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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치기

사이언스키드의 비애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3. 11. 10:03

사이언스 키드’의 비애!


(사진/과학기술원 학생들의 진지한 눈빛. 한국과학의 미래가 걸린 이들의 어깨는, 그러나 너무 무겁다.)

“여기 68년에 태어난 한 아이가 있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법관이 되기를 바라며 이름까지 지어주셨다. 그러나 아이가 소년으로 자랐을 때, 소년의 사춘기는 온통 과학기술의 환상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소년의 위인전 목록에는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과 함께 아인슈타인과 퀴리부인이 올랐다. 인류를 구원하는 과학자의 삶이란 얼마나 숭고하고 정열적인가. 할리우드 키드에게 영화가 ‘꿈의 궁전’이었듯이, 소년에게 과학은 ‘요술지팡이 ’였다. 소년은 사이언스 키드였다.”

가장 무거운 굴레, 성적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게시판에 최근 ‘사이언스 키드의 생애’라는 글이 떴다. 입에 입을 타고 퍼지면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공감에서, 극단적인 자조라는 비난에 이르기까지 평이 분 분하다. 한 사이언스 키드의 고백이 과학영재들의 요람인 과학기술원에 파문을 던진 것이다.

신동석(20·산업공학3)씨는 문득 자신이 바로 그 사이언스 키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어릴 적 에디슨의 전기를 읽고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부터 과학자라는 이름은 그를 통째로 사로잡았다. 구겨진 실험복을 입고, 시험관이 즐비한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는 모습을 그렸다. 노벨상 시상대에 서는 모습을 상상할 때의 뿌듯함이란. 그래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 른다. 과학고를 거쳐 과학기술원까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내달렸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이 어쩌면 사이언스 키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다.

“대학생이 된 사이언스 키드는 남들이 데모 같은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조국의 앞날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입시생 못지 않은 격 렬한 노동이었다. 그러는 사이 세상이 변했다. 대학 이공계는 공급과잉 상태에 이르렀고, 곳곳에서 박사 실업자가 생겨났다. 어렵게 연구소에 취 직한 사이언스 키드는 더욱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직면한다. 그는 자신의 연구보다 연구소의 토지가 면세라는 데 회사가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은 콩알만한 연구소를 에워싸고 있는 엄청난 땅의 면세를 위한 빌미에 불과했던 것이다.”

무엇이 사이언스 키드의 꿈을 배신한 것일까.

과학기술원의 학생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과학에 재능을 보인 천재 비슷한 사람들이다. 교수들도 세계의 내로라하는 학술지에 수차례 논문이 실린 권위자들이다. 한국 과학두뇌의 산실로, 오는 2005년까지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자랑이 결코 허세만은 아니다. 과학기술원이 내놓은 홍보책자를 보면 더욱 그렇다. “현재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 의 40대 이하 젊은 박사급 과학기술자 5천여명 가운데 약 절반은 과학기술원 출신입니다. 과학기술원은 해마다 3백여명의 박사를 배출하고 있는데, 50% 가량이 20대의 젊은 박사입니다. 이들은 지금 학계를 비롯해 연구소, 산업계 등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선진화의 핵심으로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의 청사진만큼 학생들의 생활은 화려하지 않다. 상당수 학생 들의 일상은 숙제에 지치고, 실험에 눌리고, 미래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의 고뇌로 점철돼 있다. 누구나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고, 수업료 면제는 물론, 장학금 혜택까지 풍부하지만, 방심할 만큼 형편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천재니 영재니 하며 추켜올리는 주변의 기대는, 돌아서면 중압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른 동년배처럼 사랑도 하고 좌절도 하며 삶을 다양하게 가꾸지 못하는 이들의 일상은 정녕 고단하지 않을 수 없다.

성적은 과학기술원 학생들에게 가장 무거운 굴레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공부만큼은 남달랐던 이들이기에, 성적이 주는 중압감은 유별나다. 더욱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풍토에서 성적은 결정적이다. 대학원은 100% 내신만으로 뽑기 때문이다. 백설희(21 ·여·산업디자인4)씨는 “여기 학생들은 대체로 승부욕이 강하다. 모든 면에서 남보다 앞서려 한다. 성적은 특히 그렇다”고 말한다.

연구가 중노동으로 변하는 순간

이러다보니 경쟁은 더욱 처절할 수밖에 없다. 24시간 개방된 도서관과 연구실은 늘 불야성이다. 많은 학생들은 밤을 새워 숙제에 매달리고, 학점이 나쁜 과목은 재수강을 해서라도 평점을 유지한다. 그렇게 해도 학사 경고를 연속 세 차레 받으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 지난해에는 이런 중압 감을 못이긴 몇몇 학생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학교 안팎에 큰 파 문을 던지기도 했다. 백씨는 “과학기술원 학생이라고 모두 공부에만 매 달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적이 주는 중압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학생은 드물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과학기술원과 마찬가지로 과학영재 양성을 표방하는 포항공 대에서도 비슷하다. 양호영(25·물리학과 석사과정)씨는 “전체 학생의 4 분의 1 정도가, 기준으로 정해진 학기보다 더 학교를 다녀야 할 만큼 성적관리가 엄격하다”고 말한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생활과 학업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좌절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한 후배의 푸념이 기억납니다. 고교 때는 밤 12시까지 공부하면 됐는데, 지금은 새벽 2~3시까지 해도 모자란다나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런 부담감은 커진다. 대학원 진학의 성패가 결정될 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진학하면 여기에 연구며 프로젝트 수행이란 올가미가 덧씌워진다. 학생들은 이런 현실을 우스갯소리로 풍자 한다.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군인, 민간인, 그리고 과학기술원 석사 1년차다.” 자고 나면 연구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를 새로운 인간형으로 조소하는 것이다.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에 들어서는 순간 연구는 중노동으로 변한다”고 한탄한다.

이처럼 학생들이 학업 부담감에 시달리자 학교에서도 대책마련에 나섰다. 과학기술원은 최근 학사경고로 인한 제적요건을 누적 3회에서 연속 3회로 완화하고, 재입학제도를 도입했다. 신입생 모두를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쟁이라는 기본원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 한 교수는 “경쟁은 이곳의 생존법칙이다. 학생들은 그런 세계를 능히 헤쳐나갈 수 있는 인재들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원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강제규정은 아니지만, 그동안 관행으로 굳어버렸다. 학생들 대부분의 생활이 기숙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먹고, 자고, 공부하고, 놀고, 심지어 화투놀이도 이곳에서 벌어진다. 일부 학생들은 이곳과 강의실, 연구실, 도서실, 그리고 식당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돈다. 이 점은 학교에서 바 라는 것이기도 하다. 학교는 “24시간을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동문 사이에 결속력이 강해지고, 공부외적인 요소에 유혹을 덜 받게 돼 학습효율이 높아진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꼭 기숙사 생활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숙사 생활이 답답하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주대권(19·재료공학2)군은 풍물동아리 ‘소리모음’의 회원이다. 시간이 비면 동아리방에 들러 홀로 장고를 친다. 쇠가죽이 울려대는 소리에 가슴에 쌓인 스트레스를 날린다. 그는 기숙사 생활이 무미건조하고 답답하다고 한다.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정신적인 것이다. “과학고 때까지 합치면 4년째 기숙사에서 사는 셈입니다. 2명이 함께 방을 쓰기 때문에 공간이 좁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제는 독립적인 공간을 갖고 싶습니다.”

서울대에 대한 복잡한 감정


 (사진/기숙사 생활이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학생들도 있다. 동아리활동은 그런 생활에 윤활유가 된다.)

학생들은 주로 동문회를 중심으로 뭉친다. 공부나 술자리 따위가 대부분 동창들과 이뤄진다. 요즘 같은 학기 초엔 교내 곳곳에 동문회를 알리는 광고가 나붙는다. 대부분 과학고 출신들의 잔치다. 일반고 출신은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학과나 학생회 같은 공식적인 기구는 그다지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다. 이번 학생회장 선거는 3년 만에 경선으로 치러진 것이었 다. 부총학생회장 김하늬(21·여·산업경영4)씨는 “요즘 과학기술원 학생들 사이에 개인주의가 퍼져 있다”고 말한다. “이곳 학생들은 모두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봐요. 주변의 기대나 선망도 결코 근거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낍니다. 남과 더불어 살기보다는 자신의 욕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죠. ”

전자게시판은 이처럼 파편화한 학생들이 익명으로 만나는 곳이다. 과학기술원에선 대부분의 학과가 자체 게시판을 운영한다. 개인 게시판도 상당수다. 컴퓨터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라도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용이 무척 활발하다. 학생들은 게시판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각종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이 가운데 ‘아라’, ‘우리 마을’이라 불리는 게시판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들 게시판을 통해 이른바 ‘논객’이 등장한다. 이들은 날카로운 분석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학내여론을 선도한다. 개중에는 신랄한 독설로 자신의 주장을 펴 매번 격론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아도 있다고 한다. Leinad, Spunky, Miss Fox 등이 유명한 논객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과학고 2학년 때 무시험으로 입학한다. 다른 대학은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다는 학생들이 많다. 일찌감치 과학자가 되기 위한 외길로 들어선 셈이다. 그러나 막상 대학생이 돼서는 자신이 인생을 너무 일찍 결정한게 아니냐며 회의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한 학생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조기졸업이 능사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인문지식을 좀더 체계적으로 쌓는 게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곳에도 교양과정이 있긴 하지만 선택의 폭이 좁아요. 종합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일반 대학이 이따금 부럽기도 하죠.”

특히 서울대에 대한 이들의 감정은 복잡하다. 영재들을 범재로 만드는 별 볼일없는 대학이라고 조롱하면서도, 사람들이 그런 학교를 여전히 제일로 쳐주는 현실에 열패감을 느낀다. 김하늬씨는 이를 “서울대에 대한 우월 감과 패배의식의 잡종”이라고 표현한다. “많은 학생들이 과학기술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부족한 현실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교육환경이나 학생들의 수준이 국내 최고라고 자위하지만 현실의 메아리는 공허하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밤이면 ‘압구궁동’으로 간다?

여기에 지방이라는 지리적 여건이 학생들의 소외감을 부추긴다. 영화나 음악, 연극을 좋아할 나이이지만 그것을 누릴만한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 이다. 반면 근처에 관광특구로 지정된 유성구가 있어 유흥문화가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학생들은 밤이면 ‘압구궁동’이라 부르는 궁동으로 진출해 밤을 지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술문화는 여느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다. 실험이나 숙제가 많다보니 술자리가 늦게 시작하고, 한번 시작하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게 관행이다. 자연히 아침생활이 흐트러진다. 아예 밤과 낮이 바뀐 학생들도 있다.

과학기술원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까리용’이라 불리는 조형물이 서 있다. 빨강과 파랑, 녹색의 삼색 철기둥이 아지랑이 모양으로 꿈틀대며 하늘로 올라가는 형태다. 아지랑이처럼 지식을 향한 열정이 피어나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과학기술원 학생들은 분명 지식을 향한 열정을 간직 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과학영재라는 선망의 뒤안에서 피어오르는 고민을 안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밤이면 압구궁동으로 가는지 모른다.

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

 

사이언스키드의 생애 : http://kldp.org/node/67733

 

 

 

나는 80년생이다. 88년도에 퍼스널 컴퓨터라는 신기한 기계에 사로잡힌, 사이언스 키드라고 불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2008년 지금 내 현실은 말하기가 좀 그렇다. 이리저리 치이다가 PC방 알바가 내게 가장 적당한 직업이구나. 라고 느끼게 된것(현재는 그것조차 어려운 지경에 와있다). 어쨌거나 지금 내 앞의 현실은 너무 어둡다. 해도해도 너무할 정도로....

요즘 주변을 보면 정말 그러하다. 적어도, IMF 이전까지는 그럭저럭 먹고살만 했었던것 같다. 뭐 다른 업종도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김태형씨의 카운셀링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한국의 20대는 한국의 심장인데 침체기가 왔다는 것이다. 사실 내 생각에 한국은 그렇게까지 불경기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확실한 불경기이다. 30대, 40대의 생각들을 20대들은 보고 배우고, 그 20대는 후에 30대, 40대가 된다. IMF 이후 10년이 지났다. 그시절 20대는 지금 30대이다. 기초가 되는것들은 당장 돈이 되지 않으니까 어떻게하면 아껴야 해야 좋을지만 궁리한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몇몇 회사들은 그런 분위기였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그렇게 심각할줄은 몰랐다. 졸업한지 10년도 안됐는데 이과생이 30%도 안될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만 해도 60%는 넘었던것 같은데.... 나는 머릿속에 '인문계 나와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라는 생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때는 손재주가 있다고, 원리를 이해하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R&D쪽에서는 빛을 발할것 같다고 어른들은 입을 모아 나에게 이야기했다. 물론 그 이야기를 한 사람들은 부유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래서 접해보지 않은 환상을 가지고 그렇게들 이야기했던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신문에서 'PCB' 사진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어쨌거나 그것은 '컴퓨터'와 관련된 고급 기술이라는 생각으로, 좋은 마음에서 그렇게들 이야기했던 것이다. 물론 부모님께서도 그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국민학교에 다닐때, 장래희망을 묻는 설문지에 "리어카 장수"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사실 지금, 내 솔직한 심정이다. 야채장사(그때는 '불법복제 테이프'였다)라도 하면 노후걱정은 하더라도 몸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을것 아닌가.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머리에 쥐나고 컴퓨터 앞에서 자고. 일어나면 모니터(본체의 스위치가 아니다)를 켜고 다시 쥐나고. 밥도 컴퓨터 앞에서 먹고. 물론 이 글을 보는 "일반인"들은 '어이구, 자기관리도 못하는 게으른 청년일세'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공대생", "엔지니어"들은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프로그래머들이 한달만에 만드는 프로그램을 누가 15일에 완성했다고 치면, owner들은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15일'로 인식한다. 경험있는 사람들이 좀처럼 도와주질 않는다. 그걸위해 야근하고, 밤새고, 코피흘려가며 20일에 해내면 그들은 '15일만에 나와야 할 프로그램이 20일 걸렸으니 형편없구나'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정부탓'일까? 물론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당장 이익이 되어야 하는것만 찾고 눈에 보이는 것만 찾으니 그런 것이다. '투자'라는 개념은 전혀 없다고 본다. 당장 엔지니어 몇명 고용하는것은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엔지니어들은 바로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보일수가 없다. 게다가 장비가 한두푼 하는것도 아니고. 교육기관에서는 옛날얘기만 한다. 이공계, 특히 컴퓨터 관련업종의 경우는 1년만 지나면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바로 윗문장을 보면서 "맞아, 모두 어른들 탓, 정부탓이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니다. 우리 엔지니어들이 "협력 업무"라는것에 대해 관심있어하고, 배워본적이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오"다. 좀 큰 회사나 가야 '사수, 부사수'가 있고, '팀'이 있다. 게다가 그 분위기조차 견디질 못해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웬만한 회사의 경우 '전산관련'쪽 인원은 휴가도 못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정답은 우리가 이기주의적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정보공유는 둘째치고, 프로그래머들끼리 만나면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 내놓기에 바쁘다. 공유는 하지 않지만, 자기 자랑은 하고 싶다는 표현일까?

5년후, 10년후에는 이공계 엔지니어는 부족할테지만 나같은 프로그래머는 필요없는 세상이 올것으로 예상한다. 프로그램은 취미생활로 즐기는게 옳은 판단일거라 생각한다.

그럼 난 주업으로 어떤걸 해야할까? 비록 취미는 정해졌지만, 정작 살길은 막막한 것이다.