사 준비!"

  명령 복창과 수령, 준비완료 보고가 이어졌다.  항구에 정박 중인 20여척의 화물선 중에서 사전에 선정된 세 척의 대형화물선이 목표였다.

  "발사..."

  서 소령이 조용히 명령했다. 어뢰관에 물이 들어오고 시동을 건 어뢰가 추진력을 얻어 바다속을 항주했다. 거리가 짧아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세 척은 거의 동시에 폭발했다. 하역작업중이던 거대한 크레인이 충격을 받아서인지 서서히 바다쪽으로 무너졌다.  너무 큰 화물선이라서 이들은 즉시 침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잠망경을 보고 있던 함장은 최소한 두 척은 침몰하리라 예상했다.  김 대위가 모니터를 통해 화물선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우현 180도, 기관 전속."

  "우현 180도, 기관 전속!"

  함장의 명령에 부함장이 즉각 복창했다.잠수함이 급하게 외해를 향하고 잠망경에는 두 척의 화물선이 잡혔다.

  "4, 5번 목표에 준비되는 대로 발사. 6,7,8번은 하픈으로."

  "4, 5번 어뢰 발사!  함장님, 한발은 남겨 두시는게... 6,7,8번 발사관 하픈 장전!"

  김 대위가 함장의 명령을 복창하며 조언을 했으나 서 소령은 듣지 않았다. 장보고함은 항만 공격만 명령 받았다.그러나 40km 북쪽에 무엇이 있는가 함장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따깡여우티엔(大港油田), 중원지방에서 유일한 유전이었다.

  "하픈의 목표는 바로 이곳!"

  함장이 북경과 톈진지방의 여행팜플렛을 꺼내 발사관제장교에게 주었다.  관제장교가 컴퓨터에 그곳의 위치를 입력하자 목표에 대한 방위와 거리가 나왔다.  관제장교는 이를 하픈에 입력하며, 동시에 비행고도를 충분히 높이 잡았다.대함미사일인 하픈은 산이나 가로수를 무시하기 때문에 명중이 의심스러웠으나 적의 유전에 대한 공격기회를 놓친다면 군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관제장교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자 함장이 즉각 명령을 발했다.

  "하픈 발사. 자, 집에 가자! 전투배치 해제."

  발사절차가 완료되자 함장은 침로를 동쪽으로 잡게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함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부함장이 서둘러 함내에 남아있는 무기를 점검했다.

  "어뢰도 없고 하픈도 없고... 걱정되는군."

  부함장인 김 대위가 투덜거렸다. 모항인 진해로 돌아가려면 직선거리로 아직 1,000km는 가야했는데 무기가 없었다. 이때 대규모 대잠수함전 부대를 만나면 저항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함장은 왜 잠수함의 무장을 모두 사용해 버린 것일까?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어뢰 한두발 정도는 남겨 두는게 원칙이었다. 그러나 함장은 뻔히 알면서도 무기를 모두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9급 잠수함의 어뢰 장비수는 겨우 14발에 불과하다. 어뢰 1기의 탑재 공간에 하픈 1발, 또는 기뢰 두발 탑재가 가능하므로 사실상 탑재능력은 극히 빈약하다. 장보고함은 기뢰 12발과 하픈 3발, 어뢰 5발을 모두 소비하여 지금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K-2 소총을 점검하도록!"

  김 철진 대위는 장보고함이 완전한 비무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미소지었다. 아직 소총과 권총 몇 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잠수함은 최고 심도로 동쪽을 향해 질주했고, 톈진항의 비극을 연락받은 대잠수함전 부대가 최고속도로 잠수함의 예상탈출로를 더듬었다.

  서 소령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2년 전의 가을밤을 회상하고 있었다.  지금 아내가 된 서클후배 소현이의 차로 서울대 뒷산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학군단 아래의 넓은 풀밭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위산 위에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밤하늘은 달빛을 받아 푸른색으로 빛나는듯 했다. 소현은 이야기를 하자고 했으나 그는 그렇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여자의 존재보다는 그 장소가 훨씬 중요하게 느껴졌다. 차에 있는 오디오를 키자 careless whisper가 흘러 나왔다.  그는 말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 승원 소령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춘천농산물검사소에서 서무과장을 하던 그는 병역을 마치기 위해 사병으로 입대하기 전에 학사장교가 되어 해군에서 복무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학사장교는 함정에 타기 어려웠으나, 그는 해군에 매료되어 진정한 해군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배를 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결국 최초로 구축함장의 부관이 되었다가 초계정 정장이 되었다. 그는 퇴역하지 않고 해군에 계속 남았다.

  그는 대위로 승진한 후에 잠수함의 부함장이 되었다. 그는 아직 역사가 깊지 않은 한국해군의 잠수함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잠수함의 함장이 될 수 있었다.그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전쟁영웅이 되는 것도 결코 바라지 않았다.  다만 잠수함을 몰고 바다를 떠돌고 다니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젠 전쟁이다. 죽고 죽이는 전쟁...'

  그는 아무리 전략적인 필요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민간인 항구를 공격하는 임무는 맡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잠수함은 몇척 남지 않았다. 그는 나머지 잠수함들은 더 위험한 임무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는 뱃놈 친구들 모두가 살아남길 바랐다.

  [지휘소입니다. 현재 중국 구축함 한 척이 접근 중!]

  실내의 스피커를 통해 김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 소령이 마이크를 잡았다.

  "공격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 우린 어뢰가 없잖아."

  서 소령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김 철진 대위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마이크를 내렸다.

  '누가 누굴 공격해요?'

  1999. 11. 25  11:00  중국 리아오님(遼寧)성 다이렌(따리엔:大連)

  인민군 인민무력부 직속 정찰연대 2대대 소속의 백 지완 대위는 다이렌 시가의 중심인 종산꽝창(中山廣場)의  한 러시아식 건물 2층 창가에서 망원경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동서로 길게 뻗은 쓰따린루(斯大林路 : 스탈린로)에서는 산동(山東)반도에서 황해를 건너 한만국경으로 몰려가는 대규모 기갑부대의 시가행진이 한창이었다. 철로가 있었지만 이미 인민해방군의 병력과 장비로 포화상태가 되자,  일부는 이렇게 도로를 통해 이동하는 것이다. 6방향으로 길이 나있는 방사상의 도로접합점인 이 광장에는  추운 겨울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민들이 이들을 환송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이런 공짜 구경을 안놓치지.  기가 막힌 구경을 하겠군. 우리 작전에 약간 방해가 되겠지만..."

  두툼한 중국옷에 털모자를 쓰고, 이 고장의 특산물인 사과를 먹고 있던 백 대위가 손목시계를 본 순간,  역과 항구로부터 동시에 폭음이 울려왔다.

  "1100시 03초..., 현재 기온에서의 음속은 초속 315미터. 거리는 900미터. 역시 정확하구만. 수고해서. 자, 우리도 공격하자우!"

  백 대위가 대원들과 무선으로 연결되는 헤드셋으로  부대원들을 격려하며 동시에 공격명령을 내렸다. 광장 주변의 건물 옥상에서 각종 화기들이 불을 뿜었다.

  밀란 대전차미사일이 큰 폭음에 놀라 도로 위에 정차해 있던 중국 전차들을 향해 퍼부어지자,  중국군과 구경꾼들이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뛰어 도망다녔다. 기관총들이 중국군을 구별하여 쓸기 시작했다. 7개의 광장 주위 건물에서 쏟아지는 총알을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광장 옆의 건물 벽 앞에서 파랗게 질려있던  인민해방군들이 주변 건물 옥상을 향해 무작정 자동소총을 갈기고 있었는데, 이들은 기관총 연사를 받고 왼쪽의 인민해방군부터 한명씩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하얀 벽에 붉은 피가 가득 튀었다. 어떤 인민해방군들은 간신히 건물 안으로 피해 들어갔다고 생각한 순간, 안쪽으로부터의 갑작스런 사격에 옴몸이 갈갈이 찢겼다.

  백 지완 대위는 사격을 하면서도  인민군 최정예인 정찰연대에 왜 이따위 임무를 부여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찰연대는 특수부대이긴 하지만 정규전을 수행하는 부대가 아니다. 요인암살이나 납치, 폭파 및 사보타지 등의 특수전이 이 부대의 전공이었다. 역과 항구의 폭파는 이 부대의 취향에 맞는 것이었으나 적지에서 적의 대열을 직접 공격한다는 것은 백 대위의 10여년 군생활 동안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서쪽에 적 응원군!"

  상황이 대충 끝나가는데 부관인 채 중사가 외쳤다.백 대위는 서쪽 도로를 살폈다. 박살난 중국군 전차들 사이로 보병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이들은 웃기게도 경찰의 정모와 같은 모자를 쓴 얼치기들이 아닌가? 백 대위는 이들이 전투력이 별로 없는 경찰에 불과하다며  안심을 하고 있는데 다른 대원들의 의견은 전혀 달랐다.

  "큰일입네다! 인민무장경찰입네다. 이 지역 준군사조직... 병력은 독립대대로 보입네다."

  "젠장, 이들을 다 죽이기 전엔 도망가기 힘들겠군요."

  채 중사에 이어 중국인 차림을 한 안전기획부 요원이 투덜거렸다. 그는 오래 전에 이곳에 침투하여 현지인으로 위장하며 첩보활동에 종사하던 자였다. 그제서야 백 대위도 그의 말에 수긍했다. 다른 지방에서 온 정규군이 아니고 이 지역 출신의 인민무장경찰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게릴라전이란  그 지역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가로 승패가 갈린다. 백 대위가 우려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그리고 인민무장경찰은 민간인 경찰과는 달리 거의 정규군 수준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인민군 최강인 정찰연대로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후퇴하시죠."

  "그럽시다. 동무들, 후퇴하기요! 제 1 지점에서 모인다. 가자!"

  백 대위가 다시 헤드셋을 통해 외치자  두툼한 중국식 누비옷을 입은 대원들이 서둘러 장비를 챙기며 1층 뒷문 쪽으로 뛰었다.  골목길을 뛰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하얗게 솟아 나왔다.  백 대위는 광장쪽에 배치된 40명과 항구 및 기차역 폭파조 10명 중 몇명이나 접선지점에 모일지 걱정되었다.

  "트르륵!"

  "큭!"

  "왁~ 매복이다!"

  뛰어가던 골목 앞쪽에서 총성이 연이어 울리자  선두의 임 하사가 피를 뿌리며 넘어졌다. 백 대위의 일행은 즉시 산개하여 응사하기 시작했다.

  "수류탄 쓰지 마!"

  남한의 안기부 소속이라는 현지협력자는  외침과 동시에 앞으로 뛰어가며 연사를 했다. 채 중사가 수류탄을 쥔 채 멍하니 앉아 있는데 이미 상황은 끝났다.  안기부원은 중국제 69식 자동소총으로 골목 오른쪽 소화전 뒤에 숨어서 사격하던 인민무장경찰을 사살하고 바닥을 구르며 연이어 왼쪽의 벽에 붙어 있던 두 명을 사살한 것이다. 백 대위가 신호를 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 정보부원의 전투능력이 이정도인가 하며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채 중사가 수류탄의 안전핀을 다시 꽂았다.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옆골목의 상황을 살피던 그가 오른손을 들었다. 적이 몰려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의 손가락 신호로 적은 20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아군은 5명에 불과했다.안기부원이 손가락 세 개를 폈다가 둘로 줄였다. 다시 하나만 폈을 때 모두에게 긴장감이 돌며 골목을 뛰쳐 나갈 준비를 했다. 그가 새끼손가락을 오무림과 동시에 뛰쳐나가며 사격을 시작했다.백 대위와 그의 3명의 부하들도 같이 뛰어 나갔다.

  가만히 선채 자동으로 사격하는 안기부원과 달리 백 대위는 인민해방군의 무리 안으로 들어가면서 한 명당 한 발씩 쏘았다. 뒤에 있는 중국군은 같은편이 맞을까봐 이쪽을 향해 사격하지 못했다.그 틈을 파고 들어가 지근거리에서 쏘는 것이다. 백 대위는 총구를 이쪽으로 향한 적에 대해 쏘고 그가 쓰러지는 동안 다른 적을 쏘다가, 앞의 적이 완전히 넘어지고 나서 뒤의 적이 보이면 다시 그들을 향해 쏘았다.  이것은 사격의 정확성 보다는 대단한 배짱과 냉철함이 필요하다. 아군의 숫자가 많은 것은 단순히 방해물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이 백 대위가 알고 있는 백병전의 교리였다.  총성이 멈췄을 때에는 골목에 20구의 중국군 시체들이 나뒹굴었다.

  백 대위의 무모한 행동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안기부원이 정신을 차리더니 반대방향의 골목으로 뛰기 시작했다. 정찰연대원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1999. 11. 25  11:55 중국 지린(吉林)성 상공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A-10 공격기의 기장인 부 영철 소령은 아직까지 한번도 그의 비행기의 레이더경보기가 작동하지 않고 만주를 횡단한 것이다. 지상 레이더뿐만 아니라 중국 전투기에 의한 전투초계 레이더 전파도 없었다.  만주지역 공군기지들의 기능이 마비되자 이들을 대신하여 베이징 부근에서 발진하는  중국기들의 짧은 교대시간을 이용하여 저공으로 공중초계라인을 돌파하기는 했지만  미약한 전파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그의 비행기와 동료들은 어느새 장춘에 근접하고 있었다. 아무리 저공비행을 했다지만  지상레이더와 고공의 전투기로 구성된 중국의 대공경계망은 너무 허술해 보였다.

  저공으로 비행하며 보이는 만주의 평원은 온통 눈에 덮여  천지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만주의 눈은 푸석푸석한 가루눈으로 수분이 적어 손으로 쥐어도 뭉쳐지지 않는다. 눈사람도 못만들 눈인 것이다. 바람이 불어 눈가루들이 날아다니며  고운 얼음입자가 햇살에 반짝거리는 모습이 아름다왔다.

  부 소령은 잠시도 고도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만주의 평원은 넓게 펼쳐져 있지만 완전한 수평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각도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세심하게 조종하지 않으면 비행기는 너무 높게 날아 적의 레이더에 걸리거나,  아니면 너무 낮게 날아 지면에 쳐박힐 위험이 있었다.

  길림성의 창춘(長春)과 지린(吉林)시 중간의 체크포인트인 어느 산에 이르자 폭격대와 호위기들은 일제히 세 집단으로 나뉘어 목표를 향했다. 폭탄을 만재한 부 소령의 A-10폭격대는 뒤뚱거리며 천천히 서쪽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강남제비! 살아 있나?"

  "물론입니다. 괭이갈매기."

  "또 여자 꿈꾸는 건 아니겠지?"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마이크로폰을 가득 채웠다. A-10 썬더볼트 8기와 F-4 팬텀 12기로 구성된 폭격부대를 호위하는 F-16 팰콘 편대의 편대장은 조 장호 소령이 맡았다.  그는 선도기인 김 종구 중위의 기체를 보았다. 비행상태로 보아 최상이었다.  전쟁은 며칠간에 불과했지만 조종사들은 어느새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예비역들이 완전히 현역에 복귀하여 작전에 투입되었고, 공군출신 민항기 조종사들 중에서 F-5E를 몰던 조종사들 상당수가 교육을 받고 F-16 전투기를 조종하게 되었다. 아직 이들의 조종이 능숙하지 못하다는 문제는 있지만,이제 정비만 제대로 된다면 조종사의 피로는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

  "목표 15km, 선도편대 앞으로!"

  "아직 적 레이더 활동 없음!"

  4대의 F-16이 폭격부대의 선두에 나섰다.  계곡에 나 있는 창춘과 지린 사이의 도로 위에는  민간 승용차와 트럭들이 지나가고 있었으나 그들은 이번 전쟁과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지, 아니면 이들을 중국 전투기로 생각을 했는지 아무런 동요도 없이 동서방향으로 난 길을 질주했다.

  "목표 10km!"

  "좋아! 보조 연료탱크 투하, 각자 목표를 향해 분산 돌격!"

  F-16 조종사들이 애프터버너를 가동하며 고도를 높였다. 선도기의 김 종구 중위가 아래를 보니  바둑판처럼 정리된 창춘 시가가 펼쳐져 있었다. 지린성의 성도(省都)이며 구 만주국의 수도였던 창춘은 중국에서도 명문인 지린따슈에(吉林大學), 거대한 자동차공장, 중국 최초의 영화제작소 등으로 유명하다. 김 중위와 F-16편대는 계속 서쪽으로 비행해 창춘공항으로 쇄도했다.

  가장 먼저 목표를 잡은 것은 팬텀기였다. 팬텀은 시가지의 가장 북쪽 로터리인 신파꽝창(新發廣場)의 북서쪽에 있는 중국 공산당 길림성위원회 건물에 고도 5백미터에서 2발의 Mk-82 500 파운드 폭탄을 투하했다. 지연신관을 갖춘 폭탄들은 구 일본의 관동군사령부로 쓰이던 이 건물의 옥상으로 빨려들듯 사라지더니 잠시후 굉음이 울리며 건물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바로 오른쪽을 날던 팬텀은 창춘짠(長春站:기차역)에 펼쳐져 있는 수십 가닥의 철로 위로 Mk-20 클러스터 폭탄을 투하했다. 이 폭탄에서 작은 낙하산이 펼쳐지더니  작은 폭발이 일며 수십개의 자폭탄이 되어 땅으로 향했다. 이들이 땅에 부딪히자 역 주변 사방에 불꽃이 연이어 일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 올랐다.

  부 영철 소령의 A-10은 거대한 목표물을 할당받았다. 창춘 시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쓰따린따지에(斯大林大街) 남쪽 끝의 자동차공장인 長春第一汽車制造廠이었다.  중국에서는 기차를 후어처(火車), 버스를 꽁꽁지처(公共汽車)라고 부른다. 버스와 승용차, 트럭의 집합명사가 지처(汽車)인 것이 한국과 다르다.  이곳에서는 중국 최초의 대형트럭 지에팡(解放)을 제작했으며 요즘도 이를 제작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보육원까지 갖춘 이 공장안에는 버스가 달리며 학교도 10개 이상이라고 할 정도로 큰 공장이다. 이곳이 목표가 된 이유는, 이 공장에서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 소령은 공장 건물 지붕마다 하나씩의 500파운드 폭탄을 투하했다. 곳곳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건물의 수는 많고 폭탄은 너무 적었다. 탑재한 12개의 폭탄은 금방 바닥이 났고, 부 소령은 강력한 GAU-8/A 개틀링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멀쩡한 건물들을 향해 3초씩 발사했다. 탄알 수로는 약 100발씩이었다.  비교적 오래된 건물은 무너지기도 했지만 충분치 않았다.  그는 건물보다는 건물 내부에 있는 생산라인이 파괴되길 바라며 사격한 것이다.  그러나 건물 10여곳을 공격하자 탄창은 금방 바닥이 나고 말았다.

  선도기인 김 종구 중위의 F-16은 창춘비행장 상공에 도착하자마자 대공포화의 환영을 받았다. 지상으로부터 몇줄기의 25밀리 기관포탄이 하늘로 향했다.  이들이 공항 경비용인 WZ-551 장갑차에서 육안조준에 의해 발사된 것을 확인한 김 중위는 그대로 공격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지상에서 불꽃이 솟아 올랐다.

  "젠장!"

  김 중위는 즉각 레이더 유도 미사일의 경보를 발하고 스플릿S를 취했다.  하프롤을 취한 뒤에 기수를 들어 올려 방위를 180도 바꾸는 이 스플릿 S는 이차대전 때의 프로펠러 시대부터 쓰던 기동법이었다.  이후, 그는 즉시 기수를 내려 땅으로 내려 꽂았다.  미사일이 방향을 바꿔 지상을 향했다.김 중위는 이 미사일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확인하고 틀림없이 고공 요격용 미사일일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저공에서 피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 미사일은 속도는 빠르지만 선회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김 중위의 기체가 스치듯 미사일 옆을 지나갔다.  예상대로 저공에서는 근접신관이 작동하지 않았다.미사일은 활주로 옆의 산꼭대기에 쳐박혔다.

  "놀랬지? HQ-2J SAM이야. 러시아제 SA-2 가이드라인과 흡사하지."

  편대장이 설명하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렸다. 편대장을 비롯한 공격대는 어느새 공항 주위에 배치된  미사일과 대공포 참호를 공격하고 있었다. 사방에 불꽃과 연기가 피어 올랐다. 김 중위도 이 파티에 참가했다.

  "이야~ 김 중위의 격추댓수를 넘기겠는데?  지상에 있는 놈들이긴 하지만 말야."

  조 소령은 어느새 중국 전투기를 다섯대나 파괴했다. 김 중위는 기관포로 지상에 그대로 있는 섬-7(MiG-21) 전투기를 파괴하고 고도를 약간 높였다. 중국 전투기들은 이륙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대공포가 간헐적으로 불을 뿜었고,  지상에서는 기지요원들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분주히, 그러나 천천히 움직일 뿐이었다.

  "여기는 강남제비, 비행장의 중국군이 이상하다. 왜 이륙 안하지?"

  "여기는 샛바람. 모르겠지만 적기는 분명히 장난감이 아니다. 연료가 가득 채워져 있고 무장도 되어 있다. 만주에서는 앞으로 며칠간 중국기들이 이착륙을 못한다고 들었다. 냠, 난 7대 파괴."

  김 중위의 윙맨인 김 광열 중위가 대답했다.  적기의 위협이 없자 윙맨까지 폭격에 참여하고 있었다. 김 중위는 기관포로 비행장 외곽에 있는 지상 연료탱크에 사격을 가했다. 몇 발이 연료탱크를 관통하자 엄청난 불길이 김 중위의 기체 뒤로 치솟아 올랐다.

  "비행기들이 집단으로 생리중인가?"

  "푸하~ 그럴지도 모르지."

  대공포가 전멸하자 여유를 갖게 된 조종사들이 농담을 하는데 편대장이 이들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공격을 마친 기체는 동쪽으로 향하라! 폭격부대를 지원한다!"

  비행장을 불바다로 만든 F-16편대가 창춘시 상공에 다시 진입했을 때에는 이미 시가는 화재연기로 자욱했다.  폭격을 마친 한국공군 소속의 항공기들은 기수를 남쪽으로 향했다.  구식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기지들은 완전히 무시하며 고공으로 비행했다.  팬텀이 보기와는 달리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그 뒤를 썬더볼트가 헉헉대며 뒤따랐다.최고속도가 마하 2나 되는 팬텀은 한세대 전만해도 최고의 전투기였던 것이다.

  1999. 11. 25  12:10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공격이래 착착 진행되고 있습네다."

  인민군의 김 병수 대장이 의기양양하게 참모들에게 보고했다.그가 담당한 동부전선은 어느새 압록강변의 혜산과 동해안의 청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함경북도의 관모봉(2,541미터)과 청진 남쪽에 있는 경성에서는 지금도 치열한 전투가 한창이었지만 만주로부터의 보급이 끊긴 중국군은 계속 북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평안북도 선천 등 서해안 공격을 마친 3개 군단을 빼낸 통일한국군은 병력에서 다소 숨통이 틔여 공세의 주도권을 계속 쥐고 있었다.

  중앙화면에 나온 한반도 지도는 이제 대부분이 통일한국군에 의해 수복되었다는 표시인 푸른색으로 표시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북한지역의 거의 절반이 중국 점령지역인 노란색으로 표시되었던데 비하면 참모들의 감회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작전 성공입니다. 만주에는 더 이상 인민해방군 마크를 단 비행기가 없습니다."

  "오, 정말 수고했소. 귀환하는 폭격부대는 무사한가요?"

  이 호석 공군중장의 보고를 듣고 가장 기뻐한 참모는 정 지수 육군대장이었다. 진격속도를 방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적의 저항이 아니라 대공화망의 구성문제였기 때문이다.  그가 묻자 이 중장은 중앙화면을 자신의 단말기와 연계시켰다. 3개의 주요 폭격부대가 남진하고 있는 모습이 화살표로 표시되었다. 모두 푸른색, 손해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입니다. E-2C가 이들의 숫자를 세었습니다."

  "오~ 다행이구만. 기런데 왼쪽에 붉은 점들은 머디요?"

  박 정석 해군상장의 질문에 화면을 확인하고 놀란  이 중장이 조기경보경계기를 호출했다. E-2C에서는 그것들이 베이징 근처의 기지에서 긴급발진한 요격기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 전투기들의 항속거리가 짧기 때문에, 귀환하는 폭격부대는 이들의 요격을 받지 않고 돌아올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붉은 점들은 급속히 푸른 점에 근접하고 있었다. 참모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섬-7, 즉 미그-21의 행동반경은  우리 전투기들보다 더 길지만 아직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안심해도 됩니다. 저 정도 속도로 이만큼 날아왔다면 지금쯤은 연료가 거의 떨어졌을 것입니다."

  이 중장이 참모들을 안심시켰으나 이 차수의 생각은 달랐다. 겨우 확보한 제공권을 잃고 싶지 않았고, 중국전투기들이 경무장에 연료탱크를 달고 항속거리를 연장시켰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기렇다고 해도... 저들이 국경을 넘어 폭격할 수도 있지 않소? 요격부대 출동시키시오!"

  "차수님... 저들이 압록강을 넘는다고 해도 다시 발진했던 기지로 돌아가지는 못합니다. 아마도 만주 평원에 불시착을 하게될 것입니다. 그냥 놔둬도 저들은 이미 끝장입니다. 비교적 신형전투기 100여대가 말입니다. 상당기간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맞붙어서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이 중장은 잠시 말을 끊고 이 차수의 표정을 살펴 보았다. 늙고 작달막한 이 사나이는 피로에 지쳐 있었고 외로워 보였다.  그러나 이 사람이야 말로 한민족의 미래와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모든 한국인들을 총지휘하는 사람이었다.

  "만약을 위해서 요격기들을 출격시키겠습니다. 차수님."

  이 중장이 참모직권으로 순안비행장에 대기중인 전투기들에 출동명령을 내렸다. 두 번의 미사일 공격과 한번의 폭격을 받은 평양 북쪽의 순안비행장에서는 미그-23 전투기들이 일제히 날아 올랐다. 가변후퇴익에 투만스키 R-29B 단발엔진을 장착한 이 방공전투기들은 이륙후 3만 피트까지 상승하여 마하 2 이상의 고속으로 만포 상공을 향했다.

  1999. 11. 25  12:15  서울, 청와대

  "좋아요. 최 차수는 믿지 못한다 칩시다. 그렇다 해도 통참의장인 이 차수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지 않소?"

  "사람 마음은 믿지 못하는 법입니다. 각하!  그리고 이 차수는 최 차수의 명령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지휘체계입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우리의 협력이 깨지면... 비극이오."

  홍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정원에는 잔디가 누렇게 말라 있었다. 안전기획부장은 회의탁자에 놓인 몇 장의 사진을 다시 검토했다. 틀림없이 주조(駐朝)중국대사와 최 광 차수의 비밀회동이었다. 그는 적이 내부에도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고,  그 적을 색출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대통령과의 독대(獨對)는 예정보다 길어졌다.

  "최선을 다해 막아 보겠습니다."

  "..... 최 차수 그는 보통 군인이 아니오. 현재 북한 권력서열 1위에 있는 실질적인 정치지도자란 말이오.  내가 최 차수와 직접 전화연락을 해 보겠소."

  "안됩니다!"

  지 효섭 안기부장은 기겁을 하며 대통령을 말렸다. 확실한 증거를 포착할 때까지는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하며,  최 차수 주변에 도청을 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허허! 만약 도청한 것이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적전분열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 아니오? 지금 제정신이오?"

  "국가원수급의 정치가가 외국의 스파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동독의 예를 보십시요.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중국이 북한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라고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겠습니까? 통일한국 초대 대통령입니다."

  "어찌 이민족과의 전쟁 상황에서 동족에게  총뿌리를 돌린단 말이오? 그들은 지금까지 훌륭하게 전쟁을 수행해왔소. 이기고 있는 전쟁에서의 반역자는 있을 수 없소."

  "중국이 최 차수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했을 수도 있습니다. 영토보장을 해주는 대신 중국이 최 차수의 인민군을 지원한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실효된 지금 외국군의 개입은 불가능합니다.어쩌면 제 2차 한국전쟁, 그것도 불리한 전쟁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만 두시오! 너무 지나친 말씀이오. 노인의 권력욕이 이 강토를 또 한번 골육상쟁의 지옥으로 만드리라 생각지 않소.  이름 뿐일지도 모를 국가원수의 지위 때문에 영토를 팔아먹... 음....."

  권력욕.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아니, 동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라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식욕, 성욕과 함께 생명체의 자기보존본능에 속하는 하부본능이었다.  생명의 유한함을 인식하고부터 갖게 되는 본능이라던가?  동물은 자신의 분신인 유전자를 후세까지 전달시키기 위해서 생존경쟁 뿐만 아니라 치열한 유전자 전달경쟁도 하게 되는데, 동족간의 배우자 쟁탈경쟁, 이른바 새끼낳기 투쟁이 그것이다.

  유전자의 전달, 또는 배우자의 독점에서 중요한 것이 권력이다. 권력을 획득한 개체는 그 집단내부의 이성에게 매혹적인 유전자 보유개체로 인식되어 숫컷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데 극히 유리하다. 인간에게도 권력에 대한 집착은 너무나 강해서 한국역사상, 아니, 인류역사상 온갖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냈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그렇지요. 늙을수록 성욕이 감퇴되는 만큼 권력욕은 커진다던가. 다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욕심이요. 나는 아직 젊으니 차라리 그에게 통일한국 대통령 자리를 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소. 그리고 통일이 되면 나는 계속 정치를 하지 않아도 될테고..."

  "안됩니다, 각하! 그건 국가반역죄입니다!"

  안기부장이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통이 크다는 평판을 듣는 대통령이었지만 대통령의 그런 생각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지 효섭 안기부장은 목소리를 낮춰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통일한국의 대통령은 꼭 각하가 되셔야 합니다.  아니, 최소한 우리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장악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힘을 줘선 절대 안됩니다."

  "무슨 소리오?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오. 북한주민들 중에서 통일한국을 이끌 지도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잖소? 특정지역 주민들을 소외시켜서 그 나라가 제대로 될 것같소? 추악한 지역주의가 지금까지 전체 국민에게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왔는지 부장도 알고 있지 않소?"

  "각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이나 외국의 각종 내전 등을 말씀하시는줄 잘 압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입니다. 뼛속부터 빨갱이란 뜻입니다.그들은 통일을 일종의 통일전선전술로 활용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지만, 기회가 닿으면 언제라도 흑심을 드러낼 겁니다. 결코 그들에게 권력을 맡겨선 안됩니다. 각하!"

  "허허!  그럼 그들을 영원히 우리 민족으로 받아 들이지 않겠다는 뜻이오? 너무 하시는구료."

  "동포애와 사상은 별개 문제입니다. 각하나 저나 저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는 천박한 자본주의자들일 뿐입니다. 타도대상에 불과하다는 뜻이죠."

  "우리와 마찬가지로 저들도 많은 양보를 해왔소. 그런 식이면 통일이 안되요."

  "위험한 통일보다는 차라리 분단을 택하겠습니다. 각하!"

  부장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대통령은 이 어려운 시기에 그가 안기부장을 맡은 것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 부장은 우익을 표방한 관료중에서도 비교적 합리적인 인물로 알고 있었다. 부총리보다 더 막강한 자리라는 안기부장을 이런 인물에게 준 것이 잘못이었다.  그딴에는 당연한 애국심의 발로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만약 내가 결심을 밀어 붙인다면 부장은 나를 몰아내는 쪽에 서겠군요."

  "죄송하지만 그럴지도 모릅니다, 각하."

  "부장을 해임할 수도 있는데..."

  "각하의 뜻을 돌릴 수 있다면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

  "....."

  "일단 최 차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감시하시오. 하지만 만약 그가 알더라도 섭섭치 않을 수준까지만 하시오.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소. 잘못하면 국가, 아니, 민족의 안위가 걸린 문제요."

  "진의파악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각하."

  안기부장은 만약 최 차수의 반역행위 증거가 드러나면  즉결처분하겠다는 말은 결국 하지 못하고 청와대를 나섰다. 전시에 정보부서의 위상은 급속히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고, 그는 이를 신경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으론 국가반역자에게는 당연히 죽음만이 있었다. 정문을 나설 때,  개전 첫날의 피습 이후 대폭 강화된 청와대의 경비병들이 그의 승용차를 향해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1999. 11. 25  12:20  평안북도 선천, 대목산 요새

  대목산 남쪽 양지바른 비탈에서는 오늘 새벽에 죽은 전우들의 장례식이 한창이었다.  북부군 전체가 신의주쪽으로 출전해야 하기 때문에 장례는 서둘러 치뤄졌다. 전사자들은 간단히 염을 하고 정복이 입혀진 채 흰천으로 말린 다음 관도 없이 매장되었다.  고성능 스피커에서 장송곡이 흘러나오다가 멈췄다.  홍 종규 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행사는 지휘관급 군관 전사자 몇 명의 추서와 묵념에 이어  사령관인 차 영진 준장이 연단에 나섰다. 차 준장이 천천히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나갔다.

  "오늘 우리를 떠나가신 영령들은 혼은 비록 육신을 떠났지만 같이 싸웠던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실겁니다. 그분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군인답게, 아니, 이 땅의 주인들답게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산화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전투의 지휘관으로서 그분들 대신 살아남았다는 데에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제가 지휘관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하여 그분들의 생명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더라도 평생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과,  이 전쟁을 막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어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길 이 땅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원합니다.  저는 지휘관으로서 다시는 이런 큰 피해를,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생명의 손실을 막기위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이제 전쟁이 끝나가고 있으니 여러분은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리한 행동은 금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참가자들이 약간 웅성거렸다. 지휘관이 하는 추모사라는 것은 청중에게 적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산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명령복종이나 영웅적인 행위보다는 생명의 존엄을 강조함으로써  피해자이며 유족들인 청중을 냉정한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전쟁의 목적과 상관없이 개개인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차 준장의 부관으로서 이번 전투에서  아버지를 잃은 김 소위는 정복을 입고 유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입술을 물고 있는 모습이 처연해 보였다.  차 준장은 추모사 도중 그녀를 힐끗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외면했다. 장례식 때의 미망인이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와 보인다던가... 원고를 읽으면서도 그는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묘한 부조화를 생각했다. 차 준장이 추도사를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오자 의장병들이 의식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예포가 울리고 희생자들이 매장되었다.

  스피커에서 갑자기 전자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졌다.장엄한 전주가 길게 이어지는 이 음악은 차 준장이 익히 들어오던 것이었다.  운동권 학생들이 데모할 때 부르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이 아닌가?  북한땅에서 이런 노래를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노래없이 연주만으로 북한 땅에서 울려퍼지는 처연하고 장엄한 이 음악은 차 준장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차 준장은 연단에서 내려와 고급군관들과 함께 유족이며 동시에 인민군 전사이기도 한 장병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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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우 포병 1개 련대란 말씀입네까?"

  북부군에 새로 배속되어 지금 막 선천시에 도착한  국군 제 6사단 포병연대를 살펴보기 위해 차를 타고 산길을 내려가는 도중 홍 소장이 차 준장에게 항의하듯 되물었지만 차 준장도 어쩔 수 없었다.  물론 홍 소장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차 준장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지휘관이었다.

  "...,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소만... 우리는 공격하지 않고 견제만 하면 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우리 부대는 양공도 아니고 조공도 아니며, 단지 양동부대일 뿐입니다."

  차 준장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남북의 군사용어가 달라서 의미가 잘못 전달될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다. 같은 단어를 희안하게 의미부여하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버릇이 아닌가? 하지만 홍 소장의 표정을 보고 걱정을 덜게 되었다.

  "기래도...  신의주에 인민해방군 2개 병단이 몰려있답네다. 자칫 큰 일이..."

  전면공격도 아니고, 적을 묶어두기 위해 공격하는 척 한다는 것은 전술적으로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적에게 전력을 들킬 경우에는 혹독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 양동부대의 운명이었다. 차 준장의 어깨가 무겁게 짓눌러졌다.

  국군 제 6사단의 포병 연대장은 말로만 듣던 북부군 사령관이 새까맣게 젊은 사람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차 준장의 소위 임관일이 자신보다 6년이나 늦다는 사실도 알았으나 연대장의 상관은 차 준장이었다. 그는 직접 부대현황을 브리핑하고 차 준장의 명령을 받았다.

  1999. 11. 25  12:23  서울, 청와대

  홍 대통령은 안기부장을 보내고 나서  엄청나게 큰 체구의 손님을 맞게 되었다. 과학기술부 장관과 함께 들어온 그 과학자는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울의 모 사립대학의 생물학과 교수라고 밝힌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번에 핵폭탄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것이 극히 비인도적인 무기라는 것입니다. 물론 핵이나 화학무기, 또는 생물학무기가 다 그렇습니다만.  하지만 이것으로 중국을 위협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생물학과 교수이니 당연히 생물학 무기라고 생각한  대통령은 그에게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일종의 인종특화(人種特化)무기입니다. 중국인에게만 작용하는 무기죠. 세균전 또는 화학전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대통령을 측은하다는 표정을 바라보았다.  이런식의 눈길에 익숙치 않은 대통령은 일순 당황했으나,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과기부 장관이 나섰다.

   이 분은 게놈 프로젝트의 일부를 맡아서 연구한 과학자십니다. 인체의 유전자 분자구조를 연구하는 이 프로젝트는 세계각국이 경쟁적으로, 또는 협력하에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에 이 박사께서 세계 각 인종별로 독특한 유전자 차이를 밝혀 냈습니다. 성 염색체인 47번 염색체의 위에서 10분의 3 정도에 위치한 이 게놈은, 각 인종의 신체구조를 결정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 중국인은 특수한 분자구조물에 대해 극히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이것은 유전공학적으로 인체에 해가 없는 세균을 통해 합성할 수 있으며, 세균 자체의 살포나 그 화학약품의 살포에 의해 중국인을 말살시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극히 비인도적인 것이며, 동시에 한국인도 그 보복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핵폭탄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저와 이 박사님은 이것을 중국을 위협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악의 경우 이것을 일부 사용할 수도..."

  "무슨 말씀이오? 그런 끔직한 일이... 도대체 상상도 못한 일이 생기다니... 안되오. 절대 사용을 허락할 수 없소. 이것은... 도대체 그 상상만 해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오."

  대통령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한국의 과학자가 중국인의 신체적 약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중국 과학자도 언젠가는 한국인의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서로에게 사용한다면 치명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인간의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일개 테러단체에 의해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난 게놈(Genom) 프로젝트가 유전병의 예방이나 치료같은 의료목적이나 농업생산물의 종자개량처럼  생산적인 곳에만 쓰이는 줄 알고 있소. 이 박사께서는 좀더 그쪽으로 노력을 하고 전쟁은 군인들과 정치가들에게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면담이 끝나자 과기부 장관과 이 박사는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접견실을 떠났다. 이들이 떠나자 홍 대통령은 전화로 과기부 장관을 불러서 그에게 연구비 지원을 하도록 명했다. 과기부 장관의 말투가 밝아졌다. 대통령은 전화를 끊고 자신의 명령을 과기부 장관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되었다.

  과기부 장관은 자신의 진의를 그 프로젝트를 추진하라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자신은 진정 인종특화무기의 사용을 용납하지 않고 있는가, 속으로는 그런 무기의 확보를 바라고 있지 않는가 의심했다.

  '중국에 핵만 없다면...'

  1999. 11. 25  12:25  자강도 만포 상공

  "이야~ 새까맣게 몰려오는데?"

  김 종구 중위는 E-2C로부터 링크된 레이더 데이터를 확인하며 탄성을 질렀다. 북서쪽에서 IFF(피아식별장치)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항공기들이 떼지어 한국공군 편대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왜? 한번 붙어 보려고? 기수 돌려서 같이 갈까? 강남제비."

  "히~ 그럴 시간에 잠이나 더 자겠다. 근데... 원폭 하나만 있으면 저것들을 한꺼번에 사그리...키키!"

  "켁~~ 웬 원폭? 끔직한 소리다! 피스함대가 핵 때문에 대만 근처에서 아작났다는 말도 못들었어?"

  "이봐! 그만 조용히 못하겠나? 아직 적지 상공이라고."

  "죄송합니다."

  "....."

  한국공군의 조 장호 소령은 살아돌아왔다는 기쁨에 들뜬 부하들을 너무 나무라지 않기로 했다.  중국은 의외로 한만국경쪽의 대공방어가 허술했다.전통적으로 긴장관계인 러시아와의 긴 국경선에는 샘 기지가 빽빽히 들어차 있었지만 한반도쪽은 중국도 준비하지 못한 모양이었다.물론 대공미사일기지의 밀도가 인구가 별로 없는 중국 남서쪽보다 높았으나, 그동안 전통적으로 긴장이 고조되었던 중러국경과 대만을 마주보고 있는 푸젠성보다는 훨씬 덜한 것이다.  만포상공에 떠있던 E-2C 조기경보기의 전자정보분석을 통해  전투기들의 침입루트를 결정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탈출루트로의 유도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전투기들은 만주를 폭격한 통일한국군을 요격하기 위해 북경 주변의 비행기지에서 긴급출동했으나, 이미 한국공군은 폭격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중국전투기들은 만주가 폭격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돌아가는 한국 전투기들을 공격하기 위해 급속 접근하고 있었다. 주력인 미그-21 계열의 전투기도 마하 2 이상의 속력을 내므로 이들과 폭격대와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만포 상공까지 전진배치되었던  E-2C 조기경보기와 J-STARS 지상전투관제기도 서서히 남쪽으로 물러섰다. 만주폭격이 성공한 지금 필요없는 공중전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자전기들과 폭격대는 만주접경 지역인 만포 상공으로부터 남하하는 것을 확인한 중국전투기들이 급속히 압록강을 넘어 추격했다.

  만포지역은 아직 중국군의 점령하에 있었으나  아침부터 시작된 폭격에 의해 대공미사일 등의 위협적인 요소는 이미 말살된 상태였다. 통일한국군 공군기들과 그 뒤를 추격하는 중국전투기들의 거리가 계속 줄어들었다.

  1999. 11. 25  12:27  자강도 상공 E-2C

  "거리는 100km, 암람의 사정거리 안에 들긴 하지만...  조금 더 접근시키는게 좋겠군."

  장우성 대령이 레이더를 지켜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태백산 레이더기지에서 찬밥을 먹던 흔해빠진 그라운드맨(지상근무 공군)에 불과했으나, 이제 한반도 북부 상공에 떠있는 모든 공군기들을 지휘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공군 준장이나 소장인 전투비행단장들은 전투기들이 이륙한 후에는 작전지휘권을 갖지 못한다. 전문관제관의 역량으로 공중전을 지휘하는 것이 한국공군의 정식 지휘체계이기 때문이다.

  중국전투기들은 필사적으로 후퇴하는 한국공군 폭격대를 추적해 만포와 서쪽의 초산, 동쪽의 김형직시(후창)의  세 방향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장 대령은 이 모습을 레이더로 보면서 혀를 찼다.

  "중국은 정말 자존심이 강하군. 100여대의 전투기를 자존심때문에 버리다니. 정말 무모하군. 이봐, 박 대위. 자네 미그-21의 행동반경을 알고 있겠지?"

  E-2C의 부지휘관이자 레이더 관제관인 박 흥수 소령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630km입니다. 순항속도로 말입니다.물론 항속거리와 많은 차이가 나죠. 제 계산으로는 앞으로 10분이면 연료가 완전 바닥날 겁니다.압록강을 넘기 전에 벌써 빙고상태가 되었을텐데 돌아가지 않는군요."

  "그래, 앞으로는 중국의 공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야.  이로써 만주의 하늘까지 우리가 장악하겠군. 이놈들은... 시간만 좀 더 끌어주자고. 강 대위, 공격대의 속도를 줄이라고 전하게. 요격대의 속도도 말야, 그 사람들은 초조하겠지만."

  "후후~ 알겠습니다. 공격대 조종사들이 자꾸 뒤를 돌아보겠는데요?"

  통신장교인 강 대위가 귀환하는 폭격대는  속도를 줄이라고 명령하고 요격부대에도 북진을 멈추고 현재의 희천상공에서 선회하도록 명령했다. 장 우성 대령은 이들 무리들의 위치를 계속 파악하며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백암산에서 40km! 현재 아군 지대공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입니다. 적 편대와 아군 공격대의 거리 30km!"

  박 소령이 보고하자 장 대령의 눈이 크게 떠졌다.백암산은 희천 북쪽 약 35km에 위치한 적유령산맥의 주봉이다. 해발 1823미터. 원래 인민군의 지대공미사일 발사기지가 있던 곳으로 인민군은 희천을 수복하자 마자 경보병여단을 투입하여 즉시 이곳을 점령했다. 기지시설과 미사일의 보관상태는 의외로 완벽했는데,  포로가 된 중국군 군관의 진술로는 한국군의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서 미처 파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곳에는 지금 모두 5기의 지대공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좋아, 지금이다. 지대공미사일 발사시켜! 공격대 반전, 요격대 좌로 급속 선회시켜!  공격대, 미사일 발사 즉시 이탈하라!"

  강 대위의 통신반이 바빠졌다. 만주폭격을 마치고 귀환하던 전투기들 중에서 암람이나 스패로 등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갖춘 전투기들이 일거에 급반전하여 미사일을 발사했다. 만주폭격에서 주로 호위전투기 역할을 한 F-16전투기들로부터 발사된 100여기의 미사일이 중국 전투기들을 향했다.

  백암산의 미사일 기지도 구식이지만 위력이 큰 SA-2 가이드라인을 발사했다. 기지의 지하에 있는 주 발사기는 미사일 5기를 동시에 발사 및 추적을 했고, 기지 주변에 배치된 3대의 이동식 발사차량에서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들은 수직상승을 하여 한국공군의 공대공미사일 발사를 지금 막 파악하고 회피행동에 들어가려던 선두의 미그기를 산산조각냈다.  탐지거리가 25km에 불과한 미그-21형 전투기들은 15km 전방에서야 스패로 등 공대공미사일을 파악했는데,  회피 타이밍을 잡기 전에 지대공미사일의 습격을 먼저 당한 것이다.

  가이드라인 지대공미사일에는 전시용 예비모드의  레이더 유도신호가 달려 있어서 중국 전투기에 장착된 레이더 경보장치의 비상경보는 울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미그-21은 룩다운 능력도 없는 전투기였으니 바로 밑에서 올라오는 지상발사 미사일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당했다.

  중거리 미사일 발사능력이 없는 중국 전투기들은 일단 사방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회피하기 바빴다. 초반에 미사일이 미익 바로 뒤에서 폭발하여 플라이트 스핀에 돌입한 편대장 창 대교는 고도 2,000미터에 이르기까지 플라이트 스핀 회복 조작을 계속했으나 실패하자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자신의 기체인 삼각날개의 미그-21 전투기는 한참을 더 추락하여 어느 산 계속에 쳐박혀 불꽃이 피어났다.

  상공에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고 낙하산이 강하하는 주변으로 추락하는 아군기들이 스쳐 지나갔다.  결국 미사일 한 발 발사해 보지도 못한 중국 전투기들은 북서쪽을 향해 도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창 대교는 지금 자신이 강하하는 지역이 아직은 중국 지상군의  수중에 있기를 바랐으나 회의적이었다. 아침에 받은 전황 브리핑에서도 이 지역은 아군 점령지대였으나 엉뚱하게도 적의 지대공미사일이 날아오지 않았는가?  창 대교는 지상에 접근하자 한바퀴 땅에 구르며 안전하게 착지했다.  눈이 쌓인 산간의 밭에 착지한 그가 낙하산을 벗고 있는데 저 멀리서 트럭이 한 대 접근해왔다. 자신을 발견했는지 트럭은 빠른 속도로 다가왔고 약 30미터 전방에서 트럭이 정지했다.

  창 대교는 즉시 권총을 뽑아 들었다.  트럭 뒤쪽에서 몇 명의 보병이 뛰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 위장복을 입어서 아군인지 확인이 되지 않았으나  총을 겨누며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분명 중국어는 아니었다. 창 대교는 권총을 버리고 양손을 번쩍 들었다. 하늘을 보니 상공에는 어떠한 비행기의 궤적도 보이지 않았고,  회색빛 겨울하늘이 그의 처지를 예고하고 있었다.

  1999. 11. 25  12:40  서해, 한국해군 장보고함

  "아웅~ 잘잤다. 그 구축함은 어떻게 됐나?"

  김 철진 대위는 항해장교와 함께 해도를 놓고  한참 씨름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 보았다.  함장인 서 승원 소령이 커다란 머그잔을 들고 발령소 쪽으로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틀림없이 함장실에서  천천히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를 탔을 것이라고 생각한 부함장은 그의 여유에 어이가 없었으나,  현재의 급박한 상황을 함장에게 즉시 보고했다.

  "구축함과의 거리는 계속 5km에서 20km정도입니다. 아마도 적은 우리의 존재를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확신하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전속항진과 정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군. 확신했다면 당장 어뢰나 RBU를 발사했겠지."

  함장은 남의 얘기하듯 하며 해도를 살펴보았다.  아직 산둥반도와 랴오둥반도 사이를 연결한 소서스라인까지 가려면 한참 남아 있었다.

  "고주파탐신음은 없었겠고... 김 대위는 적을 뭘로 알고 있나?"

  "지앙웨이급 프리깃함으로 파악됐습니다.  화베이나 통링 둘 중 하납니다."

  서 소령의 기억에  그 프리깃함들은 대잠전보다는 대수상타격력에 중점을 둔 함정들이었다.  대잠무기는 RBU 1200이던가... 함장이 옆의 단말기를 조작해서 지앙웨이급 프리깃함들의 제원을 확인했다. 90년대 초중반 취역, 배수량 2,200톤급,  최고속도 25노트, 하르빈 대잠헬기, 소나는 에코 5형... 역시 잠수함으로서는 대잠헬기가 가장 무서운 상대였다. 전투함은 엔진소리로 위치가 파악되지만 헬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잠수함으로서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RBU-1200은 러시아에서 개발한 대잠로켓발사기이다. 사정거리 1200에서 1800미터, 탄두중량 34kg의 폭뢰를 5발 연속 발사하는 방식인데, 지앙웨이급에는 5연장 발사기 2기가 있다.  미국이나 서방 각국이 대잠무기로 324밀리 어뢰발사관, 또는 아스록(ASROC : Anti Submarine Rocket Launcher)을 탑재함에 반해,  공산계는 대잠로켓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서 소령이 심도계를 보니 약 80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수함은 수중 항진속도 약 10노트의 무음잠항 중.  이대로 간다면 중국 영해를 벗어나기도 전에 축전지가 떨어져서 잠수함은 부상해야만 할 지경이었다. 부상 항주, 또는 스노클 항주를 위해서라도 일단 이 구축함을 떼어놓는 것이 급선무였다.

  서 소령이 시계를 보더니 급히 엔진정지를 명했다.  잠수함의 속도가 천천히 떨어졌으나 속도는 아직 5노트 이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축전지가 전기공급을 멈추고 기관이 정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수함은 일정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썰물!"

  부함장이 짧게 외쳤다.  이제서야 승무원들은 그가 왜 여유를 부렸는지 이해가 갔다.  발해만에서 서해로 빠져나가는 썰물의 흐름이 잠수함을 한반도쪽으로 천천히 몰고갔다. 잠수함은 완전 무음상태에서도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썰물을 세번쯤 이용해야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거야.  자, 그동안 다들 쉬라구. 하루 반동안 휴가다. 하하!"

  1999. 11. 25  12:55  평안남도 순안비행장

  "자네가 강남제비 김 종구 중위인가?"

  김 중위는 착륙 후에 연료보급을 마치고  기체 옆에서 동료들과 함께 이번 폭격에 대해 떠들고 있었는데 중년의 조종사가 다가왔다.  헬멧을 옆에 끼고 서 있는 그의 계급장에는 무궁화 두개가 붙어있었다.  김 중위는 즉시 차렷자세를 취하고 그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반갑네.  나는 자네와 교대로 이 전투기를 몰게될 복숭아 황 중령이네. 음... 기체 손질상태는 제대로 됐구먼. 자넬 닮아 좀 뺀질뺀질하게 생겼군."

  주변 조종사들이 킥킥댔다. 중령의 콜사인 때문인지, 김 종구 중위가 뺀질뺀질하게 생겼다는 말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김 중위는 한눈에 보기에도 황 중령이 민항기 조종사임을 알 수 있었다. 전쟁 이후 예비역 조종사들이 대거 현역에 복귀했는데,  F-16C/D의 경우 조종사가 부족하여 약 일주일간의 기종변경 훈련을 받은 전 F-5E 조종사들이 김 중위의 편대에 오늘부터 투입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황 중령님 콜사인이 좀 독특하시군요."

  전투기의 엔진을 돌아보고 나서 캐노피 밑에 표시된 격추대수를 세고 있던 황 중령이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김 중위를 보며 싱긋 웃었다.

  "자넨 복숭아를 본 적 있나?"

  틀림없이 과일을 뜻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김 중위는 황 중령이 자신과 비슷한 인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황 중령의 외모는 별로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키만 크고 평범한, 또는 약간 멍청하게 보이는 타입이었다.  선글래스 너머로 가끔 번득이는 눈빛은 그가 베테랑 조종사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무스탕부터 팬텀과 F-5A 프리덤 파이터, 제공호,  F-5E 타이거까지 몰아본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벗겨서 뒤집어 놓으면 복숭아가 보입니다."

  옆에 있던 현역 조종사들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유유상종이라고, 같은 전투기를 비슷한 사람들이 몰게된 아이러니 때문이었다. 누가 더 잘나가는 제비인지는 두고 볼 일이라며 조종사들이 의미있는 미소를 교환했다.

  "후후... 틀렸네. 바로 뉘여서 다리를 구부려야지 복숭아가 보인다네. 이따가 거울 앞에서 한번 해보게. 그런데 이 기지배 이름이 뭔가? 성감대는 어디지?"

  주변 조종사들이 낄낄대고 김 중위는 한방 맞았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벌개졌다.

  "선영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전체적으로 민감한 편입니다."

  "그래, 길을 잘 들여놨겠지. 내가 즐기기 편하게 말야.  자, 그럼 한번 운우지정을 나눠볼까?"

  동료 조종사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고, 황 중령은 사다리를 올라 조종석에 앉았다.  미리 연락이 되었는지 하사관들이 몰려와 스타터를 가동시켰다.  김 중위의 기체가 굉음을 내며 천천히 주기장을 빠져 나갔다. 김 중위는 애인을 남에게 뺏긴 기분이 들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그는 기체에 대한 독점권을 잃은 대신  수면과 휴식을 얻게 된 것이다. 김 중위의 F-16,  이제는 김 중위와 황 중령이 공동으로 몰게될 전투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비상했다.  그는 차라리 황 중령 같은 베테랑 조종사에게 전투기를 맡기는 것에 위안을 삼고 조종사휴게실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기지 상공에는 김 중위의 전투기가 내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며 조종사들과 지상근무요원들의 찬사가 터져 나왔다.  공중 3회전과 스플릿S 등의 곡예비행이었는데 황 중령의 조종은 아주 부드러웠다.  여자 다루던 솜씨라고 김 중위가 투덜거렸다.

  1999. 11. 25  13:05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식사 잘 하셨습니까? 방금 집계가 끝났습니다."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을 점심을 마치고 돌아온 장군들은  이 호석 공군 중장이 전과보고를 하자 10년 묶은 체증이 씻기는 기분이었다. 압도적인 승리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북경군구에서 발진한 100여기의 중국 전투기 중에서 안전하게 압록강을 넘어 도주한 전투기는 30여기에 불과했다. 지상발사 미사일에 17기, 공격대의 공대공 미사일 일제발사에 24기,  요격부대의 공격에 31기 등 모두 72기의 중국 전투기를 격추시켰다.  나머지 도주한 중국 전투기들도 애프터 버너를 썼기 때문에  연료가 떨어져 만주 곳곳에 비상착륙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아군의 피해는 미그-23 전투기 6기.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1982년 레바논 공중전에서 기록된 56 대 1이나  포클랜드에서의 26 대 0에는 못미치지만 어쨋든 큰 승리였다.

  "이 정도 비율만 되면 중국의 전투기 4,000여대도 별게 아니겠습니다. 중국이 신형기를 구입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러시아가 최신형 전투기를 중국에 인도하기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수고 많았소. 이제 걱정은 없겠소. 단 한가지를 빼면..."

  이 차수의 말에 갑자기 참모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핵무기로 두둘겨 맞을 가능성이 계속 엄존하고 있는 상황에, 국지전에서의 승리는 전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지나해의 피스함대는 아직도 연락이 두절된 상태여서 통일참모본부는 사실상 함대를 포기하고 있었다.  해상초계기가 최대한 남진하여 해상수색을 계속했으나 아직은 방사능에 의한 델린저 효과가 강하여 전파수색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1999. 11. 25  14:10  평안북도 선천 대목산

  '젠장, 부가티 EB110 슈퍼 스포츠!'

  차 영진은 자신의 차를 스쳐 지나가는  검은 광택의 스포츠카를 좇아 속도를 올렸다. 다른 차에 추월당하는 것은 아직까지 젊은 그에게 있어서 참을 수 없는 수치로 간주되었다. 본능적으로 페달에 힘이 가해졌다. 그의 구형 프라이드는 이미 시속 240km를 넘고 있었다.  반대편 차선을 운행하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그의 눈을 자극했다.

  유선형의 스포츠카는 벌써 저만큼 달아나고 있었고 차 영진은 죽어라고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러나 610마력의 고출력을 자랑하는 이 슈퍼 스포츠와의 거리는 좀체로 줄어들지 않았다. 좇아오는 프라이드를 발견했는지 스포츠카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좋아, 조금만 더 가면 회전코스다.중부고속도로에서 잔뼈가 굵은 내 솜씨를 보여주지.'

  앞서가는 스포츠카가 급커브를 발견했는지 뒷쪽의 브레이크등이 켜졌다. 차 영진도 엑셀에서 발을 떼었다. 그의 차는 스포츠카와 거의 동시에 회전코스에 진입했다.  스포츠카는 1차선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는데,  차 영진은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와 스포츠카 사이의 작은 공간을 파고 들었다.

  차 영진은 커브에서 엑셀과 브레이크를 한발로 동시에 밟았다.  그는 커브길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스포츠카와의 접촉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스포츠카는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커브 중에 2차선으로 밀리는 것이 더 두려웠는지 차선을 비켜 주지 않았다.

  '추월!'

  드디어 차 영진은 10여 미터를 앞서 나갔다.그가 득의만면해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광폭한 엔진음 소리가 들리더니 스포츠카가 맹렬한 속도로 추격해 왔다. 백미러로 보니 거리가 거의 좁혀지고 있었다.

  '이런, 한계다...'

  그는 1,300cc 엔진 자체의 한계를 뼈저리게 인식했다. 현재 직선코스에서도 가속도 0, 더 이상의 속도가 붙지 않았다.  엔진을 튠업하고 강제공기와류장치를 다는 등, 별의별 장치를 다 갖추었으나 시속 250km를 약간 상회하는 것이 한계였다. RPM 미터는 6,000에서 멈춰 있었다.

  스포츠카는 그의 차 범퍼 뒤 20cm까지 바짝 접근했다. 앞차의 이동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차의 뒤쪽은 기압이 낮아지는데, 이를 이용하여 뒷차는 엔진에 무리를 주지 않고도 앞차와 같은 속도를 낼 수 있다. 경주차들의 경기에서는 추월 직전에 많이 쓰는 기술이었다.

  반대편 차선에서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보이자, 백미러를 통해 뒷차의 운전자를 보았다. 뒷차 운전자의 선글래스 뒤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의외로 젊은 여성이 아닌가?

  스포츠카와의 거리가 약간 멀어진다 싶더니 뒷차가 갑자기 속도를 올렸다. 그러더니 금새 자신의 차를 추월하고 말았다.  차 영진이 한숨을 쉬는데 앞차가 비상등을 깜빡거렸다. 그러더니 우측 깜빡이를 켜고 2차선으로 위치를 옮겼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차 영진은 속도를 줄이고 2차선으로 들어갔다. 조금 더 가니 고속도로 휴게소가 보였다.

  "새파란 애송인줄 알았는데 뜻밖에 아저씨로군요. 반가와요. 저는 김 혜선이라고 해요."

  늘씬한 키의 아가씨가 먼저 하얀 손을 내밀었다. 선글래스를 벗은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싱싱하고 젊어 보였다.

  "무슨 섭섭한 말씀을... 전 아직 20대 총각입니다. 만 29세 11개월이죠."

  그는 악수를 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 그러세요? 저는 스물 넷이여요.  근데 아저씨 머리가 짧은 걸 보니 운동선수세요?  아니면 군인?  설마 폭력조직에 계신 분은 아니시겠죠? 호호~ "

  "크... 군인입니다.부대에서는 무지막지하게 탱크를 몰고 다녔죠. 가끔 배고플 땐 감자밭을 짓뭉개는 수도 있지만..."

  "어머, 그래요?  군인들은 요즘도 배가 고픈가요? "

  그녀는 군인들이 전차를 몰고 감자밭을 뒤집어 엎고 나서,  옹기종기 모여 쪼그리고 앉아 감자를 구워 먹는 것을 상상하며 꺄르르 웃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꽤 오래 이루어졌다.  부산이 고향이고 지금은 한국 과학기술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녀는 직장이 있는 유성의 어느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대전의 육군본부에서 파견근무 중이던 그는 자주 그녀의 오피스텔을 찾았고, 주말에는 함께 멀리 여행을 가기도 했다.

  속초가 가장 좋았다. 겨울의 동해바다는 모든 것을 잊게 하고 그들에게 평안과 휴식을 주었다.그러나 차 영진이 근무지를 옮기자 자연히 그들의 사이는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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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부군의 실제 지휘관인 차 영진 준장의 자는 모습을 보며, 통신군관이며 그의 부관인 김 중위는 그를 깨우기가 꺼려졌다.차 준장에게는 실로 오랜만의 수면이었고,  이 사실은 김 중위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차 준장의 자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의 표정이 미소를 짓다가 계속해서 안타까움과 공포가 서렸다.악몽을 꾸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김 중위는 입술을 깨물며 결심했다.

  "사령관 동지!  기만 일어 나시기요."

  김 중위가 흔들어 깨우자 차 준장이 벌떡 일어났다.  아직 잠이 덜깼는지 흐리멍텅한 표정이었다.

  "날래 신의주 방면으로 출동해야 하지 않갔습네까? "

  차 준장이 한숨을 푹 쉬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실로 오래간만에 꿀맛같은 잠이었는데, 그에게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의 교육과 훈련, 대부분의 근무시간은 다 이런 전쟁상황에 대비해  국가에서 투자한 자본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동안의 밥값을 해야만 했다.

  "출동준비는 다 되었소?"

  "기러습네다. 전원 승차 완료됐습네다."

  차 준장은 또 이를 닦을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신보다 더 지쳐 있을 병사들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1999. 11. 25  14:25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P-3C 초계기로부터 급전! 피스와 우크라이나가 무사하답니다!"

  한국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이 급전을 받아  이를 참모들에게 보고하자 참모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그들은 함대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 러시아제 쿠츠네초프급 전투항모와 슬라바급 중순양함의 생존은 핵전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생존은 항모와 순양함의 전력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오... 정말 다행입니다. 지금의 위치는 어떻게 됩니까?"

  반전전사집단 피스에서 파견된 연락관인 짜르는 그동안의 초조함에서 벗어나 활기를 띠고 있었다.  영어에는 능숙하지만 러시아어는 아직 숙달되지 않은 인 한수 중위가 영어와 러시아어를 섞어 쓰는 짜르의 말을 통역하기 바빴다.

  인 중위는 짜르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며,  혹시 러시아가 한중전쟁에 깊숙히 관련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전전사집단 피스라는 것이 생긴지 수십년이 되었다지만,  웬만한 국가의 무력수준을 넘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핵항모와 순양함이라니... 그리고 이 전투함들의 승무원들 대다수가 러시아 출신이 아닌가? 인 중위는 한중전쟁 뒤에 숨어서 바삐 움직이고 있을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역할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참모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체 하는지, 피스에 대한 병참 및 정보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현재 오키나와 북방 40km, 이헤야섬 서쪽에서 제주도 방면으로 급속항진 중입니다. 이것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비암호 통신문을 초계기에서 청취한 것입니다. 아직 확실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함대의 통신능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일본 자위대 소속 함대와 항공기들이 계속 추적 중입니다만, 조우전은 있을 것같지 않다고 합니다."

  "이 나쁜 쪽발이들!"

  심 중장이 보고하자 한국 육군 정 지수 대장의 입에서 급기야 욕설이 터져 나왔다.  한국이 중국에 점령되면 일본의 방위에도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한국의 어떠한 요구도 들어주지 않고 은근히 방해만 하는 일본이 정말 싫었던 것이다. 한국으로 향하는 화물선들은 걸핏하면 일본 해상자위대의 임검에 걸려 해상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전쟁수행에 필수적인 군수품과 생필품, 원자재들이 일본 자위대 때문에 해상에서 발이 묶이는 일이 허다해서,  요즘 한일간에는 외교전이 한창이었다.

  "독도만 해도 그러더니... 중국을 몰아내고 나면 아주 혼쭐을 내줘야겠습니다."

  "거 너무 흥분하디 말기요. 일본을 칠 힘은 없으니끼."

  인민군 김 병수 대장이 정 대장을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전쟁은 감정만으로 수행할 수 없었다. 이번 한중전쟁을 총지휘하는 통일참모본부의 참모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냉철한 이성을 유지해야 했다.

  "신의주 폭격에 동원된 항공력은 얼마나 되오?"

  이 종식 차수가 한국 공군의 이 호석 중장에게 묻자,  참모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이 중장이 단말기를 조작했다. 현재 폭격부대의 위치가 중앙화면에 표시되었다.  이 차수는 회의진행 대부분을 맡아 해주었던 양 석민 중장의 존재가 아쉬웠다.

  양 중장은 '작전 장마'의 작전 책임자로서, 상황에 따라 작전에 직접 투입될지도 모른다고 연락해왔다.  이 차수는 그의 행동력은 높이 샀으나 지휘관이 할 일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참모들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사람은 자신이었고, 다음은 사실상 인민군 장성들의 군문 종사기간이 국군 참모들보다 훨씬 길었다. 그러나 실세는 한국군의 정 지수 육군대장이었다.  정 대장은 대통령과 국방부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고, 다른 국군참모들을 사실상 감독하며,  또한 그의 주요업무 중에 하나는 참모본부의 상황을 국방부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예비역 조종사들의 투입으로 저위협 상황에 대한  대처가 수월해 졌습니다. 호위는 현역이, 그리고 폭격과 수송은 주로 예비역 조종사들이 맡고 있습니다. 물론 기체의 피로도는 극에 달해서 수명이 훨씬 짧아지고 있습니다만.

  현재 상황입니다. 공격대는 현재 신의주 폭격위치에 있습니다. 첫 공격은 스탠드 오프(stand-off : 원격 공격)이지만 호위기들이 적의 대공진지들을 제압하고 나면 정밀 근접공격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 호석 중장이 단말기를 다시 조작했다. 화면에는 신의주 시가가 실시간으로 영상전송이 되고 있었다.  신의주는 이미 인민군의 스커드 미사일에 피해를 입어 시가 곳곳이 불타고 있었다.

  "카메라 포드를 장착한 드래곤 플라이에서 촬영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현재 청와대와 국방부, 인민무력부 등에서도  시청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폭격 시작시간입니다."

  화면에는 팬텀기에서 발사된 로켓탄들이 연기를 길게 끌며 신의주 시가지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이들의 임무는 중국측의 대공진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특히 대공 미사일 기지가 발견되면 대기하던 호위기들이 즉시 근접공격, 또는 대레이더 미사일 공격을  가하는 작전이었는데, 다만, 아군기의 손실은 필연적인 작전이었다.

  "신의주에는 아직 인민들이 남아......."

  박 정석 상장이 신음성을 흘렸다. 아군에 의해 시민들이 죽어갈 것이 분명했다. 선천 이남 지방에서는 인민들이 피난, 또는 현지 입대했지만 압록강 부근 지역 주민들은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이들이 입을 피해를 걱정했지만 주공을 신의주쪽인 것으로 중국을 호도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참모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못난 군대... 신의주에는 약 25만의 시민과 함께 20여만의 중국군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군사시설, 또는 중국군 집결지에만 정밀한 공격을 하더라도  시민의 피해 발생은 피할 수 없었다. 하물며 지금의 무차별 폭격에 얼마나 많은 시민의 피해가 생길까...

  1999. 11. 25  14:55  평안남도 순안 비행장

  "우리 선영이...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황 중령님."

  김 종구 중위는 그동안 초조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귀환한 기체의 상태가 깨끗해서 너무 기뻤다. 주변에 사람들만 없다면 당장 전투기에 입을 맞추고 껴안을 기색이었다.  연료보급을 마치고 주기장에 도착한 황 중령이 사다리를 내려오며 말했다.

  "뭐, 내 애인도 되는데..."

  "윽....."

  "뭐해? 빨리 이륙준비 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나중에 뵙죠."

  김 중위는 투덜거리며 전투기에 탑승했다. 하사관들이 무기를 장착하고 있는 중에 관제탑으로부터 임무부여를 받았는데 혹시나 있을지 모를 중국 전투기들의 내습을 요격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전투기가 부여받는 전형적인 임무인 전투공중초계(CAP)였다.  잿빛 하늘 아래에는 또다시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9기의 F-16이 이륙 즉시 편대진형을 갖추고 북쪽으로 기수를 틀었다. 그중 한 대에는 한국군의 공군참모총장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있었는데, 그가 순안비행장에 나타날 때부터  이미 뉴스의 촛점이 되어, 기자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방송국과 신문사에 전송하고 있었다.

  '상징적 의미인가? 아니면 또다른 작전인가?'

  김 중위는 특이한 편대원의 존재에 껄끄러웠지만 신경을 끄기로 했다. 전투기에 탑승한 이상 공군참모총장도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윙맨이 딸린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는 전투가 발생되면 즉시 이탈하기로 되어 있었다.

  전투기들은 3만 피트 상공에 도달하자 E-2C의 명령을 수신했다. 산둥 반도의 칭따오(靑島)쪽에서 50여기의 전투기가  신의주쪽으로 접근하고 있으니 요격하라는 명령이었다.기종은 미그-29가 24대였고 나머지는 미그-23의 중국제인 F-9이었다.

  "헉... 풀크럼이 24대!  우린 쨉이 안되잖아? 이거."

  "최소한 F-14나 F-15는 주고 싸우라고 해야지.  지원도 없다니, 미쳤나? 여긴 공참총장도 계시다고!"

  편대원들의 항의가 대단했으나 편대장인 조 장호 소령이 기수를 미그쪽으로 돌릴 것을 명령했다. 전투기들이 일사분란하게 남서쪽으로 선회했으나 조종사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미그-29는 미국의 잘나간다는 전투기인 F-14,15,18을 모조리 아작낸 전투기입니다. 지금 숫적으로도 상대가 안되고요. 편대장님! 재고해 주십시요. 이런 승산없는 전투에 우릴 내몰겠다는 겁니까?"

  "이봐!  그건 독일 조종사가 몰았을 때의 야그야. 실전에서는 정반대였잖아? 글고 저치들은 중국인들이라고. 겁낼 것 없어. 그리고... 가속력은 딸리지만 선회성능은 F-16이 더 낫고..."

  "저건 레이더 능력이 딸리는 보통의 미그가 아니라고요. 미국제 전투기들도 ECM에서는 저들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저들이 알라모라도 갖추고 있으면 우린 접근해 보기도 전에 전멸입니다. 총장님, 아니, 해동청 46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 기선 대위가 공군참모총장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총장은 묵묵부답이었고 한참만에 들려온 대답은 조종사들의 기대를 꺾었다.

  "자네들은 편대장의 명령을 무시할건가?"

  F-16과 미그-29의 거리는 약 130km,  사정거리 75km의 암람이나 45km인 스패로 공대공미사일의 사정거리 훨씬 밖이었으나, 러시아제 알라모의 사정거리가 170km이므로 이들을 발사하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다만,  중국전투기의 레이더가 미사일의 성능을 따라 줄지는 미지수였다. 러시아는 종종 수출하는  전투기의 성능을 떨어뜨린채 판매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 전투기들은 한국공군기들을 발견했는지  이쪽으로 기수를 틀고 있었다.

  "높은산, 썰렁펭귄 선두로!  유효 사정거리를 비슷하게라도 해야지."

  편대장의 명령에 따라 강력한 ECM포드를 장착한 2기의 F-16이 좌우로 전개하여 선두로 나섰다.  적기의 레이더 유효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하는 ECM은 그러나 아군기들의 위치를 드러내는 역할도 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만약 적기의 ECCM(대전자전)능력이 아군기의 ECM보다 우월하다면 이들은 정말 바보같은 짓을 하게된 셈이다.

  전자전 포드를 갖춘 전투기들은 계속 진행하고 나머지 전투기들은 선회하여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도는 2만 5천. 속도도 약간 줄였으므로 전자전을 수행하고 있는 전투기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벌어졌다.선두와 미그기의 거리는 약 60km로 근접했다.

  "적, 대공미사일 발사! 약 40기, 맙소사! 마하 4.5!"

  강력한 전파방해전을 수행하던 백 대위가 비명을 지르자 편대장이 즉시 명령을 내렸다.  미사일은 모두 ECM포드 장착기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즉, 전자전기들이 중국 전투기들의 레이더를 속였다는 뜻이 된다.

  "아크리드야!! 암람 발사! SAR이니 걱정 없어, 먼저 치라구!"

  편대장인 조 장호 소령은 부하들이 명령을 수신하기도 전에  이미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 6기의 전투기들이 4발씩 합 28기의 암람 중거리미사일을 날렸다.  암람은 아크리드에 비해 속도가 약간 느리지만,  러시아제 아크리드의 약점은 Semi-Active Radar, 미사일이 목표에 명중할 때까지  계속 전투기가 목표를 향해 레이더를 비춰주고 있어야 했다. 미사일 자체에 레이더가 내장된 암람에 비해 불리한 점이다.

  최근에 와서 공중전에 대비한 각국의 공중무기 개발 경향은 전투기의 탐지능력 강화와 공대공 미사일의 fire-and-forget 능력 개발로 집중되었다. 미사일의 명중율이 높아지면서 근접전의 중요성이 떨어진 것이다. 공대공미사일의 명중율이 형편없었던 개발초기나 베트남전 때와는 질적으로 달라진 부분이다.

  미사일을 발사한 중국 전투기들은 접근해 오는 미사일을 회피하여 자신이 발사한 미사일의 레이더 유도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계속 미사일을 유도하여 한국군의 미사일에 명중될 위험을 안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역시 예상대로 중국전투기들은 미사일의 유도를 포기하고 급선회했다. 한국에 F-16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으나 중국에는 신예기인 미그-29와 수호이-27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 중위의 레이더에는 회피행동을 하는 중국전투기들과 이들을 추적하는 미사일의 궤적이 교차되고 있었다.

  "오, 예~~~ 6기 격추!"

  중국 전투기들이 발사한 미사일은 유도를 상실하자 모두 빗나갔으나, 한국 전투기들이 발사한 미사일에 의해  8대의 중국 전투기들이 격추되었다. 양측 전투기들의 거리는 어느새 40 km로 접근했다. 또 한대의 중국 전투기가 격추되었으나 미그-29인지, 아니면 F-9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스패로 락온! 자, 발사 후 돌입이겠죠?"

  중국전투기들은 아직도 미사일을 피하기 바빴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편대장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김 중위는 남은 스패로 미사일 발사준비를 이미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미사일을 모두 소비하고 나면 이제 근접공중전이 시작되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편대장의 명령은 뜻밖이었다.

   "긴급 선회, 기지로 돌아간다."

  편대장은 부하들의 명령수령 확인도 생략한 채 바로 선회했다. 그 뒤를 참모총장과 2대의 전투기가 따르자  김 중위와 다른 두 대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재빨리 그들을 따랐다. 중국 전투기들이 반격을 시작했으나 ECM포드 장착기들이 암람을 발사하자 다시 중국 전투기들은 추격을 포기하고 회피하기 바빴다.  또다시 상공에 불꽃이 피었다.

  "괭이갈매기, 왜 그러시죠?"

  김 중위는 편대장이 전투를 피한 것에 대해 궁금해졌다. 약간 무모할 정도로 공중전을 즐기던 조 소령이 아니었던가? 그가 싸움을 피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무모하게도 50여기의 적기를 향해 공격명령을 내리더니, 갑자기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조 소령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만하면 됐고... 중국 전투기들의 미사일 무장에 대해 재검토 해야겠어. 아크리드라니... 해동청 46은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편대장이 귀한 손님인 공군참모총장을 호출했다. 그가 받은 정보브리핑에서 중국의 구식 전투기들이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는 없었다. 그래서 편대장이 한 질문은 약간의 항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역시 예상이 맞았네.  벨로루시에서 중국에 무기를 판매했다더니 저것들이구먼. 앞으로는 전쟁이 더 힘들어질거야. 자네들도 조심하게."

  그동안 한국 전투기들은 상대적으로 미사일 무장이 빈약한 중국 전투기들만을 상대해 왔다.수호이-27의 절반은 남해해전에서 한국공군의 덫에 걸려 전멸했고, 미그-29는 피스함대 함재기들과의 전투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  나머지 미그나 섬형 전투기들은 숫자는 많았지만 레이더 유도형의 미사일을 탑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전황은 불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까 분명히 확인했지만 미그-23 유형인 F-9에서도 반능동형이기는 하지만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다른 전투기의 도움을 받았는지, 아니면 자체 레이더로 조준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중국이 보유한 수천대의 전투기들은 어제까지의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구 소련이 해체되고 나서, 소련무기의 분배문제는 구 연방 참가국 사이에서 항상 분쟁의 불씨가 되어 왔다. 러시아는 흑해함대나 다른 전투기 등 뿐만 아니라  핵무기에 있어서도 확실한 통제권을 확립하지 못했다. 이들 무기류가 이번 한중전쟁을 맞아 한국과 중국에 흘러들고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일본과 동남아시아 각국에서도 구 소련의 무기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는 중국의 한국점령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은근히 한국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벨로루시(백러시아) 등의 다른 CIS 국가들은 남의 일일 뿐이었다.중국이 보유한 구 소련제 무기들에 대한 부품과 소모성 무기들의 공급은  이런 경로로 이뤄지고 있었다.

  공군참모총장과 조 소령, 김 중위 등은 무거운 날개짓으로 기지로 귀환했다. 기자들이 공군참모총장의 무사귀환과 적기 격추를 축하하며 취재경쟁에 열을 올렸다. 조 소령은 참모총장이 3기의 적기를 격추시켰다며 기자들 앞에서 과장했는데,참모총장은 쑥쓰러운듯 미소만 짓고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김 중위는 자신의 격추댓수가 한 대 줄어들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1999. 11. 25  15:30  평안북도 신의주, 화평동 아파트 단지

  신의주 시가에 대한 통일한국군의 대대적 공습에 이어 포격이 시작되었다. 중국군은 신의주를 기습점령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신의주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신의주를 수복하려는 통일한국군에 의해서 신의주 시내는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었다.미처 신의주를 빠져나가지 못한 대부분의 시민들과 인민군 포로들,  그리고 중국군들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탄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바이, 우리는 이제 여기서 죽는가 보오.  아빠뜨 방공호에 꼼짝없이 갇혀서 말이오."

  신의주 제1사범대학 교수인 리 태윤은 포성이 울릴 때마다 휴대용 TV 수상기만 희미하게 켜진 지하방공호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TV뉴스에서도 신의주 폭격과 포격에 관한 보도가 한창이었다.  한국공군의 촬영뿐만 아니라, 어떻게 신의주에 들어 왔는지 미국 CNN과 BBC의 종군기자들이 촬영한 화면도 함께 보도되었다.  북한제 방사포에서 발사된 로켓탄들이 시가 곳곳을 사정없이 파괴했다. 여기에 한국 육군의 155밀리 자주포도 가세하여  신의주에는 온전한 건물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주변에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간단한 가재도구만 챙겨와 역시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었다.  대부분이 노인과 나이든 여자들, 인민학교에 다니는 정도의 아이들이었다. 젊은이들은 지하조직을 결성해 점령군들과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거나,  아니면 중국군의 검거를 피해 숨어 있었다.

  "교수 선생, 저 소리는 우리를 해방시켜 주기 위해 우리 인민의 군대가 공격하는 소리오.나는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데 동무는 어찌 그리 겁이 많소?"

  "아바이, 길티만... "

  리 교수는 전쟁참가자이며 전후복구건설과 천리마운동을 거쳐 사회주의 대건설에 이르기까지  혁명의 매 단계를 꿋꿋이 살아온 오랜 로동계급의 이 아바이가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흔한 노동계급의 사람이고 자신은 공산당원이며 지식계층의 사람이었다. 평등한 사회인 조국에서도 사람의 가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나 생명은 유한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닌가?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생명을 보상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쿠앙~"

  "꺄~~악!

  지근거리에서 폭발한 굉음에 놀라 지하 방공호에 갇힌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리 태윤도 고개를 숙이고 떨다가 고개를 들어 아바이의 표정을 살폈다.  주물공인 그 아바이는 묵묵히 테레비죤만 시청하고 있었다.

  "내레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포탄이레 피해가는 거이 아이고,  방공호에 포탄이 명중하드래도 방공호는 끄떡 없을수도 있고 한발에 무너질 수도 있는거 아니겠슴메?  내레 무섭기도 하디요. 하디만 어쩌갔소? 눈먼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리 교수도 묵묵히 좌정하고 앉았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과연 그가 괜히 아바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에 대한 친근감의 표현이 아바이였지만,  존경을 받지 못하는 노인은 아바이로 불려지지 않는 법이다.

  또다시 폭음이 이어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 교수는 늦게 결혼하여 이제 인민학교 4학년인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TV뉴스를 시청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세계 뉴스의 촛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리고 폭격을 당하고 있는 신의주에서, 그 광경을 TV로 보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아파트 건물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아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리 교수가 아들을 다독였다.

  "지하 방공호래 워낙에 튼튼히 지어졌으니끼니 안심하라우.기래서 방공호 아니가서?"

  1999. 11. 25  15:30  평안북도 신의주 남방 15km

  드디어 신의주가 보였다.  차 영진 준장은 부대를 재정비하여 북쪽으로 급속이동시켰다. 신의주는 중국군이 도시 자체를 요새화하여 공격이 매우 힘들것으로 수색중대가 보고해왔다. 신의주의 중국군은 자체의 방어 뿐만 아니라 국경인 단둥(丹東)에서의 포격지원과 압도적 다수인 공중지원,  게다가 바다쪽에서도 아직까지는 숫적으로 우세한 중국해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소수의 병력으로 이곳에 운집한 적의 대병력을 견제한다는 것이 차 영진 준장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만 좋은 소식은 중국 공군의 출격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통일참모본부의 귀띔뿐이었다.

  언덕 뒤에 지휘차를 세우고 병력배체를 지휘하는 중에 새로 저격여단장이 된 선우 대좌가 키가 왜소한 장교 한 명을 대동하고 방문했다. 낮에 활동하게 되면서부터 선우 대좌는 항상 선글래스를 착용했는데,  의외로 보기가 좋아 인민군들 사이에서는 선글래스가 유행하였다.

  "사령관 동지, 우리 여단의 시가전 대대가 맡아 봄이 어떻갔소."

  인민군 저격여단은 신의주 공격전의 우익을 맡기로 했었다. 저격여단은 유명한 특수부대였고 그 부대의 명성은 이번 전쟁을 통해 확고히 다져졌다.

  "시가전 대대라뇨?"

  차 준장은 시가전대대라는 이름은 처음 알았다. 인민군의 정찰연대가 적진 깊숙히 침투해 들어가는 특수공작 부대라면 저격여단은 특정의 전투에 있어서의 전문가들이 모인 부대다. 산악전대대와 시가전대대,  그리고 대전차대대가 이번 전쟁을 통해 유명해졌다. 러시아의 저격사단이 일반 보병사단인 것과는 질적으로 크게 달랐다.

  "그러니까 포위공격을 하면서 시가전 대대를 투입하여 적진을 교란시키자는 말씀이시죠? 하지만 우리 군의 공격이 무뎌질 수도 있고..."

  차 준장은 신의주 시내에 있는 아군 때문에 작전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했다.  지금도 병력면에 있어서는 아군이 결코 우세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해공군의 각종 지원을 받는 중국군을 상대하기란 실로 위험했다.저격여단장인 선우 대좌가 씨익 웃었다. 그만큼 자신에 차 있는 것 같았다.

  "왜 시가전대대겠소?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10여년 동안 훈련한 부대가 시가전 대대 아이갔소? 우리 시가전 대대를 믿어 보시라요. 다른 군종은 지원만 하면 충분하디요. 하루낮 하루밤만 시간을 주시디요. 그리고 이거 받으시고..."

  "뭡니까? 이건...  신의주 시내 중국군 배치도? 11월 25일 15시 현재라면 30분전... 벌써 정찰했나요?"

  선우 대좌가 다시 씨익 웃었다.  차 준장이 받은 지도에는 신의주 시내 중국군의 병력배치가 기입되어 있었다. 전차부대, 포병부대,기타 병참기지 등의 위치뿐만 아니라,  부대 규모와 장비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차 준장은 이를 즉시 부관에게  넘겨 포병대에서 포격을 개시할 것을 지시했다. 김 중위가 통신병을 불렀다. 김 중위는 포격명령만 받았으나 지도를 팩스로 통일참모본부에 보내 공군지원도 요청했다. 이것이 부관의 역할인가 하는 생각이 차 준장에게 들었다.  자신은 정말 깜빡 했었다.

  선우 대좌는 다시 한번 이번 신의주 공략전을 시가전대대에 맡겨달라고 요청했다. 지원만 적절히 해주면 신의주를 점령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차 준장으로서는 대전차 대대와 산악전 대대의 위력을 익히 아는지라 믿음이 가긴 하지만,  그래도 도대체 1개 대대로 적 2개 병단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었다. 차 준장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 부대의 임무는 점령이 아니고  양동부대의 역할이 아닌가? 견제만 하면 충분했다. 그는 다시 한번 인명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정밀정찰만 한번 더 하겠다는 선우 대좌의 요청을 받아 들여 시가전대대의 투입을 승인했다.  약간의 전투정찰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선우 대좌 옆의 왜소한 장교가 경례를 했다.  이 사람이 바로 시가전 대대의 책임장교라는 생각이 들었다.키는 작지만 눈빛이 매서운 전형적인 인민군 군관이었다. 세 사람은 즉시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먼저, 시가전대대의 임무는 적정탐지와 후방교란, 그리고 압록강철교에 대한 포격유도로 국한한다.  아군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무리한 작전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모든 세부작전을 대대장에게 맡겼다.

  포병대에서 포격을 재개했다. 시가전대대는 이미 신의주 동쪽인 압록강 가운데의 위화도 쪽으로 해서 신의주로 진공 중이었다. 포격전을 계속하며 다시 내일 오전의 공격을 위해 차 준장과 다른 장교들이 부대를 점검했다.  시가전대대의 적정정찰이 어느 정도 되면 다시 수정할 생각으로 일단 보급에 만전을 기했다.  차 준장으로서는 아무리 전문가집단이라도 1개 대대만 내보낸 것이 걱정되었다.

  1999. 11. 25  15:50  평안북도 신의주, 마전동

  쓰러진 건물의 잔해가 곳곳에 쌓여있었다.  대대의 각 소단위 부대들은 작은 건물 하나 하나를 수색해 들어갔다.  최초로 패배를 경험한 중국군은 포격에 몸을 움츠렸는지  도로에는 보병들은 없고 장갑차 몇 대만 보였다.  시청이 보이는 중앙거리의 한 건물 옆에 도착했다. 장갑차 3대가 그 건물을 경비하고 있었다.

  강 만형 하사가 분대원을 이끌고 장갑차 옆으로 접근했다.  일반적인 중국장갑차의 무한궤도가 아닌 6륜구동의 큰 바퀴를 가진 이 WZ-523 장갑차에는 옆부분에 탑승보병용의 총안이 있어 들키지 않게 자세를 바짝 낮췄다. 장갑차 윗부분의 기총사수용 해치가 열려있었다.  장갑차에 중국군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강 하사가 손가락으로 세 사람의 전사를 지목하고는 다른 전사들에게는 주위 건물을 경계하게 했다.소음권총과 손도끼를 든 세 사람이 해치안으로 들어갈 때 강 하사는 망원경으로 시청을 살폈다.

  그는 신의주 출신이라서 이 지역의 지리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의 분대는 큰길은 피하고 작은 골목길을 몇개나 돌고 돌아 시청 옆에 다다른 것이다. 시청 앞에는 포격에도 아랑곳 않고 중국군 전차 몇 대가 서 있었고, 시청과 주변 건물의 옥상에는 대공포 진지들이 보였다.

  강 하사의 분대는 신의주 시청 주변을 정찰하고, 필요시에는 포격 유도를 하는 것이 맡은 임무였다.  그는 시 청사의 포격을 대대장에게 무선으로 요청했다. 전차들이 경비를 서는 것을 보면 시청에는 뭔가 중요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청사 말고도 이런 작은 건물에 포격에도 아랑곳 않고 장갑차가 경비를 서는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좋다. 수색해 보자!'

  일분도 지나지 않아 장갑차에서 세 사람이 다시 나왔다.민 전사의 손도끼는 붉게 물들었는데 사람 머리카락 한 웅큼이 도끼에 묻어 있었다. 강 하사를 따라 분대원들이 그 건물의 무너진 틈 사이로 들어갔다.드디어 시청에 대한 포격이 시작되었다. 강 하사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보니 시청사가 화염에 휩싸여 붕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3층짜리 콘크리트건물인 이 곳은 뭔가 사람이 많이 있는 것같은 냄새가 났다. 역시 사람이 보였다. 포성에 놀라 벽뒤에 머리를 숙이고 있던 경비병 네 명과 마주쳤다. 최 전사의 소음권총이 즉시 불을 뿜었고, 한 명은 민 전사가 도끼로, 한 명은 박 전사가 목을 꺾어 죽였다.  시체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경비병들을 해치운 이들은 조용히 복도를 뛰어갔다.계단을 만나자 부하 세 명은 옥상까지 수색을 시키고,  강 하사는 나머지 인원을 이끌고 지하실로 내려섰다.오로지 군인으로서의 감각이 그를 지하실로 이끈 것이다. 지하실은 낮인데도 컴컴했다. 암적응이 될 때까지 잠깐 기다리니 어두운 지하실의 복도가 차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움직였다.

  선두의 민 전사가 복도를 돌다가 갑자기 가지고 있던 손도끼 두 개를 연속 던졌다. 뭔가 적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강 하사가 고개를 내밀고 보니 복도 끝의 철문 앞에 중국군 두 명이 쓰러져 있었다. 모두 가슴이나 머리에 도끼가 박혀 있었다. 철문에서는 빛이 스며나오고 있었다.전방을 경계하며 서서히 복도를 걸어서 철문에 도착했다. 문은 잠기지 않아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 전기불이라니! 발전시설까지 갖춘걸 보니 이곳이 통신시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 하사의 뇌리를 스쳤다. 대개 특수전부대의 임무는 적과 교전하는 것 보다는 정규군의 공격에 앞서 적의 중요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급, 통신이나 지휘 계통은 가장 중요한 공격목표였다.

  안에서는 중국어가 흘러 나오고 떠드는 소리도 들렸다. 강 하사가 문을 빼꼼히 열고 보니 약 30명의 중국군들이 보였다. 역시 통신시설인지 헤드폰을 쓰고 있는 기술병들이 많이 보였다.한쪽에서는 중국군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적은 침입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라며 강 하사가 좋아했다. 강 하사가 손을 들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전원사살의 명령이었다.그가 손을 내리자 모두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어차피 밖은 포격으로 소란스러웠으므로 이 상황에서는 총소리가 나도 상관없었다.  앞장을 서며 들어간 허 전사가 스콜피온 Vz-61 기관단총을 좌우로 긁었다. 김 전사의 북한제 68식 소총이 불을 뿜자 연기가 피어 오르고 탄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불시에 기습을 받은 중국군들이 맥없이 쓰러져갔다. 중국군들은 겨우 권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는데, 간간히 여군들도 끼어 있었다. 응사할 생각도 없이 모두들 머리만 숙이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사격 중지!"

  강 하사가 짧게 명령을 발했다. 분대원들이 얼이 빠져 있는 중국군들을 무장해제시키고 구석진 곳으로 몰았다.12명을 사살하고 15명을 생포했다.중상을 입은 중국군 두 명은 따로 모았으나 모두가 죽어가는 얼굴이었다. 강 하사가 중국군 포로들의 면면을 살펴봤다.계급을 보니 중국 인민해방군 중장이 한 명, 소장이 한 명 있었고,  공군대교(大校)가 한 명, 해군중교(中校)가 한 명,  기타 교관(校官)과 위관(尉官)급 군관들, 그리고 여군이었다. 중국군 소장은 집단군 사령에 해당된다. 통일 전의 남북한에서는 군단장급이다. 그리고 대교는 사단장급이었다.  그렇다면 중장은?

  '거물이다!'

  강 하사가 즉시 대대장을 무선으로 불렀다. 긴급한 상황 외에는 발신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강 하사는 벌써 두번이나 무선송신을 한 셈이다. 지하실인데도 의외로 통신이 쉽게 연결되었다.

  "대대장 동지! 중국 인민해방군 중장과 소장, 기타 군관급 12명을 생포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공군 대교, 한 명은 해군 중교입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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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건물의 위층을 수색하던 3명의 전사는 수많은 적군에 직면했다. 층마다 경비병들이 있고 방마다 적군이 가득했다.  최 전사의 소음총이 연이어 불을 뿜고, 나머지 두명의 병사는 총검만으로 싸워야 했다.  도대체 이 건물에 얼마나 많은 적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소음을 줄여야 했다.  소음권총을 가진 최 전사가 총을 든 적병을 쏘아 죽이며 견제하는 동안 박 전사와 노 전사는 비무장이거나 미처 총을 겨누지 못하고 있는 중국군을 총검과 개머리판으로 죽였다.

  세 명의 병사가 마지막으로 건물 옥상에 있는 대공포진지를 점령했을 때, 박 전사와 노 전사는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듯 AK-47의 북한제 라이센스인 68식 소총을 난사했다.

  그들의 군복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소음권총을 주로 이용한 최 전사는 그런대로 견딜만 했지만, 다른 두 명의 전사는 피향기에 취했는지 몸이 피곤해서인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최 전사가 분대장에게 상황보고를 하겠다며  서둘러 지하실로 내려갔다. 사실은 전신이 피로 물든 이들과 함께 있기가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건물 곳곳에 번진 피냄새가 역겨웠다.

  1999. 11. 25  15:55  북부군 본부 지휘차량

  시가전대대장과 같은 회선으로 듣고 있던 차 준장은 기가 막혔다. 포격이 시작된지 10여분만에 신의주시 중심인 시청에 도착하고 게다가 한국군으로서는  대장급에 해당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중장을 포로로 잡다니!

  [직책이 메이야?  병단 사령이가?]

  대대장이 강 하사에게 묻는 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리고 직직거리는 잡음 속에 위협적인 중국어가 흘러나오더니,  다시 억센 평안도 사투리가 흘러 나왔다.

  [기렇습네다!  중장을 심문해보니 해군과 공군의 작전장교와 함께 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합네다.  지금 제 손에 작전지도가 있습네다. 후퇴계획입네다! 반복합네다. 이들은 후퇴계획을 세우고 있습네다!]

  강 하사의 침착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차 준장이 있는 본부에도 똑똑히 들려왔다. 차 준장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퇴? 기거 이상하군. 일단 4명을 제외한 전원을 사살하고 제 5구역에 있는 2중대본부로 이동하라! 거기서 작전지도를 사령부에 팩스로 보내도록!]

  대대장은 여단장과 차 준장이 듣고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시청에 대한 포격 중지를 요청하며 동시에 강 하사에게는 참혹한 명령을 내렸다. 차 준장의 안색이 변했다.

  '포로를 사살하다니!'

  차 준장은 얼굴이 벌개졌다. 분노한 표정으로 여단장을 노려봤다. 그렇다고 무선으로  대대장이나 강 하사에게 직접 명령을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게다가 차 준장은 전파관제 때문에 무전을 수신만 하고 있었다.

  "저격여단은 제네바 협정을 알고 있습니까?"

  차 준장이 저격 여단장인 선우 대좌에게 항의했다.

  "물론 잘 알고 있디요.  하디만 적 진지의 가운데에서 어떻게 포로를 데리고 올 수 있갔시요? 겨우 9명의 인원으로 15명은 무리디오!"

  선우 대좌는 당연하다는 투로 차 준장의 얼굴도 보지 않고 말을 하고는 무전기에서 나오는 소리에 계속 신경을 썼다. 무선은 바로 끊겼다.

  "후퇴라니오? 뎡말 중국군이 신의주에서 후퇴한단 말씀입네까?"

  부관인 김 중위가 이 중요한 정보를 통일참모본부에 보고하려고 했으나 차 준장은 확인을 한 후에 보고하자며 김 중위를 제지했다.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차 안에 비치된 팩시밀리를 응시했다.

  1999. 11. 25  16:00  평안북도 신의주, 시청사 주변 건물안

  강 하사는 포로 모두의 눈과 입을 가린 다음, 그들 중 4명만 철문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나머지 중국군 포로들은 부하들이 개머리판과 총검으로 모두 죽였다.민 전사는 도끼로 통신시설을 부수고 난로 옆에 있는 등유통을 엎었다.  오 전사는 눈에 잘 안띄는 세 군데에 시한폭탄을 부착했다. 강 하사는 나오면서 작전명령서와 작전지도, 그리고 각종 암호문 등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1층으로 올라오니 현관에 여러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강 하사가 총구를 아래로 내리고 미소지었다.

  '아군이다!'

  연락을 받고 제 2중대의 일개 분대가 지원을 위해 온 것이다.  그 분대가 통로를 개척하며 선도하고 강 하사의 분대는 포로를 끌고 갔다.최 전사와 다른 두명의 전사가 현관에서 합류했다. 이들의 군복이 피로 온통 젖어 있는 것을 보고 분대원들이 모두 놀랐다.  아직도 포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1999. 11. 25  16:05  신의주, 압록강 제 1 철교 남쪽

  이 재철 상위는 인민군 중에서도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고급군관학교를 나온 그는  일찍 제대하고 나서 관료로서 공산당에 입당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군 중에서도 가장 훈련이 심하기로 유명한 저격여단에 자원을 했다.  항상 긴장상태인 한반도에서는 군인 이상의 출세길이 없다는 것이 이 상위의 생각이었다.

  그는 저격여단 일개 소대를 이끌고 위화도를 우회하여 압록강철교 동쪽 언덕에 매복을 했다.  앞엔 얼음에 덮인 압록강이 있고 건너편에 안둥 시가지가 보였다. 서쪽으로는 압록강 제 1 철교가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주변에는 각종 대공화기와 미사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압록강 제 1철교 위에는 중국군의 수송트럭들이 가득했다. 뜻밖에 모두 북쪽, 즉, 만주방향으로 향하는 수송대였다.  망원경으로 보니 대부분이 병력수송용 트럭들이었다. 최 하사가 레이저조준기를 철교에 맞췄다는 신호를 보내자 이 재철 상위가 포병대로 직접 연락했다. 철교부근에는 아직 포격이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밖에 나와 있는 중국군들이 많았다.

  "포격 개시"

  이 상위가 무전기에 대고 짧게 외쳤다.

  신의주 남동쪽 25km,  철산군 남시에 위치한 국군 제 6사단 포병연대에서 포를 쏘기 시작했다.  최 하사의 조준에 맞춰 포탄들은 정확히 철교위의 수송대에 직격을 가했다.

  "수송대가 목표가 아냐. 그 다리다!"

  3발의 155밀리 포탄을 맞고 철교 남단이 무너졌다. 이어 조준기의 목표를 북쪽으로 돌렸다. 수십 발의 포탄이 집중되자 곧이어 북단쪽도 무너졌다.

  "자! 이동!"

  이 상위가 명령하자  경계를 맡은 대원들이 먼저 탈출루트로 향했다. 저격여단은 워낙 힘들게 양성되어  임무완수 못지않게 탈출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부대였다. 다음 임무에도 투입되어야하므로!  포격의 정밀함으로 적은 이미 침투조의 존재를 눈치챘을 것으로 이 상위는 생각했다. 이 상위와 그의 부하들은  제 2의 임무를 위해 남쪽으로 신속히 이동했다.

  같은 시간  신의주 시가 남쪽 3km, 화평동 인민학교 부근 언덕

  "정찰지도에는 안나와 있는 병력입네다. 직승기사단입네다."

  망원경으로 학교운동장을 보면서 박 기철 중위가 보고했다. 중대장인 최 명수 대위는 당황했다.신의주 남쪽시내에 침투해 들어가야할 병력을 이 곳에서 쓸 수도 없고,그렇다고 지나치기에는 적의 덩지가 너무 컸다. 척후 몇 명만 남겨 무전연락으로 포격이나 공중공습을 요청할까 생각했으나 포병대는 사전에 선정된 중요목표에 대한 포격만으로도 벅찰 것이며,  통일공군은 적 전투기 요격 외에는 빼돌릴 자원이 없다고 미리 통일참모본부에서 못을 박아 놓았다.만주의 중국군 전투기들은 당분간 못 쓰게 되었지만, 산둥반도에서 날아오는 전투기들을 막느라 정신이 없다는 전갈이었다. 게다가 적의 대공 미사일망을 뚫고 공습을 하는것은 위험이 너무 크다고 최 대위는 생각했다.

  학교 운동장과  주변 공터, 그리고 야산의 밭에까지 중국군의 헬기가 가득했다. 최 대위가 보기에 적의 헬기 수는 200여대 정도 되어 보였다. 러시아제 해벅, 하인드 등의 비교적 신형헬기들이 절반, 프랑스에서 도입한 슈페르 훼르롱(중국 명칭 大黃鋒) 헬기들이 몇 대 보이고, 나머지는 선풍 25호 같은 구식 헬기들이었다.

  중대원의 숫자보다 더 많은 헬기들을 보고 최 대위는 고민했다. 그러나 헬기사단의 위력을 익히 아는지라, 그는 공격을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중국군은 통일한국군의 신의주공격에 대비하여 막강한 헬기사단을 바로 전선 코앞에 배치한 것이다.저공비행으로 신의주시를 서쪽으로 우회하고 두 시간 전에야 도착해서 아직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망원경으로 보니 북쪽 길에서 유조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이 학교를 향하고 있었다. 최 대위는 유조차들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공격한다! 유조차들이 정지한 직후 사격한다. 소대별 분담, 1소대는 학교 운동장, 2소대는 야산쪽을, 3소대는 주택가와 길쪽을 맡아라.  박격포는 직승기, 기관총은 승무원들을 향하도록. 가자!"

  일단 공격하기로 결정하자 중대는 신속히 공격준비를 갖추었다. 전사들이 프랑스제 휴대형 대공미사일 미스트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헬기사단은 공격헬기와 병력수송헬기부대로 이뤄졌다.보병은 1개 여단 규모였으나 기동력에서 어떤 사단보다 나았으며 화력은 거의 군단급이었다. 헬기사단은 중국군 통틀어 3개 사단밖에 없는, 중국군으로서는 아주 귀중한 존재였다.연료차들이 정지하여 헬기에 급유를 시작하는 모습이 최 대위의 망원경에 잡혔다.

  "사격 개시!"

  최 대위의 신호로 인민군들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기관총과 소총이 불을 뿜고 RPG와 박격포탄이 하늘을 갈랐다. 인민군은 저격여단답게 정확한 사격을 가했다.  넓다란 인민학교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고 있던 헬기조종사들이 쓰러지고 이어 헬기의 취약점인 엔진과 비행중 헬기의 중심을 잡는 뒤쪽 프로펠러에 불똥이 튀었다.

  유조차는 소총의 소이탄에 한발씩 맞을 때마다 폭발했다.제트유가 길에 흐르며 불에 타자 다른 유조차도 연이어 폭발했다.  헬기탑승보병과 수송대원들에게는 사격할 필요도 없었다.헬기와 유조차들의 폭발불길에 휩싸여 중국군의 막강한 헬기사단 대원들은  제대로된 저항도 못해보고 쓰러져갔다.  간간이 이륙하는 헬기들이 있었으나 엔진이나 프로펠러의 고장으로 추락하여 이미 지옥이 된 지상 위에 불길을 덮는 식이었다.

  인민군으로서도 공격의 고삐를 늦출 수 없었다. 공격헬기가 한대라도 뜨면 대공무기가 취약한 인민군으로서는 당할 수 밖에 없기때문이었다. 중국군은 헬기를 띄우기 위해, 인민군은 그것을 막기 위해 인민군과 중국군 모두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중국군의 헬기 수가 너무 많았다. 갑자기 언덕 너머에서 헬기들이 날아올랐다.

  [중대장 동지! 적 직승기래 또 있습네다!  20여대가 날아오고 있습네다!]

  야산쪽을 맡은 2소대장이 무선을 통해 연락해오자  최 대위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는 적의 확실한 전력도 모른채 공격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 계속 싸울 수 밖에 없었다.  헬기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병이 도망간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는 이곳에 뼈를 묻기로 작정했다.

  "대공유도탄 발사! 있는대로 퍼부라우!"

  최 대위는 극한상황에서 판단을 했다. 이미 중대원 전원의 전멸을 각오했다. 그러나 일개 군단에 필적하는 적을 상당수 파괴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중국군의 헬기는 인민군이 숨어있는 야산에 기관포와 로켓탄 세례를 퍼부었다. 20대라도 막강한 화력의 집중이었다. 사전에 충분히 엄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화력이 너무 강해서 대원들이 허무하게 쓰러졌다.  시가전대대가 이런 야산에서 전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비능률이었다.

  인민군쪽에서 대공미사일이 날았다.  저공침투 항공기용 적외선 유도방식의 프랑스제 소형 미스트랄이  마하 2.5의 속도로 날아가 중국군의 헬기들을 하나씩 격추시켰다.  3대의 발사기에서 10초에 한발씩 발사되니 3초에 한발의 미사일이 발사되는 꼴이었다. 갑자기 중국군 헬기들의 공격이 눈에 띄게 신중해졌다. 모두 처음 나왔던 언덕 뒤로 숨어버렸다.

  아무리 적이 보병뿐이더라도 대공미사일을 갖추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물며 헬기사단을 향해 공격해오는 적이라면  최소한의 대공무기는 갖췄을 것이라며 중국인민해방군 헬기사단의 제 2 연대장인 톈 구이쿤(田貴軍) 중교는 겁을 집어먹었다.

  게다가 지금은 겨울이라서  배기열 냉각장치는 미사일을 피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헬기 조종사라면 당연히 미사일에 노출되어 성능이 불확실한 플래어를 쓰느니 차라리 언덕 뒤에 숨는 것을 선호했다.  톈 중교는 언덕 뒤에 숨어서 가끔 기회를 보아 인민군쪽을 향해 로켓탄을 날리며 인민학교 운동장의 상황을 살폈다.

  사단 본부는 이미 전멸을 했고, 남아있는 헬기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공격헬기 10여대 뿐이었다.지상에는 이미 헬기의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고 파괴된 고철들 뿐이었다.우왕좌왕하며 뛰어다니는 중국군들이 보였으나 적을 향해 사격하는 아군은 없었다. 이미 조직적인 전투는 패한 것이다.  언덕뒤에 숨어서 미사일을 발사함에도 불구하고 또 한대의 헬기가 인민군이 쏜 미사일에 맞고 추락했다.

  "후퇴! 모두 안둥으로 돌아간다!"

  톈 중교는 몇 대 안남은 헬기나마 보존하고 싶었다. 1개 사단의 헬기가 완전 전멸하는 것을 피하고, 자신이 즐겨온 섬멸전의 희생자가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지상에 남은 아군은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남은 연료로 안둥의 비행장까지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뿐이었다.너무 최전선에 귀중한 헬기사단을 배치하게 한 군사위원회의 명령이 저주스러웠다. 중국군의 해벅 헬기들은 편대를 지어 북쪽 하늘로 사라져 갔다.

  1999. 11. 25  16:10  평안북도 신의주 미륵동, 신의주 형무소

  권 중위는 신의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형무소의 망루에서 망원경으로 중국군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아무리 아군의 포격이 치열하다지만 인민군들이 형무소를 공격하며 총격전을 하는 동안 당연히 예상되었던 중국군의 지원병력은 점령할 때까지 끝내 오지 않았다.  지금도 멀리 보이는 시내의 도로상에는 미친 듯이 질주하는 보병전투차들만 가끔 보였으나 부대 형태를 갖춘 중국군의 차량행렬은 없었다.

  "이기 어드레케 된기야?"

  옆에서 같이 망원경으로 시내를 살피던 노 중사는 묵묵부답이었다.노 중사는 포로가 되었던 인민군들을 석방하고 노획한 중국군 무기로 무장시킨 후 방금 망루로 올라왔다. 노 중사가 보기에도 중국군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혹시 후퇴하는 기 아니겠음메?"

  "길티요..."

  중국군 응원병력과의 치열한 한판을 기대하던 권 중위는 허탈해졌다. 적지 한가운데서 이렇게 무료한 시간을 보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형무소를 점령할 때도 중국군의 저항은 의외로 미미했다. 덕택에 간단히 형무소를 접수하고 1천 5백여명의 인민군과 사회안전원들을 석방할 수 있었지만, 이 임무에 1개 소대나 투입한 것은 전력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예정대로 포로들을 데리고 귀환하기 위하여 망루를 천천히 내려 왔다.  형무소 운동장에는 포로롭 붙잡혔다가 석방된 인민군들이 저격여단 소속의 병사들을 붙잡고 전쟁 진행상황을 물어보고 있었다.

  1999. 11. 25  16:20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신의주의 중국군들 사이에 후퇴 기미가 보인답네다.  북부군이 신의 주 시내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습네다."

  인민군 김 병수 대장이 다소 당혹스런 표정으로 보고하자,  통일참모본부 소속 참모들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병력수 10대 1인데 그럴리가? 그리고 지금은 1개 대대만 투입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국군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은 뭔가 중국군의 함정인지도 모른다며 신중한 의견을 냈다.

  "신의주 철교 위의  중국군 수송대들이 모두 북쪽으로 진행하고 있었답네다. 인민해방군 중장과 소장을 포로로 잡았는데 이들의 작전계획에도 기렇게 되어 있고... 지상전 관제기인 J-STARS의 보고도 일치합네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는  신의주에 중국군 병력이 얼마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습네다."

  김 대장이 북부군 사령부로부터 받은  중국군 작전지도를 중앙화면에 비췄다. 화살표의 방향은 전면후퇴의 양상이었다. 이 종식 차수의 의견은 뜻밖이었다.

  "어차피 중국군에게도 신의주는 별로 의미가 없으니끼니... 중국군이 후퇴하는기 확실하믄 신의주를 점령하라고 하시오."

  "알갔습네다."

  김 대장이 북부군에 명령을 내리는 동안 이 차수가 참모들을 보며 한마디 했다.

  "북부군이 양동부대인 것처럼,  신의주에 주둔해 있던 중국군 병력도 그런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르오. 신의주 철교를 파괴한 부대의 보고에서도 수송대는 북쪽을 향하고 있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선봉지역에서 예상보다 훨씬 큰판이 벌어질 듯 하오."

  한국군의 정 지수 육군대장이 함경북도 선봉 주변의 양군 병력배치도를 중앙화면에 올렸다. 한국군 20개 사단, 인민군 약 30개 사단이 진공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여기에 한국군의 3개 공수여단과 인민군 5개 경보병여단이 공중침투 및 상륙전을 할 예정이었다. 이에 비해 중국군은 후퇴한 30개 사단 외에 다른 30개 사단이 추가로 두만강을 넘어와 증강되었다.  청진 북쪽의 제주도만한 작은 지역에 양군 모두 100여만 이상의 대군이 집결 중이었다. 정 대장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 졌다.

  1999. 11. 25  16:40  평안북도 신의주 토교동

  차 준장의 부대는 신의주 시가 바로 남쪽의  석수산(해발 115미터)까지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점령했다. 신의주시는 군데군데 검은 연기가 치솟을 뿐, 시가 전체가 적막에 감싸여 있었다. 전쟁 중의 고요함은 병사들, 특히 부대를 지휘하는 입장에서는 피를 말리는 상황이었다. 틀림없이 있어야 할 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차 준장은 장갑지휘차인 구소련제 구식 BRDM-2U의 차장용 큐폴라를 열어, 상체를 내놓고 망원경으로 신의주 시가를 살펴 보고 있었다. 없었다.  3개 병단이나 된다던 중 국군이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황량한 바람이 야산을 휘돌며 차 준장의 뺨을 때렸다.

  서쪽 해안지역인 토성동으로 간 36사단-구 인민군 노농적위대 36연대의 후신-과 신의주 동쪽인 선하동으로 진군한 37사단 모두 적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시가전대대가 진입할 때만 해도 우글거리던 중국군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신의주에 잠입한 저격여단 시가전대대의 각 소단위 부대 보고에 의하면,  갑자기 중국군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 준장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진격을 멈추고 예하부대를 야산에 포진시켰다.  함정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차 준장의 가슴을 압박했다.

  "통일참모본부에서 명령입니다.  신의주에서 중국군이 대부분 후퇴했으니, 잔적을 소탕하고 오늘 밤까지 신의주를 점령하라는 명령입니다."

  김 중위가 보고하자, 차 준장이 장갑차의 지휘관 큐폴라에서 내려 서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런, 중국군 중장이 있던 곳에 어떻게 중국군이 별로 없다는 건가? 우리 부대에 저격당한 헬기사단은 왜 이 지역에 있었는지, 아무리 중국군이 후퇴 중이라고 하지만,  저 정도의 병력이 노출됐다면 최소한 1개 집단군은 있을게 아니요?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차 준장이 답답한 마음에 같이 지휘차에 탑승한 고급장교들에게 물었다.  참모장 겸 35사단장인 홍 종규 소장, 저격여단장 선우 대좌, 부관 김 소좌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만약 중국군의 병력이 차 준장의 말대로 1개 집단군 이상이라면, 북부군으로서는 버거운 상대였다.  유격전이나 양동작전이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점령작전은 전혀 다른 상황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아까 선우 대좌가 제출한 정찰보고서에는 틀림없이 중국군들이 대부분 그대로 있었소. 이들이 그 사이에 신의주를 다 빠져나갔다는 뜻이오? 첫번째 정찰이 1500에 있었고 신의주 철교는 1610에 파괴됐으니,  정찰 보고가 확실하다면, 약 한 시간 사이에 20만 병력이 빠져 나간 셈이 됩니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차 준장이 지적하자 시가전대대의 상급 지휘관인 저격여단의 선우 대좌가 변명하듯 말했다.

  "신의주 철교를 파괴한 부대에 의하면, 중국군은 한창 후퇴하고 있었다고 합네다.  길고 압록강은 지금 얼어붙었으니끼니 충분히 도보로 도강이레 가능하디요. 금년엔 추위레 날래 찾아 왔습네다."

  "중국군이 철교와 유조선 가교를 통해 후퇴 중이었다는 사실은 이 재철 상위의 보고로 알고 있소. 하지만 그 사이에 20만이 빠져 나가다니, 아무리 중국군이 자동화되어 있다고 해도, 아무리 압록강이 얼어붙었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그리고, 중국군이 압록강 얼음 위를 도보로 건너고 있다는 보고는 아직 없었소.  아무리 추운 지역이라고 해도 내가 보기엔 아직 강을 건널 정도로 동결되지는 않았을 것이오.게다가 신의주에서 멀지 않은 용암포에서 압록강이 서해와 만나므로 짠물의 영향도 있고...  김 중위, 신의주 부근 압록강의 최초 동결일과 빙질에 대해 기상청에 문의하시오. 아니면 신의주 출신 전사들에게 확인하시오.

  1500에 정찰지도를 작성한 정찰대가 아직 신의주에서 활동 중이오.이 상위나 다른 침투조도 계속 압록강 주변에서 정찰 중이지 않소? 아무래도 이는 중국군의 공성지계(空城之計)가 아닌가 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상당수의 병력이 땅굴이나 건물 안쪽에 숨어 있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전 병력을 동원해 신의주를 점령할 때, 은폐했던 중국군이 우릴 포위한다면, 우린 아마 전멸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신중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차 준장은 중국군의 작전계획서를 다시 한 번 살펴 보았다. 전면후퇴 계획이 분명했지만, 시간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후퇴는 공격보다 더 세밀한 작전계획이 필요한 법이다.  시간에 따라 부대이동을 시켜야 하는 후퇴작전은 동시에 갖가지 돌발사태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전쟁의 여러 작전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작전으로 간주된다. 만약 후퇴작전에서 실패하면 부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후퇴 작전계획에 앞선 후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인민해방군 중장의 생포도 꺼림찍합니다. 아무리 저격여단이 용맹하다지만 이렇게 쉽게..."

  차 준장은 오늘 오후에 있었던 모든 일이 찜찜했다.남시와 신의주 남쪽 산악지역까지에 대한 무혈점령, 중국군의 너무도 빠른 후퇴와 증발, 그리고 아무리 전문적인 부대라고 하지만 시가전대대의 중국군 중장 생포 등, 의심가지 않는 구석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전쟁이 곧 끝난다는 사실에 너무 들떠 있던 것이 아닌가 차분히 반성해 보았다.  만약 북부군이 신의주를 섣불리 점령하려다가 중국군에게 포위, 섬멸된다면 서부 전선의 붕괴는 말할 것도 없고, 전전선의 붕괴가 눈에 보듯 뻔했다. 선우 대좌는 그렇게까지 회의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참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길티만 신의주를 정찰 중인 아군 시가전대대나  항공정찰에 의한 보고 모조리 일티하고 있습네다. 중국군의 분명한 전면후툇네다. 이 됴은 기회레 잃디 않는 거이... 기리고 통참본부의 지엄한 군명입네다."

  차 준장은 고개를 들어 선우 대좌를 노려 보았다. 1개 대대로 신의주를 점령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선우 대좌도 지금은 자신이 별로 없어 보였다.

  "중국군은 후퇴시에 이점제면(以點制面), 병력의 전경후중(前輕後重), 화력의 전중후경(前重後輕) 원칙을 준수하고 있소. 이번에 중국군이 진짜로 후퇴했다면 이 원칙을 지켰을 것이오. 적의 다양한 매복과 기습과 잦은 반격에 직면했을 것이란 말이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의 어떻한 기동방어에도 접하지 못했소.  전혀 저항을 받지 않고 아주 쉽게 이곳 신의주 외곽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더 불안하단 겁니다."

  중국군은 후퇴시에 중요거점을 지속 방어하며, 병력은 후방에 집중시키고, 화력은 전방에 집중시키는 작전을 쓴다. 추격하는 적에게 상당한 정도의 손실을 강요하고 시간을 끌어, 아군이 재편성할 여유를 버는 것이다.

  "선우 대좌는 부대를 지휘하여 신의주를 점령하시오. 이미 절반 정도는 우리 수중에 있지만 틀림없이 상당수의 중국군들이 있을 것이오. 신의주에서 획득한 아군 포로들이 무장했다니까 이들도 같이 지휘하시오.

  그리고 꼭 정찰대를 활용하도록 하시오.  경계에 실패하지 말란 말이오.선우 대좌는 정주쪽에서 혼이 난 경험이 있으므로 제대로 하리라 믿습니다."

  차 준장이 말을 하며 선우 대좌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경력 중에 유일한 패배이며 야간전대대 최대의 위기상황을 차 준장이 구해주지 않았던가? 역시 선우 대좌는 상당히 불쾌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부하장교의 자존심보다는 작전의 성패, 더 나아가 일반 전사들의 희생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중국군도 대부대의 은폐에는 이골이 난 군대요. 국공내전이나 6.25, 중국인들이 말하는  인민해방전쟁이나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에서도 보듯이 중국군은 전통적으로 유격전엔 강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오. 꼭 역습에 대비하도록 하시오.

  나는 나머지 부대를 이끌고 시가 바로 남쪽에 대기하겠소. 만약 중국군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면 교전을 피하고 즉시 후퇴하시오.  제 말 뜻을 아시겠죠?  절대 무리하지 마시오.  우리의 원래 임무는 양동작전일 뿐이오."

  "알갔습네다. 사령관 동지!"

  선우 대좌가 거수경례를 하고 지휘차를 나섰다.  지휘차를 따르던 선우 대좌의 사륜구동차가 그를 태우고 앞쪽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그는 오늘 새벽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산악전 1대대 잔여병력과, 새로 편입된 주변 지역의 교도대원으로 구성된 2개 대대를 근간으로 하는 부대를 이끌고 신의주를 향했다.

  그의 직속부대인 야간전대대는 새벽의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고 아직 취침 중이었고, 시가전대대는 신의주 시내에서 작전 중, 그리고 대전차대대는 다른 부대에 배속 중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름만 최강의 저격여 단장이지, 사실 일반 예비부대 연대장과 별 차이 없는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물론 밤이 되면 사정은 달라지겠지만...

  선우 대좌는 스판드럴 대전차미사일 발사기가 탑재된  사륜구동식 장갑차인 BRDM-2를 선두로 부대를 전진시켰다. 12대의 T-62s(러시아제 T-62 주전투전차의 북한 라이센스 생산품)가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5단 기어를 넣고 시속 50km의 최고속도로 달렸다. 그 뒤를 장갑차와 병력수송용 트럭들이 뒤따랐다.  하얀 눈길이 전차의 무한궤도에 벗겨지며 검은선을 북쪽으로 그리고 있었다.  무개트럭에 탄 인민군 전사들은 두툼한 흰색 위장복을 입고 피로와 추위, 불안감에 쌓인 채 신의주를 응시했다.

  신의주 남쪽인 남시에는 국군 6사단 포병연대가 대기 중이었다. 36연장 130밀리 다연장포를 갖춘 국군 포병대는 북부군의 122밀리 방사포부대와 함께 포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직 명령은 없고 따분한 대기상태가 계속되었다. 155 밀리 자주포는 정찰대의 지령에 따라 간헐적으로 계속 유도장치가 달리 포탄을 발사하고 있었다.

  1999. 11. 25  16:55  평안북도 신의주 위화도 서하리

  이 재철 상위는 서하리의 주택가에 숨어  동하리에 있는 비행장을 정찰하고 있었다. 신의주에는 이곳과 민포동 두 곳에 비행장이 있다.모두 1950년대에 건설된 비행장이다.

  이 상위의 망원경에는 어떠한 적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 공군의 폭격을 받은 활주로 곳곳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으나, 파괴된 비행기의 잔해도, 연료저장탱크같은 지상시설물도 없었다. 1500부로 작성된 정찰 지도에는 위화도에만 중국군 1개 집단군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이들의 존재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도로나 눈쌓인 논길 위로 가끔 중국군의 사륜구동차가 한국공군의 폭격에 겁을 먹었는지 속도를 내며 북쪽으로 질주할 뿐이었다.

  이 상위는 약간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전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의 징크스였다. 뒷머리가 쭈뼛 서면서 망원경을 압록강 쪽으로 돌렸다. 이 상위의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보라우, 동무! 압록강 너머 만주땅에 중국군 진지..."

  이 상위가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옆에 있는 무전병을 손짓으로 불렀다. 무전병이 실눈을 뜨고 바로 앞의 추상도 너머, 압록강 건너편의 중국군 방어진지를 살폈다. 얼핏 보아도 대전차 및 대공포 진지가 수 십 개씩 보였다. 부지휘관인 안 소위도 이 모습을 보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새끼들, 모조리 토깠구만 기래요.  1개 군단 병력이레 튱분하갔습네다."

  "길티, 길티. 무전병, 본부에 보고하라우. 평가레 1개 군단, 아늬야, 1개 집단군으로 하라우. 알간? 날래 보고하라우."

  이 상위는 중국군이 압록강변에 구축한 방어진지를 것을 계속 관찰하며, 이제 서부전선의 전투는 종료된 것으로 확신했다.

  1999. 11. 25  17:00  평안북도 신의주시 연상동

  저격여단은, 엄밀히 말해 저격여단 일부 병력과 교도대의 혼성부대는 신의주 시가 바로 남쪽인 연상동에 접어들고 있었다. 개전일인 11월 17일 꼭두새벽에 인민군 9사단이 전멸한 곳이다.아직도 도로 주변에는 인민군의 전차와 장갑차, 트럭 등의 파괴된 잔해가  눈에 덮힌 채 곳곳에 널려 있었다.  노획한 무기를 후방으로 옮겨 재활용한다는 중국군의 전장정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중국군도 현대화된 것이다.

  저격여단은 선우 대좌의 지휘를 받아  의심이 가는 모든 곳에 수색대를 파견하며 차근차근 신의주를 외곽부터 점령하고 있었다.  선우 대좌도 신의주에 접근할수록 신중해 졌다.  이 상위의 정찰대가 중국군들이 압록강변에 방어선을 형성했다고 본부에 보고했고 이를 즉시 선우 대좌도 접수했지만,  중국군의 행동이 수상하다는 차 준장의 의견에 공감이 갔다.

  차 준장은 나이는 어리긴 해도 의외로 모든 일에 신중했다.  그의 신중함이 북부군을 아직도 생존케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선우 대좌도 인정했다.

  부대의 진격을 선도하던 수색대가  포로 두 명을 선우 대좌에게 끌고 왔다. 얼핏 보아도 상당한 고위급 군관이었다. 수색대 지휘관의 보고로는 이들은 연락군관인데 신의주의 병단사령부에서 단둥의 야전사사령부로 가는 도중이라고 했다. 수색대 지휘관이 압수한 지도와 명령서를 선우 대좌에게 건네자,  한자를 잘 모르는 선우 대좌는 이를 부관에게 넘겨 내용을 파악토록 했다.

  "기럼 병단사령부레 아직 신의주에 있단 말가?"

  "기런거 같습네다."

  전사부터 시작해 군관이 되었음직한 늙은 소위가 부동자세로 선우 대좌에게 대답했다.

  "이기 메이 참말이고 메이 거짓뿌렁인디...내레 당최... 일단 사령부에 보고하라우. 포로도 바로 넘기고, 날레! 자, 계속 진격하라우."

  1999. 11. 25  17:10  평안북도 철산군 대화도 해상

  "조기경보기로부터 보고입니다. 미확인 대규모 함대 접근 중, 3-4-0, 거리 65,000. 숫자는 약 60척.  소형함 위주의 편성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통신장교가 전투지휘함교로 보고하자,  즉시 비상사이렌이 울리고 장병들이 전투배치에 들어갔다. 함교가 갑자기 부산하게 돌아가며 함대사령관인 김 종순 인민군 해군 중장이 철모를 쓰고 전투함교에 나타났다. 그는 함대지휘권을 함장으로부터 인수하며, 그로부터 현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통일해군 서해함대의 기함인 충북함이  23일에 중국군에 의해 전자장비에 피해를 입자,  새로운 기함으로 한국형 구축함 백범함이 파견되었다. 이 구축함은 태평양에서 시험항해를 하는 중 개전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했는데, 귀국하자마자 바로 서해함대에 배속된 것이다.  함장은 충북함의 함장이었던 고 재일 대령이 맡고, 부함장은 시험항해 때의 함장이었던 이 현철 중령이 맡게 되었다.

  "주로 미사일정과 어뢰정입니다. 그래도 숫자가 상당하고 대함미사일의 경우 사정거리가 40km에 달하기 때문에, 함대에 충분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단독작전이레 앙이고 항공이나 위성지원이레 있갔디. 기런데 뎌것들 와 나왔지비?  혹 우리 작전을 눈치챈 거이 아늬야?"

  "통일참모본부의 훈령에는 현재 신의주에서 상당히 중요한 작전이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아마 우리 해군에 의한 신의주 지원을 차단하기 위한 작전같습니다. 아니면 우리 함대가 며칠째 이 해역에 대기하고 있어서 뭔가 걱정되는 모양입니다."

  "기래?  기럼 일단은 안심이레 되는구만."

  김 중장은 함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으며 사령관 전용 콘솔을 조작하여 중국 해군의 미사일정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그는 현대화된 한국형 구축함에 탑승하면서 자신도 철저히 현대화되기로 다짐했다. 그는 하사관에게 부탁하여 단말기 조작법을 익혔다. 부하에게 묻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더 이상 기함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중국의 고속 미사일정은 후앙급, 호우신급, 후앙펜급, 헤구 및 호쿠급이 있습니다. 배수량은 70톤에서 500톤까지 다양합니다. 무장은 대개 YJ-1(잉지-1 : 鷹擊)이지만, 구식인 헤구 및 호쿠급은 SY-1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함대사령관이 단말기로 중국 함정들의 제원을 확인하는 동안, 함장이 대체적인 제원과 무장을 설명했다.

  "내레 이것들을 일일이 하픈으로 격침시킬 수도 없고... 기렇다고 설라무네 포격전을 하다가는 놈들이 미사일을 쏴 댈티고.. 숫자레 많으니 상당히 골티 아프구만. 함장 동무의 생각은 어드레?"

  고 재일 대령은 함대사령관의 동무라는 호칭에 아직도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반공영화에서 익숙해진 '동무는 반동이야!', 또는 '이 종간나이 새끼 동무' 라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실제로 동무라는 호칭은 상당한 존경심을 담고 있는데도, 이 말은 아랫사람을 함부로 부르는 호칭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공군의 지원을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중국과 접경지대라서 함대를 더 이상 북진시킬 수도 없지 않습니까?"

  "기래... 됴은 생각이야. 가까운 곳에 순안비행장이 있으니끼니 미그로 미사일정을 잡자우."

  "미그보다는 A-10이 적절할 것으로 보입니다.비행기치고는 장갑이 상당히 튼튼하니까요."

  "길티만 몇 대 안되는 거로 아는데..."

  "원래 소형함선은 팬텀이 맡아 왔습니다만, A-10이 이 임무를 인수했습니다. 대해상훈련도 상당히 받았고요. 이 상황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되어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요."

  고 대령은 이 훈련이 원래  북한 간첩선을 대상으로 실시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서해함대 사령관인 김 중장은 이것을 알고도 모른 척 하며 명령을 내렸다.

  "알가서. 동무가 연락해서므네 잘 해 보라우."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메이요?"

  "신의주에 대한 지원포격도 하지 않으면서, 왜 서해함대가 며칠째 이 해역에 머물며 자꾸 중국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겁니까? 혹시 무슨 비밀작전이라도 있습니까?"

  "길쎄... 나도 몰갔서."

  김 중장이 허둥대며 대답했다. 뭔가 아는 체를 하는지, 아니면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지 고 대령이 보기에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1999. 11. 25  17:15  평안북도 신의주 미륵동

  날이 어둑어둑해 지는 시간에 저격여단은 드디어 신의주에 입성했다. 미리 이 지역에 침투해 들어온 시가전대대원들과  석방된 사회안전원들이 엄중한 경계를 하는 가운데, 선우 대좌의 부대는 해방군으로서의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었다. 연도에 늘어선 인민들이 공화국기를 들고 그의 부대를 열렬히 환영했다.

  10일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이지만, 신의주 시민들은 온갖 공포와 고통을 참아 왔다. 빨치산운동이나 파업 등, 시민들은 나름대로의 저항을 해왔고, 이제 해방된 것이다. 그러나 바로 강 건너편에 중국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못했다.  신의주는 언제든지 전화의 중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령관 동지! 인민들과 공화국기의 물결입네다.  신의주에는 중국군을 찾을 수 없습네다. 신의주 수복공작이레 대성공입네다. 걱정 끊으시라우요."

  선우 대좌가 무전기를 통해 차 준장과  연락하는 중에도 연신 껄껄대고 있었다. 이제 서부전선은 전쟁이 끝난 것이다.  아울러 이번 한중전쟁도 빨리 끝나길 희망했다.

  [그래도 조심하시요. 수색을 계속하도록 해요. 그리고 압록강변에 즉시 방어선을 구축하시오.]

  "명령대로 하갔습네다. 사령관 동지. 긴데 동지는 언제 입성하시갔습네까? 최고지휘관이시니 입성의 영광도 먼저 누리셨어야..."

  인민학교의 2층 교장실에 설치된 저격여단 사령부에 도착한  선우 대좌는 회전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차 준장과 통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무전병이 통신을 계속하는 여단장을 졸졸 따라 오다가  이제야 겨우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본대는 신의주에 입성하지 않겠소. 알겠습니까? 여기 계속 주둔하겠단 말입니다.  선우 대좌는 신의주 치안과 복구, 방어선 구축에 총력을 경주하시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하하. 알갔습네다. 동지. 길고 신의주 점령을 축하드립니다, 사령관 동지!"

  [...]

  "참! 포로는 인수하셨습네까?"

  [무슨 포로요?]

  "허~ 그 틴구들 무지 느리구만. 인민해방군 연락군관이레 한 놈 생포했습네다. 계급이래 상교(上校)던가... 하튼 곧 도착할 것입네다. 작전 지도레 방금 팩시 전송했으니끼니 받아 보시기요."

  [그래요? ... 네. 알겠습니다. 계속 샅샅이 수색해 보시오.]

  "알갔습네다."

  [수고하기 바람. 이상, 교신 끝.]

  선우 대좌는 차 준장의 소심함을 비웃지는 않았지만 필요없는 걱정이라고 일축했다.그러나 명령은 지엄한 것, 부관에게 신의주 인민들을 동원해서 방어선을 구축할 계획을 수립하도록 명령했다.

  1999. 11. 25  17:20  평안북도 신의주 토교동

  "신의주에 중국군이 없다니 이상하군...  이 상위의 보고로는 압록강 남안에 중국군 방어선이 구축되었다고 하고..."

  차 영진 준장은 아직도 걱정이 되었다.참모인 김 소좌가 사령관의 걱정을 읽었는지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일참모본부의 평가대로 이쪽에 있던 중국군도 양동부대레 맞는 거이 같습네다. 일단 신의주레 점령했으니끼니 우리 임무레 다 한거이 앙이갔습네까?"

  "글쎄요. 선봉 지역에 대한 중국의 집착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전쟁은 의외로 빨리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차 준장은 전쟁이 빨리 끝나겠다며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지금까지도 아무 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중국군은 정말로 모두 후퇴한 것으로 보였다. 쓸데없는 기우를 한 자신이 우습게 보였다. 부하들에게 자신은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그래도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군사작전이라는 그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이 전쟁이 끝나면, 그는 가장 먼저 아내를 찾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서울에 있는 친정에 갔으리라.  그는 항상 활달한 아내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사령관 동지! 팩스레 들어왔습네다!  인민해방군의 신의주 후퇴명령서인데 먼가 수상합네다."

  여군 통신군관인 김 소위가 허겁지겁 팩스를 차 준장에게 건넸다. 팩스용지 두 장에는 중국식 한자가 가득했는데,  차 준장으로서는 이해하기 곤란해서 이를 김 소좌에게 넘겼다.  명령서를 읽는 김 소좌의 안경 너머로 눈빛이 번득였다.

  "일반적인 후퇴명령서인데 어드레 수상하오?"

  김 소좌가 김 소위를 힐책했다. 통신군관으로서의 김 소위가 너무 월권행위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시간을 보시기요, 김 소좌 동지."

  "1999년 11월 25일 1900부로 후퇴! 이거이... 중국시간과 한 시간 차이가 납네다만,  사령관 동지!  이 명령서레 사실이라면 중국군은 아직 후퇴하지 않았습네다!  하디만 그럴리가... 도대체 어디에..."

  "그럼 그들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이오?"

  저격여단 시가전대대는 인민해방군 중장의 생포와 함께 후퇴공작계획서를 입수했었다. 그러나 지금 후퇴명령서를 가진 연락군관이 생포되다니, 후퇴명령을 다른 지휘체계를 통해 내렸단 말인가?  차 준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김 소좌를 바라 보았다.

  "저들의 명령체계레 의외로 느릴지도 모릅네다. 앙이면 둘 중 하나레 가짜디요."

  김 소좌는 중국군의 명령체계가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흑막이 있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불안합네다. 즉시 저격려단에 통고를..."

  김 소위가 차 준장에게 건의하자, 차 준장도 불안해져서 선우 대좌를 호출하려고 김 소위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북쪽에서 연이은 폭음이 들려왔다.  폭발음과 함께 기관총 발사음이 북부군이 주둔하고 있는 석수산에 메아리쳤다.

  "쿠앙~ 쿠쿠쿠~~~"

  "신의주쪽입네다!"

  김 소좌가 지른 비명과 동시에 냉정한 김 소위가 즉시 평가를 했다.

  "중국군의 공격입니다!"

  김 소좌와 김 소위의 외침이 저 멀리 아련히 들리는 것 같았다.차 준장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제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적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공격을 받고 있다이! 사방이 완전 포위됐다. 최소 3개 집단군 병력! 빠져나갈 길이레 엄서!]

  선우 대좌로 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그는 특수전 부대장답게 통신체계를 완전 장악하여 신속하게 사태를 파악한 것이다. 응사를 명하고 상황을 판단했는데, 절망적인 정도를 지나 부대 전멸의 위기로 받아 들였다.

  "우리가 간다. 기다려! 김 소좌, 출동준비하시오! 선우 대좌! 어떻게 된거요?"

  차 준장이 부대 출동을 명령하고 선우 대좌를 계속 호출했다. 그러나 무전기에서는 폭음만 이어질 뿐 응답이 없었다.

  [사령관 동지...]

  한참 있다가 선우 대좌가 다시 통신망에 나왔다. 아직 저격여단 사령부는 무사한 것 같았다. 차 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디 말기요. 구원해도 소용없시요. 적이레 너무 많습네다. 내레 가티 죽갔습네다.]

  "무슨 소리요? 잔말 말고 기다리시오. 곧 부대를 출동시키겠소."

  [수풍댐에 폭탄이레 설치했습네다.  한참 되었디요. 산악전 2대대... 뎡말 오랫동안 대기하고 있었습네다.]

  "뭐요? 수풍댐을 폭파시키겠다는 것이오?"

  [길티요. 비록 갈수기디만 겨울이라 강이 얼었으니끼니 효과레 더 됴갔디요. 신의주서껀 단둥까라 모조리 물에 잠깁네다.]

  "안됩니다! 일반 시민까지 몰살시킬 셈이오?"

  [일없시요. 도로에 나와있던 인민들 모조리 죽었습네다. 중국군이 쏴 죽였습네다. 제 품에는 인민학교 다니는 아동들이레 죽어가고 있습네다. 꽃다발 들고 사령부로 찾아 오던 어린 동무들... 흑~  중국군이레 이들을 듀였습네다. 이놈들... 큭큭~]

  차 준장은 선우 대좌가 이성을 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 준장은 대학살을 막아야 했다. 한겨울의 수공은 익사자보다 동사자를 더 많이 만들고,  당연히 군인보다 민간인의 희생자를 더 많이 만들 수 있었다.

  "명령이오. 기다리시오. 수풍댐 폭파는 안돼!"

  [이미 늦었습네다. 명령이레 내렸습네다. 동지, 고맙습네다. 전에 살려 주셔서... 이뎨야 감사말씀 드립네다. 야간전 대대원들에게 저의 죽음을 알려 주시기요. 물이 오기까지 30분 정도 남았습네다.  그동안 이들을 붙잡아 놓갔습네다. 길고 시가전대대레 탈출시키갔습네다. 이들을 잘 부탁합네다.]

  자존심 강한 선우 대좌가 진심으로 차 준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차 준장은 선우 대좌가 정말로 죽을 결심을 한 것으로 느꼈다. 차 준장이 시계를 보았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었다.  다만, 물이 밀려오는 속도가 갈수기와 비교해서 어떻게 될 지 자신이 없었다. 방해물이 없다면 유속은 상당히 빨라질 것이다.

  "이봐요! 제발 탈출하시요. 죽으면 안돼!"

  [길동무레 많아서 됴습네다.]

  기관총소리가 연이어 들리자 유리창 깨지는 소리도 무전기를 통해 울렸다. 선우 대좌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차분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필요없는 학살일 뿐이오. 여기는 주전장이 아니란 말요!  당장 명령을 취소하시오!"

  [그들은 무장하디 않은 인민들을 학살했습네다.  길고 댐이레 폭파시키면 선봉지구에 대한 중국군의 지원이 무척 약해질 겁네다.]

  차 준장이 선우 대좌를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선우 대좌는 의외로 고집불통이었다.그러나 이것이 원래 그의 성격이라는 것을 차 영진 준장이 몰랐을 뿐이다.

  "우린 공격하겠소. 최대한 신속히 이탈하시요!"

  [동지! 제발 오지 말기요!]

  "김 소좌, 준비됐죠? 출동합시다. 바로 공격합시다!"

  [오디 말라니깐요?]

  "그럼 동무가 먼저 탈출하시요! 같이 죽고 같이 살잔 말이요. 전쟁은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왜 죽으려고 한단 말이오?"

  [탈출은 불가합네다.인민해방군이레 땅굴을 파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네다. 함정에 빠진겁네다. 길고 동지레 오시면 돌아갈 시간이...]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고 통신이 잠시 끊겼다. 저격여단은 지금도 치열하게 총격전 중이었다. 중화기는 별로 동원되지 않았지만 중국군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이들은 6.25때 처럼 땅굴을 파고 숨어 있었다 저격여단이 신의주에 진입하자 꾸역꾸역 몰려 나왔던 것이다.

  [여긴 2층인데 1층까지 점령당했습네다.  부하들 숫자레 많이 줄었습네다. 고맙디만 늦었습네다. 사령관 동지. 안녕히 계시기요.]

  선우 대좌는 통신망을 계속 열어 두었으나, 다시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무전기에서는 총소리와 폭음만 요란하게 흘러 나오고, 간간이 비명소리가 섞여 들렸다. 차 준장이 안타까와 견딜 수 없었다.

  "김 소좌! 공중지원을!"

  "길티만 아군과 섞여 있는 판에 항공지원이레 무리디요."

  김 소좌가 허둥대는 차 준장을 진정시켰다.  이 급한 상황에 그는 그들을 도울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어쩌란 말인가. 신의주를 공격하시오. 진격! 포격 개시!"

  1999. 11. 25  17:25  평안북도 삭주군 수풍

  "뎡말 오래 기다려서. 폭파 안해도 되는 줄 알았지비."

  산악전 2대대 1중대 소속의  김 동현 중사가 분대원들과 함께 야산의 계곡에 숨어 거대한 수풍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19일에 중국군 수송열차를 폭파시키고, 송평에서의 교량파괴공작도 끝나고, 이제 마지막 임무인 수풍댐 폭파공작을 실행할 순간이었다.  이들은 21일에 댐 중요부위에 폭탄을 장착하여 이제껏 폭파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건전지레 남은거이 엄서..."

  최 전사가 CD 플레이어를 끄며 배낭에 집어 넣었다. 그는 8일동안 모두 32개의 건전지를 사용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뇌관용 건전지까지 빼 전압을 조정해서 썼음을 김 중사도 알고는 있었지만,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최 전사는 분대에서 하나밖에 없는 수중폭파 전문요원이었고, 이번 수풍댐 폭파가 분대의 마지막 임무였기 때문이다.

  "최 전사. 폭파하라우."

  "..., 분대장 동지. 꼭 구경하셔야 되갔습네까?"

  최 전사가 당돌하게 분대장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는 시선만으로 분대장도 이 상황을 뻔히 알고 있지 않냐는 뜻을 전했다. 김 중사가 약간 당황했다.

  "기런건 아이디만 확인이레... 알가서. 전원 이동하자우."

  김 중사는 수풍댐이 붕괴되는 광경을 보고 싶었지만 여기에 있다가는 분대원 모두에게 위험했다. 댐이 파괴되면 중국군들이 파괴조를 추적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동안 김 중사의 분대가 댐 근처에 숨어 있던 것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수풍댐에 대한 중국군의 경계는 엄중했다.

  분대원들이 야산을 막 넘어가는 순간, 최 전사가 TV 리모컨처럼 생긴 원격조정기를 꺼내 눌렀다. 폭음은 의외로 작았다.  쿵 하는 소리가 계곡에 은은하게 메아리쳤다. 최 전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리모컨의 건전지를 빼서 이를 자신의 CD 플레이어에 갈아 끼웠다.

  "이기 메이야? 이기... 실패 앙이야?"

  박 하사가 놀라 김 중사와 최 전사를 연이어 둘러 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고, 다만 발걸음만 빨라졌다.  최 전사는 다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어 행복한 표정이었다.  어느새 이어폰이 그의 두 귀에 꽂혀 있었다.

  "기럼 3키로짜리 폭탄 두 개에 댐이레 당장 날라갈 줄 알았슴메?"

  분대원들에게는 폭파전의 스승격인 김 중사가  약간의 비웃음을 흘리며 박 하사에게 대답했다. 박 하사가 다시 확인했다.

  "폭파레 되기는 되는 겁네까?"

  박 하사는 폭탄을 터뜨리면  당연히 즉시 댐이 붕괴하며 물이 대량으로 쏟아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의아한 표정이었다. 멀리 보이는 수풍댐은 아직도 위용을 자랑하며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이디. 기다려 보라우. 길고 서둘러. 우린 구경할 틈이레 엄서."

  분대원들은 미리 개척된 통로를 따라 신속하게 이동했다.  댐이 진동하며 메아리가 점점 크게 울렸다.

  1999. 11. 25  17:30  평안북도 신의주 풍하동

  [2시 방향 적 전차대! 공격받고 있다이~]

  선두의 정찰대가 무선으로 알려 온 것은, 비명과 함께 이어진 잡음이었다. 통신군관인 여군 김 소위가 정찰대를 호출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차 준장이 적의에 찬 표정으로 무전기를 응시했다. 김 소위는 무서워서 감히 차 준장을 바라보지 못했다.

  "즉각 반격하라우!  부대 전개, 포격 개시!  37사단이레 머하는기요? 미리 발견도 못하다니."

  김 소좌가 즉석에서 명령을 내리고, 분노에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차 준장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김 소위가 지도를 보며 중국 전차부대의 좌표를 포병대에 연락했다.

  "인민해방군 중장이니, 후퇴공작계획, 후퇴명령서니 다 가짭니다. 역시 중국군의 공성지계(空城之計)였소. 속았소."

  "....."

  김 소좌는 장갑지휘차의 총안(銃眼)을  통해 전방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차 준장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중국군의 포탄은 장갑지휘차 부근에까지 낙하하여 작렬하고 있었다. 전방은 일시에 발사된 연막탄으로 인해 시야가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죽인거요. 저격여단, 신의주 시민들... 그 많은 중국군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다니... "

  "아입네다. 동지! 저격려단의 수색이레 미진한 거디요."

  김 소좌가 적외선 잠망경을 차 밖으로 올리고 전황을 살폈다. 중장비가 부족한 인민군들이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중국군은 T-80 II 전차가 주력이었고, 병력비율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국군 6사단 포병대의 다연장로켓이 전장에 도달했다.  로켓탄이 낙하하면서 연달아 폭발하여 눈덮힌 평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전차대와 보병이 분리되자 중국군 전차들의 급속진격이 멈칫했다.  전차대는 적 포병대에 의한 보전분리(步戰分籬)를 두려워 하는 것이 당연하다. 보병이 수반되지 않은 전차대는 의외로 상대의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들만 보내고 나는 숨어 있었소. 무서워서 말이오.  아... 이 죄를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적은 2개 집단군이레 넘는 병력입네다. 장갑사단들로 평가됩네다.동지! 명령을 내려 주시기요. 더 이상 신의주에 연연할 수는 없습네다.신의주 시내에도 1개 집단군 이상의 병력이 있습네다.길고 수풍댐이레 폭파됐으니끼니 이곳은 곧 물바다레 될 것입네다."

  "..... 내 결정에 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겠죠..."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명령을 내려 주시기요."

  김 소좌가 차 준장의 냉철한 판단을 요구했다.

  "그렇게 하시요. 후퇴..."

  "후퇴! 전면 후퇴하라."

  김 소위가 바로 후퇴명령을 예하부대에 전하자, 김 소좌가 후퇴할 장소를 지정했다. 김 소좌는 김 소위로부터 마이크를 뺏아 예하부대에 신의주평야가 남쪽 산악지대와 연결되는 백토동까지 전원 후퇴할 것을 명령했다.

  1999. 11. 25  17:35  평안북도 신의주 미륵동

  강 만형 상사는 이미 온몸에 세 발의 총상을 입고, 폭격에 무너진 돌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분대원들 대부분이 전사하고 민 하사와 노 전사만이 남았다.  소음권총의 최 중사, 폭발문전문가인 오 전사, 저격병고 전사, RPG 사수 박 상등병 등은 중국군과의 치열한 육박전에서 모두 죽은 것이다.  지금도 완전 포위된 상태에서 절망적인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30여 미터 떨어진 골목에 중국군들이 증오에 가득찬 눈으로 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두워지는구만."

  강 상사가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녁놀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이미 고통은 잊은지 오래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그는 감겨오는 눈을 부릅뜨며 부하들의 상태를 살폈다. 두 사람은 별로 걱정도 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인민해방군 중장 등을 생포하여 본부에 인계한 즉시 이곳 신의주로 다시 들어왔다. 이들은 시가전대대 본대를 찾다가 중국군과 치열한 조우전을 벌이고 있었다.

  민 하사의 손도끼는 이미 검붉게 물들어, 지금도 도끼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노 전사는 아끼던 조선검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치열한 총격전과 육박전 끝에 이들도, 대치하던 중국군도 이미 실탄이 바닥난지 오래였다. 오직 각자의 육박전 기술과 힘만이 의미있는 전투가 되었다.  중국군은 처음에 이들을 포위할 때 1개 중대병력이었으나, 이때는 40명 정도만이 살아남아 이들을 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분대장 동지! 또 몰려옵네다."

  "기래? 기럼 시작하자우."

  강 상사가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자동소총을 들었다.  소총에는 실탄이 딱 세 발 남아 있었다. 중국군들은 약 30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함성을 지르며 몰려왔다. 이들은 세 명의 인민군을 중심으로 동심원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모두들 총검을 바짝 세운 채였다.  강 상사는 수류탄이 하나라도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 우리도 돌격 준비."

  강 상사가 차분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부하들에게 준비를 시켰다.  중국군과의 거리가 10미터로 단축되었다. 8미터, 7미터, 6미터, 5미터...

  "돌격~~~ "

  강 상사는 중국군들이 3미터까지 접근하자  함성을 지르며 가장 숫자가 적은 북쪽으로 먼저 달려 나갔다. 그의 뒤를 부하들이 따랐다.

  강 상사는 첫번째 적의 가슴에 총검을 찌르고, 총검을 뽑자마자 다음 적의 얼굴을 개머리판으로 휘둘러 쓰러뜨렸다.  다음, 앞으로 나아가서 달려오는 적의 총검을 피하며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를 찍었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반적인 AK 소총과 달리 그의 총 개머리판에는 두꺼운 강철판이 덧대어져 있었다.

  옆에서는 민 하사가 쌍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왼손의 도끼로 적의 목 뒤를 찍으며 오른쪽 도끼로 달려드는 중국군의 총검을 쳐냈다. 다시 도끼자루 윗부분의 창으로 중심을 잃은 중국군의 옆구리를 쑤셨다.  쓰러지는 중국군 병사의 배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노 전사는 좌충우돌하며 칼춤을 추었다.  본국검법을 쓰는 노 전사는 이런 난전에서 단연 돋보였다.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식 검도나 해동검법을 하는 사람들과의 일대일 대결에서는 형편없이 밀리지만, 신라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본국검법은 실전을 위한 검법인 것이다. 사람의 머리가, 팔과 다리가 바닥에 구르고 피가 사방에 튀었다. 그는 연이어 달라들던 중국군 세 명을 눈깜짝할 새에 베어 쓰러뜨리고, 북쪽으로 탈출구를 열었다.

  지칠 줄 모르고 도끼를 휘두르던 민 하사가 뒤에서 찌른 총검에 배를 꿰었다.날카로운 총검, AK 계열의 소총에 꽂는 창 비슷한 총검이 민 하사의 등에서부터 배를 뚫고 나왔다. 민 하사가 서서히 무너졌다.  그의 위험을 발견한 노 전사가 민 하사를 찌른 중국군을 베어 쓰러뜨렸으나, 그 중국군이 쓰러지자 민 하사도 앞으로 넘어졌다. 얼어붙은 땅에 얼굴을 묻은 민 하사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강 상사도 최후를 맞았다.세 명의 중국군에게 동시에 찔린 것이다. 강 상사는 자신을 찌른 중국군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찬찬히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총검에 꽂힌 채 총을 그들의 가슴에 대고 한방씩 쏘았다. 중국군들의 얼굴에서 공포와 경악을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했다. 자살용으로 마지막까지 남겨놓은 실탄은 이렇게 사용되었다.

  "분대장 동지!"

  강 상사는 노 전사의 외침을 들은 것 같았다. 고통은 없었다.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것이라고 그는 배웠다.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기분이었다.

  1999. 11. 25  17:40  평안북도 철산군 다계도 상공

  한국공군의 A-10 썬더볼트 공격기들이 수면 30미터 상공을 스치듯 일렬로 비행하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바로 물 속에 곤두박질 치는 이 곡예비행을 3분째 계속하느라  9명의 조종사들은 입안이 바짝바짝 타고 있었다.  목표로부터 발사되는 레이더 전파는 공격기에 점점 더 강하게 수신되었다. I 밴드의 주파수인 중국 함정들의 해상수색 레이더는 아직 공격기들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다.

  부 영철 소령은 목표가 대공미사일을 갖추지 않은 미사일정과 어뢰정이라고 브리핑 받고 출격했다. 그러나 이들 함정들이 갖춘 37밀리 대공포나 25밀리 2연장 대공기관포는 대공미사일만큼 위협적인 존재였다.

  "목표 확인! 미사일함을 식별하라. 1번기부터 공격한다. 자, 가자!"

  선두의 부 소령이 가장 먼저 중국 함정들의 불빛을 발견하고  후속기들에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계속 저공비행으로 중국 함정들에 2km까지 접근했다. 중국 함정들은 이제서야 공격기들의 존재를 발견하고 진형을 분산시켰다. 그러나 아직 대공포는 발사되지 않았다.

  [바바바바바~~]

  부 소령의 30밀리 어벤저가 3초간 불을 뿜었다. 유압회전모터가 작동하며 매분 2,100발의 속도로 HEI(고성능 작약소이탄)가 발사되었다. 수면에 작은 물기둥들이 치솟고  이것이 중국의 후앙펜급 고속미사일정에 접근하자, 잠시후 고속정은 벌집이 된 채 불꽃이 피어 올랐다.

  부 소령은 그대로 희생물의 상공을 지나 다른 목표를 잡았다. 1km 전방에 비교적 대형함인 호우신급 고속미사일정이었다. 부 소령은 AGM-65 매브릭 미사일을 발사한 즉시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대공포탄의 빛줄기를 피해 오른쪽으로 급선회했다. 사출된 미사일은 차가운 겨울바다와 뚜렷이 대비되는 중국함의 열원을 감지하여 명중코스로 진입했다. 고속 미사일정이 이 미사일에 대처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원래 대전차미사일인 이 매브릭 미사일은 480톤급인 호우신급 고속미사일공격정의 상부구조물에 명중하여 그대로 5미터 정도를 관통한 후 폭발했다. 상부갑판이 엿가락처럼 녹고 레이더 철탑이 무너졌다.

  부 소령이 후추안급 쾌속어뢰정을 기관포로 파괴한 후 해상을 둘러보니 곳곳에 불꽃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아직 아군기의 피해는 없었다.

  "이탈한다!"

  부 소령이 짧게 한마디 하며 먼저 동쪽으로 비행했다. 대공포탄이 그의 뒤를 따랐다. 아직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미사일정이 그의 비행코스에 보였다. 러시아의 OSA급과 같은 후앙펜급 미사일정이 함미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이제 이 함정은 미사일 발사가 불가능하지만 비교적 수리가 간단한 피해정도였다.  부 소령이 미사일정의 상부구조물에 200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그의 공격기가 미사일정을 지나자마자 이 배가 폭발하며 저녁노을을 더 밝게 물들였다.

  "상승!"

  부 소령이 또다시 편대기에 짧은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미리 계획된 작전이었다.  일격이탈 후에 중국 함정들의 대공포 사정거리 밖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다.  매브릭의 사정은 32km, 중국제 37밀리 2연장 대공포의 사정거리는 8.5km이다. 결과는 뻔했다. 중국 대공포의 사정거리 아슬아슬한 곳에서 각 공격기가 탑재한 8기의 미사일을 모두 발사하기도 전에 해상에 목표가 될만한 중국함정은 보이지 않았다.

  부 소령은 기지와 엄호기인 F-16 편대에 연락을 한 다음에 기수를 남동쪽으로 돌렸다. 신의주쪽에서 섬광이 비치는 것이 얼핏 보였다.

  부 소령은 기지에 거의 도착하고 나서야 중국해군 전투기들이 목표상공에 도달한 것을 알았다.  그들은 아무 것도 없는 해역 상공에서 멍청한 표정을 지을 것이라고 생각한 부 소령이 유쾌하게 웃었다.

   굼벵이들. 후후~

  아직도 목표 해역 상공에 남아있는 F-16 전투기들이 중국 전투기들과 대치하다가, 연료가 떨어진 중국 전투기들이 귀환할 때, 새로이 출격한 북한 미그기들이 이들을 천천히 추적하며 격추시키는 것이 공군의 작전이었다. 브리핑실에 도착한 부 소령과 다른 조종사들은 이번 작전이 대성공이라고 들었다.미그끼리의 결전에서 연료가 충분한 북한 공군이 모두 11기의 중국 전투기들을 격추시켰다.

  1999. 11. 25  17:45  평안북도 신의주 미륵동

  "노 중사! 날래 남쪽을 지원하라우!"

  미륵동 형무소에서 권 중위가 지휘하는 부대는 아직껏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몰려드는 중국군들로 인해 지금은 거의 괴멸상태에 있었다. 주로 신의주의 사회안전원과 인민군 석방포로들로 구성된 약 1천여명의 혼성부대는 악착같이 이 마지막 거점을 지키고 있었다.  후퇴하려 해도 이미 완전히 퇴로가 차단된 상황이었다. 중화기를 앞세운 중국 정규군 앞에서 이들의 운명은 결코 희망적이지 못했다.

  "머하는기야? 이보라우! ...!!"

  고개를 돌린 권 중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노 중사는 뒤로 넘어져 있었고, 그의 이마에서는 약간의 피가 흘러나왔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는 분명했다. 권 중위가 다가가서 그의 시신을 살폈다.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 그리고 억울하다는 심정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뒤집혀진 그의 철모에는 피가 흥건했다.권 중위는 차디찬 벌판에 누운 노 중사의 눈을 감겨 주었다.

  "각 분대 보고하라!"

  권 중위는 무전병을 불러 마이크를 잡고  예하 분대장들을 호출했다. 다중통화 무전기를 통해 분대장들의 인원 보고가 이어졌다.

  [1분대 165명 전사, 37명 중상. 현 인원 94명.]

  [2분대 112명 전사, 28명 중상, 현 인원 129명입네다.]

  [3분대 211명 전사. 54명 중상. 현 인원은 46명...]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3분대장인 최 중사가 무전기를 통해 다시 인원을 정정했다.

  [3분대 213명 전사. 55명 중상. 현 인원은 43명입네다.  지원은 어케된 겁네까?]

  3분대장인 최 중사가 짜증을 버럭내며 소대장에게 물었다.  평소같으면 이런 일은 절대 없겠지만,  분대장으로서 300여명에 이르는 많은 인원을 지휘하기에도 벅찬 일이고,  게다가 지금은 온갖 돌발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전투상황, 그것도 패전 중인 것이다.

  "..... 본부소대는 65명 전사, 33명 중상, 현 인원 71명이다. 지원하갔다. 기다리라우."

  권 중위는 현역도 아닌 사람들을 전투에 투입시켜 피해를 크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형무소와 주변 무기고를 털어 이들을 무장시켰으나, 이들은 원래 전투에는 적합치 않은 인민들이었다. 특히 남쪽을 맡은 제 3분대의 희생이 컸다. 엄폐물도 별로 없는 지대인데다가 중국 전차들이 떼로 몰려오고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대전차무기인 RPG-7은 많이 남아 있었다. 중국 전차들은 접근전을 피한 채 집중포격만 하고 있었다.

  "어이, 거기 20명. 남쪽으로 이동하라우."

  권 중위가 빗발치는 총탄을 겁내지도 않고 똑바로 일어나, 급히 건설된 참호를 천천히 걸어다녔다.  어차피 중국군은 저격여단 대원들의 정확한 저격이 무서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를 숙인 채 조준도 않고 총을 쏘아대는 병사들을 나무라며 부대를 지휘했다. 그는 겁에 질린 병사들에게 제대로 사격하도록  자신이 행동으로 다구쳐야 했다.

  이들과 500여 미터 떨어져서 대치하고 있던 중국군들이 그를 놓칠 수는 없었다. 동시에 세 곳의 건물에서 저격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명은 저격여단 시가전대대 소속의 병사들이 역저격했으나, 하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권 중위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창 안에서 반짝인 섬광이었다.

  권 희철 중위는 여행가가 꿈이었다.  여행이 자유스럽지 못한 북한에서도 그는 많은 곳을 여행했다.  북동쪽 온성에서부터 남서쪽 옹진까지 안가본 곳이 없었다. 통일이 진행되면서 남북간의 여행이 자유로워지자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남한 곳곳을 여행했다. 북한지방과는 또다른 여행의 묘미가 있었다. 단풍이 진 설악산은 금강산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경치가 좋았다. 강원도 어느 곳에서는 주민들이 그를 군부대에 간첩으로 신고를 하여 조사받은 적도 있었으나,  이 또한 여행의 재미있는 추억 중 하나였다.

  제대 후에 그는 세계를 여행하는 계획을 세웠다. 카자흐와 우즈베크,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등 회교권 국가들이 그의 첫번째 해외여행 계획지였다.  중국과 유럽문화 뿐만 아니라 이들도 세계에서 중요한 문화권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사후세계만이 그가 여행할 수 있는 마지막 여행지였다.

  1999. 11. 25  17:50  평안북도 신의주 민포동

  "적 보병들은 도주했습네다.  전과보고입니다. 직승기 완전 파괴 213대, 반파 137대, 노획 35대. 적 사살 1,500여명, 포로 370여명.아군 피해 전사 31명, 부상 27명, 이상입니다."

  전투의 뒷처리를 맡은 선임소대장 박 기철 상위가 무전으로 보고하자, 중대장 최 명수 대위의 입이 좋아서 다물어질 줄 몰랐다.  중국군 헬기 사단의 헬기 중에서 빠져나간 헬기는 10여대에 불과했다. 헬기강습보병들은 갑작스런 기습에 지휘체계가 붕괴되어 대부분 북쪽으로 도주했다. 최 대위의 중대는 이들을 추적, 섬멸하다가 동쪽에서 보이는 섬광에 놀라 전진을 멈추고 상황파악과 함께 부대를 재정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의주의 본대가 적의 포위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시가전대대 전체에는 후퇴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메이 어드레? 려단이 위험한데 우리만 도망가라고?  앙이야. 공격하가서."

  "려단장 동지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만,  그리고 구원에 나섰던 북부군 주력도 중국군 대부대에 밀려 패퇴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럼 방금 동쪽에 있던 전투레... 알가서. 길고 명령은 상황에 따라 가끔 늦을 수도 있는거디. 자, 우린 진격한다."

  최 명수 대위는 신임 저격여단장인 선우 대좌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무능력한 박쥐같은 늙은이' 이것이 선우 대좌에 대한 최 대위의 평가였다.  운이 좋아 초기에 북부군에 배속되어 활동하다가 여단장인 최 대좌의 부상으로 임시 여단장이 되었지만, 원래는 결코 여단장이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군사교육도 등한시하고 현대전에 적합치 않은 인물로 낙인찍혀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 자가 중국군에게 포위되어 혼쭐이 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고소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전국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저격여단 본대를 구원하기로 결심했다.

  포로와 아군중상자를 노획한 중국군 헬기로 후방으로 호송하고, 나머지 1백여명의 병력이 신의주 시가로 진입해 들어갔다. 중대원들은 방금 대규모 전투가 있었던 동쪽  풍하동 평야를 힐끗힐끗 쳐다 보면서 북쪽으로 전진했다.  노련하게 건물 그늘로 숨어 접근하는 그들을 시가지를 포위한 중국군은 발견하지 못했다.

  "시내도 상황은 거의 끝난 것 같습니다. 전투가 없는데요?"

  박 기철 상위는 도로 곳곳을 둘러 보았다. 사방에 인민군과 인민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지만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숫자로 추정되는 중국군은 시가 안쪽 곳곳에 몰려 있었다.가끔 북부군 본대의 후퇴를 엄호하기 위해 남쪽에서 쏘아대는 포성이 이곳까지 울려 퍼졌다.

  "대대장 동지를 부르라우!"

  "대대본부와는 30분째 통신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까 명령은 려단 본부에서 온 것입니다."

  "무시기? 기럴리가... 기럴리 엄서. 메이 잘못된기야."

  최 명수 대위는 처음으로 공포를 맛보았다. 항상 가장 은밀한 곳에서 대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대대장이 연락두절이라니,  전투에는 절대 직접 개입하지 않고 지휘만 하는 대대본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전투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자우! 내레 이것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라우~ "

  중대장이 은폐에서 공격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신의주 시가에서 새로운 전투가 일어나면, 북부군 본대의 후퇴도 용이하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최 대위는 새로이 북부군에 배속되면서 북부군이 의외로 소규모라는 점에 깜짝 놀랐다. 2개 사단에 못미치는 병력으로 서부전선에서의 승패를 갈랐다고 생각하니 지휘관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최고 지휘관이 약관의 한국군 중령이라는 사실에  그는 다시 한번 크게 놀라고 말았다.  한국군 장교에게도 이정도로 훌륭한 유격전 지휘 능력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조금 전의 전투에서와 같은 상황에서는 차 준장이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의 병력을 최대한 분산시켜 저격여단의 후퇴를 돕기로 그는 결정했다.

  주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 병사들이 중국군들을 저격하기 시작했다. 한 발에 한 명씩. 중국군들이 응사를 시작했으나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저격여단 대원들은 사격할 때만 잠깐 고개를 내밀고  금새 모습을 감췄다.  소총 뿐만 아니라 병력 집결지에는 RPG와 기관총이 발사되어 중국군들이 당황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발사되는 총탄에 중국군들이 쓰러져 갔다.  숫자도 만만치 않아서, 중국군들은 겁에 질려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기래, 우리 부대레 일케 싸우는 기야. 아무리 적이 대부대래두 소용 없디. 자, 몰아붙이라우! 진격!"

  최 대위가 의기양양하게 한마디 하고 남동쪽을 망원경으로 살폈다.후퇴하던 본대가 산악지형에 접어들자 방어선을 형성하고 반격에 나선 모습이었다.

  [신의주에 계신 인민들은 지금 즉시 높은 곳으로 대피하십시요. 수풍댐이 붕괴됐습니다! 곧 물살이 덮치게 되니 지금 즉시...]

  "뎌게 메이야? 무시기 소리디?"

  최 대위가 하늘을 바라보니 경비행기가 신의주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쌍발엔진에 두 개의 꼬리날개가 달린 이 비행기는 최 대위가 기억하기로 한국 공군의 O-2A기였다. 강력한 스피커를 단 이 정찰기는 시가 곳곳에서 발사되는 중국군의 대공포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공비행으로 신의주 상공을 누비고 있었다.

  1999. 11. 25  17:55  평안북도 신의주 상공

  "김 대위, 더 북쪽으로 코스를 잡아. 인민 여러분! 그리고 인민군 전사 여러분, 즉시 높은 곳으로 대피하십시요. 이제 5분이면 물살이 몰아 닥칩니다! 신의주 전체가 물에 잠기게 됩니다!"

  한국 공군 3276부대 237 비행대대의 한 우형 소령은 대공포화가 무서워서 자꾸 남쪽으로 비행기를 조종하려는 김 대위를 질타하며 긴급방송을 계속했다.  원래 그의 대대는 한국군 유일의 전술통제비행단이었다. 정찰과 폭격유도가 주 임무였는데, 이번에는 신의주에 있는 시민들에게 대피할 것을 알리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한 소령은 시가지가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을 보며, 과연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전에 신의주에는 30만에 가까운 인구가 있었다고 들었다.  일부가 점령군인 중국군의 감시를 피해 피난을 하거나, 양측의 폭격, 포격에 사망했더라도 아직 절반은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가지에는 온통 중국군밖에 보이지 않았다.  서쪽하늘에는 저녁노을이 거의 지고 있었고, 지상에서는 대공포화가 이 비행기를 노리고 있었다.  벌써 3회 이상 피격을 당했으나 아직 비행기는 버텨 주고 있었다.

  "맞았습니다! 한 소령님, 조종불능입니다!"

  갑자기 오른쪽 엔진이 멈추고 흰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김 대위가 필사적으로 균형을 회복하려 했으나 비행기는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비행기 바로 아래로 건물 옥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상착륙해! 오른쪽에 활주로가 있다.  여기는 까마귀, 긴급상황 발생! 신의주 비행장에 비상착륙하겠다."

  한 소령이 기지와 통신하는 동안 김 대위는 이를 악물고 조종간을 잡았다.  남북으로 뻗은 비행장에는 군데군데 포탄 구덩이가 보였으나 착륙에 방해가 될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김 대위는 활주로 한 가운데에서부터 착륙을 시작했다. 바퀴가 땅에 닿으며 파열음이 귀청을 찢는 듯했다.  결국 오른쪽 앞바퀴가 부서지며 비행기는 오른쪽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며 결국 기수가 땅에 쳐박히며 정지했다.

  "으... 이봐, 김 대위. 착륙 좀 제대로 할 수 없나? 멀미 나잖아?"

  한 소령이 벨트를 풀고 비행헬멧을 벗었다. 헬멧을 벗자 뜨뜻하고 미끈미끈한 액체가 그의 얼굴에 흘렀다.

  "이런 젠장. 피잖아? 김 대위, 빨리 내리자고. 연료가 새고 있어!"

  한 소령이 부서진 왼쪽문을 발로 차서 열고 조종석에서 빠져나오려다가 김 대위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의 몸을 손으로 흔들자 김 대위는 스르르 좌석으로 밀리듯 쓰러졌다.  한 소령이 놀라 김 대위를 다시 흔들었다. 절명한 것을 확인한 한 소령이 착잡한 심경으로 조종석을 빠져 나왔다. 그가 비행기에서 25미터쯤 뛰자 정찰기는 화염에 휩쌓인 채 폭발했다. 잠시 엎드려 있던 그는 남쪽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1999. 11. 25  18:00  평안북도 신의주 백토동

  "엄청나군요."

  차 준장이 잠망경과 연결된 모니터 화면을 통해 밖의 상황을 보며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신의주점령도 실패하고, 아까운 1개 여단, 특히 귀중한 특수부대인 저격여단을 잃고 신의주 시민들도 소개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왔다.

  중국군들은 연상동까지 몰려와  교두보를 장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번 목표로 한 적은 꼭 포위해서 섬멸한다는 것이 중국군 전술의 기본이었다.  적을 패퇴시킨 후에도 집요하게 추적하여 최대의 타격을 가하는 것도 그들의 기본전술이었다.  이 기본전술을 실행하기 위해 중국군 지휘관은 철저하게 공격위주의 전법을 구사했으나 안전한 산악지대에 도착해서 반격하는 인민군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순식간에 전선은 고착되었다.

  "공중지원을 요청하는게 어떻겠소?"

  "아냐요. 곧 물이 밀어 닥칩네다. 소용없습네다."

  "물이 어디까지 차오르게 되죠?"

  차 준장이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김 소좌에게 물었다.  김 소좌가 지휘차에 갖춰진 컴퓨터를 조작하여  신의주 부근 지도를 화면에 올렸다. 지도에는 각 지역의 해발고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1729에 폭파확인 신호레 들어왔습네다. 압록강이 얼어붙은 경우, 물살의 도달시간은 35분이 소요됩네다. 기럼 1804, 1분 남았습네다. 산악전대대의 보고에 따르면 댐의 수위는 174 메다."

  김 소좌가 데이터를 입력시키자  시간별, 지역별로 물에 잠기는 정도와 시간이 표시되었다.

  "신의주 북동쪽 위화도레 완전히 잠기고,  안둥과 신의주는 4층 이하는 모조리 잠깁네다. 기러니끼니... 바로 아래 연상동까지 잠기게 됩네다."

  "그럼 신의주 시민들은 모두..."

  "안타깝디만 기렇습네다. 5층짜리 건물이야 아빠뜨 뿐인데, 인민들이레 모조리 지하 방공호에 들어가 있을 겝네다. 아까 항공방송에서 신호를 했디만, 아마 절반 이상은 익사하게 될겁네다."

  "이럴수가... 우리는 이제 살인마 소리를 듣게 되었소.  군인이 민간인들을 지키지 못하고 도리어 죽이다니...  김 소좌! 우리 전사들도 더 위쪽으로 후퇴시키시요. 혹시 모르니 말이요."

  차 준장은 시민을 학살한다는 자괴감과 부하들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네다.우리 과학자들이 철저한 시뮬레이션을 거쳐서 보고서를 냈으니끼요."

  갑자기 포성이 뚝 그치고 조용해졌다.  치열하게 포격을 실시하던 중국군 전차들도 갑자기 침묵을 지켰다. 이에 놀란 인민군들도 사격을 멈추자 신의주 일대에는 갑자기 적막이 엄습했다.  멀리서 은은한 메아리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우당탕 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옵네다!"

  김 소좌가 바짝 긴장하며 잠망경을 잡았다가  위쪽 큐폴라를 열어 젖히고 상체를 장갑지휘차 밖으로 내밀었다.  차 준장은 잠망경과 연결된 화면을 보았다.  북쪽 신의주평야와 북동쪽 위화도는 땅거미가 져서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땅이 울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왔습네다!"

  차 준장도 큐폴라를 열고 서둘러 상체를 차 밖으로 내밀었다. 망원경으로 북쪽을 살피니, 보다 분명하게 거대한 물살이 대지를 덮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눈 덮인 평야를, 파괴된 집들을, 각종 차량들을 덮치고 있었다. 이들은 순식간에 물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중국군들이 필사적으로 높은 곳을 찾아 뛰고 있었다. 그러나 해일같은 물살의 속도는 너무 빨랐다.  수많은 중국군과 전차들은 물살에 떠밀리거나 빨려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차 준장이 이 광경을 보며 전율했다.

  중국군은 수풍댐이 파괴되어  물살이 신의주를 휩쓸게 된다는 사실을 바로 직전에야 알았다. 그러나 신의주 시내에는 높은 건물이 없고 산악지대는 북부군이 장악하고 있어서 이들이 피할 곳이 없었다.  필사적으로 인민군들의 방어선인 석수산쪽으로 달려오던 중국군들은 인민군들의 기관총 세례를 받고 무수히 쓰러져 갔다. 그래도 중국군들은 총을 버리며 계속 산쪽으로 몰려들었다. 포로가 된 중국군들은 자꾸 힐끗힐끗 북쪽을 돌아 보았다. 적인 인민군보다는 수마가 더 무서웠던 것이다.

  산 아래 보이는 것은 물밖에 없었다. 온 천지가 물에 잠겼다. 물살은 계속 불아나고 있었다. 일제가 건설하고 패망한 후, 생산전력을 절반씩 나눠 쓰던 북한과 중국이 공동관리하던 수풍댐, 이 거대한 댐이 붕괴되자 한꺼번에 수조톤의 물이 방류되어 하류지역을 무참하게 휩쓸었다.댐 바로 남쪽의 수풍, 신의주와 안둥, 의주 뿐만 아니라 압록강 하류인 용암포와 마안도까지 휩쓸었다.

  북부군 장병들은 이 엄청난 재난 앞에서 공포에 떨었다.  신의주에는 더 이상 살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보이는 것은 오직 물 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요?  4층건물은 물에 잠기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

  차 준장이 부들부들 떨었다. 공포와 분노 때문이었다.  김 소좌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라고 있었다.

  "전혀... 압록강이 얼 경우에는 더 심한 결과가 올 줄을 알았지만 일케 까디는..."

  1999. 11. 25  18:10  경기도 남양주군 통일참모본부

  "대재앙입네다. 신의주, 압록강 건너 안둥이 모조리 물에 잠겼습네다. 아니, 휩쓸려 없어졌다는 표현이 맞갔디요."

  김 병수 대장이 씁쓸하게 보고하자 참모들 사이에서 침묵이 교차되었다.  아무리 전쟁이지만 도시를 수몰시키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인 전술이라고 생각했다.일반인들의 희생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으나 엄청난 숫자가 틀림없었다.

  "중국군 3개 집단군이레 신의주에 감쪽가티 숨어 있었습네다. 중국군 공병대의 능력에 대해 재평가할 수 밖에 없습네다. 길고 안둥에 주둔하던 중국군도 막심한 피해를 입었을 낍네다. 총 병력 2개 병단에 7개 집단군, 20여개 사단이레 전멸, 또는 회복불능인 것으로 판단됩네다."

  김 병수 대장의 평가가 사실이라면 중국군은 서부전선에서는 더 이상 공세를 취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한국군이 만주지역을 공격한다해 도 이들을 막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선양(瀋陽)쪽에 5개 사단이 있었지만 이들은 총후근부 소속의 병참, 또는 경비부대였다.

  "북부군의 피해가 심각한 모양인데요."

  정 지수 대장의 질문은 자못 심각했다. 서부전선은 지금 이들을 뺀다면 거의 무인지경이나 다름 없었다. 몇 개의 예비사단이 북부군 후방에 대기하고 있지만,  통일참모본부에서는 이들을 전선에 투입하기를 꺼리고 있었다. 병력과 장비가 도저히 수준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양 인근에는 평양지역사령부 예하 2개 사단이 있지만, 이들이 평양을 떠날리는 만무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군의 테러 등에 대비한다지만 사실은 전쟁 중에도 아직 남북간의 신뢰가 완전하지는 않은 것이다.

  "인민해방군이레 서부전선에 쏟을 힘은 더 이상 없으니끼니...  걱정 말기요, 정 대장 동지. 길고 동부전선이레 어케 됐슴메?"

  이 종식 차수가 선봉지역 전역의 전황을 묻자,  정 지수 대장이 약간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했다.

  "상대는 종심방어진을 형성하고 기동방어를 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전진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자꾸 함정에 말려드는 기분입니다. 상륙전이나 공수부대의 투입 모두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공격받을

낌새를 채면 즉시 후퇴해 버립니다."

  정 대장이 중앙화면을 작동시켜 함경북도 북부지역의 지도를 올렸다. 청진은 순식간에 수복했으나, 이는 중국군이 미리 후퇴했기 때문이었다. 나진, 선봉에 다가갈수록 중국군의 저항과 병력밀집 상태는 강화되었다. 중국군은 회령과 나진을 연결한 선에서 저항을 하고 있었는데,  특수부대의 매복과 기습 때문에 한국군과 인민군으로 구성된 통일한국군은 이들의 저항선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은, 무산, 혜산, 만포 등은 모두 점령했습니다. 백두산 지역에도 중국군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신의주가 회복된 셈이니 이제 이 지역만 수복하면 됩니다만..."

  참모들이 한반도 지도의 북동쪽 끄트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이곳만 점령하면 한반도 전체를 수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중국군의 대병력이 계속 증강되고 있었다.

  "북부군의 차 영진 준장으로부터 화상통신 요청입니다.  연결해도 되겠습니까?"

  참모본부 소속의 영관급 장교가 참모들에게 보고하자 이 종식 차수가 연결하라고 명령했다. 중앙화면에 차 준장의 초췌한 모습이 나왔다.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마친 차 준장은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했다.

  [이번 신의주 양민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저는 사령관직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저를 해임 및 예편시키고 북부군 장병들에게는 책임을 면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는 군사법원에의 소추도 각오하고 있습니다만.]

  참모들은 그의 말을 듣고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신의주 수몰에 대한 보고는 통일참모본부에서 이미 받았다. 압도적인 수의 중국군에게 포위된 저격여단장이 단독적 판단에 의한 수풍댐 폭파명령을 내렸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댐의 폭파는 인민군이 중국의 침략에 대비해 준비한 작전이었다.  일반인의 희생이 컸더라도 북부군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차 준장은 원래 소속이었던 제 11 기갑사단이 해체되고 북부군 사령관이 되면서, 형식상 통일참모본부 직속의 독립부대장이 되어  중요한 일은 통일참모본부에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차 준장은 신의주와 주변 지역에서 엄청난 숫자의 주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밝혀지자  양심상 가책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기건 인민군 전략이어서. 동무는 계속 직책을 수행하라우."

  김 병수 대장이 이 차수의 눈치를 살피다가 차 준장에게 변명을 했다. 김 대장은 군무경력에서 자신과 30여년이나 차이가 나는  차 준장이 건방지게도 통일참모본부에 예편을 요청하자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아직도 전쟁 중이 아닌가? 유능한 지휘관을 전시에 예편시킬 지휘부는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

  [제가 지휘하던 부대의 행동으로 10여만이 넘는 시민이 희생됐습니다. 저의 손은 지금 피로 물들어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노인과 부녀자, 어린이들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생존자는 없었습니다. 자료화면입니다.]

  차 준장의 얼굴이 왼쪽 윗부분으로 축소되고, 화면 대부분이 물에 잠기기 직전의 신의주 시가를 비쳤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신의주에 거대한 해일이 덮치듯 물살이 몰려왔다.중국군 병사들이 높은 곳을 찾아 질주하는 모습도 보였다.전차와 보병전투차 등의 차량들이 장난감처럼 물에 휩쓸리며 파괴되었다.  압록강 건너의 단둥도 물에 잠기고, 둑을 따라 형성된 중국군의 방어진지도 물살에 휩쓸려 붕괴되고 있었다.

  잠시 후 화면이 바뀌어 북부군에 의한 시민구조작업이 나왔다.  아직도 물에 반쯤 잠겨있는 신의주에는  시체들만이 물위에 둥둥 떠내려 가고 있었다. 몇 대의 헬기가 신의주 하늘을 날고, 어디서 구했는지 고무보트 몇 대가 동원되었다. 그러나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는지, 구조대원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제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군인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군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군인이라는 데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제 전쟁도 거의 끝나가니 저를 예편시켜 주십시요.  예편원은 이미 국군 육군본부에 팩스로 전송했습니다.]

  차 준장은 진심으로 예편을 바라는 것 같았다. 참모들이 그의 표정을 살폈다.  전쟁 이후 계속된 피로가 쌓여 그의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양심의 무게에 짓눌려 처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며 참모들은 동정심이 일었으나, 그의 예편을 허가할 수는 없었다.

  "차 동지!"

  이 차수가 차 준장을 불렀다.  아버지뻘 이상의 연령차가 나는 이 차수는 차 준장을 성장기의 고민하는 손자 보듯 하고 있었다.

  "차 동지에 고민을 이해하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거이 웃기는 소리디. 생명이레 바꿀 수 없는기야. 동무의 고뇌를 이해하오. 동무레 오늘부로 사령관에서 해임하가서. 대신, 예편이레 아니돼. 당분간은 이곳 참모본부에서 일하도록 하기요."

  차 준장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고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전시라서 자원에 의한 예편은 불가능했다. 10여년 동안 군문에 종사했기 때문에, 그리고 전쟁 중, 또는 이후에는 그의 경력으로 마땅한 직장을 갖기는 어려웠다. 차 준장은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온 막중한 책임감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다. 어차피 서부전선의 상황은 이미 끝났으니  누가 북부군 사령관이 되든 별 상관이 없어 보였다.

  "상황이 종료되면 지휘권을 홍 종규 소장에게 넘기고 귀관은 이곳 참모본부로 오기요. 장소는 육군본부에 문의하고..."

  차 준장 뒤에 배석한 홍 소장이 계속 놀라고 있었다. 차 준장이 예편을 원한다는 사실에도 놀랐고,  자신이 북부군 사령관이 된다는 사실에 다시 놀랐다. 차 준장이 사령관에서 해임되면 당연히 현역 인민군 장성이 사령관에 부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사령관직을 자신에게 맡긴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홍 소장의 뒤에 서 있는 젊은 여군 소위는 더 놀란 표정이었다.  계속 화면 이쪽과 차 준장을 번갈아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 정석 상장은 북부군 지휘부를 보며 차 준장이 이들에게 미리 언질을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의장님.]

  차 준장이 경례를 하고 화면이 꺼졌다.참모들이 이 차수의 결정에 반대는 못했지만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섣불리 사령관을 교체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 호석 중장이 묻자 이 차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동안의 책임만으로도 진이 빠졌을기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더 이상은 무리디. 차 준장이레 참모본부에 오면 며틸 휴가나 주라우."

  이 차수는 명령을 내리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휴가를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이나 국군 수뇌부, 인민군 수뇌부 모두 자신에게만 기대고 있었다. 그도 차 준장 만큼이나 지치고 피곤했다.

  1999. 11. 25  17:20(중국시간) 북위 38도 45분 동경 122도 51분, 서해

  [빙!]

  장보고함의 승무원들이 갑자기 함체를 울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긴장했다. 아직 중국 함정들과의 술래잡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중국이 깔아놓은 소서스라인은 돌파했지만, 아직 프리깃함 두 척, 숫자를 알 수 없는 초계기 몇 대와 대잠헬기들이 장보고함을 추적하고 있었다.

  "중주파수 탐신음! 3-0-5! 목표 증속!"

  함장이 깜짝 놀랐다. 장보고함은 남쪽에 있는 프리깃함의 엔진소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해류를 타고 무음잠항 중이었는데 탐신음은 뜻밖에도 서쪽에서 온 것이다.

  소나 담당자인 이 중사가 중국 함정이 낸 소리를 역으로 분석하여 적함의 정확한 위치와 거리 및 함종을 파악하느라 바빴다. 예인소나가 해류에 휩쓸리며 잠수함의 진행 방향과 약간 달리 위치를 잡고 있었는데, 중국 프리깃함이 운동을 시작하자,  이것이 다양한 소리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걸렸나?"

  아직 잠이 덜깬 서 승원 소령이 남의 얘기하듯 묻자, 이 중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방향은 우리 바로 뒤쪽입니다.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리가 어중간합니다.  목표와의 거리는 2,700에서 3,200 사이, 녹스(KNOX)급으로 생각됩니다."

  이 중사가 소나와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해수의 수온분포도를 번갈아 보았다.  함장은 어뢰도 없는데 무슨 목표냐며 이 중사에게 반문하려다 그만 두었다.

  "함이 해저에 있거나, 더 가까이나 멀리 있었다면 확실히 탐지됐을테지만 이 거리와 심도에서는 탐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수온을 체크해 본 결과 이곳은 소나의 사각지대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서 소령은 자신감있게 말하는 소나병을 믿기로 했다.  잠수함의 귀인 그를 믿지 못하면 어떡하겠는가? 그리고 어차피 소나는 전방향,모든 심도에서 잠수함을 발견할 수 있는 장치는 아니었다.

  "아! 목표는 방향을 선회하고 있습니다!"

  이 중사가 환성을 질렀다. 승무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엔진정지 중이었나 봅니다. 적함은 우리에게 탐지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가까왔더라면 들킬뻔했습니다."

  부함장이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녹스급이라... 그거 미국에서 임대받은 건데 아직도 안돌려줬나? 중국이 전리품이라고 주장하진 않을텐데...,  미국이 중국에 다시 임대해 줬을까?"

  녹스급은 중국의 일반적인 프리깃함과 달리  대잠공격에 상당한 위력을 가진 함정이었다.  비록 70년대 초반에 건조되기는 했지만 대잠병장은 8연장 아스록과 함께  324밀리 어뢰발사관 4문을 갖춘 제대로 된 프리깃함이었다.  함체에 수납된 액티브 소나와 함께 예인식 패시브 소나도 갖추었고,  대잠헬기를 탑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픈까지 무장하고 있었다. 단지 대공무장이 20밀리 벌컨 뿐이라는 것이 한가지 흠이었지만, 이는 자체무장일 뿐이고 대공방어는 함대의 다른 함이 맡게 되어 있었다.  함장인 서 소령도 3척 단위로 작전을 하는 이 프리깃함들에게는 약간 겁을 먹고 있었다. 배수량도 미국에서 건조한 프리깃함답게 자그마치 4,300톤이나 되었다.

  "항공기 엔진음입니다. 접근! 아...  방금 우리 남쪽 600미터를 지나 2-3-7로 향했습니다."

  소나원의 외침에 함장과 부함장이 놀라다가 MAD 탐지거리 밖인 600미터라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하지만 이 비행기가 소노부이를 투하하고 있을 지 모르기 때문에 비행기가 지나간 선을 통과할 땐 극히 조심해야 했다. 항해장교가 단말기를 두들겨 상황모니터에 선을 그었다. 모든 승무원들이 잠수함이 그 선을 통과할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드디어 비행기가 지나간 선을 통과하자 부함장이 입을 열었다.

  "글쎄요... 올초까지 대만엔 모두 6척의 녹스급이 있었습니다.  주로 대만해협의 대잠방어에 활용됐습니다."

  부함장인 김 철진 대위가 항해컴퓨터와 연결된 단말기로 확인했다.그러나 대만이 중국에 복속된 이후  녹스급 프리깃함의 운명에 대한 언급은 나와 있지 않았다.

  "녹스급을 대만의 남해함대에 배속시켰다면 대만이 그리 쉽게 깨지진 않았을거야."

  함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느 나라의 해전이든 이는 즉시 세계 모든 해군의 교과서가 되어 이들이 실행한 작전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함장이 생각하기로는 대만의 2함대가 1함대를 구원하기 위해 급속 항진했을 때, 녹스급을 충분히 활용했다면 2함대가 그리 허망하게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만해군의 녹스급은 대만해협에는 몇척 있지도 않은 중국 잠수함을 찾는데만 동원되었다.

  함장은 부함장과 함께 탈출계획을 다시 짰다.  아무래도 녹스급 프리깃함에 탑재된 대잠헬기가 문제였다. 함장은 이놈의 시스프라이트는 Mk-46 대잠어뢰를 두 발씩이나 달고 다닌다며 투덜댔다.

  "어뢰 하나만 빌려달라고 해 보시죠. 구경은 다르지만 급한대로..."

  "좋은 생각이야. 잠수함을 부상시킬까?"

  "..... 아뇨."

  액티브 소나로 탐신음을 발한 프리깃함이  다른 방향을 향해 다시 탐신을 시작했다. 승무원들의 표정이 밝아졌으나 아직은 중국 프리깃함들의 숫자와 위치가 불분명했다.  게다가 대잠헬기들이 언제 갑자기 장보고함 바로 위에 나타나 어뢰를 쏘아댈지,  아니면 소노부이를 투하하고 조용히 청음하고 있을지 몰라 도대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플로팅 안테나 올려!"

  함장의 명령에 따라 광대역 전파수신기가 달린 부표가 와이어를 끌고 해표면을 향했다.  이어서 전파담당장교가 전파발신원의 위치와 방향을 분석해 전술상황판에 입력했다.발사관제장교가 이들에게 습관적으로 번호를 부여했다. 공격무기가 있다면 좋은 목표가 되겠지만, 지금은 회피와 은폐만이 이들이 살 길이었다.

  [전파원은 초계기 두 대에 헬기 3대입니다. 모두 해상수색 레이더 발신 중이며 활발한 무선교신 중입니다. 수상함은 프리깃함이 두 척인데, 레이더반사파를 내지만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몇 개 더 있습니다. 지금 상황판에 올립니다.]

  전파담당장교의 말이 함내 스피커로 들렸다.  그의 말은 위치가 알려진 녹스급 프리깃함의 레이더전파를 반사하는 그 물체들이 레이더가 없는 소형의 초계정인지, 아니면 프리깃함이 전파관제 중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대형 평면스크린에 투사된 전술상황판에는 각 주파수대역의 레이더 전파를 내는 목표와, 이들 레이더에 반사되고 있는 물체들의 위치와 방향이 표시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커다란 물체가 아무래도 의심이 갔다.

  "대잠헬기가 3대이니 아무래도 이 목표는 프리깃함 같습니다. 지상발진 헬기가 이 해역에는 도달하기 힘듭니다.  엔진도 정지하고 레이더도 끄다니... 대단한 놈입니다."

  부함장의 의견에 함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시 전파담당장교의 말이 스피커에서 울렸다. 다소 기가 차다는 음성이었다.

  [G 밴드! 역시 녹스급 프리깃함의 해상수색 레이더 전파입니다. 사격통제장치까지 끄고 있었다니, 역시 대단한 놈입니다.]

  전파분석을 마친 담당장교가 이를 상황판에 올리자 이 중사의 소나도 그 프리깃함이 내는 소리를 잡았다.그의 엔진음 분석도 역시 목표를 녹스급으로 분류했으며,  침로를 북쪽으로 잡고 이동 중이라고 보고했다.  이 함의 함장은 지독하게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며 다들 혀를 찼다.

  프리깃함이 내는 전파의 종류는 다양하다. 대공, 해상 수색레이더 뿐만 아니라, 항해용 레이더와 기상레이더, 무선용 전파, 각종 화기를 조작할 때 쓰이는 전파 등 갖가지 전파원이 있다.  이 녹스급 프리깃함은 엔진을 정지하고 완벽하게 전파관제를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 장보고함은 하마터면 그 프리깃함 바로 아래로 지나갈뻔 했다.  아무리 장보고함이 무음잠항 중이라고는 하지만,  해류와 잠수함의 속도차이로 잠수함이 발견될 가능성이 컸다.

  함장은 썰물이 끝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한반도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위험한 명령을 내렸다.

  "안테나 수납! 전진반속, 침로 유지."

  잠수함은 중국 함정들의 소나 탐지범위를 피하며 서서히 전진했다.안테나를 수면에 내놓고 항진하면 각종 전파 정보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상공에서 발견할만한 궤적을 만들게 되므로 전파정보를 얻지 못하더라도 플로팅 안테나를 수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배나 잠수함의 잠망경 등이 만드는 항적은 밤에 발견되기가 더 쉬운 것이다.

  장보고함은 가끔 목표를 크게 돌아 우회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중국해군의 눈에 띄이지 않았다. 대잠헬기들의 위치로 보건대 지금은 중국 초계함대의 수색권을 약간 벗어난 것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그러나 고공에 있는 초계기들은 아직도 주요 감시대상이었다.이들의 탐지범위는 의외로 넓었다.장보고함 승무원들은 초계기의 소노부이에 걸리지 않길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공격수단이 하나도 없게된 잠수함 장보고는 축전지도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이럴 때 공격을 받는다면 격침되거나 부상하여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위험해역을 벗어나려면 아직 200여 km가 남았다.

  서 승원 소령은 잠수함대 사령부에서 보낸 전문에서 작전은 대성공이라고 들었다. 톈진항을 공격한 것이 성공이란 뜻인지... 함장은 전문이 중국연해에서 탈출하는 중에 온 것이라는 사실에 주의했다.아무래도 자신이 미끼가 된 기분이었다.

  세 척의 한국해군 잠수함과 다섯척의 북한 고속미사일정이 중국의 내해인 발해만 안쪽으로 침투해서 중국의 방어선을 교란시켰다. 고속미사일정들은 북한공군의 공중엄호에도 불구하고 중국해군의 미그-23들에게 모두 격침되었지만 중국 초계정과 상선 몇 척을 공격하여 침몰시키거나 대파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군의 F-16과 인민군의 미그-23 및 미그-29 전투기들이 이 해역 상공에 종종 출몰하여 중국군은 요격하기에도 바빴다.

  중국 해군은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채고 상당수의 프리깃함과 초계기를 서해 안쪽으로 후퇴시킬 수 밖에 없었고, 남부해안을 경비하던 함정들도 북쪽으로 돌려야 했다. 그만큼 한국해군의 작전영역은 넓어졌고, 이는 한국군의 또다른 작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서 승원 소령은 도대체 어떤 작전 때문에 한국 해군이 몇 대 밖에 보유하지 못한 209급 잠수함을 미끼로 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의 예상은, 그리고 걱정은 나중에 사실로 드러났다.

  1999. 11. 25  18:30  평안북도 신의주 토교동

  차 영진 준장은 완전히 어둠이 깔린 신의주,  아니, 신의주였던 벌판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었다. 물은 상당히 빠져 나갔지만 신의주시는 토사에 거의 매몰되었다.  시내에 5층짜리 건물들은 몇개 삐죽히 옥상부분을 물 위에 내놓고 있었지만  상당수는 아직도 물에 잠겼거나 붕괴되었다. 시 외곽의 아파트촌도 상황은 비슷했다. 낮은 지역은 수몰되고 높은 지역의 아파트는 무너졌다.

  다행히 민간인 생존자가 나오기 시작했으나  그 숫자는 극히 적었다. 대부분이 고지대의 5층짜리 아파트 윗층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치열한 폭격과 포격의 와중에서도 자기 집을 지키고 있었다.  중국군들이 밀집한 시내 중심 외에는 무차별 포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파트촌은 의외로 포격에 의한 피해가 적었고,  시민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시규정대로 폭격과 포격을 피해 지하방공호에 들어간 사람들만 목숨을 잃었다.

  차 준장은 신의주 시민들이 물에 빠져 죽을 때의 상황을 상상하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숨이 막히고 공포에 질렸을 것이다.  게다가 한겨울의 차가운 압록강물... 차 준장은 가슴이 아팠다. 이 사태를 막지 못한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수풍댐에 폭탄이 설치된 줄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절대로 댐 폭파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우 대좌가 그 명령을 자신의 곁에서 내리려 했다면, 차 준장은 그를 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 준장이 지휘차 안으로 들어와 보니  참모들이 TV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화면에는 수몰된 신의주시가 보였고, 기자가 신의주시의 비극에 대해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기자는 침략군인 중국군은 물론이고, 수풍댐을 폭파하거나 명령한 자들이 만약 한국군이라면 당장 체포해서  비인도적 범죄자로 기소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차 준장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기 다 작전 아니겠슴메? 기자동무들이 전쟁상황을 모르는구만."

  홍 소장이 차 준장의 눈치를 보며 투덜거렸다. 저격여단이 편제상 북부군에 소속되어 있고,  신의주사태가 날 당시 차 준장이 지휘관이므로 기자는 지휘책임자로 차 준장을 지적한 것이 되었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그 책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이런 범죄행위는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군인으로서는 절대 막아야 할 민간인 학살이라는 범죄를 오히려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동포들을 이렇게 학살하다니..."

  차 준장이 한탄하듯 말하자,  김 소위가 안스럽다는듯 그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김 기자 수고했습니다.]

  기자가 사라진 TV화면에 뉴스 앵커가 나타나고 그의 멘트가 시작되었다. 차 준장은 관심있게 지켜 보았는데,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신의주와 의주, 용암포에서 익사한 우리 동포들,  그리고 중국 단둥에서 피해를 입은 중국 인민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앞서 기자가 말씀드린 대로,  신의주에서 13만, 의주에서 2만 3천, 용암포에서 1만 4천명 등 16만 7천명의 시민이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단 둥의 인구가 20만을 상회하고, 그 지역도 대부분 수몰됐으므로 이번 사태로 인한 한국과 중국의 민간인 사망자는 40 만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있던 중국군 병력이 2개 병단 30만이라고 하니까, 정말 대참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미국 ABC에서 잡은 자료화면입니다.]

  "민간인이 40만이나..."

  차 준장이 신음성을 발했다. 그는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김 소좌가 얼른 그를 부축해서 자리에 앉혔으나, 그의 얼굴은 눈처럼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진정하시기요. 어쩔 수 없었습네다.  선우 대좌레 단독으로 댐 폭파를 명령한 겝니다."

  TV화면에서는 여자 뉴스앵커가 신의주 참사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한국군의 수공은 훌륭한 작전이었지만, 주민소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풍댐을 폭파하여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가 컸다는 내용이었다. 어찌된 셈인지 전쟁상황에서도  신의주와 단둥 상공에서 항공촬영한 듯한 자료화면이 나왔다. 그것은 차 준장이 본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대단한 기자동무들이라며 홍 소장이 혀를 찼다.

  차 준장은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보였다.  술에 잔뜩 취했을 때의 기분이었다. 참모들의 움직임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같았다. 차 준장의 상태를 살핀 김 소위가 놀라 TV를 꺼버렸다.

  "아니오. 켜시오. 나는 저것을 봐야 되요."

  다시 켜진 TV에는 신의주와 단둥에서 양쪽 군인들이 구조작업을 하는 광경이 나왔다. 그러나 시내에서의 생존자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시 외곽 아파트촌 옥상에서 주민들이 헬기로 대피하는 광경이 조금 나왔다. 그나마 건물의 층수가 낮은 단둥에서는 거의 생존자가 없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 금강산(錦江山)공원과,  야뤼지앙따시아(鴨綠江大廈)라는 호텔의 고층에서만 중국인 생존자가 구조되었다.

  다시 화면이 바뀌어 이 종식 차수의 인터뷰가 나왔다.그는 어느새 평양에서 내외신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수풍댐 폭파가 신의주에서 중국군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에 빠진 저격여단장의 단독판단에 의한 명령에 의한 것이며, 원래 댐 폭파는 중국군의 한국침공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차 준장이 왜 그가 나왔을까 생각해 보니, 북부군의 사령관을 표면적으로 이 종식 차수가 맡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차수는 댐이 폭파된 사실을 알고 항공기를 통해  주민들에게 경고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갈수기인데도 댐의 저수량이 예상외로 많았고, 적정수준을 넘는 참사가 발생했음을 시인했다. 그는 이에 책임을 지고 북부군 사령관직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선우대좌는 전사했고, 자신은 사퇴했으니,  부하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는 말까지 했다. 다분히 북부군의 현 지휘부를 위해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차 준장은 가슴이 무거웠다. 민간인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 때문에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어갔다고 생각한 그는, 이때부터 불을 끄고는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1999. 11. 25  18:40  서울, 정부종합청사 국무회의실

  "국민총동원령이라니, 지금이 일제시댄줄 아십니까?  중년과 어린 대학생들을 동원하여 총알받이로 쓰겠다는 것이오?  지금 전쟁은 거의 끝나지 않았습니까? 신의주도 수복했고, 이젠 함경북도 나진과 선봉을 포함해 조금만 더 수복하면 되는데, 이제 그들을 동원하여 어쩌겠다는 겁니까? 중국을 공격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야당 출신인 통상산업부 장관이 내무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이 공동제안한 국민총동원령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오늘 새벽, 중국군의 피스함대에 대한 핵사용과 북부군의 신의주 수복을 기점으로 여론은 급속히 종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 두가지 사건은 국민들에게 충격이었다. 중국이 핵을 썼다는 사실과, 대량의 민간인이 학살된 사실 때문에 나진과 선봉 등 약간의 땅덩어리를 떼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중국과의 위험한 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이 급속히 기울었다.

  "북한땅이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요. 이제는 통일한국의 영토가 아닙니까? 결코 우리 영토를 침략자에게 할양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중국군은 거의 백만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만주에도 속속 중국군 증원병력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는 결코 수복하지 못합니다."

  국방장관이 섭섭하다는 듯 통산장관에게 말하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얼굴을 붉히며 국방장관에게 삿대질했다.

  "당신네 군부는 그동안 엄청난 예산을 써오면서 뭘했단 말이오? 지금 상당한 승리를 올렸다고 콧대가 높아진 모양인데, 개전 초기에 당한 패배를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그리고 승리라는 것도 외국의 용병이나 북한 노농적위대같은 예비군들이 얻은 게 아니오? 이번 전쟁을 보면서 나는 꼭 옛날의 임진왜란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어요. 그때도 관군들은 무참히 패배하거나 도망가기 바빴고, 의병들이 일어나 나라를 지켰지요. 도대체 정규군이 한 일이 뭐요? 기껏 과부들이나 양산하지 않았냐 말이요.

  지금 통일한국군의 병력은 한국군 60만에 인민군 110만, 그리고 양측에서 동원한 예비군 300만 등, 거의 5백만에 달하고 있습니다.그런데도 현재의 전력으로는 나진과 선봉을 수복할 수 없다고요?  그곳에서도 민간인 유격대가 피를 흘려야 되나요?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국방장관이 수모를 참느라고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 할 일을 잊은 것은 아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국군이나 인민군이  초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많은 희생을 치루며 이만큼이라도 했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지금 중국군이 강점하고 있는 함경북도 일부를 수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고, 현역과 동원예비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모든 병력을 한곳에만 집중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전선이나 후방도 지켜야 하니까요. 최대한 긁어모아 봤자 그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가용병력은 겨우 100만에 불과합니다.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 자손들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총동원령을 통과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징집된 국민들이 모두 전선에 투입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부분 후방에서 병참이나 경비 등의 업무를 맡게 됩니다."

  겨우 100만이라는 국방장관의 말에 국무위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국과의 전쟁에서는 병력 수의 차원이 달랐다. 그 어느 나라도 중국과의 장기전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편전쟁이나 중일전쟁처럼 앞선 무기체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중국군을 몰살시키기 전에는 그 어느 나라도 대등한 무기로 중국과 싸운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동부전선의 나진과 선봉쪽에는 우리측 병력 100여 만이 있다고 들었소. 아시겠지만 서부전선은 사실상 거의 비워 둔 상태입니다. 북부군이 소문과는 달리 과장되었다는 사실은 오늘 저녁에야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400만 병력은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후방에는 아무리 많아야 백만 남짓일테고, 나머지 300만 병력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것입니까?"

  농림수산부 장관이 의문이라는듯 국방장관에게 질문했다. 국방장관은 순간 당황했으나 금방 다시 원래 표정을 찾았다.

  "100만은 동부전선의 최전선에 배치됐습니다. 일부는 후방에, 일부는 중부전선에서 중국군 병력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동부전선 배후에서 예비병력으로 활용 중입니다.예비병력의 중요성은 잘 아시겠죠."

  국방장관은 ROTC 예비역 중위 출신인 농림수산부 장관에게 답변했다. 그러나 농림수산부 장관은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넉넉하게 계산해 보아도 200만이라는 숫자가 모자랐다.  농수산부장관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국방장관과 대통령은 남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도대체 중국의 핵에 대한 대책은 도대체 세워져 있는 겁니까?  낮에 TV에 나온 그 핵미사일은 어떻게 된거죠?  정말 우리 것입니까? 만약에 중국이 우리 영토 내에서 핵을 쓴다면 우리도 보복할 수 있어요?"

  국방장관을 질타하던 통산장관이 이번에는 핵미사일건의 장본인인 안기부장을 보며 질문을 퍼부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정부위원으로서 이번 비상국무회의에 출두한 안기부장은 헛기침을 하더니  답변을 시작했다. 예상질문인 만큼, 준비는 되어 있었다.

  "예, 정확한 숫자를 밝히기는 힘들지만  상당한 수의 지상발사 핵과, 잠수함 발사 순항핵미사일, 그리고 약간의 핵배낭 종류가 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우리 영토에서 핵을 사용한다면, 우리도 당연히 핵공격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보다는 우리에게 핵이 있다는 것은 중국의 핵위협에 대한 견제가 되는,  즉, 핵억지력으로서 작용하는 것이 더 낫겠죠."

  안기부장이 약간은 뻐기는 듯한 투로 이야기했다. 국무위원들은 안기부에서 외국으로부터 핵무기를 입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급비밀에 관련된 사항같아서 국무위원들은 더 이상 질문하기가 곤란했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발언을 시작했다. 지금의 국무회의는 옛날처럼 거수기들이 모인 통과의례가 아니었다.  대통령은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연립정권을 세울 수 밖에 없었고,아직도 4개의 지역당이 한국의 정치를 왜곡하고 있었다. 홍 대통령은 2개의 정당과 연립하여 다수당정권을 수립했다. 대통령제하에서도 국회의 의석수는 정책집행에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는 몇 개의 장관자리를 야당에게 주기도 했는데, 국정에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는 동시에 원할한 정권교체에 대비한 포석이기도 했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이를 대통령의 연립여당에 대한 견제로 풀이했다.

  "우리는 중국과 있을지도 모를 핵전쟁을 막고, 한편으로는 잃은 영토를 회복해야 합니다.  나진과 선봉이 함경북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조그만 땅덩어리라도 우리 통일한국의 영토입니다. 북한이 10여년에 걸쳐 이 지역에 투자를 하고, 우리 기업인들도 많은 투자를 했지만, 경제적인 것을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지적한 두 가지 문제는 서로 모순되어 있었다. 한국이 총력을 기울여 나진과 선봉을 수복하려 한다면, 그리고 이 목표가 달성되려 하면 중국이 언제든 핵을 쓰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국무위원들 이 우려하는 것은 이 부분이었다.지금도 중국측에서는 조선초기까지 이 지역이 만주족의 영토였다고 선전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어떤 나라가 외국영토에 대해 선제 핵공격을 하면 다른 나라로부터의 핵보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 국제협정이었지만,  이것이 지켜질 것이라곤 아무도 믿지 않았다.  특히 유엔 안보리 5개국 중의 한 나라가 개입되어 있다면 더욱 그렇했다. 막강한 중국의 핵전력을 알고 있는 다른 핵강국들이 과연 중요하지도 않은 나라 한국을 위해서, 또는 단순히 국제협약을 준수하기 위해서 핵보복에 나서길 바란다는 것은 꿈에 불과할 것이다.

  "제정러시아가 왜 그토록 부동항을 원했는지는 잘 아실 겁니다. 근대사를 돌이켜 보면,러시아가 개입한 모든 전쟁에는 이 부동항 문제가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20세기가 1년여 밖에 남지 않은 지금, 부동항 보유 여부는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역시대입니다. 해양의 시대입니다."

  청주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평생을 역사학을 연구해 온 홍 대통령이 러시아의 예를 들어 바다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부동항을 갖기 위한 러시아의 몸부림은  18세기에는 스웨덴이, 19세이엔 영국이, 다시 20세기에는 미국이 방해함으로써  잠재적 초강국 러시아를 포위하는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발트해나 바렌츠해 및 흑해의 해상출구는 언제든 주변국들에 의해 봉쇄될 수 있으며,  극동의 블라디보스톡은 겨울에 외해가 얼어붙으므로 아직도 러시아는 제대로 된 부동항을 갖지 못했다는 설명도 했다.

  일본의 오끼나와 군도와 필리핀 군도가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통로를 언제든 막을 수 있으므로 중국은 그만큼 나진과 선봉을 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곳도 일본열도에 의해 태평양으로의 진출이 방해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군력이 분산될 것이 뻔한 일본이 모든 해상을 봉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조그만 점으로 인해 중국은 일본이라는 장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 나진과 선봉을 점령하면 중국해군과 일본해군이 조우하는 기회가 많아져, 당연히 일본은 군사력에 상당한 국력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도 중국이 노리는 점일 수 있었다. 일본의 재무장을 그 어느 나라보다 우려하는 중국이,  반대로 비경제적인 투자인 군비에 일본의 국력을 낭비케 하려는 것은 일견 모순되어 보이지만,  국가간의 경쟁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미국이 구 소련을 과도한 군비경쟁으로 밀어붙여 결국 소련을 해체시킨 것과 유사하다.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통일참모본부나 정보사단의 보고서에 의하면, 여러분도 여기 오시면서 다 읽어 보셨겠지만,  우리가 나진과 선봉을 끝내 수복하지 못할 경우 국익에 치명적인 손실이 예상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전쟁처럼 중국이 언제든 다시 한반도를 무력침공할 경우,  우리는 사면에서 포위되는 상황을 가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에서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충분히 과시했지만, 다음 전쟁에서는 그리 쉽게 국토를 방어하지는 못할 거란 겁니다.

  나진과 선봉을 통해 중국 해병대가 동해안 곳곳에 상륙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요. 우리는 대만과 같은 최후를 맞을 것입니다. 대만과의 차이는, 우리는 한족(漢族)이 아니란 겁니다. 우리 민족은 기나긴 세월동안, 어쩌면 영원히 식민지상태를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나타났던 수많은 중국 인근의 소수민족들처럼, 우리도 말과 문화를 잃고 중국에 동화되어 역사에서 퇴장할 수도 있겠죠."

  통산장관과 보건복지부장관은 아직도 수긍하지 않는 눈치였다.  농림수산부장관이나 정보통신장관도 마찬가지, 대부분의 장관들이 총동원령에 반기를 들었다.무소속 대통령의 한계였다. 전쟁을 직접 수행하는 내무장관과 국방장관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무소속들이었지만, 다른 당소속의 국무위원들은 이미 당 차원에서 반대입장을 확고히 한 모양이었다.

  헌법상 국무회의 심의에서 부결로 처리된다고 해도 대통령이 이를 집행하면 위헌은 아니다. 심의에 부치는 것만으로 헌법상의 의무는 다 한셈이다. 심의 자체가 기관내 통제수단이며 통치권행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통치구조상의 매커니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의에 부쳐진 정책결정사항에 대통령이 기속(羈束)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정치적 위험부담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국민들이 얼마나 따라줄 지가 더 문제였다. 대통령이 결국 새로운 사실 한가지를 국무위원들에게 공표했다.

  "조금 전에 일본 총리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자는 안이 부결처리됐으므로,  일본 단독으로 자위대를 한국에 파병하겠다는 겁니다."

  국무위원들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중국과의 전쟁에 경황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독도를 강점한 자들이 우호의 손길을 내밀다니,  일본은 또다른 속셈이 있다며 위원들이 흥분했다.

  "거의 수복하고 나니까 승리를 나눠먹자는 것입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지도 모릅니다. 절대 수용해서는 안됩니다."

  총동원령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통산장관이 대통령에게 일본의 제의를 거부할 것을 종용했다. 정보통신부 장관은 전혀 다른 우려를 표명했다.

  "일본이 개입할 경우, 일본과 중국의 전쟁으로 전쟁이 확대될 우려가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세계대전입니다. 아니, 핵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일본에 다량의 농축 플루토늄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 주십시요. 그들은 언제든지 핵탄두를 제조할 기술과 능력이 있습니다. 운반체계도 중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위성과학의 발달이 앞섰습니다."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역시 일본이라는 카드는 한국민을 단결시키는 좋은 재료였다.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국내의 정치위기 때마다 써먹던 일본카드를 자신도 썼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국민을 단결시켜야 할 때였다.

  "물론 저는 한마디로 안된다고 했습니다. 자위대의 한반도 접근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경고도 했지요."

  국무위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본의 잠재적 위험은 이번 한중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커졌으며, 누구보다도 국무위원들이 실감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본의 독도점령사건과 해상봉쇄 비슷한 항로방해로 국민들의 대일감정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의 요구는 또다른  정명가도(征明假道)가 될지도 모릅니다. 중국을 친다면서 사실은 한반도에 욕심을 내는 것 말입니다."

  대통령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내세우며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것을 당부했다.  대통령은 일본이 중국과 함께 한국으로 진공하지 못한 것은 전쟁준비가 늦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해결해야 될 것은 중국에 점령당한 지역의 수복과 핵전쟁 방지였다. 일본과 독도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중국의 핵사용은 군에서 막기로 했소. 만약에 중국이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다면, 국민총동원령에 찬성하시겠습니까?"

  "확실한 보장이라뇨? 중국과 협상을 했단 말씀입니까?"

  대통령의 제안에 보건복지부장관이 질문을 했다.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서 여성단체장이 된 것같은 보복부장관을 대통령은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그런 류의 사람치고는 보복부장관은 그래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옛날의 여성장관들처럼 몰상식한 언행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닙니다. 지금 작전이 실시 중입니다. 위험한 작전이고... 사실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요. 하지만 일부라도 성공한다면, 중국의 선택권은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대통령은 경호원과 비서관들을 국무회의실 밖으로 내보내고,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장관들은 12시간 동안 국무회의실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총동원령이 가결되고 티 타임 때 안기부장이 대통령에게 다가와서 귓속말로 물었다.  정말로 일본 총리가 자위대를 파병하겠다고 전화를 했냐는 질문이었다. 대통령이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부장은 내가 거짓말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소?"

  안기부장이 당황했다.  자신이 가진 정보 루트로는 그런 정보를 얻은 바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지금까지 거짓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위정자로서 너무 고지식하다고 생각해온 터였다.

  "아닙니다. 각하께서는 항상 진실만을 말씀하셨죠."

  "그렇소. 나는 일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 왔소."

  대통령은 약간은 어색하게, 약간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진실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했다는 것은 그의 정적(政敵)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일본을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일본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을 강화하겠습니다."

  "뭐... 그렇게 하시오. 그런데 아까 내 말은 거짓말이오."

  "네? 그럼 일본수상이 그런 전화를 한 적이 없다는 겁니까?"

  안기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항상 진실만을 말하던 고지식한 교수 출신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다니,  그것도 한일 양국의 외교관계를 크게 손상시킬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그렇소. 근데 목소리가 너무 크군요."

  "죄송합니다. 각하!"

  안기부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장관들은 각 정당별로 삼삼오오 모여, 이번 총동원령 통과에 대해 숙의에 숙의를 거듭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내일 아침에 당사로 출근하면 당 총재들에게 쪼인트를 한 방씩 까일 것이라며 대통령이 속으로 웃었다.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대통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일본 총리의 전화를 받은 적이 없소. 일본대사가 그런 제안을 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는 있지 않소?  만약 이것이 언론에 공개되고 일본이 사실이 아니라며 펄쩍 뛰더라도  누가 일본의 말을 믿겠소?"

  "....."

  안기부장은 대통령을 다시 보게 되었다.  작은 일에는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항상 진실만을 말하다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는 완벽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었다.  덕택에 국민총동원령은 국무회의의 심의에서 의결되고 해당 국무위원들의 부서(副署)만 남았다.

  1999. 11. 25  17:50(중국시간)  중국 상하이 총밍따오(崇明島)

  "후후~ 시작은 아주 좋군요."

  신 승주 대위는 침투할 때 입었던 잠수복을 벗고 두툼한 겨울양복 위에 하늘색 오리털 파카를 걸치며 속삭이듯 동료들에게 말했다.  동료들이 그에게 미소로 답했다. 잠수함이 중국 영해에 잠입할 때에도 특별한 위험이 없었고,상륙할 때 걱정되었던 중국군 해안방어부대의 순찰도 보이지 않았다. 해안부대의 해안초소 투입이 겨울철에는 1800에 시작되므로 아직은 해안부대의 투입이 이뤄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

  한국과 중국의 시차는 표준시로 한시간 차이지만,  한국이 일본 고베 인근을 통과하는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그리고 상하이는 중국의 동쪽 해안이기 때문에 한국과의 시차는  사실상 20분 정도에 불과하다.

  주변은 이미 캄캄했고, 양쯔강 하구 건너 멀리 보이는 상해 시가지의 불빛이 환하게 물위에 반사되었다.전쟁 중이고 전에 피스함대로부터 폭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하이는 전쟁과 무관한 평화로운 도시처럼 보였다. 제주도에서 출항할 때 보았던 모슬포처럼, 치열한 전쟁 중에도 민간인들의 삶은 활기찼다. 전쟁이든 평화든, 어느 누구의 지배하에 있든 세상은 민간인, 보통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 대위는 수중침투할 때 사용하던 장비는  해변에 깔린 자갈을 파서 모두 묻어 버리고 동료들을 따라서 길 위로 올라섰다.차가운 바람이 절벽길을 따라 불어 왔다.

  "옵니다."

  미니버스 한 대가 전조등을 킨 채 천천히 해안로를 거슬러 올라왔다.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지점이었다. 신 대위는 이를 보며 역시 안기부답다고 생각했다.

  "탑승!"

  지휘자인 이 우철 과장이 차 번호를 확인한 후 12명의 요원들을 지휘하여 선두로 미니버스에 탑승했다. 운전사는 과장이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중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러분."

  두툼한 솜옷을 입은 운전사가 요원들을 반기며 차를 유턴시키자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일어나서 자신들을 소개했다.

  "저희는 안기부 제 3국 소속 요원들입니다. 여러분들과 이번 일을 같이 하게 돼서 반갑습니다. 과장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자, 이동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먼저 여행허가증을 받으십시요."

  요원들이 자리에 앉으면서 여행허가증을 받았다. 주소는 중국 제 3의 섬인 이곳 총밍따오(崇明島),  여행지는 상하이였고 여행목적은 물품구입이었다. 총밍따오가 상하이시에 포함되어 있고, 평소 이 정도 거리라면 여행허가증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라서 중국인민들의 여행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다.  이들은 지금 상하이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총밍따오에서 되파는 보따리장사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신 승주 대위가 자신에게 할당된 가방 안을 살폈다.모두가 두툼한 옷가지였고 그 중에 상당수가 최신 유행중인 모델의 오리털 파카였다. 색깔도 다양하고 사이즈도 종류별로 있었다.  역시 현지에 있는 요원들답게 이곳 상하이 시민들의  취향에 뒤떨어지지 않게 준비한 모양이었다. 최근에는 중국인들도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우중충한 색깔의 겨울옷을 입던 때와 시대가 달랐다.  중국인들은 패션부터 세계화된 모양이라며 요원들이 농담을 했다.

  1999. 11. 25  19:00  평안북도 신의주 토교동

  신의주 수몰사태의 수습과 북부군 사령관직 인수인계를 하고 있던 차 영진 준장은 야간고글을 쓴 인민군 군관의 방문을 받았다. 이미 사정을 모두 파악했는지 그 군관의 표정은 침울해 보였다.

  "죄송합네다. 이 지경 되도록 도움이 앙이 되어드려서..."

  "아니요. 제가 미안하죠. 다 무능력한 제탓입니다."

  차 준장이 씁쓰레하게 미소지었다. 저격여단은 단 하루 사이에 두 명의 여단장을 잃은 것이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정말 길고 긴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전투와 사건이 단 하루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

  "이제 저격여단은 야간전대대만 남았소.  아니, 대전차대대는 동부전선에 있으니... 산악전 2대대도 상당수 남아 있을테고.  그동안 수고들 하셨습니다. 먼저 떠나게 돼서 미안해요."

  차 영진 준장은 새로이 북부군 사령관이 된  홍 소장과 다른 두 명의 사단장급 예비역 대좌, 국군 6사단의 포병연대장,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통일참모본부가 후방에서 급히 빼돌려 배치한 인민군 제 23사단장, 그리고 야간전대대장과 악수를 나누고 지휘차에서 나왔다.  23사단장의 계급이 중장이니 북부군은 또 하급자를 사령관으로 모시게 된 셈이다.

  김 소좌와 김소위가 매우 섭섭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들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지휘장갑차 옆에 포탄이 바닥난 K-1 전차 4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 준장이 작별을 고하고 1호차에 올라탔다. 실로 며칠만에 타보는 자신의 전차였다.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준장님!"

  포수인 박 중사가 차 영진을 반갑게 맞았다. 차 준장은 박 중사와 악수를 하고 전차를 둘러 보았다. 코끝이 찡했다. 이놈은 9일간의 격전에서도 살아남은 것이다! 차 준장 자신처럼...

  그러나 17일의 첫 전투에서 살아남은 여섯 대의  전차 중 두 대는 전쟁기간 중에 파괴되었다. 한 대는 23일의 공습에, 한 대는 오늘 새벽의 전투에서 파괴된 것이다. 제 11기갑사단이 며칠만에 전차소대로 전락한 셈이었다. 네 대의 전차는 눈이 녹아 진창이 된 길을 따라 남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차 준장은 물에 빠져 죽은 60만명의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전율하기 시작했다.

  1999. 11. 25  18:10  중국 지린성 뚠화(敦化)

  인민군 소속 AN-24기는  눈보라가 쏟아지는 만주의 악천후 속을 뚫고 저공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이 작은 경비행기에는 국가안전기획부와 북한 정찰연대 소속의 요원 13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비행기의 요동이 너무 심해서 약간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곧 착륙합니다.]

  기장이 짤막하게 방송을 하자 착륙등이 켜지고 기내에 경보가 울렸다. 요원들이 안전벨트와 장비를 확인하고 충격에 대비하는 자세를 취했다. 기체가 하강하는 느낌이 들고, 잠시후 충격이 온몸에 퍼졌다. 비포장길을 펑크난 승용차로 내달리는 기분이었다. 충격은 곧 멈췄다.

  요원 한 명이 문을 열자 눈보라가 기내로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모두들 고글을 쓰고 즉시 비행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이들 뒤로 인사말이 전해졌다.

  [건투를 빕니다.]

  이들을 싣고 온 AN-24기는 즉시 이륙했다. 예비역 중위이며 컴퓨터기사인 백 창흠은 자신들을 싣고온 비행기가  돌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경비행기였다.  비행기는 짙은 어둠 속을 비행등도 키지 않고 이륙해서 남쪽 하늘로 돌아갔다.  백 중위는 자신이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자, 출발하자우!"

  정찰연대 소속인 인민군  가 경식 소좌의 선도로 이들은 즉시 장비를 챙겨 동쪽으로 향했다.  만주벌판의 거치른 눈보라가 이들에게 몰아 닥쳤다.

  1999. 11. 25  19:20  함경북도 부령 백사봉

  함경북도에 백사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두 곳에 있다. 하나는 청진 남서쪽에 있는 해발 1,479미터인 백사봉이고,  다른 하나는 청진 북쪽, 또는 나진 서쪽에 있는 해발 1,139미터의 백사봉이 그것이다. 모두 함경산맥에 속한 봉우리인데, 1139 고지인 백사봉은 동쪽 30km에 나진, 북서쪽 약 20km에 두만강을 낀 회령이 있어서, 나진과 선봉을 강제점유하려는 중국 인민해방군과, 이를 수복하려는 통일한국군 사이에서 이번 전쟁 최대의 접전지가 되고 있었다.

  산은 별로 높지 않았지만 험악한 함경산맥의 봉우리답게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듯 경사가 심했고, 곳곳에 눈발을 날려 산길을 지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민군 제 19사단이 투입되었으나 중국군의 강한 저항을 받아 패퇴하자, 다음에 투입된 부대는 피스의 용병, 구르카여단이었다. 대부분 국제 지원병으로 구성된 피스의 다른 부대와는 달리, 이들은 돈을 받고 전쟁을 하는 프로들이었다.  히말라야 산자락의 소왕국인 네팔 출신 병사들답게 이들은 혹한에도 아랑곳 않고 차근차근 주변 봉우리들을 점령해 나가고 있었다.

  앞서 투입되었던 인민군 19사단처럼 피스의 구르카 여단도 그동안 이들과의 술래잡기를 지겹도록 하고 있었다. 한 부대가 습격당하면 한 부대는 습격을 하는 식으로, 이들의 전투는 점점 소모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목표인 선봉에 다가갈수록 강력한 중국군 부대의 매복과 야습에 전체 통일한국군의 진군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산악전 부대인 다수의 병종(丙種)사단은 동부전선 전 전선에 걸쳐 출현했고, 이들의 지연작전은 상당히 성공하고 있었다. 통일참모본부는 나진, 선봉을 점령하기 전에 먼저 이들을 소탕해야 했다.

  피스의 용병인 구르카 여단 제 5대대장 빠뜨랭 중령은 산중설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눈덮힌 산, 싸늘한 바람, 눈꽃이 만발한 나뭇가지들... 그의 입에선 절로 샹숑이 흘러 나왔다.

  [중국군 척후병들입니다! 1개 분대 병력.]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경고를 담은 속삭임이 헤드셋을 통해 전해졌다. 빠뜨랭은 인상을 찌푸리며 문자전송기를 보았다. 지도와 대조한 중국군의 출몰지점은 신현이라고 하는 고개였다.  그는 초조하게 다음 소식을 기다렸다.  대대원 전원은 현재 매복상태이므로 아군 척후대가 부대의 눈과 귀를 담당했다.  점점 접근하고 있다는 말이 1분마다 전해졌다.

  드디어 중국군 척후병들이 매복지점에 나타났다.부대 전원이 숨을 죽였다. 이들은 목표가 아니었다. 중국 척후병들은 한참 주위를 살피다가 무선연락을 하더니 다시 서쪽으로 내려갔다. 지금 구르카 여단 5대대가 매복하고 있는 곳은 백사봉 남쪽 2km, 어명산(1031 고지) 북쪽 1.5km이며,  중국군들이 처음 발견된 신현은 북동쪽으로 1.2km 정도에 있었다. 이들 세곳 모두 중국군이 점령하고 있으니,이들은 적진 깊이 들어와 매복하고 있는 셈이었다.

  "중국군 수색대! 중대 규모!"

  척후대의 보고를 받은 빠뜨랭 중령은 대대통신망에 연결된 헤드셋 마이크로 속삭이듯 부대원들에게 경고했다. 잠시 후 100여명의 흰색 그림자가 스멀스멀 접근해 왔다. 대대원들이 조용히 숨어 이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어스름 속에서 하얀 위장복을 입은 중국군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경쾌했다. 최강의 보병이라는 히말라야 산지 출신의 구르카용병들도 헐떡대며 이곳에 도착했는데, 그들은 호흡 한번 흐뜨리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으니 이들은 어둠에 익숙한 부대라고 판단되었다.

  이들이 어둠 속에서 소리를 죽이며 뭔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산길에 지뢰나 크레모어를 매설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머지 대부분은 양쪽 계곡 아래에서 참호를 파고 있었다.  빠뜨랭이 있는 언덕 바로 밑에도 중국군들이 작업을 했다. 삽으로 얼어붙은 땅을 파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매복부대인가?"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인 용병 지휘관 빠뜨랭은 이들이 평범한 수색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전통적으로 유격전이나 매복, 야습 등 인민전쟁에 익숙한 중국군이라지만, 각개 병사들의 움직임과 복장으로 보아 이들은 중국의 산악전부대라는 병종사단이 틀림없었다.  오늘 새벽에 동부전선에 투입된 5대대는 처음으로 중국 병종사단과 교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보병사단은 3종류로 구분되는데, 현대식 중장비로 편성되어 화력과 기동력이 우수한 갑종(甲種)사단, 경장비 편성의 을종(乙種)사단,  그리고 산악작전과 유격작전 수행에 적합하도록 소형경장비로 편성된 병종사단이 있다. 병종이라고 우수하지 못한 병사들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은 최정예 신속공수 대응부대인 권단에 못지않는 병력이었다.

  빠뜨랭 중령은 헬멧에 장착된 헤드셋을 통해 중대장들에게 급히 지시를 내렸다.  중국군들이 완전한 매복에 들어가면 공격이 수월치 않으리라는 판단이 서자 빠뜨랭은 공격을 서둘렀다.

  "공격준비!"

  각 중대가 공격위치에 배치된 것을 확인한  빠뜨랭 중령이 명령을 내리자 그의 이어폰에서는 중대장들이 각 예하 소대장들에게 내리는 명령이 들려왔다. 대대 통신망은 완전 개방된 상태였다.  빠뜨랭이 옆에 대기하고 있던 네팔인 저격병에게 신호를 보내자 저격병이 목표를 찾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는 정확히 중국군 지휘관을 찾아 머리에 조준선을 맞췄다.

  "땅!"

  최초의 총성에 중국군을 지휘하던 자가 쓰러지고 연이어 총성이 계곡 전체에 메아리쳤다. 양철판 튀는 듯한 카빈 소리와 빵빵대는 M-16 총성, 망치 두둘기는 소리같은 M-1의 총성, 기타 1차대전부터 유고내전까지의 기간동안 동서 양진영에서 개발된 모든 종류의 총성이 계곡에 메아리쳤다. 구르카 여단이 보유한 소총의 종류는 개개 병사의 나이만큼 다양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훌륭한 저격수였고, 총기 종류가 다양한 것은 그들에게 익숙한 개인화기를 사용케 하려는 배려가 담겨 있기도 하다.

  중국군은 참호를 파던 중에 불시의 기습을 받고  즉시 산개하려 했으나 엄폐할 시간여유가 없었다. 이들을 노리는 총구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하얀 눈밭 곳곳에 소나기가 내리듯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빠뜨랭은 이를 보며 팥빙수를 연상했지만, 다음부턴 팥빙수를 먹을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 같았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듯, 갑작스런 적막이 찾아왔다. 중국군은 거의 저항을 하지 못하고 당했고, 여기저기서 목표를 찾을 수 없다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운좋게 저격을 모면한 중국군 한 명이 겁에 질려 북동쪽으로 뛰는 것이 발견되었다. 병사들이 사격을 하려다가 관두었다.그가 가는 곳은 지옥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길을 버리고 산쪽으로 뛰던 중국군은 바로 앞에 쌓인 눈이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눈 속에서 번득이는 하얀 물체였다.  그의 머리가 하얀 눈밭 위를 굴렀다. 이것을 본 구르카 병사들이 환성을 질렀다.  빠뜨랭이 실눈을 뜨고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쿠크리검을 든 구르카병사가 서 있었다.  눈 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단칼에 중국군 병사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빠뜨랭은 중국군이 있던 곳들을 야시경으로 살폈다. 신음소리가 들려 왔으나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빠뜨랭 옆의 네팔인이 자기 키만한 M-1 소총에서 솔솔 새어 나오는 화약연기를 훅 불었다. 진한 화약연기가 빠뜨랭의 코를 자극했다.

  '이 냄새가 좋아.'

  그는 화약냄새는 정말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냄새를 잊지 못해 아직도 이 냄새를 찾아 세계 각지의 전장을 헤매는 용병 신세였다. 짜릿한 화약연기, 전장의 긴장감과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졸음이라는 이 이율배반감, 이 모든 것들을 그는 좋아했다.

  그는 80년대까지 전통적인 향수의 고장인 프랑스 그라스 마을의 향수 공장에서 조향사(造香師)로 활약했다.  가장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는 향기의 마술사, 조향사.  그는 대학교를 마친 후에 향기에 끌려 조향사 전문학교를 나와 몇 년 간 이 회사에서 일했다. 마을 뒷산에 가득한 은은한 자스민 향기는  마약처럼 그를 이 마을에 붙들어 맸다.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선임조향사의 자살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예민한 후각을 잃고,  창의성에서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졌다고 생각한 그의 늙은 선배는 권총자살을 택했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그는 절명해 있었다.  회색 타일을 깐 바닥에 선홍색 액체가 스멀스멀 흐르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권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와 매캐한 화약내음이 그를 매혹시켰다.  그의 후각에 강렬하게 각인된 그 화약냄새를 그는 그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었다.

  빠뜨랭은 향수 만드는 일에 시들해 졌다.  그 어떤 향기도 그의 후각을 자극하지 못했다.  선배 조향사의 자살은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기도 했다. 조향사로서 부적합하다는 주변 시선을 의식한 그는 어느날 밤,  공장에 들어가 자스민꽃 1톤을 농축시킨 1리터의 향수원액을 훔쳤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싸다는 향수원액이었다.

  30km를 뛰어 새벽녘에 니스에 도착한 그는  배를 타고 스페인을 거쳐 모로코로 흘러 들어갔다.  거기서 향수원액을 헐값에 처분하고 그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다.그러나 화약냄새는 결코 그를 자유롭게 놓아 두지 않았다.모로코 해방전선에서 게릴라로 활동하던 그는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했다.프랑스인은 장교로만 지원할 수 있는데, 그의 경력이 입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따분한 외인부대 생활이 싫어져 제대한 후 세계 각지의 전장을 떠돌게 되었다. 유고내전에서 크로아티아 편에 서서 싸우던 그는, 피스의 공작원으로부터 권유를 받고 피스라는 무장단체의 용병 장교가 되었다.

  그는 이 조직의 방대함에 놀라고 말았는데,  방대한 정보조직과 자체 보유한 군대 말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 개의 환경 및 반전단체가 이 조직의 하부구조라는 것을 알고는 열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색대 전방으로! 3중대, 전과확인하고 전리품을 노획하라!"

  빠뜨랭 중령은 1개 소대를 중국군이 오던 방향으로 내보내고, 주력은 현 위치에 대기시켰다. 3중대원들이 구르카 용병의 상징인 쿠크리 검을 쥐고 뛰쳐 나갔다. 포로획득이 아니고 육박전상황이라면 당장에 사람들의 머리가 바닥에 뒹굴었을 것이다. 이들이 부상자와 포로를 잡아 후방으로 이송시켰다.

  포로가 된 중국군은 중상자가 대부분인 20여명이라고 3중대장이 보고했는데, 일발에 적을 죽이지 못하고 부상자로 만들어 고통을 준데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처럼 보여 빠뜨랭을 전율시켰다.  내세를 믿는 것인가?  빠뜨랭은 자문했으나 그들의 생활과 종교를 잘 모르는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중국군 1개 대대병력, 2km 전방, 급속 남하 중!  선두에 1개 분대의 정찰병력!]

  수색소대장의 보고가 유창한 영어로 또렷이 들려왔다.  쪼글쪼글하게 생긴 늙은 네팔인 소대장이, 영국인은 아니지만 정통 교육을 받은 유럽인인 빠뜨랭 중령 자신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도 전에 인도군 소속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국군에 소속된 구르카여단의 지휘관은 구르카어를 말해야 했다. 만약 그가 구르카어를 구사하지 못하거나 용맹과 지구력에서 이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면, 병사들은 가차없이 지휘관을 몰아냈다. 그들이 전쟁에서 이룩한 신화만큼 구르카용병의 자존심은 강했다. 그러나 피스에 소속된 구릉족들은  네팔인들이 가장 명예로 생각하는 영국군이 아니었다. 이들은 세계각지에서 경호원이나 경찰 등으로 활동하다가 피스의 용병이 된 사람들이다.

  빠뜨랭은 그들이 전쟁에서 프로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인정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프로정신으로 구르카용병은 그 어느 군대보다도 전투력이 강했고, 특히 육박전과 유격전에서 그랬다.  그러나 이들은 교육수준이 낮기 때문에 대규모 부대의 지휘관은 맡기 어려웠고, 이 기회에 빠뜨랭이 지휘관을 할 수 있었다. 계급은 곧 봉급이었고, 이는 방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각 부대 즉각 북진!"

  이들은 약 700여 미터를 전진하여 새로운 매복선을 준비했다. 앞서서 전멸당한 중국군들이 침투한 산길에 크레모어를 매설했다. 중국군의 군화자국이 많고 날이 어두워 의심을 받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크레모어를 설치하자마자 중국군 정찰대가 눈덮인 산길을 헤엄치듯 서둘러 헤치며 남쪽으로 내려갔다. 곧이어 적의 주력이 도착했는데, 이들은 양쪽으로부터 포위된 상황이었다.  총소리가 멈추자 당황했는지, 이들의 발걸음은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빠뜨랭이 아드레날린을 잔뜩 분비하며  막 공격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정찰대의 보고가 그의 이어폰에서 울렸다.

  [대규모 병력 출현! 1개 연대 이상으로 추정됨! 급속 남진 중입니다.]

  "뭐야? 이 좁은 산중에 1개 연대라니?"

  빠뜨랭은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 했다.  다행히 매서운 눈보라가 산자락을 휘감아 돌며 아래쪽으로부터 불어와 그의 말소리가 묻힐 수 있었다.

  [정정합니다. 2개 연대 병력으로 추정!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젠장, 여봐! 무전병. 본부에 연락해서 포격지원을! 공중지원도 부탁해!"

  빠뜨랭이 속삭이며 신호를 하자 무전병이 좌표를 받아 여단본부와 함께 풍산동에 배치된 포병대에 이를 문자로 송신했다.김책(성진)시와 함흥비행장에 있는 통일한국군의 공군기 중에서  야간공격능력이 있는 공격기는 모조리 출격을 시작했다.

  1999. 11. 25  19:30  함경북도 나진 남쪽 대초도

  제 6상륙경보병 여단에 소속된 인민군들이  고무보트를 저어 나진 앞바다에 있는 대초도(大草島) 해안으로 접근했다. 나진과 선봉에 엄청난 숫자의 중국군이 바글댄다는데, 이곳은 너무 조용했다.

  섬의 남쪽 암초인 오지암 뒤에서 적외선감지기로 해변을 비쳤으나 배경과 구별되는 물체는 없었다. 다시 서서히 섬의 남쪽 암벽쪽으로 보트를 저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대초도등대가 있는 곳 바로 남쪽 절벽이다. 등대는 폭격에 의해 이미 파괴되었다.  이들의 임무는 나진의 중국군 병력배치를 살피고 해안방어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이다. 통일한국군은 이곳에 상륙전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7명의 인민군 병사들이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주변은 캄캄했고 적은 보이지 않았다. 선도조 두 명이 서서히 기어서 숲쪽으로 접근했다.  아무리 적이 없다지만,  이들이 포복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분대장인 하 철룡 상사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펑!]

  갑작스런 섬광과 폭음이 이들을 휩쓸었다. 크레모어가 터지자 내장된 수백개의 쇠구슬이 선도조의 몸을 갈갈이 찢었고 폭발과 동시에 조명탄이 하늘을 향해 발사되었다.  하 상사는 이 와중에도 한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선도조 두명은 이미 절명해서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앞쪽 숲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해안초소야! 후퇴하라우~"

  하 상사는 부하들에게 속삭인 후 먼저 기어서 바위를 내려갔다. 숲쪽에서 사격이 시작되었다.  하 상사는 본능적으로 2정의 기관총과 6정의 소구경 자동화기가 발사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두 곳이야. 우회해서 공격하라우. 내레 서쪽을 맡갔서. 자~"

  하 상사가 움직이자 부하들이 두 무리로 나뉘었다. 이들이 떠난 자리로 방망이 수류탄 여러 발이 날아 들었다. 섬광과 폭음이 이어졌다.

  하 상사는 젖먹던 힘까지 내어 가파른 암벽을 기어 올랐다.  이런 경우 즉각 우회하여 공격한 자들에게 역습을 가해야 했다. 아니면 퇴로가 차단되어 고무보트로 후퇴하기가 불가능해진다.

  하 상사보다 먼저 꼭대기에 오른 김 하사가 안전을 확인하고 하 상사와 최 전사가 올라왔다. 최 전사는 즉시 배낭에서 RPG-7을 꺼내 불꽃이 번쩍이는 숲을 향해 조준했다.

  하 상사는 반대쪽으로 돌아간 조가 공격대기 상태에 들어갔을까 계산해 보았다. 약간 일렀다. 그러나 공격을 늦출 수는 없었다.

  "두 발 연속 사격하라우."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 전사가 RPG를 발사하고  서부의 총잡이처럼 배낭에서 탄두를 꺼내 신속하게 재장전했다. 최 전사가 다시 조준하여 발사하기까지 채 2초가 걸리지 않았다. 첫 발이 목표를 잡았을 때는 이미 제 2탄이 흰 연기를 뒤로 뿜으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내려가!"

  이들은 올라온 길을 따라 다시 암벽을 타고 내려갔다.이들이 있던 곳에는 사방에서 날아온 기관총탄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1999. 11. 25  19:40  함경북도 부령 백사봉

  "부정확해... 이거 정확히 유도할 수는 없나?"

  빠뜨랭 중령은 포병대의 사격이 정확치 못하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사실은 산자락에 가려 사각(死角)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중국군은 갑작스럽게 십자포화의 중심선에 갇히자, 순식간에 병력을 분산시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었다. 원래 좁은 계곡에 중국군은 더욱 밀집되었다. 적의 덩지가 너무 커서 안타깝게 지켜보기만 하던 빠뜨랭은 속이 바짝바짝 탔다.

  어느새 포격이 잦아들자 숨죽이고 있던 중국군들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했다. 빠뜨랭이 추산해 보았지만 피해는 거의 없었다.  할 수 없이 부하들에게 공격명령을 막 내리려던 차에 상공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쌔~~~~액]

  "왔다!"

  빠뜨랭이 하늘을 보니 고공에 엄호 전투기들이 편대비행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저공으로 수십대의 전투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위성 위치 파악 시스팀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 아군기에 의한 오폭은 걱정할 것이 없었다. 전투기들은 정확한 위치에 폭격을 시작했다.

  첫번째 팬텀 편대가 일렬로 접근하더니 기화폭탄을 투하했다. 순식간에 하얀 산이 붉게 물들 정도로 화염이 솟구쳤다.  계곡에는 벌건 불길이 낼름거리는 독사의 혓바닥처럼 하늘로 뻗었다.

  두번째 편대가 숨쉴틈도 없이 클러스터 폭탄을 투하하자 콩볶는 듯한 소리가 산 전체에 메아리쳤다.수많은 자폭탄들이 분산하여 중국군이 밀집한 곳 5미터 위에서 연달아 폭발한 것이다. 뿌연 연기가 사라진 곳에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빠뜨랭은 이 광경을 보며  자신이 폭격의 중심선에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부들부들 떨었다. 좁고 기다란 계곡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회령 남쪽인 풍산동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구르카여단을 치기 위해 야습에 나섰던 인민해방군의  1개 사단 병력은 백사봉 남동쪽인 신현에서 이렇게 괴멸당했다.

  몇 개의 빛줄기가 상공으로 쏘아졌다.  폭격을 마친 30여대의 팬텀기와 비슷한 수의 드래곤 플라이는 저공으로 남쪽을 향해 비행했고, 미사일은 F-16 편대가 몸으로 받았다. 이들은 지대공 미사일을 회피하며 저공비행으로 중국군 미사일부대를 찾았다. 그러나 미사일을 피하지 못한 전투기들이 공중에 갖가지 색의 수를 놓았다.

  전투기들이 저공비행으로 산그늘 뒤로 숨자 대레이더미사일을 우려한 중국군 고사포부대는 즉시 레이더의 전원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의 위치는 이미 전투기의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었다.  날렵한 F-16이 전과를 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하늘은 완전히 F-16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상황이 전혀 달라지게 되었다.중국군은 만주의 각 비행장에 뿌려진 윤활제를 제거하여 내일의 출격에 대비하고 있었다.이 상황변화는 통일한국군의 제공권에  중국군이 도전하는 형식이 되지만, 숫적으로 열세인 통일한국군이 과연 제공권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통일한국군이 걱정하는 것은 사실 이것이었다.

  1999. 11. 25  18:50  중국 상하이 북쪽 총밍따오

  "검문소! 올 때는 없었던 것입니다."

  운전을 하던 요원이 바짝 긴장했다.30분 동안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작전회의와 현지상황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갖다가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 미사일기지쪽으로 출발했는데, 길 모퉁이를 꺽자마자 전방 50미터 정도에 검문소가 보였다.  미리 알았다면 우회하거나 도보로 갔겠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미니버스는 태연하게 검문소 차단기 앞에 정차했다. 병사가 위병소에서 나와 차창이 열리길 기다렸다.  신 승주 대위가 차창 밖을 보니 그 병사는 일반 인민해방군 의무병 중에서도 가장 졸병인 열병(列兵) 계급장을 제복 깃에 붙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검문소의 위병소는 간단한 이동식이었다. 안에는 나이가 약간 들어보이는 고참 병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 되자 도로에는 통행하는 차량이 거의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간세(間世)라도 침투했나요?"

  운전사가 통행증을 꺼내 검문소 병사에게 건네주며 상하이 억양이 강하게 섞인 북경어로 물었다.다행히 병사는 차 안의 실내등을 키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 병사가 승객들에 대해 약간이라도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들이 중국인과는 약간 다른 외모를 가졌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그렇게 된다면 병사는 승객들에게 질문을 할 것이고,  중국말이라고는 조금밖에 할 줄 모르고 중국어 억양에도 문제가 있는 요원들은 당장에 중국인이 아닌 것이 들통날 것이 뻔했다.

  "유도탄기지에 대한 경비가 강화됐어요.앞으로 밤에는 통행제한이 있게 될지도 몰라요."

  병사가 추운지 발을 구르며  차 번호와 통행증에 있는 내용을 검문소 일지에 적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몇시부터 통금이 될 것 같습니까? 언제부터요?"

  운전사는 짐짓 장사에 관계되는 것부터 물어 보았다.  졸병이라서 그런지 역시 그 병사는 술술 이야기 해 주었다. 나머지 요원들은 조는 척하며 병사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중간중간에 모르는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글쎄요. 아직은 상부에서 명령이 안내려 왔지만, 통금에 대비하라고 하는군요. 우린 이 검문소에서 당분간 계속 근무할 겁니다."

  운전을 하는 요원은 젊은 병사를 보고 약간 만만하게 느꼈다.뭔가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여기 유도탄 기지가 있었나요? 굉장하군요."

  "모르셨어요? 원자탄 기지인데요. 엄청나죠?"

  인민해방군 병사는 아는 것 모르는 것 다 동원해서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 댔다. 자신은 기지 수비대 소속인데, 최근 병력이 증강배치되었다는 둥, 미사일기지 주변에 지뢰를 깔았다는 둥, 군사비밀에 해당될만한 것도 떠들어 댔다. 팀장인 이 우철 과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위병소에 있던 군사(軍士--하사관급)가 기다리다 못해  열병을 부르자 열병이 통행증을 다시 건네주고 차단기를 올렸다.  운전사는 전조등을 키고 천천히 어두운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지뢰라... 우린 지뢰에 대한 준비가 안되었는데..."

  장비를 최소한으로 준비했기 때문에  지뢰탐지기 같은 야전용 장비는 전혀 준비를 하지 못했다.  여름 해변에서 종종 금속탐지기를 이용하여 동전을 줍는 모양을 볼 수 있는데,  지금 이곳은 휴양지도 아니고 여름도 아니었다.지뢰탐지기를 대용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이 과장의 고민이었다.

  "쩝... 기본 실력으로 헤쳐 나가야죠. 루트에 지뢰를 매설할 만한 곳은 얼마 없습니다, 과장님."

  미사일기지에 잠입할 루트는 주로 산길로 되어 있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일반적인 대인지뢰라면 염려할 것이 없지만,  내전 당시에 미국에서 대량수입한 크레모어가 문제였다.  미니버스는 어느새 베이스캠프인 산속의 외딴집에 도착했다.

  1999. 11. 25  19:00  중국 지린성 뚠화(敦和)

  백 대위가 있는 가 소좌의 팀은 미사일기지가 보이는 산 중턱에 도착했다.  야영지는 산에 있는 작은 동굴로 예정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통역 겸 안내역인 요원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동굴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접선예정시간이 조금 지나자 세 사람이 나타났고,  이들은 즉시 산개하여 총구를 들이대며 암구어를 물었다.

  "우산!"

  "장마!"

  이들 사이에 팽팽하게 번져있던 긴장감이 녹아 들고 현지요원들이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오시느라 수고 많았수다."

  "반갑수다레~ 동지들!"

  날은 이미 어두웠지만 눈빛에 비친 그들의 얼굴은 엉망이어서 마적단을 방불케 했다. 가 소좌가 묻자 현지요원들은 그동안의 고생이 끔찍한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공안부 아새끼레 뎡말 지독하디요. 닷새 동안이나 추적을 받다가 기아새끼들 다 듀이고 왔습네다. 한참을 돌아 왔디요. 자, 가시면서 설명해 드리디요."

  이들의 책임자인 듯한 요원이 간단히 설명했다.  중국 공안원들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현지요원들에 대한 검색에 들어갔다.  원래 이들은 영사관 구실을 하는 조선주중연길리익대표부(駐中延吉利益代表部) 소속이지만, 하는 일은 첩보활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중국군의 이동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익대표부가 북한에 이를 보고하기도 전에 이익대표부는 중국 공안원들의 습격을 받았다.  간신히 검거를 피한 요원들은 중국 공안부 소속의 비밀경찰들에게 추적당하는 중 뿔뿔히 흩어졌고, 이들 세명만 간신히 활동을 유지하고 정보를 북한에 보내기 시작했다.

  뚠화(敦和)의 중국군 핵미사일 기지에 가장 가까이 있던 이들은 이번 임무에 차출되어 장장 120여km의 눈길을 도보로 헤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추적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멀리 위회하기도 해서, 실제 이들이 주파한 거리는 훨씬 더 되었을 것이다.

  "뎡말 수고 많았수다레, 동지들."

  가 소좌가 이들의 영웅적인 행위에 감동이 되어 칭찬하자 현지요원들은 담담하게 칭찬을 사양했다.

  "일없시요. 당과 린민을 위한 것이디요. 전선에서 싸우는 동지들이레 더 노고가 많갔디요. 다 왔습네다."

  현지요원들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달빛만 고요할 뿐 산중에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기렇소.  우린 기필코 이번 조국수호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여야 할 것입네다. 기런데 비트레 어딨시요? 당최 보이디 않는구만."

  백 중위가 세제 이름같은 비트라는 말을 듣고 킥킥댔으나, 이는 비밀 아지트의 준말이고, 항일빨치산 시절부터 써오던 유서깊은 용어였다.

  "동지 눈앞에 있디 않습네까?"

  현지요원이 손으로 앞쪽을 가리키자 가 소좌가 유심히 그곳을 살펴보았다. 거의 완벽한 위장상태였다.  가 소좌는 현지 요원의 안내로 중국 미사일기지를 정찰하러 나가고 나머지는 짐을 풀었다. 피로보다는 그동안 참았던 추위가 더 견딜 수 없었다.  땀이 식은 곳에 남은 물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백 중위가 방탄조끼 안쪽에 장착된 방한조끼의 발열스위치를 넣자, 화학에너지를 이용한 발열제가 열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해서인지 졸음이 스르르 몰려왔다.

  1999. 11. 25  20:00  대전, 유성 정보사단

  "대부분 베이스켐프에 도착할 시간입니다. 아직은 어떠한 무선보고도 없습니다. 무사하다는 증거로 보아도 되겠습니다."

  임시로 통신대대에 지원나온 이 현우 소령은  통일참모본부 소속이라는 중장과 함께 중국에 침투한 요원들의 예상 진로를 보고 있었다.  이 젊은 중장은 너무나 긴장해 있었다.  이 소령이 보기에도 이 작전은 굉장히 중요했다.  아니, 차라리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작전의 제안자이며 지휘자인 양 석민 중장은 입술이 바짝 타 있는 모습이었다.

  "장춘 부근에 눈폭풍이레 불고 있습네다. 기상이 워낙 됴티 않티만서두, 우리 조종사 동무들을 믿어도 됴습네다."

  이번 작전의 부책임자로서 인민군에서 파견된 박 형순 상장은 15개의 화살표가 중앙의 대형화면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지금 시간에는 대부분 도보로 목표에 접근할 예정이라서 전진속도가 너무 느렸다.  옆의 의자에 눕다시피 한 정보사단장 이 재영 중장은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밤을 새야 한다니 너무 끔찍했다.

  "절반만 성공해도..."

  "대성공이갔디요."

  김 중장의 말을 박 상장이 받았다.이들이 세운 목표는 공격대상인 중국 미사일기지 절반 이상의 점령이었다.  그러나 성공여부는 극히 불투명했다. 기지수비대의 방어를 뚫고 통제실까지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왔다. 그렇다고 무작정 많은 요원을 투입할 수도 었었다.

  "문제는 중국이 오늘부터 기지수비를 대폭강화했다는 것입니다. 주로 대공방어 위주로 했지만 지상병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비전담 병력만 1개 중대가 넘었습니다."

  해커인 김 준태 소령이 다시 한번 모니터로  변화된 상황을 확인하며 걱정을 했다. 김 소령은 친구인 구 성회 소령과 함께 교대로 거의 열흘간 밤샘작업을 했다.  이들이 끌어들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중국 핵미사일 발사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는데, 두시간마다 암호가 계속 바뀌어 요원들이 기지를 장악할 때까지  중국군 중앙컴퓨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잘 되겠지요. 아니, 잘 되어야죠."

  양 중장은 구 성회 소령이 자고 있는 소파 한쪽에 앉았다. 구 소령의 오른쪽 허리춤에 달린 권총이 대롱거렸다. 구 소령과 김 소령은 입대후 아직 권총사격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것을 양 중장도 알고 있었다. 계속 밤을 새며 중국군 핵미사일의 발사암호를 찾기 위한 노력은  그만큼 눈물겨운 것이었다.

  양 중장도 눈을 붙이기 시작했다.  베이스캠프인 아지트에 도착한 요원들도 지금쯤은 취침을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새벽의 일이 걱정되었으나, 지금은 체력을 비축할 때였다.  양 중장은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1999. 11. 25  20:10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문제는,  만주에 있는 중국 공군기지들에 대한 대공방어가 대폭적으로 강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핵미사일기지나 대도시같은 곳도 물론입니다만, 우리 목표가 아니니 상관은 없지요.  아마도 중국은 우리가 뿌려놓은 반마찰제를 거의 제거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내일부터는 중국군의 대대적인 공습이 예상되며, 우리 공군기가 요격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호석 중장은 내일의 격전이 걱정되었다. 오늘은 한반도와 만주의 제공권을 통일공군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지만, 내일의 상황은 달라질 것이 뻔했다. 오늘처럼 마음놓고 나진,선봉에 집결한 중국군을 두들길 수는 없을 것이다.

  참모들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오늘은 통일한국공군이 신나게 중국군을 두들겨댔지만,  만주의 공군기지가 재가동된다면 상황이 달라질건 뻔했다. 해군도 한반도쪽으로 상당히 후퇴해야 할 것이다.

  "내일은 오늘 새벽에 썼던 반마찰제 말고도 또다른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만, 중국의 미사일 요격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처럼 순순히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걱정이죠."

  이 중장은 한국군이 지금까지 미국의 무기체계에 너무 의존하지 않았나 걱정되었다. 전쟁시작 전부터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지 못했다. 국내 자체생산은 극대화시켰지만, 기술격차로 인해 중거리공대공미사일과 첨단무기의 재고는 격감했다. 해외에 나가있던 선장이나 조종사들이 자발적으로 무기수입에 나섰지만, 이들의 노력도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걱정되었다.

  "피스함대가 제주도 남방 240km까지 왔다는 소식입니다. 해군 소속의 슈퍼 링스가 함대와 통참을 무선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긴급 출동했습니다. 초계기와 전투기들이 호위를 위해 함대 상공에 대기중입니다."

  심 현식 해군중장이 피스함대의 제주도 근해 도착을 알렸다.  짜르의 얼굴이 오랜만에 활짝 펴지고 참모들이 그에게 축하를 해 주었다.

  "다행이오. 잘 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러시아인이며 반전전사집단 피스의 한국연락관,  암호명 짜르는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피스함대가 두 척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나마 중국군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일본함대의 위협으로부터도 벗어난 것이다. 그는 상황실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다들 어디 계신거죠?"

  통일참모본부 상황실에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의장인 이 종식 차수는 신의주 수몰건에 대한 해명을 위해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마쳤으나 아직 돌아올 시간은 멀었고,양 석민 중장은 유성의 정보사단에서 뭔지는 모르지만 비밀작전을 지휘한다고 들었다.

  이 차수를 대신하여 의장대리직을 수행중인 한국육군의 정 지수 대장은 김 병수 인민군 대장을 힐끗 훔쳐 보았다. 김 대장이 시선을 의식해 정 대장을 보자 정 대장은 즉시 그를 외면했다. 김 대장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받았으나 국군 참모들이 불쾌해 할까봐 내색하지는 않았다.  정 대장은 자신의 의견이나 지휘관련정보를 거의 말하지 않고 있었다.

  1999. 11. 25  20:20  평양 조선로동당 3호 청사

  "아니 됩네다, 동지! 기럴 수 없습네다!  갑자기 그라시는 이유가 멉네까?"

  이 종식 차수는 인민군 및 당 서열상 한참 상급자인 최 광 차수의 뜻에 최초로 거스르게 되었다. 최 광 차수의 표정이 심각해 지고 있었다. 넓은 회의실에는 두 명의 인민군 차수와 함께,  인민군의 핵심실세들인 이 원봉 호위총국장 대리와 이 하일 당군사부장 겸 평양지역 사령관 등 2명이 배석했다.

  이 두사람은 혁명 2세대로서 나이 60대 후반의 고참 대장급이었는데,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러시아에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었다.  개전 첫날 주석을 비롯한 인민군 수뇌부가 전멸하자 즉시 최 광 차수와 함께 군부내 실권을 장악해서 지금까지 전쟁을 수행해 오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 원봉 호위총국장 대리는 전쟁 전에는  당 총정치국 부국장을 하다가 차수 이상의 군수뇌가 전멸하자 호위총국장을 맡았다. 이들은 당 권력서열에서 이 차수 보다 훨씬 높은 사람들이라서 이 차수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이 무언의 압력을 가해 왔다.

  "작전장마레... 이미 중국에 노출되었소. 실패요.  주조(駐朝)중국대사레 다시 한번 내게 종용했수다."

  이 차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중요한 작전이 사전에 적에게 노출되다니, 엄청난 사실이었다.

  "그걸 어떻게... 대사가 참모장 동지를 협박했단 말씀입네까?"

  "... 그런 셈이오. 그들은 이미 모든걸 알고 있단 말이오. 작전 장마에 모든 계획이레 모조리 탄로났소.  우리가 핵유도탄에 비밀코드를 알고 있단 사실서껀 모조리... 대사는 투입된 요원들에 현위치를 알려 달란 게요. 앙이면 오늘 자정, 조선반도에 핵을 쓰갔다는..."

  이 차수는 전쟁이 일어난 이후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를 어쩐단 말인가. 이 차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기럴수가! 당장 작전을 취소하갔습네다!"

  "앙이 되오. 기럴 순 없소."

  최 차수는 단호했다. 이 차수는 장마작전을 취소하고 이를 중국에 통보하면 핵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그러나 최 차수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기럼 꼭 요원들을 중국에 팔아 넘기갔다는 겁네까?"

  이 차수가 다소 도발적인 언사를 구사했다. 최 차수의 고민이 무엇인가? 이 차수는 알 수 없었다.

  "내레... 어쩔 도리 없소..."

  "이들을 중국에 넘기더라도 또다른 협박을 할것입네다. 결국엔 조선 강토 전부 중국에 넘어갈 것입네다!"

  "우린 중국군 중앙컴퓨터에 침입했다고 됴아했디만 실은 그들에 함정에 빠진게요. 우리의 대실패요."

  "그들이 미리 알았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 겝네다.  기렇게 당하딘 아니 했을텐데 와... "

  그동안 중국군은 자신의 중앙컴퓨터가 해킹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뒀다는 뜻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보고에 따르면 중국측이 어떠한 보안강화도 하지 않고 컴퓨터를 운용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얻은 정보는 실제 전투에서 통일한국군에 엄청나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중국 장갑집단군의 섬멸이나 중국군의 배치상태 파악,  만주비행장의 폭격까지 통일한국군은 해킹된 정보를 유용하게 써먹었다. 중국은 그정도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건가?

  "어쨋든... 그들의 위치를 넘겨 주기요.  내레 조국에 핵폭탄이 떨어디는 걸 볼 수 만은 없소."

  "결국 조선반도 전체가 그들의 수중에... 우린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것입네다."

  "기건 앙이오."

  단호하게 대답한 최 차수가 배석한 두 명의 대장을 힐끗 보다가 말을 이었다. 두명의 대장이 눈치채고 약간 우려하는 눈빛을 띠었으나 최 차수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약조가 되어 있소. 중국이 우릴 지원하기로..."

  "기기 무시기 말씀입네까? 설마..."

  이 차수가 얼핏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최악의 상상이었다.그러나 곧이어 최 차수의 입에서 터져나온 선언은 그의 최악의 상상과 다르지 않았다.

  "조선에서 사회주의가 결국 승리하는거요."

  최 차수의 말을 들은 이 차수가 벌떡 일어났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기럼 중국의 힘을 빌어 남반부를... 안됩네다!  다시는 동포를 적으로 돌려선 안됩네다! 다시는... 우린 다시는 겨레를 미소로 대할 수 없게 됩네다. 기건 비극입네다."

  불쌍한 남반부 인민들...  그들은 맹방이었던 미국, 일본과의 사이가 벌어지는데도 불구하고 통일을 추진했다.중국이 이들의 명확한 적인 이상, 그들을 도와줄 나라는 전혀 없었다.  러시아가 이 사태를 방관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힘을 잃은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던 러시아의 태평양함대는 이미 화석이 되어 있었다. 전쟁 중에 미사일 등의 무기를 한국측에 넘기기도 했지만, 남북한이 서로 싸운다면 어느 편에 설지는 뻔했다.

  "우리 임시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선 기렇게 결정을 보았소. 동무도 위대한 사회주의 조국의 인민이라면 당과 조국의 명령을 받드시오."

  "아아... 길타고 적전 분열을...   중국의 전통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입네다.  36계 중에 제 3계인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이며 구미 제국주의자들의 divide and rule입네다. 뻔한 것 아입네까?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갔다는 중국의 속셈..."

  "중국이 이민족이라고 해도 사회주의 동포요. 우리 조국에 대한 침략을 절대 하지 않갔다고 맹서했소. 그들에겐 단지 나진과 선봉만 떼어주면 되오.  대신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연길을 공화국에 넘기기로 했소.  이 정도면 퉁분하디 않갔소?  전쟁도 끝내고 만주의 땅도 얻게 되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 선택이었고, 강요였다. 이 차수는 목숨을 버릴 각오를 했다.  연길이 있는 연해주, 즉 우수리강 동쪽지방이 원래 한민족의 땅이었는데 잘못된 국경조약에 의해 잃게 되고,  이를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확인했다는 따위의 말은 할 필요조차 없었다.

  "총참모장 동지!"

  이 차수가 두터운 뿔테안경을 쓴 최 차수를 노려 보았다.  81세의 이 노인은 아주 고지식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1969년, 반혁명죄를 묵인했다는 이유로 숙청되어 탄광노동자가 된 그는, 김 일성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발휘하여 김 일성까지 감동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김 일성에 의해 1988년, 다시 총참모장이 되었다.

  "저도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이지만,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는 않갔습네다. 조국을 침공한 그들의 말을 믿딘 않갔십네다. 최근 2년간 남반부 사람들과 많이 만났디요. 그동안 원한과 증오가 깊었습네다만, 기래도 분명히 따뜻한 피가 흐르는 우리의 동포였습네다."

  최 차수와 두 명의 인민군 대장은  이 차수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대장 두 명의 눈빛이 마주쳤다.  어쩔 수 없다는 시선의 교환이었다. 그는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는 위험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현재 직책이 너무 무거웠다.  남북 모든 병력의 지휘권은 그가 의장으로 있는 통일참모본부에 귀속되어 있었다.결코 남북의 위정자들이 원했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는 전쟁을 잘 이끌어 오고 있었다.  그래도 이 순간이 지나면 이 노장군은 숙청당하리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남북이 서로 싸울지도 모르는 판에 통일참모본부는 무용지물이다.

  "그들은 통일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했습네다. 서로간의 오해를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네다. 수년간 계속된 홍수와 가뭄으로 굶주린 인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습네다.  사회주의도 결국 해결해 주지 못한 문제였습네다. 영명하신 지도자 동지도 해결하디 못했습네다."

  "동무!"

  이 하일 당군사부장이  이 차수의 말이 듣기 거북해 제지하려 했으나 최 차수가 그를 막았다. 이 차수의 말이 이어졌다.목숨을 건 위험한 설득이었다.

  "사상과 주의는 인민을 위한 것입네다. 당도 인민을 위한 조직입네다. 우리 어버이들께서 항일투쟁을 하실 때나 조국수호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인민을 위한 것이었습네다.  인민은... 우리의 신앙이며, 또한 우리 자신입네다. 진정 어칸 것이 인민을 위한 것인디 생각하셔야 합네다.

  길티요... 우린 전쟁을 하고 있습네다. 중국의 핵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네다. 기것 때문에 우린 장마작전이란 것을 계획했디요. 사실 실패한다면 더 큰 재앙을 몰고 올 수 있습네다.  기러나 우리의 선택은 하나뿐이었습네다. 중국이 작전 장마의 개요를 알고 있다디만, 분명 자세히는 모를갑네다. 요원들의 비트도 모르디 않습네까?  중국이 자정에 우릴 공격한다면, 우린 작전예정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습네다.  어차피 중국의 핵위협에 대한 대처작전이 앙이갔습네까?"

  이 차수는 의문을 제기하며 잔뜩 겁을 먹은 군부 수뇌들을 설득했다. 최 차수가 다시 깊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동지들의 사회주의와 인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깊이 잘 알고 있습네다. 통일조국이 사회주의조국이라면 더 됴캉디요. 통일국회에서 헌법을 제정하고 있는데, 사회주의 강령을 따른 것이 많다고 들었습네다. 기래도 시장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할깁네다. 사회주의의 명확한 패배디요.

  하디만 중국은 이민족의 적이며, 남반부는 동포요, 동지입네다. 이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는 것이 됴캉습네다."

  이 차수는 억지로 설득하려고만은 하지 않았다.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그는 결정권을 최 차수에게 다시 넘겼다.

  "이 동지는 내더러 남반부 대통령을 만나보라는 것이오?"

  "기렇디요."

  최 차수의 마음이 흔들렸으나 대통령을 만나라는 말에는 기분이 상했다. 홍 대통령은 국민의 직선에 의해 선출되었고, 자신은 당에 의해 임명된 총참모장에 불과했다.  현재 실질적인 북한내 권력순위 1위라고는 하지만, 남한에서는 그를 군부실세 정도로만 치부했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의 군령권을  이 차수가 의장으로 있는 통일참모본부에서 집행하고 있지 않은가? 남반부에서 보면, 자신은 허수아비 총참모장에 불과할 것이라는 자괴감이 들고 있었다.

  "김 일성 수령 동지께서 말년에 와 남반부 대통령을 만나려 하셨갔습네까? 통일을 하자는 것이었습네다.  서로 대치하다간 공멸하고 말갔다는, 길고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인식이었습네다.  사회주의조국에 의한 남반부의 무력해방보다는,  북남 인민들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용명하신 판단이었습네다."

  "동무가 수령동지에 대해 알면 멀 아네?"

  최 차수가 화를 버럭 내며 이 차수를 노려 보았다.  부하들에게 거의 화를 내지 않는 최 차수였지만,  그는 김 일성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부하에 의해 평가받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김 일성이었다면  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까 생각했다.

  그래도 당장에 중국의 핵공격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자신에게 있었다. 만약 남반부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그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어차피 중국의 핵에 의해 통일한국이 패배하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면,차라리 이 기회에 남조선을 무력통일하는 것이 낫지 않나 싶었다. 조선강토와 인민도 지키고, 남조선도 해방할 기회였다.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이미 결정한 바 대로,  그는 중국의 제의를 받아 들이기로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제가 지휘권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통일참모본부레 결국 합의체입네다. 길고 지금은 남반부에 남양주로 이전했습네다.  알고 계시겠디만. 중요한 것은, 남반부 국방군이 통신정보망을 모조리 장악했다는 겝네다. 이 상황에서 결코 참모장 동지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겝네다."

  이 차수는 참모장인 최 차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아닌가 후회했다. 그도 이미 이런 건 고려했을 것이다.

  [똑똑!]

  "메이야? 아무도 들어오디 말라고 하디 않아서?"

  문을 열고 들어온 호위총국 소속의 젊은 대위에게 최 차수는 다시 한번 화를 벌컥 내고 말았다.  잔뜩 겁에 질린 대위는 그래도 두 명의 차수에게 거수경례를 하며 보고했다.

  "죄송합네다.  통일참모본부에서 이 차수 동지께 아주 중요한 연락이 있다고 합네다."

  이 차수가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최 차수가 잠시 생각하더니 화상통신을 연결하라고 명령했다. 화면에는 이 차수의 기억에 없는 인물이 나왔다.

  [방금 전에 통참의 전산정보실에서 오 성윤 대위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통참의 컴퓨터가 해킹당하고 있었습니다. 상당한 분량의 비밀정보가 유출됐습니다.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습니다.]

  전산정보실장인 강 승철 대령이 보고했다.  김 준태와 구 성회 등 대학생 해커들이 활동할 공간을 만들어 준 곳이 이 전산정보실이고,두 사람은 해킹계의 실력자들을 뽑아 같이 활동했다.오 성윤은 구 성회의 동호회 선배였다.

  "빠져나간 정보레 어느기야?"

  [중국군에 관련된 자료 전부와 통일한국군 편성현황, 작전성과보고와 작전계획, 그리고 나진선봉 탈환작전계획 등입니다.]

  "메이야?  이럴 수가... 동무! 혹시 작전 102에 관한 것도 있간?"

  강 대령이 목록을 확인하더니 유출되었다고 보고했다. 맙소사!  정말로 다 빠져나간 것이다.  이 차수의 표정이 창백해 졌다. 강 대령은 단지 관리자라서 작전 102의 실체, 정확한 명칭인 작전 장마의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작전실행 몇시간 전에야 모든 정보가 중국측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다니, 이미 작전은 완전실패였다.  작전내용 유출은 이 차수의 애초 예상처럼 최 차수가 중국에 빼돌리거나 첩보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통일참모본부 컴퓨터에서 해킹된 것이라면, 중국은 통일한국군의 작전을 손바닥 들여보듯 알고 있는 셈이다.

  "거 보라우... 내말이 맞디..."

  최 차수가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이 차수를 나무라는 순간 화면에 다른 얼굴이 나왔다.  새파랗게 젊은 국군 대위였다. 상당히 어색하게 경례를 하더니 실장의 보고를 보충했다.

  [의장님! 이들 정보는 중국이 아니고 일본이 빼갔습니다. 통화내역을 조사해 보니,  일본 도쿄도 미나도쿠 롯폰기에 있는 자위대의 중앙지휘소로 정보가 유출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정보의 유입을 다른 컴퓨터로 이전시켰습니다. 대신, 다른 가짜 정보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해킹방법은 교묘해서 자취를 남기지 않았습니다만,  남양주전화국에 있는 통화내역을 조사해 보고 찾아낸 겁니다.

  지금까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해커는 우리가 중국군 컴퓨터를 해킹한 경로로 침입해서 데이터를 일본쪽으로 유출케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을 거쳤기때문에 우리가 중국을 해킹한 사실이 그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했어야 했습니다.  현재 그들의 해킹 프로그램을 찾고 있으며, 차후의 보안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중국이 아니고 분명히 일본이 우리 컴퓨터를 해킹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이!"

  "일본이 넘겨줬구만!"

  이 차수와 동시에 최 차수가 신음성을 발했다. 일본이 중국에게 모든 정보를 다 내주었을까? 그것은 의문이었다. 잠시 손익계산을 해 보았다.

  "기럼 방법이 있습네다."

  이 차수의 눈빛이 반짝이며 최 차수를 바라 보았다.  최 차수가 결심을 굳혔다.  중국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일본이 모든 정보를 중국에게 줄리는 만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 차수는 일본이 중국의 배후에 숨어서  이번 한중전쟁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항일전쟁 때 일본제국주의에 치열하게 투쟁했던 선배들이 자신의 꼴을 보고 뭐라고 비난하실까?  최 차수는 부끄럽기도 했다.

  "동무! 남조선 대통령과 화상통신 준비하라야."

  "알갔습네다, 총참모장 동지!"

  아직까지 벌벌 떨고 있는 호위총국 소속의 대위에게 명령하자,  그가 익숙한 동작으로 통신기를 조작했다. 두 명의 대장은 약간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으나, 그의 상관은 최 광 참모장이었다.  이들의 상관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무한이었다.

  1999. 11. 25  20:30  함경북도 부령 백사봉

  빠뜨랭이 지휘하는 구르카여단 5대대는  중국군 1개 사단이 괴멸당하다시피 한 계곡 아래쪽에 아직도 숨을 죽이고 매복하고 있었다. 중국군들이 몰려와 부상자들을 호송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변에 적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한 것같았다. 행동은 신중했고, 절대로 밀집대형을 취하지 않았다.

  [칠까요?]

  "놔둬."

  계곡 건너편에 있는 대대 작전참모가 공격을 건의했으나 빠뜨랭은 신사였다. 쉽게 전과를 올릴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이럴 때 치면 신사도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는, 그는 더 큰 적을 노리기로 했다. 과연 몰려오기 시작했다. 중국군 병력은 정말 무한한 것같았다.

  [1개 여단에서 사단병력! 또 몰려 옵니다.]

  정찰대 지휘관이 혀를 내둘렀다.  인구가 얼마 안되는 네팔 사람들은 중국군에 기겁을 할만 했다.  1개 사단이 전멸한 곳에 또다른 대규모병력이 몰려오는 것이다. 이들은 매우 신속하게 움직였다. 정찰대에서 보고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벌써 주매복선을 넘어오고 있었다.

  "공격준비! 포격 및 공중공격 지원 요청하라."

  대대장이 헤드셋을 통해 짤막하게 명령했다. 구르카 병사들의 눈빛이 번쩍였다.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구릉족이었지만, 이 프랑스인 대대장은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외인부대가 허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용기에 있어서, 이들은 결코 대대장을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중국군은 개척된 통로를 따라 구르카대대가 매복해 있는 계곡을 반정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이동은 너무 신속했다.  1개 사단이라는 대규모 병력이 이 짧은 시간에 반이나 빠져나가다니, 빠뜨랭은 시계를 보았다. 예정된 공중지원은 이미 때를 놓쳤다. 중국군 부대의 후미가 매복선 중앙에서 서쪽으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빠뜨랭이 명령했다.

  "공격!"

  [...............]

  엄청난 폭음이 계곡에서 메아리쳤다.  신속행군하는 중국군의 또다른 병종사단 병사들의 발자국과 숨소리만 들리던 산에 총성이 난무했다.병종사단의 후미에 있던 중국군은  갑작스런 사격에 쓰러지거나 서쪽으로 도주했다.  가장 서쪽에 있던 중국군 선두연대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화에 직면하여 전진을 멈추고 분산했다. 포위공격에 당황했는지 응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군이 도주함으로써 일단 이곳의 전투는 끝났으나, 중국군은 서쪽에서 재편성하여 몰려올 기미가 보였다. 전방은 포격, 후방은 매복부대라는 상황에서 속이 편할 지휘관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쪽은 위치가 노출되고 숫적으로 열세이니 불리할 것이 뻔했다.

  "후퇴할까?"

  빠뜨랭이 구르카 병사들의 마음을 떠 보았다. 여기저기서 중대장들이 말도 안된다면 전투속개를 주장했다. 빠뜨랭이 씨익 웃었다.

  "전투가 다시 시작되면 담배 있는 병사들은 나뭇가지에 불붙인 담배를 끼워 놓으라고 명령하게."

  [..., 알겠습니다.]

  중대장들은 대충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간 모양이었다.야간전에서는 적의 병력규모를 알기 어렵다.  멀리서 보면 총구에서 솟는 화기(火氣)와 담뱃불을 구분하지 못한다. 전투같은 경황없는 때에는 더 심해진다. 이는 인민군이 6.25 때 미군에게 써먹던 수법이었다.  양구지구에서 숙영하던 미군 1개 사단과 한국군 1개 연대가 인민군 1개 대대의 야습을 당했는데, 양쪽 산을 온통 수놓은 담배불을 총구에서 나오는 불로 오해하여 모든 장비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진 적이 있었다.

  5대대는 더욱 분산된 진형을 취하며  후방에서 올지도 모를 중국군에도 대비했다. 그때의 인민군에 비하면 지금의 구르카 대대가 더 불리했지만, 결과는 모를 일이었다. 빠뜨랭은 참호선을 약간 전진 시켰다.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0미터 정도 전진했는데, 이는 또다른 함정이 되었다.

  1999. 11. 25  20:35  평양 조선로동당 3호청사

  "준비됐습네다.  광화문에 있는 정부종합청사라고 합네다. 지금 국무회의 중입네다."

  최 광 차수는 대형화면 중앙에 나온 대통령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정부고관으로 보이는 민간인들과 고위장성들이었는데,  이들은 편안한 자세로 회전의자에 몸을 깊숙히 파묻고 졸고 있거나 끼리끼리 잡담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남반부 대통령이 무소속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국의 국가원수 앞에서의 자세로는 너무 불경스럽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아... 지금 장관들은 인질이지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해요. 하하하~ 휴대전화기도 모두 압수된 상태고... 최 차수님, 무슨 일입니까?]

  최 차수가 놀란 표정을 짓자,  대통령이 뒤를 돌아보더니 농담식으로 이야기했다. 대통령 뒤로 안기부장이 바싹 다가 앉았다.  최 차수도 얼굴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그자의 지령으로 자신이 최근 남한의 안전기획부 요원들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 각하! 사람들이 너무 많군요."

  [에고... 비밀스런 이야깁니까?]

  대통령이 다시 뒤를 돌아 보았다. 몇몇 장관들이 화면에 비친 인민군 장성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 보고 있었다.최 차수는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저들을 다 물러가게 할 수는 없습네까? 작전 장마에 관한 중요한 말씀입네다."

  [아... 이들에겐 다 설명했습니다.그래서 작전이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방금 양 중장에게서 중국측이 우리 작전을 눈치챘을 거라는 보고도 들었습니다. 일본이 정보를 넘겨줬다죠.]

  "네... 기럼 어카실 생각입네까?"

  대통령은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었다.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는 사실이 최 차수에게는 더 이상했다.

  [할 수 없죠. 작전시간을 약간 당기는 수밖에... 중국이 그렇게 함부로 핵을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공군요격부대가 출동준비 중이니 그거나 믿어야죠.]

  "중거리지만 탄도탄입네다. 요격이레 매우 힘들 것입네다. 길고 서울이 가장 큰 목표라는 사실도 아시갔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잃은 땅은 회복해야 되고, 핵은 맞으면 안되고... 어쩔 수 없죠.  절대로 나진과 선봉을 중국에게 넘겨주어선 안됩니다. 우리 민족에게 비수가 되어 되돌아 올 것입니다.]

  최 차수는 대통령이 북한의 땅을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사실에 대해 놀랐다.그리고 자신보다 그 땅의 중요성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도 새로왔다. 최 차수가 결심했다.

  "주조중국대사가 장마작전에 투입된 요원들의 아지트를 넘겨 두디 않으면 자정무렵에 핵공격을 실시하갔다고 포고했습네다.넘겨줄 경우, 인민공화국이 북남통일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주갔다는 약속도 했습네다."

  옆에 앉은 안기부장이 의외라는듯 최 차수를 응시했다.  자신이 얻은 정보와 같은 내용을 최 차수가 실토하고 있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저 간나이... 날 둑이려 했디...'

  최 광 차수는 안기부장을 분노에 찬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안기부의 미행은 거의 드러내놓고 하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자신에 대한 암살위협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남반부 대통령이 그 계획을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대통령은 빙긋 웃더니 말을 이었다.

  [허허~ 그래요? 엄청난 협박이군요. 조건도 그렇고... 그럼 어떡하시겠습니까? 말씀 하시는 걸 보니 그렇게는 안하시겠군요. 감사합니다.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군요.]

  최 차수는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젊은 대통령치고는 과연 대단한 배짱이었다. 최 차수가 가장 큰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지난 중국내전 때였다. 중국이 내전으로 정신이 없을 때 한국이 북조선을 봉쇄했다면,전쟁물자의 비축이 바닥났던 인민군은 일패도지할 것이 분명했다.일부 남조선의 우익언론은 남조선정부를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고 있었다. 그러나 홍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최 차수는 그 이후로 남조선에 대한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작전시간이레 대폭 당겨야 합네다. 기리고 일본은 차후에 꼭 응징할 것을 약속해 주십시요."

  대통령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뜻으로 최 차수는 받아 들였다.

  화상통신을 끝낸 최 차수는 다시 당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소집할 것을 명령했다.  이 기회에 한중전쟁을 반대해 오던 친중인사들도 숙청할 것을 결심했다.

  1999. 11. 25  20:40  함경북도 부령 백사봉

  [적, 1개 연대병력!]

  우측에 전개하고 있던 3중대장이 가장 먼저 중국군의 전진을 보고했다. 빠뜨랭은 느긋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능하면 깊숙히 끌어들이려는 생각이었다.

  [적, 현위치에서 대기 중!]

  빠뜨랭은 의아했으나 아직은 중국군의 동향을 살피기로 했다. 아군의 포격은 점점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포격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다.

  풍산동에 있는 구르카 여단의 포병대에서는 155밀리 포사격을 실시하고 있었다. 동시에 공병대에서는 지뢰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제 피아트90 트럭에 탑재된 이스뜨리체 지뢰살포시스팀이 일분당 4,200개의 비율로 대인지뢰를 주요 적진입예상로를 향해 대량으로 살포했다. 사거리는 예전의 250미터에서 1500미터로, 6배나 늘어난 상태다.

  흰색으로 위장된 직경 9센티미터의 플라스틱 대인지뢰인 Vs-Mk2-El은 트럭 위의 발사대에서 사출되어 땅에 떨어질 때는  뇌관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 지뢰는 헬기에서 살포할 수도 있으며 폭파시간을 조절할 수도 있다.  피아를 가리지 않으며 수십년간 무수한 민간인 피해자를 발생시킨 악마같은 무기 지뢰는 비인간적인 전쟁에서도 가장 비인간적인 무기로 지탄을 받는다.  2만여개의 지뢰는 백사봉에 쌓인 눈속에 파묻혀 희생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십가닥의 빛줄기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날았다. 캄캄한 하늘에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서쪽하늘이 붉게 물들고 잠시 후 여단장에게서 온 무전내용은 빠뜨랭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포병대 전멸! 현재 여단은 대규모 적으로부터 완전포위 당했다.  더 이상의 지원은 불가능하며, 자체 판단에 따라 후퇴하라.]

  중국군은 구르카여단 포병대대의 위치를 파악하자, 그동안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던 집단군 포병연대를 동원하여 일거에 괴멸시켰다. 프로토타입만 있는 줄 알았던 북방공사제작 203 밀리 곡사포가 대거 동원되어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한 것이다. 구르카여단의 포병대대는 참호를 깊숙히 파고 포를 엄폐시켜서 직격탄에 맞아 파괴되지는 않았으나,  근접신관에 의해 공중폭발하는 포탄에 포병들이 떼죽음 당한 것이다.

  그것보다 문제는 중국군이 어떻게 여단본부를 포위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아마도 북쪽에 있던 3대대가 전멸하여 방어선이 뚫린 모양이었다.  빠뜨랭은 친구인 멕시코 출신 의용병 페르난도가 걱정되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용병이 아닌 의용병이라니, 처음 그를 만났을 땐 놀랐으나 멕시코는 빈부격차가 큰 나라였다.  상류층은 대학교육을 받고 민중의 존경을 받는다.  이들의 의식수준이 선진국 지식층에 비해서 뒤떨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는 페르난도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할 때였다.

  "후방을 주시하라!"

  [후방에 적 1개 연대병력!]

  빠뜨랭의 지시와 두번째 매복지에 남아있는 제  2중대장의 보고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중국군은 5대대도 포위공격을 하려고 대기중인 것이다. 현재 구르카여단 병력의 대부분이 압도적인 숫자의 중국군에게 포위된 상황이었다. 포위망은 여러개다. 빠뜨랭은 이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2중대장이 자체판단하여 공격하라!"

  두번째 매복지에는 구르카대대가 매설한 지뢰와 크레모어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것을 활용할 좋은 기회였다. 요청한 공중지원은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쿠쿠쿠~]

  빠뜨랭이 뒤를 돌아보니 계곡에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지뢰와 크레모어를 동시에 격발시킨 것이다. 총성이 이어졌다.어찌나 시끄러운지 중대장과의 교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쪽도 몰려 옵니다!]

  빠뜨랭이 야시경으로 전방을 살펴 보니 약 1개 대대의 중국군이 총을 난사하며 몰려오고 있었다. 틀림없이 희생부대였다.  6.25 때 중국군은 방어진지의 전방에 매설된 지뢰밭을 제거하기 위해  일부를 희생양으로 삼았는데,20세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도 아직 이런 작전을 사용하는 중국군이 무모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효율적으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작전인지 빠뜨랭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 더!"

  빠뜨랭은 틀림없이 보았다. 중국군은 지뢰매설 예상지점에 지뢰가 없자 일순 당황한 것이다.  그들은 내친 김에 계속 몰려와서 최초의 참호선을 향해 자동소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새로운 참호선은 방어에 적절하지 못한 위치였지만 그보다 전방이었다. 최초의 참호선 약 60미터 전방을 돌격선으로 선정했는지 중국군은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 왔다.  현재의 참호선 40여 미터 전방이었다.

  "한번에 끝내도록. 사격!"

  눈으로 참호를 위장하고 있던 구르카 병사들이 몰려오는 중국군을 향해 일제히 총을 겨눴다.  갑자기 하얀 터번을 두른 구르카 용병들이 유령처럼 눈속에서 나타나자 중국군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버렸다.  대부분의 중국군병사가 총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엔 수류탄이 들려 있었다. 수류탄 일제 투척 후에 돌격하려는 순간이었다. 중국제 방망이수류탄은 손가락에 안전끈을 매고 던진다.  이들은 총을 쏠 여유가 없었다.

  일제사격이 시작되자 이 가까운 거리에서 목표를 놓칠 구르카 용병이 결코 아니었다.  중국군 병사들이 춤추듯 팔을 휘젓더니 쓰러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가슴이 아닌 머리에 총을 맞았다.  중국군 병사들이 방탄복을 입었을 것으로 우려한 용병들은 확실한 목표인 심장보다는 머리를 노렸다. 사격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백개의 구멍뚫린 철모가 눈위를 굴렀다.  구르카 병사들은 네 발 이상 쏘지 못했다. 목표가 없어진 것이다.

  "제 2진지로 후퇴..."

  빠뜨랭이 차분하게 명령했다. 구르카 전사들은 포복으로 언덕을 올라와서 참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손실은 거의 없었다. 이들이 숨자 서쪽에서 중국군의 산악포가 발사되어  포탄이 참호 여기저기에서 작렬했다. 빠뜨랭은 이 산악포를 잘 알고 있었다.  구 소련제 76밀리 산악포, M-1966. 총 780kg의 무게인데 분리하여 운반할 수 있었고,  가장 큰 특징은 속사성이었다. 분당 15발을 발사하는 무서운 놈이었다. 여기에 박격포까지 가세했다.

  담배작전은 의외로 후방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달빛에 비치는 계곡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었다.  잠시 후 중국군은 5백여구의 시체를 남기고 북쪽으로 도주했다는 2중대장의 보고를 받았다. 아직 빠뜨랭의 5대대는 건재했다.

  1999. 11. 25  20:50  서울 은평구 응암동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인 이 진은 회사 동료이자 애인인 변 승찬이 아직 살아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회사는 이미 문을 닫았다.  경영주와 광고주가 없어진 회사는 다닐 필요도 없었지만, 노조에 의해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그는 아파트 창가에 내리는 눈을 보고 있었다.

  "춥겠다..."

  그녀는 휴대용컴퓨터를 키고 통신환경으로 맞추었다. 익숙한 번호... 변 승찬의 삐삐번호를 입력하고 내용을 적었다. 그녀는 입대할 때 휴대형전화기는 갖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대화할 수 없어서 안타까왔다.

  [춥죠? 이제 전쟁이 거의 끝나가서 다행이어요.]

  그녀는 고민하다가 결국 사랑한다는 글을 입력하지 못하고 전송했다. 삐삐호출과 문자전송이 이루어졌다는 신호가 보였다. 다행이었다. 전송이 실패하면 어떡할까 했는데, 위성통신을 이용한 삐삐호출은 확실하게 연인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환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번졌다.  그녀는 그가 지금 어느 곳에 있을까 궁금했다.TV뉴스나 전자신문 어디를 찾아봐도 그가 속한 부대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1999. 11. 25  21:00  함경북도 부령 백사봉

  [또 옵니다.]

  2중대장의 보고에 이어 전방 척후조의 보고도 왔다. 빠뜨랭이 불안한 듯 자꾸 백사봉쪽을 올려다 보았다.  백사봉 정상으로 올려보낸 정찰대의 보고는 끊어졌다. 1개 소대를 위쪽에 배치했지만 불안했다.  빠뜨랭은 경사면을 따라 밀고 내려올 중국군이 가장 우려되었다.

  "포위됐겠죠?"

  "..., 물론."

  묻는 네팔인 저격병이나 대답한 빠뜨랭이나 별로 긴장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늙은 저격병이 M-1 소총을 참호 위에 거치했다. 적과의 거리는 1,000미터, M-1의 유효사정은 600미터... 빠뜨랭은 그가 단순하게 적정을 살피는줄 알았다. 잠망경으로된 야시경으로 적의 동태를 살폈다. 그들은 서서히 전진해 오고 있었다.

  "땅!"

  총소리와 함께 탄피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빠뜨랭의 야시경에는 인민해방군 병사들을 앞서 지휘하던 군관이 쓰러지는 모습이 잡혔다.  빠뜨랭이 놀란 얼굴로 저격수를 보았다.  저격수는 망원렌즈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젠장, 2센티 정도 벗어났어요. 지금 기온이 영하 16도 정도 되는 모양이죠?  아까 영하 12도로 조정했었는데..."

  빠뜨랭이 야전용 손목시계에 달린 온도계를 달빛에 확인했다.섭씨 영하 16도 2분이었다. 그는 기가 막혔다.  저격수가 가늠쇠를 조정하더니 다시 사격자세를 취했다. 방향은 약간 오른쪽이었다.  빠뜨랭이 야시경을 약간 돌렸다. 스코프에는 인민해방군의 대대장급으로 보이는 군관이 고개를 숙인채 잰걸음으로 눈위를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다시 총소리가 나자 그는 쓰러졌다. 중국군 병사들이 눈 위에 엎드렸다.

  1999. 11. 25  21:05  경상북도 대구 대명동

  공사판 막노동자인 김 광렬은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와서 가족과 저녁을 먹다가 청천벽력같은 뉴스를 접했다. 국민총동원령이 공포되어 만 18세 이상 40세 이하의 모든 남성들은 군에 입대하라는 것이다.

  "지랄! 돈있고 빽있는 놈들은 와 안가고 없는 놈만 끌고 가노?"

  김 광렬이 수저를 내던지며 버럭 소리를 지르자, 딸애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가 애를 끌어안고 불안한듯 김 광렬의 눈치를 살폈다.전쟁이 거의 끝나가는 줄로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남편이 왜 이리 흥분을 하는지 그의 아내는 잘 알고 있었다.

  "누~는 방산에 근무한다꼬 안가고, 누는 이공계대학 다닌다꼬 안가더만, 인자 인적자원이 부족한 모양이재.  처자식은 머 묵고 살라꼬 내를 끌고 갈라카나?  치아라! 내는 안간다."

  한중전쟁이 터지자 상당수의 공장들이 방산업체로 신규지정이 되었다. 연령상 동원예비군 징집연령이지만 대구 인근의 삼성중공업이나 금속공단에 취업한 동네청년들은 군입영이 유예되었다. 대학 중에서도 이공계는 군입대가 유예되었다.  이런 직장에 다니지 않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김 광렬은 억울했다.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불안한 일자리인 공사판을 전전했는데,  이제 또다른 불평등을 당할 판이었다.

  "그라믄... 경찰이 잡아가면 우짜노..."

  "시끄랍다! 니는 냄편이 총맞고 디지면 씨원하겄나?"

  "아입니더. 설마예..."

  그에게 전쟁은 현실로 닥쳐왔다. 건축경기가 죽어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느낌만 왔으나, 이제 징집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신이 전장에 나가는 것이다.

  "내사, 대통령부텀 맘에 안든기라.  중국보고 엇다, 묵고 떨어지그라 하믄서 함경도 땅쪼가리 쪼금 띠주면 될끼 아니가.  길고 말 나와서 말이재...  부잣집 유식헌 아그들은 다 외국으로 튕다 아이가.  갸들부터 잡아 와야재 내같은 놈 잡으다가 머에 쓸라꼬. 총알받이밖에 더 되겄나."

  동원예비군이 징집될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동원예비군들은 그래도 젊고, 중국의 침략에 맞서 조국을 수호한다는 명분이 있었다.그러나 지금 국민들은 핵공포에 휩쌓여 있었다.  전쟁 초반에 대부분의 부유층들이 빠져 나간 것을 막지 못한 정부에 대한 반발도 컸다. 그리고 징집대상인데도 갖가지 이유로 입영을 피한 청년들이 있다는 사실은 징집대상자들의 커다란 반발을 사고 있었다.

  1999. 11. 25  21:10  평안북도 부령 백사봉

  "왜 공격해 오지 않는 거지?"

  빠뜨랭이 야시경을 사방으로 돌렸다.  적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서쪽에서 포성과 총성이 계속 울려 퍼졌다. 대대원들이 불안한지 자꾸 고개를 들며 서쪽을 힐끗거렸다. 중국군은 구르카여단 제 5대대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계속 대치만 하고 있었다.

  저격병은 계속 한 발씩 쏘고 있었다.  현재 최소한 수천 명이 대치하고 있는 이 백사봉 기슭에서  늙은 네팔인 혼자만 전쟁을 하는 것 같았다. 참호 바닥에는 어느새 황금빛 탄피가 가득 쌓였다.

  "땅!"

  다시 한방을 쏘고 나서 이 네팔인 병사는 실탄의 탄두부분 끝을 이용해서 가늠자 수정을 했다.  M-1 소총이 계속 열을 받아서 탄도가 약간씩 빗나가는 모양이었다.  망원렌즈는 이미 제거한지 오래 되었다.  고양이눈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저격병은 야간사격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빠뜨랭이 신기한듯 저격병을 쳐다 보았다.

  "달빛이 눈에 반사하니까 야간조준경은 필요없죠."

  저격병은 대대장의 시선을 느끼고 대답했지만, 이곳이 네팔과 흡사한 지형이라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티벳과 네팔, 북부인도는 거의 흡사한 산악지형인데, 눈 쌓인 백사봉은 그의 고향과 너무나 닮았다. 자신은 용병이 아니라 고향을 지키는 용사가 된 기분이었다.  침략자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게 솟아 올랐다.

  "기관총 전방으로, 북쪽 경계!"

  불안해진 빠뜨랭은 참호선에 같이 있던 기관총들을 빼내 앞으로 전개시켰다.  사수들이 참호선 20미터 앞에 있는 예비용 기관총좌에 기관총을 거치하며 방경계에 들어갔다.  언뜻보면 대대의 중화기와 나머지 병력이 서로 대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근접전일 때 일반적으로  소단위 부대장은 중화기 보호와 시계확보를 위해 기관총좌는 참호선 후방에 배치한다.  그러나 빠뜨랭은 자꾸 뒤가 근질거려 최악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백사봉 계곡은 살을 에이는 듯한 찬바람소리에 저격수가 쏘는 총성이 간헐적으로 섞여 묘한 앙상블을 이루어 냈다.그 소리를 뺀다면 양측 모두 완전히 침묵을 지켰다.

  1999. 11. 25 21:15  평안북도 부령, 풍산동

  서쪽에서는 아직도 포위된 구르카여단의 주력부대가 중국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총성과 포성, 간간이 지뢰 터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구르카여단의 지휘관인 티벳인 돈나카 탄진은 피스부대 총사령부에 지원요청하기 바빴다.

  피스의 지상군 파견부대는 구르카용병 1개 여단과 국제지원병 1개 여단,  그리고 용병과 지원병으로 혼성편성된 각 1개의 기계화여단 및 기갑여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산지라서 다른 피스부대의 응원이란 기대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들 부대는 모두 돈나카도 모르는 곳에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피스 지상군 부대의 사령관인 인도인 싱에게서 받은 명령은, 가끔 중국군에게 도발하여 소규모 전투를 실시하며 방어에 주력하라는 것이었다. 항상 자신을 측은하게 여기던 싱의 터번을 두른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만약 이번 전쟁이 의외의 결과로 끝나면 티벳의 독립을 기대해도 좋다는 말을 했었다.피스의 국제지원병으로 대거 자원입대하여 전선에 투입된 망명 티벳인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한 빈말인지는 몰라도, 그는 싱의 말을 믿기로 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창탕고원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성스러운 흰산과 더욱 성스러운 마나슬루 호수를 실컷 보게될 날을 그리며  그는 지금까지 고된 망명생활을 해왔다.

  그가 믿을 것이라고는 공중지원 뿐이었는데, 사방이 압도적인 숫자의 중국군에 포위됐는데도 아직 공중지원은 오지 않고 있었다.  여단이 임시로배속된 3군단사령부에서 연락이 오기로는 전 동부전선에 걸쳐 중국군이 공세가 시작됐으며, 항공기들은 다른 부대의 더 급한 지원에도 바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돈나카는 용병이라고 무시하느냐고 언성을 높이며 따졌지만 그도 상황은 대충 알고 있었다.  중국 주변국 중에서 러시아를 뺀 중소국가가  중국을 상대로 이만큼이라도 공군전력을 보존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한국공군이 이스라엘군 이상으로 출격횟수가 많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결국 죽으라는 뜻인가?"

  돈나카 준장은 5대대를 위해 포격을 한 것은 자신의 실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주포가 아닌 이상 이동 후 방열(포의 전개 후 사격 준비완료)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엄폐만 엄중히 하고 말았었다. 중국군 포병대는 그동안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구르카여단의 포병대대를 전멸시킨 것이다. 중국군은 구르카여단의 포병대가 전멸하자 화력이 약해진 틈을 노려 포위공격을 감행했다. 병종사단만으로 4개 사단병력이었다. 그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최강의 보병이라는 구르카 용사들도 이때만은 공포를 맛봐야만 했다.

  "후퇴 코스는 없나?"

  "완전포위되었고 후방엔 중국군이 지뢰를 매설했습니다. 제 3대대가 응원오다가 지뢰에 호되게 당했답니다. 69식 지뢰, 러시아의 OZM과 같은 도약식 지뢰입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작전참모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돈나카는 땅에서 튀어 올라 1.5미터 높이에서 폭발하는 그 대인지뢰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살상위력은 약하지만 부상자를 대량으로 양산한다. 부상자 호송을 위해 최소한 두 명의 병사가 동원되므로 실제 전력손실은 더 크다. 게다가 부상자의 처참한 부상부위를 봤을 때 병사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는... 무전병이 전선의 급보를 전했다.

  "2대대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방어선이 뚫리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젠장... 이제 예비병력도 없어."

  돈나카는 이 좁은 산악지역에 대병력을 투입한 중국군의 전술에 기가 막혔다.  좌측에 있던 인민군 101사단과 우측의 국군 62사단이 모두 대규모 중국군에 포위 당해 피스부대는 운신의 폭이 전혀 없었다.그가 알기에는 이들 부대도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해안쪽 상황은 더 심각한 모양이었다.  이동배치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동부전선에서는 일대 혼란이 몰아닥쳤다. 동부전선 사령부에서는 전선유지를 위해 후퇴를 종용했으나,  이제 후퇴도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인근에 파견되어 있는 국군 육군 항공부대에서 공격헬기를 보냈답니다!  2대대 전면으로 유도할까요?"

  무전병의 보고와 동시에 벙커 밖에서 폭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지원소식을 듣고도 돈나카는 명령을 내릴 겨를이 없었다.

  "뭐야? 저 소리는..."

  "지원오던 아군 공격헬기들이 모조리 당했습니다. 남은 놈들은 도망갔습니다!"

  밖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네팔인 부관이 벙커로 뛰어들어오며 보고했다. 전투 중에 도망가는 것을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그들에게 아군 헬기의 도주는 충격이었다. 돈나카가 벙커를 나섰다. 사방에 포탄이 작렬하고 있었다. 남동쪽 산기슭에 코브라인지 뭔지 모를 헬기 잔해가 아직도 불에 타고 있었다. 파괴된 헬기의 숫자는 의외로 많았다. 그가 본 것만 10여기가 넘었다.  이 정도라면 버텨날 항공대대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아군과 적군의 위치마저 불분명하고 시계가 제한되는 야간에 그들의 활약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였다.

  "산악부대라면서 휴대형 대공미사일을 대량 보유하다니?"

  그는 저녁 무렵의 폭격 때 중국군이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기억했다. 이 산중에 대형 지대공미사일을 끌고 온 놈들이었다. 이상하게 그 때는 휴대형 대공미사일이 발사되지 않았다. 그는 뭔가 함정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1999. 11. 25  21:20  평안남도 순안비행장

  김 종구 중위는 셸터 안에서  자신의 애기를 정비사들이 만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의사에게 맡긴 기분이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으나 할 수 없었다.황 중령이 김 중위의 기분을 아는지 옆에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의사는 다 도둑놈들... 필요없는 부분까지 건드리고...'

  김 중위는 왜 F-16의 레이더를 제거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차피 조기경보기의 관제를 받는다지만 전투기에 레이더는 필수가 아닌가? 구 소련제 전투기들이 실전에 약한 것은 레이더성능의 결함 때문이라고 배운 김 중위는 지금 하는 이 작업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익을 통째로 떼어내고,  동체연결부가 약간 더 넓은 주익을 조립하고 있었다. 이것은 고고도에서의 방향안정성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이다. 김 중위가 알기로는 이 작업은 단지 선정된 12기의 전투기에만 행해지고 있었다. 모두 이번 특별임무에 투입된 전투기들이었데, 개조가 끝난 전투기들은 시험비행을 하고 있었다. 이 전투기들은 어쩔 수 없이 일본의 FSX를 닮게 되었다.

  고도로 숙련된 정비병들과 국립과학연구소 직원들,  삼성항공의 직원들이 레이더가 있던 빈 공간을 다른 것으로 채우고 있었다.  미리 준비된듯 개조는 짧은 시간에도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미그-31M을 흉내내고는 있지만 글쎄, 우린 대위성미사일도 없잖아? 하다 못해 피닉스라도 있다면 몰라도..."

  김 중위의 불안한 표정을 읽었는지 황 중령이 거들었다. 미그-31M이라면 대위성요격용 전투기인데 임시방편으로 그 전투기 흉내를 낸다고 상승속도나 상승한계 등 성능도 같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에는 대위성미사일(ASAT)이 한 기도 없지 않은가?  김 중위는 그 무기도 러시아에서 수입해 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브리핑에서는 틀림없이 암람과 스패로를 장착한다고 들었다.

  [쌔~~~~~~~~]

  그는 때늦은 이륙음을 듣고 셸터 밖으로 나왔다. 활주로마다 두 대씩의 F-5E 전투기들이 이륙하고 있었다. 유성이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것처럼 멋진 광경이었다.  전투기들은 연이어 이륙하고 있었다.

  순안비행장에 파견된 F-5E 전투기들이  이처럼 출격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1996년부터 실시된 전투기 개량사업에 따라 기골을 보강하고, 개량된 APG-66 멀티모드 공격레이더를 장착하게 된 F-5E 전투기들은 스패로 공대공미사일을 무장했다. 조기경보기인 E-2C나 J-STARS기들 덕택에 이 전투기들은 의외로 좋은 성과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F-5의 장기인 근접전의 기회는 감소했다. 단일기종으로 F-5를 300여기나 보유한 한국공군은 극도로 중국과의 근접전을 회피했고, 주로 중거리 공대공미사일로만 대응했다. 이 작전은 숫자만 앞세운 중국 공군의 구식 전투기들에 그런대로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개전 초반에 입은 피해를 제외한다면, 요즘의 피격 댓수는 상당히 줄어들고 있었다.  게다가 거의 적 지상포화나 미사일에 의한 피격이었다. 중국 전투기들은 초반에 신예전투기를 모두 소모한 것이 패착이었다.

  "음냐...... 전 갑자기 러시아의 전략방공군이 된 기분이군요."

  "그렇게 말야. 쩝... 미사일이 안 맞으면 몸으로 때워야 되나? 미사일 요격훈련은 한국공군에서 전혀 없었잖아?"

  김 종구 중위가 비번일 때 대신 조종을 해야할  황 중령도 걱정이 많았다. 자신이 비행중일 때 그 임무를 해야 한다면? 정말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말입니다. 전투기처럼 조기경보기에서 지시하는 대로 해야죠 머..."

  김 종구 중위와 황 중령은 자신들에게 떨어진 임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탄도미사일 CAP이라니!  암람이나 스패로 따위로 중국의 핵미사일인 동풍-31호를 잡으라니, 이런 황당한 명령을 받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목표발견이야 조기경보기들이 알아서 해 준다지만 초고속인 중거리탄도탄이 전투기에서 발사한 공대공미사일에 명중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급한 마음에 전투기까지 탄도탄 요격에 내몬 지휘부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전역방공망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방공망도 없지 않은가. 겨우 2개 대대밖에 없는 패트리어트 2 미사일 포대는 전국 주요도시에 흩어져 있었다. 중국이 어느 기지에서 얼마나 많은 숫자의 미사일을 발사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배치는 어쩔 수 없었다.

  "에고, 썰렁하군. 내가 더 썰렁한 야글 하나 하지. 자네, 밥 혼달 이야기 알아?"

  황 중령이 특유의 썰을 풀었다. 김 중위는 황 중령의 입을 보며, 다리가 무너지거나 배가 가라앉더라도 그는 절대 물에 빠져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킥킥 웃었다.

  "밥 혼달요? 글쎄요."

  "밥 혼달은 중세 유럽의 유명한 맹수사냥꾼이라네. 중세 기사나 왕가의 문장을 보면 호랑이하고 사자가 자주 나오지? 사자왕 리차드라는 영국 국왕도 있고... 그런데 지금 유럽에는 그것들이 없잖아. 그 사람이 다 잡았기 때문이라고 대영백과사전에 나오더군."

  김 중위는 아무래도 맞는 이야기 반에 거짓말 반이 섞였다는 기분이 들었으나 대영백과사전 이야기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이니 참고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요? 그럼 옛날엔 유럽에도 그런 맹수들이 살았나 보죠?"

  "그럼~ 그런데 그 사람이 다 잡았지.  대단한 맹수사냥꾼이야.  어렸을 때는 바보라고 소문이 났었대. 그래서 여자아이들이 울면 밥혼달에게 시집 보낸다고 해서 울음을 그치게 했다는군."

  "크... 얼마나 바보로 소문났으면 그래요."

  김 종구는 혹시 황 중령이 야한 이야기라도 하지 않을까 해서 맞장구 쳤다. 노련한 사냥꾼의 사냥 이야기는 앞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물론 사냥의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아까 저녁 무렵에는 정문 위병소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마침 위병소 앞을 지나던 같은 편대의 이 대위가 봤는데, 열 몇 명의 아가씨들이 황 중령을 퇴근시켜 달라고 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작전중이라 안된다고 근무자들이 제지했으나 이들은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며 영내로 들어올 기색이었다고 했다. 그말을 들은 김 중위는 기가 막혔으나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황 중령과 같이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에게서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문제는... 코크리아라는 나라의 공주가 그 바보에게 시집간다고 우겨서 전 유럽이 발칵 뒤집혔었다는군. 대단한 스캔들이 된 거지."

  "공주가 왜 바보에게 시집가요? 혹시 선화공주처럼 유언비어로...?"

  "윽... 백제 무왕 이야긴줄 아나벼? 어렸을 때 그 공주는 대단한 울보였는데, 왕과 왕비가 자꾸 밥 혼달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얼러서 공주는 그런줄 알았다나... 공주는 약속을 지켜달라고 사정했지. 신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말야."

  "....."

  "그 공주의 이름은 팽기니아라고 한다네. 결국 공주의 고집대로 둘은 결혼해서 살게 되었지.  공주의 내조 덕택에 밥 혼달은 유럽 최고의 맹수 사냥꾼이 되고 말야."

  여자 이름이 펭귄하고 비슷한 걸 보니  역시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결말이 어떻게 날까 궁금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요..."

  "계속 들어봐! 근데 이웃나라와 전쟁이 일어났대. 실리아라고 하는 나라지."

  "이름들이 무슨 환타지소설 같기두 하구... 정말입니까?"

  "어허~ 이 사람이."

  "죄송합니다. 계속 하시죠."

  황 중령이 김 종구의 입을 막고는 잔뜩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가 장군이 되어 출전해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던 어느 날... 안타깝게도 그는 벼락에 맞아 죽었다네.. 어때? 슬픈 이야기지?"

  "으윽... 그렇게 썰렁할 수가... 근데 혹시 그 이야기 바보온달 아녀요? 내용하구 이름이 비슷한데요."

  "크... 인제 알았나?  바보온달을 내려쓰기로 해보게. 뭘로 보이나."

  "꽥~ 글쿤요. 그럼 코크리아가 고구려, 팽기니아가 평강공주, 실리아가 신라란 말씀이죠? 이름만 약간 바꾸면..."

  "이 야그는 내가 이대앞에 있던 바보온달이라는 카페를 지나다가 근처에 있던 여대생을 꼬실 때 써먹은거지. 간판이 내려쓰기로 되어 있더군. 그래서 한글은 가로쓰기를 해야 한다네. 오늘의 교훈이지. 알겠나?"

  "윽... 예..."

  이륙한 F-5 전투기들은 편대를 지어 북동쪽 상공으로 날아갔다. 항속거리가 짧은 전투기들의 대량 출격이라니... 김 중위는 그들이 걱정되었으나 자신의 임무를 생각하니 너무 막막했다.

  1999. 11. 25  경의선 고속도로, 개성구간

  서울-평양간 고속도로에는 요즘 민간용 사륜구동차들의 행렬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 차들은 적게는 서너대, 많게는 20대 정도씩 떼를 지어 북쪽으로 이동했다.  주로 밤시간을 이용했고 가로등을 껐기 때문에 이 행렬을 본 민간인들은 군용 지프로 알았다.  승용차보다 높은 전조등을 키고 그 바깥쪽의 깜박이나 보조등은 껐기 때문에 밤에 볼 때는 군용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았다.

  사륜구동차들은 차체에 약간의 개조하고 군용도색을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원형은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코란도와 록스타, 스포티지, 일제 파제로의 파생형인 갤로퍼 등 각종 지프형 사륜구동차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유행중인 현대 아반떼 투어링이나 아시아자동차의 레토나 같은 RV(레크레이션 비클)도 많았다. 이들은 개전 다음날부터 민간인에게서 징발되어 전선으로 가는 차량들이었다.

  차량행렬은 행선지를 숨기기 위해 신계 쪽으로 빠졌다가 곡산에서 다시 평양-원산 고속도로를 따라 동진했다. 그리고 나서 함흥을 거쳐 혜산쪽으로 갈 예정이었다. 차량 행렬은 끝없이 북으로 이어졌다.

  1999. 11. 25  21:30(한국시간)  주미한국대사관

  "이런 망할 놈들!"

  "왜 그러십니까?"

  이 현종 참사관이 전화기를 놓더니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무관인 한 영순 대령이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나 생각하며 참사관에게 물었다. 뜻밖에 이 현종이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미국놈들이 물건을 팔겠다는군요.  팔아 달라고 사정사정할 때는 못들은척 하더니 우리가 중국을 거의 몰아내고 나니까 이제야..."

  "그래요?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휴~ 그동안 암시장에서 구입하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어떤 무깁니까?"

  한 대령은 미국도 결국은  중국의 팽창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한중전쟁을 예의주시해 온 것이다. 늦긴 했지만, 그래도 무기란 없는 것 보다는 남아 돌더라도 있는 게 훨씬 나은 법이다.

  "지대공, 공대공 미사일 종류와 어셋? 뭐, 그런 거요. 어셋이란 무기는 일본에서 바로 공수해 준다고 합니다. 국방부에는 이미 통보했다는군요. 공대공미사일 재고가 바닥났다고 난리던데 이제 한숨 돌리게 되겠죠."

  "어셋? ASAT, 대위성궤도미사일 말입니까?"

  "어셋이 그런 무기요? 근데 그걸 왜 우리에게..."

  참사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의 정찰위성을 요격하란 뜻인가? 그는 목표가 될만한 중국 위성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통신위성이 없더라도 다른 나라의 상업용위성을 쓰면 그만이므로 구태여 어렵게 서로의 위성을 파괴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 레이더 정찰위성이라도 있으면 몰라도 피차 없는 판에 위성무기라니,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탄도탄 요격무기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맙소사! 핵위기인가 보군요."

  주미 대사관은 본국에서 어떠한 훈령도 받지 않았다.  이곳 현지의 언론보도 대로,  중국은 영해 내에서만 핵무기를 쓰고  한반도에는 사용치 않을 줄 알았던 것이다.  미국이 어떠한 정보를 갖고 있든, 어떻게 이 정보를 얻었는지는 몰라도 참사관은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해야 했다.

  "이런! 당장 본국에 연락을... 필요한 무기 목록을 더 달라고 하시오!"

  한 대령이 국방부 조달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이미 통보가 된 모양인지 주일미군의 허큘리스 수송기 한 대가  일본에서 출발했다는 말을 담당관으로부터 들었다.  10분 후에 영종도 공항에 도착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한 대령은 위성요격에 필요한 무기 목록을 암호전문으로 대사관에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1999. 11. 25  21:35  대전 유성 정보사단

  "일본에서는 딱 한 명... 후지야마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해커들에게는 좋은 상대였다고 합니다. 그가 일본군인 줄은 몰랐습니다. 유니콘2가 나온 것은 그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그자가 유니콘을 깼죠. 그러나 2는 워낙 랜덤하게 움직여서 잡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성회야 너는... 아니, 구 소령! 어떻게 생각해?"

  양 석민 중장은 소파에 앉아  해커인 구 성회 소령과 김 준태 소령이 설명하는 앞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두 젊은 소령이 자신을 자꾸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후루룩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는 정말 맛있게 먹고 있었다.

  "양 중장님, 그들은 아마 제대로 깨지는 못했을 겁니다. 성윤이형, 아니, 오 성윤 대위의 말처럼 일본은 우리 전화회선을 도청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일본으로 우회해서 중국군 컴퓨터를 해킹할 때 공짜로 중국군에 관한 정보를 얻고,  동시에 그 회선을 통해 해킹 프로그램을 침투시키는 식 말입니다. 완전히 독자적으로 활동하면서 모뎀까지 움직이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대상 컴퓨터에 새로운 파일이 저장되면 자동으로 해커의 컴퓨터에 자료를 전송하는 식입니다. 이동하면서 무선전화를 쓰거나 몇 단계 다른 호스트를 거치면 전혀 해커의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해킹계의 거장이라는 오 대위님이 아직도 바이러스를 못 찾고 헤매는 것을 보면 김 소령 말대로 정말 후지야마같습니다. 그놈이 슈퍼 유저권한을 가졌으면 진작에 드러났을텐데 그런 실수는 안하는군요. 전화비가 안나오게 레드 박스라도 쓸 것이지... 나쁜 놈!  그놈은 미 국방성이 가장 경계하는 해컵니다. 혼자서 미국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고 큰소리 친 사람이죠."

  양 중장은 구 소령이 말하는 것을 흘려 들으면서 라면 국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할 얘기 들어봤자 어차피 이해도 되지 않았다. 곤하게 자다가 대통령의 화상통신을 받고 잠을 깬 그는 당번병을 시켜 라면을 끓이게 해서,  전시식으로 지급된 참치와 김치 통조림을 반찬삼아 먹었다. 다른 장군들은 체면상, 두 젊은 소령은 군번이 딸려서 같은 자리에서 못먹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무 컴퓨터나 마구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게 불가능하지는 않겠군. 어때, 자네들도 세계정복 한번 해보지 않겠나?"

  양 중장이 트림을 길게 하며 농담을 했다. 인민군 박 형순 상장과 정보사단장인 이 재영 중장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양 중장의 농담이 완전한 헛소리는 아니었다. 목표가 된 나라의 국방, 행정, 산업을 마비시킬 수 있다면 이는 그 나라의 멸망과 직결된다.  만약 핵발사를 명령할 수 있다면 더 확실하다.  이들도 이번 전쟁 중에 해커의 활약상을 충분히 구경하지 않았던가?

  이들은 대통령의 작전개시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정 이전이 되리라는 예상만 하고 있었다.  베이스캠프에 있던 요원들도 이미 제 1 캠프에 도착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1999. 11. 25  21:40  함경남도 혜산

  "후아~ 비상이라니! 우리 부대도 써먹긴 써먹는군요. 전쟁 끝날 때까지 묵혀 둘 줄 알았습니다."

  변 승재 하사는 중대장 겸 전차장인 한 대위가 큐폴라를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며 연신 하품을 했다.  그는 러시아제 T-80U 전차의 레이저 레인지 파인더를 다시 조정했다. 밖이 너무 추워서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줄곧 차 안에만 있었다.  중대장은 추위도 안타는 모양이었다.

  야시장치로 바깥을 보니 수많은 한차와 보병전투차들이 출동대기 중이었다. 아직 위장망은 걷지 않았다.

  "기럼 동무는 땅크를 엿바꿔 먹으라고 나둔 줄 알았슴메?  크게 한바탕 해야 대디 않간?"

  한 보겸 대위가 오랜만의 출동명령에 미소를 지으며 부하들을 다독였다. 남들은 신나게 중국군들과 싸우고 있는데 이곳 혜산땅에 도착한 이후로 무료하게 시간만 죽이고 있어서 인민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라고 자주 얘기했었다.

  "대기하라우. 공격명령이레 아딕 떨어디디 않아서. 길고 일단은 이동할기야. 운전 잘 하라우, 동무!"

  중대장이 운전병에게 다짐을 받았다.  변 하사는 동무라는 소리에 다시 소름이 끼쳤다. 그 소리는 언제 들어도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변 하사가 전차병용 재킷의 왼쪽상의에 있는 무선호출기를 연신 꺼내서 내용을 확인했다.  뿌듯했다. 비록 사랑한다는 고백은 없었지만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 오는 것 같았다.

  "동무! 자꾸 멀 보남?"

  한 대위가 변 하사의 삐삐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무선호출기를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문자전송까지 되는 줄은 이번에 알았다. 공화국은 너무 낙후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반부에 흡수되다시피 통일한 것이 치욕이라고 여겼지만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아ㄴ네다! 기기 별기 아닙네다!"

  변 하사가 얼떨결에 평안도 사투리로 대답하자 운전병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출동대기 완료했겠지?  자, 이제 시작이다. 공병대와 기갑정찰대대가 선두로 나섰다.]

  대대 통신망을 통해서 대대장의 훈시가 시작되었다.  변 승재는 처음 동부전선으로 이동할 때는 자신의 부대가 선봉지구를 수복하기 위한 지원병력인 줄 알았다.  그러나 부대가 혜산에서 멈추자 압록강 방어선에 투입되는 것으로 알았으나 부대 규모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는 변 승재가 소속된 통일한국군  제 1기갑사단 말고도 한국군 제 7, 9 기갑사단, 인민군 815기계화군단, 그리고 주로 에이브럼즈 전차로 구성된 통일한국군 제 2기갑사단도 같이 있었다.  도로 근처 숲속에 은폐하고 있는 보병사단은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변 승재는 직감적으로 부대가 압록강을 건널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불행히도 적중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이 급해지면 핵을 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압록강을 건너, 백두산을 우회하여 다시 두만강을 도강한다. 제군들은 그 어느 누구도 해보지 못한 여행을 하게 되는 셈이지.  선봉 지구 수복이라는 전략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쪽은 전선이 너무 좁고 지금도 양측 200만 병력이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다. 우리는 함경북도의 산지보다는 만주 대평원을 횡단하여 적의 배후를 치게된다.]

  통신망에서 대대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은 전의에 불타서 지르는 함성소리가, 혹은 우려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그대로 들려왔다.

  [우리가 가는 길에 승리 뿐이다. 여기 예비군 출신들이 많지 않은가?]

  대대장은 인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예비군들을 의식하여 예비군가를 인용했다. 부대가 급히 편성되고 현역이 적어 훈련이 부족할까 걱정했지만 대대원들은 의외로 훌륭했다. 아니, 전차의 성능, 또는 그 정비상태가 훌륭했는지도 몰랐다.  러시아에서 차관 대신 현물로 받은 이후 거의 4년간 창고에서 썩고 있었는데도 잔고장 하나 없었다. 오늘 새벽 평안북도 정주지구 전투에서도 대대가 선봉에 투입되어 화끈하게 싸운 기억이 떠올랐다. 적진 중앙돌파와 그 이후의 전격 돌격전. 전차부대 지휘관은 이런 맛에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처럼만 하면 선봉에 있는 중국군 백만은 좆도 아니다. 만주에 있는 중국군도 겨우 30만 밖에 안되니 걱정없다. 우린 2백만이다!  선봉에서 싸우고 있는 부대 백만까지 합하면 우린 자그마치 세 배의 병력이다. 침략자를 전차로 깔아 뭉개자!  중국놈들을 동해바다로 밀어 붙이자!]

  대대통신망 가득 대대장이 살벌한 구호를 선창하자 대대원들이 다 함께 외쳤다. 한 대위와 운전병도 웃으며 구호를 외쳤다. 변 하사는 아무래도 걱정되었다.

  1999. 11. 25  21:45  서해, 한국해군 잠수함 장보고

  "으... 지겨운 놈들!"

  "정말 집요하군요. 이제야 겨우 벗어났습니다."

  "그래, 이제 거의 다왔으니까... "

  함장인 서 소령은 함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출발 때 아군함정이 호위해 주던 안전해역에 드디어 도달한 것이다.  승무원들의 긴장이 풀어지며 여기저기서 잡담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소나에서 지휘소로!  중주파수 탐신음! 상대의 소나는 GE사의 SQS-53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녹스급이 확실함! 방위 2-8-0에 거리 1,500에서 1,650! 발견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끙... 또 숨어 있었나 보군."

  소나병인 이 중사의 보고를 들은 함장이 신음성을 흘렸다. 전투다! 다만, 이쪽이 비무장인 상태에서 전투상황에 들어간 것이다. 피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함장이 일단 전투배치를 지시했다.  좁은 복도를 통해 젊은 수병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AN/SQS-53/26이 정식명칭인 이 소나는 SQS-26CX의 발전형이다. 탐지, 추적, 함형확인, 수중통신, 음향어뢰에 대한 기만 등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소나다.  이 소나는 화기관제장치와 연계되어서 목표의 거리와 방위, 심도 등이 파악되면,  이 데이터가 어뢰나 아스록에 바로 입력되어 발사대기 상태에 들어간다.  그만큼 대응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서 녹스급 프리깃함들은 이 새로운 소나를 장.

  "우현 90도, 증속!  15노트에서 노이즈메이커 발사!"

  수중배수량 1280여톤의 소형 잠수함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전지로 항진한다지만  물살과의 마찰 때문에 프리깃함은 잠수함의 소리를 확실히 들었을 것이다. 이미 상공에는 아스록이 날아와서 어뢰가 물속을 항주하며 탐신 중일지도 몰랐다.  또한 조용히 상공을 선회하며 잠수함을 탐지하고 있을 대잠헬기는 승무원들에게 더 무서운 존재였다.

  "노이즈 메이커 발사완료!"

  "적함 급속 증속 중! 방위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함장이 두 명의 보고를 동시에 들으며 명령했다.

  "좋아, 조금 더 가서 기관정지하고 통신용 부이 띄울 준비. 내용은..."

  "장고가 시에미에게. 집에 왔는데 환영도 안해주냐? 이거죠?"

  통신장교가 말하자 서 소령이 싱긋 웃었다.

  "옵 코오스! 지금 입력 즉시 발사."

  서 소령은 '낫'이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가 자주 써먹는 말이었다.

  "반전할까요?"

  부함장인 김 철진 대위가 걱정스런 얼굴로 함장에게 물었다.  위장용인 노이즈 메이커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은 자살행위 아닌가?  노이즈메이커는 장보고함의 엔진음과 같은 소리를 내며 프리깃함의 소나를 혼란시키고 있었고, 이 소리가 프리깃함과 헬기의 관심을 끌 것은 당연했다.

  "천만에! 우린 이 자리에 숨어 있는다. 고! 고! 못먹어도 고!"

  "삼고초려라는 말도 있는데요... 쓰리고할 때는 초를 조심하라는..."

  "이런~ 젠장! 초치지 말고!"

  부이가 수표면까지 일직선으로 상승했다. 부상한 즉시 부이는 상공을 향해 전파를 발신하기 시작했다. 적도상공 35,800km에 있는 정지궤도위성 인텔셋이 전파를 잡아 분류하고 이를 C밴드의 주파수인 5.3기가 헤르츠의 초고주파에 실어 한반도쪽으로 전송했다.  진해의 잠수함대사령부는 이를 해군사령부에 보고하고 다시 해주의 조기경보기를 호출했다.사령부는 기밀통신망을 열고  인근 해역에 있는 아군 함정을 수배하니 몇 척의 고속공격정이 리스트에 있었다.  미사일정이 세 척 있고 어뢰정도 두 척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있었다.또한 황해도 옹진에 있는 미그-23도 긴급발진했다.

  중국 북해함대에 새로이 배속된 녹스급 프리깃함은 목표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었다. 다른 자매함 두척은 각각 남북으로 흩어져 이 해역에는 친양함 한척만 남아 있었다. 중국 군부는 중국해군에 편입된 전직 대만 해군들이 조선으로 망명할 것으로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제정신이 있는 군인이라면 망해가는 나라에 망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노이즈메이커가 발사되고 나서 목표의 위치가 모호해졌다.  친양함의 함장은 탑재 대잠헬기인  시 스프라이트를 목표가 진행하던 반대방향으로 보냈다. 통상적으로 잠수함은 노이즈 메이커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최소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그는 배웠다. 그리고 목표 해역에서 발사된 통신용 전파의 존재는 함장에게 잠수함이 기만행위를 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헬기나 친양함의 소나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함장은 이 해역의 세력판도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원래 대만 해군인 그는 함대사령부에서 내리는 명령과 정보를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중국인은 과장이 심하다던가?  프리깃 함장은 안전해역을 100km나 벗어나 한반도쪽에 접근하고 있었다. 해주 상공에 떠있는 조기경보기가 그 해역에 있는 고속공격정들에게 이미 목표의 위치를 알린 후였다. 프리깃함은 함대사령부와 계속 연락을 취하지 않았었다. 이 때문에 두 가지 정보, 즉, 위험해역에의 접근과 한국해군의 공격에 대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

  "대공경계 발령! 0-9-0에서 미사일 3기, 급속 접근중!"

  레이더 담당군관이 저공으로 접근해 오는 미사일을 발견하고 대공경계를 발령했으나 이미 늦었다.  인민군 해군의 서흥급과 코마급 고속공격정들이 수평선 밖에서 SS-N-2A 스틱스 미사일을 날린 것이다. 미사일 요격용인 20밀리 벌컨포가 함미에 있기 때문에 목표를 잡지 못했다. 함장이 선회를 명령하는 동안에 미사일은 이미 2km 이내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벌컨 팰렁스가 탄피를 쏟아내며 선두의 미사일을 향해 탄환을 대량으로 발사했다. 첫번째 미사일이 명중했다. 섬광이 밤하늘을 밝게 수놓았다. 함교에서 환성이 울렸으나 약간 시간차를 두고 날아오는 두번째 미사일이 보이자 함교요원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녹스급 프리깃함에서 섬광이 일고 물기둥이 치솟았다. 하픈의 두배나 되는 탄두가 우현을 뚫고 들어와 함 내부에서 폭발한 것이다. 2초 후에 다시 섬광이 일며 함교가 통째로 날아갔다.  프리깃함 전체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연기 사이사이로 보이는 함은,  함미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함교 앞 함수 중간부분은 파도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치고 있었다. 함수는 용골부분만 남은 것이다.  함은 즉각 침몰하지는 않았으나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잠시 후에 몇 명의 수병이 차가운 서해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다.그들도 원래는 대만해군이었으나 새로이 북해함대에 배속되어 대잠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멀리 수평선상으로 어뢰정 두 척이 나타났다.  친양함에 탑재되는 대잠헬기는 아직 잠수함을 찾고 있다가 발견했다.  대응할 무장이라고는 7.62밀리 기총밖에 없는 이 헬기는 잽싸게 서쪽으로 도주했다. 헬기와 다른 두 척의 프리깃함이 발산하는 전파는 해주 상공의 E-2C가 계속 수신하고 있었다.

  "수상에 돌발음! 다시 돌발음!  프리깃함이 있던 위치입니다!"

  이 중사가 함체를 울리는 굉음에 지지 않을 정도의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했다.

  "오~ 예!!!"

  서 소령이 주먹을 들고 불끈 쥐었다.

  "으그그 이쁜 것들~ 누군지 몰라도 오늘 저녁 술독에 빠지게 해주지. 이 중사! 어떤 공격이었나?"

  "모르겠습니다. 어뢰는 아니고 미사일인데 폭발의 규모로 봐서는 하픈보다 훨씬 큰 놈입니다. 아무래도 인민군의 스틱스같은데요?"

  "호~ 그럼 같은 해군이구만. 좋~았어. 우리나라의 통일과 장보고함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며 그 친구들과 한잔 하자고.  술값은 잠수함대 사령관이 내 주시겠지."

  서 소령은 한국 공군보다는 차라리 인민군 해군의 도움을 받은 것이 잘됐다 싶었다. 어차피 이제는 같은 식구 아닌가?

  "와~~~"

  승무원들이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주먹을 머리 위에서 마구 돌리면서 혀를 굴려 사하라의 베두윈족이 내는 휘파람소리를 냈다.  그동안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고, 술까지 마실 수 있다니, 오랜만에 기분들이 너무 좋아졌다.

  "업트림 최대!  잠망경 심도로! 얼마나 이쁜 놈들인지 확인해야지."

  장보고함이 수면 위 상황을 확인한 후 부상했다. 어뢰정이 중국 수병들을 구조하는 모습 뒤로 침몰하는 프리깃함이 보였다.  마스트에 수병들이 잔뜩 올라와 어뢰정을 행해 함성을 질렀다. 곧이어 미사일을 발사한 고속미사일정이 오고, 잠시 후에는 잠수함 위로 미그-23 전투기들이 스쳐 지나갔다.

  1999. 11. 25  20:50(중국시간) 중국 베이징, 베이징판띠엔

  "미친 놈들입니다. 감히 핵유도탄 기지를 공격하려 하다니, 한두 군데도 아니고 30여곳에 흩어져 엄중한 경계하에 있는데 무슨 수로..."

  제 2포병 사령 쏭윈펑 중장이 중국전도가 펼쳐진 중앙화면을 보며 한국의 전쟁지도부를 비웃었다. 화면에는 각 미사일기지의 위치가 표시되었는데, 이상없다는 신호인 푸른 색으로 도색되어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인 정치국원이나 고위 장관(將官)들은 약간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그따위 일본의 정보가 아니더라도  우린 충분히 조선의 책략을 막아낼수 있습니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서울과 평양은 불바다가 되겠군요. 미국이나 일본도 간담이 서늘해질 것입니다. 하하하~"

  쏭 중장은 조선공작회의가 시작된 이래 계속 싱글거리고 있었다.  콧대 높던 인민해방군 장성들이, 내전에서 대단한 전공을 세운 그들이 조그만 나라 조선에게 참패를 거듭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이 나서서 평정한다고 생각하니 유쾌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오."

  리루이환 총서기가 말을 꺼내자 회의실에 있던 전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어서 총서기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핵기지 중에 하나라도 조선군에게 점령되거나 유도탄에 손해를 입으면 동지는 숙청이오. 그만큼 자신했으면 책임을 져야겠지. 동지! 알겠소? 그만큼 중요한 일이오."

  숙청... 직위해제부터 강등, 파면, 형사소추, 심지어 총살형까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여기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기가 있었던가! 그 살벌한 문화혁명과 정치위기 때마다 있었던 숙청, 그리고 내전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이었으나 숙청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살이 떨렸다.

  "일본이 왜 그 정보를 우리에게 흘렸을까요? 우리가 조선반도를 획득하면 일본에 상당히 불리해 질텐데요."

  분위기를 바꾸려고 총후근부장인 첸쯔밍 상장이 물었다. 그로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놈들 하는 짓은 항상... 우리가 좀 더 조선과 소모전을 해 주기를 바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새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임명된 왕민강이 나름대로 분석했다. 왕은 전인대(全人大 : 전국인민대표대회) 홍콩대표를 지냈던 자였다. 내전 당시, 그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둥-푸젠 세력을 지원하여 지금의 지위를 획득했다. 물론 전임 상무위원들이 저격병에게 떼죽음 당한 덕분이기도 했지만... 어쨋든 지금은 당의 정보부서인 외사국(外事局)까지 장악하고 있는, 일곱 명밖에 안되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의 한 명이었다.

  "우리가 핵을 쓴다는 걸 일본이 모르지는 않을텐데...  그건 그렇고, 왕 동지! 최 광 원수에 대한 회유공작은 어떻게 된거요?  진행이 좀 됐소?"

  왕 민강은 약간 당황했다. 상무위원이 되고 나서 첫번째 공작인데 잘 되고 있는지 조차 불분명했다.

  "주조대사의 보고를 받기로는 최 원수가 상당히 흔들렸다고 합니다. 어차피 조선이 핵을 피하지는 못할테니까 북조선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밤 10시40분, 조선시간으로 자정 20분 전에 최 원수가 연락해 주기로 했습니다."

  장군들이 원수라는 호칭을 듣고 피식피식 웃었다. 원수 3명에 대장보다 높은 차수가 8명이라니,북조선의 직책은 너무 인플레가 심하다는 평가였다. 하긴 원조전쟁(援朝戰爭 : 6.25) 이후 물갈이가 거의 안된 조선군이니 그럴만 했다. 중국군 총참모부장(총참모장)은 대부분의 경우 상장이 맡았고, 드물게 중장이 맡은 경우도 몇번 있었다. 같은 계급으로 비교한다면, 조선 인민군 상장은 중국군 소장이 맡는 군단장급 정도에 불과하다.

  "아직 확실한건 없군 그래요."

  리 총서기가 왕을 나무라기는 했지만  그리 신경쓰지 않고 있는 문제였다. 어차피 핵으로 조선을 두둘기기만 하면 끝나는 쉬운 문제였다.

  "제가 걱정되는 것은..."

  해군 사령 창리엔충 상장이 손으로 백발을 쓸어 올리며  말을 시작했다. 나이만큼 그의 말에는 무게가 실렸다.

  "조선이 현재까지 동원한 병력은 500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인구의 10분지 1을 동원하다니 대단한 나라이긴 틀림없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도대체 그 많은 병력이 지금 다들 어딨냐는 겁니다. 신의 주쪽과 후방에 많이 잡아 각각 백만, 동부 선봉지역에 2백만 정도가 있다고 쳐도 약 백만의 병력이 사라졌습니다."

  조선공작회의에 배석한 교관급 군관이 중국과 조선의 국경선 부근을 화면에 잡았다. 현재 인민해방군의 위치와 조선군의 추정위치가 표시되었다.  사라진 병력은 군정보기관이 심혈을 기울여 찾고 있지만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빠이터우산(백두산) 근처는 현재 전투가 없는 곳입니다.  만약 그쪽에 대규모 부대가 잠복하고 있다면... 그것은 조선이 만주에 대한 침공의사를 갖고 있다고 간주해도 됩니다."

  "에이~ 설마!"

  곳곳에서 창 상장의 의견을 비웃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창 상장은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계속 설명했다.

  "조선군이 혜산에서 압록강을 건너 만주를 거쳐 다시 두만강을 건너 선봉을 칠 수도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이 정도 기동을 한다면... 우리 군은 상당히 위험한 지경에 빠지며 동시에 만주도... 만주는 지금 어느 정도 부대가 배치되어 있나요? 리 동지."

  난징군구 사령 리양시 중장이 화면을 직접 조작했다.  병력배치는 군사비밀인 까닭에 교관급이 다룰 것이 못된다. 화면에 그림과 숫자로 현재 중국군의 병력과 위치가 표시되었다.

  "9병단과 22병단에... 아니, 16병단은 이미 전멸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편제는 되어 있군요. 수비사단 세 개와 인민무장경찰 독립대대 20여개는 있으나 마나고, 겨우 2개 병단으로는 저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병력을 증강배치해야 합니다. 그 2개 병단은 전력이 약하고 현재 분산배치되어 있군요. 이러다간 큰일납니다. 빠이터우산에서 베이징까진 기차로 6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십시오. 그들이 맘만 먹으면 베이징까지 바로 올 수도 있습니다.  조선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 아닙니까?"

  늙은이는 항상 보수적이다! 라고 쏭 중장이 창 상장을 보며 생각했다. 그는 중국의 발전이 늦어진 것은  노인들이 정권을 움켜잡고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쏭 중장은 내전에 적극 가담하고 결국은 승리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지금 늙은이가 나서지 않는가? 불쾌했지만 꾹 참고 발언했다.

  "허허~ 창 상장 동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오늘 밤에는 다 끝날 전쟁 아닙니까?  혹시나 만주로 쳐들어 온다면 핵을 몇 발 더 쓰면 되겠지요."

  쏭 중장이 대답하고 나서 껄껄거리며 웃자  다른 장군들도 따라 웃었다. 핵이 있는데 감히 조선군이 어찌 만주를 침공해 오겠냐는 자신감이었다.

  "에... 오늘 저녁 선봉 주변 해안에서 조선군 정찰대의 침투가 몇 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상륙작전의 징후로 보입니다. 피스라는 용병단체의 양륙함은 지금 동해안에 있습니다.조선의 남해함대도 함경북도 해안으로 이동 전개 중입니다. 틀림없이 상륙작전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라진 백만의 병력은 상륙예비병력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전선에서 약간 떨어진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겠죠.  조선반도 동쪽 해안에서 말입니다."

  리양시 중장이 단말기를 조작하여 화면에 있는 화살표로 한반도 동해 안 쪽을 긁었다.  산맥에 가려 중국의 정보망이 커버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정치국원과 고위 장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륙작전을 실시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게다가 대규모로 하기에 그들의 상륙작전능력은 떨어지고...  더우기 핵유도탄을 발사하겠다고 보낸 최후통첩에서 발사시간을 오늘밤 자정으로 정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늦었습니다. 자정 이전에 항복하든지 아니면 서울과 평양이 잿더미가 된 다음에 항복하든지, 또는 남북 조선이 피터지게 싸우든 간에 그들의 항복은 기정사실입니다. 상륙작전은 전혀 걱정할 게 못됩니다."

  총서기를 포함한 참석자들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역시 핵폭탄은 직접 사용하지 않아도 전략적으로  대단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마오 주석이 왜 그토록 핵에 집착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중한 창 상장이 이견을 제시했다.

  "조선정부는 자국에 핵이 있다고 주장했소.  그 화면을 동지들도 모두들 보았을 것이오. 그게 만약 진짜라면? 러시아나 미국, 카자흐, 벨로루시 등 모두들 자국에서 수출하지 않았다고 발뺌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핵보복에 나선다면?  그리고 만약에 조선 침투부대가 핵유도탄 기지를 하나라도 점령하거나 유도탄을 탈취한다면?"

  "하하! 기우입니다. 걱정은 제발 마십시오."

  쏭 중장이 다시 나섰다. 핵기지가 조선군에 침탈당하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국 국적이 아닌 조선인은 모두 수용소에 갇혔다. 톈진 등 몇몇 도시에 조선 게릴라들이 난동을 부렸다지만 이미 진압했고 더 이상의 난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틀림없이 당과 국무원의 정보부서들이 조선게릴라의 소멸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쏭 중장도 TV뉴스에서 게릴라들의 시체를 구경했었다.  아직까지 게릴라가 남아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내가 총사령관이라도 게릴라는 진작 다 소모했겠지.'

  1999. 11. 25  21:55  함경북도 부령, 풍산동

  북쪽을 방어하던 구르카 2대대는 붕괴되었다. 중국군은 1파 공격으로 지뢰밭에 침공로를 개척하고,  다시 2차 공격대가 2대대의 실탄을 소모시켰다. 3파는 단숨에 대규모 병력으로 공격했다. 방어선이 뚫리자 2대대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그들은 후퇴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맞서 싸웠다. 여단장인 돈나카가 후퇴를 명령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전투를 위해 태어난 전사들답게 최후를 맞았다. 인민해방군 2개 병종사단 병력이 무너진 방어선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야간이라 어쩔 수 없이 곳곳에서 백병전이 전개되었는데, 구르카 용병의 특기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육박전이 시작되자, 구르카 용병들은 애용하는 쿠크리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들은 전쟁을 즐기는듯 했다. 그들의 눈빛이 번쩍이며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사방에 폭음과 총성, 비명이 터져나왔다. 본부 요원들과 지하벙커를 나설 준비를 하는 돈나카는 자신의 최후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남지나해에 있던 중 티벳 임시정부 총리의 전화를 받았었다. 총리의 명령은, 한반도에 파견되는 피스의 지상군부대에 지원하여 중국을 공동의 적으로 둔 통일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정부관료들과 연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티벳독립에 한국의 힘이라도 빌릴 셈이었던가? 돈나카는 어쨋든 총리의 명령을 수행키로 했다.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노선에 총리가 반기를 들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그를 믿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미 한반도로 항진하는 양륙함에 탑승해 있었다.

  그는 한국,  특히 북한지방이 고향인 티벳과 닮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다음으로 한국인이 티벳인들과 너무 닮았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유럽에서 만난 대부분의 동양인들은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이어서 한국인을 만날 기회는 없었는데, 한국에 와서 본 이곳 사람들은 고향사람들과 왜 그리 닮았는지...

  그는 이 인민군을 몇 명 보았는데 무척 강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티벳 사람만큼 강인하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티벳에서는 산모가 아기를 서서 낳는다.  그리고 아기가 스스로 울 때까지는 죽든지 말든지 아기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약한 아기는 필요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낳은지 1년쯤 되면 한겨울에 아기를 찬물 속에 쳐 넣는다.이런 시련을 겪고도 살아남아야 그 아기는 사람 대접을 받게 된다.  한국의 풍습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중국군은 베트콩들처럼 무모한 자살공격은 하지 않았다. 돈나카는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반쯤 무너진 지하벙커를 나섰다.  청진 앞바다에 있는 양륙함에서 전투기가 출격했다는 연락은 받았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참모장과 본부요원들이 그를 따라 북쪽으로 걸었다.  사방에 포탄이 작렬하고 있었지만 피하거나 숨지도 않았다.  일순간에 포화가 딱 멈췄다. 하지만 총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많이 들렸다. 아군의 것이 아닌 중국제 AK 종류였다.

  "투카카카~~~"

  무전병이 적을 발견하고 자동으로 소총을 긁었다.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다가 오던 중국군 네 명이 그자리에서 거꾸러졌다. 동료들이 죽은 것을 보고 놀라 한 명이 도망쳤으나 같이 있던 부관이 도망가는 병사를 좇았다.  부관은 뛰어 가면서 그 병사의 목을 쳤다. 쿠크리 단검은 가운데가 칼등 쪽으로 휘어 있다. 낫모양의 이 단검은 던지기나 찌르기에는 부적합하지만 단 한가지 용도에는 아주 훌륭하다. 목이나 다리, 팔 등을 단칼에 자를 수 있는 검이다. 철모를 쓴 머리가 바닥에 구르며 피가 눈위에 확 뿌려졌다.

  "온다던 전투기는 어떻게 된거야?"

  무전병이 다시 양륙함을 호출했으나 응답은 없고 잡음만 잔ㅉ 울렸다. 돈나카가 허탈하게 웃었다. 구르카병사들이 다른 부대의 지원을 바라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돈나카 옆에 서 있던 작전참모가 베레타 권총을 들고 어둠 속을 향해 두 발을 연사했다. 정확한 사격이었다. 30미터 정도 걸어가니 흰색 방한복을 잔뜩 껴입은 중국군 병사 두 명이 쓰러져 있었다. 앞쪽에서 수십명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군이었다.

  "어차피 도망도 못가고..."

  돈나카는 미니미 기관총을 들어 몰려오는 중국군을 향해 연사했다.물이 튀듯 눈이 튀었다. 부관이 가방에서 수류탄을 꺼내 계속 던졌다. 폭음과 섬광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중국군은 일단 물러났으나, 병력이 증원되자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1개 중대의 중국군이 함성을 지르며 뛰어 왔다. 다시 사격을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대규모 공세를 취하는 중국군, 그리고 이 지경이 되도록 지원하지 않는 한국군 사이의 상황에 뭔가 변화가 있다고 느꼈다. 동부 전선에는 한국군 병력이 중국군보다 훨씬 많다고 들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전쟁은의외로 오래 끌 것 같았다.

  갑자기 상공에 폭음이 울렸다.  상공에는 아직 비행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공격해 오던 중국군들이 멈칫거렸다.  잠시 후 남쪽에서 전투기들이 나타나자 중국군들은 즉시 땅바닥에 엎드렸다. 청진의 양륙함에서 이륙한 해리어 II 전투기 네 대가 나타나더니 2대대 전면에 50밀리 로켓탄을 발사하고 산을 넘어 그대로 북쪽으로 날아갔다.  로켓탄이 연속 폭발하고 그 화염 위로 미사일이 날았다.

  "이 멍청이들아! 목표 위치는 바꼈어. 아예 우리 진지에다가 퍼부으라고!"

  무전병이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으나 이 말이 전달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음에 온 편대도 같은 위치에 폭격한 것이다. 폭격이 끝난 것을 확인한 중국군들이 슬금슬금 일어나더니 다시 공격해 왔다. 잠시 폭격을 구경하던 양측이 다시 전투를 재개했다.

  여단장인 돈나카 탄진은 이미 부하들에게 자유행동을 지시했다. 개별적으로 후퇴하거나 항복해도 좋다는 것이었지만 구르카 용병들이 이 말을 들을리 만무했다.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자신들의 비겁한 행동 때문에 후배들의 용병 일자리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거의 유일한 외화수입원인 용병 일은 네팔에서는 주요한 수출산업이었다. 그들은 결코 후퇴하거나 도망갈 수 없었다.

  1999. 11. 25  22:00 함경북도 부령 백사봉

  [본대가 심하게 당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2중대장이 보고할 때  빠뜨랭은 서쪽 하늘을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중국군이 발사하던 포성은 이미 멈췄다. 총소리가 차츰 줄어들고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증거였다.

  [지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중국군 1개 사단을 뚫고 말인가? 그리고 그 방향에는 아군이 살포한 지뢰도 있고... 아무래도 우리 자신이나 신경써야겠어. 곧 몰려올테니."

  [옵니다! 스키부대입니다!]

  1중대장이 보고했다. 빠뜨랭이 북쪽 산기슭을 올려보니 어둠 속 하얀 눈밭 위로 허연 물체들이 수없이 몰려왔다.  산악포와 박격포탄이 참호선 곳곳에 다시 낙하하기 시작했다.

  "사격!"

  북동쪽 산사면을 따라 내려오는 중국군 스키부대의 숫자는 엄청났다. 중화기가 총동원되어 치열하게 사격을 했으나 그 숫자는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산비탈에 쌓인 눈 곳곳에 총탄에 튀어 눈보라가 일었다. 중국군은 순식간에 방어선에 접근하여 스키를 탄 채 점프를 하며 참호로 뛰어 들었다. 이들을 뒤따라 피해를 입지 않고 접근한 보병들이 돌입했다.

  참호선 곳곳에서 기관단총 소리와 수류탄 폭발음이 들려오자, 빠뜨랭 되고 있는 기관총 사수들을 그가 있는 곳으로 집결시켰다.작은 원을 중심으로 이들을 배치한 다음, 대부분 서쪽으로 총구를 향하게 했다.  곧이어 반대편 넓은 평원쪽에서도 중국군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키부대가 5대대의 배후에 나타가길 기다리고 있다가 포위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거리 300에서 일제사격 실시!"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린 빠뜨랭은 이제 전투는 자신과 상관없다는듯이 참호 위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밤하늘은 맑았고 별이 총총했다. 그가 내뿜은 담배연기가 공기중에 퍼져 나갔다.  그를 따라다니던 저격병과 무전병이 시선을 교차했다.  늙은 저격병은 다시 육박전이 진행되고 있는 아군 참호쪽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구르카 병사를 쓰러뜨리고, 창같이 뾰족한 총검으로 막 그를 찌르려던 중국군이 난데없이 날아온 총알에 쓰러졌다.

  잠시 후 기관총이 서쪽을 향해 일제히 발사되었다.  기다란 참호선에서는 아직도 백병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참호선 앞쪽은 기관총의 일제사격으로 무수한 숫자의 중국군 병사들이 쓰러지고 있었는데, 10여년간 용병생활을 했음에도 빠뜨랭은 아직도 죽는 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이따위 전쟁이 벌어지고 젊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죽어야 되나?"

  화가 잔뜩 치민 빠뜨랭이 불어로 외쳤다. 구르카 병사들은 그를 힐끗 보더니 사격을 계속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중국, 빌어먹을 한국!"

  빠뜨랭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그 자신은 이미 삶에 대한 의욕은 없었다. 향수공장 연구실에서 맡았던 그 매캐한 화약냄새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았다.  십년간 전쟁터를 돌아다녔지만,  자신을 사로잡았던 그 강렬한 냄새는 아직 찾지 못했다. 분명히 화약냄새만은 아니었다.  이곳저곳 전쟁터에서 비슷한 냄새를 맡기도 했지만, 그 냄새는 분명 아니었다.

  빠뜨랭은 갑자기 몸에 충격을 받았다. 잠시 후 등쪽에서 강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졌다.  피가 튀고 공기중에 피냄새가 확 퍼졌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면서 참호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피우던 담배가 턱을 지졌다.  옆에 있던 무전병과 저격병이 네팔 말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바로 이 냄새였구나. 화약과 신선한 피냄새가 섞인 죽음의 냄새... 역시 강렬하군...'

  그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숨졌다.

  1999. 11. 25  22:10  중국 지린성 뚠화

  "항공정찰 사진에 비해 경비가 훨씬 강화되어 있습니다."

  백 창흠 대위가 야시경으로 중국 핵미사일기지 주변을 살피다가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내말이 그말이외다. 백 동지."

  가 경식 소좌도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입구 쪽에 전차 2대와 보병전투차 4대가 배치되어 있고 초소와 참호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침투는 예상보다 상당히 어려워지겠다며 다들 걱정했다.

  "지도에 없는 초소, 지뢰, 지뢰, 초소... 강 동지, 기입했간?"

  "했습네다. 책임자 동지!"

  인민군 정찰연대 출신인 가 소좌와 강 중위는  캄캄한 밤중에도 지뢰밭을 정확히 짚어내어 이를 지도에 표시했다.  그들은 지뢰지대의 정확한 위치를 서로 확인하지도 않고 말만으로 통하는 것같았는데, 백 대위가 보기에는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점령할 곳은 통제실과 사일로입니다. 문제는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겠죠."

  백 대위가 가 소좌를 넌지시 쳐다보자, 가 소좌는 백 대위를 쳐다 보지도 않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도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땅크를 때려 잡을 중화기가 부족하외다. 천상 우회하는 도리밖엔... 긴데 지뢰천지라서... 안에 있는 아새끼들서껀 죄 합쳐 1개 대대레 되갔구만!"

  기술분야의 백 대위는 미사일기지의 경비상황을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같이 훈련받으면서 이들의 능력을 충분히 신뢰하게 되었다.  침투와 파괴공작에서 이들을 따라갈만한 자들은 없었다.  해군 UDT나 공수특전단도 이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도대체 인간의 한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가 알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의 특수부대보다 강했다.

  "그럼 힘들다는 말씀입니까? 본부에 그렇게 보고할까요?"

  "앙이오! 기기 무시기 말씀이오? 내레 단지 총알이 부족할까 걱정한 거디오."

  백 대위가 넌지시 떠보자 가 소좌는 황망히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가 소좌는 이 팀의 책임자였지만  소위 남반부 국방군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세력이 약한 쪽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핵기지 공격팀은 침투 및 지원조에서 팀장이 선임되고 기술조에서 부팀장이 임명되는 식으로 팀이 구성되었다.  핵기지를 점령할 경우 모든 지휘권은 기술조 조장, 즉, 부팀장이 장악하게 된다. 초반에 이런 구성을 인민군측에서 반대했었지만, 컴퓨터와 로켓 기술에서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쪽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조직구성에 동의했다. 문제는 과연 이런 소수의 팀으로 삼엄하게 경비중인 핵기지를 점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작전을 구상한 통일참모본부측에서도 회의적이었지만, 기적이라도 일어나 다만 한두개의 기지라도 점령하길 바라고 있었다. 중국의 핵위협에 시달리는 통일한국군 최고지휘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99. 11. 25  22:15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우루무치시 동쪽 15km

  중국의 서쪽 끝, 신장웨이우얼(新彊 維吾爾) 자치구 우루무치시 외곽의 사막에서는 20여 마리의 말이 어둠과 사막의 모래바람 속을 뚫고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말에 탄 10여명의 유목민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계속 달리기만 했다. 터번을 두르고 사막 옷을 입은 그들은 얼핏 보기엔 이 근처에 사는 위구르족이나 하싸커(哈薩克)족처럼 보였다. 오랜 세월 햇빛에 그을은 듯한 구리빛 피부가 이들의 강인함을 말해 주는 듯했다. 광대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달리는 그들 북쪽으로는 톈진(天山) 산맥이 달빛을 받으며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이 가던 방향으로 헤드라이트를 밝게 켠 사륜구동차가 멀리 나타났다. 선두의 말이 갑작스런 불빛에 놀라 앞다리를 들고 울음소리를 냈다.

  "순찰차입네다!"

  "모두 침착하시오! 자연스럽게 행동하시오."

  이들은 분명 한국말을 쓰고 있었다. 사륜구동차가 이들을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왔다. 20여 마리의 말을 바꿔가며 타는 10여명의 사람들은 자동차가 다가오자 멈춰 섰고, 차는 이들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 정지했다. 차에서 중국군인이 한명 내리는게 보였는데, 눈부신 헤드라이트 너머로 나머지 병사들이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슴프레하게 보이는 가운데 한 명이 차에서 서 있는것으로 보아 기관총 사격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야히미시즈(안녕하십니까)?"

  "야히미시즈?"

  일행 중의 한명이 먼저 위그르어로 인사하자 중국군인도 위그르어로 인사를 받았다.

  "웨이우얼(위구르의 중국명)족이시구만. 이 밤중에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거요?"

  두툼한 야전복을 입은 중국 병사는 중사계급장을 달고 있었는데,  이 지역에 상당히 오래 근무한 것처럼 보였다. 중국군이 북경어로 묻자 선두의 유목민이 더듬거리는 중국어로 답했다.

  "메르 헤메티(죄송합니다). 투루판(吐魯蕃)에 계시는 저희 일족의 큰 형님께서 말년에 아들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중까지 도착해서 이 경사를 축복해 드리려고 가고 있습니다.  차는 믿을만한게 못되거든요. 우리 식구들도 많고..."

  선두에 선 유목민이 뒤에 서 있는 식구들을 가리켰다. 여러가지 연령층에 여자도 한 명 섞여 있었다.  중사가 여자를 힐끗 보고는 유목민에게 경고했다.

  "오늘밤에 이 지역은 통행금지요. 더 이상 동쪽으로 가지 마시오. 비상이 내렸거든. 혹시 수상한 사람은 못봤소?"

  중사는 이들을 보며 참으로 한가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하긴 이번 전쟁은 이들 위구르족과는 거의 상관없을 것이다. 2천 킬로미터 이상이나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무슨 상관일까?  자신도 거의 전쟁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판이었다. 다만, 중국측이 상당히 불리하다는 것이 불안했지만...

  "츄시엔미딤.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급하게 와서. 아까 한참 전에 차 몇 대가 반대쪽으로 지나갔는데요."

  유목민 일행은 중국인과 이야기하고 있는 일행이 빨리 말을 끝냈으면 좋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이 지역사람이 아닌 그들은 오래 이야기할수록 불리하기 마련이라.

  "어쨋든, 이 지역은 핵기지가 있으니 동쪽으로 갈 수 없소. 남쪽으로 빙 돌아서 가든지 내일 가든지 하시오."

  "어이구~ 나리! 오늘 밤중에 꼭 도착해야 하는데요.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임시통행증이라도 제발 부탁드립니다."

  유목민이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두툼한 지폐뭉치를 꺼내 그 병사에게 주자 병사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허, 이거. 할 수 없구만. 이 통행증을 줄테니까 다른 순찰조에게 보이도록 하시오. 그들에게도 성의를 보이는걸 잊지 말고. 참, 핵기지에서 4km 이내에는 절대 접근하지 말고 우회하도록 해요. 오늘은 경비가 삼엄하고 접근하면 위험해지니까."

  "라히미티, 라히미티!(감사합니다)"

  유목민은 병사가 차로 돌아갈 때까지 허리를 연신 굽신거렸다.  잠시 후 순찰차가 그들이 왔던 방향으로 돌아갔다.

  "휴~ 내레 십년감수했수다!"

  "수고했습니다."

  이들은 우루무치 미사일기지를 담당한 요원들이었다.  원래는 파키스탄 접경의 대륙간탄도탄 기지인 아커쑤(阿克蘇)를 공략할 계획을 세웠으나 그 기지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어 접근이 어렵고,  게다가 경비가 대폭 강화되어 출발 직전에야  러시아국경과 가까운 우루무치로 변경되었다. 이들은 말로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오늘 저녁에야 도착, 현지 요원과 접선하여 핵기지로 접근 중이었다.

  원래는 작전개시 시간을 새벽으로 잡았지만  중국이 자정에 핵공격을 가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작전에 큰 차질이 생기고 있었다.  지금 전속력으로 달려간다고 해도 자정 전에 도착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쨋든 이들은 다시 최고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1999. 11. 25  22:20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차 영진 준장은 전차대를 이끌고 이동 중에 통참으로부터 긴급연락을 받고, 통참에서 보낸 연락용 헬기에 탑승해 구리시의 어느 부대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승용차를 타고 통참으로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부대에는 통일참모본부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던 그 부대의 대대장도 전혀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선으로 다른 곳에 물어봐도 모두 모른다는 대답 뿐이었다. 육군본부나 국방부에서는 일급보안사항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차 준장이 황당해 하고 있는데 민간인 복장을 한 사람이 그를 만나러 왔다. 통참에서 보낸 사람이란 것을 직감한 그는 민간인을 따라 나섰다. 통참의 연락관이라고 신분을 밝힌 그는 빨간색의 95년형 아반떼 승용차 열쇠를 차 영진에게 주며 통참의 위치를 구두로 설명했다.  갈 때 계급은 숨기라며 지령처럼 속삭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설명을 마친 그 연락관은 버스시간에 늦는다며 서둘러 부대를 나섰다. 혹시나 못찾을까봐 걱정한 차 준장은 같이 타고 가면 되지 않느냐며 청했으나 그는 거부한 것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승용차에 올라탔다. 원래는 민간인 차인데 이번 전쟁통에 징발당한 모양이었다.  차주인의 성품을 말해주듯 차 내부는 지저분했고 담배냄새에 찌들어 있었다. 주인이 잊었는지, 아니면 전쟁중인 군인에게 주는 위문품인지 음악 테이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동을 킨 그는 캄캄한 부대 앞길로 나섰다.

  연락관이 말해 준 그 위치라면 차 영진도 잘 알고는 있었다. 그는 장군체면에 운전병도 없는 소형 승용차를 타고 국도를 달렸다.  경춘국도는 의외로 평화로워 보였다. 승용차와 트럭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몇년 전에 확장공사를 했음에도,  그리고 더우기 전시중에도 이 도로의 체증은 대단했다.  미금시를 빠져 나온 그는 30분만에 겨우겨우 새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호등이 꺼지고 군인이 경비를 서고 있는 철로 건널목을 지나, 2차선 도로를 1분쯤 달리니 조그만 건물로 향하는 비포장도로가 보였다.

  그 도로를 지나자 벽돌로 대충 쌓은듯한 입구가 보이고 문 옆에는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정문에 붙은 초라한 나무현판에는 7291부대  제 1대대 제 3중대라는 부대명이 검은 페인트로 초라하게 칠해져 있었다.  차 영진은 여기가 과연 5백만 통일한국군을 지휘하는 통일참모본부인가 의심스러웠다.  바리케이드 뒤에서 병사들이 나와 그의 차를 정지시켰다.

  "여기가 통일참모본부인가?"

  차 영진이 차 유리창을 내리면서 물었다.  살을 에이는듯한 찬바람이 불어왔다.

  "아닙니다. 이 근처에 그런데가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신분증 좀 보여 주십시오. 여긴 군부대라서 민간인 통제구역인데요."

  "이봐! 여기 계급장 안보이나?"

  차 영진이 화가 나서 조수석 아래에 감춰둔  야전상의의 계급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병사는 별로 놀란 눈치도 아니었고 막무가내였다.

  "죄송합니다. 신분증을 보여 주십시오."

  차 영진이 분을 삭이며 육군수첩을 건네주자 경비병이 이를 통제소로 가져갔다.  다른 병사는 총구를 그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게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장성에게 저런 행동을 취하다니! 후방의 병력은 너무 군기가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통일참모본부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가 더 난감했다. 신분증을 가져갔던 병사가 다가오자 차 영진이 연대사령부의 위치를 물으려는데 그 병사가 먼저 말했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쭉 올라가십시오. 2층 황실입니다. 통일참모본부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장군님!"

  이제야 병사들이 앞에 총을 하며 경례를 붙였다. 차 준장은 약간 황당했으나, 병사가 신분증과 출입증을 주자 정신을 차려 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갔다. 50미터쯤 가니 조그마한 2층 벽돌건물이 있어 그는 운동장에 주차시키고 계단을 올라갔다. 안쪽으로 갈수록 경비는 점점 삼엄했다.

  1999. 11. 25  22:25  서울 국방부 지하벙커

  옛날엔 비상시 육군본부의 지휘소로 쓰였던 국방부 지하벙커에서 비상국무회의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국무위원들은 우습게도 굴비 엮듯 이 줄줄이 삼엄한 경비속에 버스에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버스에 탑승했기 때문에 이들은 불만을 터뜨릴 수도 없었다. 어쨋든 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이 긴긴 밤이 새야 이들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만약 살아남더라도...

  "서울이 제 1의 목표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핵폭탄의 위력은 전선에서도 사실상 크지 않습니다. 밀집한 대규모 기갑부대에게나 유효한거죠. 어쨋든 시민들을 대피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무총리의 말에 대통령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의 눈치만 살폈다. 전쟁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 국무위원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대통령을 사정없이 몰아붙이기 일쑤였던 것이다.

  "글쎄요. 과연 중국이 핵공격을 감행할지요... 잘못하면 엄청난 혼란이 발생합니다. 두시간 정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민이 대피할 수 있을까요?"

  최 창식 총리가 비상소개령이 내려진 한밤중의 서울 거리를 상상해 보았다. 도로에 넘쳐나는 차들, 피난민들... 오늘 밤이 새더라도 서울시민의 10분의 1도 서울을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도로가 집중된 서울 인근의 차량통행이 마비된다면 전방으로 수송중인 군수품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게될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할 수 없습니다."

  총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놈의 도시는 너무 거대해졌다. 전쟁같은 극한상황에서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것이 대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최 총리!"

  "네! 각하."

  최 총리는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까 겁이 났다.  단군이래 가장 만만한 국가지도자라는 평을 듣던 무소속출신의 대통령이 전쟁이 발발하자 몰라보게 달라졌다.  대통령은 전쟁이라는 위기상황을 이용하여 권력을 확대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인간의 욕심이란 모르는 것이다.

  "총리께서는 대전으로 가 주시오. 유성에 있는 정보사단의 위치를 헬기 조종사가 잘 알고 있소. 그곳으로 가서 지휘관들을 격려해 주시오."

  총리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각하! 혹시..."

  "그렇습니다. 대통령 유고시에는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아 주시오."

  "각하!"

  총리는 눈물이 핑 돌았다. 대통령의 가장 큰 반대세력은 사실 총리가 소속된 당이었다.  대통령은 연립내각을 구성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총리직을 그 당에 배분했으며 당총재는 대통령을 우습게 봤는지 정치경력도 길지 않은 재선의원을 총리로 천거했다. 대통령은 이 굴욕을 감수하고서야 간신히 안정의석을 가진 내각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어서 총리는 절대로 대통령이 그에게 권한대행을 맡기지 않을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총리가 최초로 대통령에게 감복했다. 다른 국무위원들도 신기한 일이라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비서관!"

  미리 준비된듯 40대 초반의 비서관이 검은색 가방을 가져와서 대통령에게 주자 그가 이를 총리에게 넘겼다. 총리가 물끄러미 가방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총리께서는 의외로 배짱이 있으시더군요.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출발하시오."

  대통령이 총리에게 신뢰의 눈길을 보냈다. 그가 당총재의 명령만 수행하는 허수아비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이 총리의 의견을 그동안 대폭 수용해 온 것은 제 1연립여당의 위세가 무서워서가 아니고 총리를 믿어서였다는 것을 국무위원들이 깨닫게 되었다. 국무위원들은 무서운 대통령에 무서운 총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하! 저도 여기 있겠습니다!"

  "명령이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대통령의 명령은 확고했다. 아니, 그가 총리에게 명령이라는 말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거역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 네. 각하! 부디 보중하십시오."

  뚱뚱한 체구의 사람 좋게 생긴 총리가 어깨가 축 늘어진채 밖으로 나갔다. 양심적인 그는 상당히 부끄러워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국무위원들 사이에 번졌다.  총리가 나간 것을 확인한 대통령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 이제 회의도 끝났고 우린 이제 할 일도 없습니다. 장군들이 알아서 다 하겠죠. 통일참모본부나 정보사단... 우린 그들을 밀어주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잖습니까? 우리 고도리나 칠까요? 아니면 포카 어때요?"

  점잖은 국무위원들이 경악을 하며 벌어진 입을 다물줄 몰랐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놀이라니. 이때 용감한 내무장관이 외쳤다.

  "각하! 고도리는 일본말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고스톱이라고 말씀하십시오! 저는 포카를 치겠습니다. 하실 분 이쪽으로 오세요~"

  1999. 11. 25  22:30  베이징판띠엔

  "거 참 심심하군요. 무작정 자정까지 이렇게 기다려야 합니까?"

  리양시 중장이 하품을 하며 정치국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총서기와 창 리엔충 상장은 묵묵히 모니터만 주시하고 있고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끼리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장관(將官)들은 몇명은 서 있고, 몇 명은 앉아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 중장은 마작 생각이 간절했다.

  "기다릴 것도 없이 그냥 발사해 버리죠. 어차피 기다릴 필요는 없잖습니까?"

  강경파인 제 2포병 사령 쏭윈펑 중장이 말하자 정치국원들이 깜짝 놀랐다. 총서기와 창 상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도 좀 더 기다려 봅시다. 평양에서의 움직임은 없소?"

  총서기가 묻자 외사부 담당인 정치국 상무위원 왕민강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평양주재 대사의 보고로는 평양 인근에서 군부대의 이동이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소규모의 차량행렬이 수차례나 도심쪽으로 향하는 것이 정보원들에게 목격되었습니다. 하지만 쿠데타로 보기에는 병력이 너무 소규모..."

  "어차피 평양은 최 광 원수의 장악하에 있으니 상관없소."

  묵묵히 듣고 있던 첸쯔밍 총후근부장이 단언했다.  평양은 어차피 관심사 밖이었다.  인민군이 어떻게 움직여 줄 것인가가 문제였는데 전선은 의외로 조용했다. 다만 선봉을 중심으로한 동부전선만이 중국군의 공세로 소란스러울 뿐이었다. 이것도 본격적인 공세가 아닌 양동작전이므로 전황은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중국 지도부가 바라는 것은 한국의 항복, 또는 이에 준하는 선봉지역의 할양이었다.  만약 인민군과 한국군 사이에 내분이 발생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어설픈 공작이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유도탄 숫자를 늘립시다. 세 발 정도가 적당하지 않겠소?"

  창리엔충 상장의 제안에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아닌 리루이환 총서기였다.  창 상장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온건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한반도에 발사되는 핵미사일의 숫자를 늘리자는 것이 아닌가? 창 상장이 부언했다.

  "어차피 핵을 발사하는만큼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소. 한 발일 경우 한국군이 요격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단 말이오. 확실하게 끝장을 봅시다."

  "하하하! 절대 요격할 수는 없습니다.  유도탄이 대기권에 재돌입할 때는 음속의 20배 이상의 빠르기입니다. 패트리엇, 나이키, 호크 등 한국이 보유한 어떠한 지대공 미사일로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3기로 확대하자는 창 상장님 제안에는 동의합니다.  이 기회에 한국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조국의 백년대계에도 유리할 것입니다."

  쏭 중장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도 내심으로는 단 1기만 발사하는 것이 불안했다. 그의 말은 정치국원들에게는 염라대왕의 선고처럼 들렸다. 수백만의 인명이 살상될 것을 상상한 정치국원들이 전율했다. 상상만 해오던 핵전쟁이 드디어 실체화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모두들 핵위협으로 끝낼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이 끝까지 버틸 경우 중국이라는 대국의 자존심상 핵을 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 되었다. 정치국의 분위기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서울 말고도 사이좋게 평양하고... 음... 선봉 부근에도 한 발 날릴까요?"

  쏭 중장이 의미있는 웃음을 지으며 정치국원과 고위 군지휘관들을 바라 보았다. 군부에 영향력 있는 노장이며 총서기의 후원자인 창 상장이 발사기수 확대를 주장한 만큼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선봉 부근이 잔류방사능에 오염되면 애쓰고 점령할 필요있겠소? 이번 전쟁의 목적이 뭡니까? 한국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의미가 있지 않겠소?  차라리 그동안 우릴 속ㅆ인 선천부근의 게릴라들에게 불벼락을 내려 줍시다."

  첸츠밍 상장은 아직도 신의주와 단둥의 수몰로 인민해방군이 큰 피해를 입은데 대해 치를 떨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가장 골치아픈 존재이며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한 원인이 북부군이라는 게릴라조직이라고 생각한 그는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확대당군사위원들이 더 많았다.

  "그것보다는 지휘부인 통일참모본부라는 것을 때려 잡읍시다. 머리를 잘라야 힘을 못쓰겠죠. 개성 부근에 있다면서요? 서너차례 공습하려고 했는데 모두 실패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리양시 중장이 제안하자 고위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군사위원들이 주축이 된 확대군사공작회의 멤버들의 대부분이 찬성했다.

  "좋습니다. 개성으로 합시다. 그러나 외국의 눈도 있고 하니..."

  듣고만 있던 총서기가 입을 떼었다. 정치국원과 군부인사들이 침묵했다. 외국이란 핵강국을 뜻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다. 미국이나 러시아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모종의 행동에 나설 수도 있고,  핵을 사용했다는 빌미를 잡아,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유엔이 나설 수도 있었다.  전쟁에서 핵을 사용하는 것은 전 인류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대륙간탄도탄을 보유한 중국을 공격할 배짱을 가진 나라는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불안했다.

  "세계여론의 비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민간인 피해를 줄여야만 합니다. 미국이 아세아전쟁에서 사용한 핵 때문에 도 비난을 받고 있지 않소? 그러니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 봅시다."

  "탄두의 위력이 적은 것을 발사하고 지중폭발을 시키면 됩니다. 하지만, 낙진이 더 많이 발생하여 방사능오염지역이 확대되니 마찬가집니다만... 발사계획을 많이 바꿔야겠군요. 산시성의 발사는 취소하겠습니다."

  쏭 중장은 발사계획의 상당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원래 산시(山西)성에 밀집한 여러 핵미사일 기지 중에서 서울을 향해 3메가톤급 미사일을 한 발 발사할 계획이었지만 세 발이라면 여러 곳에서 발사할 수 있게되어 좋았다. 그는 인민해방군 제 2포병의 위력을 다른 장관이나 다른 핵강국에 과시할 수 있다는 영웅심에 불타 올랐다.  그는 이 기회에 인민해방군 주력이 하지 못한 조선의 항복을 멋지게 받아낼 참이었다.

  "그래도 그게 좋겠소. 여론이라는 것은 처음 발생한 사상자에게만 관심이 있을테니. 히로시마에 떨어진게 어느 정도요?  그 정도 위력의 핵이 좋겠소."

  "그럼 동풍2호(DF-2)가 좋겠습니다. 비슷한 20킬로톤입니다. 사정거리가 짧으니 뚠화와 상하이에서 발사해야 합니다. 지중폭발로 하고... 하나 정도는 메가톤급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위력과시용으로 하나쯤은..."

  이들은 얼마나 많은 인명을 살상할지 결정하고 있었다. 자기딴에는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듯 상대방이 불쌍해서 봐준다는 의미도 있었다. 동풍2호는 중국이 1970년에 MRBM으로 실전배치한 핵미사일이다.  사정거리는 개발시에 1,200킬로미터. 탄두위력은 20킬로톤급이다. 서방측 분류번호는 CSS-1.

  "개성이라는 곳의 적 지휘부가 좋겠소. 그곳을 아주 초토화시켜 버립시다."

  리양시 중장이 개성의 통일참모본부를 메가톤급 핵미사일의 희생물로 삼자고 제시한 것은 합리적이었다.  민간인 피해도 줄이고 공격의 명분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럼 그곳에는 아커쑤에서 대륙간탄도탄을 날리지요.  3메가톤으로 하겠습니다. 세계 최초로 탄도탄이 실전 사용됩니다.  미제국주의자나 망해버린 러시아놈들 모두 깜짝 놀라겠습니다. 하하~"

  창 상장은 모두들 미쳐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대국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지금 선택권은 없었다.  세계여론이 비등하고 다른 강대국에게 핵보복을 받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창 상장은 총서기와 확대군사공작회의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갔다.

  1999. 11. 25  22:40  성남, 서울공항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은 확장공사 이후 가장 큰 손님들을 맞았다. 거대한 C-130 허큘리즈 수송기 12대가 착륙한 것이다. 테러, 또는 사고를 우려한 군지휘부는 김포공항이나 영종도공항이 아닌, 서울공항에 이 수송기들의 착륙을 유도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화물의 하역을 마치고 있었다.

  "화물은 ASAT 6기, 패트리엇 1개 대대분, ABM 3개 포대입니다. 수령증에 확인을 해주시오."

  미공군 대령의 계급장을 단 수송기 편대장이 한국군 통역관의 안내를 받아 하역을 지휘하고 있던 국방부 조달본부 소속의 조달관에게 오자마자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서류를 내밀었다.  공군 중령인 이 나이든 조달관은 ABM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조달관은 단지 이번 일이 위성공격을 위한 미제무기의 인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ABM이라니... 전혀 예상 밖이었다.

  조달관이 서류를 자세히 보았다.  ABM은 HOE-3 미사일이라고 되어 있었다.  HOE라면 대륙간탄도탄인 미니트맨의 로켓에 팝업용 추진체를 결합시킨 비핵요격미사일 개발실험의 명칭이었다. 이것이 현실화되다니...

  "ABM은 수령항목엔 없습니다만, 이건 혹시 아직 실험중인 미사일이 아니오?"

  "귀국의 통신보안을 신뢰할 수 없어서 미리 연락하지 못했소. 실험중? 그건 외부적으로는 아직 그렇소."

  미 공군 조종사는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말했다. 자신감의 표현인지, 아니면 이 장교는 그 성능을 모르는 것인지 조달관은 궁금했다.

  "우린 사용법을 모릅니다만... 고문단도 같이 왔습니까?"

  "난 전달하라는 임무만 받았소. 궁금하면 매뉴얼을 보시오."

  "..., 알겠소. 근데 ASAT 6기는 너무 적지 않습니까?"

  "우리 미국제 무기는 매우 정밀합니다. 그리고 만약 중국이 10기 이상의 핵을 발사한다면 모두 요격하더라도 어차피 한국은 끝장이오. 자, 빨리 서명해 주시오."

  편대장은 최근 한국이 러시아제 무기를 다량 수입한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중국이 만약 다수의 핵을 사용하면 방사능 낙진 때문에 한국은 완전 폐허화되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그런 뜻이었다.

  조달관은 이곳에 올 때 느꼈던  서울과 성남의 시내 분위기를 생각했다. 비록 전쟁 중이었지만 폭격의 위험이 사라지자 비교적 평화로운 도시가 되었다. 오늘 새벽의 핵폭발로 상당한 위기감이 있었지만 다들 설마 하는 분위기였는데 미국은 중국의 핵공격을 예상하고 있다는 뜻인가?

  조달관이 수령을 확인하는 사인을 하자 미공군 조종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기체로 돌아갔고,  잠시 후 12대의 수송기는 이륙을 시작했다. 누구도 전쟁지역에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핵공격의 위협을 받는 도시 근처라면... 그런 생각을 한 조달관 중령은 국방부에 무기수령을 보고하고 미사일 운용병력의 추가지원을 요청했다.  국방부 차관인 하 일석 대장은 즉각 지대지미사일 운영병력을 차출해 서울공항으로 급파시키고 무기의 분배 및 배치작업에 착수했다.

  1999. 11. 25  22:45  경기도 남양주 새터

  차 영진은 통일참모본부 상황실에 들러 위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들 경황이 없어 보였으나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삼면의 벽에는 각각 다른 곳들과 화상통신이 연결되어 있었다. 왼쪽 벽은 좁디좁은 국방부 지하벙커에서 우글거리는 대통령과 국무위원, 고위장성들, 그리고 북한쪽인지 인민군 고급군관들이 들락거리고 있는 곳이 있었고, 정면에는 전선상황이 표시된 지도가 대형화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정보사단과, 뜻밖에도 전북 무주의 위성관제소가 연결된 통신화면이 걸려 있었다.  다들 긴장된 표정으로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의장인 이 종식 차수에게 전입신고를 했다. 이 차수는 평양에서 헬기로 돌아와 잠시 그의 사무실 의자에 앉고 쉬고 있었는데,  뭔가 고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가 차수에게 받은 최초의 명령은 뜻밖에도 이틀간의 휴가였다.

  "동지는 기간 잠을 제대로 자디 앙이한 모양이니 싫토록 잠이나 자시구레."

  "..."

  "여기 일이레 걱뎡 말라우. 어케 되디 않가서?"

  어차피 여기에 있어봐야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차 영진은 차수의 말대로 실컷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다.  이 차수의 묘한 표정이 그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핵이야. 중국이 핵을 쏘갔다는 게디."

  "네? 설마... 그럼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차 영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거의 반세기에 걸친 남북대치상황에 맞춰 남북의 군편제는 핵전에 전혀 대비가 되지 않았다.  남북 모두 지상군만 세계 10위권에 드는 육군왕국이 아닌가? 차 영진은 통일한국의 항복을 기정사실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이 차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전혀 뜻밖이었다.

  "어카긴 어케? 기기야 요격하믄 되디 않갔어?"

  "네? 그치만 우리나라엔 요격용 무기가 없잖습니까?"

  "미 제국주의놈들이 웬일인디 요격무기를 됴금 넘겨 듀더구만. 하디만 동무도 알갔디만 도움이 되딜 않아."

  이 차수의 표정은 절망에 빠진 중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는 듯이 보였다. 뭔가 있긴 있었다. 차 영진은 이 고령의 장군이 신참인 자신에게 가르쳐 주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으나 은근히 떠 보기로 했다.

  "다른 작전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길티... 웃디 말라우. 핵기지를 공격하기로 해서."

  "윽... 네..., 절대 쉬운 일은 아닐겁니다. 모두 제압하실 작정입니까?"

  차 영진은 비참하다는 생각을 했다. 핵강국끼리의 핵전상황이라면 당연히 선제핵공격으로 적의 핵기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적이 이미 미사일을 발사했다면 이쪽도 핵미사일로 보복을 하거나 요격용 핵미사일을 발사하여 직접적인 피해를 최소화 하면 된다.  그러나 비핵국이라면 핵보유국에 대항하는 방법은 이런 것밖에 없었다.  그는 너무 창피했다. 약소국의 지상군, 핵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의 육군이 핵전쟁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핵강국인 구 소련의 스페츠나츠는 전시에는 후방교란 임무 외에도 적의 핵미사일기지 공격 임무를 맡고 있다. 하지만 공격수단이 특수부대원에 의한 핵기지습격 밖에 없는 통일한국군은 별 도리가 없었다.

  "다는 앙이야.  일부 점령하면 기걸 가디고 협박하자는 게지. 곧 작전이레 시작돼. 참관하가서?"

  "글쎄요. 저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같습니다만..."

  "기럼 알아서 하라우."

  "알겠습니다. 통일!"

  차 영진은 사병의 안내를 받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작지만 필요한 것들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컴퓨터와 화상통신용 스크린, 책상과 간단한 침구, 커피세트 등 필요한 것이 적당한 위치에 자리잡았다. 차 영진은 커피를 마시며 창가를 보았다. 어둠 속 멀리 강건너에 깜빡이는 불빛이 보였다.

  강건너집이었다. 새터 유원지 북한강 건너에는 엠티 온 학생들에게 커피와 라면을 파는 집이 아직도 있었다. 차 영진은 작은 배를 저어 뿌옇게 안개가 피어나는 강을 건너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크림과 설탕이 듬뿍 들어가 느끼한 맛이 나는 커피였지만, 늦가을의 정취가 너무 좋아 커피맛은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하고 같이 갔더라...'

  그는 아내를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겨우 일주일 남짓이었지만 그가 겪은 것들은 보통 때의 몇년치를 넘는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간이침대에 누워 리모컨으로 12CD Changer인 오디오를 틀었다. 아카펠라식으로 편곡한 '창가의 명상' 이라는 곡이 흘러나왔다.

  커피 한 잔,

  그리고 그대

  그대 날버린 꿈을 꿨소. 꿈을 꿨어요.

  그는 노랫가사와는 달리 바람의 꿈을 꾸었다.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바람, 생명력 넘치는 겨울 남해바다 거친 파도를 스치듯 부는 바람...

  1999. 11. 25 22:50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우루무치 동쪽 35km

  공격조에서 가장 늦게 도착한 이 팀은 모두 14명으로 구성되었다.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공격조, 지원조, 및 기술조로 이루어졌는데, 팀장은 주파키스탄 대사관의 무관이며 정보사단 소속이기도 한, 대한민국 육군 중령 김 승종이 맡았다. 그는 이전에도 이 지역을 자주 방문한 적이 있어서 이 임무의 책임자로서 적격이었다. 조금 전에 위구르어를 했던 자도 이 사람이었다.

  김 중령이 모래언덕 위에서 망원경으로 3km 전방의 핵기지를 살폈다. 평지에 설치된 이 핵기지는 지상에 발사구와 차량출입구만 노출되어 있는 식으로 건설되었다.  주변에 별다른 경비시설은 보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경계의 눈빛과 전자감시망이 가득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거리는 약 3km나 되는데 가는 길에 몸을 숨길만한 곳이 전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잘못해서 지뢰밭에 갇힌 채 경비초소와 무장헬기로부터 기관총 세례를 받는다면?  핵기지에는 접근도 못해보고 전멸할 것이 뻔했다. 그는 다른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기어 내려갔다.

  "도보로... 위장복으로 갈아 입읍시다."

  대원들이 장비를 말에서 내리고 출발준비를 시작했다.  사막유목민의 복장을 벗고 적외선위장복으로 갈아 입었다.  레이더전파까지 흡수하는 검은색 재질에, 적외선이나 전파의 반사가 많은 직선을 피한 둥그런 디자인이었다.

  "보긴 뭘 보나~"

  유일한 여자대원인 이 은경 대원이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하자 다들 잠시 긴장을 잊고 낄낄거렸다.

  "엉덩이..."

  인민군 정찰연대의 정 호근 대원이 이 대원의 옷 갈아입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얼굴이 빨개지며 대답했다.모두들 배를 잡고 웃으려는 순간 언덕에 대기하고 있던 경계조에서 쉿 하며 경고음을 발했다. 대원들이 전투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모래언덕 너머에 불빛이 보였다.

  "통상순찰입니다."

  "그렇소."

  망원경으로 순찰차를 감시하는 김 중령의 얼굴을 헤들라이트가 훑고 지나갔다. 그는 지도에 이 순찰차의 궤적을 기입하기 시작했다. 거리는 어느새 500미터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이쪽으로 온다는 거요. 말을 숨길 수가 없겠소."

  김 중령이 고개를 돌려 대원들을 살펴보니 인민군들은 이미 공격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모두 무성무기였다. 유목민에게서 산 말 20여필은 훈련이 잘 되었는지 재갈을 물리지도 않았는데 조용히 서 있었다. 대원 한명이 말들을 모래바닥에 주저 앉혔다.

  "말 때문에 어차피 숨는다고 해도 들키게 됩니다. 칩시다! 최대한 거리를 단축하고 각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김 중령의 명령에 따라 각자 좋은 위치로 달려갔다.  거리는 200미터로 단축되었다.  정 호근 대원의 러시아제 VSS 9밀리 소음저격총이 목표를 따라 서서히 총구를 움직였다.  검은색의 두툼한 원통형의 총구와 개머리판에 뚫린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은 이 총이 멋보다는 기능을 중시한 것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은경 대원의 석궁에는 예비화살 3개가 장전되어 있었다.  거리는 이미 60미터, 순찰차에 탄 중국군은 3명이었다.

  "쉿!"

  석궁이 먼저 발사되었다.  사륜구동차의 뒷좌석에 서 있던 기관총 사수의 목에 화살이 박히자,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서히 뒤로 쓰러졌다. 그러나 다른 대원들의 총구는 아직 침묵을 지켰다. 순찰차는 계속 천천히 접근해 왔다.

  "쉭!"

  바람을 가르고 다시 석궁이 발사되었다.  첫발을 쏘고 나서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순찰대 지휘자는 관자놀이에 화살이 꽂힌 채 앞으로 쓰러졌다. 이제서야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 운전병이 핸들을 급히 꺾었지만 즉시 정 호근 대원의 저격총이 불을 뿜었다. 차는 모래밭 위에 서서히 멎었다. 대원 하나가 차로 뛰어갔다.

  잠시 긴장된 순간이 흐르고 순찰차에 접근한 대원이 소음권총으로 확인사살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몸에 바짝 대고 권총을 쏘자 어둠 속에서 시체가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그 대원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카라랑거리는 것으로 보아 시동 걸기도 만만치 않은 고물차인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가 차를 몰고 왔다. 미국 크라이슬러사와의 합작회사인 베이징지프제작공사에서 제작한 XJ 체로키였다.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이고 기관총을 거치하기 위해서인지 지프의 지붕은 제거되어 있었다.

  "오호~라. 미제차로구만. 젠장! 제국주의자들끼리 서로 돕자는겐가?"

  다른 대원들이 시체를 치우는 동안 이 은경 대원이 군화발로 뒷문을 냅다 차 지르자 두꺼운 철판이 쑥 들어갔다. 인민군 병사들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행동을 지켜 보았다.

  지프(Jeep)는 고유명사이며 상표명이다. 크라이슬러사의 지프사업본부, 또는 이와 합작한 공장에서 만든 사륜구동차만을 지프라고 한다.  체로키는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길쭉한 왜건형의 사륜구동차이다. 중국군은 이 차의 성능에 만족했는지 90년대 초반까지 이미 1만대 이상을 생산하여 일선에 배치했다.

  "이 차를 타고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요?"

  까무잡잡한 피부라서 야간위장이 필요없을 것같은 이 은경 대원이 김 중령에게 묻자 김 중령이 주변을 살피며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오.  자, 타 봅시다~"

  14명의 대원들이 꾸역꾸역 XJ 체로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차는 의외로 튼튼했고 힘은 넘쳤다.  14명이나 태운 순찰차는 삐걱거리며 서서히 북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999. 11. 25  22:55  서울 안국동, 종로경찰서

  "야이 떼놈 새끼야~ 빨리 불어!"

  "난 정말 모른단 말입니다! 윽~~~"

  정보 2과의 김 중원 형사가 꿇어앉아 있던 피의자의 허벅지를 구둣발로 짓밟자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바닥에 쓰러져 너무 아픈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남자는 이미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으흐흑... 난 아직도 국적이 자유중국이오. 내가 왜 중공 편을 들겠습니, 으윽!"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차렸네? 대만이 중국에 점령됐으니까 이제 같은 나라잖아?"

  남자의 항변은 형사의 뭇매 때문에 이어지지 못했다.  쓰러진 남자를 구둣발로 자근자근 밟던 형사가 책상 뒤쪽에 있던 대걸레를 집어 들었다.  실과 헝겊으로 된 걸레부분을 제거하자 대걸레의 막대부분이 기다란 몽둥이가 되었다.  형사의 눈에 살기가 이는 것을 본 피투성이 남자가 공포에 질려 구석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사... 살려줘요...악!"

  "김 형사, 무슨 일이야?"

  배가 불룩한 계장이 조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까부터 계속되는 비명소리가 아무래도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사람 하나 잡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아, 계장님."

  "이놈은 뭐야?"

  "이 자식 떼놈입니다."

  "그래?"

  경찰 입문 25년만에야 경위가 된  중년의 계장이 화교의 몰골을 보았다. 얼굴 곳곳에 피멍이 들어 말이 아니었으나, 차려입은 품새는 말쑥하니 잘 사는 모양이었다.화교가 계장에게 구원을 바라는 듯한 눈길을 보냈으나 냉정하게 외면했다.경위는 오늘만 벌써 3명의 화교를 족치고 있는 김 형사가 부럽다는 표정이었다.

  "수고해~"

  "예, 계장님. 이따가 뵙겠습니다."

  계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가자 형사는 의자에 거꾸로 앉았다. 그는 몽둥이를 길게 잡고 바닥에 탁탁 두들기며 화교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형사는 약간 조급해 졌다. 정보에 따르면 중국이 핵을 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본으로 밀항시킨 가족은 이미 자리잡고 있다는 소식이 왔다. 이제 한탕만 하고 뜨면 영원히 이 나라에는 볼 일이 없었다. 이 화교가 마지막 희생물이자 봉인 셈이다.

  "야 자식아~ 간첩혐의로 즉결총살 시키려다가 한국에 봉사하는 길을 열어주려고 너를 계도하고 있는 중이다, 임마.  나한테 감사할 줄 알아야지."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이 자식이~ 내가 돈에 혹할 사람같아? 그래도 이제야 좀 정신을 차린 것같군. 그래, 좋다. 인간이 불쌍해 봐 주지."

  화교가 형사에게 몇번씩이나 굽신거렸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인 결과를 바라기에는 무리였다.

  "여기 전화있다. 마누라 불러서 가져 오라고 해. 아니, 밖에서 만나는 것이 좋겠군. 네놈 재산목록은 내가 다 가지고 있어. 조금이라도 숨기려 했다간 넌 죽어. 알겠어?"

  화교의 얼굴에 몽둥이를 바싹 들이대며 위협하자 화교가 체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국공내전 당시 할아버지가 한국에 정착한 이후 3대에 걸쳐 살아왔지만 어차피 이 나라는 남의 나라였다.  어릴 때부터 떼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서럽게, 서럽게 살아왔다.  한국인은 외국인들에게 절대적으로 폐쇄적인 나라였다. 다른 민족과 화합하며 살아본 역사가 없다는 것은 한국에 정착하려는 타민족에게는 큰 장벽이었다.

  특히 피부색이 다른 인종은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결혼이나 취직 등에서 자신이 수십년간 차별을 받아온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한국인들은 혼혈아들을 극도로 혐오했는데, 이는 혼혈아들의 잘못이 아닌, 동족끼리 피흘리며 싸우고 외국군까지 끌어들인 그들의 잘못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민족에 대한 포용력이 없는 한국인,  도저히 한국에서 살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지역이나 출신별로 차별하지 않는가? 게다가 외국 국적의 한국인에 대해 아첨과 동시에 경멸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 일본인들과 닮았을까?

  그는 모든 걸 훌훌 털고 다른 나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대륙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자신은 젊으니 군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 군인으로서 한국에 돌아와서 근무한다면 이따위 형사들을 모조리 도륙낼 수 있다는 환상이 들었으나 애써 물리쳤다.  자신은 결코 이런 비인간적인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형사가 휴대형전화기를 코앞에 내밀었다.

  1999. 11. 25  23:00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대규모 함대가 한반도에 접근 중입니다! 북위32도 22분 동경 127도 50분! 제주도 동남방 150km 정도입니다."

  놀란 표정으로 단말기를 보고 있던 해군의 심 현식 중장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내일 아침에 긴급편성될 사단들의 전선배치에 대해 협의하던 참모들이 놀란 얼굴로 심 중장을 보았다.

  "중국에 아직도 대규모 함대가? 그쪽은 우리 함대가 없지 않소? 규모는 어느 정도요?"

  전선의 상황을 체크중이던 정 지수 대장이 묻자 심 중장이 계속 보고했다.  인민군 제복을 어색하게 걸쳐입은 짜르가 호기심에 가득찬 표정으로 심 중장의 표정을 살폈다.

  "완벽한 전파관제를 하며 접근했습니다. 심지어 초계기도 없이 움직여서 발견이 늦었다고 합니다. 대형함만 16척 이상입니다. 항모전투단이 틀림없습니다!"

  "초계기에 선도레 없다믄 위성지원을 받는 미제 신속억제군일 겁네다. 항모 2척에 해병대 1개 려단일 가능성이레 크디요."

  박 정석 상장이 의견을 제시하자 참모들의 의구심이 풀렸다. 이런 대규모함대를 운영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밖에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 참모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미군이? 미군이 왜 우리나라로 옵니까?"

  "설마 상륙작전을 감행하지는 않을겁니다. 신경은 쓰이는군요."

  아무래도 미국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인민군 박 정석 해군상장이 투덜거린 반면, 국군출신 참모들은 혹시나 미군이 한국을 돕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박 상장이 한마디 더 추가하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꿈 깨시라요. 핵 터디는거 구경하러 온기야요."

  "으... 핵."

  정 지수 대장이 치를 떨었다. 핵이라는 말 앞에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꼭 중국이나 미국함대라는 보장은 엄소. 더 자세히 확인해 보기요. 일본함대 위치도 파악해 보구... 아무래도 요즘 일본 국내동향이 수상하니끼니."

  이 차수가 투덜거리듯 명령하자 심 현식 중장이 마지못해 제 3함대를 호출하여 제주도 동남방에 위치한 소속미상함대의 확인을 지시했다. 그동안 이 종식차수는 약간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참모들을 살펴보았다. 다들 기력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일일이 전선상황을 확인하기 보다는 대충 추론하고 마는 식이었다.이 차수는 중국의 핵보다는 그런 것들이 더 걱정스러웠다.

  "현재 만주의 중국군 공군기지에 새로 배치된 전투기의 숫자입니다."

  이 호석 중장이 패널을 조작해 중앙스크린을 켰다. 중국 공군은 아직 숫적으로 통일한국 공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반도 북부를 작전반경에 둘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기지에 배치된 전투기의 숫자가  무려 600대 이상에 달했다. 오늘 밤의 작전에 심각한 차질을 빚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게다가 각 공군기지 부근에 대공방어망이 극도로 강화되어 공습하기도 어려워 보였다.이 중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기기를 조작하여 각 공군기지에 배치된 전투기의 유형과 제원을 잠깐 설명했다.  전혀 걱정스런 표정이 아니었다.

  "오늘은 상공이 조용했습니다. 내일도 침묵시키겠습니다."

  이 중장이 자신있게 공언하자 박 정석 상장이 의아한듯 이 중장을 보았다.

  "또 반마찰제라는 그런거 쓰갔다는 거디요? 어렵디 않갔소? 요격하래고 눈에 불을 혔을텐데..."

  "아, 이번엔 다른 겁니다. 오늘은 비행장만 못쓰게 만들었지만 내일은 전투기 자체를 고장낼 겁니다. 그 600여대의 전투기는 며칠간 고물되는 거죠."

  "며틸간? 파괴하는 거이 아이오?"

  "네, 우리 공군의 피해는 없을 겁니다. 직접 공습하지는 않으니까요. 전투기라는 복잡한 기계장치에 모래를 뿌리는... 뭐, 그런 겁니다."

  "신무기라도 되오?"

  "에그... 한참 전에 개발된 무깁니다. 만들기도 쉽죠. 인민군의 대포동 유도탄을 좀 빌렸습니다. 거기다 달아서 쏘는 거죠."

  1999. 11. 25  23:05  함경북도 혜산 제2고등중학교 제 2군 전선사령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도하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통일육군 제 2군 사령관 김 재호 대장은 진정한 군인이었다. 그는 전쟁이 격화되자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남북한의 정규군과 예비군 혼성으로 통일육군 5개 군의 편성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북한정권과의 합의하에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남북한의 기존 군 편제를 해체하여  5개의 군을 편성했거나 편성할 예정이었다.  해군과 공군에 이어 이제 지상군도 거의 통합이 된 것이다. 아직은 말단 보병소대까지 국군과 인민군이 편성되어 같이 싸우게 된 것은 아니지만 대대단위에서의 혼합편성은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혼합편성된 부대가 많아져 통일육군이라는 명칭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고,통일육군 제 1기갑사단같은 경우는 바로 제 1기갑사단으로 불리게 되었다.

  제 1군은 지금도 함경북도 나진-선봉 남서쪽 전선에서 중국군과 치열하게 교전 중인 동부전선사령부 예하의 부대를 중심으로, 여기에 추가투입된 부대와 피스의 국제의용병이 편성되었다.1군은 통일참모본부의 직할부대격이어서 이 종식 차수가 사령관을 겸임했지만 실제 지휘는 인민군출신의 장성이 하고 있었다.

  김 대장의 제 2군은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으로 긴급배치되었다.  김 대장이 관할할 예정인 또다른 부대인 5군은 현재 재편성 중이고, 3군은 서부전선과 후방일대의 경비임무에 투입되었다.6군은 내일부터 주로 일반예비군과 향토사단으로 편성될 예정이다.

  통일한국군이 계획하는 역습의 주체는 김 대장의 2군이 맡았다. 원래는 백두산을 우회하여 만주를 횡단,  두만강쪽에서 다시 한반도로 진입해 나진과 선봉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군의 배후를 기습, 제 1군과 함께 포위공격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만주를 점령하거나 북경을 공략할 준비도 갖추고 있었다. 현재 통일한국군이 보유한 대부분의 전력이 이 2군에 집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현재 통일한국군 제 2군은 백두산 서쪽인 혜산 일대에서 압록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인 그가 직접 맡았다. 전선의 총지휘를 계속 맡아달라는 합참의장 황보 대장의 명령은,  명령을 내린 황보 대장 자신이 생각해도 의미가 없었다. 각 전선에 대한 명령권은 현재 통일참모본부가 장악하고 있어서, 남북한의 군수뇌부는 사실상 공중에 붕 뜬 상태였다.  그래서 김 대장은 직접 전선사령관을 자원했고,  이곳에 나와 역사적일지도 모를 공격준비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기다란 탁자에는 참모들과 직속부대장, 지원부대장들이 공격준비에 대한 최종 점검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입네다. 00시 정각에 5개 지점에서 3개 사단이 한 시간 내에 도하할 수 있습네다. 총 16개의 부교 및 가교레 가설될 예정입네다. 단, 어케된 일인디 오늘밤 아군 항공지원이레 뎐혀 없습..."

  "제 말씀은, 지금 당장이라도 도하가 가능하냐는 뜻입니다.  공군은 아마 오늘밤에 바쁠 것이오."

  김 대장이 허 대장의 말을 자르고 다시 물었다.

  "언제든 가능합네다."

  참모장인 인민군 출신의 허 석우 대장이 지도를 보며 보고했다. 겨울 갈수기에 압록강 상류의 강폭은 좁고 수심도 얕았다. 도강은 크게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부교를 설치할 필요도 없이 단 한 대의 가교전차만으로도 병력과 장비를 도하시킬 수 있었다. 다만 압록강 건너에서 직면하게될 적의 저항이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였다.  정보사단의 보고에 의하면 약 20km의 전선에 걸쳐  중국 인민해방군 1개 사단이 방어선을 전개하고 있다는데, 화력이 약한 수비사단이라 문제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쪽에 100여개 사단이 있는 판에 중국이라고 대규모 병력이 숨어있지 말라는 보장은 없었다.  인민해방군의 보조무력인 인민무장경찰의 존재는 더 부담이 갔다. 이들이 독립대대단위로 흩어져 만주 곳곳에서 2군의 전진을 방해할 지도 모를 판이었다.

  "교두보가 확보되믄 34개의 부교 혹은 가교레 더 설치됩네다. 1시간에 10개 사단이 도하할 수 있습네다. 강이 얕아설라무네 기갑병력은 바로 도강이 가능하니끼니 전혀 문제 없습네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 발사할지도 모를 핵미사일이었다. 100여만이라는 엄청난 숫자는 핵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 뻔했다. 한국의 중국침략을 빌미로 중국이 핵을 사용치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또한, 듣기로는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핵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 정부가 먼저 항복을 선언할 수도 있으며, 그럴 경우 이 작전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핵만 없으면..."

김 재호 대장은 뭔가 진한 아쉬움이 가슴에 남았다.  광활한 만주벌판을 앞에 두고 보니 무인의 기개같은 것이 울컥 솟으며 목이 메었다. 광개토대제와 을지문덕, 대조영같은 인물들의 신화를 떠올렸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핵이라니...'

  "중국에 핵이 앙이 있다믄 만주레 우리 땅이디오."

  "우리는 침략을 하는 것이 아니오, 허 대장."

  "알고 있습네다, 사령관 동지!"

  허 대장은 김 대장의 말에 흠칫 놀랐다. 그는 동원가능한 병력으로만 본다면 중국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남북의 인민들은 지난 반세기동안 남북간의 동란과 대치상태로 인해 대부분이 의무병역을 복무하여 별다른 훈련 없이도 바로 전선 투입이 가능하다. 남북한 공히 5백만씩,  단기간에 일천만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도 조선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의 병력이 내전기간동안 증가해서 인민무장경찰까지 합하면 약 5백만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상 동원하기는 무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먼저, 병참이 따라주지 않는다. 개인화기에서부터 차량 등 이동수단, 동절기를 맞아 중요해진 군복 등을 단기간에 충당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인구가 많다지만 총 한번 쏘아보지 못한 사람들을 전쟁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소집과 훈련, 이동 등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훈련이 되지 않은 민간인을 전선에 투입하는 멍청이는 군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 허 대장은 이 기회에 중국을 넘보는 것이 어떻냐는 생각이었고, 전쟁이 유리해지면서 상당수의 군장성들이 갖게 된 욕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 대장은 그런 장성들에게 관동군을 꿈꾸느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하지만 자신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핵문제에 부닥치면 말이 달라진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약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동원가능병력은 이 순간에 있어서는 단지 골육상쟁을 위한 숫자놀음밖에 되지 않았다.  또다른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의미있는 숫자인 것이다.  이것이 남북한의 모든 직업군인들이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였다.

  "자동차의 배치가 끝났습니다. 주로 후발대인 동원사단들에 배분했습니다. 약 절반의 병사가 면허증이 있으며, 또 그중 절반이 실제 승용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우려했던 운전병 수급에는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자동차는 개조가 다 끝난 상태이고 무기탑재도 끝났습니다."

  군수참모가 부동자세로 보고하자 김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징발된 자동차를 배치한 부대가  대부분 예비군으로 구성된 동원사단이니 운전병이 모자랄 리는 없었다.  다만 5만대의 차량을 운행할 연료와 소모성 무기의 보급이 문제였다. 과연 전투는 사기, 전쟁은 병참이 문제였다.

  "경유는 보급에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전국적으로 휘발유 부족사태가 심각해서 이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징발된 사륜구동차의 연료는 두 가지이며, 휘발유차가 약 3분의 1을 점하고 있습니다. 원유가 더 들어와야 할텐데 아직 남지나해의 통행이 자유롭지 못하여 유조선들이 필리핀 동쪽해상으로 우회하고 있어, 상당한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저녁에 유조선 한 척이 또 당했답니다."

  김 대장은 피스함대의 힘이 컸다는 생각을 했다.  피스함대가 붕괴되자 중국에 대한 해상봉쇄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제 한반도가 봉쇄될 수도 있는 판이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중국의 항모전투단이 괴멸된 지금 대만에서 출격하는 중국전투기의 작전반경 밖으로 돌면 되는 것이다. 지금 중국해군에 대양에서 작전을 수행할만한 대형함정들은 모두 서해상에 몰려 있었다. 당분간은 중국에 의해 해상봉쇄를 당할 걱정이 없었다.

  "원유 비축분은 30일, 민수용 포함 45일입니다. 정권 바뀔 때마다 비축분을 60일로 늘린다고 말만하고는 아직도 이 모양입니다. 비축기지를 늘린만큼 석유소비량도 늘어났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45일분이라는 것도 평상시 기준이지 실제 전시상황이 발발하면 순식간에 거덜나 버립니다. 이 정도 수준으로 유류를 앞으로 소비하면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습니다."

  김 대장이 정보사단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단말기를 통해 읽다가 옆에서 부관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부관은 학사장교 출신이지만 그의 말로는 말뚝 박았다고 했다.  겨울철의 만주벌판에 보병의 투입은 의미없다면서 사륜구동차의 대량투입을 제안한 젊은이였다. 기동성도 살리고 전투력을 올릴 뿐만 아니라 동상 등으로 인한 전투력소모를 막기 위한 좋은 방안이라 생각하여 김 대장은 부관의 조언에 따라 전국에 있는 지프형 차량의 징발을 건의했고,지금 이 시간에는 배분과 무기 탑재까지 거의 끝난 상태였다.그러나 이 차량들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해 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김 대장은 부관이 중위 때부터 휘하에 두었다.  군인으로서의 패기도 없고 게으르기까지 했으나 상식의 틀을 깨는 머리는 사줄만 했다. 군에 말뚝 박고 장군까지 되겠다는 놈이  겁도 없이 사사건건 자신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기 일쑤고,  사령관이 밤에 공식 일정이 있는데도 외박을 나가기까지 했다.  그래서 윤 대위 대신 당번병이 부관 역할을 할 때가 종종 있었고 김 대장은 그것 때문에 화가 날 때도 많았다.하지만 윤 대위는 일견 수긍이 가는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참모들은 감히 자신에게 대꾸도 못하기 때문에 이 젊은이의 용기와 두뇌를 사기로 한 것이다.

  "정유공장이 남아 있다는 거에 대해 니는 우째 생각하노?  우리 똑똑한 윤 민혁 대위님."

  한참 무게를 잡던 김 대장이  갑자기 투박스런 경상도 사투리로 묻자 윤 대위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역시 중국은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산업시설을 이용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령관님!  일본과 미국을 위협하고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려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장군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이 젊은 육군대위는 별로 긴장하지도 않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역시 그의 생각과 같았다. 하지만 중국이 이제 한반도 점령을 포기한만큼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즉, 미사일 공격이나 공습을 당할 우려도 있고,그렇게 되면 연료가 부족해 작전은 완전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김 대장의 걱정을 읽은 윤 대위가 추가 보고했다.

  "중국은 결코 정유공장을 폭격하지 못합니다. 항공모함이 모조리 박살난 지금, 항속거리가 따라주는 전투기를 보유치 못한 그들은 결코 정유공장을 폭격할 수 없습니다. 충남 대산지역은 공습할 수 있다지만 우리 대공망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지대지미사일은 사정이 짧고, 여러 수단에 의한 이의 요격이 가능합니다."

  윤 대위가 자신있게 대답하자 김 대장이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도대체 자신의 위치도 모르는 놈이다!

  "닐마는 정치뿐 아니라 공군에도 전문가가? 네 군대 와서 배왔나?"

  김 대장과 윤 대위는 참모총장과 부관으로 만난 작년부터 이미 앙숙 관계였다. 남에게 질 줄 모르는 두 사람은 사사건건 다퉜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다툼을 두 사람이 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입대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잘났어~"

  김 대장이 윤 민혁 대위를 곁눈질로 보니, 그는 입을 오무린채 '그래요. 저 잘났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저런 놈이 장군이 된다면... 으... 육군의 비극이며 휘하 장병들의 고통이고 동시에 성실한 납세자들의 불행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난척 말그래이~ 글고 이젠 전쟁이니 똑바로 해라카이.  니캉내캉 친구가?"

  윤 대위가 우물쭈물하며 서 있었다. '아저씨같은 친구 둔 적 없소' 라고 투덜거리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김 대장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1999. 11. 25  22:10(북경표준시) 중국 북경 베이징판띠엔

  "시간이 거의 됐습니다. 공작은 어떻게 됐습니까?"

  총서기 리루이환이 연신 벽시계를 올려 보다가 정치국 상무위원 왕민강에게 물었다. 어물거리던 왕이 더듬거리며 보고했다.  외사국(外事局)의 공작은 완전 실패였다.

  "연락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것들이..."

  왕민강은 한국의 시간끌기 작전에 당한 것같다는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자신의 공작실패에 대한 책임추궁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를 구해준 것은 제 2포병 사령 쏭윈펑 중장이었다. 왕민강이 남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 끌지 말고 지금 발사합시다!"

  그러나 대국의 체면 때문인지 총서기는 주저하고 있었다.  이왕 깨어진 협상, 핵미사일 발사는 기정사실이었다. 다만, 자정 전에는 발사하고 싶지 않았는데,  체면 문제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핵발사라는 두려운 결정을 늦추고 싶어서였다.

  "지금 결정해야 합니다. 미사일발사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이 있습니다. 먼저 카운트다운에 들어 가겠습니다."

  "벌써요? 아직 시간이 남았잖소?"

  "정확히 자정에 조선에 명중시켜야죠. 자정에 공격한다고 했지, 자정에 발사한다고 하진 않았잖습니까?"

  총서기는 쏭 중장을 보며, 어서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어하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뜻밖에도 확대군사위원회에 참가한 다수의 정치국원들이 그의 주장을 지지했다.  이미 결정난 마당에 빨리 끝장을 보자는 심산인 것이다.

  "카운트다운 도중에 취소할 수도 있겠죠?"

  "물론입니다. 동지!"

  총서기가 다짐을 받자 쏭 중장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의 주장대로 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제 조선은 100년 전처럼 다시 중국의 속국이 되는 것이다.

  "좋습니다. 카운트다운을 시작하시오."

  "용단에 감사드립니다. 총서기 동지!"

  제 2포병 사령원 쏭윈펑 중장이 경례를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3개 기지에 동시 연결해!"

  쏭 중장이 자신의 탁자 앞에 있는 단말기를 세우고 자판을 몇번 두들기며 암호명령문을 찾았다. 매일, 그리고 시간별로 달라지는 암호체계에서 암호를 외운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쏭 중장이다. 목표좌표는 이미 입력했겠지? 2300시에 목표에 명중할 수 있게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다. 발사가 아니라 명중이야! 계산 잘 하도록. 특별한 명령 없으면 발사해! 그래, 지금 말 하잖아. 첫번째 암호는 홍치(紅旗), 두번째 암호는 윈깡스쿠(雲崗石窟)다. 각 기지에서는 아까 지령한 대로 지정된 목표에 지정된 유도탄을 발사할 것. 이상!"

  드디어 위험한 장난감으로 논다는 기분이 들자 상무위원들의 호흡이 가빠졌다. 총서기가 아무래도 불편한듯 자꾸 몸을 뒤척이다가 수행원을 불렀다.

  "남조선 총통과 연결하시오."

  1999. 11. 25  22:15(북경표준시)  중국 상하이, 총밍따오

  총밍따오의 외진 산속 기지에 온통 비상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이 기지의 지하 사일로에서 20킬로톤급 핵미사일 둥휑(DF, 東風)-2호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기지는 그동안의 등화관제에서 벗어나 모든 전등을 대낮같이 밝히며 엄중한 경계태세에 돌입했다.그동안 숨어 있던 경비병력과, 기지 내부에 있던 병력이 밖으로 나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외부의 공격에 대비했다.

  "동지들! 들켰나 봅네다."

  "아니오. 저건 발사 직전이란 뜻이오. 큰일이외다."

  "진정하시오. 아직은 시간이 있어요!"

  리더인 이 우철 과장이 대원들의 동요를 진정시켰다. 신 승주 대위는 속으로 '좆됐다'라는 말을 연발하고 있었다. 조국이 핵미사일에 얻어맞게 생긴 것이다. 서울에 있는 내 가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작전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할 조국은? 민족은? 답은 '젠장!' 이었다.

  "발사 전에 우리가 먼저 칩시다!"

  "아니되오. 다른 기지에서도 공격준비를 하고 있을게요. 우리가 먼저 공격하면 아니되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결국 중앙의 지령을 기다리기로 합의했다.  남북한 정부가 중국에 항복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 공격을 늦춘 이유였다.

  신 승주가 인민군 동료인 이 상사를 보니 그는 이런 소란에도 상관없다는 듯이 정좌한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솟는 것을 본 것 같은데 이건 착각이었을까?  눈은 오지 않았지만 이곳은 현재 영하의 기온이었다.  차가운 북서대륙풍이 얕은 바다를 넘고도 조금도 위력이 약해지지 않았다.  신 승주는 추위 때문인지, 조국의 운명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전투 전에 느끼는 공포 때문인지 모를 전율을 느꼈다.

  1999. 11. 25 22:20(북경표준시) 중국 신장웨이우얼, 우루무치 동쪽 35km

  김 중령은 사륜구동차의 헤들라이트를 끈 채 서서히 핵기지로 접근했다. 기지 주변에 가득 깔린 지뢰밭을 걱정했는데 순찰차가 나오는 코스를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기 때문에 이제 지뢰 걱정은 한시름 놓아도 되었다. 아무래도 순찰시간이 정해져 있을 것이므로 순찰차를 몰고 기지로 직접 접근하는 것은 무리였다. 기지 1km 정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적의 초소를 점령하여 다시 도보로 기지에 접근할 작정이었다. XJ 체로키는 14명이나 되는 승객을 가득 태우고 사막 위를 천천히 굴러갔다.

  "이상합네다. 초소레 없습네다."

  정 호근 대원이 적외선야시경으로 주변을 살피면서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서쪽 하늘에 걸린 반달이 사막의 어둠을 어슴프레하게 비추고 있었지만 어디서건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중요한 핵기지의 경비가 이정도일 수는 없는데... 대원들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피식~"

  돌발음에 놀란 대원들이 오른쪽을 보니 어둠 속에서 시뻘건 것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RPG다! 피해욧!"

  이 은경 대원이 비명을 지르자 놀란 김 중령이 잽싸게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사륜구동차 바로 앞에 섬광이 번쩍이며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폭음이 갑작스럽게 고요한 사막의 밤을 울렸다.

  "그쪽에 적이레 없시요!"

  야시경으로 살피던 정 대원이 외쳤으나, 화끈한 이 은경 대원은 포탄이 날아온 방향으로 K-2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대원들의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또 옵니다! 이번엔 11시 방향!"

  "박 소좌님이레 당했시요. 7시 방향에서도 날아옵네다!"

  김 중령이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적은 보이지 않는데 포탄만 날아오는 것이다. 그의 머리에는 의심이 가는 무기의 이름이 떠올랐다. 가장 왼쪽에 탑승했던 공격조의 조장 박 소좌는 머리와 등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차가 돌뿌리에 걸려 크게 튀다가 왼쪽으로 급선회했다.

  "퍼펑!"

  사륜구동차를 사이에 두고 좌우에서 동시에 포탄이 작렬했다. 대원 3명이 차에서 굴러 떨어졌다. 체로키가 급정차했다.

  "이건 지뢰야! 하차하시오!"

  대원들이 서둘러 하차하며 사주경계에 들어갔다.  정 호근 대원이 박 소좌를 부축하여 차에서 내리려다 포기했다. 조금 전에 절명한 것이다. 이 은경 대원이 다른 대원들의 상태를 살피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시 시뻘건 불빛이 날아와 사륜구동차를 산산조각냈다.

  "조장 동지! 날아다니는데 뎌게 어케 지룁네까? 길고 되놈들이레 여길 디나올 때는 와 작동하디 않았습네까?"

  정 호근 대원이 묻자 김 중령이 K-1 기관단총을 점검하며 투덜거렸다.

  "XM-93이라고 광역지뢰의 일종입니다.  미국에서 최근 개발한 날아다니는 지뢰요.적외선 감지장치와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어서 목표를 탐지, 분류, 추적하지요. 그건 그렇고 여길 어떻게 뚫고 나간담?"

  XM시리즈같은 광역지뢰(WAM : Wide Area Mine)는 원격조정이 가능한 지뢰이다.  중국 순찰대가 사륜구동차를 타고 나왔을 때는 작동하지 않다가,  돌아올 시간 전에 침투조가 지프를 타고 왔기 때문에 공격당한 것이다. 이 기지의 경비상태를 보고한 현지요원은 이 지역에서 중국군이 순찰하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이곳이 지뢰지대라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XM-93은 미국 텍스트론사가 개발했고, 탐지 및 사정거리는 약 100미터이다. 보통은 전차, 장륜차 및 대형트럭을 목표로 하지만 센서를 예민하게 조정할 경우 사륜구동차같은 작은 목표도 공격할 수 있다. 텍스트론사는 대(對)헬기지뢰인 AHM까지 개발한, 상상력이 풍부한 무기제조 회사이다.

  "드드드드~~"

  "웃!"

  김 중령이 고개를 들어 적 기관총의 위치를 파악했다. 좌우에 한개씩, 거리는 약 600미터. 별로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움직이기에는 위험했다. 사방에 돌 파편이 튀었다. 대원 한사람이 유탄에 맞았는지 엎드려 있는 자세가 이상했다. 김 중령이 그 대원을 흔들어 보았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기관총을 제압하시오!"

  "알갔습네다!"

  이미 사격준비를 끝낸 정 호근 대원의 대답과 동시에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다시 한발. 오른쪽의 기관총좌가 침묵했다. 다시 몇발을 쏘자 왼쪽 기관총도 사격을 멈췄다.

  "적 헬기 3대, 전차와 장갑차량 접근 중... 보병 다수!"

  야시경을 든 김 중령의 손이 떨렸다. 지하핵기지의 차량출입구에서는 각종 전투차량과 보병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김 중령은 적의 공격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작전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후퇴하시오."

  대원 한 명이 SA-7 그레일 휴대용 대공미사일을 발사하는 것과 동시에 헬기에서 불꽃이 연달아 피어났다. 헬기가 상공에서 공중폭발하고, 잠시 후 헬기에서 발사한 로켓탄이 주변 여기저기서 폭발했다. 폭음이 울리며 섬광이 대원들의 엎드린 모습을 환하게 비췄다. 대원 두 명이 하늘을 향해 눕고 한명은 신음을 하며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앙이되오! 조국이 위험합네다. 공격해야 합네다!"

  정 호근 대원과 이 은경 대원이 어둠 속에서 김 중령을 노려 보는 눈빛이 살벌했다. 김 중령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새벽에 2차 공격을 시도하겠소. 자, 서두르시오."

  그레일미사일이 다시 발사되자 선풍 25호 헬기들이 플래어를 터뜨리며 꼬리를 보이고 북쪽으로 도망쳤다.  미사일이 접근하자 플래어의 숫자가 급증했다.  김 중령은 후퇴준비를 하면서 미사일이 빗나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구식 미사일은 목표를 정확히 잡아 선풍-25 헬기 한 대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불붙은 파편이 지상으로 낙하하며 유성의 비를 뿌렸다.  놀란 중국군이 어물거리는 사이에 침투조가 후퇴하기 시작했다.

  출발할 때에는 14명의 인원이었는데 지금은 중상자 1명 포함 6명만이 남았다. 인민군 정찰연대 소속의 중상자는 몰핀을 주사했지만 고통을 가라 앉히지 못했다. 정 대원이 그를 들쳐 업고 뛰는 도중에 비명이 계속되었다.

  "동무! 제발 날 내버려 두기요. 버리고 가라우야!"

  부상당한 대원이 울부짖자 정 대원이 달리다 말고 우뚝 섰다.

  "안돼요!"

  무서운 것을 상상한 이 대원이 제지했으나 이미 소용이 없었다. 정 대원이 부상자를 바닥에 내려 놓고 대검을 뽑아 동료의 목에 대었다. 부상당한 대원이 헐떡이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동무. 고맙수다레."

  "난중에 만납세다."

  고기 써는 듯한 소리가 섬뜩하게 들리고 나서,  그 부상자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 대원이 고개를 돌렸다. 정 대원이 죽은 동료의 시신에서 장비와 영국제 XL-70E3 소총을 챙기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난 곳을 62식 경전차의 85밀리 포와 W-523식 장갑차의 12.7밀리 기총이 휩쓸었다.

  신중하게 접근한 중국 장갑차들이 모래언덕 뒤에 도착해서 발견한 것은 3구의 중국군 시체 뿐이었다.

  1999. 11. 25  23:25  서울 국방부 지하벙커

  [시간이 되었습니다. 작전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지하벙커 왼쪽의 화면에는 화상통신을 통해서 대전 정보사단에 있는 양 석민 중장이 음울한 목소리로 대통령에게 재촉을 했다. 대통령은 이쪽을 쳐다 보지도 않고 안기부장과 귓속말로 뭐라고 소근거리고 있었다. 이 화급한 상황에 무슨 일인가? 안기부장이 또 꽁수를 부리는게 틀림없다는 생각인지, 양 중장은 상당히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양 석민은 지 효섭 안기부장의 전력을 알고 있었다. 원래 강원도에 주둔하고 있던 3군 사령부의 헌병장교였던 그는,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키자 신군부에 가담하여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계속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근무했다. 그가 안기부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내정치 및 보안업무를 맡은 것으로 보아 결코 떳떳치는 못하리라는 판단이었다.

  "아, 양 장군! 잠깐 기다리시오. 중국 총서기와 화상통신이 연결되었소."

  양 석민이 국방부 지하벙커의 정면, 그의 시선에서는 왼쪽 끝에 중국인들이 나온 모습이 보였으나 비스듬하기 때문에 모두 보이지 않았다. 양 중장이 지시하자 시설담당 장교가 국방부와 중국과의 통신회선을 릴레이 전송받아 양 중장도 그들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다.

  [.....]

  "주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리루이환 총서기는 거만한 태도로 대통령이 먼저 인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인사를 했다. 탁자 주변에 앉은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고위급 장성들도 이쪽을 비웃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 안녕하셨습니까?]

  비서실 소속인 젊은 통역관은 총통을 대통령으로 통역했다. 중국측에 한국어 통역이 없기 때문에, 통역관은 혼자서 두 사람의 말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각각 통역해야 하는 고역을 치렀다.

  "국지전에서 선제 핵공격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대통령은 넌지시 다른 핵강국의 존재를 환기시켰다. 대륙간탄도탄의 보유 숫자가 적은 중국은 결코 미국이나 소련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감히 끼어들지 못할거라는 판단을 내렸소. 저번에 귀국이 고용한 용병부대를 일부러 핵공격한 것은, 이 상황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함이었소. 그 누구도 우리의 의지를 막지 못할 것이오. 제 살길 찾기 바쁠테니까. 그리고 한국을 시기하는 국가들이 많소.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단 말이오.]

  "..."

  [한가지 가르쳐 드리지요. 서울에도 핵미사일 1기가 조준중이오. 서울은 이제 지도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이래도 버티시겠소? 시간이 없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지 오래란 말이오. 그쪽 시간으로 자정 정각에 서울은 잿더미가 될 것이오. 이래도 항복하지 않겠소?]

  대통령과 양 중장이 깜짝 놀랐다. 발사예상시간이 빗나난 것이다! 그렇면 작전은? 대통령이 양 중장이 나와 있는 화면을 보며 눈짓으로 신호했다.

  "민간인을 몰살시키려 하다니! 그러고도 당신이 일국의 지도자라 할 수 있소?"

  [현대전은 총력전이오. 그리고... 후후~ 핵은 강대국의 정치적 무기라고들 하지요. 사용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내가 그것을 사용해 보이겠소.  자, 어떻소? 겨우 몇십 평방킬로미터의 땅덩어리 때문에 국민을 희생시키겠소?]

  "적국의 침략을 받고 항복하거나 양보한다는 것은 독립국가의 수치요. 나는 결코 항복하지 않겠소."

  1999. 11. 25  23:30  대전, 정보사단

  "구 소령, 김 소령! 빨리 공격명령 전송하고 다운시켜!"

  양 중장이 대통령에게서 신호를 받자마자 며칠을 준비한 작전을 한마디로 응축하여 명령을 내렸다. 대통령의 묵시적인 명령은 통일참모본부에도 전달되어, 대기하고 있던  참모들이 양 중장의 신호에 맞춰 여기저기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작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해커 구 성회 소령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앉아 있는 컨솔 위의 자판 엔터 키를 눌렀다. 김 준태 소령은 미리 준비된 명령문을 위성통신으로 20여개의 침투조에 동시 전송했다.  이 두 사람을 포함한 젊은 컴퓨터 도사들이 며칠 밤을 새며 완성한 결과가 드디어 실행에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1999. 11. 25  23:32  서울, 국방부 지하벙커

  "핵으로 민간인을 학살하겠다는 겁니까?  아무리 우리를 위협해도 위협에 굴복해 영토를 뺏길 수는 없습니다."

  [위협이라고요?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더니... 쯧쯧. 그리고 우리는 강탈하는 것이 아니고 교환하자는 것이오. 오해는 마시오. 게다가 그쪽 나진, 선봉 지방은 조선초까지는 관외(關外)의 부속영토였소. 즉, 지금은 한족으로 동화된 만주족의 영토란 말이오.]

  리루이환 총서기는 강하게 협박하려다가, 한국이 이 영상을 녹화하여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등 정치선전에 이용할까봐 한 발 물러섰다.  ㄲ와이, 즉 관외라면 리아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롱지앙(黑龍江)의 동북 3성(東北三省)을 뜻한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귀국은 고조선이나 고구려가 보유했던 영토를 돌려줄 겁니까? 당장 미사일 발사준비를 중지시키시오. 그리고 귀국이 우리 영토를 침공하여  우리 국민에게 끼친 피해를 배상해 주십시요."

  [쯧쯧... 젊은 분이 고집은... 그 고집 때문에 각하와 국민들이 피를 보게 될 것이오.]

  "한국이 최근 게놈 프로젝트(Genom  Project)에 참여하여 인종별 유전자 차이에 대한 연구를 상당히 진행시켰다는 사실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중국인만을 말살시키는 인종특화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었지만 비인도적이라서 이를 개발하지 않았소.  핵도 비인도적인 무기이니 사용을 보류해 주시기 바랍니다."

  [핵공격을 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요. 그 연구에 관계된 자들을 모조리 중국으로 압송하겠소.]

  총서기는 결국 영토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한국이 그동안 연구했던 실적까지...

  "지금도 총서기나 중국 인민들도 결코 안전하지는 않을겁니다. 재고해 주시죠."

   [서울에서 북경에 있는 저를 위협하시는 겝니까?]

  총서기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주변 인물들은 가소롭다는듯 껄껄대고 있었다.

  "총서기께서는 북경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후훗~ 보복이라도 하겠다는게요? 난 여기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소.  치졸한 저격에 숨져간 동지들이 지하에서 각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소.]

  "저야 그분들과 친하지도 않은데요. 총서기께서 먼저 가십시오. 친구분들께서 총서기를 반기실 겁니다."

  [푸하하~]

  대통령은 고개를 돌려 오른쪽 화면에 비친 북한의 지도부를 살펴 보았다. 최 광 원수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통령은 김 일성에 대해 결코 좋은 감정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젖먹이였을 때 아버지가 국민방위군에 입대했는데, 부패한 국군장교들 때문에 아버지는 굶어 죽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 이 사실을 알게된 대통령은 김 일성과 이 승만 모두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94년에 김 일성이 죽자 그는 뛸듯이 기뻐했다.  더 빨리 죽지 않은 것이, 아니면 국민들에게 맞아 죽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같이 합심해서 중국의 침략에 맞서고 있는 요즘도  TV뉴스에 나오는 북한 인민군 군관들을 볼 때마다 공연히 분노가 치솟기도 했다. 최원수가 평생 흠모하던 김 일성에 이어 그의 아들인 김 정일까지 잃은 최 광 원수의 분노는 어떤 것일까?  그가 보는 앞에서 중국의 주석이 죽는다면 그는 어떤 기분이 들까? 홍 대통령은 궁금했다. 화면 저쪽에서는 아직도 중국의 국가주석 겸 총서기와 정치국원들이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홍 대통령을 실컷 비웃던 총서기가 갑자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지며 몸이 천천히 탁자 아래로 내려갔다. 정치국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총서기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멍청히 보고 있었다.  총서기가 완전히 쓰러지고 나서야 화면 저쪽에 큰 소란이 일어났다.  총서기 좌우에 도열해 있던 고급장교들이 총서기를 부축하려다가 그를 바닥에 다시 눕혔다. 중국 군인들의 군화발 사이로 보이는 바닥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장군들이 두려운 표정으로 총알이 날아 들어온 창문을 보았으나, 두꺼운 커튼이 내려져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 한 사람이 화면 쪽으로 다가왔다.

  [조선이 또 치사하게 암살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소!]

  당당한 체구의 중국 장군이 화면 이쪽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분노에 얼굴 표정이 일그러져 흉칙해 보였다. 대통령의 기억으로 그 장군이 단 계급장은 그가 분명 인민해방군의 중장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귀하는 누구시오?"

  대통령은 중국 지도부가 북한 주석의 암살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묻자 이 놀라운 상황에서 통역관이 땀을 뻘뻘 흘리며 통역했다.  그 전에 이미 안기부장이 귓속말로 그가 전략미사일군 사령관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제 2포병 사령 쏭윈펑 중장이다.  핵미사일 3발이 이미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곧 발사된다! 이제 결코 발사가 중단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서울과 평양은 잿더미가 될 것이다! 조그만 땅덩어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 그건 당신들 책임이다.]

  대통령은 통역을 들으며, 중국말은 의미전달에 유용한 언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길었다. 그리고 중국말에 사성이 있어 듣기에 아름답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과장같았다.  전화 수화기를 들던 정치국원 한명이 저격당하고, 동시에 회의실로 뛰어 들어오던 무장경비병 2명도 사살당했다. 정치국원과 장군들이 발이 얼어 붙은채 서 있었다.

  "귀하께서는 조만간 있을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로군요. 미리 심판을 내리겠소. 조금 이따가 만납시다."

  대통령이 안기부장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쏭윈펑 중장이 놀라며 피하려다가 다시 눈을 부릅뜨며 똑바로 이쪽을 보며 섰다.적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당당하게 죽겠다는 자존심의 발로였다. 그의 머리가 터지며 피와 뇌수가 튀었다.  머리 윗부분을 잃은 쏭 중장이 맥없이 쓰러졌다.

  학살은 북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안기부장의 목표지시에 맞춰 중국 공산당과 군부의 최고 지도자들이 하나씩 저격당했다. 방탄유리와 두꺼운 커튼을 뚫고 날아든 탄환이 고위장성들과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연거푸 쓰러뜨렸다. 탁자에 정좌하고 앉아 있다가 죽은 사람도 있고 숨을 곳을 찾아 도망다니다가 총에 맞은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단발에 절명했다.  안기부장이 바삐 목표의 위치를 계속 불러대고 화면 저쪽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중앙화면 건너편에서는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통령이 다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최 광 원수와 인민군 고위 장성들은 굳어진 표정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최 원수가 대통령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방위본부장은 대기하고 있소?"

  국무위원들이 말만으로 중국의 고위지도자들을 사살한 안기부장의 마법을 넋을 잃고 구경만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렇습니다, 각하!"

  내무장관이 보고하자  대통령이 상당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결국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경보를 내리시오... 핵미사일 경보겠죠."

  "...예... 각하..."

  "양 중장은 이 상황을 다 보았겠죠?"

  대전의 정보사단에서 화상통신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양 석민 중장은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듯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예! 각하!]

  "작전 장마, 실행명령은 내렸소?"

  [전달했습니다, 각하.]

  "이제 우리는 기다릴 뿐이오. 다만, 투입이 너무 늦지 않았나 생각되오."

  [..., 그렇습니다. 각하.]

  "미사일 3기가 한반도를 향해 발사준비가 된 모양이요. 그것들을 요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소?"

  [..., 죄송하지만... 20퍼센트 미만입니다.]

  "허허..."

  국무위원들의 얼굴이 파래졌다.  이제 서울은 불벼락 세례를 거의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준비된 상황에서 그정도라. 그 20퍼센트에 일천만 서울시민의 생명이 달렸다니, 기가 막히군요. 하긴 10퍼센트에서 두배나 요격확률이 올라갔으니 기뻐해야 하나요?"

  [죄송합니다. 각하.]

  "총리는 도착하셨소?"

  홍 지영 대통령이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제대로 되는 것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벌써 한참 전에 떠난 총리가 아직도 대전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연락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도착하시지 못했습니다.]

  "네... 통신은 계속 연결하고, 일 보도록 하시오."

  [예... 통일!]

  양 중장이 엄숙하게 거수경례를 했다. 홍 대통령은 몇년 전 국립묘지에서 월남전 참전용사가 동료의 묘비에 경례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양 중장의 거수경례는 그 참전용사의 눈빛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끈끈한 동지애, 죽은 동료에 대한 회한 등이 함축된 경례였다. 대통령이 목례로 받자 양 중장이 손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돌아서는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잠시 후 서울과 평양에는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시민들이 지하방공호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촌 주민들은 아파트건물이 붕괴할까봐 지하로 대피하는 것을 꺼리고 대부분이 어린이 놀이터에 있는 지하방공호로 몰려갔다.  방공호가 만원이 되자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밖에서 철문을 두들기며 절규했다.

  도로에는 승용차들이 전속력으로 달리며 클랙슨을 울려 댔다. 곳곳에 접촉사고가 일어났으나 운전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신호등도 무시하고 마구 달렸다. 도로에 차량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 승용차들은 마치 카레이스라도 하듯 질주했다. 일부는 집으로, 일부는 시외로 나가는 외곽도로를 향하는 승용차들이었다. 서울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1999. 11. 25  22:35(북경표준시)  베이징, 티엔안먼(天安門)

  "젠장! 여기서 탈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미친놈은 없겠지."

  영어로 한바탕 욕지거리를 내뱉은 이 중국인 2세는 창문을 통해 광장을 내려다 보았다.  국경절마다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동양 최대의 광장에는 지금 비상등을 켠 군용트럭들이 사방에서 몰려들며 천안문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가 선두의 트럭 운전석을 향해 한발을 쏘았다.  트럭이 급회전하더니 돌난간에 충돌하며 정지했다. 다른 트럭들이 급정지를 하자 보병들이 트럭 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 광장 중앙의 인민영웅 기념탑 쪽에는 벌써 전차와 장갑차들이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구스타프라는 암호명으로 불리는 이 저격수가 미니미 경기관총을 몰려드는 중국군을 향해 연사하기 시작했다.  유서깊은 천안문 광장에 기관총 소리가 메아리쳤다.  선두의 중국군 4~5명이 쓰러지자 중국군들은 극도로 조심하며 접근했다.  장애물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에게 유리했으나 그를 잡으러 오는 병사들은 너무 많았다.

  "그냥 밀어 붙여! 돌격하란 말야!"

  호위국 소속의 군관 한명이 허공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이미 정치국원들은 몰살당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범인을 잡아봐야 그의 정치생명, 더 중요한 군인생명은 끝장났다. 어쩌면 숙청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군인정신이었다.

  병사들은 광장 곳곳에 엎드려서 천안문을 향해  사격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천안문 뒤쪽에서도 다른 병력이 접근하고 있으니 잡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생포해서 정치적 선전을 노릴 수도 있었다.

  "나를 따르라! 돌격!"

  앞장서서 뛰던 군관이 갑자기 픽 쓰러졌다. 병사들이 다시 엎드렸다.

  구스타프는 2층에서 황급히 뛰어 내려왔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각종 국경절에 천안문광장에서 펼쳐지는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는 1층 스탠드를 지나 어두컴컴한 뒤쪽으로 뛰었다. 총소리가 그를 따랐다.

  천안문 뒤쪽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공인문화궁(工人文化宮)과 중산공원(中山公園)의 사잇길로 경비병들이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구스타프는  그들이 고궁박물관의 경비병이라 직감했다.  중국병사들이 구스타프를 발견하자 그가 먼저 쏘기 시작했다. 두세명이 쓰러졌다. 그는 중국군들이 응사하기 전에 계단 오른쪽으로 뛰어 내렸다.  거의 3층 건물 높이였지만 다행히 다리가 부러지는 불상사는 없었다. 공인문화궁의 담에 미리 준비된 밧줄을 타고 벽을 올랐다. 그가 밧줄을 올리고 나자마자 경비병들이 밑으로 우르르 뛰어가고 있었다.

  1999. 11. 25  23:37  함경북도 혜산

  "작전개시! 공격이다!"

  김 재호 대장이 각 예하군단과 연결되는 통신망의 스위치를 넣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먼저, 은폐해 있던 가교전차들이 말라붙은 강을 향하고 K-200 보병전투차들이 강을 건넜다. 도하지점에는 이미 제 3특공여단 소속 부대원들이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었다. 압록강을 반쯤 덮고있던 얼음이 깨어지는 소리가 각종 차량의 엔진소리와 함께  묘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구름에 달이 가린 캄캄한 압록강변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인간과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황판을 보고 있는 김 대장의 뒤에는 참모들이 도열해 있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통신병들과 작전과 소속 위관급 장교들 만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김 대장이 부하들을 격려했다.

  "최대의 적은 시간이다. 24시간 내에 두만강에 도달한다. 돌격!"

  제 1기갑사단과 815기계화군단, 제 1해병사단이 선두를 이루었다. 그들 뒤로는 아직도 100여개의 사단병력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1999. 11. 25  23:40  평안남도 순안비행장

  "드디어 출동입니다!"

  김 종구 중위가 활주로 옆 주기장에 대기중인  기체에 올라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다시는 살아서 땅을 밟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비장함이 표정에 떠올랐다.  황 중령이 다른 전투기들이 발진하는 것을 곁눈질로 보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이른바 황 중령식 커피라는, 초이스 커피 한 스푼에 설탕 네 스푼, 그 위에 제주밀감 한조각을 띄운 국적없는 커피블렌딩이었다.

  "김 중위, 박치기는 하지 말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

  "하하~ 당연하죠. 제가 죽으면 배아파서 어떡해요. 제가 귀신이 되서라도 황 중령님 취미생활을 방해라도 할까봐서 그러세요?"

  "크... 아냐. 살아 돌아오면 내 기술을 모두 전수해 주지."

  "황 중령님의 기술요? 와~ 꼭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

  "제 걱정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륙준비를 마친 김 종구 중위가 정색을 하며 황 중령에게 말했다. 뜻밖에 김 중위가 진지한 것을 본 황 중령이 당황했다.

  "순진하기는~ 난 선영이가 걱정되서 하는 소리야. 잘 데려와야 하네. 내 애인이기도 하니까."

  "윽........ 네."

  김 중위가 전투기의 캐노피를 닫으며 황 중령과 정비사들에게 경례했다. 황 중령이 씁쓸한듯 답례했다.  전투기의 브레이크가 해제되고 천천히 활주로쪽으로 이동했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김 중위의 F-16이 약간 노면이 고르지 못한 활주로에서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이번 임무를 맡은 전투기들이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차례로 이륙하여 별이 되었다. 김 중위의 차례가 되자 160노트의 속도로 가속하며 상승각 15도 정도로 하늘로 떠올랐다. 꿈결처럼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전투기들이 고도 6000피트에서 편대를 이루자 남쪽으로 기수를 향하며 가속했다.  5분이 안되어 여섯대로 편성된 요격편대는 평양상공에서 선회중이던 미그-29 편대와 교대하며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이들과 똑같은 무기를 탑재한 전투기들이 수원비행장에서도 이륙했다.

  1999. 11. 25  22:42(북경표준시)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아커쑤

  광활한 중국대륙의 서쪽 끝,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서도 서쪽 끝에 위치한 아커쑤(阿克蘇), 克蘇라는 이름답게 70년대의 숙적인 구 소련에 대응할 군사도시로서 성장한 이 위구르족의 도시 근교에 건설된 지하핵기지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습 외에 이렇게 실제상황에 돌입한 것은 기지건설 이래 처음이었다.경비병력이 탑승한 전차와 장갑차들이 사방으로 전개하여 철통같은 경계망을 펼쳤다.

  지하에는 발사관제실이 있었고 지금 기지사령원이 초조하게 북경과의 통신재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신병이 고개를 저었다.

  "본부와 도저히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직통전화뿐만 아니라 모든 유선통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기지사령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방금 전에도 우루무치 기지에서 침투한 적을 격퇴했다는 통보를 받지 않았던가? 왜 갑자기 통신이 두절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최종 발사명령을 받을 수 없어!"

  "사령원 동지! 무선으로 명령수신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잠자코 서 있던 부사령이 조언했으나 사령관의 화만 돋궜다.

  "미쳤어? 기지 위치가 노출될 우려가 있으니 무선은 절대 안돼! 우리 기지의 임무는 소비에트를 경계하는거야!"

  "지금 기지는 고립되었습니다. 근처의 다른 군부대에도 연락이 안됩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령원 동지!"

  통신군관의 보고에 이어 미사일관제사가 사령관의 결단을 재촉했다. 시간은 이미 마이너스 3초를 넘고 있었다. 사령원은 이제 발사를 해도, 안해도 명령을 위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단 명령은 수행하고 볼 일이었다.  기지가 생긴 이래 최초로 실제 핵미사일 발사를 하게 된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그는 스스로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젠장, 발사해! 나도 모르겠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유도탄기지의 지상으로 노출된  사일로가 자동으로 열리며 기계장치에 의해 주변에 있던 위장막이 제거되자,  거대한 미사일이 하늘로 솟구쳤다. 중국이 개발한 최초의 대륙간탄도탄인 동풍 4호(CSS-3)가 발사된 것이다. 액체 2단 추진방식인 이 미사일은 3메가톤급의 위력뿐 아니라 크기에서도 엄청났다. 물론 35미터짜리 러시아제 SS-18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25미터가 넘는 괴물이었다. SS-18 같은 MIRV가 아닌 탄두 하나짜리이면서도 이렇게 큰 것은 중국의 과학력이 뒤떨어진다는 증거였지만,  그래도 당당히 대륙간탄도탄의 반열에 드는 놈이었다.

  핵미사일은 꼬리에서 시뻘건 불을 뿜으며 발사한지 1분 30초만에 기지의 시계를 벗어나 대기권을 탈출하고 있었다.  달빛 아래 바위언덕에서 김 중령과 다른 요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1999. 11. 25  13:45(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우라질! 드디어 발사되었습니다, 대통령 각하!"

  합참의장이 보고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은 전면의 대형화면에서 움직이는 화살표를 보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NSA(국가안전보장회의) 구성원들은 경악을 넘어 분노하고 있었다. DIA(국방정보국)가 한국과 중국의 움직임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즉시 긴급소집된 NSA에서는 핵전쟁에 대비하여 최고비상령을 발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 참이었다. 이때 대륙간탄도탄의 발사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한 발 뿐이오?"

  대통령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묻자 합참의장이 약간은 미심쩍은 눈치로 보고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더 발사될 가능성이 큽니다."

  "목표는 어디요? 어떤 종류고?"

  "아직 미사일이 최고점에 도달하지 않아서 확실치 않습니다만, 방위로 보건대 한반도 중심부입니다.  서울 약간 북쪽인 것같습니다.  탄도탄이라면 메가톤급이 틀림없습니다."

  "서울은 아니다? 평양도 아니고..., 거기에 뭐가 있죠?"

  "판문점 북쪽, 개성이라는 곳에 이번 전쟁에서 지휘권을 확보한 통일 한국군측 최고 사령부가 있습니다. 중국도 위치를 파악한 모양입니다."

  CIA의 매퀄리스 국장이 나서서 한국의 통일참모본부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두툼한 안경을 쓴 영국신사같은 모습의 매퀄리스가 이 기구의 구성, 지금까지의 작전 등에 대해 보고하자 대통령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한국이 역공을 시작한다고요? 한국에 핵이 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오? 없다면 이렇게 무모할 수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단, 한국정부가 보여준 핵미사일 등은 가짜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블러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매퀄리스는 허세를 부린다는 뜻의 단어 bluff를 사용했는데, 포카게임에서 낮은 끗발의 카드로 높은 끗발인 체한다는 뜻도 bluff이다. 허세는 정치외교의 기본이 아닌가?  매퀄리스는 이 회의가 끝나면 동료들과 포카나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중국 국가주석에게서 전화가 안오는거지?"

  대통령은 약간 초조했다.  핵미사일을 발사했으면 당연히 핫라인으로 통고해야 원칙인데 아직도 전화벨은 울리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한국에 핵이 없다는 사실에  대통령이 안도와 동시에 한국인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그를 지켜본 국장이 계속 보고했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왜 그리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핵기지에 소수의 침투팀을 투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팀도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정부가 그들만 믿고 있다면 대량학살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국에 항복하거나 점령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각하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중국을 내버려 둘 경우에는 핵의 도미노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제 3세계의 빈국뿐만 아니라 테러단체마저도 핵을 구하느라 눈이 뒤집힐 겁니다. 강력히 재제해야 합니다."

  매퀄리스 국장에 이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며 선거참모였던 호블랜드 국무장관이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극우강경파이며 공산국가에 대해 철저한 매파로 알려진 국무장관의 조언은 대통령을 섬뜩하게 했다. 그는 중국과의 핵전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힘을 못쓰는 지금, 중국만 제거하면 미국에 위협이 될만한 나라는 없었다. PAX Americana, 즉, 미국지배하의 세계평화에 대한 꿈이 실현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핵이라니...

  "중국에 탄도탄 숫자는 얼마나 있소?"

  "지상발사 대륙간탄도탄 8기에 잠수함발사 탄도탄 24기입니다. 대만해상에서 사용한 것은 중거리탄도탄이고, 이것들이 100여기 가량 있습니다. 중국과의 핵전상황을 상정한다면, 우리측의 피해가 전혀 없이도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단, 선제공격을 한다면 말씀입니다."

  합참의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호블랜드가 미소를 지었다.  합참의장을 대통령에게 천거한 사람이 국무장관이었다.

  "보복능력이 없다? 글쎄요... 잠수함발사탄도탄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1차공격에 절반은 살아남고, 이들이 발사한 미사일의 절반은 우리 합중국에 도달할 수 있을거요.  난 국민의 목숨을 걸고 그따위 모험을 하고 싶지 않소."

  "중국이 급성장할 수 있습니다. 일본도 중국에 넘어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중국은 세계강국이 됩니다! 인구와 경제력을 보십시오."

  "차라리 한반도를 중국에 넘겨 주시오. 일본의 군비증강을 어느 정도 눈감아 주고 무기나 팔아 먹읍시다. 중국은 해군력이 약해 일본을 절대 칠 수 없어요. 게다가 이번 전쟁에서 중국해군은 거의 전멸한 것으로 알고 있소. 당분간은 다른 나라를 넘보지 못할 것이오."

  "그럼 비난만 하고 대충 넘어가는 것으로..."

  국무장관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난은 하되 무기수출은 계속 추진하시오. 한국으로 간 무기대금도 중국에게 받으면 되니까..."

  "자유세계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됩니다, 각하!"

  호블랜드가 강력히 권고했으나 이미 대통령의 결심은 확고했다.

  "날더러 핵전쟁을 하라는 거요? 당신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하든지 하시오. 난 도저히 자신 없소."

  1999. 11. 25  23:50  중국 상하이 총밍따오

  "젠장! 발사했습니다!"

  "이런 종간나이!"

  "아~~~"

  시뻘건 빛줄기가 캄캄한 밤하늘을 뚫고 천천히 하늘로 치솟았다.  길이 21미터, 직경 1.65미터, 발사중량 26톤인 이 거대한 동풍2호 핵미사일은 점차 가속하여 정신이 나간 채 이 모습을 보고있는 요원들의 시야를 벗어나 하늘로, 하늘로 계속 상승했다.  시뻘건 불이 하늘로 치솟는 장면은 과연 장관이었다.

  "대장 동지! 서두릅세!"

  "신중하시오!"

  "무시기 신중이오? 동포들이 떼죽음하게... 진작 공격했으면..."

  방금 중국군 초소를 점령한 인민군 정찰연대 소속 요원이 씩씩거리며 이 우철 과장에게 분노에 찬 시선을 던졌다.  조금 전에 중국군을 찔러 죽였던 대검을 당장에라도 이 과장의 목줄에 들이댈 것 같았다. 다른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요원들은 아직껏 미적거리며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던 양 석민 중장을 찢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공격명령이 늦어 핵기지에 접근하는 중에 이미 미사일은 발사된 것이다.

  "과장님! 더 발사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중해야 하오. 한번의 공격에 꼭 점령하도록 합시다. 계속 시간표 그대로 전진하시오."

  대원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중국의 핵기지를 향해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1999. 11. 25  23:51  대전, 정보사단

  "옵니다!"

  관제관의 외침에 양 석민 중장이 눈을 부릅뜨고 상황판을 노려 보았다. 온다, 악마의 화신이 날아온다. 군인의 신앙인 국민의 생명을 노리고 3기의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었다.

  "목표는?"

  "신강에서 발사한 것은 개성을 노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돈화와 상해에서 발사된 2기는 아직 최고점 도달 전입니다만 방위는 서울과 평양같습니다!  목표도달시간은 대략 19분 정도, 2400 플러스 마이너스 1분에 도달 예정입니다."

  "개성을 왜..."

  양 중장이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화상통신 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국방부 지하벙커, 평양의 로동당 청사, 통일참모본부 모두 차분한 분위기였다.  다만 예상보다 약간 빠르다는 웅성거림만 있었다. 관제사가 양 중장에게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적은 통참이 이전한 것을 모르고 있나 봅니다."

  불행 중 유일한 다행이랄까?  그러나 어느 군인이 장성 몇 명의 목숨과 수십만 시민의 목숨을 비교할 수 있을까?  개성시민들은 통일참모본부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전멸할 수도 있는 위기를 맞았다. 통일참모본부는 개성시에 핵미사일 공습경보를 발령하고 있었다.

  양 중장은 중국측의 특수부대를 우려하여 통일참모본부를 비밀리에 이전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차라리 당당하게 이전사실을 공표했어야 했다는 생각이었다. 아니면 개성의 구 본부 건물에 남아있던 경비병력을 철수시켜서 최소한 통일참모본부가 이전했다는 정보를 중국이 갖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설마 중국이 핵미사일을 개성에 겨누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양 중장이 이를 악물었다.

  "요격용 전투기나 관제기, 미사일이 부족합니다.  서울과 평양의 확실한 수호를 위해 개성은 포기하겠습니다."

  양 중장이 30만 개성시민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통참의 김 병수 대장이 벌떡 일어나 뭐라고 외치려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으로 책상 모서리를 마구 치기 시작했다.  검붉은 피가 흘러 나왔다. 대통령과 최 광 원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국무위원 한 사람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흐느끼는 모습이 보였다.

  양 중장에게는 더 급한 것이 있었다.  잘만 하면 핵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을지도 몰랐다. 양 중장이 벌떡 일어서며 명령을 내렸다. 자신은 감정에 휩싸일 틈이 없었다.

  "요격부대 상황은?"

  1999. 11. 25  23:53  중국 지린성, 뚠화

  가 경식 소좌가 공격신호를 내리자 선도조의 강 중위와 정찰연대 소속의 병사 한 명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백 창흠 중위는 기술분야이긴 하지만 숫적으로 몇배 많은 중국군과의 전투에 대비하여 총기를 점검했다. 본부에서 추천한 K-1기관단총보다는 K-2자동소총이 믿음직해서 그는 K-2를 택했다. 자신이 현역 때 문제가 많았던 K-2의 먼지덮개 같은 사소한 결함은 이미 개량되었으니 총은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유탄발사기를 장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다만, 에스키모처럼 두툼하게 차려입은 지금의 복장이 더 문제였다.

  가 소좌가 신호를 하며 대원들을 이끌었다. 눈꽃이 핀 나뭇가지들 사이를 지나 숲속 짐승들이 만든듯한 조그만 길로 접어 들었다. 핵기지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1999. 11. 25  23:55  평양 상공

  [편대 정위치, 조기경보기와 연계!]

  편대장인 조 장호 소령의 명령에 따라 6기의 F-16이 일렬종대로 편대를 재편성하며 각각의 거리를 4km 정도로 유지했다. 기수는 다시 북쪽을 향하고 고도는 천천히 올렸다.  핵미사일의 예정낙하코스에 맞춰 전투기를 배치한 것이다. 공중조기경보기가 전투기들의 시간별 위치를 세밀하게 지시했다.  핵미사일의 코스는 이 전투기의 코스와 반경 50미터 이내를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시뻘건 불빛이 연이어 지상에서 올라와 하늘을 향했다.

  "연계 개시!"

  김 중위가 조종석에 특별히 추가된 스위치를 누르자 전투기는 조기경보기와 연계되어 자동조종되기 시작했다.  전투기는 핵미사일의 낙하코스를 따라 천천히 상승했다. 김 중위가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계기판을 살폈다. HUD와 REO에 평양 상공에 있는 E-2C에서 보내오는 전자신호가 영상이 되어 잡혔다. 목표는 마하 25의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상승하는 작은 점들이 하강하는 더 밝은 점에 접근했으나 빗나갔다. 두번째도, 세번째도 마찬가지였다. 1번기와 미사일의 거리는 150km가 되었다. 20초이내에 도달한다!

  [젠장, 마하 6짜리 패트리어트-3가 4발 연속 빗나가다니!]

  [이 따위 미사일에 맞기나 하려나...]

  [20세기 말에 논개 흉내내야 되는 이런 개같은 경우가!]

  "몸으로 때우고 싶어도 어려울겁니다. 너무 빨라요!"

  통신망이 순식간에 편대원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1번기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이 레이더에 잡혔다. 아니, 지금은 레이더가 아니라 다만 E-2C에서 보내는 영상신호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에 불과했다. 대신 탐지범위는 250km나 되었고 최대 축척비로 구성된 REO(레이더/전자광학표시기)에 목표의 데이터가 나왔다. 방위는 전투기의 진로와 정면이고 목표의 속도는 자그마치 7000노트 정도 되었는데 계속 가속되고 있었다. 김 중위가 다시 확인해 보니 앞에 1만이 빠진 숫자였다. 계기판에 표시되는 속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지금 전투기들은 이미 조종사의 통제하에 있지 않았다.  자세와 방향 등의 모든 것은 공중조기경보기인 E-2C에서 관제하고 있었다.  원격조정이나 거의 다름없었고 조종사는 다만 요격미사일의 단추를 누를 수 있을 뿐이었다.

  위성요격용 미사일이 목표를 향하여 급가속했다.  1번기가 발사한 미사일이 핵미사일에 거의 명중할뻔 하다가 빗나가며, 곧이어 2번기가 발사 발사한 미사일도 빗나갔다. 1번기가 핵미사일과 교차하며 발생한 기류탓인지 기체가 조종불능에 빠지며 추락했다.  마지막으로 3번기가 발사한 위성요격용미사일마저 빗나가자,  놀란 나머지 전투기들이 일제히 암람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목표식별장치가 완벽해서 아군기가 맞을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나 사실 아군기가 맞더라도 이들은 주저없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것이다. 미사일은 하나도 명중하지 못하고 핵미사일이 계속 낙하했다.  2번기가 사이드와인더 2기를 발사했으나 너무 느렸다. 핵미사일은 이미 전투기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제발 맞아라!]

  [시뮬레이션과 달라!]

  [야이 개새끼들아! 코스산정 제대로 못하겠냐?]

  E-2C의 레이더전파가 목표에 닿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 컴퓨터의 코스계산처리에 소요되는 시간, 그리고 이를 전자신호로 전투기에 보내는 시간 등은 다 합해도 극히 짧지만,  마하 25나 되는 핵미사일을 명중시키기에는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었다. 이미 핵미사일은 그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도 어쩔 수 없는 편차라는 것도 있었다. 지금도 전투기들이 줄지어 핵미사일의 진로 앞을 막아 섰음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에 어떠한 장애도 되지 못한 것이다.

  [떡을 할! 니네들이 못하면 우리가 몸으로 막겠다!  ECCM이나 채프도 없는데 그 큰 걸 못맞히냐?]

  [웃기지 마! 니가 해봐. 자존심 상해!]

  처음 것은 조기경보기의 기장이 내뱉은 소리고, 두번째는 조 장호 소령의 외침이었다. 4번기 조종사인 김 종구 중위가 피식 웃으며 암람 공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맞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헤드업디스플레이의 조준원에는 이미 핵미사일이 잡히고 있었다.  목표거리 지시기에 나타난 미사일과의 거리는 현재 12km. 미사일은 REO 측면각 지시기의 맨위에 고정되어 미사일과 전투기가 서로 정면을 향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김 중위가 발사한 위성요격미사일도 빗나갔다.

  그는 미사일과의 거리 4km에서 기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전투기와의 근접전이었다면 사정거리도 안될 먼 거리였지만 그는 지금 발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백발의 20밀리 탄환이 탄막을 형성하고 미사일이 탄막 안으로 들어왔다.  김 중위는 기관포탄이 핵미사일을 파괴시킬 것이라는 기대따위는 하지도 않았다.다만 방향이라도 약간 틀어준다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혹시나 핵미사일이 공중폭발한다면?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왜 북한 사람들을 위해 죽어야 되지?  아니, 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어야 해? 내가 군인이라서? 젠장~ 전쟁날줄 알았나.'

  미사일에 2~3발의 기관포탄이 명중했는지 땅으로 내려 꽂히는 거대한 불꽃에 작은 불꽃을 더했다.  방향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김 중위의 눈에 거대한 미사일 본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사일은 급속히 점점 커졌다. 지금은 탄두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지만 F-16보다 세 배는 커보였다. 김 중위의 항상 졸린듯한 눈도 이때만은 크게 떠졌다.

  "제기랄! 강남제비!"

  수우족 인디언의 이름같은 높은산을 콜사인으로 쓰는 백 기선 대위는 김 종구 중위의 기체가 불화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튕겨 나오는 것을 보며 외쳤다. 편대 통신망에 김 중위의 응답은 없었고, 그의 기체는 왼쪽 날개가 부러진채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고 있었다. 불화살은 5번기를 따돌리며 일직선으로 자신의 기체를 향하고 있었다. 이미 너무 가까와져서 사이드와인더와 암람, 기관포까지, 발사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발사했다. 유효거리를 따질 여유나 이유는 없었다. 그는 돌이라도 들고 있으면 그것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강남제비, 정신차려 임마!"

  백 대위가 조기경보기의 관제를 해제하고 직접 조종을 하기 시작했다. 자동조종을 상실한 조기경보기의 관제사가 놀라 백 대위를 호출하는 소리가 무선기를 가득 채웠다. 그는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미사일에 기관포를 쏘며 정면 충돌을 노렸다.  그는 설마 여러 종류의 미사일이 빗나가고 4대의 전투기를 피한 이 핵미사일이  자신의 기체에 충돌하리라는 환상은 별로 품지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그는 헤드업디스플레이보다는 감각을 믿기로 했다. 고속으로 낙하하고 있는 핵탄두가 시야에 보이자 약간 상향조준하여 기관포를 발사했다.  붉은 섬광이 그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백 대위의 전투기와 핵탄두는 정면충돌했다. F-16 전투기가 산산조각이 나며 미사일이 전투기의 잔해를 뚫고 아래쪽으로 나왔다.  미사일은 방향이 거의 바뀌지 않고 지상으로 내려 꽂혔고, 백 대위가 탈출하는 모습은 결국 보이지 않았다. 통신망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결국 마지막 6번기마저 미사일을 요격하지 못했다.

  김 종구 중위의 전투기는 아직  공중조기경보기의 원격조종하에 있었다.  김 중위의 전투기를 사실상 조종하던 관제사가 비상명령어를 입력하자 플라이트스핀 중인 김 중위의 전투기로부터 사출좌석이 퉁겨져 나왔다. 낙하산이 펴지고 김 중위는 기절한 채 길고 긴 강하를 시작했다.

  핵미사일의 탄두는 코스가 약간 바뀌며 대동강의 북쪽 지류인 보통강 중류변의 백사장에 깊숙이 박혔다. 그러나 미사일은 웬일인지 폭발하지 않았다.  백 대위의 기체와 충돌했을 때 핵미사일의 자동안전장치가 작동한 것이다!

  1999. 11. 25  23:59  경기도 개성

  개성 상공에서 1,500미터에서 3메가톤의 핵미사일이 폭발했다. 긴급발진한 미그-23 1개 대대의 화망을 뚫고 들어온 이 미사일에 개성에 주둔하는 고사포대대에서 SA-6을 날렸지만 모두 빗나갔다. 통일참모본부가 있던 건물 상공에서 이 가공할 수소폭탄이 폭발했다.

  수억도에 달하는 초고온이 대기를 노랗게 달궜다. 중성자와 중간자에 의해 원자핵 내에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던 양전하들이 클롱반발력을 이기고 서로 충돌했다. 질량결손이 막대한 에너지를 낳고 이 에너지가 다른 원자핵의 결합을 가속시키자, 핵융합반응이 촉발되면서 열선이 대지를 불태웠다. 곧이어 거대한 불의 버섯구름이 형성되며 다시 폭풍이 불타는 땅과 건물을 휩쓸었다. 화구가 계속 커지면서 개성시 전체가 화염에 빨려들어 갔다.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은 1분도 안되어 소멸되었다.

  1999. 11. 26 00:00  서울, 국방부

  [평양은 살아남았습니다!  전투기들의 가미가제식 요격이 성공했습니다. 대신 개성이 당했습니다. 현재 통신두절!]

  국무회의에는 일순 함성이 터졌다가 싸늘하게 분위기가 식었다. 그러나 잠시 후 평양과 서울의 요격체계가 같다는 것을 확인한 국무위원들은 서울이 살아남을 확률이 크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대통령이 최 광 원수를 불렀으나 최 원수는 장승처럼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눈밑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대통령이 최 원수를 부르기를 포기했다. 이제는 서울 차례인 것이다.  홍 대통령이 미사일 접근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가 화상통신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각하께서는 왜 서울에서 피하지 않습네까?]

  "..."

  [...]

  최 광 원수가 미소를 지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였다. 홍 대통령도 미소로 답했다.

  '최 원수와 같은 이유지요.'

  라고 말하지 않고도 뜻이 통했다. 비로소 홍 대통령은 인민군 복장을 입은 사람에게도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약간 늦은 감은 있었지만...

  수도방위사령부는 서울 상공의 방어까지 책임지고 있었고, 이는 서울에만 한정된 집중화된 방어체계였다. 수방사의 모든 정보는 데이터링크를 통해 국방부과 평양,  그리고 남양주의 통일참모본부와 대전의 정보사단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지금 시시각각 탄도미사일의 위치가 보고되며 아군의 대응도 역시 즉각 보고되었다. 미국에서 긴급공수된 ABM이 지금 막 발사되었다.  이 미사일요격미사일은 마하 10 이상의 속력으로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미사일끼리 점점 접근했다.

  "미사일은 남서쪽에서 날아왔습니다. 상해 앞바다의 섬인 숭명도에서 발사된 놈이 틀림없습니다. 탄두의 위력은 20킬로톤 정도 될 것입니다."

  국방장관이 프로야구중계방송의 해설자와 같은 톤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홍 지영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얼핏 보고, 다시 중앙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인가?

  [ABM 1, 2, 3호 모두 목표상실! 패트리엇이 백업하고 있습니다!]

  "음..."

  대통령이 신음성을 발했다. 미국이 한국에 비싸게 팔아먹은 HOE-3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다. 아무래도 탄도탄 요격처럼 빠른 물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레이더와 컴퓨터, 전파를 이용한 위치파악보다는 다른 방법이 있어야 했다.전파 종류를 이용한 목표추적은 음속의 25배 정도를 비행하는 물체에게는 이미 소용이 없었다. 가령 목표가 마하 25의 속도로 지상 100km에 있다면, 레이더가 목표를 잡은 순간 목표의 위치는 이미 5미터 이상을 벗어나 있게 된다. 이 데이터를 요격부대에 전송하면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실제 요격대상의 위치도 바뀌는 것이다.요격부대가 자체의 미사일을 활용하면 시간은 단축되지만 그정도의 거리를 소형전투기가 탐지할 레이더를 장착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명중이 확실한 후면발사가 불가능한만큼, 정면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대기권 진입 미사일의 속도 ; 마하 25 (중거리탄도탄의 경우)

음속 ; 340미터/초 (고고도는 영하이지만 상온으로 가정)

전파의 속도=광속 ; 약 300,000km/초

위치(고도) ; 100km

레이더 전파왕복시간 ; 1500분의 1초

이동거리 = (25*340미터/초) / (1초/1500) = 5.67미터

  미사일 요격시스팀은 이 오차를 수정해 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전혀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대기와의 마찰에 의한 미사일의 감속, 지구의 중력에 의한 가속, 미약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지구의 자전에 의한 코리올리효과 등,  미사일의 속도와 위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고에너지 레이저에 의한 적 위성이나 대륙간탄도탄의 요격이 주요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SDI가 아직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구 소련이 고에너지 레이저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탄의 요격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자체 레이더가 탑재된 요격용미사일도 마하 25를 넘는 목표에 대해서는 정밀도가 떨어진다. 음속 이하로 비행하는 전투기도 확실하게 명중시키지 못하는 미사일이  초고속의 대륙간탄도탄을 요격하는 것은 난센스다.  게다가 대공미사일은 명중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폭발파편에 의해 목표를 파괴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폭발하는 순간 핵미사일은 이미 그 상공을 통과한 후의 일이다. 미사일은 전혀 손상을 받지 않는다.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미사일이 핵미사일이 아니면 아직까지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인들은 지금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으며, 이 방법이 평양을 구한 것처럼 서울도 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천만의 시민이 사는 곳이었다. 전략적으로도 결코 잃으면 안되는 곳이었다.

  [패트리엇 12기 모조리 빗나감!]

  [위성요격미사일 및 공대공미사일 목표 요격 실패!]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의 관제사들이 연이어 비명을 질렀다. 전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지금 이들의 머리 위로 핵미사일이 낙하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안기부장은 대통령이 공포보다는 격노한 표정을 짓는 것이 신기했다. 대통령은 과연 죽음을 초월한 사람인가? 대단한 배짱이라고 생각했다.

  [미사일, 요격기 편대 통과! 목표, 청와대로 최종 파악!]

  "빌어먹을 미제 무기들! 비싸기만 하고 엉터리야!"

  여기저기서 국무위원들의 비명과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국무회의가 청와대에서 가까운 정부종합청사로부터 국방부 지하벙커로 이동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가톤급의 핵이라면 별로 달라질 것이 없었다.국방장관의 말대로 20킬로톤급의 위력이라면 폭심에서 약간 벗어나긴 하지만, 용산일대도 직접적인 핵폭발의 영향권에 들 것이 틀림없었다.

  "영부인께서는..."

  통일부총리가 묻자 대통령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안주인은 아직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물론 민방위본부의 지시대로 지하방공호에 있겠지만 폭심 주변에서 별로 깊지도 않은 지하 방공호는 의미가 없었다. 홍 대통령은 중국이 청와대를 목표로 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는 국방부나 서울 시가의 한복판이 목표가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몇몇 국무위원들은 생을 포기했는지, 아니면 국방부 지하벙커의 견고성을 믿는지 두려움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상당수의 국무위원들은 이 엄청난 공포 앞에서 사고력을 잃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총리! 총리는 도착했소?"

  [여기 있습니다, 각하!]

  옥상의 헬기탑승장에서 뛰어왔는지 아직도 헐떡이고 있는 총리의 모습이 보였다.하늘에도 러시아워가 있는지 서울에서 대전까지 헬기로 오는데 무려 한시간이 넘게 걸렸다. 각종 요격용 미사일의 배치와 병력수송 때문에 도로뿐만 아니라 상공도 교통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고, 공습경보가 발령된 마당에 각 도시 상공마다 요격부대에 의한 기종 및 탑승자 신원확인이 시간을 잡아먹은 것이다.  그만큼 나라가 어수선했다.

  "서울이 핵공격을 받고 있소.  서울과의 연락두절시 통수권을 총리께 맡깁니다. 끝까지 잘 싸워주길 바랍니다."

  [각하...]

  [목표도달 3초전! 공중폭발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방에는 암호표가 있소. 양 중장과 상의해서 핵공격 여부를 결정하시오. 무거운 짐을 맡겨 드려서 죄송합니다. 대통령 서리 각하."

  홍 대통령이 최 창식 총리를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부르지 않고 대통령 서리로 부르자 국무위원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예감했는지 비장한 표정들이었다. 최 광 원수와 통일참모본부의 이 차수가 최 총리를 유심히 보았다. 최 원수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천장과 바닥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화상통신은 모두 두절되고, 동시에 전기도 나갔다. 암흑이 밀려왔다. 갑자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울 북부시가에 작은 섬광이 번쩍였다.복원된 경복궁을 배경으로 강렬한 빛이 잠시 서울의 밤하늘과 북악산을 하얗게 비췄다. 곧이어 거대한 태양이 땅에 내려온듯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초고압, 고온의 가스가 만들어낸 불기둥이 주변 건물을 빨아들이면서 급속하게 커졌다.방사선과 열선이 발산되며 삼청동의 한옥들을 녹이고 강력한 압력파가 지상과 대기를 통해 시내 전역에 파급되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와 세종문화회관, 안국동에 있는 한국일보빌딩이 모래성처럼 부스러졌다.

  폭발의 중심지역에 기압이 낮아지면서 폭심을 향해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과 자동차, 가로수들이 빨려 들어갔다. 폭심을 중심으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나며 방사능재와 각종 잔해가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그 사이에도 폭발로 인한 피해지역은 끝없이 확장했다. 청와대 주변지역인 삼청동과 사직동, 효자동, 청운동, 안국동 등 곳곳에 있는 건물 수백채가 열선에 의해 불에 타기 시작했다. 핵폭발로 인해 발생한 첫번째 충격파와 지진파가 종로구 일대의 건물과 주택을 무너뜨렸다. 광화문 인근 도로변에 비상주차된 차들이 폭풍에 날아가고 가로수가 뿌리째 뽑혔다. 잠시 후 시청과 플라자호텔이 무너지고, 폭풍의 위력은 조금도 감소하지 않은채 국보 1호인 남대문을 휩쓸고 서울역사를 무너뜨렸다. 초겨울, 바싹 마른 남산의 아카시아숲에 산불이 일어나고 거대한 남산타워가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핵폭발로 발생한 진동파가 광화문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수많은 구조물들을 붕괴시켰다. 청계고가와 아현고가, 서울시 외곽고가 도로가 무너지고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부근이 통째로 붕괴되어 종로 일대의 도로가 지하로 꺼져 내렸다.  마포대교가 파도처럼 일렁이더니 결국 한강으로 주저앉고 독립문 뒤쪽의 금화터널이 통째로 붕괴되었다.

  핵폭발로 인한 지진파는 멀리 분당과 과천, 구리시 등의 아파트 몇 동을 붕괴시켰으며 일산의 신도시 아파트촌 절반이 주저앉았다.

  1999. 11. 26  00:02 서울 응암 1동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였던  이 진은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방공호나 지하실로 대피하지 않았다.  부모와 동생은 이미 며칠전에 고향으로 내려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간섭할 사람은 없었다. 10분에 한번씩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귀찮을 뿐이었다. 핵미사일이 서울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선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사람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시내에는 아직도 공습사이렌이 길게 울리고 있었다. 녹번시장 근처에 있는 집에서 보이는 시내는 오랜 야간등화관제훈련에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이미 대피해서 사람이 없는지 주변 집들이 전등을 밝히지 않아 깜깜했다.  민방위본부의 대피명령을 무시하고 서울을 빠져나가려는 차량들이 내는 소음이 들려왔다.

  그녀는 산뜻하게 꾸며진 방에서 흔들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TV뉴스를 보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핵미사일의 서울접근을 급박하게 알렸다.  화면 아래에 자막이 흐르며 개성시가 핵미사일의 일격에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갑자기 동쪽 창문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설마를 몇번 외치며 일어나 창문으로 뛰어갔다.

  거대한 불덩어리가 하늘로 치솟고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서울이 온통 불바다가 되고 있었다. TV방송이 갑자기 끊기고 전기가 나갔다. 그때부터 그녀가 창문에서 본 것은 아수라지옥이었다.

  시내 곳곳에 수도관이 터지면서 도로는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가스회사의 직원들이 모두 승용차를 타고 도망가는 바람에 가스관 차단을 실시하지 못했다. 붕괴된 도로 주변에 허술하게 묻혀있던 가스관에 균열이 생기면서 강력한 압력에서 해방된 도시가스가 분출했다.  물바다가 된 지하철 3호선 녹번역 부근 도로 위로 가스가 두텁게 쌓이며 흘러 내렸다.  도로에 누적된 도시가스는 녹번사 거리 근처 서부소방서에서  긴급출동 중이던 소방차의 배기가스에 닿자마자 폭발했다.  도로를 따라 폭발이 연속되며 시외로 빠져나가려던 자동차들이 갈기갈기 찢긴채 장난감처럼 하늘로 날아갔다. 정전으로 인한 암흑 속에서 그 장면은 너무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지하에 얼기설기 매설되어 있던 도시가스 배관망은 한국 특유의 부실공사와 관리자의 도주, 결정적으로 핵폭발로 말미암아 서울을 지옥으로 바꿔 놓았다.  시내 곳곳이 핵폭발에 의한 화재보다는 도시가스에 의한 피해가 더 컸다.  일차폭발 이후에 발생한 도시가스의 연속폭발과 화재로 인해 발생한 유독가스가 지하방공호나 전철역에 대피해 있던 민간인들을 질식시켰다.  동시에 수백군데에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차와 앰뷸런스들이 출동했지만, 도로 곳곳이 붕괴하고 부서진 차량잔해에 막혀 움직이지도 못했다. 부상자들이 울부짖었으나 그들을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은 청바지와 간단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집을 뛰쳐 나갔다.  아직도 균열된 배관에서 치솟는 도시가스가 밤하늘을 향해 화염을 뿜어대고 있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방사능 낙진은 문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집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미친듯이 질주하던 차량이 핵폭발과 화재에 놀라 뛰쳐 나온 동네 아주머니를 깔아 뭉개고 도망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주머니를 살펴 보았으나 이미 즉사했다.  차에 받히고 바퀴에 깔린 그 여자의 배에서는 창자가 꿈틀거리며 나오고 있었고,거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진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잠시 후 시체를 차가 다니지 않는 길옆으로 옮기고 다시 넓은 도로로 나섰다.

  1999. 11. 26  00:03 대전, 정보사단

  "서울이 당했습니다."

  관제사가 얼이 빠진 듯이 의자에 뒤로 푹 퍼진 채 천천히 보고했다. 국방부 지하벙커와 연결되어 있던 통신화상이 지직거리더니 결국 채널을 잘못 맞춘 TV수상기처럼 화면이 나갔다.  6개 TV방송은 전면 중단되었고, 위성TV와 지역 CATV마저 연결이 제대로 안되었다. 통일참모본부와 연결된 화면은 음성은 들리지 않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윤곽만 희미하게 보였다.

  "피해는?"

  묻고 있는 양 중장의 안면근육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최 총리는 장승처럼 우뚝 선채 눈을 감았고,  이 재영 중장이나 다른 사람들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모르겠습니다. 연락이 완전 두절됐습니다."

  "수경사, 아니, 수방사는?  서울 인근 부대에 연락해서 정찰기를 날려! 유무선통신이 안되면 연락헬기라도 날리란 말야!"

  양 중장이 통신장교에게 고함을 치고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김 준태와 구 성회가 그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서울과 개성에 명중한 핵미사일은 핵폭발 뿐만 아니라 강력한 전자기펄스를 발생시켜 한반도 중부의 유,무선 통신을 모조리 두절시켰다. 서울 상공에서 미사일 요격에 투입된 전투기들은 살아남아 있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현재로서는 서울과 연락을 취할 방도가 없었다.

  "총리님! 아니, 대통령 각하!"

  "양 중장."

  최 총리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50대 중반의 총리는 고혈압 기운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약간은 휘청거리고 있었다.

  "발사명령을 내려 주십시요."

  "..., 진정하시오. 피해를 파악해 봅시다. 통참이나 최 원수와도 협의하고..."

  "이럴 수가 없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양 중장이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 넣었다.  권총집의 단추는 채우지 않았다. 일어섰다 앉기를 몇번 반복하고 있는 양 중장을 이 재영 중장이 진정시켰다.

  "양 중장은 이번 작전의 책임자요. 부디 냉철하시오."

  "...., 죄송합니다. 선배님."

  양 중장이 고개를 푹 숙이며 천천히 상황실을 떠났다.  이 재영 정보 사단장은 동해안쪽으로 멀리 우회하는 유선망을 통해 서울 인근의 연락이 되는 군부대를 호출하여 서울 구조작업에 동원하고 남양주의 통일참모본부와 화상통신을 연결했다. 화면에 얼굴이 벌개져 있는 이 종식 차수의 얼굴이 보였다.

  "통일참모본붑니다!"

  중앙화면에 나온 침통한 얼굴의 이 종식 차수는 정보사단 상황실에서 얼이 빠진 채 서 있는 최 총리를 보고 안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면이 자꾸 일그러졌다. 이 차수가 경례를 하자마자 총리가 울부짖었다.

  "서울이 핵에 당했소! 연락도 완전 두절이오."

  [완전히 당한 것은 아닙니다. 의외로 위력이 약한 탄두였습니다. 개성은 전멸했지만 서울은 아닙니다.]

  "...?"

  [20킬로톤 이하의 위력이었습니다.게다가 지중폭발이었기 때문에 위력이 더욱 격감했습니다.대신 인근지역도 상당한 지진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 지수 대장이 이 차수 대신 총리에게 차분하게 보고하자 총리는 정 대장의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피해가 적다는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양 중장은 핵보복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소. 이 차수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핵이레 있습네까? 거짓뿌렁 앙이었습네까?]

  이 차수는 금시초문이라는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총리와 양 중장을 살펴 보았다. 어느새 들어와 있는 양 중장의 두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것은... 쿨럭! 2400시로 비밀이 해제된 파일에 담겨 있었습니다. 자료를 전송하겠습니다."

  양 중장이 자신의 책상에 앉아 앞에 놓인 패널을 조작하더니 잠시 후 다시 이 차수와 다른 참모들에게 보고했다.

  "안기부장이 공작을 벌인 모양입니다. 극비리에 국제 무기암거래시장에 나온 240밀리 박격포용 핵탄두 3발과 152밀리 곡사포용 핵탄두 2발을 입수했습니다. 각기 위력은 다르지만 모두 5킬로톤 이하급입니다. 안전기획부는 이것을 우리별로켓이나  인민공화국의 대포동 3호에 탑재하는 계획을 전쟁발발 직후에 세웠고,  실전사용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양 중장이 잠시 자판을 두들겼다.

  "우측 화면에 나온 바와 같이, 전라북도 정읍 부근 기지에 이것을 배치했습니다."

  화면에는 정읍 남쪽 산악지대, 내장산 위쪽의 특정위치가 검은 화살표로 지정되어 있었다.

  [기래서 대포동을 몇개 달라고 했구만. 알갔소. 긴데 양 중장이 보복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시기요?]

  "당한만큼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양 중장의 목에 핏발이 바짝 섰다.

  [아이오. 기건 위력이 약해 중국이 다시 보복에 나설 수 있소. 디금 중국 지도부레 괴멸됐수다. 동지도 알갔디만... 기럼 집단지도체제레 들어서고, 집단지도방식이레 강경화되는 수가 많디오.투입된 요원들을 일단 믿도록 합세.]

  "..."

  [총리께서는 어케 생각하십네까? 작전 장마에 대한 거이 아시리라 생각합네다만.]

  "...,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밖에 없겠지요. 조금 더 기다려 봅시다.  일단 서울시민과 대통령 각하를 구조해야겠소."

  1999. 11. 25  00:05  중국 지린성 뚠화

  기지사령관인 우허숭 상교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유도탄을 발사하기 직전에 당중앙 확대군사위원회와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부하들을 마을에 내보내 일반전화로 연락하려고 했지만 트럭을 타고 나간 부하들이 돌아올 시간은 아직 되지 않았다.

  "이거 원... 정말 특수부대가 공격해 오는 거야?"

  유도탄을 처음으로 발사해 본 관제사들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고 있었지만 사령관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현재의 경비상태에서는 소수의 적이 침입해 온다한들 절대로 기지를 빼앗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불안한 생각이 드는지 자꾸 손목시계를 보았다.

  "이놈들 왜 안돌아 오는 거지?"

  "사령원 동지, 무전으로 하면 안됩니까?  이미 유도탄을 발사했으니 이제 무선관제를 풀어도 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규정이... 에이! 통신군관. 베이징과 연결해!"

  "네! 사령원 동지!"

  통신군관이 통신전업군사(專業軍士)와 함께 베이징을 호출했지만 당 중앙 군사위는 물론이고 제 2포병 사령부와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군구사령부나 인근의 집단군 사령부도 마찬가지였다.

  "무선도 두절되었습니다!  전파방해는 없습니다만,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을로 간 병사들과 연락되나?"

  통신전업군사가 주파수 다이얼을 맞추더니 잠시 후 고개를 흔들며 보고했다.

  "신호는 틀림없이 가고 있는데... 그쪽에서 호출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틀림없이 어디 가게에서 술처먹고 있을거야. 아무데나 불러봐!"

  "해방군 공용주파수대역을 사용하겠습니다. 나옵니다!"

  [여기는 철군(鐵軍) 2, 그쪽은 어딘가?]

  스피커에서 아군의 소리가 들려오자 화색이 만면한 사령원이 마이크를 직접 잡고 물었다.

  "뚠화 유도탄기지 사령 우 상교다. 그쪽은 어디야?"

  [132사(사단) 전차중대장 마 대위입니다. 사령 동지! 무슨 일이십니까?]

  "베이징이나 군구사령부에 통신이 안된다. 귀관은 상급부대와 통신이 되나?"

  [저희도 상급부대와의 무선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제 2포병에서는 유선만 쓰지 않습니까?]

  '이 자식이!'

  우 상교는 울화가 벌컥 치밀었다. 우 상교는 평소에 일반 인민해방군 부대원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도 이런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조선군에게 신나게 깨지기만 하는 주제에!

  "이쪽은 조금 전에 조선에 핵유도탄을 쏘았다.  보고를 해야 하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쪽은 어때?"

  [명령을 받고 이동중입니다. 장백산(백두산) 서쪽 지방에 소규모 조선군 게릴라들이 준동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하급부대간 무선통신은 유지되고 있는데 이상하게 상급부대만 안되고 있습니다.  련(연대)사령부뿐만 아니라 집단군 사령부도 연결이 안됩니다.]

  "알았어. 상급부대와 연락이 되면 이쪽으로 무선연락을 해달라고 전해주게. 수고하게."

  우 상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투덜거렸다.

  "끙... 봉화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야."

  유도탄기지의 차량출입구로 트럭이 상향등을 킨채 달려오고 있었다. 문을 경비하던 위병들이 서둘러 바리케이드를 올렸다. 바리케이드를 통과한 지에팡(해방) CA-10  유개트럭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주차장을 지나 지하 관제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트럭이 서자 트럭 뒤에서 하얀 설상복을 입은 군인들이 뛰어 내렸다.

  먼저 그들을 발견한 것은 이번 전쟁 직전에 징집된 신병이었다. 그는 처음 보는 복장이 신기한듯 한국군들을 보고 있다가 침투요원 중의 한사람이 던진 대검에 맞아 죽었다.  설마 적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한 것이다. 팀장인 가 경식 소좌가 엘리베이터 위에 있는 감시카메라를 향해 소음총을 쏘았다.  대원 한 명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14명 전원이 탑승하자 즉시 지하 12층으로 내려갔다. 돌산의 암벽을 파서 만든 이 미사일기지의 중추부인 관제실은 핵공격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게 설계되었다.

  "여기서껀 문제야~ 백 중위. 준비하라우!"

  백 창흠 중위가 랩탑 컴퓨터의 케이스를 벗겼다. 이곳에서 사용할 그의 무기는 휴대용컴퓨터였다. 다른 대원들이 총기를 점검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자 대원들이 쏟아져 나오며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던 경비병들이 저항도 못해보고 쓰러졌다.  파편과 피와 살점이 튀었다. 요란하게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곳의 감시카메라에 한국군의 침입이 발견된 것이다.대원 한명이 엘리베이터를 고정시켰다. 이제 지하는 위층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미사일 격납고도 지하에 있지만 그곳은 이곳과 직접 연결되지 않았다.

  사격을 끝낸 대원 중 한명이 회전식 출입기를 밀고  관제실로 들어가려했지만 출입기는 꼼짝하지 않았다.  두터운 합금강으로 된 벽은 핵폭발에도 견딜 것 같았다.  이 문은 안쪽에서만 자동으로 열리게 되어 있었다.출입자가 신분증을 전자감식기에 비쳐 신원파악을 다시 실시한 다음, 경비원이 출입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 주는 방식이다.백 창흠 중위가 출입기 배선반을 열고 컴퓨터를 연결시켰다. 백 중위가 익숙한 솜씨로 자판을 두둘겨 미리 준비된 출입암호와 비상개방신호를 입력했다.

  "날래 날래 하라우~"

  가 소좌가 재촉했다. 뚜우뚜우~ 울리는 비상벨 소리가 대원들의 귀청을 자극했다.  백 중위가 왼손을 들어 전진신호를 보내자 인민군 강 중위를 선두로 회전식출입기를 밀고 들어갔다.  그는 출입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사격을 시작했다. 마침 출입문쪽으로 몰려오던 경비병들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 강 중위의 짧다란 AKR이 계속 불을 뿜었다.  가 소좌가 기술조에게 따라오라고 신호했다.

  1999. 11. 26  00:07  중국 상하이 총밍따오

  이 우철 과장의 팀은 정문 입구에서부터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검은 옷의 한국군이 군청색의 중국군에게 숫적으로 압도당해 몰리고 있었다. 중국군의 90식 APC가 노란 화염을 뿜으며 폭발하는 동시에 이쪽 요원 한명이 쓰러졌다. 침투조는 유도탄기지 안쪽으로 들어가며 점점 숫자가 줄어 들었다.

  이 과장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으나, 엘리베이터는 지하에 정지한 채 올라오지 않았다.  신 승주 대위가 다른 대원들을 물러나게 하고 승강기 입구에 폭탄을 장치했다.  요원들이 엎드리자 폭음과 함께 승강기 문이 폭파되었다. 신 대위가 기다란 밧줄을 풀어 승강기문 위쪽에 매단 다음 몸을 묶고 밑으로 강하했다.  다른 대원들이 중국군에게 응사하며 그를 엄호했다.

  "쓰벌! 졸라게 많구만."

  승강기 입구 소화전 뒤에 숨어있던 이 우철 과장이 뉴 우지 기관단총을 양손에 잡고 교차하듯 연사했다.  한꺼번에 몰려오던 중국군 대여섯명이 쓰러졌다.  중국군이 엄폐물 뒤로 물러나더니 집중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총알이 빗발치듯 이쪽으로 쏟아졌다. 요원 한 명이 목에 총상을 입고 뒤로 넘어졌다.

  "박 중사!"

  이 과장이 부상자를 부축해서 일으키려다가 다시 바로 눕혔다.  입안이 피로 가득한 채 정신을 잃은 박 중사의 부상부위를 확인하고 대검을 꺼낸 그는 대검으로 누워있는 박 중사의 목 아래쪽을 잘라 기도를 통하게 해주었다.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나고, 잠시 후 박 중사가 약간 정신을 차렸다.

  "쿨럭!"

  박 중사가 누운채 검붉은 피를 한됫박이나 울컥 토했다.

  "과장 동지... 실패했습네다."

  "아냐! 우린 성공할 수 있어. 이제 거의 다 왔어!"

  "조국이... 조국이 위험합...네다... 이미 항복했을 수도..."

  박 중사의 눈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박 중사!"

  "쿠앙~"

  승강기쪽에서 폭음이 울리며 파편이 쏟아져 나왔다.매캐한 연기가 주변에서 가라앉자 신 승주 대위가 신호를 했다.차례대로 밧줄을 몸에 묶어 승강기 통로를 통해 아래로 강하했다.선두는 이 과장과 신 대위였다. 이들은 3번 정도 통로 벽에 발을 굴리며 40미터를 수직강하했다.  캄캄한 엘리베이터 통로 저 밑쪽에 추락한 승강기가 불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폭발에 승강기 문이 뚫려  밝은 빛이 쏟아지는 곳으로 동시에 뛰어 들어가며 움직이는 것에는 무조건 발사했다.  폭발에 놀라 아직 제정신을 못차린 경비병 4명이 쓰러졌다.

  "기술조!"

  이 과장이 뒤를 돌아보며 외친 순간에는  이미 6명의 요원이 더 들어와 있었고,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김 태현 소위가 육중한 철문 옆에 달린 패널을 뜯고 휴대용컴퓨터와 연결시켰다. 그가 암호와 개방명령어를 입력했으나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빨리! 적이 대비태세를 갖추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 해!"

  승강기 위쪽에서 중국군들이 고함을 지르며 총을 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상사가 통로 위쪽을 AK-47을 난사했다.  대구경 소총답게 엄청나게 큰 소리가 엘리베이터의 빈 공간을 울렸다.김 소위가 바삐 명령어를 몇 번이나 입력했지만 철문은 요지부동,  열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립니다!"

  김 소위의 비명을 들은 요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쩌란 말인가? 그 철문은 핵폭발에도 견디도록 두껍고 견고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기다려 보십시요. 암호가 바꼈을지도 모릅니다. 암호검색프로그램을 가동하겠습니다."

  "콰앙!"

  폭음에 놀란 이 과장이 승강기쪽을 보니, 통로 위쪽의 중국군에게 응사하던 요원 한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이 상사가 벽 뒤에 바짝 붙었다가 다시 위쪽으로 응사했다.  비명이 엘리베이터의 통로 위에서 아래까지 길게 이어졌다.  잠시 후 쿵 하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암호가 나왔습니다!  저쪽은 입구개폐장치의 전원을 내려야 했습니다. 자, 열립니다!"

  김 소위가 외치는 동시에 육중한 철문이 위로 열리고 이 과장이 바닥으로 몸을 날리며 반대쪽을 향해 기관단총을 발사했다. 앉아 쏴 자세를 취하며 침투조를 기다리고 있던 중국군 3명이 쓰러지고,  이들 뒤로 신 대위가 수류탄을 날렸다. 수류탄의 폭음이 울리는 동시에 엘리베이터쪽에서 엄호사격을 하던 이 상사가 어느새 뛰어나가며 연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신 대위나 중국군들이 본 것은 일종의 마술이었다.

  이 상사는 적병마다 정확히 세 발씩 명중시켰다. 점사기능이 없는 AK 소총으로, 게다가 수많은 적에 둘러싸여 연사를 하는 중에 일반 병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상사가 왼손으로 권총을 꺼내 쏘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소총 방아쇠 앞에 있는 탄창멈치를 눌러 삽입된 탄창을 꺼내 돌리면서 소총을 약간 위로 던져 올렸다. 미리 테이프로 두개를 붙인 탄창이 공중에서 짧게 반바퀴 돌자 이 상사가 탄창 아랫부분을 손으로 툭 쳤고, 탄창은 요술처럼 소총의 탄창삽입구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공중에서 낙하하고 있는 소총의 개머리판을 탄띠에 대며 장전손잡이를 잡아 당기자, 다시 소총은 사격준비가 완료되었다.

  중국 경비병들이 이 상사의 마술에 잠시 눈이 팔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새로운 탄창에 삽입되어 있던 30발의 실탄이 10명의 목숨을 앗았다. 엄폐물이 없는 상태하에  가까운 적과의 대치에서는 배짱이 센 쪽이 이기는 법이었다. 공포를 느끼는 순간에는 시간이 빨리 가는 법, 이 장면을 보고서야 신 대위는 94년에 보았던 서부극의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숫자가 많은 중국군이나, 같이 뛰어들어온 한국군이나, 이 상사를 제외하고는 한발도 쏘아보지 못한 것이다.

  "다음 관문은 간단히 폭파만 하면 됩니다."

  김 태현 소위가 재촉하자 정신을 차린 이 과장이 정면의 철문을 향해 RPG를 발사했다. 폭음이 통로를 울리자마자 신 대위가 뛰어가 폭파 부위에 익숙한 솜씨로 미리 준비된 폭약을 장착하고 물러섰다. 다시 거대한 폭음이 이어졌다.

  자욱한 연기가 가라앉았을 때는 이미 요원들이 관제실로 들어간 다음이었다. 관제원들과 기지사령이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있었고, 문 주위에는 경비병의 시체 3구가 널려 있었다. 이 상사와 다른 요원이 중국군인들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 무장해제시켰다. 김 태현 소위가 컴퓨터를 점검하는 동안 신 대위는 다시 밖으로 나가 통로에 부비트랩을 설치했다.

  이 상사가 거의 얼이 빠진 중국군 6명을 포박하는 동안 이 과장이 무전기의 전원을 올리고 주파수를 맞춘 뒤, 마이크를 잡고 짧게 말했다.

  "우산."

  1999. 11. 26  00:10(한국시간)  중국 지린성 뚠화

  "백 동지!"

  "네! 하고 있습니다."

  가 소좌가 재촉하는 중에도 백 창흠 중위가 익숙한 솜씨로 통제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다.  그가 준비된 디스켓을 주컴퓨터에 연결된 단말기 드라이브에 넣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포로가 있는 쪽을 힐끗 보더니 다시 일에 열중했다.

  가 경식 소좌는 한쪽에 엎드려 있는 포로들을 노려 보았다.모두들 얼이 빠진 채 무장해제되어 있었다. 시체 3구가 하늘없는 천장을 향해 누워 있었다. 포로 중에 교관급 고위장교가 눈에 띄자, 가 소좌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기지사령 우허숭 상교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당했다. 기지방어시설이 이렇게 쉽게 뚫릴지는 몰랐다.

  "상교? 당신 연대장급이구만."

  가 소좌가 중국어로 기지 사령에게 묻자,  사령은 뜻밖에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너희들은 조선군?"

  "당연하지."

  가 소좌가 잠시 백 중위쪽을 보았다. 예정대로 순탄하게 진행되는 모양인지 백 중위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북경에 핵을 날릴 것이다. 너희들이 우리 조선에 한 것처럼. 이의 있나?"

  우 상교가 파랗게 질렸다.  그는 핵기지를 점령한 한국군들이 핵미사일을 빌미로  중국정부를 협박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도 지금 한국군 기술병은 미사일 발사 전단계 중에서 제 3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어떻게 암호체계를 풀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쨌든 13억  중국인민은 핵위협에 완전 노출이 된 셈이다.

  "안, 안된다. 그곳에는 천 오백만의 인민이 있다."

  가 소좌의 눈빛이 잠시 빛나며 주먹으로 우 상교의 면상을 쳤다.  우 상교가 코에서 피를 흘리며 다시 벌떡 일어났다.

  "서울에 천만, 평양에 6백만이나 있었다. 그곳에 너희들은 핵미사일을 쏘았다. 너희들은 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

  우 상교는 이 중년의 인민군 소좌가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이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도외시한  듯 했다.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기지 사령으로서  마지막 의무를 다해야 했다.

  "우리가 발사한 미사일에는  20킬로톤밖에 안되는 소형탄두를 탑재했다. 그리고 사전에지중폭발로 세팅했다. 핵폭발로 인한 피해는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것이다. 제발 아량을 베풀어주기 바란다."

  우 상교가 애원했다. 발사를 멈출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희망은 없어 보였다. 가 소좌가 차갑게 대꾸했다.

  "너희들은 핵을 먼저 발사했다. 당한 것 이상으로 보복을 하겠다."

  "가 소좌님! 입력이 끝났습니다. 대륙간탄도탄 1기, 중거리탄도탄 8기 입니다."

  백 중위가 핵미사일의 목표에 대한 데이터 입력을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사전에 준비된  암호문을 입력했기 때문에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미사일의 목표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사로잡히는 경우를 가정했을 때, 알고 있는  정보가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중국의 대도시나 군사적 요충지들이 목표가  되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우 상교도 같은 생각이었다.

  "안돼! 중국인들을 몰살시킬 셈이냐?"

  우허숭 상교가 악을 썼으나 가 소좌가 냉담하게 명령을 내렸다.

  "기럼 발사하기요."

  "예!"

  백 중위도 가 소좌만큼 한올의 망설임도 없었다. 틀림없이 이 기지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보았다.  한국의 어느 대도시, 어쩌면 서울일지도 몰랐다. 서울이  당한만큼 북경이나 다른 대도시도  사라져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눈에는 눈,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없었다.

  우허숭 상교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으나 가 소좌의 권총이 용납하지 않았다. 다른  중국군들은 계속 엎드려 있었으나  이들도 총알세례를 받았다. 중국군들의 등에 총알이 박히며 피와 살점이 튀었다. 저항은 전혀 없었다.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고였다.

  핵미사일 9기는 단축된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며 자동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기지 전체에 발사경보가 울려 퍼졌다. 발사까지 30초가 남았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정상이다.

  "콰쾅!"

  "이기 메이야?"

  팀원들이 몇 명은 엎드리고, 몇 명은 총구를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문은 그대로 있었다. 중국군 경비병력이 통제실 정면 벽을 폭발시키려 했으나 시도는 무위로 끝난 것이다.  이들은 아무래도 살아돌아가긴 틀린 모양이라고 투덜거렸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미사일 사일로가 열리고, 곧이어 로켓이 점화되었다. 거대한 핵미사일 동풍 시리즈 핵미사일 9기가 연기를 뿜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백 중위는 한국과 중국이 공멸하리라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두 나라가 힘을 합하면 서로에게 좋을텐데... 하긴 대국인 중국이 조그만 나라인 한국의 힘을 빌릴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핵을 발사한 것은 너무했다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중국도 핵세례를 받아야 했다. 백 중위가 허탈하게 웃었다. 출입문 쪽에 다시 폭발음이 이어졌다.

   1999. 11. 26  00:15  서울 응암동

  이 진은 주변 건물들이 활활 타고 있는 대로로 나섰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아스팔트까지 녹아내리며 불타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길거리에는 핵폭발과 화재에 놀란 사람들이 뛰쳐 나와 허둥대고 있었다. 이 진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었다. 서울시민들은 죽어가고 있거나 정신이 없는 사람, 두가지 뿐이었다. 갑자기 무력감이 몰려 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소방차와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차도를 가로질러 갔다.  이 진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차도로 뛰어들어 앰뷸런스를 세웠다. 차가 급정거를 하고, 앞좌석에 탄 119 구급요원이 고개를 내밀었다.

  "도와드릴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요."

  응급환자가 있다는 말을 기다리던 구급요원은 바빠 죽겠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말을 들은 듯 얼굴을 찌푸리다가 뒷좌석에 빨리 타라고 종용했다. 이 진은 서둘러 뒷문을 열고 앰뷸런스에 올라탔다. 문을 닫기도 전에 차는 출발했고,  도로에 쌓인 잔해를 그대로 타고 넘어가는 듯 차는 요동이 심했다.

  그녀가 차 안에서 본 것은, 3도 화상을 입어 피부가 녹아버린 환자들이었다.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수액을 주사받고 있는 환자 두 명은 산소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는데,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구급요원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심전계를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앰뷸런스가 서고, 구급요원들이  환자들을 차에서 내렸다. 병원 간판을 보니,  역촌동에 있는 서부병원이었다. 병원 내부로 들어가면서 그녀가 본 것은 또다른 지옥이었다.  수많은 환자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그들의 가족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의사나 간호원이  급히 통로를 지나갈 때 마다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으나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환자는 많고 일손은 딸렸다. 이 진은 간호사에게 자신이 할만한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1999. 11. 25  23:20(중국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해방군 해군사령 창 리엔충 상장이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3층에 내려와서 본 것은 비극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깨어서인지 멍청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자신감에 부풀어 있던 동료들이, 핵을 쓴다는 것에 대해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던 동료들이, 어려웠던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동료들이, 중국의 자존심을 외치며 중화민국 통일을 이뤄내고 잠재적 경쟁국의 제거를 소리높여 외치던 동료들이  차디찬 피투성이시신이 되어  들것에 실려나가는 것이다.

  유리창은 박살이 나있고 커튼 곳곳에 총구멍이 나 있었다. 정면 벽의 중앙화면은 방영시간이 지난 TV화면처럼 칙칙대고 있었다. 암살이다. 집단학살이다. 창 상장은 부들부들 떨었다. 정치국원에 대한 암살을 두 번이나 막지 못하다니!

  "동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긴급연락을 받고 달려온 정치국 후보위원이 잔뜩 겁에 질린채 창 상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지금 당장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하시오.  정치국 후보위원 전원과 북경군구 사령을 호출하시오.  새로운 인원으로 조선공작회의를 계속해야하겠소."

  창 상장이 잠시 창문을 바로보고 말을 이었다.

  "회의실은 지하실이 좋겠소."

  후보위원에게 지시한 창 상장은 이 놀라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정치 경위국 교관(장교)들에게도 몇 가지 지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창 상장이 배석한 부관을 불렀다.

  "이봐. 내가 방금 뭐라고 말했지?"

  부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상관을 주시하더니 메모한 내용을 전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주변에 그의 부관이 없었다면 낭패를 당할뻔했다. 그래도 아직 실수는 하지 않았다. 이제 정식  정치국원은 자신 한사람  뿐이다. 모든 것은 그가  결정하는 것이다.

  "창 상장 동지! 전화가 불통입니다!"

  "아까는 되지 않았소? 나도 전화받고 온건데..."

  "판띠엔(飯店 : 호텔) 내에서만 되고 외부통화는 완전 두절됐습니다."

  "이런! 무전기로 하시오."

  창 상장은 발사한 핵미사일이 제대로 조선에 명중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치경위국 군관 한명이 헛되이 전화통만 붙들고 있었다.

  "인공위성관제소와의연락이 되나?"

  "안됩니다! 유선전화망이  완전히 마비됐습니다. 이동전화도 마찬가집니다."

  "당장 밖으로 나가 전화해봐."

  회의탁자 총서기 자리에 있는 전화벨이 길게 울렸다.  부관이 전화를 받다가 잠시 당황하더니 영어로 대화를 했다. 총서기 자리에 영어로 전화를 하는 자라니!

  "도대체 뭐야?"

  "미국 대통령의 전화입니다. 수십기의 핵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노발대발하고 있습니다. 미국 전역과 태평양사령부, 주일미군이 지금 1급비상사태에 돌입했답니다."

  "뭐? 수십 기? 설마... 3기만 발사하기로 했는데... 우린 3발만 발사했다고 해! 그리고 총서기는 암살 당해 죽었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애드므를 창 디클레어스 듯 피플스 리퍼블리컵 차이너즈 샷 저슷 쓰리 미슬즈. 세크르트리 제느를스 머드. 미스터 프레지든."

  창 상장이 부관이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자기딴에는 미국 군사고문단과도  영어로 대화할  수 있다며 자랑했지만,  미국인은 비영어권 사람들에게는  천천히, 그리고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찬찬히 듣고  있던 부관의 표정이 심각해지며  창 상장을 힐끗 보았다.

  "..., 오 너~ 키딩! 창 상장 동지. 틀림없이 50기랍니다. 상하이, 뚠화, 푸젠 등에서 틀림없이 탄도미사일을 조선을 향해 발사했답니다."

  "맙소사! 내가 밖에 잠깐 나갔다 와 보니 다들 죽어서 모르겠다고 전해! 젠장~"

  부관이 자세한 것은 좀 더 조사한 후 통보하겠다고 미국 대통령을 달랬다. 잠시 후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도 전화가 왔다. 이번엔 정치경위국 군관이 러시아어로 통화했다.

  "위성전화는 되는군. 좋아! 레이더 기지를 불러 봐!"

  부관이 총서기 자리에  있는 핫라인의 옆, 위성전화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다시  전화벨이 울리고, 부관이 수화기를  들었다. 잠시 후 부관의 안색이 노랗게 변했다.

  "상장 동지! 레이더 기지의 보고입니다. 4곳의 유도탄 기지에서 50여기의 핵유도탄이 조선을 향하고 있습니다. 사실인가 봅니다."

  "그런 미친 짓을! 어서 전화를 줘! 나, 해군사령 창 상장이야! 뭐야?"

  내용을 거듭 확인한 창 상장이 힘없이 수화기를 떨궜다. 50여기의 핵미사일이 틀림없이 조선을 향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50기라면..., 우리가 보유한 핵  탄도탄의 3분의 1이야. 조선이야 당연히 박살나겠지만, 우린 핵 보복 능력을 잃었어. 당분간 미국이나 러시아에 배짱을 부릴 수 없겠군."

  "어떻게 된겁니까?  50여기를 발사하도록  미리 명령이  내려진 겁니까?"

  부관이 물었으나 창 상장 자신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상장 동지!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요?"

  창 상장이 돌아보니 문가에 전업기술군관이 한  명 서 있었다. 계급은 사단장에 해당하는 대교였지만 나이는 상당히  들어 보였다. 중국군에서 기술군관은 진급이 상당히  까다롭다. 최고 승진 가능한  계급은 중장이었지만, 이 계급까지  오른 고급전업 기술군관은 없었다. 대교가 경례를 하며 보고했다.

  "저는 통신전업군관입니다. 이곳의 통신부대장일  뿐만 아니라 북경군구의 통신대장이기도 합니다. 현재 전국의 유선망이 붕괴되었습니다."

  "뭐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거요? 이 중차대한 시기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동 중이던 전화교환기  전부가 과부하로 인해 고장이 났습니다. 군부대 전용으로 쓰던 전화교환기도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군용무선망이 붕괴되었습니다. 단(團-聯隊)급 이상의 상급부대에서  쓰는 무전기가 모조리 폐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럴 수가... 혹시 적이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누군가가  시험용 회선을 통해 전화국에 설치된 전전자교환기(全電子交煥機)를 원격조작했습니다. 그리고 군용  무선망은 무전기의 암호장치가  파괴되었습니다. 소단위부대간의 무전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럴 수가... 어쨌든  이제 전쟁은 끝났으니 다행이군. 동지는 유선망의 복구에 최선을 다하시오. 지금 조국은  외국의 침략에 대해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소."

  "예! 알겠습니다. 동지!"

  창 상장이 계단을  통해 천천히 1층 로비로 내려왔다.  한국이 마지막 힘을 다해 중국의  통신망을 마비시킨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끝났다!

  1999. 11. 26  00:25 일본 도쿄도 미나도쿠 롯폰기

  통합막료회의 참가자들은 조용히 정면의 상황판을 응시했다.  모두들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중국이  한반도에 최소한 3발의  핵미사일을 발사하여 이 중 최소한 두 발이 핵폭발을  일으켰다. 핵미사일 1기는 고장으로 판단되었다. 전역방어망도 없는 한국이  설마 요격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예상된  상황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상황 때문에 이들은 모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여러 곳에 배치된 미사일 기지들 중에 몇 곳에서 또다시 50여기의 미사일을 발사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저정도면 반도 전체가 산산조각이 난다. 조선이 항복하더라도 중국이 얻을 것은 없을 것이라며 방위청장이 고개를 저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제 일본도 방사능 오염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자위대 중앙지휘소는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 지하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도 불안한 듯 참가자들이 천장을 올려봤다. 사토 가쓰미 조사 2과장이 분위기를 깨려는듯 먼저 입을 열었다.

  "현재 반도 중부지방의 유무선 통신이 완전 두절상태입니다. 조선군 통일참모본부에서는 더 이상 자료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젠 필요도 없겠지만... 이상한건 대륙의 모든 유선통신도 두절됐다는 겁니다. 간간이 무선통신 전파는 잡히고 있지만... 원인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조선이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중국의 전신국을 모두 파괴한게 아닌지..."

  자위대 각 군의 최고지휘관인 막료장들이 모인 이곳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중국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중국과 조선의 전쟁에서 어떻게 이익을  챙길까 생각하던 그들은 이제  중국의 열도침략을 막는데 부심하고 있었다. 추가 핵발사 전까지는... 이제 일본의 핵보유를 주저할 이유는 전혀  없어지게 되었다. 자체개발이든  밀수입이든,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핵을 보유하기로 결정했다. 방위청장인  요시다 겐스케 중의원(衆議員)이 내각총리를 기다리는지 자꾸 문쪽을 힐끗거렸다.

  "결단의 순간입니다."

  해막장(海上自慰隊 幕僚長) 하토야마  유키오 해장(海將)이 침묵을 깼다. 그는 뜻밖에도 전혀 예상밖의 발언을 했다.

  "우리도 육상자위대를 조선반도에 상륙시킵시다."

  "정신이 있소? 중국이 핵을 썼단 말이오. 그것도 수십발이오."

  항공자위대 야마다  마사오 공장(空將)이  유키오 해장을  힐난했으나 유키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중국은 결코 자위대에게 핵을 쏘지 못합니다. 국제여론으로 압력을 넣으면 됩니다. 중국은 대동아전쟁 이후 최초로 핵을 실전투입했습니다. 그것도 대량으로 말입니다. 조선의 비참상은 곧 세계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겁니다. 유엔을 이용합시다.  미국이나 러시아도 동참할 것이 분명합니다."

  "국제여론으로 핵불사용  압력을 넣고 우리가  반도로 진공한다는 거요?"

  오부치 게이조 통막(통합막료회의)의장이 유키오의 발상이 신기한 듯 되물었다. 듣고만 있던 고마쓰 미도리 육장(陸將)은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냈다.  이미 짜여진 각본이었다. 중국에 의한 핵미사일 추가발사라는 변수는 있었지만...

  "그렇죠. 핵을 쓸 수  없다면 중국은 우리에게 도전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전력은 바닥났습니다.  대동아전쟁 때 소련군이 미군보다  먼저 조선에 진주했듯이, 우리도 조선이 항복하자마자  진주하여 조선군을 무장해제시키는 겁니다. 최소한  반도의 절반은 얻을 수 있습니다. 피한방울 안흘리고 말입니다."

  "무슨 소리요?  중국군이나 한국군과 국운을  걸고 피흘려 싸워 기껏 방사능에 오염된 땅이나 얻자는 거요? 이건  무의미한 침략이오. 쓸데없는 도박이란 말이오."

  듣고만 있던 야마다 마사오 공장(空將)이 나섰으나 이미 대세는 참전 쪽이었다. 오부치 의장이 안타까운지 혀를 찼다.

  "중국의 침략에  대비하여 일본에 안전지대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고마쓰 육장이 나서서 반대를 무마하려는 순간 손님,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 중앙지휘소의 주인이 나타났다.

  "총리 각하!"

  통막 참가자들이 전원 기립하여 수상을 맞았다. 자위대 중앙지휘소가 생긴 이후 최초로 일본 수상이 자위대를 지휘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다. 히데키 요시오. 자민당의 중간보스였던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정계에 입문한지 20년만에 그는 수상이 되었다. 일본에 우익의 물결이 넘치는 기회를 이용하여 3개 당과 연합, 2년째 집권하고 있으며, 아직 그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가 기용한 대신들은 모두 우파의 거두들이었다.

  "어떻게 되었소? 오는 중에 내각조사실로부터 대충 보고는 받았소만. 방금 중국이 추가로 핵을 발사한 것까지..."

  코트를 당번병에게 맡기고 미리 준비된 가운데 자리에 앉으며 총리가 물었다.

  "조선에 파병하자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각하."

  고마쓰 육장이 나서서  대답했다. 오부치 의장이나 야마다  공장이 나서려다가 요시다 방위청장이 눈빛으로 만류하자 이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말았다. 그들이 나서더라도 이미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훌륭하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조사 2과의 훌륭한 활약에 대해 치하하는 바이오. 세부작전계획은 있소?"

  수상의 칭찬은 방위청 조사 2과가 내각조사실과 합동작전으로 국제무기상을 통해 핵탄두를 반입한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눈치를 챈 오부치 의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평가는 한마디로 집약되었다.

  '미쳤다!'

  "아직 없습니다. 총리각하. 중국의 핵공격은 워낙 돌발적인 일이라서... 하지만 전부터 작성한 것이 있습니다."

  하토야마 해장이 자신의좌석 앞에 있는 화면 위를 손가락으로 몇 번 누르자 중앙화면에 한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의 지도가 나타났다.

  "부산과 진해를 일단 접수하기로 하였습니다. 부산은 조선 제 2의 대도시이고, 진해는 해군사령부와 기지가 있는 곳입니다. 해상이나 지상의 저항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공군은 숫적으로  불리하지만 성능은 우리가 훨씬 우세합니다."

  "좋소. 공격개시일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미 출동태세가 갖춰졌습니다. 예비역동원은 이미 끝났으며, 지원병 증원과 기술병 징병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일반 동원병력은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중국이 더 이상 핵을 쓰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즉시 개전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작전명령 1호를  재가해 주십시오."

  고마쓰 육장이 단말기 화면을 손가락으로 눌러 준비상태를 계속 보고했다. 육상자위대 병력배치  40만, 훈련 중인 병력  100만, 동원소집통지 5백만! 2차  대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벌써 600만 병력을  전투준비에 투입했다.

  "명령 1호라... 벌써 그렇게 됐소?"

  "예. 투입은  이미 된 상태입니다만,  아직 작전개시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소. 실행하시오."

  오부치 의장은 자신을 빼돌리고 이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불안했다. 그는 제발 일본국민이 또다시 고통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고마쓰 육장이  전화로 예하부대에 뭔가 지시하고  나자 다른 전화벨이 울리고, 중앙지휘소 소속의 이등육좌가 저놔를  하토야마 해장에게 넘겼다.

  "음... 그래. 알았어."

  하토야마 해장이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오?"

  수상이 묻자 해장이 약간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주일미군 사령관  제임스 중장이 이치가야(市谷)에서  우리를 만나고 있답니다."

  이치가야는 1997년에 방위청이 신청사를 지어 이전한 곳이다. 그곳은 2차대전 때의 대본영, 참모본부, 육군성, 육군사관학교가 집중되어 있던 곳이다. 일본은 그곳에 중앙지휘소와 정보본부를 설치했는데, 사실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후후. 여우같은 제임스가  깜빡 속아넘어갈 정도로 변장이 훌륭했군. 내 역할을 맡은 사람은 누구요?"

  "내각조사실 소속인 일등해좌  사사끼입니다, 각하! 각하를 닮아 미남입니다."

  상황실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군은 이미 허수아비였다. 이제 중국의 핵미사일에 의해  한국이 제거되고, 일본이 한국의  일부를 점령하면 중국과의 대결에서 결코  불리하지 않겠다는 낙관론이 퍼졌다.  역시 남의 전쟁에서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익만 챙기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총리 각하! 화면을 보십시오!"

  중앙화면을 보던 야마다  공장(空將)이 손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그는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섰다. 수상과 다른 참석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응? 저건?"

  "이럴 수가!"

  중앙화면에 나타난 탄도탄의 진로와 예상목표점은 한 점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중국 곳곳에서 출발한 붉은  선이 한반도 중부지방을 향하여 이동하고, 에상폭표지점으로 표시된 보라색 X자 50개가 한 지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목표지점은 어딘가?"

  하토야마 해장이  관제원들에게 소리쳤다. 중앙화면  오른쪽에 목표지점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충주호? 호수란 말인가?  주변에 대도시나 군사목표는 없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요시다 방위청장이 막료장들의 얼굴을 살폈다.  의혹이 가득한 얼굴들에 은근하게 공포가 번졌다.

  "혹시 조선의 책략...?"

  "조선군이 중국의 핵기지를 점령해 미사일을 조선으로 발사했다는 거요?"

  "가능합니다... 핵물질을 빼돌리기 위해서라면..."

  야마다 공막장이 기가 막히다는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요?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핵재처리 기술, 기폭장치, 운반장치가 필요하오. 미사일에서 순도 높은  핵물질을 꺼내더라도 기폭장치와 운반체는 어렵소."

  요시다 방위청장이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한국의 핵보유  가능성을 부정하고 싶었다. 부정해야 했다.

  "기폭장치는 국제무기거래시장에  나와 있고,  운반체는 로동미사일을 쓰면 됩니다. IAEA나  미국에서 가장 감시를 심하게 하는 것이  핵물질입니다. 다른 것은  웬만한 나라에서는 충분히 만들만한  기술이 있습니다."

  공막장의 설명을  다른 참가자들은 믿고  싶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99. 11. 26  00:30  함경북도 혜산, 압록강변

  "빨리! 신속하게 이동해!"

  김 재호 대장이  강변 백사장 위에 직접 나서서 호각을  불며 재촉했다.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굉음을 울리며 도강했다. 부교가  건설되며 보병도 본격적으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북쪽 산등성이 너머 섬광이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김 대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벌써 중국군과의 교전이 시작된 것이다. 은은하게 폭음이 울려 퍼졌다.

  "멍청이들!"

  차가운 강바람에도  꼿꼿이 서있는 김  대장과 달리 윤 민혁  대위는 두툼한 방한복을 입고도 덜덜 떨고 있었다. 각종 변종(variation)의 K-200 보병전투차들이 BV-206 다목적전술차량을 이끌며 천천히 강을 건넜다. 김 대장이 옆을  지나가던 박격포차를 세운 후,  뒤에 딸린 다목적차량 위에 올라타며 외쳤다.

  "참모장! 사령부도 빨리 전진이동하시오."

  허 석우 대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경례를 하고 본부로 돌아갔다. 보병전투차가 이동을  시작하자 윤 대위가 차량을  따라 뛰며 물었다.

  "사령관님. 본부 지휘차에 타지 그러십니까?"

  "싫다미~ 내는 전진하는 병사들이랑 같이 가고 싶은기라. 내 엄다꼬 될 일이 안되나. 그카고... 니는 와 안타노?"

  윤 대위가 바로 앞에 보이는 압록강을 보며 투덜거리더니 상관이 탄 다목적차량이 아니라 박격포차에 올라탔다.

  "윤 대위! 이쪽으로 안 오나? 니는 겁쟁이가?"

  "사령관님! 거긴 병력이 타는 곳이 아닙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절마가..."

  김 대장은 강이 가까워 오자 할 수 없이 보병전투차로 옮겨탔다. 다목적차량은 위가 평평해서 불안했던 것이다. 졸지에 육군참모총장과 동승하게된 현역 사병들이 바짝 쫄고,  윤 대위가 이들을보며 씨익 웃었다. 사령관이 헬멧에  달린 헤드셋을 통해 뭔가  보고를 받는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김  대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보병전투차가  천천히 강으로 들어갔다. 이들이 탄  차량 외에도 수많은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강을 건너고, 가교전차에 의해 설치된 가교와 긴급가설된 부교를 통해 보병들이  끊임없이 압록강을 건넜다.  한민족의 병사들이 압록강을 건넌 것은 나선정벌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 윤 대위가 불안한 듯 자꾸 강물쪽을 흘끗거렸다.

  "결국 당하고 말았군."

  "뭘 말입니까?"

  오랜만에 진지해진 김 대장의 얼굴을 본 윤 대위는 불안해졌다. 항상 낙천적이던 김 대장은 전쟁이 터진 후에도 곧잘 농담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어느 때와 달리 진지해 보였다.

  "핵폭탄에 당했다고! 몽땅 날라간거야! 서울과 평양, 통참까지 몽땅! 육본과 국방부, 통일참모본부까지 연락이 안된다는 내용이야"

  김 대장이 신경질이 났는지 헬멧을 벗어 보병전투차의 벽을 마구 두들겼다. 윤 대위와 사병들은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 우리가 진겁니까? 공격을  연기해야 하는거아닐까요. 정부에서 항복할지도 모르는데..."

  윤 대위는 전쟁에 졌다고만 생각했지만, 서울에 집이 있는 병사들은 달랐다. 그들 가족의 생사가 걱정되는 것이다.

  "웃기지마! 내는  공격중지 명령을  받은게 아냐. 진격명령은  유효하다."

  "그러다가... 예하부대에  피폭사실을 알릴까요?  아니면 당분간 비밀로..."

  윤 대위는 공격부대가 서울처럼 핵공격을 받을까 불안해졌다. 중국에도 상당한 숫자의 전역핵, 전술핵이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피폭당한 피스함대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병사들의 사기도 큰 문제였다. 김 대장이 악이 받쳤는지 윤 대위에게 고함치듯 말했다.

  "알려! 서울과 평양에 있던 가족들이 몽땅 죽었다고 장병들에게 알리라구!"

  1999. 11. 26  00:35  대전, 정보사단

  정면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날아오는 핵미사일의 궤적  앞에 정보사단장인 이 재영  중장은 얼어붙었지만 이번 작전을 책임진 양  석민 중장과 다른 팀원들은 모두 환성을 질렀다. 내용을 잘 모르는 최 창식 국무총리, 지금은 대통령 권한대행인 그는 처음에 깜짝 놀라다가 다른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 나서,  그리고 양 중장에게 설명을 듣고서야 기뻐했다. 거의  불가능할 줄 알았던 한국군의 승부수인 이 작전이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상황실장 나 영찬 대령이 이제야 무거운 짐을  벗었다는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개전초기에  즉응태세를 갖추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여 죄책감에 쌓여 있었는데, 이제야 그 짐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된 것이다.

  "됐어. 이젠 됐어. 제천을 연결해서 양 중장님께 드려!"

  "예! 대기중이었습니다."

  나 대령의 지시로 통신장교가  헤드셋을 양 중장에게 넘겼다. 통신장교는 통화내용을 다른 팀원들도 들을 수 있게  개방시키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강 대령이오?  큰일났소. 보고 있었겠지만  지금 그쪽으로 핵미사일 수십발이 날아가고 있소."

  [으악!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제발 살려 주십시요!]

  "윽... 강 대령, 즉각 회수해서  그곳에 넘기시오. 숫자는 아직 모르오. 우린 레이더 위성이 없으니까... 숫자가 확인되면 다시 연락 드리겠소."

  양 중장은 강  대령이 한술 더뜬다고 투덜거렸다.  양 중장의 내심은 사실 편치 않았다. 확인된  바로는 중국 곳곳에 있는5곳의 핵기지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했다. 20여팀 중에서 나머지는 모두  실패한 것이다. 하긴, 작전을 성공시킨  팀도 당연히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만주의 핵기지를 공격한 팀원들만이라도  살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이 버텨줄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그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그들을 구하지 못하면 그들과 같은 운명을 맡기로 한 약속이었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소? 운반체야 북한 미사일을 쓴다지만, 기폭장치는 개발이 상당히 어려운 걸로 알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오?"

  최 권한대행이 묻자 양 중장이 귓속말로 소근거렸다. 심각하던 최 권한대행의 표정이 확 피었다.

  "과연...  기폭장치는 계수기에  걸리지도 않는  기계장치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나중에 정치적으로 보답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미국의 압력도 줄일 수 있고... 각하!"

  양 중장은 최 총리를 대통령으로 대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 각하라는 호칭을 썼다. 그런건 신경 쓰지도 않던 최 총리는 대답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1999. 11. 26  00:40  충청북도 제천시 신리

  "옵니다! 30초 전!"

  "그래, 대단한 손님들을 맞으러 나가야겠군."

  레이더 담당 하사관이 외치자 강 만일 대령은  헬멧을 쓰고 강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밖으로 나갔다. 예정시간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틀림없이 탄도탄이 날아오고 있었다.  대전 정보사단과 연계된 상황판에는 약 50기의 핵미사일 진로가 표시되고 있었다.

  강 대령이 망원경을 들어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노란 빛줄기가 쏘아오고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의김  박사가 지휘소로 쓰는 임시 가건물 밖으로 따라  나왔다. 특별훈련을 받은  해군 UDT 대원들은  강변에서 이미 승선대기 중이었고, 충주호에  있던 모든 배들이 동원되어 예정낙하지점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전력에서 동원된 조명차들이 호수 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긴급상황에 대비하여 구조용 헬기들이 이륙준비를 마친채 대기하고 있었다.

  "멋지군요."

  김 박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강 대령이 망원경을  내리며 동감을 표했다. 박사라면 백발이  성성하고 눈빛이 날카로운 노인들로만 생각했는데, 여기 있는 김 박사는 흐리멍텅하게 생긴 30대 초반의 젊은이었다. 이런 사람이 한국  핵물리학계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점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며칠째 잠을 못잤는지 부시시한 얼굴에 머리카락은 거의 까치둥지 같았다.

  "그렇죠? 김 박사님. 근데 정말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겠습니까? 여긴 아시다시피 상수도 보호구역이라서요...하하."

  강 대령은 이 상황에서 수원지의 방사능 오염을  걱정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이 작전이  성공리에 끝나면 상수도 보호구역의 방사능 오염 여부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생수를 사서 마시지만,  아직도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부는,  그리고 정부에 소속된  국군은 상수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이 정도 충격으론 핵물질을  담은 용기가 파손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수심  40미터이니... 빠른 시간 내에  탄두에서 핵물질을 분리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쪽은 이미 준비됐습니다. 중앙고속도로는 통제됐겠죠?"

  "물론입니다. 수송로의 경계태세도 완벽합니다. 아! 왔습니다."

  밤하늘을 가르며 시뻘건 불덩이가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유성이 점점 커지더니,  형체가 형성되었다. 탄두는  신리와 충주호의 섬인  양평 사이의 물속으로 낙하했다.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호수에 떠 있던 배들이 심하게 요동했다. UDT 대원들이 고무보트를  가동시켜 낙하지점으로 향하고, 크레인같은 중장비를 실은 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대기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직 대기,  대기. 손님들이 좀 더  올거란 말야! 진정하고 계획대로 해!"

  강 대령이 헤드셋에  연결된 무전기와 지휘소 스피커로  대원들을 제지시켰다. 얼마나  많은 숫자의 미사일이  이곳에 올지는 몰랐다.  그가 알기론 중국의 핵기지마다 약  10기의 핵미사일이 있다고 들었다. 방금 정보사단으로부터 받은  연락으로는 이곳을 향하는 핵미사일의  숫자는 약 50기가 확인되었다고 했다.  20개의 핵기지 공격팀 중에 5~6개 팀이 성공한 것이다. 의외로 높은 성공율이었다.

  다시 빛줄기가 이쪽으로  날아왔다가 역시 물 속으로  낙하해 들어갔다. 다시 보아도 그 장면은 엄청난 장관이었다.  또 다시 미사일이 날아왔다. 강 대령은  혹시나 핵미사일 중의 하나가  폭발하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졌다. 절대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하나라도  폭발하면 이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다. 충주와 제천 인근에 거주하는 수십만의 인구와 상수원이 소실되고,  기껏 얻은 핵탄두마저 모두 잃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숨은 핵미사일이  과연 폭발하지 않느냐에  달린 것이다.

  "어휴~ 엄청 많군요."

  "음...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핵강국이 될 것 같습니다."

  김 박사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핵보유국이 되면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압력을 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탄두에서 핵물질을 분리하는 작업을 감독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를 처리하여 다른 미사일 탄두에 넣는 것은 다른 기술자의 일이었다. 방사능물질 처리용 차량들이 비상등을 깜밖이며 구석에 몰려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1999. 11. 26  00:50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작전 장마. 성공리에 종료되었습니다. 탄두는 모두 회수,  플루토늄을 분리하여 그곳에 보냈습니다.]

  대전 정보사단에서  화상통신으로 보고하는  양 중장은 특유의  멋진 머리결이 기름기에 번들거려 보였다. 하룻사이에 나이도 상당히 들어보이고, 무엇보다도 피로에  지쳐 있었다. 이 종식 차수가  의자에 깊숙히 몸을 묻고 보고를 계속 들었다.

  "수고 했수다. 서울 상황이레 어떻소? 참, 권한대행 각하는 계시오?"

  [권한대행 각하는 반강제적으로  숙소로 보내드렸습니다. 서울은... 저희쪽도 자세히 모르고 있습니다.  수도권 인근부대와 간간히 통신이 되고 있긴 합니다만,  전 병력이 피해자 구조와  긴급복구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주진공작전의 순조로운  진행과 작전장마의 성공에 고무되었던  참모들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서울의 피해상황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다. 조금 전  평양 쪽에서 개성으로 출동한 부대의  보고로는, 개성시 자체가 완전 소멸했다고 했다.

  "행복해야 해. 넌 반드시 좋은 사람 만나....

  다시는 나같은 남자 만나지 마. 제발 행복해야 해..."

  갑자기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이 차수와 참모들이  문쪽을 바라 보았다. 축 늘어진 차 영진 준장이 이 소라의  '난 행복해'라는 노래를 처량하게 부르고 있었다.

  "차 준장!"

  정 지수 대장이 차 준장을 나무라다가 차 준장의  눈이 풀린 것을 보고 놀랐다. 술에 취한 듯한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방금 평양 방송  긴급보도를 보았습니다. 서울하고 개성이 날아갔다면서요? 서울엔..."

  "이봐, 차  준장! 서울엔 내 가족도  있었소. 노모, 아내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년이 있단 말이오!  차 준장만 가족을 잃은 게 아냐! 빌어먹을~"

  정 대장이  벌떡 일어나 차  준장에게 흥분한 듯 외치더니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정  대장의 어깨가 들먹거리고 있었다. 차  준장이 문을 기대며 주르륵 흘러 내렸다. 바닥에 쓰러진 차 준장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축 쳐지며 중얼거렸다.

  "네, 죄송합니다. 근데  이 전쟁이 서울시민을 몽땅  죽이더라도 계속 수행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국민을 죽이는 정부와 군대라... 언젠가 꼭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1999. 11. 26  01:00  함경북도 혜산 상공

  "나-8 지점에  대대규모의 전차대로  추정되는 병력이 이동중입니다. 진로 2-1-5."

  "파-36 지점에서 잦은 무선 교신. 적 포병대로 추정됨."

  2군소속의 항공 관제관인 육군 대령 한사람이 아퍼레이터들이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격의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공지공용 전자전기인 J-STARS기로부터 얻은 정보는 어차피 2군 사령부에 동시에 전송되고 참모부에서 다시 공격순위를 설정하겠지만, 자신의 임무는 가장 위협이 되는 적 병력을 파악하고 보고하는 것이다.  사령부의 참모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정도가 되겠지만...

  J-STARS기는 한국에  2대가 있었다. 한 전선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모두 4기의  전자전기가 필요했지만 미국은  더 이상의  J-STARS기를 한국에 판매하지 않았다. 4개팀이  교대로 2기의 전자전기를 24시간 전선상공에 띄웠다. 정비팀만  죽어났다. 부속품이 부족해 멀쩡한  수송기에서 부품을 빼내기도 했다. 구멍만 맞으면 뭐든지  좋았다. 이 비싼 전자전기는 정비불량으로 언제 추락할지 모를 상황까지 되었다.

  1999. 11. 26  01:10  함경북도 혜산

  주로 동원예비군으로 구성된 57사단  소속 병사들이 카 라디오, 동원된 민수용 사륜구동차에 장착하기 위해  암호해독장치가 내장된 라디오를 통해 2군사령부의 방송을 들었다. 비장한 곡조의 장송곡이 1분 정도 흐르더니 북한 출신  여성방송원이 다소 과장된 억양으로  평양과 서울의 소멸을 알렸다.  일순 끝없이 이어지던 차량대열이 딱  멈춰서고, 병사들이 이 방송에 귀를 귀울였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 욕지꺼리가 섞인 고함이 외쳐졌다.

  라디오에 행진곡풍의  음악이 나오더니 여성방송원이 원쑤를  무찌르자며 선동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서울에 집이 있는 이 동원예비군들은 평안도 억양이 거북하기는 했지만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처음에 겁에 질리며  가족의 안부를 걱정하다가 이제 더 이상  잃을게 없다는 생각인지 모두들 이를  악물었다. 앞차를 재촉하는 클랙슨 소리가 강가에 울려 퍼졌다. 갑자기 행군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같은 동원사단인 61사단은 허겁지겁 57사단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로 전라남도에 거주하는 동원예비군들이 주력인 61사단 병사들은 어제만 해도 남쪽 끝에서 북서쪽 끝, 다시 북쪽 끝까지 왔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이제 상황은 또 달라졌다.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진공하는 것이다. 이들도  서울이 피폭당했다는 방송을 들었지만,  그래도 고향에 핵이 떨어지지 않아서 안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통일한국군 최고지휘부는 서울피폭에도 불구하고 항전을 계속한다며 병사들간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1999. 11. 26  01:30  서울 용산, 국방부

  캄캄한 지하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홍 대통령은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유사시 강력한 적의 폭격에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국방부 지하벙커가 핵미사일에 직격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힘없이 무너져 버렸다.  공무원은 뇌물 먹고, 기업주는  부실공사하고, 현장감독은 자재 빼돌리고 하는 등, 군부독재 시절의  총체적 부실이 국방부 청사라고 해도 예외일리는 없었다.

  국무위원과 합참의장 등  비상국무회의 참석자 중에서 절반이 사망하고 상당수가 부상을 입었다. 국방부 소속으로서  이 상황실에 배치된 현역 군인도 4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약간 배가 불룩해 보여서, 임신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던 통신장교인 여군 소령도  점호에 응답하지 않았다.

  '잔인하다! 우리는 세상의 빛 한 번 보지 못한, 성장하여 어떤 사람이 될 지도 모를 태아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분노하던 홍 대통령은 전쟁을 막을 수  없었을까, 최소한 서울에 대한 핵공격을 막을 수 없었을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  모든 걸 양보할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으로서 영토를 침략국에  할양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영토보다는 국민의 생명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무너진 지하에  갇힌 사람들은 이제 조용히  구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무너진 건물잔해 밑에  깔린 희생자들의 상황이 이랬을까? 핵폭발의  충격파에 의해 순간적으로 붕괴된 이곳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너무  무기력했다. 누군가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위쪽에서는 구조작업이 시작된 듯한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통령은 전황이 더 걱정되었다.

  "항복하지 말아야 하는데..."

  "총리는 절대 항복하실 분이 아닙니다. 각하!"

  "무리하지 마시오."

  대통령은 크게 부상을 당하고 바로 옆자리에 누운 내무장관이 걱정되었으나 자신이 해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곳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아직도 오른쪽 다리가 무너진  천장 잔해에 깔린 내무장관은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고 있었다.

  "이제 고통도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대통령은 장관의 희미한 미소를  보는 듯했다. 홍 대통령은 장관에게 자꾸  말을 시켜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상황에서 할 말도 없었다.

  "지 부장은 계시오?"

  홍 대통령이 어둠 속으로  외쳤지만 지 효섭 안기부장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1993년, 김 영삼 전  대통령이 그동안 관례적으로 참가하던 안기부장의 국무회의  참석을 금지했는데,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이 안기부장을 장관 이하인 부장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랬다는 농담이 돌았다. 홍 대통령은 지 효섭 안기부장을 지부장이라며 놀렸는데, 지금은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는 공안 출신이고 약간 극우성향이긴  했지만, 안기부가 국내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지 부장의  공이 컸다. 대통령은 안기부가 전쟁전까지 경제정보를 집중적으로 취급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중국에 파견된 요원들도 대부분  경제정보 수집이 주목적이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래도 안기부는 국제무기밀무역상으로부터 핵탄두 몇 개와 기폭장치 다수를 입수하는  공을 세웠다. 물론 중앙아시아의 몇 개 국가에 경제지원을 약속하고 얻어낸 성과이긴 하지만...

  작전 장마의 결과는  아직 모르겠지만, 상당수의 안기부원들이  이 작전에 동원되었다. 작전  결과나, 전쟁의 승패에 상관없이 이들 대부분이 희생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홍 대통령의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지 부장의  죽음은 대통령의 마음을 허전하게  했다. 대통령과 반대편에 설 수  있다고 당당하게 자신을 협박하던 지 부장,  홍 대통령은 그  자리를 메꿀 사람이 드물다며  아쉬워했다. 사실, 아쉬움을 떠나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대통령은 이곳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 수 있을까가  걱정되었다. 그의 머리 위를 육중한  건물잔해가 누르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환청인지 멀리서 으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병대가 왔나봅니다!"

  대통령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국방장관이 외치자 여기저기서 생존자들이 환성을  질렀다. 국방장관은, 독산동에  있는 공병단에 미리 출동준비를 지시한  것이 불행히도  적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모르게 내린 명령이었다.  대통령은 틀림없이 시민을 먼저  구하라고 할 것이므로.

  "하하~ 이제 각하는 사셨습니다. 다행입니다."

  내무장관이 고통을 이기며 억지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 무슨 소리요? 장관도 사셔야지요."

  "저는 틀렸습니다. 최소 몇시간은 더 버텨야 하는데.... 참.  영부인께서는..."

  내무장관은 이제야 청와대가 핵폭발에 말려들고,  영부인은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을  기억했다. 아무리 방공호로 피난해도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음... 아무래도 새장가 가야될  것 같소. 이 나이에 누가 나에게  시집올지...쩝."

  대통령은 이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는 농담을 했다.  내무장관의 말에 뭔가 대답을 해야 된다는 의무감에서였다.  대통령과 영부인은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다. 정도가 지나쳐 대통령이 공처가라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영부인인 하 선영 여사는 정치나 이권에는 결코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는 영부인이 당연히 참가하는 것으로  관례가 되어 있는 여성연합회 모임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것이  국민들이 대통령을 신뢰하는 한가지 이유가 되었다. 국방장관이 어색한 농담에 장단을 맞췄다.

  "지난번 파주에 그 과부집 있잖습니까. 전에  모내기 하고 간 곳 말입니다, 각하. 하하하~"

  대통령은 국방장관이 아무래도 자신을 비웃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지난 여름에 국무위원들과 함께 모내기 일손돕기를 마치고 흙묻은 작업복 차림 그대로 근처 선술집에 간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단체손님을 맞아 신이 나서  시중을 들던 과부가 대통령을 몰라보고, 그  나이에도 귀엽게 생겼다며 연애하자고  찝적댄 적이 있었던 것이다.  과부는 자신이 우아한 이혼녀라고 박박 우겨댔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보다 나이가  한참 위던데요. 에고~  지금까지도 붙잡혀  살았는데, 또요?"

  위에서 중장비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스피커  소리가 지하까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구조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위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생존자들이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삼풍백화점 매몰자 중에서 섣부른 구조작업 때문에 희생된 사람은 얼마나 되었을까?

  1999. 11. 26  01:50  중국 지린성 창빠이(長白) 북방 3km

  "흠... 전방에 적 보병 1개 중대라... 시험용으로 적격이겠군."

  김 재호 대장이  망원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제  2군의 선두부대인 30사단은 백두산이 주봉인 장백산맥 기슭에  있는 안투(安圖)현을 향하고 있었다. 안투현은  지린성 연변조선족 자치구에 포함되어  있는 산악지대이다. 가는 길이 아직은 평원이라 전진은 수월하고, 아직 적의 저항도 크지 않았다.

  선두부대는 도시나 적 병력 등 전술적 목표를 무시하고 시속 60km의 빠른 진군속도를 유지했다.  선두부대가 적을 만나 전투에 돌입하면, 다른 후속부대가 교대로 전진하는 방식으로 부대 평균 시속 40km 이상을 유지하여 백두산을 우회한다는 것이 작전의  요체였다. 30사단은 기계화사단답게 기동성이 높아 이 임무에 적합했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순탄했다.

  압록강변의 국경도시인 창빠이 북쪽의 이 넓은 개활지에는 낙오된 중국 인민무장경찰 1개 중대가 방어선을 펼치고  있었다. 2군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선두  공격부대가 남기고 간 중국군의  잔존부대였다. 공격헬기인 코브라의 공격을 받았는지  병력수송용 해방트럭 7대가 불에 타고 있었다. 이들은 무장이  비교적 빈약한 편이지만 일반  보병부대로 공격할 경우  이쪽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윤 민혁 대위가 나섰다.

  "그렇습니다. 적은  완전 포위되었지만 아직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있습니다. 아군병력은 대치만 시키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교체투입할까요?"

  김 대장이 망원경을 넘기고 말했다.

  "그래."

  윤 대위가 무전기로  지휘관들을 불렀다. 잠시 후  전방에서 대치하고 있던 전차중대가 뒤로 물러나고 이 자리를 새로 편성된 자동차화보병소대가 메꿨다. 주로 보병전투차와 장륜형  보병수송장갑차들이 아니라 약간 개조한 차량 위에  무기를 탑재한 민수용 사륜구동차들이 몇대 나섰다. 이 빈약한 모습을 보고 김 대장이 혀를 끌끌 찼다. 중국군과의 거리는 약 1.5km, 중국군이 발사한 박격포탄이 이들 부근의 눈밭 곳곳에 작렬했다.

  "콰콰콰콰콰!!!"

  투입된 보병소대에서  일제사격을 실시했다. 박격포탄이  중국군 머리위로 떨어지고 벌컨과  고속유탄이 방어선 곳곳에 작렬했다.  강력한 중기관총과 분대지원 기관총탄이  중국군이 머리를 들지 못하게  했다. 접근할수록 한국군의 화력이 강해졌다. 전투시작 3분, 박격포탄 60발이 소요되었을 때 중국군  참호에서 백기가 올랐다. 곧이어  한국군의 사격이 멈췄다. 겁에 질린 중국군들이 부상자들을 들쳐  메고 참호를 기어 나왔다.

  "대단하대이.... 억수로 대단하대이!"

  눈을 둥그렇게 뜬 김 대장이 서류를 들고 조금전 공격에 참여한 자동차보병소대의 장비를 다시 훑어 보았다.  군용장비치고는 싸구려로 구성된 부대가 의외로 화력이 좋다는 생각이었다.

임 무 차 종 탑승병력 탑재무기
지휘,통신 KM-410 3 5.56밀리 K-3 분대지원기관총
정찰 사륜구동 3 12.7밀리 K-6 중기관총, RPG
보병전투차 K-200 3+7 12.7밀리 M2 HB 기총, M-60
보병수송 사륜구동 7 K-3
화기 사륜구동 3 K-6, K-4 고속유탄발사기

대공

사륜구동

3

SA-9 Gaskin 지대공미사일,
또는 미스트랄 지대공미사일. K-3

대전차 사륜구동 3 ATGW Sagger(단발형), K-3
공지양용 KM-45 트럭 3 20밀리 벌컨 대공포
박격포 사륜구동 3 60밀리 박격포, K-3
탄약차 사륜구동 2 K-3
보급 및 정비 KM-25 트럭 3 K-3
연락 250cc 오토바이 1  

차량 12량 : 보병전투차 1량, 군용 지프 1량, 트럭 2량, 민수용 사륜구동차 7량, 모터 사이클 1대

병력 계 : 1/43

보병 장비 세부내역 별첨

참고  KM410 경차 -- 지프형 군용 사륜구동차 (아시아자동차 제작)

      KM45  트럭 -- 1과 1/4톤 트럭 (아시아자동차 제작)

      KM25  트럭 -- 2.5톤 트럭 (아시아자동차 제작)

      사륜구동차  -- 민수용, 2~9인승. 일부 컨버터블, 일부 무개 개조

  "어떻습니까? 역시 화력과 기동성 위주의 편제입니다."

  윤 대위가 은근히 자랑했다. 김 대장은 애초에 기동성만을 추구했다. 보병소대는 최일선 소총부대에 맞게, 하차하여 전투를 수행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개조나 무기탑재에  쓸 시간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어 즉각 투입을 생각했으나, 윤  대위가 무기탑재를 강력히 주장하여  이를 관철시켰다. 병사들은  새로운 무기를  다루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았으나 아직은 조작이 서툴렀다.

  이런 부대에 필요한 장비와  인원의 관리가 너무 복잡하여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다양한 장비와 무기, 보급품은  바코드로 관리하였다. 군수참모가 마치  백화점 차린  것같다며 투덜대긴 했지만,  병참업무가 상당히 간략화되고  표준화되었다. 그래서 예비부품을  상대적으로 상당한 수준까지 줄일 수 있었다.

  "그라. 니 잘났대이~ 니가 육참총장하믄 딸딸이까정 군용으로 쓴다카겠대이."

  "딸딸이는 일본 자위대가 하는 거고,  그걸 표준어로 경운기라고 합니다. 총장님, 아니, 사령관님. 경운기라... 쓸 데가 있겠는데요?"

  경차량 몇 대로 구성되어 독립된 작전을 구사할 수 있도록 편성된 예는 러시아나 프랑스의  공수부대에서 찾을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공수가능한 경장갑차량 몇  대가 대공, 화력, 대전차 등의  임무를 분담한다. 그러나 보병이나 보급까지 차량에 의존하고,  1개 소대가 완전히 독립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편성된 부대의 예는 없었다.

  윤 대위는 여러  가지로 무기체계를 조합하느라 골머리를  싸맸다. 너무 다양한 무기체계가 소단위 부대 내에 있으면 화력집중이나 작전수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었다.  게다가 대전차 및 대공미사일은  한국군에 그렇게 많지 않아  충당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에서 러시아로부터 소형 대전차무기와  소형 대공미사일을 대량으로 밀수입하자 이런 조합이 가능해졌다. 화력도  기존의 보병소대보다 당연히 몇  배 강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기동성을  살릴 수 있었다. 단지 새로운 무기체계에 적응해야 되는 보병들이 당황했지만, 러시아제  무기는 의외로 사용하기 간편했다.

  "팡! 파바바~"

  "뭐야?"

  조용하던 밤하늘에 총성이 울리자 김 대장이 움찔하더니 똑바로 서서 총소리 나는  곳을 보고, 윤  대위는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라  땅바닥에 엎드렸다. 윤 대위가 허겁지겁 헤드셋을  통해 자동차화소대의 소대장을 불렀다.

  "이 중위! 무슨 소리요!"

  [사병들이 포로들에게 총을 쏘았습니다.]

  "이런! 포로학살은 국제협약에서 금지된 것을  모르오? 즉각 제지하시오!"

  [지금 다들 흥분한 상태라서...  동원예비군들이 총검으로 포로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맙소사! 어떻게든 제지하시오!"

  "내버려 둬."

  "네?"

  윤 대위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김 재호 대장은 묵묵히  학살현장을 멀리 지켜보고만 있었다.  중국군 포로들이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죽어갔다. 죽음과 피, 광기가 드넓은 벌판을 메웠다.

  "저들을 당장  체포해서 군법회의에 회부해야 합니다.  전시규정을 위반한..."

  "내버려 두라고! 저들은 복수할 권리가 있어."

  "무슨 말씀입니까? 중국인들과 똑같은 인간이 되라는 말씀입니까? 저들은 무장해제된 포로들입니다. 양민학살과 다름없습니다!"

  "시끄러! 자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만 해!"

  뜻밖에도 김 대장이  흥분을 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윤  대위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김 대장이 휙  돌아서서 지휘차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윤 대위가 학살현장을 돌아보니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100여명의 포로가 있던 자리에는 널부러진 시체만 있었다. 병사들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시  윤 대위가 김 대장을 보니, 김 대장은 지휘차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윤 대위가 천천히 지휘차쪽으로 걸어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합리적이던 김 대장이 저렇게 변하다니...

  "장군님..."

  1999. 11. 25  11:00(워싱턴 표준시)  미국 워싱턴, 백악관

  미국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계속되는 놀라운 정보가 회의참석자들을 쉴 새 없이  짓누르고 있었다. 대통령 제임스는 계속되는 상황변화에  놀라고 말았다. 서울과 개성에  핵폭발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던 그가 이렇게까지  놀라는 것은, 제 3세계에까지 핵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인류의 미래가 걱정되어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핵미사일 재료가 세계 무기시장에서 암거래된다면, 세계경찰국가를 자처하던 미국의 평화가, 미국의  국가정책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미국  시민들의 생명이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 워싱턴 정도의  작은 도시는 20킬로톤급 핵폭탄 한 발에 날아갈 것이다. 제임스가 전율했다.

  "맙소사! 한국이 핵강국이  되었소! CIA나 DIA는 상황이 다  끝난 이제야 한국이 기폭장치를 밀수한 사실을 알았단 말이오?"

  "할 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 각하."

  CIA의 매퀄리스 국장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벨로루시(백러시아)와 카자흐공화국의  핵미사일에 대한 감시는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설마  완제품 상태가 아니라 기폭장치만  분리해서 한국에 넘겨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빌어먹을 벨로루시! 빌어먹을 카자흐스탄!"

  "한국에는 90년대 초에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들어온 과학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이번에 기폭장치의 조립에  동원된 모양입니다. 한국이 핵보유국이 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만약 미국이 한국에 군사적압력을 가해 기폭장치의 회수를 노린다면? 동해에 투입된 미국 항모전투단이 핵미사일 한발에 전멸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그는 그런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친 짓! 제기랄, 창 장군을 연결하시오."

  제임스는 매퀄리스의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다. 미국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핵확산방지라고들 하는데, 자신의 임기중에 중소국가의 핵보유를  막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핵을 보유한 국가는 5개 안보리 기존 상임이사국과 인도와 파키스탄을 외에도, 소련이  붕괴함에 따라 15개국으로 늘어났다. 이런 국제 정치상황과 핵기술의 일반화에 따라 그만큼 핵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  교전국인 한국이 핵을 보유하게 된다는 것은  의미가 달랐다. 전면 핵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화상통신은 안됩니다. 핫라인으로 연결했습니다. 각하."

  NSA 소속의 젊은  해군 중위가 한참 지난 후에 작은  마이크를 대통령에게 건넸다.

  "통신연결이 안되다니, 중국은 망했군!"

  옷깃에 마이크를  꽂으며 투덜거리던 대통령이 호흡을  한 번 다듬고 나서 전화회담을 시작했다.

  "창 장군? 나, 미합중국 대통령 제임스요."

  회의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노인의 목이 쉰듯한  중국 말소리가 나고, 이어서 젊은 여자의  영어가 이어졌다. 전에 주중 대사를 지냈던 제임스는, 채널을 바꾼  동시통역보다는 짧은 중국어나마 직접  듣고 통역과 비교하는 것을 선호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 각하.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 창 장군께서는 동지들을 잃은  슬픔이 크시겠소. 하지만 지금 할 수밖에 없는 말씀이 있으니 이해하고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남 걱정부터 하다니, 창 장군은 웃기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중국의 자존심이라는 말인가? 하긴, 제임스는 외교관 시절, 중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상당히 조심해야 했다.

  "핵미사일건으로 하시는 말씀이군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중국이 핵미사일 3발을 한국에 발사했고, 나중에  무슨 이유에선지 50기가 추가로 발사되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이것들은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발사한 이유는 제가 확인 중에 있습니다만,  현재 유무선통신이 마비된 관계로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정치국에서 그런  결정을 할 리가 없으니 아마도 한국에서 핵미사일을 강탈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임스는 오랜동안의 주중대사 기간 중에 중국인이 이렇게 먼저 내심을 드러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그런 점에서 창  장군은 특이한 중국인이었다. 창 장군은  정치국과 군부의 확대회의 참석자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현재  중국의 최고 실권자였다. 제임스가 조심조심 말을 이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은 기폭장치 수십기를 외국에서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미사일 50기가 동시에 한  목표를 향해 발사된 점, 핵반응을 일으키지 않은 점  등의 정황으로 미뤄볼 때 핵탄두에 탑재된 플루토늄을 획득하기 위한 한국의 작전으로 보입니다."

  "그럼 현재 한국에 50기의 핵미사일이 있는 것으로 보면 되겠군요."

  창 상장이  남의 말 하듯  편하게 얘기했다. 제임스는 혹시나  한국이 핵미사일을 완전조립하기 전에 중국이 추가로 핵공격을 할까봐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한국에는 며칠 전부터 핵미사일 몇 기가 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까?  정치국이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한국에 핵미사일이 있었다는 말씀은 금시초문이군요."

  창 상장의  말은 제임스에게는 알고 있었다면  당연히 사전에 중국에 귀띔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책으로 다가왔다.

  "저도 조금 전에 알았습니다... 창 장군의 솔직한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말씀드릴 요점은,  더 이상 핵전쟁을 확대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핵을 남용하는 국가는 미국의  국운을 걸고 응징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인 저와  국가안전보장회의 참가자 전원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핵보유국들 사이에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UN에는 선제핵공격 보복안이 상정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이 안건에 적극 지지할 예정입니다.

  제 말씀은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서울에 핵폭발이 있은 후 아직까지 한국  대통령과의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군 지휘부도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만,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한국군에도 이 메시지를 전달하겠습니다."

  ".....,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각하의 견해에 당과 인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바입니다. 이후 한국에  의한 선제 핵공격이 없다면  본인과 임시정치국은 결코 핵공격을 명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정부와 군지휘부에도 꼭 각하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퀄리스 국장의 눈에 경멸의 빛이 잠시 스쳤다. 중국은 패배했다. 중국은 미국이 한중간의 전쟁에 개입하여 전쟁을 종식시키길 원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중국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고선 한국의 핵보복을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할  수 있는 결정은? 그러나 매퀄리스가 원하던 답이 바로 창 상장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에...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중국의 해군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함정을  자체 건조하기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전통적인 우호국이었던 러시아는  현재 음양으로 한국을 지원하고 있어서 러시아로부터의  무기도입도 어렵습니다. 미국이  인민해방군 해군의 재건을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이번 전쟁을 지켜 보면서 무기체계보다는 그 운영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무기도  그 운영이 미숙하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군사고문단의 파견도  공식적으로 제안합니다."

  '인질이다! 한국의 중국 공격을 막으려는 수작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참가자들이 일제히 대통령을 응시하며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긍정적인 답변을 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대통령이 주저하고 있을 때 눈치를 챈 창 상장이 말을 이었다.

  "한국이 역공으로 나오면 전쟁은 상당히 길어질 것이며 군부강경파나 핵기지 사령관이 절망적인 결정을 할 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것이 우려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귀국에 상당량의  무기를 주문했지만 인도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저희는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이외에도 저희는 추가적인  무기도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창 상장이 위협 반 애원 반으로 나왔다.  위기에 몰린 중국이 기댈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다. 미국 대통령 제임스는  또다시 핵미사일이 발사될 수도  있다는 창 상장의 협박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정부가 붕괴되는 판에 당연히  핵미사일을 쓰고 싶은 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무기판매도 계획보다는 많이 성사될  것이라는 희망도 그의 결정에 참고가 되었다. 제임스가 결단을 내렸다.

  "제의를 수락합니다.  중국이 주변국을 침략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 주시면 의회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각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참, 한국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국경선을 넘고 있습니다. 귀국의  북동지방을 약 백만의  한국군이 침공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통신이 마비되어서 모르실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약간의 긴장된 침묵이 흐르고 창 상장의 대답이 나왔다.

  "...! 각하의 호의 정말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보답하겠습니다."

  "흠..... 우린 무기장사를 두배로 했군요. 의회관계자들이 좋아하겠소."

  전화를 끊은 제임스가  미국을, 자신의 현재 처지를 비꼬았다. 피스의 함대가 제주도 남쪽해상에서 중국으로 가던 미국 수송선단을 공격한 적이 있었다. 상당수의  전투함을 상실하고 중국에 보내질  무기 대다수가 한국에 강탈되었다. 한국은  이 무기들에 대한 대금과  손해배상을 약속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중국이 대금지급을 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추가적인 무기공급을 수용하실 생각입니까?"

  호블랜드 국무장관이 묻자 제임스가 책상을 치며 흥분했다.

  "당연하지 않겠소? 우리가  이 전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뭐요? 전쟁을 막기라도 했소, 아니면 확전을  방지했소? 도대체 미국이 이렇게 제  3자적 위치에 있던 전쟁이  어디 있었소.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기 팔아먹는 일밖에 없단 말이오."

  이번 전쟁 중에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한국이었다.  그러나 핵미사일을 빼앗기고 통신마저  두절된 중국은 현재 위기에  처해있고, 미국은 상당한 자존심의 실추를 감수해야 했다. 제임스는 그것이 싫었다.

  "장관! 각국 대사들에게 연락해서 미제  무기가 필요한 나라에게 원하는 대로 팔겠다고  전하시오. 미국대사들에게는 주재국 정부에  무기 팜플렛을 돌리게  하시오. 원한다면 핵도  팔겠다고 말이오! 한국정부에도 미제 무기를 파시오."

  "예, 예."

  그동안 기고만장하던 호블랜드가 기가 팍 죽어서 대통령의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핵이라니...  어쨌든 미국대사들은 졸지에 무기판매상이 되어 각국 정부를  방문해야 했다. 물론 그동안 대사들이 하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무기판매였지만, 이제는 자존심도 내버려야 했다.

  1999. 11. 26  02:20  만주 지린성

  "30사단 제 69연대  현재 안투현 강습 중! 목표지점에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보고입니다!"

  "좋~았어! 어쿠!"

  기다리던 보고가 오자 김 재호 대장이 좁은 지휘차 안에서 벌떡 일어나다가 천장에 머리를 찧고 주저앉았다. 윤  민혁 대위가 낄낄거리자 김 대장이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내 다친기 니는 그리  좋나? 그런 심뽀로 니 얼마나 잘되나 내 두고 볼끼다. 최 중위! 현지 지휘관을 대!"

  "사령관님 헤드셋에 연결하겠습니다. 69연대 1대대장입니다."

  통신장교가 군단과 사단 등  지휘계통을 건너 뛰어 직접 현지 지휘관과 통신을 연결했다. 최 중위가 통신기를 조작하여 무선을 개방하자, 격렬한 총성과 함께 바람소리 등 약간의 잡음이 섞인 가운데 현지 지휘관의 격양된 음성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다.

  [충성! 69연대 제  1대대장 이 대섭 중령입니다. 현재  교두보 확보중! 적은 산발적인  저항에 그치고 있습니다.  시내에서 잔적 소탕중입니다. 대대 병력이 현청사와 전신국 등 주요 거점을  모두 확보했습니다. 제 9 공수여단은 안투현 동쪽지역에 강하중입니다.   남쪽에서도 본대가 진공해 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만사 작전계획대로입니다. 현재 병력손실 전무!]

  김 대장이 아직도  욱신거리는 머리를 만지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헬리콥터에서 강하하는  보병들과 공수부대, 시내로  진입하는 기계화부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좋아! 전화설비는 파괴했겠지?"

  [물론입니다.]

  "아주 수고했어. 귀관을  안투현 점령군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지금 이시간부로 귀관은 대령이다. 대한민국  국군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자네의 승진을 명령한다.  필요한 게 있으면 사령부로 연락하도록. 본대는 안투현을 우회해서  장백산맥을 넘어가겠다. 병참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

  [작전계획대로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충성!]

  김 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헤드셋을 끄자마자 최 중위에게 명령했다.

  "나머지 65연대 병력과 9공수는 회수하도록. 계속 전진이다."

  김 대장의 명령을  들은 윤 대위가 뭐라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전쟁중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윤  대위가 물끄러미 작전상황판을 다시 살폈다. 예상을 넘은  진격속도였다. 축차투입된부대들이 전술목표들을 점령해 나가는 가운데 본대는  거칠 것 없이 만주벌판을 달려가고 있었다.

  1999. 11. 26  02:40  서울 용산구 남영동

  "지금 바로 북쪽에는 불에 타고 무너진 건물에 갇힌 수많은 사람들이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열선에 타고 방사능에  오염되어 생명이 위독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을 구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관악구 관악소방서 소속 성 기혁 소방대장이 소방차끼리 연결하는 무선기를 들고 다소 비장한 목소리로 훈시를  했다. 25대의 소방차가 대일학원 옆, 서울역으로 통하는  길에 대기하고 있었다. 성 기혁이 보는 이 길, 한강대교로  빠지는 이 너른  길은 지금도 북쪽에서 밀려  내려오는 승용차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관악구 관내에서 일어난  화재는 모두 진압했고, 무너진  건물 안에  갇힌 사람들은 민방위대원들이  구조하고 있었으니 그들이 할 일이란  당연히 최대 피해지역인 종로구 일대의 구조였다.

  남한쪽 전쟁수행 총지휘부인 국방부 지하벙커나 서울  외곽의 B-2 벙커, 민방위본부 등의  비상지휘체계는 모두 붕괴되었다. 서울의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있는 가운데, 성  기혁은 자체판단으로 폭심지역 구조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그리고, 구조작업이 시작되어 소방차들이 흩어지면 소방차들끼리의 무선연락은  불가능할 것이다. 서울시  전체적으로 지금도 극심한 전자장해를 겪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기가  막히게도, 우리는 방사능 방호복이  없다. 지금 저 선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살아남더라도 평생을 방사성 질병에 시달릴 것이다. 살아남더라도..."

  성 기혁이  길 반쪽을 메운 바리케이드와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머리가  듬성듬성 빠지고 뼈가 부어오른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게 평생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진탕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던가?

  "아직 늦지  않았다. 귀관들이 죽거나 방사능에  오염되더라도 국가가 귀관이나 가족을 책임지지  못할 지도 모른다. 전쟁이 불리한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오염지역 구조임무에서  빠지고 싶은 사람은 안전한 곳에서의 구조임무를 수행하기 바란다."

  무선기에는 침묵이 이어졌다.  성 기혁 소방대장 말고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김 진열 소방관은 신혼이니까  빠져라. 방사능에 피폭되면 2세에게도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  나머지 사람들도 희망대로 선택하기 바란다. 여러분의 선택에  대해서는 나중에라도 절대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한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장님!  저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소방관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관 말입니다. 저는 지난 7년간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이 직업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절대 빠지지 않겠습니다. 혼자서라도 뛰어 들어 가겠습니다.]

  소방관 중 비교적 젊은 김 진열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성 기혁의 귓전을 때렸다. 성 기혁은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관악소방서 대원 중에서 훗날을 위해  몇 명을 남겨 놓으려는  자신의 의도를 왜 몰라준단 말인가.

  "빠지라면 빠져, 임마! 왜 말을 안들어? 명령이다!"

  [부당한 명령, 불복하겠습니다. 제가 신혼이라서  이번일에서 제외된다면 저는 몇 달 후에 태어날 제  자식과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게 됩니다. 대장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구조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겁니다. 빨리요!]

  [그렇습니다. 빨리 구조작업을 시작합시다!]

  여기저기서 차 기혁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어쨌든 빠질 사람은 어서 빠져.  10초 내로 출발한다. 선도차부터 출발준비!

  방사능 잔류량이  엄청난 곳에서 방독면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살아남은 사람들, 구조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소방관 중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 평생 시달릴 방사능 후유증은? 가족은?

  소방관들의 머리로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난동했다.  심장이 6000 RPM의  자동차엔진처럼 박동치며 아드레날린이 최고조로  분비되었다. 소방대장의  한마디에 소방관들이  갖고 있던 긴장감이  일순간에 폭발하며 소멸했다. 이제는 일이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직업, 평생을 천직으로 여겼던 자부심 많은 소방관들의 직무를 시작할 때였다.

  "출발!"

  1999. 11. 25  11:30(위싱턴 표준시)  미국, 뉴욕

  "우리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지킬 것을  선언합니다.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 회원국에서도  이번 전쟁에서의 중립선언과 전쟁의 조속한 종결 촉구 결정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티븐스 주유엔대사가 발언하자, 일본의 사사키  대사가 발언권을 얻어 발언을  시작했다. 발언을 준비  중인 중국대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러시아와 함께 일본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에서도 한중전쟁의 주변국으로서 당연히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였으며,  이번 한중전쟁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리고 아직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에서는 독일과 영국 외에는 중립을 선언하고 전쟁종결을 촉구한 나라가 없었다.

  "미국 대사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중국군이 한반도 일부를 점령하고 있으며,  핵미사일에 수도 서울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종전을 한다면  한국에게 너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일본은 유엔이  한국을 지원하든지, 최소한 핵전쟁  확대에 대해서만 억지력을 발휘하고  한국에게 유리해진 전쟁국면에서는 실지를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일본 자위대는 유엔의  깃발 아래에서 한반도로 파병되어  침략자에 맞서 싸울 준비를 마쳤습니다."

  첸 밍산 중국대사가 얼굴이 벌개졌다.  세계평화를 수호한다는 유엔에서 할 수 있는 말인가? 하지만 실제로 침략국인 중국입장에서는 전쟁에 불리해진 마당에 할 말도 없었다. 중국이  유리한 국면에서는 당연히 이 전쟁이 중국의 승리로 끝날 줄 알고 다른 상임이사국의 중국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나라들이  은근히 중국을 비난하는 것이다.

  유엔군을 한반도에 파병하자는  일본 대사의 제의는 중국이 거부권을 가진 이 마당에 당연히 부결될 것이  뻔했지만, 중국측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었다.

  "저도 일본대사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러시아대사까지 나서자  중국대사가 분노했다. 러시아는  한국에 많은 무기를 팔아먹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중국이 주로 미국에서 무기를 구입하자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한몫 잡고자  한국과 손잡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비밀이었다. 러시아대사의 발언이 이어졌다. 중국대사 입장에서는 구구절절이 얄미운 말이었다.

  "중국은 침략과 핵공격에 대해 한국에  사죄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1개 성(省) 정도는 한국에 할양해야 균형이 맞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은  더 이상의 핵전쟁을 바라지  않으나, 중국이 침략한 후에  즉시 종전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은  유엔에서, 이제서야 일방적인 전쟁종결을 종용하는  것은 정의와 균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생각입니다."

  '종전 유도는 실패다.  상임이사국들은 중국의 몰락을 바라거나,  최소한 철저히 중국의 자존심을 짓밟으려 하고 있다.'

  중국대사가 위기감을 느끼고 나섰다. 중국은  아마도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은 각오했다. 그리고  자신은 조국, 중국의 존립을 위해서는  무슨 짓인지 할 수도 있었다. 창 장군이 임시 조선공작회의 주석의  자격으로 보낸 훈령이 그를  압박했다. 훈령 외에도 창  상장은 대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대사는 전황이 그렇게 악화될 줄은  예상 못했다. 아니, 지금은 아직  아니다. 앞으로의 일이었다. 중국은 공군력 빼고는 거의  모든 군사력을 소모했다. 더  이상 투입할 병력도, 보급품도 없었다.

  [동지는 모든 외교역량을 동원해서  이 전쟁의 종결을 유도하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업무를 수행해야  하오. 본인과 조선공작회의는 어떻한 희생도  각오하고 있소. 그리고... 불행하게도  아직 조선 대통령이나 조선군 수뇌부와는 통신이  연결되고 있지 않소. 이것은, 베이징이 핵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오. 혹시나 조선공작회의나  정치국원과 통신이 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이 임무를  수행하시오. 조국의 전 인민과 당이 대사의 분발을 기대하고 있소.]

  "그 잘못된  결정을 내린 정치국원들은 모두  암살되었소. 중국정부의 잘못된 판단이긴 하지만,  당사자들 대부분이 이미 사망한 지금,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은 어렵소. 하지만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우리 중국은 결코 전쟁을 바라지 않습니다."

  중국대사가 다소 비장한  음색으로 평화를 주장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조소 뿐이었다.

  "일주일 전과 말씀이  많이 다르시군요. 중국이 불리한  모양이죠? 왜 그러실까. 핵 몇발만 쏘면 될텐데 말이죠."

  프랑스대사까지 중국대사를  조롱했다. 중국이 핵미사일  다수를 한국에게 강탈당했다는 것은 이미 전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중국은 한국에 대해 유일하게 우월했던 핵전력에서마저  우위를 상실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불리해진 지금 중국은 국제외교계에서도 사면초가였다.

  "한국대표께서도 한 말씀 하시겠소?"

  안보리 의장인 독일 대사가 업저버로 참석한 한국대사를 지명하자 박 윤흔 대사가 천천히 운을 떼었다.

  "중국이 침략전쟁에서도 핵을 사용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인구집중지역인 서울  등 대도시에 대해 발사하다뇨.  중국은 너무 비인도적인 행위를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서울이 핵공격을 받아  지금 정부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아무런 훈령을 받지 못해서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일단 한반도로부터 중국군의  즉각적인 철수, 한국 국민이 입은 인적 물적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 한중국경 300km 북쪽 이내 지역의 비무장화와  중립국 감시,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한국 할양, 이 네 가지 조건을 중국이 모두 수락한다면 종전협상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사는 영문학박사답게 그 긴 말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했다. 조건이 길어질수록 첸 대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번째 조건은 너무 하지 않소? 그건 침략이오!"

  첸 대사가 거세게 항의했으나  역시 돌아오는 것은 각국 대사들의 차가운 눈빛 뿐이었다. 현재 중국은 항의할만한 입장이 되지 못했다. 곧이어 계속된 표결에서 결국  안보리 상임이사국 회원국 대사들은 실컷 중국을 조롱하고 나서 종전결의안을 부결시켰다.

  거부권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표결도 안된 것이다.  미국이 동의했으나 다른 5개국  전원이 반대했다. 지금은 미국의 압력도  소용이 없어서 전통적으로 미국을 지지해 온 영국과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일본까지 반대했다. 개전초기가 아닌  현 상태에서의 종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들이었다. 러시아는  한중전쟁에 개입해 온  것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표결에서 이길 것을 확신했는지 기권하고  말았다. 결국 핵전쟁확산방지건만 본회의에 상정하고 종전결의안은 상정하지  않았다. 중국대사가 힘 없이 발걸음을 옮겨 대사실로 향했다.

  박 대사는 약간은 걱정스러웠으나 그래도 몇시간 전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아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직도 대통령은 궐위  중이고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 상황이었다. 총리로부터  훈령은 받았지만, 아직은 어떠한 종전 시도도  저지하라는 내용이었다. 박 대사는  총리로부터 통일한국 정부 전체가 소멸한 것으로 위장해도 좋으니 몇 시간 더 기다려 달라는 당부를 받았다. 미국이 한국대사관과  총리와의 전화를 도청했다면? 박 대사는 미국이 알아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1999. 11. 26  03:20  서울 역촌동, 서부병원

  응급환자들이 끊임없이 병원으로 들이닥쳤다. 병실은  이미 만원이 된 지 오래이고  영안실도 시체로  넘쳐났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정신없이 뛰어 다니는 지금,  이 진도 평상시에는 웬만한  인턴이나 고참간호사들이 할만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수술실에  세 번이나 들어가 수술보조를 했고 끔찍하게 타버린  화상환자들을 소독했다. 신에 대해  간절하게 구원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저주를 퍼부었다. 조금  전에는 수술 도중에 여섯 살박이 어린이가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 누구도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환자가족들까지 구호에 동참했다.

  "또 열폭풍 피해자들이야. 응급실로!"

  핵폭발이 일어났을  때 가장 가혹한 것은  방사능 피폭환자가 아니었다. 살아나도 평생 고통을 겪긴 하지만  피폭량이 적을 경우에는 그나마 생명이라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열폭풍 피해자들은  살아날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전신이 끔찍하게 탄데다가  방사능 피폭량도 많아 죽어가는 환자들은  병원에서 포기하고 방관만  하고 있었다. 다른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맑은 공기가 마시고 싶어서  병원 정문쪽으로 나온 이 진은 실려오는 환자들 중에서 한 위급환자가 어쩐지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굴이 그을러서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불안한 느낌이 들어 응급침대에  실려가는 환자를따라갔다. 불안감은  점점 확신 비슷한 느낌으로 변했다.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환자는 약간의 의식이 있는지 조그만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이 진이 용기를 내서 물었다.

  "혹시 미영이?"

  "..., 아, 진이구나? 우리 소연이 어떻게  됐니? 내 딸 알지? 같이 구조됐는데 난 눈이 안보여."

  이 상황에서도 자식 걱정이 앞서다니, 이 진은 울컥 울음이 치밀었다. 뒤를 보니 조그만 체구의 환자가 응급침대에 실려 뒤따르고 있었다.

  "소연이 있어. 정신을 잃었지만 살아 있어.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자고 있나봐. 이제 걱정 마!"

  "그래? 정말 다행이야. 내 새끼... 고마워."

  "..., 바보. 너가 더 위험해."

  "정말 무서웠어. 엄청난 빛에 눈이 멀고  나서 난 무조건 소연이를 안고 엎드렸거든.  정신이 들고 보니 누군가  날 옮기더라. 소연이도 같이 왔어. 느낌으로 알 수 있어."

  응급침대가 병원 복도 한 구석에 도착하자 간호조무사들이 미영을 바닥에 눕혔다.  지금은 수술실도, 입원실도  만원이었다. 이  진이 미영의 옷을 벗기고  약간은 익숙해진 솜씨로 미영의  상처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아프더라도 좀 참아."

  화상은 주로 머리 부위와 등에 집중되었다.  정말로 바보같이 딸을 안고 엎드린 모양이었다.

  "이 바보야..."

  "다행이야. 근데 아프지 않아."

  ".....!"

  미영은 중증환자였다.  등의 피부가  완전히 벗겨지고 신경마저  끊긴 모양이었다. 진은  이런 환자가 한 시간  이상을 버티는 것을 못보았다. 딸을 살려야 한다는 어머니로서의 의무가 미영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수술실에서 나오던 의사가 잠시  미영의 맥을 짚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다른 수술실로 뛰어갔다.  진은 그 의사에게 매달리고 싶었으나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의사는 한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었다.

  "고마워, 진아. 소연이 손 좀 잡게 해 줄 수 있겠니? 옆에 있지?"

  엎드려 있던 미영이  왼손을 뻗어 더듬거렸다. 소연은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이었다. 진이  소연을 안아 미영 옆으로 옮겼다. 미영이 소연의 작은 손을 움켜 쥐었다. 어머니만의 감각인지 더듬거리지도 않고 단번에 손을 잡는 게 진은 이 상황에서도 신기했다. "불쌍한 우리 아가..."

  진에게 보이진 않지만 엎드려  있는 미영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앞날을 걱정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물이었다.

  "애 아빠는 징집당해서 지금은 함경북도에 있다고 들었어. 진아. 미안하지만 내 부탁 좀 들어줄래?"

  "..., 응. 그래, 말해 봐. 이 바보야..."

  "소연이를 잘 부탁해. 꼭 아빠를 찾아 줘. 혹시 애 아빠가 죽으면..."

  진은 미영과는 고교  때부터의 친구였다. 미영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 부모를  여읜 가난한 청년과 결혼했다. 그때 미영의  나이 19세, 이들은  결혼하자마자 얼마 안되서 딸을  낳았다. 미영이 진에게 한 말은 고생스럽지만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진은  미영이 측은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었다.

  진은 미영의 부탁이  무엇인지 알만했다. 그 누구도  자식을 고아원에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의 고아원이란... 미영은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 알았어. 걱정 마. 이 바보야. 제발..."

  "고마워..."

  미영은 행복한듯한 미소를 지었고  아이를 잡은 손에서 힘이점점 빠져 나갔다. 진은  친구의 미소를 한참 쳐다보다가 아직도 자고  있는 소연을 안고 미영의  팔을 몸에 가지런히 붙였다. 진이 미영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래... 안녕."

  진은 환자 진료패에 환자이름을 쓰고 나서 보호자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밤새 한사람이라도  구하려고 방사능 오염지대를  뛰어다니며 피로에 지친 남자 간호조무사들이 미영의 시체를 들쳐메고 영안실로 옮겼다. 그것이 진이 미영을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1999. 11. 26  02:45(베이징 표준시)  중국 랴오닝성, 센양 공군기지

  "이제 날만 밝으면 조선반도 전체에  대해 대대적인 폭격을 실시한다. 임시중앙군사위 및 조선공작회의가  설정하여 우리 기지에 할당한 목표는 다음과 같다."

  작전참모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100여명의 조종사들이 브리핑실을 가득 메우고  설명을 들었다. 미그-21의  개량형 섬-7형 전투기가 주력인 인민해방군 공군 제 15  전투사단 소속 조종사들에게 할당된 임무는 공격사단과 폭격사단의 J-5 공격기를 공중엄호하는 것이다.

  브리핑이 끝나자 앞쪽 의자에 앉은 사단장이 일어나 이 작전의 의미를 설명했다. 인민해방군 공군 대교인 사단장, 린 치앙은 그동안의 무력감에서 벗어나 힘이 넘쳤다.

  "이 작전은 인민해방군 공군 창설 이래 최대의 작전이다. 이미 설명 받았듯이 2500여대의 전투기와 500여기의 공격기, 그리고 500여기의 폭격기가 이번 임무를 위해 출동한다. 전략목표에 대한 폭격과 동시에 우리는 조선 공군을 격멸하는 임무를 맡는다."

  린 대교는  중국이 한반도에  핵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정치국원들이 집단으로 암살당했다는 것을 조종사들에게 말할까  말까 망설였다. 핵공격 직후에 만주지역의 거의 모든 유무선통신이 끊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 갑자기 브리핑실에  비상벨이 울리고 당직군관이 사단 사령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밖에는  공습경보가 발령중이라 조종사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공습인가?"

  [탄도유도탄 2기가 접근 중입니다. 북조선의 로동-2호 유도탄입니다. 요격하겠습니다.]

  "....."

  사단장 린치앙  대교는 당직군관의 자신없는 말에  즉각 대답을 하지 못했다. 중국의 군사력  수준으로는 절대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었다. 접근하는 핵미사일에  대해 핵미사일로 요격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득보다  실이 큰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수도인  베이징도 핵미사일로부터 지키지 못하는데 일선 비행기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단장이 미사일 요격을  명했다. 전투기들은 대부분 쉘터  안에 있으므로 피해는 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만약 조선이  어제처럼 반마찰제를 쓰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반마찰제에 효과있는 중화제를  활주로 부근에 대량으로 준비해 두었다. 살수차 두 대는 중화제를 활주로에 뿌릴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기도 하다. 공병대 소속의 방재반도 언제든지 투입될 수 있도록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군이 반마찰제 공격 후에 공습을 시도하더라도 그 사이에 이륙하여 요격할 수 있었다.  어제 오후부터 상공에는 전자전기와 정찰기가 상시 대기 중이었다. 다시는 같은 작전에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접근 중... 7km, 우리측 대공미사일 4기 발사했습니다. 4초 후 접근. 빗나갔습니다. 2차로 4기 추가 발사. 접근 중... 모두 빗나갔습니다!]

  "젠장, 마하 6짜리도 격추 못시켜? 이래  갖고는 만약 조선이 핵을 쏘면 우리 기지는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건가?"

  린 사령이 투덜거리는 동안 조종사들이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였다. 일부는 양팔로 머리를  감싸고 충격에 대비했다. 잠시 후 폭음이  두 번 연속 울렸다. 건물과 유리창이 크게 진동했지만  이상하게 유리창 한 장 깨지지 않았다.

  "피해상황은?"

  린치앙 대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통신군관과  레이더 담당 전업군사는 미사일접근에도 아랑곳 않고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 아직 확인 중입니다.  미사일은 모두 활주로 상공에서 폭발했습니다!]

  "그래? 또 반마찰제인가 하는 놈이군. 방재반 출동시켜!"

  린 대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같은  공격을 두 번이나 실시하다니, 조선군  지도부는 멍청이라며 비웃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격할 때였다.

  [예! 알겠습니다.]

  살수차들이 활주로에 액화중화제를  살포하고 다른 공병대 병력이 손으로 직접 활주로에 중화제를 뿌렸다. 작업을  하는 중국군들은 몸이 약간 간지러움을 느꼈으나 그동안 목욕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의심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은 인민해방군 공군의 창설 이래 가장 참담한 패배를 한 날로 기록된다.

  1999. 11. 26  04:00  경기도 남양주 새터

  "서울과의 통신이  부분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현재 인명구조  및 복구작업 중! 통일한국군 제  2군과의 통신은 아직 불통, 비상작업 중이니 조만간 다시 개통될 것으로 보입니다."

  "위성통신은 왜 안되는건가?"

  "2군 사령부측에서 수신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측 호출신호는 분명히 가고 있습니다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각하는?"

  정 지수 대장과 통신장교의 대화를 듣던 이 종식 차수가 오른쪽 화면에 나온 최  총리와 양 중장을 힐끗 보았다. 아직도  착잡한 모습들이었다.

  "아직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통일 2군 사령부의 현재 위치는 모르겠나?"

  정 지수 대장이 작전지도를 중앙화면에 올렸다.  지금 이 시간에는 백두산 북쪽 안투현을 지나 엔지(연길)를 향하고 있어야 했다. 작전대로라면 5시간만에 약 3백km의 중국 영토를 종주하는 셈이다.

  "김 장군의 계획은... 너무 성급한거 아닙니까?"

  짜르는 전사에 없을만한 속도의 전격전을 회의적인 눈길로 바라 보았다. 다른 참모들도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 그다지  기대하기 힘들었다. 다만, 약간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엔지를 점령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함경북도 나진  선봉 지구에 몰려있는 중국군을  과연 완벽하게 포위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핵심이었다.

  "1군이레... 예정된 공격을 계속하고 있습네다."

  김 병수  대장이 중앙화면에서  동부전선 부분을 확대하며  설명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중국군을 북동쪽으로 밀어가고 있었다.

  "반격이레 만만티 않습네다만, 계획선인 청진서껀 무산까라 비교적 쉽게 점령할 것으로  보입네다. 적을 까부수고 있다는  예하부대에 보고레 이어지고 있습네다."

  "잘 알갔소. 아, 차 동지! 이제 진정되었소?"

  이 차수를 따라 참모들의 시선이 일제히  출입문 쪽으로 돌아갔다. 언제 왔는지 출입문 기둥에 기대 서있던 차 영진이 흐릿한 눈길로 중앙화면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북경을 공격할 생각이시군요."

  "무슨 소리요? 차 장군."

  정 지수 대장이 뜻밖의 말에 놀라다가  서서히 시선을 돌렸다. 중앙화면의 지도에는 백여만의 통일한국군 병력이 백두산을 크게 우회하여 두만강 하구 쪽을 향하고 있었고, 또다른  백여만의 병력이 혜산지역에 집결하고 있었다. 국군 육군 참모총장이기도 한  김 재호 대장은 틀림없이 5군은 예비병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예비병력치고는 정규군 병력이 너무 많이 집중되어 있었다. 짜르의 눈빛이 반짝였다.

  "시속 60km의 쾌속  진군이라면, 그것도 대부대의 이동이라면 남북한 지상군의 장비로는  불가능할텐데요... 수송기도 없고.  알겠습니다. 민간인 차량을 징발한 거로군요. 겨울철이니 사륜구동차를..."

  "동무!"

  참모들이 갑작스런  외침소리에 깜짝  놀랐다. 지도에만 붙박혀  있던 눈길들이 이 차수를 향했다. 분노인지 공포인지  이 차수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차 동지레 기기 가능하리라 믿소? 중국 북경을 공격?"

  차 준장이 한 번 씩 웃더니 평소에  양 중장이 앉던 빈자리에 앉았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자판을 두드리더니 병력배치와 진격소요시간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훈련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다뤄 본 경험이 많고 이런 용도에 쓰이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수정은 문제가 아니었다.

  "총장이신 김 재호 대장은 아니겠지만 참모 중에 어떤 사람이 북경공략을 상정하고 작전계획을 짠 모양입니다."

  참모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수정작업에 열중하던 차 영진이 고개를 들고 마지막 엔터키를  눌렀다. 참모들이 중앙화면을 보니, 두만강을 향하던 푸른색 화살표가  천천히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화살표는 다시 북쪽으로  급선회하고, 혜산에서  출발한 다른 화살표가  서쪽으로 향했다.

  "여기서 문제는,"

  차 영진이 중앙화면의 동작을  잠시 멈추게 하고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쪽이 주공인가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진-선봉에  있는 중국군을 섬멸하고  나서 공략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포위망을 풀고  공격을 개시할 것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 김 대장과 그의  참모의 작전계획대로라면 아마도 상당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계획을 높은 분들이 알고 계실지는 분명치 않습니다만..."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은 가운데 침묵이 이어졌다.  이 차수가 이 침묵을 깨뜨리고 발언을 시작했다.

  "음... 솔직히 기 작전계획을 승인할  때 본관도 기런 의구심이레 가졌더랬소. 실지회복이라문 우리 병력으로 퉁분한데 와 우회를 하는디..."

  "우리가 중국에게서 약간의  핵을 뺏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중국은 핵강국입니다. 그들에겐 다양한 종류의 전술핵이 있습니다. 아까 2군의 병력편성과 장비를 보았는데 대대단위로  완전 독립적 편성이더군요. 하지만 중국은  자국 영토에 대한  침략을 용납치 않을 것입니다.  우린 중국의 전술핵에 맞설만한 무기가 없습니다."

  "기렇티. 중국이레  기존에 종심방어전략에서  탈피한디 오래디. 디금은 적극방어전략이야요."

  "2군의 작전계획을 승인하고 계속 지원하실겁니까?"

  차 준장의  질문에 이 차수와  참모들의 침묵이 이어졌다. 차  영진이 단말기로 1급보안문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2군  사령부 핵심참모들의 인사파일이 열렸다.

  "김 재호 대장, 1980년 5월... 음... 이건 일단 넘어가죠."

  김 대장의 인사기록을 보던 차 준장이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을 지었으나 꾹 참는 표정이 역력했다. 핵심참모들의  인사기록을 훑던 차 준장의 눈빛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윤 민혁 대위, 학사장교 출신, 학부때 대학생다물회 회장 역임!"

  다물, 다솜, 단군의  땅, 한단고기 등등의 낱말들이 차  준장의 뇌리를 스쳤다. 다물은 잃어버린  단군의 땅을 찾자고 광개토대제가  외친 구호이며, 다솜은 사랑이라는  뜻의 옛말로서 일종의 인사말이다. 일부 재야 사학자들과 극우적인 청년학생들의 주장은, 광할한  만주평원과 황하 이북의 중원땅, 멀리 시베리아의 바이칼호까지 모두가 단군조선(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이 아니라  쥬신이라고 한다)의 땅이며, 단군의 후손인 우리가 그 땅들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물회는 1996년 까지는  여러 이름으로 존재했지만 1997년부터 집결되기 시작하여, 남북  지도층 서로가 망설이던 남북통일에  강력한 압력단체로 작용했다.  통일 이후에  이들은 끊임없이 대륙경영을  주장하여 한국정부는 중국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대학교 운동권  조직을 이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각종  강연회와 가두시위를 하기도 했다.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하는 인사들은 남북통일을 반대하던 인사 이상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심지어 백주에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일본과 중국도 점점 극우화되었고, 격앙된 민족감정의 대립이  이번 전쟁의 한 원인이기도 했다.

  "본인은"

  참모들이 경악하고 있는 가운데 정 지수 대장이 운을 떼었다.

  "2군 사령부의 개편,  또는 최소한 참모진의 개편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부관은 절대적으로 해임해야 합니다."

  "....."

  "설마 부관 한 명이..."

  이 호석 공군중장이 중얼거리다 말고 나머지 참모들의 침묵이 이어졌다. 실질적인 군령권은  분명히 통일참모본부가 전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인사권을 포함한  군정권은 아직도 남북한 군의 최고통수권자, 즉, 한국은 대통령이, 북한은 최 광 원수가 쥐고 있었다. 통일한국군 제 2군 사령관의 경우에는 남북한 군의 최고지도자인 두 사람의 합의하에 이뤄져야 하지만 대통령은  유고상태였다.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한다지만, 현직 육군참모총장인 김  재호 대장을 직위해제할만큼의 힘이 권한대행에게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참모들에게 들었다.

  "아직은... 2군의 공격계획이레 북경공략을 념두에 두었다는 확실한 증거이 없소."

  이 종식 차수가 중앙화면에  나온 국무총리의 표정을 힐끗 살피며 말을 이었다.

  "통신이 재개되는 대로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기요. 길고,  북경공략이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디오. 그기 옳티 않갔습네까?"

  이 차수는 분명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북한에는 2명의 대원수, 7명의 원수, 8명의 차수가 있었다. 육군참모총장인 김 재호 대장과 이 차수와는 분명 격에 있어서 김 대장이 훨씬  높았다. 그런 직위에 있는 사람을 이 차수가 책임자로  있는 통일참모본부에서 진퇴를 결정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 회의를 최  창식 대통령 권한대행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제 2군 사령부에  대한 경계심을 유발시킨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이제부터는 통일참모본부와  김 재호 대장간의  견제와 신경전이 시작될 참이었다. 이 차수는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권한대행 각하!"

  최 권한대행과 이 차수가 잠시 눈길을 주고 받더니 최 권한대행이 한숨을 내쉬고 말문을 열었다.

  [이 차수..., 차수의 뜻대로 하십시오.]

  "....."

  [2군의 김  대장에게 포위공격 외에  다른 전략적 목표를  공격하거나 점령하지 말라고 이르시오.]

  최 권한대행으로서는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단이었다. 말이 문민우위지, 5.16이나 12.12같은 역사의 굴절을 겪은  한국에서 아무리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하지만  국무총리 주제에 육군 참모총장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각하!"

  이 차수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권한대행  옆에 앉아있던 양 중장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안됩니다! 적의 핵기지를 다만 몇군데라도 점령해야 합니다. 저는 그들을 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핵기지를 공격했던 요원들을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저는 그들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저  먼저 죽이고 나서 그런 명령을 내리십시오.]

  '일이 꼬였다' 라는 생각이 모두의 뇌리를 스쳤다. 통일참모본부와 며칠간 떨어져 있던 양 중장은 제 2군의 우회기동을 만주공격으로 오해를 해서 요원들에게  그런 약속을 했고,  현지 사령관인 김 대장도  은근히 중국 침공을 기정사실화하려고  중국에 도발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확전을 막으려는  최 권한대행의 입장은 단호했다. 화면 건너로 섬뜩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귀관의 전역을 명하오. 이제 귀관은 군대의 작전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소.]

  강렬한 긴장감이  화상통신용 화면  이쪽 저쪽에서 감돌았다.  실의에 찬 양 중장이  권총을 빼자 총리 경호실  요원들이 황급히 권총을 꺼내 들었다. 탁자 위에  권총을 올려 놓은 양 중장이 천천히  걸어서 출입문 쪽으로 걸었다. 화면 양쪽에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등 뒤로 권한대행이 말을 이었다.

  [귀관은, 아니, 귀하는 아직  예비역 공군대장으로서 할 일이 많소. 국방부장관으로서 그 책임을 다 해야 하오. 일단  두 가지 현안에 대해 상의합시다.]

  통신화면을 힐끗 본 양 중장은 짜르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얼핏 보았다.

  1999. 11. 25  18:15(워싱턴표준시) 미국 워싱턴

  "한국군의 대병력이  한반도 북동부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이쪽 청진이라는 곳 부근 일대에서는  대규모 전투가 치러지고 있는 징후가 보이며, 심지어 중국영토인 만주 남부 내륙  곳곳에서도 소규모 전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한국의 중국 침공인가?"

  대통령 제임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매퀄리스 CIA 국장에게 물었다.

  "아직 정보가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대규모  역습으로 봐도 될만 합니다. 한반도 북동부를  점령한 중국군이 궁지에 몰릴 것으로 보입니다만, 상황이 나빠지면 후퇴할  수도 있습니다. 한중 국경선은 넓으니까요, 각하."

  "내 말은 말이오, 만주에서 소규모  전투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혹시 한국군이 만주를 공격하고 있는 것 아니오?"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만, 저도 혹시나 해서 위성 블랙 레이븐 2호를 만주쪽으로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소규모  특수전 수행부대를 파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궤도수정에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니 조금 더 기다리시면 정확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이 중국을 침공한다면?"

  대통령이 집요하게 한국의 침공 가능성을 물고 늘어지자 매퀄리스 국장도 심각해졌다. 국장 자신이 가장 걱정하는 것도 그것이었다.

  "만약 한국이 그런 미친 짓을  한다면... 본격적인 핵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자국 영토를  침범한 적군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할 게 분명합니다."

  국가안정보장회의 참가자들이  신음성을 발했다. 도대체  신기한 일이었다. 핵무기가 그렇게  많이 동원되고도 아직 이놈의  한중전쟁은 지속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쟁이 이어지는 것이다.

  "중국은 함부로 핵을 쓰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도 50여기의 핵미사일이 있고,  소규모지만 전술핵도 보유한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국무장관 호블랜드는 매퀄리스 국장과는 다른  견해를 표했다. 합참의장과 각군 고위장성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여기, 혜산이라고 하는 지역에 집중된 병력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전투도 없고 전략적으로  중요치 않은 이곳에 30만이라니. 4시간  전의 배치현황이라면 지금쯤은 아마도..."

  "만주 남부를 횡단, 장백산을 우회하여  다시 한반도로 들어오는 우회전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합참의장이 주방위군 경력밖에  없는 호블랜드 국무장관의 전략적 식견에 대해 감탄했다는 듯, 약간은 경멸적인 어조로 물었다. 호블랜드 국장이 단말기를 조작하여 표시기로 백두산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소. 약 150km이니 시속  30km로 전진한다 치면 지금쯤 이미 중국군의 배후를 공격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렇다면  한반도 북동부를 점령하고 있는 중국군은 포위되는 것입니다."

  "저런, 그건  2차대전 당시  나찌 독일군에게도  불가능한 전격전입니다."

  "이스라엘군은 해냈지요. 심지어 이집트군도. 아니, 징기스칸이나 다른 고대 유목민족들도 그런 일은 해냈지요."

  "현지는 지금  겨울이란 것을 아셔야죠.  그리고 한국군은  보병 위주고."

  국무장관과 합참의장의 말싸움이 계속되자 제임스 대통령이 나섰다.

  "신사 여러분! 우리는 지난 겨울에 미시간주에서 사냥을 했지요."

  참가자들이 지난 겨울의 사슴사냥을 떠올렸다.  네 대의 사륜구동차에 분승한 그들은 폭설 속에서도 시속 50km 이상은 유지했다. 전차나 장갑차는  불가능하더라도 사륜구동차라면  가능하다! 게다가  한국은  연산 500만대를 생산하는 자동차왕국이다! 장군들이 한국군의  공격속도를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제임스가 말을 계속했다.

  "문제는 압력을 넣어 한국의 중국공격을 막고 싶어도 그 창구가 연결이 안된다는 것이오.  모두들 한국군의 지휘계통을 찾아  연결할 방도를 찾아 내시오!"

  1999. 11. 26  04:30(한국시간) 랴오닝성 단둥

  신의주 건너편 국경도시인 단둥은 어제 저녁의 물바다에 이어 지금은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중국군  집결지와 병참집결지에 대한  인민군의 무차별 포격과 치열한  공중폭격, 그리고 미리 단둥에  잠입한 경보병여단 대원들에 의해 도시는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횃불로 타올랐다.

  수몰된 군인과 민간인  구조작업을 계속하느라 정신이 없던 인민해방군은 부랴부랴 부상자들을 호송하여 단둥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하늘에는 주로 요격기로 활용되는 미그-21 전투기들이 날았다.

  북부군 사령 홍 종규  소장은 압록강 철교 옆의 고지대인 압록강공원 위에서 단둥 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예비역인 자신이 일개 독립부대의 지휘관이  되어 비록 양동부대이긴 하지만  중국 공격의 선봉에 서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현재 진강산(鎭江山),  모회산(帽 山) 등의  고지 점령,  칠도가(七道街), 영가(永街) 등의 시가지에서 산발적  전투 진행 중입네다. 3개 사단 도강 완료!"

  김 소좌가 보고하자 홍 소장이 끄덕거렸다.  뜻밖에 저항은 거의 없었다. 홍 소장은 은근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전명령에는 단둥 지역을 확보하고 양동전만  수행하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만주지역에 중국군은 별로 없어서, 북부군 휘하의 2개 군단이면 심양(瀋陽) 정도는 충분히 점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나왔다.

  "더 이상의 진격을 명령하디  아니한 것은 다른 계획이레 있는 듯 합네다."

  김 소좌가 망원경으로 단둥 시가를 살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길티, 기러티."

  홍 소장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김  소좌가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대 지휘관이라면, 명색이 장군이라면  이 좋은 기회를 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말이다.

  "3군 사령부에 보고는 했간?"

  "보고레 마티고 나오는 길입네다."

  후퇴하던 중국군 대열이 미그-21기  편대의 공습을 받아 불바다가 되고 있었다.  미그기의 동체  아래 기축선에  장착된 Gsh-23L  기관포가 BMP를 향해 불을 뿜자 곧이어  노란 섬광이 대지를 적셨다. 김 소좌가 폭격현장 주변을 보니  상당한 숫자의 민간인 피난행렬이  보였다. 그리고 길가에 널려진 민간인 시체들도...

  1999. 11. 26  04:40(한국시간)  중국 랴오닝성 안산(鞍山)

  [편대장 동지, 고도를 좀 올립시다. 뭐가 보여야 비행을 하지요.]

  "안돼! 여긴 위험 공역이야."

  인민해방군 공군, 제  37 독립정찰단(團--연대) 소속의 차오(喬) 소교는 겨울 폭풍우 속을 고도  4000피트, 속도 180노트, 0-4-8을 향해 계속 비행하고 있었다. 눈이 오고 구름이 짙게 끼어  시계는 0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서 정치국 상무위원회의지령을 받고 출발한 연락기들은 어찌 된 셈인지 돌아오지 않았다. 동북지역은 유무선연락이  완전 두절되어 베이징 군구 소속 공군인  자신들이 연락 임무를 띄고 센양(瀋陽)으로  가는 길이었다. 미그-21의 중국  개량형인 섬-7형 전투기 두 대는 혹시나  있을 위험에 대비해  간격이 좁은 전투전개(Combat  Spread) 대형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오 소교보다 우하방(右下方)에서  비행하고 있는 요기, 지앙 중위는 죽을 맛이었다.

  "이 정도는 저공도 아니잖아? 겁나면 고도계를 계속 주시하라고... "

  아군 공역에서 상대적으로 저공비행을 하는 것은 차오 소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아군  공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검은 그림자로만 보이는 산을 몇 개 넘고 나서, 지금은 군데군데 농가의 불빛이  보이는 개활지를 비행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지앙 중위가 비명을 질렀다.

  [후방 레이더 경보! 락온됐습니다!]

  "크로스 턴(Cross Turn) 실시! 겁 내지 마. 목표를 확인한다!"

  차오 소교가 고도를 낮추며 브레이크하여  오른쪽으로 급선회했다. 지앙 중위는 아마도 고도를  높이며 왼쪽으로 선회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지앙  중위의 비명이 차오 소교의 조종석 안을  가득 메웠다.

  [미사일! 적외선 유도 미사일!]

  "젠장, 디펜시브 스플릿(Defensive Split)!"

  미사일의 추적을 받고 있는  지앙 중위가 함부로 고도를 올리지 못하리라 생각한 차오  소교가 급히 고도를 올리며 선회했다. 만약  지앙 중위가 왼쪽으로 선회했다면,  이제 다시 오른쪽으로 선회해야 한다. 지앙 중위에게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기동이었다. 고도가  올라가면서 후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맙소사! 어둠 속에 노란 섬광 2개가 자신을 향해 급상승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아래  쪽에서는 불꽃이 환하게 피어나고, 다른 섬광 두 개가 추락하는 불꽃을 스치고 지나갔다.

  레이더를 키자 상황은 분명히 드러났다. 차오  소교와 같은 기종인 미그-21 전투기 4기가 배후에서  접근해 지앙 중위의 전투기를 날린 것이다. 차오  소교는 추적하는 전투기들을 기수  아래로 흘려 보내며, 지앙 중위를 죽인 적기를 향해 PL-2 적외선 유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적기는 플래어를 발사하며  좌우로 흩어졌다.  배후가 무방비인 상태에서  차오 소교는 오른쪽 전투기를 추격했다.  적기는 4기, 적은 피아 확인을 하고 나서 발사해야 한다는  것이 차오 소교에게 유리한  점이었다. 미사일은 예상대로 공중에서 헛되이  폭발했지만, 차오 소교는 적의  꽁무니를 붙잡을 수 있었다.

  차오 소교가 락온하려고  방향을 수정하는 사이에 적기가 브레이크를 걸어 속도를 뚝  떨어뜨리며 급상승했다. 적기가 반전하는  사이에 차오 소교의 전투기도 잽싸게  속도를 떨어뜨리며 반전했다. 두  전투기가 시저스(Scissors) 기동으로 꽈배기 모양을 그리며 서로의 배후를 잡으려고 다투는 사이에 다른  전투기들이 차오 소교의 전투기  배후로 접근했다. 차오 소교가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자신의 전투기 좌우로 스치는 불빛과, 역반전하여 급상승하는 적기였다.

  1999. 11. 26  03:50(베이징 표준시)  중국 베이징

  "위성통신과 연락헬기로  간신히 주요 사령부  및 핵기지와의 통신이 연결됐습니다만..."

  고급전업 기술군관인 왕 대교가 창 상장에게 보고하면서 약간 머뭇거렸다.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인적 구성이  대부분 겹치는 조선공작회의에 참석한 예비 정치국원과 장관급 장성들의 시선이 왕 대교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했다.

  "뭐요? 혹시 핵기지 몇 곳이 연결 안된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역시 그곳들은 불순분자들에게  점령되었다고 보시는 것이... 모두 다섯 곳입니다. 허가 없이 발사된 그 핵미사일들을 추적한 텐진 레이더기지의 보고와도 일치합니다."

  '역시 뺐겼다...'  참석자들이 심각해졌다. 다시는 핵으로  한국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으로부터 핵위협을 받을 수도 있었다.

  "알겠오. 각  군구사령부에 그곳으로  병력지원을 하도록 연락하시오. 그런데 아직 동북지역에서 들어온 소식은 없소?"

  동뻬이(東北), 만주지역은 뭔가  이상한 조짐이 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확인이  되지 않고 있었다.  자정 이후에 동북지역과의 모든  연락이 끊겼다. 한반도 북동부,  함경북도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파견군을 지원하는 지역이며 한중국경과  접한 지역이므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지만, 정보가 없는 판에 임시조선공작회의에서  함부로 군사적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쪽은 전파방해도  심해 아직 연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연락용 정찰기를 연속 띄웠지만  폭풍우 때문인지 통신상태 불량인지 실종상태입니다."

  "이거 원... 장님이 따로 없구만. 어쨌든, 예비역 병력동원에 만전을 다 하시오. 이 빌어먹을 전쟁을 끝내긴 해야  하는데 조선이 쉽게 받아들여 줄 지 모르겠소."

  "그럼 창 상장 동지께서는 정전(停戰)을 고려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새로이 인민해방군 총후근부장에 임명된 위앤(元) 중장이 묻자, 창 상장은 기가 막히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쏘았다.

  "동지는 그럼  이 상태에서 전쟁을  계속하란 말이오? 엄청난 능력을 가진 총후근부장이시군!"

  "..., 죄송합니다. 상장 동지. 하지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고 중장, 아니, 고 상장 동지는 어디 계신 겁니까?"

  창 상장이 고개를 홱  돌려 위앤 중장을 노려보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분노에 찬 시선이라 위앤 중장이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사람이 어디 처박혀 있는지 나도 모르겠소."

  1999. 11. 26  05:00  평양

  "김 중위, 이제 정신 드나?"

  김 종구 중위는  암흑 속에서 저 멀리  한쪽이 환하게 밝아옴을 느꼈다. 어둠 속의  광명, 그리고 그 밝음을 약간 가리고  있는 하얀 물체들. 몸에 감각이 전혀  없었다. 사후세계가 이렇다고 가사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이  희미하게 기억되었다. 아니, 그건  출산 때 처음 세상을 본 충격적인 기억이 남은 거야... 라고 생각하며  안간힘을 쓰며 눈을 떴다.

  "나야, 황 중령. 김 중위 수고했네."

  하얀 물체가 점점 형상을 형성하여 희미하게나마 낯익은 얼굴이 되었다. 김 중위는 그  대상을 느끼면서 뭔가 구역질이 나는 기분을 느꼈다. 동류의식에서 비롯된 거부감인가?

  "황 중령님? 살았군요. 높은산, 백 기선 대위님은요?"

  김 종구는 백 대위가 낙하하는 핵탄두를 향해 기체를 던진 사실이 기억났다. 아마도...  묻지 않는게 나았다.  공군사관학교 2기  선배로서 김 중위 자신이 요기(초보 조종사)일 때 백 대위는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백 대위가 막았네. 평양은 구했지."

  시야가 점점 또렷해지면서  황 중령과 그 옆에  서 있는 인민군 군의(군의관)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황 중령은 웬일인지 하룻사이에 10년은 더 늙어보였다. 이런  말을 직접 했다가는 맞아죽겠지만... 김 중위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평소에는 별로 느껴보지 못한 사랑과  회한의 감정이 울컥 쏟아졌다. 김 중위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럼 서울은요? 으윽!"

  김 중위는 다리와  허리에 강한 고통이 느껴져  다시 풀썩 눕고 말았다.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김 중위가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진정하게. 자넨 정신을 잃고 강하하다가 다리가 부러졌어. 서울은 반쪽이 날아간 모양이야."

  "예? 서울 어느쪽입니까?"

  "서울 북쪽이라고 하네.  최종목표가 청와대라고 하더군. 지금 서울은 통신이 완전 불통됐어. 정찰기가 뜨긴 했지만 피해상황을 알 수 없다네. 들리는 말로는 서울 전역이 거의 불바다가 되고 있다더군."

  부모님이, 친구들이... 김  종구는 자신만이라도 살아남은 것이 다행인가 생각해 보았다.

  1999. 11. 26  05:10(한국시간)  중국 지린성 옌지 남서방 14km

  [여기는 철군 7, 철군 2 나오라.]

  "여기는 철군 2. 보고하라, 김 중위."

  만주벌판의 차가운 눈보라가  132사(師-사단) 전차중대(連)장인 마 상위의 뺨을  후려갈기며 스쳐 지나갔다. 마  상위는 휘하의 전차 16대와, 긴급 소집된 인민무장경찰 1개 독립영(營-대대)을  지휘하여 남서쪽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전조등을  끈 수십대의 지에팡(解方)트럭이 선두의 전차중대를 뒤따랐다.

  [전방에 이상한 조짐은 없습니다. 계속 전진하겠습니다.]

  "좋아. 이 속도를 유지하라."

  마 상위는  서쪽으로 쾌속진군하는  59식 전차대열의  선두에서 54식 12.7밀리 대공기총을 움켜쥔채  명령했다. 이런 날씨에서 주포에 장착된 적외선 써치라이트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눈밭 위를 나침반만 믿고 감각에 따라 방향을  잡을 뿐이었다. 아직까지는 아무런 이상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무선통신이 두절되어 사(師) 사령부와 연락이 되지 않았고, 적의 공격이 심각히 우려되는 시점이었다.

  마 상위는 김  중위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연변조선족이면서도 당성을 인정받아 소수민족으로서는 입학도 힘들다는 군사학원을 졸업하고 당당히 인민해방군 군관이  되었다. 항일전쟁 때도 아닌 지금, 공산당원이 되기보다 힘들다는 인민해방군에, 그것도  군관으로서 복무한다면 대단한 명예였다.

  마 상위가 보기에도 연변조선족은 이미  완전한 중국인민이었다. 결코 조국을 배반하여 조선을  편들 사람들이 아닌데도 각급 인민정부에서는 조선족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여기는 철군 7, 철군 2 나와라!]

  아까와는 다르게 김 중위가 무선을 통해 다급하게 외쳤다.

  "무슨 일인가? 철군 7."

  [정찰대가 적에게 완전  포위되었다! 갑자기 배후를 차단당했다. 적의 기갑부대다. 규모는 1개 려(旅-여단), 스피커로 우리에게  항복을 강요하고 있다!]

  "....."

  역시 적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이 정도 대규모의 적이  있으리라 상상도 못했다. 마 상위는 잠시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당연히 항복할 수 없다. 적정을  더 자세히 살핀 후에 공격하고 탈출하겠다.]

  "!"

  김 중위는 역시  훌륭한 인민해방군 전사이며 군관이었다.  마 상위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적 전차는 T-80U  쏘련제 땅크다. 쏘련제 전차가 조선군에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보병전투차는 남조선제 K-200. 공격용  헬기가 상공에 떠 있다! 자, 이제 우리는 공격하겠다.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김 중위! 잠깐!"

  [중지! 잠시 대기하라. 무슨 일인가? 철군 2.]

  "그냥 항복하라.  귀관은 인민해방군의  군관으로서 명예로운  책무를 다했다."

  마 상위는 구식 정찰용 장갑차인 YW-531 APC 한 대와 해방트럭 한 대에 분승한 20여명의 인민해방군 전사들이 압도적인 적에 포위되어 덜덜 떨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측은했다.  대전차무기도 없는 그들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저항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적에게 항복할 수 없다. 내가  조선족이라서 그런 것인가? 나와 조선족의 명예에 대한 훼손이다. 우리의 조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당연하다. 귀관의  충성심은 잘 알고  있다. 귀관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한다. 적에게 포로로  잡혀 역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이것은 명령이다! 전투는 우리가 한다."

  마 상위가 차분하게 명령하자  김 중위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김 중위가 힘없는 목소리로 명령을 복창했다.

  [정찰소대장 인민해방군 중위  김 성묵과 인민해방군 전사 23명은  침략자 조선군에게 항복하여 거짓정보를 흘리는 임무에 복무하겠다.]

  "고맙다, 김 중위. 그대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하겠다."

  [적의 독촉이 심해서 이만  하차하겠다. 꼭 침략군을 격퇴시켜주기 바란다. 이만...]

  무전기가 꺼졌다.  마 상위가  헤드셋의 통신선을 바꾸어  예하부대에 명령했다. 한국군의 위치와 규모는 너무나  분명했다. 다만, 아군의 머리위로 포탄을 쏘려니 약간은 착잡했다.

  "전원 횡대로 전개하라. 적의 집결지에  포격을 실시한다! 좌표는 361, 547."

  16대의 전차가  눈밭에서 횡으로  전개하고 인민무장경찰의 박격포도 발사준비를 갖췄다.  다른 보병들은  얼어붙은 눈밭에서 참호를  파느라 분주했다.

  [퍼펑!]

  "뭐야!"

  갑작스런 섬광에 놀란 대부분의 병사들이 몸을  숙이고, 마 상위는 눈을 손으로 가렸다. 서서히 낙하하는 10여발의  조명탄 뒤로 엄청난 폭음들이 연이어졌다.

  "적이다! 공격헬기다. 응전하라!"

  동서남북 사방에서 몰려온  헬기들이 중국군을 향해 토우 대전차미사일을 쏘아댔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절반의 전차를 잃은  중국군은 서둘러 대공방어에 들어갔으나 헬기에  의한 포위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전력은 없었다. 한국군은  J-STARS기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중국군의 존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마 상위는 김  중위와의 무선교신을 너무 오래 끈데 대해 후회하고 있었다.  기관포탄이 눈밭 위에 작렬하자 아직 참호를 갖추지 못한 병사들이 거꾸러졌다.

  "젠장! 방어력도 약한 500MD야. 대공사격을 하라구!"

  500MD인가, MD500인가? 두가지 이름이 마 상위의 입안을  맴돌았다. 그래, 남조선군에 있는 68대의 공격형 500MD! 아니, 북조선에서 민간용 MD 500 수십기를 독일을 통해 구매했으므로 MD500일지도...

  '빌어먹을!  500MD든 MD500이든 무슨 상관이야?'

  내수용과 수출형, 또는  민간기와 군용기에 따라 몇가지  모델명이 있는 휴즈사의 전형적인 잠자리형 항공기들은 벌판을 스치듯 날렵하게 날아와 대전차미사일과 기관포를  쏘아댔다. 바로 오른쪽에 있던  12호 전차가 폭발하고,  다른 한 대의  해방트럭이 기관포의 제물이 되는  것이 보였다. 트럭이 화염과 함께 갈기갈기 찢어지며, 차량 주변에 엎드려 있던 전사들 위로 파편이 덮쳤다.

  후방에서 시뻘건 화염이 날아오는 것을 발견한 마 상위는 대공기총을 연사하면서 전차를 급선회하게  했다. 바로 왼쪽으로 다른  헬기가 스쳐 지나가며 3호 전차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사일에 비해 전차는 너무 느렸다.

  "저것이 연길의 불빛이다!"

  김 재호 대장이  장갑지휘차의 큐폴라를 열고 동쪽을  응시했다. 공격헬기의 기습을 받고 불타는  중국군 해방트럭들 너머 멀리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압록강을  넘은 뒤부터 방송차에서 반복해서  틀어주는 음악인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브라나'가 만주벌판에 울려  퍼지자 김 대장의 가슴이 벅차게 뛰었다.

  "네..."

  김 대장을 따라 차체 밖으로 고개를 내민 윤 민혁 대위가 스키점퍼의 깃을 세우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벌판에는 자동차화 보병들이  특유의 사륜구동차를 타고  움직이며 소탕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총성은  거의 울리지 않았다.

  백두산을 크게 우회하고  짧은 시간에 만주를 횡단하여  나진,선봉 지역의 중국군을 포위하는 이 작전은 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그러나 무인 지경의 만주를 횡단한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본격적인 전투는 지금부터여서, 윤 대위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자칫하면 남북으로 협공당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윤 대위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중국은 아직도 군사대국이었다.

  "인민군 4군단을 북진시켜! 모란강(牡丹江:무딴지앙)을 점령한다!"

  큐폴라를 닫고 차내로 날렵하게 내려 선 김 대장이 의외의 명령을 발했다. 따라  들어온 윤 대위와 다른  참모들이 깜짝 놀랐다. 작전참모인 송 병준 소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으나 감히 사령관을 제지하지 못했다.

  "네? 총장님?"

  윤 대위가 반문하자  김 대장이 씩 웃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통신장교 고 영섭 중위가 인민군 4군단에 명령을  전했다. 윤 대위는 마음먹은 대로 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포위망을 완성하면서  사령관은 당연히 포위망 바깥쪽의 위협에 대해 민감해지기  마련이었다. 일개 군단 정도를 엄호 내지는 견제부대로 운용하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원래 작전 계획에는 들어있지  않은 운용이었다. 통일한국군은  어디까지만 방어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한중국경 부근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를 점령하는 것은 당연히 금기시되고 있었다.

  윤 대위는 김 대장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서둘러 인민군 4군단의 편제를 보았다. 보병사단  3, 기계화사단 1, 보병여단 1,  경보병여단 1, 저격여단 1, 교도대로 구성된  사단급 부대 1, 기타 포병, 공병 등 지원부대. 전형적인 전시의  인민군 군단 편제였다.  그러나 인민군 4군단은  통일 전까지는 휴전선 서부전선에  전진배치되어 있던 최정예부대이다. 사실, 이 부대는 본대의  좌측을 엄호하는데 투입하기로 예정은  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km나 북진하여 모란강시를 점령한다는 계획은 있을 수가 없었다.

  윤 대위가 중국군 배치현황을 열람해 보니 다행히 인민군 제 4군단의 진로 부근에는 중국 인민무장경찰 소속의  5개 독립대대밖에 없었다. 모란강, 헤이룽장(黑龍江)성의  도시 중  하나인 모란강은 베이징과  텐진, 하얼빈 등으로 연결되는 철도 접합점으로서,  이곳을 점령하면 헤이룽장성에 주둔하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병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요충지이다. 지금처럼  진격한다면 중국군이  병력을 집결하기 전에  점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러시아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헤이룽장성에 배치된 중국  인민해방군은 뜻밖에도 남쪽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령관님, J-STARS기에서  무선연락입니다. 통일참모본부와의 무선 회선을 연결해 드리겠답니다."

  고 중위가 헤드셋을  김 대장에게 건넸다. 윤 대위가 고  중위를 향해 질책의 눈길을 보낸 것을 김 대장은 눈치 채지 못했다.

  "김 재호 대장이오."

  [수고하시오. 내레 통참에 이 차수외다.]

  "아,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잠시 긴장 섞인  침묵이 흘렀다. 몇 시간동안  통일참모본부와 무선통신이 두절되었던 2군사령부 수뇌의 대답이  이렇다니, 윤 대위가 진땀을 흘리며 이들의 통화를 들었다.

  [위치레 보아하니, 연길에 도착했구만요. 작전성공을 경하드립네다.]

  "덕택에... 감사합니다."

  김 대장이 여전히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통신망  저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침묵이 더 흘렀다.

  [대통령 권한대행 각하에 명령을  전하갔습네다. 중국 영토 깊숙히 진공하지 말라는 특별지시입네다.]

  "권한대행? 대통령이 유고이신 모양이군요. 음..."

  결국 서울이 핵폭탄에 뽀작났군. 대통령도 골로 가고... 서울이 핵공격을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까지 유고상태가 된 것은 몰랐다.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당연히 안전한 곳에서  지휘를 해야하지 않는가? 윤 대위가  머리를 긁적이며 이 사태가 전쟁과 자신의 목적에 미칠 영향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김 대장이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무슨 말씀입니까?  원래 작전계획에는 우리가 역공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 작전의 요체 아닙니까?"

  이 차수가 말을 머뭇거리는 것인지, 몇  군데를 거쳐 연결된 통신상의 문제인지 약간의 시간이 경과했다.

  [아니야요. 나진, 선봉에 있는  적을 포위, 섬멸하는 거이 작전에 요체디요. 포위망에 갇힌 적의 섬멸에 주력하시라요.]

  이 때, 이  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생각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김 재호 대장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모습이 윤 대위에게 포착되었다.

  "알겠습니다. 적 섬멸에 주력하겠습니다."

  통신기를 고 중위에게 건네준 김 대장이  잠시 투덜거렸다. 윤 대위는 일이 어긋나고 있음을 알았다. 역시 한국의  지도부는 배짱이 없는 반도인에 불과했다. 대륙의  웅혼한 기상을 가진 지도자는 없단  말인가? 윤 대위가 퍼뜩 생각난 듯 김 대장에게 물었다.

  "4군단에 대한 명령을 취소할까요?"

  윤 민혁 대위가 묻자 김 대장이 버럭  화를 냈다. 작전참모 송 소장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무슨 소리야? 모란강은 포위망 완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해. 계속 전진시켜!"

  윤 대위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에 고 중위가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중국 기갑정찰대 20여명을 생포하여  취조한 정보참모가 위관급 군관 한 명을 데려오겠다는 것이다.

  "그 중국군 중위는 조선족이랍니다."

  "그래? 데려오라고 해."

  김 대장과 윤 대위가 동시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지었다. 잠시 후 정보참모인 곽  준장이 포승에 묶인 중국군을  데리고 장갑지휘차 안으로 들어왔다. 녹색 방한모를 쓰고 있는 중국군  군관에게 김 대장이 다짜고짜 먼저 물었다.

  "자네, 우리말 할 줄 알겠지?"

  상당히 불만에 쌓인 듯한  그 중국군은 중국어로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아까처럼 한국말로 해, 임마!"

  곽 준장이 다그치자 중국군이 겁에 질려 주춤 물러섰다.

  "왜 조선은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는 겁니까? 당장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썅~ 니들이 먼저 침략했잖아?"

  곽 준장이 나서기도 전에 김 대장이 쏘아붙였다. 1997년 경, 국방부로 받은 지침에  이런게 있었다. 중국  연변의 조선족들,  연해주나 사할린,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한국인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들은 몇 세대에  걸쳐 남의 나라에 살면서도  문화나 언어면에서는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상면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향은 한반도라도 조국은 현재 살고  있는 나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이 자는 132사단 전차중대 정찰소대장 김 성묵 중위입니다."

  이제야 곽  준장이 포로의 신원을  보고했다. 김 대장이 묘한  웃음을 짓더니 찬찬히 김 중위를 살펴보았다.

  "흠, 그래? 김 중위, 우리 통일한국군에 현지입대할 생각은 없나?"

  "난 중국인이오."

  "피는 못속여. 자넨 한국인이야.  난 김해 김씨인데 자네 본관은 어딘가? 한국사람이 중국편을 들면 쓰나?"

  의외로 단호한 대답을 들고도 김 대장은 포로를 살살 구슬렀다.

  "당신들은... 결코 중국에 이길 수 없소. 당신들은 패해 반도로  도망가게 될거요. 그런데 우리가 당신네들을 도우면 우린 설 땅이 없게 되오."

  "우리가 만주, 최소한 연변지역을 영구점령한다면?"

  김 대장의 말을  들은 윤 대위가 흐뭇한 미소를, 송  소장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침략자의 본성을 드러내셨군요."

  "야, 짜식아~ 만주는 원래 한민족 땅이란 걸 모르나?"

  김 중위가 비웃음을 흘리자 옆에서 가만 듣고만 있던 윤 대위가 나섰다.

  "어쨌든 나는, 연변 조선족 동포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당신들을  도울 수 없소.  곧 고 상장 동지가 해방군을 이끌고  당신네들을 참살할거요."

  한국군이 연변쪽을 점령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한, 연변조선족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해졌다. 김 대장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더니, 고 상장에 대한 생각에 미쳤다.

  "고 상장? 아...  내전때 정면돌파로 유명한 그  고 중장 말이로군. 그 친구는 지금 어딨나?"

  "나도 모르겠소."

  1999. 11. 26  04:30(북경표준시)  중국 신지앙웨이우얼 자치구

  "이봐, 정 대원! 정신 차려!"

  "..., 차렸디."

  차가운 바위 위에  누운 정 호근 대원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이 은경 대원을  보았다. 달빛에 비친 이  대원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총소리가 울리며 사방에 파편이 튀었다. 팀장인  김 중령은 신호가 끊긴지 이미 오래였다.

  역시 핵기지를 다시  공격한 것은 무리였다. 결국은  아까운 동지들만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 동무, 내레 아까 박 동무 따라 가가서. 도와 두기오."

  정 대원이 대검을  뽑아 힘없이 이 은경에게 내밀었다. 이  대원이 대검을 물끄러미 보다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어둠 속에서 희끗한 물체가 이  대원의 뒤로 달라들고,  반사적으로 이 대원의 석궁이  그림자를 향하여 발사되었다. 비명과 연이어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나고 다시 이 대원이 정 대원의  손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했다. 정  대원이 반쯤 일어나며  74식 소총을 연사했다.  다시 이 대원의 뒤쪽에서  비명이 이어졌다.

  "항상 뒤를 조심하기요. 가는 데까지 가 봅세. 길티만 언제든 혼자 가도 되오."

  이 대원이 정 대원을 들쳐 업었다. 정  대원이 비명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이 대원은 정 대원이 고통을  참느라 근육을 빳빳이 긴장시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  대원의 옆구리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이 대원의 왼쪽 어깨를 적셨다.

  이 대원은 바위산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주변에 온통 시체였고, 위쪽은 공격헬기의 라이트와 중국군 수색대의  플래시가 번쩍이고 있었다. 조금전까지 두 대원이 있던  곳이 각종 중화기의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였다. 이 대원이 바위 밑으로 급히 숨었다.

  "이대론 안되갔소. 잠적술 씁세다."

  정 대원이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고통은 참을만 했다. 그러나 몇시간째 계속 추격을  당하자 몸과 마음이 솜처럼 늘어져 버렸다. 인간의 한계를 넘게  지친 것이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느낌이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 느낌은, 이를테면, 원초적인 욕망이었다.

  "모래 속으로 숨자고요?"

  "날래 낼 내려 놓기요. 날래~"

  정 대원은 바닥에 뉘이자  마자 무슨 힘이 남았는지 급히 야전삽으로 모래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람 키만한 깊이의  구덩이가 파였다.

  "들어 오기요."

  좁디 좁은  곳에 두 사람이  쭈구리고 앉았다. 위쪽을 위장포로  덮은 다음, 정 대원이 다시 옆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다. 이 대원의 귀에는 어둠 속에서  사각사각하는 모래 파는  소리만 들렸다. 앞에 쌓인  모래를 뒤로 옮기던 이 대원이 킥~ 하고 웃었다.

  "웃디 말고 날래 따라 오기오. 5메다는 더 파야 하오."

  "아, 미안요. 하지만 정말 땅굴파는 솜씨는 알아줘야 해요."

  정 대원이 삽질을 딱 멈췄다. 이  대원의 말에 약간은 당혹스러웠지만 그가 처해야 할, 아니, 그가 처하고 싶은 상황은 더 당혹스러울 것이다.

  "..., 생존술에 기본이야요.  자, 기쪽을 메우고 날래 이쪽으로 들어  오기요."

  이 대원이 군화발로 자신이  있던 모래굴을 무너뜨리며 정 대원이 누워 있는 곳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이 대원의  가쁜 호흡이 정 대원 바로 코앞에서 느껴졌다. 정  대원이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는  조립식 쇠막대를 늘여 위쪽을  뚫기 시작했다. 이것은 조립식 원형텐트의 속이  빈 가느다란 파이프같은 것이다.  훈련에 의해 익힌 감각으로  막대가 지표면에 닿았음을 알자, 정 대원이 줄을 당겨 막대의 위쪽 끝을 열었다.

  "휴~ 완성됐소. 이제 우릴 찾지 못할 것이오."

  정 대원 옆 어둠 속에  팔베게를 하고 누운 것이 틀림없는 이 대원이 약간은 불만스런 목소리를 냈다.

  "얼마나 이렇게 껴안고 있어야 되나요?"

  1999. 11. 26  05:50  경상북도 경산시

  "어따메, 이 잡것들이 이 행님  말을 우습게 알아 드러부네, 이~. 퍼뜩 대가리 박으랑께. 대가리란 표준말로 마빡이란 것이여. 알아 듣겄냐?"

  완전무장한 한국군 3명이 대구 동쪽,  경산시에 있는 저수지인 중산제의 옆길에서, 중산동에 위치한 제일합섬으로  출근하던 근로자 5명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총구를  들이 미는 군인들의 서슬에  놀란 근로자들은 시키는 대로 원산폭격을  했으나 한 사람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를  땅에 쳐박고 양팔을 허리  뒤로 잡은 중년 남자  둘과 젊은 여자 둘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을 참았다. 이들이 타고  온 봉고차는 아직도 시동이  켜진 채 엔진소리를  내고 있었다. 청년이 뻣뻣이 서서 항의했다.

  "와 그라능교? 와 못잡아 묵어서 난링교?"

  "이 쌍렬의  새키들아. 니들은 강주사태때  전라도 놈들  빨갱잉께 다 죽여뿌러라 해싸코 지랄  안했냐. 우리 아부지가 그때  공수부대 총맞고 디저부렀다. 갱상도 군바리 그 개시끼들 땜시로."

  군인 한명이 그 청년의  어깨를 개머리판으로 치자 청년이 어깨를 쥐며 쓰러졌다. 다른 군인들이 청년을 군화발로 계속 짓밟았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른 근로자들은 무서워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욕을 하던 군인이 대검을 꺼내 청년의  가슴을 찔렀다. 청년의 눈에 공포와 고통,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메마른 풀 위로  붉은 피가 흘렀다. 땅이 피를 거부한듯 피는 땅으로 스며들지 않고 길쪽으로 흘러갔다.

  "난리통에는 누가 디져도  암 말 모든다. 육이오  때도 그랬고 강주에서도 그랬다. 이 새끼는 간첩질 하다가 디진거여. 느그들 알겄냐?"

  "...예."

  "아니~ 이 쌍렬에 자슥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군인이 군화발로 중년근로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사람들이 연달아 옆으로 쓰러지며 비명과 신음이 계속 이어졌다.

  "이것들이 디질라고 환장해 뿌렀냐? 복창소리 보지. 알겄냐?"

  "예!"

  중년 남자 둘은  고통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땅에 처박은 채 이를 악물었다. 여공들은 난생 처음 대하는 공포에  질려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래. 오른짝 기집애 일나라. 빨간색 파카 입은 년, 그래, 니."

  생머리의 여공이 덜덜 떨며 일어났다. 시체를  보고 나서는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80년에 강주에서  갱상도 공수부대 새끼들이  대검으로 여자 젖가슴 짜른 거, 니 아냐? 길가는  사람 아무한테나 칼질 한거지. 그때 애기 밴 여자 배때지도  갈라부렀다. 임산부가  데모하다 죽었겄냐? 그건  아냐? 아냐고?"

  여공이 겁에 질려  말도 못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  이 시간에는 길에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여공이 간절하게 애원하는 눈빛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군인이 대검을 꺼내들었다.

  "느그들 다 일나 앉어라. 어쩌케 짤랐는지 느그들한테 보여줄랑께."

  주춤주춤 일어난 근로자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여공이 뒷걸음질치려 했으나  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얼어 붙었다. 군인  한명이 여공의 머리채를 잡아 채 무릎을 꿇렸다.

  "살려줘요."

  여공이 머리채를 잡은 군인의  바지를 잡고 매달리자 그 군인이 소총 개머리판으로 여공의 어깨를  내리쳤다. 우지직 하며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잠시 후 그 여공이 고통에  겨워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며 울었다.

  "누가 니를 죽인다냐? 그때 가슴을  어~쩌케 짤랐는지 보여줄랑 거지. 벗어. 벗어, 이 쌍년아!"

  "꺄악~~"

  군인 한명이 여공이 반항 못하게 잡고, 다른 군인이 대검으로 여공의 옷을 북북 찢었다.  잠시 후에 대검에 긁힌 상처 투성이의  알몸이 드러났다. 추위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수치심 때문인지 여공이 덜덜 떨었다. 군인이 칼을 여공의 턱밑에 댔다.

  "하갼, 느그 갱상도 새끼들은 씨를 말리 뿌러야 대. 전두한이 노태우 그 개새끼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얼매나 많이 죽이 뿌렀냐? 그런 새끼들이 좋다고 느그들은 민정당 새끼들한테 표  몰아주고 말이여. 글고 죄없는 우리  절라도 사람  빨갱이라고 욕하고. 느그들은  사람도 아니랑께. 자, 느그들 똑바로 쳐다 바라. 고개 돌리는 새끼는 디질 줄 알어."

  말을 마치자마자 그 군인이 한손으로 여공의 젖가슴을 잡고 시퍼렇게 날이 선  대검으로 그 젖가슴을  도려냈다. 피와 비명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너무 놀란 그  여공은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무릎을 꿇고 있던 다른 여공이 고개를  돌려 외면했으나 옆에 있던 군인이 개머리판으로 그 여공의  머리를 쳤다. 쓰러진 여공의 머리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이거~시, 유방이라는 거시여. 느그들은 오월의 노래라고 아냐?"

  그 군인이 방금 도려내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젖가슴을 한손에 쥐고 근로자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서있는  이 군인은 흡사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보였다. 노동자들은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패전 직전의 전쟁  분위기에서 병사들이 미친 짓을 하는 수가 있다지만,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자신들에게 이런 짓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무리 전라도 군인이라지만,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정도로 그들의  원한이 컸단 말인가?  약간 마른 체구의 중년근로자 한 사람이 부들부들 떨었다.

  "....."

  "이런 시러배 잡것들이! 아냐, 모르냐?"

  "아, 압니다."

  그 중년 근로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른다고  했다가는 무슨 화를 당할지 몰랐다. 전라도 사투리의  군인이 음흉하게 미소를 짓더니 그에게 다가왔다.

  "그래? 그러믄 니 한 번 불러 바라. 잘 못부르믄 니도 디질 줄 알어. 알겄냐?"

  "예, 예."

  젊었을 때 노동운동에 참가한 적이 있어 웬만한 운동가요는 다 알고 있는 그  중년 근로자는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질줄은 상상도  못했다. 말로만 들었고, 별로 믿지도 않았던 80년  광주에서의 일이 이곳에서 벌어질 줄이야. 중년 노동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다시는 살아서 가족을 보지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그만, 그만! 잘해 부렀어. 다음, 니 한 번 해 바!"

  군인이 다른 중년  근로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검은  가죽잠바를 입은 그 근로자는 덜덜  떨더니 그 노래를 모른다고 했다. 다른  군인들이 달려들어 그 근로자를 개머리판으로 치고 군화발로 짓밟았다.

  "어메~ 이런 쌍놈에 새끼, 그 노래도 몰르다니. 우리 절라도  사람들에 한이 맺힌 노래여~, 이 잡것아."

  "죄송, 죄송합니다."

  폭력이 멈추자 그 근로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눈두덩이 퍼렇게 멍들고 입안이 터졌는지 입에서 피가 계속 흘러 나왔다.

  "시방 나가 기분이 좋아서 이만 하고 느그들은 돌려 보내주겄다. 담부터 검문하는디 건방 떨면 저 새끼같이 죽이뿐다. 알겄냐?"

  노동자들의 눈에  처참하게 널부러진  청년의 시체가 보였다.  아직도 뜨거운 피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가슴에서 흘러 내리고 있었다.

  "예, 예!"

  "그럼 저 잡것들 데꼬 가부러. 느그들 꼴만 바도 배알이 꼴린께."

  "예, 알겠습니다. 수고 하이소."

  근로자들이 청년의 시체와 사경을 헤매며 쓰러져 있는 여공을 들쳐 업고 봉고차에 실었다. 사람들은 군인들이 뒤에서 총을 쏘지나 않을까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자마자 도망치듯 시내쪽으로 차를 몰았다. 백미러에 비친 무장군인들,  아니, 인간의 탈을 쓴 악귀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1999. 11. 26  05:20(베이징표준시)  중국 랴오닝성 센양

  린 치앙 대교는 관제탑에서 출격지휘를  하다가, 활주로에서 출격준비중인 조종사들의 터져 나오는  비명을 들으며 도저히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조종사들과의 무선교신 내용은 한결같았다.

  [엔진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다른 계기들도 이상합니다!]

  린 대교가 유리창을  통해 활주로에 늘어선 전투기들을  보았다. 전투기들은 고장난 장난감처럼 꼼짝 않고 있었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바삐 뛰는 모습이 보였다.  전투기 조종석에서 기어 나오는 조종사도 있었다. 출격준비 중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린 대교가 멍한  표정으로 서있는데 레이더 담당 전업군사가 비명을 질렀다.

  "레이더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무선기가 고장입니다!"

  통신병까지 비명을 지르자, 린 대교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 도대체 무슨 소리야? 어떻게 된거야?"

  1999. 11. 26  07:00  서울 용산, 국방부

  "빨리! 조심하고!"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는 가운데  수경사 소속 공병감인 조 대령이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잔해  밑에는 대통령과 한국군 최고 지휘관들이  갇혀 있었다. 몇시간째 이 작업을 해  오고 있지만 쉴 틈이 없었다. 크레인과 포클레인 등의  중장비가 총동원되어 이 작업에 나섰다.

  [선발대가 지하 1층에 도달했습니다.  구멍을 뚫고 지하 2층으로 계속 진입시키겠습니다.]

  드릴이 벽을 뚫는 듯한 엄청난 소음 사이로 선발대장 김 소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 대령이 통신기를 잡고  주변의 포크레인 굉음에 못지 않은 소리로 외쳤다.

  "김 소령? 조심해서 접근하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야!"

  [잘 알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 대령이 부들부들  떨었다. 추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대통령이 죽었다면... 핵공격까지  당한 마당에 정부가 중국에  항복하거나 화전양론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중국의 공격에 쉽사리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

  [시쳅니다! 시체 3구를 발굴했습니다.]

  "뭐야? 누구야? 신원파악은 되나?"

  [사병들입니다. 한 명은 하사관이고... 경비병력 중 일부로 보입니다.]

  조 대령이 가슴을 쓸었다. 아직은 어둡기도  했지만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정신이 아득해져서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보였다.  어디선가 방사능 낙진경보가 길게 울려 퍼졌다.

  [생존잡니다! 건물 잔해를 뭔가로 두들기는 소리가 들립니다!]

  "뭐야? 작업 중지!"

  조 대령의 한마디에  중장비들이 일시에 엔진을 멈췄다.  갑자기 적막이 찾아오고 조 대령이 무전기에 귀를  귀울였다. 무전기에서 강력한 소음이 그의 귓전을 때렸다.

  [벽을 뚫고 파이프를 넣었습니다.]

  잠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이쪽에는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조 대령 생각에는 구조대원들끼리 말을 주고받는 듯 했다.

  [중령님. 구조댑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꺼내 드리겠습니다.]

  ".....!"

  '생존자다!' 조 대령의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빨리, 빨리'라는  말이 조 대령의 입안에 감돌았다.

  [.....]

  "그쪽에서는 무슨 말 없나?"

  답답해진 조 대령이 김 소령에게 묻자, 뜻밖에도 희소식이 왔다.

  [대통령 각하는 무사하시답니다!]

  "만세! 김 소령. 빨리 구출해 드려! 병력지원을 해줄까?"

  [어차피 이곳엔  공간이 없습니다. 30분 후에  교대병력을 보내주십시오.]

  "알았어. 조심하게. 일단 지상작업은 중지시켰네. 인명구조가 최우선이야! 어이! 이쪽으로 구급반 대기시켜!"

  "이제 우린 살았습니다!"

  구조대의 굴착드릴이 벽을  뚫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가운데, 이 소리에 지지 않을만큼  큰 소리로 국방장관이 외쳤다.  여기저기 살아남은 자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작은 구멍을  통해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으로 홍 대통령은  내무장관이 미소를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싸늘히 식어가고  있었다. 대통령이 허탈했는지 벽에 기대 앉았다.

  굉음과 함께 드디어  벽이 뚫리며 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구조대원들이 좁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는  모습이 쓰러진 기둥 너머로  보였다. 홍 대통령이 탈진한채 앉아 있는데, 갑자기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천장이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홍  대통령은 아득한 암흑의 나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1999. 11. 26  06:20(북경 표준시)  티벳(서지앙 자치구), 라싸

  "자유 티벳 만세!"

  "달라이 라마 만세!"

  "우리의 판첸 라마를 찾자!"

  티벳의 수도  라싸(拉薩)의 번화가인  빠지아오지에(八角街)의 아침에 때아닌 함성소리가 요란했다. 붉은 승복을 걸쳐  입은 백여명의 티벳 승려들과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노천 시장의 거리를 행진했다.

  이들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티벳 여성 빠르 바티와 청년들은 빠지 아오지에의 중심인 죠칸사(大昭寺  ; 중국식으로 따자오쓰)를 한바퀴 돌고 나서 北京東路를 따라 포탈라궁을 향했다.  노란색 라마 깃발을 흔드는 티벳 청년 나사날  바타파를 중심으로 시위대의 숫자는 점점 불어나고 행진속도도 빨라졌다.  빠르 바티가 휴대용 확성기로  외치며 시민들을 계속 선동했다.

  [티벳은 우리의 땅입니다. 중국인들과는  문화도, 언어도, 뿌리도 다른 우리들의 땅입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이곳에 중국인들을 이주시켰지만, 보십시오. 중국  여성은 이곳에서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땅이 우리의 땅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로와 접해 있는 집들의  창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시위도 많은 민간인 희생자만  남기고 실패로 돌아갈 것인가? 시위대의 눈앞에  포탈라궁 바로 동쪽, 남북으로 뻗은 해방로 진입로에  공안요원들이 일렬로 도열한 것이  보였다. 행진하던 시위대의 선두 대열이 딱 멈췄다.  공안요원들의 머리 위에 나부끼는 플래카드가  이들의 동공에  확산되었다. '축 서장자치구  해방 34주년!', 티벳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그 글이 쓰여진 플래카드도 총을 든 공안요원들만큼 무섭게 느껴졌다.

  "총이다!"

  어느 노인이 지른  외마디에 시위대들 사이에 공포가  엄습했다. 앞에 늘어선 공안요원들의  대열은 그들에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보였다. 성스러운 흰산보다 더 높아보였다.  이제 우리는 죽고, 평화적인 독립시위는 또 실패하고 마는가? 겁먹은 시위대 일부가 주변 상가와 주택가 골목으로 뛰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대열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빠르 바티가 나섰다.

  [겁내지 마십시오! 적이 총을  쏘면 우리도 쏠 것입니다! 이번엔 기필코 독립을 쟁취합시다. 세계 열강과 한국, 러시아가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 총도 러시아제입니다. 사격준비!]

  빠르 바티가 검은 색의  짤막한 자동소총을 흔들며 명령을 내리자 선두의 청년들이 일제히 옷 안에 감춰둔 AKR을  꺼내 공안요원들을 겨눴다. 일순 공안요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비무장한 시위대를 일방적으로 학살하면 되었다. 티벳인들은  달라이 라마의 무저항주의를 따라 이따금  평화시위만 했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공안요원들이 잔뜩 겁을  먹으며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  수많은 티벳인들이 이 사건의 경과를 주시하고 있을  때, 요란하게 스피커가 울렸다.

  [쏴요! 침략자들을 몰아냅시다!]

  일렬로 앉아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던 티벳인들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그동안 비무장  민간인들만을 상대해 온 공안요원들은  분노에 찬 청년 티벳인들의  적수가 아니었다.  대여섯명이 총탄에 맞고  쓰러지자 공포에 질린  중국인 공안요원들은  일순간에 뿔뿔이 흩어졌다.  주변에 숨어 구경하던 티벳인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달라이 라마의 노선에 따르지 않는 방법이긴  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보는 통쾌한 광경이었다.

  [자, 포탈라궁에서 침략자들을 몰아냅시다! 앞으로~~~ ]

  빠르 바티가 외치자 일시에 도로를 메운 수천명의 시위대가 노도처럼 해방로를 메꾸며 포탈라궁을 향했다. 소년들이  전봇대로 올라가 플래카드를 걷어 냈다. 땅에 떨어진 플래카드는 즉시 찢기고 불태워졌다. 무장 시위대의 일부가 서장자치구 인민정부 청사와  공안청 청사를 점령하고, 노동인민문화궁, 시인민정부 청사, 공안국 등은 성난 시위대가 난입하여 불태워 버렸다. 겁에  질린 중국인 공안요원들은 대처도  못하고 사로잡히거나 시외로 탈출했다.  티벳인들은 중국의 강제병탄 이래  최초로 승리를 맛봤다.

  "미스터 타시. 무기를 더 구해 줘요. 저 많은 사람들을 모두 무장시키려면 무기가 더  필요해요. 공안청 무기고를 털었지만  충분히 나오지는 않았어요."

  죠칸사를 남쪽으로 바라보는 빠지아오지에의  시장, 허름한 2층건물에서 이번 무장폭동의 지도자 빠르 바티가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 남자를 졸랐다. 옆에는  최초의 승리로 잔뜩 격앙된  얼굴의 티벳인들이 총을 어깨에 맨채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미스 팔바티, 군사훈련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는 인민해방군 정규군에 맞서 싸울 수 없소. 티벳해방전선의 진입을 기다리시오."

  타시 구르메라고 불리는 이  청년은 다른 티벳인들과 함께 짬빠(보리, 보리밥)를 먹고 있었으나, 그의  외모는 아무리 보아도 티벳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티벳인이라면  강렬한 자외선 때문에 검붉게  그을리고 씻지 않아 때에 절은 피부로 확연히 구분될 수  있지만, 이 청년은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목욕울  했음이 분명했다. 춥고 건조한  티벳에서 목욕이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티벳인들은  심지어 대변을 보고도 뒤를  닦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티벳의 가혹한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무슨 소리예요? 지금  티벳에는 중국 정규군이 거의  없어요. 작년에만 해도  50만명의 인민해방군이 있었지만 한국과  전쟁을 치르는 통에 지금 중국은 티벳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요.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예요! 그리고 제 이름은 빠르 바티라고요."

  망명 티벳  여성답게 깔끔한 모양새의 빠르  바티가 계속 다구쳤지만 타시 구르메의 입장은 단호했다.

  "미안하오, 빠르 바티. 어쨌든 나는 학살을 방치할 수 없소. 르카쩌(日喀則) 인근에 인민해방군 1개 사단이 있어요. 단 하루면 이곳 라싸로 달려올 수 있소. 해방전선에서 그들을 저지할  수 있느냐가 독립의 관건이 될 것이오. 그들의 승전보를 기다리시오. 이것은 해방전선과의 약속이기도 하오."

  타시 구르메는 학생  때 일본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을  후회했다. 삼지안 파르 바티와 우(无) 고안야던가?

  "그럼 왜 우리가 봉기하도록 재촉했죠?"

  "....., 라싸의 봉기소식을 듣고 틀림없이 인민해방군이 이쪽으로 올  것이오. 해방전선이 그들을 몰아낼 거요. 그렇게 된다면 티벳은 독립할 수 있소."

  "한국 수도에 중국이 핵을 발사했다는 게 사실이죠?"

  아직도 라마기를 손에서 놓지  않은 나사날 바타파가 묻자 타시 구르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사실이오."

  "흥! 결국 한국이 다급해지니까 이제야 봉기를 허락한 것이군요. 그렇다면 계속적인 지원을 해 줘야 할 거 아녀요?"

  타시 구르메는 재촉하는 빠르  바티를 쳐다 보지도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타시 구르메, 그대와 같은 티벳사람이요. 무기는 해방전선에  지원되오."

  1999. 11. 26  07:40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이 PD! 가수,  아나운서들 제때 도착하겠나? 현재 어느 정도  준비됐어? 8시에는 출발해야 해!"

  "준비상황 점검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자재준비 완료. 방송요원 소집 완료, 아나운서와  진행요원들, 관현악단, 합창단 집합 완료됐습니다. 어제 밤에 미리 연락했으니까요. 가수는 아직  몇 명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빌어먹을! 전화도 안되고... 제때 안나오고 건방 떠는 것들 있으면 모조리 잘라버려!"

  한국방송공사 TV본부 2국 직원들은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전날부터 여의도에 있는 방송국에서 밤샘작업을 했기 때문에 지옥같은 핵폭탄의 불길을  피할 수 있었다. 직원 몇 사람이  가족들을 찾으러 새벽에 시내로 들어가려 했지만 원효대교  등, 시내로 통하는 길은 모두 봉쇄되었다.

  서울 시내는 핵폭발로 인해 아직도 아비규환이었지만 불길은 대충 잡히고 지금은 인명구조와 복구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2국장인 김 승종 국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TV 뉴스를 보고  있었다. 계속되는 긴급보도를 함께 보며 이 PD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도로사정이 여의치 않은 모양입니다. 통행제한된 교량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지방으로 피난간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요? 또다시 핵폭탄이 날아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무슨 소리야? 걔네들이나  우리나 모두 종군하고 있는  거야. 전쟁터에 나가 직접 싸우는 군인만 군인이  아냐, 우리도 군인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런데 도망가?"

  "아! 저기 트리플 엑스가 오고 있습니다!"

  신세대의 우상, 댄스  락그룹 트리플 엑스가 보라색으로  물들인 머리결을 일렁이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세 사람에  이어 이들의 매니저와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오자마자 김 국장은  따귀를 올려붙였다. 최고 인기 그룹인 이들을 이렇게 다루다니, 평시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 자식들아! 7시 반까지  오라고 했잖아? 이젠 컸다고 시건방 떠는거야?"

  김 국장이 이들에게 발길질까지  해댔지만 매니저도 서슬 퍼런 김 국장에게 감히 나서질 못했다.

  "악기는 너희들이 운반해. 인원을  최소한도로 줄여야 하니까. 매니저, 운전사,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다 못가니까  알아서들 해! 잠시  후에 출발한다. 개인행동은 용납 못해. 이건 군 작전이야! 알겠나?"

  1999. 11. 26  06:50(베이징 표준시)  중국 베이징 쯔진청(紫禁城)

  '나는 아직 살아있다.'

  피스 소속의 킬러인  구스타프는 꾸꽁(故宮) 깊숙한 곳인  타이허디엔(太和殿) 다락에 숨어있었다. 아침인지 대전 다락에 희미하게 볕이 들고 있었다. 대전(大殿) 부근에서는 아직도 중앙당 직속인 경위국 소속 군인들이 뛰어 다니는  소리가들려왔다. 그들은 몇시간째  정치국원들을 살해한 범인을 샅샅이 수색하는 중이었다.

  구스타프는 배낭을  열고 소지품을 점검했다. 미니미  기관총과 200발 들이 탄창 하나, 여분의 탄알, 권총,  그리고 마지막 임무에 사용할 체코제 플라스틱 폭탄  셈텍스가 그가 쓸 수 있는 무기의  전부였다. 근접전에서 유효한 수류탄이나  최후의 무기라는 대검(帶劍)도 없었다. 얼굴없는 협력자는 왜 수류탄과 대검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자살할 무기는 준비해 줘야지, 젠장!'

  투덜거리던 구스타프는 갑자기 자신의 원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스페인 의사  카를이 지어준  구스따브라는 이름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스페인 사람 카를이, 베트남인과 중국인의 혼혈이며 미국인인 자신에게, 치열한 멕시코 내전의 와중에서  왜 독일식 이름을 지어줬을까? 수년째 풀지 못한 의문이었다.

  '왜 그는 내  어머니의 조국에 나를 보냈을까? 내가 차이나  마피아와 싸웠기 때문에 안심했을까?'

  보트 피플인 남부 베트남인 아버지와 밀입국자인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구스타프는 어렸을  때부터 자아정체성(自我正體性)의 심각한 혼란을 일으켰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난 최악의 부모에게서 난 자식이며 미국이라는 절대적 인종차별국가에서 그는  성장했다. 그가 성장하고 나서도 최근까지  정체성의 혼란은 더 심해졌다.  공산 베트남은 중국에 점령당했고, 어머니의  출신지역인 산둥성은 남부 광둥-푸젠  연합에 의해 식민지 상태로 떨어져 버렸다.

  그는 모두가  싫었다. 동족상잔을  일으키고 아버지를 떠돌이로  만든 베트남, 어머니를 죽도록 고생시키고 결국은 추방해버린 중국, 철저하게 자신을 차별하여  뒷골목으로 빠질 수밖에  없게 한 미국 모두  싫었다. 더욱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최하층민  부모가 더 싫었다. 그는  복수를 하고 싶었다. 뚜렷한  대상은 없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아무에게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제 그 대상은 중국이었다.

  '한국은?' 그는 한국을  생각하자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들었다. 거대한 나라 중국에 당당히 맞서는 한국이라서?  아니었다. 뭔가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유전자 깊숙히 새겨진 공포, 그것은 뭔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벽처럼,  특정 인종에 대한 공포였다. 원시시대 인간이 불과 용을 무서워하고 경외하듯,  중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자라면  당연히 가지는 심연(心淵)의 두려움이었다. 뿔달린 구리투구를 쓴 용맹한 어느 무신(武神)에 대한  경외감, 북쪽 하늘  너머로 엄습해 오는 공포,  이것이 중국인에게 수천년간 이어져 온 본능적 두려움이었다.

  '까를, 구스따브...'

  구스타프는 카를과 그가  지어준 이름, 구스타프를 되뇌이다가  한 이름이 떠올랐다. 정신과의사 칼 구스타프 융(Karl Gustav Jung)...

  1999. 11. 26  08:05  경상북도 경산시, 경산경찰서

  "1명 사망, 2명  중상... 피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전라도 출신  군인들의 소행이라고 합니다."

  "기가 막히는구만. 우 과장, 군인들이 그런 미친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 이런 난리통에 말이지."

  경찰서장에게는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서울  반쪽이 날아가고 개성시가 완전  소멸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한국은 전쟁에서 진 줄  알았다. 그런데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경북지방경찰청이나  검찰청, 주변 군부대에서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새벽에 관할구역에서 벌어진 일이 더 급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80년  광주에서도 실제 일어난 일이잖습니까?  익명에 묻혔을 때의 무책임한  상황인식과, 폭력을 행사하고픈 잠재적 본능...  전쟁같이 어수선할 때에는 그런 일이  더 자주 벌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형사과나 수사과보다는 보안과에 맡긴 것은 잘한 일이었지만, 인근 군부대에  연락해봐도 사고지역에 경비병력을 파견했다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보안과장인 우 과장은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사건현장에서  녹음했다는 테이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간부 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혹시 중국이 특수부대를  파견한 것이 아닐까요? 후방에서 소요사태를 일으키기 위해  말입니다. 이상한 것은... 가해자 군인이 3명이라는데 녹음된 테이프에는 피해자들 외에는 가해자 한 사람의 목소리만 녹음됐습니다."

  서장은 대공과장의 말도 듣고보니 그럴듯했다.  여기만 해도 정보과장과 조사과장은 그런 군인들을 찾아내서 공개총살형을 시켜야 한다고 흥분하고 있었다.  서장으로서는 심히  우려할만한 일이 실지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라도민과  경상도민의 충돌, 만약 만행을 벌인 전라도군인들을 찾아내 처벌한다 해도 전라도 사람들은 틀림없이 조작이라고 믿을 것이다... 라는 걱정이 앞섰다.

  "이 사건은 당분간 비밀에 붙이시오.  정보과에서는 시중에 나도는 유언비어를 수집하고, 보안과는 군부대와 더 접촉해 보시오. 보도매체에는 협조를 요청하고..."

  "예."

  서장의 명령에 과장들이 대답은  했지만 이미 이 사건의 전말은 경산이나 인근 대구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아직은 특별한 일은 없었으나 전라도 출신 주민들이 공공연하게 이웃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는 정보나 거실 유리창이 깨졌다는  신고가 많이 들어왔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고, 우 과장이 잠시 통화하더니 놀란 얼굴을 하며 서장에게 말했다.

  "정오에 대구에서  궐기대회가 열린답니다. 전라도 군인  체포와 총살을 요구하며 군부대 정문까지 시위행진을 한다는 첩봅니다!"

  흥분을 가라앉히며  사투리를 쓰지 않고 있던  서장이 급기야 분통을 터뜨렸다.

  "그기 머꼬? 글마들 미쳤다 아이가! 이런 난리통에 와 지랄을..."

  1999. 11. 26  07:15(중국 표준시)  중국 신지앙웨이우얼 자치구

  "아직도... 윽, 불안하오?"

  "..., 벌건 대낮에 이동하다뇨. 적이 쫙 깔렸을텐데."

  이 은경 대원은 부상당한 정 호근 대원의 상태를 잠시 확인하고 나서 계속 부축하면서 걸었다.  이 대원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태양이 동쪽 지평선에 한뼘쯤 떠올라 있었다. 태양  아래 멀리 중국제 장갑차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찾는듯한 모습이었다.

  "앙이오. 그들은  차량으로 이동하니끼니 우리가  먼저 알 수 있디요. 밤에는 적외선탐지기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디요."

  "그렇긴 하지만..."

  이 대원은 겁이 나기는  했지만 어제의 격전지에서 조금이라도 더 벗어나고 싶었다. 새벽에  잠시 수색이 뜸해진 틈을  타서 모래구덩이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가능한 더 멀리 서쪽으로 가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지혈은 했지만 아직  정 대원의 상처는 깊었다.  여분의 사막용위장복이 없었다면 그는 모래 위를 기어가는 장난감소방차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막에도 길이  있디요. 장갑차량이레 함부로 길을  벗어나디 못하는 법이야요."

  어디선가 헬기의 굉음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자동적으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직승기레 빼구..."

  위장복을 머리  위까지 덮은 정 대원이  무반사처리된 망원경을 꺼내 헬기와 주변 지평선을 감시했다. 아직 위험은 없었다.

  "유르트!"

  "그게 뭐죠?"

  아지랑이 너머 멀리  수평선 가장자리에 작은 구조물들이  보였다. 꼬물꼬물한 것은 사람이 틀림없는데, 주변에 차량 두 대가 보였다.

  "위구르족이나 주변 유목민족들이 사용하는  천막이요. 중국 병사들에 검문이 끝났나보오."

  "혹시... 저들에게 도움을 받자는 것은 아니겠죠?"

  "도움이레 받아야겠수다. 빨치산이레 보급투쟁이 기본 앙이갔소?"

  1999. 11. 26  08:25  중국 만주 무딴지앙(牡丹江)시 남방 17km

  인민군 4군단은 드넓은  만주벌판에서 확대전진대형으로 전개하여 급속 북진하고 있었다.  선두는 제 15 기계화사단, 남북대치상황에서는 경기도 북부의 서부전선에 전진배치되었던 정예답게 기계화되어 전진속도는 시속 40km에 육박했다.

  이 뒤를 보병사단,  경보병여단 및 각종 지원부대가 따랐다. 폭  20km의 작은 구멍으로 약 6만명의  병력이 무딴지앙으로 몰려갔다. 어디에도 적은 보이지 않았다. 5개 독립대대  정도라는 인민무장경찰도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었다. 전방에서 쾌속전진하는  기갑정찰대대가 국군 전자전기에서 제공해준  중국 인민무장경찰의 주둔지를  급습했지만, 막사마다 텅 비어 있다는 보고였다.

  "어드레 간기야?"

  군단장인 최 성만  대장이 투덜거렸다. 작지만 손쉬운  사냥감을 놓쳐 안타깝다는 기분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만주는  적지라기보다는 무주공산이었으며, 어떻게든 공을 세워보고 싶어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1999. 11. 26  08:30  서울 용산, 중앙대학교 부속병원

  "연길을 점령했단 말이죠..."

  홍 지영 대통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워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침대머리에 붙은  환자상태표에는 두개골복합함몰 골절, 좌우대퇴부 연부조직손상, 우측경골골절,  우복막출혈 등의 글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응급처치를  끝낸 중대부속병원 의사들은  다른 민간인 환자들이 더 급하다며 돌아가버렸고,  경상에 그친 국무위원들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예... 통참의 2군사령부에 대한 지휘권 장악에 문제발생? 그럴  리가... 예... 아니오. 아무래도 총리가 당분간  권한대행을 계속해야겠소. 예? 양 중장은 현역인데... 알겠소. 국방장관은 순직했으니 그 인사는 내가 추인하겠소."

  홍 대통령은 허탈했다. 전쟁수행에 꼭  필요한 국무위원과 정부위원들을 모두 잃은 것이다. 국방장관, 안기부장, 내무장관, 합참의장이 지금은 차디찬 시신이 되어  영안실에 누워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었다. 부인과 비서실, 경호실 직원 등 청와대 식구들, 개전 첫날 테러범들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었던 93경비대대의 박 철민 중령과  병사들,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시민들...  자신이 지켜야할  시민들이 100만명 가까이  사망했다는 TV보도는 대통령을 전율케했다.

  "아니오. 총리께서  계속 대전에서  지휘하시오. 난  서울을 지키겠소. 예. 수고하시오."

  수화기를 간호장교에게 건넨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에게 내린 첫 명령은, 군의관들을 민간인 구호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40대 간호장교 한 사람만 빼고 대통령 주변에서  서성이던 군의관들이 모두 방 밖으로 밀려 나갔다.

  "각하! 이 원고를 읽어 보십시오. 각하께서 건재하시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려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도진들이 병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병실  밖에서는 각하의 생존을 알리는  생방송이 한창입니다."

  공보처장관 오  석천이 대통령에게 서류철을 넘기자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내가 무슨  염치로 국민을 뵐 수  있겠소. 국민을 지키지  못한 내가 먼저 죽었어야지..."

  "아닙니다. 국민들에게는 각하께서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서울에 계속 계셨다는 것, 국민들과  함께 하다가 역시 국민들처럼  중상을 입었다는 것, 그리고 계속  서울을 지키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리면 국민사기양양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역시 나치 선전상(宣傳相) 괴펠스(Goebels)인가...'

  대통령은 5공 초반기의 언론학살에 관련이 있다는 공보처장관을 붕대 사이로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은 얼굴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옳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보처장관은 내각, 또는 정부의 대변인이다. 대변인이 대통령에게 바턴을 넘겼다는 것은 꿍꿍이속이 있다는 얘기였다.  홍 대통령은 오 장관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1999. 11. 26  07:40(중국 표준시)  중국 베이징, 베이징판띠엔

  지하에 임시로  마련된 상황실에서는  조선공작회의가 속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보가  부족한 이들은 대부분의 정보를  증폭된 위성수신방송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상황실에  설치된 대부분의  TV모니터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전쟁  진행상황과, 서울에서 발생한 핵폭발을  집중 보도하고 있었다.  한 화면에서는, 방사능방호복으로 완전무장한  CNN 기자가 폐허가 된  서울 한복판에서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창  상장과 정치 국원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쟁을 끝내리라 생각했던 핵공격은 오히려  중국지도부를 핵보복의 공포에 시달리게 했다. 지금도 지도부는 각 중요 레이더기지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주석 동지! 관외(關外  : 만주)와의 무선통신이 부분적으로  재개됐습니다!"

  왕 대교가 서둘러 회의실로  들어서며 외치자 창 상장이 지체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제 1 야전사(野戰司) 사령원 동지를 대주게."

  한반도 북동부를 점령하고 있는 제 1 야전군사령부는 어떤 상황일까? 모든 정치국원들이 갖고 있는 최대  의문점이었다. 8시간 가까이 전선상황을 모른다는 것은  최고사령부격인 조선공작회의를 눈뜬 장님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단둥의  제 2 야전사는 인민해방군이 신의주를  잃자 미리 센양으로 옮겼다. 조선군이 한반도 북동부에  대해 어떤 압박을 가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전략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뇌전(雷電 : 유선통신)은 어떻소?"

  총후근부장 위앤 중장이 소근거리며  묻자 왕 대교 역시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신임  총참모부장 우이 롄찬  중장이 그들의 말을 듣기  위해 몸을 기울였다.

  "우전부(郵電部) 전신총국에서 예비용  전전자교환기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에잉~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될 것이오. 통신망의 헛점을 적에게 노출시키다니..."

  우이 중장의 투덜거림은 창  상장이 통화를 시작하자 바로 끝나고 말았다.

  "차오 동지? 나 창 상장이오. 그렇소.  방금 통신이 재개됐다 하오. 그곳 상황은 어떻소? 음..."

  창 상장이 안면근육을  심하게 꿈틀거렸다. 그가 수화기를  천천히 내리며 긴장하고 있는 회의 참가자들에게 선언했다.

  "조선군이 압록강을  건너 안투(安 )와 엔지(延吉)를  함락했소. 이는 명백한 조선의 만주침공이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두만강을 건너 1야전사 병력에 대해  공격을 감행하고 있소. 1야(野)는 포위됐소! 우리는  대장정 이래 최악의 상황에 처했소."

  1999. 11. 26  08:45  경기도 남양주

  "대통령 각하레 과연 용명하시구만."

  이 종식 차수가 와이드TV화면에 비친 장면을  보며 감탄했다. 미이라처럼 온몸이 붕대에 감긴  몸을 반쯤 일으킨 사람이 특유의 느릿느릿한 음성으로 담화를 발표하고 있었다. 발표에서  대통령은 이번 핵공격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과 유족들에  대한 조의표명과 함께 자신이 끝까지 서울에 남아 있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대통령 맞슴메? 배우 동원한기 아님메?"

  인민군 김 병수 대장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국 입장에서 대통령의  유고를 감출 필요는 없다는  것이 통일참모본부 참모들의 중평이었다.

  [우리 통일한국군은 남북한 정보기관과 함께 작전을 성공시켜  중국의 핵미사일 절반을 빼돌렸습니다.  중국은 이제 핵공격력을 상실했습니다. 더 이상 중국의 핵공격이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자료화면에는 충청북도의  어느 지하비밀기지에서 핵탄두가 미사일에 탑재되는 광경이 비쳤다. 이 차수는 뿌듯하다는 미소를, 차 준장은 일본과 미국에 대한  걱정으로 우려의 표정을, 인민군 장군 복장을  한 짜르는 알듯모를듯 애매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의 도발이 없으면  결코 핵보복을 하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중국군은  즉각 우리 영토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합니다.]

  짤막한 긴장의 순간이 지나며 홍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다시 한 번, 이번 전쟁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나라 국민 등 모든 분들께 삼가 조의를표하는 바입니다.]

  "이것으로 전쟁은 끝인가요?"

  차 영진 준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끝일까? 통일참모본부에서 전군을 지휘하고 있는 모든 참모들의 의문이었다.

  화면이 바뀌고 방송사의 보도본부가 나왔다.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요약하고 해설하고  있을 때, 다시 화면이  바뀌며 책상에 앉은 젊은  기자가 나왔다. 그 기자의 오른쪽 위에는  중국 인민 해방군의 대부대가 전선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담긴 화면이 있었다.

  [지금 곧 중국 CCTV에서 중국공산당 중앙당  상무위원회의 중대발표를 중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제 전쟁은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각국의 언론들이 중국 지도부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면은 보도본부에 있는  각국 주요 TV화면으로 확대되고, 모든  TV 방송이 CCTV의 화면을  생중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85식  전차에 탑승한 전차병의 당당한  얼굴, 해방트럭에 탑승한 보병들의  날카로운 총검들이 우렁찬 해방군가의  소음 속에 번쩍이고 있었다.  아나운서는 마치 정치평론가처럼 중국이 정전회담을  제의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말을 하고 있었다.

  차 영진 준장을 제외한 참모들은 중국측의 일방적인 선전일지도 모를 발표를 여과없이 바로  방영하는 것에 대해 당황했지만,  통신과 방송이 극도로 발전한 현재 이를 막을 방법과, 무엇보다도 의미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임시 주석 겸 인민해방군 해군사령 창 리엔충 상장입니다.]

  중국어와 함께 동시통역이  이어졌다. 창 상장 주위에는  신임 총후근 부장 위앤 중장과 총참모부장 우이 롄찬 중장, 그리고 몇 명의 장성, 고관들이 배석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상무위원이시군."

  "당중앙군사위원회와 임시조선공작회의 주석이기도  할겁니다. 총서기자리는 아마도 틀림없이 저 친구가... 임시 국방부장일지도 모르고..."

  이 차수에 이어 이 호석 중장이  끼어들었다. 장군들이 오랜만에 재미있는 화제거리를 찾은듯했다.

  "국가주석이나 국무원  총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희안한 나라죠. 한 사람이 도대체 몇 개의 직책을... 쯧쯧."

  정 대장이 약간 비꼬듯 말했으나, 그의  말은 인민군 장성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당  우위의 일당독재 공산주의 국가에서  국기위기시 권력의 집중은 당연했다.  박 정석 상장이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을 때 창 상장의 발표가 계속되었다.

  [한국은 현재 중국의 영토를  침공하고 있습니다. 많은 민간인들이 한국군에게 학살당하고 있으며, 한국군은 그들의  만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불에 탄  농촌마을의 모습이 비쳐졌다. 군데군데  포탄 자욱이 있고 시체와 가재도구가 적당한 배치로 흩어져 있었다.

  "악랄한 선전이로군요. 저곳은 눈도 안왔나 보죠."

  이 호석 중장이 지적하자 다른 참모들이  고개를끄덕였다. 화면에 비친 모습은  틀림없이 늦가을이었다. 아마도  한국침공 전쟁 직전에  2차 중국 내전을 가장하면서 찍은 화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민해방군은 그들의 침략을 저지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로 했습니다.]

  "역시..."

  심 현식 중장이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중국은 종전(終戰)을 원치 않는 것이다.

  [핵폭탄은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전임 정치국은 불행히도 전쟁을 빨리 끝내겠다는 일념에서 핵미사일을 한국에 발사하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만, 새로이 구성된  정치국에서는 어떠한 핵무기도 사용을  반대할 것입니다.]

  참모들이 비웃음  반, 안도감 반의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화면 속의 창 상장이 굳은 표정을 지으며 선언했다.

  [그러나 중국의 영토를  침략한 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진군가가  해방군합창단에 의해 울려 퍼지며 화면은 잠시 중국군의  행진장면, 다시 한국방송공사의 메인  스튜디오로 옮겨졌다. 김 병수 대장이 짤막하게 논평하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고놈들 전력이레 바닥났을틴데 무시기 능력으로? 창 상장이 직접 총들고 전선에 나올 모양이디요?"

  1999. 11. 26  08:55  대구

  "일마 쥑이라~"

  "쥑이, 쥑이!"

  "난 경기도 사람이오! 으악~ 회사차 넘버가 전남번호인걸 어떡해요~"

  시장에서 10여명의 사나이들이 키가 작은 트럭 운전사를 짓밟고 있었다. 어떤 중년 남자는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기고, 어떤 청년은 칼까지 빼들고 찌를 기세였다.

  "거짓말 말거래이. 니가 전라도 사투리 쓰는 거 다 봤다 아이가!"

  운전사가 빠져나갈  길은 없어  보였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집단구타는 그치지 않았다. 분노가 폭력이 되고, 폭력은 다시 분노를 재 생산했다. 그때, 호각 소리가 길게 울리며 경찰이 뛰어왔다.

  "머하능교? 사람 잡겠심더!"

  순경이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와 피해자의 상태를 살폈다.  혼절한 트럭 기사는 언뜻  보기에도 생명이 위독해 보였다. 순경과 같이  온 방범대원이 피해자를 업으려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를 제지했다.

  "일마, 전라도놈이라 안캅니꺼. 유선방송 안봤능교?"

  "전라도 놈들 다 쥑이삐리야 된다 안카노!"

  순경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경찰학교에서는 이럴  때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어떻게?

  "내도 봤지만, 이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겠심니꺼? 진정들 하이소!"

  "치아라~ 안비키문 니도 마, 칵 쌔리 쥑이삘끼라!"

  방범대원의 머리를 내려치는  몽둥이를 보고 순경이 멈칫멈칫 손가락으로 방범대원의 뒤를 가리켰다. 방범대원은 자신의  뒤를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순경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 뿐이었다. 잠시 머리에 충격이 오고 욕지꺼리같은 소리가 머릿속에 웅웅거렸다.

  1999. 11. 26  09:00  광주

  "긍께 이것이 그지께 우리 집에 와서 강도질을 해부렀어야~"

  "오매~ 마빡에 피도 안마른 새끼가.  인자 본께 이놈 날강도같이 생겨부렀구만 이~"

  "범죄형이여~ 갱상도  사투리 쓴 거  본께 80년 오월이 생각나는구만 이~ 이런 난리통에 갱상도 놈들이 왜 광주에서 설친당가?"

  "내는 아입니더! 믿어 주이소~ 학교 가는  길에 이 아저씨가 다짜고짜 내를 팬다 아입니꺼!"

  "야 자슥아. 이 아저씨가 니를 봤응께 니를 잡지, 글않으문 니를 괜히 잡겄냐?"

  허름한 반코트를 입은 중년  남자가 청년의 멱살을 쥐고 흔들다가 땅에 패대기 치고  바닥에 주저앉아 넋두리를 시작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시상에... 나 말 좀 들어 보소. 글씨 이것이 그지께 밤에 곤허게  자는디 칼 들고  들어와서는 온 식구를 꽁꽁 묶어불고 하는  짓이 글씨... 우리 보는 앞에서  중핵교 댕기는 내 딸래미를  강간해부렀지 않겄습니까. 전라도 씨는  더러웅께 갱상도 씨앗을 퍼뜨려야  된담서... 흑흑. 불쌍헌 내 딸래미. 신세 조져뿌렀네 이거~"

  "이~~~런! 흉악한 놈 같으니라고~ 전두환이보다 더 해부러야. 이런 개 잡것을 보드라고! 갱상도  놈들이 우리 전라도 사람을 아직꺼정  우습게 봐부러?"

  "아~따 시방 머든다요. 이런 잡것은 쌔리 직이ㅃ시다."

  1999. 11. 26  09:10  함경북도 회령(會寧) 개선산

  "또 온다! 아~ 정말 끝없이 몰려온다."

  "이젠 지겹다, 지겨워."

  "뭐 해요? 빨리 쏘세요."

  회령 동쪽 개선산,  해발 790미터의 험준한 산세를 갖춘  이 산에서는 2시간째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 헬기를 이용해  이 산 정상을 급습한 한국군 2개 중대는 중국군의 집중공격을 받아 이제 병력이 절반도 남지 않았다. 이번에 오는  적은 6번째로 맞는 상대였다. 중국군은 실패할 때마다 꾸준히 새로운 대대병력을 축차 투입했다.

  개선산은 사면이 급경사이고, 지금같은 겨울철에는  눈이 쌓여 도저히 오르지 못할 곳이다.  그러나 산정의 정동쪽과 남동쪽인  사아동 방향만이 비교적 경사가  완만했다. 해발 700미터의 등고선을 따라  구축된 방어진지도 두  방향에 화력을 집중했고,  역시 중국군도 그 두  방향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포탄이 참호선 곳곳에 작렬하는 가운데 하 인철 중위는 참호위에 쭈그리고 앉아  주로 예비군들로  이뤄진 소대원들에게 사격을  재촉했다. 중국군의 공격준비 포격은 중국군들이 정상에 거의 접근할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한국군의  사격이 시작되자 눈밭을 새까맣게  덮으며 몰려오던 중국군들이 몸을 숙였다. 산 뒤에서  갑자기 굉음이 울리더니 코브라 헬기 3기가 나타나 중국군 머리 위로 로켓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국군들이 환성을 지르며 잠시 숨을 돌리나 했더니 그것은 희망으로 끝났다. 사아동쪽 574고지에서 날아온 미사일에  1기가 격추되자 나머지 헬기는 주저없이 산 뒤로 도망가고 말았다.  다시 중국군들이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방어선에서 사격이 재개되었다.

  '딱!' 소리가  나더니 신호탄이 빨간 연기를  뿜으며 하늘에서 천천히 낙하했다. 하 중위가  외치자 이미 익숙해진 듯 사병 한  사람이 사무적으로 같은 단어를 크게 외쳤다.

  "크레모어!"

  한국군들이 고개를 숙이고, 경사면 아래쪽에서 연속 폭발음이 울렸다. 후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하 중위가  고개를 내밀었다. 중국군들은 얼이 빠졌는지 전진을 멈추고 있었다.

  "준비하시고...쏘세요!"

  하 중위가 명령하자 하  중위보다 나이 많은 부하들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이들은 전투에 투입된 두 시간이 며칠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반 이상의 전우들이 이미 사망하거나 부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젠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권태와 지겨움, 이  두 가지 뿐이었다. 어제밤 잠을 제대로 못잔 병사들은 사격하면서도 연신  하품을 하고 있었다. 반응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이들은 중국군 밀집지역에  강습한 셈이었다. 추가적인 병력지원이나, 병력교대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나진, 선봉 지역 주위에 있다는 중국군이 여기에 다 몰려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우글거렸으며, 하 중위가 우려하는 것은 병사들이  공포보다는 권태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 중위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본대와 연락을 계속하고 있는 포병관측장교와 공군 전선관제장교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고지를 떠날 마음이 전혀 없다는 듯 연신  망원경으로 멀리 나진 지역쪽을 살피며 무전연락을 계속했다.

  1999. 11. 26  09:22  중국 랴오닝성 안산(鞍山) 서쪽 40km 상공

  [목표 1의 위치와 선회코스 변동 없음.]

  섬-7(미그-21의 중국 개량형)  전투기를 조종하고 있는 자오 즈윈 상위는 헤드폰에서 울리는 소리를 무표정하게 들으며 계기판에 신경을 집중했다. 통신망을 통해  계속 조선공군의 움직임이 알려졌지만  아직 작전이 제대로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오 상위가 소속한 인민해방군 공군 제 10 전투사단 전투기 100여기는 권계면인 고도  11,000미터를 500노트로 비행하고 있었다. 만주에 기지를 둔 전투사단 전투기들이 모조리 고장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공군사령부는 즉시 베이징 군구 소속의 공군을  이 임무에 투입했고, 10사단은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10사단이 받은  명령은 지상공격전 적기요격임무였다.  무인지경이 된 만주 동북지방을 휩쓸며 제 1 야전사를 포위한 조선군에 대해 지상공격을 하는 척 위장하여, 한반도 북서부에서  출동하는 조선 공군을 격멸하는 것이다.  10사단 전투기들을  기동성이 떨어지는 공격기로  오인하여 조선공군이 안심하며 요격해 올 때,  공대공미사일로만 무장한 10사단을 필두로한 전투기들이 일거에  조선공군을 괴멸시킨다는 것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이것은 포위된 1야(제 1야전사)를 구원하기 위한 지상공격 전에 꼭 필요한 사전 정지작업이기도 했다.

  목표 1로  지정된 조선군 전자전기  E-2C는 강력한 전파를 발산하며 계속 권계면에서 선회하고 있었다. 이  전자전기는 반경 100km의 큰 원을 그리며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는데, 위치가  처음 파악된 이후로 내내 같은 코스를 유지하여 지금까지 예상위치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남쪽으로 치우쳐 비행할 때는 아군측 전자전기의 레이더에서 사라진 적도 있지만 곧  다시 나타나곤 했다. 지금은 조선 전자전기가  아군 전투기 편대에 접근하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잠시  후에는 상당한 숫자의 조선공군기가 저공으로 접근해올 것으로 자오 상위는 생각했다.

  자오 상위는 단 한  대의 여객기에 전투기들이 바짝 붙어 기습공격을 성공시킨 이스라엘 공군이  생각났다. 혹시 저 전자전기는  전투기로 둘러 쌓인 게 아닐까? 자오 상위는 고개를  저었다. 밀집대형으로 한 대인 것처럼 레이더를 속일 수는 있더라도,  실속속도에 가깝게하여 전자전기로 오인시킬 수  있더라도, 전투기는 저속쌍발기처럼 그렇게  장시간 체공할 수 없었다.

  [1-3-5, 거리 147km, 고도  2,000미터에 100여기의 적기 발견! 목표 2로 지정함!]

  '온다!'

  전자전기의 관제관 목소리는 상당히 긴장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자오 상위도 속으로 떨었다. 중국내전과  대만공격전에서 몇번의 공중전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자오 상위도 전투 시작전에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 전투인 것이다.

  [적기는 전원 F-4E다. 현재 전파관제중. 속도와 침로를 유지하라! 5분 이내에 적색선 접근.]

  작전은 제대로 먹혀들 것 같았다. 누가  보더라도 중국 공군기 중에서 60여기가 공격기, 40여기가  전투기로 판단되었을 것이다. 조선군이 100여기의 팬텀을 보낸 것은 일견 합리적인  계산이었다. 그러나 이들 조선 공군기 대부분은  기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자오 상위는 자신했다. 편대기 모두가 4개의 파일런에  공대공미사일을 가득 탑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비 전투사단 2개가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이미 중국 공군은 3대 1의 숫적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게다가 접근전을 유도하면 팬텀은 민첩한 미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1999. 11. 26  09:27  대전 유성, 정보사단

  "중국 내전의 영웅인  고 휘 상장이 어디 있는가 하는  것, 그리고 왜 대구와 부산, 광주에서 동시에 지역감정  문제로 소요사태가 벌어졌는지 분석하는 것, 그리고  최근 일본의 동향에 대한 검토가 이번  회의의 주제입니다. 먼저 고 상장의 현황파악에 대한 정보는 수집됐습니까?"

  이 재영 중장이 해외정보를  관할하는 권 순철 준장과 안기부에서 파견근무 중인 강  성식 이사관을 번갈아 쳐다 보았다. 항상  자신이 앉던 상석에는 지금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 중인 최 총리와 신임 국방장관이 된 양 석민  중장이 자꾸 TV화면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이 중장은 후배가 졸지에 상관이  된 이런 상황이 무척 거북했으나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만 했다.

  "고 상장은 상장 취임 이후 이번 한중전쟁기간 내내 행방이 묘연합니다. 일설에는 위암  치료차 윈난(雲南)성의 고향에서 요양중이라고 합니다만, 한 번도  전선에서 이탈하지 않은 고 상장이 유독  이번 전쟁기간 동안에 요양을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있습니다."

  권 준장이 알맹이 없는  답변으로 일관하자 실망한 이 중장이 손가락으로 원탁을 툭툭 두둘겼다.

  "윈난성, 그의 고향에는  없습니다. 우리 회사원들이 파악한  사항입니다."

  국가안전기획부에서 파견된  강 성식  이사관이 대답했다. 강  성식이 단말기를 조작하여 만주지방 지도를 중앙화면에 투사하여 고 상장의 자취를 추적했다. 그를  나타내는 선은 전쟁발발 첫날,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완전히 멈췄다.

  "그가 군인으로서 입지를  다진 만주에서도 현재 그의 자취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회사원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만, 전시상황에서 활동이 여의치 않습니다."

  "쯧쯧...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요주의인물을  놓쳤군요. 우리는  지금 전쟁수행 중이오. 빨리 찾아 내시오."

  이 재영 중장은  답답했다. 중국 내전에서의 최고  영웅이며 인민해방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던 고 상장이 이번 내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수상했다. 그러나  그가 사라진 하얼빈 부근에 적의 대규모 병력이 있다는 정보는 없기 때문에 아직은 안심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존재보다 더 급한 것이 국내상황이었다.

  "다음은 왜 전시상황에서 한낱 지역감정에 의해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소요사태가 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치안유지 차원이 아니라 전쟁수행 과정에서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이 재영 중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 성식 이사관이 다소 흥분된 어조로 답했다. 이 문제는  사실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 문제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뻔한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곳곳에서  지역감정으로 인한  소요사태가 발생한  것은 누군가 의도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집권유지를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한 것은 한국정치인들 치졸한 작품이었다... 라고 최 총리는  생각했다. 이것은 국가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한 지금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었다. 보고에 따르면 부산, 광주,  대구 등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하여 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파업이 지역별로  확산되고 교통이 마비된 곳도 많았다. 아직은 경찰력으로 치안을 유지하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이 문제는 감추지 말고 과감히  공개합시다. 소요사태에 가담한 대다수 국민은 자신들이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모릅니다. 여러 지역에 동시에 그런 일이 있다고 발표되면 폭동가담자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입니다."

  이 재영 중장이 제안하자 신임 국방장관 서리 양 석민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배후는 중국이겠죠?"

  "글쎄요. 중국이 소요사태의 배후에 있길 바래야겠죠."

  일본이 배후라면? 한국에게는 불행한 일이 된다고 참석자들은 생각했다. 참석자 모두들 일본이라는 단어 자체를 자제하고 있을 때, 종합상황실장 최 성묵 소장이 눈치없이 나섰다.

  "일본은 예비역소집을  완료하고 국민총동원령을  발포한 상태입니다. 현재 자위대 병력 60만, 조만간 300만으로 증강될 것이 분명합니다."

  "일본이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나라를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정보분석실장 나 영찬  대령이 오래된 의문을 제기했다.  갑작스런 침묵이 길게 이어지고 나서 양 석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 아니면 앞으로는 영원히 기회가 없습니다."

  메이지유신 당시의 일본에  '한반도는 일본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비수(匕首)'라고 가르친 것은 1880년대 일본 육군에 고문으로 와있던 독일군인 메켈 소령이었다.

  "음... 아직은 중국에 집중해야겠소.  일본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어요. 바로 오늘 작전을 진행해야 하니 동해함대도 움직일 수 없고..."

  최 총리는 이런 소득이 없는 회의는 빨리 끝내고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싶었다. 각 부서간 전시동원체제 협조문제와  민간인 구조작업 등 할 일이 산적해 있었다.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피스의 지원병이나  용병 구성원  중에서 구 소련군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특히  전투기조종사의 대부분이 구 소련방공군 출신입니다."

  나 영찬 대령이  의문을 제기했다. 최 총리가  순간적으로 실룩거리고 양 석민의  눈이 빛났다. 이  현우 소령이 단말기에서 용병  조종사들의 이름을 죽  훑었다. 그가 자판을 몇번  두들겨 성이 -v나 -ki로  끝나는 이름을 분류했다. 조종사 중에서만 모두 38명이 검색되었다.

  "그거야... 구 소련이  해체되면서 러시아가 병력을 크게  감축했지 않소? 악화된 경제상태가 작용했고 말이요."

  "그렇다면 그들은 민간조종사로 전업할 수 있었는데 왜... 만약 러시아 군부가 간접적으로 개입했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글쎄요. 지난  61년 우리 공화국에서  소비에트 연방과  호상 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는데, 러시아가 그 조약 수행을 위한 것이 아닌지..."

  북한의 국가보위부에서 파견근무중인  지 창준이 다소 순진한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 조약은 당사자 일방이 폐기를 통고하지 않으면 계속 연장되기는 하지만 지금은  독립국가연합이니 그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 문제를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세계 열강 4개국이 어떠한 형태로든 개입되고 있습니다."

  나 영찬 대령이 매우  걱정스럽다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최 총리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나 대령은  더 이상 이 논의를 지속시킬 수 없었다.

  "각하께 그런 말씀을  들은 적은 없지만 혹시나 그렇더라도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지원하는 것이니 개의치 마시오."

  1999. 11. 26  09:31(한국시간)  중국 랴오닝성 안산(鞍山) 상공

  [목표 2 접근, 적색선 근접!  전기, 1-8-0으로 침로 변경, 가속 하강하라!]

  아군측 전자전기인 메인스티에서 보내온 목표와의 거리는 이미 40km도 되지 않았다.  미사일을 발사해도 충분한 사정거리였지만  아직 확실한 명중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팬텀 편대도 아직 스패로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있었다. 자오  상위와 동료 전투기들은 심한 마이너스 G를 느끼며 하강했다. 그는 전자전기에서 배당한 목표에 미사일을 조준했다. 섬-7 전투기의 낙후된 레이더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자전기가 명중 여부를 판단해 줄 것이다.

  [적 편대 급선회! 꽁무니를  빼고 있다. 전기, 1-7-0으로. 급속 추적하라!]

  잔뜩 흥분된 관제사의  목소리가 헤드폰을 가득 채웠다.  우군 전투기들의 통신이 개방되면서  시끄러운 환호성이 이어졌다. 자오  상위는 스로틀을 잔뜩 열고 애프터 버너를 가동시켰다.  새털구름이 칵핏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자오 상위는 속이 뒤집히는 느낌을 받으며 이를 악물었다.

  '짜식들. 너무 늦었어!'

  자오 상위는 전자전기와  연동된 레이더에 비치는 조선공군의 궤적을 살폈다. 틀림없이 편대를 풀며 황급히 도주하는 모양이었다. 조선공군은 이제야 이쪽이 공격기가  아니고 전투기인 것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10사단을  따라오고 있는 우군기들이 적  전자전기에 잡혔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잘하면 전자전기의 목표지령 없이 자체 레이더로 유도하여 보다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곧 Jay  Bird 레이더의 식별한계인 20km에  접근하면 적외선유도미사일로도  충분히 격추시킬 수 있는 거리였다.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후퇴하는 적은 이제  반격할 기회도 없었다. 출격전  브리핑에서 조선 공군의 능동형 대공미사일인  암람은 재고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세계 무기밀매시장에서  중국과 조선이 서로 상대방이  쓰는 무기까지 쟁탈전을 벌였다.  밀매가격이 열배로 뛰었어도 시장에  나온 무기는 거의 없었다. 특히  능동형 공대공미사일은 품귀가 심해, 인민해방군 공군 정보부서에서는  조선공군의 재고량을 이틀분으로  추정했다. 팬텀이 암람을 발사할  수도 없거니와, 270도 발사가  가능하도록 사격통제장치를 개조했다는 보고도  없었다. 이제 안심하고 목표에  미사일을 발사하면 캐노피 아래에 한두개의 킬마크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적기 미사일 발사! 반능동!]

  갑자기 관제관의 비명이 헤드폰을 때렸다. 자오  상위의 숨이 탁 막혔다. 자오 상위의 레이더 경보기에도 분명  전방의 팬텀에서 나오는 연속 파조사레이더의 전파가 잡혔다.

  '반능동? SAR? 미 제국주의자 부호로 Fox 2! 그렇다면 스패로?'

  갑자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자오 상위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능동미사일은 발사한 후에도 전투기의  레이더가 계속 목표를 비춰야 한다. 미사일의  유도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목표에 계속 접근해야 하는 방식인  것이다. 피닉스나 암람같은 능동형미사일이라면 미사일 자체에 레이더가 있고 적외선유도방식은 레이더가 필요없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중거리용 미사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반능동형미사일을  발사한 전투기가 계속 도주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적기는 이탈하고 있잖아?  어떻게 된거야? 다른 미사일 발사체가  있는거야?]

  [.....]

  익숙한 사단장의 목소리가 헤드폰에서 울렸지만 관제관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마도 필사적으로  주파수를 변경하며 보이지 않는  적을 찾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자오  상위의 레이더에 잡힌 팬텀편대는  분명 남쪽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선회하여 발사하고 다시 도주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적기나  지대공미사일이 아군기를 노리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때 자오 상위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영국에서 발간된 현대항공전에 관한 책자였다.  자오 상위는 깜짝 놀랐다. 즉시 후퇴해서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후부발사다! 당장 회피행동에 들어갑시다!"

  자오 상위가  외치며 기수를 돌리려 했지만  바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조종간을 잡은 손을 고정시켰다. 스패로  미사일은 벌써 급속히 거리를 줄이며 접근하고 있었다.

  [미사일 발사 후에 이탈하라!]

  오랜만에 같이 출격한 사단장이 침착하게 명령하자 100여기의 섬-7형 전투기들이 2발씩의 R-27R, 나토코드 AA-10 Alamo-A를 발사했다. 스패로처럼 반능동형 미사일이므로 발사기가 선회하면 곧 유도를 잃고 제멋대로 비행할 것이다.  그러나 적기의 미사일유도를 방해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발사한 것이다.

  우군 전투기들이 미사일 발사를 완료하기도 전에 100여기의 미사일이 날아왔다. 선회중인 자오  상위는 선두의 전투기 몇기가  공중에서 폭발하는 것을  보았다. 푸른 만주의 하늘  곳곳에 죽음의 불꽃이 피어났다. 자오 상위는  레이더 경보장치가  삑삑거리자 즉시  RBC(Rapid Bloom Chaff : 급속전개형  채프)를 방출하며 왼쪽 아래로 기수를 꺾었다.  1초만에 채프의 구름은  섬-7 전투기의 레이더 반사면적보다 1.5배정도  크기로 확산되었다. 섬광에 뒤이은 파편들이 조종석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젠장! 맞았다!"

  유압경보장치가 울리고 출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얀 구름이 기수 앞을  통과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미사일이 대대장의 전투기에 락온하고 있었다. 회피운동을 하던  대대장기는 한순간에 공중 폭발했다.

  "적기는 연속파조사(連續波照射)기능이  있는 후미레이더를  장비했거나 포드형 레이더를 장비했습니다!"

  [.....]

  모두들 바쁜지 통신기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오  상위가 돌아보니 아군기들은 뿔뿔이  흩어져 미사일을 회피하기 바빴다.  자오 상위도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았다. 적기가  뒤로 미사일을 발사하면 어떻게 공격한단 말인가? 적기보다  먼저 발사한다고 해도 적기는 미사일에서 멀어지고, 반대로  아군기는 미사일에 접근하는 식이므로  적기 격추 전에 아군기가 먼저 당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적기의 꼬리를 잡았다는 것은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2차 경보가 울렸다. 도주하는  팬텀들이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피할 곳도 없는  고공에서 믿을 것은 순발력 뿐이었다. 9톤밖에 되지 않는 섬-7 전투기들은 급속도로 상하운동을 하며 가능한 북서쪽으로 도주했다.

  '팬텀들은 도주하는 것이 아냐. 단지 발사위치를 잡고 있을 뿐이야.'

  자오 상위의 전투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기체 여러 곳에 문제가 생겼지만 컨트롤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상처입은 전투기이지만 센양비행장에 도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국 공군전술가들의 단순한 아이디어를 실전에 적용시킨 조선공군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전쟁 중에 후미형레이더로 교체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구식 전투기인 팬텀에  어쩌다 한 번 쓰는  후미형레이더를 장착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포드형 레이더인데, 자오 상위는 러시아제가  아닌가 의심이  갔다. 러시아의 레이더포드에  조선의 전자기술이 가세했다면?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미사일 제 3파 접근 중....! 목표 1 급속  가속, 접근 중! 한 대가 아니다. 이 속도는? 속았다! 전투기의 대편대다!]

  관제관의 비명이 칵핏을 가득 채웠다.  조선공군의 전자전기가 있다던 남서쪽 하늘이 새까만  물체들로 뒤덮였다. 산산조각이 난  아군 편대에 화살처럼 내려꽂히는 적기의 대편대가 자오 상위를 전율케했다.

  1999. 11. 26  09:34  경기도 남양주

  차 영진은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차를 몰고 통일참모본부를 빠져나왔다. 자갈길로 된 입구  바로 밑을 지나자, 어젯밤 들어올 때 짖던 개들을 키우는 집이 보였다.

  '개떼군.'

  차창 오른쪽으로 보이는 수십마리의 개들이 오늘은 짖지 않고 그에게 꼬리치고 있었다. 복스럽게  살이 토실토실 오른 토종개들이었다. 차 영진이 침을 꼴깍 삼키며 음흉한 미소를 띄우자 개들이 기겁을 하며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밤에는 몰랐지만 낮에 본 새터의 표정은  밝았다. 옛날부터 있던 민박집 뿐만 아니라 새로  들어선 러브호텔들이 새터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차 영진은 2차선 포장도로로  나오자 곰바위골을 지나 양수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어를  4단으로 바꾸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MT  왔다가 중국의 핵공격 소식에 놀라  서울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길가를 메우고 있었다. 웃고  떠드는 학생들도 표정 한편에서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호젓하게 서 있는 '하이  마트'라는 호텔에 차를 댔다. 여자친구와 함께 몇번  찾아온 적이 있는 곳이었다. 물론 그 여자들은 항상 바뀌었지만...

  1층 커피샵에서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쪽으로 넓게 난 창,  창 바로 바깥의 너른 잔디밭, 그  너머의 북한강... 그는 정 태춘의  '북한강'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독특한  그 가수의 음색과 멜러디는 기억났지만 노래가사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흐르는 강물을 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면 그 뿐이지 않은가.

  30대 중반의 웨이터가 주문을 받았다. 차  영진은 엉겹결에 오른 손을 반쯤 올리다가 다시 내렸다. 갑자기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 자신이 왜 그랬을까 생각했다.

  '그래! 저 웨이터는 군인이지.'

  군인은 군인을 알아본다.  군인은 뭔가 군인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가 있었다. 만약 직업군인이라면,  대중목욕탕에서 벌거벗고 만나도 서로가 상대의 계급과 병과 정도는 알 수 있는  법이었다. 차 영진은 자신이 탈영병이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  그 웨이터가 왔음을 알자 기분이 나빠졌다.

  탈영병, 특히 전시  탈영병에게는 총살이 군법이다. 전시에는 적에 대한 공포보다는 아군에  대한 공포가 더 큰 것이 보통이고,  어떤 국가든 이런 분위기를  획책한다. 그리고, 탈주병  색출과 즉결처분에 관련되는 일에 종사하는 자들은 그 어느 나라,  어떤 전쟁에서도 비겁하고 잔인했다.

  '폭력이다! 그것은  전쟁과 다름없이 힘없는 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몰상식한 폭력이다.  아니, 국가라는 폭력기관의 인간에 대한 비인간적 테러다.'

  차 영진은 죽어간 부하들을 생각했다. 처참하게  죽어간 제 11 기갑사단 병사들, 정규군도  아니면서 막강한 중국군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다 죽어간 북부군  소속 인민군들... 그 누군들 목숨까지  바쳐가며 싸우고 싶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싸웠고,  죽어갔고, 국가는 그들이 도망치면 언제든 총살을 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차 영진은 불쾌한 기분이 들어 커피샵을  나왔다. 그 웨이터는 아직도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차 영진이  계급장을 붙이지 않은 야전상의를 입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일반 병과에 대한 보안부대의 우월감 때문이다' 라고 생각한 차  영진이 걸음을 딱 멈췄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고개를 홱 돌리고 그 웨이터를 손짓으로 부르며 외쳤다.

  "이봐, 상사! 장군을 보고 경례도 안하나? 자네 소속이 어디야?"

  1999. 11. 26  09:37(한국시간)  중국 랴오닝성 센양 상공

  "다들 알다시피 이곳은  1대대가 전쟁 첫날에 전멸한  곳이다. 우리는 1대대의 원쑤를 갚는다! 지금이 그 기회다. 발사준비!"

  이 한봉 중좌는 그동안의 울분을 씻으려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외화부족에 시달리던 북한 정부가 구입한 이 비싼 미그-29 전투기들은 이번 전쟁 중에 거의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초전에 미그-29 1개  대대가 전멸하자 놀란  지휘부에서는 2대대를 평양영공 수호에만  돌렸다. 게다가 핵미사일 요격 때는 추가적인 전자장치의 부착이 어렵다는 이유로 수치스럽게도 한국공군에게 평양수호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적 대편대의 요격에  미그-29 편대가 선봉을 맡아  싸울 수 있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목표들은 지금  미사일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어딘가 산 뒤에 적기가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적기보다는 지상의 미사일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적기, 이것이  그들이 맞부딪혀야 할 강적이었다.

  선두의 러시아제  미그-29 전투기와 뒤따라오는  미그-21 전투기들이 일제히 미제 사이드와인더를 발사했다. 이미  중국공군은 숫적우세를 상실하고 있었다. 4차에 걸친 팬텀 편대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중국 공군기는 숫자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고,  미그의 급습으로 완전히 기선을 제압당했다. 방어측에게 9시 방향이란 상당히 거북한 방향이었다. 미그에 맞서  선회를 하면 도주를  못하고 팬텀에 옆구리를 보이게  된다. 섬-7 전투기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200여기의 사이드와인더가 중국 편대를 덮쳤다. 플래어가 만주 상공을 가득 메우고, 군데군데 섬광이 피어났다.

  이 상황에 다시 팬텀 편대가 가세했다.  견디다 못한 중국 공군기들은 차례로 전장을 이탈했고,  급기야 20여만이 남은 중국  전투기들이 일제히 북쪽으로 급가속했다. 이들 뒤로 3종류의 공대공 미사일이 뒤따랐다.

  "미사일 발사 중지! 2대대 추적하라!"

  이 한봉 중좌는 적을 한 대도  놓치지 않겠다는 심산이었다. 최고속도에서는 비슷하지만  가속력에서 앞서는 미그-29  전투기들이 얼마 안가 중국제  섬-7형 전투기들의  꼬리를 잡았다.  미그-21 전투기는  시계가 270도로 제한된다.  후미 레이더경보장치가 없으면 뒤에서  점증하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셈이다.

  20여기의 중국 전투기들  중에서 4기가 추락하자 미그-29를 오버슈트시키기 위해 급히 브레이크를 하고 반전했다.  그러나 그들의 적은 불행히도 미그-29였다. 헬멧과  연동된 사격관제장치의 지령을 받는  다중총신의 기관포가 섬-7 전투기의 동체를 꿰뚫었다. 섬-7 전투기들은 이  불리한 공중전에서 이탈할 수도 없었다. 공중전  공역 주위에 머물러 있던 인민군 공군소속의 미그-21 전투기들이 나토 코드  AA-2-2 Atol-D, 러시아 제식명 K-13M/R-13R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미사일을 발사했다. 인민해방군 공군 제 10사단 소속  전투기들은 단 한 대도 남지 않고 전멸했다.

  자오 상위는 상공의 공중전과는 상관없다는 듯 상처입은 전투기를 이끌고 센양비행장으로  접근했다. 비행장으로  가는 길에 수십대의  섬-7 전투기들이 황급히 남쪽으로 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젠장, 너무 늦었어!'

  그들도 각개격파되지 않을까  우려하던 자오 상위의 시선에 센양비행장의 모습이 잡혔다.  비행기들은 모두 셸터 안에 들어가 있어서  긴 활주로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착륙신호를 하고  착륙하던 자오 상위는 관제탑 옆에 뭔가  이상한 것을 보고 놀란 입을 다물었다.  미사일 발사대에 놓여있는 것은 틀림없이 전술핵이었다!

  1999. 11. 26  09:45  함경북도 회령 개선산

  "아군 교대병력이 온다~~"

  산 정상에서 서쪽지역 중국군의 동태를 살피던 경계조가 환성을 지르자 전 대원의  시선이 산 정상으로 집중됐다. 아군 미그-19  전투기들이 산그림자 속으로  들락날락하며 폭격을  한다 싶더니, 역시  지원병력을 실은 헬기들이 개선산 정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시 2중대장을 맡고 있던 하 인철 중위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40대의 UH-1이다. 최소한 1개 대대는 온다!"

  경계조가 다시  외치자 참호선  곳곳에서 환성과 한숨이  흘러나왔다. 병력이 절반으로 줄어든 이제야 교대병력이 온  것이다. 운이 나빠 교대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병력보충은 할 수  있으니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커진 셈이다.

  "적 대공미사일이다! 에고, 두 대 추락."

  "또 한 대... 으윽, 또, 또..... 자꾸..."

  하 인철 중위는  참지 못하고 참호를 뛰쳐나가  정상으로 기어올랐다. 헉헉거리며 겨우  정상에 도착해보니  경계조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선산의  서쪽사면 눈밭 군데군데에 추락한  헬기가 화염을 뿜고 있었다.  지금도 한 대의 헬기가 추적하는 미사일을  피해 플레어를 투하하며 악착같이  도망가다가 결국 엔진부분에 미사일이 명중하여 공중폭발을 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헬기들은 산 정상의 7부능선에 도달하고 있었지만 해발 790미터가 이렇게 높을까 의아스러웠다. 통통한 모양의 UH-1  헬기는 개량 프로그램에 의해 속도가  강화됐음에도 급상승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지원나온 미그-19  전투기들이 지상을 쑥밭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어디서 날아오는지 적외선 유도방식인  휴대형 지대공미사일은 헬기만 노렸다. 호위차 동행한 10여기의 건쉽이  지상을 향해 정신없이 공격했지만 이들도 하릴없이 추락해갔다.

  "그냥 그곳에 착륙해, 이 바보들아! 다 죽을 셈이야?"

  또 한 대의 헬기가  꼬리날개 부근에서 미사일이 폭발한 충격에 조종을 상실하고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잠시 후 이 헬기는 12.7밀리 대공기총의 십자포화에 걸려들어  갈갈이 찢겨나갔다. 하 중위가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들을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민첩성이 떨어지는 병력수송용 헬기로는 중국군의 화망이 밀집한 지대를 뚫기는 애초에 무리였다.

  아군 헬기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기내에 장착된  기관총으로 지상을 훑다시피 사격을 가했고, 보이는 적에  대해서는 로켓포를 쏘며 지나갔다. 그러나 사방에 숨어있는 중국군의 대공망은 의외로 치밀했다.

  "왔다!"

  드디어 첫번째 헬기가  정상에 도달했다. 사색이 된  조종사와 기관총 사수의 얼굴이 보였다. 흰색 위장복을 입은  병사가 줄을 타고 헬기에서 강하하기 직전, 갑자기 동쪽에서 날아온 붉은  화살같은 것이 헬기를 꿰뚫었다. 헬기는 하  중위가 올려다보는 가운데 화염을  뿜으며 공중에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멍청히 서서 보던 하 중위 앞에  뭔가 붉은 것이 툭  떨어졌다. 불에 타고 피투성이가  된 팔 한짝이었다.

  헬기들이 서쪽사면을 뚫고 산을 넘어와 착륙하려던 순간을 잡아 남쪽과 동쪽에 있는  중국군 보병들이 휴대형미사일을 날리고  있었다. 보병의 강하를  위해 하버링하고 있는 헬기들은  피하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추락했다. 개선산 주둔  한국군이 필사적으로 적의 대공거점을  향해 사격했으나 중국군도 필사적이었다. 이 와중에서도  헬기에서 꾸준히 병력이 강하하고 있었다.

  중국군이 산정상에 대한 집중포격을 개시했다.  엄폐물이 없는 산정상의 헬기강하병들이 속절없이  집중포화의 제물이 되었다. 하  중위가 이들을 이끌고 참호 속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를  따라오던 병사 중 두명은 참호에 들어오기 직전에 자욱한 포연과 함께 사라졌다.

  "총인원 471명, 사고 419명, 현인원 52명. 그중 중상이 19명입니다."

  이번에 증강된 병력인 3대대 1중대의 인사계라고 자신을 소개한 상사가 피눈물을 흘리며  1중대장에게 보고했다. 그는 3대대에서  생존한 최고 상급자였던  것이다. 살아남은 헬기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중대장과 하 중위는 기가 막혔다. 헬기강하병들은 대부분 얼이 빠져 있었고, 미리 개선산에 도착해  치열한 전투를 치른 부대원들은  모두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도저히 이곳에서 살아남을 것같지 않았다.

  하 중위가 갑자기  텅빈 개선산 하늘을 올려 보았다. 이곳  개선산 상공에는 한국이나 중국 어느 쪽도 항공기를  함부로 보내지 못했다. 오는 족족 상대방의  지대공미사일에 추락했고, 어쩌다  대량으로 몰려오더라도 밀집한  대공방어망에 반 이상을  잃고 도주했다. 하 중위의  부대가 처음 이곳에 올 때와는 달랐다. 이제 중국군은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고, 이곳은 한반도 모든 곳  중에서 양측의 지대공 화망이 상대방의 공군전력을 압도하는 유일한 지역이었다.

  "이곳이 전략적으로 그렇게 가치있는 곳입니까?"

  하 중위가 1중대장에게 물으며 공군관제관과 포병 관측장교들이 있는 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 바빴다. 다시  적 보병부대가 몰려온다는 외침이 울리고, 하 중위는 자신의 위치로 뛰어갔다.

  1999. 11. 26  08:55(중국 표준시)  중국 신지앙웨이우얼 자치구

  "야히미시즈(안녕하세요)."

  이 은경 대원이  주워들은 위구르어로 인사했다. 천막  밖으로 나오던 처녀가 온통 피에 물들어 악귀같은  모습을 한 정 호근 대원을 보고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여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정 대원을 들쳐멘  이 대원이 실망과 동시에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이곳은 적지였다. 천막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유목민 남자 둘이 구식 총을 들고 나왔다.

  "야히미시즈."

  이 대원이  그들에게 K-1 기관단총을 겨누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놀란 유목민 중 노인 쪽이 정신을 차리고  정 대원의 상태를 살폈다. 노인이 총구를 내리고 이 대원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젊은 유목민은 아직도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그대들은 이곳 사람들이 아니군. 중국 게다가 우린 위구르족이 아니라 타지크인이란 말이야."

  정 대원을 자리에 눕히며 노인이 중국어로  투덜거렸다. 정 대원이 노인의 말을 통역해 주자, 이 대원이 이제야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타지크와 키르기스,  카자흐뿐만 아니라 이곳은  타지크인들의 유목지였다. 원래 겨울에는 따뜻한 타지크로 돌아가야될  이 사람들은 웬 일인지 이곳에 남아있었다.

  칼을 빼든 노인이  익숙한 솜씨로 정 대원의 피묻은 옷을  찢었다. 탈골된 어깨가 드러나고  허벅지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렀다.  비릿한 피냄새가 천막 안을 가득 메우자 처음 보았던 유목민 처녀가 헛구역질을 하며 천막 밖으로  나갔다. 노인이 뭐라고 외치자 처녀가 다시  들어와 화덕에 냄비를 올려 놓고 불을 지폈다. 검은  바지 위에 덧입은 색이 바랜 치마, 검은 윗도리,  하얀 머리천 사이로 보이는 매부리코와  검은 눈썹. 가꾸면 상당한 미인일 것이라고 이 대원이 생각했다.

  "당신은 운이 좋소. 내가 옛날에는 의사였으니..."

  노인이 2되짜리 술병을  들어 한입 가득 마시고 정  대원에게 넘겼다. 정 대원이 입맛을 다시더니 벌컥벌컥 들이 마셨다.

  "이런 몸으로 아직 살아있다니, 게다가 정신마저 멀쩡하다니, 당신  정말 대단해. 하지만  이제 그만 기절하는게 좋을걸세. 옆구리부터 총알제거 수술을 시작할테니."

  노인이 날카로운 칼을  화덕 불에 지졌다. 잠시 후 정  대원이 비명을 지르자 이 대원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1999. 11. 26  10:10  함경북도 나진 남동쪽 142km 해저

  "목표 침로 2-9-9, 거리 2300, 속도 20노트."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소나병이 그래픽 처리된 화면을 보며 함장에게 보고하자 함장은 잠망경에서 눈을 떼지도 않으며 명령했다.

  "좋아. 그대로... 2, 3번관 89식 유선어뢰 장전."

  "함장! 공격은 불가합니다! 아직 선전포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병들이 놀란 얼굴로 일제히 함장을 돌아보았다.  함장 옆에 있던 부함장이 놀라 함장을 만류했지만 함장은 뜻밖에 단호했다.

  "이마무라군. 자넨 함장의 명령에 불복할텐가? 이게 명예로운 해자(海自) 장교로서 할 짓이야?"

  "상부의 명령은 조선 해군에 도발하지 말라는..."

  부함장 이마무라  이등해좌(二等海佐)가 우물쭈물하자 함장이  호통을 쳤다.

  "상부의 희망은 조선 해군력을 감축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결정적으로 패배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 장전햇!"

  함장 하치로 나카이 일등해좌(海佐)는 단호했다. 부함장이 어쩔 수 없이 함장의 명령을  전하고 인터폰에서는 어뢰실의 복창이  이어졌다. 함내에 갑작스런 긴장감이 퍼져나갔다.

  함장은 다시 잠망경으로 한국해군의 FF951, 울산급 프리깃함의 1번함인 울산함을 찬찬히 살폈다. 1979년에 제작된  함 치고는 너무 구식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함은 본대 합류에  늦었는지 급히 가느라 쿵쿵거리는 엔진음이 잠수함의 함체를 울렸다.

  이런 류의 한국 해군함은 예민한 예인소나를 장비하지 않는다. 즉, 함이 전진하면서 좌우로 선회하며 함수의 소나로 확인하기 전에는 후미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라는 뜻이다.  주변에는 조선의 다른  해군함정도 없었고 대잠헬기도 물론 없었다. 이것은 잠수함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주변에 조선해군의 초계기가 없다는  것은 이미 해상자위대 본부에서 3시간 전부터  확인해 주고 있었다.  중국 잠수함이 동해 북단까지  오지 못하리라는 섯부른 판단은 지금 한국측에 귀중한 전투함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초기 심도 200, 속도 10노트, 3-5-0으로 발사 준비.  발사 후 좌현 전타, 이 해역을 빠져나간다."

  함장의 명령에 따라 세부사항을 전하는  부함장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공격받은 조선해군은 틀림없이 일본 잠수함의 짓인  줄 알 것이다. 물론 일본정부는 잡아떼겠지만, 이런 짓을 중국이나  러시아가 할리는 만무하니 혐의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조선과의 전쟁?  이마무라 이등해좌는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잘못하면 조선과의 핵전쟁이었다. 중국과의 전쟁으로 막바지에 몰려 있는 조선이 혹시나 일본 본토에 핵을 쏜다면? 눈앞이 캄캄해졌다.

  "발사관 주수."

  "발사관 주수!"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가 함체를 울리고,  잠시 후 어뢰실에서 주수완료의 보고가  들어왔다. 부함장이  함장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함장이 인터폰을 들고 직접 명령했다.

  "준비 되는대로 발사!"

  어뢰발사관이 열리고 두 발의 어뢰가 푸른 동해바다 물속 러져 들어갔다. 어뢰는 일단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다시 서쪽을 향해 조용히 달렸다.

  "좌현 전타, 심도 300까지 잠수!"

  "좌현 175도, 잠항각 9도, 심도 300까지 잠수!"

  잠수함은 물속 깊숙히 들어갈수록 승무원들이 다시 햇빛을 볼 가능성이 적어진다. 그러나  적함으로부터의 공격을 받는 것보다는  물속에 있는 것이 승무원들의  심리를 안정시키기도 한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최신형 잠수함, 하루시오급의 5번함 와카시오는  동해의 해저 깊숙히 가라앉고, 잠시 후,  어뢰는 유선유도를 상실하고 최종속도인 55노트로 목표에 접근했다. 갑자기 목표의 침로가 바뀌며 속도가 증가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소나에서는  급선회하는 밝은 빛을 두 개의 작은  빛이 추적하고 있었다. 두 번의 엄청난 폭발음이 튼튼한 잠수함의 함체를 때렸다.

  "명중입니다."

  소나병이 뒤늦게 담담히  보고했고, 함내에 환성과 박수는 없었다. 나카이 함장은  최초의 전과를 올린데 대해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지만 다른 수병들은 침묵으로써 항변했다. 함장은  승무원들의 조용한 저항을 무시하고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좀 더 깊이 들어간다. 침로 2-6-4, 반속전진."

  "목표는 계속 해저로 침강하고 있습니다."

  부함장의 복창과  소나병의 보고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불행한 조선해군 승무원들은 퇴함할  여유도 없이 당했다. 모조리 일본해, 조선인들이 동해바다라고 부르는 일본해에 수장된 것이다.

  1999. 11. 26  10:20  함경북도 나진 작소동

  차오 상장은 아직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조선군은 장백산(백두산)을 우회하여 제 1 야전사를 포위하더니 다시  주변에서 가장 높은 개선산을 기습점령한  것이다.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사단 사령에게 호통을 쳐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고 꼭 점령하라고 했지만 아직 기쁜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조선군이 개선산의 병력증강을 꾀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역시 상륙전을 감행할 모양입니다."

  어둠침침한 전등이 빛나는 지하토굴에서 제 1 야전사 부직(副職-부사령관) 친 차이엔 중장이 조언했다.  중년의 친 중장은 낮에 차오 상장을 보좌함은 물론 야간상황실에서  밤을 새기 일쑤였다. 눈은  이미 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약간의 빈혈기마저 감돌았다.

  "설마 그런 미친 짓을... 조선에는 상륙주정이 별로 없잖소?"

  "조선에서 또 어떤  작전을 쓸지 모릅니다. 우리도  별다른 상륙용 장비 없이도  대만을 점령했고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우리의  해안포대를 침묵시킨 다음에는  어선으로 상륙전을  펼쳐도 됩니다. 이곳은  수심이 깊은 조선 동해안이기 때문입니다."

  신중한 친 중장이 차오 사령의 주의를  촉구했다. 조선의 다른 전선과 달리 이곳 전선에서만 조선군에  밀리지 않은 것은 친 중장의 신중함과 예리한 판단력 덕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차오 상장이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음... 사실 중장비를  하역시킬 필요가 없다면 그딴  12노트짜리 LST나 LSM보다는 날랜 소형어선이 훨씬 상륙전에 적합하지. 대만상륙전에 대한 토론에서 우리 장관(將官)들이 모여 내린 결론이라오. 우리는 그에 대해 대비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소."

  "대함유도탄이 부족합니다. 아무래도 단기전을 예상했기 때문에..."

  "알고 있소. 항공수송을  요청하시오. 그렇더라도 그들이 상륙하고 나면 격퇴하는 것이  좋겠소. 그건 그렇고 개선산 공격은 어떻게  되고 있소?"

  친 중장이 작전상황실 중앙화면 아래 기기를 조작하자 개선산 정면이 보였다. 폐허가  된 산 정상 부근  군데군데에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인민해방군의 공격준비 포격이었다. 아군 보병들은  엄폐물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새로운 대대였다. 차오 상장은 이것이  8번째라며 투덜거렸다. 적은 소규모였지만  막강한 대공화력을 바탕으로 인민해방군 헬기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보병만으로 해치워야 했다.

  "네! 적 헬기 50여대를 격추시켜 병력지원을 차단했습니다. 전 전선에 걸쳐 치열하게 교전중이지만  산악지대에 방어선을 구축한 우리가 유리합니다."

  "그래도 도강을  허용한게 마음에 안들어.  개선산은 그리  높은 곳은 아니지만 이 지역 상당부분이 시계에 들고... 그리고 말야..."

  [쉭! 쉬쉭! 쿠쿵~]

  "또 시작이구만."

  폭발진동서 흙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차오  상장이 즉시 해안방어부대를 호출했다.

  "그래, 나야. 지금 이 포격 혹시 적 함대의 공격 아냐?"

  [이 포격은 조선군 지상부대에 의한 것입니다. 아직 적 해군은 해안선에 접근치  않고 있습니다. 참고로, 적  함포의 사정거리는 매우 짧습니다.]

  "그래? 어느 정도야?"

  차오 상장의 눈이 빛났다. 적 해군  함포의 사정거리가 짧다니 다행이었다. 만약 해안방어부대의 야포 사정거리보다  길다면 아군은 대책없이 당하게 된다. 그래도 차오 상장은 사정거리  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적 함포의 최대  사거리가 17km인 반면, 아시다시피  아군 WA-021, 155밀리 곡사포는  사정거리가 39km에 달합니다.  게다가 대함유도탄의 사거리는 하이잉(海鷹)-3의 경우 130km나 됩니다. 적 해군은 걱정 없습니다. 해안선에 접근하기도 힘들겁니다.]

  "좋았어. 조선해군은 자네에게 맡기네. 계속 수고하도록!"

  전화를 끊은  차오 상장은 왜 조선해군이  동해에서 계속 얼쩡대는지 불쾌했다. 장백산을 돌아온 지상군이 주공이고  해군은 단순한 양동부대일까?

  "소형어선은 유도탄이나 야포에 맞지도 않을 것입니다."

  신중한 친 상장이  다시 사령관의 주의를 촉구했다. 머리를 한  번 긁적인 차오 상장이  다시 고민에 빠졌다.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병력을 해안쪽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지금은 적에게 포위된 상황이었다.

  차오 상장이 보고 있는 작전상황실 중앙화면에는 개선산 정상을 오르고 있는 인민해방군  전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차가운  겨울산을 헉헉대며 오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게다가  그곳은 완전 노출된 곳이  아닌가? 이 새로운 대대원들 중에서 얼마나  살아남을지 의심스러웠다. 조선군의 기관총 사격이  시작되자 병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쌍방의 포화는 더욱 치열해졌다.

  1999. 11. 26  10:35  중국 헤이룽장성 무딴지앙(牡丹江)시 남방 3km

  "대단한 반격이구만. 됴아 됴아."

  인민군 제 4군단장 최 성만 상장은 부하들에게 여유를 보였지만 내심 떨리고 있었다. 적은  30분째 치열하게 아군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도저히 예비병력인  인민무장경찰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그들은 잘 싸웠다. 막강한  인민군 기계화사단이  전진하기는커녕 약간씩 밀리고  있을 정도였다. 10여km에  이르는 전선 곳곳에  구멍이 생기고, 사령부는 그 구멍을 얼마 안되는 예비병력으로 메우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적 병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닙니까?"

  참모장 손 성필 소장이 작전지도를 살피며  의견을 피력했다. 이 상태에서는 패배가 분명했다. 예하 4개사단 모두가 전투에 투입되고 있었고, 군단직할의 경보병여단마저 치열하게  교전중이었다. 조만간 예비병력은 완전히 바닥날 것이다.

  "기게 무신 소리야? 동무레 적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이 앙이야?"

  [쉬유유우~~~~~~ 쿠! 쿠! 쿠!]

  "이기 메이야!"

  최 상장이 지휘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광활한 만주평원 멀리 지평선 부근에 일렬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포탄의  낙하지점이 점점 이쪽으로 접근해왔다.  포탄은 거의 동시에 착지하여  한순간에 폭발했고, 그럴때마다 장갑이  약한 장갑차와 보병 수송용  트럭들이 형편없이 당했다.  희미하게 빛나는 태양  아래 흰색 위장복을 입은  병사들이 엄폐물을 찾느라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적 포병대의 십자포화입니다. 보십시오.  적은 정규군, 그것도 대규모 부대입니다!"

  "이기... 적 포병대 위치 계산했나? 즉각 반격하라우!"

  뭔가 이상했다.  통일 1군 사령부에서는  분명 모란강시 부근에  적은 인민무장경찰 3개 대대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인민군은 그 20배의 병력으로도 밀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적에게 분명 지원병력이 있습니다. 그것도 대규모... 최소한 1개  군단은 되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함정?"

  "적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너무  성급히 진격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작전상 후퇴하시는 것이..."

  "기건 아니 돼."

  최 성만 상장은 국군 사령관에게 지휘를  받는 것이 못마땅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후퇴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그는 인민군 전사의 감투정신을 국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적의 규모와 위치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앙이야. 분명 여기까지에 한계야. 밀어붙이라우."

  1999. 11. 26  10:50  함경북도 회령 서원동

  "개선산에 대한 적 지상부대의 열번째  공격입니다. 이번 도끼에 넘어갈지도..."

  "우리 부대가 나무가? 와 넘어지노?"

  김 재호 대장은 말은 그렇게 했으면서도 O-37B 드래곤플라이에서 보내오는 영상을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전투가 없는 개선산 서쪽 지역만 보였지만,  유탄이 산 정상 주위에서 계속 터지는  걸로 보아 고지에 대한 포격이  아주 치열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무리였다. 너무 욕심을 부린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고있던 참이었다.

  서원동에서 개선산까지는  동으로 8km,  남으로 6km의 거리에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는  산들이 천연의 요새가 되어 통일 1군의 진격을 가로막고 있었다. 도대체가 중국군 병력이 너무 밀집해 있는 것이다. 졸지에 최전선으로 바뀐 두만강 부근의 중국군 예비부대들은 그렇게 호되게 당했어도 후퇴할래야  할 공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저항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다시 개선산에서 보내오는  영상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제  포격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전투가  개시되는 모양이었다. 역시 적은  동쪽과 남쪽에서 각각 몰려오는 1개 대대씩의 병력. 현재  아군 병력은 약 60명으로 줄어들었다. 사실, 적  보병은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보병이 고지를 향해 죽기를 각오하고  올라오더라도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된다. 엄폐물이 없는 그곳에서 중국군  보병들은 참호에서 숨어 쏘는 총탄에 죽어갈 뿐이었다.

  한국군 야전교범에도 각개전투라는 항목으로 나와있는 그같은 저돌적인 공격은, 전혀  전술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1차대전 이후의 세계 야전지휘관들이 그렇게  많이 깨닫고도 요즘도 쓰이고 있는 야만적인 작전이었다.  이러한 고지공격의 유일한  전술적인 잇점은, 적의 탄알을 소비시키는 것,  그것도 경제적으로 소비시키는 것 뿐이다. 일반 병사들에게는, 아군 병력의  숫자가 너무 많아 보급품을  절약할 필요가 있을 때 감행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가 봐도 무모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군사교육을  하는 자들은 전통 때문인지, 군인으로서 가장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직도 세계 곳곳의  육군에서 정식 교범 중의 하나로 남아있는 작전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었다. 한국군이 유개호(有蓋壕)  총안(銃眼)에서 머리를 내밀고 총을 겨눌 때를 노려 중국군 포병의 직사화기가 불을 뿜는다. 이것이 지금  개선산을 위기로 몰아넣는 주범이었다. 그리고 아군 본대의 후방에 있는 포병이 지원포격을 할라치면 중국군 포병들은 귀신같이 엄폐호에 숨어버렸다. 흩어져있는 중국군 무반동포 탑재차량들, 그리고 엄폐호에 숨어서 쏘아대는 직사화기들...  이것들을 공격할 수는 없을까? 이것이 지휘부의 고민이었다.

  이때 윤 민혁 대위가 나섰다. 어찌 보면  현 상황에서 가장 합당한 의견이었지만, 다른 참모들은 지금은 불가능한  공중공격이나 포격만 생각하고 있어기 때문에 그의 의견은 즉시 채택되었다.

  "전차대에 연락해서 벌집탄이나  산탄을 쏘게 하면 어떨까요? 어차피 포격 정밀도는 필요없으니 장거리에서 발사해도 될겁니다."

  전차가 쏠 수 있는 포탄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활강포나 강선포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탄은  날탄(APFSDS:날개안정분리철갑탄)과 대탄(HEAT:대전차고폭탄)이 있다.  이 두종류의 포탄은 회전하면  안되므로 강선포의  경우 탄에 헛도는  링을 달아 회전을 막는다.  강선포로만 쏠 수 있는  탄으로 일반 고폭탄, 벌집탄,  산탄, 백린연막탄 등이 있다. 물론 이것들은 일반 야포로도 쏠 수 있지만 같은 구경의 포라도 포탄은 전차와 공용이 아니다.  벌집탄은 크레모어처럼 탄 내부에  쇠구슬이 들어 있고  거리조정신관이 부착되어  있다. 산탄은 벌집탄과  비슷하지만 쇠구슬 대신  작은 화살이 많이  들어있다. 백린연막탄은 흰 인이  들어 있어서 인이 공기와 접촉하면 연소하면서 병력을 살상한다.

  먼저, 두만강을  도하하고 대기중인 M-48 전차부대에  연락해서 전차에서 다른 탄종을  빼고 대신 벌집탄과 산탄이  대량공급되었다. 이윽고 포격이 시작되자  포탄이 날아가는  것이 지상레이더에 잡혔다.  개선산 정상의 포병관제관이  보내온 화상에는  목표에 명중했는지 어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눈에 띄게 중국군의 포화가 사그러들었다. 일반 포탄과 달리 이들 포탄은 목표가 공격을 받으면서도 직접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을 모르는 수가 많은 것이다.

  어떤 벌집탄은 개선산  정상에서 터졌다. 쇠구슬이 부채꼴로  퍼져 고지 정상으로 접근하던 중국군 보병들이  스러져갔다. 보병들은 한국군의 일제사격에 의한 것인줄  알고 그대로 몰려왔다. 또다시 산탄이 터지고, 작은 쇠화살들이 중국군  보병 머리 위로 쏟아졌다.  포격지원을 해달라고 외치던 중국군 대대장은 병력손실이 심각해지자 후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열번 찍혀도 안넘어갔네요."

  "나무가 아니니까."

  "어쨌든 빨리 교착국면을 돌파해야 될텐데요..... 쩝."

  장갑지휘차 안에서 전투장면을 지켜보던  김 재호 대장과 윤 민혁 대위의 잡담이었다.

  1999. 11. 26  11:00  경기도 남양주 통일참모본부

  "울산함에서 연락이  끊긴지 30분이 넘었습니다. 인민군  어뢰정의 부고에 따르면, 주변해역에서 부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곤혹스러웠다. 보고하는 심 현식 중장도 착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함장은 분명 어뢰라 했디요?"

  이 종식 차수는 일면 당황했고, 한편으로는 낙담까지 했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정체모를 적 잠수함에 의한 아군 수상함의 격침이라니.

  "그렇습니다. 기뢰나 지상, 혹은 항공기에서 발사한 어뢰, 또는 미사일은 아니었습니다."

  심 중장이 울산함이 보내온  긴급통신을 녹취한 테입을 다시 틀까 하다가 그만  두고 다시 한  번 지도를 확인했다. 중앙화면에는  울산함이 침몰한 해역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덩그러니 떠  있었다. 육지쪽에서는 통일한국군과 중국군 지상군의 위치가  표시되었고, 각국 공군기들의 움직임이 세밀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1995년  러시아에서 수입된 킬로급 잠수함이 중국 해군에 있긴 하지만, 만약  중국 잠수함이 동해에 들어왔으면 일본의 소서스라인에 당연히 걸리고,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들이 하루종일 그  잠수함 상공에 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물론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그런 미친 짓을  할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참모들이 도저히 인정하기는  싫지만 일본의 짓이라고 암묵적으로 결론이 났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참모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울산함이레 중국  해군 잠수함에 의해  침몰한 것이오.  동지들은 이 사실을 받아 들여주기 바라오. 대신,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오."

  결국 예상했던 대로 이 차수가 입을  열었다. 뉴스에는 짤막하게 울산함이 피침당했다는  사실이 보도될 것이다.  유족이나 컴퓨터통신망에서는 울산함의  침몰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과 맞설 전력이 없었다. 절반 이상의 지상군 병력이, 그것도 통일한국군 전력의 대부분이라고 할 병력은 모두  두만강 주변에 몰려 있었다. 공군이나 해군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도리가 없었다. 한중전쟁에서 부산이 최후방이 되어야 했다.

  "알갔습네다, 위원장 동지. 울산함에 비극은 중국 짓입네다. 대잠 경계를 더욱 강화하갔습네다."

  박 정석 상장이 대답하며  초계기의 전용 후 서해와 남해의 대잠능력을 평가했다. 그동안  겨우 8기의 초계기를 서해와 남해에 각  4기씩 배치했었으나, 이제 최소 3기를 동해로  빼내면 그만큼 중국과의 접적해역에 구멍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인민해방군  해군 소속 킬로급 잠수함은 전쟁이래 한 번도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다.

  1999. 11. 26  11:15  평안북도 영변

  김 종구 중위는  기가 막혔다. 아니, 골때렸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자신이 해군으로 전속된  것이다. 처음 병원에서 황 중령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농담인줄 알았다. 진담인 것을  확인하자 자신이 다리를 다쳐 임시로  배속되는 것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전 비행대대가  해군에 배속된 것을 알고 나서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해군항공대가 있는 진해나 제주도도 아니고 내륙지역, 그것도  중국과 맞닿고 있는 평안북도 영변으로 전출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뭉툭한 Mi-8 헬기가 비행장에 착륙했다. 다리에 기브스를 한 김 중위가 목발로 땅을 딛고 보니, 여기는 정말로 영변이었다. 험준한 산자락을 끼고 계곡쪽에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넓게 펼쳐진  이곳에는 고정익기를 위한 활주로가 3개나 있고, 헬기를 위한 착륙장도 곳곳에 있었다. 그물로 위장된  것들을 자세히 보니 모두  대공포나 대공미사일 발사대였다. 정식 공군기지도  아닌 영변에 이런 시설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왜 이런 곳이  이번 전쟁기간 중에 한 번도 이용되지  않은 것일까? 황 중령이 김 중위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저게 500호 건물이야. 북한이  핵시설이 아니라고 잡아뗀 방사화학실험실 알지?"

  "윽... 그럼 그 유명한 핵물질추출시설입니까?"

  "응, 근데 저  동굴 안에 있는 것들은 뭘까?  다른 전투기들은 주기장에 있는데  전시상황에 동굴 쉘터에  처박혀 있는 전투기라...  한두대도 아닌데?"

  인솔장교를 따라가며  황 중령은  자꾸 컴컴한 동굴쪽을  쳐다보았다. 김 중위는 아무리 보아도 전투기인지 공군기지 일반 시설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뭔가 끈끈한 인연의  끈이 황 중령과 전투기를  이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지들! 모두들 잘 오셨습네다. 동무! 거기 앉으시라요. 본관은..."

  브리핑실에 모여 웅성거리던  조종사들은 강단에 서있는 사람이 틀림없이 교관이라고  느꼈다. 전시에 조종사  교육이라니. 게다가 이곳에는 인민군 조종사들의 모습도 꽤 보였다.

  김 종구 중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을 인민군 제  3 전투비행단 소속의 백 범수 대좌라고  밝힌 짤달막한 이 사내 옆에는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김 중위는 이 러시아인에게 더  관심이 갔다. 조종사들은 아무래도  한국정부가 러시아에서 미그-29 전투기를  대량으로 수입한 모양이라고 수군거렸다.

  "이제부터 동지들은 수호이를 몰게됩니다."

  '수호이? 수호이-27 플랭커 말인가? 아니면 지상공격용 수호이-34?'

  러시아는 1994년, 중국에 수호이-27을 다수  인도하고 현지생산계약까지 맺었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을 공격하자  위협을 느낀 러시아는 중국을 견제할 겸, 달러도 벌 겸 한국에 수호이를 판 모양이었다. 그러나 백 대좌의 한마디가 조종사들의 의표를 찔렀다.  조종사들은 의미를 깨닫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지들은 수호이-33을 몰게됩네다."

  수호이-33, 해군용 수호이-27K의 다른 이름인 함상용 전투기였다. 옥포 조선소에서 소형항모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었지만, 김 중위가 알기에도 소형항모에서 이런 대형전투기가 이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증기사출기의 도움을  받으면 이륙이야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비좁은 갑판에 무슨  수로 착륙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벌써 항공모함의 건조가  완료될 시점이란 말인가?  조종사들의 궁금증이 더해갔다.

  "여기 우리 조선의  최고 기량급 조종사 동지들이  다 모였습네다. 저와 이쪽 피레니코프 대좌가  여러분들을 위해 수호이-33의 조종술 교관을 맡게 되었습네다. 에...  피레니코프 대좌는 전직 러시아 해군 조종사 출신으로서 현재는 피스 의용병입네다. 사아샤?"

  사아샤라는 애칭으로 불린 러시아인이 벌떡  일어났다. 사아샤가 의례적인 연설을 하고  백 대좌가 통역을 맡았다. 김 중위는  러시아어를 처음 들어본다. 시베리아처럼 거칠고 퉁명스러울줄  알았던 러시아어가 의외로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게다가 이 러시아 군인이 러시아 공군이나  방공군이 아니고 해군 비행대  출신이라니, 항공모함이 만들어지긴 정말  만들어지나 보다 하고 실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북 정부, 그리고  러시아 정부 사이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1999. 11. 26  11:30  중국 헤이룽지앙 무딴지앙시 남쪽 7km

  "완벽한 패배입니다, 동지!"

  손 성필 참모장의 말을 흘려 들으며 최 성만 상장은 다시 한 번 작전 지도를 확인했다. 분명한  것은, 적은 인민무장경찰이 아니고 대규모 정규군 부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적은 아군을  추격하지 않았다. 구멍난 방어선을  통해 중국군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왔다면 4군단은 최소한 100km는 후퇴해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4군단의 피해가 막심했을텐데, 중국군은 공격을 멈췄다. 이것이 최 상장의 흥미를 끌었다.

  "항공지원을... 적의 병력규모를 확인해야 합니다."

  "적에겐 어떤... 문제레 있어. 기래. 전차가 몇 대 없었어. 기동성에 문제레 있는거이 확실하디."

  "하지만 적의 화력은 막강했습니다. 적  포병부대가 분산되어 있어 반격의 실효성도 적습니다."

  "기래. 우리에게 제  2미사일여단만 있었어도... 한때 서부전선  최강의 4군단이레 이리 심히 당하다니, 말이 되갓서?"

  최 성만 상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후퇴와  부대 재정비를 위한 명령이라는 것으로 직감한 손 성필 참모장은 상관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패배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군단장이 내린 명령은 전혀 뜻밖이었다.

  "역습하라우! 지뢰 동시 폭파,  15 기계화 쾌속 전진. 32사단 좌측, 35사단 우측  공격! 34사단과 교도대,  15 기계화를 따르라.  경보병여단은 우회하여 배후 공격! 저격여단 예비. 기동작전이다. 멈추면 진다! 공격~"

  공병대가 후퇴하는 와중에 묻어 둔 대인지뢰 수천개가 동시에 폭발했다. 북쪽 지평선쪽이  삽시간에 화염에 쌓이자 상처입은  15 기계화사단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패배에서  살아남은 150대의 전차와  200여대의 장갑차가 쐐기모양으로 화염의 중심선을 향해  진군했다. 이들을 뒤따라 교도대가 트럭에 탑승한  채 기관총을 쏘아댔고, 이들 머리  위로는 122밀리 30연장 방사포 북쪽으로 날아갔다.

  인민군의 기계화사단은 1개 전차여단과 2개 기계화여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차여단은 4개  대대, 200대의 전차로 구성된다.  4군단같은 인민군 최정예부대에는 구  소련에서 수입하거나 북한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T-72M1과 개량형 T-62 전차가 배치되어 있었다. 최 성만 상장은  조금 전의 패배가 기동성과 화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방어전이었기 때문에 당했다고 생각하여 예하부대를 급속 전개하여 역습에 나선 것이다.

  후미의 포병연대에서는 Su-100 자주포가 계속 불을 뿜었다. 방사포는 만주를 모두 불태워버리기라도  하듯 연속 로켓을 발사했다.  공격은 먹혀들어갔다. 방어선을  구축하던 중국군은 갑작스런  지뢰폭발과 역습에 놀라 뿔뿔히 흩어졌다.

  특히 일반 보병사단에  배속된 기계화대대 소속 BMP-3의 위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100밀리 주포탑에 연동된  동축 30밀리 기관포는 25대가 동시에 발사하자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기관포 반대편 동축의 7.62밀리 기총과 차체  정면 좌우에 설치된 같은  구경의 기총도 동시에 불을 뿜었다. BMP-3은 과연 한 대만으로도 엄청난 화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각 보병전투차(BMP-3은  ICV)마다 7명의 보병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들의 화력까지 가세하자 전방의 인민해방군 자동차화보병사단은 형편없이 당했다.

  중국군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바닥에  처박혀 벌벌 떨었다. 이들에 맞서  중국군 69식 전차 1개  중대가 나섰지만 장갑차들이 동시에 발사한 9M117(나토코드  AT-10 Bastion) 미사일에 한순간에  전차중대가 격멸당했다. 전차는  엄폐물이 없는 평지에서 반자동  레이저유도 미사일을 피할  길이 없었다. 두  대의 전차가 살아남아 반격에  나섰지만 BMP-3의 100밀리 주포는 1000미터 이내의 목표에 대한  발견에서 발사까지 겨우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역습이 성공하고 있습니다! 적은 저항도  못하고 각개격파 당하고 있습니다."

  "기래, 기렇디."

  최 상장이 지휘차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을 씻었다. 기계화사단은 계속 전진하고, 최 상장에게 보이는 지평선 안쪽에서는 소탕전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멋진 승리였다.

  1999. 11. 26  11:35  중국 헤이룽지앙 무딴지앙시 남쪽 2km

  "적 전차부대가 선두입니다."

  작전참모가 공손히 보고하자 젊은  장군이 의자에 깊숙히 누운 채 모자를 약간 들어  올렸다. 좁은 지휘차량임에도 불구하고  내부는 초호화판으로 꾸며져 있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지휘차 내부에  샹들리에가 밝게 빛나는가 하면 바닥에는 붉은 카핏이  깔려있었고, 장군이 앉은 의자는 촌스럽게도 호랑이가죽으로  덮혀 있었다. 멋진 야전용  외투를 입은 그는 잠시 바로 앞의 작전지도를 보며 현황을 파악했다.

  "후퇴해!"

  장군이 짧게 지시하고나서 다시  모자를 얼굴에 덮어 쓰고 잠에 빠졌다. 잠자는 그의 모습은 마치 전투는 이미 끝났다는 표정이었다. 지휘차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졌는지 굉음과 함께  진동이 차체를 울렸다. 장군이 단잠을 깨서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부관에게 손짓했다. 부관이 마호타이주를 포도주잔에 반쯤 따라 그에게 바쳤다.

  1999. 11. 26  10:45(중국표준시) 티벳(서지앙 자치구) 라싸 남쪽 5km

  타시 구르메는 바람에 나부끼는  타루초(깃발에 경전을 새긴 것. 성황당처럼 줄로 엮어 나무에 매달려 있다) 아래에서 버터차를  마시고 있었다. 처음엔 역겨웠던 버터차를 지금은 구수하게  느끼고 있는 자신이 놀라웠다. 야크  두 마리와 다섯명의 동료가  그와 함께 했지만, 동료들의 잡담에 자신은 항상 빠져야만 했다. 그들과  말을 하면 할수록 그들에게 이질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이 갑자기  잡담을 딱 멈추더니 멀리  수많은 중국군의 행렬이 몰려온다고 말했다. 타시  구르메가 망원경을 꺼내 보았으나, 그들이 가리킨 동쪽  산등성이 아래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계곡에  소음이 울리고 조금  더 있다가 기다란 트럭행렬이  보였다. 티벳인들은 육감이 너무 좋다고 그는 생각했다.

  타시 구르메가 라싸를 해방한 빠르 바티 등의 독립무장세력에게 총을 주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물론 여분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라싸에는 아직도 수많은 중국인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라싸에서 한족(漢族)의 숫자가 티벳인을 능가할 정도였다. 이들 중에서 다수가 중국군과 내통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를테면, 라싸점령군의 무장이 향하는 중국군 정규부대의 경계가 느슨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현재 이곳에 있는  티벳인들은 인도 북서부의 다람살라(Dharmsala)에서 육로로 침투한 티벳해방전선의 전사들이었다.  그것은 죽음의 대장정이었다. 전사들은 추위와  굶주림, 히말라야 산맥의 눈사태에 생명을 잃었고, 친중국적인 파키스탄 군인들의 추격을 뿌리쳐야 했다. 이들은 5일간의 강행군 끝에 간신히  이곳 라싸 진입로에 도착하여 오늘 아침에야 매복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무기는 이미  어제 트럭편으로 이곳에 도착하여 동굴 속에 감추어 놓았다. 이제 중국군과의 전투만 남았다.

  "준비하시오."

  타시 구르메가 소형 무전기를  꺼내 짤막하게 명령하고 나서 다시 버터차를 마셨다. 설산들  사이로 보이는 티벳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름으로 찬란했다.

  1999. 11. 26  11:50  중국 헤이룽지앙 무딴지앙시 남쪽 3km

  "전차장 동지! 이기 함정 아님메?"

  "무시기 소리야? 날래 쏘기나 하라우."

  전차장인 특무상사 조 두형은 왼쪽에 앉아있는 포수의 불안감이 자신에게 전염된 것을  느끼며 화를 버럭 냈다. 사실 조  특무상사도 약간은 불안했다. 150여대의 전차는 계속 진군했지만  적 병력은 갈수록 엷어졌다. 밀집된 적 병력  사이로 돌진하면 좋은데, 이제 적은 띄엄띄엄 배치되어 가끔 대전차미사일을 날리고 있었다.

  조 특무상사는 평소에도  함경도 출신을 싫어했다. 그런데  이번 전쟁중에 불쾌하게도 함경도 출신인 김 중사가  포수로 배정되었다. 조 특무 상사가 보기에  김 중사는 하는  일마다 불안했다. 역시 함경도  출신은 믿을 사람들이 못됐다.  북한 사회에서 함경도 사람들이  거칠고 생활력 있는 것은 인정받았지만 항상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라서 다른 출신 사람들의 따돌림을 받았다. 조 특무상사는 그런  평가가 맞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요즘 그는  잘못하면 이따위 포수 때문에  생명이 위태로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들었다.

  "고폭탄이레 세 발밖에 남지 않았음메."

  "이런... 동무레 와 이제야 말하는기야?"

  역시 함경도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강도(평안북도 북동부) 출신의 자신이나  황해남도(황해도 서남부) 출신의  운전병 박 동무에  비해 자신의 일에 얼마나 무책임한가?  이런 사람이 자신의 이익에 관계되는 일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니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고폭탄 21발 중에 3발이라... 급할 때는 철갑탄을 써야갔구만...'

  "적 땅크 발견! 12시, 거리 1500!"

  남은 포탄수를 계산하고 있던  특무상사 조 두형은 김 중사의 외침에 놀라 입체거리측정조준기(stereoscopic  rangefinder sight)를 살폈다. 수직안정기에 의해 진동 없이 선명하게 보이는 조준기에는 틀림없는 중국제 80식  전차가 잡혀있었고, 잠망경으로  보니 같은 80식 전차들이  땅속에서 수도 없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인민군 15  기계화사단의 전차여단은 이미 삼면으로 완전 포위된 상태였다.  수평선 너머까지 가득 차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적 전차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중대  내 통신망인 무선용 스피커가 시끄럽게  울렸다. 중대장은 거의 실성한  듯 무선망에 대고 악을 쓰고 있었다. 조 특무상사는  놀라고 혼란스러워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때 그를 정신차리게 한 것은 김 중사의 외침이었다.

  "철갑탄 장전, 조준완료."

  "발사!"

  언제 장전을 했는지, 조준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할 틈도 없었다. 이 전차전에서 가장 먼저 조 특무상사의 전차가  발포를 하고, 저 멀리에서 노란 섬광이 튀었다. 이를 신호로 인민군과  중국군 전차들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명중! 철갑탄 장전."

  박 하사가  전차를 급히 왼쪽으로 급선회하고  다시 오른쪽으로 돌렸다. 조  특무상사의 입체거리측정조준기에 적  전차가 다시 조준되었다. 발사, 또 명중. 세 번째 조준을 할  때였다. 갑자기 엄청난 충격이 조 특무상사를 덮치고, 그는  즉시 정신을 잃었다. 중국군 전차의 대전차철갑탄(APFSDS-T)이 달걀  반쪽을 엎어놓은 모양의  포탑을 때린 것이다. 아득하게 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리며 유독가스 냄새가 차체에 가득 찼다. 코와 귀에서 걸쭉한 것이 흘러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졸렸다. 역시 함경도놈은 재수가 없었다.

  1999. 11. 26  11:05(중국표준시) 티벳(서지앙 자치구) 라싸 남쪽 5km

  이곳은 지옥이었다. 이곳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학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고대로부터 유명한 전사에서 자주 나오기도 하고 가장 극적인 장면이기도 한 협곡 사이의  적군 섬멸하기가 현재 벌어지고 있었고, 그  양상은 옛날과 달라진게 거의 없었다.

  화살과 돌이 기관총과 박격포로 변했지만 이것들은 멀리 청산리 대첩에서도 나온 케케묵은 무기였고, 자동소총과  수류탄도 고대와 비교해서 크게 발전한 것도  없는 무기였다. 다만, 춘추전국시대처럼 계곡 위에서 바위를 굴리거나 백병전을 벌이는 모습이 없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현대전을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은  헬기의 등장, 그것도 지뢰살포 헬기의 등장이었다.

  중국군은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총알 피할 곳을 찾아 정신없이 뛰었다. 이들이 하늘의  위협에 미처 대처할 겨를이 없는 것이  실로 치명적이었다. 아니, 미개한 티벳에서 상공에 있는 비행체는 모두 중국군 무기라고 착각한 것이  패착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파키스탄의 어느  농장에서 농약을 뿌리는데  쓰이던 라마(Lama) 헬리콥터가, 이탈리아제 BPD SY-AT 지뢰살포기를 매달자 무서운 하늘의 학살자로 표변했다. 3,744개나 되는 BPD SB-33 대인지뢰는 헬기 아래 매달린 운반용 탄창에서 나오자마자 충격신관이 작동하여 지상에 닿은 즉시 폭발했다. 직경 88밀리미터, 무게 140그램밖에 안되는 울퉁불퉁한 모양의 이 작은 플래스틱 지뢰는 파괴력이 의외로 강했다.  해방트럭 밑에 숨은 중국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2km에 이르는 좁은 계곡은  잠시 후 불타오르는 해방트럭 잔해와 중국군의 시체로 가득  찼다. 이들은 단 한명도 계곡을 빠져  나가지 못했다. 확인사살조가  계곡을 타고 내려가  울부짖는 부상병들을 사살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타시  구르메가 며칠동안 감지 않아 기름기가 끈적거리는 머리결을 뒤로 쓸어 넘겼다.

  "1개 대대 병력으로 적  1개 연대 완전 소탕이라... 제기랄, 세계  전사(戰史)에 길이 길이 남겠군."

  1999. 11. 26  12:20  중국 헤이룽지앙 무딴지앙시 남쪽 3km

  "이보라우, 김 중사!"

  조 두형 특무상사는 살아있는 자신을 확인하고  놀랐다. 옆에는 김 중사가 쓰러져 있는데  온통 피투성이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시체를 보기는 처음이라 무서웠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니 아무도 없고 군데군데 아군 전차들이 불타고 있었다.

  조 특무상사가 김 중사를 흔들어 보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전차 밖으로 나온  걸까? 그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 특무상사가 김 중사를 옆으로 뉘었다. 눈 위로 피가 가득 고여 있었다. 가슴과 배를 관통한 세 발의 큼직한 총상,  이것들이 김 중사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조 특무상사가 상황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았다. 적의  철갑탄은 포탑의 복합장갑과 부가장갑  덕택에 전차를 관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충격은 내부에  거의 그대로 전해져 운전병은  아마도 내장파열로 죽고 김 중사와 자신은 일단 살아 남은 모양이었다.

  '혹시 김 중사가 나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함경도놈은 제 자신밖에 모른다. 전차가 폭발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남을 구해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전차에서 30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역시... 김 중사가 자신을 들쳐메고 뛰다가 적의 기관총에 당한 것이다.  조 특무상사는 무수한 숫자의 전차 무한궤도가 뒤엎고 지나간 눈밭 위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1999. 11. 26  12:40  서울 한강, 가양대교 아래

  "잘가, 미영아."

  이 진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미영의  뼛가루와 함께 강물에 흘려 보냈다. 25살, 아직 꽃다운 나이에 고생만 하다가 잔인한 국가간 폭력인 전쟁, 그것도 가장 비인간적인 핵폭발에 의해  아기만 남기고 온몸이 타서 죽다니, 울음이 복받쳤으나 진은 악착같이 참고 있었다. 어찌 자신의 슬픔이 그의 남편이나 딸의 그것에 비할까.  뱃사공이 천천히 난지도 시민공원쪽으로 노를 저었지만 진은  옆에 사람이 있다고 느낄 경황이 없었다. 배는 강줄기를 따라 점점 거슬러 올라갔다.

  미영이는 고아였다.  아니, 진은 미영이가  고아인 줄로  알고 있었다. 고교때 항상 활달했던 미영이도  자신의 집안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고교 때는 동성연애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지만 미영이가 죽고 나서야 서로를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미영이는 좋은  친구였고, 아무 것도 없었지만  꿋꿋하게 생활해왔다. 항상 웃는  그 얼굴 뒤로 얼마만한 고통이 가려져  있는지 몰랐다. 딸을  두고 먼저 가서 안타까워하는  미영의 말들이 기억났다. 진은 너무 슬펐다.

  미영이는 병원 화장터에서  몇 개의 뼈조각과 부드러운  재로 남았다. 아니, 5분의 1이  미영의 유골이었다. 병원 화장터에서는 몰려드는 시체를 감당하지 못해 한 번에 다섯 사람씩  태우고 유골을 대충 나눴다. 미영의 시체를  화장할 때에는 칠순 노인,  중년 여인, 어린  아이, 그리고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 하나와 함께였다. 정식 절차보다는  능률이 우선되었다. 휘발유가 모자라자  나무토막을 썼고, 빨리 타라고 시체를 토막내기까지 했다.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처사라며  유족들이 항의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소연이는 내가 맡을께, 너무 걱정 마..."

  작은 나무상자에 담긴 재를 한줌 쥐고 싸늘한 겨울 바람에 날려 보냈다. 재가 바람에 흩날리다  강물 위로 흩어졌다. 4년간의 대학시절에 진은 미영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진의 허영이나  변심이라기보다는 미영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진이 대학 2년  때 미영이 결혼한다는 연락이 와서 몇 년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때 그녀는 이미 배가 불러 있었다.

  졸업 후 공장에서 매일밤  잔업에 시달리며 모은 돈을 미영이는 악착같이 저축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영은  고교 재학 때도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다. 방학 때는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하고 학기 중에도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주변에서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유혹이 자주 있었지만 미영은 결코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다.

  남편은  소규모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강원도에서  태어났다는 그 남자는 인상이 후덕스럽게  생겼고 미영 말로는 자신에게 아주 잘해 준다고 했다. 지금  그 남자는 동원예비군으로 징집되었고  만주로 파병되었는지 연락도 되지 않는다. 불쌍한 딸 소연만 남은 것이다.

  진은 미영이의 마지막 남은 뼛가루를 상자째  강물 위에 띄어 보냈다. 이제 미영이는 세상에  없었다. 고통과 서글픔의 세상에서  해방된 것이다.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진은 작은 배에서 내려 강둑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을  향해 걸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으나 꾹  참고 걸어 올라갔다.

  진이 계단을 중간쯤  올랐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가 확  잡아 당겼다. 진은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깜짝 놀라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뒤를 돌아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있었다. 그것은 친구의  느낌이었다. 미영이가 마음 속으로 말을 전해오는 느낌이 왔다.

  [같이 가... 무서워... 외롭고.]

  "미영아..."

  친구는 죽었지만 분명히 진을 부른 것이다.  반가운 동시에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돼..."

  [너... 나 싫어?]

  "아니, 좋아해. 정말 좋아해. 하지만 안돼."

  진은 너무 단호하게 거부해서 미영이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같이 갈  수는 없었다. 진은 다시 뒤에서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그러다가 미영이와 같이 있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러려면  자신이 죽어야 했다. 뒤를 돌아보니 계단 아래는 가파르게 경사져 있었다. 죽는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진은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미영아, 난 널 정말 좋아해. 하지만 그러면 안돼."

  [.....]

  "그냥 혼자 가. 소연이가 남아 있잖니. 우린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거야. 제발... 흑흑흑!"

  진은 그동안 복받쳤던  설움이 몰아닥쳤다. 계단에 주저앉은  채 엉엉 울고 말았다.  세상은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하지만 진이 없으면 홀로 남은 소연은 어떡하란 말인가. 진 자신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어린 소연이 더  불쌍했다. 진은 자신을 달래는 듯한 미영의  손길을 느꼈다. 엄마의 손길처럼 부드러웠다.

  "미안해..."

  [아냐...]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약간은 섭섭한 모양이었다.

  "이제 울지마..."

  [응...]

  하늘은 눈부시게 밝았다. 미영이의 미소를 보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진은 미영의 따뜻한 손길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느낌이 점점 약해졌다. 그렇게 미영이는 떠나갔다. 진은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계단을 다  올라간 진은 고개를  돌려 선착장을 보았다. 그곳에  진이 탔던 작은 배가  메어져 있었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뱃사공의 잔잔한 미소가 문득 느껴졌다. 진은 더 이상 무섭지도, 슬퍼하지도 않게 되었다.

  1999. 11. 26  12:50  평안북도 영변

  삽입하고 있는 중에도 다른 여자와의 섹스  생각이 난다. 이런 단조로운 운동은  질색이다. 여자의 굵은  허벅지를 어깨 위로 올렸다가  다시 허리를 감게 했다가 해보지만, 단조롭기는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여자에 대한 의무감뿐이다. 아니, 이 여자도 의무감에서 신음성을  내는 지도 모른다.  역시 섹스로 얻는 쾌감보다는  섹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섹스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얻는 쾌감이 더 크다고 느꼈다.

  황 인호는 침대 위의 프랑스여자를 다시  엎는다. 커다란 둔부가 눈에 가득 들어오고, 그 아래에 이미 축축한 음부가 보인다. 허리를 양손으로 잡아 당기고 질  입구를 찾는데 여자가 당황한  듯 불어로 뭐라 씨부린다. 항문에 삽입하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아까와는 달리 힙의 푹신한 느낌이 좋다.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다.

  여자 다리를 뻗어 완전히 엎드리게 하고 목덜미를 입술로 애무하다가 황은 여자의 머리결을  바라본다. 갈색 머리결이 참 아름답다. 부드럽기도 해서 입에 물고 싶지만  그러면 틀림없이 머리카락 한 올 정도가 이빨 사이에 씹힐 것이다.  그런 느낌은 싫다. 혀를 내밀어 귓볼을 간지럽힌다. 여자의 숨결이 가빠진다. 혀가 여자의 귓속 깊숙히 들어가자 숨이 가쁘다 못해 컥컥거리기까지 한다. 이제 더  이상 지속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여자를 다시 바로  ㄴ히고 화장대에서 로션을 가져온다.  여자의 가슴 가득히 로션을  발라 손바닥으로  마사지하듯 문지른다. 여자가  눈치를 채고 손으로 가슴을 모은다. 황은 여자의 배 위에 올라탄다.

  내일은 다시  앵커리지로 간다. 뉴욕에서  1박하고 다시 서울로  가는 것이 스케줄이었다.  이 여자의 내일 상대는  누굴까? 맞아,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털복숭이 기장 놈이겠지. 이름이 좆털이 뭐야? 휴게실에서 '헤르 좆털!'이라고 아는 척했더니 우리  항공사 스튜어디스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하지만  이름이 그런 걸 어떡하란 말야. Herr  Sottel. schwa(액센트가  없는 모음이  약화되어 모호하게  발음되는 현상.  영어에서 september가 섭템버로,  Korea가 커리어로 발음되는 것  등이 그 예)는 영어보다는 독일어에서 특히 철저히 적용된다.  부기장놈은 끝까지 조텔이라고 불렀지만 독일어 명사에서 2음절  엑센트라니. 실제 발음이 좆털인걸 왜 바꿔?  자, 집중해야지. 빨리 끝내고 자고 싶다.  여자의 똑바로 누워있는 얼굴은 역시 보기 싫다.

  황은 첫경험을 장난스럽게 치뤘다. 장난하다가  애뱄다는 경상도 말처럼,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여동생과 장난처럼 경험한 것이다. 볼링을 치고  나오면서 킬킬대며 떠들다가 지나가는  길에 여관이 보였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여 벌건 대낮에  손목을 잡아 끌고 들어갔다. 처음엔 앙탈도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  시선이 창피했는지 얼른 따라 들어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이층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러나, 자,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 여관방에는 단 둘밖에 없었다. 서로 얼굴만 붉어졌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성희는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황은 멀뚝허니  서 있었다. 황은 이 난국을 타개해야 했다. 무심코 한 발을 떼다보니 서로 가까워졌다.  다시 반대쪽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침대에 앉고, 팔을 뻗어 성희를 감싸 안았다. 부드럽게 안겨오는 성희의 몸냄새는 황을 아찔하게 했다.

  길고 긴 입맞춤이 이어지고, 혀가 그녀의 얼굴을 핥고 지나갔다. 티셔츠와 스커트를 벗기자 알몸이 드러났다.  아기처럼 매끄럽고 토실토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둘러 자신의 옷을  벗고 다시 격렬하게 안았다. 겨드랑이에 듬성듬성 난  털이 귀여웠다. 브래지어를 위로  올리고 가슴에 입맞췄다. 부드러운  감촉과 향기로운 살내음이 좋았다. 매끈한 허벅지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팬티를 벗기려하자  성희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위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고? 웃기지  마라. 숫처녀 깨는데  얼마나 힘드는지 알기나 해?  게다가 숫총각이...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되는거야? 으... 부러지겠다. 얘가 정상인가? 여자 거기는 원래 이런 거야? 10분 넘게 낑낑대고 있다. 소설같은데 보면 단박에 되던데, 이건 뭐 콜라병에  당구공 넣기보다 더 어려웠다. 간신히 되나  했더니 성희 말로는 거기가  아니란다. 이젠 지쳤다. 포기하려는데 성희가 울락말락한다. 이게 무슨 창핀가.  실패하면 성희가 더 창피해 할까 겁나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성희가 비명을  질렀다. 당황한 황은 엉덩이를  움직여 피하려는 성희를 못움직이게  잡고 힘으로 꽉 눌렀다. 성희는 옆방에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참아, 조금만 참아."

  이게 제대로 되는 건지 모른다. 그가 아는 것은, 삼류소설이나 이상한 잡지 보니까 이런  대화 내용이 있더라는 것 뿐이었다. 사실은  황도 아파 죽을뻔했다. 여자만 아픈게 아니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엉터리 삼류 연애소설 쓰는  자들을 저주하면서 황이 기를 쓰는 가운데,  채 절반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사정이 되고 말았다. 황이 성희의 몸  위에 무너지고, 둘은 가만 그렇게 있었다.

  사랑스런 여인, 그리움이 깊어가는 곳. 그녀 생각에 얼마나 많은 밤을 고뇌하며 지새웠던가? 황 인호는 깊은 밤에 그녀의 집앞에 들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불켜진  2층 창문 안에서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할까?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와 나는 혹시 30억년의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닐까? 전생에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아쉬워하여 지금  서로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인호는 자신이 미웠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괴로움. 그녀는 나의 마음을 알까? 그에게 화사한 미소 한 번 지어주지 않는 그녀가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왜 자꾸 우리 집앞에서 기웃거리니?"

  황 인호는  화들짝 놀라서  뒤돌아봤다. 단발머리에 체크무늬  원피스 교복. 틀림없이 영선이었다. 이 늦은 시간에  집밖에 있다니... 인호는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자위하다 들킨 것 이상으로 부끄러웠다.

  "너 일루 따라와."

  인호는 영선이 이끄는 대로 집 바로  옆의 골목길로 들어갔다. 인호는 가슴이 떨리고, 그것보다는 너무 무서웠다.  영선이 홱 돌아섰다. 가로등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표정은 무서웠다.

  "너, 나 좋아하니?"

  "..., 아, 아냐."

  왜 이따위 대답을 했을까? 돌이키기에는 너무  큰 실수였다. 상상속으로나마 그녀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말로 사랑을 고백했던가? 지금은 그 단어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거짓말만 한 셈이었다.

  "그럼 왜 자꾸 우리 집 근처에 얼씬거려?"

  "그게 아니고..."

  "솔직히 이야기해 봐. 너, 날 좋아하지?"

  "으응. 그래. 그런데..."

  됐다!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 인호는  그녀의 다음 말이 기대되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나를 좋아하지?"

  인호는 놀랐다. 애는  부끄럽지도 않나? 이런 모습은 상상한  적이 없었다. 말없이 장미꽃을  건네주면 부끄러워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도망갈 줄 알았던 그녀는 지금 당당히 인호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

  "넌 네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해.  그러면 상대에게  상처만 안겨줄 뿐이야. 너는 더 성장해야 돼."

  "....."

  "너는 남을 사랑할 자격이 없단 말야! 나는 그런 네가 싫어. 유치해!"

  영선이 홱 돌아서 집쪽으로 걸어갔다. 이제 다시는, 다시는 그녀를 못보게 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얼른 뛰어가서  그녀 앞을 가로 막았다.

  "난 널 사랑해. 진심이야!"

  영선이 이해하기  어려운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은 경멸의 눈초리, 또는 가증스럽다는 뜻의 눈초리였다.

  "아니... 더 솔직해져 봐. 넌  자신을 위한 감정만 있을 뿐이야. 누군가를 사랑하고픈 욕망, 그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 뿐이야. 너는 남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 그건  순수한 사랑도, 순진한 남자의 가슴 시린 용기 없음도 아냐. 비겁한 이기주의자의 치졸한 자기위안일 뿐이야."

  영선이 그를  제치고 다시 집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그녀를 본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여자 생각하시나 보죠?"

  어느새 김 종구 중위가 목발을 짚고 옆에  서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라 나른해서 잠시 낮잠을 잔 모양이었다.  김 중위가 느물느물한 웃음을 짓자 황 중령은 반격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음... 나, 서 헌팅턴(Sir Huntington)의 일대기를 구상중이라네."

  "크... 헌팅으로 작위까지...  게다가 천명이나! 황 중령님,  아니, 황 인호 경(卿)께서는 정말 대단하시군요."

  " 삶이었지. 자넨  그 고통을 모를거야. 나의 성장기에 점철된 그 여자들과의 가열찬 투쟁을..."

  "존경스럽습니다, 정말."

  말과는 달리 김  중위의 눈엔 조소의 표정이  역력했다. 속으론 '잘났어, 정말~  아직도 에이즈 안걸렸나요?'  라고 했을테지. 뭔가  하나라도 가르쳐주고 싶었다. 생각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래.

  "자넨 여자를 울리지 말게나."

  "으아~ 황  중령님이나 여자들  울리지 마세요.  천명이나 꼬셨다면서요?"

  "꼬신다고 다 울리는 게 아니지.  진정한 헌터는 헤어지더라도 여자를 울리면 안돼. 신신을 바쳐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헌터의 숙명일세. 심신(心身)이 아니라 신신... 몸과... 해구신의 그 신(腎)이지. "

  "크... 예, 써!"

  "자넨 내가 대영제국 기사작위를 받은 줄 몰랐지?"

  "잉? 농담 아녀요? 외국인에게는 작위를 거의 안주는 걸로 아는데요."

  "영국 왕실에 대한 IRA의 공격이 심하던  재작년에 내가 바람둥이 공주 하나를 구해준  적이 있거든. 나야 IRA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내 비행기였으니 어쩔 수  없었지. 작년에 하급기사 작위를 받았다네. 이름을 헌팅턴으로 해달라고 했지. 쿠쿠~"

  "으... 국제적인 망신입니다."

  "그게 망신이라니. 우리 헌터들도 세계화되어야 하지 않겠나? 후후~"

  "백마, 흑마... 부럽심다. 홍알홍알~"

  1999. 11. 26  13:00  경기도 남양주시

  차 영진이 부대 밖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상황실로 들어와 보니 참모들 대부분이 의자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잠깐씩 잠을 자긴 했지만 일주일째 쌓인 피로를 극복할 수  없었다. 중앙화면인 200인치 멀티비전에서는 TV방송이 한창이었다. 역시 서울 피폭 이야기가 머리 뉴스였다.

  우주인같은 방사능방호복을 입은  기자가 서있는 곳은 광화문 네거리였다. 아니, 광화문 네거리가 있던  자리라고 기자가 보도했다. 주변에는 무너져내린 교보빌딩과 세종문화회관이 보이고, 멀리  불에 그을린 북악산이 보였다.  SNG가 안되어 유선으로  방송을 하는지 방사능오염지역 치고는 의외로 화질이  깨끗했다. 낙진이 두차례나 떨어진  서울 도심에는 극소수의 구호반이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를 헤치고 있었다.

  '전자기펄스는 동축케이블에도 영향을 미칠텐데... 벌써?'

  하는 생각을 하며 차 영진이 보는데 화면이 기자에서 그 뒤의 충무공 동상으로 옮아갔다. 불에 형편없이 그을렸지만 동상의 윤곽은 뚜렸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탔습니다.  하지만 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이순신 장군 동상과 이 작은 거북선은  무너지거나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핵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거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성웅 이순신장군께서는 하늘에서도 우리  민족을 보위하시나 봅니다. 우리는  충무공의 호국 정신을 이어받아 기필코 이번 전쟁에서 중국을 몰아내고...]

  "저런 사기를..."

  뜻밖의 소리에 참모들이 문쪽을 돌아보았다. 차  영진 준장이 TV뉴스를 보며 흥분하는 모습이었다. 이 종식  차수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흠... 이유가 뭐기요, 차 동지?"

  "폭심(爆心)이 청와대라면...  충무공동상은 청와대에서  1마일 이내에 있습니다. 10킬로톤급의 핵이  폭발했을 경우 폭심에서 반경 0.5마일 이내의 모든 물질이 기화하고  1마일 이내의 모든 지상구조물이 파괴됩니다."

  차 영진이 원탁의 빈자리에 앉아 단말기를  조작했다. 원탁에 있는 화면을 켜고 광화문  주변 지도를 찾아 그 화면에 띄웠다.  그가 손가락으로 청와대와 충무공 동상이 있는  곳의 두 점을 찍어 직선을 긋고 자동 거리계산모드를 선택하니 디지탈 거리계에 약 1550미터라고 나왔다.

  "폭심에서 1마일 이내에  있는 것은 모두 파괴됩니다. 압력  17psi, 풍속 290mph... 사람처럼 부드러운 물체는 생존가능성이라도 있습니다. 참고로 폭심 반경 1마일 이내의 사망율은 90%에 달합니다. 물론 즉사하지 않더라도 방사능에 의해  고통받다 대부분 곧 죽습니다만.  그러나 동상처럼 단단한 물체는  여지없이 부서집니다. 어느 기관인지는  몰라도 충무공의 신화를 정치선전에 이용하려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차 영진은 혐의가  가는 기관의 리스트를 뽑았다. 국가안전기획부, 국군기무사령부, 정보사령부의 후신인  정보사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보처였다. 그는 퍼뜩 공보처장관 오 석천의 성향이 기억났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이었다. 오죽하면 과거  정치에 개입하던 안기부 대신 공보처가 국내정치를 도맡았다는 말이 나돌았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정 지수 대장이었다.  정 대장이 핵폭발시 거리별  피해정도를 나타내는 표를 원탁 왼쪽의 보조화면에 띄웠다.  10킬로톤급 핵이 폭발했을 경우 차 영진의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 대장이 조건을 붙였다.

  "그것은 미국의 핵폭발실험자료입니다만,  이 핵실험에서 폭발은 분명 1980피트 상공이었습니다.  이번과 같은  지상폭발은 다릅니다.  그리고, 이번에 폭발한  것은 아마도 20킬로톤급일겁니다. 동풍2호에  장착된 탄두는 대개 20킬로톤이거든요."

  정 대장이 반박했지만 핵의 파괴력이 적다는  것은 아니었다. 차 영진이 보충설명했다.

  "물론 지상폭발일  경우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범위는  줄어듭니다. 그러나 지상폭발의 경우 그 충격이 훨씬  강하게 지상에 미칩니다. 지진효과를 감안할 경우 무너지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아직까지도 희생자의 공식집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핵에 의한 직접적인 살상과 건물붕괴 및  가스관 폭발 등으로 인한 간접적인 사망까지 합하면 서울시에서 약 20만명의 시민이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엄청난 재앙입니다! 핵발사를 명령한 중국 지도부는  전쟁범죄자로 처단함이 마땅하겠습니다. 부상자는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습니다. 서울시내 모든 병원에  아직도 환자가 몰리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평생 고통받다가 끝내는...]

  잠시 뉴스를 본 이 차수가 힘없이 웃었다.

  "기럴듯한 신화야. 이순신 장군이레 살아있는 거디요. 우린 기저 모르는 척하고 있습세다. 무시기... 생각이레 있갔디요."

  1999. 11. 26  13:15  중국 지린성 뚠화

  "가 소좌님!"

  "백 동지..."

  백 창흠  중위가 손을 뻗어 가  경식 소좌를 끌어 당겼다.  가 소좌의 몸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배낭에서  모포를 꺼내 엎드린 가  소좌를 대충 덮어  주고 가  소좌의 68식 자동소총을  대신 잡았다. 그가  쓰던 K-2 자동소총 탄알은 조금 전에  모두 떨어졌다. 기지에 들어올 때까지 한 번도 쓰지 않던  총을 기본휴대량인 216발 외에 쓰러진 동료들의 탄알까지 모두 써버린 것이다.

  동료들은 모두 죽었다.  여기저기 중국군과 요원들의 시체가  가득 쌓였다. 흘러나온  피가 통로를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가 경식 소좌와 백 창흠 중위 두 사람만이 남아 최후의 저 構 있었지만 이미 의미없는 일이었다. 핵폭발의 충격에도 견딘다는  특수강판 차단벽은 중국군이 강산성의  용제를 썼는지 이미 두군데나  커다랗게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 사이로  총탄이 쏟아지고 있었다. 가 소좌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었으니 실제  전투력은백 중위 한 사람만 남은 것이다.

  백 중위가 전투중에 알고보니, 그가 있는 위치는 기가 막힌 곳이었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기에 딱  좋은 위치였던 것이다. 지상 4미터, 천장에서부터 7미터.  이곳은 사령관이 각종 모니터와  관제관들을 내려다보며 지휘하던 곳이었다. 출입구를  향해 비스듬하게 위치한 기지  사령의 콘솔(console)이 방벽 역할을 해주었고, 수류탄이 정확히  날아오기에는 약간 멀었다.  또한, 중국군이 구멍 사이에서  유탄을 발사해도 한참 뒤에 있는 벽이나 천장에서 폭발했다. 그래도 그  유탄에 가 소좌가 치명상을 입었다. 가 소좌는 백 중위와 달리 콘솔 안쪽에 있었던 것이다.

  수류탄이 굴러와  지휘석 아래  공간에서 폭발했다. 오른쪽  구멍에서 중국군 세 명이 뛰어  들어오자 백 중위가 한 발에 한  명씩 보냈다. 68식 자동소총의 반동이 의외로 강하게 느껴졌다.

  "조국은 우릴 버렸습니다.  잊어 버렸을 수도... 만약 살아 돌아간다면 그 거짓말쟁이 양  중장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군요.  꼭 구원팀을 보내주겠다고 큰소리 치더니만 소식도 없네요."

  또다시 중국군 병사들이  세 명씩 두개의 구멍으로 진입했고,  백 중위가 분노를 탄알에  실어 날렸다. 비명이 들리고  중국군들은 동료들의 시체 위에 쓰러졌다. 중국군  한 명이 배를 움켜쥐고 쓰러져 있었다. 백 중위가 정조준하여 그  병사의 가슴을 맞췄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총격이 잦아들었다. 중국군들은 다시  재정비하여 쳐들어올 것이다.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실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기럼 동무는 참말 아군이 구출하러 올 줄 알았나?"

  "그런건 아니지만요... 하하! 허탈해서 그렇습니다."

  "기래도 작전이레 성공해서리 다행이디. 암, 다행이디. 이제 전쟁은 곧 끝날기야. 조국을 구한거디."

  가 소좌가 무거워진  눈꺼풀을 꿈벅거렸다.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백 중위는 그가 오래지 않아 죽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야죠. 우린 죽고...  항복하더라도 중국군들이 내버려두질 않을겁니다. 결국, 우린 소모품이었어요."

  "소모품? 길티... 길티만 우리 특수요원들에 숙명이디 않갔서?"

  백 중위는  자신이 예비역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하고  싶었지만,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었다. 허울좋은 국가안전기획부 국제국 요원. 사실 전쟁 전까지 자신이  하던 일은 국가에서 외국에 파견한 산업스파이에 불과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보안을 담당하면서  동시에 외국 경쟁회사의  기밀을 빼내  한국기업과 국가안전기획부에 보고하는 일이 그의 전문이었다.  유령회사를 차린 다음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 경쟁사 관리자의 아이디를 유인한 후, 그  아이디를 다운시킨 사이에 경쟁사 컴퓨터 자료를 해킹하는 것이 특기였다.

  그때 통로 저쪽에서  기관단총 연사음이 길게 울렸다.  비명과 총성이 시끄럽게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 폭발음이 두 번 짧게 울렸다.

  "구원팀? 가 소좌님! 구원부대가 왔습니다!"

  "....."

  "틀림없다니까요!"

  백 중위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정말 온다던 구원팀이 온 것이다. 약속을 지킨 것이다.  가 소좌의 상태를 보니 아직은 괜찮아 보였다. 빨리 치료만 받는다면 살아서 전쟁영웅 칭호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가 소좌의 인상이 점점 일그러졌다.

  "동무! 속디 말라우. 뎌건 술수야!"

  백 중위의  등골이 싸늘하게 식으며  총구를 다시 돌렸다. 가  소좌의 우려는 충분히 있을만했다. 도대체 여기에 구원팀이 올 리가 없었다.

  "동무들~ 거기 누구 있슴메? 구원팀이레 왔슴메!"

  함경도 사투리가 들리자  가 소좌와 백 중위의 눈이 마주쳤다.  가 소좌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동무, 속디 말라우. 연변에는 조선족 동포들이 많은 거 알지비?"

  "....."

  "구원팀이레 왔다니끼니... 와 대답이 엄서?"

  백 중위는 심하게 떨렸다. 살고 싶었다. 혹시 저들이 아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 중위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암구어!"

  "무지개!"

  "맞잖아요!"

  백 중위가 가 소좌를  바라보았다. 가 소 構 웃었다. 백 중위는 자신이 너무 순진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구원팀이레 당한기야."

  가 소좌의  말이 맞았다. 구원팀이  왔더라도 그 많은 중국군을  모두 처치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부상당한 동지가 고문에  못이겨 자백했으리라. 강인한 요원들이 암호를 말하지 않더라도  자백제를 쓰는 경우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거기 가 경식 소좌 있나? 우리가 간다. 쏘지 마라!"

  가 소좌와 백 중위의 눈이 마주쳤다.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기다려! 확인해야겠다. 거기 책임자 누군가?"

  백 중위가 바깥을 향해 외치자 아까와는 달리 서울 말씨가 들렸다.

  ".....,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인 양 석민 중장이다. 난 안기부 강 과장이야. 거기 백 중위지? 자네, 내 목소리 알잖아?"

  "정말이요? .....,  강 과장님, 거기  구멍으로 얼굴 내밀어  봐요! 젠장, 빌어먹을! 왜 이제야 온거요?"

  백 중위는 양  중장이 이곳에 직접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화는 풀리지 않았다.

  "알겠다. 잠시 기다려라. 내가 들어가겠다."

  강 과장과는 다른 목소리가 나고, 강 과장이 당황해 외쳤다.

  "쏘지 마라! 그분은 국방부장관이시다!"

  "쓰펄! 국방부장관이든 대통령이든 무슨 상관이야."

  양 중장, 이제는  국방부장관이 된 양 석민이 구멍을 통해  기어 들어왔다. 흰색 설상복에 흰색 헬멧를 쓴 양 석민이 두손을 번쩍 들었다. 분노한 백 중위가 총을 양 석민에게 겨누고 벌벌 떨며 일어섰다.

  "왜 이제야 온거요. 왜... 조금만 빨리 왔으면 다들 살았을텐데..."

  "백 동무... 그만 하기요."

  가 소좌가 간신히 몸을 움직여 백 중위의 다리를 움켜 잡았다.

  "미안하다. 첫 번째  구원팀이 적기에게 격추되고 두  번째 팀은 적의 대공포화에 맞았다. 그보다 먼저 가 소좌를 치료해야겠네."

  "제기랄... 빌어먹을... 근데 당신 정말 양 중장 맞소? 그리고... 내가 열받아서 당신을 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 안해봤소?"

  "두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먼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귀관 맘대로 해라. 늦었지만  난 약속을 지켰다. 귀관이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나는 후회 안한다. 안타깝게도 그대들은  이번 작전 장마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생존자들이다.  첫번째질문에 대한 답은... 백 중위 스스로 판단하라."

  양 석민이 헬멧을 벗고 고개를 숙였다. 속알머리가 없었다. 양 석민이 틀림없었다. 출발 전 브리핑 때 그의  대머리를 보고 요원들이 키들거린 적이 있었다. 겉모습은 아주 젊어 보이는데  머리카락은 많이 빠져 있었다. 백 중위가 바닥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 무서웠다. 죽어간 요원들이 너무 불쌍하기도 했다. 다른  요원들이 서둘러 들어와 가 소좌를 응급조치했다. 양 석민이 백 중위의 어깨를 두둘겼다.

  1999. 11. 26  13:25  함경북도 회령 개선산

  "소대장님! 퍼뜩 좀 와 보이소!"

  젠장, 예비군의 호출이다. 무슨  말을 들을지 뻔한거 아닌가? 하 중위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소대원 몇 명이 몰려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가는 길에는 참호가 군데군데 무너져 흉한  꼴을 드러내고 있었다. 유개호는 모두 무너졌다.  이제 한국군 병사들은 근접신관으로  세트된 포탄에는 무방비가 되었다.

  "와 그라능교?"

  4명의 예비군들이  상처투성이의 몸을 참호에  눕히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강 병장이 부산  사람인데... 하 중위가 잠시 참호  너머를 살펴보았다. 중국군은 질렸는지  아예 공격해 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점심때라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퍼뜩 말 해 보이소."

  여유를 부리는 듯 하 중위가 계속 경상도 사투리로 강 병장을 재촉했지만 강  병장은 하 중위를  본체만체하며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참호  저쪽 구석에서 누군가가 음울한 소리로 물었다.

  "우린 여기서 다 죽는겁니까?"

  위생병이 전사하여 임시 위생병을 맡고 있는  임 종석 병장이었다. 순전히 제약회사 다닌다는 이유 단 하나 때문에 그는 혼자서 전사자 시체 100여구를 수습했다. 그런데 그 질문... 당연한 거 아닌가?

  "아까 교대병력들 어떻게 됐는지 보셨잖습니까... 아마 다시 헬기로 교대병력이 오기는 힘들겁니다.  위에서이 있겠죠. 아군이 계속 전진해 와서 우릴 구해주든지... 저도 죽기 싫은건 마찬가집니다."

  "서울이 핵을 맞았다는데요... 새벽에도 전화가 연결이 안됐습니다.  서울 인근은 모두 불통이더군요."

  사단에 있는 통신차들 말고도 통신차와 무선이 연결되는 차량이란 차량에는 병사들이 수백명씩 몰려들었다. 핵폭발이  알려진 자정 직후에는 전화가 전혀 안됐지만 새벽부터는 대부분 개통되어 서울 일부를 제외한 곳의 통신은 모두 재개되었다.  임 병장이 전화하려 한 곳은 그곳 일부, 하필 바로  그 불통지역이었다. 하 중위가  임 병장의 걱정을 이해했다.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족걱정을 하다니. 하  중위는 결혼이라는 것이 굉장한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핵폭탄 몇십발을 뺏아온 모양입니다.  이제 전쟁은 곧 끝날테니 걱정 마세요. 부인도 살아 계실겁니다."

  "전쟁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내 가족이 서울에 있습니다. 아내는  고아입니다. 저 말고는 지켜줄 사람이 없습니다."

  아마도 31세 정도? 소대  인사기록표를 읽은 하 중위는 임 병장이 아내와 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삼류 제약회사의 영업사원. 월급도 적고 힘든 직업이란 것을 하 중위는 알고 있었다.

  "..., 전쟁은 곧  끝납니다. 오늘 안으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이번 작전이 끝나면 소대가 재편성되고 시간이  좀 나겠죠. 아마 며칠이라도 소대원 전원에게  휴가가 있을겁니다. 최악의 경우라도  임 병장님은 제가 반드시  휴가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좀  참으세요. 그리고 꼭 살아 남으십시오. 부인과 따님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불쌍한 소연이... 미영이."

  임 병장이 하늘을 보며 넋두리를 하듯 한숨지었다.

  "설마 부인이 두 분?"

  "소연이는 내 딸이오."

  장난기가 발동한 하 중위를 임 병장이 힐난하며 노려 보았다.

  "아... 죄송.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힘내십시오."

  돌아가는 하 중위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임 병장은 자신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꼭 살아 돌아가야 했다. 누가 내 아내와 딸을  돌볼 것인가. 혹시 둘 다 죽은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다면,  나 혼자 살아 남은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다시 포성이 울리고, 지겨운 오후 전투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임 병장이 총을 메고  전투위치로 돌아갔다. 포탄 파편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설상복 안쪽에 입은  야전상의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전사한 중대원들의 인식표가 가득 느껴졌다.  임 병장은 자신의 인식표가  남의 호주머니에 있게 될까 겁이 났다. 총알이 빗발치는 참호  위로 고개를 내밀 수가 없었다.

  1999. 11. 26  13:40  함경북도 회령 서원동

  "총장님! 인민군 4군단이 패퇴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적과 조우했다고 합니다."

  윤 민혁 대위가 통신기의  단말기에 나타난 내용을 읽으며 놀라 외치자 참모들의 안색이  변했다. 흑룡강성에 중국군의 대군이  숨어있을 줄이야. 그러나 김 재호 대장은 예상했다는 듯 침착한 모습이었다.

  "제 15기계화사단의  전차여단이 거의 전멸했답니다.  4군단의 손실은 63%, 지금 전선이 붕괴되어 걷잡을수 없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군단사령부에서는 대규모 항공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쯧쯧... 최 상장 그 사람, 일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보고 한 번  안하다니. 자존심은 원..."

  김 대장이 혀를  차며 단말기에 나온 전황을 대충 훑어  보았다. 역시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드러났다.

  "통참에 고 휘 상장의 대군이 거기  있다고 알리게. 고 상장이라면 통참에서도 무시하지 못할거야. 병력은 100만,  아니, 150만 정도라고 말하고. 참, 5군 지휘권을 달라고 해.  그리고 4군단에는 항공지원 불가를 통보하게. 후퇴하고 싶은데까지 후퇴하여 전선을 재정비하라고 전해. 대신 지대지미사일 지원은 해주겠다고 하게."

  윤 민혁  대위가 통신장교인 최 영섭  중위에게 세부사항을 지시하자 최 중위가 그 내용을 통일참모본부에 송신을  했다. 윤 대위가 교신내용을 프린트한 용지를 김 대장에게 주자 김 대장이 읽고 씨익 웃었다.

문서번호 : 99통육2-031

수신 : 통일참모본부 군사위원회 위원장  이 종식 차수

참조 : 국방부 장관, 인민무력부장, 정보사단당

발신 :통일육군 제 2군 사령관  김 재호 대장

제목 : 고휘 상장이 지휘하는 적 지상군 주력발견에 대책

  1. 통일육군 제 2군 예하의 인민군 4군단은  본대 주력의 배후를 경계하는 임무를  수행중인 바, 1130 현재  정체를 알 수 없는  대규모 적과 조우, 패퇴함. 지휘관은  중국내전시 기갑전으로 공을 세운 고휘 상장으로 추정됨.

  2. 제 2군 예하 정찰부대 및 정보부서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적 주력은 4개 장갑집단군, 30개 갑종사단 및 65개 을종사단, 기타 다수의 인민 무장경찰로 구성된 것으로 추산됨. 총 병력 150만 이상으로 추정됨.

  3. 강력한 적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위해서는 지휘권의  통일이 요망됨. 제 5군 지휘권의 2군 사령관에의 이양을 요청함. 끝.

                         통일한국군 제 2군 사령관  대장 김재호

  고 상장은 역시 그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튀어나오지 않 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 대장은 이제야  마음놓고 작전을 이끌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인민군 4군단이라... 인민군 보병부대 최강의 병력이었다. 자신이 서부 전선에서 제 1군단장을 할  때 인민군 4군단을 방어하는 대책을 세우느라 골머리를 싸맨 적이  있었다. 1군단 예하의 보병 4개 사단에  1개 기계화사단 갖고는 어림도  없었고, 6군단의 1개 기계화보병사단  전력 전부와 김포의 해병 2사단에서 전차 2개 대대를 빌려와야 겨우 그들의 전진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들고 안전부절했었다. 그런 인민군 4군단이 형편없이  패하고 전차여단이 거의 전멸했다면 적은 최소 몇 개의 장갑집단군을 동원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윤 대위가 다소 과장된 전문을 발송케  했지만 그럴듯했다.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통일참모본부를 어떻게 설득해 5군 지휘권을 쥐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지휘권이 너무 자신에게 집중되면 인민군 장교들의 반발이 거세질건 뻔했다.  그러나 김 대장은 작전을 위해서는 제 5군이 꼭 필요했다.

  "자, 이제 우리는 중앙돌파를 실시한다."

  "...! 남쪽으로 말입니까?"

  "물론이지. 만주의 적은  아직 규모확인이 안됐어. 정 급하면 5군에게 우리 배후를 맡기고 우린 전진해야돼. 아직 시간은 있어. 포위된건 우리지만 내선의 잇점을 십분 활용하자고."

  윤 민혁 대위의  눈이 빛났다. 제 5군 사령관  천 호철 대장, 김 재호 대장의 육사 2기 후배이자 명령에 죽고 사는 진짜 군인이었다.

  "사령관님! 제 5군에서 긴급전문입니다!"

  최 영섭 중위가 전신용지를 김 대장에게 건네기 직전에 윤 대위와 눈이 마주쳤다. 윤  대위는 긴급전문을 읽고 있는 김 대장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사령관님."

  윤 대위가 궁금하다는 듯 김 대장에게 묻자,  김 대장이 종이를 윤 대위에게 건넸다.

  "천 대장이 사고로 죽었다는군. 제기랄, 일이 잘 풀리는 건가?"

  전문에는 천 호철 대장이 전선시찰 중에 헬기사고로 즉사했다고 적혀 있었다. 부사령관은 인민군의 이 성춘 대장이었다. 통일참모본부에서 한국군을 대표하는 정 지수 대장이 불안하지만 김 재호 대장의 주장을 지지할 것이라고 윤 대위는 확신했다. 국군이 주력인  제 5군의 사령관 자리에 인민군 장성을 앉힐 수는 없었다.

  "허 장군."

  "네! 사령관 동지!"

  2군 참모장인 인민군 허 석우 대장이 의자에 앉은채 부동자세를 취했다.

  "특수 8군단은 준비됐소?"

  "기렇습네다! 3개 여단이레 대기중입네다."

  특수 8군단, 북한의 대표적 비정규전부대이다. 특수부대왕국인 북한의 다양한 비정규전부대  중에서도 가장  숫자가 많고 전투력이  뛰어나다. 원래 남한 침공 전에 침투하여 활주로 파괴, 도로 봉쇄, 요인 암살 등의 임무를 맡는 특수 8군단은  이번 전쟁기간 중 한번도 동원된 적이 없어 그 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특수 8군단은 군단병력이 아니다.

  "즉각 투입하시오."

  1999. 11. 26  13:55  나진 남동쪽 97km 해저

  "목표 1, 방위  0-4-5, 침로 1-9-0, 15노트. 거리 15000미터입니다.  목표는 탐신음을 발하고 있습니다."

  소나를 담당한 장교가 4개의  디스플레이에 나온 정보를 종합해 보고했다.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는지 소나장교는 느긋했다. 함장 하치로 나카이 일등해좌(해상자위대 일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중국 해안포대에서  관할하는 하이잉(海鷹)이나 잉지(鷹擊)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들텐데. 침로 0-9-0, 미속전진."

  일본 해상자위대 하루시오급  잠수함 와카시오는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했다. 함장이 궁금증을  참지 못했는지 자신의 콘솔에서  중국 지대함 미사일의 자료를 찾았다. 구 소련제 P-5(나토식 Styx)의 중국제  개량형인 하이잉-2 해안미사일의  사정거리는 100km, 하이잉-3이나 4의  사정 약 130km. 잉지-2(나토코드 CSS-NX-8 Saccade)의  경우 최대사정거리가 120km에 달한다고 되어 있었다.

  "해안레이더에 잡히지 않을겁니다."

  이마무라 부함장이 말하자  함장이 끄덕였다. 그렇지, 지구 표면이 둥그니까  멀리  있으면  레이더에  잡히지  않지. 초계기와  조기경보기, OTH-B 레이더(超水平線 레이더 후방산란형)와 미국의 도움을  받아 구축한 위성경보체계가  물샐틈 없이  경계하는 일본열도의 경계상태와는 다를 것이다. 게다가  해안에 있는 중국 레이더시설은  한국해군과 특수부대로부터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콘솔에서 일어나며 함장이 말했다.

  "그렇군. 그럼 우리가 중국을 도와 줘야지. 목표의 정체는 파악됐나?"

  소나병이 음울한  얼굴로 함장을  돌아보더니 보고했다. 함장은  그의 우는듯한 표정을 끝까지 못본척했다.

  "포항급 코르벳함입니다.  음문(音紋)해독중.. 경주함같습니다만,  아직 확인 중입니다. 진주함일지도 모릅니다."

  "겨우 코르벳함이야? 알았네, 그거라도 공격하지."

  부함장이 전투정보 주컴퓨터에  연결된 단말기를 두들기자 포항급 코르벳함에 대한 자료가  나왔다. 기본적인 함체구조와 무장  등이 컬러로 나오고, 무장에 대한  세부설명이 붙어있었다. 이에 따르면 경주함은 대 수상전 전문 코르벳함이었다. 대잠병기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대형전투함이 별로 없는  한국해군은 소형 코르벳함을 대수상전, 대잠전, 대공전 세가지로 나눠 전문화시키고  있었다. 하픈을 장비하는 다른  한국 해군 함정과는 달리 포항급 코르벳함은 특이하게도 엑조세를 장비하고 있다.

  "하픈과 어뢰 모두  사정거리에 드는데... 좋아. 이번엔 하픈을 써보자고. 어때? 소나 데이터만으로 되겠지?"

  아직은 일본잠수함이라는 비밀을 지켜야 했다.  하픈을 발사하기 전에 목표에 대한 정확한 위치 파악은 일반적으로 레이더나 공격용 능동소나로 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 이쪽의 정체와 위치가 쉽게  폭로되어 손쉬운 공격목표가 될  수 있었다. 함장은 아직 이쪽의 정체를  감추고 싶었다.

  "충분합니다."

  소나담당장교가 말하며 병기관제장교를  쳐다 보았다. 병기관제장교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가 탐신음을  계속 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정위치를 파악하기는 쉬웠다.

  "하픈, 목표 데이터 입력."

  함장이 명령을 내리자 이마무라 이등해좌는 위험한 장난감을 가진 어린애 생각이 났다.  함장은 실제로 무기를 써보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어뢰발사관에 하픈이 장전되고  쉬익~ 하는 주수음이 함체를 울렸다.

  이마무라는 명분없는 전투가 싫었다. 만약  함이 격침된다면 누구에게 하소연한단 말인가? 정부에서는  분명 유족에게 와카시오함은 일본해역 부근에서 사고로 침몰했다고 거짓말을 할 것이다.

  [때앵~]

  "적이다! 어디야?"

  갑작스런 고주파 액티브 소나음에 놀란 소나병과 일부 승무원들의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함장은 직감으로  발신지가 매우 가까운  거리임을 알고 소나담당장교를 재촉했다.

  "2-7-5, 거리 2700! 심도.....!"

  당황한 소나병이 데이터를 읽었다.

  "뭐야? 수상함(水上艦)이 아냐?"

  나카이가 놀라 소나쪽으로 뛰어갔다. ZQR-1 예인소나에 기록된  음원(音源)은 분명 수중에서, 그것도 하루시오급 잠수함은 엄두도 못내는 깊은 물속에서 나온 음이었다.

  "심도 700미터! 잠수함입니다!"

  "빌어먹을! 러시아 핵잠이군. 우리에게 경고하는거야?"

  러시아 원자력잠수함이 왜  이 해역에 나타난건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는 나카이는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속으로는  떨고 있었다. 해상자위대 고위장성들의 생각은 일치하고  있었다. 조선정벌이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조선해군의 함정을  최대한 줄여놓을 필요가 있었다. 중국은  일본군부의 기대를 별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경제파탄으로 엉망이 된 러시아가  뭐 먹을게 없을까 하고 나선 것이다. 나카이는 분노했다.

  "액티브 소나음의  주파수 대역으로 보아 분명  러시아제입니다. 테이션음 발생. 돌발음  연속 발생 중! 목표 2는 급속잠항  중입니다. 기관 회전수 확인..."

  소나병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데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쪽에서 헤드폰으로 소리를 듣고 서있던 소나담당장교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목표 2는 러시아제 아쿨라(Acula)급입니다. 윽! 어뢰관 주수음!"

  "침로변경 1-5-5로. 이 해역에서 이탈한다."

  나카이 함장이 다급해졌다. 러시아 잠수함이  본함에 적대적인 행동을 취한 이상, 통상형  잠수함으로서 이쪽의 위치를 알고  있는 원자력잠수함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  함선과 교전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국보다는 못하지만  일본으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핵강국인 러시아에 시비를 걸 자위대 잠수함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해역이  러시아 EEZ와 가깝다는 사실이다. 일본잠수함이 이 해역에서 나포되기라도 하면 일본은 국제적 비난과 망신을 피할 수 없었다. 해상자위대 고위층도  운신의 폭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나카이 함장은 분노를 삭이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침로 1-5-5, 전진  반속. 함장님! 저 러시아 잠수함이 액티브  소나를 발하면 우리까지 조선 코르벳함에게 포착됩니다.  하지만 잠항심도가 낮은 우리만 공격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액티브 소나음은 빔 형태로 지향성이 있다.  방향의 범위를 정해 발신하기 때문에 코르벳함은  직접적으로 소나음을 듣지 못한다.  그러나 해저에 반사된 소나음을  수신했을 것이고, 러시아 잠수함과  일본 잠수함의 위치를 거의 정확히 파악했을 것이다.

  "그래. 그놈은 수상함정으로부터의  공격을 피할 자신이 있는게야. 하긴 잠항한도가 엄청난 놈이니까... 우리가  조선함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는거야. 젠장... 먹이를 바로 앞에 두고 물러서야 하다니."

  하루시오급 잠수함 와카시오가 점점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나카이는 이번 전쟁기간 중 한국  측이 선포한 전쟁수역을 빠져나갈 마음은 없었다. 그는 만만한 조선해군에게는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언제고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우전방에 어뢰! 1-8-0!  거리 1400. 러시아제 40형  어뢰입니다! 러시아 잠수함이 또 탐신음을 발했습니다."

  소나병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외쳤다. 나카이가 사색이  되어 명령을 연속 발했다. 하루시오급의 수중최대속도는  20노트급이지만 40형 어뢰의 최종속도는 45노트  이상이다. 왜 러시아 잠수함이  공격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함장은 상당히 급하게 되었다.

  "급속반전, 좌현 180도, 상향타 15도!"

  "어뢰에서 탐신음! 어뢰에 포착됐습니다!"

  왜 어뢰가 앞쪽에 있을까?  나카이 함장은 경황중에도 어뢰의 코스를 분석했다. 시간상 목표  2의 주수음이 들리기 전에 발사된  것이 분명했다. 다른 잠수함이 어뢰를 발사했거나 목표 2가  주수음을 내기 전에 숨어서 미리 발사한  어뢰일 가능성도 있었다. 함장은  합동작전을 원칙으로 하는 러시아 잠수함대니 다른 잠수함의 존재도 신경쓰였다.

  그런데 와카시오함의 속도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어뢰의  방향도 와카시오를 한국해군 코르벳함 바로 앞쪽으로  몰았다. 나카이는 코르벳함을 완전 무시하기로 했다. 일단 어뢰부터 피하고 봐야했고, 수상전 전문의 경주함이 동료함이나 초계기를 부르는 사이에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러시아  잠수함이었다. 이것이 자꾸 액티브 소나로 탐신음을 발했다. 나카이가 초조해졌다.

  "어뢰 접근! 본함을 향합니다. 거리 600, 가속 중!"

  "좌현 180도, 상향타 30도!"

  와카시오가 급선회하면서 수중에 물거품의 막을  형성했다. 어뢰가 잠수함을 스쳐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소나병의 비명이  이어졌으나 함장은 의외로 침착했다.

  "거리 300!"

  "다시 급속반전, 좌현 180도. 노이즈 메이커 발사!"

  수중에 거대한  물살이 일어나고,  원통형의 노이즈 메이커가  잠수함 위로 솟았다. 와카시오는 다시 동쪽으로 향했다. 러시아 잠수함이 또 탐신음을 발했다. 러시아 잠수함의 위치와 함께  어뢰의 항적이 소나 디스플레이에 환히 비쳤다.  노이즈 메이커에 접근하던 어뢰가  방향을 틀었다.

  "다시 접근, 거리 70! 명중합니다!"

  뚜! 뚜! 하는  어뢰 탐신음이 커지며 간격도 점점 짧아졌다.  승무원들이 명중에 대비하며 기둥같은 것을 붙잡았다.  도저히 어뢰를 피할 수가 없었다. 함체에 뭔가 쾅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함장이 눈을 질끈 그것 뿐이었다.

  "불발입니다!"

  거의 혼이  나간 소나병이 보고하자 승무원들  사이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러시아 잠수함은 아마 탄두가  없는 어뢰로 본함에 경고를 한 것이리라.

  "그럼 그렇지. 로스케놈이 감히 우릴 공격하지는 못할거야."

  나카이 함장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놀라본 적이 없었다. 나카이 함장은 돌아가면  이 상황을 상부에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본정부는  틀림없이 차관제공 연기 등,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압력을 가할 것이다.

  "새로운 어뢰입니다! 0-1-0! 목표 1이 확인됐습니다. 경주함이 아니라 진주함입니다!"

  소나병이 다시 경고를  발했다. 함장이 진주함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한국형 코르벳함 경주함과 진주함은  같은 현대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상부구조물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엔진이나 디자인 등 두  함은 거의 모든 것이  똑같았다. 소나병이 진주함을 경주함으로  착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진주함은  대잠수함 전용이었다. 거리가 멀다면 사정거리가  긴 하픈으로 공격하고 피하면  되지만, 지금은 진주함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와카시오가  정신없이 어뢰를 피하는 사이에 진주함이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한 것이다.  게다가 진주함은 러시아 핵잠수함의 액티브 소나에 의해 와카시오의 위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침로 1-8-0, 전진전속!  제기랄! 로스케놈은 조선해군이 우릴 공격하도록 유도한거야!"

  두 발의 Mk46  324밀리 어뢰가 40노트의 속도로  다가왔다. 잠수함이 급선회를 하며 물  속에 소용돌이를 만들고 노이즈  메이커를 발사했다. 진주함이 발사한 어뢰는 두 발이었다. 탐신음을  발하는 액티브 어뢰 뒤에 패시브 어뢰가 숨어 있었다. 어뢰 두  발이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헤매더니, 패시브 어뢰가 노이즈 메이커를 좇아  빙빙 돌며 해저로 내려갔다. 액티브 어뢰는 계속 탐신음을 발하며 잠수함의 옆구리를 잡았다. 물 속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폭발음이 바닷물을 뒤흔들었다.

  [뚜우~ 뚜우~]

  폭발음과 동시에 전기가  나가고 비상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예비전원이 가동되고 불이 들어오자 발령실 요원들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함장은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배관 몇 군데에서 물이 새자  승무원들이 파이프에 긴급복구용 테이프를  붙였다. 소나원 한 명은 명중될 때까지 어뢰를 추적했는지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전자전  담당장교는 공포에 의한 쇼크상태에  빠져 의무실로 후송되었다.

  "어뢰보관실이 침수되고 배터리에 손상을  입었습니다! 부상해야 합니다."

  부함장이 보고하자 함장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교전국이 아니면서도 울산함을  격침시킨 함장으로서는 도저히 함을  부상시킬 수는 없었다.

  "우린 이승만 라인을 빠져나가야 한다. 피해상황을 상세히 보고하라."

  어뢰실과 전원실이 침수되고 승무원 5명이 죽었지만 기관실은 무사하고 예비전원도 충분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다만, 함수의 소나가 사용불능이 되었고, 측면 청음소나도 작동을 멈추었다.

  "예인소나는 괜찮으니 상관없어. 목표 1의 위치는?"

  "3-4-7에 6,700입니다. 현재는 약 30노트로 급속 접근 중입니다."

  "그렇게 접근했나? 우라질! 1-3-5, 급속 전진. 적이 고속일 때  우리도 이동한다."

  진주함은 급속전진하다가  멈추기를 반복할 것이다.  진주함이 멈추기 직전에 우리도  멈추면 된다고  함장은 생각했다. 와카시오는  상처받은 몸을 이끌고 남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앵~]

  "으... 또 뭐야!"

  함장이 진저리를  쳤다. 음원이 러시아  잠수함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와카시오의 위치가 진주함에 분명히 전해질 것이다.

  "목표 2가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심도 950!"

  "저놈은 조선해군의 손을 빌려 우릴 죽일 셈이야!"

  진주함에 장비한 Mk46  어뢰가 초기형이라면 최대 항해심도는 450미터에 불과하다. 비교적  신형인 Mk46 Mod 5의 경우에도  겨우 750미터다. 그리고 와카시오함도 그 러시아 잠수함을 공격할 수 없었다. 와카시오가 장비한 89식 어뢰의 최대 잠항심도는 약  900미터다. 더더욱 큰 문제는, 와카시오는 더  이상의 공격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진주함이 점점 접근해 왔다. 나카이 함장은 첫번째에 받은 피해 때문에 더 이상 잠수할 수 없었다. 무조건 동쪽으로 급속전진할 것을 명령했다.

  1999. 11. 26  14:05  경기도 남양주시

  "1함대에서 보고입니다.  진주함이 나진 남동쪽  해상에서 국적불명의 잠수함을 격침시켰답니다. 현재 부유물 수거 중입니다."

  심 현식 해군 중장이 어두운 음색으로 보고하며 자신의 화면에 뜬 데이터를 중앙화면에 올렸다.  제 5군의 지휘권 문제를 두고  논란을 벌이던 참모들 사이에서는  순간 당황하는 기색마저 보였다.  울산함을 공격한 일본 잠수함이 분명한데, 현재의 전황에서는  이 전과를 언론에 통보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일본을  공격하라는 여론이 들끓어  전쟁수행에 지장을 줄 것이 틀림없었다.

  "역시 비밀로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핵잠수함으로  추정되는 잠수함이 이번 국적불명 잠수함의 격침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 잠수함은 심해 깊숙히 사라졌다는 진주함 함장의 보고입니다."

  심 현식 중장이 보고하는 도중에 짜르라는 암호명을 가진 러시아인을 힐끗 보았다. 전혀 표정변화가 없었다. 자신은 지금 러시아 해군이 아니라 피스의 의용병이라는 무언의 주장이었다.

  "길케 하기요.  부유물이레 발견되면 어느  나라 잠수함인지  알게 될 것이오. 진주함 함장에게는 비밀유지를 당부하시오."

  역시 이  종식 차수의 결정은  참모들이 예상한 대로였다. 심  중장이 진주함장에게 부유물을 상자에 담아 밀봉시킬  것을 명령했다. 암호화된 명령문이 전파를  타고 1함대 사령부와  진주함에 즉각 수령되었다.  심 중장이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던 이 차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에... 2군  사령원 동지에 말에도 일리가  있소. 현재 2군이  대규모에 적군에 포위되고 5군  사령원 동지가 순직한 지금, 지휘권에  통일을 기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오.  김 대장 동지야 원래  남반부 참모총장이었으니끼니 어차피 5군도 그에 에하나  다름없시요. 하디만 중국영토에 대한 공격은 제발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기요."

  인민군 장성들은  불만을 삭이는  표정이었고, 국군 참모들은  당연한 결정이라며 결과를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가중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해서 통일한국군 제 5군의 지휘권은  김 재호 대장에게 넘어갔다.

  1999. 11. 26  14:15  함경북도 회령 배덕동 고개

  벌써 30분째 포격이  이어졌다. 주로 근접신관에 의한  폭발이라 회령을 마주보고 있는 기다란 참호선에 숨은  보병들은 수없이 쓰러졌다. 그러나 폭격은 없었다. 어떠한  비행기도 회령 상공을 날 수 없었다. 마오 쳉 중사는 포탄이 떨어지지 않고있는 계곡의 대공엄폐호 안에서 중대장이 집단군 직속인 방공연대장과 교신하는 내용을 들으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예! 적의 포격은 대단하지만 아직 견딜만  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적기는 얼씬도  못합니다. 조금 전에도  조선군 비행기 수십 대가  왔지만 접근도 못해 보고 도망갔습니다."

  중대장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하긴,  이곳에 전투기를 보낸다는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마오  중사가 한껏 기지개를 켜는데  하늘에 이상한 것들이 보였다. 혹시나 해서 마오 중사가  망원경으로 그 물체들을 확인했다. 맙소사!

  "중대장님! 상공에 적입니다!"

  마오 중사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하자 중대장이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망원경으로  북서쪽 하늘을 살폈다. 레이더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럴수가! 패러글라이딩이라니!"

  하늘에는 무수한  숫자의 잿빛  패러글라이더가 떠 있었다.  이것들은 북서풍을 타고 점점  이쪽으로 날아왔다. 마오 중사와  부하들이 대공기총에 달라붙었다.

  "어떡하지? 미사일은 쏘아도 소용없고."

  허둥대던 중대장이 무전기를 잡고 외쳤다.

  "적이다! 대공기총은 대공사격 준비. 상부에도 빨리 보고해!"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대공사격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방 곳곳에 연막탄이 작렬했다. 대공기지 주변은 연기로 가득했다.

  "상관없어. 사격준비! 2000미터 거리 내로 들어면 일제사격한다."

  중대장이 명령을 내리고  다시 망원경으로 하늘을 살폈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보이는  낙하산 집단과의 거리는 약  2500미터였다. 방아쇠를 잡은 마오 중사의  손가락이 떨렸다. 전화벨이 울리고  중대장이 무전기의 수화기를 잡았다.

  "뭐야. 뭐? 적기다!"

  전방의 대공초소의 보고에 따르면 대규모의 An-2 편대가 하늘을 덮고 있다는  것이다. 대공포와 대공기총들이 총구를 내렸다. 과연 수십기의 소형 An-2 수송기들이 능선을 넘어 마오 중사가 있는 계곡으로 떼지어 몰려왔다. 곳곳에 숨어있던 대공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저공비행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느린 프로펠러기들은 추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숫자가 워낙 많아서 눈이  쌓인 산사면에 착륙하는 비행기도 많았다. 그곳에서  보병들이 쏟아져 나오자 중국군  보병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마오 중사는  몰려오는 비행기를 향해  죽어라고 쏴댔다. 또 한  대의 경비행기가 화염을 뿜으며  추락했다. 쉬익 하는 소리가  나서 아래쪽을 보니 침투한 인민군들이 RPG로켓을 발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콰!]

  마오 중사가 놀라 바로 옆 대공초소를  보았다. 초소는 시커먼 연기에 쌓이며 마대자루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적 헬기입니다!"

  누군가가 외쳤으나 이미 늦었다. An-2의  뒤에 숨어 저공으로 침투한 헬기들이 마오 중사가  있는 대공진지를 향해 기관포를  발사했다. 포탄이 모래를 담은 포대를 뚫고 들어와  중대장을 갈기갈기 찢었다. 주위에 서 있던 부하들도  춤추듯 쓰러졌다. 마오 중사가  대공기총을 왼쪽으로 돌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기관포를 발사하고 있는 MD500 헬기가 의외로 커보였다.

  "빌어먹을!"

  대공기총에서 총알이 딱  한 발만 나가고 멈췄다.  기관포탄이 기총의 기관부를 뚫은 것이다. 마오 중사는 즉시 엎드렸다. 기관포 소리가 이어지고 간간히 폭음이  울렸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하늘을  보니 상공에는 회색빛 패러글라이더가 강하하고 있었다.  복장으로 보아 인민군이 틀림없었다. 마오  중사는 다시 죽은척 엎드렸다. 대공진지 부근에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1999. 11. 26  14:30  중국 지린성 연변

  연변시 동쪽 너른 눈밭에  한국 방송사상 최대의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열린음악회 만주공연', KBS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인공위성을  통해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송출했다. 지금은 대부분이  군인들인 관객과 합창단이 함께 노래,  '터'를 부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열렸던 열린음악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군악대가 참가했다는  것이다. 지금 합동악단 지휘는 국군 군악대장 이 영섭 중령이 맡고 있었다.

  열린음악회의 만주공연은  선언적 의미가 있었다.  지금 중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정보관계자들은 TV화면에 붙어서  이 음악회의 전략적 의미를 분석하느라 바쁠 것이 분명했다. 관중은  1개 연대 정도였지만 1개 사단  병력이 외곽 경계를  맡았다. 객석에 수류탄 하나라도  터지는 날이면 아수라장이 될뿐만 아니라 만주공연의 의미는 완전 퇴색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객석에  앉은 민간인 복장의 사람들도  대부분이 군무원이거나 현역 군인들이었다.

  저 산맥은 말도 없이 오천년을 살았네,

  모진 바람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저 강물은 말도 없이 오천년을 흘렀네,

  온갖 슬픔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금강산(원래는 설악산)을 휘휘돌아 동해로 접어드니

  아름다운 이 강산은 동방의 하얀나라.

  동해바다 큰 태양은 우리의 희망이라.

  이 내몸이 태어난 나라 온누리에 빛나라.

  자유와 평화는 우리 모두의 손으로

  역사의 숨소리 그날은 오리라.

  그날이 오며는 모두 기뻐하리라.

  우리의 숨소리로 이 터를 지켜나가자.

                                                 터     한돌 글,곡

  사회를 맡은 예쁜  여자 MC가 뭐라뭐라고 잔뜩  선동하는 투의 말을 했다. 이런 것도  이북 출신의 여성 방송원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는 투였다. 합창단에 의한 합창이 시작되었다.

  오 우리의 땅 더 이상 뺏길 수 없다.

  누가 우리에게 싸움을 강요하는가.

  우린 한 형제, 우린 한 핏줄, 단 한 분의 어머니

  우린 한 형제, 우린 한 핏줄, 단 하나의 나라.

  돌아가라 너희는, 여기는 우리의 땅

  우리는 하나되어 외친다, 조국은 하나

  우리의 사랑 우리의 희망 통일조국이여

  (우리의 사랑) 우리의 희망 통일조국이여, 통일조국이여

  봄이면 진달래 피고 가을이면 벼이삭 익는

  남녘에서 북녘으로 허리를 이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다 한줄기 늘푸른 저 들판 트인 저 평야

  동해에서 서해까지 한바다 물결 우리는 우리는 하나였소

                              하나되는 땅    민족음악연구회 글, 곡

  방송되는 노래들이 당장 급한 중국 침략으로부터의 조국 수호를 주제로 하는지, 아니면  민족통일을 외치는지 모를 노래들이었다.  '하나되는 땅'에서의 '너희'는 원래  미국을 뜻한다. 선곡한 사람이 운동권 가요의 내용을 혼동한 것이 분명했다. 하긴, 어떤 대중가요나 군가가 운동권 가요만큼 애국심을 자극하는 노래가 있을까마는...

  MC가 거창하게 소개하자  무대에 가수 송창식이 나타났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로 시작하는 '내나라  내겨레'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김민기 작사, 송창식 작곡이기도 해서 송창식이 나온 것이다. 그는 노래의 절정부,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이땅에 순결하게...'를 특유의 멍청한듯한 미소를 지으며 불렀다.

  "이럴 때 태지들이 있으면 죽여주는데요..."

  임시 스튜디오에서 이 PD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김 승종 국장도 동감했다.

  "'발해를 꿈꾸며' 말인가?  하긴... 가수나 나갈 노래들이 너무 구닥다리들이라서... 그래도 노찾사하고  트리플 엑스가 있어서 다행이야. 젊은 것들이니 좀 낫겠지. 성악부문을 뺀건 잘한 결정이었어."

  "근데 '광야에서' 그 노래는 중국을  너무 자극하는게 아닐까요? 독도도 만주도 원래 다 우리땅이긴 하지만 어느 나라가 좋아하겠어요?"

  "이봐, 이 PD, 우리땅이니까  우리땅이라고 하지. 원래 다 우리땅이었어. 주인이란 말야. 지금은  이 땅을 찾는 과정에 들어섰고... 자, 시간됐으니 이제 내보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청년합창단이  무대에 나왔다. 처절한 전주곡이  흐르고 나서 노래는 낮은  음계에서부터 천천히 올라갔다.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의 피울음 있다.

  부등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옷의 핏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할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광야에서   문대현 글, 곡

  카메라가 잠시 아기를  안고있는 20대 중반의 여성을  비췄다. 아나운서가 질문하자 연변에 살고 있다는 키가 작은 그 여자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만주는 옛날부터  우리 땅이었어요. 특히 간도지방은  한말까지 우리땅이었는데 일본이 청나라에  넘겼죠. 이제 우리땅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요.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족 모두의  바램입니다!"

  김 국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 여자가 안고 있는  아기는 아마도 수면제가 든  우유를 마셨을 것이다. 김 국장은 공연  전에 이 PD가 여자 공수부대원에게  종이쪽지를 건네며  뭔가 지시하는 것을  보았다. 저 정도의 조작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용납될만 했다.

  다시 카메라가 무대를  향하고, 전속무용단과 함께 트리플  엑스가 무대에 나타났다. 객석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군인들이 휘파람을 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전주곡이 나오자 무용단의  퇴폐적인 율동이 시작되었다.

  화려한 조명발, 젊음이 뜨거움을 토하는 곳

  클럽 에로티카에서 난 널 보았어.

  섹시한 몸매, 현란한 춤솜씨

  날 기다려. 썬글래스에 반바지 입고 내가 나간다~

  붉은 팬티로 예쁘게 접은 장미꽃을 주었지.

  장미 팬티를 펼치며 꺄르르 웃는 너.

  너의 눈빛은 너무 뜨거워. 내 몸을 훑지 마.

  네 눈빛은 꽃뱀의 혓바닥같아.

  나보다 나이가 많아? 상관없어. 여자들은 젊은 남자 좋아해.

  오늘밤 널 리드할게. 그것 봐, 넌 여자잖아.

  날 너무 보채지마. 남자는 시간이 필요해.

  사랑을 계속 할 순 없어. 난 토끼가 아냐. 우헤헤~

  날이 새면 넌 날 못본 척 하겠지. 물론 나도 그럴거야.

  클럽 에로티카에서 널 다시 만나도, 넌 날 모르는 체 하겠지.

  그곳에서 여러 남자와 어울리면서도

  약혼자 앞에서는 내숭을 떨겠지. 순진한 척~

                                     클럽 에로티카   김종구 글, 곡

  "저놈들은 결코 서태지에 비할 바가 못돼. 사이비같으니라구."

  "당연하죠. 독창성이나  가창력이라곤 도대체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으니... 그래도 요즘 젊은애들 중에서는 인기가  젤 좋자나요? 20대 후반까지는 쟤들을 꽤 좋아하던데요."

  "다른 놈들처럼 억지로 만들어진 인기야... 근데 저런 자식들이 어떻게 우리 다물회에 들어왔는지 모르겠군. 골이 텅  빈 자식들이 무슨 광개토대왕 노래를 부르는지 기가 막혀서 원..."

  말을 하던 김 국장이 잠시 스튜디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음향기사와 조명기사,  스크립터와 이 PD 밑에  있는 AD들, 모두 다물회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요즘 연예가에서는  다물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뜰 수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비밀이었다. 그 누구도 다물회의 힘을 무시하지 못했고, 어떻게든 가입하려고 발버둥쳤다. 신인가수나 텔런트들은 거의  발광을 했다. 물론  외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이름을  쓰고 있지만, 모두 다물회의 하부조직이나 방계조직이었다.

  "우리 다물회 윗사람들이  저놈들에게 곡을 줬다니깐 할  수 없죠. 그래도 노래는 그럴듯해 보이잖아요? 갱스터랩과 프로그레시브 락의 절묘한 조화..."

  '멍청한 이 PD...'

  김 국장이 속으로  웃었다. 다물회는 연예계 등  문화계와 청년학생계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정계와 재계,  언론계, 그리고 군부에도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었다. 이것이  열린음악회 만주공연 생방송을 가능케 한 힘이었다. 이 공연의  목적은 머뭇거리고 있는 정치계와 군부에 여론의 압력을  가해 만주를 한국영토로 만들자는,  그들의 구호로 만주수복을 하자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조용한 전주족이 흘렀다. 김  국장은 이 노래 때문에 트리플 엑스를  부른 것이다.

  단군성조께서 지난밤 꿈속에 나타났네.

  잃은 땅을 찾으라. 그대 겨레의 터전을 지키라.

  피눈물 흘리는 단군성조시여. 제가 그 일을 맡겠습니다.

  칼, 나의 칼이여. 열성조께서 지켜오신 단군의 검이여.

  저 평원에서 말 달리자, 활을 쏘자.

  오랑캐를 쳐부쉈다. 치우천왕 만만세!

  거룩한 요하, 끝없는 지평선. 우리의 요동땅이여.

  중원은 못찾았어도 만주는 다시 우리의 말발굽 아래.

  한겨레 8천년 피땀으로 지킨 벌판

  광개토대제가 지난밤 꿈속에 나타났지.

  잃은 땅을 찾으라. 그대 겨레의 터전을 지키라.

  대제의 안타까운 표정, 저도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잃은 땅, 만주를 찾아서

  연변으로 여행갔지, 연해주도 돌아봤지.

  아! 그곳은 아직 우리의 땅,

  하얀옷 입은 우리 피붙이들이 살고 있어.

  지금 찾지 못하면 영원히 찾지 못해.

  만주를 찾을 때 광개토대제는 편히 쉬리라.

  을지문덕, 양만춘, 김종서 장군, 효종대왕이 꾸짖네

  잃은 땅을 찾자. 우리 겨레의 터

지키자.

  우리가 할 일, 우리땅을 우리의 손으로!

                                        광개토대제   김경진 글, 곡

  세 사람이 하늘을 향해 찌른 손을 무릎을 꿇으며 바닥으로 내리 꽂자 노래가 끝났다.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앵콜을 연호했다.

  1999. 11. 26  03:00  경기도 남양주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 차 영진 준장은  서둘러 차를 서울로 몰았다. 주변에는 폭격으로 폐허가  된 위성도시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울은 정말 참혹했다. 시내 중심부는 움푹 파인 거대한 웅덩이로 변했고, 외곽은 무너진 빌딩의  잔해들만이 을씨년스럽게  그를 맞고 있었다.  이상하게 이곳은 군인들에 의한 통제도 없었다.

  종로구 와룡동에  도착하여 서둘러 자신의 처가집인  비원 앞 한옥을 찾았다. 주변 한옥촌은  모두 무너졌지만 처가집만 고스란히 남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처가집으로 들어서자 아내가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았다. 상처 하나 없이 건강한 모습이었다.

  "정말 다행이오. 장인어른, 장모님도 무사하시오?"

  차 영진이 환하게 웃자 아내는 이상하게 슬픈 얼굴을 했다.

  "아뇨. 아버님과 어머님 모두 돌아가셨어요."

  "뭐요? 그럴수가..."

  차 영진이 아내를 위로하려던 순간 아내의  눈빛이 달라졌다. 차 영진이 흠칫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저도 죽었어요. 당신이 오길 기다렸어요."

  "뭐라고요?"

  놀란 차 영진이 아내를  보자 아내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방사능 피폭과 열폭풍에 이중으로 당했는지  얼굴과 몸 피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살이  녹아내림에 따라 얼굴이 참혹하게  변하자 아내가 끔찍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 영진이 주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당신같은 군인들이  국민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어요. 당신을 저주해요. 나는 억울해요. 당신 탓이예요!"

  끔찍한 모습을 한 아내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뒤로 넘어진 차 영진이 일어나려고 바둥거렸다. 뼈만 남은 아내가 그의 목을 졸랐다.

  차 영진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군복이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잠시 헉헉대다가 주변 사물이 눈에 들어옴을 느꼈다. 세  개의 TV화면 중 하나에는 통일참모본부 회의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다들 늘어져  자고 있었다. 지쳤을 것이다.  왼쪽 화면에는 전쟁중에 웬일인지 노래공연이 한참이었다. 카메라가 관중을  쭉 비췄다. 군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합창을 하고 있었다. 차  영진이 회의실과 연결된 모니터의 소리를  죽이고 TV 공연쪽 모니터의 음량을 높였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2절) 문승현 글,곡

  [중국은 서울과 개성에  핵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우리 동포들이,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인들이 무수히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우리에게 만주땅을 돌려줘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만주는 우리땅입니다.  우리 만주를 지키기 위해 싸워 나갑시다.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우리 겨레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맙시다.  다음 노래는...]

  여자 아나운서가 멘트를 하고 다음 노래를  소개했다. 밑에 자막이 흐르는데, '열린음악회 만주공연 생방송'이라는 글자가  크게 들어왔다. 아직 흐리멍텅했던 차 영진의 눈이 놀라  크게 떠졌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으로 대충 올리고 서둘러 회의실로 뛰어갔다.

  "잠깐 일어나 보십시오. 지금 TV에  나오는거 보셨습니까? 도대체 어디서 저따위 공연을 방송으로  내보냅니까? 우리가 침략자라는 것을 자인하자는 수작입니까?"

  차 영진이 큰 소리로 떠들자 참모들이 부시시한 눈을 뜨며 TV화면을 보았다. 이 종식 차수나 다른 참모들은 별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참모들이 방송을 못본 모양이라고 생각한 차 영진이 설명했다.

  "이 상태에서 만주를  우리땅이라고 하면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중국이 죽자사자  싸울건 눈에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또 핵미사일이 날아올텐데요?"

  참모들은 어쩌면  이 공연은 통일참모본부에서 사전에 승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다. 차 영진이 다시 주장했다.

  "이번 공연을 주도한 공보처장관에게 항의를 전달하고 공연에 협조한 지휘관들을 문책해야 합니다. 국민을 호도하여  전쟁을 지속하려는 불순 세력의..."

  "이봐요, 차 준장!"

  차 영진이 돌아보니 정 지수 대장이었다.  잔뜩 신경질이 나있는 표정이었다.

  "만주가 우리땅이라는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아뇨?  그리고, 중국이 나진,선봉을 점령하고 내놓지 않는 마당에  우리가 만주를 우리땅이라고 주장하면 어떻소? 나는 차라리 지금 상태에서 휴전이 되어 국경이 고착되면 좋겠소."

  놀란 차 영진이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다물회라는  이름이 그에게는 아주 크게, 그리고 무섭게 다가왔다.

  1999. 11. 26  03:10  함경북도 회령 제봉(542고지)

  완만한 제봉의 산기슭에서 김 재호 대장이 장갑지휘차 큐폴라를 열고 나와 망원경으로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포격이 끝나자  폭격이 시작되었다. 저공비행으로 날아온 F-16 전투기들이 얼마 남지 않은 중국군 대공진지를  집중공격했다.  중국군  대공기지가  격멸당하자  병력수송용 UH-1 헬기들이 배덕동  뒤쪽 763고지에 집중 투입되었다. 추락하는  헬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며 한숨을 쉬는 순간, 한  대의 헬기가 공중폭발했다.

  지상에서는 날렵한 보병전투차들이 산사면까지 도착하자 보병들이 하차하여 전투에 돌입했다. 다행히 이들에 대한 공격은 별로 없었다. 방어선의 중국군은 침투한 특수 8군단 병력을 막기도 바빠서 아마도 보병쪽에는 신경을 쓰기 어려울 것이다.

  개선산에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개선산의  주봉은 국군 일부 병력이 점령하고 포병  및 공군 관측팀이 활동하고 있는  790고지이고, 회령 평야와 접하고 있는  쪽에 763고지가 있다. 하나는 763고지  남쪽의 711 고지이다. 이 두 개의  고지와 790고지 사이에는 녹야천이 흐르며, 주변에 논과 밭이 길게 이어져 있다. 전투는  2군 사령부와 790 고지의 국군 사이에 있는 중국군의  주방어선, 763고지에서 한창이었다. 지금 그곳에는 낙하산으로 강하하거나 An-2로  착륙한 인민군 특수 8군단 일부 병력, 헬기강하병, 산기슭에서 올라오는 보병들이 포격과 폭격으로 엉망이 된 방어선을 뚫는 중이었다.

  "사령관님~ 763고지를 헬기강하병들이 점령했답니다~"

  지휘차 안에서 윤  민혁 대위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김  대장이 씩 웃었다. 결과는  당연한 것이었고, 건방진 윤  대위가 밖에 나오기 싫어 안에서 외쳤기 때문에 웃은 것이다.

  '짜~식. 이번 전투 끝나면  눈밭에 한 번 굴려야겠군. 얼음물이 더  나을까? 사내자식이 이깟 추위가 무서워서야...'

  김 대장이 다시 망원경으로 고지쪽을 살폈다.  정상에 녹색 한반도 그림의 통일한국기가 펄럭였다. 샌드위치가 된  중국군은 남쪽 산사면으로 밀리고 있는 중이었다. 후퇴하는 중국군 머리 위로 포격이 가해지고, 일대 추격적인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전투는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었다. 김 대장이 큐폴라 아래쪽에 대고 말했다.

  "어이~ 윤 대위. 나랑 목욕 한 번  같이 할까? 압록강에서 어떤가? 누가 오래 버티나 내기할래?"

  "...! 사령관님 취미가 그쪽이었습니까?  저는 싫은데요? 딴 남자를 찾아 보십시오."

  "으..., 빌어먹을! 날 호모로 몰아?"

Sir Huntington's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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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ist's Discipline  : 숫처녀는 공략  말라. 맛도 못보고 가중처벌된다. (强姦未遂+상해치상=强姦致傷)

note : 한국형법에서 통설인 삽입설에 따르면 미수에 그치는 수가 많다. 旣遂보다 형사책임이 더 무겁다. 민사책임은 훨씬 더 무겁다...--;

                               'Sir Huntington 一代記' 中에서

  1999. 11. 26  14:40  (베이징표준시) 티벳 라싸 남쪽 5km

  "눈이 옵니다, 타시 구르메."

  티벳해방전선의 지도자,  소남 툰두프가 스스로를  티벳인이라고 주장하는 젊은 아시아인에게  공손히 보고했다. 타시 구르메는  라싸 주변의 전술지도를 살피다가 고개를  들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회색빛 조각구름이 점점이 흐르고 있었다.

  "중국군 본대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오는 모양입니다. 멍청이들은 아닐테니까요."

  "라싸로 향하는 제대로  된 길은 이곳밖에 없습니다, 타시 구르메.  강쪽은 진창이라 오기 힘듭니다만, 걱정되신다면  정찰병을 더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이라..... 그쪽은 진흙탕이지만 겨울이라 땅이 얼어서 보병 대부대가 이동하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이오. 우리가 매복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중국군에게는 라싸가 먼저일 것이오."

  게릴라전에서는 본거지가  있어야 한다. 티벳같은  고원지대에서 대병력이 숨을 곳이 도시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중국 국공내전의 모택동처럼 광대한 영토를 이용하여  공간을 내주고 시간을 버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없었다. 현재 인구밀집지역인 라싸가 해방구가 된 지금, 그들은 라싸를 지켜야 했다.

  "알겠습니다, 동지. 얀가! 옹갸르!"

  툰두프의 두 동생, 소남 얀가와 소남  옹갸르가 계곡쪽에서 총을 들고 뛰어 왔다. 툰두프가 두 사람에게 뭔가를  지시하자 두 사람이 30여명의 전사와 노새  다섯 마리, 야크 두  마리를 이끌고 도로쪽으로 뛰어갔다. 타시 구르메는  푸른 하늘에 점점이  퍼진 잿빛 구름을 올려다  보았다. 한바탕 진눈깨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라싸쪽에서 구식  자가용승용차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경계병들이 신분을 확인하고 소남  툰두프를 부르자, 그가 승용차에서  내린 중년여인과 잠시 이야기하더니 타시 구르메에게 안내했다.

  "이 분은 찬  초크 달마이십니다. 자유티벳동맹의 지도위원입니다. 이 쪽 분이 성스러운 흰산의 영웅, 타시 구르메님이십니다."

  툰두프는 타시 구르메를 소개하며 목이  메었다. 툰두프에게 구르메는 티벳을 구원할 전설의 영웅이었다. 타시 구르메를  찬찬히 살피던 찬 초크 달마가  갑자기 차가운 땅에  오체투지를 하며 절을 했다.  구르메가 당황했다. 자존심 강한 티벳인이 외국인에게  이렇게 파격적으로 존경심을 표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영웅이시여! 티벳을 구원해 주소서! 지금 라싸의 모든 백성들이 기뻐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고 있나이다. 타루초를  돌며 당신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라싸에서 듣기로  당신께서는 진짜 판첸 라마라고  하던데 불경스럽게도 저는 조금 전까지 믿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찬 초크 달마가  잠깐 고개를 들어 타시  구르메를 우러러 보고 다시 머리를 땅에 부딪혔다. 판첸 라마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티벳인들의 정치,신앙의 지도자이며, 동시에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서 숭배대상이기도 하다. 중국은 판첸 라마의 옹립에 개입하여  중국 어린이를 판첸 라마에 등극시켰으나 대부분의 티벳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타시 구르메는 한국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를 한국정부가  홀대한 것을 기억했다. 대만과의 교류에서처럼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 일어  나시오. 나는 당신들의  종교와 관계없는 사람이오. 그건 그렇고, 라싸의  상황은 어떻소? 빠르  바티께서는 총을 주지  않는다고 화가 난 모양이던데..."

  찬 초크 달마가 갑자기  머리를 땅에 몇번 부딪히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죄송합니다. 그  어린 것은 이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벽에 머리를 찧고 있습니다.  당신을 알아 모시지 못한 죄, 저희들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중국을 몰아낸 뒤에 죄의 대가를  받게 허락해 주십시오."

  "어허~ 저런... 당장  그런 짓 그만 두고 이제 사람들을  무장시키시오. 무기가 있는 곳은 조칸사  관리인으로 일하는 나완 타히가 안내할 것이오."

  "오오~ 성스러운  호소(湖沼) 마나슬루처럼  넓으신 자비, 감사드립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티벳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사 부디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지켜 주시옵소서."

  찬 초크 달마가 9번  절을 하고 물러나자 타시 구르메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칼 첸 총리의 심리팀이  라싸에서 공작을 벌인 모양이었다.  이제 자신은 싫더라도 졸지에  관세음보살 대접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며 타시 구르메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장갑차입니다!"

  툰두프가 외친  후에 무전기가 울렸다.  장갑차 10여대를 앞세운  1개 연대 병력의  중국군이 계곡쪽으로  몰려온다는 소식이었다. 놀란  타시 구르메는 짤막한 명령 몇가지를  내리고 서둘러 병력의 절반을 빼내 강쪽으로 뛰었다. 기관총 소리가 계곡에서 길게 울려 퍼졌다.

  1999. 11. 26  16:05  함경북도 회령 제봉(542고지)

  김 재호 대장이 장갑지휘차 내부에 깔린 전자상황판을 노려보고 있었다. 흑룡강성에 있던  중국군의 진격속도는 의외로 빨랐다. 잘못하면 나진,선봉의 중국군을 양분하기도  전에 먼저 배후를 공격당할 수 있었다. 5군의 진행방향을 살피던 윤 민혁 대위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쪽으로 움직이던 푸른 화살표가 그 순간 갑자기 서쪽으로 꺾였다.

  "5군으로 막는게 아니었습니까?"

  "..., 응!"

  "......!"

  김 대장은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말해 주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윤 대위가 얼핏 고개를 돌려 최 영섭 중위와  눈이 마주쳤다. 최 중위가 윤 대위의 자리쪽으로 눈짓을 했다. 아까 사령관이  쪽지를 최 중위에게 넘겼는데 그것이  5군에 내린 명령서였던  모양이다. 어쩐지 아까부터  최 중위가 자꾸 눈치를 주는게 이상했었다.

  "부관을 그렇게 무시하시다니...흑흑. 저는 게임이나 하렵니다."

  윤 대위가 장갑지휘차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잠시 훌쩍대더니 전술컴퓨터에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시켰다. 그러나 통신내역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으며,  통신내용은 암호체계가 거의 완벽해서 그의 능력으로는  해킹할 수도 없었다. 이럴  겨우에 대비하여 최 영섭 중위와 약속을 한 것이 게임 네트웍에서의 정보교환이었다.

  "께임? 하래미~"

  "삐쳤습니까?"

  "아니. 니는?"

  "아뇨....."

  윈도스가 뜨고 윤  대위가 범용 통신프로그램 '하눌타리'를  선택하자 잠시 후  인터넷이 자동접속되었다. 김  대장은 윤 대위가 자주  게임을 하는 것을 보아 왔으므로 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윤 대위의 통신 캐릭터인 치치올리나의 누드를 보기 위해 잠시  기웃거렸다. 윤 민혁이 김 대장을 향해 인상을  험악하게 쓰자 김 대장이 못본 척  고개를 돌렸다. 윤 민혁이 투덜거리더니  캐릭터에 수영복을 입혔다. 그가  랩탑에서 단축키를 누르자 다음과 같이 입력되었다.

telnet 209.248.36.10 2026

  윤 대위가  화면을 다운시키고 가상현실 게임용  고글과 헤드셋을 썼다. 드넓은 만주벌판에 점점이 고인돌이 퍼져있는 입체화면에 나타났다. 저 멀리 피라밋 모양을 한 거대한 석제  고분 옆에, 고구려군 막사의 모습이 가까워졌다.

  [치우천왕님, 어서 오십시오. 23장의 서간이 도착했사옵니다.]

  윤 민혁이 직접  CG작업을 해서 만든 여덟명의  시녀, 팔선녀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익숙한  솜씨로 손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무선게임기를 조작하자 반바지를 입은  우편배달부가 달려와 종을 두 번 울리더니 그에게 편지뭉치를  주었다. 게임 내  메일이 하룻사이에 꽤 많이  쌓여 있었다. 제목을 대충  훑어보니 서울 피폭이 게임메니어들을  상당히 놀래킨 모양이었다.

  편지 종류 (보낸이)            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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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성 (黃帝) : 치우천왕님! 간만에 탁록벌판에서 한 판 붙읍시다~

2. 동화상(영화처럼-그룹) : R'uss族 기사 '이반'과의 멋진 한판 갈무리

3. 텍스트 (도와줘요) : 레벨 좀 올려줘요. 잉잉~ 아이템도...^^;

4. 텍스트 (흑호냉혈-복수) : 저랑 1:1로 붙을 분? 메일을... 흐흐...

5. 동화상 (사울아비) : 관운장 경험치 짜네요. 두 번 죽고 잡음...T.T

6. 음성 (雉姬) : JE T'AIME. MOL. NON. PLUS

7. 정지화상 (AirHead) : 雨師 에어헤드의 멋진 기마 장면

8. 음성 (바람의혼-전체) : 서울에 웬 공습경보? 그래도 난 게임한닷!

9. 음성 (error) : blank message

10. 음성 (error) : blank message

11. 텍스트 (error) : blank message

12. 음성 (고자의꿈-전체) : 현재 서울 상황 중계. 반쪽이 났음.

13. 음성 (환경미화원) : 형, 살아 있어? 서울에 핵 떨어졌다면서요?

14. 음성 (천재온달-그룹) : 현재 클럽 생존자 확인중

15. 텍스트 (예쁜도야지-그룹) : 흑흑.. 그 착한 픽셀님이...

16. 텍스트 (제갈공갈-전체) : 아직도 서울 전화, 삐삐 다 안되요...

17. 텍스트 (평강공주-그룹) : 서울분들 괜차나요? 확인 좀 해요!

18. 동화상 (Molester-전체) : 긴급! 핵폭발 후 서울의 참상

19. 음성 (픽셀-그룹) : 저는 살아 있어요. 핵 정말 무섭네요. 핵핵~

20. 텍스트 (Flora-그룹) : 현재 무리원 생사현황. 빠진 분 메일 바람.

21. 음성 (요헨파이퍼-전체) : 채널 69 보세요! 생존자 구조장면 나옴

22. 음성 (검법달인-전체) : 구조 자원봉사에 참가합시다~ 게시판 참조

23. 텍스트 (고주몽) : (북부욕살께 보고) 명림답부의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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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대위가 최 중위의 게임용 아이디인 고주몽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고 마지막 편지를 선택했다. 명림답부(明臨答夫)는 기원 172년 고구려 신대왕 때 고구려를 침입한 한의 대군을 섬멸시킨 국상(國相)으로, 여기서는 김 재호 대장을 가리키는 암호였다. 메일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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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온 시간 : 1999. 11. 26  15:48

받는이 : 치우천왕

보낸이 : 고주몽

제목 : (북부욕살께 보고) 명림답부의 서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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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번호 : 99통육2-033

수신 : 제 5군 부사령관

참조 : 참모장, 작전참모

발신 : 제 2군 사령관 겸 제 5군 사령관

  계속 북진하다가 1600시를  기하여 서진하라. 전방경계 및  각급 부대의 보급에 만전을 기할 것. 이상.

                     제 2군 사령관 겸 제 5군 사령관 김 재호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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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太大使者로부터의 전언 : 영락대제는 西征 일정을 알고싶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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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대위가  편지를 지우고 게임접속을  끝냈다. 김 재호 대장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5군을 서진시킨 것은 흑룡강성의 강적을 분산시키기 위한 양동작전으로  느껴졌다. 그는 결코 북경을  공략할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또한, 다물회  수뇌부에서는 북경공략일정을 보고하길 재촉하고 있었는데, 통일참모본부나 김 재호 대장은  그쪽은 전혀 생각도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군부에서 활동하는 다물회원들은 대부분 작전지휘부가 아니라 일선지휘관들이라 다물회의  이상인 고토회복에  상당한 곤란함을 느꼈다.  김 대장을 다물회에 서둘러  포섭치 못한 것은 이들의  실책이었으나, 사실 김 재호는 육군참모총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그들은 다음 서열의 장군들에게만 신경을  썼다. 그래서 윤  민혁은 김 재호를 조정하기  위한 특별임무 수행에 골몰했다.

  "병력 투입은 잘돼가나?"

  김 대장의 말에  놀란 윤 대위가 변화된 상황을 살폈다.  모니터의 작전계획과 상황판의 부대별 위치는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예, 초단위로 맞춰 투입하고 있습니다. 적의 저항은 거의 없습니다."

  "뻥은... 윤 대위. 개선산 한 번 올라가 보자고."

  "어이구~ 최전방 시찰이십니까?  네... 완전히 클리어 되었으니...  알겠습니다. 준비하죠."

  "무슨 께임이가? 클리어 하게."

  "적을 소탕하여 위험이 없다는 뜻입니다. 미국식 군사 전문용어죠."

  "치아라, 마."

  1999. 11. 26  16:25  시모시마(대마도 下島) 남서쪽 46km 해저

  "해협에 깔린  일본의 소서스라인을 뚫고 간다는건  자살행위야. 일본 자위대 수상함정이 도대체  몇척이나 있냔 말야. 게다가 미  7함대 함정과 초계기도 도처에 깔려 있고."

  인민해방군 해군  제 2함대  소속의 킬로급(636식) 잠수함  382번함은 해저에 주저앉아  있었다. 쿠로시오  해류가 잠수함을 감싸돌며  함체를 울렸다.

  "해협을 뚫고 나가라니. 이 작전은 도저히 성공할 수 없어. 우리가 발견되면 그들이 공격하지는  않더라도 개떼같이 몰려들어 조선해군이 낌새를 챌게 뻔해."

  불안감이 빠오진산(包金山) 상교를 자꾸 떠벌이게 만들었다. 부함장이 함내 기기체크를 하다가 조언했다.

  "일본의 의향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몇  년전까지는 조선이 북조선에게 공격받는 경우 어떻게든 개입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만, 평화 헌법 때문에  번번이 좌절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이 조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함장 표정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뭔가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일본이 조선을 노리고 있다?  좋아, 핑계거리를 만들어 주지. 이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목표는 뭔가?"

  관제담당 군관이 이미 주변의 수상함정들에 대한 해석치를 내놓고 있었다.

  "일본 자위대의 소해정입니다. 함장 동지."

  "공격한다. 어뢰 준비."

  방향과 거리가 판독되자  명령복창이 이어지고 함장이 어뢰관 주수를 막 명하려던 참에 소나담당 군관이 함장을 제지시켰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소노부이가 투하된 모양입니다."

  "제기랄... 도대체 어느 놈이야?"

  빠오 상교가 소나로  다가왔다. 소나 모니터에는 자그마한  점이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 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또다시  작은 점이 생겼다.  이 점은 생기자마자 강한  빛을 발하다가 희미해지고, 다시 10여초 후에 밝아졌다.

  "이건 능동형이라  멀어서 우리가 탐지되지 않습니다만,  아까 투하된 수동형이 불안합니다.  능동과 수동 겸용도 있습니다만...  또! P-3C에서 소노부이의 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움직이면 탐지됩니다!"

  소나담당군관이 소나를  가리켰다. 함장은  아무래도 이 해역에  잘못 들어왔다며 투덜거렸다.

  1999. 11. 26  15:40  (베이징표준시) 티벳 라싸 남동쪽 6km

  난청치(南承基) 중위는 떨려오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런 개같은 상황이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곧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것이다.

  티벳 반란군은 위대한 마오 주석의 교리를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공간을 주고 시간을  얻는다는 인민전쟁의 기본원칙은 무시한  듯했다. 그들은 10여  km를 후퇴했고, 아군은  그만큼 전진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오늘밤 안으로 라싸를 점령할 수 있었다.  라싸를 점령하면 티벳 반란군들은 기반이 없어져 소멸될 운명이다. 게다가  아군의 피해는 사실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사상자는 30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선두에 선  자들은 모두 죽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병사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커서, 누구도 선봉에 서지 않았다. 결국 소대장이 선봉에 나서야 했다. 난  중위는 소대장이다. 결국 죽어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연대장이 다음 소대를  불렀다. 잠시 웅성거림이 있고  친구이기도 한 윈꾸취엔(溫谷泉) 중위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부하 소대원들이 그를  따라 뛰었다. 윈 중위는 채 20미터도  못뛰고 가슴을 쥐며 쓰러졌다. 총소리를 따라가보니 강  진흙탕 밑에서 솟아난 티벳인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총이 불을 뿜고, 놀라 멈춰선 병사 둘이 더 죽고 나자 총성은  멎었다. 티벳인 저격병은 아군 저격병이 쏜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또 200미터를 벌었다.

  연대 전체가  또다시 조용히  전진했다. 중화기중대가 진공로  곳곳에 박격포와 유탄을 마구  발사했다. 뿌옇게 포연이 피어났다. 그러나 적이 어디 숨어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바위절벽 위에서는  언제나처럼 치열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절벽 위의 전투는, 절벽 아래 강 옆에 난 길을 따라 전진하는 중국군 부대의 행군에 맞춰 이어지고 있었다.

  연대장이 신호를 하자 다음에는  난청치 중위가 속한 2중대가 전면에 나섰다. 1소대장 위(玉)  중위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엘리트 공산당원답게 당당히  부하들을 독려하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부하들은 위 중위와 가능한 거리를 두려는 듯 쭈볏거렸다.

  갑자기 자동화기의 연사음이 울리고, 1소대원들이 쓰러졌다. 강 옆 작은 길에 땅을 파고 숨어있던 티벳인 둘이 기관총을 발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1소대  뒤에서 따라오던 트럭에서  무반동포가 발사되자 곧  적은 제압되었다. 그러나 바로  뒤에 바위절벽 쪽에서 날아온 RPG가  트럭을 날려버렸다. 난청치 중위가 시체 무더기 속에서 위 중위를 찾았다. 위생병이 위 중위의 다리를 압박붕대로 싸매고  있었다. 기가 막히게도 그는 웃는 얼굴이었다. 선두에 서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이제 2소대 차례였다.  멀리 뒤에서 연대장이 수신호를 하는  것이 보였다. 난 중위의 눈에는 연대장이 사형집행인처럼 보였다. 2소대가 있던 곳에 한차례 소란이 나섰다. 중대장이  뭐라고 소리치자 병사들이 2소대장 쉬엔(宣)  소위를 꿇어 앉혔다. 중대장이 권총을 꺼낸 것과 동시에 그를 향해 발사했다. 쉬엔 소위가 앞으로 거꾸러졌다.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중대장이 권총을 흔들며 뭐라고  하자 선임분대장인 군사장(軍士長)이 나섰다. 군사장의 덜덜 떨고 있었다. 조만간 자신의 모습이 될 것이라며 난 중위가 한숨을  쉬었다. 포복은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사단장의 재촉이 심해서 가능하면  빨리 라싸에 진입해야 했다.  중대장이 재촉하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그  군사장이 소대를 인솔하고 나섰다.

  '체 게바라의 전술이다!'

  난청치 중위가 치를 떨었다. 병력이 열세인  게릴라들이 쓰는 전법 중에서, 선두에 서면  무조건 죽는다는 사실을 적에게  각인시키는 심리전술이었다. 쿠바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가 쓴 전술인데, 공격측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라싸를  점령할 때까지 선두에 선 아군은 죽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운이 좋으면  위 중위처럼 중상을 입고 살 수도 있었지만, 정말로 운이 좋은 경우였다.

  그리고, 라싸까지의 길  십 몇 km가 이렇게  멀 줄은 생각도 못했다. 좁디 좁은 강변길 매 200미터 정도마다 중국군의 피로 씻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겨우 4km 정도 전진했다.  약 20명의 소총소대  소대장이 전사했다는 계산이었다.  처음에는 분대병력을 내보내봤지만  200미터를 전진하는 사이에 모두  저격을 당했다. 적 매복지를  성공적으로 점령하려면 공격측의 숫자가 많아야 하는데, 길의  넓이를 감안하면 숫자는 최대한 소대병력을 넘지 못하는 제약까지 있었다.  부대장이야 어쩔 수 없이 이런 작전을  선택하겠지만, 선봉에 나서야 하는  소대장은 총알받이에 지나지 않았다. 함성이 울리고 2소대가 뛰어나갔다. 역시  그 분대장은 몇발자국 가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바위 뒤에  숨어있던 티벳인이 선두에 선  아군을 향해 총을 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2소대가  일제사격을 하자 그 티벳인이 고개를 숙였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서 병사들이 힘을  내어 연사를 하며 접근했다. 티벳인이 숨은 바위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총탄이 튀고  있었다. 병사들이 50미터  정도까지 접근할 때 갑자기  섬광이 번쩍였다.

  "크레모어!"

  놀란 난청치 중위가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또 당한 것이다. 화기중대는 최전방  바로 뒤에 대기하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사전포격을 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크레모어 단  두발에 1개 소대병력이 날아가 버렸다. 이제 난 중위 자신의 차례였다. 연대장의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직 신호가 없었다. 연대장은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길이 좁아 사단장에게 선봉연대를  교체해달라고 요구하기도 무리였다.

  난 중위  직속 대대장이 그를  연대장이 있는 곳으로 불렀다.  어느새 바위절벽 위쪽에서 전투를 수행하던 1대대장과 소대장을 모두 잃은 2대 대장이 수하 중대장들과  함께 도착해 있었다. 연대장이  사단 사령에게 무전기에 대고 사정을 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연대에 소대장은 딱 두  명 남았습니다. 제발 교대시켜 주십시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부하들이  공격명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옆사람에게 들릴까? 여자 옆에서 무의식 중에 침을 삼켰는데, 그 소리를 여자가 들으면 얼마나 창피할까? 궁금한 것은... 그녀는 그 소리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나하고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쿠쿠... 근데 들리긴 들리나?

  "꿀꺽~"

  차의 시동을 키고 워밍업을 하는  동안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옆에  앉은 여자는 내차로 가끔  집에 바래다 주는... 그냥 아는 사이다. 옆모습을 훔쳐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는데, 시끄러운 차 엔진소리 때문에 설마  이 소리가 들릴까 하던  나는 그만 낙담하고 말았다. 그녀의 침 삼키는 소리가 내게 들렸다... --;

                               'Sir Huntington 一代記' 中에서

  1999. 11. 26  17:05  함경북도 회령 개선산 790고지

  고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북서쪽  평지 한 곳에 일시에 포연이 치솟더니 그곳은 삽시간에  허허벌판이 되었다. 십자포화는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며 지상을 불꽃으로  휘감았다. 평지에 펼쳐진 중국군  방어선은 포격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는데 치밀하게 밀집된 포화는 살아있는 생명체 하나 남기지  않았다. 하 인철 중위는  끔찍하다며 진저리를 쳤다. 회령 시가로 빠져 나가는 계곡 쪽에서 헬기가 보이더니 지상으로는 보병전투차들이 물밀 듯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군이었다.

  "아군이 옵니다."

  왼쪽 팔을  붕대로 고정시킨 하 중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래 참호쪽 병사들에게 내뱉듯이 외쳤다. 옆에 있던  강 병장이 신이나서 떠들었다.

  "헬리콥터에, 탱크, 장갑차가 빠글빠글하대이~ 우린 살았다~~"

  몇 남지 않은 병사들은 참호 속에 아무렇게나 몸을 눕히고 멍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망원경을 남쪽으로 돌려  보니 중국군들이 후퇴하는  모습이 보였다. 790고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그곳은 방어하기 곤란해서인지  서둘러 제  2방어선으로 퇴각하는  모양이었다. 무전기가 울리고 하 중위가 수화기를 들었다.

  "통신보안, 3중대... 사령관님이십니까? 통일! 중위 하 인철."

  잔뜩 지친 하 중위가 피곤한 목소리로 통화하는 모습을 강 병장이 무심하게 지켜 보았다. 하 중위는 알 수 없는 짜증이 일어났다.

  "네? 여긴 뭐하러 오십니까? 아무 것도 없는데."

  무전기에서는 뭐라고 시끄러운 소리가 잔뜩 들렸으나 강 병장이 확인할 수는 없었다. 수화기를 내리며 하 중위가 투덜거렸다.

  "씨발놈이 오든지 말든지."

  "그래, 2개 중대에 추가로 1개  대대를 처박았는데 겨우 이거 남았나? 중위인 자네가 선임이고?"

  "....."

  하 인철 중위가 부동자세로 묵묵히 서있는 가운데 김 재호 대장이 길길이 날뛰었다. 여차하면 싸대기 날리고 워커발로 걷어 찰 기세였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지친 표정으로 여기 저기 주저앉아 교대병력이 참호를 보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상병들을 실은 헬기가  서둘러 이륙하느라 흙먼지가 뽀얗게 일었다.

  "겨우 31명이 뭐야?  그나마 절반 이상이 중상자고.  관측팀도 살아난 놈이 없고. 이게 도대체 뭔가?"

  "그 상황에서도 자그마치 31명 씩! 이나 남았습니다. 사령관님!"

  참다못한 하  중위가 얼굴을 붉히면서  항의했다. 김 대장이 이  말을 듣고 격노했다.  오른손이 자꾸  권총집을 건드렸지만 간신히  자제하는 눈치였다. 그를 수행하는 헌병들이 잡은 K-1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 새끼가 부하들 다 죽인 주제에 무슨 말이 많아?"

  "선임은 대대장님이었습니다. 전사하신 분들께  욕할 수 있는 겁니까?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나중에는 실탄까지  떨어져 중국제 아카보로 싸웠습니다. 우릴 사지에 몰아넣고 해준  게 뭐가 있다고 큰소리십니까?"

  새로 고지에 배치받은 병사들은 중위와 육군 대장의 말다툼을 신기한 듯 지켜보고만 있었다.  김 재호 대장이 창피했는지 말을 멈추고  하 중위를 노려보았다. 김 대장이 손가락으로 하 중위의 명찰을 쿡쿡 찔렀다.

  "자네, 내 헬기에 탑승해. 그리고  이쪽 병력은 모두 교대한다. 후방에서 재편성하도록. 상사!자네가 인솔해!"

  상사가 잽싸게 튀어나왔다.  돌아가려는 김 대장 일행을  보며 병사들에게 눈치를 주었으나  대부분 예비군들이고 약간은 현역병인 병사들이 주섬주섬 일어나기만 했다.

  "알겠습니다. 전체 차렷! 사령관님께 경례!"

  "통일! 통일... "

  회령 제봉 542고지로 돌아가는 헬기에서 김 대장과  윤 대위, 하 중위 세 사람은 모두  말이 없었다. 하 중위는 군법회의에 회부될  것을 예감하고 자포자기한 표정이었다. 김 대장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자네들 수고 많았어. 나도 그 정도인줄 몰랐다고."

  "죄송합니다만, 제가 항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 나도 알어.  자네들은 전쟁 끝날 때까지 휴가나  가게. 남들 몇 달간 싸운 이상으로 고생했으니..."

  "네..."

  "그 예비군들은 소집해제 해도 좋겠군. 원하는 대로 해주게."

  "감사합니다...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김 대장이 대답을 안하고 창밖을 보며 한참을 끌었다.

  "뭔가? 왜 예비군이 투입되었나 하는 거 말인가?"

  "예. 물론 경무장이라  고지방어전에 적합한 편성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 현역이 아닙니다. 전투력도 떨어지고... 그들 자신이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고..."

  하 중위는 어떤 월남전 영화에서 본 마지막 장면 중의 하나가 떠올랐다. 부대장이 대부분  귀국을 일이주 앞둔 소대병력을  월맹군에게 미끼로 내던졌다.  소대원들은 몰려오는  월맹군에 맞서 밤새도록  처절하게 싸웠고, 아군 포병대가  포위된 소대 주둔지에 맹포격을 가했다. 전투가 끝난 아침, 헬기를 타고 온 부대장이  시체로 뒤덮인 참호를 둘러보면서 하는 말,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뒀다... 전쟁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나도 몰랐다네. 그런  중요한 전투에 예비군병력이 투입된줄 몰랐어. 알았다면 진작 바꿨겠지."

  윤 민혁 대위가 김 대장이 말하는 모습을 잠깐 보다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눈발이 점점이 흩날리고 있었다.

  하 인철 중위는  임 병석 병장이 생각났다. 한 시간만  버텼으면 살아서 가족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 안타까움이 일었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방어선 두  군데가 뚫리고 중국군 1개 소대병력과 백병전이 붙었다. 중국군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왔다. 곳곳에 수류탄이 작렬하고 총탄이 사방으로  튀었다. 모두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정신없이 싸웠다. 그 누구도 전우를 위해서, 또는 조국을 위해서 싸운 것은 아니었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남의 목숨을 걱정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전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왼쪽 어깨  관통상을 입고 참호에 누워있던 하  중위는 흐릿한 시선으로  잿빛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황은 이미 절망적이었다. 총성이 점점 잦아드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중국군들이 뛰어 넘어갔다. 놀란 하 중위가 죽은  척하다가 잠시 후 고개를 들고 보니, 중국군  5~6명이 반쯤 찢긴 태극기가 휘날리는  지휘벙커를 향해 건너편 참호선을 내달리는 모습이 잡혔다.

  지휘부는 이미 중국군의 포격에  전멸한 상태라 하 중위는 처음에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 지휘벙커가 임시 야전병원으로 바뀐 것을 깨닫고  놀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워 그들을  추적했다. 벙커 안에서  그가 직접 본  부상병만도 20명이 넘었다. 이번  전투에서는 부상자가 더 많이  나왔을 것이다. 대부분이 중상자들이라  자신을 지킬 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 중위가  서둘러 뛰며 K-5 9밀리 권총의 탄창을 교환했다.

  벙커쪽에서 K-2  자동소총의 연사음이 길게  울리고 그 직후  폭음이 이어졌다. 서둘러 뛰어간 하 중위는 벙커  안으로 막 돌입하려던 중국군 셋의 등짝을 향해  권총으로 한 발씩 쏘았다. 중국군들이 첫  발을 맞고 쓰러지자, 그 다음에는 완전히 숨을 멈출 때까지 돌아가며 쏘았다. 약간은 어려 보이는 중국군  병사의 피로 범벅된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  중위가 나머지 탄알을 쏟아  부었다. 권총이 찰칵거리자 정신을 차린 그는 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돌과 흙을 파내고 마대자루로 대충 쌓은 그곳은 화약냄새와 피내음이 코를 찔렀다.  쓰러진 임 종석 병장의  하반신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어두워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임 병장은 하체가  분명 없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벙커 안에서 부상병들을 돌보고  있던 그가 수류탄을 몸으로 덮친 것이 분명했다. 그 옆에는 붕대로  머리를 감은 부상병 한 명이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쓰고 누운채 이를 딱딱 부딪고 있었다.

  죽어가면서 지은 임 병장의 처절한 미소를,  처량한 눈빛을 하 중위는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전우들을 지킨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회한을 안고 죽어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하 중위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임 병장이 부러웠다.

  '전쟁이 끝나면...'

  그는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으로 보아 전쟁은 곧 끝날  모양이었다. 이제 전후복구작업이 시작될 것이다. 토목공학과를 졸업했기에 취직걱정은 없었다. 아마도 상당히 바빠질 것이다.

  남자고등학교, 남자들만  득실대는 공과대학, 군대...  앞으로 건설현장에서 맞부딪힐 인부들...  지겨웠다. 창밖으로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1999. 11. 26  17:35  함경북도 회령 도장동

  "으이그~ 젠장! 기껏 도하하더니 다시 돌아가?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운전병 장 병장이 심하게 투덜거렸다. 압록강을  건너고 밤을 새서 만주를 횡단하더니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려나 하고 투입순서를 기다리는데 사단 전체가 다시 두만강을 건넌다는 소리에 질려버렸다.  장 병장은 명령에 따라 전차를 계속  북으로 향했다. 눈덮인 2차선  도로가 명절 고속도로처럼 붐비고  속도는 20km에 미치지 못했다.

  장 병장은 지쳤다. 압록강을  처음 건넌 이후 한 번도 전투가 없었다. 잠이나 잤으면 좋겠는데  상황이 허락하지도 않았다. 이런  시간에 다른 승무원들이야 그 시간에 잠을  잘 수 있지만 운전병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장 병장이 운전병용  큐폴라를 닫고 들어와 뒤쪽을  보니 전차중대장 한 보겸 대위는 통신 중이고 포수 변 하사는 멍한 표정으로 눕다시피 하고 있었다.

  "어이~ 변 하사, 왜그래?"

  동갑이라 말을 놓기로 한  변 승재 하사는 포수석에서 마약 중독자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는 거의 10시간째 말이 없었다. 틈만 나면 대대 통신차량으로 달려가곤 하던 변  하사가 이젠 포기했는지 전차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장 동무! 하사 동지에게 반말하면 쓰갔나?"

  통신을 마친 한 대위가 힐난했다.

  "에이~ 중대장님. 동갑인데 어때요."

  "기래도 상급자 아니갔어?  우리 인민군대에서는 이런 경우 영낙없이 자아비판감이디. 기건 기렇고... 우리는 고 휘 상장이 지휘하는 장갑집단군을 상대해야 되는 모양이야."

  한 대위가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 휘 상장? 인민군 아닙니까?"

  "앙이야. 조선족 동포디. 중국 이름이레 가오후이디만 뙤놈들도 고 휘라고 부르디.  중국내전에서 아주 유명해져서리,  이젠 모르는 군인이레 없디. 북경군이 형성한  강력한 종심방어진에 전차 12개  사단을 집중투입, 중앙돌파를 성공시켜설랑 결국 북경을 점령한 인물이야."

  "윽... 그럼 지금 만주에 그의 부대가  있다는 겁니까? 우린 병력만 많지 전차는  몇 개  사단이 안되잖아요.  그럼 공중지원에  의존해야겠네요?"

  "긔기 문제야. 고 상장에게는  직속 항공사단이레 두 개나 있거든. 방공사단도 있어설라무네 우리 군도 항공지원을 하기 힘들기야."

  "그런 강력한 적에게 우리만 투입하다니.  그럼 패전은 기정사실 아닙니까?"

  장 병장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인 다음, 기어를 변속시켰다. 또 밀리는 모양이었다. 한 대위의 한숨이 뒤로 들려왔다.

  "상부에서 무신 생각이레 있갔디."

  1999. 11. 26  17:45  서울 역촌동 서부병원

  진이 병원 복도를 지나다가 눈을 붕대로 가린 환자가 허공중에 손을 젓는 것을 보았다. 복도에 있는 환자는 살 가망성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의사인지 또 하나의 생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모양이라고 생각한 박 진은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 다가갔다.

이 호룡은주변에 사람이 서있는 것을 느꼈다. 의사는 아니고 아마도 간호사일 것이다. 어떻게든 매달려 보아야 했다. 전신에 고통이 엄습해 오고 지금은 숨을 쉬기도 벅찼다.

  "물... 제발 물 좀 줘요. 살려줘~"    

갈증에 지치고, 그보다는 혼자있다는 공포에 질린 환자였다. 박 진이 머리카락과 얼굴 피부가 홀랑 타버린 환자의 손을 잡았다.

왜 물을 달라고 말했을까? 이 상황에서도 먼저 치료해 달라는 말을 하기 쑥스러웠다. 갑자기 따스한 손길이 느껴져 깜짝 놀랐다.

  "물을 마시면 안되요. 참으세요. 제가 옆에 있을 게요.

  "간호사 아가씬가 보군요. 고마워요. 제 상태가 어떻습니까?"

  박 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환자를 위해서 자신이 간호사 행세를 하기로 했다. 자원봉사자라고 하면 환자가 실망하고, 이것이 그의 생명을 단축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내장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탈수증에 걸린 자신이 무턱대고 물을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옆에 있어주겠다니 고마워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얼굴과 상반신에 2도 화상이에요. 소독은 했으니 괜찮을거고요.  그런데..."

  박 진이 환자상세표를  보았다. 구조한 위치와 시간, 상황,  그리고 방사능 피폭량과 의사의 소견이 적혀 있었다.  간호사가 이 소견서를 본다면 몰핀 한방이라도 그냥 지나쳐버릴  것이. 이 병원에서 일하며 배운 경험에 따르면  이 환자가 살 가능성은 30%도 채 되지 않았다.

  "방사능에 노출되셨어요.  지금은 고통스러우시겠지만  현대 의학기술로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정도의 양이예요. 화상도 위험할  정도는 아니구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 힘을 내세요."

  "아...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친절하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래도 의사는 오지도 않던데요."

  "아저씨보다 더  위험한 분들이 많아요.  의사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저씨는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겠죠."

  거짓말을 하는 박 진은 슬퍼졌다. 이렇게라도  해서 이 환자가 버텨주길 바랬다. 환자의 일그러진 얼굴에 언뜻 미소가 번졌다.

  "비켜 주세요! 갑시다~"

  고개를 든 박 진이 물끄러미 시신이  실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시트가 덮이지 않아 비교적 온전한 시신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비만증이 있어 보이는 중년남자였다.  외상은 없는데 왜 죽었을까 궁금했다. 어쨌든 또 한 사람의 생명이 꺼지고 육신은 재만 남을 것이다. 아니,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병원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임시로 시체를 매장하고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신들. 희생자의 유족이 살아 있더라도 가족의 시신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방금 지나간건 뭐죠? 또 시체가 되어 실려 나가나요?"

  "..., 예. 아저씨보다 훨씬 중상이었어요..."

  "네... 중환자가 많은 모양이죠. 어느 병원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예... 아저씨. 죄송하지만 저는 다른 환자 돌보러 가야겠어요. 힘 내세요. 너무 걱정 마시고요. 제가 또 들를게요."

  "그래요. 너무  고마워요. 참! 제 이름은  이 호룡이요. 아가씨 이름은 뭐죠?"

  "박 진이예요. 이따가 항생제 주사 놓아드릴께요."

  박 진이 돌아서며  울먹였다. 저 환자는 기껏 두 시간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고귀한 생명들이 너무 쉽게 죽어 안타까웠다.

  1999. 11. 26  18:04  중국 헤이룽지앙성 무딴지앙시 남쪽 37km

  중국 인민해방군 제 54  장갑사는 인민군 4군단을 사정없이 몰아가며 전진하고 있었다. 날은  이미 저물고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인민군들은 후퇴하면서 단도저격조를 운용했지만 상대가 워낙 대규모여서 중국군의 전진을 지체시킬 수도  없었다. 중국군의 전진속도가 점점  빨라져 인민군 후미부대인 교도대를  중국 전차들이 따라잡고 있었다.  선두의 중국 전차들이 주포를 발사하며 인민군 교도대를 막 짓밟기 직전이었다.

  수평선 가까이에 점점이 흩어져 눈이 잔뜩  쌓인 것들이 있었다. 이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있는 것처럼  꼼짝않고 있었다. 하얗게 눈이  쌓여 멀리서 보면 나락더미처럼  보였다. 중국 전차들이 주포를  쏘며 무장이 빈약한 인민군  교도대를 덮치기 시작하자  이 나락더미들이 400여대의 사륜구동차가 되어 움직였다.

  중국 전차병들의 눈에는 수평선에 눈의 해일이  인 듯 보였다. 전차대 통신망이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한순간에 100여기의 sagger  대전차미사일, 100여기의 RPG-7이 하늘을  가르고, 100여기의 벌컨이 불을 뿜었다. 하늘에는 3초에  100발 비율로 HEAT 박격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보이는 것은 모두 시뻘건 포탄과 꼬리에 붙은 연기뿐이었다.

  20밀리 대공벌컨이 장갑차를 꿰뚫었다. 뚫린  구멍으로 불길이 뿜어져 나오더니 장갑차는 곧 폭발했다. 기갑보병들이  장갑차에서 쏟아져 나왔으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기관총의 십자포화였다.  하얀 눈 위에 피와 불길이 퍼졌다.

  1999. 11. 26  18:07  중국 헤이룽지앙성 무딴지앙시 남쪽 21km

  지휘차에 있던 통신군관이  비상전문을 받고 놀라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전방에 적이 나타났습니다. 추정규모 1개 여단. 좌우에서  54장갑사를 공격중입니다."

  고 휘 상장이  신기하다는 듯 중앙 전황판을 바라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인민군 4군단에는 그만한 전력이  없었다. 후방에서 동원했다고 가정하더라도 1개 여단이라는 병력을  그 짧은 시간에 동원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또한, 방공연대의  보고에 의하면 만주의 하늘은 깨끗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공정부대도 아닐 것이다.

  "기계화부대인가? 북조선 인민군 소속이  아닐지도... 하지만 겨우 1개 여단인데 뭘 꾸물거리나?"

  "강력한 화력과  기동력입니다. 자동차부댑랍니다. 사륜구동차에 대전차무기가..."

  헤드셋으로 계속 54장갑사의 보고를 들으며 통신군관이 상황을 고 상장에게 전했다.  고 상장이 피식 웃었다.  한국군 지프에 탑재한 토우와 106밀리 무반동총이 생각났다. 포탄 적재량이  적어 각 지프마다 포탄차가 따라다닌다. 집중운용하면 전차부대에 대해  일시적인 타격은 주겠지만, 얼마 가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적은 결코 주도권을잡지 못한다고 자신했다.

  "방호력이 떨어질테니 그냥 밀고 나가."

  "화력이 너무 강합니다. 화력이 밀집되어  전차부대도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하고 있습니다!"

  놀란 통신군관이 헤드셋을  사령관에게 넘기는 동안 통신병이 통신군관에게 메모를 전했다. 통신군관이 깜짝 놀랐다.

  "54장갑사가 전멸직전입니다.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거 왜 이래? 사단 사령을 불러!"

  고 상장이  헤드셋을 통신군관에게  넘기며 다급해졌다. 뭔가  큰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 통신이 끊겼습니다."

  고 상장의 가슴에 분노가 일었다. 그깟  자동차부대에 당한 54사 사령에 대한 증오였다.

  "그 지역에 포격 집중, 정찰기 날려!"

  통신군관이 포병사령을 불러  명령을 전했다. 곧이어 전군의  포가 지도상의 한 지점을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10여분 후, 정찰기의  보고에 따르면 54장갑사는 전멸하고, 그 근방에 포격에 당한듯한 50여대의  사륜구동차 잔해가 보인다고 전했다.  고 휘 상장이 당장 적을 찾아내라고 다구쳤다. 잠시 후, 통신군관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고 상장에게 보고했다. 고  상장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대공미사일 공격을 받고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정찰기에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추신) 병원장면은 이중화법입니다... 주체가 둘이니 따로, 또같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탈자가 아녀요...^^;

1999. 11. 26  18:15  중국 지린성

  이미 결과가 뻔한  전쟁, 이 따위 전쟁을 왜 계속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느 전쟁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젊은  병사들만 무수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동원예비군 김 효찬  병장은 자신이 왜 머나먼  땅에까지 와서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지 답답했다.  추악하게 늙은 양국의 정치인들은 무엇을 바라고 이 전쟁을 계속하는지 원망스럽기만 했다.

  '조국 수호? 겨레의 영광? 웃기고 자빠졌네.'

  언덕을 넘으며 사륜구동차  구식 록스타 R2가 크게 튀었다. 잿빛구름 사이로 만주의 푸른 하늘이 시리게 눈에  들어왔다.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면서 중국군의 진청색 털모자 20여개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총구를 돌리며 방아쇠를 누르자 기관총음이 경쾌하게  울렸다. 붉은 피가 허공중에 흩뿌려지는 것이 보이는 순간 차가  땅에 닿은 충격이 전해졌다. 조수석에서 K-3을 쏘는 동료는 차가 튀느라 조준이  형편없이 빗나갔는지 건너편 이층건물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이 빌어먹을 중국인 마을에서 움직이는 것은 대부분이 중국군이었다. 바로  몇시간 전에 지나올 때는  민간인밖에 없었는데... 이미 그가 배속된 중대는 적에게 포위된 모양이었다. 통일한국군 5군 중에서도  예비대로 중간에 배치된  61사단이 이 정도  상황이라면... 김 병장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너른 만주벌판에서 적과 아군이 섞여버렸는지도 몰랐다.

  덮개를 걷어버린  차에 북풍이 세차게 몰아쳤지만  김 병장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제 부근에서 움직이는 적은 보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같은  소대 차량에 거치된 K-6에서 연기가 하늘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느새 와서 지원해준 모양이었다.

  [5호차! 5호차 나오라!]

  소대장의 호출이 오자 김 병장이 헤드셋 마이크를 열고 대답했다.

  "5호차다. 방금 전투를 마쳤다."

  [잘했다. 그런데 우린 아마도 포위된 것같다.]

  "..., 알고 있다. 보급이 필요하다. 여기 있는 7호차와 교대하겠다."

  [교대를 허가한다. 즉시 8호차 위치로 오도록. 참고로 1호차는 당했다. 그쪽도 조심하라.]

  "알겠다. 나는 살고 싶다..."

  1999. 11. 26  18:30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

  또다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김 학수 중사는  이미 어둠이 깔린 축구장 입구쪽에서  번쩍이는 섬광을  보며 무전교신을 계속했다.  시뻘겋게 유탄이 날아오고, 바로 뒤의 바위에서 폭풍과 함께 파편이 튀었다. 헤드셋 저쪽에서도 교전중인지 총소리가 계속 울렸다. 김 중사가 악을 썼다.

  "중대장님! 적이 너무 많습니다! 지원이 여의치 못하다면 저흰 후퇴하겠습니다."

  [젠장... 이쪽도 힘들어. 알겠다. 김 중사가 소방서를 확보하도록!  우리도 곧 그쪽으로 가겠다.]

  "예. 소방서쪽으로 퇴각하겠습니다. 충성!"

  김 중사가 헤드셋을 끄고 축구장 뒷편  담쪽을 살폈다. 야트막한 철책에 담쟁이 덩굴같은  말라죽은 식물이 잔뜩 붙어있어  있었다. 넘어가다가 몇은 적에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바로 옆의 박 하사에게 철책 제거를 명했다.

  박 하사가 수류탄  두 개를 까던지자 철책이  10여 미터 정도 무너졌다. 김 중사가 퇴각신호를  보내자 2명씩 철책 뒤로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뛰어온 K-3 사수 장 병장이 기관총을 거치하고 발사를 시작했다. 김 중사가 적의 동태를 살폈다. 상대편의 총성이 뜸해지고 있었다. 너른 축구장에서 돌격을 감행할 멍청이 지휘관은 없을 것이다.

  "자, 가자!"

  선도조 두 명이  앞으로 나서고 10미터 간격으로 두 명씩  뛰었다. 영남대 실내체육관 옥상에 있는  적 기관총이 불을 뿜었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멀리  소방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적은 보이지 않았다. 17명의 군인이 숲길을 뛰었다.

  소방차들이 모두 대구시내로  출동했는지 소방서 건물 주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선도조가 신호를 하자  대원들이 조심스럽게 몰려나갔다. 과연  차고에는 소방차가 한 대도 없었다. 소방관들도 모두 출동했는지 소방서는 2층까지 텅 비어 있었다.

  경산공업단지쪽에서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불타는 대구의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이 보였다.  김 중사가 대원들에게 수비위치를 지정하고 있는데 소방서 앞 도로 서쪽에서 무장병력 몇 십명이 이열종대로 행군하는 것이 보였다.

  "선임하사님! 중대 본대병력인가 봅니다."

  박 하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계속  행렬을 주시했다. 행군대열의 척후조가 멈춰서더니 이쪽을  향해 뭐라고 떠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철모의 흰색 표지가 확연히 드러났다. 대열의 지휘관이 다가왔다.

  "김 중사!"

  "중대장님!"

  김 중사가 중대장에게 뛰어갔다. 격렬한  전투를 치렀는지 중대병력이 절반 줄어있었다. 이들이 소대장들 현재 적의 위치와 병력, 공격계획 등을 논의하는 동 병력이 산개하여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영남대학교에 적 1개 중대 병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 중사가 보고하자  중대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중대장이 지시를 내리다가 얼핏 소방서 옥상에 뭔가 있는 것을 느꼈다.

  "옥상에도 병력을 배치했나?"

  김 중사가 휘하  병력 배치를 생각하며 옥상쪽을  올려봤다. 소방서건물이 텅 빈  것을 확인한 김 중사는  옥상에 병력배치를 하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외쳤다.

  "적이다!"

  응사할 시간도 없었다.  중대병력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소방서 앞마당에 수류탄  30여개가 굴렀다.  여기저기 폭발이 일어나며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곧이어 옥상에서 M-16 특유의 빵빵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도로 건너편에서도  자동소총 연사음이 길게 울렸다. 놀라서 건물 안쪽으로 도망가던 병사 너덧 명이 피를 뿌리며 엎어지는 것이 보였다.

  밤이라 확실치는 않지만 적은 최소  아군의 3배로 추정되었다. 게다가 기습을 당하여 기선을  제압당한 상태이다. 이럴 때는  무조건 도망가야 했다. 김 중사가 소방서  안으로 뛰다가 몸에 충격을 받고 넘어졌다. 대퇴부쪽에 통증이 일며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총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움직이는  아군은 별로 없는 것같았다.  갑자기 두려워진 김 중사가 있는 힘껏 악을 썼다. "위생병! 으으... 임 상병!"

  "아군복장이라서 적인지 아군인지 원...  아까 이놈들이 분명히 한국말을 했거든요? 아! 저기 생존자가 있습니다."

  김 중사가 기를 쓰며  기어가고 있는데 훈련모를 쓴 군인들이 떼지어 몰려왔다. 허름한 복장으로  보아 직장예비군 같았다. 그들이 김 중사를 향해 총을 겨누며  다가왔다. 김 중사는 탄띠에 있던 수류탄을  아까 전투에서 써버린 것을 깨달았다. 이제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

  "1800시부터 흰색띠는 적이라고  했으니까... 최 소방사, 거기 다리  잡아. 일단 살리고 보자고."

  '젠장... 저치들은 노란띠다. 언제 바뀐거야?'

  김 중사는 피를 너무 흘려 쇼크상태가 되었다.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 마지막으로 그를 들쳐멘 사람들이 응급구조사 어쩌고 외치는 말을 들은 것같았다. 장갑차의 우르렁거리는 소리가 길을 울렸다.

  1999. 11. 26  18:45  함경북도 회령 제봉(542고지)

  "국방군 제 55사단이  집중포격을 받아 피해가 큽니다.  그 지역을 이탈했지만 피해가 19%에 달한다고 합니다."

  참모장 허석우 대장이  또박또박 말을 끊어 보고했다.  평안도 사투리 대신 방송에서나 쓰는  문화어로 말하려니 등에 식은땀이  났다. 그래도 바로 앞에 앉아있는 이  남자의 신경을 거스리지 않으려면 말투도 최대한 조심스러워야 했다. 그는 인민과 조국의 운명을 쥔 사나이였다.

  "그리고 61사단 일부  병력이 현재 전투중이라는 보고입니다.  5군 중간에 있던 부대가 공격받은 것입니다. 적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음... 61사단과 조우한 적은 우리가 흘린 인민무장경찰 독립대대일 것이오. 그보다는 55사단이 문젠데..."

  김재호 대장은 시시각각  전해지는 전황보고를 들으며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중국군 제  54 장갑사를 공격한 한국군 제 55사단은  즉시 후퇴하여 남쪽으로  급속전개했다. 그러나  조만간 중국군 정찰기에  걸리고 다시 포격을 받을  것이다. 허 대장은 이 넓디 넓은  만주평원에서 그들이 숨을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아까운 동원사단이 또하나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한국군은  정규사단보다 동원사단이 화력은 뒤지지만 어찌된 셈인지 전투력은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공중지원은 아니 되겠습니까?"

  "안되오! 너무 바빠. 우리가 폭격당하지 않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지경이오."

  허 대장이 장갑지휘차의 왼쪽벽에 걸린  화면을 보았다. 조기경보기에서 처리한 정보가  시시각각 들어오고 있었다. 통일공군은  이번에도 중국군의 대규모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다. 갑자기  북서쪽에서 인민해방군 전투기 제 3파가 몰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김 대장이 혀를 찼다.

  "그리고 공격기는 조금 이따가 써야 되고..."

  전쟁은 묘한  양상으로 지속됐다.  한국군은 신의주에서 치고  올라간 북부군을 주력인 척하고,  중국군도 가능한한 고휘 상장의  대규모 기갑부대를 숨기기 위해  신의주 주변지역에 대한 양동공격에  바빴다. 지상군 병력이 희박한 그서는 서로 상대를 속이기 위해 엄청난 숫자의 전투기들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나진,선봉 지역에 있는 중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출동하는 중국 공격기들을 한국공군이 악착같이 막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숫자에 밀린 통일한국 공군이  점차 밀리는 양상이었다. 평북  구성에서 일단의 푸른 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 대장이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짚으니 미그-19의  식별부호가 떴다. 김  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구식인 미그-19까지 동원하다니,  이제 공군전력도 바닥난 모양이라며 김 대장이 투덜거렸다.

  "백사봉쪽은?"

  "아직 점령  못했습니다. 좁은 지역에  적이 너무 밀집되어 있습니다. 약 15개 사단으로 평가됩니다. 원래 1군의 주공이 그쪽이었습니다만..."

  허석우 대장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제 1군은  인민군 이종식 차수의 직할부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허  대장의 친구이기도 한  1군 사령관은 전쟁이 끝나면 아마도 숙청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래요? 이봐, 윤 대위."

  "예?"

  "병력이 많다고 좋은게 아냐. 그치?"

  "네. 병력의 우세가 항상 전황에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단위부대들에 운신의 폭이 적어지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곳을 피하면 간단하지. 실제  전투에 투입되고 있는 병력의 차이가 중요해. 우리쪽 병력투입 현황은?"

  "역시 계산대로입니다."

  "잘 되고 있다고?"

  놀란 김 대장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자 윤 대위가 피식 웃었다.

  "아뇨. 전진이 멈추었습니다. 강력한 적의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문딩이~ 그라믄 제대로 되고 있는 거 아이가.."

  김 대장이 전술지도를 다시 살펴 보았다. 개선산 동쪽이 선봉, 남서쪽이 백사봉이 있는  풍산이다. 항공정찰에 따르면 선봉지역에는  약 30개 사단이 밀집되어 있다고 했다.

  "개병대 투입. 예정대로 1개 여단만!"

  "연락하겠습니다."

  해병 2사단은  현재 2군에 배속되어  있었다. 허 대장의 불안감이  더 심해졌다.

  1999. 11. 26  19:25  경기도 남양주시

  "전선상황이 아슬아슬합니다."

  정지수 대장이 자못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김재호  대장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으니 이제 그의 능력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원탁에 나타난 전략지도에는  시시각각 각  부대의 위치가 수정되어  표시되었다. 통일한국군 2군의 남진속도보다 만주에 있는 중국군의 이동속도가 훨씬 빨라 참모들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1군에게 전진을 명령하시오."

  이종식 차수가 김병수 대장에게 말하자 김 대장이 1군 사령부를 호출하여 명령을 전했다.  정 대장 탁자의 인터폰에 불이 들어오자  그가 단말기를 조작하여 내용을  확인했다. 그가 잠시 갸웃거리더니  내용을 다른 참모들의 단말기에 전송하며 보고했다.

  "대구와 광주의 무장폭동은 어느 정도 진압되었다고 합니다."

  "그놈들 미친 놈들 아닙니까. 지금이 어느 땐데..."

  박 정석  상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소수의 적  게릴라부대가 선동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폭동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대구에서 3만, 광주에서 5만의  민간인들이 폭동에 가담했다. 특히 광주의 시위가 격렬했는데, 규모에 비해 피해는 적었다. 오히려 대구에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공보처에서는 지역감정을  유발할까봐 사상자 발표를 늦추고  있었지만 인터넷과 각 컴퓨터통신망에서는 각종 유언비어가 범람했다. 특히 대구에서는 민간인  시위진압에 총기를 대량 사용했다며, 정부가 광주보다 대구사람을 무시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고, 경북 경산시에서  소속불명의 무장군인 60여명을 사살했습니다. 포로를 한 명 잡았다고 합니다만, 현재 중태입니다."

  정 대장은 이것이 혹시  아군끼리 오인사살한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되는 눈치였다.

  "흠... 생포된 첫 번째 포로겠구만..."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전투에 투입된 우리측  병력은 소방관들이었다고 합니다."

  "기렇소? 하하~ 소방사 동무들 바빴겠구만."

  박정석 상장이  오랜만에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인은 소방사와 119 응급구조사, 그리고 독도수비대원이다, 라고 차영진은 생각했다. 일본의 공격을  받은 독도수비대원들이 전멸하고 나서 이제  후방의 소방사들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서울이 피폭당한 후,  구조작업에 참가한 수많은 소방사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다.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사람들이  이제 총을 들고 적과 총격전까지 하고 있었다. 차영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1999. 11. 26  19:40  함경북도 나진

  먼저 중국군의 해안방어선에 비상이 걸리고,  이동식 발사대에서 하이잉(海鷹) 대함미사일 몇발이  날았다. 잠시 후, 목표는  북한 쾌속어뢰정으로 파악되어 중국군이 미사일 발사를 자제하는 대신 해안방어선에 병력을 증강투입했다. 미사일과 크기에서 차이가  별로 안나는 어뢰정들은 하나도 손실을 입지 않고 물러나며 해안선을 향해 예광탄을 쏘아댔다.

  이번에는 남동쪽 바다에서 F-5  전투기 몇 대가 날아왔다. 즉각 대공 미사일이 발사되고, 전투기는  금방 퇴각했다. 청진쪽에서는 통일한국군 제 1군이 대공세를 시작했다. 함경북도 북동부는 하늘과 바다, 지상에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통일한국군 제 1군의 작전개념은 공지전과 작전기동군을 합한 강력한 공격작전이었다. 나진으로  가는 길인 개선산  남쪽 이진동을 향해  3개 제파가 집중적인  파상공격을 시작하고, 후방에는  기계화부대들이 이동대기상태에 들어갔다. 그동안 위치노출을 꺼렸던  포병대가 자주포와 곡사포, 다연장포를 총동원하여  목표물을 강타했다. 저공비행으로 침투한 미그-19 전투기들이  대공포화를 뚫고 중국군  병력집결지를 향해 내려 꽂혔다. 포병과 공군은  사정거리별로 철저히 분담해 목표를  잡고 있었다.

  중국군도 만만치  않았다. 대포병레이더가 통일한국군  포병대의 위치를 찾자 반격이 시작되었다. 8인치 곡사포와  83식 152밀리 자주포가 연이어 불을 뿜고  82식 다연장로켓포가 연속발사되며 저녁하늘을 섬광으로 찢었다.

  나진 상공의 좁은 하늘에 80여대의 미그-21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이 숫자는 그동안 북한이 보유한 전체 미그-21기의  절반에 해당하며, 한중전쟁 기간동안 잃거나 수리중인 기체를 제외한 모든 미그-21이 나진 상공에 나타난 것이다.  이 많은 숫자의 전투기가 나진 상공에  동시에 도달하기 위해 미그기들은 상당시간을 후방 상공에서 편대를 짜는데 보내야 했다.

  이 지역을 장악한 중국군  제 1야전사 휘하의 2개 방공사단과 5개 독립연대에서 일제히  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구식이지만  기동성이 우수한 삼각날개의  미그-21 전투기들이 날렵하게  미사일을 피하며 곳곳에 숨어있는 대공기지를  폭격했다. 북한공군 조종사들의  뛰어난 조종술은 그동안의 연료난으로 북한  조종사들은 훈련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무색케했다. 그래도 시간이 감에 따라 격추당하는  기체 댓수가 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대공미사일의 숫자도 줄기 시작했다.

  이때 중국제 H-5 폭격기  50여대가 북쪽하늘로부터 나타났다. 개전이래 한반도에서는 최초로 폭격기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서방측에 일류신-28로 불리는  이 경폭격기는 중국  미사일부대가 피아식별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발사를 망설이는 동안  중요 목표마다 정확히 1톤짜리 폭탄을 떨궜다. 연료저장고와 병력집결지, 포병과 전차  집결지가 1차 목표였다. 이들이 목표에 대한 폭격을 마친 이후에 대공미사일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발사되는  미사일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 있었다. 4기의 H-5가 추락하고 2대가 공중폭발했다.

  1999. 11. 26  18:50  중국 베이징 베이징판띠엔

  "조선군 배치현황이 또 입전되었습니다."

  왕 대교가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창  리엔충 상장에게 보고하며 창 상장 책상의 단말기를 조작했다. 화면에  한국군의 각 부대별 위치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고휘 상장의 부대 앞에는  의외로 한국군 병력이 적었지만 고 상장의 전진이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그래? 음..."

  창 상장은 모니터를 보면서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중국군이 가진 정보와 너무 많이  틀려서 처음에는 한국군의 기만술책으로  알았다. 그러나 확인결과 이름없는 자로부터 보내진 정보는 모두 사실이었다.

  "이 자료를 즉시 고 상장에게 넘기도록."

  "알겠습니다. 주석 동지."

  누굴까? 창 상장은 도대체 어떤 세력인가  궁금했다. 한국인? 아마 한국인은 아닐  것이다. 한국군 정보에  정통한 미국인? 아니면  저번처럼 일본군? 무슨 일이든 대가없는 선물은 없다는 것이 창 상장의 소신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대가를 요구할 것이 분명했다. 당장은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그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 기분을 상하게 했다.

  "미국쪽 종전압력이 대단합니다."

  총참모부장 우이 렌찬 중장은 혹시나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창 상장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번 전투에서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다. 자신은 고 상장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 미국의 압력을 막는 것도 자신의 일이다.

  "이제 핵만 쓰지  않으면 되오. 어떤 나라도  중립을 지키기로 했으니까. 유엔총회에서 전쟁  전의 영토상태로 회복하라고 자꾸  결의안을 내는 모양인데, 모두 무시하겠소. 일단 고 상장을 믿읍시다."

  군사위원회 위원들이 공감을 표했다. 창 상장은  이들을 보면 힘이 빠졌다. 대충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눈치들이었다. 자존심도 문제지만 이제 중국이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하기도 곤란하다는 것이 창 상장의 생각이었다.

  "1야전사의 차오  중장이 자꾸 공중지원을 요청하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소?"

  1999. 11. 26  20:15 경기도 남양주시

  통일참모본부 지하실에 있는 전산정보실 한쪽 구석에서 오 성윤 대위가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 보며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범용통신 프로그램인 엑스-네티즌(X-Netizen)의 도우미 캐릭터가 약간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만히 기다리던 도우미가  지루한지 귀엽게 하품을 했다. 아니, 일종의 스크린 세이버 역할이라고 오 대위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추적한 자료를 따로 저장할까요?]

  자막이 뜨자 오 대위는  도우미가 아직도 엷은 자주색 스웨터에 가죽 미니스커트의 가을옷  차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패션감각이 뛰어난 오 성윤 대위로서는 안타까웠다.

  '멋진 겨울옷을 디자인해서 입혀야 할텐데... 밍크코트로 할까?  글쎄... 그런 차림으로 내  캐릭터와 함께 인터넷에 들어가면 동물보호론자들의 비난이 빗발치겠지.'

  오 성윤 대위의 통신용 그래픽  캐릭터는 러시아인 모피사냥꾼이었다. 호랑이 가죽옷에 담비털모자를 쓰고 화승총을 든 그의 캐릭터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용자들이 늑대와 여우 등 동물  캐릭터를 많이 쓰기 때문에 그들을 놀려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캐릭터를  선택한 것은 그가 즐겨 읽는 컴퓨터 통신망 연재소설의 영향이 컸다.

  어차피 갑자기 정전이 되더라도 자료는 저장이  될 것이다. 오 대위가 손잡이형 마우스를 클릭하자 내용이 간략히 요약된 제목으로 파일이 하드디스크와 백업용 DVD(디지틀 비디오 디스크)에  동시 저장되었다. 오 대위가 비디오 드라이브에서 DVD를 꺼내 볼펜에 걸고 빙빙 돌렸다. 왼쪽 아래 창에서는 영화  '엑스칼리버'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아더왕이 기사들을 이끌고 벚꽃이 피어나는 길을  말타고 달리는,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이며 멋진 클라이막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오 대위는 광섬유가 전국에 깔리면서  VOD(video on demand)가 훨씬 볼만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오 대위가 다시 찬찬히 지금까지 추적한 기록을 살펴 보며 목표의 이동루트를 작성했다. 분명 통일참모본부에 있는  사용자가 인터넷을 통해 몇 개국을 거쳐  미국과 중국에 자료를 보냈다. 오 대위는  어떤 자료인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먼저 X-Netizen에  자신의 강력한 해킹툴인 일지매를  불러들여 작업을 시작했다. 화면 오른쪽 창에 일지매가  부팅되자 가느다란 단검 그림이 떴다. 도둑의 단검은 열쇠역할도 겸한  것이므로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랜(LAN)을 쓰는 주제에  적국에 자료를 전송하다니... 오 대위는 상대가 초보이거나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문제의 로그 파일이 뜨자 그와 관련된  파일을 찾았다. 역시 호스트에는 그 파일이 지워져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지운 파일도 복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오 성윤이 복구한 파일을 열려  하자 암호를 물어왔다. 일지매가 파악한 그 파일의 암호체계는 혼돈(chaos)이론을 응용한 방식으로, 그가  상당히 짜증내는 종류의 것이었다. 역시나 예상 해독시간이 에러로 처리되어 나왔다.

  그 암호체계를 판매한  회사의 광고에 따르면, 암호파일이  스스로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작성자  본인과 파일을 전송받은 사람 외에는 도저히 파일에 접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송받은 쪽을 노려봤자 전송을 받은 후 파일이 철저히 뒤죽박죽으로 변형된다.  전에 그 암호체계로 전송실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분명히 고양이 그림을  보냈는데도 전송받은 쪽 암호를 풀고 파일을 확인하니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 그림이 나왔다. 아마 그래픽으로  자료가 자체 변형되는 모양이었다. 운이  좋아 수신자가 열람하기 전에  파일을 가로채기 전에는, 결국 오 대위같은 유능한 해커도 작성자쪽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끙... 근데 존심 상하게 겨우 성공률이 20% 미만...'

  1999. 11. 26  19:30(베이징 표준시)  중국 신지앙웨이우얼 자치구

  "......, 저녁놀이 곱지 않소?"

  "네..."

  서쪽 평원이 붉게 물들며 해가 지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정 호근 대원과 땔감을 나르던 이 은경  대원이 넋을 잃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지크인 의사가 유르트에서 나오며 외쳤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신은 최고의 예술가이시지. "

  정 대원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타지크인을 노려 보았다. 이  대원이 정 대원의 어깨에 손을 올려 진정시켰다.

  "자네 다리는  이미 썩어들어가고 있었다네.  어쩔 수 없었지. 인샬라(신의 뜻대로)."

  "전사는 죽을지언정 스스로의 다리로 땅을  디뎌야 합니다. 이런 상태로 내가 어찌 인민을 지키는 전사라고 할 수 있겠소?"

  정 대원은 자신의  다리를 볼 때마다 화가 치솟았다. 무릎  바로 위에서부터 뭉텅 잘려진 그의 다리는 지금 차가운 모랫속에 파묻혀 있었다.

  "인샬라..."

  "빌어먹을 인샬라!"

  정 대원이 하늘을 향해  저주를 퍼붓자 타지크인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유르트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반부 괴뢰도당은... 아니,  실수요. 미안하오. 남한 정부는  신체장애자에 대한 지원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들었소. 이런 상태로  남반부 주도하에 통일이 되면 나는 하층민을 면치 못하겠소."

  정 대원은 경제적  풍요함은 자본주의가 낫더라도 능력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래도 사회주의가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목발에 짚고 힘들게 혼자 길을 걷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실로 끔찍한 일이었다.

  "아녀요. 국가유공자는 보훈처에서 연금도 주고 직장도 알선해 줘요."

  "후후... 남반부에서는  상이군인에게 최저임금도 안되는  푼돈을 주는 걸 내레 아오. 직장도 천대받는 경비직이나 주고설라무네... 하옇든 국가를 위해 싸우다 다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장애자에 대한 인식이 사회주의에 비해 무척 처지는 거이 확실하오."

  "그건 사실일거여요."

  이 대원이 정  대원의 분노를 느꼈는지 동감을 표했다. 정  대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레 장가나 갈 수 있을지... 차라리 통일이 아니 되었으면 좋겠소."

  "정호근 동지...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사실 거여요."

  이은경 대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  대원이 이 대원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앙칼진 눈매지만 뜻밖에 예쁜  구석이 있었다.

  "..., 동무는 말투가 많이 바뀌었소?"

  "..., 네."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이 대원에게서 정 대원은 뭔가 아주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정 대원이 괜히 74식 소총에서  탄창을 꺼내 실탄 수를 세어 보았다. 서서히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일단 키르기스나 카자흐로 탈출해야겠소."

  상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그 상대를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을 하면 그 사랑을 얻기 어렵다. 비극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Sir Huntington 一代記' 中에서

  1999. 11. 26  20:45  함경북도 은덕(아오지) 남동쪽 6km

  "전원 배치완료했습니다!"

  해병 제 2사단 부사단장이며  임시 여단장을 맡고 있는 최 준호 준장이 보고를 받으며 시계를 보았다. 공격명령을 받고 나서 2시간, 모든 것이 예정대로였다. 부대는  온성과 경원쪽에서 방어선을 펼친  강력한 중국군을 회피하여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가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한국정부와  협의가 되었는지 창문이 가려진 특별수송열차를 배정해 주었다.  무개열차에 실린 전차와 곡사포는  위장포로 가리고 간간이 민간용 중장비를 끼워 건설현장으로 향하는 행렬로 꾸몄다.

  두만강은 차가왔다. 살얼음이 언 강 가운데는  푸른 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찰대의 안전신호에 따라 짧은 시간에  도강을 마친 부대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적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조용했다. 장갑지휘차 바깥은 캄캄했지만, 바로  앞 선봉과 멀리 관곡령 너머 나진항이  불길에 쌓여 있고 아직도 아군에 의한 포격이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해병대가 한러국경을 넘자  이 지역에서 빨치산활동을 하는 주민들이 그들을 반겼다.  그들 말로는 스스로  노농적위대라고 하지만, 무장이나 조직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대규모 중국군의 위세에 눌려  이들은 실제 전투를 한 번도 치르지 않았다. 이들에게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 지역에 주둔하던 중국군 2개  사단은 이미 해질녘에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인 이곳에  한국군이 올리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았다.  하긴, 온성과 경원쪽의 두만강 유역은 전쟁터라기에는 너무 조용했다. 산너머  남쪽이 바로 웅기, 현재 북한식 지명으로 선봉이다. 정찰부대에 의해  적 주요목표에 대한 확인자료가  계속 포병연대에 송신되고 있었다.  목표에 대한 위성관측자료는 확실했지만  그 사이에 약간의  위치변동이 있는 목표도  있었다. 최 준장이 시계를  보며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포격 개시!"

  잠시 후 포탄이 나진  시가지 남쪽에 있는 나진역에 집중적으로 낙하했다. 통일 1군 포병대가 사격하기에 그곳은 사각이었다. 병력과 물자의 집결지인 이곳의 중국군은 갑작스런 포격에 놀라 모두들 대피하느라 바빴다. 능선에 포진하고 있던 해병 2사단  예하 2개 전차대대에서도 선봉시를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관곡동 너른  들에 숨겨진 유류저장고가 폭발하며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고, 선봉의  외항격인 비파항에서도 연쇄폭발이 일어났다. 여기에 남서쪽 청진방면에서  대기중이던 통일한국군 제 1군의 포병대가 가세했다.  한반도 북동쪽 끝의 두 항구는  불바다가 되고 있었다.

1999. 11. 26  21:05  함경북도 회령 제봉(542고지)

  윤민혁 대위의 목걸이 삐삐가 진동했다. 윤  대위가 확인해 보니 호출 번호는 게임에 접속할 것을 명령하는 다물회의  암호였다. 김 대장의 눈치를 살피던  그는 슬며시  그래픽통신게임, '대고려'에 접속했다.  게임 내 편지가 와서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발신인이 대막리지로  되어 있었다. 그동안 그에게 중요한 명령을 내린 자의 지위는 대대로(大對盧)였는데, 고구려의 국가비상시 최고권한직인 대막리지(大莫離支)로 바꾼 것으로 보아 다물회가 뭔가 군사적인 행동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편지를 보는 윤 대위의 눈이 치켜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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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온 시간 : 1999. 11. 26  21:01

받는이 : 치우천왕

보낸이 : 대막리지

제목 :

내용 :

  명림답부의 아이디를 삭제하고 그의 권한을  접수하라. 명림답부는 서정(西征)에 방해가  된다. 태대형(太大兄)  을지문덕이 새로이  북부여의 국상(國相)으로 임명될 때까지  울절(鬱折) 고선지가 권한대행을 맡도록 한다. 만약 치우천왕이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경우, 오버로드가 나설 것이다. 서부여의 국상 을파소(乙巴素)의 아이디가 삭제된 것을 명심하라.

                다물 단군의 땅

                                        대막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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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호 대장을 죽이라니, 역시 이것밖에 방법이 없단 말인가?'

  게임접속을 끝내는 윤  대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울과 평양에서는 또 무엇이 준비중인가 불안했다. 김  대장의 권한을 접수하라는 말은 통일참모본부에 보고하기 전에 김 대장 몰래 5군에 작전명령을 내리라는 뜻이라 판단되었다. 편지내용에 따르면  새로이 2군 사령관이 임명될 때까지  암호명 고선지가 모든  결정권을 쥐게 될 것이다.  고선지는 사실 윤 대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자신이나  최영섭 중위처럼 중요한 때에  대비해 다물회에서 안배한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윤 대위가  나서지 않아도 2군 사령관을 대리할만한 고위장교일 것이다.

  윤 대위가  힐끗 김 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5군 사령관의 죽음에 역시 오버로드가 개입을...'

  오버로드(overlord)는 수퍼유저(superuser), 즉, 게임이나 통신망의 운영자보다도 높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다물회원들 사이에서는  이 암살자의 존재를 어렴풋이  눈치채고 모두들 두려워하고 있었다.  전쟁 전에 국가안전기획부와  마찰을 빚던 대검찰청  중수부장(중앙수사부장)이 당한 의문의  사고사에 그가  개입됐을거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윤 대위는 다물회원이  아닌게 분명한 5군 사령관이 헬기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불안했는데,  이제 자신의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오버로드는 잔혹하다. 그리고 어떤 사소한 증거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냉철하기도 하다.

  윤 대위는 자신을 이만큼  키운 다물회가 이제는 자신을 써먹을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 대장의 죽음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통일참모본부가  북경공략을 결정할리  만무하고, 직업군인정신이 투철한 김 대장이  단독으로 북경공격을 명령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조직에 자신이 쓸모있음을  증명할 때였다. 이미 그  실행방법은 정해져 있었다. 윤 대위가  최영섭 중위를 눈짓으로 불러 남들 몰래  손가락 셋을 펴 보였다. 갑자기 최 중위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1999. 11. 26  21:25  함경북도 풍산

  통일한국군 제 1군은 개선산쪽에서 남진하는 2군과 함께 백사봉을 중심으로 세곳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치열한  사전포격과 공중폭격으로 중국군의 공세를  무디게 하고 병력지원을  차단하는 사이, 2군이  백사봉 북쪽의 장라동을 점령하고 1군은 백사봉  서쪽의 원평, 남동쪽의 신현을 점령했다.

  제 1군 부사령관인 인민군 배중혁 대장은 백사봉과 가장 가까운 신현을 점령하기 위한 작은 전투에서 2개 사단병력을 소모하고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지금도 적지 깊숙히 파고든  인민군 19사단장 박팔양 중장은 사령부에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었다. 주체전술에  따라 청진에 설치된 육해공  합동상황실에서 나와  풍산에서 지상군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그에게 백사봉은 악마의 산이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인민군과 중국군, 외국용병과 지원병으로 구성된 피스의  부대까지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오늘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죽게될지 걱정되었다.

  그는 피해가  얼마가 나든 이종식  차수의 전술을 따라야 했다.  사실 동부전선 최고의 천연요새인 백사봉은 목표가  아니었다. 지형이 험하고 중국군이 밀집한  백사봉은 단지  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불과했다. 그동안의 공격은  적의 주력을  이곳에 묶어두기 위한  양동작전이었다. 통일한국군 1군에게  있어서 남쪽의 어명산(1031고지)이 전략적  목표였고, 적시에 점령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명산을 점령하면 바로 밑의 어석산(866고지) 점령은 식은 죽 먹기고, 그렇게 되면 나진의 이진동으로 통하는 길이  열리며 바다가 보이게  된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한국군은 청진쪽으로 펼쳐진  중국군의 방어선을 배후에서  공격하고, 인민해방군 100만 병력을 좁은 나진과  선봉에 모두 가둘 수 있게 된다.  지금도 백사봉 주변의  중국군 14개 사단은 2군에  의해 배후를 차단당한채 묶여 있었다.

  배중혁 중장이 참모장과 함께 망원경으로  어명산의 비탈길을 살폈다. 예광탄과 포탄이  밤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불타는 차량들이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멀리 보였다.

  세 방향이  깎아지른듯한 계곡인 신현은 묘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백사봉에서  보면 화력을 집중하기  좋은 산골짜기에 불과하지만, 어명산으로 가는 길이 훤하게 트인 곳이다. 동쪽을 보면 천길 낭떠러지, 서쪽은 완만한 경사가 지고 어명산  가는 길은 표고 차가 거의 나지 않는다. 인민군 19사단은  배후인 백사봉에서 쏟아지는 탄막을  그대로 맞으며 방어병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어명산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비포장 이차선 도로를 수많은  차량이 속도를 내며 몰려갔다.  행렬 사이사이로 포탄이 계속 퍼부어지고 있었다. 부서진 차량이  행렬을 막으면 즉시 뒤따르는 차량이 그것을  좌우의 골짜기로 밀어냈다. 작전의  성패와 그들의 목숨은 시간에 달려 있었다.

  박팔양 중장이  탄 장갑차가 산악포에 명중되어  주저앉자 박 중장과 참모들이 얼른 내려 주변을 지나는 장갑차에  올라탔다. 벌써 세번째 갈아타기여서 지나가는  차량 잡기는 이골이  난 터였다. 그의 머리  위로 기관총탄이 스쳐 지나가고 작전참모가 장갑차에서 굴러 떨어졌다.

  뒷 차량의 전조등에 비친 작전참모는 뻥 뚫린 가슴에서 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뒤를 따르던 PT-76이 작전참모의 시체를  깔아뭉갰다. 사단장은 참모가 한  방에 절명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사단 참모진은 이제 정보참모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 부사단장,  참모장, 정치보위국 군관, 통신군관들까지 모두 죽거나 흩어졌다.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연막탄 연기 사이로 불타는 어명산을 바라보았다.

  어명산 위에서는 아군 헬기들이 로켓탄을 쏘아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Mi-24 헬기 한  대가 공중폭발하며 불붙은 파편이 산아래로 비산했다. 선두부대가 어명산의  중국군과 접전을 시작했다. 좁은 길을 올라가는 인민군은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공격을  퍼부었다. 이제 선두부대가 300미터만 더 전진하면  어명산 정상이었다. 공격이 워낙 치열했는지 이들의  공격이 먹혀들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어명산의 중국군들은 통일된 움직임 없이 산발적인 저항에 그치고 있었다.

  박 중장이 탄 장갑차가 앞서가던 트럭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아차 하는 사이, 병력을 가득 실은 그 트럭은  바로 왼쪽의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다. 장갑차가 멈추자 박 중장이 큐폴라 아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날래, 계속 전진하라우!"

  장갑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장갑차 뒷부분에  큰 충격이 오며 차량이  화염에 휩싸였다. 박 중장이 발판을 딛고  일어나려 했지만 발을  헛디뎠다. 불길은 치솟고  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  미칠 지경이었다. 무릎 아래로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1999. 11. 26  21:40  함경북도 회령 제봉(542고지)

  "1군에서 전문입니다. 인민군 19사단이  어명산을 점령하고 다시 어석산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병력피해는 4분의 3이나 났고, 사단장은 전사했습니다."

  통신장교 최영섭 중위가 김재호 대장에게 보고했다.  잠깐 졸다 깬 김 대장이 환하게 웃으며 아이처럼 박수를 쳤다.  참모장 허석우 대장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중요한 전략거점을 인민군이 점령해서  이제 체면은 세운 셈이었다. 이제 나진,선봉에 갇힌 중국군 병력은 좁은 지역에서 완전포위된 상태가 되었다. 승리는 눈앞에 있었다. 통일한국군 5군의 서진과 2군의 소수병력에 의한 지연전에 고휘 상장의 대군이 멈칫거리며 남진속도를 늦추고 있기  때문에 이제 한시름 놓게 되었다. 최  중위가 자꾸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침략군을 포위,섬멸하면 이 전쟁은..."

  "5군이 갑자기 왜 이래?"

  김재호 대장이 전술지도를 보다가  5군의 현재위치에 놀라 직접 전술 지도화면을 조작했다.  타임스케일을 1분  단위로 맞춰보니 5군은  이미 30분 전에 급속서진을 시작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5군이 부대를 산개시키며 선양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부대배치가  지금까지의 위협이 아니라 선양을 점령목표로 한 것이 분명했다.

  "명령도 없이 왜... 메이야?"

  김 대장에게 말하던 허석우  대장이 놀라 권총집을 움켜쥐며 뒤로 돌았다. 그가 본  것은, 그의 뒤에 있던 윤민혁  대위가 허 대장의 권총을 쥐고 그의 뒤쪽을 향해 쏘는 것이었다.  발사하는 윤 대위의 얼굴표정에는 안타까운  감정의 빛이 역력했다.  또 한발이 발사되며 화염과  함께 총에서 뿌옇게 연기가 솟아 올랐다. 허  대장이 권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 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깜짝  놀란 허 대장이 김 대장에게 달려가  윤 대위로부터 그의 몸을 가리려는 순간, 통신기에  앉아있던 최 중위가 일어나며 허 대장의  가슴과 배를 쏘았다.  허 대장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며 최 중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다가 앞으로 쓰러졌다. 윤  대위가 쓰러진 김재호 대장에게 다가갔다.  김 대장은 이미 절명했고, 아직도 가슴에서 피가 뿜어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뜻밖에도 고향생각을  하는지 온화해 보였다. 윤 대위가  그의 머리를 쏘아 확인사살을 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전산병 백관수 하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기 패널에 손을 올린채 벌벌 떨고 있었다.

  1980년 오월, 광주의 뜨거운 태양 아래 김재호 대장, 당시 젊은 김 대위가 있었다.  광주에서 담양으로  빠지는 길목인 광주교도소  앞길에서 그는 부하들이  길가에 널린 무장폭도들의 시체를  옮기는 모습을 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40대가 넘은  장년과 20대 청년들뿐 아니라 갓 고교생이  된듯한 앳된 소년들의 시체도 섞여 있였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총을 들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카빈소총 따위의 빈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않은 그들에게서 분명 공포보다 더 강한, 그 무엇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어떤 분를 느꼈다.

  주둔지로 복귀한 뒤,  중대원들의 의가사제대가 줄을 이었다. 막사 주변에 굴러 다니는 술병 숫자가 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고, 그 자신도 술을 찾는 밤이 많아졌다. 중대원 중에서  정신병으로 후송된 부하가 둘이나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총에 맞아죽었을지도  모를 어린 소년의 처참한 모습이 꿈에  자꾸 떠오른다며 횡성수설했다. 광주투입  이후의 여러가지 변화 중 특히 하사관들의 술렁임이  심했고, 결국 셋이 장기복무를 포기하고 제대했다. 그는  중대원들에게 훈시를 하며, 그때 결코 비무장 시민들을 학살한 것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에  따라 교도소를 지키기 위해 무장폭도와 교전한  것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사실 그때  광주시민들은 교도소는 안중에 없었다.  당시 고립되었던 광주시민들은 담양  등 외지로 빠져나갈 길이 필요했다는 것을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서울로 외출 나갈 때는 자신을 보는 시민들의 눈초리가 전과 달리 차가움을 느꼈다. 몇  년 후 광주청문회가 열리자 그는 심한  자괴감을 맛보았다. 자신의  사단이 광주투입부대로서 시민학살에  관여했다는 신문 기사를 자주 보게  되었고,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무장폭도들이 민주화 운동의 순교자로 바뀌는 기가 막힌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이 부하들에게 내렸던 명령이 정당했던가 자주 돌아보게 되었다. 좀 더 정중하게  항복을 권했더라면, 그들이 도망갈 때 즉각 사격을 중지시켰더라면 희생자가 조금 더 적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남았다.

  당시 5공청문회를 보면서 그는 군부출신 대통령들의 부도덕성에 치를 떨었는데, 다시 몇  년 후에 터진 전직 대통령 수뢰사건  폭로와 재판에서 드러난 천문학적인  비자금... 그런 대통령들 밑에서 충성을  다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결국 군부를 업고 집권한  세력은 부패한 독재자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진정한 정부의 힘은 국민에게서 나와야 했다.

  광주진압작전의 공로로 받은 훈장이 이제는 그의 진급에 장애물이 되기 시작했다. 그의 경력을 알게된 부하  장교들이 그에게 은근히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그는 자신이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며 자위권을 발동하여 교전했을 뿐임을, 비무장의  시민을 학살하지 않았음을 강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 말을 결코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는 하나회가 아니라는 점과 부산출신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해 90년대 초반부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승진할 때마다 자신의 과거 경력이 언론에 발표될까봐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전역을 얼마 안남기고 중국의 침략이 시작되자 그는 마지막 보직으로 생각한  육군참모총장직을 반납하고  전선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계획대로 잘되어 이제 중국군을  거의 포위하고 실지를 회복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만주에서  남진중인 고휘 상장의 대군은 지연전 때문에 속도가 느려졌고,  게다가 이왕 5군이 심양(瀋陽-선양)쪽으로 향했으니 이제 2군에 미치는 위험은 없을  것 같았다. 한국군이 북경점령과 완전승리라는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전쟁은  이대로 끝날 듯 싶어 다행이었다. 이제 그가 없더라도 전쟁은  곧 끝나리라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는 왜 윤 대위가 자신을 쏘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마도 5월 광주의 한이 자신을  끝까지 놓지 않은 것이리라 생각하고  말았다. 5군의 서진은 아마도 윤 대위가 자신을 쏜 것과 관련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설마 북경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리라. 김재호 대장은 이제 편안했다. 이제 그를 평생 괴롭혀오던 악몽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장갑지휘차 주변에서 경비하던  헌병들이 뒷문을 마구 두들기는 순간 운전석쪽에 있던 김영석 중위가 K-1 기관단총을 거머쥐고 들이닥쳤다.

  "무슨 일입니까?"

  김영석 중위가 본  것은 쓰러진 두 명의 대장이었다. 한  명은 육군참모총장이며, 현재는  통일한국군 2군과  5군의 사령관을 겸임한  김재호 대장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통일한국의 운명을 쥐고  전군을 호령하던 사나이가 붉은 피에 흥건히 젖은 한낱  시체가 되어 있었다. 김 중위가 경악을 하고  있는 중에 윤 대위가 뒷문을 열었다.  헌병들이 그들을 노려보며 총구를 겨누었다.

  "허 대장이 갑자기 사령관님을  쏘았소. 허 대장은 우리 최 중위가 사살했소. 서관희 대위! 아무래도 국군의 지휘에 인민군들의 반발이  심한 모양이오. 즉시  주변을 통제하시오. 김  중위! 어서 군의관을 부르시오.  그리고 사령관님이 유고된 사실을  비밀로 하시오. 빨리 움직여요!"

  장갑지휘차 주변을 경비하는  헌병들을 이끄는 서관희 대위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더니 즉시 부하들에게  비상경계태세를 명령했다. 서 대위가 장갑을 쥔 손으로 쓰러진  허 대장 옆에 놓인 권총을 집어 들었다. 총구에서는 아직 뜨거운 열이 느껴지고 있었다.

  1999. 11. 26  21:45  경기도 남양주시 통일참모본부

"이게 어찌된 일이오? 왜 5군이 선양쪽으로 가고 있습니까?"

  피스 연락관 짜르가 탁자에 투사된 지도를  가리키며 펄펄 뛰었다. 참모들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뭔가를 기다리는 듯  초초한 표정이던 정지수 대장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고휘 상장이 이끄는  중국군은 너무 강력합니다. 잘못하면  2군이 포위될 것이오. 5군의 이동은 사전에  보고가 올라왔듯이 그들을 견제하기 위한 기만작전이니 염려 마시오."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지  않았소? 정말로 한국이 베이징을 공격하는 것 아니오? 당신들은  이제 침략자가 되었소. 그렇다면 우리  피스 부대를 당장 한국에서 빼내야겠소! 우린 전쟁을 막고  침략자를 격퇴하기 위해서는 당신들을 상대로 싸울 수도 있단 말이오!"

  짜르의 언성과 달리 통역관 인한수 중위는  느긋하게 통역을 했다. 그래도 참모들은  짜르가 매우 분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정지수  대장이 나서서 그를 다독거렸지만 짜르의 화를 돋구기만 하고 있었다.

  "어허~ 서두르지 마시라니깐... 쯧쯧.  저렇게 성미가 급해서야. 전쟁에서 기만행동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진과 선봉의 중국군 제 1야전사가 섬멸되면 중국이 강화를  요청하고 전쟁은 완전 끝날텐데 뭐하러 북경을 공격하겠소?"

  "나를 무시하는거요?  나는 소비에트연방의 군인이었소.  화력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5군이 지연전을 펼치면 1군과  2군이 충분히 1야전사를 섬멸할 수 있었소. 나는 전부터 5군이 고휘군을  막지 않고 서쪽에 치우쳐 있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소. 5군을  지휘하고 있는 2군 사령관이 미친 것 아니오?"

  이종식 차수의  책상 위에서 벨이  울렸다. 전쟁 이래 자신에게  직접 전달된 정보는 없었기 때문에 약간 놀란 이 차수가 자신의 단말기를 보았다. 개전 이래  처음보는 1급비밀 표지가 떠  있었다. 이 차수가 즉시 암호를 입력하고  파일을 열었다. 이 차수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참모들의 시선이 집중되며 회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통일군 2군 사령관 겸 5군 사령관,  국군 김재호 대장이 인민군 허석우 대장에게 암살되었다는 보고요."

  "메이요? 기럴 리가!"

  "허석우 대장은 지휘차에 탑승한 통신장교 최영섭 중위가 사살했다고 합네다. 현재 2군 헌병대에서  조사중이라고 김 대장의 부관, 윤민혁 대위가 보고했수다."

  "그럴 수가... 믿을 수 없습니다."

  참모들의 놀란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5군  사령관에 이어 2군 사령관마저 잃게된  것이다. 전쟁 중에 전사하지  않고 사고나 암살로 죽다니, 명예를 소중히  하는 직업군인인 그들로서는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노한 이 차수가 통신장교를 불렀다.

  "당장 제 2군 사령부를 연결하기요."

  중앙화면에 2군  인사부장 심보선 중장, 윤민혁  대위와 최영섭 중위, 그리고 헌병대의 서관희  대위가 나왔다. 거수경례를 하는  그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들을 본 이  차수는 말도 않고 머리에 손을 짚고 있었다. 정지수 대장이 물었다.

  "심 장군.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거요?"

  [죄송합니다.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저는 그때 다른 차량에  있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세 사람이 그때의 증인입니다.]

  심 중장은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인민군 김병수 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기래요? 윤 대위. 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난겐가?"

  심 중장이 화면  밖으로 나가자 윤 대위가 앞으로 나섰다.  윤 대위는 그 상황에서도 상당히 씩씩하게 대답했다.

  [예! 김재호 사령관님이  5군에 선양으로의 진공을 명하자  허 대장님이 심하게 반발하셨습니다. 명령을 전한 다음에도  두 분은 계속 다투셨는데 허 대장님이 화를 참지 못하셨습니다.  허 대장님이 쓰러진 사령관을  향해 계속 총을 쏘시길래 최 중위가 나서서 허 대장님을 사살했습니다.]

  "음... 서 대위."

  다시 정지수 대장이 취조하는 어투로 헌병장교를 불렀다.

  [예! 대위, 서-관-희!]

  "자네는 그때 어디 있었나?"

  [사령관님이 계신 장갑지휘차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럼 일이 벌어진 다음 왔겠군. 자네는 무얼 봤나?"

  [예! 사령관님과 허 대장님은  이미 절명해 계셨습니다. 허 대장님 곁에 있는 권총 총구가 따뜻했고, 탄창을 빼서  세 발이 발사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별다른 상황은 없었나?"

  [예! 본  상황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현재 장갑지휘차에 있던 다섯명을 조사중입니다!]

  "다섯? 기럼 또 누가 있었소?"

  인민군 김병수 대장이 다시 나서자 서 대위가 보고했다.

  [부관 윤민혁 대위와 통신장교  최영섭 중위, 장갑지휘차 차장인 김영석 중위, 운전병, 그리고 사령실 내에 전산병이 있었습니다!]

  "기래요? 날래 전산병을 부르기요."

  [백 하사!]

  꽤나 어려 보이는 백관수 하사는 아직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안스러웠다. 정 지수 대장이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자네가 그때 본 상황을 이야기하도록."

  [두 분이  한참 말다툼을 하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총소리가 나서... 뒤돌아 보았습니다. 허 대장님이... 쓰러져 계신 사령관님에게 권총을 쏘는 것이 보였습니다. 흑흑~]

  "울지 말고, 임마! 계속해!"

  정지수 대장이 갑자기  신경질을 내며 백 하사에게  쏘아붙였다. 군인이 사나이답지 못한 행동을 할 때 정 대장은 이유모를 분노가 폭발하곤 했다.

  [예! 죄송합니다! 흑. 놀란 최 중위님이  허 대장님을 쏘고 사령관님의 상태를 살폈습니다만, 이미 절명하신 후였습니다. 사령관님은... 흑흑. 허 대장님이 쐈습니다. 왜 그리 화가 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음... 그래?"

  질문을 마친  정 대장이 참모들의  얼굴을 살폈다. 김 대장의  지휘에 불만을 품은 참모장 인민군 허 대장이 하극상을 범한 것이 분명한 결론이었다. 그때까지 묵묵히 앉아있던 차 영진 준장이 나섰다.

  "윤민혁 대위! 자네는 대학 다닐 때 대학생 다물회장이었지?"

  [...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저는 군인이기 때문에 사조직에 가입하지 않습니다.]

  "다물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애국적이긴 하지만 극우민족주의에  치우쳐 있습니다. 만주를 찾겠다는 그들의 목표는 국제평화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윤 대위가  정훈감실에서 내려온  사회정세보고서를 외우듯 특징없이 대답했다.

  "음... 내 생각도 그렇다네. 그런데 말야..."

  [.....]

  "아까는 5군  사령관이 사고로 순직하셨네. 조금전에는  2군 사령관께서 암살당하셨지. 암살  직전에 5군이 선양쪽으로 급속이동을 시작했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명령은 분명  김 대장님이 내리셨습니다. 나중에  확인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고는 한참 후에 일어났습니다. 명령문을 전송해 드릴까요? 전송시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음... 이쪽으로  보내주게. 그런데 지금  2군 지휘권을 인수한 사람은 누군가? 아까 그 심 중장님이신가?"

  차영진 준장이 단말기를 통해 심 중장의  이력을 훑어 보았다. 계급에 비해 별로 화려하지  않은 경력이었다. 육군 소장때  부군단장을 마지막 보직으로 전역하기 직전,  갑작스럽게 통일이 진전되는 바람에  아직 현역에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한국 육군에서  부군단장을 하다가 승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예! 2군 인사부장이신 심보선 중장이십니다.]

  윤 대위가 대답하자  심보선 중장이 다시 중앙화면에  나왔다. 새까만 후배가 자신을 취조하는듯해서 상당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인민군 김 병수 대장이 차 준장을 대신해 질문했다.  군경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남북한을 떠나서 김 대장이 훨씬 선배인 셈이다.

  "아직 후임 2군  사령관은 정해지지 않았소. 심  중장은 2군의 선임장교로서, 또한 사령관 서리로서 앞으로 어찌할 생각이시오?"

  [순직하신 사령관님의 뜻을 이어받아 기필코 나진,선봉의 적을 섬멸하고 침략을 막아내겠습니다!]

  "아니... 지금 이동하고 있는 5군 말이오. 5군은 어떡하시겠소?"

  [당연히 사령관님의 명령대로 선양을  공격해야 합니다. 이는 고휘 상장의 대군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입니다. 정식으로  새로운 사령관께서 부임하기 전까지는 김재호 대장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음..."

  현재 2군 사령부의 명령을  받고 있는 인민군 대장이다. 인민군 대장이 국군 중장의 명령을 받게되는 셈이다. 김병수 대장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고 김재호  대장이 죽었다고 해서  2군 사령관 서리의 5군에  대한 지휘권을 박탈할 수도 없었다.  가만 지켜보고 있던 정지수 대장이 나섰다.

  "2군 사령관은 곧 임명해서 보내겠소.  그때까지 작전을 잘 수행해 주기 바라오."

  "저를 2군 사령관에 임명해 주십시오."

  정지수 대장이 이종식 차수에게 간청했다. 이  차수가 정 대장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이 차수가 보기에  정 대장은 약간 과격했다. 자칫하면 중국과의  전쟁을 확대할 수 있는 위험인물로 판단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적임자가 없었고, 정 대장의 청을 거절하기도 곤란했다.

  "공화국 임시주석과 남반부 대통령에 재가를 얻어야 하오."

  "통참에서 천거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국군 지상군에서는  제가 최고 서열입니다.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합참의장을 빼면 정지수 대장이 최고서열이었다.  그는 공석인 육군참모총장으로 거의  내정되어 있었는데,  정 대장도 이름뿐인  육참총장은 싫은 모양이었다. 하긴, 이  차수 자신도 직접 병력을 이끌고 작전을 지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1999. 11. 26  20:55  (현지시각) 베이징, 베이징판띠엔

  "2야(野)를 대주게."

  창 상장은 기가 막혔다. 약 100여만으로  추산되는 한국군의 진공은 4개 지대(支隊)로 나누어 행해졌지만 분명 베이징을 향하고 있었다. 중국 지도부가 최악으로 여기는 악몽이 지금  현실에서 진행중이었다. 전술핵이라는 막강한 중국군의 방어수단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한국군이 베이징을 공격하는 것이다.

  2야전사가 아무리 빨리 이동한다  해도 통일한국군 제 5군 본진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중간에 선양수비군이 있긴 해도, 예비로 돌린 2개의 수비사단과 인민무장경찰 몇  개 독립대대, 그리고 사단병력의 절반 이상이 줄어들어 사기가 땅에 처박힌 몇 개의 사단 찌꺼기에 불과했다. 한국군의  선양 점령은 시간문제이고,  이제는 베이징까지 위험했다. 야간작전능력이 있는  공격기마저 이제 바닥이 드러났다. 각 군구에 남아있는 예비병력과 해안방어연대들,  인민무장경찰, 그리고 공안국 소속 무장요원들까지 모두 긁어 동원해봐야 채  50만이 되지 않았고, 무장 수준도 극히 미비했다. 도저히 그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비상회의에서 총참모부장인 우이 롄찬 중장이 인민총동원령을 발령할 것을 주장했다. 항일전쟁의  전통을 살려 인민전쟁을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인민전쟁을 전개하게 되면 최소 절반의  영토, 절반의 인민이 적의 군화발 아래 짓밟힐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은 1930년대와 달리 지킬 것이  너무 많았다. 인민의 생활수준을  몇십년 후퇴시켜가면서 조선과 대적할 이유가 없다는 반론이 군사위원회의 광범위한 동의를 받았다.

  이윽고 만주에 있는 제 2야전사 사령, 고휘  상장이 호출되자 왕 대교가 창 상장의  회선과 연결했다. 창 상장이 즉시 이를  중앙화면과 연결했다. 검은색 가죽제복에 선글래스를 낀 고휘  상장이 화면에 나오자 군사위원들이 침묵을 지켰다.

  "조선군이 베이징을 향하고 있소."

  [알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막아  주십시오. 저는 1야(野)를 먼저 구출하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지금 1야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의 기만술책에 넘어가시면 절대 안됩니다.]

  자신을 호출한 이유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고휘 상장이 미리 쐐기를 박았다. 창 상장이 무슨 말을 할지 뻔하지  않은가? 그러나 베이징을 방어하기 위해 병력을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국군 5군에 대한 추격전이 성공하여 무사히 베이징을 방어한다손 치더라도 자신의 2야만으로 조선군 3개군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창 상장 자신이 이를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을 막을 병력이 없소."

  이것은 전략상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선택의 문제였다. 창 상장과 고 휘 상장은 결론은 미뤄둔 채 상대를 떠보고 있었다.

  [전술핵을 쓰셔야겠습니다.]

  "그건... 조선에 의한 핵보복은 문제가 아니오. 방금 미국과 몇몇  나라 정부로부터 전문이 도착했소. 어떠한 핵공격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엄포요.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에서도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고, 어찌된지 인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도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소."

  창 상장의 말을  듣던 고휘 상장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세계 핵 강국의 정보부에서는 이미  중국의 패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중국이 이기고 있었다면  그 나라들은 결코 그런 엄포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각국 정부와 그 주재국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핵시위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략무기인 핵폭탄을 쓸데없이 전술목표에 소모했다는 것이 고휘 상장의 생각이었다. 피스함대와 서울에  대한 핵공격은 전략적 성과도  없이 세계열강들로 하여금 중국으로부터 등돌리게 하기 충분했다.

  [동지들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병력을 서진시키면 승리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1야를 구출해서 그들에게 행동의 자유를 부여해야 합니다. 병력면에서는 그리 불리하지 않으니 우리가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 1야를 구하지 않으면 1야뿐만 아니라 저희 2야도 각개격파될게 뻔합니다.]

  "그럼 날더러 어떡하란 말이오? 우리 군사위원들까지 총들고 나가 싸우다 죽을까요?"

  '동지는 무엇을 바라는거요?'

  고휘 상장의 표정은  창 상장에게 이런 말을 하는 듯했다.  고휘 상장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고 상장의 결론은 단호했다.

  [베이징을 포기하십시오.]

  창 상장을 제외한  군사위원들이 흠칫 놀랐다. 아무리  상황이 안좋더라도 적군에게 수도를  넘겨줄 수는 없었다. 다른  군사위원들이 나서려 하자 창 상장이 그들을 말리며 말했다.

  "....., 그럴 수는, 절대 그럴 수 없소!"

  [자존심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조선국경과 베이징은 너무 가깝습니다. 중화역사상 수도가  북쪽에 있다가 북방 기마민족에게  멸망한 예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제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충분히  적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베이징은 나중에 수복하면 되겠죠. 공간을 이용해 적 병력을 흡수하는 것이 인민전쟁의 요체 아닙니까?]

  고 상장의 심각하지만 특유의 이죽거리는 듯한 모습을 본 군사위원들이 약간은 분개했다.  역시 소수민족은 믿을게 못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고  상장은 자기 할아버지의 조국이  조선이라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알겠소. 이제 그만 전쟁을  끝낼까 하오. 처음부터 잘못된 전쟁이었소."

  드디어 고 상장이  기다리던 대답이 나왔다. 한국군이  베이징으로 향하면 자신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통일한국군  5군이 지연전으로만 응수한다면 어떻게  해 볼 수는 있었다. 아마도  1야가 전멸당하거나 항복하는 동안 자신의 2야가  한국군 5군과 현재 지연전에 나서고 있는 2군의 일부 병력을  패퇴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2야와 2군의  일대일 결전이 남게되고, 기동력과  화력이 우세한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군  지도부의 어떤 미친놈이, 수십발의 전술핵을 뒤집어 쓸 위험에도 불구하고 5군에게 서진을  명령했다. 중국이 핵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패배뿐이었다.

  고 상장이 선글래스를  벗고 고개를 들어 바른 자세를 취했다.  고 상장의 눈빛이 군사위원들에게 강하게 쏘아졌다.  최대한 예의를 갖췄지만 그 특유의 비꼬는 듯한 말투는 숨길 수 없었다.

  [아주 불리한 협상이 되겠습니다.  아마도 조선은 조선반도를 점령 중인 1야를  내버려 두고 협상에  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100만명  넘는 포로를 안고 종전협상이라... 외교부장께서 꽤나 곤혹스러우시겠습니다.]

  "내가 직접 조선에 가겠소."

  고 상장과 동시에 군사위원들도 놀랐다. 창  상장의 굳게 다문 입술은 전투에 임한 어떤  지휘관의 표정보다 결연했다. 조국을  전화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이 겪을 치욕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아마도 1야 병력 전체가 항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화면이 꺼지길 기다리던 고 상장이 깜빡  잊었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통신을 끄려던 왕대교가 놀라며 그 자리에 멈췄다.

  [그럼 상호 적대행위는 종식해야겠습니다.]

  "...., 아니오."

  창 상장이 오른쪽  벽의 전략지도를 보았다. 1야가 점령하고  있던 조선땅이 한참 줄어들어  있었고, 반대로 조선군이 점령한  만주땅은 갈수록 서쪽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오는 2야는 거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땅따먹기 게임은  이미 역전된지 오래였다. 창 상이 중앙화면을 보니 고 상장도 지도를 보는지 눈길 아래로 뭔가를 조작하고 있었다.

  "아니오! 회복할 수 있는  한 한치라도 회복하시오. 동지가 빠른 시간내에 가능하다고 판단한 적정선까지 점령한 다음 내게 연락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동지. 그럼 일단 작전은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별 의미없겠지만...]

  고 상장이 불만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군사위원들을 훑어보며 경례를 붙였다. 군사위원들이 잔뜩 풀이 죽었는지 엉거주춤 경례를 받았다.

1999. 11. 26  07:10(현지시각)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 외곽

  아틀라카틀(Atlacatl) 부대  소속 병사 로베르토 마르티네즈는  분대원들과 함께  도로 주변에 매복  중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  도로를 지나가는 차 한 대 보이지 않는다. 심심했다. 그에게는 인디오나 농민들을 마음대로 학살할  수 있는 농촌이 훨씬 좋았다. 여기는  아무래도 미군이나 경찰 등의 눈치가 보이고, 공무원도  죽이면 안되기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는 끔찍했던 훈련과정이  생각나 진저리를 쳤다. 온두라스  국경 부근에 있던 피난민 캠프에  갑작스레 나타난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고 자기  또래의 청소년들을 트럭에 태웠다.  그리고나서 자행한 그들의 행동은 악귀를 연상시켰다.

  사람들에게 옷을 모두 벗으라고 시킨 다음 머체티(machete:중남미  원주민들이 가지치기용으로 쓰는  날이 넓은 칼)를 든 군인들이  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노인, 부녀자들이  대부분인 그들은 저항도 못하고 죽어갔다. 끔직한 것은 그들이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손목과 팔꿈치, 어깨,  발목 등 마디마디를 자르고 마지막으로  목을 잘랐다. 젊은 여자들은 따로 모아 윤간한 다음 하체부터 찢어 죽였다.

  어린 로베르토는 군부대에 끌려와 혹독한 기합과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들개와 콘돌을 맨입으로 물어뜯어 죽여야 했고, 교관의 기분에 따라서는 자기들끼리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을  벌여야 했다.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주변 마을에서  끌려온듯한 어린 소녀를 강간해야  했고, 결국은 그 소녀를 돌로  쳐 죽여야 했다. 군인들이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은 사람들을 고문하며 손톱을 뽑거나 목을 자르는  모습은 거의 매일 보았고, 연병장에는 사람 시체에서  잘려나온 여러 가지 장기가  굴러다녔다. 이런 살벌한  캠프에서 2년을 보냈다. 차차  적응 되어가는 자신이 무서웠다.

  이렇게 나치 친위대에서  따온 교육과정을 따라 훈련받은 로베르토는 미국 군사고문단 앞에서  심사를 받았다. 몇가지 의례적인  사상적 심사와 함께, 그는  동료들과 함께 주변 마을을 급습하여 주민들의  목을 잘라왔다. 그 후에야  그는 자신이 아틀라카틀이라는 끔찍한  부대에 정식으로 가입된 것을 알았다.

  "버스가 옵니다!"

  멀리 고물 버스가  굴러오고 있었다. 버스 지붕에 짐이 잔뜩  있는 걸로 보아, 주변 마을에서 사람들이 장보러 오는 모양이었다.

  "음..."

  매복하느라 따분했던 분대장이 머리를 굴렸다.  다른 분대원들이 소총이나 머체티를  매만지면서 은근히  습격하길 바랐다. 드디어  분대장의 결단이 난 모양이었다. 분대장이 병사 둘을 내보내 버스를 멈추게 했다. 주로 부녀자와 노인들로 이뤄진 버스 승객들은 거의 사색이 되었다.

  "두손 들고 내려! 운전사 먼저, 빨리!"

  "말 안들려?"

  버스 문이 강제로 뜯겨 나가고 운전사가  땅에 내동댕이쳐 졌다. 성질 급한 병사 하나가 머체티로  운전사의 목을 치자 끌려나온 사람들이 도로에 꿇어 앉은채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그들의 운명은 뻔했다. 죽음뿐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병사들에게 자비를 구해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미소와 칼 뿐이었다.  요즘은 언제나 그렇듯 지루한 학살이 시작되었다. 젊은 여인들은 게릴라에  가입하거나 길거리에 나돌아다니지 않는다. 또한 병사들이 젊은 여자들의  씨를 말리기도 한 탓이다.

  [타!]

  "뭐야? 총은 쏘지 말라고 했잖아? 물건에 피가 묻으면 값이..."

  화가 나서 펄펄 뛰던 분대장이 뒤를  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민간인이 아니라 부하 병사가 죽어 나자빠져  있었다. 민간인들의 비명이 귀청을 찢는 듯했다.

  [타!]

  포물선 궤도를 그리던  총알 하나가 분대장의 골통을  꿰뚫었다. 분대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쓰러졌다. 로베르토가 중년여자들 뒤로  숨으며 응전태세를 갖췄다. 살인자는  보이지 않았다.

  '살인자? 그렇지. 내가 살인자야. 그리고 군인은 원래 살인자라고.'

  민중이 민중을 죽이고, 다른 민중이 민중을 죽인 민중을 죽인다. 그것은 민중의 탓이  결코 아니었다. 그 자신도 죽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멀리 숲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옆에 있던 병사가  또 쓰러졌다. 극히 짧은 시간 후에 총소리가 울렸다.

  "저쪽이야! 사격!"

  부분대장이 외치며 숲쪽을  향해 M-16으로 사격을 시작했다.  분대원들이 응사를 시작했으나 먼저  공격을 당한 것은 처음이라 분대원들 사이에 공포가 엄습했다.  로베르토는 친구인 호세가 뒤로  슬금슬금 빠지는 것을 보았다. 겁에 질린 로베르토가 그를 따라갔다. 호세와 로베르토는 총소리를 뒤로 하고 죽어라고 벌판을 뛰어갔다.

  1999. 11. 26  22:25  엔지(연길) 북쪽 14km

  헤들라이트를 킨 60여대의  트레일러가 북쪽을 향해 비포장도로를 질주했다. 각 차량마다  T-80 전차나 KH-179 155밀리 자주포  한 대씩을 태우고 달리는 그 행렬은  통행에 최우선권이 부여된 듯 맨앞에 헌병차가 선도했다. 트레일러 행렬  뒤로는 K-200 보병전투차와 KM50  트럭들이 따랐고, Bv-202 장륜식 설상차 몇 대도 이 행렬에 끼었다.

  한참을 북으로 달리던  행렬이 순간 정지했다. 거대한  트레일러의 뒷부분에 있는 두 개의 발판이 땅으로  내려오고, 전차병들이 전차를 고정시켰던 쇠줄을 풀었다. 곧이어 전차가 우르렁거리며 내려서기 시작했다. 보병전투차들은 이미 자기 위치로 전개하고 있었다.

  트레일러들이 남쪽으로 돌아가자 공병차들이 전차엄폐호를 파기 시작했다. 민간에서 징발된  포크레인과 불도저 덕택에 작업은  예정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전차가 엄폐호에 들어간 후  위장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전방에 수많은  불빛이 보였다. 잠시 후에 시야에 들어온  것은 수백대의 자동차 전조등이었다.  앰뷸런스와 트럭행렬이 먼저 오고, 그 뒤로 사륜구동차들이 보였다.  후퇴하는 그들을 따라 포화가  점점 가까워졌다.

  "저건 55사단이야."

  전차장 한보겸 대위가  차장용잠망경을 통해 바깥을 보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변승재 하사가 포수망원경으로 보니  후퇴행렬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사륜구동차에 탑승하고 있는 군인들 태반이 부상병들이었다. 듣기보다는 병력도 많이 줄어 있었다.

  "작살났구만...쯧쯧."

  운전병 장 병장이 남의 말 하듯 제 1사단은 두만강을 넘어 어느새  이곳까지 와서 고휘 상장의 2야전사에  맞서게 되었다. 그러나 워낙 이동행렬이 길고  편성에 시간이 걸려 한보겸 대위가 소속한 일부 병력이 선발대로  이곳에서 적의 전진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고 투입되었다. 한 대위가 실토했듯이 시간끌기용 총알받이였다.

  "이제 우리 차례디..."

  포수 변승재  하사에게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영변  근처에서 벌어졌던 첫전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번 전투에서 그는  흉폭한 맹수에게 맞서는 어린아이같은  심정이 되었다. 아련하게 애인에  대한 그리움이 솟았다.

  '우아하고, 지적이며,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생기발랄한... 한마디로 품위있는...'

  회사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결코 그가 원하던 여자가 아니었다. 내숭이나  떨고 화려한 옷입기를  좋아하는 철부지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갑자기  변신을 시작했다. 깔깔거림이  부드러운 미소로 바뀌고  사물을 보는 안목이  넓어졌다. 처음 그녀와 같이  일할 때 거칠게 대하던  그가 당황하며 그녀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몇 단계나 성숙해진 그녀에 대해  갑작스럽게 범접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괴로워할 때 그녀가  다가왔다. 그녀의 행복한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중국군의 십자포화가  점점 가까워졌다. 심장이  박동치며 아드레날린이 대량으로 분비됨을 느꼈다.

  1999. 11. 26  22:42  서울 용산, 중앙대부속병원

  오석천 공보처장관이  환하게 웃으며  입원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간호장교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던 홍지영 대통령이 화들짝 놀라며 담배를 시트 안에 감췄다.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각하!"

  대통령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장관에게 물었다.

  "어떻게 말이요? 오 장관. 중국이 항복하기라도 했소? 설마..."

  "중국 군사위  주석 창 리엔충  상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각하를 뵙기 위해 직접 서울로 오겠답니다!"

  "그 사람이 갑자기 왜...?"

  "5군이 심양을 공격하자 북경을 점령하는 줄 알고 놀란 모양입니다."

  "핵공격은 안한답니까? 앗~ 뜨거!"

  대통령이 시트를 걷고 담배꽁초를 주워  휴지통에 버렸다. 허벅지부분을 감싼 붕대에 구멍이 나고 그 주변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오 장관이 낄낄대며 웃었다.

  "조심하셔야죠. 이  기회에 아예 끊으시지... 핵은  걱정없습니다.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  지도부에 압력이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호오... 그럼 전쟁은 곧 끝나겠군요."

  "제가 다시 중국 외교부장과 통화해야 합니다만... 중국 주석과의 회담 시간은 어떻게 잡을까요? 그쪽에서는  종전 이후 복구사업을 논의할 대규모 협상단까지 파견한답니다."

  중국이 한국에 배상을 하겠다는 뜻일까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대통령이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각나 다시 장관에게 물었다.

  "빠를수록 좋겠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주석이 도착하시는  대로 바로 시작합시다.  그런데 종전은 언제부터요?  지금 당장 서로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희생이..."

  "중국군은 현재 전 전선에 걸쳐  모든 적대행위를 종식했습니다. 공격 중지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알겠소. 최 총리와 상의해 보겠소.  그런데... 왜 갑자기 5군이 베이징으로 향했지요? 공격계획에 없던 일인데요."

  오 장관의 눈이 잠시 빛났다. 그에게서 자랑스런듯한, 또는 뿌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김재호 대장이 암살당하기  직전에 5군에 서진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각하. 그런데 그들과의 종전회담에 임할 때 간도의 한국반환을 강력하게 주장하십시오. 원래 우리땅인건 각하께서도 아시잖습니까?"

  "그래도 지금은 남의 영토인데 어찌..."

  "중국은 티벳을  점령할 때나 다른 영유권  분쟁에 접할 때도 수백년 전의 점유사실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고조선이나 고구려, 발해의  땅임을 내세워 만주를 돌려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간도는 겨우 100년도  안된 20세기, 금세기 들어서 잃은 땅입니다."

  오석천 장관이 대통령의  대답을 기다렸다. 대통령의 대답에  따라 어떤 행동이 이어질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흠... 검토해 보겠소. 장관은 일단 재경원장관, 외무장관,  국방장관 등에게 연락하여 종전위원회를 구성하시오."

  1999. 11. 26  22:55

  변승재는 얼이 빠진채  T-80 전차 밖으로 나와 부상병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교전으로  인한 인명손실이 화된 대대의  절반에 육박했다. 엄폐호는  온전한 것이 없었고  움직일 수 있는 전차  댓수는 겨우 7대에 불과했다. 변 하사는 휴전이 조금  일찍 되었더라면 이런 피해는 없었을거라며  투덜거렸지만, 대대의 방어가  그나마 성공함으로써 중국의 한국에 대한 종전통보시간이  결정되었다는 것은 결코 알 수 없었다.

  정지수 대장은 통일한국군 제  2군 사령부로 가는 헬기에서 휴전소식을 들었다.  차영진은 선천에 있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는 그의 아내가 가방을 꾸리고 있었는데, 붙잡으려는  차영진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그녀의 차로  떠나고 말았다. 차영진은 아내가 설마 계속  선천의 관사에 남아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떠나 보냈다.

  정보사단의 이현우는 이번  전쟁에 관한 세계각국의 입장을 드러내는 정보를 취합하느라 바빴다. 김준태와 구성회는  비밀자료를 분류하고 있었고, 오성윤은 아직도  암호분석하느라 정신이 없어 전쟁이  끝난 줄도 몰랐다. 서승원의 잠수함은  보급을 마치고 출항 직후에  종전소식을 듣고 다시 남포항으로 돌아갔으며, 전투기조종사  김종구와 황인호는 영변의 지하격납고에서 동료들과 함께 샴페인을 터뜨렸다.

  홍지영 대통령과 몇몇 국무위원들은  중국 주석 일행을 맞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 있었다. 북부강변도로를 지나며  보이는 무너진 도시외곽고속도로의  잔해가 흉물스럽다고  느꼈다. 가는 길에  그는 대구에서 잡힌 반란군이  아무래도 일본인같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홍지영은  중국 주석과의 만남에서 불법침략에  대한 배상으로 금전적 배상 외에 무엇을 원할까  고민했다. 오석천 공보처장관 주장대로 연변 일대의 만주땅  일부를 돌려달라고 하면 그쪽의 반응은 어떨까? 분명 부정적이겠지만 이쪽이 강하게 나가면 혹시 잃은 땅은 조금이라도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동지나해와 황해로 표기된 바다 이름을  남해와 서해로 바꿔달라고  해야지... 그는 스스로  자신이 어린애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는 중요한 문제였다.

  박진은 아직도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빴다.  이호룡이라는 환자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윤민혁과 최영섭은  2군 헌병감 김용진 소장에게서 호출을 받고  혜산에 있는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윤민혁은 컴컴한 만주의 하늘을 자꾸 뒤돌아 보았다.  전쟁을 끝내고 만주를 돌려받기 위해서는 김재호 대장을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 안중근 의사처럼,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확신범이라며 하늘을  우러렀다. 그의 생각처럼 5군이 서진을 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더 길게 끌었을지도  모르며,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예비군 김광열은 선양으로  향하는 트럭에서 살았다고 만세를 부르고 있었으며, 이은경과 정호근  대원은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대원의 허리를 잡은  정 대원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저격수 구스타프는 아직도 자금성의 천정에 갇혀 있다.

  그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한 통일참모본부의 참모(군사위원)들은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늘어지게 자고 있었고, 서열이 가장  낮은 이호석 중장만이 남아 투덜거리며 당직을 서고 있었다.

  중국 군사위원회  주석단 일행은 서울로 가는  민항기를 타고 있었는데, 쓸데없는 오해를 살까봐 호위기는 붙이지 않았다. 창 상장은 앞으로의 일이 더  큰일이라며 걱정이 태산같았다. 1야전사의 차오  중장은 병력손실이 너무  크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2야전사의 고휘  상장은 장갑지휘차 안에서 느긋하게 마오타이주를 즐겼다.

  미국 대통령 제임스는 국무장관 호블랜드로부터 이번 전쟁기간 중 판매된 무기액수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웃고  있었다. 앞으로 일본에 판매할 무기량은 훨씬 많았다. 제임스는 곧  다가올 자신의 재선이 확실하다며 즐거워했다.

  일본 통막의 고마쓰 미도리 육장은 병력을 좀 더 빨리 동원하지 못한데 대해 땅을 치고 있었다. 라싸의  티벳사람들은 독립을 축하하며 축제를 벌이고 있었고,  타시 구르메는 울고 있는 빠르 바티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짐을 챙기고 있었다.

  1999년 11월 중순에 시작된 통일한국과 중국의  전쟁은 양국간에 큰 피해를 남기고 이렇게  끝났다. 핵무기를 사용한데 대해  국제적인 비난이 있었지만, 세계인들은  더 이상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은데에 안도했다. 그동안의 전쟁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전쟁의 끝이 아니었다. 통일한국을 질시하는 주변국들이나 다른 나라의 불행에서 이익을 구하려는 국가들이 아직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아시아2000 3부, 만주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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